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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사랑을 살리라
1 봄, 봄이 왔다. 섬진강기슭에 봄이 왔다. 지리산의 새봄이. 그것은 이 강산의 뻐꾸기가 불러서 온 봄이 아니였다. 하늘높이 떠서 재졸재졸 울어예는 금종다리 좋아한다고 찾아와준 봄도 아니였다. 이해의 봄은 어쩐지 지난해에 이미 가버린 그 봄과의 자연적인 교체, 그 계절의 단순한 반복만은 아닌상싶었다. 겨우내 혹한속에서 살아오면서 그처럼 눈물속에서 애끊게 그려보던 여기 산사람들을 위해 찾아와준 고마운 소생의 봄, 투쟁의 새봄인것이다. 그 많던 눈은 다 어데로 갔는지 흰눈이 허리중어리까지 쌓였던 저 높은 나무가지들우에는 빨찌산들의 헌 짚신짝들, 놈들이 비행기로 뿌렸던 삐라의 코종이들과 찢어진 옷가지들과 헌 발싸개들까지도 이 한해 겨울을 허탕친 놈들을 야유하듯 여기저기에 걸려있었다. 아마도 눈이 강산같이 내려쌓였을 때 그 높아진 눈마당우에서 이리저리 딩굴어다니던것들, 준엄했던 지난겨울이 남겨놓고 간 마지막잔해들이리라. 봄도 이른봄, 그래도 저 양지바른 물가의 아직 그 뿌리는 언땅 속에 박혀있고 연약한 밤색의 대는 두터운 얼음장속에 반나마 꽂혀있는대로인 가는잎꽃버들아지우에서는 복토끼와도 같은 보르르한 보드라움이 느껴지는 연회색버들개지들이 제법 통통 살쪄가고있었다. 엄동설한을 이겨낸 그 꽃버들의 유연강직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시라고 하겠다. 지금 섬진강기슭에 괴나리보짐을 어깨에 가볍게 걸멘 한 젊은 사나이가 서있다. 봄바람에 날리는 무명두루마기자락이 그 어떤 흰 수리의 날개처럼 진정을 못하고 퍼덕거리는 어딘가 날파람있어보 이는 청년, 그는 다름아닌 갑동이의 제일 가까운 전우인 손동찬이, 《제트기-제비》인것이다. 그와 갑동은 같은 선요원으로서 완전한 동업자일뿐아니라 사업련계가 매우 밀접해진 동지사이로 되였다. 갑동이가 얼마전부터 총체적으로 경남도지휘부산하의 선요원들을 통솔하는 련락과장의 무거운 임무를 수행하게 되였다면 손동찬은 전투병단 련락과의 과장으로서 호상 선을 대이며 맹활약을 벌리고있는터였다. 지금 이 봄날을 맞아 동삼내내 우에 걸치고 다니던 허름한 개털등거리와 함께 지꿎던 그 겨울을 어디에다가 다 활 벗어 팽개친듯 싶은 손동찬이 오늘은 이리도 경쾌한 두루마기차림으로 섬진강가에는 왜 서있노? 또 하나의 중요한 공작임무를 수행하고 돌아가는 길인 그의 발걸음을 여기에 멈춰세우게 만든것은 올해따라 류다른 봄맞이를 하고있는듯 싶은 섬진강의 파격적인 장쾌한 흐름이였다. 그의 눈앞에는 지금 실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있었다. 한것은 남해가의 지대적인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해의 별스러운 봄은 우수, 경칩에 때아닌 뜻밖의 장마비로 갑작스레 불어나서 크게 범람한 섬진강의 성난 물결을 앞세우고 성급하게 닥쳐왔던것이다. 우수, 경칩의 대장마, 이 또한 남해가까운 섬진강의 특유한 새 봄풍경이라 하겠다. 강상류에 눈비가 얼마나 내렸는지 황토색물결로 산같은 파도를 일으키며 짐승이면 짐승, 사람이면 사람, 나무면 나무, 집이면 집… 어쨌든 장마진 강물은 그 어떤 하나의 격전이라도 치르러 가기라도 하는듯이 우에서부터 내려오면서 마을과 동리들을 다 휩쓸어 인적, 물적잠재력을 총동원해가지고 노도와 같이 진격해오는것 같았다. 다같이 뜻밖의 물란리를 만난 같은 처지인지라 여기서는 모든 생물들이 모두 《평화적공존》인듯… 쌀을 채먹는 쥐라면 용서를 모르는 고양이조차도 겨우 강물우로 찰싹거리며 헤여서 기여올라와서는 앞에서 물에 채채시 젖어가지고 오돌오돌 떨고있는 생쥐새끼의 그 정상이 하도 가긍하게 여겨졌던지 그걸 잡아먹지를 않았다. 배집지붕우에 발가벗은 몸으로 앉아 손바닥으로 가래노저이를 하면 서 그냥 울고있는 어린애의 주위를 감막아주듯 대가리들을 바딱 쳐들고 곧추서있는 여러 마리의 배암들도 사람을 물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옆에서 애를 지켜주는상싶은 모상들이였다. 어느 집 허청간을 하나 독으로 맡아가지고 내려오던 영민한 진도개가 자기의 본래고향인 다도해의 섬인 진도로 돌아가는 기분인지라 그 꼭대기에 셈평좋게 멍하니 앉아서 량옆으로 빨리도 흘러지나군 하는 산천경개를 두루 구경하고있었다. 둥굴이는 역시 큰 짐승으로서 막무가내인 물결이 하자는대로 큰 배를 거둬안고 둥실둥실 떠내려가다가도 누가 뭍에 서서 《여보게 황소, 자네 그렇게 갔다가 언제 돌아올라나?》 하고 묻기라도 하는듯이 《장마가 끝난 다음에 올란다-》 하면서 《웅-어》 하고 웅글은 소리로 대답하는것 같았다. 저기로 둥기둥둥 잘도 떠내려오는 하나의 커다란 독속에 의사스럽게 들어앉아있는 염소할아버지가 담배생각이 나는지 사방을 휘둘러보며 매애-매애- 하면서 무엇인가를 찾고있다. 물에 빠져도 돼지는 돼지였다. 마사지지 않고 통채로 파도의 률동을 타고 오르내리고있는 돼지우리안에 들어있는 꿀꿀이족속 한마리가 그 복새통에도 먹을것을 내라고 그냥 야단이니 철때기도 없는 짐승이지. 어쨌든지간에 산 생명, 죽은 생명, 산 나무, 죽은 나무 할것없이 함양, 산청, 거창, 하동이 다 합쳐서 섬진강으로 떠내려오는 물인것이다. 거기에는 아이도 로인도 있었고 아가씨도 총각도 여하튼 없는것없이 모두 떠내려왔다. 아니, 지리산이 통채로 떠내려오는것 같았다. 마지막얼음장을 타고 겨울은 가고 장마진 강물을 타고 그리도 굉장하게 그리도 요란스레 찾아오는 지리산의 봄은 성미도 급하고 격렬했다. 우수, 경칩에 때아닌 봄장마를 터쳐 노호하는 섬진강! 그것은 거세찬 자연의 흐름, 막을수 없는 불가항력의 힘을 가진 폭풍노도였다. 손동찬은 지리산의 새봄을 맞아 얼음장을 터치며 소리쳐 흘러흘러 내리는 섬진강의 범람하는 그 물결에서 혁명의 해동을 느꼈다. 그리고 가슴속에 넘치는 봄의 야릇한 정서와 함께 그 어떤 알지 못할 열정의 범람을 느꼈다. 불현듯 그의 눈앞에는 느닷없이 지난해 초겨울 련락임무수행의 길에서 황갑동이랑 같이 잠시 만났다가 헤여졌던 청학동 치성터의 잊을수 없는 소복단장의 녀인이 생각났다. 곡절많은 그 녀인의 운명이 가긍하게 여겨졌다.
곱게 생긴 녀자의 운명은 기박하다더니 정말로 가엾은 녀인이였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나 지내고있는지? 아직도 거기 청학동기슭의
산죽막옆에 밤마다 마음의 초불을 켜들고 그 무엇인가를 막연하게 기다려 산신령을 향해 두손 합장하고 곱게 절을 하면서 그냥 치성을
드리고있지야 않겠지! 그래도 사람의 일을 알겠는가. 혹시 그때 헤여지면서 갑동이와 내가 일러준대로 결심먹고 내려가 억울한 종살이를 박차고나와서 한번 시집갔던 녀자래서 그리 박대나 하지 않을 무던한 남자라도 하나 만나서 정을 붙이고 서로 의좋게 사는지 뉘 알랴! 그리되였으면 오죽 좋으랴싶으면서도 그 녀자가 단호히 사람 못살 그놈의 집을 뛰쳐나온 경우일지라도 혼자몸으로 언제까지라도 남아있어주었으면 하는 별스러운 심리를 느끼게 되는 손동찬이였다. 왜서인지 그 녀자가 보고싶어지고 만나서 따뜻한 동정의 말이라도 해주고싶은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가. 그쪽을 지나는 기회가 있으면 한번 그 치성터에 다시 들려 자기 고향마을에서 살던 그 젊은 녀인이 상기도 그렇게 지내고있는지 알아보라고 당부하던 황갑동이의 말이 상기되는 손동찬이였다. 그는 지금 청학동쪽으로 가고있었다. 어느덧 절기는 빨라 바야흐로 초여름으로 가고있는 화창한 봄날이였다. 머리우의 파아란 하늘가에 백마가 저쪽끝으로 내달리며 찍어놓은 발자욱같은 조가비구름까지 끼여있어 저것이 하늘인지 푸른 남해인지 분간이 안 가고… 해빛은 따갑고 바람 한점 없어 동삼내 얼었던 몸들이 불시에 녹으면서 사람이고 자연이고 다같이 녹작지근해져서 아무 미동도 없이 적막을 즐기는 그런 날씨였다. 아직 씨앗을 바로 묻지 못한 봄의 들판과 주변산들에서 아물거리며 피여오르는 아지랑이는 무엇인가에 사람을 취하게 만들며 어지럼증을 일으킨다. 그 아지랑이들은 화전민들이 흰쌀이 하도 그리워 당수배미 쪼박논이라도 풀어보려고 너럭바위우에 지게로 흑토를 지여다 펴고있는 그것도 글쎄 밭이라고 빠짐없이 찾아가서는 후더운 땅김을 아롱아롱 피워올려주고있었다. 여기저기 줄다람이들도 나타나 발에 작은 바퀴들이라도 달린듯 쪼르르 재빠르게 굴러다니군 했다. 자꾸만 근질거리는 이마를 어디에 대고 마구 부비여 몇근의 무게가 잘 나가는 멋진 락각을 어느 단풍나무아지에 걸어놓은 수사슴도 경쾌한 기분으로 제 쌍을 찾아 열성을 내여 뛰여다니는 계절이였다. 어느 가까운 곳에서 수꿩이 암꿩을 찾으며 멀리 가는 그 외마디소리로 한바탕 짧게 울어대더니 저 맞은편 도롱봉의 개암나무숲속에서 한결같이 흰 목도리를 두른 불빛 장끼 한마리가 나타났다.꺼겅꿩- 하고 운다고 하여 꿩이라고 했던지. 그 장꿩의 류창한 울음소리를 듣고 까투리가 삐욕삐욕- 자기 상대만이 알아들을수 있는 은근한 신호를 보내며 조심스럽게 나타나면 그리로 정신없이 맞받아 껑충껑충 달려가며 구애동작을 취하는 성급한 수놈, 그것들이 봄꿩이 제 울음소리에 죽는다는 속담까지는 몰라도 위험이야 왜 모르랴. 그렇건마는 자기의 후대를 남기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서로 만나서는 별로 《련애기간》도 없이 열정적인 순간을 가지며 한덩어리가 되여 수림속에서 불타는 이 날짐승에게도 그 어떤 《사랑》의 감정 비슷한것이라도 도대체 있기나 한지 저희들끼리는 바로 아주 열락이였다. 손동찬은 시야에 비껴드는 대자연의 정서와 률조를 흥미있게 감수하며 씨엉씨엉 걸음을 내짚었다. 그무렵 청학동 절골너머 작은 등성이아래의 한켠으로 기운 늙은 소나무밑에 한 녀인이 그린듯 넋잃고 서있다. 전에 신고 다니던 그 오이씨같은 흰고무신은 어떻게 했는지 버선조차 신지 않은 맨발이다. 그 단정하게 곱게 빗어넘겨 가리마를 지었던 머리칼은 다 흩어져내려 눈앞을 가리우고 지겨운 생의 포기로 절망에 빠진 녀인의 얼굴에는 죽음을 맞이하려는 사람의 누런 노을꽃이 벌써 피여있었다. 그의 한손에는 웬 삼바줄오리가 하나 들리여있다. 그는 그 로송을 이마전을 내리덮은 머리칼사이로 견주어보며 원망을 담아 혼자소리로 뭐이라고 자꾸만 중얼거리고있었다. 정신이상에 걸린듯 했다. 지금 그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이때까지 그는 믿지는 않으면서도 어디에 마음 의지할데가 없어 이 소나무를 산신령의 상징으로 믿으며 그앞에 곱백번 절을 하고 두손바닥이 다 닳도록 빌었었다. 하건만 자기의 소원이 풀린것은 하나도 없었다. 진주댁은 몇달전 달밝던 초겨울밤에 여기서 잠시잠간 만났던 갑동이들에게서 얼어죽지 말고 집으로 어서 돌아내려가서 무슨 똑똑한 마련을 봐도 봐야 한다는 진언을 듣고 결심먹고 시집으로 내려갔었다. 그날부터 또다시 가해지는 시에미의 학대는 학대이고 에미말밖에는 듣지 않는 천치인 남편이라는것까지 병신인 주제에 오히려 어디서 아이도 낳지 못하는 돌계집이라고 매를 드니 견딜수가 없었다. 참다못해 보따리를 싸가지고 그놈의 집을 나오기는 했으나 친정집 부모들은 딸이 불쌍해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 지주집을 나오면 당장 땅을 떼우고 옛날 진 빚까지 물어야 하는지라 한번 시집간 녀자는 잘났건 못났건 살아도 죽어도 그 랑군이 있는데 가서 죽어야 한다고 얼리고 사정하고 하는것이였다. 하나뿐인 외손녀를 어릴적부터 그리도 귀애하며 비록 녀아이기는 하지만 천자와 서예를 가르쳐주어 장차로는 황진이와 같은 명물로 키우고싶었던 꿈을 가졌던 몰락한 량반인 그의 외할아버지 박생원은 매맞아 머리가 다 터진 별이를 다시 돌려보내지 않으면 안되는 그 아픔이 너무나도 커서 기막힌 통곡을 터뜨리기까지 했었다. 복스러운 귀를 가지고 태여난 외손녀를 늘 집에 데려다 키우다싶이 하면서 녀학교공부도 시키고 점차로 궁체인 붓글씨솜씨와 뛰여난 문장을 가진 소녀로 자라나는것을 보고 그리도 대견스러워하며 그 아호를 별이라고 지어주었던 외할아버지. 내내 살기 막막하고 암흑만인 이 집안에 그래도 밝은 빛이 되라고 해서 그 이름을 별이라고 지어주었건만 어이하여 별이의 인생길은 그리도 암담하고 그저 캄캄한 어둠뿐이란 말인가. 시집에 돌아오기는 했으나 감옥살이보다 더한 모진 시집살이를 하느니 다시 청학동으로 가서 벼루와 먹, 붓을 동무삼아 누가 보지도 못하는 붓글씨나 익히다가 치성터의 귀신이 되든지 아니면 맨 녀자들만이라는 가까운 그 절간에 들어가서 영영 나오지 않고 녀승이라도 되고말리라 결심했던 그였다. 차라리 녀자중이 되여 어지러운 속세를 버리고 래세의 락이나 바라면서 사는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런데 정작 올라와서 보니 절간은 빈터만 남아있었다. 얼마전에 《토벌》군이 녀승들이 유격대와 내통했다는 《공비친밀죄》를 들씌워 그 절간을 불질러버린것이였다. 너무도 원통해 그 절의 오랜 주지인 머리 흰 녀인이 그앞의 은행나무에 목매달아 죽으며 원귀를 불렀다는 소리를 얻어들으며 별이는 눈물을 지었었다. 애오라지 하나의 마지막희망이였던 녀승이 되는 길마저도 막히게 된 별이의 앞길은 더욱 막막하였다. 게다가 이젠 시에미가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챙겨서 올려보내준 돈과 쌀마저 떨어져 이 산에서 혼자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나갈수조차도 없게 된 각박한 사정에 부닥치자 극단의 생각을 하게 된것이였다. 자기 불행의 기본출발점으로 되였던 아이문제로 말하면 그러지 않아서 그렇지 치성터의 공덕을 빌지 않고도 녀자가 별난 결심만 먹고 몸을 바릴 생각을 한다면 하다못해 투전판 난봉군의 씨야 받지 못하겠는가.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낳은 아이를 어떻게 사람들 보기 얼굴 뜨뜻해 업고 다닐것이며 장차 그 애의 운명은 어찌될것인가. 세상을 기이며 낳지 말아야 할 떳떳치 못한 그런 아이를 낳아 키우는 죄지은 어머니로 한생을 사느니 비천한 운명의 두 생명이 되기 전에 미리 이 한목숨을 내 손으로 끊어 차라리 깨끗이 죽고 마는것이 옳은 일이야. 나에게는 지금 오직 그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렇게 생각한 별이는 손에 들고있던 바줄끝을 잡고 우로 집어 던지여 자기를 이때까지 속여왔다고 생각되는 그 원망스러운 소나무의 굵은 아지 하나에 걸었다. 그리고는 둘을 마주잡아서는 한끝으로 다른 하나를 감아매여가지고는 아래로 힘껏 잡아당겼다. 이어 밑으로 드리운 바줄로 맞춤한 높이에 올가미를 지었다. 그리고나서 그 올가미가 진 바줄동그라미를 두손으로 잡고 그보다 좀 높은 둔덕으로 올라섰다. 거기서 그 올가미속에 머리를 디밀고는 아래로 몸을 매달며 공중 드리울 판이였다. 정작 그런 모진 마음을 먹고나서기까지가 힘들어서 그렇지 사람이 죽는것은 간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죽어봐야 알겠지만 별로도 꿈만해지고 죽는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으며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마음속에 안정이 찾아오는것 같았다. 그런데 머리우로 그 올가미를 스스로 쓰면서 그 바줄의 선득한 감각이 목을 통해 온 전신에 퍼지는 순간에야 그는 자기가 지옥의 사자가 던져주는 이 올가미를 쓰고 다시는 되돌아올수 없는 저승길로 영영 끌리여가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더럭 겁이 났다. 그러면서 이럴 때 누구 하나라도 나타나서 자기가 잡고있는 이 무서운 올가미를 빼앗아 다시 벗기여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았다. 이런 때 문득 그의 눈앞에는 황갑동이와 함께 들렸던 사람의 얼굴이 그려졌다. 한번밖에는 만나보지 못하고 인차 헤여지고말았지만 가슴속에 뜨거운 인간의 눈물이 그득차있는것 같던 그 인정깊은 사람, 어디서 그 《제비》라도 그때처럼 불현듯 앞에 나타난다면 자기가 구원받을수 있으련만 아무데서도 그 모습은 볼수 없었다. 어찌 그것을 꿈에라도 바랄수 있으랴! 별이는 그가 아니더라도 좋으니 누구라도 나타나서 이 불행한 녀인이 여기서 이렇게 불쌍하게 죽는걸 보아라도 주었으면 싶었다. 하다 못해 저 아래마을 아이 하나, 강아지새끼 한마리라도 올라와 보아주는것이 없었다. 《아, 어무니, 아부지! 먼저 가는 이 불효막심한 딸을 용서해주세요. 저는 죽어서라도 저 하늘의 작은 별이 되여 어둠에 찬 우리 집안을 비쳐줄라요…》 별은 이렇게 하직인사를 하고나서 드디여 자기의 목에 조여들기 시작하는 그 바줄을 놓으며 언덕받이에서 아래로 몸을 떨어뜨렸다. 소나무밑으로 몸이 드리우는 순간에 정신이 먼저 죽은 상태인 그는 그 죽음을 도루 벗어서 메치거나 차던지려는 아무 발버둥질도 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목숨을 가진 생명체치고는 그런 고운 죽음이 다시 없을 정도로 아무 반항도 전혀 없었다. 별이는 자기의 몸이 그 어떤 무중력상태에 들어가는듯 했다. 마치 어린시절 대보름날 저녁 동무들과 같이 뒤동산에 올라가 그네를 탔을 때와도 같은 그런 멀미가 올뿐이였다. 그는 마비되여가는 목이 좀 아파오면서 자기의 몸이 앞뒤로 조용히 흔들리다가 갑자기 목구멍으로 숨이 꺽- 하고 넘어가는듯 한 마지막경련을 몸으로 느꼈을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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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제비》는 여기서 이런 사태가 빚어지고있는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고 산야에 넘치는 봄의 정취에 한껏 취하여 속으로 이 계절의 민요인 《정이월 다 가고 3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 오며는…》을 흥얼흥얼 부르면서 낯익은 치성터근방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늙은 소나무가지에 목매달린 녀자를 띄여보고는 경악을 했다. 《앗, 저게 뭐야? 사람이 목매달았구나?!》 그는 정신없이 그쪽으로 달려내려갔다. 창황중에 그는 왼손으로는 벌써 축 늘어진 녀인의 허리를 안아 받들어주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괴춤에서 단도를 뽑아 우의 바줄을 뭉텅 잘라던졌다. 그 녀자를 땅에 눕히고보니 뜻밖에도 진주댁이였다. 《여보시오, 진주댁, 정신 차리시오. 별아주머니, 정신을 차리시오, 정신을!》 동찬은 다급히 소리를 치며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무리 부르며 깨워도 기척이 없었다. 《제비》는 얼른 치성막으로 뛰여가서 작은 쪽바가지에 찬물을 떠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손에 묻히여 이마를 적셔주기도 하고 얼굴에 그 찬물을 뿌려주기도 해봤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손은 벌써 차지면서 얼어들고있었다. 그래도 그 모진 학대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녀성다운 그 품성만은 잃지 말고 인간답게, 깨끗하게 살아보려고 그리도 모지름을 쓰던 그 생명은 이미 녀인의 몸을 떠나가버린것이다. (아, 내가 그만 늦었구나. 한발만 더 빨리 왔었대두…) 손동찬은 녀인의 죽음이 자기때문이기라도 한듯 생각되며 가슴이 저려들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시신이라도 그가 거처하던 산죽막에 가져다 눕히려고 두팔로 받들어 안았다. 넋은 이미 떠났으나 녀인의것인 따스한 온기만은 아직 그의 몸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듯 싶었다. 진주댁을 산죽막에 정히 들여다가 눕힌 손동찬은 어른들에게서 들은 소리대로 행여나 별이의 발가락끝에다가 담배쌈지의 부시깃을 조금 뜯어놓고 부시돌을 켜서 거기에 불씨를 옮겨주었다. 취잎을 뜯어 말리워 보드랍게 짓찧은 그 부시밥은 이내 연회색연기를 피워올리며 발가락을 태웠지만 전혀 미동이 없었다. 실망을 느끼게 되는 순간에 그의 머리에 펑긋 떠오르는것은 일전에 황갑동이 이런 비상시를 예견하여 몇대 깎아주었던 대침이 자기에게 있다는 생각이였다. 그래도 알겠는가. 의술은 인술이라고 했다고 침절반 마음절반으로 그 대침이 은을 내게 될런지… 그는 동무가 몇개의 중요한 침자리를 대여주던 기억을 더듬어 우선 발등과 손바닥에 몇개의 대침을 좀 서투른 솜씨로 꽂았다. 그렇지만 제대로 명중을 못해서 그랬던지 전혀 맥락에 닿는것 같지를 않았다. 그는 마지막수단으로 입술이 벌써 새까맣게 죽어드는 녀인의 인중에 대고 끝이 제일 가늘고 뾰족한 대침 한대를 찔렀다. 침을 빼자 그리로 처음에는 거멓게 죽은 피가 나왔다. 좀 있어 거기서 새빨간 피가 방울방울 솟아오르는것이 아닌가. (아, 아직 피는 살아있구나!) 희망의 불꽃을 본 그는 다른 대침을 골라 인중의 코밑바투에 떨리는 손으로 콕- 찔렀다. 순간, 기적같은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굳어졌던 녀인의 엷은 입술에 보일듯말듯 가느다란 경련이 스치더니 죽은듯이 누워있던 진주댁의 꼭 다물려있던 입에서 호- 하는 가는 소리와 함께 흰 거품이 나오는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이윽고 멎었던 심장의 박동이 다시 시작되는지 조용히 가슴이 오르내리기 시작하는것이였다. 죽음의 저녁노을빛이 짙어가던 그 녀자의 얼굴에 다시금 홍조같은것이 피여나며 점차로 화색이 돌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아, 피여나는구나. 살았구나 살았어!) 손동찬은 환성이라도 지르고싶은 심정이였다. 목수라면 도끼목수요, 의사라면 배꼽의사나 같은 자기가 대침 한대로 사람을 살린것이다. 그것도 다 죽었던 불쌍한 녀인을 말이다. 그는 혈맥이 다 거둘사 하던 진주댁의 식어들었던 손발을 힘주어 꼭꼭 주물러 그리로도 온혈이 흐르게 해주어 심장의 박동을 더해 주었다. 그리고는 인차 풍로의 숯불을 살려 물을 덥혔다. 그래서는 수건에다가 뜨거운 물을 적셔서 손과 발에 더운물찜질을 해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역사질을 했는지 드디여 자기의 숨결을 회복하기 시작한 녀인이 간신히 눈을 떴다. 별이가 죽음의 접경에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돌아온것을 본 《제비》는 자기 심장의 박동소리가 높아지는것도 느꼈다. 《아주머니, 내가 보입니까? 나를 알겠어요?》 진주댁은 아득히 멀어져간듯 싶은 기억의 기슭에서 자기가 언제인가 어디서 보았던지 알수 없는 고마운 사나이의 얼굴표상을 가까이 끌어다가 다시 자기의 망막속에 잡아넣으려고 애쓰는것 같았다. 《진주댁! 이젠 좀 생각나지요. 지난해 초겨울 황갑동이하고 여기 들렸던 산사람이요.》 《!…》 진주댁은 가늘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진주댁-별이에게 정상사유가 돌아온것은 퍼그나 시간이 흐른 저녁무렵이였다. 별이는 손동찬이 반갑고 고마운 속에서도 살래야 더는 살수 없어 이 세상을 떠나려던 시도가 그에 의해 좌절된것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는 눈물이 글썽하여 힘없는 어조로 말을 했다. 《아마 저를 선…선생님이 다시 살려?…》 《…》 《제비》는 그저 말없이 머리만을 무겁게 끄덕여보였다. 《그러시지 말걸 그랬나봐요. 나를 죽게스리 가만 놔두실걸…》 《무슨 그런 소리를?》 《아니예요. 그 마음만은 고맙지만 지금 저를 살려주시는건 실상은 래일에 가서는 저를 두번다시 죽지 않으면 안되게 만드는거나 다름없다는걸 왜 모르시나요?》 《그러니 또 이런 일을 저지르겠다는?》 《…》 《다시는 그런 모진 맘 먹지 마오.》 《이 세상에 죽고싶어 죽는 사람 어디 있으며 그런 모진 마음 먹자고 해서 먹는 사람 어디 있겠나요.》 《그래 그동안 살아보자고 애는 얼마나 써보았는가요? 엉? 그때 우리가 하라는대로 강단지게 마음먹고 이 산을 내리기는 했던가요?》 《네, 그때 시집으로 내려가긴 했습니다마는 원체로 맴이 약하다 보니께 여러가지 딱한 사정들이 눈에 밟혀와 종시 그리 못하고 다시 일리루…》 《여러가지 딱한 사정이라는건?》 《…》 대답을 이내 못하던 진주댁은 사내가 그냥 누워있으라는데도 한사코 자리를 일더니만 시집에 내려가서 다시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모진 구박이며 학대, 남편의 미욱한 매타작질이며 매일과 같이 일어나군 하던 가정불화에 대하여 죄다 이야기해주는것이였다. 《…근데 내가 그 쥔이 별난 병신이라고 이 세상에 대고 소리치면서 그 집을 영영 뛰쳐나와 삘면 시어머니도 시어머니지만 천상 말이 없는 점잖은 량반티내는 그 집 시아버지의 체면은 어찌되나요. 그리고 우리 친정집어머니 말 한가지로 잘나도 못나도 제 랑군이랬다고 차라리 나 하나 돌계집이란 말 들으면서 천대꾸러기로 속 썩이는것이 낫지 저 하나 어떻게 살길 열어보겠다고 그렇지 않아도 남자로서는 한 절반 죽어서 몰리여 사는 사람의 변변치 못한 그 <사내>까지 마저 죽이고 나온다면 그 가련한 쥔의 몰골은 뭐가 되겠나요. 그래서…》 그 말을 다 듣고난 동찬은 너무나도 기가 막혀 한동안 말을 못했다. 《…이젠 다 알겠구만요. 그러니 결국에는 아무리 짐승같은 놈들일지라도 차마 못 죽이겠구 해서 여기 사람들이 보지 않는데 조용히 올라와 제절로 자기를 죽이기로 용단을 내렸다 요것인데, 허 참, 기가 막혀서… 이제 죽으면 천당엘 가게 될걸 가지고 내가 공연히 붙잡아서 못 가게 됐구만.》 《…》 《여보시오 사람이여, 답답한 노릇 아니요? 여기에 자기를 통채로 잡아먹을 채비새인 악독한 승냥이가 한마리 있는데 시제 배고파한다구 해서 자기 팔 하나를 먼저 떼여서 그 승냥이놈의 입에까지 넣어주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걸 보고 뭐라고 해야 옳겠소?》 《…》 짧은 한마디지만 얼마나 생동하고 근사한 비유인지 그 말속에 비치인 자기의 어리석음을 다소나마 느끼게 되는 진주댁이였다. 《시방 거기서는 통 한가지 생각밖에는 안하니까 전혀 아는것 같지를 않은데 원래 이놈의 세상이라는건 속여먹는 교활한자가 속히워 사는자를 업신 보고 오히려 복날 개패듯 하고 꼼짝 못하게 쇠사슬에 얽어매놓고 장참 못살게 굴고 반대로 늘 속히우는자가 돈과 힘이 없다보니께 하는수없이 울면서 겨자먹기로 머저리구실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속힌자를 업고 다니지 않으면 안되게 맹글어진 세상인게라. 그러기에 이때까지 오랜 세월 대대로 내려오면서 지주, 자본가놈들에게 속아서 등껍데기를 벳기워온 사람들을 다 깨우치기 위해서 우리는 봉화불도 여기저기에 지피여올리고 모두의 힘을 합쳐 속이는자들의 못된 세상을 다 뒤집어엎고 속아온 사람들의 세상인 자유의 새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 피흘려 싸우는것이 지금 우리 남녘의 수많은 아들딸들이 나서서 하고저 하는 투쟁이고 혁명이지요. 그런 의미로서 나도 그저 비단 걸음이 빨라서 <제비>라고 불리울것인게 아니라 <속히워 살아온자여, 더는 속지 말자!> 웨치면서 여기 지리산발을 뛰여서도 모자라 날아서 넘나들며 우리 정직하게, 고정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민주하고 자주하는 좋은 세상, 자유의 새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자유의 새 산제비가 되고싶다 이 말이여!》 그저 범상히만 보아왔던 이 사람에게서 난생처음 속이는자들과 속히는자들의 모순많은 세상에 대해 다시금 눈뜨게 되는 별이의 눈물에 젖은 두눈은 비그친 날 밤의 새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진주댁은 말이지요. 다도해의 진주에서 나서 그런지 그 밝은 눈동자도 얼굴도 진주처럼 빛나구만. 별이라는 이름을 다 닮았는지. 별아주머니는 땅에서 나기는 했어도 모든것으로 봐서는 그저 땅에서만 썩이기는 아까운 녀자여.》 《그러면요?》 《자꾸만 자기자신을 낮게만 보면서 땅바닥에 저를 내던질 생각 말고서 저 하늘에 떠올라 만사람들이 다 바라보는 그런 애기별님이라도 한번 되여볼 생각은 없는지?》 《애기별님이요? 별이사 원래 땅에서 솟아오르는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 있는데 어떻게?》 《땅에도 별은 있소. 예로부터 인류를 위해서 좋은 일, 큰일을 한 사람들에게는 저 하늘의 별에 비기여 그의 이름을 지어주고 이 땅의 크고작은 별이 되게 하여주었거든.》 《그럼 지같은것도 정말 저 하늘의 수만 별들중에서 그 하나를 내꺼로 맡아가지고 함께 빛나볼수 있을가요?》 《있구말구. 그렇지만 저 하늘의 별들은 가만 놔두어도 저절로 빛나지만 이 땅우의 그 별들은 절대로 저절로는 빛나지 못하는거요. 별이도 정말로 별이 되고싶거든 자기를 언제나 어지러워지지 않도록, 반짝반짝 빛나도록 자꾸만 닦고 또 닦아야 하는거요. 내 말을 알겠소?》 《…》 별이는 그저 정겹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나는 별이도 앞으로 지금 입산하여 남성동무들과 똑같이 총을 메고 남녘땅 녀성들의 해방과 동등한 권리 위해 싸우는 도장동마을의 녀동무라는 강덕금이와 같은 훌륭한 지리산의 별, 통일의 별이 될수도 있다고 믿어요.》 《제가요?》 《그렇소!》 진주댁은 금시전까지만 하여도 타락과 절망의 막다른 구렁텅이에 빠져 생사기로에서 헤매이던 자기 같은 녀자, 별이면서도 별이 아니였던 이 작은 가슴속에도 희망의 별을 안겨준 손동찬이의 그 마음에 대고 감사하였다. 《정말이지 거기넌 저에게 그런 훌륭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 세상의 첫 남자예요.》 다른 의미로 한 말은 아니겠지만 이 세상의 첫 남자라는 그 소리에는 어딘가 매우 자극적인것이 있었다. 《내사 지금 그 생각인데 별아주머니는 내가 언제까지라도 옆에 있으면서 끝없이 가슴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고싶어지는 이 세상의 첫 처녀라고 하겠는지요.》 《저는 처녀가 아니고 이미 한번 출가한 녀자 아니나요.…》 《알고있어. 관계없어. 나는 별이를 처녀로 생각하자고 하오, 처녀로!》 《워매, 이 일얼 어쩔꾸나?》 별이는 능금알처럼 불타는 두볼을 두손으로 가리웠다. 아, 희다못해 파아란 빛이 감도는 그 손은 얼마나 포동포동하고 고운가. 앵무새도 곱고 꾀꼬리도 곱고 꿩도 곱다고 하지만 자연의 최대의 걸작인 이 인간의 기적같이만 여겨지는 젊은 녀인의 손보다 더 고울수는 없었다. 별이의 얼굴보다도 더 순미해보이는 그 손에는 아직 녀자를 모르는 총각인 《제비》의 가슴에 불을 달아주는 그런것이 있었다. 그는 별이의 그 두손을 무작정 자기의 큰 손으로 받들어서는 줌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떨려오는 사나이의 가슴에다가 꼭 대이였다. 《별이, 나는 이제부터 당신을 내 맘속의 별님으로 부르자고 하는데 반대 없겠는지?》 《아이, 그렇지만 거기는 거시가니 순수한 총각인데 저넌…》 《관계없소. 하나두… 다만 여기서 관계되는것은 지금부터라도 별이가 그 어떤 립장과 태도로 나오는가 하는거지요. 자기를 짓밟고 얽매는 그 가정적속박, 낡은 봉건적속박에서 스스로 벗어나 대담하게 자유 위해 참되게 사는 우리의 새 세계에로 찾아오는가 마는가 하는것은 다 그 마음에 달려있는거요.》 《그럼 제가 한가지 물어도 좋아요?》 《뭔데요?》 《제가 만일 그 모든 낡은것을 박차고 나와 새 생활을 부둥켜안으려고 할적엔 저… 저를 거… 거기서 받아주실수 있나요. 저럴 맡아서 책임을 져줄수 있겠나 이거지요?》 《…》 《왜 그 물음에는 이내 대답을 못 주셔요. 그건 안되지요?》 《안되기사 뭐… 소… 솔직한 대답을 준다면 나넌 별이를 놓치고 싶지 않소. 이 세상 더없이 귀중한 나의 별님으로 서로 헤여지지 말고 늘 옆에 데리고있으면서, 뭐라고 해야 할지 사랑이상으로 끔찍이 아껴주고싶어요. 그렇지만 아직꺼정 우리는 다 결혼을 할수가 없고 가정을 가져서는 안되는 그런 산사람들이라는걸 알고 지금은 리해를…》 《그렇지요. 제 그런 말씀 나올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시방 새 가정이랑 이 불쌍한 녀자서껀 안아주셔야 할 그 가슴에는 다른것이 먼저 안겨져있기때문이예요.》 그 말에 《제비》는 당황해졌다. 《내 가슴에 다른것이 안겨져있다는건?》 《거 뭐라든가요. 속히워 살아온 사람들의 새세상을 위해서 고생들 허시면서 한다는 그것 말이예요.》 《혁명을 말하는거요?》 《그래요, 혁명이요. 그걸 가지면 이것을 놓아야 하고 이걸 가지면 그것을 놓아야 한다는것인데 어떻게 그 둘을 다 가지겠나요.》
꼭 그렇게 해도 안될것이 없을것 같으면서도 결코 그것은 별이의 말처럼 단순한 문제는 아니였다. 《그렇다면 지가 물러서겠구만이라. 시샘할만 한것얼 가지고 시샘을 해야제 나넌 하나도 섭섭히 생각지도 시기도 안할라요… 그저 어디 가서도 절 잊지만 말아…》 《별이! 아니, 우리가 그저 이렇게 헤여질수는 없는거여. 우리 이렇게 합시다. 내 당장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자는 말은 시제 내지는 못하겠지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남으시오. 내 자주는 못 온다해도 드문드문이라도 꼭 들리군 할것이니 우리 이 산전막을 첫집으로 삼고 마음 의지해 살아볼수는 없겠는지, 그러느라면 통일도 될것 아니겠소. 내 생각으로는 지금 같아서는 통일이 그리 오랜 일로는 안될것이니 그날을 믿고 희망을 가집시다.》 《그건 다 존디 그… 그렇게 되면 우리들사이에넌 저… 앞으로는 애… 애도 하나 생길것 아니나요. 그러며는 산죽막도 형투리는 집잉께 집살림걱정도 할라 애생각도 하실라 언제 맡은 일언 하겠나요. 그리되면 나는 좀 좋을란지 몰라도 거기서 한다는 그 일이라는것이 대신 여윌것 아니랑까요. 그러면 안되는것이 나넌 나쁜 녀자로 사람들의 미움과 저주럴 받게 되는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제비》가 갈길이 바쁜지 아까부터 벌써 몇번째나 저고리 안섶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보군 했다. 《근데 왜 아까부터 집 가마목에 엿을 붙여두고 온 사람맹키로 마음을 그리도 진정을 못하시고… 내 다른 부탁 더 드리지 않을라요. 그리고 거시기 저의 잠자리옆에 꼭 붙잡아둘려고도 안할것잉께 마음놓고 이자 지가 얼른 일어나서 님의 진지라도 한그릇 지어드릴것이니…》 《아니 그럴새가 없구만이라. 바삐 가봐야 할데가 있어놔서 오늘은… 내 거기 갔다가 후에 돌아올 때 꼭 다시 들리리다. 그때 우리 다시 만나서…》 《… 정 그리면 가시오, 싸게 가씨오. 그렁하고 다시 오지 안해도 돼요. 필요없어요.》 《별이!》 《암만 늘쌍 제비처럼 어디 앉지도 못해보고 날아다녀야 하는 사람이라지마는 그래도 죽다가 살아난 녀자럴 정말로 불쌍히 여기신다면 하루밤 같이 숯불을 피워놓고 밤새 마주앉아서 이야기라도 나누다가 가면 못쓴답디까?》 《별님이여, 그랑하면 내가 어찌 여길 뜬단 말이요. 이 무서운 깊은 산중의 초막에 이제는 남도 아닌 녀인을 혼자 두고 가야 하는 이 사나이의 마음인들 오죽하리오. 기달리씨오. 내 다시 온다꼬 하지 않소.》 《오지두 말아요. 매번 와서는 공연히 마음만 설둥하게 맹글어 놓고 가시면서… 난 이도저도 못미치는 녀자이니께 이젠 좋은 님꺼정 만나봤으니 원도 없고… 제때에 이 세상에서 꺼지고마는것이 피차에… 그리하니 이리 다시 찾아오신다고 해도 내가 여그 있지를 않겠으니 절대로 다시 나타나지 말아주세요. 빕니다. 제발.》 그 마지막말에 《제비》는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갑자기 화를 벌컥 내는것이였다. 《마음대로 하씨오. 이제 오다가 들려보고 또 이와 비슷한 일이 생겼을적에는 난두 모르겠소. 그리고 그렇게 값없이 더럽게 죽어 버린 죽음이라면 내 손으로 땅에다가 파묻어도 주지 않을줄 아시오, 땅에다가 파묻어주지도…》 《제비》는 벌떡 자리를 일었다. 《아니 정말로 성나셨나요?》 《성나지 않으며는… 일어나지럴 마시오. 따라나오지럴 마시오. 그렁하고 몸조리나 하면서 잘 있으시오!》 《제비》는 휭- 산죽막을 나서더니 한번 뒤돌아보지도 않고 어깨의 괴나리보짐을 추스르며 저 웃길을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맨발을 벗고 산죽막에서 비칠거리며 따라나와 저우로 성큼성큼 멀어져가는 《제비》를 눈물로 바래고 섰는 별이의 추연한 얼굴에는 이런 딱한 경우를 당한 녀인의 불서러움과 함께 그 어떤 자기로서의 결심이 어려있는것 같았다.
이 세상 사람들도 천차만별이고 사랑도 천차만별이라 하겠다. 따라서 사람들마다 사랑에 대한 그들의 표상과 견해 역시 같을수가 없다고 《제비》는 혼자서 생각하군 했다. 누구는 믿는 마음, 그 누구는 그리움이나 자기 희생에 대한 갈망, 또한 누구는 주고받는 정의 호상성, 그 누구는 아끼여 애무해주고싶은 마음이 사랑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얼마전에 자기와 만났던 련락과장, 그 뚱보에게로 향해진 자기의 류다른 인간감정을 깊이 묻어두고 살며 말없는 헌신만을 바쳐가고있는 황동무는 무슨 이야기끝에 사랑이란 자기의 어깨에 늘 뿌듯이 느껴지게 되는 무거운 짐, 자기스스로 맡아가지고 고생하면서도 거기서 기쁨을 얻게 되는 일종의 별스러운 마음의 짐인것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자기의 경우에는 그 사랑에 대한 생활적인 파악이 그와 비슷한데가 있으면서도 다른 점도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란 거의 매일, 매 시각 그를 한시도 잊지 말고 관심하고 근심해주어야 하는 하나의 걱정의 덩어리를 안고 사는것이라고 할지… 하나의 진실한 걱정의 덩어리! 그것이 없다면 그 무슨 참사랑이랴. 그는 공산주의자라고 하여 사랑을 가지면 안된다고는 절대로 생각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로 되는것은 첫째로는 그 소복단장의 녀인인 별이가 불행한 유부녀인 진주댁이라는데 있었다. 둘째로는 자기가 지금은 사랑을 멀리해야 하는 빨찌산대원이라는데 귀착되였다. 물론 공산주의자로서 남의 집 유부녀와 온당치 못한 관계를 설정한다는 그자체부터가 절대로 안될 일이였다. 그렇지만 한 불우한 녀인이 노예적인 봉건가정의 딜렘마속에 빠져 극단의 괴로움과 고통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바랄 때 그를 진심으로 동정하고 도와주고 그 깊은 함정속에서 구원해줄 의무가 인간으로서, 공산주의자로서 과연 손동무에게는 없단 말인가? 그것도 황차 그가 자기를 이때까지 얽매고있던 그 짐승같은 인간무리들이 사는 가정적울타리를 박차고 스스로 뛰쳐나오는 경우에 말이다. 내가 만약 체면이요 뭐요 하면서 그를 외면시하면서 피하기만 한다면 나는 사랑의 비겁한 도피분자가 되고마는것이다. 이렇다할 결심은 못 세우면서도 그는 진주댁의 구체적인 생활걱정까지 하게 되는 자신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래서 제일 처음 갑동이와 같이 여기 들렸을 때까지만 하여도 그 무엇에 붙들리기라도 할것만 같아 부랴부랴 여기를 불언직행을 하여 지나던 그가 오늘은 제스스로 여기에 다시 걸친것이다. 그것도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 가던 길에 아래장에 들려서 가지고있던 돈으로 쌀도 좀 사고 숯장사로 가장할겸 참숯도 한토리 사가지고 말이다. 그것을 지게에 무겁게 지고 낑낑거리면서 치성터를 올라오고있는 사나이, 그는 벌써 그 걱정의 덩어리를 스스로 짊어지고 젊은 녀인이 혼자 살고있는 집, 여기 산죽막으로 올라오고있는것이다. 그가 멀리서도 언듯 눈에 띄우는 로송 한그루가 서있는데를 올라오면서 보니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별로도 주위가 조용한것 같았다. 다시는 여기에 나타나지 말아달라고, 말은 그렇게 했었지만 못내 기다리고있을 별이의 얼굴을 그려보면서 그는 숯토리 무거운줄도 모르고 씽씽 올리막길로 내처 올라왔다. 그런데 그가 산죽막 있는데까지 거의다 올라올 때까지도 사람이 어디 있으면 인기척이라도 있으련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초막옆 아래에다가 숯토리지게를 벗어놓은 그는 목에 둘렀던 토목수건을 벗기여 얼굴의 땀을 문지르며 두루 주위를 살펴보았다. (대관절 어디로 갔을가? 혹시 전날의 그 후인으로 어디 가서 자리에 누워서 그냥 앓고있는것이나 아닌지?) 이런 걱정을 하며 그는 이제라도 초막속에서 여전히 흰옷을 고이 입고 나와 수집은 반가움을 안고 반절로 맞아줄 그 별이의 얼굴이 어려오는것 같은 산죽막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조심히 문발을 들고 그안을 들여다보던 그의 두눈에는 서운한 놀라움의 빛이 짙어갔다. 전에 왔을적에 보았던 그나마의 간단한 가장집물들과 작식도구들도 그리고 정하게 개여져있던 침구류들도 다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었다. (어떻게 된 노릇일가? 쓰던 물건들을 다 가지고 간것으로 봐서는 그새 다른 별일은 생긴것 같지 않는데 왜 기다려달라고 했는데두 만나보지도 않고 여기를 훌 떠버렸을가?) 산죽막안을 두루 다시 유심히 살피던 그의 눈에는 낮은 지붕밑 어느 산죽대짬에 무슨 흰 종이봉투 같은것이 끼여있는것이 얼른 눈에 띄였다. 허리를 좀 굽히고 들어가서 꺼내보니 좁고 긴 봉투에 써서 넣은 편지였다. 겉봉에는 《강남 제비에게 띄우는 편지!》 이렇게 마치나 무슨 재미있는 암호같은 글이 씌여져있었다. 자기에게 남기고 간 편지임이 분명했다. 그는 허리를 굽히게 만드는 산전막에 그냥 서있을수가 없어서 앉아서 그 편지를 개봉하였다. 그속에서 뜻밖에도 깨끗한 백지에 진한 먹을 묻혀 붓으로 쓴 궁체의 보기 좋은 편지글이 나타났다. 중학교 중퇴생인 련락원으로서도 놀랄만한 서예솜씨를 보여주고있는 녀자의 편지였다.
길을 떠나는 나그네에게 드립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이 인생의 작은 초막집에 한번 들려주고 가신 나그네일수밖에는 더 달리 될수가 없는 길손에게 이 별이를 욕하실줄 알면서도 이 글을 남기고 갑니다. 우리 여기서 생전 처음 만난 그 시간은 너무나 짧았어요. 그렇지만 하루밤에도 만리성을 쌓는다는 말 한가지로 이 쓸쓸하던 산전막에, 이 고독하던 저의 가슴속에 한점 생의 밝은 빛을 안겨주고 사라진 잊을수 없는 사람이여! 이 세상에 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여났건마는 해도 빛을 잃고 마는 그 어둠의 지난 세월엔 별일수가 없었던 저였어요. 광복이 되였다던 오늘에도 어둠속에서 헤매이다못해 이 연한 손으로 제 목 제가 눌러 저를 죽이러 들었던 제가 아니였습니까. 그런 녀인인 저를 두손으로 안아일으켜 옥황상제도 두번은 줄수 없다는 생명을 다시 돌려주신분, 살려주었다 오히려 원망의 눈물 뿌리는 저를 오빠처럼 달래시며 그러지 말고 어디 한번 저 하늘의 작은 애기별님이라도 되여보라고 하면서 저의 가슴속에 저 하늘의 별 하나를 따다가 안겨주신셈인 고마운 그대 나의 《제비》님이시여! 불행을 타고난 저의 운명을 어떻게 하나 건져주시고 이미전에 빼앗겨 무참히 짓밟혔던 저의 상처입은 처녀를 다시 되찾아주시려 그리도 마음쓰신분. 이제는 내 마음속에 《제비》님이 있고 님의 마음속에 별이 있건대 우리 헤여진다 어찌 영별이며 서로서로 잊지 않고 그리는 마음 변치 않는 한 우리 어이 후날의 만남이 없으리오. 그렇건마는 작별의 쓰라린 이 시각을 당하여 안타까운 이 마음의 진정이 정녕 그리움이 되고 눈물이 되여 하염없이 량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저의 이 애타는 심정을 아시기나 하십니까. 다시 만나지도 못하고 쓸쓸히 헤여져야만 했던 안타까운 석별의 시각을 당하여 여기 초막 단칸이나마 우리 마음의 집으로 삼아 제몸과 마음 다 바쳐 받들어드리고싶은 심정은 애끊건만 그래서는 안될 사정의 우리구만요. 그렇지만 헤여지는 이 마당에서 제가 한가지 말씀드릴수 있는것은 실상에 있어서는 남편이라고 있기도 했지만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인 저는 아무 기다림도 없는 그 무덤속같은 집으로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을것이며 이 한몸 저 하늘의 뜻에 맡기고 산다고 하여도 하등의 부끄러움도 더는 그 못난 량심의 가책도 없게 되였다는 그것입니다. 그렇건마는 자유로이 훨훨 지리산정을 날아예고있는 그대의 억센 나래우에 무거운 짐이 될가 두려워 그대를 뜨거운 눈물에 젖어드는 저의 두손으로 받들어 멀리로 날리워드리나이다. 지리산의 용맹스러운 매여, 내 마음의 《신령님》이여! 땅에 떨어졌던 나를 다시 주어 묻은 흙도 자신의 팔소매로 닦아주며 수많은 별들이 뛰노는 저 푸른 야공에 애기별되라 힘껏 던져올려뜨려 준 내 마음의 하늘이여! 둘로 갈라진 이 땅이 하나로 붙고 둘로 갈라진 이 민족이 하나가 되고 두 몸으로 헤여지는 우리 꿈속에서라도 한몸되는 그날까지 내내 앓지 마시라. 부디 잘 가시라. 사모하는 그대의 봉정만리길에 축복이 있으라!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는 그 녀인이 남겨놓은 눈물에 얼룩진 한장의 편지. 비록 천대와 학대속에 사는 몸이건만 아무리 꾸겨뜨리려고 해도 꾸기우지 않는 농촌의 베천과도 같이 절개심 굳은 조선민족 녀성의 얼굴이 보이여오고 한없이 깨끗하고도 생신한 처녀가 상기도 살아 있는 그 편지, 하나하나의 획들이 바르고 부드러우면서도 명확히 안겨오는 그 붓글씨 하나만 놓고보더라도 어려서부터 손에 호미를 잡고 흙을 매면서 살아온 가난한 집 딸이라고만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온화한 품성과 리성으로 다듬어진 높은 지성세계가 느껴지게 하는 그 녀자의 편지! 그 글에는 짓밟힐대로 짓밟히고 속을대로 속히우고 유린당할대로 유린당해온 한 불우한 녀성의 운명이 있고 눈물과 고통, 몸부림이 있었다. 조선사람들이 다같이 머리우에 이고 살아야 할 통일의 푸른 하늘에 대한 한 이름없는 민간녀류시인의 소박한 시가 있고 제 손으로 가꾼 사과나무의 열매와도 같이 알차고 잘 익은 자기 식의 생활철학이 담겨있는듯 싶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이때까지 그저 치성터의 범상한 녀인으로만 보아왔던 별이에게서 여러가지 새로운 발견들을 하게 되는것이 제일로 반가왔다. 그와 함께 다는 모르고있었던 바로 그의 이 점들을 자기가 귀중히 아끼여 사랑해주고싶었음을 새삼스러운 놀라움과 기쁨을 가지고 깨닫게 되는 그였다. 이것도 하늘의 뜻이라 하겠는지 통일의 날을 앞당기기 위해 뛰여서 사는 그 길에서 만나게 된 하나의 작은 별, 한번 놓치면 한이 되고 잃으면 삶의 손실로 되고 버리면 죄로 될 이런 녀자를 내 어디 가서 다시 만날수 있단 말인가. 오래동안 외로움과 고독에 시달려온 그 몸, 자기가 언제나 깨끗이 거두며 살아온 그 순진한 처녀를 바쳐서라도 남모르는 고생길을 고도시 걷고있다고 여겨지는 한 고지식한 남성에게 순간이나마 기쁨을 주고싶은 수집은 마음 두손바닥으로 가리고 눈물 글썽해하던 녀인, 만날수록 서로의 정은 깊어가건마는 아직 자기는 감히 접할수 없는 투쟁의 세계, 그 시새움해서는 안될 성스러운 하늘에 제 손으로 제비를 날려 눈물로 바래우고 자신은 그 어디론가 어두운 암야의 구름속으로 사라져버리고만 작은 별이였다. 《아, 별아! 네 마음 내가 알고 내 마음 네가 알거니 어이하여 너는 어디론가 멀리로 가버리고 이 치성터의 맑은 샘물만이 저절로 넘쳐흐르고있으니 그것이 정말로 이 사나이를 위한 일이 아님을 그대는 왜 모르느냐? 내 너를 찾으리라, 이 세상을 온통 다 뒤져서라도 나의 별을 꼭 찾아내고야말테야. 혹시 그 누가 뭐라고 한다고 해도, 김지희전투사령이 온 병단앞에 이 나를 내다세우고 엄벌에 처한다고 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 내가 의롭다고 생각하는 일앞에서 나는 한발자욱도 퇴각하지 않을것이며 공산주의자의 사랑이란 어떤것인가를 보여줄테다!》 한편 별이는 멀리로 가지 못했다. 그 산사람과의 세번째 상봉의 바라서는 안될 불가사의한 결과가 두려워지기도 하고 상봉뒤의 가슴저린 영별의 순간이 오게 되는것이 두려워 일시 자리를 피했을뿐이다. 그래서 그동안에 쓰던 간단한 짐들을 꿍져서 안고 이웃초막에 피난을 했었다. 했으나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못내 그리워지고 기다려지기도 하는 모순된 심리의 작용을 어찌할수 없는 그였다.
그래서 온종일 몸은 옮겨다놓았지만 거기에 남겨놓고 온 마음이 안절부절하여 가리사니를 잡을수가 없었던것이다. 이따금씩 림시 동거하고있는
산전막집밖에 나와서는 아래를 신칙해보군 했다. 그러던 별이는 오늘도 해가 질 때까지도 그 사람은 종시 나타나지 않는구나 하는 섭섭한
마음을 가무리지 못하며 그래도 제 집을 돌아 보러 내려오고있었다. 무심히 아래로 발걸음을 옮기던 녀인은 자기의 집 있는데다가
누구인가가 지게로 져다놓은듯 한 둥그런 숯토리 하나가 있는것을 보고는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상기도 빈채로 있는줄 알았던 산죽막안에서
누구인지 진한 숯냄새에 목이 캐캐해진듯 한 사람이 건기침을 앞세우고 밖으로 나오는것 같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얼른 앞에 있는 큰
느티나무뒤에 숨었다. 좀 기다려 조심스럽게 나무뒤에서 반달같이 한눈만인 얼굴을 살며시 내밀어보았다. 산죽막에서 나오는 낯익은 사나이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끼며 자기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 별이의 가슴은 몹시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어쩌는가 숨어서 볼라니까 밖으로 나오며 분명 자기가 써놓았던 그 긴 편지봉투의 가운데를 잘 접개여 안호주머니에 깊숙이 밀어넣고 누가 빼내여 가지기라도 하는것처럼 오른손으로 한번 은근한 힘으로 눌러놓기까지 하는것이였다. 그 사람은 빈 산죽막도 사람이 살던 집이라고 한스산한 집오래를 팔을 걷어붙이고 거두기 시작하는것이였다. 우선 한쪽 지게다리에 매달아가지고 온 무슨 쌀인가가 든 조그마한 자루를 벗기여들고 무언가 생각해보던 그는 그걸 그래도 먹어줄 사람이 있을거라고 믿어졌던지 산죽막안에 들여다두고 나오는것이였다. 그리고는 힘도 세기도 하지 무거운 숯토리우에 잔득 덧얹어서 지고 올라왔던 장작단들을 부리워 작은 부엌아궁이옆에 가져다가 착착 보기 좋게 쌓아놓는것이였다. 그리고 다시 가서 한아름도 넘는 지게우의 숯토리를 두손으로 건듯 들어안아서는 더러 깨여진 풍로옆의 빈 싸리숯토리우에 가져다가 놓았다. 그런 다음 초막 한쪽에 세워두었던 손도끼는 언제 다 봐두었는지 그걸 찾아내다가 장작개비를 자름자름 패기 시작했다. 그래서는 주인이 언제 와도 불을 피울수 있도록 풍로밑에 나무부스레기들을 먼저 놓은 다음 그우에 성기성기 잔나무토막들을 올려놓았다. (시장하신게지?) 별이는 혼자 생각하며 웃었다. (쌀도 가져오셨겠다, 숯도 있겠다. 옆에 물은 많은게고 손수 저녁이라도 해자시고 오늘 밤은 여기서 혼자 주무실라는걸가? 워메, 이를 어쩌노? 그런데 작은 솥이라도 하나 있어야 할것인데… 그럴줄 알았더라면 빈 쟁개비에 고추장이라도 좀 넣어서 하나 남겨두는것을…) 그는 어디서 헌 싸리비자루 하나를 주어들고 와서 나무부스레기며 여기저기 흩어진 숯덩어리들까지 말짱 쓸어서 한군데다가 모여 놓기까지 했다. 그러고나니 땀에 젖은 얼굴엔 숯검댕이가 묻고 두손과 옷가지가 숯가루에 덞어진 그 남자는 영불없는 숯막골의 숯 구이총각같이 되여버렸다. 숯쟁이도 제 집에 들면 주인이라더니 더러 도시에 나가서도 살댔다는 사람이 이런 집일은 언제 다 배워두었는지 남자가 그렇게 찬찬할수가 없었다. 이젠 오래지 않아 6∼7월 장마철도 다가오는지라 비가 샐것이 걱정되는지 옆에 있는 마른 산죽단까지 터쳐서 지붕우에 덧올려놓으며 깐깐히 손질까지 해주었다. 그렇게 다 해놓고보니 난데없는 새 주인을 만난 산죽막은 대 번에 신수가 다 멀끔해진것 같았다. 별이는 그냥 몸을 숨긴채 나무에 꼭 붙어서서 한번도 점직하여 바로 쳐다볼수가 없었던 부지런하고 순박한 이 청년의 얼굴을 수집어지는 마음으로 새삼스레 엿보았다. 그리 체구가 우람하지는 못해도 보기 좋은 남자의 키꼴에 사내싸게 생긴 사람, 아주 썩 잘나지도 그렇다고 미운데도 그리 없는 수수한 얼굴에 유표한 그 귤껍질처럼 숭글숭글한 주먹코와 네모진 턱은 사람이 어딘가 말짼데가 없고 쉬우며 리해력이 있어보이였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결심을 내릴 때에는 결단을 내릴줄도 아는 그런 강단진데가 있는 사나이! 싸움밖에는 모른다고 여기며 의식적으로 가정을 피하는것이라고만 생각하고있었던 저 고정스러운 산사람에게도 장에 가서 쌀을 사오고 목탄을 져오며 나무를 패여 불도 살리고 지붕을 손질하는것과도 같은 그런 생활의 한때도 있는가싶어 가슴이 후더워오는 별이였다. 그러면서 저런 고정한 사람도 제 부대를 잠시 떠난 짬시간을 타내여 이런 작은 개인생활의 쪼박지들이나마 남몰래 훔치듯 주어 가지고 즐기는 때가 있을가싶은것이 저절로 서글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참 우습고 재미있는 사람이야. 나에게는 왜 저런 오빠라도 하나 없을가?… 아니 내가 혼자서 무슨 실없는 생각을 다… 우리는 아무래도 같이 있을 사람들이 못되는데…) 별이는 오래뜨락을 다 거두고난 사나이가 샘터에 올라가 아무 비누쪼박 하나도 없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에 손을 씻는것을 보면서 이제라도 올라가서 소랭이와 비누라도 가져다드릴가 하다가 고쳐 생각해보고 그만두었다. 편지까지 써놓고 피해있던 녀자가 채신머리없이 이제 와서 다시 나타난다는것이 멋적은 일이였기때문이였다. 시원한 샘물에 세수까지 다 하고난 《제비》는 꽁무니에 찼던 곰보수건을 빼내가지고 몇번 툭툭 털어서는 얼굴을 문대고나서 그 례의 회중시계를 꺼내보는것이였다. (아 가려는 모양이로구나!) 얼른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벌써 그 남자는 주인도 없는 집인지라 할수없이 산으로 들려고 이리로 올라오고있는것이 아닌가.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그럴 사이도 없거니와 어쩐 일인지 굳이 그러고싶지도 않았다. 좀 창피하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나무뒤에서 한발자욱만 나선다 하여도 만나볼수가 있었다. 혹시는 저 사람자신이 올라오다가 나무뒤에 숨어 서있는 나를 먼저 발견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하고 서로의 간격이 줄어들수록 별이의 작은 가슴은 콩콩 세차게 약절구질을 해댔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두고 가는 초막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정신에 앞은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자기앞에까지 다 올라왔다. 드디여 지나간다. 거기서 걸음 멈추고 이제 한번만이라도 몸을 뒤로 돌려보아주었으면… 그러나 그 한번은 오지 않았다. 산사람이 더는 뒤돌아보기를 그만두고 산을 향해 그 《제비》의 자세로 걸음을 빨리 하기 시작하는것을 보는 순간 별이는 어쩐지 야속해오는 마음과 함께 불시에 설음이 북받쳐오르면서 《…여보세요! 나 여기 있어요!》 이렇게 소리쳐 불러보고싶은 그 입안에서는 꼭 씹고있던 흐느낌소리가 그만에야 밖으로 터져나오고말았다. 《흐-흐윽-》 그 소리에 놀란 《제비》는 돌아서 보았다. 그리고는 환희에 넘친 웨침소리를 터쳤다. 《그게 별이 아니요? 엉-》 《…》 《어디 멀리 가삔줄 알았둥마 허허 여그 나무뒤에 숨어서 숨박곡질 놀았구만이라.》 그는 살근걸음으로 그 녀자의 뒤로 다가서며 숨박곡질의 노래까지 불렀다. 《하늘의 별 하나 꼬리 감췄다. 돌각담뒤에서 숨소리 쌔근, 갸우뚱 나오라 하나 잡혔다. 허허 싸게 돌아서요. 부끄러워 말고 나의 애기별이여!》 순간에 자기를 동요시절로 이끌어가는듯 한 기뻐 어쩔줄 몰라 어색한 노죽까지 피워보는 제비의 그 말에 별이는 나무에서 돌아서며 눈물 즐벅한 얼굴을 반짝 쳐들었다. 《아 오셨군요?!》 《나의 별!》 《나의 제비님!》 별이는 어린애처럼 아직은 오빠같이만 여겨지는 사나이의 넓은 가슴에 자기의 온몸을 떠맡기며 그만 공처럼 와락 안겨들었다.
뜻밖에 모든 절차와 순서들이 생략되여버리는 이 격정의 순간을 당하여 《제비》는 마치도 축구경기를 할 때 문지기가 자기앞에 날아드는
공을 받아서는 다시 빠져나갈가보아 겁내듯이 별이를 꽈-악 부둥켜안고 오래동안 놓지 못했다. 4
투쟁의 한해가 지나갔다. 황갑동련락과장이 상급의 소환에 의하여 다른데로 간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 덕금은 안정을 잃기 시작했으며 늘 쾌활하던 얼굴에 그늘이 비껴지군 했다. 한편 갑동이는 갑동이대로 요즘 속으로 남모르는 근심과 걱정을 터놓지 못하고 혼자서 키워가고있었다. 그것은 그가 상급의 인사조치에 의하여 박판수사령이 있는 곳으로 새 임명을 받아가지고 가게 된것과 관련되여있었다. 그때 련락과는 수십명의 성원으로 확대강화되고있었는데 그동한 한투쟁대오에서 정을 잔뜩 묻혀놓았던 동지들과 헤여진다는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해오군 했다. 그 동지들도 동지들이지만 제가 데리고 와서 입대를 시켰고 늘 고생하면서도 그 중땅크같은걸 어디로 가든 끌고 다니던 남다른 사이의 전우인 《도람통동무》를 여기에 혼자 남겨두고 가자니 어쩐지 근심이 컸던것이다. 황갑동은 작별을 앞둔 지금에 와서야 덕금이가 선배 강대선형님의 동생일뿐아니라 헤여져 살수 없는 귀중한 녀동무였음을 절감하게 되는것이였다. 어디로 가든 덕금이와 함께 가고싶었다. 내가 없이 그 《뚱보》가 간고한 생활과 투쟁의 험한 길을 어떻게 헤쳐가랴 하는 근심이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았다. 지리산우에 달이 떠있었다. 옹근달이 아니고 반달이였다. 은백색으로 부서지는 그 달빛을 밟으며 두 청춘남녀가 조용히 산정의 오솔길을 걸어내리고있었다. 맨몸으로 홀가분히 걷고있는 남자는 싸움의 새 전구로 떠나가는 갑동이였고 오늘만이라도 그를 대신하여 무거운 배낭을 지고 여기까지 배웅해주러 나온 젊은 녀자는 강덕금이였다. 시방 엷은 모시천같은 구름속으로 정처없이 헤염쳐가고있는 반달에 그 어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보며 두사람은 아까부터 서로 말없이 걷고만 있다. 갑동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반달은 지금 어디로 저렇게 정처없이 갈가?》 《보름으로 가겠지요.》 《보름으로 간다?》 《아마 어디다 잃어버린 자기의 다른 반쪽을 찾기 위해서일지도 몰라요.》 《그걸 찾아서는?》 《저 반달이 바라는 행복은 옹근달이 되는것이기때문이 아닐가요.》 《저 반달이 바라는 행복은 옹근달이 되는것이라 이 말이여? 정말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말이구만.》 《저는 반달을 더 좋아해요. 크는 달이기때문인지도 몰라요.》 《…》 황갑동은 말없이 그 달만을 이윽히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그러는 그의 옆모습에 시선을 주며 덕금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아까부터 달을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있어요?》 《달은 추억이라더니 참말이지 고향생각을 불러오는 달이여. 오늘 밤 덕금이와 함께 저 달을 바라보느라니 입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대선형님과 함께 고향의 달빛을 즐기며 걷던 그날 밤의 일이 생각나는게라서. 그날 밤 형님은 얼굴을 부드러이 어루쓸어주는 달빛을 손으로 만져보듯 하면서 지금 먼저 입산한 청년들은 어깨에 총을 메고 서서 저 지리산에 떠오르는 달구경을 할거라고 했지.》 《그래요?》 《덕금이의 오빠는 말이시. 누구보다 고향산천을 사랑하고 꿈이 많은 사람이였어. 정말이지 비록 보지는 못했어도 그 깊은 마음의 눈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멀리, 더 많은것을 보았다고 할수 있는 사람이여. 덕금이 수놓아드린 공화국기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던 날에도 손으로 그 기발속의 해와 별을 만져보고 또 쓸어보면서 공화국기발아래서 남북의 모든 형제들이 장군님 모시고 길이길이 행복하게 살아 갈 통일의 앞날을 그리도 그리더니만…》 덕금이는 갑동이의 그 말을 들으니 더욱 가슴속에 그리움이 사무쳐오는지 손수건을 눈언저리로 가져갔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 지금도 아픔으로 가슴이 미여져 나가는것만 같아요.…》 《덕금이앞에서 다신 오빠의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게 저 달이 그만 나를 말시켰구만이라.》 《이밤에 고향마을사람들도 어디에 다 살아있다면 저 달을 바라보면서 우리 생각을 하고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럴가?》 《지금 황동지가 손동지하구 같이 청학동 치성터에서 만났었다는 내 동무 별이는 어디서 저 달을 바라보며 또 눈물짓고있을가요.》 《글쎄말이요. 별이는 손동찬동무하고 남다른 사이인데 그후 그의 소식을 몰라 몹시 안타까와하지. 그래서 행여나 하여 몇번 그 산죽막자리에도 들려보았는데 거긴 다시 오지 않았다누만.》 《그래요?》 《치성터에 지금도 자주 올라와 불공을 드리군 하는 다른 녀인들의 말에 의하면 별이가 그때 내려가서는 그 지겨운 시집살이를 끝장내고 어디론가 갔다는데 딱실한건 알수가 없는게라서…》 《저… 손동지는 아직도 별이를 잊지 않고 외우군 하는 모양이지요?》 《원래 속이 깊고 말수더구가 적은 사람이니 일상적으로 표현은 하지 않고있지만 늘 그 어떤 그리움과 애수에 젖어있는듯 한 그 눈이 그걸 말해주고있제.》 《그렇단 말이지요.…》 《그럼, 우리 <제비>가 30살 로총각으로 난생처음 만난 녀인이 별인데 어찌 그를 잊을수 있겠소. 지금 별이의 마음도 저 하늘에, <제비>의 마음도 다 저 하늘에 있을거요.》 무엇인가 혼자 생각하던 덕금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어떻게 수소문해서라도 별이를 찾아내겠어요.》 《그렇게 해주오. 중이 제 머리 혼자 못 깎는다고 우리가 옆에서 도와줍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여 만나는 경우 별이의 각오정도로 보아 입산을 시키면 손동무가 진정 얼마나 기뻐하겠소.》 《좋아요. 내가 어떻게 하나 그 두사람에게 뜻깊은 상봉을 마련해주겠어요.》 《고맙소, 덕금이!》 《아직 인사받기는 일러요. 일이 어떻게 되겠는지. …저 그런데 갑동오빠, 한가지…》 《왜 그러는지 마지막으로 할 말 있거든 해라우.》 《내가 옆에 없게 되였으니 시원섭섭하겠군요.》 《왜서말이요?》 《산고지에 오를 땐 늘 어깨로, 잔등으로 떠밀어올려야 했던 그 무거운 도라무의 짐을 덜었으니요. 그렇지만 내가 없다고 해서 앞으로 다른 도라무통을 맡아서 두손으로 밀어서 굴리고 다닐 생각은 아예 말어요.》 《허허, 걱정을랑 마이소. 조선에 덕금이 같은 무차별 중량급처녀선수는 하나일테니까. 덕금이와 경쟁대상이 다시는 내앞에 나타나지 않을거요.》 《정말 그동안 수고많았어요.》 《아닌게아니라 없지 못해. 나에겐 한아름이 넘는 그 몸을 안아 올릴수도 없고 두손과 량어깨로도 모자라서 냉중에는 머리까지 총 동원해가지고 떠받들어올릴 때면 덕금이를 내가 맡게 된걸 못내 후회한적도 있었다는것. 허허.》 《호호호.》 《그렇지만 이런것이 헤여지면 후에 다 옛말감으로 남는건데 그것을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부르게 되는게라. 정작 이렇게 헤여지자니 덕금이를 잃어버린것만 같은 마음이여. 우리 여기서 작별합시다.》 갑동을 따라 걸음을 멈춘 덕금이는 리별의 슬픈 시각을 당하자 조용히 눈을 아래로 내려깔며 울먹이였다. 《그 배낭 인주고 더 따라오지럴 말고 돌아가씨요.》 이제는 의지하고 살던 갑동이의 《가씨요, 오씨요.》 하는 말도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른다는 기막힌 생각이 드는 순간 처녀의 두눈엔 눈물이 피-잉 돌았다. 《오빠, 어디 가서든지 앓지 말고 잘 싸우라요. 갑동오빠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것만은 잊지 말고…》 그 말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애절한 처녀의 속대사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갑동의 심장은 자다가 깨기라도 한듯 불시에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석별의 순간 고향마을에 있을 때처럼 자기를 오빠라고 친근히 불러주는 처녀를 어떻게 해주어야 되는지를 아직 배워가지지 못했던 그였다. 그렇지만 사랑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타는 숯불이라 했던가. 온몸을 태우며 불붙는 사나이의 열정을 어찌할수 없게 된 그는 앞에 서서 조용히 울고있는 처녀를 우둔한 곰처럼 와락 그러안아주고싶었다. 《마지막으로 한아름이 넘는 덕금이를 내 한번 맘껏 안아락도 보았으면…》 《아이, 우리는 그라면 안돼요. 언제까지라도 우리 고향마을 갑동오빠로, 황동지로 남아있어주세요.》
갑동은 그러는 처녀를 맘속으로 억세게 포옹해주었다. 그가 안아 보는것은 크고도 뜨거운 사랑의 덩어리, 또 하나의 지리산이였다.
5 손동찬이 청학동의 산죽막에 두번째로 다녀온 때로부터 1년이 퍽 지나간 뒤에 있은 일이였다. 낳은지 두달밖에 안되는 어린애를 업은 한 젊은 녀인이 유격근거지의 여러 초소들을 거쳐 병단사령부에까지 찾아올라왔다. 경비책임자에게 부대지휘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 별이가 두근거려지는 마음으로 업은 애기를 다독여주며 보초막앞에서 기다리고있을 때였다. 그의 옆을 지나 보초소를 통과하러 들어가던 한 사람이 무춤 걸음을 멈추는것이였다.(그는 박판수사령의 부대에서 중요한 비밀련락쪽지를 가지고 리현상사령을 찾아오던 황갑동이였다.) 《아니, 거기 서있는 아주머니가 도장동의 진주댁 아니시우?》 《아유, 가마니댁의 갑동삼촌이시구만요.》 별이는 무등 반가와 어쩔줄 몰라했다. 《어떻게 그래도 여기까지?》 《네, 우리 있는데 지방공작 내려왔던 덕금이를 만나서 여기 소식을 알고 길을 대주어서 천신만고끝에…》 《음- 그렇게 된 일이구만요.》 갑동은 지난해 덕금이 자기와 헤여질적에 했던 말이 있었던지라 짐작이 갔다. 별이가 기어이 《제비》를 찾아온것은 리해가 되는데 그 녀자의 등에 업힌 난데없는 어린애에게 아까부터 마음써지는것을 어찌할수 없는 그였다. 《그런데 그전에는 애를 낳지 못하더니 워찌된 일입니까. 어린애를 업고 나타났으니?》 《네에- 그… 그렇게 됐어요.》 《그렇게 되다니요?》 《저… 저 그것언…》 《한마을사람인 나한테까지 말 못할거야 없지 않습니까? 저 혹시 그 시집을 뿌리치고 나와서 다른데 재가라도 한게 아닙니까?》 《…》 《왜 말을 못합니까?》 《제가 재가를 하면 어디로 하겠나요?》 《이런 말 물어보긴 좀 뭣합니다마는 그럼 사내애인것 같은데 이 어린애는 누구의 아들입니까?》 《저… 이애는 아직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도 못 가진 애라서 그저 치성돌이라 불리우는것이니 누구의 아들인가 하는건 청학동의 치성터에 갑동삼촌과 같이 오셨던 그분만이…》 《아니, 그럼 그 애가 우리 <제비>의 아들이라 요 소리요?》 별이는 대번에 얼굴이 빨개지며 모기소리만 하게 겨우 대답하는것이였다. 《…네, 바로 그이의 아들이라고 할수가…》 《우리 손과장에게 생각지 않던 아들이 하나 생겼다? 이런 변이라구야…》 갑동은 순간 저도 모르게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를 못 낳아 그러던 젊은 녀인에게 드디여 애가 태여났다는것도 그렇고 빨찌산의 제일 가까운 전우이며 로총각인 손동찬에게 떡돌같은 아들이 하나 생겼다는것은 물론 아주 기뻐해주어야 할 일이였다. 그렇지만 전투병단에서, 특히 김지희전투사령이 손동찬이가 지난해 지방공작 나갔다가 한 녀성과 교제하는 과정에 어린애까지 생겨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 무슨 사달이 생기게 될는지 몹시 우려되기도 했던것이다. 《이 세상에 없던 애가 하나 태여났다는건 더없이 좋은 일이긴 한데 이거 큰일났구만.》 《네에- 큰일이 났다는건요?》 갑동이는 별이를 좀 옆으로 데리고 나와서 조용히 물었다. 《그래 보초병에게 단통 애아버지를 찾아달라고 했습니까 아니면?》 《저, 우선 부대에서 제일 높은 어른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더니 김지희전투사령인지 하는분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 소리에 갑동은 와뜰 놀라다싶이 했다. 《뭐, 김지희전투사령동지요?! 하, 이거 변나겠군.》 《아니 전투사령 그분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인가요?》 《그분이 무서운게 아니라 부대규률이 무서워서 그러지요. 산에는 지방공작 내려갔던 우리 유격대원들이 혹시 마을이나 길에서 만난 녀성들과 필요없는 교제, 치정관계를 맺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 엄중히 처벌하는 지리산의 규률이 있답니다. 그런데 빨찌산의 아들애까지 하나 업고 나타났은즉 우리 손동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겠는지 걱정스러워 그럽니다.》 《워메, 이걸 어쩌나…》 별이의 얼굴은 졸지에 창백해졌다. 《별아주머니, 너무 걱정할건 없습니다. 우선 지금 <제비>동무가 부대내에 있는지 내가 먼저 들어가서 찾아내다가 함께 풀어나갈 방도를 의논해봅시다.》 《…》 갑동은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진 별이를 뒤에 남기고 황망히 지휘부쪽으로 손동찬이를 찾아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지 얼마 안되여 한 젊은 지휘관이 별이앞에 나타났다. 《…저, 아주머니가 나를 직접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는 바로 그 녀인입니까?》 김지희가 물은 첫말이였다. 녀인이 죽어들어가는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네, 그래요.》 《그런데 누구를 찾아왔다구요?》 《…저 애아버지를요.》 《애아버지를요? 그러면 남편이 되겠는데 남편의 이름이 뭡니까?》 《그 이름언 딱실히…》 《하, 아니 남편이라면서도 이름도 모릅니까?》 《이름은 잘 모르지만서도 지가 보며는 알수 있는데요.》 《헛, 서울 가서 리서방을 찾아도 분수가 있지. 그럼 남편을 찾아보자면 우리 부대를 다 학교마당 같은데 세워놓고 아주머니의 사열을 받아야 할터인데 그렇게야 어떻게?》 그 말에 바빠난 그 녀인이 생각난듯 입을 열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서두 저… <제비>라고 부르는것 같드만요.》 《<제비>라구요?》 《네, 걸음새가 제비맹키로 빠르다고 해서 어떨 땐 <제트기>라고도 하구요.》 《뭐, <제트기>요? 딱실합니까? 혹시 손동무라고 부르지는 안해요?》 《네네, 내 그때 같이 왔던 갑동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찾는 소리를 듣고 참 세상에 성도 손인지 발인지 별성이 다 있구나 하고 혼자 속으로 웃던 생각이 나는구만요.》 (황갑동이의 이름까지 나오는걸 보니 틀림없는것 같은데 이거 야단났군!) 김지희는 갑자기 단단한 방망이한테 얻어맞기라도 한것처럼 머리가 다 뗑해졌다. 《그래, 그 <제비>란 사람의 키는 얼마나 크고 얼굴은 어떻게 생겼습디까?》 《네, 키는 좀 남자로서 큰 편이구요. 호양호양한 몸이랑 봐서는 첫 보기에는 성미가 칼칼할것 같으면서도 그 주먹코서껀 네모진 턱서껀 숭얼숭얼한게 원래 사람이 리해력있게 생겼어요.》 (틀림없구나. 《제비-제트기》란 우리 병단에는 그 손과장 하나밖에 없으니… 그런데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아주머니, 다른건 다 맞는데 우리 손동무는 고정한 로총각이고 언제 한번 자기에게 아주머니나 애가 있단 소리를 나한테 일체 한적이 없는데요?》 《…그럴수도 있는것이 아마 그인 아직꺼정도 자기에게 아들이 하나 생겼다는걸 딱실히 모르고있을겁니다.》 《그러니까 결혼은 언제 했게요?》 《…저, 우린 정식으로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니지만서도 우리사이에 애만은…》 김지희는 녀인의 등에 업혀 옴지락대고있는 애기를 여겨보면서 물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우리 손동무의 애라는걸 뭘로 증명하시겠습니까?》 그 말에 녀인은 이내 대답을 못하고 얼굴만 빨개졌다. 《정말이지 그… 그건 우… 우리 두사람밖에는 모르는 일이니껜 이 자리에서 대답드리기 어… 어려운 증명이로구만요.》 《아주머니,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증명을 해야겠습니다.》 《당장에요?》 《시제 당장 여기서 말입니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 우리 손동무를 어떻게 몇번을 만났댔으며 이것이 틀림없는 그의 애라는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할수 있는 물적증거라든가 보증인이라도 어디 있는지 없는지 하는것 등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시오.》 거의 심문에 가까운 엄격해보이는 젊은 대장의 말에 녀인은 그만 울상이 되였다. 《다… 다른건 거북스럽지만 어떻게 말씀올릴수도 있지만 물적 증… 증거라는것언 이 업고 온 어린애밖에는… 그리고 보증은 치성터의 산죽막밖에는 세울수가…》 《뭐 치성터의 산죽막이요?》 (아하 알겠어. 그러니까 거 유명한 치성터의 산죽막녀인에게 잘못 걸려들었댔구나.) 《어디 그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보시오.》 《…그럼 부끄럽지마는 대장님의 분부이시니 말씀드릴랍니다. 있는 그대로…》 …녀인에게서 지난 한해동안에 발생했던 일의 경위를 다 듣고난 김지희의 랑패된 얼굴은 검푸르러졌다. 《…그러니까 지금은 본남편과 갈라졌다지만 그 청학동의 산죽막에서 마지막으로 둘이 만났을 때까지만 하여도 진주댁은 유부녀였겠습니다?》 《네, 저… 솔직히 있는 그대로 대답드리며는 그때까지는 유부녀라고 할수가…》 (하, 이런 변났군. 정신이 쑥 나갔지. 유격대원이라는게 남의 집 유부녀를 다쳐서 덜컥 그 아들을 하나 만들어놨은즉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한다? 아까운 련락원 하나를 살려야 할텐데 이 녀인이 단단한 증거물을 하나 등에 척 업고 나타났으니 큰일이여.) 《아주머니 말하는 뜻은 알만 하겠는데요. 우리 손동무는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다른건 다 믿어도 이애가 정확히 우리 손동무의 아들애라는것만은 믿을수가 없습니다. 그 치성터라는것이 어떤데라는거야 아주머니가 잘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한심한데서 아주머니가 애는 누구에게서 받아가지고 그 바가지는 감히 우리 산사람들에게 넘겨씌울라는겁니까?》 《예? 뭐시라구요? 그러니까 대장님은 저럴 갖다가… 너무합니다. 그건 너무합니다. …모든 저의 말이 사실이라는건 그이만이 증명해드릴수 있습니다. 이애는 영불없는 지 아버지의 사진 박힌거나 똑같으니까… 애아버지를 만나게만 해주십시오.…》 《그건 모… 못 만납니다.》 《못 만나다니요?》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그건 왜서요?》 《원체 여기 규률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비>는 영 날아가버리고 시제 여기는 없습니다.》 《영 날아가다니요? 아니 그럼 애아버지가 혹시? 말씀해주십시오. 그이가 살아계십니까? 아니면 잘못되기라도?》 《아직 잘못되기까지는 안했습니다만 이제 잘못했다가는 그리될수도 있다는겁니다.》 《이제 그리될수도 있다니요?》 《바로 아주머니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더라도 아주머니가 이애를 업고 여기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는게 아닙니다. 대단히 잘못되였습니다.》 《그건 저의 생각이 짧았구만요. 그렇지만 제가 오고싶어만 온것이 아니구 애한테 이름이라도 지어달라구 해서…》 《…그래도 그렇지요.》 《사실대로 말하며는 그때 저는 마지막으로 산죽막에서 그분과 만났다가 헤여진 후로는 집으로 내려갔댔어요. 저는 결심하고 나를 못살게 구는 생지옥같은 그 시집과 결별을 선언하고 저의 진주 외삼촌네 집으로 가서 이애를 낳았구만요. 처음에 저는 부끄럽고 죄스럽게도 생각되였지마는 이애가 바로 빨찌산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든든하고 떳떳해지더군요. 놈들의 <토벌대>가 어디이건 쩍하면 달려들어 행패질이고 이애가 빨찌산의 아들이라는것이 발각되면 마구 사람을 잡아죽이는 판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형편에서 애를 지 아버지얼굴이라도 한번 보게 해줄라고 불원천리하고 이렇게…》 《그런데 아주머니가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습니까? 여길…》 《그건 저… 우리 마을에 살다가 한해전엔가 입산했던 어릴적부터의 녀동무가 공작을 내려왔던김에 제가 가있는 곳에 들렸더랬어요.》 《한해전에 입산했다는 그 녀동무라는건?》 《이 넓은 지리산에 녀자빨찌산이 어찌 그 녀자 하나만이겠습니까마는 그래두 혹시 아시겠는지, 하동의 도장동에 살던 강덕금이라고…》 《예? 강덕금이요?》 《그래요!》 《몸이 이렇게 실하지 않습니까?》 《맞아요. 우리 덕금이가…》 《그럼 아까 말하던 황갑동이라는 동무도 알겠습니다. 도장동사람인?》 《알아도 잘 알지요. 첫번때 지아부지가 치성터를 지나다가 들릴적에도 함께 왔던걸요.》 《알만 합니다. 그러니까 그 황동무가 결국에는 중매를 서준셈이구만요?》 《그런건 아니지만서도…》 《무엇이 아닙니까. 한심한 사람들, 맡은 일이나 잘할것이지…》 《…》 별이는 공연히 갑동에게까지 그 어떤 후환이 미칠가보아 더럭 겁을 냈다. 《그 사람에게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아무 죄도…》 《됐습니다. 어쨌든 찾을 때까지 나가 기다리시오.》 《알겠습니다.》 별이는 풀이 영 죽어서 전투사령의 방을 나섰다.
한편 지휘부옆의 조용한 공지에서 오랜만에 만난 두 련락과장인 황갑동이와 손동찬이의 대화는 처음부터 긴장성을 띠였다. 《…나는 별아주머니가 웬 떡뚜꺼비같이 투실투실한 사내애를 하나 업고 내앞에 나타나서 이게 <제비>님의 아들이라고 할적에 얼마나 놀랐던지 눈앞이 다 아찔해지더란 말이요.》 《…》 《맑은 날에 생벼락이라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지 전우앞에서 한번 솔직히 말해보오.》 얼굴이 벌개져서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 갑자르기만 하던 손동찬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언제부터 말한다 말한다 하면서도 아무리 가까운 동무사이라도 어색해서 그만… 사실 그때 세번째로 치성터에 들렸던 바로 그날 밤에 피치 못해 산죽막에서 함께 지내게 되였댔는데 생활의 딜렘마에 빠져 남모르는 온갖 고생을 다하는 그 진주댁을 동정하던 나머지 어떻게 하든지 불행에 울다가 자살까지 기도한 그 불우한 녀성을 구원해주고싶은 뜨거운 충동에 못이겨 그만…》 《그래도 나는 처음엔 그 소리를 듣고 기연가미연가 했더니만 별아주머니가 업고 온 애가 손과장의 아들이 딱실하다는 소린데, 우뢰가 잦으면 비가 된다더니 그놈의 청학동 치성터가 일을 치긴 쳤구만.》 《일이야 치성터가 친게 아니라 이 <제비>가 쳤지. 엥이, 일두…》 《후회하오? 지금에 와서 그렇게 후회할 일은 왜 저질러놓고는 어물한 어른이 나한테까지 시치미를 뚝 떼고있다가 남까지 같이 말듣게서리…》 《참, 미안하게 됐시다.》 《나한테 미안한게 문제가 아니라 나는 손과장의 일이 걱정되여 그러는게라.》 《그러나 황동무, 이제 곧 온 병단이 알게 되겠는데 이 일을 어떡하면 좋겠수?》 《어떡하긴, 모든 책임을 져야지요.》 《글쎄 책임이야 져야겠지만 그 원칙이 강한 김지희전투사령동지가 날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거요. 내가 엄중처벌을 받고 처형되는가 마는가 하는것이 겁나서 그러는건 아니고 그렇게 되면 별이는 그 얼마나 기막혀하고 난지 얼마 안되는 어린 아들애의 장차 운명은 어떻게 되겠나. 나는 그것이…》 《손동지답지 않게 우는소리는 작작하소. 죽을수가 있으면 살수도 나진다구, 뭐 사람으로서 못할 일을 하길 했는가 아무리 빨찌산의 규률이 엄하다고 해도 우리 지리산의 아들을 하나 낳았다고 설마 엄벌까지야…》 《…》 《그 일과 관련해서는 이 황갑동이에게도 없지 못해 일정한 책임도 있으니 나도 추궁이면 추궁, 벌이면 벌을 함께 나서서 받겠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소.》 《황동무!》 손동찬은 뜻밖에 어려운 처지에 빠진 자기와 운명을 같이해주려고 나서는 전우의 뜨거운 그 마음에 그만 코등이 매워와 두눈을 슴벅거렸다. 이때 김지희의 련락병이 와서 전투사령이 손동찬이를 찾는다고 알려주었다. 각오를 하고있었지만 정작 상관의 호출을 받은 손동찬이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황갑동은 근심이 가득하여 전투사령이 찾는데로 가고있는 손동찬에게 한눈을 찡긋해보이는것으로써 힘을 주는것이였다. 손동찬은 김지희의 방으로 들어서며 무겁게 보고를 했다. 《전투사령동지! 저를 찾으셨습니까?》 《그간 남모르는 수고를 많이 했더구만. 어서 거기 앉으시오. 으-음》 《…》 김지희는 그가 앉기를 기다려 자기도 모르게 빈정거려지는 어투로 물었다. 《병단에 손동무의 부인이 찾아왔다는 소리 들었습니까?》 《예, 부… 부인 말입니까. 저는 여직꺼정… 장가는…》 《뭘 말하려는지는 알고있소. 그렇지만 쉬엿하시오. 손동무의 애까지 하나 낳아서 업고 나타났으면 그것이 부인이지 다른것이 부인이겠소?》 《…》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는 손동찬이였다. 《흥, <제트기>동무는 걸음만 빠른줄 알았더니 어느새 그렇게 날쌔게 애를 만드는 재간까지 다…》 《…》 《그 소리를 들으니 내 얼굴이 다 뜨뜻해와서… 어쩌면 사람이 그럴수가 있소? 동무는 개인의 명예를 손상시켰을뿐만아니라 우리 빨찌산의 얼굴에 흑칠을, 아니 똥칠을 했소. 그래놓고는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고 수염을 뻑 내리쓸어버리고, 도대체 동문 뭐요?》 《저… 저는 아직꺼정은 아무 소식도 없고 별다른 결과가 없길래서 미리 보고를 할려다가 그만…》 《꼭 결과물이 있고 사건이 발생해야 보고를 한다는것인데…》 《…잘못했습니다. 제가 경솔하게 행동했습니다.》 《경솔정도가 아니지. 나는 시시해서 더 긴말하고싶은 생각도 없어요. 이런 때 빨찌산의 이름을 더럽히고 대오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킨 사람은 어떤 원칙적인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거야 동무도 알겠지?》 《압니다. 저는 그 어떤 처벌도 모두 달게 받고 앞으로 시정하겠습니다.》 《시정? 책벌정도가 아니라 동무는 엄벌을, 당장 군중심판에 의하여 처형을 받을 각오를 하고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저… 그럼 그것도 각오하고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행복합니다.》 《무엇이 행복해요?》 《물론 실책도 없지 않는 저의 자그마한 희생적인 역할에 의하여 한 불행하던 녀성이 무서운 질곡에서 해방되여 입산을 하고 저는 비록 죽어도 여기 우리 지리산에서 빨찌산의 첫 아들이 태여나게 되였으니 별로 큰 원은 없습니다.》 《그렇게 배포가 유하니까 책임지지 못할 아이를 망탕 만들어내가지고 부대의 공기를 흐리게 만들고… 모두가 동무같이만 행동한다면 어떻게 되겠소. 우리 병단의 규률이, 숱한 애인들과 아낙네들이 저마끔 아이까지 낳아서 하나씩 업구 부대에 찾아들기 시작하면 그 수습을 누가 하며 이 책임을 누가 지겠냐 말이요? 동무는 자기 과오의 엄중성을 아는가?》 《압니다.》 《아는것 같지 않소.》 김지희는 속이 타오는듯 일어나서 방안을 성급히 거닐며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듯 싶더니 멈춰서며 손동찬이쪽으로 몸을 돌리였다. 《동무에 대한 처리는 처리이고 그 녀자가 불쌍하오. 그 녀성이, 그리고 그 애가 불쌍하단 말이요. 혁명의 총에 맞아 값없이 죽은 처형된자의 아들이 되여야 할 그 애의 운명이 말이지.》 《…》 《다른 길은 없소. 여기에서 총살을 맞아 동지들앞에서 죽든가, 아니면 나는 모르겠으니까 그 애 어머니를 데리고 오늘 밤에라도 여기서 썩 꺼지시오. 보기 싫소! 어디 내려가서 구들농사나 실컷 지으시오. 직성이 풀리게스리…》 《그러니 절더러 여기서 가만히 밤에?》 《그건 난 모르겠소. 여하튼 여러가지로 동무는 호운아요. 호운아! 그렇게 할 결심이면 내게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줄것이니 그걸 가지고 내려가서 맞춤한 집이나 하나 마련하고 사시오. 나는 손동무를 욕하고 추궁은 해도 내 손으로 죽이고싶진 않소. 그건 사실 나자신을 쏘는거나 같으니까…》 《전투사령동지! 그 말씀만은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는 할수 없습니다. 처벌을 받고 동지들의 손에 죽으면 죽었지 도망은 치지 못하겠습니다. 저에게 완전한 혁명의 용서를 주든가 아니면 차라리 저를 쏘아주십시오!》 다시 방안을 거니는 김지희의 생각은 착잡했다. 어떻게 할것인가? 총살이냐 완전한 용서냐? 드디여 걸음을 멈춘 그는 무겁게 입을 열어 혼자서는 도저히 풀수 없는 가슴속 괴로움의 덩어리를 그대로 내뱉았다. 《그 말 한마디만은 옳게 한것 같소. 잘 생각했소. 그러나 전투사령인 나에게는 동무를 혁명의 이름으로 군중재판에서 총살을 선언할 권리는 가지고있을는지 몰라도 동무에게 완전한 용서를 줄 권한은 없는거요. 내 아까는 하도 속이 답답하더라니 한번 해본 소리고…》 《…》 《가서 기다리시오.》 《알았습니다. 전투사령동지!》
손동찬은 힘없이 돌아나갔다. 그날 저녁이였다. 녀성호실에서는 갓난애를 가운데 놓고 처녀들이 모여들어 재롱스러워하며 웃음락담을 벌리고있었다. 지금은 문복순이가 어린애를 데리고 놀고있다. 《아줌마를 따라서 도리도리도리… 잼잼잼… 송곳송곳송곳…》 그렇지만 이제 겨우 두달잡이가 도리도리가 무엇인지 잼잼잼은 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리가 없다. 그래서 세번째 송곳놀이만은 제가 반게다리같이 앙증스레 생긴 애기의 오른쪽 손가락을 잡아 새빨간 왼손바닥에다 대고 《송곳송곳송곳》해보았지만 연한 손가락끝이 꼬부라들어서 송곳이 만들어져야 어쩌지, 그래서 힘센 복순이는 마지막엔 아이의 두발을 왼손에 모다 받들어세우며 《곤디곤디곤디》를 시키다가 아이를 그만 떨굴번 했다. 애기어머니인 별이는 지금 근심이 하늘만 해서 옆에 앉아 빨찌산처녀들이 아들애를 데리고 노는 모양을 말없이 바라보고있을뿐이였다. 빨찌산녀대원들은 그것이 어린애가 아니라 무슨 지리산의 신비한 생명의 존재이기라도 한듯이 자기들의 전우인 《제비》의 아들을 서로마끔 빼앗아 안아보며 《올올올 뽀뽀》 하고 볼도 입도 맞추어 주고 못하는짓이 없다. 드디여 리옥순이의 차례가 되였다. 《아가아가 귀여운 아가야! 너의 이름은 쪼각별이라는 의미로 <별지>라고 지었다지? 엄마는 큰 별, 너는 애기별, 어서어서 커서 큰 별이 되거라.》 《…》 어린애도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생글생글 웃는것이였다. 《아이 요거 웃는것 보지? 우리 요걸 한번 울리여볼가?》 《그래 울리라요. 한번 애기울음소리를 들어보자요.》 옆에서 참새들처럼 오구작작 떠들어댄다. 《별지, 밉다. 울어라 울어. 엄니-하구…》 그래도 계속 생글생글 웃기만 하자 복순이 손바닥끝으로 살짝 볼을 건드린다. 《한번 울어보라니까…》 《…》 정말인지 아닌지 영민한 어린것도 아지미들이 부러 노느라고 그러는것을 아는 모양 눈치가 말개서 말똥말똥 쳐다보기만 한다. 옥순이가 다시 찰사닥소리가 나게 볼을 가볍게 때려서야 입을 삐죽거리던 애기가 갑자기 《응아- 아.》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고요한 지리산의 밤을 울리는 난데 없는 그 애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뭐이 그리 좋은지 깔깔 웃어대는 빨찌산의 녀대원들… 《어 어… 우리 애기를 누가? 우리 별지를 어째서… 아유, 섧어라 섧어. 이 아지미가 잘못했다. 호호.》 하면서 리옥순이 눈물에 젖은 애기의 얼굴을 자기의 볼에 가져다대였다. 《별지야, 우리 애기별님아! 너는 우리 병단의 아들, 빨찌산의 첫 아들이란다. 네가 있어 빨찌산아줌마들의 가슴엔 총만이 아닌 뜨거운 사랑이 안겨져있는게란다. 우리 아지미들이 어떻게 하던지 너의 아빠 엄마와 너를 꼭 지켜주마!》
어린애를 품에 꼭 껴안고 눈물이 글썽하여 이렇게 말하는 옥순이를 지켜보고있던 다른 녀대원들의 가슴도 뭉클해왔다. 그의 말속에는 한
전우의 아들만이 아닌 이 사랑의 덩어리, 혁명의 미래를 위해 자기의 개인적인 모든것, 부모, 형제, 자매들도 결혼도 가정생활의 안락도
다 버리고 처녀시절 꽃나이를 지리산에서 보내며 온갖 고생을 이겨내고있는 한 녀전사의 깨끗한 량심의 목소리가 담겨져있었기때문이였다.
6 이렇듯 녀성병실에서 때아닌 산중의 밤에 울려나오는 난데 없는 갓난애의 울음소리, 녀대원들의 즐거운 종다리웃음소리를 들으면서 무거운 걸음걸이로 그앞을 지나는 한 젊은 지휘관이 있었다. 김지희전투사령이였다. 지금 그의 생각은 매우 번거로왔다. (고요한 밤의 자락을 뒤흔드는 저 들은지 오랜 난데 없는 애기의 울음소리와 어린애를 가운데 놓고 웃음락담을 벌리고있는 저 녀대원들의 밝은 웃음소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것인가? 오늘따라 류다른 기분에 휩싸인 지리산의 달밤은 과연 그 무엇을 속삭여주고있는것인가? 싸움없는 평온이 깃든 이 지리산의 말없는 밤은 나에게 저 애기의 울음소리와 어머니의 행복한 미소, 저 녀대원들의 뜨거운 정 넘치는 맑은 웃음소리는 지금 무서운 번민속에 잠겨 잠 못 들고있을 손동찬이를 다 지켜주어야 한다고 간절히 속삭여주고있는것 같다. 물론 나도 군사지휘관이기 전에 인정을 가진 사람인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개 부대의 운명을 책임지고있는 전투사령인 나까지 이런 때 인정세태적인데만 빠져서 저 모든것을 살리고 혁명의 원칙과 부대의 규률을 버린다면 앞으로 보다 더 큰것을 죽이게 될것이다. 그렇다. 나는 인간들도 살리고 지켜주어야 하지만 언제나 혁명의 옆에 남아 우리 전투병단이 상하지 않도록 굳게 지켜야 할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혼자 이렇게 마음다짐을 하기는 했으나 결코 그의 발걸음에서는 무거운 시름이 덜리지 않았다.…
래일로 혁명규률을 위반한 병단의 련락과장 손동찬이를 병사재판에 넘겨 총살하게 된다는 소리가 나돌던 그날 밤에 부대사람들은 누구 하나 바로 잠들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본인 당자는 물론이려니와 이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라고 할수 있는 별이의 마음속 괴로움과 고통스러운 심정은 어디다 표현할길이 없었다. 이리될줄은 모르고 아이를 아버지품에 한번 안겨주고싶은 한가지 생각만 하고서 찾아왔다가 그 고정한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바위돌에 머리를 쪼아 당장 이 자리에서 죽고만 싶은것이 별이의 심정이였다. 별이가 가슴 저미는 고통으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금하지 못하고있을 때였다. 밖에서 누구인가 《덕금동무가 공작을 끝내고 돌아왔어요-》 하는 기쁨에 찬 웨침소리가 들려오는것이였다. (뭐 덕금이가 왔다구?!) 이윽고 병실문이 열리더니 한몸 가득 언제나와 같이 싱그러운 기운과 후더운 체취를 풍기는 강덕금이 웃음띤 얼굴로 들어서는것이였다. 그는 반겨맞아들이는 빨찌산 녀동무들속을 헤쳐 들어오면서 누구인가를 찾았다. 《…내 동무 별이가, 우리 애기 별님이가 왔다는데 어디, 어디에 있어요?》 눈물에 젖은 얼굴로 있던 별이가 덕금을 마주 반기며 울음부터 터치였다. 《아, 덕금이!》 《별이!》 두 고향마을 녀동무는 서로 부둥켜안고 그야말로 온몸의 뼈속에서 흘러나오는것 같은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덕금이 그 누구인가를 찾았다. 《그런데 우리 애기는?》 《덕금언니. 애기별인 여기 있어요.》 하면서 리옥순이 안고있던 애기를 덕금에게 넘겨주었다. 덕금이는 어린애를 받아안아서는 꼭 품에 껴안고 애기의 볼을 부벼대며 눈물을 머금었다. 《별지야, 우리 지리산의 밤하늘에 엄마별님과 같이 떠오른 애기별님아, 이제부터는 여기서 엄마별도 반짝, 아버지 큰 별도 반짝, 너도 반짝…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하면서 우리모두 재미나게 살자.》 옆에 말없이 서있던 별이가 더는 참지 못하고 흐윽- 하고 소리내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니, 별이 왜 그러니?》 덕금이 의아히 물으며 옆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덕금의 눈길을 피하며 머리를 돌리였다. 《무슨 일이 생겼어요? 문동무, 말해줘요. 왜들 이렇게 모두 심상해들 있는지?》 문복순이 다소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자초지종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덕금이의 놀라움은 컸다. 《뭐요? 손동찬동지를 총살? 그러니 래일 군중심판에서 결정을 내린다는거지요? 내 여기로 오면서도 걱정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무서운 일이 벌어질줄은 몰랐댔어요. 그렇지만 절대로 그렇게는 안돼요. 우리는 모두가 때가 오면 사랑을 가지고 집을 가지고 아이를 낳아 키울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있는 이 나라 녀성들이예요. 우리에게 앞날에 대한 그런 희망도 없다면 솔직히 누가 처녀의 몸으로 이 지리산속에 들어와서 모진 고생이란 고생을 다하면서 피흘려 싸우겠나요. 우리는 결코 우리의 미래인 어린애들을 살리고 사랑을 살리려는 공산주의자들인것이지 사랑을 죽이려는 공산주의자들은 아닌것입니다.》 《옳아요.》 《덕금동지의 말이 옳아요.》 주위에 있던 녀대원들의 지지와 호응에 힘을 얻은 덕금이 결심굳게 말했다. 《동무들, 너무 걱정말아요. 내가 이제 가서 리현상동지를 만나보고 오겠어요. 사령동지는 우리 녀성들의 편에 서줄거예요. 난 그걸 믿어요.》 그의 말을 듣고있던 문복순이도 열오른 낯빛으로 선언하듯 말했다. 《좋아요. 덕금동무는 리사령동지를 만나고 옥순동무와 나는 김지희전투사령을 만나 담판을 해보겠어요!》
그들의 기세는 자못 등등하였다. 어스름달밤이였다. 김지희는 금방전에 리현상사령을 만나고 나오는 길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흔치 않은 일로서 하루사이에 늙은이처럼 얼굴에 시름과 우울이 잔뜩 끼여 겉늙어보였다. 전투사령은 지휘부앞 숲속을 혼자서 거닐며 깊은 사색에 잠겨있다. 부대내에서 발생한 뜻밖의 사건은 그로 하여금 그 처리에서 최대의 신중을 기할것을 요구하고있었던것이다. 래일은 선요원 손동무를 병사대중들의 군중심판마당에 내세워야 했다. 지금 일부 흥분되고 격발된 군중들이 어떻게 나오리라는것은 짐작키 어렵지 않았다. 김지희에게 있어서 작전을 하고 전투를 지휘하는데서는 연구와 탐색은 필요하되 크게 막힘이 없었다. 그에게 제일 힘에 부치고 고된것은 항시 동지들의 부정과 싸워야 하는 일, 동지투쟁이였으며 사업과 생활에서 큰 실책과 오유, 과오를 범했거나 만회할수 없는 전투의 실패를 가져온 지휘관, 전사들을 엄벌에 처해야 하는것과 같은 그런 일들이였다. 지금 제기된 손동찬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것은 리사령이 말한것처럼 과오를 범하여 대오에 큰 손실을 끼친 사람을 크게 용서하고 그의 위험해진 생명을 지켜주는가 아니면 투쟁의 원칙을 하나도 양보하지 말고 우리 병단의 전투적인 명예를 고수하고 혁명을 지키는가 하는 복잡하고도 심각한 문제였다. (일정한 책벌의 적용인가? 무서운 엄벌형인가? 아니면 혁명의 관대성을 빌린 용서인가? 이 일을 까딱 잘못 처리한다면 좌경적오유를 범할수도 있고 반대로 우경적오유를 범할수도 있는것이다. 이런 경우에 흔히 우경보다 좌경쪽으로 자빠지는것이 낫다고도 하는 일부 사람들의 말도 있지만 그렇게 할수도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우경으로 삐뚤어져 나간다면 그것이 군중들에게 주는 영향이 대단히 좋지 않으며 우리 부대는 규률을, 혁명은 원칙을 잃게 되는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한다?… 참 골이 아픈 일이지.) 이 시각 갑동은 갑동이대로 전우인 손동찬이에 대한 문제로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김지희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었다. 그러나 전투사령의 매우 신중해진 사색을 방해할가 저어되여 더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좀 떨어진 곳에 주춤하니 서있는 중이였다. 바로 이때 누구들인가 황갑동이의 옆을 지나쳤다. 절도와 생신한 힘과 투지가 느껴지는 녀성들이였다. 그 따가닥따가닥 하는 특유한 단화소리가 김지희의 사색을 중단시켰다. 《전투사령동지! 대원 문복순 외 1명 만날만 합니까?》 김지희가 돌아서보니 단정한 전투원복장차림에 똑같은 권총을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에 차고있는 문복순이와 리옥순이였다. 《…아니 그런데 이 밤에 웬일들이요? 무슨 당장 결전의 마당에라도 나설 사람들처럼 완전무장들을 하고 말이지?》 《옳게 보았습니다.》 복순이의 처음부터 도전적인 대답이였다. 《우리는 전투사령동지한테 강력하게 제기할 의견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말해도 됩니까?》 《뭔지 얼마든지 제기하시오.》 《먼저 전투사령에게가 아니라 인간 김지희에게 물어볼랍니다.》 《그것 대단하군.》 《비웃지 마십시오. 이건 지휘관과 전사가 아니라 동등한 자격을 가진 동지와 동지로서 인간 문복순이와 리옥순이가 사나이 김지희에게 묻는겁니다. 우선 동지는 누가 낳은 누구의 아들입니까?》 《엉?》 《어머니의 아들이겠지요. 그러면 이 세상의 남성들을 다 낳아 키우는 모체는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동무넨 뭘 말하자는거요.》 김지희는 버럭 증을 냈다. 아직까지 이렇게 불손하게 나온적이 없는 문복순이와 리옥순이 무엇때문에 이 밤중에 나타났는가를 더 듣지 않고도 알수 있었다. 가뜩이나 그 문제때문에 골머리가 아픈데 처녀들이 나타나 불손하게 들이대니 화가 났던것이다. 《그래 나에게 뭘 말하자는거요?》 《간난신고끝에 사선을 헤치고 아이를 업고 여기까지 찾아온 눈물도 많이 흘린 젊은 녀인에게 남편을 만나게 해줄수 없다고 잡아떼고 치성터에서 하나 벌어온 누구의 아인지도 모를 애기어머니가 빨찌산에게 덤테기를 씌운다고 한건 모욕이 아닌가요? 그래 남의 가슴속의 깊은 사연은 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 녀자의 사랑을 죽여버리는것과도 같은 그런 소리를 탕탕 할수 있습니까? 무슨 권리로…》 《문동무, 녀성들의 권리옹호의 수호자선생, 너무 흥분해서 그러지 마오.》 《나는 녀성의 권리옹호의 수호자만이 아니라 참된 사랑을 지켜 싸우는 한 녀성이예요! 그래 그 별이라는 녀성에게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자기의 어린애를 낳아 기를수 있는 한 모성으로서의 권리가 없다는건가요? 빨찌산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사랑할수 없다는건 도대체 규률규정 몇조 몇항에 있나요? 그럼 한가지 더 묻자요. 그 손동지를 당장 군중재판에 넘겨 사형한다는게 사실인가요?》 《…사실이요.…》 《동지는 그럼 아무 인정도 없나요?》 《있지 왜? 그렇지만 공사와 사사를 가려야 하지 않겠는가?》 《공에도 사가 있고 사에도 공이 있다는 소리를, 혁명속에 생활이 있고 생활속에 혁명이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는가요?》 《그러나 나는 병단사령으로서 부대를 지켜야 하고 혁명을 수호해야 하오. 그렇지 않다가는 그 혁명이 하나하나 좀먹어지고 점차 주접이 들어 눈곱이 끼게 되고 나중에는 그런 사랑놀이에 빠져 부대를 다 망치고 우리 병단을 해산시키게 될수도 있다는건 왜 모르오?》 《그것이 그리도 무서워서 겁나던가요? 동지는 지금 그 <제비>와별이의 가슴속에 그 얼마나 아름답고 깨끗하고 숭고한 사랑의 감정이 안겨있는지 알고나 그러는가 말이예요?》 《…》 옆에 조용히 서있던 리옥순이 녀성다운 리해와 인내, 부드러움을 가지고 웃음을 띠고 말에 끼였다. 《지난 밤 저희들은 모진 시집살이의 마음고생을 겪을대로 겪다가 낡은 생활의 울타리를 저절로 박차고 지리산으로, 우리한테로 찾아온 그 녀성한테서 기막힌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울기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우리 병실의 녀동무들은 처음으로 산에 와서 들어보는 어린애의 울음소리인지라 손동지의 귀여운 아들애의 볼을 도닥여 우정 울려놓고는 너무 좋아서 손벽까지 치면서 기뻐했어요. 전투사령동지는 적어도 우리 녀성들의 그 세계만은 더러 알고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큰 참나무뒤에 서서 하회를 기다리고 있는 황갑동에게까지도 잘 들려왔다. 이번에는 참지 못하는 문복순이 또다시 교대하여나섰다. 《애아버지가 되여봐야 그런것두 알지 생총각이 알게 뭐야. 내가 어느 책에선가 본 생활상식에는 이성의 사랑을 알만 한 나이에 이르렀을 때라야 입안의 좌우 두끝에 비로소 나오게 되는 네개의 이발을 가리켜 <사랑이>라고 하는데 그게 특별히 늦어서 스물네댓살이 되여서야 나오는 남자들도 더러 있다고 하드만요.》 《아니 그럼 내가 아직 사랑이도 나지 않은?》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것 같지가 않아서 그러는거예요. 내 오늘 말이 났던김에 하는 소린데. 저는 일 없어요. 모든것을 초월하고 사는 녀자니까. 그렇지만 때로 생각되는것이 많아요. 전투사령동지는 적어도 언제나 자기앞에 남성과는 또 다른 녀성들의 존재를 잊지 말아야 해요. 그리고 우리 옥순동무에 대하여서도 너무 엄격하게만 대하지 말고 좀 생각해줄 땐 생각해주어야 하지 않겠나요. 그도 녀잔데?》 《문동지!》 옥순이가 당황히 제 동무를 제어하려고 했다. 《리동무는 오늘만은 좀 옆에 가만 있어요.》 《그래 내가 어떻게 해주어야 생각하는것으로 되오?》 김지희가 복순에게 따지듯 물었다. 《우정과 동지애면 되는것이지. 그 이상 나에게서 무엇이 더 요구되는가 말이요?》 《녀성들은 그 이상 더 가까와질수 있는 간격이 없는 친한 남동무와 사이에서는 그 우정과 동지애만으로는 안된다는걸 왜 모르는가 하는 요것이지요. 그저 싸움 하나, 오직 혁명의 원칙성 하나밖에는 모르는 막대기같은 사람!》 《아무렇게나 말하시오. 나에게서 그 누구도 그 이상은 바라지 말아야 하오. 줄것이 없소. 나는 전투병단의 사령이지 그 어느 한 녀성의 차지로만 남을수는 없는거요. 나는 어떨 땐 의식적으로 내 가슴에서 사랑을 쫓아버리군 하오. 털어놓고 말해서…》 《아 그랬댔구먼요? 그래도 나는 이때까지 동지가 자기 가슴속의 사랑까지도 죽이면서 사는 그런 옹졸한 공산주의자인줄은 몰랐댔군요.》 《뭐요?》 《그래요. 이 리동무와 나는 혁명도 크고작은 그 모든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면서 투쟁의 길에 나선 녀성들이예요. 그런데 우리 좀 허물없는 사이니 싫어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를 그 무슨 혁명의 수호자로 간주하고있는 동지는 진실한 사랑도 아무것도 모르고 사실상 혹독하게 말하면 사랑에 대고 마구 총을 쏘아대는것과도 같은 사랑의 랭혹한 <교살자>인셈…》 《뭐 내가 사랑의 교살자라구?》 《그렇지 않으문요.》 《닥치시오. 아무 말이나 망탕 하겠거든 당장 내앞에서 썩 없어지시오!》 《그렇지 않아도 꺼지겠어요. 만일 동지가 지금 생각하고있는것처럼 뜨거운 사랑의 피도 흐르지 않는 그런 인간이라면 저는 전투사령을 더는 따라다닐 생각이 없어요. 이제 지희동지의 곁에는 아마도 이 총과 그 총성의 메아리밖에는 아무것도 남는것이 없게 될거예요. 자, 언제인가 전투사령동지가 저희들에게 주었던 이 권총을 도루 바치겠어요!》 문복순은 이러면서 자기의 허리에 꽉 조여매였던 권총을 혁띠채로 풀어서 깜짝 놀라는 옥순이의 손에 넘겨주고는 돌아서서 가버리고말았다. 《문동무! 복순이-》 김지희가 멈추어세우려고 했지만 성이 날대로 난 그 녀자는 벌써 그의 앞에 없었다. 둘만이 남았을 때 김지희에게 안된 생각이 들었던지 리옥순이 머리를 숙여보이며 리해를 구하였다. 《전투사령동지! 오늘 저때문에… 안되였습니다.》 《안될게 있소. 동무도 지금 같은 녀성으로서 나를 미워하고 극도로 증오하고있을텐데…》 《어쩌면… 어쩜 전투사령동지는 그렇게도 매정스러워졌나요?》 《나야 아직 사랑이도 채 돋지 않은 놈이니까 할수 없지. 오늘 리동무도 나한테 할말이 있으면 저리 하시오, 속씨원히!》 《그걸 정 요구하신다면 그러자요. 저는 모든것을 다 참고 이겨 내고 기다릴수도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요구할것이 따로 없어요. 그러나 저도 싸움마당에 나갈 때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게 아니예요. 그럴 때면 전 죽기 전에 그래두 가장 가까운 동지에게서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 보다 따뜻하고 정다운 말이라도… 한번 듣고 싶어했음을 솔… 솔직히 이 자리에서… 나는 이 마당에 와서 놓고보면 저도 병단전투원의 한사람으로서 남모르는 죄를 범하고있다는걸 비로소 알게 되였어요. 왜냐하면 저는 우리모두의 전투사령이 되여야 할 김지희동지를 못내 저 혼자 가져보려는 꿈도 꾸어보았으며 어떨 때에는 호을로 공연히 외로워하면서 사람들앞에 저의 그 감정을 나타내여 동지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는것을 오늘 솔직히 고백하는바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쁜 녀자였어요. 옳지 못한 녀자였어요. 저는 가슴속에 타오르는 그 속일수 없는, 감출수 없는 사랑으로 하여 다른 동지들에게 주는 영향이 좋지 못했고 손동무와 같이 부대의 규률을 문란시키는 그런 성격의 죄를 범했으니 저도 마땅히 그 동지와 같이… 그래요, 저는 부끄러움없이 말할수 있어요. 저는 녀대원으로서 감히 지휘관인 동지를, 인간 김지희! 당신을 사…사랑했댔어요. 자 이건 동지가 원쑤를 쏘라고 문동지에게 주었던 권총이예요. 바로 이 총으로 당신을 남몰래 사랑했던 저의 이 가슴에 대고, 저의 이 심장을 향하여 쏘…쏘아주세요!》 리옥순이는 아까 문복순이 남기고 갔던 그 권총을 김지희의 손에 쥐여주고 돌아서서는 급히 자리를 떴다. 《리옥순동무- 옥순이 서오!》
김지희는 이자 금시 옥순이 자기를 사랑했던 이 심장을 향해 쏘아달라던 그 권총을 두손에 쳐든채 착잡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지휘부쪽으로 향하던 그는 참나무밑에 아까부터 서서 기다렸던듯 싶은 황갑동이의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들이였지만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그 누가 말이 은이라면 침묵은 금이라고 했던가. 그 범상치 않은 침묵의 무한점선속에서 많은 말들이 오가면서 생략이 되여버리고 압축된 말의 알맹이들만이 가슴에 남았을 때 갑동이 전투사령을 따라 지휘부로 발걸음을 옮기며 진중히 입을 열었다. 《…전투사령동지! 용서하십시오. 저는 이자 전투사령동지를 만나러 이리로 오다가 우연히 그 두 녀동무들의 말을 듣고 실로 많은걸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저는 얼마나 인간에 대한, 전우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지닌 훌륭한 동지들속에서 생활하고있는가에 대하여 가슴 뜨겁게 절감하게 되는군요. 결국 우리 부대의 규률이라는것도 전투원들모두를 규률성이 있으면서도 전투적인 우정과 동지적인 사랑으로 굳게 결합된 든든한 집단으로 만들어 싸움을 더 잘하게 만들자는데 있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손동찬동무에게 일정한 비판을 주어 교훈을 찾게 하는건 필요하겠지만 그에게 극단한 처벌을 내리는건 고려되여야 하리라고 봅니다.》 《…》 《물론 손동찬동무는 병단의 련락과장이고 나는 도지휘부의 련락과장이니 무슨 상관인가고 할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두손이 마주쳐야 손벽이 울리는것이지 한쪽 손만으로는 안됩니다. 그리고 나는 그때 그를 청학동 산전막에 데리고 갔던 사람으로서 손동무에게서 그런 결과가 빚어지게 된데는 직접적으로 저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처벌을 주려면 저에게도 같이 처벌이 돌아오게 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내 과장동무를 만나서 물어보려던 참이요. 그러니 련락과장동무도 이번 사건의 공모자라는걸 스스로 인정한다는 소린데 엄중하지 않소. 모두 선요원자격들이 없소. 선요원자격들이… 나는 혁명의 규률과 투쟁의 원칙을 살리기 위해서 그 누가 뭐라고 하던지 우리 혁명의 리익을 좀먹고 침해하는자들은 엄격히 군중심판에 넘겨 처단하기로 결단을 내렸으니 동무도 그렇게 알고 자기의 처신을 똑똑히 해야 하오!》 《저의 잘못에 대하여서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전투사령동지는 원칙 일면만을 생각하면서 너무 극좌적으로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내가 극좌적으로?》 《그렇습니다. 얼마전에 전사한 합천사람인 우리 선요원 구호택동무는 혁명이란 인간의 아름다운 정서이고 랑만이고 노래이며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빨찌산련락원이 우연히 청학동의 치성터에서 만나게 된 불행에 빠진 녀인을 죽음에서 구원해주고 진실한 감정으로 사랑한것이, 빨찌산의 아들을 낳아 업고 오게 만든것이 그래 무슨 큰 죄로 된단 말입니까?》 《죄가 아니면 표창을 주어야 하겠는가?》 《표창은 주지 못해도 인간적인 동정과 동지적인 리해야 왜 못해 주겠습니까. 손동무를 죽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건 우리 병단의 모든 남녀 전투원들의 가슴속에 있는 가장 아름답고 신성한 사랑의 감정을 다 죽여버리는것으로 됩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랑을 살리는 사람들이 되여야지 결코 사랑에 대고 총을 쏘는 그런 사람들이 되여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주장하고싶습니다.》 《…》 《나의 말이 굳이 틀렸다고 인정한다면 나도 손동찬동무와 같이 사형장에라도 나가 혁명의 총구앞에 서겠다는것을 전투사령동지앞에 진심으로 말하고싶습니다. 만일 지희동지가 손이 떨려서 그렇듯 뜨거운 인간애, 동지애를 지닌 옥순이나 복순동무의 가슴에 총을 겨누지 못하겠거든 두 녀동무가 두고 간 이 총으로 차라리 나를 먼저 쏘아주십시오. 그렇게 해서라도 전투사령동지의 그 분이 풀릴수만 있다면 말이지요.》 김지희는 갑자기 고함을 지르다싶이 했다. 《이거, 그만두지 못하겠소.》 《…》 그들은 함께 지휘부로 들어갔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치 못하고 방안을 거닐며 자못 신중한 생각에 잠겼던 김지희가 황갑동에게 통 자기 소리 같지 않는 갈린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부대내에 무규률을 조성한 당치않은 결혼의 중매군노릇을 한 황과장동무와 강덕금동무에게 혁명의 이름으로 처벌을 주겠소. 당장 나가서 덕금동무를 데리고 손동찬이를 아니 그놈의 말썽스러운 사랑을 가두어넣을 자그마한 <영창>을 하나 짓고 보고하시오.》 《예에? 영창이요?》 《그렇소. 초막으로 즉시 지으시오.》 《독감방으로 말인가요?》 《아니 아니, 둘이 들어갈수 있게.》
《둘이요?》 《…》 황갑동이 전투사령의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종잡지 못해할 때 마침 리현상사령이 볼이 잔뜩 부어있는 강덕금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섰다. 리현상은 팽팽히 켕겨져있는 방안의 긴장된 분위기를 느끼고 웃음띤 낯으로 말했다. 《허허, 여기서도 한장면 펼쳐졌구만. 저기서는 내가 이 강덕금동무의 공격을 받아, 여기서는 전투사령이 황과장의 공격을 받는 모양인데 전투사령동무, 이거 잘못하다가는 손동찬동무가 아니라 우리가 병사대중의 심판이라도 받게 되는거 아니요?》 《정말 저도 골치가 아픕니다.》 《전투사령동무! 그러니 이런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소?》 《그래서 제 생각다못해 이자 황과장동무보고 처벌로 나가서 강덕금동무를 데리고 두사람이 들어가있을 자그마한 <영창> 하나를 제꺽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놈의 어찌할수 없는 별스러운 사랑을 죽이던가 살리던가 해야겠는데 살리자면 다문 얼마동안이라도 같이 지낼 살림방이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헛허허, 내 그럴줄 알았소. 그거 처벌치고는 아주 멋진 <처벌>이로구만.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있던 참인데 잘 결심했소.》 《어쩌겠습니까. 나중에는 제가 처벌을 받더라도…》 김지희는 강덕금이를 시켜 지금 당장 리옥순이와 문복순이를 데려오라고 했다. 좀 있어 그 두 녀대원이 강덕금이를 따라 방에 들어섰다. 김지희와 그들사이에서는 한동안 서로가 서로의 마음속을 번연히 알면서도 서로를 괴롭히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생각깊은 침묵이 흘렀다. 드디여 김지희가 말문을 열었다. 《내가 찾은것은 다른게 아니고 동무들에게는 한가지 다른 동지적인 부탁을 하나 할것이 있어서…》 《…》 《…》 전투사령의 그 말에 복순이는 아직 원망감이 서려있는 그 억실억실한 눈에 분노를 담으며 옆으로 머리를 홱 돌려버렸다. 옥순은 버릇처럼 여느때와 다름없이 깊은 리해가 담긴 눈으로 김지희를 바라보며 다음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이건 명령은 아니고 동지적인 부탁인데 저…나가서 소박하게나마 결혼식상을 하나 준비해주었으면 합니다. 누구의 결혼식인가는 묻지 마시오.…》 김지희의 그 말을 듣고 지휘관의 속내깊은 뜻을 알아맞힌 두 처녀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서로 마주보는 그들의 눈길들에는 기쁨의 눈물이 찰랑거렸다. 《문동지!》 《옥순동무!》 두 처녀는 지휘관들의 앞이라는것도 잊고 서로 힘껏 손을 꼭 잡고 놓지 못했다. 그 엄격한 군사지휘관에 의하여 다시 우정이 살고 동지가 살고 사랑이 살아나는 매우 경이적인 순간이기도 하였던것이다. 옆에서 이 놀랍고도 감동적인 장면을 말없이 지켜보고 서있는 황갑동이의 가슴은 마치 불시에 뜨거운 불돌을 안은것처럼 달아올랐다. (아, 모두가 얼마나 좋은 동무들이고 그 얼마나 훌륭한 지휘관들인가. 그런것도 모르고 나는…엄격한 규률속에 동지들과 전사들에 대한 그런 엄한 사랑이 있을줄이야 내 어찌 알았으랴. 이것이 바로 지리산의 규률, 지리산의 사랑이였구나. 이처럼 훌륭한 동지들속에서 살며 혁명하는 나는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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