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제1부 지리산   제1장 대나무는 혼자서 자라지 못한다

 

 

제3장 대원사전투

1
 

지리산인민유격대 전투병단지휘부는 이 고장치고도 특히 통굵은 대나무숲이 울울창창한것으로 소문이 난 평촌의 대원사골 막바지에 자리잡고있었다.

지금 그 지휘부 가까운 공지의 눈내리는 푸른 참대숲속으로 한사람이 깊은 생각에 잠겨 호을로 조용히 걷고있었다.

그는 리현상이였다.

참대밭의 생눈길, 숫눈길에 사색을 찍어가는듯 한 그의 발자욱들은 마치 끝나지 않은 무한점선처럼 보였다.

50전후의 사나이, 아이적부터 고생도 많이 하고 모진 세월의 중하에 눌리워 그리 크지 못한 키, 하체에 비하여 발달된 편인 상체, 딱 바라진 듬직한 두어깨에는 그 어떤 무거운 짐도 실을듯. 모든것을 관심하고 보살피고 신칙하고 결심하고 단행해야 하는 부대의 총 지휘관인 그의 방심을 모르는 부리부리한 눈은 조용히 번쩍이고있다. 그는 지금 파격적으로 번져지는 정치군사정세와 인민유격대의 투쟁방략을 두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고있었다.

… 오솔길이 끊어지고 대나무숲이 끝나는 곳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고 눈길을 드니 앞에 여지없이 파헤쳐진 감자밭뙈기가 나졌다. 밤에 돼지무리라도 달려들어 채 캐지 못한 감자를 파먹느라고 그렇게 뚜져놓은것 같았다.

리현상은 그 무지하고 사나운 메돼지들의 횡포에서 언제인가는 이 지리산에도 불시에 달려들어 수만 입산자들의 붉은 피로 이 산판을 물들일수도 있는 가장 잔혹한 야수의 무리인 괴뢰군경놈들의 《토벌》을 예감했다. 현정세의 긴박성에 마음이 조급해진 그는 사색을 거두고 돌아서 지휘부쪽으로 걸음을 빨리 하기 시작하였다.

저기 지휘부 자연동굴앞 공지에서 이 추운 날에도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우에 엎드려 사격훈련에 열중하고있는 경비중대 남녀대원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옆에 피워올린 모닥불가에서는 짜갠 생참대를 불에 달구어 끝을 우로 후리여 스키를 만드는상싶은 한 낯설은 대원이 눈에 띄였다. 리현상은 그에게 마음이 끌려 그쪽으로 향했다. 아주 다부지고 날파람있게 생긴 젊은이였다.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가며 리현상은 넌지시 물었다.

《젊은 친구, 거기서 뭘 함머이?》

일에 몰두해있던 갑동은 그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대꾸를 했다.

《보시면 모르겠능기요? 눈스키를 하나 만들고있는데요…》

《눈스키를 탈줄 아나?》

《뭐이나 배우면 되는거지요.》

《뭐이나 배우면 된다? 것 참 좋은 말이요. 그래도 이렇게 스키를 만들적에야 다 타산이 있을것 아니겠소? 엉?》

《예. 여기로 올라올 땐 눈길에 빠지면서 벌벌 기여서 올라오다싶이 했는데 다시 산을 내릴적엔 한번 이 스키를 타고 휭 날아내릴려고 그러지요.》

《스키를 제꺽 만든 그 손에 익은 재간이랑 보니 솜씨가 있는 모양이지?》

《예. 고향마을에서 겨울이면 동무들과 함께 스키를 좀 타군 했댔지요. 싸리나무를 해지고서도 저 산아래로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보시오, 담배불 좀 빌립시다-> 하고 소리치고는 금시에 스키를 타고 순식간에 쭉- 내려가서는 담배불을 붙여물군 했구만이라.》

《허어. 그거 실로 상당한 솜씨구만. 그런데 여기서 처음 보는 동문데 혼자서 먼길을 자주 다녀야 하는 그런 특별임무라도 수행하는 전투원 아니요?》

리현상은 어제 아침에 하동군 야산대 대장에게 보냈던 전투병단 련락원을 따라 선을 달려고 올라왔다는 그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젊은 련락원의 모습을 그려보며 물었다.

갑동은 외견상으로는 그리 특별한데가 없는 어리무던해보이는 사람이 그 관찰력만은 매우 빠르다고 생각하며 흔연히 대답했다.

《저… 여기서 그런건 절대비밀로 지켜져야 할 일인께 더 묻지를 말아주소이다. 그런데 아바이는 나이드신분인데 여기서 무신 일을 맡아보시는지, 혹시 취사원이락도?》

《허, 그렇게라도 보인다니 감사하오다. 그런데 내가 맡아하는 직무 역시 비밀이니까. 호상 더 묻지를 말기요. 허허.》

《그렇거지요. 그런데 아바이는 그 말씨를 보아 분명 함경도출신 같은디요?》

《바로 맞쳤소.》

《근디 그 아득히 먼 조선의 북쪽끝에서 여기 남해기슭 가까운데까지 워쩌케 흘러오게 되였는지요?》

《거야 류수와 같이 흘러흐르는 무정세월우에 고생배를 띄우고 슬픔의 노를 저어온것이 여기 그 옛날 우리 먼 조상들이 살던 본적지인 경상도가 된것 아니겠소.…》

《거 말씀 정말 구수하게 허십니다요. 이자 여기 경상도가 먼 조상들 살던데라 했지요?》

《그래, 나의 본으로 따지면.》

《그렇게 보면 그 옛날 경상도량반들이 저 북쪽으로 정배살이 들어간것이 많다는 소린데 그래서 그런지 좀 들어보면 저 함경도사람들이 쓰는 말의 어조라던가 머시야 강한 억양이라던지 그것이 여기 경상도말과 비슷하고 우리 경상도사람들이 격하면 이내 왈칵하는 그 성미가 저 함경도사내들의 씨원씨원하고 좀 콸콸한 성미와 비슷한데가 있단 말 틀리지를 않는게라서 저의 생각에는 말이지요. 함경도사람이나 우리 경상도사람들을 비롯해서 여그 남도사람들도 족보를 캐고 들어가며는 다 먼 친척이나 형제간이 된다 요것이요.》

《허 그 말은 정말 신통하오. 그런데 한가지 알아둘것은 그 옛날의 경상도나 전라도, 경기도에 살던 량반들이 저 춥고 각박한 땅인 북쪽에 들어가서 오래동안 사는 과정에 생활력이 더 강해진, 뭐랄가 천민은 아닌것이고 다 같은 량민, 평민들이 되여 다시 옛 고장으로 되돌아왔다 이 말이요.》

《옳구만이라, 여그 입산자들속에서도 더러 볼것 같으며는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 대체로 성격들이 좀 씬것은 백두산이 가까운데서 살았기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글쎄… 그럴수도 있지.》

《전에 북쪽에서 살았댔으면 더러 백두산의 총소리를 들었겠구만요?》

떠보는듯이 묻는 청년을 여겨보며 리현상은 입가에 느슨한 미소를 그렸다.

《듣구말구, 보천보의 밤거리에서 활활 타오르던 보천보의 불길도 보고…》

《자신이 직접요?》

《직접 아니문.》

《야 사람이 시상에 났다가 한번 그런 백두산의 총소리도 들어보고 그런 보천보의 홰불도 보아야 정신이 번쩍 드는것인디.》

《젊은 동무,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오. 우리가 오늘 여기 지리산에서 울리는 반미, 반괴뢰항전의 총소리도 그 백두총성의 메아리이고 저 한나산에서 아직까지도 타오르고있는 투쟁의 거세찬 봉화도 다 그 보천보의 홰불에서 받아온 불씨로 피워올린것 아니겠소.》

《그 말씸이 옳구만이라. 근데 백두산이자 김일성장군님이시고 김일성장군님이시자 백두산잉께 아바이넌 김장군님에 대해서도 잘 아시겠구만요?》

《깊이는 몰라도 그만하면 안다고 할수도 있지.》

《그래요!》 그 말에 확 마음이 당기운 갑동은 통나무의자도 권하며 존경을 표시했다.

《싸게 바싹 나앉아 불에 언 몸을 녹이십시오. 나자신분이 그 올매나 고생이…》

《아슴채이오.》

갑동은 전혀 낯설지 않은 그 함경도사투리를 듣고보니 고맙다는 뜻으로 《아습찮이요.》 하는 이 고장말이 그쪽으로 갔다가 좀 변형이 되여 다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 친근감이 느껴져 빙그레 웃음지었다.

《아무거나 좋으니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일제때에도 그래 입산후에도 그래 여러가지 백두산전설을 비롯하여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겠는데 동무가 제일로 나한테서 듣고싶은 이야기가 어떤것인지 말해보시오.》

《장군님에 대한것이라면 듣고들어도 또 듣고싶어지는것이라서는…》

《그래도 특별히 있겠지. 제일 궁금해지는것이…》

《어, 그러면 우선 아바이가 김장군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그것을 말씀해주실수 없겠는지요?》

보매 몸에서 학교의 잉크냄새도 별로 풍기지 않건만 생활을 통하여 사물의 현상과 본질의 알맹이를 도출해낼줄 아는 능력만은 키운것 같은 이 영민한 청년에게 흥미를 느끼며 리현상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허, 내가 거의 반생을 바쳐서 겨우 알아가진 그 귀중한 밑천을 한순간에 다 뽑아내서 제걸로 만들어 단통 거인이 되고싶어하는걸 보니까 동무의 욕심도 이만저만이 아닌것 같구만. 그건 누구나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운 힘든 문제요. 왜냐하면 백두의 령장이시고 불세출의 영웅호걸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안다는것은 우리 조국과 인민, 조선의 력사와 조선혁명을 아는것으로 되기때문이요. 작은 문제가 아니지. 동무의 그 물음에 대답을 주기에 앞서 내 먼저 한가지 물어봅시다.》

《물어보십소.》

《사람들이 흔히 생활에서 민족의 력사요, 조선의 력사, 세계의 력사요 하는데 동무생각엔 그 력사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것이라고 보오?》

《력사란 무엇인가구요?》

갑동은 누가 불시에 커다란 바위라도 가슴에 턱 안겨주었을 때와도 같이 앞이 막혀 잘 보이지 않았다. 좀 시간을 가져서야 그 큰 바위옆으로 자신없이 얼굴을 내밀었다.

《력사란 머시냐 할것 같으며는? 그렇지요, 비록 눈으로 볼수도 손으로 만져볼수도 없는것이지만 실제로는 엄연히 존재하며 누구도 절대로 없애버릴수도 없는것, 이 세상 사람들이 제가 알고있건 모르고있건 다같이 마음속에 안거나 등에 지고서 살게 되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와도 같은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력사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바위와도 같은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머시기 저의 생각에는 력사란 그속에서 인간들이 살고있으면서도 사람들밖에 턱 서있으면서 모든것을 지켜봐주는 아주 큰것인디, 마치도 또 하나의 다른 지구덩어리와도 같은것이라 계속 돌아가는걸 앞에서 멈춰세울려고 해도 그건 안되고 그걸 발로 차거나 들이받아도 제 발목이 부러져나가거나 머리통이 터져나갈것이요, 반대로 앞이나 뒤에 서서 지구가 돌아가는 방향으로 힘주어 끌어당기거나 미는 사람들, 하다못해 손발로라도 슬슬 밀고나가는 사람덜언 깔리여 죽지도 아니하고 제가 살아나갈 옳은 길을 바로 열게 되는것이 바로 력사가 아닌가싶구만이라.》

《허, 이 친구 말하는걸 보니 꽤 어물한걸. 그러면 한가지 더 물어보겠는데 그 력사는 누가 창조해낸다고 보오?》

《예. 그건 정치상학에 참가해서 제일 먼저 배운것이지요. 력사는 그 어느 력사책 쓰는 사람들이 지어내거나 그 어느 개인인 영웅이 맹글어내는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이 창조한다고 하더구만요.》

《옳게 말했소. 그런데 그 인민대중은 아까 동무가 말한것처럼 이 지구의 운동방향, 력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며 전진하는 방향으로 바로 이끌어주는 탁월한 령도자의 인도를 받아야만이 자기의 그 무거운 책임을 다할수 있는거요. 그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분이 위대한 수령인것이요.

우리 조선의 새 력사를 창조하시는분이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이시오!》

갑동은 리현상의 그 무게가 느껴지는 말에 심취되여 숨소리마저 죽이고있었다.

《동무도 들어서 알겠지만 국치일날 <황성신문>에 났던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글에서 이 나라 5천년 사직을 종사하고라고 했던것은 대대로 내려오던 조선왕조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반만년력사가 간악한 일제놈들의 손에 끊기고말았다는 소리가 아니겠소.

광복직후 평양에 있는 한 시인은 <백두산>이라는 서사시에서… 5천년 흐르던 민족의 혈통이 일제의 칼에 맞았을 때 그 끊어져나간 토막토막 얼마나 원한의 선혈로 딩굴었더냐 하고 통탄해마지 않았던것도 나라가 없으면 민족도, 자기의 력사도 없다는 피타는 절규였소.》

《그러니 잘 모르긴 하겠지만 그 시인은 정말이지 력사를 아는 시짓는 사람인게라.》

리현상은 머리를 끄덕여보이고나서 마디마디에 힘을 주었다.

《그때 토막토막 끊어져나간 그 력사의 혈맥을 다시 이어놓기 위해 그 어디에 가계시나 조선의 동포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늘 생각하시고 그 누구보다 더 고생하시고 속도 많이 태우시며 조국광복회10대강령도 만드시고 귀틀집 등잔불로 조선지도를 비쳐보시며 밤도와 국내진공작전도 짜신분이 누구시였소. 강도 일제와 싸워이겨 나라를 찾아주신 이후에도 부강한 민주의 새 조선을 일떠세우시려고 밤새워 많은 생각도 하시며 20개조 정부정강도 짜시고 조선로동당 강령과 규약도 작성하시며 밤을 지새우신분, 미제에 의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이 둘로 갈라지게 되는것이 그토록 가슴아프시여 잠도 바로 드시지 못하고 조국통일방안도 새로 작성하시고 1948년 4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련석회의를 여시여 민족의 대단결을 제시하시였고 어떻게 하던지 전체 조선인민들의 총의에 의한 총선거를 통해 통일정부를 구성하고 기어이 통일의 새 력사를 창조하시려고 그토록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시며 로고를 바치신분이 바로 우리 장군님이시오.

실로 우리의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은 모든 생각, 모든 사색을 오직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조국의 통일과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해 다 바치시는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정치가이시오!》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정치가!)

갑동은 크나큰 감동을 안으며 그 말을 속으로 다시 되뇌이였다.

리현상이 계속했다.
《동무가 나에게 이자 김일성장군님에 대하여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고 물었는데 한마디로 말하여 나는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조종의 산 백두산이 받들어올린 조선의 해님이신 김일성장군님이시야말로 백두산의 호랑이, 백두산의 사나이로서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나라를 찾아주신 광복의 은인이시고 나라의 분렬을 한몸으로 막고 조국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하여 그 누구보다도 애쓰시는 최고지존의 대애국자, 민족단결의 중심이시며 조국통일의 위대한 구성이시라는것이요. 장군님이 계셔야 나라가 있고 장군님을 높이 모셔야 조국통일의 성업을 이룩할수 있으며 장군님의 품속에서만 나라의 번영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누릴수 있는것이요.

그렇기때문에 백두산아래의 지리산인것처럼 우리 지리산사람들도 오직 장군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그이의 령도를 높이 받들어나갈 때에라야 하루빨리 통일된 하나의 조국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게 될것이요. 장군님이 계시지 않는 조선, 장군님이 계시지 않는 통일된 조국이란 있을수 없는것이요!

인민속의 장군님이시고 인민을 위한 장군님이시며 인민에 의한 장군님이신 김일성동지시야말로 우리 인민의 력사이며 새 조선의 력사라고 할수 있소.》

(아 장군님은 인민의 력사, 우리 조선의 력사!)

갑동이로서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그 말은 그를 몹시 격동시켜주었다.

가슴에 력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조선의 력사이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흠모와 뜨거운 추앙심이 끓어오르는것이였다.

《아바이, 장군님에 대한 좋은 말씀을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저도 꼭 김일성장군님께 충직한 지리산의 참된 전사가 되렵니다.》

《음- 결심은 좋은데, 그래 동무는 장군님을 따르는 통일투쟁의 길에서 자신이 맡아해야 할 일몫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내가 맡아하는 일몫말이지요? 거시기 그거야 딴게 있습니까. 저의 기본이사 이 든든한 다리를 가지고 말하자면 혁명이 시키는 심부름을 다니는 일이니께 시키는대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두 지점을 련결하는 험로를 따라 수걱수걱 걸어서 고도시 갔다가 고도시 오는 일을 잘하는거지요.》

《… 수걱수걱 걸어서 고도시 갔다가 고도시 온다? 그거 참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대답이요. 물론 상급의 지시대로 고도시 갔다가 오는것도 중요하지.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오. 빨찌산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한걸음을 걸어도 내가 왜 이 길을 걸어야 하는지 명백한 목적이 있고 뜻이 있는 걸음을 내디디여야 한다고 생각하오. 결심을 품고 일단 지리산으로 올라왔다면 자기가 조선청년의 한 사람으로서 조국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서 자기의 위치를 찾아야 하고 자기가 수행하고있는 일몫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만 혁명의 한 전사로서 자기 의무를 다할수 있을것이 아니겠소.》

《…》

《나는 동무가 통일의 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오기 위한 투쟁에서 훌륭한 혁명의 심부름군으로 될수 있으리라고 믿고있소. 자기가 하고있는 그 심부름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 자기의 몫을 스스로 찾아내게 될 때에 내가 오늘 한 말의 뜻을 더 잘 깨닫게 될거요.》

《꼭 스스로 제 일몫을 찾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음-》

《아바이, 이지부텀 저는 아바이럴 선생이라고 부르겠심더.》

《선생은 무슨 선생, 그저 동무라고 하시오. 리동무라고 부르면 되겠소.》

《리동지, 근디 우리 심상태동지의 말을 들으니껜 여기에 리현상선생이 들어와계신다던데 한번 만나보셨습니까? 사람이 아조 점잖고 겸손하면서도 굳세고 리론이 상당히 씨다던데…》

《허허. 여기에 있긴 한데 리론이 쎄다는건 모를 소리요.》

《그럴수는 없겠는디. 동지도 그저 간단한분은 아니실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슨 사업을 맡아보십니까?》

《나도 여기 지리산의 한 전사요, 전사!》

《그래요?… 그럼 전 이만…》 하던 일을 끝낸 갑동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말을 했다.

《가만 헤여져도 이름이야 알고 헤여져야지.》

《예. 제 이름은 황갑동입니다.》

《황갑동이, 이름이 좋구만. 기억해두겠소.》

《…》

이날 모르고 만났던 리현상사령과의 모닥불가에서의 상봉은 황갑동이로 하여금 위대한 장군님을 따르는 통일혁명의 길에서 보다 폭이 넓은 혁명의 참된 심부름군으로 성장할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되였다고 할수 있었다.

 

2
 

황갑동은 병단지휘부에 오래 머무를수가 없었다.

새로운 임무수행을 위해 떠나려는데 리현상사령이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만나보고싶던 전투병단의 사령인지라 그의 마음은 저으기 흥분되였다.

그가 이 부대 련락원인 손동찬이를 따라간 곳은 지휘부에서 얼마 멀지 않은 야산공지의 사격장이였다. 거기서는 지금 지휘부성원들의 권총실탄사격이 진행되고있었다. 사격장에는 갑동이가 이틀전에 만났던 그 아바이도 있었다. 그는 전투복차림에 옆구리에 권총을 차고서 이 부대지휘관인듯 한 사람들속에 섞여있었다.

(아니, 저 아바이는 그저 전사라고 했는데…)

갑동은 의아한 눈길로 그를 여겨보는데 손동찬이 어서 따라서라고 하면서 그 아바이한테로 데리고가서 정식보고를 하는것이였다.

《병단사령동지! 부대련락원 손동찬 경상남도지구담당 선요원 황갑동동무를 데리고 왔습니다.》

(아니 병단사령이라니? 그러면 저 아바이가 그 소문으로 듣던 리현상동지란 말인가?)

이쪽으로 몸을 돌린 리현상이 놀라운 얼굴에 잔뜩 긴장되여 서있는 황갑동이를 보자 금시에 반색을 짓는것이였다.

《오 왔구만, 총도 없이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댔다는 우리 지리산의 힘센 곰이.》

《사령동지, 전날에는 그만 누군지 모르고 버릇없이 굴어서 안되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처음에는 서로 모르고 만났다가 알만 하면 헤여지게 되는 우리 산사람들의 상봉과 리별이 아니겠소. 허허허.》

리현상은 소탈하게 웃으며 갑동의 손을 잡아주었다.

《동무와 헤여지기 전에 사나운 백호와 싸워이겼댔다는 그 손을 다시 잡아보고싶어서 오라고 했소.》

리현상의 따뜻한 미소와 사려깊은 눈매에서는 큰 호령을 치지 않고도 능히 부대를 움직일것만 같은 로숙한 지휘관다운 체취가 풍겨 오는것만 같았다.

《자 여기 와서 같이 총쏘는 구경이나 좀 합시다.》

《고맙습니다. 사령동지!》

리현상이 갑동이를 자기의 옆자리에 세우고는 넌지시 물었다.

《한번 권총사격을 해보지 않겠소?》

《저는 쏠줄을 모릅니다.》

《총 쏠줄 모르는 빨찌산이로구만. 허허.》

그 말에 갑동은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어머니의 배속에서부터 배워가지고 나오는 일이란 젖먹고 소리내여 우는 일밖에는 없지. 그렇다면 어디 한번 오늘 총성을 울려보지 그래.》

《전 남들이 쏘는걸 보고 냉중에나 탄알이 남으며는…》

《그럼 여기서 잘 보시오.》

사격은 한번에 세사람씩 나가서 하군 했다. 준비위치에서 실탄을 받아가지고 나가서 지휘관의 구령에 의하여 장탄해가지고는 자기앞 50메터거리에 세워진 목표물을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맵짠 총성이 골안을 울리군 했다.

실탄사격이 거의 끝날무렵에 한 젊은 지휘관인듯 한 사람이 두 녀대원을 데리고 나와서 사격위치에 섰다. 다같이 군복차림도 몸매도 단정한, 마치 형제와도 같은 그 세사람은 허리에 찼던 권총을 잽싸게 왼손으로 뽑는 동작으로부터 시작하여 장탄과 사격준비자세와 조준에 이르기까지 행동이 일치하였는데 그것은 흡사 숙련된 기계체조선수들의 일매진 동작을 방불케 하는것이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쓰던 목표판이 아니라 그옆의 키높이 자란 두 참나무사이를 건너지른 쇠줄에 매단 아홉개의 빈 병을 향해 겨냥을 하는것이였다.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다 왼손잡이들인 그들의 왼손에 쳐들린 권총에서 《땅-땅-땅-》 세방의 총성이 거의 같이 울림과 동시에 공중에서 흔들거리던 병 세개가 박산이 나는것이 보였다.

《야!》

갑동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쳤다. 그야말로 경탄할만 한 사격술이였던것이다.

총을 다 쏘고난 그들이 사격좌지에서 돌아서 들어오는것을 선망의 눈길로 여겨보던 갑동은 그만 자기의 눈을 의심하며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아니 어떻게 저자들이 여기에?》

아까 그들이 사격위치에 나설 때 어딘가 낯이 익다 생각했었는데 이제 다시 보니 그전에 자기를 죽이려고 하던자들이 분명했다. 애국군인폭동이 준비되고있던 시기 갑동은 려수 제14련대에 심상태와 함께 중요한 공작임무를 수행하러 갔던적이 있었다. 그때 그만 놈들에게 잘못 걸려들어 하마트면 총에 맞아 죽을번 했는데 바로 저 세사람이 자기를 총살하려들던자들인것이다.

(음,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여기서 만났구나!)

그때 갚지 못하고 헤여진 그들에 대한 보복의 갈망으로 금시에 온몸이 불타오름을 느낀 갑동은 자기도 모르게 움쭉 몸을 돌려 그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갑자기 얼굴색이 돌변한 갑동이를 띠여본 리현상이 놀라며 불러세웠다.

《황동무! 어디메로 가오?》

《제 좀 저 사람들을 만나 결판을 낼 일이?》

《저 동무들을 어떻게 아오?》

《압니다. 저자들은 괴뢰군에 있을 때 나를 잡아 죽이려들던 놈들입니다.》

《아니 그럴수 없소. 병단성원들 거의가 지난날의 괴뢰군장교와 사병출신들인건 사실이지만…》

《틀림없습니다. 저것들은 가장 악질적으로 놀던 장교와 사병년들입니다. 아무리 빨찌산으로 둔갑을 했다고 하여도 절대로 용서를 할수가…》

《… 잘못 보지 않았소?》

《자기를 당장 쏘아죽이려들던 간악한 원쑤도 잘못 봅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생활에는 오해라는것도 있으니 너무 덤비지는 말고 나한테 그때의 사연을 간단히 설명해주오.》

갑동은 저기서 사격후의 무기분해청소를 하고있는 그 젊은 지휘관과 두 녀자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으면서 그때 일을 이야기하였다.

《… 김지희중위가 려수군인폭동을 준비하고있던 때입니다. 당시 우리 하동에서도 제주도인민들의 무장투쟁에 고무되여 군야산대조직을 위한 준비로 무장획득투쟁에 열을 올리고있었는데 마침 14련대 지휘부에는 우리 맏매부가 부대로무자로 들어가 일하면서 애국장교들과 깊은 련계를 맺고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래 심상태 야산대 대장과 함께 몇동무들을 데리고 려수의 큰 누님네 집으로 찾아가게 되였지요. 어느날 밤 몇정의 무기를 넘겨받아 동무들에게 주어보내고 뒤따르는 놈이 없나 해서 부대쪽을 살피다가 나는 그만 부대밖에 야간 선검열을 나갔다오는 괴뢰군통신병놈들에게 걸려들어 꼼짝 못하고 붙잡히고야말았지요.》

《그다음엔?》

《그래서 제가 끌리여 들어간것이 련대통신장교였던 저자의 앞이였습니다. 나를 체포하게 된 경위를 들은 괴뢰군장교놈은 별로 심문도 하지 않고 <머저리같은것!> 하면서 내게 다가들어 대번에 정신이 번쩍 들게 주먹질부터 하는데는 두눈에서 불똥이 튀여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더니 저를 어디 감금하라고 하는게 아니라 저 두 사병계집들을 시켜 당장 날 내다가 총살해치우라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일이 아주 너절하게 되였다고 생각하면서 캄캄한 밤에 사형장으로 끌려나가던 저는 값없이 죽고싶지 않아서 도중에 냅다 뛰기 시작했지요. 그때 저 두 녀자들이 서라고 소리소리치면서 뒤에 대고 마구 총을 쏘아대더군요. 그렇지만 제깐것들이 캄캄한 밤에 기를 쓰고 어둠속으로 뛰여가는 저를 맞춰낼 재간이 있습니까. 그래서 겨우 살아났지요.》

《그러니 그날 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이 바로 황동무겠소. 부대로무자로 있었댔다는 그 매부의 성은 마가였고…》

《아니, 사령동지가 그걸 어떻게 다?…》

《아는 수가 있지. 그럼 내 한가지 물어보겠는데 그날 밤의 괴뢰군 통신장교가 중위 아니였소?》

《예 중위였습니다.》

《그리고 동무가 이자 보다싶이 저 두 녀동무로 말하면 눈에 수건을 처매고도 어김없이 목표물을 찾아 맞히군 하는 유명한 녀사수들인데 그날 밤엔 어떻게 되여 그런 실수를 했는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소?》

《그… 글쎄말입니다.》

《잘 생각해보시오. 저들이 용서할수 없는 철천지원쑤인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날 밤 황동무의 생명을 구해서 무사히 내보내준 좋은 사람들일수도 있지 않을가?》

《예에?》

《내 말이 정 믿어지지 않으면 여기 불러다가 삼자대면을 시켜주지요.》

리현상사령의 긴급호출을 받은 세사람이 무기청소를 끝냈는지 서둘러 권총을 결합하여 가죽집에 넣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영문을 모르고 찾아오는 그들에게 리현상은 롱섞인 어조로 말을 했다.

《한가지 긴급<사태>가 생겨서 셋을 다 불렀습니다. 모두 우리 이 련락원동무를 알겠습니까?》

젊은 지휘관과 두 녀대원은 갑동이를 이내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인지 우리는 잘…》

《그럴겝니다.》 갑동이 야멸찬 웃음을 입가에 물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들 셋을 대번에 다 알아보았구만이라. 그래 아직도 생각나지 않소? 당신이 이 두 녀자를 시켜 나를 당장 내다가 총살하라던 그 잊을수 없는 캄캄한 밤의 일을 말이요?》

《아니 그러면 동무가 바로 우리가 찾고있는 그날 밤 연극의 주인공이였단 말이요? 이거 만나서 반갑습니다.》

갑동은 반기며 자기에게로 다가와 손을 잡으려는 상대를 쌀쌀한 눈길로 응시했다.

《나에게 다가서지 마시오. 나는 당신네들과는 절대로 벗이 될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렇다면 좋은데 아마 당신이 우리 련대 애국병사들과 련계를 맺고 그날 밤의 무기탈취를 도와준 마준철동무의 처남이지요?》

《어떻게 당신이 우리 매부의 이름까지?》

옆에 서있던 리현상이 끼여들었다.

《황동무, 인사하오. 지금 동무앞에 서있는 이 동지가 그날 밤 동무들에게 무기를 넘겨주도록 하고 살려까지 준 당시의 괴뢰군중위로서 려수, 순천군인폭동을 지휘했던 바로 그 김지희전투사령이요!》

《예? 그 유명해진 김지희전투사령말입니까?》

《그렇소!》

갑동은 너무나도 뜻밖인 사실앞에서 이내 말도 못하였다.

《… 야 그런것도 모르고 나는 생명의 은인인 김지희동지를 보고 당장에 보복하려 했댔으니 용서하십시오.》

《황동무!》

《전투사령동지!》

두 사나이는 악수를 뛰여넘어 와락 껴안고 뜨거운 동지적인 포옹으로 짧고도 격렬한 회포를 나누었다. 그것은 괴뢰군복을 입고있었던 때의 인민들과 친구들, 동지들에게서 어찌할수없이 받지 않으면 안되였던 가슴쓰린 억울한 오해가 일순에 풀리는 순간이였으니 이 감격적인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고 섰는 두 녀동무, 리옥순이와 문복순이의 눈가에도 부드럽고도 리해심어린 미소가 비껴있었다.
 

3

 

당시에 경남의 각 기관들과 호위대의 부서들은 대원사골, 조개골에 주로 거점을 정하고있었으며 김지희병단은 주로 거기서 가까운 백무동고을을 거점으로 삼아 버젓이 내려앉아있었다. 하기는 소총들과 수류탄정도가 아니라 중경기들을 비롯한 중무기들로 무장하고 대포들까지 마차에 끌고다니는 정도의 강력한 무력의 전투병단이고보면 그쯤의 위세를 뽐낼만도 하였던것이다. 특히 김지희가 전투지휘를 하고있는 병단으로 말하면 지난 10월의 려수애국병사봉기로서 일정한 전투세례를 거치였을뿐아니라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가 한번 등을 돌려대였던 모든것에로 되돌아갈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해버린 단호한 군인집단으로서 우국지심과 인민의 원쑤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 뜨거운 통일열망으로 가득 장약되여있는 대오였다.

지리산빨찌산과 남조선혁명을 무장으로 더욱 강화해주었던 이 새로운 전투병단의 산생은 실로 축복해줄만 한 일이였다. 그것은 모순과 갈등의 첨예한 폭발을 안고있던 남조선의 당해 시대의 산물이요, 불타는 항쟁의 섬, 제주도인민들에 대한 미제와 괴뢰도당들의 살인적인 폭압이 만들어낸 불가항력적인 소산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이 대원사지구의 유격근거지에 들어와 얼마동안 휴식도 하면서 전투병단은 군정훈련도 진행하여 군력도 보강하고 규률도 더 엄격히 세워 정규적인 면모로 일신해나갔다. 지리산을 비롯하여 그 주변의 태백산, 백아산 각 산악지대의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군중지반을 리용하여 지방조직인민들과의 뉴대도 강화하였다. 경남 각 지방 야산대들이 봉화와 삐라선전에 소규모적인 유격전을 배합하는데 당황망조해하던 적들은 중무기로 무장한 정규화된 이 부대가 입산하여 지방 각급 기관들과 유격대와의 련합이 강화되자 마치 고양이앞의 쥐, 범앞의 토끼처럼 벌벌 떨었다.

현재 병단사령부에서는 보다 단합이 되고 전투사기들이 매우 높아진 부대의 기세를 부쩍 돋구어가지고 괴뢰군경놈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기 위한 주동적인 새 작전을 준비하고있는중이였다.

그해도 저물녘에 든 12월 중순 어느날 짧아지는 겨울해가 또 하루 동삼추위에 자기의 열과 빛을 다 빼앗기고 온기없는 몸을 으시시 떨면서 저기 서산으로 서둘러 넘어가고있는 저녁무렵이였다.

그해를 그저 지내보내지 않으려는 결심인 김지희전투사령의 방에서는 참모장 홍순석을 비롯한 참모성원들이 모여앉아 리현상사령의 참가하에 작전회의를 하고있었다. 이제는 작전회의를 시작한지도 시간이 이슥히 지나 결속전야의 심중한 침묵만이 서려있는듯 싶은 방안이다. 그 방안에 겨울안개처럼 잠뿍 낀 담배연기만이 아직 채 식지 않은 작전론의의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서리여있는상싶었다.

지금 전투사령은 이젠 그만했으면 된것 같은데도 약간 서툴게 그려진 지리산의 군사지도에서 무엇이 더 나올가 하고 그냥 들여다보는 형상이다.

그가 모든 있을수 있는 전투정황들을 다시금 추리, 판단, 분석해보면서 무엇을 지궂게 타산해보고 또 따져보고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였다.

김지희는 남들과는 적게 말하고 보다 자신과만 많이 말하는 사람, 언제나 자기 말만 말이라고 하지 않으며 귀로써가 아니라 그 영민스러운 눈으로 먼저 남의 말을 들을줄 아는 사람이였다. 이제 겨우 스물두살, 그 나이에 있을수 있는 지리산의 한다하는 맹장으로서의 우월감과 거만, 우쭐거림을 몰랐으며 제가 똑 제일이라는 식으로 남을 깔보는 일이 없이 남에게서 취하여 자기의 부족을 보충할줄 아는 진짜로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는 짬만 있으면 이책저책 가리지 않고 다 들여다보았다. 그래서였던지 동무들과 부하성원들앞에서 하는 그의 말과 간단간단한 연설에는 반복이란 거의 없었으며 비약과 함축이 심하고 매번 새로 들을 소리가 있었다.

그는 자기를 따라 반변하여 애국의 편으로 넘어온 병사들의 생명과 운명을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을 자각하고있는, 그래서 그들에게 전투구령만은 힘있게 내려도 호령은 할줄 모르는 인민적품성의 지휘관이였다.

그는 대원들앞에서 이렇게 말하군 했다.

《… 앞으로 내가 만일 정의와 인민을 위해 싸우는 그런 혁명군대의 훌륭한 그 지휘관들을 애써 닮으려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지난날 괴뢰군장교의 냄새를 피우거나 거들먹거리면서 그대들을 모욕하는것을 보기만 하면 그 누구도 절대로 용서치 마시오.

그리고 나는 나의 조국과 인민, 당신들의 부모처자들앞에서 그대들의 생명을 책임진 상관이라는것만은 공언하는바요. 그러므로 내가 혹시 전투지휘를 잘못하여 싸움에서 지게 만들어 동지들의 머리우에 패자의 수치를 들씌우게 한다면, 그때는 일없습니다. 누구든지 사정두지 말고 나를 쏘시오!》
그러한 그이기에 정찰도 남을 시키지 않고 제일 믿는 대원들 두세명을 데리고 자기가 직접 나가서 해오군 했다. 그러한 관계로 그의 과학성이 담보된 작전과 싸움은 아직 실패를 몰랐다. 싸움군인 김지희는 시간만 있으면 동무들과 머리를 모으고 승산이 확실한 새 작전을 짜기에 골몰하군 했으며 어린 대원들과 녀대원들의 말과 의견도 귀담아들을줄 알았다.

일단 전쟁마당에 나서면 그는 언제나 싸움의 선봉에 나서는것으로써 전투사령으로서의 권위와 지휘권을 획득했다. 전투중에도 여느 사람들처럼 절대로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일줄 모르는 별나은 사람이 그였다. 전투마당에서 전사들이 지휘관을 바라본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그이기에 총알이 비발치듯 날아온다고 하여 전방을 똑바로 내다보지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잔뜩 꼬부리고 싸움을 지휘하는 그런 자신을 대원들의 눈에 띄이게 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싸움은 무조건 이겨놓고 봐야 한다!》고 말하기를 즐기군 하는 그, 이기는 싸움만을 하자니 지금 입산해서 처음으로 계획하는 장판터전투작전도앞에서 그리도 신중성을 기하고있는것이리라.

지금 그의 옆에는 이 부대의 최고상관으로서 아래사람들, 특히 두뇌가 명석하고 결단력있으면서도 항상 도는 넘지 않는 젊은 지휘관인 김지희를 믿고 전투지휘는 그에게 맡긴 리현상이 동석하고있었다. 그는 지금도 마치 자기는 이 작전과는 무관한 사람 같은 무표정으로 한손에 아이주먹만 한 쑥뿌리물주리를 들고서 늘 그러기를 잘하는것처럼 두눈을 꾹 감고 의자에 기대여앉아서는 천천히 다리만을 조용히 흔들거리고있었다. 그의 그 사색적인 다리의 흔들림이 점차 세여지면서 거기에 다치워 같이 떠는 탁자우의 작전지도가 불안한 진동을 하고 거기에 누구인가가 아까 떨군 흰 담배재가 조금씩 어디론가 이동해가는것을 보면서 참모성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긴장되는것을 어찌할수 없어했다.

아니나다를가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있는것 같던 리사령이 눈을 뜨더니 보기 좋게 다부진 몸을 천천히 앞으로 숙여 남의것일수가 없는 그 작전지도를 두팔로 그러안다싶이 하면서 년장자, 중늙은이다운 로파심어린 까박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게 그렇게 해서 되겠소? 동무들은 흥분들 해서 그러는것 같은데 나는 왜서 그런지 그 흥분이 전혀 옮아오지를 않는구만…》, 《그렇다?… 그럼 가령 적들이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있는 그 눈함정들에 걸려들지 않고 강력한 력량으로 반돌격해 나오거나 예기치 않았던 적의 후원부대가 갑자기 나타나 역포위하게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한다?》, 《허, 옛 병서에도 <경적필패>라 했으니 적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하지만 허술히 보지도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항상 우리만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서야 안되지요.》, 《글쎄 정 그렇다면 난 모르겠소다. 그렇지만 내가 만일 전사라면 그처럼 허술하게 짜진 위험한 작전에는 머리를 들여밀고 죽을둥살둥 모르고 싸우지는 못하겠당이…》

병단의 제일 높은 직속장관이 그런 작전에는 안 참가하겠다니 그것도 야단은 야단이였다.

어떤 좀 리해가 부족하고 성급한 친구들은 더러 속으로 투덜거리기도 했다.

(하, 이거 눈을 감고 옆에 앉아서 조는지 마는지 작전에는 아무 보탬도 주지 않고있다가도 젊은 참모들이 힘모아 그래도 작전이라고 하나 세워놓으면 늘쌍 까박만 붙이니 원…)

그러나 김지희만은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늘 옆에서 우정 까박을 들이대고 지어는 젊은 참모들이 모욕을 느끼게까지 만들어 일종의 반발까지 불러일으키지만 분발심을 가지고 작전의 허실을 스스로 찾아내고 수정보충해나가도록 만드는 리현상의 그 수법, 그 까다로운 시험에서 통과된 작전의 결과가 좋을 때에 가서는 《보우, 내 그때 그러지 않습데? 그저 내 하라는대로만 하면 랑패없당이.》 하는 식으로 자기의 그 《리자》를 전혀 붙이지 않고 모든 성과를 다 젊은 참모일군들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뒤에 척 뒤짐을 지고 서서 만족히 웃기만 하는 이 백전로장을 잘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김지희에게 있어서 리현상은 작전계획의 최종합의를 받아야 하는 웃사람만이 아닌 자기들이 한번 세운 작전계획을 그속에 집어넣어 통과되는가 안되는가를 보는 하나의 《검증기》와도 같이 없어서는 안될 상당한 필요존재, 존경할만 한 선배였고 귀중한 동지였다.

《자, 그러면 동지들의 모든 의견을 절대적으로 참작한 기초우에서 장판터전투계획에 대한 저로서의 최종결심을 내놓겠습니다.…》

김지희의 발표가 끝나자 리현상은 아까와는 달리 매우 만족해하는 표정이 되였다.

《음- 그건 뭐이 물건짝이 되겠구먼!》

김지희가 어줍게 웃어보였다.

《물건이 될것 같습니까!》 김지희도 기쁨을 숨기지 못해한다.

《잘하면 그 씨름에서 소를, 그것도 큰 황소 한마리를 잡아탈수 있을것 같소다. 내가 더러 까박을 붙인 보람이 있구만 그래. 허허.》 리현상이 흥분해서 말을 이었다.

《그 전투에 딱 알맞는 가장 리상적인 작전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다는것, 바로 그 하나인 절대를 발견해내는것이 작전적구상인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해내자면 입술이 다 부르터서 터져나가는것과 같은 그런 피나는 탐구적사색이 필요한것입니다. 전쟁은 비단 총과 총, 대포와 대포와의 치렬한 대결만이 아닙니다. 전쟁은 무기와 무기의 싸움이기 전에 먼저 사상정신의 대결전, 의지와 의지의 싸움이고 두뇌와 두뇌의 격전, 결국은 심각하고도 치렬한 사색과 사색의 총화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누가 싸움에서 머리를 더 잘 쓰는가? 이것이 중요하지요. 그러기에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언제나 백두산에서 유격전을 벌리실 때 적들은 인해전술을 쓴다면 우리는 머리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답니다.》

전투작전에서 오직 하나인 그 절대를 피나는 사색으로 탐구해내야 한다는 리현상의 그 말이 김지희를 비롯한 참모부성원들에게 주는 인식교양적가치는 실로 큰것이였다.

《자, 지리산의 젊은 작전가들! 이제는 그 절대인 작전적방침을 세웠으니 한번 우리 전투병단의 본때를, 우리 지리산의 본때를 보입시다!》 리사령의 굳은 결심이 한손에 꽉 틀어잡은 그 커다란 담배물주리 하나에 다 굳어져있는것 같아 참모들은 기분좋게 호응했다.

《알겠습니다. 사령동지!》

지휘관들의 일치한 대답은 힘찼다.

《그럼 사령동지! 전투분담을 하기 전에 구체적인 현지정찰을 조직하려고 합니다.》

《가만!》 리사령이 손을 들어 김지희의 그 말이 일단 입에서 나와 공기중에서 누에실처럼 굳어지기 전에 제어하였다.

《말을 막아서 안됐는데요. 이번에도 전투사령동지가 그 두 녀성동무들을 데리고 예비정찰해온 자료를 다시 직접 확인하러 나가야겠습니까?》

《예, 아무래도 그렇게 해야 할것 같습니다.》

《아니 이번부터는 그렇게 못합니다. 나는 사령으로서 절대로 전투사령을 하나의 정찰병으로 내보낼수는 없소. 동지들을, 자기의 전사들을 믿어야지요.》

《저도 압니다. 제가 대원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번 작전이 그 어떤 불의의 정황에 부닥치더라도 갈팡질팡하지 않도록 거기에 전투지휘관인 저의 똑똑한 눈을 먼저 달아주자는겁니다. 사령동지! 저는 적과의 싸움에서 대승을 하였다고 할 때 그것은 병사대중들이 이긴것이지만 싸움에서 크게 패하였다고 할 때에는 그 전투를 지휘한 장군이나 대장들이 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이기는 빨찌산대장이 되기 위해 이번에도 구체적인 정찰은 제가 직접 해와야겠습니다.》

《싸움에서 패했을적에는 그 전투를 지휘한 대장이 진것으로 된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싸우는것은 좋은데… 어떻습니까. 이 문제에 대한 다른 동지들의 견해는?》 리현상이 돌아보며 물었다.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하였다.

《우리도 그건 반대합니다.》, 《리현상선생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 역시 하나의 소총명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전투사령이 늘쌍 정찰을 나갈 때에도 그 두 녀성동무들을 데리고 다니고있는데…》

머리를 좀 숙이고 앉아 가만히 듣고있던 김지희가 그 거슬리는 마지막사람의 말에는 신경이 좀 살아나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자 말한게 누굽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런데서 한번 듣고싶었던 말인데 의견을 공개해주시오.》

《이건 저의 의견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말인디…》

《동무의 말을 하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제 말로 하겠습니다.》

제일 끝에 앉아있던 눈이 바로 배기고 똑똑해보이는 다부지게 생긴 젊은 참모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일어나서 두손으로 혁띠를 맨 군복상의깃을 바로잡는것으로써 군인다운 면모와 상급에 대한 례의, 좌석에 대한 존중을 표시하며 진심이 담긴 바른말을 했다.

《물론 저는 우리 병단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김지희전투사령과 전투속에서 맺어진 두 녀동무들과의 남다른 우정관계에 대하여서는 리해하고싶은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혹시는 그것이 우정관계를 넘어서는것이 아닌가 일부 사람들이 걱정하며 지켜보고있다고 할수 있는 때에 늘 똑같이 데리고다니면서 그것을 더욱 강조할 필요야 없지 않겠는가 하는거지요.》

《허, 내 그렇지 않아도 그런 소리가 돌가봐 단 둘이서, 이를테면 단수가 아니라 어디로 가나 항상 셋이서, 복수로 다니는겁니다.》

《그 복수인 셋이 더 문제로 되고있는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것까지 마저 다 말하시오.》

《그것까지야 제가 어떻게…》

《그렇다면 이번에는 참모동무의 말로가 아니라 어디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말해보시오.》

《하긴 그럴게 있습니까. 서로 동지간에 말이 났던김에… 제 전투사령동지한테 먼저 동지로서 사나이로서 묻겠습니다. 좀 뭣한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지희동지는 그 녀성동무들을 어떻게, 도대체 사랑하는겁니까, 어떻게 하는겁니까?》

《사랑하오!》

《두 녀자를 다 말입니까?》

《그렇소, 둘을 다 골고루…》

《아니?》 질문을 했던 젊은 참모는 그의 대답이 너무나도 솔직하고 로골적인것 같아서 입을 딱 벌리고말았다. 《우리 민주사회에서는 한 남자가 두 녀성을 가까이 데리고있을수 없다는거야 전투사령동지두?》

《알지요.》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너무나도 놀라운 동지들 그 세사람의 특이한 우정과 사랑에 그 어떤 다른 깊은 사랑의 철학이라도 있지 않는지 그것이 알고싶어지누만요.》

《사랑의 철학이요? 사랑도 꼭 자기 식의 특별한 철학을 가지고있어야 하는것인지는 나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모르겠소. 그렇지만 진실하고 참된 동지적우정과 사랑으로 하여 더욱 강하여진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의 정신과 혁명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가져오는 그런 아름답고도 숭고한 우정과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뭐라고 명명해야 할런지요.》

《거야 물론… 그렇지만…》

《알만 합니다. 지금 일부 동지들은 나와 그 두 녀성동무, 우리 셋사이에 그 어떤 비정상적인 관계라도 설정되여 외국의 련애소설에서나 나오는 부르죠아삼각련애와 같은 극적인 사건이라도 생기지 않을가 우려되여 그러는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는 절대로 안심해도 되겠습니다. 나는 사랑을 앞으로 가진다고 하여도 어느쪽 하나만을 취하게 될테니까요.》

《아, 그렇다면 좋습니다. 여기는 빨찌산이니 그렇지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맘속으로 사랑하지도 못하겠습니까. 나는 우정과 사랑 그자체를 반대하는건 아닙니다. 그래 전투사령동지는 오늘 보니 사랑앞에서 매우 솔직하고 대담한분 같은데 옥순동무와 복순동무중에 진짜 애인이 누굽니까. 누구를 더 사랑합니까?》

그 물음에는 대답이 막히는가싶은 김지희, 잠시동안의 무거운 침묵…

《…그 …그에 대해서는 아까 이미 말한것 같은데요. 지금은 두 동무가 다같이 내가 믿고 아끼는 전우들일따름입니다. 앞으로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통일혁명을 승리한 그날에 가서 나도 사랑을 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는 사나이로서의 권리를 가지게 된다면 반드시 지리산에서 전우로 함께 싸우던 녀성동무들중에서 배우자를 고르겠다는것과 굳이 이자 말한 두 녀동무들중 한 동무를 선택해야만 되는 경우 그 녀성의 선택, 사랑의 선택에 대해서는 그때에 가서 볼 일이고… 내가 다만 여기서 한가지 명백히 하여둘것은 우리 동무들사이의 우정과 사랑이 투쟁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고 혁명에 리익이 되는 그런 아름답고 건전하고 고상한 인간감정이라고 한다면 사랑의 열매가 채 익기도 전에 어디에 뭐이 좀 있다 하면 대나무 도리깨를 들고나서서 그걸 말짱 다 타작을 해버릴 필요까지야 없지 않겠는가 하는거지요.》

《핫하하.》

김지희의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김지희의 모든것이 선명하고 명백한 말을 듣고 좀 멋적어진 젊은 참모가 얼굴이 벌개져서 말했다.

《저는 그저 부대의 규률과 생활질서, 전투사령으로서의 김지희동지의 권위에 조금이라도 손상을 주는것과 같은 일과 일부 사람들속에서 있을수 있는 오해를 미연에 막고싶은 심정에서 이야기해드린것이니까 조금이라도 참작이 되시면 좋고 뭐… 그리 대단한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니까요.》

《좀 늦은감이 있기는 합니다마는 고맙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세사람이 함께 타고 가는 우정과 사랑의 그 전투렬차는 이미 멈춰세울수 있는 역도 없는 지리산의 보이지 않는 선로를 따라 밀림속을 달리고있으니 앞으로 어디 가서 정차를 하게 될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소.》

옆에 가만히 앉아서 묵묵히 듣고있던 리현상이 우선우선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하는것이였다.

《허. 이거 작전회의를 하다가 갑자기 사랑의 철학이 튀여나오는 바람에… 젊었으니 사랑도 해야지. 그러나 지금은 선이 투쟁과 통일이고 후가 행복과 사랑이라는걸 명심하고서 억울한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비판이란 없으니 좀 억울한것이 있더라도 전투사령답게 가까운 동지들이 모처럼 어렵게 해준 충고를 앞으로 참작은 하시오.》

《알겠습니다. 사령동지!》

《좋소, 고치면 발전이요!》

《핫하하!》

전투사령의 말에 방안에는 때아닌 웃음의 선풍이 일었다.

작전모임이 일단 결속되고 간단한 다른 포치사업이 진행되고있는 이 시각, 밖에서는 두 녀성대원이 똑같은 전투복장에 똑같은 권총을 옆구리에 차고 주위를 경계하며 지휘부앞의 눈길을 다지고있었다. 그들로 말한다면 방금전까지 지휘부성원들의 심상치 않은 론의에 올랐던 바로 그 문제의 두 녀주인공들이였다. 이름은 진짜 본명인지 어느 누가 같이 지어준 애명인지 하나는 옥순이, 다른 하나는 복순이.

이름도 서로 엇비슷하고 키도 서로 비슷해서 그런 인상을 받는것인지 한 녀자는 몸이 날씬하다면 다른 녀자는 몸이 좀 실한 축이며 그 얼굴생김새와 미모 역시 저마끔 독특성들을 보여주고있건만 사람들은 누구나 그들을 똑 쌍둥이자매간처럼 보는것은 무엇때문인지 아무도 딱히는 몰랐다. 흔히 같은 옷에 같은 몸차림을 하고 한가마의 밥을 먹으며 한통의 크림을 나누어 바르면서 늘 같이 붙어다니군 하는 녀자들은 마치 금판대기와 은판대기를 오래동안 맞붙여두면 동화현상이 일어나는것처럼 무엇인가 점점 하나하나 같아지는것이나 아닌지. 아니 그래서만이 아니였다. 김지희의 애국적이고 량심적인 용단의 대담한 의거에 감동이 되고 비록 키는 작지만 그 속에 진짜의 큰 남자가 들어앉아있는 그 마음에 이끌리여 처녀의 몸으로 애국병사봉기에 참가했던 그날로부터 늘 같이 따라다니면서 서로를 닮고싶어하는 두 녀자였다. 애국충정과 깨끗한 민족정신과 사나이다운 기백을 가진 한 남성만이 아닌 싸우는 남녘의 모든 씩씩한 사나이들과 민족앞에 그 어떤 시기심을 이미 다 초월한 더없는 녀동무로 나선지 오랜 그들, 정말로 친자매가 되여 전우들앞에 더 고상하고 더 순결하고 더 의지롭고 더 성실하고 더 싸움 잘하고 더욱 훌륭한 자신들을 만들어 떳떳이 세우기 위해 늘 애쓰는 처녀들이였다. 그들은 실로 김지희전투사령이 선후를 따질수 없는 하나같이 미쁘고 사랑스러운 전우들이였고 지리산이 다 아는 빨찌산의 쌍둥이자매라고도 할수 있었다.

《… 복순언니, 이자 들었어요? 김지희전투사령에게 한 참모동지가 우리들중에서 누가 진짜 애인이며 솔직히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이가 못내 당황해하면서 바른 대답을 못하던것을요?》

《들었어.》

《그래 언니는 김지희동지가 동지들앞에서 그 물음에 대해서만은 이내 대답을 못한것이 무엇때문이였다고 생각되여요?》

《네가 먼저 말해봐. 옥순이.》

《언니가 먼저…》

《그럼 이번에 내가 물을게 대답해봐. 아주 솔직하게. 옥순동무는 실상 김지희동지가 우리 둘중에서 과연 누구를 더 마음속가까이에 두고 누구를 더 아끼고 좋아한다고 믿어요?》

《거야 물론 나보다 먼저 알기 시작했던 복순언니지요.》

《아니야, 그건 비록 후에 알았지만 옥순이 너지 뭐.》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나는 그저 김동지의 련락병일따름이예요. 련락병!》

《그렇다면 나는 그저 김동지의 부관겸 호위병일따름이야. 호위병!》

《만일 내가 남자라며는 언니와 같은 부관을 더 가까이 두겠어요. 억세고 강의한 녀자를요.》

《말은 잘해요. 그렇지만 너하고니 말이지 난 앞으로 혹시 유격대의 녀장군이였다는 소리를 들을런지는 몰라도 나야 뭐 녀자니? 남자들처럼 무뚝뚝하고 애교피울줄도 하나 모르는 그저 생긴대로이지.》

《그게 얼마나 좋아요. 생긴대로 진실하게 사는 녀자라는것이, 그렇지만 온실에서 자란 꽃과도 같이 그런 굳센 자연미도 가지지 못한 저야 뭐 하나나 볼게 있나요.》

《무슨 소리를 하니, 너야 적들까지도 <붉은 세타의 녀두목>이라고 부를 정도로 지리산의 젊은 <두목> 김지희전투사령의 제일가는 벗이 아니겠니. 그이에게 항시 그윽한 향기와 함께 마를줄 모르는 지혜의 샘, 사상정신의 샘을 안겨주는 지리산의 뛰여난 녀걸중의 하나인 이름난 리론가이고…》

《호호, 언니두 이젠 리론수준이 상당해져서 못하는 소리가 없군요.》

《나도 너희들과 레베르를 좀 맞추어서 그 비슷한 수준에서라도 놀아야 할게 아니냐.》

《난 복순동지가 너희들 너희들 하면서 그런 식으로 말하는건 정 싫어. 우리 그러지 말고요. 아까 본인도 우리를 다 동일한 거리의 위치에 놓고 말한것처럼 이제부터는 말이지요, 우리는 한 산매에게 달린 두개의 꼭같은 날개처럼 생각하는게 어때요?》

《우리를 한 산매의 몸에 달린 두개의 꼭같은 날개로 생각하잔 말이지?》

《그럼요.》

《아이, 어쩜 옥순이는 그런 신통한 비유까지 다 생각해냈어?》

《달리는 될수 없는 우리의 깨끗한 우정과 동지애가 그런 생각을 낳은거예요.》

《그렇단 말이지?! 넌 정말이지…》 그의 말에 감동된 복순이는 자기 녀동무의 한팔을 다정히 꼭 끼면서 그 고마운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정답게 흔들며 말했다. 《아이 요건, 정말 막 고와죽겠어!》

《언니는 밉구?》

《호, 그런데 우리 두 날개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혹시 상하거나 부러지게 되며는 그 매는 저 하늘에서 떨어지게 되겠구나?》

《그럴지도 몰라요.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제 몸과 마음을 잘 건사하면서 그 오른쪽날개, 왼쪽날개의 구실을 잘해야지요.》

《그래! 옥순동무, 내 오늘 같은 녀자로서 솔직히 말하는데 김지희동지는 비록 나이는 많지 않지만 혁명이 가져다준 조숙성과 자기의 투쟁공적으로 그것을 다 보충하고도 남는 그런 사나이중의 사나이로서 정말이지 매혹을 느낄만 한 남자고 우리에겐 다같이 귀중한 전우이고 동지야. 그렇지만 난 처음 옥순동무가 우리 우정선의 반경안으로 들어서려고 했을 때 겉으로는 표현 안했지만 좀 싫어서 속으로는 못내 질투 비슷한걸 느꼈댔지.》

《그런데 지금은요?》

《질투도 대상이 될 때에 질투를 느끼게 되는거야. 일상 생활에서도 사람들 호상간에 상대가 자기보다 무엇인가 못한 점도 있지만 다른 모든데서 자기보다 훨씬 우월하다는것을 느끼군 할 때가 있지요. 그런 경우 인간이 되여먹은 사람은 그러지 않지만 어리석고 야심이 있는자들은 이내 시기질투하면서 그의 체모를 어떻게 하든지 깎아내리려고 부질없이 굴다가 적수로 만들어버리는 례가 종종 생기군 하지. 하지만 난 함께 투쟁에 참가하여 옥순동무를 깊이 알게 되면서 병단전투사령의 중책을 지닌 김지희와 같은 좋은 동지의 옆에는 나보다 더 아름답고 더 녀성적이며 더 훌륭한 녀동무가 서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거야. 난 하나도 시기하지 않아요. 김동지에게 좋은 동무들이 하나라도 더 많아지면 좋은거지. 그러나 옥순동무, 내가 이렇게 아량을 베푼다고 해서 영 마음을 놓아서는 안돼요. 호호… 옥순동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질투하게 될런지도 모르니까… 호호호.》

《워메, 누구를요?》

《나한테서 리옥순이랑 좋은 동무들을 다 빼앗아가는것만 같은 김지희동지에게 종종 질투를 느끼군 하지 뭐?》

《호호, 그건 참 별난 질투군요. 그러면 어디 한번 결투라도 신청해보지요?》

《호, 내가 무슨 질투의 화신인 오쎌로라고 데스테모나를 뺏기지 않겠다고 결투까지 청하고말고 하겠어. 필요없어요. 다만 나 문복순인 지금 이 순간은 물론 앞으로도 신성한 통일혁명의 철저한 수호자가 되고 또 동무들의 그 전투적인 우정과 동지적인 사랑을 굳건히 지켜주는 참된 동지, 진실한 벗이 되려고 해요.》

《고마워요. 문동지! 우리 다같이 빨찌산의 녀전사들로서 장군님과 조국을 충성으로 받들어나가고 나아가서 우리 지휘관들과 동지들을 위하는데서 서로 뒤지지 말자요.》

《그래그래. 장군님을 모르는 전사는 자기 지휘관도 모르며 자기 지휘관을 옳게 섬기지 못하는 대원들은 나아가서 장군님과 조국도 잘 받들어나갈수 없다고 생각해!》

《그것 참 좋은 말을 했어요. 복순동지!》

《옥순동지!》

두 녀동무는 어린 소녀시절처럼 서로 손을 맞잡고 순결한 동지애가 느껴지는 뜨거운 악수를 하며 우정을 더 깊이 하였다.
 

4
 

장판터싸움은 14련대가 전투병단으로 재편성되여 입산한 후 면밀한 작전밑에 1948년 12월 중순에 진행한 지리산에서의 첫 전투였다.

이 장판터는 왜 그렇게 이름 붙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청군 삼장면에 있었다. 산청은 인민들의 혁명적각성이 높고 투쟁의 기세가 높았던 고장이였다. 그때 당시 야산유격대는 정복도 착용하지 못하고 솜옷에 합바지에다 각반을 치고 싸워 일명 《합바지부대》라고 했다. 전투성원들가운데는 일제때 유도, 검도로 명성이 높았던 산청의 민영식이며 함양의 하준수, 하동의 심상태, 거창의 김명석, 합천의 박충진 등 사상정신적으로 준비된 동지들이 망라되여있었다. 그렇지만 인원도 수십명정도밖에 안되는데다가 무기라고는 《38식》, 《44식》 몇정이 있을뿐이였다. 장판터싸움의 목적은 전투병단의 위력을 시위하면서 적들의 동태와 력량도 타진하고 유격구성원들의 투쟁사기도 부쩍 높여주는 한편 무기를 획득해서 호위대와 야산대를 무장시키자는데 있었다.

장판터싸움 전날 밤에 남조선도처에서 동시에 봉화투쟁을 벌려 적들을 혼란시키게 했다. 한편 유격대는 조선인민혁명군의 가장 대표적인 유격전법의 하나였던 매복전,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빠질 곳이 없는 천라지망(포위망 함정이라는 뜻) 라와전법으로 철통같은 매복진을 쳐놓았다. 그리고 그에 기초하여 작전에 예견된대로 이튿날 새벽에 인민들 즉 우리 조직원들을 시켜서 수적으로 많은 대부대가 온것처럼 눈우에 발자취를 만들어놓았다.

인민들의 통고에 의하면 산청과 덕산의 경찰들이 빨찌산들이 무슨 총을 가지고있더냐 묻기에 총 이름은 모르겠지만 개등어리 같은것을 메고있고 총구멍이 둘인 별난 기관총 같은것도 있더라, 어떤 옷들을 입었는가 묻기에 군복 같더라고 했더니 놈들은 대뜸 김지희의 부대인줄 알고 떨더라는것이였다.

장판터전투의 첫시작은 김지희의 병단전투원들이 인민들의 정보를 받고 중산리입구에 매복하고있다가 다음날 오후 1시에 1개 대대병력이 오는것을 전멸시킨 성과적인 전투부터였다. 첫 싸움에서 많은 무기를 로획하여 입산청원 조직원들과 일반청년들, 녀성들을 수많이 유격대에 받아들였으며 목적한대로 호위대를 완전히 무장시키였다.

눈덮인 지리산골짝마다를 전투승리를 축하하여 벌린 오락회의 웃음소리가 들었다놓았으며 그 설한풍속에서도 봄의 훈기가 넘쳐흐르는것 같았다.

12월 19일 적들이 죽은 시체들을 가져가고나서는 함양, 거창의 개들까지 《동기토벌》에 출동하였으며 제일 악질인 마산의 《국군》 15련대가 동원된다는 정보가 날아들었다.

그에 앞서 경찰대부대가 들이닥친것을 매복해있다가 미리 파놓았던 눈함정들에 몰아넣어 허리를 끊어 토막쳐놓고 족쳐댔다.

한참 싸움이 벌어지고있는중에 리현상이 예견했던대로 마산 15련대가 도착하였는데 눈이 앞을 분간해낼수 없을 정도로 내려서 그랬던지 포위를 당하고있는 수백명 자기네편들을 빨찌산들이라고 오인을 했는지 거기다 대고 화력을 총집중하였다.

그 틈을 타서 인민유격대는 지리산 구래봉을 바라고 빨찌산의 노래까지 부르면서 유유히 빠져나왔었다. 적들은 자기들끼리 싸워서 수많이 죽었다.

장판터싸움후 적들은 룡산 19련대를 산청읍에다가 본부를 두고 기백산과 경남북부를 담당케 하고 남원 3련대는 산청군 덕산에다가 본부를 두고 하동, 구례, 남원을 빨찌산《토벌》의 기본부대로 설정하였다. 장판터싸움에 련이어 벌린것이 산청군경찰서습격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리옥순이와 문복순이 한몫 단단히 하였다.

여전히 지리산의 겨울은 눈이라고 앞을 보지 못할 정도로 주먹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리는 그날 아침 그들은 병단전투원들과 함께 대원사골을 거쳐 산청군 평촌부락에 도착하였다. 거기 숯, 목재, 목기 등의 적재장에서 자동차들을 있는대로 빌린 그들 습격조는 운전은 자기들이 하면서 백주에 일사천리격으로 산청군경찰서에 당도하였다. 차에서 제일먼저 뛰여내린 괴뢰군장교복차림의 두 녀자군대가 어벙벙해 서있는 정문경비병에게로 무작정 다가들었다.

《야 경비병, 너는 인사할줄도 몰라? 국군녀장교도 몰라보구 말야.》 복순이의 첫 호통질이였다. 《우리는 덕산에 있는 3련대인데 지리산공비<토벌> 갔다오는 길이야. 나는 련대장님의 녀부관인데 즉시 경찰서에 있는 인원전부를 마당에 모이게 해. 싸게싸게!》

《예, 예, 알겠구만이라 알겠구만이라. 부관님!》

경찰서장이하 마당에 다 줄레줄레 나와서 모인 앞에서 교만을 피워보이던 복순이 괴뢰군중위의 계급장을 단 옥순에게로 돌아서며 멋지게 경례를 붙였다.

《중위님, 다 나와서 모인것 같습니다.》

옥순이 차거운 기상으로 검은 안경을 코에 건채 경찰들앞에 나섰다.

《경찰서장이 나왔는가?》

《예, 여기 있습니다.》

《그대가 군경찰서장인가? 그간 공비들의 성화에 지시리들고 좀 겉늙은것 같구만요…》

《그렇습니다, 장교님! 그런데 저… 뉘신지요?》

《이 견장을 보면 돼, 건방진것들, 나는 비밀한 특별임무수행중인 중위란 말야, <국방군> 중위! 다른것이 아니고 지리산에 <토벌> 갔다오는 3련대 일부 성원들의 식사준비를 당장 해야겠어. 그리고 공비들과 다 내통하고있는 이 지구 경찰들은 하나도 믿을것들이 못돼. 그러니 문소위!》

《예!》

《이안의 경찰들을 우리가 체류하는 기간만 다 무장해제시켜!》

《알겠습니다. 중위님의 명령대로 집행하겠습니다.》

복순은 역시 괴뢰군복장차림인 병단의 남동무들에게 지시했다.

《신속히 전부 무장해제시킬것!》

《예잇-》

리옥순은 자기네 성원들이 경찰전원의 무장을 해제하는것을 보고야 경찰서장을 앞세우고 그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내 그를 따라 들어온 문복순이 경찰서장의 앞에도 손을 내밀었다.

《경찰서장님, 그 당신의 권총도 건사해드릴테니 이리 내놓으시오.》

《예? 저의 총까지두 말입니껴? 이건 너무하지?》

《뭐가 너무해? 내놓으라면 일단 내놓을것이지.》

무엇을 좀 낌새챘는지 경찰서장놈이 수상쩍게 보이는 두 녀자장교들앞에 불시에 권총을 빼들려고 할 때 순간 복순의 손칼에 맞아 놈의 손에서 권총이 땅바닥에 뚝 떨어졌다. 이내 그것을 집어든 복순이가 입가에 가소로운 웃음을 지었다.

《군경찰서장님! 당신은 빨찌산한테 체포됐소.》

《아 깜빡 속았구나!》

《당신 혹시 <붉은 세타의 녀두목>이라는 소리 들어본적이 있어요?》

《예? 그 악명을 떨친 유명한 <붉은 세타의 녀두목>을 모르고있을 이 지구 경찰서장이 어디에?》

《소개해드리겠어요. 지금 당신앞에 서있는 이분이 바로 그 <붉은 세타의 녀두목>이요!》

《뭣이라고요?!》

그 소리에 경찰서장놈은 눈이 올롱해졌다.

《경찰서장, 전화로 속히 거창의 19련대를 대라구 해요!》

경찰서장놈은 총구가 무섭고 기막힌 미인인 《녀두목》의 당당한 기상에 기가 눌리워 두 녀자가 시키는대로 순순히 말을 들었다.

《거창의 19련대입니까? 나넌 산청군 경찰서장입니다. 지금 3련대가 공비들과의 교전끝에 수많은 장교와 사병들이 전사하고 살아남은 성원들이 더러 여기에 와있는데요 급히 후원을 바란다고 합니다. 예예, 그럼 믿고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경찰서장놈의 직접적인 전화를 통하여 괴뢰 19련대의 후원까지 철저히 약속받아놓은 옥순이와 복순은 남성전투원들로 거창쪽에서 산청분서로 오는 길목마다에 2중3중의 물샐틈없는 매복을 해놓고 기다렸다.

그날 오후에야 거창쪽에서 행군해오던 19련대 놈들이 무슨 이상한 기미라도 차렸는지 도중에서 일단 대렬을 멈추어세우고 높은 장교인듯 한 놈이 망원경으로 이쪽을 주시해보고있었다. 이제 먼저 척후대라도 보내오면 일사는 글러지는것이다.

이때 리옥순이의 웃음띤 선창으로 병단성원들이 모두가 잘 알고있는 괴뢰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문복순은 앞에 나서서 두손으로 그 노래의 지휘까지 하였다. 그들이 부르는 치졸한 그 군가는 적들을 죽음의 함정으로 불러들이는 마술로 되였다.

아니나다를가 걸음을 멈칫거리던 19련대 놈들이 그 괴뢰군가의 소리를 듣고야 안심이 된듯 죽을길도 모르고 다시 행군을 재촉해 오는것이였다.

드디여 곧 드세찬 매복전의 집중화력이 놈들을 무데기로 쓸어눕히기 시작했다. 두 녀대원은 전투원들의 앞장에 서서 목숨을 내걸고 용감히 싸웠다.

치렬한 전투정황속에서도 문복순은 자기의 귀중한 전우인 리옥순에 대한 호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옥순이의 발치에 와서 떨어진 수류탄도 손으로 급히 쥐여서는 적진에 다시 던져 놈들에게 복수의 죽음을 주었다. 그에 고무된 옥순이는 우에 입었던 괴뢰군군복까지 벗어 내던지고 세타옷바람으로 량손에 권총을 하나씩 갈라쥐고 깊은 함정속에 빠져 허우적이고있는 놈들을 련속 쏘아눕히군 했다.

어디선가 자기들앞에 갑자기 두자루의 권총을 들고 나타난 붉은 세타의 무서운 녀자를 본 괴뢰군놈들은 《붉은 세타의 녀두목이다-》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혼비백산 삼십륙계 줄행랑을 놓았다.
이 산청군경찰서 습격전투가 빛나는 승리를 달성한 후 유격대가 오늘은 전남, 유치, 장흥, 대덕전투, 래일은 하동, 악양전투, 모레에는 무주, 설천면전투, 다음은 의령전투 등 그야말로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남에서 번쩍, 북에서 번쩍하는 바람에 적들은 한동안 지리산일대에 접근을 하지 못하였다.


5

 

어느날 갑동이 병단사령부에 도착하니 리현상사령이 직접 나와서 반가이 맞아주었다.

《아 우리 참대숲의 <갈범>이 이제야 나타났구만. 밤길에 수고많았겠소.》

《저희들이야 무슨 수고겠습니까. 그저 자꾸 걷기만 하면 되는디요.》

《자꾸 걷기만 하면 된다?! 허허, 여전하구만. 거 정말 선요원다운 대답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소. 사람 기다리기가 특히 선요원을 기다리기가 얼마나 베찬지 아오?》

《…》

갑동이 리현상에게 련락쪽지를 전하고 구두로써도 현지상황보고를 간단히 하자 어서 방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갑동이 전해준 련락쪽지를 펴서 읽어보는 리사령의 얼굴에는 마치 산정에 서서 밑에서 새까맣게 게바라올라오는 적 《토벌대》를 내려다볼 때와도 같은 그런 긴장한 빛이 어려있었다. 그는 그 쪽지편지가 담고있는 문제의 중요성과 절박성으로 보아 지체할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던지 즉시 전투사령의 방으로 가지고 갔다.

한참만에야 돌아온 그는 입가에 여유있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오다가 혹시 또 범을 만나지 않았소?》

《그렇지 않아도 저 아래 골짜기로 올라오다가 길옆의 바위에 앉아서 두눈에서 시퍼런 불똥을 뚝뚝 떨구는 놈을 하나 보았댔습니다.》

《허, 그래? 여기에 불범 한마리가 있으면서 우리의 식량을 많이 축내고있다오. 이젠 부대야전식당에 정식 급식인원으로 등록한셈인 놈인데 아주 비위때기가 두꺼운 작자야. 이자 방금전에도 통돼지 반지게를 물고갔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아마 <갈범>아저씨가 여기로 온다는 기별을 받고 그걸 가지고 인사라도 하자고 마중나간것 같구만. 하하하.》

리현상은 호탕하게 웃고나서 고쳐 물었다.

《그래 오는 도중에 다른 일은 없었소?》

갑동은 자기가 오면서 직접 목격하였던 사실을 보고했다. 《토벌군》놈들에 의하여 우리를 적극 지지성원하고 도와주던 아까운 산중리인민들이 사지를 찢기우고 짐승처럼 칼금까지 쳐져서 불에 탄채로 길가의 바위돌우에 올려놓여있던 끔찍한 광경을 본 그대로 이야기해주었다.

갑동에게서 그 소리를 들은 리사령은 몹시 가슴아파하면서 놈들이 우리 유격대와 인민들을 갈라놓으려고 별의별 못된 악랄한짓들을 다하고있다는것, 그럴수록 혈연으로 맺어진 인민과의 련계를 더욱 강화하는데 선요원들도 마음을 써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늘 우리 병단동무들에게도 인민들과의 련계를 특별히 중시할데 대하여 늘 당부하고있습니다.

인민은 우리의 힘이고 지혜이며 생명이라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서 배우며 인민에게 의거하고 인민을 발동시켜 싸워야 합니다. 하루밤 숙영하다가 자고 가버릴 고장이라 하여 인민들에게 함부로 부담을 끼치면 인민은 그런 사람들을 시끄럽게 여길수 있지요. 인민의 재물에 손을 대여 해를 끼치게 되면 그 후과는 더욱 치명적인것으로 될수 있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늘 인민을 친혈육처럼 사랑하게 되면 인민은 스스로 그런 사람들을 따르게 될것이며 그러한 군사는 틀림없이 백전백승하는 군대로 될것이라고 가르치시였다고 합니다.》

사령이 해준 그 뜻깊은 말은 일반유격대원들과도 또 달리 하루한시도 인민들을 떠나서는, 인민들의 협력과 방조를 받지 않고서는 활동은 고사하고 살아나갈수도 없는 선요원들에게 있어서 반드시 명심해두어야 할 가장 사활적인 문제였다.

《이번에 황동무가 거듭되는 실패에 악이 오른 적들이 대무력을 총동원하여가지고 우리를 감히 대원사근거지에서 <구축>해내고 여기에 지리산 <토벌사령부>를 새로 설치할 움직임을 보인다는 중요한 정보를 가져다준데 대하여서는 병단의 명의로 감사를 표하게 되오.》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번에 첫 련락을 가지고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우리 하동군 책임자인 심상태동지가 저에게 혁명은 그 무슨 평가를 바라고 하는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살아있을적의 칭찬에는 오히려 더 자신을 가다듬고 각성을 하고 반면에 누가 욕해줄 때 동지의 비판을 구할줄 알아야 한다고 일깨움을 주었댔답니다.》

《허허. 그때 동삼을 모르고 먹고 자다가 늦게 온데 대한 로영기부장동무의 비판에 기분이 좀 언짢았던것 같은데 혁명하는 사람이라고 왜 동지적인 칭찬이야 싫어하겠소. 잘못에 대하여 가장 엄격한것도 혁명이지만 그가 피로써 세운 공적에 대하여 가장 정확하고도 뜨거운 평가로 훈장없는 표창을 주는것도 오늘의 우리 혁명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

《이번에는 우리가 황동무의 공적을 특별히 평가해주고싶은 생각인데 뭐 제기할것이라던가 요구하고싶은것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하시오.》

《다른 평가는 바라지럴 않습니다마는 한가지 사령동지에게 요구하고싶은것은 있습니다. 저는 지금꺼정 경북도산하에 소속해있는 련락원노릇을 했지만 결국에는 알쭌히 한쪽 일만 맡아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음, 듣고보니 그것도 그렇구만. 비록 몸은 하나이지만 군의 련락원이자 도의 련락원이고 도의 선요원이자 동시에 우리 전투병단과 밀접한 련계가 있는 선요원이다 이 말 같은데…》

《옳구만이라요.》

《그래서 동무의 요구는?》

《물론 절대비밀이겠지만 이제 곧 대원사전투가 있게 되겠지요?》

《음, 놈들이 쳐들어온다는데 가만히 있을수야 없지.》

《그러면 선요원의 한사람인 저도 자신의 전투병단의 대원들과 똑같이 생각하신다면 말이지요, 저에게 꼭 무슨 평가를 주고싶으시면 이번에 예견되는 그 대원사전투에 저럴 꼭 한번만 참가시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게 다요, 요구가?》

《예, 더 다른건 없습니다.》

《아주 쉽고도 그 리행을 약속하기는 대단히 힘든 부탁이구만.》

《리현상선생님! 우리야 이미 구면으로 잘 아는 사이 아닙니껴? 어떻게 저의 소망얼…》

자리에서 일어나 거닐던 리사령은 걸음을 멈추더니 갑동이에게로 돌아서는것이였다.

《좋소. 어디 토론해봅시다.》
 

드디여 그날은 왔다.

남원괴뢰군 제3련대의 척후대로서 우선 한개 대대는 함양군 마천면 국민학교로 가고 다른 한개 대대는 대원사 절간으로 들어오고있다는 긴급통보를 받은 병단은 즉시 그에 반응하였다.

두개의 습격조로 나뉘여 한대는 리현상사령이 책임지고 참모장 홍순석이와 녀성정치일군인 리영애 외 30여명의 끌끌한 전투원들을 선발해가지고 마천국민학교로 먼저 출발했다.

여기서 갑동은 실로 놀라운 하나의 흥미있는 사실을 목격했다. 전투를 지휘하러 간다는 사람인 리현상사령은 마치 그 어느 경치좋은 산에 산책이라도 가듯이 겨울인데도 머리에는 흰 등산모 같은것을 쓰고서 목에는 명주목도리를 바람에 날리며 손에는 멋부려 단장(지팽이)까지 들고 나선것이다.

빨찌산의 전투적인 풍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안이 벙벙하게 만드는 모습이라 하겠다.

갑동이가 얼핏 보건대도 어디가 좀 잘못되기라도 해서 머리의 삥이 하나 빠져나간듯 했다.

그래도 오른쪽옆구리에 권총만은 잊지 않고 붙인 리사령의 그 독특한 전투행장은 자기는 그까짓 괴뢰군《토벌대》 같은건 맞씨름을 걸수 있는 정극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한갖 멸망하는것들의 만화로, 희극적인 대상으로밖에는 보지 않는다는 하나의 말없는 시사였다.

갑동이 보건대도 확실히 멋진 싸움군으로 태여난듯 싶은 리사령은 투쟁이 아무리 간고하고 정세가 대단히 엄중하다고 해도 끄떡없는 사람으로서 새 전투작전을 중량감있게 대하면서도 혁명을 힘들고 고된것으로, 두렵게만 대하는것이 아닌상싶었다. 확실히 그는 이 계급전쟁과 혁명을 드디여 그동안의 인내성있는 사색이 원쑤격멸의 총성이 되여 울려퍼지는 장쾌한 선언으로, 하나의 경쾌한 선률성과 률동을 가진 치렬하고도 거창한 운동으로 여기는것 같았다. 대원들은 사령아바이의 그 건강한 웃음을 띤 별다른 모습에서 자기들은 벌써 이긴 싸움마당으로 가고있다는 생각을 하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실로 지리산의 독특한 전투풍경이기도 하였다.

습격조의 출발준비가 되였다는 참모장 홍순석이의 보고를 아래로 구부러들군 하는 왼손바닥을 펴서 등산모에 가져다 붙이는것으로써 받은 리현상사령은 오른손에 짚고있던 전투지휘봉막대기를 쳐들어 마천면쪽을 찔러보였다.

《갑시다!》

그들은 그렇게 떠나갔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리사령이 이끄는 소부대가 전투현지에 도착하여 대기하고있던 인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먼길을 재촉해온 적들은 오자마자 그놈들의 고칠수 없는 버릇대로 마을의 닭이며 개, 돼지를 마구 잡아서 포식을 하고는 학교에 들어가 곤하게 자고있다는것이였다. 그것은 마치 다 독안에 든 쥐와도 같이 먹어둔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지만 쥐를 잡겠다고 큰 독을 깨뜨릴수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학교를 태우는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망설이고있는데 인민들이 학교야 불타면 다시 지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악질《토벌대》의 그 망종들을 한놈도 남기지 말고 다 잡아달라고 하였다.

드디여 결심이 된듯 증오의 서슬에 불타는듯 한 리현상사령이 캄캄한 밤하늘에 대고 단장을 힘있게 찔러대며 짤막한 전투구령을 내렸다.

《쳐라!》 그러자 그 지팽막대기의 끝에서 세찬 불길이 어디론가 날아가는것 같은 형상이였다.

끄덕끄덕 졸고있던 적보초는 순식간에 제거되였다. 이어 놈들이 정신없이 자고있는 학교에는 석유가 뿌려지고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하여 이내 불길이 충천하였다.

《잘헌다, 잘허요. 집이 불타는것언 아깝지만 그 괘씸헌 빈대 타죽는것이 씨원하다더니만 정말로 통쾌한 일이로다!》

그 불길을 보던 마천의 로인들은 잘코사니 무릎을 치며 기뻐들 하였다. 이리하여 마천학교에 들었던 룡산괴뢰 19련대의 1개 대대는 이밤에 완전화장전멸되였던것이다.

그 이튿날 새벽녘에야 전투현장에서 돌아온 리현상사령의 머리우에 썼던 등산모는 어데로 날아났는지 그리고 손에 들었던 멋진 단장은 어디에다가 내던지고 왔는지… 오직 그의 얼굴색이 달라져서 돌아온 그 모습만이 그냥 어디 가서 놀다가 온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가렬했던 지난밤 전투의 흔적을 나타낼뿐이였다. 아마도 그 모자, 그 지팽이는 등산하러 갈 때 쓰는것들이 아니라 전투마당으로 출전할 때만 소용되는 오직 리현상사령에게만 고유한 전투행장인듯 싶었다.

한편 갑동은 전투사령 김지희가 지휘하는 소부대에 속하여 옥순이랑 복순이랑 같이 그날 밤으로 대원사로 향했다.

근 반년전 려수 14련대 지휘부에 무기획득공작을 갔다가 놈들에게 붙잡히는통에 괴뢰군장교였던 김지희에게 끌리워가 당장 총살당하는가 했던 그 참담한 밤까지만 하여도 더없는 원쑤처럼 생각했었던 그들과 오늘은 한전우가 되여 습격전투의 밤길을 함께 걷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감회를 금할길 없는 갑동이였다.

습격시간은 마천학교로 간 습격조와 새벽 한시로 약속했으니 정찰조를 먼저 보내야 옳았다. 이번에도 김지희자신이 역시 그 두 녀대원을 데리고 한발 먼저 나가면서 척후 겸 정찰병의 임무를 수행했는데 많이 다녀봐서 이 일대의 지리를 잘 아는 갑동이 그들과 함께 행동하게 되였던것이다.

처음으로 첫 전투에 나선 그는 배심이 아주 든든해져서 세사람의 앞에서 밤의 어둠을 헤쳐주다가 적의 정찰조인듯 한 세명이 근거지골안으로 찾아올라오는것과 맞다들었다. 붙들어서 간단히 심문해 보니 세명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자기네들은 남원 3련대인데 지금 그중 한개 대대가 대원사절에 들어서 자고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래일 일찌기 다른 부대들과 합세하여 병단지휘부를 기습소탕하는것이 목적이다, 자기들 세사람은 죽음을 각오하고 몰래 빠져 나왔는데 죽어도 빨찌산동무들과 함께 싸워보고 같이 죽겠다는것이였다.

그들은 경상도사람들로서 리승만도당의 무차별학살때 앉아서 죄없이 잡혀서 죽느니 《국방경비대》에나 가서 생명을 보존하자고 군에 들어갔는데 치욕스럽고 반민족적인 괴뢰군살이를 더는 할수 없었다는것이였다. 다소 믿음을 가진 김지희는 그들에게 오늘 밤에 화공작전을 하려고 하니 협조하겠는가고 물어서 확답을 받고 전투행동에 인입하기로 결심했다.

김지희는 전투원들로 절간정문과 후문을 중심으로 대원사를 둘러 싸 철저한 포위망을 쳐놓고는 의거자 세명을 앞세워가지고 가서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느티나무밑에서 총대를 붙안고 앉아 졸고있는 보초병을 사로잡아 이쪽 조용한 곳으로 끌어내왔다. 세 의거자들과 같은 경상도내기로서 호상 안면이 있는 그자는 비교적 입이 가분가분한 놈이였다. 숙영지의 자리배치를 잘 알지 못하고 서뿔리 쳐들어갔다가는 잘못하면 짐군으로 끌려온 인민들이 피해를 입을수 있을것 같아서 보초병에게 위협도 해가면서 자상히 물었다. 그자는 3련대 군인들은 종일 먼길을 걸어오느라고 지쳐서 곯아떨어져 여러 절간 안쪽의 방들에 흩어져 자고있으며 대대지휘부는 숙영지 제일 복판을 차지하고있다 하였다. 그리고 끌고온 인민들은 총알받이로 써먹을수 있도록 정, 후문 가까운 맨 바깥쪽에 자리를 정해주었노라고 하는것이였다.

전투사령이 제일 우려하는것의 하나가 놈들이 짐군으로 끌고다니군 하는 그 인민들이 문제였으며 다른 하나는 화공작전을 무작정 들이대는 경우 이름난 지리산의 큰 절들중의 하나인 대원사를 통채로 태워버릴수도 있다는것이였다. (습격전투가 좀 어려워지더라도 어떻게든 인민들도 상하지 않게 하고 이 대원사도 파괴되거나 불타지 않도록 만들수는 없을가? 그렇게 하자면 누구든지 안에 몰래 들어가 복닥소동을 피워 놈들을 후문으로 유도해내여 밖에서 족치는 길밖에는 없는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숲이 좋은 오랜 대나무밭들이 있다. 그 유명한 대원사의 굵은 참대나무들을 다 태운다는것도 문제이다.)

골똘하게 생각하던 끝에 김지희는 드디여 이런 결심을 했다. 대나무들은 다시 번식시킬수도 있지만 인민들의 생명은 되돌릴길이 없는것이다. 대원사의 훌륭한 건축물 역시 한번 태워버리면 다시 원상복구하기는 어렵다. 적들을 후문으로 유도해내다가 된불을 안기는 방법으로 화공작전을 펴는것이 가장 적중한 전투방식이다.

그런데 절간안에 누구를 사전에 은밀히 들여보냈다가 약속된 시간에 함화공작을 하도록 하겠는가? 김지희는 보초병에게서 알아낸 군호를 사용하면서 몇명의 습격조원들을 먼저 정문으로 공개 통과시켜볼가도 생각해보다가 머리를 저었다. 잘못하여 정체발로가 되는 날에는 작전을 계획대로 밀고나가지 못하고 오히려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될것이기때문이였다. 누구 날랜 사람을 하나 골라 담옆에 키높이 자란 대나무를 타고 넘도록 하면 되련만 최근에는 괴뢰군놈들이 사나운 군견들을 매서 끌고 다니는지라 귀가 밝은 그것들이 컹컹 짖기라도 하면 그것도 난사였다.

바로 이러한 때 김지희전투사령앞에 자기가 그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나선것이 《지리산의 곰》이라는 별호를 가진 황갑동이였다. 곰이란 원체 우둔한것 같지만 매우 령리한 명물로서 나무잡이를 잘하는것인데다가 련락원으로서 훈련이 잘된 이 《곰》으로 말하면 깊은 밤에 마을로 접근해들어가도 지어는 어느 집 담장을 몰래 넘어도 그 집 개가 잠에서 깨여나 짖지 않을 정도로 소리 하나 안 나게 감쪽같이 넘어 들어갈줄 아는 그런 신통한 묘기를 가지고있다는 소문이 나있었다. 그를 들여보내는것이 안성맞춤이겠지만 김지희는 어쩐지 저어되였다.

아무리 날파람있게 움직이는 황갑동이라 하여도 전투담이 없어가지고는 안된다. 한순간의 실수도 목숨으로 보상해야 하는 이 어려운 임무를 전투에 처음 참가하는 그에게 어떻게 준단 말인가.
김지희가 이런 생각을 굴리고있을 때 그의 심중을 누구보다도 잘 간파하는 옥순이와 복순이 두 처녀가 나섰다. 리옥순이 속삭이듯 말했다.

《전투사령동지, 저희들을 들여보내주십시오.》

《동무들이?》

《네, 딴 길은 없지 않습니까.》 복순이의 말에는 비장한 결심이 어려있었다.

《동무들은 안되오. 차라리 그럴바에는 내가 들어가는편이 낫지.》

《정신있어요? 전투는 누가 지휘하구요?》

《전투사령동지는 안됩니다! 나를 한번 믿어주십시오.》

황갑동이 녀대원들을 옆으로 비켜세우고 김지희앞으로 나섰다.

《전투사령동지, 나는 나무잡이 잘하기로 소문난 지리산의 곰이여, 오늘 밤 같은 땐 여기서 나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더는 없는게라서…》

《어서 명령을 주십시오. 나도 조국통일을 위한 이 투쟁의 어려운 몫을 한번 맡도록 해주십시오. 그 권총이나 좀 빌려주시구요. 어서요!》

《…》

김지희는 대번에 정이 통하는 이 《지리산의 곰》의 두터운 손을 말없이 꽉 잡아주었다.

《황동지, 그럼 부탁하오!》

김지희는 옆구리에서 자기의 권총을 떼여 갑동이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러고도 무엇인가 부족이 있는것만 같아 자기의 손목에서 야광시계까지 벗기여 그에게 채워주었다.

그리고는 절간안에 미리 들어가 숙영지의 내부정형을 다시금 정확히 확인정찰한데 근거하여 대원사의 큰 괘종시계가 밤 한시를 치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자기가 야간습격의 총성을 울리면 즉시 잠에서 깨여나 허둥거리는 놈들을 뒤문으로 빠져나가게 만드는 함화를 할데 대한 임무를 똑똑히 주었다. 처음으로 이런 싸움에 참가한데다가 오늘 밤 습격전의 가장 중요한 열쇠의 하나를 받아쥐게 된 갑동이의 가슴속에서는 심장이 쿵당쿵당 북치듯 했다. 결심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동지들의 앞을 떠난 그는 절간의 높은 돌담장옆에 가까이 서있는 제일 통 굵은 대나무밑으로 소리없이 다가들었다. 그 매끄럽기 짝이 없는 빤질빤질한 대나무에 착 붙어서는 뜨문뜨문 돌려 감긴 대마디들을 손과 발로 짚으면서 우로 올라갔다.

대나무를 타고 저만쯤까지 올라간 그는 청기와를 인 돌담지붕으로 얼마간 기여나가다가 한곳에 이르러 능구렝이처럼 담을 타고 내리였다.

갑동은 땅에 발이 닿는 순간에 요란한 소리가 나는듯 느껴져 머리칼이 쭈빗해졌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주위의 동정을 한동안 살폈으나 별다른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차츰 공포심이 잦아들고 정찰이나 습격도 별게 아니로구나, 나도 능히 할수 있다 하는 신심이 가슴에 차올랐다. 이 싸움은 적 한개 대대를 소멸하는 큰 전투이다. 정의와 부정의, 애국과 매국, 통일과 반통일간의 이 싸움에서 이 황갑동이가 한몫 단단히 하고있다. 통일조국을 위한 일이라면 가장 어렵고 중요한 모퉁이에 지금처럼 나설것이다. 이 길에서 설사 피를 깡그리 뿌리고 숨이 진다 해도… 이렇게 마음을 다지고나니 은연중 온몸을 조이던 긴장감이 풀려나가는듯 했다.

갑동은 으슥한 어디에 몸을 숨기고있다가 시간 맞춰 적들을 혼란시켜서 뒤문쪽으로 내몰면 되겠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로 작정했다. 사병들 대다수가 자고있는 방에 들어가 있다가 소요를 일으키는것이 좋을듯 했다.

그는 절 복판에 자리잡은 제일 큰 방을 향해 다가갔다. 절간주위에만 보초를 세우고 매 방마다엔 경비를 조직하지 않은것이 다행이였다.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서니 땀내, 구린내가 역스럽게 풍겼다. 그는 잠시 방안의 어둠에 눈을 익힌 다음 한쪽 가녁의 틈사리에 슬며시 끼워누웠다.

 

처음에는 적의 소굴에 들어와서 원쑤놈들과 같이 누웠다고 생각하니 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느 놈이 낯선 자기의 일거일동을 살피고있는것 같아 속이 오마조마해지기도 했다. 가슴속에서 쿵쿵 절구질소리가 자기 귀에까지 들리는것 같았다.

시간이 좀 지나니 점차 마음이 진정되면서 심장이 평온을 되찾기 시작했다. 공격시작까지는 한 20분정도 남아있었다.

(이것들이 총과 수류탄을 머리맡에 놓고 자는구나.)

갑동은 이제 시간이 되면 옆의 놈의 수류탄을 써먹을 작정을 했다.

어느 놈의 코고는 소리, 뼈다귀를 갉아먹는것 같이 빠그극빠그극 이발 가는 소리가 울렸다. 어디선가 아주 가까운 방에서 이 절간의 괘종시계가 무거운 추를 흔드렁거리면서 제컥제컥 돌아가고있는 소리만이 귀에 가득 들려왔다. 아마도 대원사 주지가 쓰던 방일것이다. 거기에 대대장놈이 차지하고 늘어져서 자고있을지 모른다.

대원사의 시계소리!

이제는 나이도 많아 오랜 세월동안 여기서 대대로 내려오는 중들과 함께 지내면서 여러번의 전란도, 물란리, 불란리, 병란리도 다 겪어왔을, 오직 하나 오늘까지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가고있는 력사의 산 증견자, 저 시계추에 칭칭 감기고감긴 수많은 년륜에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고달프고 지겨운 인생들과 수난많은 이 민족의 고통사와 함께 애국의 산, 지리산에 깃든 피어린 력사도 담겨질것이다.

지금 저 시계는 과연 나에게 무엇을 속삭이며 저리도 간절히 당부하고있는것일가? 이제 저 시계는 잘못하다가는 이 대원사의 마지막밤 시간을 알려주고는 한시가 되면 멎어버릴수도 있고 잘하면 투쟁으로 밝아올 력사의 새날을 알리는 새벽종소리를 떵떵 울려줄수도 있을것이다. 정녕 력사는 시간속에 흐르고 시간은 력사속에 존재하면서도 어찌하여 시간의 흐름은 계속되여도 력사는 정지하거나 역행하게 되는것일가. 그것은 민족의 반역아, 력사의 반동들때문일것이다. 그 인민의 력사속에 사는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던지 저 시간의 흐름, 력사의 흐름을 잠시도 멈추어세우게 해서는 안된다. 민중의 새 력사에 역행하는 반동의 무리들과 혈투를 벌려서라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지키고 민주의 새 력사, 통일의 새 력사를 창조해야 한다!

결코 전쟁이란 모든 생령들을 죽이는 무자비한 싸움만일수가 없는것이다. 생명들을 지켜주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살리는것이 우리가 하고있는 싸움이 아니겠는가.

옆방에서 간단없이 들려오는 그 괘종시계의 일률적인 초침소리는 시각마다 분초마다 함께 자리를 같이 하지 말아야 할자들이 자고있는 별난 방안에 불안히 누워있는 갑동에게 별의별 생각을 다 몰아왔다.

참으로 이상하였다. 사람이 이런데 누워서도 정신의 운동, 사유과정만은 별로 구속을 모르고 자유분방하게 지속되고있다는것이, 그런데 더욱 별스러운것은 별로 길지도 못한 인생의 중대사들만이 아니고 극히 부차적이고 아주 사말사적인 일들도 겨끔내기로 머리에 떠오르고있는것이였다. 아주 어릴적에 야뇨증에 걸려 자꾸만 자리에 오줌을 싸군 하여 이웃집에 소금 빌러 가던 일이며 서당훈장의 꿀단지에서 꿀을 채여 먹은 아이들과 같이 벌로 종아리를 얻어맞던 일, 온밤 범꼬리를 잡고 산으로 오르내리던 일들…

이 순간 그는 세상에서 사람의 머리속처럼 생각을 잡아두는 칸들이 수없이 많고 한꺼번에 여러가지 상념들이 비집고 들어왔다가는 순간에 다른것에 자리를 내여주고 나가고 또 새것이 들어오고… 그 숱한 외계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받아서는 묵이지 않고 제때에 처리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리군 하는 인간두뇌처럼 단꺼번에 많은 일을 할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밀한 기계는 없을상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에 옴해있던 갑동은 꿈결에서처럼 큰 괘종시계가 옆방에서 딱 한번만 떼잉- 하고 떨림음을 내면서 엄숙히 한점을 치는 소리를 듣고 펀득 제정신을 차렸다.

(한시로구나!)

그는 자리에서 소리내지 않고 일어나 아까 옆의 놈의 카빈총과 수류탄주머니를 들고 그 방을 나왔다. 그리고는 나서는 길로 방안에 사격을 가했다. 건물이 상하지 않게 절 안뜨락의 여기저기 공지에 대고 연방 수류탄을 내던졌다. 절간안은 불시에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갈팡질팡 서로 총질을 해대기도 하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갑동이 소리소리 질렀다.

《정문에 공산군이 나타났다. - 빨리빨리 뒤문으로, 대나무밭속으로 빠져라-》

그는 거듭 웨쳐댔다.

아닌게아니라 정문쪽에서부터 널대문을 까부시고 들이닥치는 빨찌산습격조의 요란한 총성에 놀라 기가 질린 괴뢰군놈들은 저마끔 살겠다고 무기도 손에 잡지 않은채 맨 내의바람으로 절간뒤문쪽으로 몰켜들었다. 뒤문밖에서 대기하고있던 매복조들이 거기다 대고 몰사격을 퍼부어댔으며 수류탄벼락들을 안겼다.

수백명 놈들이 살겠다고 몰려들었던 대나무밭은 왈칵 뒤집히고 불길에 휩싸였으며 화광이 밤하늘을 태웠다. 그속에서 놈들은 아비규환의 비명소리를 짐승처럼 내지르면서 총에 맞아 너부러지고 수류탄파편에 맞아죽고 박격포탄에 사지들이 찢어져 하늘로 날아오르고 불에 타죽고 온통 수라장이였다. 대나무숲은 순식간에 놈들의 죽음터, 화장터로 변하고말았다.

대나무밭이 화르륵화르륵 불타는 그 불길은 무서웠다. 대나무가 타면서 그 마디마디가 터져나가는 소리는 대나무의 굵기에 정비례하는것으로서 포탄소리보다 더 요란하고 굉장도 하였다.

어두운 지리산의 밤하늘을 태우며 타오르면서 굵은 대나무통들이 쾅쾅 터지는 그 소리는 복수의 화산이 터지는 소리였으며 분노한 지리산이 통채로 터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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