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제1부 지리산   제1장 대나무는 혼자서 자라지 못한다

 

제2장 두류산의 눈보라

1

 

실로 민주의 새 사회탄생을 위한 력사의 모진 진통속에서 1948년도 어느덧 피빛노을속에 저물어가고있었다.

지리산속 깊이에 들어앉아있는 동점마을에는 심상태가 책임진 하동야산대가 전개되여있었다.

갑동은 동무들과 함께 지리산오지의 이 깊은 밀림속에 들고보니 방향각이 얼떠름해지는것을 어쩌는수가 없었다.

우에는 가없이 펼쳐진 구름의 바다가 흐르고 아래로는 금시 눈이 되려는 차거운 겨울안개가 자욱하게 낀 끝없는 산의 바다, 산의 물결, 산의 파도는 거창하기도 하였다.

입산자들중에는 마침 어릴적부터 포수질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지리산속에 들어와 짐승잡이를 하다가 그후 영 절의 중이 되고말았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한때 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명량해협에 그 밝은 빛을 뿌려준다는 남해가의 월출산 도각사의 소승이였다. 그런데 《토벌대》놈들이 산꼭대기에서부터 내리내리 여러개의 절들을 다 불태우는통에 그 분격을 참을길 없어 섬진강을 건너와 입산했다는 청년으로서 비교적 지리산의 지형을 잘 알고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지리산은 사방 백리도 넘는 거산이라 그 어디서도 한눈에는 거둘수 없는 산이라고 하였다. 얼마나 높고 크고 깊었으면 려수, 순천폭동직후부터 오늘까지 놈들의 탄압에 항거하여 투쟁의 길에 나선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 은신해있는지 누구도 다는 몰랐다.

첫날 갑동이네들을 친절히 맞아 숙식조건이랑 걱정해준 중대의 특무장(사관장)은 우스개소리를 곧잘하는 걸작이였다.

그의 이름은 전복구라 했다.

《동지들이 여기 우리 지리산을 찾았으며는 제일간으로 머시냐 할것 같으면 녀산신령님의 상징인 저 반야봉을 향해 첫인사로 큰 절을 올려야 하는것인데 순서가 바뀌였으니 이젠 어찌할수가 없구만이라. 저기 곧바로 앞에 멀리 솟아있는 부드럽게 잘 생긴 보살 같은 녀인이 누워있는 형상의 산이 바로 그 반야봉인게라. 산의 가슴부분을 이루는 두개의 일매진 봉우리가 마치도 그녀의 봉긋이 부풀어오른 젖무덤같이 보이질 안하능기요? 혹시 동지들중에 집떠나 어머니 젖생각나는 어린 대원동무들은 더러 저게 가설라무니 졸라서 한통 잘 뽈구 와도 된당께. 허허.》

그의 말에 모두가 즐거운 마음이 되여 웃었다.

《그렇지만 저 녀인산의 치마폭같이 생겨먹은 산자락을 훌쩍 들추며는 그밑에서 이 세상인류를 다 낳아주었다고도 할수 있는 가장 신성하고도 때로는 치사하게도 느껴지는것이 정말로 나타나는데 그 깊이를 알수 없는 골에 한번 잘못 빠졌다가는 허, 혁명도 바로 못해보고 정말이제 야단이랑께릉.》

《핫하하!》 모두 폭발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는 다같이 산사람이 되였으니 산을 알고 산과 친해야 하니끼니 내 아는만큼 여러 동지분들에게 지리산의 지형과 산세에 대하여 설명을 해드릴라는겁니다.》

이렇게 허두를 뗀 그는 설명을 시작했다.

… 높은 산이 있으면 반드시 깊은 계곡이 그옆에 패워있기마련이란다. 지리산은 크게는 여섯개의 높은 산봉우리들과 그에 따르는 깊고깊은 산골짜기들 그리고 여러개의 큰 릉선들로 이루어졌다고 할수 있었다.

만일 섬진강을 등에 지고 멀리에 서서 바라본다면 이자 그 《반야》, 또는 《귀녀》라는 뜻으로도 불리운 산은 지리산에서 두번째로 높은 매우 매력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반야봉의 우측으로 서너개의 산봉우리들이 사이좋게 이마들을 대이고있는것이 덕유산, 더 정확히 말하면 남덕유이고 다시 그 우측으로 나가 따로 우뚝 솟은것이 천왕봉인데 지리산의 주봉으로서 제일 높을뿐아니라 매우 웅건하고 그 기세도 자못 장엄하다는것이다.

반야봉의 좌측으로 있는 높은 산들의 무리가 노고단이요, 《반야》와 노고단사이의 제일 깊은 계곡이 심원계곡, 그아래로 계속 이어진 골짜기가 당궁골이란다. 당궁골을 옆구리에 끼고 허리를 쭉 편 잘 생긴 미남봉우리가 일어섰으니 반복대요, 그 반복대아래로 그냥 뻗어내리고있는 산줄기가 지리산의 서북릉선이 되는것이다.

그 왼쪽으로 넓게 퍼지며 빠져나온 골짜기는 삼성재골이요, 다시 그 왼쪽으로 돌아서 골계수를 따라들어가면 이내 좁은 골안이 나지는데 천은사골이라. 거기서 조금 더 왼쪽으로 돌아서면 억센 두 산줄기가 만들어놓은것이 화엄사골이고 바로 그앞으로 보이는것이 문수리골이다. 그리고 저쪽으로 멀찍이 들여다보이는 깊고 어스크레한 골짜기가 피아골이라고 했다. 임진왜란때부터 갑오년의 농민전쟁을 거쳐 반일의병투쟁시기에 이르기까지 막다른 골목에 처하여 더는 갈길이 없게 된 사람들이 끝없이 밀려들어와서 죽어야 했던 피의 계곡으로서 남녘사람들이 죽음의 골짜기, 《력사의 무덤》이라고도 부르는 바로 그 피아골인것이다.

전라남북도, 경상남도 이 세 도의 분기점인 날라리봉은 노고단에 있다. 노고단에서 반대로 지리산에 등을 돌려대고 보면 멀리 북쪽으로 두리뭉실하게 솟아있는 산이 광주 무등산이요, 그 왼쪽에 무등산하고는 대조적으로 급하게 발딱 일어선 날카롭게 생긴 돌박산이 광양 백운산이라고 하였다.

《… 이상이 대체로 내가 알고있는 여기 지리산줄기의 기본골격이라 하겠는지. 원체로 넓은 하늘을 받들고있는 산이여서 옛날부터 그 어떤 영웅호걸들도 이 지리산만은 가슴에 다 안아보지 못하고 죽었다 했둥마. 그렇다고 해서 이 높고 큰 산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위압을 당해서 기가 죽어삘진 마이소.

내가 아주 어렸을적부터 산속에서 오래 살아보니껜 산이란 별랗게 생겨먹은 물건이고 좋고 나쁜 비밀을 깊이 숨겨두고도 세월의 락엽으로 다 덮어삘고 언제꺼정이락도 말이 없는 참으로 입무거운것이여. 생명으로 가득찬 이 자연속에서는 생을 위한 온갖것들의 싸움이 부단히 벌어지며 새로 나서는 자라고 서로 잡아먹고 잡히여 먹히우고… 그야말로 산림은 자기의 특별난 생리와 자기 생활, 자기 력사를 가지고있다고 말할수 있는게라.

때로는 천지조화를 다 부려 여름에는 천둥소리 진동하여 메뿌리를 뒤흔들고 삼지창같은 번개발이 산꼭대기의 피뢰침같은 거목에 내리꼰지면서 창대같은 비를 뿌리고 센 태풍이 일고… 겨울이면 눈이 강산같이 내리고 눈보라 지동치면서 눈사태가 산을 허물어 골짜기를 메우고 추위에 바위가 얼어터지고 얼어죽은 산새들이 떡잎에 섞여 바람에 날려가고… 아주 참말 이제 우리가 시제 당하게 될 이 지리산의 겨울은 무섭다며는 무서운게고…》

그 말에 갑동은 몸을 오슬때리며 얼결에 겁이 담긴 눈길을 들어 저도 모르게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어딘가 랭랭하고 무뚝뚝하며 음울하게 보이는 그 우중충한 산발들은 어디론가 빨리도 가는 무거운 안개의 흐름속에서 자기네들의 주위를 비잉- 돌아가고있는상싶었다. 그 무엇때문엔지 몹시 상심하고 노한듯 한 그 산악들은 거만하고 엄한 눈을 부릅뜨고 산림의 불법침입자들인 자기네들을 말없이 내려다보는듯 했다. 어느 거세인 산악에서인가는 우악스러운 거인의 손길이라도 불쑥 나타나서 자기들중 그 누구인가의 뒤덜미를 잡아 쳐들어가지고는 얼굴을 가까이 대고 보기도 하고 옆으로도 우로도 밑으로도 깐깐히 뜯어보고서 땅에 내동댕이칠것만 같은 환각까지 일어 갑동은 마음이 으스스해졌다. 그리고 초겨울바람에 잔뜩 언 시어미상같이 시펄뚱한 하늘에서는 눈과 함께 당장 무서운 추위가 떨어져내릴상싶었다.

먼저 입산해있던 그 중출신의 전복구라는 청년이 그에게 안심을 주듯 말했다. 《이 지리산이 비록 말은 못하고 무뚝뚝하고 거칠게 보여도 속만은 깊은 사람과도 같은게라. 이 산은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를 믿고 자기 몸을 팍 맡기고 안겨드는 사람들에게는 물도 주고, 밥도 주고, 집도, 따스한 잠자리꺼정도 다 주면서 품안아주는게라. 그렇지만 그와 반대로 이 지리산을 무서워하고 꺼리고 싫어하며 나중엔 하산을 꿈꾸는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뿐아니라 이 산중에서 살아나가지 못하게 하는게라 요말이시.》

지리산지형에 대한 이날의 강의를 이로써 끝낸 전복구는 자기의 입산동기에 대해서도 흥미있게 말해주었다.

《… 예로부터 조상을 높이 모셔오고 조선나라의 첫 건국왕인 단군을 아조 숭상해온 우리 민족은 저 구월산으로부터 시작하여 금강산과 묘향산 그리고 지리산의 큰 절간들에 건국시조님의 업적을 기념하여 큰 비석을 해세우고 해마다 성대한 제사를 지내왔다는게야 다 아는 사실이고, 우리 도각사의 앞뜰 오른켠에도 내 키를 훨씬 넘는 그런 비석을 하나 세우고 비문을 새겨놓았둥마. 어느날 하루는 일본놈 무식한 순사들이 절간에 몰려올라와서 여기다가 뭐이라고 썼는지 당장 그 비석을 깨뜨려버리라고 땅땅 구두발을 굴러대며 호통을 치는게 아니여. 그래서 우리 도각사의 주지님이 나서면서 이건 여차여차해서 세운 비니까 절대로 마슬수 없다, 일본에서는 산마다 진쟈라는걸 세워놓고 가미사마 오미까미라는걸 믿는다는데 당신은 거미사막인지 오미잔지 하는걸 직접 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그 순사놈은 당황하여 <그… 그런걸 본 일이나 어-없다.> 하고 대답했구만이라. 이때 주지님은 우리 조선사람들은 단군왕을 직접 모시였을뿐아니라 지금도 늘 머리우에 떠받들고 산다고 말하면서 젊은 중들에게 미리 준비시켰던 연을 슬그머니 저 하늘에 높이 띄우게 했둥마.

그 장방형의 큰 연에는 단군의 자화상이 그려져있었는게라 스님은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자, 니들 저 하늘을 한번 쳐다봐라. 하늘에 누가 계시는가?> 그 소리에 머리를 번쩍 쳐든 왜놈은 두눈이 그만 휘둥그래졌구만이라. 아 글쎄 저 하늘가에서 가슴까지 내리드리운 흰 수염이 부르르한 단군시조님이 두눈을 부릅뜨시고 위엄있게 내려다보고계시는게 아니것소.

<다들 보았느냐. 시방 동방조선의 첫왕이신 단군께서 이 나라에 오랑캐놈들이 기여들어 온갖 못된짓들을 다하고있다는 말을 듣고서 성이 나서 천벌을 내리시러 오셨으니 그리들 알거라.> 스님의 이 말을 들은 왜놈털보 순사라는자는 벌벌 떨면서 <아, 제발 잘못했으니 한번만, 딱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다시는 절간에 꿈쩍도 하지 않고 신성시 하겠나이다.> 하고 두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고나서 달아나다가 그만 돌층계에서 넘어져 머리가 다 깨여져가지고 혼비백산 도망을 쳤구만이라, 도망얼…》

《하하하.》

그의 이야기를 듣던 갑동이네들은 통쾌한 웃음을 웃었다.

《그렇게 악독무지한 왜놈들도 하늘이 두려워서 다치지 못했던 우리 도각사절간을 그 미국놈들과 괴뢰군놈들이 왔다가 빨갱이들을 숨겨준다는 구실로 시퍼런 대낮에 달려들어 말짱 다 불태워버렸으니 세상에… 푸른 남해가 바로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단애절벽가의 다박솔들속에 묻혀있던 그 운치로운 절을 놈들이 순식간에 재무지로 만들어버렸으니 천벌을 받지 않겠소.

그때 도각사의 주지님은 그 분기를 이기지 못하여 불붙는 절속에 뛰여들어가서 분신을 하시고 우리 젊은 몇몇 중들은 거기서 도망쳐서 이리 지리산으로 입산해오지 않았겠나요. 결국에는 그놈들의 극심한 횡포가 념불밖에는 모르던 우리 중들까지도 <빨갱이>로 맹글지 않았는기요.》

전복구는 입가에 서글픈 웃음을 짓더니 마지막으로 주의사항을 하나 주는것이였다.

《여기 들어와서 생활하면서 동지들이 한가지 주의할 점은 지리산엔 특별히 맹수들이 많고 갈개치는게라. 메돼지무리도 무섭고 곰도 맞다들리면 사람 해치고 늑대도 길가는 사람들께 달려들고요, 더우기 이 주변에는 큰 백호가 두어마리 쌍을 이루고있는데 이 늙은 백범들은 사냥에 게을러져서 자주 산속의 민가에 내려와 집짐승들을 물어가거나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는지라. 조심들을 하라 요말이여. 이 지리산은 지금꺼정 오랜 세월을 호랑이들이 통치해온 세상이니께 산림의 왕인 호랑이들이 쉽게 자기의 그 지위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당마. 입산자들이 많이 들어오기는 했지마는 아직 우리가 호랑이들한테서 이 산을 완전히 인계를 받지 못한 형편잉께 그리 알고서… 내 생각엔 암만 해도 우리가 우선 이 후방을 든든히 해놓자면 앞으로 지리산으로 미칠듯 밀려들수 있는 미국놈들과 괴뢰군경놈들과 본격적인 싸움 붙기 전에 이 지리산을 쟁탈확보하기 위한 사나운 맹수들과의 또 한차제의 싸움을 치르어야 할가본데 펄펄 나는 익호들인 그 맹수들과의 싸움이 조련치는 않을것이라 이 소린제라.》

《알겠구만이라.》 갑동이가 응대해주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두 사람이 견디지 맹수들이, 그 짐승들이 이길라구요.》

《거 도장동에서 온 젊은 동지, 그거 참 존 말 했당께.》

전복구가 한 걱정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지리산에는 세가지 종류의 범이 있었는데 불범(표범)과 갈범(조선범), 백범(흰 범)이 그것이다. 불범은 몸집은 좀 작은편이나 매우 날파람있고 령리하며 성격이 급하고 사나왔다. 주로 약한 녀자들을 알아보고 접어들어서 일을 낸다. 갈범은 그에 비해 몸집이 크고 실하며 좀 순하고 점잖은편이며 자기를 자극하지 않는 한 좀해서는 사람을 해치는 일은 적다. 그렇지만 그것도 늙으면 곧잘 사람들에게도 달려든다. 사람에게 제일 잘 접어드는것은 옛말에 나오는, 나이가 많아서 온통 털이 새하얗게 세였다는 소리가 있는 백호이다. 교활한데가 있고 끈질기다. 늙어서 사냥의 성공률이 적은 흰 범으로서는 별로 빨리 뛰지도 못하며 무기를 가지지 않은 이상은 날카로운 이발이나 사나운 발톱과 같은 다른 방어수단도 소지하지 못한 사람잡이를 잘하는것이다.

이 범들의 한마리당 활동구역이 무려 100리라고 했으니 그 백호는 어디에도 있는셈이였다.

아니나다를가 갑동이네들이 입산하여 반토굴집을 짓고 거기에 들어간지 얼마 안되여 지리산의 맹수들, 특히 범들의 공세가 시작되였다. 가지고 들어온 가축은 얼마 없는것이고 처음엔 흰 범이 야외창고를 습격하여 허약자들을 위해 갓 잡아서 걸어놓은 소다리갱이들을 물어갔다. 그러더니 얼마전에는 무기창고옆에 긴 철그릇에 담아놓은 엿물같이 누런 그리스(총기름)가 다 없어진것이다. 처음에는 입산자들과 함께 잠입한 어느 반동놈들의 작간이 아닌가 하고도 의심했었다. 그런데 포수출신인 이전 젊은 중의 말을 듣고보니 그리스를 아주 좋아하는 그놈의 범이 내려와서 다 《잡수》어주고 올라간것으로 판명이 되여 모두가 웃었다.

그런데 이처럼 후에 두고 옛말하면서 웃을 일만이 생기는것이 아니였다. 이 며칠어간에만 해도 입산자들중의 어린애들과 부녀자들 혹시는 남성동무들속에서도 일정한 피해를 입어 몸들을 상하거나 종적이 묘연하게 실종된 행방불명자들이 생겨났다. 유격대지휘부에서는 맹수들, 특히 사람을 자주 해치군 하는 그놈의 늙다리 흰 범을 어떻게 하든지 잡아치울데 대한 지시가 아래중대들에 떨어졌다. 심각성을 띠는 문제로 된것이다.

(사실상 입산초시기 경험이 없다보니 사나운 맹수들에게 피해를 입어 아직 적들과 한번 바로 싸워보지도 못한채 아까운 동지들이 희생되는 비극이 연출되였던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니 갑동은 밤에 잠이 다 오지 않았다.

어느날 해질녘이였다.

저녁 늦게까지 야외훈련장에서 엊그제 같이 입대한 동무들과 함께 작탄사용법을 열심히 익히고있던 갑동은 녀성들이 자리를 잡고있는 반토굴집쪽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다급한 소리를 들었다.

《범이요, 범-》

《범이 사람을 물어갔다-》

《백호가 아이를 물어갔어요-》

그 소리에 놀란 갑동이 정신없이 그리로 달려가보니 반토굴집마당가에서 혼자 놀고있던 군녀맹위원장의 여덟살 난 아들을 금시 전에 흰 범이 물어갔다는것이였다.

아들애가 없어진것을 안 녀맹위원장은 금시 그 자리에 까무러칠것만 같았다. 그는 제일먼저 달려온 갑동이의 팔을 붙잡고 눈물로 절절히 애원을 했다.

《동지! 불쌍한 내 아들을 살려주세요. 아버지도 희생되고 없는 애를 그놈의 범이 글쎄…》

녀인의 그 소리에 갑동이의 가슴속 젊은 피가 끓어번지였다.

《그래, 그놈의 백호가 어디로 사라졌는기요, 어디로?》

《저기 뒤산 잣나무밭속으로요. 저기!》

《알았구만이라! 이눔의 범새끼 어디 두고보자!》

갑동은 두손을 그러모아 주먹을 굳히며 이내 범이 아이를 물고 종적을 감추었다는 잣나무밭을 향해 날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총은 물론 대창 하나도 쥔것이 없는 그는 자기가 맨주먹으로 어떻게 그 큰 범을 당해낼지 타산도 해보지 않고 무작정 뒤쫓았다. 이 순간 그의 머리를 지배하는것은 내가 지리산인민유격대원의 한사람으로서 인민의 생명을, 희생된 애국렬사의 아들애 하나 구원해내지 못한다면 그 무슨 사나이겠는가. 이 주먹을 그 범의 시뻘건 아가리에 들여밀고라도 대신 그 애의 목숨을 구해내자! 하는 오직 이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잣나무밭속에 들어섰으나 그놈의 흰 범이 아이를 물고 어디로 종적을 감췄는지 방향을 잡을수 없었다. 갑동은 다음순간 범들은 산령마루나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것이 아니라 반드시 산릉선을 따라오르며 그것도 대체로는 우측릉선을 탄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 이내 우측켠으로 방향을 잡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 산릉선을 따라 한참 헐레벌떡 올라가보니 아니나다를가 범이 산릉선 저바루에 있는 넓은 너럭바위에다가 물고 올라간 아이를 앞에 내려놓고 쉬고있는것이 아닌가. 벌써 범에게 놀라 넋을 빼앗긴듯 아이는 바위우에 범과 마주하고 앉아서 캐득캐득 웃고있는것이 아닌가.

(아, 저리 되면 안되겠는데 저 일을 어떻게 해…)

갑동이의 달오르는 눈에 비치인것은 순진한 아이를 붙잡아다가 홀려서 가지고 희롱하는 그 백호가 단순한 맹수가 아니였다. 그도 용서할수 없는 원쑤였다.

《이놈의 범아, 너두 살고싶거든 그 아이럴 그 자리에 놔두고 냉큼 사라지지 못할가-》

그 소리에 놀란 범은 그제서야 아래로 뒤쫓아올라오고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아이의 옷깃을 물어 다시 둘쳐메더니 산릉선으로 급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범은 사선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릉선아래의 직선을 취하여 길을 질러 거리를 좁히며 그냥 소리소리 질렀다.

어느새 직선거리로는 아주 가까운 바로 아래까지 다가오며 무서운 소래기를 질러대는 사람을 힐끔힐끔 돌아보며 좀 가파로운 산등성이를 따라올라가던 그 범은 그만에야 발을 헛디디여 우의 돌을 굴리면서 아래로 쭉 미끄러져내리기 시작했다. 갑동이의 앞으로 곧바로 지치러져내려오는 범, 갑동이에게는 바랄수 없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갑동은 그 순간 그놈의 꼬리라도 붙잡고 늘어져서 한바탕 해보고싶은 충동을 받았다.

사람이 있는데까지 거의거의 미끄러져내려오던 범은 무서웠던지 황급히 꼬리로 사람을 쳐갈리듯 하면서 다시 우로 내빼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 이놈-》

그때를 놓치지 않고 갑동은 불시에 자기의 얼굴을 쳐대는 범의 뒤꼬리를 두손으로 꽉 틀어잡았다.

《잡았다아-》

급해난 그 범은 돌아서 사람을 물어제낄것 같았지만 어찌된노릇인지 그러지는 않았다. 후퇴를 모르는 백호는 꼬리를 잡힌채 사람을 끌고 산우로 대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주 힘찼다. 이번에는 곧바로 직선으로! 어찌도 힘이 센지 사람을 마구 통채로 덜렁덜렁 끌고올라가는데는 기름기가 도는 매끄러운 꼬리가 손에서 거의거의 빠져달아나려고 했다. 그것만 놓치면 다다. 그때는 그놈이 홱 돌아서서 덤벼들어 피를 볼 판이다. 갑동은 그 꼬리에 아이와 자기, 두사람의 생명을 걸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런데 뒤가 몽톡한 범꼬리끝에 가서 맥이 진해가던 손이 툭 걸렸다. 다행이였다. 뒤에서 잡아당기는 새힘이 생겨나자 범은 밑으로 좀 끌려내려왔다. 그 기회에 갑동은 두손에 긴 범꼬리를 휘여 감아 단단히 비틀어잡았다.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은 다시 끌내기를 한다. 좀 느연한 경사지에서는 범이 이기고 사람이 져서 그냥 끌리워만 올라간다. 그러다가도 좀 가파로운데 가서는 자기 한몸에 두사람의 무게가 실린지라 이번에는 사람이 견디고 범이 못 견디여 아래로 한참 미끄러져내리군 했다. 서로 힘내기와 맥빼기를 하면서 끌고올라가거니 끌려내려오거니 하는 놀음이 반복되였다.

지금에 와서는 마음이 좀 든든해진 갑동은 범이 끌고올라가면 힘을 빼라고 그냥 매달려올라갔다. 마른 풀밭이여서 어떨 땐 한절반 누워서 달려올라가니 창황중에서도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쭐쭐 미끄는 그옆의 느연한 산죽밭에 잘못 들어섰던 범은 사람과 함께 한참 아래로 좌르르 미끄러져내려왔다.

그러다가도 다시 우로 끌리워올라가는 생사를 판가름하는 이 급한 마당에서 갑동에게는 한가지 옛말이 피끗 떠올랐다.

어떤 사람이 한번은 범의 꼬리를 잘못 잡았다가 놓지도 쥐지도 못하고… 그렇게 사흘이 지난 뒤 옆집 친구가 가보니 산밑에서 무엇인가 새하얀 생물체들이 기진해서 뱅글뱅글 돌아가고있는데 그 며칠사이에 털과 머리가 다 세여 새하얘진 범과 사람이더라는 옛말이였다.

《이놈의 범, 네가 더 백발이 되나 내 머리가 샛하얗게 세나 어디 보자!》

그러나 범의 힘에도 사람의 끈질긴 의지에도 한계가 있는것이였다.

뒤따라 여러 사람들이 총까지 가지고 그리로 찾아올라왔다. 그때에는 범도 피똥을 싸고 나가너부러져있었고 사람도 그 꼬리를 잡은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을 때였다. 다만 그옆에 퍼더버리고 앉아 무서워 울면서 《아저씨》를 목쉬게 부르고있는것은 반정신이 나간 그 군녀맹위원장의 어린 아들뿐이였다.

이튿날 아침으로 그 소문은 온 지리산마을에 퍼졌다.

《백호를 잡았다-》

《지난밤에 황갑동이라는 사람이 맨손으로 그 무서운 흰 범을 잡았다네.》

《대단하시, 우리 입산자들의 첫 <전투>전과인셈이여. 아무렴 범이 씨겠나 사람이 더 씨제!》

어찌면 범잡은 포수 같다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갑동은 진짜로 범을 잡았지만 자기가 잡았는지 누가 잡았는지 사람들뒤에 물러나서 조용히 웃으며 숨진 범구경을 하고있을뿐이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에게 맹수를 잡는 법만이 아닌 야수들, 이 세상의 온갖 불의와 싸울줄 아는 투쟁정신과 의지를 키워주었다고 할수 있는 고향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드렸다.


2
 

눈이 내렸다. 둘레가 넓다 하여 일명 《두류산》이라고도 불리우는 온 지리산에 첫눈이 내렸다. 새해를 며칠 앞두고 소나무들의 우듬지와 가지들우에 설눈을 얹어주려는듯 고요히 내리기 시작했다. 소담스러운 눈은 저 하늘의 인사를 안고 내려오면서 땅하고만이 한해의 곡절많은 사연을 속삭이는듯 천천히 내리고있었다.

처음에는 무엇인가 저어하듯 소심하게, 무엇인가 두려워하듯 낯설게 내리던 눈은 지금은 저 하늘이 다 알고도 말 못하는 아픔의 덩어리, 설음의 덩어리들이 서로 엉키여돌며 커지는지 점차로 함박눈이 되여가면서 적막한 공간을 꽉 채우며 내리퍼붓기 시작했다. 가로세로 칼질을 해대듯 마구 퍼붓는 함박눈, 함박눈…

점점 세차지면서 지금에 와서는 아이주먹만 해진 함박눈송이들은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다가는 깊은 계곡을 따라 불어치는 골바람을 타고 도로 하늘로 떠오르기도 한다.

온통 눈천지여서 하늘도 땅도 산도 골짜기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설이 퍼붓는 이날 발목이 푹푹 빠져드는 눈길을 대구 헤쳐가기만 하는 두사람, 머리에 쓴 개털모자를 성난 매날개처럼 펄러덕거리며 그 장대한 몸으로 지리산의 눈바람을 다 막아보기라도 할것처럼 앞에서 성큼성큼 눈길을 헤쳐가고있는것은 하동군 야산대 대장인 심상태이다. 그뒤로 모자도 없이 맨머리바람에 목수건으로 귀도 동여매지 않은채 부지런히 잔걸음치는 청년은 황갑동이다. 그들은 지금 상급기관들이 거점을 꾸리고있는 지리산 중봉의 비밀아지트에 첫선을 대이러 가는 길이였다.

재를 넘기만 하면 우선 《선집》이라고 불리우는 도중련락원네 집이 있었다.

오전에 거기에 닿은 그들은 그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오후에 주인과 함께 산으로 올랐다. 조동무는 산에 올라 지리산 기본아지트로 가는 정확한 길목을 가리켜주었다. 저우로 보이는 시천내골안으로 해서 늦은목과 장군목을 넘으면 다음 《선집》이 나진다는것이다.

어두워지자 둘은 다시 길을 떠났다. 어두운 밤의 초행길인데다가 그들에게는 한장의 지도도 라침판도 없었다. 그런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밤이 되자 내리던 눈이 비로 변했다. 맨눈만 맞으면서 길을 걸을 때까지만 하여도 그래도 행복하다고 할수 있었다. 우산이나 비옷이 있을리 만무하였다. 차거운 눈비는 무명옷을 적시고 들어와 몸을 얼구었으며 좀 지나서는 옷거죽이 과줄처럼 꿋꿋해져서 벌그럭거리는것이 막 움직이기도 힘들어졌다. 신다리와 사타구니에 언 옷이 쓸리면서 쓰려오는 바람에 걸음이 잘되지 않았다.

늦은목에 채 못미치여 절간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를 내원골이라고 하였다.(이 내원골은 퍽 후에 녀성으로서 마지막지리산빨찌산이였던 정순덕이 나서자란 마을이다.) 절간의 주변에는 삼밭이 많았는데 왜놈들이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 강제로 심도록 한것이였다. 그 삼밭들에는 울타리가 없었다.
심상태와 황갑동이 너무 몸이 얼어들어와서 그 내원골 절간아래의 한 농가를 찾아들려고 할 때였다. 그 집뒤 삼밭지경의 고구마밭자락에서 무엇인가 깊이 파놓은 물도랑에 빠져서 첨버덩거리는 소리와 함께 간간이 성난 엄지메돼지의 꾸월꾸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걸구라도 맞다들렸나싶어 놀라서 피해가려던 그들은 산돼지가 덫에 걸린것 같은 예감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았다. 아닌게아니라 집주인들이 만들어놓은 이 고장특유의 함정(겉에는 눈우에다가 슬쩍 고구마들을 놓아주고 아래에는 땅구뎅이를 맞춤히 파놓고 거기에 아주 매끄러운 긴 참대통들을 얼기설기 가로세로 건네놓아 만든다. 아무리 큰 메돼지라도 고구마를 주어먹으려다가 그사이에 한번 쭐 빠져들기만 하면 발을 아무리 버둥거려봤댔자 도저히 빠져나올수 없는 그런 함정이 되는것이다.), 바로 그 함정에 요란히 큰 메돼지 한마리가 걸려든것이였다. 새끼들은 몸집이 작으니까 대나무들 짬새로 빠져들어가 도랑창의 물속에서 첨버덩거리고있는것이였다.

주인들에게 우선 알리려고 들렸더니 집주인은 어디로 나가고 없고 할머니가 열두서너살가량 되여보이는 손녀를 데리고있었다.

손녀는 때묻지 않은 매우 참하고도 야생적인 미를 가지고있는 이쁘게 생긴 처녀였다. 단발머리손녀는 함정에 걸구 한놈이 빠졌다는 소리를 듣더니 그 정기도는 두눈에 반짝 불꽃을 달면서 제꺽 일어나 뛰쳐나오더니 토방마루 한쪽에 비스듬히 세워져있는 죽창을 틀어잡고 따라나섰다. 그 날랜 동작과 사내애같은 용단에 황갑동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 콩새만 한 처녀애의 작은 몸 그 어디에서 그런 용단이 나오는지, 겁도 없이 죽창으로 그 무섭게 생긴 메돼지의 상통을 면바로 찍어대는지 실로 경탄하게 되였다.

그들은 메돼지를 창과 몽둥이로 때려잡았다. 산돼지는 산속에서 숱한 도토리를 주어먹으며 키운 힘을 다 짜내여 꽥꽥 고함을 질러댔다. 나중에는 나무재를 잔득 담아온 큰 자루속에 대가리를 틀어박아 그 소리를 죽여가지고서야 억지로 숨이 넘어가게 만들수 있었다.

어찌나 큰지 심상태와 황갑동 둘이서 목도를 하여 겨우 집마당에까지 날라왔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른다기에 그들은 산돼지를 손질해줄수밖에 없었다.

털가죽을 벗기고 각을 떠서 그중 살진 돼지다리 하나를 솥에 넣고 삶았다.
메돼지고기는 좀 서거덕서거덕 씹히는 맛이 독특하고 집돼지고기처럼 눅진하지 않아서 좋았다. 순대도 토종돼지의것과는 또 다른 별맛이였다.

마음이 유쾌해진 집식구들과 나그네들은 오랜만에 한상 잘 번질거놓고 입가녁들이 번질번질해지도록 실컷 고기추렴을 하고나니 아무 생각도 없어졌다. 갑동은 오랜만에 썰썰이를 뚝 떼고나니 기분이 괜찮았다.

(젠장, 투쟁의 길은 첫걸음부터 간고하기만 한줄 알았는데 이런 생각지 않던 포식의 한때도 있는게라. 허허.)

인심후한 집주인들은 지리산에 큰뜻을 두고 사는 사람들임이 분명한 두 선요원에게 떠날 때 돼지고기장졸임까지 만들어 싸주었다.

마음 무던하고 인정깊은 이 집 사람들은 원래 이아래 삼장면 소재지에서 소작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주놈의 장리쌀을 가져다 먹은것이 엄청난 리자가 붙어 큰 빚이 되여버렸다는것이다. 지주놈의 그 불같은 빚재촉에 더는 견딜수 없게 된 그들은 어느날 깊은 밤에 솔가도주하여 이리로 옮겨오게 된것이다. 할머니는 악착한 지주놈이 자기네가 이 산골로 이사온것을 알아채면 언제건 들이닥쳐 그 빚값으로 어린 손녀애를 끌어갈지 모른다고 걱정을 했다. 심상태와 갑동이가 떠나려고 할 때 처녀애가 자기도 따라가 유격대가 되겠다고 간청을 하는 바람에 딱하기 짝이 없었다.

(네가 유격대에? 다른 집 처녀들 같으면 집에서 바느질, 뜨개질이나 배우면서 고이 자라거나 귀동녀로 응석을 부릴 나이가 아닌가.)

갑동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그 생각은 기특하다만 나이도 어리고 콩알만 한 네가 산에 올라와서 어떻게 그 악독한 놈들과 맞서 싸운다고 그러니?》

《뭐 싸움을 나이와 키를 가지고 하나요. 마음을 가지고 하지요.》

《그 말은 옳다마는 너는 아직은 안돼. 좀더 커야지. 지금 입산했다가는 괜히 어른들의 등에 업혀나 다니기 쉽상이지.》

《아저씨는 나를 어린애로만 여기는것 같은데 아까 메돼지하고 싸우는걸 못 봤나요.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업혀다니진 않을테니 저를 꼭 데려가주세요. 네? 아저씨!》

《허, 이거 야단났군. 우리 이렇게 하자. 이제 삼사년 더 지나서 네가 빨찌산녀대원으로 싸울만 하게 되였을적에 내가 꼭 우정 너를 데리러 와줄게.》

《좋아요. 그렇지만 아저씨가 그때 오면 나는 이미 여기 없을거예요.》

이러며 눈물을 똑똑 떨구는 콩새같은 처녀를 뒤에 남기고 그들은 다시 바쁜 길을 떠났다.


3
 

그날 아침 내원골을 떠난 그들은 장군목에 이르러 령을 오르다가 무섭게 무너져내리는 산사태가 진데서 일생을 두고도 다시없을 생각지도 않던 행운을 만나게 되였다. 한것은 겨우 허우적거리며 눈구뎅이를 빠져나온 그들이 눈사태가 다 쓸어가지고 내려간 바위등판에 올라 좀 숨을 돌리고있는데 어디선가 칡뿌리냄새 같은것이 진동하였다. 그 냄새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무슨 무우 같은것이 드러나있었다. 눈사태가 쏟아질 때 땅에서 뿌리채 빠져나와 한절반 눈에 묻힌 모양이였다. 눈을 마저 파헤치고 꺼내보니 칡뿌리 같기도 하고 큰 도라지 같기도 한 좀 누르스름한 빛이 도는것인데 잔뿌리는 다 끊어져나가고 몸뚱이뿐이였다. 하도 냄새가 좋아 바위에다 쳐서 깨뜨리고 본즉 언 무우 같은 그속에는 노르스름한 물 같은것이 고여있었다.

그것을 둘이서 나누어 심상태는 그 칡뿌리 같은것만 짓씹어서 먹고 갑동은 그 아릿치근하고도 달콤한 맛이 나는 물까지 말짱 다 마셔버렸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그들은 그것이 백도라지거나 칡뿌리인줄로만 알았지 200∼300년이상 묵은 굉장히 큰 산삼, 그것도 약효가 세상 제일이라는 지리산의 동삼이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오후가 되자부터 눈까비가 그냥 쏟아져내린다는데 조금만 걸어도 온몸이 얼어서 곧 두사람은 얼음덩어리가 되여버렸다. 얼어드는 옷을 자주 몽둥이로 때려서 부시지 않으면 한걸음도 전진할수가 없었다.

첫눈치고는 얼마나 많이 내려쌓였는지 그야말로 강설이였다. 그저 허리를 치는 눈인것이 아니라 어떤데는 키를 넘어 눈밖으로 목만이 나타나는 형편이니 같이 가던 사람을 서로 잃어버릴 지경이였다. 갑동은 눈의 바다속을 뚱기적거리며 헤염쳐가다싶이 하면서 언제인가 강대선이 혁명이란 깊은 눈길과도 같다고 하던 소리가 생각키웠다. 자기들이 얼마나 왔으며 이제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 잘못하다가는 오도가도 못하고 이 깊은 눈속에서 영영 헤여나오지 못하고 얼어죽을수도 있다는 생각까지도 들며 겁이 더럭 났다.

그렇게 밤새 눈속에서 허우적대며 또 한고개를 넘었다. 아침이 밝아오고있었다.

낮에 둘이 나누어 먹은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꼭 극약에 취한 사람처럼 정신이 흐리멍텅해왔다. 눈이 가물가물 감기는것이 문제였다. 갑동이 애써 정신을 가다듬으며 한걸음한걸음 비틀비틀 산을 내리는데 앞에서 걷던 심상태가 저만쯤에서 허리가 넘는 눈속에 말뚝처럼 꼿꼿이 선채 움직이지 않았다. 조는것이 아니라 아예 자고있었다.

갑동이 걸음을 멈추고 저아래를 내려다보니 《선집》이 나지리라고 기대했던 바람잔 곳에 민가 같은건 전혀 보이지 않는데 난데없는 불빛수닭 한마리가 새하얀 눈우에 그냥 서서 울고있는것이 아닌 가. 아마 농가는 지붕을 넘게 내린 강설에 묻혔는데 그 닭만은 그냥 내리는 그 눈을 밟으면서 지금의 그우에까지 용케 올라선것 같았다. 집을 잃어버리고도 그 수닭이 눈밑에 묻힌 사람들에게 충실히 새벽을 알려주느라고 계명을 맞추어 온 산촌을 향해 빨간 변두를 쳐들고 꼬끼요오- 꼬끼요- 하고 홰를 쳐가며 그 청청한 목소리로 울어예고있는 정상은 참으로 희한스럽고도 눈물겨운것이였다. 그것은 지리산의 설경이 빚어낸 아름다운 자연의 극치였으며 모든것을 묻어버리려는 모진 폭설도 딛고 일어서는 그 얼어죽일수도 없는 생명력의 억센 과시였다.

《심동지, 싸게 두눈을 버쩍 뜨시고 저앞을 보십시오. 눈우에서 수닭이 울고있어요, 수닭이!》

수닭이 울고있다는 그 소리에 정신이 버쩍 든 심상태는 언 손등으로 두눈을 비비며 갑동이가 가리키는쪽을 내려다보았다.

《오, 정말이로구만. 저게 웬 수닭이여?》

《글쎄말입니다.》

《저 수닭도 사람들을 따라서 입산했다가 집을 잃어버린게 아니여? 허허.》

이때 불빛수닭이 서있는 옆에서 눈에 묻혀 보이지 않는 그 집 부엌속에 든 개가 멍멍 짖는것 같은 소리가 마치 눈을 한웅큼 입에 물기라도 한듯 둔하게 들려왔다. 그래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그 닭이 서있는데서 가까운 곳 눈무지우에 한뽐쯤 드러나보이는 통나무굴뚝에서 아침연기 같은것이 천연스레 피여오르고있었다. 눈이 강산같이 내린 날 아침에 호을로 눈지붕에 올라 홰를 쳐 우는 불빛장닭의 그 인상적인 모습과 꼭대기까지 눈에 묻힌 진대나무통굴뚝에서 눈을 녹이며 모락모락 피여오르고있는 아침밥 짓는 그 연기, 어디선가 개짖는 소리가 다시 들려올상싶은 고요한 적막! 그야말로 이 세상 그 어떤 명화가의 상상으로도 그려낼수 없는 지리산의 겨울풍경이였다. 또한 그것은 눈에 묻혀 보이지 않는 그 집 지붕밑에서도 생활이 약동하고있는 지리산사람들의 강한 생활력을 생동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훌륭한 화폭이였다.

그에 마음이 끌린 심상태와 갑동은 힘을 내여 그 집을 찾아 눈밑으로 굴길을 내다싶이 하면서 기를 쓰고 다가갔다. 연기나는 굴뚝을 유일한 표적으로 집이라고 짐작되는 곳까지 당도하기는 했지만 주인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연했다. 대문간이 어느 바루인지…

《주인 계십니껴? 여보시오, 주인님! 살아있으면 어디 대답이라도 해주소이다.》 갑동은 어방대고 소리쳤다.

한참 있더니 깊은 눈무지속에서 마치 아득한 미궁에서 울려나오는듯 한 웬 남자의 석쉼한 대답소리가 울려나오는것이였다.

《거 밖에 오신게 뉘시오? 이런 날 눈에 빠져죽어삘려고 길에 나섰소? 얼어죽지 않겠거든 집속은 뜨뜻하니 싸게 안으로 드시오. 내 이제 눈을 치고 문을 열어드릴께니…》

《고맙구만이라.》

좀 있더니 저 앞쪽의 눈이 움씰움씰 움직이는것으로 보아 안에 있는 주인들이 나와서 부엌문을 열기 위해 역사질을 하는것 같았다.

심상태와 갑동이도 그리로 맞받아 눈전호를 파면서 나갔다.

주인들이 나와 부엌문앞의 눈이라도 대충 치고 열어주는 문으로 두사람이 들어서보니 어두운 부엌칸과 방안에서는 고콜불이 타고있었다. 심상태가 그 집 주인인듯 싶은 머리에 상투를 튼 로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이거 문득 이런 날 집에 뛰여들어서 안되였습니다.》

《이런 눈깊은 날에도 다니지 않으면 안되는것이 산사람들인데 워찌하겠소.》 주인은 예민한 관찰력으로 첫눈에 자기의 접선대방을 알아보는것 같았다. 간단한 암호교환이 있고나서 주인이 반색을 지었다.

《하동군 야산대에서들 오셨지요? 나는 김명석이라는 사람인데 기다렸소이다.》

《아 그렇소이까. 저는 야산대 대장이고 이 동무는 우리 련락원입니다. 로인님!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래도 용케들 이 눈속에 묻힌 집을 찾았구만. 여그꺼정 오느라고 얼마나들 고생하셨소.》

방에는 아주 젊은 녀자가 앉아있었다.

김명석이 그 녀인에게 《여보》를 쓰면서 이분들이 몸이 다 꽁꽁 얼었으니 화독에 뜨거운 숯불부터 부삽으로 듬뿍 떠다가 올리라는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가 령감의 안해인것을 알고 두사람은 의혹을 가졌다.

듣고보니 나이차이가 심한 그들부부에게는 그럴만 한 가정사가 있었다.

김명석은 원래 전라도사람이였다. 하루는 마을에 있는 지주집에 가서 소작붙일 땅을 좀 달라고 애원을 했다. 그랬더니 고약하기 그지없는 불망나니 같은 그 집 젊은 지주놈이 마당가에 서있는 자기네 개를 가리키면서 땅을 줄테니 저 우리 개의 동생이 되지 않겠는가고 야료를 먹이는것이였다. 그는 모욕감을 느꼈지만 소작을 지어서 부모님들을 봉양해야겠기에 그까짓 땅만 주겠다면 개동생이면 개동생 마음대로 하라고 말해버렸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저 《여 우리 집 개동생, 개동생》 하고 놀려대던것이 나중에는 그 말이 다르게 번져져서 옛말에 있는것처럼 《개똥쇠, 개똥쇠, 전라도 개똥쇠》가 되고만것이다.

더는 참을수 없게 된 김명석은 사람을 순식간에 《개동생》으로, 《전라도 개똥쇠》로 만들어버린 그 덜돼먹은 지주놈에게 어느날 벼르던 매를 안기고는 고향마을을 떠났다. 생각끝에 도경계를 넘어 경상도땅에 건너온 그는 지리산밑 룡산리마을에 들렸었다. 거기서 며칠 묵으면서 어느 한 가난한 집의 열네살 나는 처녀를 업고 백계사가 자리잡고있는 순두리골로 들어왔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벌써 30을 넘었었다. 그후 여기 내원골로 옮겨앉아 길가에 여러가지 신선녀들을 돌로 쪼아서 만들어세운데서 얼마 떨어진 곳에 윤판집 (귀틀집) 하나를 지었으니 바로 이것이 지금 살고있는 집이였다.

그때부터 그는 왜놈들 꼴보지 않는 여기 깊은 산골에 들어와서 부지런히 일하기 시작했다. 좋은 흙을 지여다가 좀 넓다란 돌판에 펴고서 논을 풀기도 하고 집뒤에 불을 지르고 화전을 일구어 감자농사도 한껏 지었다. 축산도 하고 양봉도 하고 뱀도 잡아서 팔았다.

지금은 일정한 토대가 잡혀 소만 해도 엄지소, 중소, 하릅송아지 하여 세마리씩이나 있다고 한다. 어디선가 웅- 하는 비행기소리 같은것이 들리기에 물었더니 헛간에 벌통만 하여도 60통이 넘는다고 한다. 베개통만 한 감자들이 여기저기 떼굴떼굴 굴러다녔고 꿀만 해도 목청, 석청 여러가지였으며 돼지옹노, 노루옹노를 놓아 고기맛도 종종 보고있었다. 도토리로 술도 빚어 마시는지라 별로 그리운것이 없다는것이다. 남다른 민족적의분감과 애국심을 가지고있는 김명석은 이웃들의 마음을 끌어서 다 자기 사람들로 만들었으며 얼마전부터는 조직의 선이 닿아 야산대들의 투쟁을 적극 도와나서고있는 사람이였다.

아침에 젊은 부인이 음식을 들여온것이 삶은 감자에다가 시원한 무우동치미, 산꿀을 푼 꿀물이였는데 감자가 얼마나 크고 단지 아리고 매운맛이란 전혀 없었다. 따끈따끈한것을 뚝 끊어서 불면 거기서 오르는 김과 함께 흰가루가 다 날아날것만 같았다.

중봉에 선이 닿아야 할 시간이 급박하여 아침식사를 하고는 이내 떠난다는노릇이 밤새 언몸이 녹아서 풀어진데다가 식곤증까지 와서 좀 눈을 붙였다 가기로 했다. 그런데 따끈따끈한 구들장을 등에 지고 한쪽 아래켠에 누운 그들은 어제 오후에 캐여먹은 알수 없는 약기운까지 온몸에 퍼지면서 얼마나 깊이 취했는지 그때로부터 하루가 지나도록 내처 잤다. 주인들이 아무리 깨워도 좀체로 잠을 깨지 못했다.

옹근 이틀이 지나서야 심상태가 겨우 먼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릴수가 있었다.

《야, 이게 뭐야?》

오랜 잠에서 깨여난 심상태는 자기들이 이틀씩이나 잤다는 소리를 듣고는 흠칫 놀라며 아직도 요란히 코를 골고있는 황갑동이를 두들겨깨웠다.

잠을 깨지 못하던 두사람에게 집주인이 오던 길에 무엇을 먹었는가 물었다.

갑동에게서 어제일의 자초지종을 다 듣고난 김명석은 그제야 알겠다는듯이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크게 소리내여 웃는것이였다.

《옳거니, 내 어쩐지 글쎄… 선생님들이 어제 산길에서 캐여먹은 그 사발통만 한것은 칡뿌리도 아니고 도라지도 아니요, 수백년은 실히 묵은 산삼이 틀림없시다. 그것도 세상에서 약효가 제일로 센 동삼말이요.》

《예에? 동삼이요?》

《앗다, 그것도 모르고 한꺼번에 그 큰 산삼을 동삼물꺼정 다 마셔버렸으니 처음 우리 집에 들어설적부터 두 선생의 몸에서는 산삼내가 풍기여나와서는 방안에 진동하길래 웬일인가 했더니 그리된 일이로구만. 동삼에 잔뜩 취했는데 그래도 그만하기 다행이지. 그 누구들처럼 영영 잠에서 깨여나지 못하고말번 했구만요.》

갑동은 그 소리를 들으니 속이 다 철렁해왔다. 잘못했더라면 이 지리산 깊은 산중의 집속에 묻혀 길이길이 잠들어 그만 《고!》 하고말번 하였기때문이였다.

김명석은 두사람을 안심시키며 웃어보였다.

《선생이 저 하늘이 굽어살펴 지리산이 선물로 보내준 수백년 묵은 동삼을 먹었응께 백년장수할터이니 어디 한번 기운을 내여 나라의 통일도 앞당겨오시오!》

《고맙습니다, 로인님!》 갑동이 사례하였다.

《그리고 내 동지들께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나는 이제는 나이가 많아 마음뿐이지만 우리 이 열다섯살 먹은 아들을 데리고 입산하여 어깨에 총을 메워주었으면 하는것이 나의 제일가는 소원이웨다.》

심상태가 크게 감심되는바가 있어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알겠습니다. 열다섯살이면 아직 총을 멜 나이는 좀 못되였지마는 이번에 일을 다 보고 돌아가던 길에 다시 들려서 아드님을 데리고 떠나도록 하리다.》

《고맙습니다. 내 대장님의 이 은혜를 언제면 다 갚게 될는지…》

《그럼 저희들은 이만 페를 끼치고 시간이 없어 떠나야겠습니다.》

로인내외에게 진정에 넘친 대접과 성실한 봉사에 사의를 표하고 난 두사람은 김명석이 구체적으로 대여준 길을 따라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밖에 나서는 그들을 이번에는 언제 터졌는지 모를 세찬 눈보라가 맞아주었다. 처음 시작부터 간고하던 갑동이의 첫 임무수행의 길은 종점에 이를 때까지도 고난에 찬 길인가싶었다.

 

4
 

눈보라!

눈보라! 지리산의 눈보라!

이놈의 겨울이 어쩌자고 이런 세찬 눈보라를 몰아오는것인지? 도대체 그놈의 눈바람이 어디서 시작되여 그 어디로? 왜서 그토록 노호성을 질러대며 휘몰아쳐오는것인지.

황갑동이 그 눈보라속을 허우적거리면서 가다가보니 큰 메돼지 한마리가 사지가 다 얼어서 더 가지 못한채 눈속에 네발을 꺾고 너부러져버린것이 눈에 띄였다. 한 떡갈나무의 아래아지에 얼어죽었는가싶게 메새 한마리가 붙어서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가고있는 저앞에 서있는 큼직한 사슴 한마리가 사람이 옆에 가도 놀라서 뛰지 않아 자세히 보았더니 그만 두눈알이 다 얼어서 마치 유리알처럼 번들번들, 눈보라속을 헤치며 걸음을 옮기던 그 자세로 순한 짐승이 얼어죽으면서도 그 잘 생긴 두뿔만은 눈속에 묻지 않으려고 높이 쳐들고서 그만 얼음조각마냥 굳어져버렸구나.

그래도 이 지동치듯 하는 눈보라속으로 죽지 않고 계속 끈지게 뚫고나가고있는것은 인간이였으니 그들은 혹한에도 얼지 않는 다른 또 하나의 심장을 더 가지고있다고 할수도 있는 산사람들인것이다.

그 눈보라도 눈보라였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것은 눈사태였다. 원래 지리산의 하봉에는 그 열매를 따서 말리워 가루를 내서는 국수랑 눌러 봄량식보탬을 하는 개산죽이, 여기 중봉에서부터는 열매가 열리지 않고 키는 보다 큰 진짜 산죽밭이 있었다. 두사람은 한고개를 넘어 산을 내리다가 깊은 눈에 묻혀 겨우 꼭대기나 보일가말가한 넓은 산죽밭에 그만 빠져들고말았다. 산죽들이 언데다가 눈까지 묻어서 어찌나 매끌매끌한지 둘이 다 아래로 미끄러내리는 바람에 그만 큰 눈사태를 일으키고말았다.

지리산에서 산죽밭의 눈사태속에 묻히는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황갑동은 《아- 심동지》를 부르며 구원을 청하듯 돌아보았으나 그도 그 눈사태를 타고 따라내려오고있었다. 두사람은 산죽밭우에서 마구 딩굴기도 하면서 저아래 개울이 얼어붙은데까지 사정없이 미끄러져내려 깊은 눈속에 푹 박혀버리고말았다.

사방이 눈천지여서 새까만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허우적거려봐야 어디로 헤여나가야 할지 향방을 찾을길이 없었다. 이 눈속에서 헤여나가지 못하고말면 세상을 다 보는 판이다. 밖에서 눈보라의 성화와 단련을 받다가 이 눈속에 들어오니 훈훈하고 편안한것이 좋았다. 차라리 이 눈밑에서 한잠 푹 자다가 그대로 세상 모르고 죽든가 봄에 눈이 다 녹을 때까지 동면이라도 할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는 없었다.

(내사 통일의 심부름군이 되겠노라고 하구선 이렇게 첫 눈보라길의 눈사태속에 묻혀 그냥 죽어버릴수야 없는게라. 어떻게 하든지 여기를 헤쳐나가야지!)

눈사태의 무서운 세례! 이것 역시 그로서는 처음 당하는 엄혹한 지리산의 시험이였다.

갑동은 아까 자기가 눈사태를 타고 내려와 개울가에 들이박히던 생각이 났다. 그러니 뒤로는 절대로 안된다. 얼어붙은 개울을 찾아내여 그 반대켠 산으로 기여올라가 눈을 헤쳐야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속에서 그래도 어루짐작을 잡아 두더지처럼 정신없이 눈속을 헤집으며 올라갔더니 어디서 빛이 새여들어오는지 좀 훤해지는것 같은감이 느껴졌다. 일정하게 더 기여올라가서는 멈춰서 아래의 눈을 두발로 다지여가면서 그걸 딛고 올라서기 시작했다. 드디여 머리가 눈우로 불쑥 솟아올랐다.

(아, 하늘이다! 해다! 세상이다!)

갑동은 환성이라도 지르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는 사태를 헤치고 나오자마자 심상태 야산대 대장부터 찾아보았다.

구사일생으로 먼저 눈사태속에서 헤여나온 심상태는 황갑동이 그 눈속에 빠진채 그만 죽어버린줄로만 알고 혼자 멍하니 서서 망연해 서있었다.

《심동지! 나 여기 있구만이라.》

《갑동이!》 심상태는 허우적이며 마주 달려와 갑동이를 붙안아주었다.

《니가 어디서 솟아나왔노? 천명이야 천명이시!》

《대장동지!》

둘이는 서로 꽉 부둥켜안았다.

강행군은 계속되였다.

사태를 겪고나서 다시 산을 오르다보니 그만 맥이 진한데다가 눈보라는 조금도 잦지 않고 더하였다.

그 눈보라는 저앞에서부터 눈을 쓸어가지고 오면서 가슴을 뒤로 밀쳐버리는가 하면 갑자기 홱 앞으로 옷자락을 채여 어디론가 한참 끌고가다가 팽개치기도 했으며 뒤에서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 물속을 헤쳐나갈 때처럼 영 걸음발을 한번 쳐들었다가는 다시 내려놓을수도 없게 만들기도 했다.

걸음걸음 투쟁의 길이란 이렇게도 험난한가싶어지고 미군의 남조선강점과 리승만도당의 《단정》음모로 하여 한번 잘못 비꼬이기 시작한 통일성취를 위한 길이 이처럼 멀고도 암울한가싶어지는 간고한 길, 이제 와서는 돌아설수도 없고 절대로 돌아서서는 안될 삶과 투쟁, 생사존망을 판가름하는 결사의 길이였다.

더는 한발자욱도 걸음을 옮길수 없을 정도로 천근만근으로 몸이 무거워진 황갑동은 가던 이대로 눈우에 어푸러진채 눈보라에 휩싸여 그냥 눈봉분이 되여버리고싶어지는 심정이였다. 그런데 이때 앞에서 자기의 큰 체구로 눈보라를 막아주면서 내처 머리숙이고 걷고있던 심상태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는것이였다. 입대하여 훈련도 단련도 별로 받지 못한 빨찌산의 신대원으로서 난생 이런 간고한 행군이 처음일 갑동이의 견디기 힘들어하는 얼굴에서 그 점점 커져가는 내심의 동요를 읽었던지 그는 다 얼어붙어 말도 만들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는 눈으로만 《갑동이, 힘들지?》 하고 사려깊게 물어주듯 한번 큰 눈을 끔쩍여보이며 싱긋 웃어줄뿐이였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순간에 동지며 지휘관인 심상태가 자기에게 보내준 그 말없는 격려가 얼마나 갑동에게는 고무로, 힘으로 되였는지 몰랐다.

그들이 그야말로 아무도 보지 못하고 아무도 알아주는이 없는 이 지리산의 깊은 산중에서 말 못할 고생을 다하면서 간난신고끝에 림시아지트가 자리잡고있는 산상봉에 다달은것은 그 이튿날 아침시간이였다.

산정의 보초소를 지키고있던 한 젊은 대원이 나와 그들을 지휘성원들이 자리잡고있는 자연동굴까지 친절히 안내하여주었다. 거기는 적후속의 우리 구역으로서 완전히 딴세상 같았다. 우선 자연동굴앞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불타고있는 우등불이 그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갑동이를 우선 그 우등불가에 세워준 심상태는 이곳 질서가 그런지 지휘부의 로영기조직부장이 들어오라고 한다면서 자기만이 동굴속으로 안내되여 들어가는것이였다.

갑동은 일순 다소 서운했다. 나도 같이 험한 눈보라길을 헤쳐온 련락원인데 이곳 간부들이 나와서 손이라도 한번 뜨겁게 잡아주면 못쓴다던가. 그러나 리해하여야 했다. 내가 무슨 큰일을 하고 온 대단한 존재라고 지휘부의 높은 간부들이 직접 나와서 만나까지 준단 말인가. 그러면서도 그 지휘부안에서 벌어지고있는 일에 마음써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굴안에서 두런두런 말하는 소리가 공명되여나왔는데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통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좀 있자 그 로영기부장인가 하는 사람의 청높은 소리가 갑동에게까지 들려왔다.

《… 그렇게 늦어가지고도 무슨 할말이 있는가? 어느 공동묘지에 가보시오. 구실없이 죽은 사람이 어디 하나나 있나, 글쎄 정신들이 있소, 정신들이… 이 정세가 엄혹한 때에 오다가 동삼을 캐여먹고 귀틀집에서 약기운에 취해서 이틀씩이나 구들바닥에 나자빠져서 등을 지지면서 자다니?

야산대 대장동무는 선이 처음이니까 경험이 없어 그럴수도 있는데 우리가 무엇때문에 선을 달려다니는 선요원들을 금싸락이라고 하는지 아오? 그 련락원이 목숨으로 담보하고 쟁취해오는 그 레포가 중요하고 그 시간이 금싸락처럼 귀중해서 그런다는걸 알아야지요. 젊은 련락원에게 끼치는 영향이 나쁘단 말요. 대단히 잘못됐소, 대단히! 알겠습니까?》

《… 알겠습니다. 부장동지, 금후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각성하겠습니다.》

밖에서 공연히 불안으로 두근거려지는 가슴을 안고 초조히 기다리고있던 갑동이 어딘가 풀이 죽어 나오는 심상태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대장동지! 조직부장동지가 뭐라고 그럽니까. 대관절?》

《뭐긴 뭐라고 할게 있소. … 이 추운 겨울날 먼 눈길을 뚫고오느라고 수고를 많이 했다고 칭찬을 하더구만, 허.》

《칭찬을 해요?》

《그럼…》

《그게 다예요?》

《저… 그리고 련락원으로서 첫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 황갑동동무에게 지휘관들의 감사를 전… 전해달라구 하더구만.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혹시 표창하게 될는지 누가 알겠소. 허허.》

《헝 표창이요? 거짓말이지요. 저, 거시기 우리 지리산의 빨찌산들, 큰 공을 세운 영웅전투원들의 가슴에 달아줄 그런 메달이나 훈장 같은건 아직 내정되지도 않았답디다. 원.》

《뭘 심각해져서 그러우? 갑동이, 우리가 그런걸 바라고 입산한건 아니지 않나.》

《그래두 그렇지요. 죽도록 고생하면서 선이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왜 수고많았다고 한마디 말로라도 품 안드는 평가야 못해주겠나요. 말은 바른대로. 만나자마자 추궁부터 하러 드니 이거야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솔직한 소리로 저넌 첫걸음부터 기분이 썩 좋지럴 않구만이라. 아마 이런것이 혁명이였는지.》

《황동무의 서운해하는 그 심정은 리해할만 하오. 그렇지만 우리 그런건 바라지 말기요. 앞으로 인민이 그 수고를 알아주고 통일된 조국이 우릴 알아주면 되는것 아니겠소. 그래서 원체 빨찌산엔 그런 메달과 훈장이 아예 없는게거든. 그러니 우린 칭찬이나 표창을 바라지 말고 비판을 구하고 지휘관들의 욕을 제가 스스로 찾아가서 먹는 그런 량심적이고 자각높은 빨찌산이 되자구요!》

《…》

《그리고 오늘 내가 받은 지적을 참작해서 앞으로 공작을 실수없이 더 잘하게 되면 그게 다 혁명에 리로운것으로 되지 아니하겠소.》

《…》

황갑동은 말이 없이 무겁게 머리만을 끄덕여보였다.

《내 동무가 그렇다는건 아니지만서두 어떤 사람들처럼 조금만 뭘 해놓고는 우를 쳐다보며 무엇인가를 바라는것은 교예사들이 던져주는 사탕이나 과자를 받아먹으려고 재주를 피우는 곡마단의 재롱스러운 원숭이들이나 하는 놀음새지 우리스스로의 요구에 의하여 혁명에 나선 투사들은 그래서야 안되지.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못내 바라던 평가나 대가가 없게 되면 이내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해지며 자기에 대한 지휘관들과 조직의 신임을 저울질해보면서 직위와 처우에 대한 불평불만을 가지게 되지. 나아가서는 혁명전체에 대한 의견을 부리며 삐뚤어진 마음을 먹고 탈선해나갈수도 있는거요. 비근한 실례이기는 하지만 우리 입산자들중에도 8.15직후 어디에서 정치사업, 청년사업을 하다가 자기의 과거투쟁공적으로 보아 꼭 군당위원장이나 군민청위원장을 시켜줄줄 알았는데 시키지 않자 의견을 가지고 그 단순한 하나의 조건때문에 남으로 나왔다가 최근에 자기를 후회하면서 뒤늦게나마 다시 산으로 찾아든 그런 사람들도 실제로 있는것 아니요.》

《…》

《… 내 생각에는 혁명에서 뭘 받아가지려고 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자기를 바쳐가는것이 바로 우리가 하려는 혁명인것 같소.》

너무 심각해서 듣는것 같은 황갑동에게 심상태가 년장자다운 아량을 보이며 우선우선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황동무, 그러지 말고 그 고운 얼굴 꾸겨지지 않게스리 이마살을 쭉 펴고 한번 활짝 웃어보잉- 칭찬 대신 욕을 듣고 기분이 좀 언짢을 때 웃는것이 진짜웃음이지.》

《…》

《허허 갑동이, 우리 사랑스러운 애기곰이여. 이 경상도 문둥이같은 사람아. 그래 혁명도 뭘 바라고 하노? 헛허허.》

자기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우야 우스개소리를 섞어하는 야산대 대장의 그 마지막말에 황갑동이도 손을 뒤더수기로 가져가며 따라웃고말았다.

그는 웃기는 했지만 그날 심상태대장이 자기를 바치는것이 혁명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혁명도 뭘 바라고 하겠느냐고 일깨워주던 그 의미심장한 말에서 받은 충격은 자못 큰것이였다.

그것은 이 듬직한 군책임자인 심상태가 로파심어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제 먼길을 가야 할 황갑동이의 앞길에 미리 깔아준 성장의 디딤돌과도 같은 그런것이였다. 또한 그것은 투쟁의 첫걸음을 힘들게 떼여준 지리산의 눈보라가 그에게 깨우쳐준 귀중한 생활의 교훈, 투쟁의 철리이기도 하였다.
 

5
 

갑동이 고향에서 헤여졌던 덕금이와 다시 만난것은 덕유산아래의 북상면 월성리에 있던 지방조직과 선을 이으러 그 고장에 공작을 나갔을 때였다.

그는 례의범절이 밝고 품성이 고왔으며 기지있는 재담솜씨도 가지고있어 대중선전사업도 곧잘한다고 하였다. 특히 그가 연설도 류창하게 하고 그 뚱뚱한 몸으로 뚱실뚱실 춤까지 출 때에는 돌미륵들까지도 웃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든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월성리마을사람들은 그를 모두 허물없이 《뚱보동무, 뚱보동무!》 하고 부르면서 아끼고 존경해준다고 했다.

갑동은 월성리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 녀자가 뚱보라는 소리에 대뜸 그가 덕금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넓은 지리산일판에 몸이 충실한 처녀가 어찌 덕금이만이랴 하는 생각에 기연가미연가 했다.

그러면서도 호기심과 기대를 가지고 그 덕금을 그리게 되는 애모쁜 심정을 어찌할수 없었다. 어느날 민주마을인민들의 평이 좋은 그 녀동무를 비밀사업에 인입하라는 조직의 지시를 받고 찾아가 덕금이를 만났을 때 너무 기뻐 어쩔줄을 몰랐다. 덕금이쪽에서는 더했다.

갑동이의 팔을 붙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에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얼마간 상하기는 했지만 얼굴은 더 세련되고 고와져보였다. 혈색이 좋아 복숭아빛이 도는 그의 얼굴은 환하고 보통키에 실한 몸은 마치 복슬강아지같이 복스러운데가 있었다. 웃을제면 볼우물까지 파지며 석류씨같이 흰 이발이 반짝 드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상한 매력을 가진 좀 애교있는 뚱보처녀라고 할지.

그는 남들도 첫 대면에 전혀 초면으로 느껴지지 않고 어디선가 만나본것 같은 친밀감을 주는 녀자, 어쩐지 대방에게도 영문모를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고 그럴제면 자신도 쑥스러워하면서 마주 웃게 되는 그런 처녀가 덕금이였다. 여전히 성격은 쾌활하고 대활한 편이였지만 괄랭이는 아니였다. 남자들 특히 총각들앞에 서면 곧잘 수집음을 타기도 했다.

갑동이가 월성리에 간 다음날이였다. 시간을 내여 덕금이를 다시 만나보니 그동안에 우선 투쟁과 혁명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자세, 각오정도가 높아진것이 기뻤다.

(조선이 외세로부터 하루빨리 해방이 되고 어서 남북이 통일되여야 한다. 나는 놈들에게 희생된 대선오빠가 바라던대로 민중의 참된 정치, 김장군님의 정치를 한번 받아보고 죽어도 조선로동당의 기치아래서 죽겠다!)

이런 결심과 각오를 가진 그이기에 모든 일에 적극적이였다.

한번은 덕금이 음식에 몹시 체하여 학교에도 나오지 못하게 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갑동은 그를 찾아 하숙방으로 갔다. 입산하여 동의사에게서 침구료법을 얼마간 배워가진 갑동이여서 체증쯤은 떼줄 자신이 있었던것이다.

고향마을총각이 배에 침을 놓아주겠다고 하자 덕금은 덴겁을 하며 당장 달아나려고 했다. 하기는 새파랗게 젊은 총각이 결혼적년기에 이른 처녀의 배에 동침질을 한다는것은 갑동에게도 멋적은 일인것만은 사실이였다. 그런데 이때였다.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갑자기 경찰놈들이 마을에 뛰여들어 집집을 수색하고있다는 급한 전갈이 왔다. 갑동이 피하려고 하는데 벌써 밖에서 개가 영악스레 짖기 시작하였다.

몸을 피할새 없이 된 갑동은 이 급한 정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하던 끝에 덕금이에게 어서빨리 방에 누우라고 했다. 그리고는 침통을 꺼내들었다. 정황이 긴박한지라 덕금은 부끄럽다는 생각은 줴버리고 할수없이 배를 조금 드러내놓았다. 갑동이 손가락으로 덕금의 명치끝을 눌러가며 침대를 꽂을 때 경찰놈들이 방문을 열어제꼈다. 놈들은 젊디젊은 갑동이 의원이라는것이 믿어지지 않는지 아니면 처녀가 상체를 드러내고있는 모양을 눈요기하려고 그러는지 그냥 버티고 지켜보았다. 덕금은 오직 갑동이를 구원할 생각에 서툰 침질이 아픈줄도 몰랐다. 한동안 지켜보던 경찰들이 사라져서야 덕금은 벌떡 일어나며 몰려드는 부끄러움에 불붙는 얼굴을 두손으로 가리웠다.

《워매, 창피해. 난 이젠 어떡허면 좋아유?》

《허 어떡하기는. 나는 침만 석대럴 공짜로 놓아주었을뿐으로 너무 마음이 급해서 그 난생처음인 존 구경두 못했잉께 절대로 걱정마이소.》

《아유 어물한 사람, 공짜가 뭐예요 공짜가… 엉터리침을 글쎄 세대씩이나 놓으면서 다 보구서는…》

《냉중엔, 나는 그 배의 중심에 나있는 동그래미밖에는 더 본것이 없으니 하등의 량심의 가책을 받을것도 없으니 선생님, 저는 그만 물러나겠소이다.》

갑동이가 자리를 뜨자 얼마 안되여 인차 트림이 나오면서 대번에 얹혔던 속이 쑥- 내려가는것을 느끼며 덕금은 혼자 별 신통한 일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이 일로 하여 더욱 가까와진 갑동과 덕금은 그후 서로 손잡고 공작임무를 잘 수행해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덕금이가 갑동에게 말했다.

《황동지 황동지, 이제부텀은 저는요 황동지만 줄줄 따라다닐라는데 나를 늘 데리고 다녀주지 않을라요? 그러다가 좋을 때도 있을지 알게 뭐나요.》

《에이구 나는 싫캈어요. 헛 그 도람통같은 뚱보를 데리고 산으로 오르다가 굴러내리기라도 하면 나꺼정 거기에 깔려 상할라구요.》

《호, 그렇지 않을거예요. 나는 어쩐지 우리 둘이 같이 다니게 되며는 서로 플라스 마이나스가 되면서 마음과 호흡이 모든데서 잘 맞을것같이 생각되누만요.》

《아니 그와 전혀 반대요.》

《왜서요?》

《첫째로는 덕금이는 녀고를 마친 학교 녀선생이라면 나는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야학생으로서 수준차이가 심하고 둘째로는 그대는 둥실둥실한 호박이라면 나넌 뭐랄지, 거 까나리인셈이니까 우린 서로 배합이 잘…》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첫째로, 수준차이를 놓고 말한다면 저 섬진강물결은 아래로만 흘러내리는것 같지만 남해기슭에 들며는 물결과 파도가 되여가지고 아래서 절벽바위우로 치솟아오르기도 하는 때가 있는것이니 시제는 어느것이 우이고 아래인지 수준차이를 론할수가 없는거예요. 그리고 둘째로, 사람이 크고작고, 몸이 실하고 가는것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한번 감자장사기에 호박에다가 까나리를 넣어서 토장국을 끓여보세요. 얼마나 맛있는가, 호.》

갑동은 까나리를 넣고 지진 호박지지개의 그 구수한 냄새처럼 생활적인 덕금이의 말에서 공부를 많이 한 녀자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후더운 체취를 느끼며 웃어보였다.

《그럼 어디 한번 호박에다가 까나리를 넣고 지져 먹어봐?》

《녜에- 한번 어떤가 그렇게 해서 잡수어보시라요. 어마나, 내가 무슨 실없는 소리를…》

《하하하.》

《호호호.》

둘이는 밸이 끊어져라 웃어댔다.

갑동이 산으로 들어가야 하는 날이 왔다. 그는 생각되고 우려되는것이 있어 덕금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마을을 뜨려고 했다. 그가 자기와 늘 함께 다니자고 한 말이 롱소리만이 아닌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벌써 어떻게 알았는지 새벽에 아지트를 정하고있던 외딴 집을 나서려는데 덕금이 마당앞의 대추나무뒤에 숨어있다가 앞에 막아나서는것이였다. 등에는 무엇을 그리 많이 넣었는지 팽팽한 큰 배낭이 지여져있었다. 이미 결심을 품고 출발준비를 다해가지고 와서 길목을 지킨것이였다.

《아니? 내가 떠난다는걸 어떻게 알고서?》

《가만히 빠져나갈려다가 꼼짝 못하고 나한테 꽁졌지요?》

《그래 도대체 어쩔랴는 심산이여?》

《같이 가줘요.》

《그건 안되제라.》

《왜 안된다는거예요?》

《거긴 그 몸 가지고는 빨찌산 못해요, 절대로.》

《얼마든지 해요, 절대로. 데려만 가주세요.》

《빨찌산들은 내내 험한 산을 많이 타야 하고 신속정확히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며 때로 적의 추격을 받았을적엔 날쌔게 뛰기도 해야 하는건데, 첫째 동무는 둔한 그 몸으로는 높은 산으로 오를수도 없고 둘째는 도람통인께 굴으면 소리가 요란히 나고 셋째는 추격을 받았을 때 동작이 자연히 굼떠 데리고 가지도 못하고 떨구어두고 가지도 못하고 야단이지 않겠소.》

《그래 안된다는거예요?》

《덕금동무는 산투쟁에는 잘 맞지 않는게라 군중공작에랑 능하니까 여기 떨어져서 지방공작이나 맡아하는게 제일로 상책이구만이라. 내 떠날 시간 바빠서 그렁께 그리 알고 여기서 우리 작별합시다.》

《나한텐 살아서 그런 작별 필요없어요. 정 혼자 가야 된다면 싸게 떠나시오.》

《정말 그렇게 리핼 해주니 고맙구만이라. 우리는 앞으로 투쟁의 길에서 다시 꼭 만나게 된다는것.》

《예에- 예 만나겠지요.…》

갑동은 덕금이를 억지로 떼여두다싶이 하고서 지리산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돌아서보니 그가 그냥 먼발치로 따라오는것이 아닌가. 갑동이 가던 걸음을 멈추면 그도 멈추고 다시 걸음을 옮기면 계속 뒤따라오고 하는데는 이런 야단이 없었다. 처녀에게 발목이 잡혀서 얼마 가지도 못한 갑동은 좀 안침진 나무밑에 가서 퍼더버리고앉았다. 그랬더니 덕금이도 저만쯤 와서 앉았는데 도저히 돌아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돌아서기는커녕 조용히 앉아서 혼자 뭘 생각하는것 같더니 저기 앞에 있는 어느 한 고개를 바라보면서 이쪽에서도 들리게 뚱뚱한 몸과는 달리 가늘고 청아한 목소리로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하는것이 아닌가.


봄이 오는 아리랑고개
님이 오는 아리랑고개
가는 님은 밉광이요
오는 님은 곱단이라네
아리 아리랑 아리랑고개는
님오는 고개
넘어넘어도 우리 님만은
안 넘어가요


달이 뜨는 아리랑고개
봄이 오는 아리랑고개
뜨는 님은 건달이요
있는 님은 도련님이지
아리 아리랑 아리랑고개는
도련님고개
넘어넘어도 우리 님만은
안 넘어가요
 

누구인가가 똑 자기네와 같은 이런 딱한 리별의 경우를 생각해서 지은것만 같은 노래, 님과의 리별을 애달파하는 설음많은 이 나라 녀인들의 마음과 간절한 소원이 그대로 눈물이 되여 흘러나오는상싶은 저 애절한 곡조는 그 얼마나 많은 우리 사나이들의 애간장을 녹이게 만들었던가.

갑동은 깊은 의미를 담아 그 처녀가 은근하고 부드러운 녀성중음으로 부르는 《아리랑》을 들으면서 혼자서 생각했다.

(우리 나라의 민요들은 들을수록 좋아. 순수한 우리 조선사람의것이여서 그럴가. … 그래 저처럼 좋은 자기의 민요, 저처럼 훌륭한 자기의 노래를 가지고있는 나라와 민족은 절대로 멸할수가 없는게라, 저 처녀가 지금 부르고있는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지켜주기 위해서도 내 통일의 봄이 오는 아리랑고개를 넘고 또 넘으며 힘껏 싸우고 또 싸우리라!)

그만 그 노래에 심취되여 마음이 끌린 갑동은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처녀에게 훌 손짓을 해보였는데 오면 어떻게 하자고 그랬던지는 자기자신으로서도 알수 없었다.

먼산만 쳐다보면서 노래를 부르고있어 모르고있는가 했더니 어느새 그 신호를 받았는지 덕금이 얼른 배낭을 다시 걸싸게 둘러메고 씽 달아올라오며 입가에 아주 천진스러운 미소를 그리는것이였다.
《오빠동무, 그래 같이 갈라요?》

《아니 그런건 아니고 내라서 고운 음성으로 그처럼 잘 부르는 그 노래에다 대고서 손짓을 한것이지 어디…》

《워매, 엉터리시야. 난 그런걸 또…》

《아무리 고쳐 생각해봐도 그 눈물의 아리랑고개, 투쟁의 아리랑고개를 혼자 넘어 밉광이가 된다고 해도 그것만은 안되겠어라.》

《안되겠어라요?… 정 그렇다면 내 한가지 물어볼락해요. 도대체 황동지는 혁명이라는것이 무엇인지 알고나 따라댕겨요?》

《아니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리여?》

《그럼 한번 남한테 들은 소리말고 혁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혁명에 대한 자기의 주장이라고 할지 철학이라고 할지 그런게 있으면 어디 한번 말해보라요.》

《그렇게 갑자기 물어싸니 마치도 수십년동안 늘 소를 끌고다니던 사람보고 불시에 소뿔이 앞에 있나 귀가 앞에 있나 하고 물었을 때처럼 얼떨떨해지는게라.》

《그럼 생각해서 대답해봐요.》

《혁명이란 머시냐 할것 같으며는… 그렇지 땅을 위한 싸움이고 자유와 권리 위한 투쟁이고 깊고깊은 숫눈길이며 애국의 정신이라했더라, 허허.》

《그렇게 끝없이 나가다가는 이 세상의 모든것이 다 그 혁명안에 들겠구만요.》

《그게 옳지러. 이 세상의 몹쓸걸 다 두드려부시고 전부 우리의 새것으로, 무산계급의 새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것이 우리의 혁명이여.》

《그것도 다 틀리지는 않지마는요. 그럼 먼저 좀 실례로 되겠는지 모르겠지만 이걸 마저 대답해봐요. 황동무는 한번 진정으로 사랑을 해본 일 있나요?》

《사랑? 나는 원래 녀자라면 십리밖으로 내뛰는 사람이다보니께 그런 사랑의 문어구에도 못 가봤다고 할수 있제라.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사랑이라는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니껜 그리 인정머리없이 굴지요. 그렇게 인정없는 사람이 혁명은 어떻게 해요?》

《머시라고요? 무슨 혁명이 사랑놀음이라고… 그럼 애인없는 사람은 투쟁할 자격도 없다 이거요?》

《제가 말하는것은 비단 그 어떤 애인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게 아니예요. 사랑에는 부모처자와 련인에 대한 사랑, 친우와 벗들에 대한 우정과 사랑, 자기 조국과 민족, 인민에 대한 사랑 등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어요. 그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은 조국과 인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예요. 이 사랑의 감정이 없는 사람은 증오도 없으며 따라서 훌륭한 투사로도 될수 없다고봐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혁명은 사랑, 사랑이라고 말하고싶어요.》

《혁명이 곧 사랑이다.》

《그래요. 투쟁과 혁명은 다 그 숭고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거예요. 그렇기때문에 위대한 사랑은 위대한 혁명을 낳게 되는거구요. 나라잃고 일제의 무쇠발굽밑에서 신음하고있는 조국의 동포겨레들에 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뜨겁고도 고상하고 위대한 사랑은 그 준엄한 백두산의 눈보라속에서 우리 조선혁명을 탄생시킨거예요.

혁명에 대한 불타는 열정과 사랑을 안고 제가 따르고싶어서 따라가는것이 혁명일진대 왜 황동지는 저의 그 심정을 그리도 리해 못하나요? 투쟁에는 사상, 정신, 육체적으로 완전히 준비되고 완성된 사람만이 참가할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예요. 물론 육체적인 준비도 필요하겠지요. 그렇지만 강의한 의지와 정신으로 하는것이 간고한 오늘의 투쟁이 아니겠나요. 지금 그 투쟁의 대오에는 제가 들어서야 할 자리가 비여있거든요. 거기에 바로 데려다가 똑똑히 세워주는것이 그래 존경하는 투쟁선배인 황동지의 의무와 책임이 과연 아니란 말입니까? 왜 대답 못하셔요?》

《말이나 리론으로써야 워찌 내가 덕금이를 당하겠능기요, 하지만서두…》

아까보다는 수태 마음이 움직인듯 싶은 갑동이의 말에서 힘을 얻은 덕금은 바짝 매여달렸다.

《이렇게 사정사정해두 날 떨구어두고 가는 님은 죄를 만나요.》

그는 무슨 시인지 노래인지 알수 없는 가사에 운률을 담아가지고 웃음을 섞어 노죽까지 피우는것이였다.


동무동무 내 동무 지리산동무
혼자 가지 말고요 함께 가자요
둥글 호박 굴리면 멀리 간다오
데려가지 않으면 까나린 깍쟁이

 

《하참, 이거 내 또다시 범꼬리를 잡지 않는지 모르겠당께릉.》

《호호호, 그 소원만 들어주시면 내 황동지럴 일생 잊지 못할 은인으로, 아니야 맘속으로 영원히 오빠라고 부를란다. 죽은 우리 대선오빠를 생각해서라도 나를… 빨리 으응, 우리 갑동오빠!》

갑동은 얼마나 산으로 따라가고싶었으면 학교선생까지 하는 이 과년한 처녀가 자기를 어릴적처럼 오빠라고까지 부르랴싶어 저절로 코마루가 쩡해왔다.

《정말 그렇게도 유격대원이 되고싶어?》

《…》 처녀는 말없이 머리만을 끄덕여보이는것이였다.

《좋아. 내 데려다꺼정은 주겠는데 그후의 모든 일은 책임질 자신이 없는게라. 솔직히…》

《좋구만이라!… 아니 아니제, 데리고 갔으면 끝꺼정 나를 책임을 져주어야 진짜 동무지요. 내가 제발로 걷게 될 때까지만 달구다녀줘요. 좀 짐스럽더락도…》

《…》

《그렇지만 혹시 후에 지가 제 몸을 바로 이기지 못하여 험한 산을 오르내리면서 싸우다가 적들에게 잡히거나 잘못된다 해도 절대로 후회는 없을거예요. 그리고 저에겐 이젠 어머니도 아버지도 다 놈들에게 잘못됐은껜 책임을 물어줄 사람도 없어요. 그러니 이제 내옆에 가까이 있다며는…》

그 말에 두눈을 슴벅이던 갑동이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맴이 약한 사람을 눈물나게스리 자꼬 그런 말마이소. 내 데리고 가준다지럴 안해.》

《아이 고마워요, 비록 내 좀 뚱뚱은 하지만 입산만 하면 이 몸도 까지고 높은 산으로도 저절로 펄펄 날아오를것만 같은 마음이예요. … 그런데 왜 혼자서 피시식 웃어요?》

《그 말을 듣고있는 내 눈앞에는 지금 가파로운 산탁을 오를 때엔 무거운 도람통을 밑에서 두손으로 밀어올리느라고 낑낑거리고 경사급한 내리막길에서는 한번 놓치면 저아래까지 퉁퉁 굴러내려 갈가보아 밑에서 그 도람통을 잔등으로 떠받들어 밀면서 내려오느라고 신고를 허는 어떤 한 사나이의 그 볼만 한 장면이 금시 눈앞에 보여오는것 같아서 혼자서 웃어본게라 허허.》

《호호호.》

둘이는 래일은 어떻게 되든지간에 오늘은 만시름을 잊은듯 즐거운 마음이 되여 소리내여 웃었다.
소원이 이룩되여 그처럼 열망하던 인민유격대에 들어온 덕금이의 입대를 축하하여 전우들이 준 첫 선물은 마을에서 불리우던 《뚱보동무》 대신에 덧붙여진 《도람통동무》라는 새 별호였다. 그는 동무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하여 한번도 싫어하거나 성내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새 동무들의 허물없는 믿음과 신뢰, 따뜻하고 친근한 동지적인 우정이 담겨있는 그 《도람통동무》라는 별호로 불리우는것을 더 마음에 좋아했다.

입산후 덕금은 내내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니면서 모범전투원으로서 잘 싸웠다.

그러던 그해 음력 정월 초하루날 아침이였다. 갑동이 덕금이와 함께 월성마을로 공작을 내려갔다. 날이 밝기 전이여서 어둠이 깔려있었다. 적들이 불의에 마을을 사면포위 급습하는 바람에 퇴각을 하는데 덕금이 뚱기적거리며 전혀 뛰지를 못해 모두다 생포될 위험에 처하였다. 그는 자기에게는 비상용수류탄이 하나 있으니 걱정 말고 어서 빨리 자리를 뜨라고 야단을 하였다. 정황이 급한지라 갑동이는 하는수없이 그를 도로가의 썩은 새거름속에다가 잘 알리지 않게 감쪽같이 묻어놓고서 먼저 퇴각하여갔다. 왜냐하면 봄에 꿩도 사나운 짐승들이 많이 싸다니는 수림속이 아니라 오히려 논두렁옆이나 길옆의 사람들이 무심히 많이 지나다니는 풀밭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기때문이였다. 갑동이 적들의 추격과 마을수색이 끝난 다음에 와보니 이미 《도람통동무》가 거름무지속에서 나와가지고 적들이 마을을 불지르고 도망쳐서 인민들의 재산이 탕진되고 엉망이 된것을 동서남북으로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정돈해주고 마을사람들을 안정시키느라 애쓰고있었다.

갑동은 그가 살아있는것이 너무도 기뻐서 와락 처녀의 두팔을 잡아주었다.

갑동은 저도 모르게 눈물까지 지었다. 그제야 그는 덕금이 자기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음을 새삼스레 절감하였다. 덕금이말대로 둘은 항상 같이 있어야 한다는 감정이 강렬해졌다.

이럴즈음에 황갑동이 도련락과에 올라가 사업하게 되여 둘은 갈라지게 되는 정황이 조성되였다.

한편 덕금이는 유격투쟁에는 적합하지 않으므로 산을 내려가 지방공작을 하는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제기되였다.

갑동은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고있는데 덕금은 완강하게 나왔다. 자기는 절대로 산을 내려갈수 없으며 황갑동이 조동되는 도련락과로 가게 해달라는것이였다.

덕금이 자기의 그 의사와 초지를 어떻게 관철했는지 갑동이가 다 놀라와할 정도였다. 어쨌든 그는 도련락과로 종시 따라온것이다.
 

6
 

황갑동은 이번 련락임무를 손동찬이라는 사람하고 같이 수행하게 되였다. 스물여덟살인 이 사람은 중학교물도 먹은 총각으로서 일정하게 지식도 있고 산세를 잘 아는데다 걸음이 빨라 제트기 또는 제비라는 별명을 갖고있었다. 그는 평지로 걸어도 발소리 하나 안 나고 숨소리도 곱지, 담배도 안 피우지 련락원으로서는 적임자였다. 그날 밤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행군의 여건은 1차때보다 훨씬 더 악조건이였다. 날씨도 매우 춥고 눈이 많이 내려쌓여 푹푹 빠지는것이 발빼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가다가 갑동은 담배생각이 너무 나서 한대 피우기로 했다. 눈구뎅이를 파고 거기다가 머리를 틀어박고 담배질을 했다. 불빛과 연기와 냄새를 눈이 다 잡아먹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모금한모금씩 걸탐스레 빨아서는 페부 깊이에 몰아넣었다가 후- 하고 내뿜군 하였다. 눈행군휴식의 짬에 피우는 그 마라초의 향취란 기딱 막힌것이였다. 그가 까투리처럼 눈속에 머리를 처박고 담배를 피우고있을 때였다. 갑자기 궁둥이에 총구같이 꿋꿋한것이 툭 닿으며 《꼼짝말라!》 하는 낮고도 되알진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후닥닥 놀란 갑동은 눈이 잔뜩 게발려 잘 보이지도 않는 얼굴을 들면서 뒤에 서있다고 생각되는자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무작정 쓸어눕히고는 타고앉아 목조르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밑에 깔린 사람이 다급히 《황동무, 나야. 나 <제비>여.》

《뭣이 <제비>요?!》

그제야 겨우 밑에서 빠져나와 일어난 손동찬이 목을 손으로 만져보며 신음섞인 소리를 했다.

《엥이, 어찌나 목을 세게 조여대는지 살인날번 했군. 지리산의 곰이라더니, 한번 혼을 내여 그 담배 피는 버릇 뚝 떼줄라 했다가 죽을번 했군. 에-》

《이거 정말 손동무, 미안하게 됐구만요.》

《미안이란 쌀눈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겠으니 정말로 미안을 느낀다면 그 담배를 끊으시오. 그렇게 겨울에 매에 쫓기는 까투리처럼 눈구뎅이에 머리를 잔뜩 탈아박고 담배를 피울 맛이야 어디 있겠소.》

《이제는 그만 담배고질이 되여 안 피우고는 견디기 어려워서…》

《그렇게 제가 하고싶은걸 다하면서야 어떻게 산생활을 계속해나가겠소. 더구나 좋은 련락원이 되는데서 지켜야 할 교범의 제1과는 담배부터 끊는것이요. 끊겠으면 담배는 그 자리에서 아예 뚝 끊어야 하는거요. 뚝!》

《손동지의 그 동지적비판을 달게 받아들이고 래일부텀 아니 당장 이 자리에서 담배를 아예 뚝 끊어삘것이요, 당장요!》

이러면서 갑동은 담배쌈지채로 눈속에 깊이 꾸겨넣어버렸다. 빨찌산련락원으로서 아직 자기에게 남아있던 그 끊지 못하는 담배에 대한 잊기 힘든 미련, 또 하나의 고질화된 흡연욕을 뚝 떼여버리는 장면이였다.

(담배야, 내 동무야. 이제는 너하고도 작별이로구나. 작별에는 눈물이 따른다더니 너와 영 헤여지자니 정말이지 눈물이 다 왈칵하는구나. 그렇지만 담배를 끊어야 련락원구실을 제대로 하고 투쟁을 더 잘할수 있다니 어쩌겠어. 섭섭하지만 갈라져야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밤새 눈보라에 몸이 날리고 눈사태를 몇번 헤치다보니 배가 고프고 기진맥진하여 제대로 걸을수가 없었다. 갈수록 길은 더 험난해지고 도대체 얼마나 왔으며 어데쯤 왔는지조차 막연하였다.

손동찬이 힘들어하는 갑동이를 보고 말도 그리 없는 사람이 몇번이나 반복해 말을 건늬였다.

《오늘 밤 고생을 너무 많이 시킵니다. 미안하구만요.》

《정말이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의 고생이 저에게는 락으로 되고있습니다. 이 험한 세월에 혁명하는 보람과 고생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겠습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변변히 입지도 먹지도 못한 몸으로 강추위속의 빙설행군을 이겨낸다는것은 간단치 않았다. 손과 발은 꽁꽁 얼어들고 말까지 입술에 얼어붙어버리고 온몸이 그 어디라 할것없이 바늘끝으로 콕콕 찔러대는것 같은 무서운 혹한에 창자에도 서리가 끼고 심장마저도 얼어들어오는것만 같았다.

불이 그리웠다. 집이 그립고 어머니가 그리웠다. 따끈한 국과 밥이 그리웠다. 밤도와 걷고 또 걷고보니 마침내는 청암 청학동이 되였다. 그 마을집들에서 비쳐나오는 불빛만 보아도 살것 같았다. 청학동은 동지들의 합법투쟁지구였다. 한글을 읽는 글소리, 마을녀인들이 모여들어 웃음락담을 벌리면서 윷놀이를 즐기는 소리, 어느 집에선가 떡방아를 찧는 소리도 다 들려왔다. 갑동이의 몸에 깊이 젖었던 옛 생활을 그려보게 하는 소리, 그러나 자기한테서는 이미 떠나간, 쉽게는 되돌아갈수 없는 생활의 음향이였다.

(저 마을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맨발로 달려나와 반겨맞아줄 동지들이 있고 밥도 뜨스한 방도 있을것이 아닌가. 벌써 구들장을 지고서 자본지도 아득하구나. 아, 먹고싶고 자고싶고 좀 쉬고싶구나. 저 동지들의 마을집에 들려서 이 하루밤만이라도 쉬고 갈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도중에 어디에도 들지 말고 접선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것을 너무도 잘 아는 갑동이였다. 그렇지만 따뜻한 생활의 편의와 혜택을 누릴수 있는 동지들이 있는 마을인 청학동을 옆에 두고 그냥 지나려니 발이 떡 얼어붙은듯 했다.

(젠장, 냉중에는 어떻게 되든지간에 잠시 들렸다 갈가. 자기편 동지들이 사는 저 집들의 불빛을 보고서야 이거…)

《손동무! 좀 들렸다 가지 않을라요?》

《안되오.》

《왜요. 청암동이사 파악있는 우리 합법지구가 아니여?》

《그렇지만 지금 우리 선요원들의 활동이야 완전히 비밀이 아니요?》

《저기 들어가면 모든것이 뜨시할것이니 들려서 몸도 좀 풀고 그리구 저 마을 한가운데로 지나가면 상당히 길을 앞당길수도 있을터인데…》

《그거야 누가 모르오. 하지만 우리는 비록 몸이 얼어들고 배가 고파도 마을에 들지 말고 가라면 그냥 들지 말아야 하는것이고 앞에 직통길이 나있어도 돌아가야 한다면 멀리로 에돌아가야만 되는거요. 우리 선요원들의 공작원칙과 의무에서 한걸음도 탈선해서야 안되지.》

《그러지 말고 누가 보는 사람도 없고 고대인데 잠시잠간만이라도 들렸다 갑시다요. 난 정말이지 더는 못 참겠구만이라. 이대로 장작이 타는 아궁이속으로라도 들어가고싶을 지경잉께. 듭시다, 까짓거.》

《… 그리하면 안된다질 않소, 황동무! 상급에서 시키는대로 곧이곧대로만 하는것이 아무도 보는이 없는데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리들의 규률이 아니겠소. 불언 직행합시다.》

(세상에 고지식하다 고지식하다 하니 옆에 뜨거운 불과 집을 놓고도 밖에서 얼어죽을 사람이시…)

《황동무는 지금 나럴 너무 고지식하게 구는 사람이라고 나무람할지 모르겠는데 투쟁을 하자면 시시때때로 제기되군 하는 생활적인 요구와 개인적인 욕구도 누를줄 알아야 하며 모든것을 혁명의 리익의 견지에 놓고 생각하고 결심하며 실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

갑동은 나이로서만이 아니라 투쟁경험과 겪은 생활교훈으로 보아서도 선배인 손동찬의 그 충언을 듣고서야 언제인가 강대선이 고지식한 사람이 하는것이 혁명이라고 하던 말의 의미를 되새기였다.

마음 끌어당기는 그 마을의 불빛을 등지고 멀어져갈수록 견디기가 쉬워지는것을 느끼게 되는 그였다.

(그래. 강대선형님의 말이나 손동무의 말이 모두 옳다. 사람이 그 어떤 어려움에 처한 경우일지라도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을 기어이 하고싶은 욕망이 속에서 꿈틀거릴적에 거기에 지지 말고 자기를 이겨내는것, 이것이 필요한거야. 험난한 혁명의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고 거기에는 갈지자도 있고 아뜩한 벼랑길도 있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항상 고지식한 마음을 먹고 곧게 걸어나가야 우리 투쟁의 길이 다 편안해지는게라!)

청학동주변 산기슭에는 녀자들이 올라와 불공을 드리는 치성터들이 있었다. 여기 절골에 치성터가 많은것은 그럴만 한 리유가 있었다. 주로 아이를 낳지 못하여 절골에 올라와 치성을 드리는 녀자들을 절간의 까까머리중들이 범하여 아이를 만들어 내려보내는 례가 많았다. 그것을 이제는 알게 된 녀자네 어른들과 부실한 남정네들이 그래도 녀승들만인 이곳 백계사주변이 비교적 안심이 되여 여기에 치성터를 정해주는것이였다. 참하고 예쁘게 생긴 20대, 30대의 아이 못 낳는 녀성들이 산죽막에 불까지 뜨스하게 때여놓은 구방돌우에서 그 무엇인가를 헛되이 기다려 밤을 지새우기도 하면서 불공을 드리는 판이라, 대체로 여기에는 집이 영 못사는 집 녀자들은 그나마 엄두도 못내고 밥술이나 먹는 집, 부자집 녀자들이 할짓없이 올라와서 이 놀음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디서 인공적으로 맑은 물을 끌어다가 만들었는지 바위밑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곳에 초불들을 켜놓고 진수성찬 차려놓고서는 절을 수없이 계속하면서 어떻게 하던지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하늘에 대고 빌고 또 비는것이 그 녀자들의 하루일과였다.

그러다가도 어떻게 옆으로 지나가는 건장한 젊은 남정들이 있다던가 산으로 오르는 산사람들이라도 있게 되며는 꼭 붙잡고 극진히 맞아 진미음식도 권하면서 통사정을 털어놓는 일이 드문하였다.

어찌하다가 여기에 잘못 걸려들기만 하면 그것도 하나의 문제가 되였다. 더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빨찌산대원들이 민가에 들어가서든지 산속에서 만나게 되는 젊은 녀인들과 서로 눈이라도 맞아 군중규률을 위반하고 부정한 치정관계라도 맺게 되는 경우 엄벌에 처하며 지어는 총살까지 하는 엄혹한 시기인지라, 여름밤 같을 땐 치성터의 불빛들이 어느 도시를 방불케 하는것이 바로 청학동이라는 소리를 더러 들은바 있는 갑동이와 손동무는 그런것들은 다 못본체 하고 밝은 달만을 동무삼아 내처 산길을 걸었다.

어디선가 추색황혼에 날아들던 기러기라더니 혼자 떨어져서 앓다가 이제야 호을로 가는지 달밝고 서리찬 초월상천에 난데없는 외기러기울음소리 처량도 해 두 사나이의 가슴을 쓸쓸히 허비였다. 그래도 어떻게 향방이나 알고 가는지, 제 무리에서 떨어진 그 고독스러운 기러기는 그들의 머리우에 연한 그림자를 너흘너흘 던지며 슬피도 울면서 천천히 지나갔다.

그런데 이때였다. 아무 생각없이 한 나지막한 산등성이 하나를 넘어서던 그들은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바로 앞에 서있는 한그루의 풍치좋은 로송밑에 아늑하게 지어놓은 산죽막옆에서 소복단장한 아주 젊은 녀인 하나가 누가 오는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그 소나무에다 대고 반복 절을 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정한 민족옷차림에 고운 몸매로 혼자 치성을 올리는 그 녀인의 달빛에 비친 처량하고도 단아한 모습은 뭐이라고 해야 할지 정말이지 처음 보는 사람의 혼을 다 앗아갈 지경이였다.

옻칠을 한듯 까맣고 동백기름을 바른듯 칠칠한 풀머리우에 한쪼박 쏟아져내린 달빛이 눈보다 더 하얗고 정결해보이는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미끄러져 내려와서는 백옥같은 목과 동실한 량어깨와 봉긋한 가슴을 지나 조선치마저고리를 적시면서 아련한 허리와 그아래의 곡선을 따라 흘러내려 흰 옥양목 버선발에 닿고있는 그 녀자의 모습이야말로 남자들이 요살할 지경이였다. 그리고 다시 두손 모아 큰절을 하면서 무릎 꿇고 엎디였다가 앞에서 바람에 너흘거리며 그 순미한 얼굴을 발그레 물들여주군 하는 초불빛들을 거둬안고 다시 일어설적에는 각일각 음영이 변하며 더욱 이뻐지는 그 녀자의 아릿다운 자태는 달밤의 지리산설경의 한 부분을 이루고있다고나 할지… 산중의 깊은 달밤에 뜻밖에 앞에 나타난 미모의 녀인, 이 지리산의 녀신산인 반야봉이 보내준 선녀인가, 저것이 도대체 귀신이 아니고 사람이 옳긴 옳은가 하는 생각까지 들 지경인 알지 못할 산중의 미인앞에서 이내 발을 떼지 못하는 두 사나이!

이때 그 어떤 산신령에게라기보다는 자기가 믿고있는 마음속의 하늘에다 대고 무엇인가 정신없이 중얼거리며 빌고있던 그 젊은 녀인은 인기척을 느꼈던지 이쪽을 돌아보다가 흠칫 몸을 떠는것이였다. 그 녀자는 유부녀라기보다는 아직 처녀와도 같이 수집고 순박해보이는 어진 두눈에 놀라움을 담으며 갑동이를 보고 묻는것이였다.

《아니 도장동 가마니집 갑동오빠 아니예요?》

그냥 지나치려던 갑동은 무춤 멈춰서서 마주 여겨보았다.

어딘가 눈에 익은듯 하나 아무리 달빛이 밝아도 낮이 아닌 밤인지라 똑똑히 알수 없었다.

《제 도장동 진주댁 별이예요.》

《아니 그럼 우리 뒤집 덕금이하구 친하던 별이가?》

《옳아요. 아이!》

녀인은 무등 반가와 갑동이한테로 마주왔다. 뜻밖의 산중에서 몇년만에 만난 고향녀자가 갑동에게도 반가왔다.

《날이 추운데 어서 막안으로 들어가자요. 어서.》

녀인은 갑동이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손동찬에게 눈인사를 하며 갑동에게 재촉했다.

치성막을 꺼려하던 갑동이였지만 고향녀자의 권고라 마다하지 않고 따라 들어섰다. 추위와 배고픔을 덜수 있게 되였다는 안도감이 뒤따랐다. 석유등불이 켜있는 그리 넓지 않은 초막안은 불을 많이 땐듯 후끈했다. 바닥에 삿자리 두쪽을 펴고 한구석에 이불포단과 몇개의 그릇이 놓여있었다.

난생처음 들어서보는 치성막을 호기심에 얼추 일별한 갑동은 물었다.

《어떻게 여기에 왔습니까?》

《…》
별이는 선뜻 대답을 않고 눈길을 내려깔고있더니 《아이, 저녁식사를 못했겠는데…》 하며 밥 지을 차비를 서둘렀다.

《아닌게아니라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요.》

갑동이는 솔직하게 말하고는 별이가 밥을 지으러 나가자 손동찬에게 쉬라고 베개를 당겨주었다.

자기도 눕고싶지만 막안이 좁아 둘이 눕고보면 별이가 나들수 없겠기에 자신은 초막벽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쭉 폈다.

《저 녀자도 아이를 점지 받으러 여기에 와있겠지?》

손동찬이 묻는 소리였다.

《글쎄 몇년전에 적양면소재지의 잘사는 집으로 시집을 갔는데…》

갑동은 졸음이 밀려와 뒤말을 잇지 못했다. 손동찬이도 인차 잠들어버렸다. 별이가 밥을 지어놓고 깨워서야 그들은 눈을 떴다. 선잠을 깬데다가 식사를 하고나니 식곤이 몰려들어 몸을 움직이기가 싫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자고 갈수는 없었다. 갑동은 몇마디 회포나 나누고 인차 자리를 뜰 생각을 하며 물었다.

《지금은 적양면소재지에 살겠지요?》

《예, 삼년전에 시집가서 내내…》

별이는 되도록 자기 이야기는 피하며 화제를 돌렸다.

《소문을 듣자니 지난해 도장동의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다 입산을 했다던데 혹시 갑동오빠두 그때 산사람이?》

《…》

갑동은 말없이 머리만을 무겁게 끄덕여보였다.

《그렇게 됐군요. … 지금은 그 살기 좋던 도장동마을이 <토벌>의 불에 타서 재무지만 남고 사람들도 수태 놈들의 총에 맞아죽고 상했다더군요.》

《…》

《덕금이도 지난해 <토벌대>놈들에게 오빠와 아버지를 한꺼번에 다 잃고 자기도 어디론가 몸을 피했다는데… 그후 그 애 소식을 모르지요?》

《압니다.》

《지금 어디에 있어요?》

《덕금이는 얼마전에 희생된 아버지와 오빠의 원쑤를 갚겠다고 손에 총을 잡고 입산을 했답니다.》

《입산을요? 그 뚱보의 몸을 해가지고 빨찌산을 따라다녀요?》

《그것이 제 평생소원이라는데야 어쩌겠소.》

《세상에 별일도 다… 혹시 가까이 있어서 만나기라도 하면 꼭 저의 인사를 전해주세요. 입산을 한걸 제가 몹시 부러워하더라고 하면서…》

어쩐지 별이의 말은 쓸쓸하게 들렸다.

《나는 여기서 별아주무니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정말 뜻밖인게라. 이 추운 겨울밤에 이 무서운 산중에 혼자 들어와서 도대체 뭘하는가요?》

《… 저 치성을 드린답니다.》

《치성을요?》

《네.》

별이는 쑥스러워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숙였다.

《저 제가 시집온지 삼년이 넘도록 애를 낳지 못한다구 시어머니가 무작정 치성터로 올라가라구 해서… 그래야 부처님이 아이를… 드… 들게 해준다지를 않겠나요.》

《허참 한심두 하지. 그래 산신령이나 부처님이 그 인간의 형체도 없는것덜이 치성을 드린다고 하여 애 못 낳는 녀자들에게 아이를 배게 해준답디까?》

《…》

잠자코 듣고있던 손동찬이도 너무 어처구니없어 한마디 해주었다.

《아주머니, 그건 다 쓸데없는 미신에서 나온 어리석고도 미련한 짓거리입니다.》

《…》

《여기 백날 천날 있으면서 두손으로 하늘과 땅을 다 떠올리면서 그냥 절을 해보시오. 몸에 무슨 새 기별이라도 있나. 이리해서는 절대로 안되는거여. 젊디젊은 녀자가 고만한 상식이야 이젠 생겨서 알것인디.》

그제야 녀인은 무거이 입을 여는것이였다.

《… 저두 믿지 않아요.》

갑동이도 답답해서 한마디 더하였다.

《그러면 진작 집으로 내려갈것이지 여적 이리하고있다가 여기서 혼자 얼어죽을락고 그러노. 답답한 녀자가 아니여.》

갑동이의 말에 고개를 폭 숙여보이며 그 녀인이 실토정을 하는것이였다.

《내려갈려고 해도 내려갈수가 없어 그래요. 저의 시어무니가 산신령이 나한테 애를 점지해주지 않는 한 죽어도 이 치성터에서 죽으라고 못살게 굴면서 자꼬만 내쫓으니 워쩔끄나요.》

손동찬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것도 야단은 야단이겠구만. 시어무니는 그렇다치구 남편이야 아직 젊었을텐데…》

《그… 글쎄요. 제게 집쥔이 있다고 하겠는지요 웁다고 하겠는지요.》

《그건 무슨 소리요?》 손동찬이 다시 물었다.

《저… 어- 지는 몇년전에 잔치라고는 했다지만은요 지금꺼정… 새각시라며는 새각시이고… 처녀라며는 처녀인것이라서…》

《?…》

손동찬이 의아해하자 갑동은 그가 별이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가봐 얼른 입을 열었다.

《손형은 이런데는 영 캄캄 밤중이로구만요. 거 있잖아요. 더러 남자구실 쓰게 못하는 그런 사내들을 보고 뭐라드라?…》 그는 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아직 처녀 그대로인 새각시라 이 말이시.》

《아이고매, 이제는 좀 알겠구만. 시상에 별일이 다 있소 잉-》

얼마후 둘이 초막을 떠날 때 별이는 눈물이 글썽하여 바래웠다.

얼었던 몸도 녹고 배도 든든해져서 걸음이 잘 나갔다.

《그 녀성이 생긴것도 괜찮고 성품도 단정해뵈는데 그런 불행이 있구만.》

손동찬이 못내 동정이 가서 하는 소리였다.

갑동은 제 혼자 싱그레 웃으며 지난해 언제인가 고숙모에게서 얻어들은 별이네 가정사를 펼쳐놓았다.

… 그의 나이는 스물두살, 덕금이와 동갑나이였다. 도장동에 오기 전에 아주 어려서 진주에서 살다가 왔다고 하여 동네에서들은 진주집 딸이라고 하다가 시집을 간 후로는 진주댁이라 불러주던 녀자다. 땅이 없어 이사온 그의 부모들은 아래면소재지에 있는 지주집의 소작전을 부치였다.

지주는 왜 그리도 민가와 황가가 많은지 그 민지주에게는 장가갈 나이가 지나도록 왜서 그런지 수염도 나지 않은 아들이 하나 있었다.

여느 남자들과는 달리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술엔 별스럽게 잔주름이 많으며 얼굴색은 창백한, 그러면서도 키는 커서 허장성세는 하지만 알맹이는 든것이 없는 청년이였다. 그것도 아비가 부실했던지 그 요살인 녀편네인 에미가 마흔살이 넘어서야 어느 절간에 가서 하나 벌어온 자식이라던가.

그래도 보는 눈만은 천연했던지 그 고자가 아버지를 따라 소작지를 돌아보러 왔다가 도장동에서 제일 고운 소작인의 딸인 별이를 한번 본 다음부터 그냥 따라다니는지라 그도 성화였다. 별이는 키만 껑충한 수수밭의 먹지도 못할 이삭대신인 깜부기같은 지주의 못난 아들을 보기만 하여도 구토감이 일어 달아나군 했으나 한사코 따라다녔다.

어느날 별이는 덕금이랑 자기 또래의 마을녀인들과 같이 수박밭속의 원두막에 올라 옛말도 하고 뜨개질도 하면서 달밤의 정서를 즐기고있었다. 그런데 어디에 가서 술을 잔뜩 마신 지주집 반편아들이 비단으로 지은 옷을 입고 원두막으로 기신기신 따라올라와 주정을 부렸다.

《… 뭘 뒤에서들 나를 보고 모두 꼬쟁이라고 한다는데 모르는 소리여. 니들 한번 어디 보겠어. 허 그 길이라던가 통살이의 측면에서 간단치 않어요. 징말이여-》

이렇게 추태를 부리던 그 녀석은 원두막 한쪽에 큰대자로 나자빠져 이내 잠들어버렸다. 그가 제법 사나이들 흉내내여 코고는 소리에 원두막이 다 흔들리는것 같았다.

그 마을처녀들중에는 가까운 화순탄광에 가서 일하다가 때이르게 결혼을 했던 남편을 막장의 버럭속에 묻고 온 씨원씨원하고 세상일을 먼저 알기 시작하였다고 할수 있는 제일 나이많은 녀동무 하나가 있었다. 그는 자기의 친한 동무인 별이를 못살게 따라다니는 이 지주집아들이 암만해도 여의치 않아 보이는지라 처녀들에게 소곤대였다.

《얘들아, 우리 별이의 장래 신랑감이 되여보려는 이 지주집도련님이 정말로 저사니가 제대로인지 한번 잘 때에 측량을 해보지 않겠어. 미시리같은걸 말야.》

《언니, 아서요. 그러지마.》

그래도 자기와 말이 난 남자래서 별이는 이렇게 막아주며 좀 험해지는 판이 되여가는 그 자리에서 피해버렸다.

그 이튿날 자기의 고재아들녀석이 얼마나 못나게 굴었으면 종내는 업신보인 마을처녀들한테 바지까지 훌러덩 벗기울번 했다는것을 안 민지주와 그의 마누라는 생야단을 하였다.

자기 집안 내속의 망신을 시킨 책임을 그렇지 않아도 구실이 없어서 못 끌어가던 자기네 소작농의 딸인 별이에게 다 넘겨씌워버렸다.

빚진 종이라고 어찌할수없이 마주보기도 싫은 민지주네 아들에게 시집 아닌 시집을 간 별이였다.

또한 야단은 그 시에미때문이였다. 아들이 변변치는 못해도 행여나 두벌자식이 하나 생겼으면 하고 바랐으나 며느리를 맞아들인지 세해가 넘도록 아무 태기도 없으니 등이 달아했다.

결국은 아들이 병신이라는것이 엄연한 사실로 증명이 된셈이였다. 그것을 반증하려면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서든지 새 며느리가 아이를 가지게 만드는것이였다. 자기도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절간에 들어가서 100날 기도를 드리며 어느 엉큼한 중놈의 씨를 벌어 온 체험이 있는 그는 며느리를 청학동에 들여보내 치성을 드리게 할 작정을 했던것이다. 아이를 하나 벌어오게 하려는것이였다. 설사 그것이 중의 새끼던 지나가던 웬 나그네의 씨이던 관계가 없었다. 이 겨울 산속에서 얼어죽어버린다고 해도 무관했다.…

《이게 저 녀자의 기구한 운명담이락꼬.》

갑동이 이렇게 이야기를 끝맺자 손동찬이 느닷없이 증을 냈다.

《아 그러면 시집이고 뭐고 뛰쳐나올것이지.》

손동찬은 제 집안사람이 당하는 불행이기라도 하듯 분격하고 안타까와했다.

《그럴수 없는것이 그 녀자의 불우한 처지지요. 뛰쳐나오면 전에 못 갚은 빚에다 엄청난 손해배상까지 물어야 하니 가난한 진주집으로서는 엄두도 못낼 일인게고, 한번 시집이라고 가면 죽어도 그 집 문턱안에서 죽어야 한다는 봉건유습의 구속도 박찰 의지가 그 녀자에게는 없지요.》

《…》

억이 막힌듯 한동안 응대가 없던 손동찬이 진중한 어조로 말을 했다.

《저런 불쌍한 녀자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어서 빨리 통일이 되여 여기도 인민의 주권이 서야 할텐데.》

그리고는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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