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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먼저 우리 조선의 땅덩어리 생김새를 두고 범의 형국이라 했는지… 이 땅의 뭇생명의 젖줄기인 푸르른 천지를 머리에 이고 무서운 표호성을 질러 천하를 호령하는상싶은 조종의 산 백두산! 그 백두에서 시작되여 기기묘묘한 천만산악으로 삼천리금수강산의 사등을 이루며 동서로, 남으로 위용있게 뻗어내린 백두대산줄기의 저 먼 남단에 수만수천봉우리와 천만계곡으로 이루어진 매우 아름답고 자못 웅위한 산이 있으니 그 산이 바로 이 나라 5대명산의 하나인 지리산이다. 남해가에 거센 뒤발통을 벗디디고 하늘높이 머리를 쳐들어 조종의 산 백두산을 우러러 옹위하는상싶은 지리산! 경상남도 남부와 전라남북도 동부의 경계지대에 거연히 솟아있는 해발 1,915메터의 이 산은 남부지대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서 둘레가 매우 넓고 험하여 《두류산》 또는 《남악》이라 불리워왔다. 산우에 산, 골안에 또 골안깊은 산속 어느 계곡에서부터 샘줄기가 모이고 개울이 합쳐져 제법 큰 물줄기가 되여 흐르는 섬진강기슭 야산들에는 소소리높이 치솟은 대나무가 사시장철 푸르고 산세를 거슬러 소나무며 굴밤나무, 자작나무, 고양나무, 단풍나무들이 어울려 꽉 들어차 수려함을 자랑하던 지리산이였다. 하건만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 여러차례에 걸치는 대《토벌》의 불에 맞아 그 무성하던 수림은 숯덩어리, 재가루가 되여 벌거숭이로 되여있었다. 무상한 세월의 년륜속에 대자연의 환생의 본능과 관광돈벌이욕구에서 출발한 인공적인 역사질로 다시 숲이 이루어지고 굽이굽이 포장도로가 뻗어오른 여기 하봉기슭으로 80에 가까운 한 로인이 회억에 잠긴 눈길로 주위를 여겨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그는 비전향장기수 황갑동이였다. 오늘 그는 파란많은 기나긴 세월 사무치게 그리고그리던 어머니조국의 품-공화국북반부에로의 송환을 앞두고 옛 전장, 하많은 동지들이 통일애국위업을 위해 피를 뿌리고 생명을 바친 이곳 지리산을 찾은것이였다. 망막에 비쳐드는 높고낮은 산봉우리들과 골짜기에 어려오는 못 잊을 동지들의 모습! 뚱보 강덕금이, 별이와 《제비》, 강대선이와 심상태, 김지희와 리현상동지들… 아아, 동지들은 다 어디로 가고 나만이 남았단 말인가. 묘지도 아무러한 묘비 하나도 없이 지리산에 묻혀있는 잊지 못할 그 전우들의 고귀한 령혼을 목메여 목메여 불러보는 황로인. 《동지드을!-》 이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는 그의 두눈에는 이슬이 번뜩였다. (황갑동이는 죽지 않고 살아서 며칠후에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습니다. 통일조국을 위해 이 지리산에서 함께 풍찬로숙하면서 싸우다가 한을 품고 쓰러진 나의 동지들…) 그의 주름투성이인 량볼로는 눈물이 고랑지어 흘러내렸다. 그가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날 오랜 전옥인 전라도내기가 조심히 물었었다. 《저 황선생님,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였는데 어디로 가시게 됩니까?》 《내야 이 남쪽땅에서 반겨줄 사람도 없으니 발길가는데로 가야지.》 《그 발길이 어데로 향해질가요?》 《전옥은 내가 어디로 갈것 같소?》 《글쎄요. 당신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잉께…》 《례하면 여기에 지리산에서 붙잡아온 범 한마리가 있다고 합시다. 그 범을 철창속에 20년 아니라 30년을 가두어두었다가 내놓는다 칠 때 그 범이 어디로 갈것 같소?》 《…》 《철창속이 아니라 별데다 가두었다 내놓아도 범이야 범이지 개나 염소로는 안되는거라. 맹수로서의 기질은 전혀 변하지 않는단 말이요. 그러니 그 범은 필경 자기가 살던 지리산으로 갈거란 말이요. 지리산으로 날듯이 뛰여들어가면서 온갖 속된 짐승덜얼 물어뜯어 그 더러운 생피를 산야에 뿌리고싶을게라 이 말이요.》 《아니 글하면 선생이?》 《그렇시다. 나야 지리산에서 나서자라 지리산에서 싸우다가 잡힌 몸 되였응께. 그 범처럼 도루 죽어도 지리산으로 찾아들어가서 죽을 생각이요.》 《아니, 다시 그 지리산으로 들어갈락 한다구요?》 전옥은 갑동이의 그 대답에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소리를 듣기라도 한듯 흠칫 몸까지 떨며 그만 붕어눈이 되여버렸다. 《왜 그리 놀라오?》 《놀라지 않으문, 그래 감옥생활 35년이 상기 모자라서 또 지리산소린기요? 그만큼 혁명이라는 진펄에 빠져서 고생도 젤 많이 하고 비린내나는 피맛도 실컷 봤이면 되얐지 이제 지리산이라고 하문 신물이 나고 진저리쳐지지도 안하는지. 참 당신은 어찌할수 없는 무서운 사람인게라.》 《나는 비전향장기수요!》 교도소에서 드디여 출옥하는 그 마당에 와서 지난 옥중고초의 35년이 집약되여있는 한마디의 말, 철창속에서 더욱 빛나게 닦아진 금강석처럼 강질이 센 결정체의 응결물을 과시하는듯 한 《비전향장기수》라는 그 승리자다운 말은 새삼스러운 의미를 더하여주며 진폭으로 울리는것 같았다. 전향을 시키기 위한 긴장된 신경전, 오랜 격투에서 지고만 패자의 수치감을 안고 제 손으로 감옥문을 열어주고 이 불굴하는 의지를 가진 지독한 사나이를 밖에까지 나와 바래우며 늙은 전옥은 머리를 깊이 숙여보이면서 괴로운 인정을 했다. 《황선생, 모든데서 우리넌 지고 당신은 이겼시다. 솔직한 고백으로 당신들 비전향장기수들이 없었다며는 우리 대전감옥의 연혁은 그 얼마나 단조롭고 무의미하고 수치와 창피, 죄악으로만 가득찼겠시꺄. 정말이제 당신들은 우리 대전감옥의, 아니 이 남한땅의 통일의 선각자들이로소이다. 부디 잘 가시우!》 그러한 황갑동이기에 이번에도 북에로의 송환을 앞두고 항미전에 떨쳐나섰던 통일전사들의 싸움의 자취가 어려있는 여기 잊을수 없는 지리산부터 찾게 되였던것이다. 황갑동은 여기로 오기 전에 조국으로 돌아가게 된 다른 비전향장기수동료들과 함께 《감시록》, 《남시록》결성 10주년을 맞으며 제주도 4.3봉기때 희생된 렬사들의 분묘를 찾았었다. 1948년 7월에 미제와 괴뢰군경들의 총칼에 무참히 학살된 132명의 렬사들을 추모하여 거기에 세운 키높은 비석에는 크게 이런 글이 새겨져있었다. 《조상은 있으되 후손은 없는 무덤.》 정말이지 통일의 제단에 애국의 피 뿌리고 억울히 간 선대렬사들앞에 부끄러움없이는 자신을 세울수 없게 하며 죄많은 후손들의 가슴에 피의 교훈을 일깨워 새겨주는상싶은 글, 사람들 그 누구에게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비문이였다. 그날 추도행사장에서 한 젊은 시인이 읊던 그 누구인가의 시도 매우 인상적이였다.
젊은이가 읊는 그 시중에서도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워도 새순은 돋거니》라는 시구절이 제일로 황갑동의 심금을 울렸었다. 어쩐지 떨려오는 손길로 통일의 성전에서 치명의 상처입고 밑둥 잘린 그 깊은 뿌리를 능히 어루만져볼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였다. 상처입은 령혼들의 이름으로 통일의 계주봉을 받아쥐고 고통의 행군을 계속해야 할 3세, 4세들에게 무엇인가를 뜨겁게 당부하며 호소하는듯 한 그 어떤 절절한 바람과 기대가 담져진 시구였다. 그날 132명 애국렬사들의 아이무덤같은 분묘들앞에서
《여러 선생님들! (그래도 제주도인민봉기의 영웅적인 희생자들은 후세의 사람들앞에 작은 봉분으로나마 남아서 남해의 열풍을 호흡해가며 통일의 후대들과 대화를 나누고있는셈이 아닌가. 그렇지만 반세기전 그날의 투쟁의 전구였던 여기 지리산에 20만여명이 입산하였다가 거기서 살아나온 사람 불과 몇명이 안되고 모두가 지리산의 흙이 되였건만 다 흩어진 유해들은 찾을길 없고 그대들을 길이 추억하며 기억할 큰 릉묘의 추모비는 고사하고 사랑하는 전우들의 봉분 하나 지어드리지 못하였으니 가슴 찢기는 절통함을 이겨낼길 바이 없구나.) 황갑동은 그날에 이어 평양으로 떠나는 비전향장기수들을 환송하기 위한 청년학생들의 모임에도 참가했었다. 눈물겨운 환송사도 답사도 있고 청년들의 감동적인 환송연설까지 끝났을 때였다. 앞무대에 등단하여 한줄로 쭈욱-서있는 비전향장기수앞으로 남녀대학생들이 올라오더니만 매 사람들에게 정히 싼 묵직한 단지를 하나씩 주는것이였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과 먼저 떠나간 전우들의 피가 스며있는 지리산, 오대산, 한나산의 흙을 비롯한 남녘땅 방방곡곡에서 한줌씩 모아담은 소중한 흙단지였다. 그것을 두손으로 비전향장기수들에게 드리고나서 학생들이 목메여 《선생님들, 평양에 가서도 여기 남녘땅을 잊지 말아주십시오!》라고 당부하면서 일제히 땅에 너부적 엎디여 조선절을 했다. 황갑동이도 그렇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오늘은 자기의 태도 묻혀있고 피도 많이 흘린 고향의 산, 지리산을 고별하러 찾아온 황갑동이의 감회와 추억은 깊어만 갔다. 여기 지리산 곳곳에 뿌려져 진토가 되여버린 금싸래기처럼 귀중한 혁명전우들, 무주고혼이 된 그네들을 남기고 혼자서만 북으로, 그리운 마음의 고향 평양으로 가야하는 그의 마음은 지금 쓰리고 저리며 아프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만이 수령님의 품, 장군님의 품으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준엄한 투쟁의 그날 그리움에 목메여 눈물짓군 하던 동경의 땅, 공화국의 품으로 전우들의 영령과 함께 찾아간다고 생각하는것이 마음에 퍽 위로가 되였다. 황갑동은 얼마후 하동땅 도장동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시절에 희생된 동지들중에서 그래도 봉분이라도 남긴 강대선의 분묘를 찾아볼 생각이였다. 도장동에 이른 그는 고향집 옛 터전을 찾기 전에 마을 옆산에 묘를 쓴 강대선의 봉분 있는데로 향했다. 허이허이 단숨에 도롱봉에 올라가보니 잔디 푸른 옛 묘는 그 자리를 뜨지 않고 그냥 있었으나 거기에 꽂혀있던 나무패말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두루 돌아보니 그 어느 철부지녀석이 거기에 염소새끼라도 가져다가 매였던지 뽑히여서는 이바루 내려와 땅에 나딩굴고있었다. 이제는 체념과 망각의 무정한 세월의 눈비에 고삭은 그 패말에 《고 강대선의 묘》라는 먹글씨가 희미하게 남아있는것을 띠여보는 순간 갑동은 불시에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오는것을 금할수 없었다. 그 패말을 집어들고 휘청휘청 낮아진 봉분앞으로 다가가 어푸러지듯 주저앉으며 그는 목메여 불렀다. 《강대선형님! 내가 왔어요. 이웃집 동생 갑동이 혼자 살아서 돌아왔구만이라요. 놈들의 총에 맞아 숨지는 마지막순간에도 형님이 한번 안기고싶다고 하던 김장군님의 품, 공화국의 품으로 저는 곧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리 다 둬두고 홀로 가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것 같아요. 내사 형님이랑 보고싶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리산에 분묘도 없이 누워있는 렬사들에게 인사라도 드리고싶어 찾아왔어요. 아- 너무 마음이 씨리고 이 가슴이 터져나가는것만 같아서 … 강형, 잘 있소. 내 통일이 되면 다시 오리다!》 그는 동가슴을 마른 주먹으로 탕탕 두드리면서 설분을 터치였다. 어깨를 세차게 들먹이며 오열을 씹었다. 굵은 눈물방울들을 묘소의 검은 흙이 받아주고있었다. 마치 타지 않는 하나의 불화산마냥 고난에 찬 력사의 풍운속을 꿰질러오면서도 지독하리만치 그리 늙지도 않고 아직 머리칼마저도 새까만채로이고 허리도 굽지 않은 강독한 사나이의 볼을 타고 굴러내리는것은 눈물이 아니라 피방울, 피방울이였다. 갑동로인은 한동안 그러고나니 절통으로 가득찼던 가슴이 다소 진정이 되는듯 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굽어보이는 고향마을 주변산천으로 추억깊은 유정한 눈길을 보냈다.
지리산과의 마지막작별을 앞둔 이 시각 그의 눈앞으로는 마치 저기 다도해의 크고작은 섬들처럼 추억의
파도를 타고 정든 고향산천과 그 잊지 못할 빨찌산전우들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지면서 둥둥 떠오르는것만 같았다. 2
그의 고향은 경상남도 하동군이였다. 하동은 본래 신라의 한다사군이던것을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개칭하였다고 했다. 고려 현종때에는 진주에 소속되였고 리조 태종때에 이르러 남해현과 합치여 하동현으로 만들었던것이다. 위치는 동으로 곤양군이 28리이고 서쪽으로 근 25리 가면 광복전에 나왔던 노래 《진주라 천리길》의 바로 그 진주에 이른다. 남으로는 다시 곤양군이 더 가까와 5리정도, 북쪽으로 서울까지는 정확히 987리로서 근 천리가 되는 폭이다. 지형은 지리산을 등에 지고 남해바다가를 베고 옆으로 누워있는듯 싶어보인다. 진산으로 된것은 하동군의 북쪽으로 한 3리 가서 있는 양경산이고 군의 서쪽으로 각각 10리, 30리 웃쪽에 있는것이 금오산과 소묘산이다. 동으로 20리 가면 리맹점이라는 고개가 나지며 북쪽 20리에 이르면 차점이라는 고개에 오르게 된다. 가까운 산정에 검푸른 룡지(못)가 하나 있다. 항간에 전하기를 그 못으로 하여 이 고장엔 맹인이 많았고 병이 심했다고 했다. 그러던것이 철과 돌을 불에 달구어 그 못에 던져넣었더니 룡이 곤양으로 옮겨가고 그뒤로는 맹인이 없어졌다는 설이 나돌았으나 그것은 다 빈소리였다. 남쪽으로는 남해바다요 서쪽으로는 목도, 그앞의 합진나루는 조수가 드나드는곳이다. 서쪽으로는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남으로 흘러 바다로 안겨드는 황포천과 남포천이 있었다. 주변의 골계수들이 바위를 씻으며 흘러내리는 산수 좋은 골안마다에는 절간들이 많았는데 해점의 쌍계사와 리맹점의 리맹굴과 옥계사, 대숙사, 대원사 등이 그것이다. 큰 사묘로는 성황사와 사직단 그리고 향교에는 분묘가 있었는데 그 모든것이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구를 이루고있다고 할지.
여기 하동의 산수를 노래한 당대의 시인 정세가 지어읊었다는 이런 시 한수가 있다.
일변호호련창해 하동에는 개천에서 룡이 난다고 명물들도 많아 고려때에는 유명시인 리규보의 손자인 리의배와 정안, 정지상과 그의 아들 정론, 정지연이 나타났댔으며 리조때에는 하경리, 정간, 류규를 좀 건너뛰여 정지연의 5대손인 정린지와 정린지의 아들 정경조를 비롯하여 정소, 정수충, 정여창 등이 다 유명했으니 그 옛날엔 이 정씨들이 대대로 행세하던 고장이였다. 갑동은 이 하동군 도장동에서 진주 대지주 정태석이의 소작살이를 하고있던 황씨네 5남매의 맏아들로 태여났었다. 갑동이네가 살던 마을은 하동 적양면 서리로서 거기에는 상서와 하서가 있었는데 바로 상서의 도장동이였다. 그 마을 서북간의 산기슭에 자리잡고있는 그의 집은 푸른 대나무들이 빙 둘러가며 울을 치고있어 자못 남방의 그윽한 정서를 풍기였다. 지붕우에서 흘러 땅으로 뻗어내린 호박덩굴과 뒤산에서 지붕으로 기여오른 칡넌출이 서로 감으며 엉키여 어느것이 인가이고 어느것이 자연인지 분간이 없었다. 집앞의 터밭에서 닭과 꿩이 사이좋게 어울리고 집뒤의 대밭에서는 집짐승과 산짐승이 같이 노는 판이라, 그래서 어느해인가는 뒤뜰의 암돼지우리에 멋진 덧이가 위풍을 돋구는 산속의 걸구 한놈이 나타나서 자꾸만 치근덕거리며 암내를 일으켰다. 그 바람에 뛰쳐난 집돼지가 잘못 삭갈렸던지 계률을 어기고 그 산돼지와 흘레를 붙어 그만 두대의 버덩이가 앞으로 쑥 내밀어진 메돼지새끼를 일곱마리씩이나 낳아주는통에 주인들을 아연케 만드는 희한한 소동이 벌어진 일까지 있었다. 그렇다고 그 《산신랑》의 선물을 잡아죽일수도 없고 그 표적이 나는걸 그냥 두고 키우기도 동네 창피한 노릇이고 야단은 야단이였다.
밤에는 밤대로 족제비가 나타나서 큰 수닭의 날개죽지밑을 간지럽혀서 데리고 가고 교활한 여우가 집토끼를
살살 얼려갔으며 같은 개과에 속하는 검둥이와 늑대가 맞서서 으르렁댔다. 범에게 홀리여 한절반 혼이 나간 염소가 호랑이의 등에 업히여
웃으면서 산으로 드는 판이라, 그만이 아니라 산토끼들이 집 토방돌우에까지 올라와서는 사람들과 발바닥을 마주대고 잔다는 깊은 산촌의
밤. 이 고장에서는 매 집집마다 얼마간의 대나무밭을 가지고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베여서는 기둥도 대나무기둥, 서까래도 산자도 말짱 대나무를 쓴 대나무집들을 짓고 살았다. 지붕은 흔한 산죽을 베여다가 이영을 이었는데 비풍에 삭지 않고 오래 갔다. 몇해가 지나도 잘 떨어지지 않고 그냥 매달려있는 산죽 칼이파리들이 발가스름한 단풍물까지 곱게 들 때면 푸른 대숲에 묻힌 도장동의 초가들은 실로 동화속의 초옥인양 천연색으로 선명하게 채색되여보였다. 해뜨고 달 뜰 때의 그 단풍빛농가들의 아름다움이란 참으로 기막혔다. 여름 한철에는 싱싱히 살아있는 대나무그늘밑에 통참대를 쪼개여 평상을 엮어만들어놓고 그우에 오르면 용수철침대와는 또 다른 유연한 탄성이 느껴지는것이 신선 같았다. 새벽부터 나가서 밭김을 매고 점심때 들어와가지고는 시원한 오이랭국에 보리밥을 말아먹고나서 제일 뙤약볕이 내려쬐이는 정오의 한때에는 흔들그네와도 같이 사방에서 시원한 바람이 드는 그 야외침상에 목침을 베고 드러누워 챙챙한 매미소리를 들으며 한잠 자고나면 오전일의 피로가 일시에 다 풀리는것만 같아 그저그만이였다. 해마다 정이월이면 눈속에서 대나무순이 돋아났는데 더 굵어지라고 집집마다 아이들이 나가서 그우에 자꾸만 눈을 더 덮어주었다. 그러면 더욱 실하고 야물야물하고 먹음직스러운 애순들이 잘 돋아오르군 했다. 그것을 꺾어다가 생것채로 초간장에 마춤 메우고 들깨기름이나 참깨기름을 한방울 떨구어넣고 순채를 하던지 있으면 오소리고기나 돼지비게살 같은걸 한점 썰어넣고 볶아먹으면 상긋한것이 그 맛이란 유별했다. 그리고 토장을 풀어넣고 참대순국을 끓여먹어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대나무를 가지고는 못하는 노릇이 없었다. 가정마다 부엌에서 쓰는 크고작은 그릇가지들도 그것을 깎아서 만들고 수저와 참빗, 부채는 물론 재털이도 그것으로, 바구니와 고리짝, 옷농 같은것도 다 그것으로 엮었다. 여기 집들에는 빨래줄이 따로 없었다. 지붕옆에 세워놓았던 긴 장대에 빨래들을 팔소매며 가랭이를 다 흘흘 꿰여서는 량쪽의 삼지발우에 건네놓으면 바람이 마른 옷가지들을 다 채가지고 달아날 념려도 없고 편리하였다. 실히 몇악이 나가는 굵은 참대통을 베여서는 장국통, 물통으로도 쓰고 드레박으로도 썼으며 우물가에서 퍼올리는 물이 제창 부엌으로 흘러들게 하는 수관으로도, 물레방아간의 수채로도 리용하였다. 어떤 집들에서는 미끈한 대나무굴뚝을 해세웠는데 보기도 좋고 눈비가 오는 날에도 젖지 않았다. 안으로 습기가 들지 않으니 부엌이 내지 않고 불이 잘 들어서 좋았다. 왜놈들과 어떤 부자놈들은 수도관으로도 쓰고 기발대로도 낚시대도 만들고 대나무의자와 그외 여러가지 장식품제작을 위한 고급재료로 쓰기 위해 돈을 쥐여뿌리고 가져갔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 세상 자연중에 대나무라는것이 있는걸 고맙게, 아주 다행으로 여길 정도였다. 그래서 그 대밭을 금밭이라고 부르며 정성들여 가꾸고 아끼는터이였다. 대는 여느 나무들처럼 땅우에 나와서야 비로소 크기 시작하는것이 아니다. 땅밑에서 미리 그 성장을 준비하였다가 하루이틀사이 에 쭉쭉 자라오르군 하는 유별하게도 굳건한 나무였다. 참대는 뿌리번식으로서 자꾸만 옆으로 새끼를 쳐나가면서 자기의 생계지반을 넓히였다. 왜서? 홀로는 모진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러질수도 있기때문이다. 소나무나 밤나무 같은 다른 나무들은 혼자서 자라는것을 더 좋아한다. 그렇지만 대나무는 혼자서 살지 못한다. 유독 대나무만의 독특한 생존방식이라 하겠다. 그 대나무의 생리를 닮아서인지 이곳 도장동사람들은 이웃간에 화목하고 서로서로 도우며 의좋게 살았으며 매우 단합심이 강했다. 일반적으로 하동지방에는 정가, 곽가, 리가, 하가 성씨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가옥이 60여호 정도인 여기 도장동에만은 대개 강씨들이 집결되여 살았다. 갑동이네처럼 황가성이나 타성받이들이 더러 끼여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쌀에 뉘가 섞인 격이였다. 《제비강》자를 쓰는 본이 하나인 그 진주강씨들은 대체로는 이러저렇게 돌아가면서 다 친척이 되였다. 그 강씨문중 사람들은 모두가 서로 생활적으로 얽히고 단단히 뭉치여 타성들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외계에서 들어오는 어지러운 잡인들과 경계해야 될 인물들에 대한 반응과 방비가 여간이 아니였다. 그들은 서로서로가 담벽이 되여주고 울타리가 되여주었으니 모진 세월의 세찬 눈바람을 막아주는 또 하나의 《대나무숲》을 이루고 사는셈이였다. 마음씨들이 착하면서도 대나무처럼 곧고 바른 성미와 대쪽같이 굳은 민족적절개심을 지녔던 이네들은 일제시기부터 창씨개명도 반대하여 싸웠고 농조운동도 활발히 벌렸었다. 광복후에는 미제와 리승만도당들의 《단독선거》전야의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입국을 반대하는 2.7구국투쟁과 제주도인민들의 4.3봉기에도 적극 호응하여나서 언제나 투쟁에서는 결석을 하거나 지각을 하는 일이 없었다. 특히 도장동사람들의 홰불투쟁은 유명했다. 시위자들이 굵은 대나무통들에 광솔불을 잔뜩 담아가지고 놈들의 군청이나 경찰서앞에 몰려가 그걸 주런이 가져다놓으면 그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기세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대통마디들이 타면서 연방 탕탕 터져나가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여 마치 총소리나 폭탄 터지는 소리같아 군경놈들의 간담을 대번에 서늘케 했다. 이 도장동마을에서 대순을 뜯어먹으면서 자란 황갑동이 역시 그 어찌할수 없는 참대숲의 한그루의 어린 대나무라 할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골고루 떡반죽하여 빚어놓은듯 량부모들에게서 좋은것만을 취하여 가지고 태여난 욕심많은 아들인셈이였다. 겹쌍가풀진 유순한 서글픔이 비껴있는 그 갈색눈은 어머니를 닮았고 재미있게 생긴 끝이 약간 몽투므레한 유모스러운데가 있는 좀 큰 편인 코는 아버지에게서 떼여다가 붙였다. 한번 만져보고싶도록 귀인성스러운 귀방울이 달린 귀는 어머니의것이고 좀 고집스러운데가 있는 만만치 않아보이는 꼭 다물린 작은 입은 아버지의것이다. 성미 역시 반반으로서 부드럽고 내심깊은데가 있는 은근한 인내는 어릴적에 어머니가 입에 물려준 젖과 함께 체내에 받아들인것이요, 용하고도 은근히 밸이 센 측면은 때로 폭발적이고 괴벽한데가 있는 아버지의 피줄을 타고 옮아온것이다. 이런 결합으로 하여 그는 다소 모순되는 성격의 소유자라고도 할수 있었다. 맘이 어진것 같으면서도 순해빠지지만은 않았고 연한것 같으면서도 강독한데가 있었으며 침착한가 하면 일단 한번 성이 나면 걷잡을수 없을 정도로 성급했다. 속에 서로 맞추기가 힘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들어앉아서 늘 다툼질을 하면서도 이 상반되는 성격은 호상 보충하고 상쇄되면서 하나의 체내에서 이른바 《대립물의 통일》을 이루고있다고 할지. 일상시에 갑동이가 쓰는 말은 섬진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경상도가 서로 마주 건너다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도접경지에서 사는데도 원인이 있었지만 자연히 경상도 하동출신인 아버지의 말도 더러 배우고 전라도 광주출신인 어머니의 말도 더러 익혀 이도 저도 아닌 좀 어부렁말을 썼다. 그의 어머니는 이 마을이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해마지 않는 현처현모였다. 어머니는 보통체격인 아버지와는 달리 키가 늘씬하게 컸으며 마음도 서글서글했다. 길쌈도 잘하고 김치도 맛있게 담글줄 알았고 힘도 세서 그 무거운 덕석도 한손에 하나씩 들고 다녔으며 벼도 한섬씩 이고는 물방아간으로 씽씽 나가군 했다. 먼저 두 딸을 낳아 키우다가 마흔다섯살에야 겨우 낳은 첫 아들이 갑동이였다. 어머니는 마음이 비단결같고 리해심이 있었으며 매우 인자하였다. 밥을 지을 때도 제일 우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자실 맷맷한 흰쌀을, 가운데에는 다른 식구들이 먹을 좁쌀이나 수수쌀을, 제일 밑에는 자신이 먹을 돌피 찧은 쌀 아닌 쌀을 안치군 하는 어머니를 보고 한번은 갑동이 울먹이며 두손을 붙잡고 애원했었다. 《엄니, 그러지를 말어. 그런 3층밥 그냥 지으면 나도 이제부텀 엄니하구 같이 돌피밥 먹을란다.》 갑동은 어머니를 닮아 마음이 아주 착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한번은 어머니가 마을에 있는 어느 집에 돈을 좀 빌려준것이 있어서 그것을 받아오라고 갑동이를 심부름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갔다가 빈손으로 그냥 돌아왔다. 그 집에서 돈을 주지 않더냐고 묻는 어머니의 말에 아들은 아니, 돈을 달라는 말을 안했다고 하면서 머뭇머뭇 그 사유를 한마디로 말했다. 《그 집에 가니껜 마침 준섭이랑 저녁을 먹둥마. 그런데 지주놈한테 소작밭을 다 떼우고 밥도 수수죽도 아니고 멀건 풀죽을 먹더란 말이시. 그러면서도 그 집 엄니가 비록 죽이기는 하지만 같이 한술 들자고 인정스레도 내 손을 잡아끄는게 아니겠어요. 긍께 입에서 차마 돈 달라는 소리 안 나오는제라, 엄니 엄니, 준섭이네 집에서 그 돈 받지 마.》 그 말에 어머니는 두눈가에 눈물이 핑 도는것이였다. 《알겄다. 착한 내 아들아, 얼마 되지도 않는 그 돈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고 다시는 준섭이네 집에 그 빚돈얼 받으러 가지럴 말락꼬.》 《우리 엄니 제일이야.》 자기들보다 더 가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이 깨끗한 인간적인 동정심으로부터 자기들의 생활처지에 대한 계급적인 동정이 생겨난다는것을 아직 자신도 모르고있던 시절이였다. 하지만 이 역시 인간의 형성에서 사소하나마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그렇지만 갑동은 순수 동정심만 가지고있는 용해빠지기만 한 그런 아이는 아니였다. 어느 봄날 들판에 나갔다가 꿩새끼 한마리를 들판에서 붙잡은 일이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한 부분이라고도 할수 있는 산 꿩을 사로잡은 소년의 가슴은 기쁨으로 높뛰였다. 이제 이 고운 꿩새끼를 오빠한테서 받아안고 기뻐하며 닭우리에 넣고 함께 키우자고 할 귀여운 녀동생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졌던것이다. 동네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모두 부러워하면서 어디 한번씩 만져라도 보자고 했다. 그래서 갑동은 으쓱해져 꿩새끼를 한아이한아이에게 안겨주면서 행복해하였다. 이것을 옆에서 시새움을 가지고 훔쳐보는 심술궂은 한 아이가 있었다. 그것은 갑동이보다 한두살 나이가 우인 읍중학교 1학년생인 마름의 아들 정규택이였다. 학교에 갔다오는 길인 그 녀석은 자기 차례가 돌아오자 꿩새끼를 받아안더니 놓을념을 안하다가 할수없이 마지 못해 돌려주는것이였다. 그때 그에게는 그럴듯 한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갑동이, 니 마음 곱드락끼 내 억지로 이 꿩새끼를 빼앗지는 않겄다. 그런데 말이지, 지금 우리 집에서 어머니가 얼마전부터 별난 병을 앓는데 꼭 산 꿩새끼 피를 먹어야 낫는다고 용한 의원이 와서 말하고 갔어. 긍께 어머니약으로 쓰게 이 꿩새끼를 나를 주면 저 하늘이 너를 다 굽어보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와줄거야.》 《…》 처음에는 싫었다. 아까와서만이 아니였다. 그 밉광스러운 마름놈의 아들에게 제가 무릎을 깨면서 겨우 붙잡은 이처럼 고운 들꿩을 준다는것은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 일이였던것이다. 《야아- 갑동아, 너도 집에 어머니가 있지. 어머니는 다 같다고 했어. 아까워도 우리 어머니한테 약으로 산 꿩의 피를 좀 먹여 내가 효성을 바쳐보게 한번 주어보라마.》 어머니는 다 같다는 그 소리만은 옳았다. 마름이 밉다고 하여 병에 걸려 앓는다는 그집 어머니까지 미워할수는 없었다. 산 꿩을 다른데도 아니고 앓는 어머니약으로 쓰겠다는데 주지 않을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누가 빼앗기라도 하듯 꿩새끼를 꼭 가슴에 품안고 한손으로 비다듬어주던 갑동은 동정심이 일어 그것을 내밀었다. 《받어! 가져다가 꼭 엄니 약으로 써야 해?》 《고맙구만이라 고맙구만이라.》 규택이녀석은 갑동에게서 꿩새끼를 받아안고 백배 사례하며 머리까지 숙여보이는것이였다. 그런데 다음순간 갑동이의 눈앞에서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는 끔찍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자기에게 꼭 붙잡혀 숨을 할딱거리며 금시 벌판으로 날아보려고 동그랗고 정신드는 두눈을 또릿또릿 굴리는 그 생동한 생명체를 바라보는 중학생녀석의 얼굴이 갑자기 사악해졌다. 그는 살기띤 눈길로 아이들을 한번 둘러보고나서 갑동이가 보는 앞에서 제 어머니약을 쓰겠다고 받아들었던 그 산 꿩새끼를 두손으로 잡아 갑자기 목을 비틀기 시작했다. 누가 어쩔사이도 없었다. 금시 숨이 넘어가며 손아귀에서 바르르 떠는 생명의 마지막요동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낀 마름아들놈은 그 자리에서 목을 따던진 꿩새끼에게서 금시 뚝뚝 흘러떨어지는 새빨간 피를 입에 대고 쭉쭉 빨아먹으며 눈길로 앞에 서있는 갑동이를 놀려주듯 건너다보면서 《냠냠 맛있다.》고까지 하는 판이다. 아연실색할 끔찍스러운 일을 당하여 너무나도 억이 막혀 단박에 얼굴색이 새하얗게 바래여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몸을 다 부르르 떠는 갑동이의 그 정상에서 꿩새끼만이 아닌 남의 기쁨과 행복을 빼앗아 죽인데 대한 희열을 맛보는 그놈은 더운피를 마셔 뻘건것이 잔뜩 게발린 입을 쩝쩝 다시고 나서야 이젠 작은 걸레쪼박이 되고만 꿩새끼를 갑동이의 발치에 훌 내던지고는 《황생원, 꿩새끼를 주어서 아슴찮이요.》 하더니 깰깰거리면서 저리로 달아나는것이 아닌가. 갑자기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것을 느낀 갑동은 되알지게 소리쳤다. 《서라! 거기 서.》 《섰다, 워쩔거냐?》 중학생녀석이 돌아서며 뻔뻔스럽게 굴었다. 《야, 니도 사람이여. 사람이? 그 꿩새끼가 죽으면서 너럴 보고 뭐라고 했겠어. 이 짐승보다 못한것아.》 갑동은 달려들어 자기보다 나이가 우인 그 중학생녀석을 붙잡아 공중으로 휘둘러 허양 땅바닥에 개구리 치대거리하듯 했다. 그리고는 타고앉아서 그놈의 상통에 연방 주먹떡을 먹여 아예 코피를 터쳐놓았다. 그날 마음이 좋지 않아 집에 들어온 아들의 얼굴에서 매닥질이 된 눈물자욱을 본 어머니가 물었다.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냐?》 아들에게서 그 놀라와지는 사연을 다 듣고난 어머니도 금시 낯색을 달리하며 분개심을 금치 못해했다. 《그 애비의 그 아들이라구. 산 꿩병아리를 엄니 약 쓰겠다 하구선 그 자리에서 너를 보라고 목을 따 피를 마시다니, 악독하기 그지없는 인종이제.… 그런데 속 풀리게 매를 주었으면 되얐지 너는 울기는 왜 우느냐? 사내자식이 심약하게스리.》 《엄니, 그 죽은 꿩새끼가 아깝고 불쌍해서만 운것이 아니예요. 그 자식이 나는 나이고 우리 모든 엄니덜얼 욕되게 한것이 괘씸하고 그런 놈에게 속은것이 너무 분해서, 그런 사람같지 않는 개승냥이새끼 같은 놈과 한동네에서 산다는것이 마음에 슬퍼져서 울었구만이라.》 《…그래서였구나. 내 남의 집의 아직 자라는 호박에 미리 손가락침얼 놓는건 아니다마는 될성부른 나물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구 이제 두고보라마는 그 마름집의 망종같은 녀석이 후에 도적이 되여도 큰도적이 되고 역적이 되여도 큰 역적이 되면 되였지 사람질은 못할게라.》 《…》 갑동은 그저 무겁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여났으면 사람이 되여야제 사람이라는것도 하나의 큰 그릇과도 같아서 본래의 사람됨됨이, 그 본 그릇이 제일간 깨끗해야제 그렇지 못하고 그것이 어지러우면 거기에 암만 맑은 물을 퍼담아주어도 정한수가 될수 없는것이야. 혹시 물깡치가 깔앉아 일시일시는 맑아보일수도 있지만은 어떻게 그 그릇을 흔들어놓게 되면 더러운것이 다시 떠올라서 물이 부옇게 흐려지고마는거와 같은 리치제. 그러니 인간들이 후에 장차는 농사를 지어먹던 어디 가서 막로동얼 하던 그리고 나라의 정사에 비치는 큰 사람이 되던 수자리럴 하는 군사가 되던 장군이 되던 그 무엇이 되던지간에 아이적부터 우선 온전한 사람이 되여야 하느니라. 그런데 제가 사람이 되자고 해야지 옆에서 자꾸만 족당질을 해서 억지로 만들어준 사람은 태엽을 줄 때뿐인 벽시계맹키로 이내 서버려 죽은 시계처럼 되고마는게라. 앞으로 이 점을 꼭 명심하거라.》 《그렇게 하구만이라.》 (먼 후날에 와서 황갑동은 그날 어머니가 진중하게 해준 그 의미심장한 말이 앞으로 어디 가서 나라와 백성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사람, 애국자가 되건 혁명투사가 되건 관계없이 그에 앞서 인간이 바로 형성되여야 함을 미리 깨우쳐준 고마운 말이였음을 뜨겁게 회상하게 되였다.) 그는 어릴적부터 별로 공부도 못하고 부모를 도와 농사를 지어오다가 8.15를 징용가서 맞았다. 기쁨에 넘쳐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그것은 광복이 아니였다. 그는 1948년 8월에 입산했다. 놈들의 《5.10단선》반대투쟁에 나섰다가 남북총선거때 공화국을 지지하여 서면으로 찬성투표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그 역시 나라의 분렬을 막고 조국통일의 성업을 이루려는 불타는 념원을 안고 총잡고 지리산에 올랐었다. 하지만 이미 입산전에 지하투쟁에 참가하기 시작했던 그의 투쟁동기는 아주 단순하다면 단순했다. 부모에게 효성스러운 아들이였던 그는 한때 한집에서 살다가 이웃에 시집을 간 아버지의 누이동생, 마을에서 흔히 《가마니댁》이라고 부르군 하는 고숙을 몹시 따랐었다. 《가마니댁》이란 그 고모가 갑동이의 어머니와 같이 그 추운 겨울날에도 왜놈들의 공출가마니를 짜면서 서글픈 어조로 억울한 하소연이 담긴 《가마니타령》을 듣는 사람이 눈물이 나게 잘 부른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였다. 고모의 최대소원은 어서 빨리 일제놈들이 콱 망해서 공출가마니를 짜지 않고도 제 농사지어 뒤주를 그득그득 채워놓고 잘살아갈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는것이였다.
겨우내 물그릇에 살얼음이 지는 웃방에 올라가서 두손을 다 얼구어가면서 자기네들이 먹을 쌀을 넣어도
모르겠는데 왜놈들이 호남벌에서 나는 기름진 옥백미를 빼앗아넣어 일본으로 실어갈 그 가마니를 짜는 노릇이 얼마나 억울하고 서럽고
고되였으면 《가마니타령》을 다 지어서 불렀겠는가. 그런 《가마니댁》이였기에 나라가 광복되였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이제는 매일
두팔이 다 떨어져나가도록 바디질을 하며 그 쌍놈의 가마니를 짜지 않아도 되는 새세상이 왔다고 너무 좋아서 어린 올케를 데리고
지붕우에까지 올라가 량손을 쳐들어올리면서 《독립만세》를 목청껏 웨쳤던것이다. 그리고는 닭처럼 날듯이 홰를 쳐가듯 하면서 류창한
남도창으로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그 구슬픈 애조의 《가마니타령》을 울며 웃으면서 불러 마을녀인들을 다 눈물 흘리게 만들었다.
그날 황갑동은 산죽이영을 인 지붕우에 서서 사연깊은 《가마니타령》을 불러 몹쓸 세상과 작별해보던 고모의 그 눈물겨운 모습을 가슴속깊이에 새겼었다. 그런 그이기에 이남땅을 강점한 미군놈들이 8.15직후에 남조선각지에 조직되였던 인민위원회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매국역적 리승만이 패망한 일제를 따라 쫓겨가는 낡은 압제의 세상을 되돌려세우려고 했을 때 그렇듯 격분을 금치 못해하였던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미제와 남조선반동들이 《단선단정》음모로 이 나라의 영구분렬을 꾀하며 조선의 허리를 영영 잘라놓으려고 려수, 순천과 제주도를 인민의 피로 물들이며 미쳐날뛰는것을 보았을 때 가슴속에 괴이는 울분을 참을길 없어했다. 고지식한 농촌청년이였던 갑동은 사랑하는 어머니와 불쌍한 《가마니댁》이였던 고숙에게 또다시 공출가마니를 짜는 고생을 시킬것이 분명한 거꾸로 되여가는 이놈의 세상이 제일로 미웠다. 그러기에 그는 입산하기 전날 하동군 야산대 대장인 심상태가 마을에 내려와 간단한 입대담화를 하면서 동무는 왜 유격대에 들어오려고 하는가라는 물음에 얼굴이 벌개져서 한참 갑자르다가 어줍어하면서 이렇게 대답해버렸었다. 《거, 저 지는 워째 입대럴 헐려고 허는가 하니껜 왜놈들 세상에서 고생 많았던 우리 어무니와 고숙이 겨울마당 공출가마니를 짜야했던 그런 세상이 다시는 오지 않고 통일된 민주의 새세상에서 잘 살게 하고싶어서 그러는것이구만이라 예.》 《허, 하기는 사람도 천차만별이라 입대경위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가마니짜기때문에 목숨 내걸고 싸울것을 결심하고 입대를 청원하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황동무 하나일지도 모르오. 헛허허.》 대장인 심상태는 껄껄 소리내여 유쾌히 웃었다. 그는 그 어떤 장식이 요란한 혁명적언사의 입대청원보다도 비록 통속적이지만 속에 알이 들어있는, 그것이라면 목숨과도 바꿀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훌륭한 생각을 품고 입대를 열망해나오는 이 청년의 생활적인 말에 더욱 마음이 끌렸던것이다.
추억깊은 눈길로 고향산천을 바라보고있는 황갑동의 앞에 제일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한마을에서 살던 처녀였으며 잊지 못할 전우이기도 했던 강덕금이의 오빠인 강대선이였다. 황갑동이의 성장에 일정한 자극적인 역할을 논 거대한 대나무숲의 형제나무라고도 할수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강대선이였다. 야학에 같이 다니는 《동창》격이였으나 갑동이보다 나이가 몇살우로서 먼저 세상에 눈뜨기 시작한 사람이라고 보는것이 보다 옳을것이다. 도장동마을의 좋은 접장이였던 사람이 왜놈순사에게 묶이워간 후로 밤마다 글소리 랑랑하던 야학방은 토방돌밑에서 구슬프게 울어예는 귀뚜라미소리만이 괴괴한 적막을 깨뜨려주고있을뿐이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밤마다 오소리기름방등이 타는 불빛이 문창호지로 스며드는 어둠을 쫓아내고있는 바로 그 야학방에서는 누구인지 선명한 목소리로 류창스레 글읽는 소리가 일정한 운률을 타고 다시 흘러나오고있 었다. 《…동방구에 돌출한 조선반도는 동양삼국 요지에 자리를 잡고 북으로는 광막한 만주평야요, 동으로는 깊고 푸른 조선동해라. 삼면바다 수중에 쌓인 해산물, 어류, 조개 수만종 우리 보밸세…》 그동안 불이 꺼져있던 야학방에서 비쳐나오는 등잔불빛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든 아이들이 마을에서 하나하나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일먼저 동네아이들과 같이 야학방에 간 황갑동은 글읽는 소리에 저으기 놀랐다. 그전날에 늘 접장이 앉아서 글을 가르치던 바로 그 자리에 새로운 야학선생이 하나 나타나서 앉아있었으니 그는 다름아닌 눈을 잘 못보는 청년인 강대선이였기때문이였다. (대선형님이 저렇게 청산류수란 말인가?) 그가 말없이 글방에 들어가 조용히 앉자 다른 애들도 하나 둘 들어와 앉는것이였다. 접장노릇을 자진한 강대선의 앞에는 교서 같은것이 놓여있지 않았다. 그는 총기가 있고 비상한 기억력을 가진것도 있지만 인내와 남다른 노력으로 길을 지나다닐 때도 그저 걷는 법없이 속으로 무얼 중얼중얼 외우고 다니더니만 떠나가고 없는 야학선생이 그전에 한번 배워준대로 토 한자 틀림이 없이 줄줄 내려외우는것이였다. 그 모든것이 머리속에 사진찍혀져 곧 《교과서》로 편찬되였다가 지금 절실히 필요한 이때에 와서 현상필림이 인화지에 음영으로 묻어나오듯이 나와서 글 한자 틀림없이 재현되는것 같았다. 그는 야학생들의 일거일동을 눈으로가 아니라 본능적인 감각으로 느끼며 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점차 더 비분강개해지는 목소리로 그날 지리공부의 자못 의미심장한 마지막말을 감동적으로 하여 야학생들의 심금을 울리였다. 《…이와 같이 제아무리 금수라 삼천리 이 강토가 아름다워 제일강산이라 한들 무신 소용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국권을 빼앗겨 령토는 왜놈들의 군화와 말발굽에 들어 마구 짓이겨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 무궁화근역이라 일컫는 우리 조선은 피에 잠겼거니 도대체 나라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 조상들은 밥먹고 뭘했던가? 나라가 없으니 뜨는 해, 솟는 별도 우리것이 아니고 다로구나! 한갖 말 못하는 호마도 북풍에 울고 새도 광복의 봄을 그리며 <복국복국> 하고 <복국>을 부르짖거니 하물며 만물의 령장이고 이 세상의 최귀인이라는 사람으로 태여나 제 나라를 잃고서 무슨 명분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스승이 남기고 간 말은 상기도 우리 흉중에 도도하고 뻐꾹새소리도 이 강산에 더욱 처량하다. 우리 비록 아직은 약한 대나무, 힘을 합치고 힘을 다하여 빼앗긴 이 강토의 모든 아름다움 되찾아놓고 한번 땅을 치며 울어보자!》 이렇게 가슴치며 심중에 서린 울분을 터치는 대리접장 강대선의 눈에 불빛이 이는듯 했다. 갑동은 강대선의 절규를 가슴에 새기며 저 형님이 언제부터 저렇게 시국에 밝고 경찰놈들이 들으면 큰일날 저런 소리를 거리낌없이 탕탕 할가 하고 놀라와했다. 강대선은 선천적인 소경이 아니였다. 거기에는 원한 깊은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 정씨는 미인은 옷을 가리지 않는다고 아무것을 입고 나서도 눈에 띠울 정도로 절색에 가까운 젊은 녀인이였다. 한번은 이 고장 민가들이 가지고있는 대밭들을 통채로 빼앗아낼 구실을 마련할 목적으로 소위 《조사령》을 내걸고 순사 한놈이 쪽발이들을 이끌고 도장동에 들이닥친 일이 있었다. 물을 얻어먹으려고 대선이네 집에 들어왔다가 정씨의 미모에 혹하여 눈독을 들이게 된 그 원숭이상통인 털보순사놈은 어린 아들이 있는 앞에서 대낮에 다짜고짜로 어머니의 손목을 비틀어잡고서 집뒤의 대나무숲으로 끌고들어갔었다. 대선은 울면서 어머니를 부르며 달려가 왜놈의 팔에 동동 매달려 그놈의 손목을 힘껏 깨물었다. 젖비린내나는 어린애로만 알고 소홀히 했던 대선이의 오돌찬 뜻밖의 항거에 악이 치받친 그놈은 어린것을 두손으로 잡아 옆에 있는 대나무밑둥에 힘껏 뿌려던졌다. 그리고는 구두발로 그의 여린 허리를 마구 짓밟았다. 그때 대선이가 엄마를 살려달라고 고함치며 우는 소리를 듣고 어른들이 달려오는 바람에 정씨는 강간을 면하고 겨우 몸을 지켜낼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집뒤 대나무밭에서 우왁스러운 놈의 손아귀에 잡혔다가 몸부림쳐 빠져나온 녀인의 치마저고리가 다 찢어져나간 모양은 사람들이 보기조차 처참하였다.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집에 들어오던 길로 토방마루에 쓰러진채 기막힌 울음을 터뜨리던 녀인, 대선이의 그 결곡하고 마음곱던 어머니는 왜놈에게 당한 그 오욕을 씻을길 없어 달빛도 처량하던 다음날 밤에 집을 몰래 나가 룡지못에 몸을 던져 그만 한많은 세상을 떠나고야말았다. 아직 철부지인 대선이와 그 밑에 어린 딸까지 험악한 세상에 남기고 숨을 거둔 어머니는 눈을 감지 못했다 한다. 설상가상으로 강대선은 어머니에게 달려들던 왜놈순사놈의 횡포한 구두발질에 허리를 참혹히 짓밟히워 척추를 상한 후 시신경이 잘못되여 크면서 점차 시력이 나빠지다가 완전히 실명되고 사춘기에 이르러서는 겨우 해뜨고 달 지는것, 낮과 밤이나 가릴 정도로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였던것이다.
그는 이때로부터 병신 아닌 병신으로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가 헤쳐가야 할 앞길에는
평지길도 있었지만 높은 산 벼랑길도 있었으며 얕은 내, 깊은 강, 돌다리와 징검다리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험지들과 돌다리와
징검다리들을 늘 손잡아 건네여줄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암만 그래봐라. 난 어머니없이도 이 지팽이없이도 요놈의 세상이 어찌되여먹었는지 끝까지 가보고야 말테야.) 그는 그때부터 지팽이없이 길을 다녔다. 벌판에 매여있는 여러 소들중에서도 냄새를 맡고서 아는지 어떻게 아는지 저녁이면 곧장 자기네 소있는데로 가서 장바를 쭉 뽑아가지고는 그 황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군 했다. 지팽이도 아무것도 짚지 않고 돌다리도 징검다리, 외나무다리우로도 한번 떨어지지 않고 곧바로 걸어 건너오군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군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 어떤 신령스러운 존재인것은 아니였다. 어느날 밤 혼자서 강가에 나와 그 외나무다리우로 걷다가는 떨어지고 떨어졌다가는 기어이 다시 오르고 올랐다가는 물에 첨버덩 떨어져 떠내려가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누구의 부축도 없이 외나무다리우를 걷는 련습을 하는 강대선이였다. 이때 마침 어른들의 심부름을 갔다오던 길인 황갑동이 그 광경을 띠여보고 옷을 입은채로 강에 뛰여들어 센 물살에 떠내려가는 그를 붙잡아 일으켜세워주며 목메여 불렀다. 《형님아!》 《갑동아, 고맙다.》 아래로 떨어질적에 징검다리 통나무에 맞아서 그렇게 되였는지 대선의 입가에서는 피가 흐르고있었다. 달빛에 드러난 그 모습이 갑동이의 망막을 아프게 했다. 《다시는 밤에 혼자 강가에 와서 이렁하지 마. 내 맬마다 나와서 이 다리를 건네워줄게.》 《니 그 마음 고맙다마는 나넌 누구의 부추김 받지 않고 혼자서도 살아나가야 할 사람이니 너무 걱정말어.》
《형아, 세상사람 다 보는데 어찌하여 형님만은 앞을 못보나. 왜 어머니꺼정 잃고 이 고생이여.》 《형아-》 두 소년은 밤의 강가에서 부둥켜안고 슬피 울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갑동은 세살아래의 어린 누이동생 덕금이를 데리고 다니는 강대선이의 동무가 되여주군 했다. 강대선은 이렇게 남들이 다 누리는 아름다운 고향산천의 정서깊은 자연의 혜택마저도 바로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였다. 그는 오직 남달리 발달된 오감으로만 그 모든것을 감수할뿐이였다. 그는 지리산의 해돋이도 남해의 푸른 물결도 섬진강의 억센 흐름도 그리고 설레이는 대나무숲도 울면서 하늘로 날아지나는 기러기떼도 아름다운 마을풍경과 예쁜 처녀애들의 착한 모습도 다 피부로 느끼고 손으로 만져보고 귀로 듣고 혀와 코로 맛을 보고 냄새를 맡는것으로써 감각할뿐이였다. 그러나 그는 하동지구는 물론이고 작은 오솔길과 골계수바위와 샘터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항상 그 거대한 산악의 존재를 몸으로 느끼며 사랑하고 지어는 숭상하기까지 했다. 그에게 있어서 신묘하게 생각되는 지리산은 어머니품이였고 고향이며 민족이고 조국이였다. 대선은 어떨 때엔 못내 《심청전》의 심봉사처럼 순간이나마 눈을 다시 번쩍 뜨고서 단 한번이라도 세상을 보고싶어지는 안타까운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절절함으로 늘 가슴속에서 끓고있는 불타는 갈망이 그로 하여금 고향산천과 아름다운 조국의 자연을 더욱 애틋한 정을 가지고 남달리 더 사랑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언제봐도 형은 산과 들, 강가에 나와있기를 즐겨하는데 바로 보지도 못하는 이 고향산천이 그리도 좋아?》 그 물음에 대선은 입가에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내가 우리 고향산천을 그처럼 좋아하는건 못사는 사람도 잘나고 못난 사람도 가리지 않고 지어는 손발이 불구가 되였거나 나처럼 눈 못보는 참봉도 하나 흠하지 않고 골고루 따스한 해빛을 보내주고 봄이면 훈훈한 바람으로 볼을 어루만져주고 물소리, 새소리도 골고루 다 듣게 해주는게라서. 나는 누구도 차별을 둘줄 모르는 이 아름다운 조국산천의 자연을 갖다가 그리도 살갑게 사랑하는게라.》 《…》 《너도 이자 보았겠지만 나에게는 동무가 많아. 이렇게 가만히 풀판에 나앉아있으면 심심치 않게 잠자리들도 줄곧 날아와주지만 봄날이면 나비들도 코앞에 와서 나풀랑거리며 꽃향기도 덜어주고 가고 왕벌들과 풍뎅이들이 뿌웅- 날아와서 내 조는 이마를 정신들게 툭 쳐주고는 달아나기도 하지. 여름이면 온갖 산새들과 물새들이 날아와서는 돈도 한푼 안 받고 음악회를 열어 실컷 노래를 들려주고 까치도 반가운 소식안고 찾아오지. 어떨 땐 까마귀꺼정도 가까운 나무우에 와서 앉아서는 어느 농부의 점심밥을 훔쳐먹으면서 고추장맛을 보았는지 <아 매바, 아 매바> 하면서 우는데 사람들은 그 별스러운 큰 새가 색갈이 시꺼멓다 모두 밉다고 하지만 나는 고향 까마귀가 되여서 그런지 봉황새만큼이나 곱드라 이말이야. 허허.》 《하하. 까마귀 곱다는 사람을 처음 보네.》 《그뿐인줄 아나. 무더운 여름날 같은 땐 신다리까지 무릎을 거두어올리고 차거운 내가에 시원히 발을 잠그고 한참 있노라면 작은 바늘끼들이 잔뜩 모여와서는 장딴지를 톡톡 쪼아 간지럽히고 나중에는 어느 돌밑에서 가재새끼까지 기여나와서는 친하자고 내 발고락얼 정답게 꼭 깨물어주는게라서 참 그때의 기분이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 아니고서는 느껴볼수가 없는 그런것이다 요말이여!》 《이젠 다 알겠구만이라.》 갑동은 그날 대선이의 그 말까지 다 듣고야 고향산천에 대한, 조국의 자연에 대한 이 세상 사람들이 다는 모르고있는 그런 별스러운 애틋한 사랑의 감정도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렇게 천진한 명상에 곧잘 잠기군 하는 강대선이 얼마전부터 면으로 읍으로 자주 나들더니 몰라보게 어른스러워진것이였다. 어느날 야학이 끝난 후 갑동은 맨 나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강대선이와 나란히 마을길을 걸었다. 《대선형님, 우리 나라를 빼앗은 왜놈들과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우?》 《…》 강대선은 선듯 대답을 주지 않고 묵묵히 몇걸음 내짚다가 문득 멈춰서며 머리를 돌렸다. 《갑동이, 너 한번 나서보겠니?》 《어떻게?》 《우선 힘을 합쳐야 해.》 《힘을 합친다는건?》 《응,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도장동전체가.》 《…》 《너 대나무가 홀로 자라는걸 본적 있니? 없지. 대나무는 수많은 대들이 모두룩이 함께 자란다. 그것은 하나의 숲을 이루어야 세찬폭풍이 휘몰아쳐와도 서로서로 의지하며 꺾어지지 않기때문이다. 그 대나무들처럼 우리 도장동사람들이 이웃간에 화목할뿐아니라 애국의 마음으로 단합해 저 악독한 왜놈들과 그 앞잡이놈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거다.》 《온 동리가 마음을 합친 다음엔 어떻게 하나?》 《그건 아직 나도 다는 모른다. 차차 알게 되겠지.》 강대선은 할말을 다한듯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뜻은 별로 어려운것이 아니여서 갑동은 쉬이 리해되였다. 그런데 아까 야학시간에 품었던 강대선에 대한 선망감은 실망감으로 번져졌다. 놀랍게 아는것이 많아뵈던 이 형님이 온 동리가 마음을 합친다는것만 알고 그다음은 모르다니… 그러니 이 형님도 누구에게 들은 소리를?… 그렇다면 그 사람은 누구일가? 갑동은 그 사람에 대해 당장 알고싶었다. 《대선형님, 그다음 일은 누가 아우?》 《…》
강대선은 대답없이 옆으로 손을 뻗쳐 갑동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아줄뿐이였다. 황갑동은 그처럼 바라던 광복의 날을 징용에 끌려가서 맞았다. 나라가 광복이 되였다고는 하지만 완전한 광복이 아니였다.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에 의하여 나라와 민족이 둘로 갈라지게 된 엄혹한 정세가 조성되였던 어느날이였다. 이웃마을에 가서 심상태를 만나고 돌아오는 황갑동은 몇시간사이에 자기의 키가 불쑥 커지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급기야 넓어진것 같은 기분에 붕 떠있었다. 갑동은 열대여섯살때 동리어른들의 심부름을 하느라 몇차례 그를 만나러 갔던적이 있어 이미 면식이 있는데다가 그의 조직선동에 따라 화순탄광로동자들의 폭동을 지원하는 투쟁과 8.15광복 1주년 군중대회 그리고 《2.7구국투쟁》과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의 《단선단정》음모를 반대배격하는 투쟁에 참가하면서 그를 잘 알게 되였다. 하동군인민들의 반미구국투쟁을 주도하고있는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한데 불과하지만 열렬한 독학가로서 책을 많이 읽어 아는것이 많으며 국내외정치정세를 잘 알고있었다. 항시 드바쁜 그는 갑동이를 만나면 반색을 하며 몇마디 인사말과 고무를 주는것으로 그치군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시간을 내여 진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미제와 그 주구 리승만도당은 인민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종시 《5.10단선》을 조작하였다. 이것은 남북영구분렬책동이다. 대대로 한강토, 한민족으로 살아온 조선민족이 두쪽으로 동강나게 되는 이 엄혹한 시각에 우리 민족의 태양이시며 통일의 구성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북남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구성할데 대한 애국애족적인 용단을 내리시였다. 이것은 민족사에 사변적인 의의를 가지는 거사이다. 이제 우리는 이 선거를 성과적으로 승리적으로 보장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갑동이나 대선이들은 지난 기간 의로운 반미반괴뢰투쟁에서 잘 싸워왔다. 특히 놈들의 《5.10단선》반대투쟁때에 청년들을 불러일으키고 그 앞장에서 용감히 잘 싸웠다. 조직에서는 이번 도장동선거사업을 갑동이에게 책임지우기로 하였다. 그러니 높은 책임성과 헌신성을 발휘하여 선거를 성과적으로 보장하리라 믿는다. 이러며 심상태는 선거선전과 선거참가대상, 그 질서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것이였다. 조직의 믿음을 받는다는것이, 도장동 여러 청년들속에서 자기가 선정되였다는것이 여간만 긍지롭지 않았다. 더우기 그의 어깨를 솟게 한것은 헤여질 때 한 심상태의 지시였다. 《도장동선거가 끝나면 갑동동무는 나한테 와서 함께 하동군 선거자명단을 접수시키러 가야겠소.》 아, 그러니 우리 도장동만이 아닌 하동군적으로 내가 뽑혔단 말인가. 통일조국을 세우기 위한 거족적인 성업에 내가 한몫 맡은셈이 아닌가. 황갑동은 돌아오는 즉시 강대선의 집부터 찾아갔다. 자신의 긍지와 기쁨을 우선 그와 함께 나누고싶었고 또한 심상태가 이번 선거에 강대선이 꼭 참가하게 하라고 강조한때문이였다. 《강형, 기뻐하시오. 전조선적인 통일정부수립을 위한 남북총선거가 실시됩니다.》 《그래?!》 《자, 여기다가 우선 형님도 수표를 하십시오.》 《그게 뭐인가?》 《북조선인민들은 지금 선거장을 요란히 꾸려놓고 명절기분으로들 새납도 불고 꽹과리도 꿍당거리면서 선거하러들 가고있지만 우리사 놈들의 탄압이 심해서 그리할 형편이 못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남조선의 선거자들은 투표함에 선거표를 넣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이 선거자명부의 자기 이름옆에 수표를 하는 방법으로 인민의 대표들과 인민정권에 찬성투표를 하기로 했답니다.》
《히야. 그걸 누가 생각해냈는지.… 그런데 동생, 그 선거자명부에 정말로 내 이름도 올라있나?》
《왜정때에도 그랬지만 리승만이 <단독선거>때에도 내같은건 사람의 회계에 쳐주지도 안하고 사람값에도
넣어주지도 않더랬는데 그 민주정권은 나한테꺼정두 당당한 선거권을 갖다가 준단 말이여?》 《고마운 일이지. 그러니 이제 나에게도 이 못난 나를 알아주고 나를 따스시 품안아줄 제 나라, 제 조국이 생긴단 말이지?》 《그럼요. 그러니 자 어서 여기에다가…》 《그 수표라는걸 어떻게 하는것인지 나는…》 《그저 이름을 좀 흘려서 크게 쓰면 됩니다. 강대선이라고 주먹만 하게요.》
대선은 갑동이의 손가락 가리킴을 받아가며 수표란에 제 이름을 떨리는 손으로 쓰고나서 물었다. 《남조선인민들이 방방곡곡에서 조선통일정부의 수립을 지지하여 서명들을 한 이 명단을 북조선에 있는 중앙선거위원회라는데로 다 보내지요. 그러면 그걸 보고 선거결과를 종합적으로 발표하게 되겠지요.》 《그렇겠구마.》 《그래 우리 하동군인민들의 이 선거자명단을 가지고 심상태선생이 38°선 가까이에 있는 일정한 장소에 가게 되여있는데 저는 그저 심부름격으로 따라갈려고 그래요.》 《좋은 일이지. 동생은 어렸을적엔 부모들의 심부름을 잘 듣고 크면서는 동리어른들의 심부름을, 다음에는 면과 군의 크고작은 심부름을 도맡아서 하더니만 이제는 나라의 심부름군이 된게라. 이왕지사 심부름을 할바에는 큼직하게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앞뒤로 뛰여다니는 통일의 심부름군이 되여야제라.》 《통일의 심부름군이요?》 《그럼, 지금 조선사람으로 나서 그보다 더 중요한 노릇이 어디있겠나?》 《하기는 듣고보니 정말 그렇군요. 나한테야 무슨 지식이 있나요, 돈이 있나요, 기술이 있나요? 걸음만은 <림꺽정> 옛말에 나오는 황천왕동이처럼 잘 걷는 두다리밖엔 없으니 이 다리를 가지고 할수 있는 그 일이 저한테 제일 안성맞춤인걸요. 허허허…》 《허허허.》 둘이는 뜻있는 웃음을 웃었다. 강대선이 부러움을 가지고 말했다. 《자네는 참 좋겠구만. 나도 이럴 때 눈만 보았으면 갑동이하구 같이 그 길을 따라가는건데.》 《…》 《가만, 갑동이 그러지 말고 나를 대신해서 우리 덕기를 데리고 가지 않으려나?》 《덕금이 말이지요?》 《덕금이라는건?》 《예- 그건 형님의 누이동생이 모두가 자기를 덕기 덕기하고 부를 때면 뭐시 남자이름 같아서 싫다나요. 그래서 내가 하나 지어준 이름인데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들겠는지…》 이러면서 갑동은 공연히 얼굴이 붉어져 가지고 뒤더수기를 긁었다. 《강덕금이? 몸이 좀 실하구 덕이 있게 생긴 그 애의 체취가 확 풍겨오는게 좋구마.》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이젠 녀중까지 졸업하고 다 큰 처녀가 소학교선생꺼정 되고보니 생도들이 우리 덕기선생 덕기선생이라고 부를 때면 어쩐지 창피해진다고 하면서 지청구더니 자네가 이웃사촌, 이웃오빠라고 참 좋은 일을 했구만.》 《뭘요…》 《이젠 이름꺼정 지어주었으니 자네가 우리 덕기를, 아니 우리 덕금이를 갖다가설라미 끝까지 잘 돌봐주고 이끌어주게나.》 《이젠 마을의 녀선생이 되였는데 내가 오히려 덕금이한테서 배우고 이끌려가야 할 판센데요 뭐.》 《아니시, 암만 그래두 소꿉놀이시절의 그 동무야 어디로 가겠나. 그리고 녀자는 장차 기차방통은 되여도 기관차대가리가 되기는 쉽지 않는 법이여. 그래 어떻게 하지? 인생에 흔치 않을 좋은 길을 가는데 우리 덕금이를 뒤에 달고가주게나. 혹시 긴한 일이 있을지 알게 뭔가?》 《그렇기는 하지만서두…》 《왜? 그 남달리 둔한 몸을 가지고 따라가다가 먼길에 짐이라도 될가봐 그러나? 내가 아는데 우리 덕금이는 비록 몸은 좀 뚱보지만 남의 짐으로 될 그런 아이는 아니여.》 《그래서만은 아닙니다. 이번 길은 내 마음대로 정한 걸음이 아니고 조직의 의사에 따라 하는 일이라서…》 《알았네… 그저 자네처럼 통일의 심부름군, 통일의 역군으로 되고싶어지는 우리 오누이의 마음도 따라간다는것만 알고 실수없이 잘 다녀와주게.》 《알겠습니다. 형님!》 이렇듯 강대선이의 진심이 담긴 당부를 안고 도장동에서 선거수표를 다 받아가지고 선거자명부를 품안고 길을 떠났던 황갑동이 다시 마을에 나타난 때로부터 얼마 지난 뒤였다. 1948년 9월 9일 북남조선인민의 총의에 의하여 드디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되였다. 그때 북남조선총선거에 목숨걸고 참가하여 비밀리에 선거자명부에 수표를 하는것으로써 인민정권에 대한 찬성을 표시했던 남반부각지 인민들의 감격과 기쁨은 류다른것이였다. 갑동이 신문에 난 갓 창건된 공화국의 기발을 소중히 품고 다니면서 도장동마을사람들과 억제할수 없는 기쁨을 나누던 어느날이였다. 산에서 나무짐을 듬뿍 해지고 내려오던 갑동은 강대선이네 집옆을 지나려다가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한것은 집뒤 무성한 대나무숲속에서 서산으로 해가 떨어지고있는줄도 모르고 무슨 수놓이를 하고있는 한 처녀의 모습을 띠여본 때문이였다. 수를 놓다가도 저 하늘에서 마지막으로 황황 불타는듯 싶은 저녁해를 하염없이 바라보군 하는 마치 그 해를 자기의 수예품에 그대로 옮겨담기라도 하듯 다시 정성스레 수바늘을 놀리고있는 예쁘장한 처녀, 그는 다름아닌 대선이의 누이동생 덕금이였다. 덕금이 몸이 저렇게 실한것은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수십년 묵은 산삼을 하나 캐서 잘못 먹인것인 때문이라던지… 지나칠 정도로 남달리 몸이 실해져서 그렇지 절색이였던 어머니의 미모를 닮아 이목구비는 곱게 갖춘 녀자였다. 몸에 비해서는 작은 편인 얼굴은 자못 복스럽고 동그스럼하게 생긴데다가 눈은 검둥글고 귀도 귀인성스러웠다. 류달리 숱이 많은 새까만 머리칼은 외태머리를 짓기 어려워서 그랬던지 두가달로 엇두룩하게 따서 량끝을 고무줄로 동여매였는데 그것이 더 자연미가 나고 소박한 촌선생맛이 풍겨서 좋았다. 밝으면서도 어딘가 애상적인데가 있는 그 녀자의 수를 놓는 순박한 얼굴은 지는 해의 열기를 받아 잘 익은 복숭아처럼 발기우리한것이 흡사 대보름날 저녁 동산으로 떠오르다가 대나무숲에 걸린 순하고 살진 둥근달을 방불케 했다. 어릴 때부터 강대선이네와 유별히 가까이 지내온 갑동이여서 덕금이 이름까지 어떻게 고치라고 할 정도로 무랍이 없는 사이지만 그사이 녀고를 졸업하고 학교선생까지 된 숙성한 처녀이고보니 이전처럼 대하기가 서슴어지는것이였다. 아이들을 량옆에 거느리고 량태머리를 달싹거리며 걸어가는 처녀의 뒤모습을 좇느라면 못내 가슴이 설레는건 무슨 까닭인지.… 지금도 저녁노을빛에 곱게 물들어가는 대나무밑에 고요히 앉아 마치 아름다운 고향산천을 청실 홍실로 수놓아가고있는것만 같은 덕금이의 그림같은 자태를 바라보느라니 가슴이 야릇하게 뛰는것을 어찌할수 없는 갑동이였다. (저것은 필시 또 하나 내 고향의 달이야. 여기 지리산에, 아니 내 가슴속에 때없이 뜨고 지는 마음의 달이시!)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던 그는 지게를 먼발치에 벗어놓고 이끌리듯 처녀가 앉아있는 곳으로 주춤주춤 다가갔다. 《뭘해?》 《아이 깜짝이야.》 수놓이에만 정신을 팔던 덕금이 깜짝 놀래며 마주보자 갑동이는 《덕금선생에게 소인 문안드리오.》 하며 허리굽혀 꾸벅 인사까지 했다. 그러는 갑동을 본 덕금은 입을 싸쥐고 웃었다. 《아유, 이건 또 뭐예요. 소꿉동무보고 새삼스레…》 《허, 아무리 소꿉동무라도 선생이야 존대해야지. 나는 이제부터 덕금이보고 야, 자를 하지 않기로 했어.》 《아니 그건 무슨 갑동오빠답지 않게서리…》 《그건 그렇고. 그런데 사람이 뒤로 오는것도 모르고 무슨 수놓이를 그렇게 하고있는기요? 어디 좀 보기오.》 《아이, 지금은 안돼요. 후에 수를 다 완성한 다음에…》 《내가 덕금이 지금 무얼 수놓고있는지 알아맞춰볼가?》 《어디 한번 알아맞춰봐요.》 《저… 녀자들이 시집갈 때 가지고 갈 첫날 베개모에 씌울 십장생마구리?》 《아유, 엉터리야.》 《그럼 이불보나 홰보 수놓이?》 《다 틀렸어요.》 《이도 저도 다 아니면 대관절 뭐야?》 《공화국기발이예요. 람홍색공화국기!》
《뭐 공화국기? 정말이요?》 《정말 아니문요. 자 보세요.》 그제야 덕금이 둥근 대나무수틀에 팽팽히 끼운 흰 명주천에 한뜸두뜸 정성껏 수놓아가던 미완성 수예품을 내보였는데 정말로 공화국기가 맞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해냈어?!》 《지난 9월 9일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해주셨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오빠는 감격과 기쁨에 넘쳐 잠을 다 자지 못했어요. 오빠는 이 신문에 난 공화국기를 보지 못하는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와 손으로 만져보고 또 만져보는게 아니겠나요. 그걸 보니 악독한 왜놈들때문에 눈마저 못 보게 된 오빠가 더욱 불쌍하고 가슴이 아파지더군요. 그래서 생각다가 이렇게 공화국기를 수놓아서 보지 못하는 오빠가 우리 나라 기발을 손으로라도 더듬어보게 하고싶었어요. 그래서…》 《어쩌면 덕금이는 그런 생각까지… 그랬으면 오빠가 얼마나 좋아하겠어. 어디 한번 보기오.》 《아직 미완성이라서…》 갑동은 처녀가 어줍어하면서 내보이는 미완성 수예품을 두손으로 받아보면서 감동어린 어조로 말했다.
《덕금이, 나넌 덕금이가 여늬 처녀들처럼 베개마구리 십장생이나 홰보를 수놓았다면 이처럼 기뻐하진
않았을거요. 이 세상에 수예품들이 많고많지만 이보다 더 훌륭한 수예품이 또 어디 있겠어.》 《정말 아니문, 이게 어디 쉽게 생겨난 기발이요. 심상태동지한테 들었는데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나라를 빼앗긴 우리 조선사람들에게 이 조국을 안겨주기 위하여 20여성상이나 백두의 설한풍을 헤치시며 피어린 싸움을 벌려오시였다오. 조선의 절반땅을 미제놈들이 강점하고 우리 나라를 영구분렬시키려고 책동하고있는것과 관련하여 우리 민족이 하나의 조국, 하나의 기발밑에서 하나의 국가를 부르면서 단일민족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해 정말 많은 애를 쓰고계시오.》 《그뿐인가요. 미제와 리승만역도가 끝끝내 <5.10단선>으로 단독정부를 내왔을적에도 남북조선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세울데 대한 새로운 구국통일방안까지 제시하시고 우리 모든 조선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인민의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워주신게 아니겠나요.》 《덕금인 역시 선생이니 나보다 더 잘 아는구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오. 사람에게 어머니가 하나인것처럼 우리 나라도 둘일수 없으며 우리의 참된 조국은 오직 하나 장군님께서 창건해주신 인민공화국이라고 말이요. 그러기에 나넌 나라의 영구분렬을 막고 모든 조선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기 시작한 이 하나의 공화국기발밑에서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통일의 날을 앞당기기 위하여 크게는 못해도 충실한 통일의 심부름군으로라도 되자는게라.》 《저의 오빠한테서도 들었어요. 그게 어디 작은 일이나요. 나라의 심부름군, 인민의 심부름군, 통일의 심부름군으로 된다는것이.》 《너무 어마어마한 소리들을 덧붙이지 마오. 나는 통일의 심부름군으로만도 족하오.》 《호, 그런데 한가지, 저 거시기… 거긴 나쁜 사람이예요.》
《왜?》 《싫어하긴 뭐…》 《아니예요. 난 다 알아요. 아이적부터 뚱보뚱보하면서 놀려대더니 내가 짐이 될가봐 그랬지요. 그렇지만 마음 푹 놔요. 내가 갑동오빠에게 일생의 짐으로는 얹히지 않을테니…》 《허. 냉중엔 별 소리를 다, 왜 그렇게 못하는가를 대선형님한테 다 말했는데… 그건 그렇고 난 말띠를 타고났다고 하던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넌 일생 무거운 짐을 싣고 부지런히 뛰며 살아야 자기에게도 좋고 남들에게도 좋다는거요. 허허.》 《거짓부리…》 《아, 정말이요. 죄다… 덕금선생이 나한테 짐으로야 될수 없지.》 《자꾸 선생선생하지 말아요. 실제로 저는 어릴 때나 지금이나 거기를 친오빠처럼 생각하는데…》 《거 오빠라는 말이 어렸을 때는 듣기 좋았는데 지금은 어쩐지 점점…》 《그럼 뭐라고 부르라요?》 《어 뭐라 부르는가 하면 그대라고 하던가 님이라고 하던가…》 《어마나, 점점 못하는 소리가 없군요.》 《허허.》 《쓸데없는 소린 작작하고 앞으로 전번처럼 중대한 일을 맡아안고 먼길을 떠날적엔 날 떼두고 혼자 가지 말고 데리고 가줘요. 그러지 않고 날 버리고 혼자서 가는 님은 <아리랑>노래에 있는것처럼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날줄 아세요.》 《앞으로 덕금이와 같이 가도 될 길이라면 데리고 가도록 힘쓰리다.》 《약속하자요!》 덕금이는 봉선화꽃물이 올라 빨간 새끼손가락을 내들며 생긋 웃어보이는데 량볼에 패우는 볼우물이 갑동이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해주었다. 《자 약속하오!》 둘은 어린시절의 동심이 되여 서로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하며 유쾌하게 소리내여 웃었다.
그후 어느날 강대선이 갑동이네 집을 흥분된 마음으로 찾아왔다. 그는 자기의 품속에 소중히 싸넣어가지고 왔던것을 꺼냈는데 그것은 일전에 대나무밑에서 갑동이 본 일이 있는 덕금이 정성껏 수놓던 바로 그 공화국기발이였다. 《갑동이, 내가 남들이 다 보는 그 공화국기발을 보지 못해 애타하는걸 알고 누이동생이 공화국기를 이렇게 하나 수놓아주지를 않았겠나.》 《그래요?!》 《그래서 손으로 만져보았둥마 공화국기안의 해는 이렇게 둥글고 그속에 있는 별은 이렇게 삐죽삐죽 오각이 나지 않았겠나. 그러니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우리 공화국기발안에다가 말이시 저 하늘의 큰 해와 별을 다같이 넣으시였으니 실로 씬분이시야. 장군님께서 공화국기발을 제정해주시면서 해와 별을 거기에 그려넣도록 하신데는 우리 공화국이 언제나 인민들에게 태양처럼 밝고 따사로운 빛을 안겨주는 민중의 나라로, 별처럼 빛나는 앞길을 밝혀주는 영광스러운 조국으로 길이 번영하기를 바라시는 깊으신 뜻이 담겨있다고 보아지네.》 《참 옳은 말이예요.》 대선은 떨리는 손으로 녀동생의 뜨거운 마음이 새겨진 공화국기발을 쓸어만져보면서 감격어린 어조로 말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많고많아도 나처럼 이렇게 제 손으로 저 하늘의 해와 별을 만져본 사람은 없을게라. 우리 이 공화국기발가운데 모셔진 해라서 바로 우리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상징한것 아니겠소. 나는 비록 김장군님을 한번도 몸가까이 뵈온 일 없지만 언제나 해와 별 빛나는 이 공화국기발을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오직 한분 김장군님만을 고도시 따르는 그이의 참된 전사로 살다가 죽고싶소.》 《…》 황갑동은 앞 못보는 장님이면서도 아직은 언제 한번 크게 덕도 입어보지 못한 그 해와 별의 새 나라를 마음속으로 그리며 지팽이도 없이 고도시 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려는 강대선에게서 크나큰 감명을 받아안았다. (세상에 고지식고지식해도 사람이 어쩌면 이처럼 고지식할수가 있단 말인가. 제 나라를 받들고 우리 장군님을 받드는데는 아무 가식도 없는 바로 이런 고지식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강대선은 그 크지 않은 공화국기발을 오른손에 경건히 잡아 쳐들어올리며 뜨겁게 말하는것이였다. 《동생! 우리 노래를 부르자.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를!》 둘이는 자못 근엄해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은 매국배족적인 《단독정부》조작을 전후로 하여 특히 의로운 려수, 순천폭동을 야수적으로 진압한 후 애국적인 민주세력과 인민들에 대한 미증유의 가혹한 탄압을 벌리기 시작했다. 더우기 공화국을 지지하여 찬성투표를 한 사람들을 찾아내여 학살했을뿐아니라 집집에 불까지 질러댔다. 온 마을을 불태워버린 곳도 도처에 있었다. 민족의 분렬을 막고 하나로 통일된 나라에서 살것을 지향했던 애국투사들과 인민들은 놈들의 탄압을 피해 투쟁의 길을 찾아 지리산으로 물밀듯이 찾아들었다. 특히 1948년 10월 려수애국병사봉기를 전후로 하여 지리산유격지구투쟁이 고조되면서 각 군들에서도 자체무장을 하여 야산대를 조직할데 대한 지시가 하달되였다. 심상태 군야산대장에게서 적의 무기를 탈취할데 대한 지시를 받은 도장동의 청년들은 모여앉기만 하면 그 의논들이였으나 별다른 뾰족한 방도가 서지 않았다. 놈들에게서 총을 빼앗아가지고 산으로 올라 유격투쟁, 혁명투쟁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가하고싶은 욕망으로 가슴 불태우고있던 황갑동은 어느날 조용한 기회를 타서 강대선에게 넌지시 어떤 사람들이 투사로, 혁명가로 될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에 대하여 강대선은 이렇게 말해주었었다. 《…그건 말이시 마음이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만이 투사로 자라는게라. 고지식한 사람덜이 하는것이 혁명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고지식한 사람들이 하는것이 혁명이라!) 대번에 뇌리에 쏙 들어박히는 평범한 생활의 진리가 담겨져있는 그 말은 갑동이로 하여금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강대선이도 야산대활동이 심화되면서부터는 한사람이라도 더 무장시키기 위해 갑동이와 함께 다니면서 어디 무기를 빼앗아올만 한데가 없나 하고 온 지리산일대를 탐색하였다. 낮에는 더러 강대선이 험한 산길에서 갑동의 손부축을 받는 때가 있었지만 밤에는 오히려 갑동이가 대선이의 손에 끌리워다니는 판이였다. 한것은 소경인 강대선에게 있어서는 낮도 밤이요 밤도 낮이기때문이였다. (챠, 이거 두눈을 펀펀히 뜬 내가 언제까지나 저 앞도 못보는 강형을 따라다녀야 한단 말인가.) 앞서 성큼성큼 걷던 강대선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뒤로 몸을 돌리였다. 《자네 지금 혼자 무슨 생각을 했지?》 《아, 아니 다른 생각은…》 《내 다 알아. 자네 이젠 소경을 따라다니는걸 부끄럽게 여기지? 갑동이가 이젠 많이 자랐어. 하기는 이젠 혼자서 길을 찾을 때도 되였지.》 그의 말에는 어딘가 좀 쓸쓸한 웃음이 발리워있었다. 《좀 쉬고 갈가?》 《좋구만이라.》 강대선은 갑동이 옆에 와서 앉을것을 기다려 무겁게 입을 여는것이였다. 《갑동동생, 나는 때로 혼자서 생각허군 해, 눈이 상한 사람이 참봉인것이 아니라 두눈얼 펀히 뜨고서도 앞얼 보질 못하고 헛길에 드는 사람이 진짜 참봉이락꼬.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 사촌동생 대근이가 제 똑똑한 멋에 살면서 종시 바른 길에 들어서질 못할가보아 걱정이네.》 《…》 《자네두 불쌍한 어머니를 집에 남기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수도 있는데 남자가 용단얼 내릴 땐 대담하게 용단을 내려야 하네. 어머니와 <가마니댁>인 고모를 언제까지라도 그 고생가마니를 짜게 할수는 없지 않나. 늘 부모님들가까이에 붙어있으면서 잔시중드는것이 효자인것이 아니라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있어도 부모에게 참으로 효성되고 나라에 진정으로 충성된 일을 하는것이 진짜 효자시.》 《알겠구만이라.》 《…》 《나는 자네들 같지 않아서 마음뿐이지 아주 먼길은 안되여. 세상이 하도 어수선허니 혹시 나의 이 어름짐작으로 가는 길이 끝나고 정바로 걷는 자네들의 새 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영 갈라지게 될런지도 모른당께. 거기꺼정 데려다가 주는것이 그래도 내 마지막 할바 소임이 아닌가싶어요.》 《형님, 오늘 밤엔 왜 자꼬만 그런 말씸만 하십니껴…》 《아니여. 사람에겐 예감이란것이 있는게라. 내 전때에도 좀 말했지만 혁명이란 고지식성을 가지고 하는것이제. 앞으로 어디 가서든 일을 해도 투쟁을 해도 혁명을 해도 감옥생활을 해도 끝꺼정 고지식하게 해야 할줄로 아네. 그래야 시종이 여일하게 등탈이 없고 탈선을 모르는거여. 지어먹은 마음 오래 가지 못한다는 말 한가지로 그것이 깨끗하고 진실한 제 마음속으로부터 저절로 우러나오는 행동이여야지 그 어떤 멋이나 거짓요술로써는 혁명은 못하는게라. 그러니 이제 입산을 해서 빨찌산이 되고 지리산의 투사, 나아가서 우리 나라 광복의 은인이시고 통일의 령수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전사가 되여도 꾀 쓰지 말고 고지식한 전사, 고지식한 충신이 되이소.》 《그 말씸 명심하겠구만이라.》 이때 동산에서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강대선은 그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있는 쪽으로 서서히 몸을 돌리는것이였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것, 천체의 운동변화에 매우 민감한 그는 그 해빛과 달빛만은 눈의 망막속으로 뚫고 들어오는것인지, 아니면 순 륙감이나 생활경험으로 해서 아는것인지 그걸 용케도 딱딱 알아맞히는것 같았다. 《아마 시제 달이 떠오르는것이제?》 《예, 보름달이예요.》 《보름달?! 이 밤에 먼저 입산한 사람덜은 저 지리산에서 첫 달맞이를 하겠구만. 나도 그네들처럼 척 어깨에 총을 메고 지리산에 서서 한번 달맞이를 해봤이문…》 반쯤 벌려진채로 있는 그의 한쪽으로 약간 이지러진 입가에 소 이발처럼 든든히 물려있는 젖은 이발들이 시리게 반짝이며 더욱 은백색으로 빛났다. 마치 놋양푼소리로 둥둥 15야 둥근달이 떠오르는 그 소리를 듣기라도 할듯 장님들만의 고유한 동작으로 다소곳 숙여 진 머리를 약간 옆으로 돌리고 눈으로 보지 못하는 그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상상으로 음미해보고있는상싶은 그의 미소어린 얼굴이 달빛에 조명되여 매우 신성해보이기까지 하였다. 갑동은 옆에 앉아 흘린듯 그 얼굴을 바라보면서 지금 이 대선형의 머리속에 표상되여 떠오르고있는 달은 저 실제의 달보다 더 크고 더 장쾌하고 더 빛나는 황금의 너울까지 쓴 그런 현란한 달일지도 모른다는 느닷없는 생각이 들어 얼치같이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몸은 비록 불구이나 정신만은 불구로 살지 않으려는 이 맘 어진 봉사의 가슴속에 총멘 자기를 달뜨는 지리산에 세워보는것과도 같은 그런 랑만에 넘친 정서의 물결이 출렁거리고있으리라는 짐작이 가는것이였다. 《갑동이, 이제 총 한자루씩 얻어쥐고 입산을 하게 될터이니 여기 고향마을 대나무숲에서 바라보는건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르는 저 달을 잘 봐두게. 그리고 그 어디로 가던 어려운 곤난이 앞을 가로막아도 언제나 지리산을 안고 살라구. 그러면 속이 커지고 마음이 든든해질걸세.》 《고마워요.》 새삼스레 선배의 얼굴을 쳐다보는 갑동이의 가슴속엔 이름할수 없는 존경심이 일었다. 눈만 바로본다면 키도 훤칠하지, 사람이 못나길 했는가 든것이 없길 한가, 이목구비가 준수한 대선형이 큰일을 할것을 하는 아쉬움을 금할수 없었다. (정말이지 우리 주위에만 해도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일생 장님으로 사는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차라리 그런 사람들과 바뀌였으면… 참 아까운 사람이지.) 《이젠 달도 떴으니 가야제. 싸게싸게 걸어서 이 밤에 면경찰지서에 다시 들려 군경찰서에꺼정 가서 경비정형을 보고는 날 새기 전에는 돌아와야제라. 우리 도장동에서 무장획득이 뒤꼬라지가 되지 않도록 서둘러야 할가보네.》 갑동이 따라 일어서며 그의 말에 수긍했다. 《예, 그렇지 않아도 그전에 야학에 같이 다니며 왜놈치는 군사놀이랑 하면서 심신을 단련하던 친구들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마을 청년들이 입산만이 살길이고 참된 투쟁의 길이라고 윽윽 벼르면서 제 손으로 대창이랑 깎고 준비덜얼 하고있습니다.》 《기쁜 일이지. 그리 안해두 내 마을에서 입산하는 동생덜을 우리 집에서 한번 떡이라도 쳐먹여 지리산으로 들여보내고싶단껭.》 《원 말씀만 들어도…》 둘은 달빛을 밟으며 어깨 나란히 다정히 걸어갔다. 여느때없이 기분이 좋아진 강대선이 지팽이도 없이 성큼성큼 걸으며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잊지 못할 좋은 밤이시. 야산대에 든 청년들은 지리산의 달밤을 즐기고 여기서는 갑동동생이 속으로는 투덜거려보기도 하면서 이 못난 소경형님을 따라 끝없는 밤길을 걷고, 허허.》 《허허허, 하나의 시군요.》 그들은 가슴속에 끼였던 어두운 울기를 쫓아내며 즐겁게들 웃었다. 그러나 이것이 서로 믿고 이끌어주고 따르는 투쟁의 길에서 형제의 정, 동지의 정을 맺은 이들 두사람이 함께 걷는 마지막밤으로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무기를 얻어쥘수 있는 보다 용의한 길은 면경찰지서나 군경찰서를 밤에 습격하는 모험으로가 아니라 대낮에 보다 안전한 산길에서 찾게 되였다. 한것은 아래마을쪽에서 대낮에 술을 잔뜩 처먹고 취한 경찰 두놈이 총끝에다가 군복상의를 걸치고 올라온다는 통보를 받았던것이다. 때는 봄, 보리가 사람이 엎디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란지라 황갑동이는 강대범이 정만년이와 셋이서 미리 올라가 보리밭골에 잠복해있었다. 그놈들이 흔드렁거리면서 가까이 다가왔을 때 강대범이와 정만년이 비호같이 달려나가서 한놈씩 붙잡아 제껴 죽탕을 먹여놓고 황갑동이는 그새 총을 빼앗아잡았다. 《38식》, 《44식》 두정이였다.
이틀후. 열명도 넘는 도장동의 입산자들이 산에 들어가서 먹으며 싸울 식량이며 떡, 미시가루며 태식 등을 준비하느라 온 동리가 밤새 복닥소동을 피우다가 일을 끝내고 깊은 잠에 빠진 이른새벽녘이였다. 저아래 적양면 소재지쪽에서 련속 들려오는 맵짠 폭발음에 소스라쳐놀라 깨여난 황갑동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수류탄 터지는 소리보다는 좀 작고 총소리보다는 큰 그 소리는 분명 적양면 뒤산 봉화대에서 보내오는 비상련락신호로서 굵은 대나무불통들이 터져나가는 소리였다. 도장동청년들의 집단입산을 이제 불과 몇시간 앞둔 때에 보내오는 그 비상신호는 갑동이를 불안하게 했다. (아, 우리가 한발 늦었구나. 어제 밤중으로 다 데리고 떠났어야 할걸 그만… 누구인가 사람이 이랬을걸, 저랬을걸… 그냥 걸 걸 하다가 죽는다더니…) 더 늦기 전에 빨리 긴급대책을 취해야 했다. 갑동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바지는 그냥 입은채로 자던터이라 말코지에서 무명덧저고리만을 벗기여 입고는 머리맡에 꿍져놓았던 배낭을 둘러메였다. 그리고는 그 창황중에도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이고 방구석쪽에 감추어두었던 장총을 집어들었다. 어느새 따라일어난 어머니가 얼른 켜놓은 등잔불빛에 비쳐 벽에 얼른거려지는 갑동이의 어방없이 커진 둔한 그림자는 마치 록두장군휘하의 폭동군 같은것이 어딘가 진중하고도 무서워보였다. 한손에 틀어잡은 총끝의 날카로운 창으로 하여 순식간에 일변된 그의 엄숙한 모습은 그 비상련락신호 폭발음 한방으로 이 집안에 닥쳐온 비장한 정황의 긴박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해주는상싶었다. 갑동이 급히 방에서 나가자 잠을 깬 식구들이 다 불안해하며 마당가에 따라나왔다.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해했다. 《이 일을 어쩔쿠나. 너럴 고생만 시키다가 아침에 뜨시한 밥 한그릇도 해먹이지 못하고 산으로 보내다니, 어휴…》 《일없어요, 어머니. 다들 살림이 어렵더락도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어머니, 내없이 어떻게 농사럴…》 《원 애두, 싸움길 떠나는 사내자석이 그랑 집근심을 해서는 큰일 못 친다. 더 늦기 전에 싸게싸게 떠나거라.》 《어머니, 고마와요.》 이때 고숙모가 무슨 음식이 든듯 한 보꾸레미를 안고 나왔다. 《갑동조카, 미시가루를 닦아서 밤가루에 섞은건데 이거라도 길량식으로 더 가지고 가오. 그리고 내가 있으니 일체 집근심말구 사나이 한번 결심먹고 떠난 길 되돌아보지 말고 어서 떠나요.》 《고숙모님, 이 갑동이 어머님이랑 고숙모님이랑 다시는 울면서 그 <가마니타령> 안 불러도 되는 그런 민주의 새세상을 꼭 안고 돌아올랍니다.》 갑동은 뒤따라나와 마당가 한쪽에 망두석처럼 서있는 아버지쪽으로 돌아섰다. 《아버지, 떠나겠습니다.》 《꼭 가야 할 길이라면 막진 않컸다. 떠나기 전에 무신 부탁얼 할것이락도 있시면 해라우.》 《동생덜얼 부탁해요. 그리고 저… 어무니럴 속태우지 말아주…》 《원 녀석두.》 《그럼 아버님과 어머님, 부디 내내 앓지 마시고 지가 돌아올 날 기다려주사이다.》 부모님들앞에 마지막하직의 인사를 드리고난 갑동은 마당을 나와 강대선이네 집쪽으로 향했다. 가다가 보니 길옆의 큰 바위등판우에서 린접리 동들에 위험신호를 보내기 위한 홰불이 벌써 타오르고있었다. 그 기특한 소행의 주인은 다름아닌 강대선이였다. 《그게 갑동이 아닌가?》 《아니 대선형님이 벌써…》 《벌써가 아니라 우린 늦었네. 자네에게는 들리지 않나, 저 군소재지쪽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총소리가.》 눈을 보지 못하는 대신 청각신경이 예민한 강대선은 분명 남들이 아직 듣지 못하는 그 먼 소리를 이미 가려듣고 이 마을로 덮쳐드는 위험을 제일먼저 간파해냈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총소리가 점차 커지고있었다. 《아니, 정말로 들린다요.》 《군소재지는 밤에 깊은 잠 들었을적에 이미 당했는게라. 그 <토벌>군놈들이 이제 면을 치고는 멀지 않아 이리로 들이닥칠것이니 싸게싸게 움직여야 하네.》 《그래야지요.》 《봉화불은 이미 여기다가 지펴올렸으니 다음 리, 면들에 통했을것이고 문제는 빨리 온 마을이 여기를 뜨는것이야. 우선 열두명 입산자들의 집들은 내가 돌면서 일단 모두 야학방 뒤산 비밀굴에 집결시키도록 해줄터이니 갑동이 자네는 나머지 60여가의 마을사람들을 한명도 남기지 말고 급히 젤로 가까운 저 양경산으로 피난을 가라고 해. 그리고 즉시 지리산으로 들락꼬.》 《그런데 입산년령기의 젊은 청년들은 붙잡으면 죽인다손치더락도 놈들이 아무 죄없는 마을의 로인, 아이들과 녀인들꺼정이야…》 《무신 소리여, 려수, 순천폭동진압때부터 피맛을 보기 시작한 놈들인게라 죄있고 없고 민주마을사람들은 다 잡아 태를 쳐죽인다는 소리 못 들었노. 싸게 내 시키는대로 해라우.》 《예, 하구만이라 하구만이라.》 대선은 무거운 한숨소리를 냈다. 《… 이리 헤여지면 동생은 산으로 가고 나는 여기 남고 어찌하면 쉬이 못 만나게 될는지도 모르는데 내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딱 한가지네.》 《말씸하이소.》 《지도 가보지 못하고 두루 책에서만 본길얼 두고 이런 말 한다고 웃지 마소. 내 전에 덕금에게 읽어달라고 해서 김일성장군님 모시고 항일대전에 참가한 한 투사동지가 쓴 글을 보았는데 혁명이란 마치도 거치른 대광야의 깊고깊은 생눈길과 같다고 했네. 결심품고 나선 몸 아무리 어렵고 간고하다 해도 그 허리치는 생눈길얼 끝꺼정 헤쳐나가는 사람언 살고 이기는것이라, 그와 반대로 누가 억지로 끌고들어간것도 아닌데 지가 맘에 있어 지절로 그 눈길에 들어서가지고는 말이시 힘들다고 주저하고 우울해지고 공연히 불평불만하고 후회하다가 나중에는 주저앉아 거꾸러지면 굶어죽거나 얼어죽어서 하나의 눈무덤이 되고마는거요. 혼자 살겠다고 돌아서삘면 어떻게 살아진다고 해도 머저리가 되거나 변절자의 치욕을 쓰고 죽은 목숨이나 같이 되는기라. 그러니 이 말 명심하고 똑똑한 정신을 가지고 끝꺼정 갈길이거든 떠나고 그리 못할 길이면 아예 출발을 말라 이 말이여.》 (혁명이란 대광야의 깊고깊은 생눈길!) 그 말속에서는 겉은 부드럽고 속은 강질인 조선민족, 조선사람의 정신이 서슬푸른 참대잎사귀들처럼 싱싱한 기운이 뻗쳐나오고있는상싶었다. 동생을 험지로 바래우는 친형의 마음되여 초행길 떠나는 오늘만이 아닌 먼 장래, 혁명가로서 반드시 닿아야 할 인생의 종점까지도 념려해주는 선배. 한생동안 내내 안고가면서 스스로 자래워야 할 귀중한 정신의 씨앗을 가슴깊이 심어주는 그의 마음에 그만 코등이 매워오는 갑동이였다. 달빛속에 거연스레 서있는 몸이 장대하고 드팀없이 듬직한 이 고마운 사람을 말없이 쳐다보던 황갑동은 그가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한손에 총창을 잡은채 두다리를 꺾으며 그앞에 천천히 절을 드리였다. 《형님, 지리산으로 떠나는 이 동생의 절을 받아주소이다!》 《아스라구, 절은 무슨 절을…》 《그럼 대선형님, 내내 앓지 마이소!》 《잘 가라우, 기다리겠네 동생!》 이렇게 그들은 헤여졌다. 갑동은 마을사람들을 다 깨워서 양경산으로 피난시키기 위해 바삐 돌아치고 강대선은 입산에 준비되여있는 사람들의 집을 골라 돌기 시작하였다. 열두명 입산자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 한명도 남김이 없이 모두 데리고 일단 야학방뒤의 굴간에 숨기고 작은 입구를 짚으로 막아 봉쇄하여준 강대선이 혹시 피신 못한 사람이 있나 근심되여 마을로 내려가보니 주인을 따라가지 못한 개들만이 마주 와 바지가랭이에 칭칭 감기여돌면서 낑낑거릴뿐 마을은 텅텅 비여있었다. 그가 마을을 떠나려는 때였다. 불시에 도장동에 나타난 《토벌대》군경놈들이 강대선이를 발견하고 욱 달려들었다. 《국방경비대》 대위의 견장을 붙인자로서 얼마전에 하동지구 《토벌》사령관으로 임명되여온 진주의 큰 지주 정태석의 맏아들 정필규놈이 직접 현지에 나타났다. 그러자 면경찰서 지서장인 마름의 아들놈이 굽신거리며 나가서 보고를 했다. 《사령관님, 래림하셨습니까. 마을놈들은 강아지새끼들만 남기고 다 어디론가 도망가서 숨고 이 소경 한놈만 남았습니다.》 《뭣이? 태산명동에 생쥐새끼 한마리라더니, 그래 겨우 잡았다는것이 참봉 한놈이란 말여?》 《이자는 참봉이라고는 하지만 눈이 멀어가지고도 앉아서 삼천리, 서서 구만리를 내다본다는 귀신같은 놈입니다.》 《그-으-래?》 《여기 도장동에서는 이자가 모르고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게라 이놈의 입만 열면언…》 《그렇단 말이지.》 정필규는 거들먹거리면서 강대선이 서있는데로 몇발작 다가섰다. 《너 이름이 뭐지?》 《…》 대답이 없다. 《말꺼정도 보이지 않아? 이름을 묻지 않는가 이름을.》 《…》 여전히 아무 대척이 없다. 《야 임마, 주둥이마저 땜질해붙였어? 앙?》 《야 임마?! 거 어느 씨가머리없는 놈 집의 자식인지 인사말부텀 덴질럽단께.》 《머시?》 《나하고 상대럴 허겠거든 제 이름부터 대라우, 제 이름부터.》 《히야, 이것 봐라. 제격인걸, 나는 너를 몰라도 이 일판에서 날 모르는건 다 잘못된 놈들야. 정태석이란 이름 들어본 일 있어?》 《오, 진주의 왕땅거미 정태석이.》 《뭣이락꼬, 니들도 다 우리 아버지 땅 붙여먹고 사는 놈들일텐데 존엄성없이 왕땅거미가 뭐여 왕땅거미가?》 《흥, 꼬리빠진 수닭은 다 자기 집 수닭인줄 아는게라. 이 하동땅은 말짱 다 저네 정태석이의 소작지인줄로 아는 모양인데 나는 제땅 가지고 농사지어 제 밥 먹고 사는 자작농잉께 종취급하지 마소.》 《오호라, 제 밥 먹고 자랐다 큰소리여, 그래 빈농인가?》 《아니.》 《그럼 중농쯤 되나보지.》 《그도 아니시. 부농이여.》 《부농?! 아니 부농이면 되얐지 앞도 보지 못하는 주제에 그 가난뱅이 공산당을 따라댕겨야 뭘 지좆이나 먹을게 있다구 빨갱이편에 들어가지고 여기에 봉화랑 올리면서 지랄이여 개지랄이.》 《제미, 그럼 니덜언 그 개같은 미국놈들의 치사스러운걸 뽈려구 묻어다니며 이리 사람잡이에 미쳐 싸고돌아치노?》 《야, 주둥이럴 닥쳐, 그 아가리에 시뻘겋게 단 철알을 몇개 쏘아넣기 전에.》 옆에 서있던 경찰지서장 최기택이놈도 한마디 끼여들었다. 《강대선이 이 자식, 나넌 누군지 알겠어?》 《알겠구만이라 알겠구만이라. 새끼땅거미 최마름의 자식 최기택이렸다.》 《야, 누구앞이라고 감히 망발이여 망발이, 나는 경찰지서장이고 이분은 토벌사령관 정필규대위님이시야. 말 좀 곱게 하지 못해? 그러니까 천대받지 않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구.》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구 피장파장이여.》 정대위놈이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야, 나는 너따위하구 여기서 말씨름할새가 없어. 나는 군법에 의하여 사민도 현장에서 즉결심판, 즉결처형할수 있다는걸 똑똑히 알아야 해. 마을놈들을 미리 어디다가 다 피난시킨것이 너지? 어느 산에 들여보냈어? 그리고 도장동에도 네놈의 휘동질에 오늘래일로 입산하게 될 젊은 놈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통고를 받고 왔는데 도대체 모두 어디로 빼돌렸는가 말여? 대답하지 못하겠어? 앙?》 《나는 모른당께롱.》 《모르지 않아, 대라 대.》 《허, 눈도 보지 못하는 날 보고 묻지를 말고 사람사냥에 달뜬 당신들이 직접 두눈에 쌍심지럴 켜들고 맘대로 찾아보랑께. 마을집들도 쥐구멍까지 쑤셔보고 산도 말짱 다 뒤져보구 말이제.》 《병신이라고 허술하게 볼 놈이 아니야. 안되겠어. 마을도 다 불질러삘고 이 악질빨갱이놈은 이 자리에서 당장 총살해, 총살! 야, 세상구경도 한번 바로 못해보고 여기서 그냥 이렇게 죽는것이 억울하지 않아? 지금이라도 말하면 살려줄테다.》 《아니, 나넌 차라리 소경이 되여 그 눈뜨고 못 봐줄 더러운 시상을 보지 않고 살아왔던걸 다행으로 생각했던 사람이여. 내가 시방 질로 두려워하는건 목심이 끊기는것이 아니라 내가 눈뜨고 보지 못하더라도 통일된 조선의 새시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싶어서 깨끗한 량심을 바쳐 싸우고저 못내 몸부림도 쳐왔던 나의 그 넋이 먼저 죽어 무덤으로 가서 묻히는게라. 제주도의 영웅들처럼 이 한몸을 통일의 제단에 바쳐 우리 마을사람들과 내 민족을 깨우칠수만 있다면 나는 비굴히 사느니 떳떳한 죽음을 맞받아나갈테다.》 《사격준비!》 정필규가 구령을 치자 앞에 서있던 여러명의 괴뢰군들이 총탄을 재우는 소리가 들렸다. 강대선은 그 소리가 들리는쪽으로 서서히 몸을 돌렸다. 최후의 순간을 맞이할 준비를 다시금 갖춘 그는 낮으나 저력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이 나를 죽일수는 있고 우리 마을과 산을 다 불태울수는 있어도 그 어떤 총칼과 대포로써도 우리의 지리산을 지도우에서 영영 지워버릴수는 절대로 없는게라.》 이때 장미빛 아침노을이 선혈처럼 붉게 타고있는 저 동쪽의 양경산우로 시뻘건 불덩어리같은 아침해가 둥실거리며 불끈 솟아올랐다. 순간 반사적으로 그리로 서서히 머리를 돌리는 강대선의 사내싸게 잘 생긴 얼굴에는 그 어떤 근엄한 미소가 어리여 알지 못할 열정으로 불타오르고있었다. 《아, 양경산에 해가, 아침해가 솟는구나. 우리 지리산이 장쾌한 해맞이를 하는구나! 잘 있거라. 지리산, 지리산아!》 죽음을 맞받아 불사신처럼 나가는 강대선의 머리우에서 장쾌한 태양이 빛나고있었다. 《일제사격!》 정대위가 마치 총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입으로 총탄을 내쏘듯 악에 받쳐 구령을 내렸다. 그런데 일제히 울려야 할 총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사병들이 서로마끔 다른 사람의 총에서 발사되기를 바랐던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자기들의 가슴속까지 꿰뚫어보는듯 한 이 의지 강하고 무서운 사나이에게 총을 쏘기가 두려웠던것이다. 넓은 가슴을 내대고 서있던 강대선의 입가에는 일순 비웃음이 비꼈다. 《나를 쏘지들 못하는걸 보니께 너네들도 확실히 무서워하는건 있긴 있구나. 왜 쏘지 못하는가? 싸게싸게들 쏴라 쏴!》 강대선은 아무 두려움도 없이 장탄한 총을 잔뜩 꼬나들고 서있는 괴뢰군사병들앞으로 한발자욱한발자욱 걸어나갔다. 차라리 총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무서워할줄도 모르는것인가. 날이 선 총창끝이 금시 가슴에 와닿을것도 모르고 그냥 자기들한테로 맞받아 걸어나오는 그를 본 한 사병놈이 흠칫 놀라며 《어유, 욜리로 오지 마소 욜리로…》 하고 기겁하여 소리치며 피해 도망치다가 벌러덩 뒤로 나자빠지고말았다. 이때 등뒤에서 《탕!》 하고 한방의 총성이 귀따갑게 들려왔다. 그 총성과 함께 우뚝 그 자리에 서버리던 강대선이 몸을 비칠하더니 다시 돌아서는것이였다. 《누가, 어느 놈이 날 쐈어? 비겁한 놈, 눈먼 사람의 등을 쏘지 말고 앞을, 이 가슴을 면바로 쏴라!》 탕, 타당! 정대위의 손에서 콜트권총이 련속 발사되였다. 그때마다 몸을 흠칫거리던 강대선은 넘어질것 같지 않더니 불시에 쾅 하고 그만 뒤로 넘어지고야말았다. 마을이 텅 비여있다보니 이 굴함을 모르는 사나이의 최후를 가까이에서 보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토벌대》놈들은 마을에 온통 불을 질러놓고는 일단 철수하였다. 한편 지리산으로 오르다가 마을에서 총소리가 울려 되돌아선 갑동이네가 마을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강대선이 마지막숨을 쉬고있었다. 《형, 형님, 정신을 차리씨요, 정신을!》 《강형! 대근이랑 다같이 입산하는데 우리를 바래주지도 않고 이리 가면 워쩌우. 죽지 마씨오. 죽지럴 말고 눈을 뜨시오.》
동생과 갑동이 안타까이 흔들며 피타게 부르는 그 소리를 들었는지 강대선은 간신히 눈을 떴다. 그는 가슴속에서 녀동생이 수놓아준 그 공화국기발을 꺼내여 갑동이의 손에 넘겨주었다. 《해와 별이 빛나는 이 공화국기발이… 남북 삼천리에 다 휘날리는 그날을… 내 살아서 기어이 보자고 했둥마… 그날을 보지 못하고… 어-억-》 《혀엉- 형님아-》 《대선형님-》 갑동이는 물론이려니와 입산청년들은 다같이 기막힌 울음을 터뜨리며 슬픔을 이기지 못해 목메여 꺼이꺼이 울었다. 자기 무릎베개를 하고 하늘을 향해 반듯이 누워 숨진 강대선의 언제 한번 이 세상의 밝은 광명을 본적도 없는 그 두눈을 감겨 드리려니 갑동은 너무나도 억이 막혀 또다시 억울한 통곡을 터뜨렸다.
《성님, 이제부터 성님이 없이 저 혼자 워찌 어두운 밤길을 헤쳐가라 이리 먼저 가시우? 흐윽…》 이날 비분의 눈물을 삼키며 강대선과 고별한 열일곱명 청년들이 지리산으로 오를 때였다. 마을쪽에서 몸이 실한 처녀가 허둥지둥 뒤따라오르다가 산마루를 넘어서는 갑동이네들에게 눈물에 젖은 머리수건을 벗어 흔들어보이였다. 갑동이 돌아보니 그는 강대선의 누이동생인 덕금이였다.
(아, 오빠마저 잃고 불탄 마을에 혼자 남는 저 녀자의 장차 운명은 이제 어찌될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