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새벽하늘

 

  9 

 

《통일사절》

 

 

1

 

력사의 판결은 속일수 없다.

이듬해 2월 안성태는 《형집행정지》라는 명목으로 대전교도소에서 나오게 되였다. 38년만에 내딛는 바깥세상이였다.

안성태는 한남대학교 김교수의 집에서 하루밤을 지냈다. 오스트랄리아 ABC텔레비죤 도꾜특파원인 녀류기자, 세계인권기구의 한 성원이 거제도까지 안성태를 따라갔다.

누이동생 안석순이와의 눈물어린 만남… 동생 안성필이 병인의 안색으로 형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정상… 성태는 동생을 끌어안을 때 그가 측은해지고 그의 모든 지난날들을 용서하게 되는것이였다.

상봉의 기쁨은 순간이고 자유라는것도 거짓이였다. 작은 감옥에서 큰 감옥으로 나왔을뿐.

안성태와 외국텔레비죤 녀류기자, 세계인권기구성원이 있는 저녁에 벌써 경찰이 찾아와 《인사》를 하더니 그 이튿날도 다음날도 깊은 밤에도 상관없이 찾아왔다. 누구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보고하라, 만일 어데로 잠시라도 자리를 뜨게 되면 꼭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러니 《보안관찰법》이 계속 뒤따르는 이거야말로 장기수로서의 옥살이의 계속이 아닌가.

우선 누이동생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누이동생도 이제는 예순넷인가 된다. (벌써 이렇게 할머니되다니.) 그는 함께 의지해살자고 하였다. 안성태도 그렇게 마음을 작정하고 간 걸음이였다.

하지만 도저히 있을수가 없었다. 녀동생가족들을 괴롭히고 자신을 괴롭히면서 그냥 있을수가 없었다.

안성태는 자기를 후원해주던 《한백교회》의 주선으로 경기도 파천시 별양동의 《한백의 집》으로 오게 되였다. 아빠트의 지하실을 꾸린 곳이였다. 이미 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와있었다. 길거리의 청소부로 일거리를 쥐였거나 낡은 책방, 헌옷가게를 운영해서 근근히 연명들을 하고있었다. 《민가협》과 《한백교회》의 후원이 많았다.

안성태는 침술로 자리를 잡았다. 소문이 나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찾아왔다. 치료를 받으러 오기도 하고 호기심과 동정으로 찾아와서는 선망과 존경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기도 한다. 수십년 옥고를 치르면서도 신념을 지킨 비전향장기수들의 생활을 모두가 지켜보고 지원을 하려고 했다.

그리스도교회관에서 《통일강연》에 출연한 이후로는 사방에서 강연청탁이 왔다. 《민가협》, 《통일광장》 등 주최해나서는 단체는 많았다.

그런중에 《전국련합》에서 울산에 내려와서 강연을 해달라는 청탁이 안성태한테 왔다. 울산에서 제기가 왔다는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울산에 가려던 참이여서 성태는 우선 거기부터 응낙을 했다. 조영미를 만나야 했다!

조영미는 《불기소처분》으로 나왔고 황영호는 4년이라는 형을 받고 지금 대구교도소에 수감중이였다. 그동안 조영미한테서도 편지가 오고 황영호는 물론 광주, 대구, 부산 등 교도소에 갇힌 《령남위》사건 관계자들인 젊은 《좌익수》들한테서 편지가 왔다. 그들은 모두가 30, 40대 초반의 열혈용사들이였다.

맨 처음으로 날아온 편지는 조영미의 편지였다.

 

…선생님, 무엇으로 반갑고 기쁜 심정을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먼저 대전교도소에서 나오시는 날 그 문앞으로 달려가지 못한 죄송함을 금할수 없습니다.

제가 예심에서 나오니 어린 일민이가 만성설사증에 걸려 형편없이 되였더랬습니다. 보통약으로는 말을 듣지 않았대요. 작은할머님의 정성이 아무리 커도 어머니의 사랑에는 마술같은 힘이 있었던가 봅니다. 제 엄마를 보자 일민의 병은 빨리도 나았습니다.

선생님, 거제도의 석순아지미한테서 편지를 받았어요. 거기에 있지 못하는 선생님의 심정이 헤아려지더군요. 선생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 땅, 아마 통일된 내 조국의 땅이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것이라고 생각하니 통일의 그날은 언제 오려나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새삼스레 더해지는군요.

사실은 제가 선생님을 모시려는 생각도 했더랬는데 석순아지미의 편지를 읽고 그게 도리여 선생님을 괴롭히는것으로 된다는것을 깨닫고 지금 당장은 그 생각을 뒤로 미루었습니다. 하지만 장차로는 저의 곁에 꼭 있어야 합니다. 일민이가 할아버지를 그리워합니다. 어린 나이에도 할아버지가 있는 다른 애들을 부러워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모실 도덕적인 의무감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시대적사명감이라고 크게 생각해주십시오. 선생님이 곁에 있으면 저에게서 삶은 끊임없이 새로와지고 제 또한 사업에서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겁니다. 일민이 아버지도 그런 심정이리라 믿습니다.

일민이 아버지한테도 선생님의 주소를 알려드렸습니다. 인차 거기로 편지가 갈겝니다. 《전국련합》 울산지부에서 근일간에 선생님을 울산에 초청한다니 더 다른 얘기는 길게 적지 않습니다. 만남의 그날을 가슴설레며 기다립니다.

 

《령남위원회》사건은 《안기부》의 조작극에서 하나의 최절정이라고 말할수 있었다. 1997년 울산에서 구청장선거가 있었다. 로동자들이 집중된 울산지역에서는 민주화운동권의 영향력이 컸다. 한 구청장에 민주운동권의 후보인 김창현이 당선되였다.

바빠맞은 《안기부》는 울산지역에서 《령남위원회》사건을 조작해내여 김창현 등 20여명을 체포하였다. 증거품이란 《이북찬양죄》로 되게끔 록음테프를 련결복사한것이였다. 도청장치도 부족하여 여러 장소에서의 말들을 조립하였다. 책자들도 여느때에는 무관하던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자료로 묶어 《증거》로 만들었다. 《안기부》의 솜씨에는 우익보수세력들자신이 감탄해마지 않을 정도였다. 《국정원》으로 개편되기 전의 마지막《솜씨》라고 해야 할것이다.

조영미도 남편 황영호와 함께 체포되였지만 후에 《불기소처분》이라는, 어느때든 다시 체포될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석방되였다.

조영미로부터 편지를 받은지 얼마후 대구감옥에서 황영호한테서 편지가 왔다. 답장을 보냈더니 인차 또 편지가 왔다.

 

…존경하는 안성태선생님!

단식 나흘째 날에 선생님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복식선언후 첫 죽그릇을 대하는것보다 더 반가왔습니다만 편지마감에서 당혹스러움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의 곤궁한 형편에서 령치금이라니 돈이 작고많고간에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와 선생님께 고백하거니와 선생님께 지금껏 미뤘던 리유도 꼭 이런 일이 있을것 같은 우려에서였는데 어쩌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듯 한단 말입니까. 송구함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선생님들의 큰 사랑을 익히 알기에 렴치를 무릅쓰고 소중하게 쓰겠습니다. 재삼 감사드립니다. 사진속의 선생님의 모습이 무척 밝아보여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력사발전의 합법칙성과 민중에 대한 굳건한 신심으로 고금의 혁명가들의 락관성은 공통된것이기는 합니다만 통일혁명가들인 선생님들의 모습에서 다시한번 그것을 확인하게 되는군요.

우선 궁금증을 먼저 풀어드려야 할 순서군요. 특별한 리유가 있어서 단식을 한것은 아닙니다. 학생들 처우문제에 관해서 학생들이 항의단식을 하는데 선배로서 힘을 좀 보탠것이지요. 다행히 무리없이 며칠만에 잘 마무리되였고 지금은 복식중입니다.

이곳에 와서 벌써 세번째입니다. 교도소마다 나름의 특징이 있어서 다른 곳보다 이곳은 투쟁이 잦은편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저를 잘 아다싶이 저야말로 이런 분위기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지요. 선배로서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세워놓은 옥중투쟁의 전통이라고 할가…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건강관리는 철저히 할테니까요. 자신을 벼리는것은 고통이자 큰 기쁨이지요. 단식도 그렇습니다. 시나브로 느슨해진 활시위를 팽팽하게 조여주는 일이니까요.… 불굴의 투지가 충만해지니 이보다 더 큰 기쁨이 또 있겠습니까. 징역에서 유일한 적은 나약해지려는 자기자신이 아니겠습니까.

…요즘은 열대기후의 련속입니다. 반지하에서 생활하신다니 통풍은 제대로 되는지 걱정됩니다.

…《한백교회》분들이 가게방을 많이 도와주신다니 참으로 고마운분들이십니다. 선생님들을 존경하고 아끼는 모든분들의 바람대로 가게일이 잘되였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저의 부부가 선생님의 사랑을 같이 받고있어 행복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무쪼록 여름을 건강하게 나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과 함께 있던 대구에서

                          황영호 올림

 

여러 교도소들에 수감된 《령남위원회》사건 관계자들로부터도 각기 안성태한테 편지가 왔다. 그들은 편지에서 《한백의 집》에서 년로하신탓에 고생하시는 선생님들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했으며 그럴 때마다 자기들이 후배의 도리를 다하지 못해서 장기수선생님들께서 더욱더 고생을 하셨다는 자책감이 든다고 하였다. 지난날 자기들의 생각과 활동을 깊이 반성한다고 했으며 선생님들의 기대와 사랑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욱 단련되여 조국통일의 성업에 일로매진하겠다고 썼다.

 

안성태는 기차에 올라 울산을 향해 떠났다. 청탁을 받은 이후 인차 떠나려 했으나 《말》잡지사 기자와의 인터뷰, 그리스도교회관에서의 통일강연회, 련이어 《민가협》주최의 간담회에 참가하다나니 늦어진것이다.

안성태가 간다는것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련합》(전국련합)에서 울산지부에 알려주었고 《통일광장》에서도 울산 《민가협》, 《울산녀성회》에 통지했다고 한다.

 

 

2

 

 

조영미는 역에 나올 때 일민이를 데리고 오지 못했다. 거의 낫게 된 병이 도질수 있다고 김양순이 말리는 바람에 하는수없이 일민이는 김양순이와 함께 집에 남게 하였다.

역에는 《전국련합》 울산지부에서 최선생(그는 수수한 양복차림에도 매우 돋우보이는 50대 초반나이의 키 큰 사나이였다.) 그리고 울산지구 《민가협》 사무국장 김이경(그가 바로 《령남위원회》사건으로 형을 받은 박경순의 안해, 그는 코트차림이다.) 두사람이 함께 주선해서 승용차를 가지고 나왔다. 조영미는 《울산녀성회》 부회장의 자격으로 나온셈이다.

조영미한테는 결코 이것이 공식적인 마중이 아니였다. 김이경은 조영미와 안성태와의 관계를 알고있지만 최선생은 알지 못한다. 김이경과 조영미는 서른여덟 서른아홉살로서 자치동갑이다.

숙명녀대를 졸업한 김이경은 남편이 하는 책방일을 도우면서 《울산운동권》에 나선것이다.

조영미도 코트차림이다. 어깨에는 손가방의 끈을 걸치였다. 구속기간에 중발머리처럼 짧게 깎았던 머리칼이 본래대로 자라지 못해 어깨에 닿자면 아직 멀었다.

마중나온 일행중에서 눈에 띄게 흥분하는 사람은 역시 조영미였다.

그는 이따금 김이경이 물어보는 말에 동문서답이여서 김이경이 새무죽이 웃을뿐이였다.

김이경이 조영미의 귀가에 대고 속삭였다.

《뜻깊은 만남을 축하해요.

그러면서 의미있는 눈웃음을 보내는것이였다.

똑같이 옥중에 남편을 둔 두 녀인, 그들의 사고와 감정정서가 자연 비슷해서인지 자매간처럼 보인다.

그들 셋은 역사 바깥에서 기다리고있었다.

30분가량 지나 기차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누군가를 보고 최선생이 달려나가고 김이경이 뒤따라 목을 빼여들며 걸어나갔다. 사진에서 익힌 안성태의 얼굴을 그리도 쉽게 찾을수 있는지…

저앞에서 최선생이 웬 사람과 손을 잡고 흔드는데 그의 뒤모습에 가리워 앞이 보이지 않았다. 김이경이 반갑게 머리숙이며 달려나가 또 손을 잡는다.

조영미는 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물속에서 어룽어룽해오는 사람과 사람… 그는 도정신을 하며 손가방에서 얼른 손수건을 꺼내 급히 눈을 닦았다.

그러자 눈앞에 다가오는 모습, 사진과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늙은이이면서 늙은이 같지 않은 모습, 지난날에 무척 눈에 익었던 얼굴이면서 전혀 생소한듯 한 얼굴, 류달리 짙은 눈섭, 티없이 환한 미소… 그의 억세인 손에 두손을 맡긴 영미는 고개를 숙이며 다시금 북받치는 눈물을 걷지 못했다.

《영미, 이렇게… 손을 잡아보니…》

안성태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영미는 와락 안성태의 팔에 얼굴을 묻으며 《선생님!》 하고 부르면서 조용히 흐느끼였다.

그들의 옆에 섰던 김이경이 《실컷 울라요. 실컷, 어린애처럼…》 하고나서 입은 웃는데 눈시울은 불깃해진다.

어리둥절해진 최선생이 김이경을 돌아보았다. 김이경이 한걸음 다가서며 조용히 말을 하자 키가 큰 최선생이 그쪽으로 몸을 구부리며 고개를 기울이였다. 김이경이 말했다.

《안성태선생님이 소개를 서서 결국 황영호씨와 조영미부회장이 결혼했던거랍니다.

최선생이 놀라서 눈을 꺼벅거리였다.

《아니, 옥중에서 소개라니.

《그럴만한 사연 많아요. 오래고 긴… 분단 55년과 맞먹는… 차차 듣게 될거예요.

그러던 김이경이 그 얘기는 후에 미룬다는듯이 손을 한번 내젓고는 심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요. 한 량심수가 옥중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은거죠. 그래서 대를 이어갈 후대를… 통일세대를 키운셈이랍니다.

전후사연을 다 몰라하면서도 최선생은 서로 다른 세대의 이 류다른 상봉에 머리를 끄덕이는것이였다.

김이경이 말했다.

《보세요. 친부녀간 만남도 이보다 더 뜨거울수 있겠나요… 이런 작은 만남들이 이어지고 이어지면 큰 만남이 올거예요.

《오, 그렇소. 그렇구말구.》 하면서 최선생이 스스로 큰뜻을 퍼내며 자꾸만 고개를 주억거린다.

김이경이 나섰다.

《자, 빨리 차에 탑시다.… 선생님 이쪽으로…》

뒤좌석 복판에 안성태, 량쪽에 두 녀인이 앉고 운전사곁에 최선생이 앉았다.

차는 떠났다. 태화강다리를 지나 동구에서도 제일 유축진 곳을 향해 한참이나 달리였다.

안성태와 조영미가 오랜만에 만난 부녀간처럼 일민의 건강이며 그 애 아버지한테 면회는 언제 갔는지 하는거며 조용조용 얘기를 나눈다.

한편 김이경은 앞으로 몸을 숙여 최선생의 귀가에 대고 말했다.

《래일은 우리 <민가협>에서 조직하는 모임에 안선생을 초청하려는데 어떠세요?

최선생이 몸을 약간 돌려 김이경한테 말했다.

《아니 사무장선생, 너무 하다구요. 우리가 래일로 계획했는데 거기선 오늘 오후에 하소구려.

《오늘 오후에야 쉬여야죠.

《그럼 저녁때.

《저녁때는 <녀성회>에서 저 부회장네 집에 들이닥칠거예요. <청년회>에서도 가만있지 않을거죠. 경남출신 북의 대학졸업생 처음 맞이한다고 야단들이랍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그들의 제의도 막았어요.

그러자 최선생이 곧바로 앞시창을 내다보며 볼부은 소리를 하였다.

《허, 이번 안선생님의 울산방문에서 도대체 누가 주최인지 모르겠군. 우리 지부에서는 나를 크게 믿고 기다리겠는데 내 가서 뭐라 한담, 선참을 뺏겼으니 말이요.

그러자 김이경이 《호호호.》 하고 소리내여 웃었다.

《선생님, 량해하세요. 래일모레 오후로 하면 어때요?

《졌소. 내가 졌소. 녀인들한테 내가 손들었어.

《녀성들한테 양보하는건 남성의 미덕이 아닐가요? 듣자니 최선생님은 무척 부인님을 사랑하신다는데.

최선생도 마침내 《하하.》 웃고만다.

운전사가 록음기를 틀어놓았다. 안성태가 조용히 그러면서도 경탄하듯 말하였다.

《공화국노래구만…》

북에서 만든 가요 《녀성은 꽃이라네》였다.

조영미가 안성태의 어깨에 머리를 가벼이 기대며 말을 했다.

《요즘 울산은 온통 공화국노래판이랍니다.

운전사가 《최선생님》 하고 부르고는 《보십시오. 공화국에선 녀성을 꽃이라는데 우리 울산에서도 녀성을 꽃으로 내세워봅시다요.》 하며 히죽히죽 웃었다.

《에끼! 이 사람 남자들편이 아니구만.》 하고 최선생도 웃고 차안에서 모두가 웃었다.

김이경이 웃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하네요. 운전기사선생 제일이라구요.

그러던 김이경이 등받이에 몸을 가져가며 누구에게라없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공화국의 노래 울리고… 공화국에서 오신 통일사절을 이렇게 모신듯 하니 통일이 다된것 같구만요.

김이경은 록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코노래를 따라 부른다.

차는 단층주택지구에서 멎었다. 운전사를 내놓고 차에서 모두 내렸다.

김이경은 안성태앞에 다가왔다.

《그럼 선생님, 오늘은 부회장님댁에서 푹 좀 쉬십시오.

《고맙소. 고마와.

성태는 김이경의 손을 쥐고 얼른 놓지 못했다.

최선생이 조영미에게 말했다.

《부회장, 선생님이 푹 쉬시도록 해야 합니다. 녀성들이 달려와서 밤늦도록 질문소나기를 퍼붓지 못하도록 단속을 해야겠어요.

부탁이나 권고가 아니다. 어떤 지시를 강조하는듯 한 어조였다.

차는 떠나고 안성태와 조영미만이 남았다. 조영미는 안성태의 팔을 부여잡고 거기에 의지하듯 하면서 소로길로 걸어간다. 작으면서도 아담한 집앞에 멎어섰다. 부엌칸 그리고 살림방 한칸이라고 했다.

울산동구에는 《현대그룹》이 경영하는 고층외랑식아빠트들이 빼곡이 차있다. 숨막힐듯 한 아빠트지구의 공기는 말이 아니다. 게다가 울산만에 면해서 전개된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의 산업건물들에서 나오는 공해현상은 막을길이 없다. 산업지구와 아빠트지구가 잇닿아있으니 사람들은 공해속에서 살아야 한다. 거기다대면 여기 단층지대는 훨씬 나았다.

이 집은 본시 김양순이와 김계순이 살던 집이였다. 김계순이 세상을 떠나자 김양순이 제 손자를 데리고있었다. 조영미가 오자 셋이서 살았다. 그후 황영호와 조영미가 결혼하자 김양순은 아빠트지구에 있는 아들집에 옮겨갔다. 워낙 아빠트를 싫어한 김양순이지만 젊은 부부에게 집을 물려주고 거기로 간것이다.

그는 황영호에게 말했다.

《이제 아이들이 생기면 집이 좁을수도 있어. 하지만 집이 좁아서 못사는 법은 없으니, 마음이 좁아져서 못살면 못살지.

그때 황영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었다.

《고맙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러던 남편이 지금은 이 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작은 감방안에 갇혀있다. 그렇다. 그는 결코 마음이 좁은 사람이 아니였다. 그는 넓은 집을 떠나 좁은 집으로 들어가서도 마음은 크게 살고있다.

영미는 멈춰서며 《이 집이예요.》 하고 말했다.

키 낮은 울바자안의 마당에 김양순이 일민의 손을 잡고나와 서있다.

녀인은 얼핏 봐도 나이가 70대 중반을 넘은것 같은데 등은 조금도 구불지 않았다. 어째선지 연한 갈색의 후렁후렁한 코트를 입고있었다. 그것은 정중히 손님맞이하는 차림새같이 보였다. 나이먹었어도 곧은 몸매에 머리를 추켜든것이 어딘가 보통녀인들과는 다른 기품이 느껴져 늙어도 늙은이같지 않았다. 새하얗게 센 머리칼을 옛날식으로 가리마를 타서 뒤로 꽁진것조차 그의 흔들리지 않는 생활관습을 말해주는듯 싶다.

그런데 쪽대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먼저 뛰여나온 일민이 안성태앞에 와서 꾸벅 인사를 한다. 여섯살나이치고는 꽤 키가 커보였다. 병색이 돌지만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안성태는 무릎을 꺾고 앉으며 그를 껴안았다. 그 애의 머리칼에 볼을 부볐다.

《잘 있었니, 보고싶었다. 할배가 이제 왔다고 욕하지 마, ?

목이 메여 더 말이 나가지 않았다.

안성태의 머리우에서 김양순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먼길에 수고가 많았능기요. 안선생, 내 김양순이라꼬 영미의 작은할머니입니다.

안성태는 일어서며 《아, 그러세요? 참말 반갑습니다.》 하고는 두손으로 그가 내미는 손을 부여잡았다.

《안선생은 나를 잘 모를수 있능기요. 내사 안선생의 성함은 몇십년전부터 익히 들었능기라 첨 만나지만 오래전부터 내 혈붙이처럼…》

더 말을 못하는 그의 심중에 몇십년세월이 얽혀와서 격정이 북받치는것이다. 어느 한때 사랑하는 조카인 계순이의 운명을 두고 안성태를 무던히도 원망했다는것을 이제는 김양순자신이 잊고있었다.

안성태가 말했다.

《저번때 서울 왔던 길에 우리 <한백의 집>에 저를 찾아왔댔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통일력사기행>에 강사로 참가한 기간이였지요… 한데 년로한 몸에 어떻게 서울까지…》

《그럴만 한 일이 있었능기라… 자, 저기로 들어갑세다.

그들은 마당에 들어섰다. 곁에서 영미가 따라 들어오며 설명을 했다.

《서울 <민가협>에 볼일이 있어서 가셨지요.

김양순이 마루아래에 놓인 섬돌을 디디다말고 뒤돌아섰다.

《볼일이란 딴게 아닝기요… 좀 들어보소. 이렇게 안선생을 만나니 자연히 격해져서 그 일도 생각나능기라…》

김양순은 무엇을 더듬는듯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가슴속깊이에서 쌓이고쌓인 재무지를 헤치고 어떤 뜨거운 불씨가 살아오르는게 점점 열띤 음성이 된다.

그의 남편은 1952년 밀양의 가지산기슭에서 쓰러졌다. 남편의 무덤도 없었다. 남편이 《토벌대》에 의해 사살되였다는것을 적들의 공식발표로 알았을뿐… 허나 그 최후, 그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 알수가 없었다. 김양순도 남편이 격전장에서 쓰러진줄 알았다. 그러나 최근에야 그때 남편이 중상을 당해 자결하지도 못하고 적들에게 붙잡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런데 그 당시 남편을 담가에 눕히고 호송하던 두 경찰이 험한 산중에서 둘이 서로 짜고서 남편을 죽였다는것이다.

세월의 락엽속에 묻히고 묻힌 그 사실을 밝히는 실마리가 전혀 뜻하지 않은 계기에서 잡혔다고 한다. 그자들이 중상자를 죽인것은 순전히 담가를 들고 험한 산기슭을 내리기 힘들다는 그 리유때문이였다.

두 경찰놈은 80이 다 되도록 이때까지 살아있었다. 《민가협》에서는 광주사태는 물론 그 훨씬 이전의 제주도 4.3폭동 등 광복후의 여러가지 민주와 통일을 위한 투쟁을 진압한 가해자들의 진상을 해명하면서 《력사파헤치기》를 하던 참이라 이 사건에 관심하게 된것이다.

《민가협》에서는 김양순의 남편을 참살한 그놈들한테 형사소송건이 해당되지 못하는게 유감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언론을 통해 그놈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해치우겠다는것이다.

《그래서 말했능기라… 난 살아있다는 그놈들을 만나기조차 싫다구. 만나서 그 가련한 인생들을 보고나면 내 기분이 잡쳐지구 늘그막에 사는 재미 영 다 없어질거라구… 그까짓 늙다리들, 그것들의 과거지사를 덮지는 말아야지만 미국놈들한테 붙어 그 이상 못된짓 더 안했으문 놔두라고요. 남북이 화해협력하려는 판에 그따위것들은 다 무시해버려야 하능기요. 다만 늙다리들의 자식들을 징계해서 그들이 통일운동에만 동참한다면 정말 더 바랄게 없다구 말했능기라.

안성태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수십년세월 원한을 품고 살면서도 마음은 얼마나 크고 넓은가. 오로지 통일을 위한 길에서 개인적인것들을 다 집어던질줄 아는 이 녀인이 갑자기 거인으로, 녀장부로 눈앞에 우뚝 서있는것만 같았다.

그새 방안에 뛰여들어갔다가 나온 일민이 어느 잡지에서 오려냈는지 안성태의 자그마한 사진을 내밀어보였다. 그것을 손에 받아든 성태는 《고맙다, 일민아.》 하고는 다시 일민의 손에 쥐여주었다.

집안은 한칸이지만 꽤 널직했다. 부엌과는 지게문으로 통하고 배식구인지 작은 유리문이 사이벽에 있었다. 구들에는 돗자리가 깔리고 방안에는 조잡한 장식이 없었다.

안성태는 무릎에 일민이를 앉히였다. 곁에 앉은 김양순이 말했다.

《이녀석이 글쎄 잡지에 난 안선생의 사진을 이렇게 오려가지곤 저기 바람벽에 붙였다 뗐다 하며 우리 할배, 우리 할배 하능기요… 안선생, 이녀석 참 이상하더라구요. 제 어미가 구속되여있는 여섯달동안 갑자기 셈이 드는것 같더니 에미가 나오자 아주 그냥 본시보다 더 응석둥이 되능기요.

《그래요?… 일민이, 일민이.… 부르기도 좋구. 참 이름이 좋군요.

《제 아비가 지은거라. 민주, 통일을 뜻한다구 하면서…》

안성태는 머리를 끄덕였다. 불현듯 마지막으로 전주교도소에서 헤여진 황영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운동시간에 옆을 스칠 때면 귀에 대고 급히 《선생님, 고맙습니다.》 해서 《뭘?》 하고 물으면서 뒤돌아보면 벌써 저쯤에 가서 맞잡은 두손을 머리우에 들고 미소를 지어보이던 그였다. 대장부의 그 미소, 천만마디 말보다 더 많은 뜻을 담은것이였다. 대구교도소의 감방에 갇혀있어도 그 미소를 잃지 않으리라… 그가 못 견디게 보고싶었다. 가던 길에 꼭 대구에 들리리라.

안성태가 감옥에서 고생한 얘기부터 청하였다.

김양순은 한쪽 무릎을 세우고 그우에 두손을 포개여얹은채 말을 들으며 고개만 끄덕이였다. 안성태가 겪은 온갖 고초와 수난이 분명 그한테는 제나름의 비애와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분노를 넘어선 랭철함이 어린 엄한 시선을 떨구지 않으면서 안성태의 말을 듣고있었다. 일찌기 남편을 통일성전의 불길속에 잃고 청상과부로 이날이때까지 남편의 넋을 제 신념으로 걷어안고 살아온 이 여든  가까운 녀인의 심장에 너무나도 깊이 응어리진 삶의 고뇌와 체념이 안성태에 대한 동정의 눈물조차 잃게 하는것만 같았다.

조영미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있었다. 그가 손에 꼬겨쥔 손수건은 눈물에 젖었다. 눈굽을 찍다가도 민망해하는 눈길…

영미는 안성태를 쳐다보며 그의 무릎에 앉은 일민이를 자기한테 끄당겨오려고 한다. 그러면 일민은 몸을 흔들었고 어른 못지 않게 안성태의 말에 귀를 기울이군 하였다.

그들이 저녁식사를 치르자 네모진 밥상을 미처 일으켜세울 사이없이 일시에 녀인들이 들어섰다. 모두가 30대 후반의 로동녀성들이였다. 어떤 녀인의 몸에서는 아직도 라크냄새가 풍기였다. 그들은 가정과 아이들을 가지고 직장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지만 역시 로동이라는것이 육체적활력과 삶의 의욕을 잃지 않게 하는듯 축잡히지 않고 온갖 근심을 내색하지도 않는 그나름대로 활동적이고 명랑한 녀성들이다.

《녀성회》회원들과 《민가협》성원들, 모두 일곱명이였다.

그들은 네모진 밥상에 면담탁처럼 둘러앉으면서 제가끔 안성태한테 인사를 건네였다.

《선생님, 먼길에 수고많으셨습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

《선생님, 쉬지 못하게 이렇게, 정말 미안해요.

《저 봐요. 양순할머님도 나무람하시는듯 하네.

그러자 김양순이 네모상앞에 썩 나앉으며 손을 저었다.

《나야 자네들하구 같은 심정인데. 더구나 내가 <민가협>간부님이란걸 잊었능기?

그러자 가벼운 웃음이 일었다.

그들의 관심은 주로 북에서의 녀성들의 사회적처지, 특히는 로동녀성들의 생활에 대해서였다. 이야기가 탁아소, 유치원에로 번져지자 그들모두는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그토록 놀라는것이 의아해서 안성태가 김양순이를 건너다보자 김양순은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이 가시내들이 글쎄 너무 희한해서 그러능기라. 탁아소, 유치원을 다 국가자금으로 운영한다는걸 믿지 않을만 하다니까. 여기서는 여럿이 돈을 모아 아이보개를 사고 집도 세내서 하능기라. 비위생적이고… 말을 다해 뭣해요.

그제야 깨도가 된듯 안성태는 말을 했다.

《참 그렇지요. 이북에서는 탁아소, 유치원은 건설도 우선적이라구요. 내가 건설기사로 동평양지구에 지은 유치원, 탁아소만도 여섯동이나 되거든요. 탁아소에는 해빛쪼이기놀이장도 있구요. 그런게 없으면 설계가 통과 안돼요. 위생조건은 최상이구요. 전속의사까지 있어요. 국가적으로 탁아소, 유치원에 영양식품 공급하는 체계까지 서있구… 참 일찌기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어린이들을 나라의 <>이라구 하시였지요. 나라의 <>… 우리가 평양학생소년궁전을 지을 때 말예요. 맨 처음은 궁전이라는 말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저 소년회관이라고만 알았지요. 후에 주석님께서는 궁전이라고 달아주시였단 말예요. 궁전이란 임금, 왕의 집이란 뜻 아닌가요. 그러니까 어린이가 나라의 <>이지 뭐예요.

둘러앉은 녀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감동의 빛이 흘렀다. 어떤 녀인은 눈굽을 닦고있었다.

《꿈같은 일이예요. 믿어지지 않아요.

누군가는 한숨을 짓는다.

《여기서야 아이 달린 녀자는 해고당하기나 쉽지, 아이만 달리면 나가라고 하니 꼭 죄지은 사람같다니까. 우리야 하도 기능이 높으니 부려먹으려고 놔두는게지.

이야기는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에서 떠날줄 모른다. 젊은 어머니들의 최대의 관심이 그게 아닌가.

그런데 이때 한 녀인이 고개를 숙이더니

《그렇게 아이들을 나라의 <>이라고 내세워주시던 김일성주석님께서 서거하시다니.》 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그 녀인이 불쑥 머리를 쳐들었다.

《지금은… 지금은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주석님의 뜻을 받들어 아이들을 여전히 그렇게 내세워주실테죠?

《그렇구말구요.》 안성태가 말했다.

《감옥에서 나와서도 책을 통해 장군님의 령도와 덕성 많이 보았어요. 주석님그대로이신 그분의 덕망을 말이죠.

녀인들은 감탄을 거듭하는데 밤이 깊어가도 이야기는 끝날줄을 모른다.

누군가 느닷없이 물었다.

《선생님, 평양의 옥류관이 어떻게 생겼나요? 옥류관 지을 때 선생님이 시공을 같이하셨다던데.

안성태는 손세를 쓰며 옥류관의 모양을 설명했다. 그러자 한 녀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전 말예요. 하루 세끼 국수 먹으래도 싫어하지 않는다구요. 통일이 되면 여기 울산에도 옥류관 같은 국수집을 지어주셔요. 선생님이 직접 맡아서 말예요.

안성태는 가슴이 벅차올라 《그러지, 그러지. 통일이 되면야…》하면서 고개를 끄덕여보인다.

김양순이 벽에 걸린 동그란 시계를 가리켜보였다.

《저보게, 시간이 저렇게 됐어. 새벽 2시야. 안선생도 쉬시구 자네들도 일나가야 할 사람들인데.

《어머, 시간이 벌써 저렇게.

《어쩌나, 아직 듣고싶은 얘기 많은데.

《우린 열밤을 새면서라두 듣고싶은데 선생님이 쉬셔야지, .

하지만 안성태는 전혀 피곤을 느낄수 없었다. 점점 더 초롱초롱해지는 녀인들의 눈빛앞에서 밤을 새운들 어떠랴. 자신이 겪은 삶의 희열이 이제 새로운 활력으로 되살아나 육체의 피곤을 불사르는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녀성들이 출근을 하자면 다문 두세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할게 아닌가.

그사이 어느새 부엌에 나가 끓였는지 영미가 수제비국을 건덩이가 적게 훌훌히 쑤어서 큰 늄쟁개비에 담아 들여왔다.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영미는 국자로 퍼서 사기공기마다 떠놓았다.

누군가 말했다.

《이젠 가야 할가봐.

《어쨌든 밤참을 들어야 해요. 그리구 옆에 두칸짜리 너른집, 다 말해놨어요. 걱정말구 거기서 눈 좀 붙이구 새벽에 같이 집에 달려갔다가 출근하면 되지 않아요.… 너무 서운해 마세요. 래일 저녁 우리 <녀성회>주최로 <녀성회관>에서 또 듣자요.

그러자 녀인들이 일시에 활기를 띠였다.

《그래요?

《야 좋네. 그럼 먹자구요.

저마다 공기의 수제비국을 숟가락에 떠서 훌훌 불며 먹는다.

영미는 손에 국자를 든채 어린애들처럼 기뻐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얼굴에 미소를 그리고있다.

영미의 명랑한 목소리…

《자 들어요. 더 들라는데… 그리구 여기 모인 여러분네는 따로 알리지 않겠어요. 래일 저녁은 < 녀성회관>. 저녁 8시까지.

영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날줄 모른다. 마치도 머나먼 외국이나 객지에 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아버지의 흥미있는 려행담을 제 동무들한테 들려주려고 하는 딸의 자랑과 흐뭇함이 비낀듯 한 영미의 미소였다.

안성태는 제 무릎을 베고 이미 잠이 든 일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서 황영호의 모색을 분명히 보고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이튿날 낮에는 울산대학총학생회의 초청을 받았다. 총학생회 회관에서 두시간동안 간담회가 있었다. 거기에는 학생회간부들과 대학안에 숨어있는 근 20명의 수배자들이 참가했다. 안성태가 체험한 공화국의 생활, 특히는 대학생생활이 그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오후에는 울산동부지역에서 《현대중공업가족운동협의회》의 초청을 받았고 저녁에는 《녀성회관》에서 열린 강연회에 출연하였다.

다음날은 오전에 동부지역에서 청년들의 모임, 오후에는 로동자들과의 상봉모임이 있었다.

그날 저녁에는 《사회복지관》에서 《전국련합》 울산지부가 조직한 강연회에 출연하였다. 장내에는 대학교수, 진보적인 인사들, 로동자들 150여명이 참가하였다. 안성태는 공화국의 통일정책에 대하여, 예나제나 변함이 없는 자주적인 평화통일방침, 련방제통일에 대하여 말을 하였다. 23일동안에 많은 강연회와 좌담회, 간담회가 있었다.

단체마다 다시 오라는 부탁이였다.(이후 안성태는 울산에 다섯번이나 가게 된다.)

…안성태는 역에서 영미와 일민이, 김양순이와만 조용히 헤여질수 없었다. 련속되는 《통일력사기행》에 강사로 참가하면서도 울산에 자주 오리라고 마음먹었고 인차 만나게 된다는것으로 서운한 정을 달래였다.

《전국련합》, 《민가협》, 《녀성회》에서 각기 한두명씩 바래워주려고 역에까지 따라나왔다.

하지만 그들은 조영미와 안성태를 방해하지는 않았다.

조영미가 안성태에게 말했다.

《대구에 들리지 마세요. 후에 건강이 더 춰선 다음에라도… 대구에 가실려면 영천에서 갈아타야죠. 그러노라면 로독이 심해지겠는데…》

일민이를 안고 선채 안성태가 말했다.

《괜찮어. 괜찮어. 그럼 내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갈가.… 대구교도소 거기서 일민이 아버지와 인연이 맺어졌지. 내 꼭 들려야겠어. 일민이 애비, 거기서 나를 도와줬구. 내 은인이 된셈이지.

《아이참, 이애 아버진 또 선생님을 은인이라구 하면서 그 시작이 대구라고…》

《우리 두사람 말이 다 옳은셈이지. 허허허…》

안성태의 맑은 웃음은 퍼그나 스스럼없어서 딸앞에서 짓는 아버지의 웃음소리나 다름없다.

안성태가 대구교도소에 있는 황영호를 면회하러 가는것을 막을수는 없었다. 조영미자신이 그것을 막아낼 힘이 자기한테 없다는것을 잘 안다. 그러면서도 안성태의 건강이 걱정되여 그를 말리려 했던것이다.

문득 생각이 떠올라 조영미가 말을 꺼냈다.

《저… 방소희 있지 않아요?

《오. 그래, 그 방소희가 지금 어데 있어?

《수녀원에 들어갔대요.

《그런 말 있었지.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천주교장기수가족후원회>에…》

안성태는 놀래였다.

《아, 그런가! 나와 헤여질 때는 벼랑끝에 선 녀자같더니. 세상을 완전히 등진다구 했는데. 사악한 무리는 물론 오순희, 조영미, 나한테서까지도 다 떠난다구 했지.

《그래요?

조영미로서도 무척 놀라운 모양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럴수 있었지요.… 그리구 뭐니뭐니해도 장기수선생님들을 제일 잘 아는 그였으니까. 선생님들한테 끌리는 마음은 잊을수가 없었던가보죠.

조영미는 심중한 기색으로 말하였다.

그는 이내 밝은 어조로 뒤를 이었다.

《참 그래요. 근일간에 <한백의 집>에 찾아가겠다고 련락있었어요. 저한테 간단한 안부편지와 함께 그런 말 썼더군요.

《그럼, 그… 오순희라는 녀성활동가는 아직 전태일렬사 피복로조에 있던가.

《글쎄 거기 있었는데… 어찌된셈인지 요즘 소식없어요. 혹시 련행당하지 않았는지… 제 결혼식에 왔다간 후 여러해동안 그저 편지로만 서로 소식 전했드랬는데…》

《그도 이제는 영미와 같이 서른아홉쯤 됐을거라. 남편은 어떤 사람인지?

《아직 독신이예요.

《그래?

광주사태가 지난지도 20년이나 되는데… 그때 참살당한 동생과 오빠를 생각하면 결혼조차 그들한테 죄를 짓는것 같다구 했어요. 민주와 통일을 위한 투쟁에 한생을 바치겠다는건 그의 변함없는 결심이였어요.…》

안성태는 묵묵히 그저 일민의 머리만 쓰다듬고있었다. 아직 한번도 만난적 없는 오순희가 이미 여러번 만난적 있는 친숙한 녀성으로 여겨진다. 그를 꼭 만나고싶었더랬는데… 방소희가 《한백의 집》에 오겠다니 그한테서 알수 있지 않을가…

서로 헤여질 시각이 왔다. 일민이 고개를 쳐들며 빤히 올려다본다. 안성태는 다시 그를 안아들었다. 일민이 말했다.

《할배, 이제 또 언제 오나?

《이제 곧 와. 꼭 옴마. 알겠어?

《응 알겠어.

일민이 고개를 까딱거린다. (, 눈모습이 어쩌면 이리도 제 애비를 닮았을가. 능청스럽게 실눈을 짓는 그 눈모습…)

바래움을 나온 사람들이 서로 저마끔 제가 속한 단체의 뜻을 말하려 한다. 결국 목적은 한가지였다. 이곳 울산과 인연을 맺었으니 이제는 정기적으로 와서 강연도 하고 통일론의도 벌려보자는것, 《민가협》에서는 대학생들, 수녀들을 대상으로 침술강의를 한달가량 조직하려는데 응해주셨으면 한다는 청을 내놓았다. 안성태는 그 모든 요구를 흔연히 받아들이며 기차에 올랐다.

 

 

3

 

 

대구교도소의 높은 철문앞에 섰을 때 안성태는 웬일인지 가슴이 답답해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무릎을 꺾고 앉았다. 칠순나이에 역에서 밤을 밝히고 여기 달성군으로 오는 혼잡한 뻐스안에서 붐비다나니 어지간히 피로했기때문만은 아니였다. 자기앞에 철벽처럼 솟은 15척담장을 바라보느라니 저런 안에서 어떻게 38년을 살았을가 하는 생각이 나서 스스로도 놀라게 되는것이였다.

다음순간 이런 경계선에 와섰다고는 하나 자기가 딛고 선 땅도 감옥안처럼 자유롭지 못하다는것, 작은 감옥에서 나와 큰 감옥안에 갇혔다는 생각이 어쩔수없이 다시 들었다. 그러자 울산에서 체험했던 붕 뜬 기분은 대번에 사그라지고 그것이 한낱 허상이거나 꿈처럼 현실감을 잃게 한다.

안성태는 움쭉 일어났다. 어쨌든 황영호는 만나야 한다. 그는 면회가 쉽게 이루어질수 있겠는가 하는 불안을 밀어버리며 접수실에 들어섰다.

안성태가 장걸상에 앉았는데 접수구앞에서 웬 로파가 사정을 하고있었다.

《교도관님, 사정 좀 봐주시유.

안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심드렁하니 응수를 한다.

《답답두 하시네. 할매, 규정이 그렇지 않능기요. 보름전에 면회하구선 또 왔으니 안돼요. 안돼.

마지막은 아예 딱 잡아떼는 목소리다.

백발인 로파의 머리가 홱 뒤로 제쳐지는것 같더니 쉑쉑거리는 목소리가 불시에 높아져 아주 갈린 소리가 난다.

《늬 와 그러능기, 늬 바위돌짬에서 나왔능기. 제 할매두 없능기?

로파는 종주먹을 쳐들어 삿대질을 한다. 작은 창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던 교도관이 로파의 주먹에라도 맞을가봐 그러는지 도로 움츠러들며 얼굴을 피한다.

로파는 탁 쉬여버린 목소리로 안에다대고 푸념질이였다.

《야, 이 문둥아, 할매란 제 손자를 아침저녁 보아두 잘 때면 또 들여다본다. 손자는 두벌자식이라 피줄이 더 켕긴다는 말 늬사 모르능기, 우리 손자는 대학생 뭐이드라… 무슨 간부야. 너네 순사들 같은건 열주고도 안 바꿔. 당장 접수를 안하면 감옥문전에 네활개를 펴고 나가 눕겠어. 교도소장 나오라능기여. 내 죽구 말겠어.

다른 교도관이 머리를 내밀려다가 제모의 채양이 창문웃턱에 걸려 벗어질번 해서 얼른 그것을 잡아쥐면서 말했다.

《할매, 할매 왜 이리 떠드슈? 가지고 온건 령치계에 맡기면 되지 않수.

《이런 오라질 녀석들이라구, 너희넨 구매물두 제대로 사주지 않구 중간에서 떼먹는다는데 받는걸 내 눈으로 봐야겠어.

《하, 이 할매 사람잡을 소리만 탕탕 하노.

그는 뒤돌아보며 시끄럽다는듯 말했다.

《여, 접수해주라구.… 괜히 소동만 피운다니까.

로파의 뒤로 촌에서 온듯 한 어리무던하게 생긴 중년녀인과 아주 새파랗게 젊은 아낙네가 접수를 했다. 어쨌든 접수구에서 순탄히 물러나게 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퍼그나 시간이 걸렸다.

안성태는 장걸상에서 일어나 접수구에 다가섰다.

접수구의 자그마한 유리창너머로 교도관의 제모가 보인다. 그 교도관이 고개를 쳐들고 안성태를 쳐다보더니 눈을 꺼벅거렸다.

《아, 이게 누구십니까?

그는 벌떡 일어나 유리창을 열고 안성태와 마주선다.

《절 모르시겠습니까?

《모르겠는걸.

교도관은 예순살 거의된것 같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 앉힌 모양인데…

《하 참, 절 기억 못하시니 섭섭합니다.

《날 기억해줘서 고맙소. 한데 몇백명의 간수들을 대상했으니 알수가 있나.

《선생님은 여기 대구시절을 특별히 잊지 못하실텐데요.

《대구에서 떠난지도 24년인가 25년이 되는데… 하여튼 미안한 일이요. 똑같은 제복에 똑같은 일을 하니 누가 누군지 기억할수 없지.

사실은 똑같지 않았다. 개중에는 별놈이 다 있었으니까. 그래도 안성태는 감옥에서 나와 처음 맞다든 교도관이라 오랜 세월 축적되였던 감정이 뿜어져나오는것을 스스로도 막을수 없었다.

《당신들은 피장파장이야. 똑같은 제복을 입었으니 제복을 벗기전에는 당신들 몸에서는 사람냄새를 맡을수가 없어. 사람냄새라면 다 다르겠는데 그것만 입으면 다 같아져.

성태는 하잘것없는 놈한테 격에 맞지 않는 질책을 하는것 같아 말을 멈추고말았다.

《점점 섭섭한 말씀만 하시네요.

《당신 한사람 딱 그렇다는건 아니구.

안성태는 한걸음 양보를 했다. 순간 그의 머리속에는 황영호와의 면회를 순탄히 성사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이즈음에 가족친척이 아닌 사람도 면회가 허용되나 자기 경우에는 딱 거절당할것 같은 우려가 들었다.

《선생님한테서 제가 침을 여러번 맞았는데 기억 못하시니, 하긴 숱한 교도관이 선생님의 침을 맞았으니 누굴 더 특별히 기억하겠습니까. 제 선생님을 별로 도와드린게 없으니 더욱 그렇지요. 하여튼 반갑습니다. 신문에서랑 선생님 출소소식 듣구요. 정말 기뻤어요.

《고맙소. 하지만 난 완전한 자유민은 아니요. 그저 형집행정지를 받았을뿐이지. 이남땅에서 통일되는 날까지 난 자유민이 아니란 말이요.

《자유민이 아니라니요?

안성태는 자꾸만 상대를 시까스르고싶은 얄궂은 심사가 들었다.

《하 참.

교도관은 맥이 풀린다는듯 제사 걸상에 몸을 제치였다.

《선생님, 자꾸 그러지 마시라구요. 이제라두 선생님 도와드려 면무식을 해봅시다. 우리 사촌형수분이 <천주교장기수가족후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데 나두 좀 할말이 있어지게 말입니다.

《아, 그렇다면 미안하오.

안성태는 주민등록증을 꺼내 교도관한테 내밀었다.

《단단히 보시오. 내 주민등록증에는 암호표식으로 번호를 보면 다를게요. 그러니…》

교도관이 놀란듯 눈이 떼꾼해서 쳐다보았다.

안성태는 껄껄 웃었다.

《그런것쯤 모르고서야 어떻게 돌아다니겠소. 그 번호를 우에다…》

교도관이 대번에 입에다 손가락을 세우고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리고는 히쭉 웃었다. 그것은 경찰통보서에 올리지 않겠다는 뜻이며 이런것으로 도와줄수 있게 된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웃음이였다.

접수수속은 끝났다.

그때 안성태는 교도관한테 말했다.

《저 한가지 물어보기요. 여기 교무과장이 라구표라구 그 절름발이라는게 사실이요?

성태의 어투가 어찌나 차겁고 경멸에 차있었던지 교도관은 끔쩍 놀라며 눈이 커지였다. 그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있었다.

성태는 더 묻지도 않고 돌아서서 면회실로 나가는 출입문에 다가갔다. 정년퇴직나이가 지났을 라구표가 아직도 여기에 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을뿐아니라 곱절로 더 분노를 끓게 하였다. 갖은 악행을 다하던 그가 지금은 황영호를, 그 새로운 세대를 향해서도 여전히 박해의 채찍을 들고 음모의 올가미를 던지려고 꾀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황영호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것이다. 《남민전》을 거쳐 《령남위사건》에 이르러 그는 투사로 더욱 굳세여질뿐이다.

면회실에 있는 2중유리벽, 그것은 옛날그대로였다. 저안에 서서 밖을 향하던 자신이 아니던가. 이쪽이나 저쪽이 같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태는 푸른 수인복을 입은 황영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

 

《한백의 집》에 돌아오니 여러 군데서 온 편지들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울진군의 녀자상업고등학교 녀교사한테서 온 편지부터 보았다. 그한테서 오는 세번째 편지,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졌다.

 

…선생님께

며칠전 량심수후원회소식지에서 선생님의 과거의 삶과 함께 현재의 삶을 읽으며 또 한번 나약하고 게으른 저의 삶을 부끄러워 하였습니다. 저에게 이만큼한 안락이 보장되는것도 사회와 력사가 아직 제자리를 찾은게 아닌 증거이고요.

쉬여야 할분들, 걱정을 놓으셔야 할분들은 아직도 끊임없이 곤난을 겪고계시고 열번백번 그 벌을 받아야 할 파렴치한들은 여전히 두목이 되여 패거리를 몰고다니며 TV에 나오네요.

…저는 세상의 정의가 깨여지는것에 분개하느라 간혹 비관에 빠져 어두워집니다. 한데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감정의 순수함을 지니시고 그렇게 자신을 혹독하게 괴롭힌 이 시대와 세상에 대해서도 여전히 그렇게 비관해하지 않으시는 선생님을 생각하면 사람의 그릇이란 정해졌나보다 싶습니다.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지 말라 하시고 그저 그 시대 상황에서 선택할수밖에 없었던 삶이였노라고 편한 친구처럼 만나자고 그러시고는 소식지글을 보니 전혀 아니였습니다. 정말 치렬한 삶이였고 의지였고 저로선 감히 상상도 할수 없는 도전과 순수(순순히 받는것을 의미함)가 민족과 력사와 인간을 향해 뻗어나간듯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그런 삶의 남은 부분에 앉으셔도 한참 흩어지지 않으시고 날카로와 스스로 부러지지 않고계심에 눈물이 났습니다.

…선생님, 가을에 들어서 울진에 한번 또 오십시오. 장선생님, 홍선생님, 김선생님도 함께요. 저보다 더 많이 선생님들 삶을 닮아 맑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몇몇 부부들이 더 기다리고있답니다.

…선생님, 언제쯤 또 오실만 하신지요? 그때 몇몇 교사들과 따로 한자리 만들어도 괜찮을는지요? 좋은 말씀 베풀어주실거지요?

선생님 가시는 길에 동행해서 가고싶다시던 밀양에도 들려보면 어떠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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