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새벽하늘

 

  7 

  

마음의 폭풍우

 

 

1

 

바깥은 추웠고 방안은 싸늘하였다.

조민하는 쵸콜레트빛갈의 의혁잠바를 어깨에 걸친채 창가에 다가섰다. 앙상한 가로수가 기울어지듯 한쪽으로만 쏠린다. 겨울바람이 세차다. 올겨울은 눈이 내리지 않고 메마른 찬바람만 불어 친다. (본격적으로란 말이지…) 그의 혈관속에서는 야성의 피가 세차게 끓어올랐다. 방금 《안기부》의 마과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조민하는 그의 이름을 모르며 보통때와 비상시에 쓰는 전화번호만 알고있다. 《마과장》이란것은 그를 처음 만나던 여러해전부터 제나름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첫 인상에 얼굴이 말상이여서 속으로 그렇게 지어놓았는데 이제는 거기에 습관이 되였다. 물론 전화를 할 때는 그저 《과장님》이다. 국장이나 차장으로 승급된것 같기도 한데 딱히 알수 없다.

한편 조민하의 존재는 《법무부》 교정국안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 교무부서에 속한 사복쟁이지만 그의 직급을 똑똑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형식상 과장급아래지만 과장과 동격으로 논다. 《조과장》, 《과장님》이라고 타자수들이 불러도 그것을 탓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산하 교도소들에서는 조민하의 전화가 내려가면 안기부 중요요원이나 대하듯 쩔쩔 맨다. 전화로만 만나서 얼굴은 모르면서 목소리를 듣고 그가 누구인지 아는 정도이다. 따라서 조민하자신도 텔렉스나 팍스보다 자기의 목청을 더 믿는다. 어디서 도청을 해도 곁말이 많기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잘 알지 못하리라는 타산도 물론 있다.

조민하는 다시 사무탁에 돌아와앉아 문서장을 뒤적거리였다.

그는 돋보기를 벗고 의자에 몸을 제친채 또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나이가 50을 넘자 보통때 써오던 무도수안경을 낀다. 대신밖에 나다닐 때에는 고급색안경을 끼고 다닌다. 지금 아무 안경도 끼지 않은 그의 크지 않은 두눈에서는 새파란 불꽃이 튕긴다. (전두환《대통령》은 역시 손탁이 세단 말이야. 가만히 있을 성미가 아니거든.… 리순자가 《대통령》부인이 될줄 누가 알았어. 제 남편 자랑하더니 그 말이 맞았어.)

조민하가 자기 처의 《생일파티》에서 리순자를 본지도 여러해전이다. 리순자가 이젠 자기따위는 왼눈으로도 안 볼게다. 아니 그렇지도 않을지 모른다. 처는 여전히 리순자의 《그룹》에 따라다니는것 같다. 따라서 리순자의 세도줄에 리옥자도 매달린게 아닌가. 그래서 자기도 그 덕을 입고있는지 누가 알랴.

본래 리순자는 리옥자가 로큰롤음악에 맞춰 추어대는 반라체춤에 반해서 《동생, 동생》 하면서 동성련애자들처럼 붙안고 돌아갔었다. 지금은 리순자가 《대통령》부인이랍시고 체면을 차리겠지만 어쨌든 리옥자가 어느 비밀료정에 가서 새벽에야 돌아오는것을 보면 그네들의 취미는 변한것 같지 않다.

요새는 처가 누구와 함께인지 제주도관광에 갔다. 겨울에 가면 아열대의 따스한 기후가 알맞춤하다는것이다. 피서가 아니라 《피한》이라나…

조민하는 제주도에서 온 안해의 전화를 생각하면 불시에 우울해졌다. 《지금 뭘하고있어요? 타자수아가씨와 뽀뽀하는건 아니예요?》 그러면서 미친듯이 깔깔거리는 리옥자의 웃음소리, 요즘따라 자주 있는 제주도관광이 처를 어떤 향락에로 어데까지 끌어들이겠는가를 상상하기가 두려웠다. 제 나이는 생각지 못하고 《녀자의 인생은 마흔세살부터》라는 이딸리아의 영화제목을 꺼들던 리옥자였다.

아들 조영수를 경찰대학에 붙이는 일이 어찌됐는가 하는 물음에 조민하가 영수의 《생활풍기》를 걱정하자 리옥자는 남편의 말을 비웃었다.

《그게 어쨌다는거예요? 남자란게 그 나이에 술, 담배는 오히려 장점이라구요. 난봉을 좀 부린단들 그게 무슨 그리… 경찰대학이 무슨 룡상에나 앉힌다구, 미실이처럼 노는것보다야 낫지 않으리요. 그 애한테는 사내다운 담이 있어요. 나를 닮아서 그렇단 말이예요. 남을 타고 누르려는 기질… 그게 있어야 하는거예요. 됐어요. 당신을 믿은 내가 머저리지. 순자언니한테 부탁하겠어요. 그런것까지 부탁할수 없어서 그랬더니.

조민하가 그때 처한테 말하지 않은 한가지가 있었다. 아들놈자식이 마약에 끌려들고있다는 그것이였다. 경찰대학은 고사하고 교도소걸음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가싶었다. 이래저래 고독감에 가슴이 매시근해지던 조민하는 문득 조영미의 생각이 났다. 대학졸업후에는 어디로 갔는지 알길이 없다. 은혜도 모르는 년, 그만큼 학비를 대주고 정을 주려고 했는데… 뭐, 학생운동이 어찌구 어째? 그래 그것을 막으려고 했더니 자기 피줄마저 끊으니…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던 조민하의 눈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하니 고여오른다.

(좋아, 그러니 이 세상엔 나 하나밖에 없단 말인가.… 아니 아니, 영미는 마음이 착한 애니 내가 당하는 이 고통, 돈많은 녀자한테 눌리워 사는 이 쓰라린 마음을 리해해줄수 있을지 모른다.) 허나 이것이 헛된 망상임을 그자신도 모르지는 않는다.

책상우에서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주런이 놓인 넉대의 전화기. 신호음으로 보아 《마과장》에게서 오는 전화가 분명하다. (또 전화? 무슨 급한 일이라도?)

《마과장》의 웅글은 목소리.

《자꾸 전화해 안됐소. 그만큼 중요한 일이란걸 말해주는거지… 방금 <대통령>비서실장님한테서 우리한테 전화가 있었소. <법무부>만 믿지 못하겠다는거요.… 년초인것만큼 금년도계획을 잘 세워야 할것 같소. 전향공작에서 일대 고조를 일으킬 지침을 본격적으로 실행하되 대상별로 그 방법을 여러모로 연구하라는거… 73년 그때처럼 테로식으로만 하다가는 또 실패요. 웬간한 놈은 다 죽어버렸거든. 그건 성과가 못돼. 그러니 물리적인 수단과 회유를 적절히… 회유하는데도 방법이 대상별로 달라야 할게 아니요? 계집이나 쓰는건 나 개인의 견해로는 반대지만 어쩌겠소. 미인계는 삼십륙계에서도 앞머리에 있으니 그걸 주장하는 사람도 많소. 내 견해는 하나를 넘어뜨려 열을 징계하는 수를 쓰는거요. 우둔스레 생나무 꺾듯 하지 말아야 해.… 가만, 여기에 대상들을 장악한게 있소.

마과장이 무슨 서류장을 들여다보는것 같았다.

《그렇지. 대전, 광주, 대구, 전주… 교도소별로 대상자들을 료해하고 그 방법까지 구체화했소. 물론 교도소측과 <법무부>에서 더 토의는 해야 하겠지만 우리로선 최종적으로 눌러놓은 대상과 방법이요.

마과장은 적으라 하고는 교도소별로 우선 대상자명단을 불러주었다. 그러면서 마과장이 중얼거린다.

《그럼… 빼놓고 불러주지 못한자가 없나… 모두 합해서 서른명인데… 누가 빠진게 없소?…》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였다. 하지만 조민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자기의 입에서 하나의 이름이 튀여나오기를 마과장이 바란다는것을 직감했으나 조민하는 이를 악물며 참았다. 마침내 마과장이 자기의 실책을 깨달은듯이 이렇게 말했다.

《대전의 안성태가 빠졌댔구만! 그렇지 않소?

그 어조에는 일부러 그 이름을 빼놓아보았다는 그런 티는 조금도 없었다.

조민하는 마지 못해 인정하는 투로 대답했다.

《그런것 같습니다.

마과장이 능청스레 말했다.

《제일 중요한 대상을 놓칠번 했구만.

그리고는 어째선지 허거픈 웃음을 터치는것이였다.

《대상별 방법과 시기별로 나눈 명단은 인차 <법무부>에 넘어 갈거요. 한가지 강조할건 전향은 어디까지나 법률외적인 문제이니만큼 그 문서에 이런저런 의견을 제기할가 생각은 마오. 물론 우린 조민하씨의 견해만은 수용하려고 하니 의견이 있으면 우리한테 따로 얘기하시오. 그런데 말이요.…》

어째선지 마과장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또다시 문서장을 더듬고난 모양이다.

《미인계를 써야 할 대상은 대체로 1.4분기에 넣었구만. 추운 겨울에 따뜻한 품이 그리운건 인간의 본능이니 더운 이불속에서 실컷 재미를 보라지. 그럼 알조가 있겠지. 가족상봉, 친척상봉시킬 대상은 여름철에 시킬건 뻔하고… 가족야유회처럼 명산이나 바다가에서, 안 그렇소?

여기서 조민하는 더는 참을수가 없었다.

《그런데 안성태란 놈만은 그런 방법으로 안됩니다.

안성태를 감방에서 내다가 자유로움을 주는것이 알찌근했고 또 사실로 그놈한테 이제는 다른 방법이 더 통할것 같지도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조민하는 급히 말을 이었다.

《그놈은 더 쳐야 합니다. 그러다 죽으면 하느님의 뜻이고.

《그놈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좋겠다는 말이지? 여보, 존경하는 에드몽 당떼스씨, 그렇게 쉽게 복수하겠소? 그건 복수가 아니요. 육체를 죽이는건 복수가 아니야. 정신과 사상을 죽여야 해.

《과장님, 절 제발 다시는 에드몽 당떼스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전 결코 개인복수심에 포로된건 아닙니다. 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투철한 반공리념을 가지고 자주통일이라는 그 얼빠진 수작을 반대하기때문입니다.

《아, , 흥분하지 마오. 내 잘못했소. 내가 당신을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요. 당신은 정말 훌륭하오.

《그것도 저한테는 과분합니다. 저한테 개인적으로도 복수심이야 왜 없겠습니까? 그것이 저의 리념을, 당국의 의지를 체현하려는 그 정신을 보탬할뿐입니다.

《좋소, 아주 좋아. 난 당신에 대하여 필요하다면 <대통령>한테까지 보고하겠소.

과장은 잠간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침착하게, 실무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안성태, 그놈은 한번 굴레를 씌웠던 놈이야. 이제 진짜로 전향시킨다면 그건 정말 몇배로 더 크게 성과를 올리는게거든… 그리구 개인복수심은 이 경우 아주 중요한 힘으로도 되오. 그걸 부인하지 마오. 당신 개인으로 봐도 당신을 배반한 그 본처를 복수하는것으로 되고…》

그 말을 듣는 조민하의 머리는 혼란되고 웬일인지 가슴속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조민하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국가공무원이다. 공권력의 의지를 따르는것이 나의 본분일진대 나한테 조금이라도 개인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눌러야 한다.)

마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말이 없소?

그러자 불쑥 조민하는 격한 어조로 말했다.

《과장님, 제 솔직한 심정은 그놈을 그저 교수대에 매달고싶을뿐입니다.

《또, 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어서 이러는거요?

마과장의 말꼬리에는 노기가 어리였다.

조민하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저도 인간이 아닙니까?

《다 리해하오, 리해해. 그래서 내 당신을 더 믿는게 아니요.

《고맙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겠습니다.

《좋소. 그래야 하오.… 한데 한가지 묻기요. 당신의 딸 말이요.… 물론 호적에서 그어버리는 문제는 우리가 지금 협력해주고있지만 어쨌든 딸이야 딸이지. 조민하씨도 인간인것만큼 마음속에서 깡그리 지워버릴수는 없지 않소?

조민하는 떠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투시할줄 아는가!) 조민하는 속으로 못내 감탄하기까지 하였다.

마과장이 불쑥 물어본다.

《딸의 이름이… 조영미가 아니요?

《그… 그렇습니다. 어떻게?

《나야 비상한 기억력덕분에 사는 사람인데… 어느 땐가 얼핏 한번 말한적 있었지…》

조민하로서는 딸의 이름을 말한 기억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요?

조민하는 랭정해지려고 애썼다.

《대전교도소장의 말이 안성태한테 바로 그 조영미가 편지를 보냈다는거요.

《녜-에?

조민하는 아무리 그러지 말자고 자신을 다잡았으나 어쨌든 옆에 놓인 쏘파에 수화기를 쥔채 주저앉았다.

용수철처럼 뱅뱅 꼬였던 전화줄이 길게 늘어나 거의 직선으로 되였다.

조민하는 뭐라고 입을 벌리는지도 모르고 그저 《그래서요?… 무슨 편지인데… 어떤 내용…》 하고 웅얼거리였다.

마과장이 말했다.

《처음의 편지는… 운동권에 들어간 녀대졸업생, 하나는 제적생이라던지 하여튼 둘이 련명으로… 하지만 단순한 호기심은 아닌것 같소. 최근에 와서 장기수, <좌익수>들의 얘기가 밖에 나가기 시작하는데 이거 야단이란 말이요. 하여튼 <법무부>가 떨떨해.… 밖에서 들어오는 편지, 가족 아닌 사람의 편지는 엄금인데 어떻게 된셈인지 모르겠소. 그 진상을 파보라고 하기는 했소.… 요새 대전에 있는 그 서가놈때문에 사회에 발설이 되여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거든. 그전까지 우리의 교도소장벽은 절벽이였는데… 그 개같은 자식이 실상이 어찌구저찌구 하면서 퍼뜨렸단 말이요. 다행히 우리가 언론의 입은 확고히 틀어막고있으니 아직은 뭐… 그런데 조영미의 편지는 너무 신경을 쓰지 마오. 우연한 일치겠지.… 그럼.

조민하는 쏘파에 앉은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영미란 년이 안성태한테 보낸 편지는 《마과장》의 말대로 우연한 일치일수도 있다. 아니 그런것 같지도 않다. 영미가 어떻게 안성태 그놈한테 관심을 돌리게 되였는가.

조민하는 속이 부글부글 괴여오르다 거기에 반발하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다. 안성태 그놈을 무자비하게 복수하고 꺼꾸러뜨려야 한다. 그는 가슴이 뛰고 피가 끓기 시작했다.

(그놈을 전향시켜야 한다. 다른 놈들도 모조리, 모조리!)

그러면서 그는 자중하려고 애썼다.

(덤비지 말자. 《마과장》의 말이 옳아. 대상에 따라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 몇해전인 82 1 20, 전두환은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이라는것을 내놓았다. 인천대학 총장 김학준을 비롯한 60여명의 학자들이 여섯달동안 구수공론으로 모아붙어 세운 《통일방안》이라는것이다. 《민족통일협의회》니 《통일헌법》이니 하며 인구비례에 의한 《총선거》로 제도통일을 꿈꾸는 《방안》이였다. 1980년에 북에서 내놓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통일방안과는 완전히 반대되는것이였다.

전두환은 제놈의 《방안》이 내외의 반대에 부딪치자 또다시 《반공》광증에 매달리였다. 1984 9, 공화국에서 보낸 수재민구호물자는 남녘의 민심을 크게 격동시키였다. 동포애의 혈맥이 직접 잇닿아진 력사적사변이였다. 통일의 념원은 다시금 열기를  띠게 되였다.

전두환은 《반공》과 《반통일》이라는 쌍지팽이에 더욱 기승스레 매달렸다. 독재와 친미를 유지하는 길은 이것밖에 없었던것이다.

때문에 전두환은 남조선감옥에 있는 수많은 《좌익수》, 장기수들을 그대로 둬서는 안되겠다는 판단밑에 제딴의 계획을 내놓은것이다. 그리하여 그해 봄과 여름 전국의 교도소들에서는 맹렬한 전향깜빠니야가 벌어졌다.

 

 

2

 

 

한여름의 무더위도 다 지나간 8월 하순의 어느날이였다. 조민하는 대전의 교무과장 라구표를 찾았다. 벌써 몇달째 매일같이 전화가 오르내리였다. 조민하는 어지간히 지쳤다. 전향공작성과가 적은것만큼 신경이 더 예민해지고 자꾸 울화만 치받쳤다. 하지만 오늘은 애써 여유를 가지려고 다른 얘기부터 꺼냈다.

《어때, 새 교도소가? 옮긴지 한해가 되는데. 동양최대의 교도소에서 일하기가 신명나지 않어?

《글쎄 그렇긴 한데. 좀 들어보십시오. 수세식변소라고 하지만 금년겨울에도 수도가 얼어붙고 감방에 바께쯔로 물받아놓으면 물까지 업니다. 그러니.

조민하가 그 말을 중둥무이했다.

《그러니 어쨌단 말인가. 한겨울에도 물이 좔좔 나오기를 바라나? 이건 뭐 공안수들의 편이구만. 그자들을 짐승보다 못하게 더 렬악한 조건에 두지 못하는게 안타까운데. 그만하면 세계인권기구놈들이 봐도 괜치 않아. 겨울철에 그놈들이 오면 수도관을 녹여 림시라도 물이 나오게 하면 될거구… 어때? 대부분 독방이니 보안과에서는 좋아하던데… 교무과도 좋으면 좋지 나쁠거야 있나?

조민하는 송화구에 대고 연방 이기죽거리였다. 벌써 2년전이다. 84 3 20일 《동양최대의 현대식교도소》라는 대전교도소가 새로 건설되여 거기로 이사가는 날이였다. 본래 있던 시내로부터 퍼그나 떨어진 곳이여서 그날 몇십대의 수인차와 화물차가 길에 늘어서고 경찰의 경호차가 앞과 뒤, 량옆으로 달리였다. 하늘에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직승기까지 떴다. 이 남쪽땅천지가 통채로 감옥이란것을 실감케 하는 큰 구경거리였다.

《교도소에는 수세식변소가 있다》고 요란히 광고되고 벽에는 스티롤수지를 대여 수인들의 자결을 방지한다고 했다.

0.75평- 그것은 《유신시대》가 물려놓은 유산이라고 할수 있다. 한데 그 모델은 일제때 형무소의 징벌방규격에서 취한것이다. 벌방을 일반방으로 승격시키고 그대신 벌방은 0.6평으로 더 줄이였다. 먹방도 0.6평이였다. 3,000명의 수용능력에 출역공장만 해도 10여개나 된다.

대전교도소. 일제강점 초기부터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우리 민족의 근대사에서 가장 많은 피가 흐른 곳이다.

조민하는 마치 제가 마련해놓은 《선물》을 라구표한테 상기시키는 심정이였다.

하지만 조민하는 딴전을 부릴 여유가 더는 없었다. 그가 안성태를 전향시킬 공작을 시작하자는 말을 직방 꺼내놓았을 때 라구표는 얼른 대답을 못했다.

조민하가 추궁하듯 말했다.

《왜 말이 없소? 알만해. 그 안성태란 놈이 라과장을 아주 그냥 대상을 안하려고 한다니 참 그게 야단이 아닌가?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다가 라구표는 울분을 터치듯 말했다.

《그까짓 놈, 깡패들 손에 죽게 만들가요?

신통히 조민하의 속심그대로를 라구표가 말한다.

조민하는 증을 내였다.

《이봐, 그렇게 쉽게 처리해선 안돼. 라과장은 그저 외곬이라니까.

조민하는 《우직하다》는 말을 그렇게 바꾸었다.

라구표의 난감해하는 기색이 짧은 침묵과 들릴락말락한 한숨소리로 충분히 알려온다. 73년에 테로를 들이대여 해놓았던 위조전향이 수포로 돌아가고만 그 사실이 돌이켜질것이다. 조민하는 허세를 부려 그의 마음을 들띄워놓으려고 했다.

《여보 라과장, 걱정말라구. 손탁이 센 <대통령>이 있고 령활하기 그지없는 <안기부>가 있지 않나… 구체적인 대책은 취하구있어. 우리가…》

《우리》라는 말로 조민하는 자기와 《안기부》를 일치시키였다. 상대방도 이것을 충분히 감득했을것이다. 조민하는 막강한 권력의 힘을 등뒤에 느끼는 사람처럼 마음이 흐뭇하기까지 했다.

《내 책상우에 지금 안성태의 누이와 동생들, 조카들의 료해카드가 있어. 직업과 취미, 성격도 적혀있구. 혼자만 알고있으라구. 부산지부(<안기부>를 념두에 둔것이다.)에서 사람들이 적임가족들을 선정해서 안성태한테 편지를 쓰게 했어. 자연스럽게. 전향권고도 하면서, 특히 어린 조카들의 적절한 마음이 담겨질거란데…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중요대상은 맏누이인데 불행한 녀인이지. 예순다섯살이나 되는데 완전히 혼자야. 어머니를 대신해서 안성태와 같이 있겠다는게 평생소원이라나. 불쌍한 맏누이의 팔자를 안성태가 몹시 가슴아파한다니까. 그자도 인간이니 맏누이의 마지막소원마저 쳐버리겠나. 그전날에 맏누이와는 형제들중에서도 특별히 자별한 사이였다구 하네. 알겠어? <서신작전>은 라과장만 알구있으라구. 편지는 오는대로 다 본인한테 꼭 전달되게끔 얘기나 해놓구… 그리고나서 안성태를 부산행시킨단 말이야.

《예? 부산행?

《모든 가족친척들과 상봉시키겠어. 맏누이집에도 가고 부산에서 제일 경치좋은 해운대나 영도의 태종대근처 해변가에서 천렵도 조직하고…》

《한데 그런 방법은 언제까지 허용…》

《답답하구만. 사회가 발전하니 방법도 달라져야지.… 광주에서도 하구 대구에서도 하구있어.

조민하는 《안기부》의 《작전》을 마치나 자기의것처럼 내대며 뻐기였다.

《그런데 부산에 동행하는것은 라과장은 안될것 같구, 담당이 누군지?

《박석기라구.

《사람이 어때?

《덩지는 큰데 써먹지 못해서.

《할수 없지… 중요한건 부산지부가 다 뒤에서 안받침해줄거야.

《그럼 숙식도 맏누이네 집에서 시킵니까?

《정신없는 소릴. 부산교도소가 있지 않어? 거기서 잘 재우면 되지 뭘 그래… 다른 구체적인건 이제 더 짜게 되니 우선 박석기한테도 과업을 주어 좀 연구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요새 교도소에 친척 아닌 운동권이나 단체에서 들어오는 편지는 없나?

《그런건 받아주지 않습니다.… 나가는 편지는 말입니다. 상급의 지시로 글자수가 200자인 엽서 대신에 봉합엽서로 됐지만… 그것도 제한하지 말라고 재소자들이 시끄럽게 굴거든요. 이젠 정말 10년전과는 달라졌어요.

《그래 친척 아닌데서 들어오는 편지가 없단 말이지?

조민하는 다시한번 욱박아 물었다.

《그런건 있을수가 없습니다.

《영 깜깜이군. 이봐, <안기부>에서 무슨 냄새를 맡은것 같애. 귀신같은 량반들이 허튼소리에 귀기울일가.

《우린 철저히 규정대로 합니다.

《다 사람이 하는노릇이야. 이제 검열이 갈지 몰라. 단단히 신칙하라구. <편지담당>에 열심히 주의를 돌리구.

《알겠습니다.

라구표의 힘없는 대답이다.

조민하는 더 따질래야 따질 상대가 못된다고 여겼다. 또 그러다가 조영미라는 이름이 튀여나올가봐 지레 겁을 먹기도 한것이다. 조민하는 또다시 마음이 울적해지였다.

 

 

3

 

 

추운 겨울은 물론 그것대로 고통스러웠지만 한여름날의 찌물쿠는 더위는 정말 더 견디기 어려운 때가 많다. 자그만 환기창으로는 오히려 밖에서 열기가 쓸어들었다. 다 꿰진 낡은 모기장의 구멍들을 바늘로 깐깐히 호아놓느라고 해도 어느 짬으로인지 모기가 앵 하고 기여들군 하였다.

맨 빤쯔바람으로 누워자는데 변소쪽에서 기여나온 구데기들이 벗은 몸우로 게바라오르고 심지어 코구멍으로 기여들려고 한다. 변소는 말이 《수세식》이지 언제 물이 제대로 나와본적이 없다. 구데기들이 거기서 어떻게 나오는지 귀신이나 알노릇이다. 자다가 일어나서 구데기들을 주어서 변소구멍에 처넣지만 아침에  잠 깨고나면 역시 여기저기서 구데기들이 기여다닌다. 거기에 습관이 될수 있다는것이 참 기이한 일이다. 하지만 한낮에 숨이 컥컥 막히는 방안의 무더위보다는 밤이 오히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낮에도 빤쯔바람으로 앉아있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본래는 어림도 없었다. 한데 요즘은 교도관들이 시찰통으로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다. 감방안에서 소요만 일으키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기운이 떠돌기 시작한것이다.

삼복더위가 지나가는 어느날 오후였다.

문따는 소리와 함께 《3530! 편지!》 하는 교무과소속 교도관의 목소리에 이어 한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성태는 편지를 주어들었다. 물론 겉봉을 가위로 자르고 교무과검열도장을 찍은 편지이다.

《대전시××구 우체국 사서함 136호-3530. 안성태큰아버님께.

10여명이나 되는 조카들중의 한 아이일것이다.

조카들은 면회를 온적이 없다. 올수도 없었다. 그러니 한번 만난적도 없다. 남아있는 형제 셋도 제 살길이 바빠 면회도 떠지고 말았는데 하물며 조카들이야 어찌 제 큰애비한테 관심을 돌릴새가 있으랴 싶었다. 인정이라는것도 일종의 습관에 의해 생겨난것이여서 친자식도 어릴적부터 키우면서 같이 자라지 않으면 정이 없기 마련이 아닌가. 한데 한번도 본적 없는 조카애들임에랴.

그러나 어쨌든 《안씨》라는 같은 성씨만 보아도 정이 그리운 옥살이에서는 크게 마음이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같은 성으로 봐서 남동생인 안성필의 아들이 분명하다.

동생과 제수는 갈라져산지 여러해 된다. 리혼문제가 제기되다가는 멎고 그러다간 다시 제기되고… 정말 리해할수 없는 일이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10여년세월을 그렇게 지내다니… 몇년전 전주에 면회왔던 누이동생이 말한것처럼 사랑싸움도 아니고, 무슨 심사에서 그러는지 모를 일이다. 제수한테는 네 자식이 남아있지만 성필이한테야 무엇이 남았는가. 단순히 병인의 타락인가? 제수한테도 잘못이야 있겠지. 하지만 성태는 동생이 원망스러웠다. 제 녀편네를 함부로 의심하다니… 모든것이 그 의심에서 시작되였을것이다. 제수가 네 아이를 기르느라고 자그만 차집을 겨우 운영해 나가면서 모진 고생을 했다는데 성필이란 자식은 괜히 의처증에 잡혀 다른 녀자를 차고 대구에 도망가서 살더니 그 녀자가 병으로 죽고 저도 앓게 되자 누이동생네 집에 가서 얹혀산다고 했다. 버섯농장에서 나오는 령지버섯으로 초기위암을 누르고있다는것이다. 일자리도 변변히 얻지 못하고 녀편네한테도 할말이 없게 된 동생이 어떤 반발심리와 사내의 자존심으로 녀편네를 공박하다가 결국 삐여져나간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동정이 안 가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성태는 이모저모로 성필이를 용서할수가 없었다.

(만나면 뺨이라도 치고싶지만 어데 나타나야 말이지.… 부끄럽고 죄스러울테지.… 아니야. 나는 그를 욕하지 못해. 나때문에 그도 제가 갈 인생행로가 헝클어지지 않았는가.)

허나 성태는 백번 고쳐 생각해도 자기가 형으로서의 도리에 어긋났다고는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차라리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다름아닌 분렬이라는 이 민족의 비극에 물어야 하지 않을가. 성필아, 지금 남북삼천리에 부모때문에, 형제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라고 그렇게 네 마음이 배좁아졌느냐. 그러다못해 타락까지 해? 이 형을 눈곱재기만큼 생각이라도 하면 그럴수가 있는가?

성태는 머리를 흔들다가 조카애의 편지장에 다시 눈을 가져갔다. 문제는 지금 이 조카애의 편지구절들이다.

 

보고싶은 큰아버지

큰아버지와 함께 살고싶습니다. 큰아버님도 이젠 몇년 있으면 환갑이 되신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평생 감옥에서 혼자 고독하게 사시겠어요. 정말 함께 살고싶습니다.

 

뒤를 계속 읽어보아도 편지에서는 눈물어린 진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진정이 있을수도 없다. 그렇다면? 큰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와 제 아버지를 데려올수 있다고 보아서일가. 누가 시킨것 같은 편지구절들이다. 제 어머니가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서 어떤 우려를 느껴 안타깝게 생각하던 나머지 아들한테 펜대를 쥐여주었을가. 그리고보니 편지쓴 조카애가 막내인것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 성필의 맏아들은? 나이가 20살이 훨씬 넘었겠는데… 이런 흥분이 없는 잔잔한 심리가 일어날뿐이다.

그러나 다음날, 맏누이 안효순의 편지는 전혀 달랐다. 첫 구절부터 성태의 가슴이 옥죄여들게 하였다. 남편도 자식도 다 잃고 홀로 사는 누님…

몇년전에 석순이 왔을 때 들으니 세방에서 삯바느질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간다고, 혈압이 높아서 언제 터질지 모른다고 했었다. 나이도 이젠 예순다섯일것이다.

 

성태야!

… 너한테 부끄럽다. 면회 한번 못 가는 내가 무슨 누이란 말이냐. 령치금이라도 한푼 들고갈수조차 없는 내 형편에서 더 살아선 무얼하겠나만 떠나가신 어머님이 너를 기다리다 끝내 눈을 감지 못한것을 생각해서 애오라지 네가 옥에서 나오는 그날을 일구월심 바라며 사는 내 목숨이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오직 너만이 있을뿐이다. 성필이녀석은 제 동생한테 얹혀사는 형편이고, 나한테는 너를 기다리는것밖에 남은 소원이 더 없구나. 통일이 돼야 네가 나온다는데 통일이 언제 될지 알수 없구나.

성태야, 나오너라. 내곁에로 … 우리 함께 살자. 전향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조용히 살고들 있다는데 생각을 깊이 하여라. 지켜야 할 량심은 네가 다 지키고 저바리지 말아야 할 도리와 의리도 지키고 남았다고 생각하는데… 설혹 모자란다 해도 25년이 넘었으니 보상하고도 남지 않았느냐. 네가 조용히 옥에서 나온다고 탓할 사람이 누가 있겠니. 그만큼 고생하면 모자란다더냐? 듣자니 요즘은 《반성문》이나 《생활계획서》만 간단히 써도 나온다는데. 다시 한번 말하고싶다. 25년이면 충분하지 않느냐. 네 형이 태평양전쟁에서 무주고혼이 되고 이제는 네가 안씨가문의 맏이가 아니냐? 나와서 안씨가문의 맏이로서 대를 이어 조카들이나 잘 키우면 안되겠니? 네 제수는 괜찮은 녀자다. 제 자식들한테 너희들의 큰아버지는 절개를 지킬줄 아는 좋은분이라고 말해주는 녀자이다. 제수도 제 자식들을 안씨문중의 끌끌한 후손으로 키우고싶어한다.

 

성태는 편지를 다 읽고도 그냥 그것을 든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켜야 할 량심도 다 지켰으니… 그럼 량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인데… 물론 그럴수는 없어.)

하지만 누이가 오죽 안타깝고 오죽 고독하고 오죽 살기가 괴로왔으면 동생을 자기곁으로 부르겠는가. 어릴적부터 어머니이상으로 따르던 누이였었다. 만일 동생때문에 피해를 입고 누이가 그 보상을 도덕적으로 요구하면서 이런 청을 한다면 그것을 단번에 밀어버렸을것이다. 하지만 누이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은 어머니,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않는가.

성태의 마음은 여태 이런 일을 당해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몹시도 산란해졌다. 결코 그는 지켜야 할 량심과 의리에 끝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누이의 목소리는 이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허비는가. 당장 누이한테 달려가 위로하고싶건만, 편지에라도 콱 괴로운 심정을 쏟고싶건만… 봉합엽서에 무슨 말을 써낼수 있으며 설사 쓴단들 검열에서 통과될 정도로 마음을 옹크려 쓸수야 없지 않느냐…

성태는 편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는 거기서 다른 의미를 찾아내여 자신을 위안하려고 서두르는것이였다. 하지만 읽을수록 편지를 쓰며 흘린 누님의 눈물이 자기의 가슴속으로 흘러드는것을 막을수 없었다. 그는 부랴부랴 편지장을 봉투에 밀어넣고말았다. 편지를 더 보지 않으려고 깊숙이 건사하려고 했다. 그랬대야 헌 사품보퉁이에 넣는것이였다.

사품보퉁이를 다시 싸다가 문득 꽛꽛한 마분지로 된 엽서가 손에 잡히여 그것을 꺼내들었다. 한두번 꺼내보던 엽서였다. 금년 설에 보내온 년하장, 그것도 전주교도소에서 거기 전담반장인 안경쟁이 리상규가 보내온것이다. 새해인사라는것이 이러했다.

《천천히 그리고 또 천천히.

이것이 다였다. 성태자신은 그 의미를 다 해득할수 없었다. 무슨 암시인지 비웃음인지, 그 알수 없는 이상한 《서울대 철학과졸업생》은 무엇을 말하자는겐지 처음에는 명백치 않았었다. 그러다가 리상규가 이따금 자기를 《급진파》라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성미가 급하고 만사에 지나치게 적극적이라는것이였다. 비웃는 말은 아닌것 같다. 하여튼 그 짧은 말마디에는 리상규자신의 모순된 립장 그리고 안성태의 인품을 인정하는 마음과 그에 대한 힐난의 감정이 묘하게 얽혀있었다.

따는 그렇다. 수인들속에서도 집단투쟁에는 《친화력이 있는 안동지》가 나서야 한다는것이 말없는 약속으로 되여있었다. 친화력이라는 말을 처음에는 좋지 않게 생각하던 성태는 이 말이 굴종이나 타협이 아니라 투쟁력이라는 말을 옥중에서는 이렇게밖에 달리 표현할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면담에 나가면 뭇매를 얻어맞을것을 각오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정신차릴새없이 냅다 다그어대는데 거기에는 견딜자가 없었다.

성태는 《치욕》의 함정에 빠졌다 나온 그때부터 이러한 생활방식이 형성된것이였다. 이것은 일종의 자신의 지난날에 대한 부정이고 바로 이런 끊임없는 부정으로 자신의 의지를 칼처럼 벼리여 나갈수 있다고 여긴데서 오는 자기 확신이였다.

하지만 이 순간에 안성태는 《천천히 그리고 또 천천히》라는 이 말이 만사를 묵새기고 어떻든 참고 견디면서 자꾸 앞으로 내달아 가지 말라고 《훈시》하는 말처럼 들려 와락 엽서를 찢었다. 한번, 두번, 세번… 그러다가 손을 멈추었다.

성태는 엽서쪼박들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았다. 차마 그것을 버릴수도 없었다. 어째선지 그 엽서쪼박지들에는 리상규의 진심이 어린것 같기도 했던것이다. 성태는 엽서쪼박지들을 다시 보퉁이속에 쓸어넣었다.

이튿날, 또 다른 편지가 그한테 와닿았다. 그것은 전혀 생각지 못한 편지였다.

《운동시간》때였다. 열린 감방문께에 섰던 김교도관이 무슨 의심스러운것이나 발견한듯 《가만, 저게 뭐야?》 하고 일부러 큰소리를 치면서 한걸음 안으로 쑥 들어왔다. 그러더니 무엇을 바지호주머니에서 꺼내 급히 성태한테 내밀었다. 성태는 얼결에 받았다. 한통의 편지였다. 김교도관이 손가락을 입술우에 세워보였다. 성태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얼른 편지를 헌 이불속에 갖다넣었다.

성태는 운동에 나와서도 그 짧은 운동시간이 얼마나 길어보였던지 모른다. 겉봉도 미처 보지 못한 편지, 누구한테서? 한달전에도 이렇게 편지를 갖다주었다. 그때 김교도관이 급히 하던 말이 생각났다.

《방소희양이라고 아시죠? 전주에서 담당교회사를 하던?… 그 양이 지금 충남대학교 강사로 대전에… 저희 집과 사돈간이 되였구요. 안선생의 안부 묻더라구요.

김교도관이 교무과에서 《편지담당》이라는것, 사돈간은 거짓말이고 방소희와 외사촌간이라는것은 후에 알았다.

성태는 운동에서 돌아와 편지를 꺼냈다. 먼저번처럼 《비정상적인 경로》로 들어왔던 그들의 편지였다. 아니, 그런데 이번에는 오순희라는 그 이름은 없다. 조영미라는 이름뿐이다. 순간 광주학살에서 동생을 잃은 오순희였으면 하고 바라는 이상한 심리를 체험했다. 조영미란 이름은 방소희, 오순희의 뒤에 서있는 순서로 생각되여왔다. 조영미는 내가 전주에 있을 때 오순희, 방소희를 통하여 나를 알아봐달라고 하던 그 처녀이다. 그것이 벌써 5년전인가 된다. 그러니 그 조영미가 이젠 오순희, 방소희를 밀어제끼고 직접 나서는가?

한데 이건 무슨 편지인가? 이 편지도 보이지 않게 조여드는 《그물코》일가? 여기는 온갖 의심이 시시각각 생겨나는 곳이다. 허나 마음을 순편히 가져보려 애쓰면서 그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안성태선생님, 그간 별고없으신지요? 저번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저의 확정된 주소를 대여드릴수 없어 미안합니다. 이것이 그대로 저의 처지이기도 합니다. 생활의 방황이 계속되고있기때문입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어떻게 삶을 창조해갈지 잘 모르는 속에 1년세월이 지났습니다. 성인들을 위한 야간학교에 마음 끌려 사범과졸업생인 저는 이곳에 오게 되였습니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로동청년들을 대상으로 한다는데 참 힘이 들것 같습니다. 이속에서 어떤 삶을 창조해갈수 있겠는지… 그럼 왜 이런 주소라도 안 드리면서 편지를 쓸가요? 확정된 삶의 주소를 빨리 가지기 위해서, 바로 저의 삶을 정돈하기 위해 이 편지를 드립니다.

선생님, 삶의 목표가 뚜렷한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로 끝까지 갈수 있다는것은 참말이지 행복이라고 저는 생각하며 이것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싶었던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제가 자신의 마음을 다잡아나간다고 믿어주세요. 아직은 선생님의 회답을 받을만큼 (실상 그런 편지가 교도소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은 적구요.) 제 생활이 정돈되지도 못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생활에서 길을 찾은 다음에 주소를 알린다고 믿어주세요.

 

(나이는 얼마겠는지. 대학졸업후 1. 아마 24~25살쯤 됐을거라…)

어쨌든 학생운동권에 서있던 처녀가 틀림없다. 그것은 방소희가 하던 말에서 알게 된것이 아닌가. 오순희와 조영미는 짝패라고… 오순희가 로동운동권에 뛰여들었다고 했지…

(그런데 어째서 하필 나한테 편지를?… 왜 오순희라는 이름은 없나? 그때는 둘이였지. 둘… 오순희는 어디로 갔나?)

 

 

4

 

 

담당교회사인 박석기가 안성태를 불러내갔다.

교무과장 라구표가 언제까지나 가만있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침내 그한테서 박석기가 무슨 지시를 받은것 같았다.

성태는 라구표라면 애당초 상대하지 않으려 했고 라구표자신은 지난날의 일때문에 선뜻 성태앞에 나서지 못하였다. 그 절름발이가 10년 남짓한 사이 전담반장에서 교무과장으로 승진하여 매우 점잔을 뺀다는것이다.

성태는 박석기와 마주앉아서도 자연히 그뒤에 앉아있는듯 한 라구표의 모상이 얼른거려서 분노로 가슴이 끓는것이였다.

박석기는 얼굴이 네모지고 체구는 유술선수처럼 크고 단단했지만 그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샐샐거리는 말소리와 바보같이 짓는 웃음은 그의 천박한 취미와 생활관을 그대로 말해주는듯 싶다. 그는 반반한 탁자를 손바닥으로 괜히 자꾸 쓸어보더니 머리를 쳐들고 성태의 머리칼을 쳐다보았다.

《안선생은요, 이젠 쉰여섯인가 쉰일곱이겠는데 머리카락은 아주 그냥 까맣군요.

《어머님의 유산으로 물려받은거요. 우리 어머님은…》

성태는 이자앞에서 무슨 이런 얘기를 할가 하다가 내친김에 말해버렸다.

《늙었어도 머리가 희지 않았댔으니까…》

환갑나이에 이르면서도 어머니생각은 막을수가 없다. 그러자 또다시 뒤따르는 맏누이생각…

박석기가 지껄이는 소리는 시답지 않게 들린다.

《참말 부럽네요. 절 보세요. 선생보다 나이가 훨씬 아래인데 이렇게 귀밑에 허연 오리들이 수두룩해요. 왜 그럴가요. 우리 부모들도 일찍 머리가 희지 않았더랬는데 말이죠.

《남을 학대하는 직업이여서 그런건 아니겠는데.

성태는 비꼬듯이 말했다.

《섭섭한 말씀이네요. 남을 학대하다니. 우리야 법관도 아니고 교도관도 아니잖나요? 우린 선생님들을 개심시키기 위해 애쓰는》

《그만두오. 그따위 말은 이젠 신물이 나오. 다른 말은 없소?

《아, 아 그러지 말아요. 정말 성미가 급하시네요. 듣던바대로군요… 할말은 이제부터라구요. 라과장이…》

《그만두오. 그 이름 다신 꺼내지 마오.

《네, . 그러지요.… 사실은 안선생의 맏누이한테서 교도소에 청원을 보내왔어요. 소장님앞으루요.

《뭐? 청원?… 무슨 청원?…》

성태는 스물다섯해가 넘도록 감옥안에 있으면서 밖에서 들어오는 청원이라는 이런 말을 처음 들었다.

《맏누님이 먼길을 오기 힘드니 동생을 부산에 내려보내 형제상봉, 조카상봉 시켜줬으면 한다고 말이죠.

성태는 여전히 얼떠름했다. 이런 일도 있어본적이 없다. 무슨 모략이 있다는 의심이 갔으나 일가친척을 만날수 있다는 말에서, 그것이 있을수도 있다는 희망이 갑자기 살아올라 가슴이 설레여 진정할수가 없다. 정녕 그런 일이 있을수 있겠는가, 그런 의문은 뒤로 물러나버리는 순간이다.

감옥안에서 갖게 되는 어떤 희망이든지 아득히 먼곳에 있는것이고 따라서 그런 희망이 저절로 걸어오지는 않을것이며 거기까지 가기 전에 자기는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습관이 되는것이 상례이다. 성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순간에 그는 갑자기 눈앞에 닥치는 불빛에 눈이 시그러워진듯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사실 그런 희망은 단순한것… 하지만 도저히 이루어질수 없는것이였다. 너무나 커서 가슴에 품어볼수조차 없는것인가…

사람이란 가슴 벅찬 희망에 현혹되면 될수록 그 순간에 그것이 요구하는 비싼 대가를 미처 생각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서 인생에는 실책도 있고 범죄도 있는것이리라. 나중에야 그것에 바쳐야 할 비싼 대가를 깨닫고는 가슴을 치나 때는 이미 늦게 된다.

일가친척들을 만난다는것- 그것은 얼마나 범상한 희망인가. 그 범상한것이 이렇듯 비상한것으로 가슴 벅차게 안겨들줄이야. 감옥안에서 외국어단어들을 외우고 동지들과 일반수들, 교도관들에게 침을 놔주면서 고독감을 훨씬 덜고있었는데 이즈음에는 이상하리만큼 면회조차 없었던터이라 이 일가친척상봉이란 말만 들어도 그저 한바탕 즐거운 꿈을 꾸는것만 같다.

맏누이가 과연 그런 청원을 내였을가? 생각은 다시 이런 의문에로 되돌아왔다. 아니 여기에는 또다시 회유기만의 어리석은 놀음이 새로운 형태로 있을수 있다. 하지만 그런것쯤 이제는 꿈만 하다.

비록 죽음으로 보상한다 해도 어릴 때의 눈물이 어리고 인생의 푸른 꿈이 싹트던 그 부산땅에서 형제들을 만나고 조카들도 다 만나고픈 심정을 무엇으로 달래이고 누를수 있단 말인가. 가고싶었다. 가서 만나고싶었다.

박석기가 성태의 흥분을 일부러 못 보는척 하며 그의 머리우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선생, 교도소 소장님의 지시로 부산행을 하게 되였어요. 나와 두 교도관이 동행하게 되고… 한 보름후에, 그때면 안선생의 머리칼도 한두센치 더 클것이고, 옷도 비록 새것은 아니지만 가히 루추하지는 않은것으로 마련하겠어요. 그새 부산친척들한테 련락하여 선생을 맞을 준비도 갖추게 하고… 어때요?

박석기가 비주름히 웃자 보기 싫은 덧이가 입귀로 삐져나왔다. 성태는 그제야 랭정하게 자신으로 돌아왔다.

《빈손으로야 어떻게 가겠소? 36년만에 가보는데.

《뭘 가지고 간다고…》

박석기가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성태는 웃었다.

《하다못해 내가 매일 먹는 깡보리밥덩이라도 몇개 구럭지에 넣어서 가지고 가야지 맨 손으로야 어떻게…》

《안선생, 그냥 롱담이시네요. 우리의 성의를 봐서라도 그런 말 자꾸 하시면 안되겠어요.

《그런데 말이요. 당신네 덕분에 내 몰골을 좀 보우.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서야 어디로 가겠소? 얼굴은 하얗고 병색이 날텐데. 거울이 없어 보지는 못해도… 분장을 할수도 없지 않소?

《아, , 자꾸 그러지 마시란데. 선생만은 운동시간도 늘여 볕에 얼굴도 태우고… 다 생각이 있어요. 영양보충도 좀 시키고요.…》

《하 그렇단 말이지. … 금의환향이야 못되는거구… 가만, 박계장… 내가 아주 부산에 간다면 어떻겠소?

《네에?

박석기는 놀라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서기까지 했다. 한순간이 지나 제가 깜빡 속히웠다는것을 알자 풀썩 다시 앉고말았다.

박석기는 숨을 씨근거리였다. 다른 때라면 책상을 치던가 주먹을 상대방한테 날렸을것이지만 용케도 참는걸 보면 이자들이 무엇인가 단단히 모략을 꾸미는것이 분명했다.

안성태는 박석기가 노는 꼴이 우습고 그의 속심이 빤히 들여다보여 그만 《하하하…》 하고 웃었다. 박석기가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이거 안상! 실성했나베.

그의 낯은 더욱 네모져보이고 얼굴빛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성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서 말했다.

《한가지 청이 있소.… 아니 우선 묻고싶소. 친척 아닌 사람은 거기에… 그 상봉파티에 참가 못할가요? 경남상고시절 동창생인데 심종운이라고, 거의 20년전에 한번 면회왔더랬지. 지금도 부산시내 어느 은행에 있겠는데.

《안될것 같애요. 하지만 제기는 해보겠어요.… 가능할수도 있죠 뭐.

마지막어조는 흔연한 투다.

《그리고 또 한사람…》

《누군데요…》

《…아니 그만두겠소.

이 순간에 아득히 지난날로 멀어져가서 지금은 형제들에게조차 물을수 없는 한 녀인의 운명, 아아, 그 김계순이를 만나고픈 생각이 피뜩 떠올랐으나 그와 동시에 그것이 자기로서는 청할수 없는, 안된 일이라는 어떤 리성의 세찬 목소리를 들었던것이다. 아무튼 기분이 뜬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자신을 모질게 누르려니 그만큼 가슴이 저며내듯이 아팠다. 그는 이를 악물며 속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성태, 그렇다 해도 너는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매질하는구나. 살았는지 죽었는지 안부조차 알지 못한다는거야 너무하지 않느냐.… 분명 그때 간병부 정용식이 말했지. 살아있다고, 나한테 안부를… 하지만 그때가 벌써 어느때야? 15년도 더 넘었는데…)

 

 

5

 

 

초량동언덕받이에 있는 단층집은 구식기와집이였다. 부산진구에서 초량동이 옛날에는 중심시가와 가까운편이였다. 하지만 지금 부산이 동래쪽으로 번창하는통에 산탁으로 붙은 이 지대는 항구와 가까울뿐 그저 한쪽으로 밀려난 기분이다.

한시간전에 부산역에서 내린 영미는 너무도 오래전에 와본 외가인지라 길을 헛갈려 겨우 이제야 여기에 당도했다. 낯익은 기와집을 띠여본 영미는 어째선지 걸음이 나가지 않았다. 착잡하던 마음속에서 우선 불안이 먼저 솟구치였다.

영미는 울산의 작은할머니 김양순의 편지를 받고 부랴부랴 떠난 걸음이다.

… 영미야, 한번 왔다가렴. 네 엄마가 건강이 좋지 못하다. 소화가 잘되지 않아 고생한다. 신경이 약해져서인지 밤에 잠을 못 잘 때가 있다. 내가 밤중에 깨나보면 네 엄마가 창문가에 앉아 하늘만 쳐다볼 때도 있다.

… 너무 근심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살다나면 앓을 때도 있는 법이 아니냐. 며칠전에 확진도 받을겸 해서 너의 외백부네 집에 갔다. 좋지 않은 병이야 아니겠지. 한두달 가서 몸조리도 하고… 네가 만약 인차 떠나게 되면 부산에 우선 들려보려무나…

 

한달전에 받은 편지에서는 어머니가 건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다.

김양순의 편지를 받고서야 영미는 룡인에서 시작한 자신의 자립생활을 어머니가 과연 어떻게 리해하고 승인했을가 하고 돌이켜 보게 되였다. 자기는 응당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실 도리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았을가. 물론 대학졸업생치고 귀가하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이지만 자기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되는것이였다. 하지만 대학시절에 얽혀진 《운동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는 《귀가》는 또 그것대로 사회생활에서의 일종의 도피로 될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지 두해도 못되니 서로가 서로를 주시하고있었고 대학학생조직의 성원으로서의 학우들과의 우정도 그대로 생생히 살아있었다.

같은 사범과에서 공부한 학우들은 각지로 흩어졌다. 영미처럼 야간학교 교사로 되여 로동청년들속으로 들어간 벗들도 여러명 되였다. 도시의 부자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 《운동리념》을 등진 졸업생도 있었다. 또 리화녀대라는 간판에도 불구하고 여직껏 실직된 상태에서 헤매는 학우들도 있었다.

영미자신도 막막한 현실앞에서 방황하는 형편이다. 자주, 민주, 통일의 리념을 교육운동과 결부시키려던 리상도 하루하루의 생활속에 그저 속절없이 스러지는것만 같다. 밤늦게까지 뛰여다니고 하숙집에 돌아와서도 육체의 고달픔은 전혀 알수 없으나 정신적인 방황에서 오는 번민은 피할수가 없었다. 알찬 열매는 아직 바랄수 없다고 해도 씨앗이나 확실하게 묻었다는 자부가 있어야 할게 아닌가.

영미는 사회생활에서의 리상을 조금치도 꽃피워 못 보고 주저 앉으면서 자신의 결심을 저버리는것은 스스로도 용납할수 없거니와 그것은 또한 사랑하는 어머니의 뜻이 아니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작은할머니의 편지를 받고 떠나오면서 빨리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절박감이 자꾸 앞서고 따라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어떤 청년이 있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떠오른것이다.

어머니에 대한 걱정은 기차칸에서 더욱 커졌다.

(무슨 병일가… 큰병이 아니겠지… 모든 병은 다 신경탓이고 정신적인 자극, 그래 스트레스의 지속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인생을 뒤돌아보니 허무감이 들어서일가…)

작은할머니가 편지에서 하는 위안이 어쩐지 과장된 어조로 들리니 이상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의 심정이 더욱 착잡해진것은 부산역에서 안석순을 만난 다음부터였다.

둘은 두손을 맞잡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안석순이 말했다.

《이젠 사회인이 다됐구나. 더 쑥 빠져보이구… 엄마를 꼭 닮았구나.

《아지민 생각보담 늙지 않으신것 같은데.

《무슨 소리냐. 이젠 나이가 50인데.

《그래요? 벌써 그리 됐네… 근데 왔다가 가시는 길?

《아니, 방금 나도 차에서 내렸다. 네가 개찰구로 빠지는걸 보구 뒤따라 나왔는데.

《그래요? 근데 왜 이 차를 타셨어요?

《오, 창원에 들렸다 오느라구 삼랑진까지 갔다가 거기서 기차를 갈아탔어.

《그러니 같은 차를…》

《그런것 같구나… 어데 좀 앉자.

둘은 각기 앉을만 한데를 찾았으나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역전광장 한쪽에 치우친 한두그루 나무그늘아래 사람들이 땅바닥에 앉거나 서있었다.

두 녀자는 거기로 걸음을 옮기며 서로 묻고 대답했다. 영미는 석순이보다 키가 커서 자주 석순이쪽으로 머리를 약간 기울이군 하였다. 평상시 입이 무거운 안석순이였으나 별로 수다스럽게 말을 이리저리 번져갔다. 촉기빠른 영미는 그가 화제를 자꾸 향방없이 돌린다는것을 직감했다.

그러다가 안석순이 불시에 놀란 시늉을 했다.

《아이구나, 내 말만 내 말이라고. 영민 왜 갑자기 부산에? 혹시 외가에?

《아니예요. 어머니가 앓는다고 해서. 어머닌 확진도 받을겸 좀 쉬려고 지금 백부님댁에 와있대요. 작은할머님 편지해서 알았죠.

《그래? 어떻게 앓게?

석순이 급히 물었다.

《몸져눕지는 않는데 시름시름 앓는대요.

《작년에 거제도에 와 며칠 쉬고 갔댔어. 그때 하는 말이 공과 대학 영문대출원일이 몹시 힘들다구 그래. 하긴 이젠 나이가 얼마니… 영미야, 이제는 엄마를 모셔야지 않겠니.

《아마 그래야 할가봐요.

《차라리 우리 거제도에 어머니와 같이 오렴. 야간학교 교사는 얼마든지 요구되고 어머닌 공기 좋은 곳에 살면 건강이 좋아질수있지. 또 버섯은 장수식품이야. 령지버섯인기는 요새 대단해. 항암제라구.

《글쎄 어머님 병환이 어느 정도인지… 고마와요. 생각해보겠어요.

그런데 여기서 안석순은 더 할말이 없는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들뜬 흥분에서 오는 수다스러움도 사라지고 그의 특유한 생각깊은 표정이 어린 얼굴에는 시름이 돋아나있는듯 싶다.

두 녀자는 잠시 침묵속에 있었다.

안석순이 입을 열었다.

《너희네 외가가 초량동이지?… 엄마한테 같이 병문안 갔으면 좋겠는데… 우리한테 급한 일이 생겼다.

《무슨 일이예요?

영미가 물었다. 얼른 대답을 못하던 석순이 입을 열었다.

《우리 둘째 오빠가…》

《둘째 오빠라니요?

《참, 넌 잘 모르겠구나. 우리네 맏오빠는 일제때 태평양전쟁 싸움판에 끌려가 저 남태평양의 뉴기니아섬에서 무주고혼이 되였어… 그러니 둘째 오빠는…》

《지금 교도소에 갇힌 안성태 그분?

안석순이 고개를 돌려 영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분명 어떤 감사의 정과 함께 반가움이 어려있었다. 석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영미가 물었다.

《그래서요? 그분한테 갑자기 무슨 일이?

《글쎄 좀 들어봐. 여기 부산으로 온단다.

《네? 건 무슨 말예요?

영미는 석순의 팔을 와락 잡아흔들었다.

안석순은 얼른 말을 못하다가 설명을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전향공작을 위해 일가친척상봉을 마련했다는것, 어린 아이들까지 다 참가시켜 가족적인 분위기를 한껏 내게 한다는것이다. 거제도에도 《안기부》 요원인듯 한 사나이가 와서 여러가지 주의를 주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맏언니가 문제라고 했다. 로망이 들었는지 맏언니가 전향권고를 하겠다고 주동에 나선다는것이다. 거기다 셋째 오빠와 법적리혼도 없이 갈라져사는 올케가 맏언니를 동정하는 눈치라는것이다. 석순의 말이 자기 집에 와서 얹혀사는 성필오빠는 꺼리는 일이 많아 한숨만 쉬며 이번에 오지도 못한다고 했다.

《안기부》에서도 그가 오는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 안성필이 오면 그 처는 물론 조카들이 오지 않기때문이다. 안석순의 남편도 어째서인지 제외되였다. 《상봉멤버》를 짜는데 《안기부》가 대단한 신경을 썼을것이다. 어쨌든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얼기설기 늘어지고 얽혀진다.

정확한 날자는 아직 알려주지 않았다. 며칠안으로 온다고 한다. 체류날자는 2일정도라는것만은 알려주었다. 맏언니인 안효순의 집에서 만난다는것, 그래서 단칸방이지만 그 집을 잘 꾸리느라고 할것이라는것, 요원의 눈치를 보니 숙박은 부산교도소에서 하는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해운대나 태종대의 바다가에서 가족야유회를 준비한다고 했다. 해운대는 지내 번잡하고 아마 태종대가 《놀이》장소로 될것 같았다. 태종대가 택해진것은 안성태가 어릴적에 영도에서 자랐고 태종대도 그한테는 추억이 깃든 유정한 곳이라는 점이 타산되였을것이다. 문제는 조카들이고 조카손자손녀들이였다. 그들은 그저 무턱대고 삼촌이 되고 할아버지가 되는분과 함께 살고싶다는 철없는 욕망뿐이였다. 석순은 창원에 사는 딸과 아들을 이번 일에 인입시키려 했는데 벌써 《안기부》경남지부가 그들을 명단에서 빼더라는것이였다. 직계가 아니라는것으로… 어느 중학교 교사를 하는 사위가 자기의 장모와 합세할 기세였으나 그것은 허사가 되고말았다. 그래서 안석순은 맏언니를 만나 들이대려고 미리 떠나온것이라고 한다. 이런 복잡한 심정속에서 조영미를 갑자기 만나고보니 자연히 수다스러워졌던것이다.

두 녀자사이에는 여태 안성태란 이름이 오간적 없었다. 드물게 만나서 그런것도 아니고 서로 숨기자고 해서 그런것도 아니다.

영미한테 모든것을 털어놓은 안석순이 마음이 개운해하는것도 같고 영미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할가 하는 의문의 빛이 어리는것도 같았다.

그런데 영미는 뜻밖의 반응을 보이였다.

《그러니… 안효순이라는 그 맏언니되는분은 어째서… 어째서.

저도 모르게 영미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하지만 영미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는 안될거예요. 어쩐지… 나는 믿고싶어요. 그분은 쉽사리 무릎 꿇리기는 힘들게라구요.

《그래… 그렇지…》

석순은 안도의 숨을 쉬는것 같았다.

하지만 이때 영미의 귀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갑작스레 떠오른 하나의 생각이 뇌리를 쳤다. 엉뚱하면서도 자기한테는 그 이상 더 중요한 일이 없는듯 한 그러한 가슴 울렁이게 하는 기대와 희망이 떠오른것이다.

(어머니와 안성태 그분을 한번 만나보게 해야 한다. 잠시잠간이라도… 단 한번의 만남을 바라다가 일생 고통과 원한, 고독과 비애를 받아안고 숙명처럼 이날이때까지 살아오신 나의 어머니…)

이 순간에 영미는 그 만남을 실현시켜주는것이 어머니에 대한 최상최대의 효성으로 되는것만 같아 스스로도 걷잡을수 없는 흥분에 끓어올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석순의 손을 꼭 쥐고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과도한 정신적인 자극과 충격이 병을 더 치게 할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병이 심상치 않다는 불길한 예감이 컸던만큼 어머니의 정신상태도 가늠할수 없는것이였다. 아니 그럴수록 그러한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한사코 떨어지지 않았다.

영미는 더 재지 않고 직방 안석순한테 자기의 심정을 터놓았다. 석순이 처음에는 놀라더니 영미의 손을 마주 꼭 그러쥐였다. 그리고는 떨리는 음성으로 《고맙다, 고마와.》 하고 고개를 돌리였다. 불시에 쏟아지는 눈물을 영미한테 보이지 않으려는듯…

얼마후 마음을 진정시킨 안석순이 말했다.

《그 사람들이 말을 안 들을거야.

《교도관? <안기부>?

<안기부>겠지.

그러던 안석순이 《가만… 심종운오빠… 우리 오빠의 친구분 말이지. 지금 부산은행에 있는데 그분도 만나게 된다는 말을 들었던것 같아. 그러니 혹시 될수도 있지 않을가… 그런데 어머니의 병상태가 어떤지 지나친 충격때문에 병이 악화될수 있겠어… 안되겠어. 괜히 어머니가 쇼크상태나 들어가면 야단이야. 어머니를 위한다는게 오히려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할수 있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말이지.

영미는 할말이 없었다. 안석순의 말이 옳은것 같았다. 하지만 그분이 부산에 온다는 이 사실을 어머니한테 말을 해야 한다. 그것은 속일수 없는 일이다. 운명의 계시를 거역하는것으로 될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좋은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영미는 안석순이한테 말했다. 어쨌든 어머니에게 알려야 할것 같다, 본인이 정 소원이라면 그때는 어찌겠는가… 그 말에 잠간 생각을 더듬던 석순은 교도소나 《안기부》측에서 동의할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석순은 영미의 외가에 찾아와 그 결과를 알리겠다고 했다.

《너희 외가가 그전날의 그 집이지? 초량동언덕받이에 있는.

《그래요.

《어머니문병도 가야 할 걸음이니…》

《한데 아지미는 어데 있겠어요?

《맏언니네 집… 셋째 형님네 집에 가던지… 하여튼 내가 꼭 간다, 기다려.

이렇게 그들은 헤여졌다.

영미는 외가의 대문안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있었다.

 

 

6

 

 

영미의 외백부 김계호량주는 늘그막에 맏아들이 《조선고무벨트》에서 기술자로 일하는 덕에 근근히 살아갔다. 셋째 아들 김유철은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재판이후 형을 받고 지금까지 대구교도소에 갇혀있다.

김계호는 광복을 전후해서 자그마한 목재공장을 경영하면서 괜찮게 살아오다가 전쟁통에 거덜이 났다. 전후 10여년간은 상점을 운영하다가 그것도 파산되여 령남무역회사 하급사무원으로 일하면서 헐치 않은 생존의 길로 가세를 이끌고 왔으나 남한테 결코 허리를 굽히는 일이란 없었다. 나이는 예순여섯, 머리가 하얗게 되였지만 장부다운 기개는 여전하였다. 이따금 대구교도소에 가서 셋째 아들을 만나고는 두문불출이였다. 고전소설이나 력사소설을 읽으며 심중의 울화를 달래고있을뿐이였다. 한데 요새는 한달째 와있는 누이동생 계순의 병때문에 여기저기 좀 다녀오군 하였다. 용한 의원들을 찾아갔고 부산대학교 의과대학부속병원에 가서도 누이동생을 진찰시켰다.

결과는 절망적이였다. 위암의 초기라는것이다. 김계호는 누이동생한테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짐작 못하고있었다. 누이동생이 라틴어자모로 된 병력서의 병명을 얼핏 스쳐보았다는것을…

그러던 어느날 계순은 오빠에게 말했다.

《오라버님, 너무 상심마세요. 난 다 알고있어요.

그 랭철한 말투에 김계호는 놀라와 멍하니 누이동생을 바라보았다. 누가 누구를 위안하려는것인지… 일부함원이면 오월비상이라. 한 녀인이 원한을 품으면 오월달에도 서리가 진다더니… 바로 누이동생은 일생토록 속에 원한을 품고 사는 녀성이 아닌가. 병으로 하여 인생에 대한 원한은 더욱 깊어졌을것이다. 저 보아라. 계순은 강잉히 미소까지 지으려고 한다.

《오라버님, 서방철학의 시조인 그리스의 탈레스란 사람이 뭐랬는지 아셔요? <생명쯤 대단한것 아니야.> 하니까 그 말 들은 사람이 <그러면 생명을 한시바삐 버려도 좋지 않은가.>고 했지요. 탈레스는 말했대요. <그러나 죽음이라는것도 대단한것이 아니니까.> 하고요. 내가 뭐 인생을 허무하게 여겨서만 이런 말 꺼내는건 아니예요. 제 나이 이제 쉰여섯이고… 남이 한생을 살았다면 나는 두생을 산것 같이 인생이 길어보여요…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유고는 말했어요. 인생의 첫째 과업은 투쟁하는것이고 둘째 과업은 승리하는것이고 셋째 과업은 죽는것이라고…》

《음… 그 장발쟝의 작가말이지?

《그래요.

《한데 그는 죽음을 인생에서 너무 큰 비중에 놓았구나. 하기는 값있는 죽음, 존엄과 명예를 잃지 않는 그런 죽음이겠지. 그러니 삶의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설사 그 목표를 다 이루지는 못해도 제가 택한 길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그의 죽음은 헛된것이 아니지.

《그건 그래요… 오라버니, 난 결코 인생에서 실패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난 나대로 제 신념대로 살았어요.… 그리고 보세요… 난 자랑해요. 영미를 그만큼 키워놓은것을… 이것이 인생의 승리가 아닌가요.

병적인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계순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인생의 셋째 과업인 죽음만이 남았어요. 난 흔연히 그걸 맞을수가 있어요. 똘스또이가 말한것처럼 인생은 꿈이고 죽음은 거기서 깨여나는거라고 생각하면 되는거죠.

계순의 얼굴에서는 가냘픈 미소마저 사라지고 눈물이 거침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김계호는 당황해서 말했다.

《얘, 아서라… 의사들의 말이 초기이니 수술을 받아도 될것 같던데. 참 그리고 그 석순이네 셋째 오빠 안성필이 령지버섯으로 위암초기발병을 누르고있다지 않니. 벌써 5년나마 견디는데 10, 20년 견딘 사람 수두룩하대. 그래 요즘 령지버섯바람이 불어서.

계순은 오빠의 말을 밀막았다.

《오라버니, 그만하세요. 글쎄 치료는 받아보자구요. 하지만 난 각오하니 마음이 편해요. 다만 온 강토가 부둥켜안는 통일이 못되는걸 보구 죽는게 한될뿐이지.

《그 한이 보통 한이냐? 분단때문에 우리모두는… 우리모두…》

김계호는 목이 꺽 막히여 말을 못했다. 누이동생의 불행과 함께 셋째 아들의 옥살이가 한데 겹쳐져 원한과 울분이 끓어 속이 울컥 했던것이다.

바로 이러한 김계호였기에 조카딸인 영미가 와서 그한테 조용히 《안성태의 부산행》을 꺼냈을 때 심중히 듣고나서 이렇게 말했던것이였다.

《영미야, 네 생각이 옳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네 효성된 마음이 지극하구나. 병이 더할가봐 걱정하는것두 그렇구… 하지만 말이야 해야지. 네 엄마가 결심할탓이구. 그렇지 않냐?

지금 김계호는 올방자를 틀고앉아 옛날식대로 곰방대를 뻑뻑 빨며 밤이 깊도록 웃방에서 벌어지는 모녀간의 얘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쪽 문을 등지고앉아 아무렇지도 않은듯 했지만 웃방에서 들리는 말소리, 때로는 흐느낌소리도 놓침없이 듣고있었다.

마침내 미닫이문이 스르륵 열리며 계순이 나오더니 꼭 어릴 때처럼 곁에 와앉아 오빠의 무릎에 손을 올려놓고 말하는것이였다.

《오빠, 고마와요.

김계호는 《뭘 말이냐?》 하면서 반백이 된 누이동생의 머리만 의아해서 바라보다가 《응, 응… 아니야. 영미가 효성이 지극해.》 하며 응대를 했다.

《그 말씀도 옳아요.》 하면서 계순은 뒤를 돌아보았다. 《얘, 영미야, 저쪽에 큰아버지곁에 앉거라.

누이동생과 조카애가 량쪽에 앉자 김계호는 그들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그래 어떻게들 결심했느냐? 물론 저쪽 당국의 당국자들이 응하겠는가 하는건 둘째치고…》

김계호는 누이동생과 조카딸의 결심을 동시에 묻는것 같았다. 그런데 영미는 고개를 숙이고 말을 못하고있다.

김계순이 어릴 때처럼 오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고마와요. 그리구 우리 영미한테두 내가 어미지만 감사히 생각해요.》 하더니만 불시에 오빠한테 고개를 돌리며 《하지만… 하지만 만나면 그도 나도 더 고통스럽기만 할것 같구. 차라리 그만두는편이 나을것 같아요.》 하고 말하는것이였다.

김계호는 놀라며 그한테 고개를 돌렸다. 누이동생의 눈이 너무도 가까이에서 그 어떤 광적인 흥분으로 번쩍이였다. 계순의 내심에서 소용돌이치는 마음의 격정 그리고 모순에 찬 심리의 파동이 너무도 력력히 내비치는것 같았다.

김계호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고 영미도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러자 돌발적으로 김계순이 반백의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아니, 아니…》 하고 중얼거렸다. 그가 무엇을 부정하는지 아니면 그만두는편이 낫다는 방금전에 한 자기의 말을 부정하는것인지…

그러던 김계순이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침착하게 그러면서도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것이였다.

《오라버니, 전 언젠가도 말했지만 20여년전 그때 안성태씨를 만나겠다고 한 그것을 경솔했다고 봐요. 하지만 난 그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그러더니 불시에 다소 목소리를 높이였다.

《오라버니, 전 그를 만나겠어요. 만나야 해요. <안기부>가 막아서도 만나겠어요. 만나서 그한테 말해주겠어요… 북에서 사랑하는 안해와 두 딸이 그를 기다리고있다는것을. 그 기다림과 믿음을 저바리지 말고 끝까지 견디여내라는것을.

영미가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다.

김계호는 눈앞이 뿌잇하니 흐려왔다. 지금 누이동생은 단순히 병적인 흥분에 떠있지 않다. 그러는 그의 정상이 눈물겹다. 36년만에 이루어질 그들의 만남이 아마도 마지막만남으로 될것이라고 운명의 신이 서글피 이깨워주는 그 목소리를 김계호는 분명히 듣고있었다. 이 최후의 만남에서 그가 그런 말을 할수 있다니 놀라왔다. 자기의 누이동생이 이런 녀성인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저 수난자라고만 생각했을뿐이지.

김계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앉았다. 불시에 눈물이 샘솟듯이 흘러나온다.

(오호라, 수천년민족사에 있어본적 없는 이 분단의 비극아!… 아, 통일아! 너는 언제 오려나? 너를 누가 앗아갔느냐?)

그는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는다. 그한테는 통일이라는것이 꼭 누가 훔쳐간것으로 생각되였다.

계순이도 오빠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오열을 터뜨리고 영미도 울고…

세사람은 다같이 흐느끼고있다. 밤은 눈물속에 깊어갔다. 부산항쪽에서 밤고동소리가 길게 울리여왔다. 목메게 그리고 서글프게 울리는 배고동소리가…

 

 

7

 

 

안성태는 밤중에 눈을 떴다. 감방안에서 생겨난 감각으로 그는 지금 새벽 4시쯤 되였을거라고 생각했다. 밤새도록 켜져있는 백열전등은 시간관념을 잃게 한다. 하지만 장기수의 시간감각을 속일수는 없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지. 그래, 오늘 밤차로 부산에 가지. 그런 일이 있어.)

하루종일 성태는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감옥살이 25년을 합치면 36년만에 가보는 고장, 이제 만나게 된다는 혈육들… 다 잊은줄 알았던 그 정이 가슴속에서 솟구쳐오른다.

36년간의 세월이 혈육의 정을 이미 깊은 나락속에 떨구어버린듯 이따금 있게 되는 편지나 면회따위로는 거기까지 줄이 닿아내지 못하는듯… 너무도 깊은 곳에 있어서 퍼낼수 없다. 어쩌다 한드레도 못되는것을 퍼올리다가는 그 줄이 끊어지기 십상이다. 한데 이제 그들을 만난다고 하니, 그것도 정든 고장과 《자유로운 환경》에서 한꺼번에 형제들과 조카들을 만난다고 하니 깊은 나락속에 묻혀 찾을길 없던 혈육의 정이 저절로 분수처럼 세차게 솟구쳐오르는것이였다. 이것은 정말 꿈도 꾸어볼수 없었던 일이다.

하지만 저녁무렵에 교도관이 흰 남방샤쯔와 진회색바지를 갖고 왔을 때 그것이 몸에 맞고 안 맞고간에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막상 옷을 갈아입으니 상봉을 기다리는 마음의 설레임은 사라지고 이제껏 체험했던 긴장과는 비교할수 없는 그렇듯 엄청나게 큰 충격에 휩싸이는 안성태였다. 25년간의 감옥생활과는 전혀 다른 생활이 잠시나마 이제 자기를 둘러싸게 된다고 생각하자 정신은 초긴장상태에 들어갔다. 고문장으로 간다고 해도 이처럼 긴장되지는 않을것 같았다.

성태는 사형장에 나가는것 같은 비장한 마음이였다. 혈육의 포위는 교도관들의 포위보다 더 무서울수 있다. 그것을 헤치자면? 자신을 이겨내야 할 그런 긴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열여덟나이에 수영경기를 앞두고 밤낮으로 헤염치던 그 부산앞 영도섬기슭의 바다물이 유혹하며 몸을 던지라고 끌어당길지 어이 알리. 하지만 그런 길이 최후의 선택으로는 될수 없다.

성태는 자그마한 사품보퉁이를 헤쳐놓았다. 우선 책들을 나란히 놓았다. 영문판으로 된 《전쟁과 평화》, 문고판보다는 좀 큰 규격에 목침보다 더 두꺼운 책, 초역을 한 간략본이였다. 벌써 다섯번이나 읽어서 보로지노전투장면 같은것은 체험하듯이 눈에 선하다. 거기서 울리던 대포소리, 함성, 말발굽소리도 들리는듯… 다음은 《침술학》, 도이췰란드어사전, 영문법, 모두가 300페지, 400페지 넘는 책들이다. 하지만 성태는 이 책들과 작별하려는것은 아니다. 그 책갈피속에 북에 두고 온 안해와 두 딸에 대한 그리움이 간직되여있었기때문이다.

책마다 257페지에는 반드시 페지수자에 동그라미가 진하게 그 어져있었다.

257!… 안해의 생일이 2 7일이고 또 딸애들의 생일은 세상에 없는 일로 두살 터울이면서 똑같이 2 5일이다. 우연이면서도 우연이 아닌듯이, 마치도 행복의 상징인듯이 느껴지던 그 2 5,

그러니 257이라는 수자는 안성태에게서 수자가 아니였다. 안해와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의 결정체, 책을 읽다가도 그것을 품에 꼭 끌어안으면 사랑하는 안해와 딸들을 품에 안는것만 같았다. 밤중에 일어나 책을 보다가 257페지를 번진채 그 책을 끌어안은적이 수천수만번 될것이다.

부산으로 떠나는 지금 성태는 그 책들의 페지에서 257을 찾아내여 차례로 책을 가슴에 안아본다.

사랑하는 안해와 딸애들과 마음속으로 또다시 작별인사를 한다. 가장 견디기 어려울 때 그리고 지금처럼 어떤 비상한 정황이 다가올 때마다 맨 처음으로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장아장 걸으며 《아빠》를 부르던 그때의 맏딸애, 아직은 강보에 싸인채 해쭉해쭉 웃던 둘째 딸애, 지금도 여전히 그때의 모습대로 먼저 떠오른다.

이제는 스물여섯, 스물넷이나 되는 그들의 얼굴을 도무지 상상해낼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보고싶어 안타까와지군 하는것이 아닌가…

성태는 대학민청체육부장이였다. 안해는 한학년 아래에 다니던 처녀, 대학배구선수였다.

저녁마다 강실에 남아 안해의 학습을 지도해주던 때… 그들의 사랑은 여기서 움텄다.

또다시 성태는 지금 마음속으로 그들과 다시 작별의 인사를 하고있다. 보퉁이속에는 편지들이 있고 별다른것은 없었다. 그러다가 성태는 치솔걸개에 눈이 갔다. 그는 거기서 치솔대를 벗겨들었다. 안에 침대 두대가 은밀히 감춰진 치솔대… 더우기는 침 두개밑에 붉은 실몽그러미가 있다.

광주교도소에 있을 때 성태는 전윤국동지의 최후의 유언, 《당과 조국을 위하여 끝까지 충실하겠음》이라고 쓴 그 피로 물들여 진 붉은 실몽그러미를 수인복앞섶에서 빼내여 그 치솔대안에 넣었던것이다. 갑자기 수인복을 바꿀 때면 바쁜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슴우에 품지 못하는것이 아쉽지만 하는수없이 그 붉은 실몽그러미를 치솔대속을 파낸 구멍의 맨 아래쪽에 넣었던것이다.

그런데 부산에 가는 생각에 긴장한 나머지 이 치솔대를 다른 동지들한테 넘기지 못했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면 응당 그렇게 했어야 했다.

(아니다. 나는 꼭 돌아온다.… 바로 이 지옥같은 독감방에로…)

성태는 줌안에 치솔대를 꽉 움켜쥐고 그 뚜껑쪽에 볼을 대고 오래도록 떼지 못했다.

전윤국… 그의 넋이 이 치솔대안에 있다.

정대철… 그는 73년에 출옥해서 거제도에 있는 누이동생 석순이네 집에 갔다가 경찰의 등쌀에 못이겨 여기저기 떠돌이했다. 75년에 재판도 형량도 없이 청주보안감호소로 갔다고 했지. 그가 못을 갈아 만들어준 그 침대에는 불굴의 혁명가가 벼려낸 의지가 깃들어있다.

송기만… 미술교원이라고 제사 치솔대안에 구멍을 파내느라고 신고를 하던 그, 그도 73년에 나가서 안해가 키우던, 실은 전우의 아들인 그 아이를 자기의 아들이라고 선포하고 안해한테서 《남편을 배반했다》는 《불륜의 굴레》를 벗겨주었다. 그때야 약혼녀와의 성례를 치르었다. 그러나 송기만은 이미 페인이 된 몸이라 2년후에 세상을 떠났다. 스무살 난 전우의 아들에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연을 유언으로 남기였다고 한다. 아마 약관의 나이에 이른 전우의 아들에게 송기만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최후를 마쳤는가, 그것을 반드시 얘기했을것이다. , 통일혁명의 길에서 먼저 간 렬사들이여… 그대들의 뒤를 이어 나는 다시금 투쟁의 길로 간다. 치솔대는 두고 가도 그대들의 넋을 나는 가슴에 품고 간다.

밤이 되였다. 안성태는 교도관의 호송을 받으며 사동의 복도로 걸어나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사동에 있는 동지들, 떠나간 동지들모두에게 인사를 하고싶었다. 하지만 시찰구는 다 닫기고 누구도 자기가 나가는것을 모르는것 같았다.

성태는 출입문에서 마지막 한걸음을 밖으로 선뜻 내짚을수가 없었다. 이랬든저랬든 여기에는 동지들이 있다. 하지만 자기가 가는 그곳은 옛날에는 정든 고장이지만 지금은 거기가 동지들조차 없는 고립무원한 《감옥》이다.

교도소정문으로 나가는 길에 합승차 한대가 서있었다. 외등불빛에 재빛인지 검은빛인지 알수 없다. 소장이하 여러명의 《제복》들이 《환송》을 나와 서있다. 그중에서 한걸음 나서는 사복쟁이는 교무과장 라구표였다. 그는 사람들의 면전에서 모욕을 당할가봐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있다. 성태는 늘 그렇듯이 그자를 외면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안선생, 잘 다녀오시오.

성태는 차안에 들어가버렸다. 앞좌석에 담당교회사인 박석기가 앉았고 뒤에는 성태의 량쪽에 각기 교도관이 탔다. 결국 일행은 네명이였다.

차가 정문을 벗어났다. 차실안의 등을 꺼버려 어둑시근한데 전조등불빛이 길바닥을 비치고있다.

박석기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안선생, 모자를 쓸걸 그랬어요.

성태는 모자를 거절했었다. 한달 남짓 깎지 않은 머리칼이 2~3센치정도로 자랐다. 풋밤송이처럼 까시시했다.

《모자는 써서 뭘하겠소. 이제 와서 이런 머리를 감출 생각은 조금두 없소.

성태는 기차에 오르면 머리를 더 당당히 들고 사람들의 눈길을 모으고싶은 심정이였다. 량심수들에 대한 관심이 이제 겨우 바깥세상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때였다. 15척담장속의 장기수실태는 암흑속에 묻힌듯 했다. 언론은 고사하고 여론에는 자물쇠가 잠겨 진 상태였다.

대전역에서 기차에 오르자 박석기는 신문 두장을 사서 성태에게 주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였다.

이무렵 감옥안에서는 1급일반수들인 경우 일정한 열람실에서만 신문을 한시간정도 구독할수 있게 하였다. 감옥안에서 1급수들은 교도관들한테 돈을 찔러주고 대단한 행세를 했다. 성태한테 침맞으러 오는 그들이 가끔 신문을 꼬깃꼬깃 접어서 괴춤에 넣어가지고 왔다. 그래서 성태는 간혹 신문을 보군 했다.

신문은 어느때든 호기심을 끄는 물건이지만 지금은 대충 큰 제목만 훑어보았다. 더는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맞은편 좌석에 앉은 두 교도관이 끄떡끄떡 졸고 옆자리에 앉은 박석기도 어깨쪽으로 머리가 군드러지군 하였다.

성태는 어둠에 잠긴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광대뼈가 솟은 웬 낯선 얼굴이 차창에 비꼈다. 짙은 눈섭밑에서 쏘아보는 눈길은 분명 자기의것이다. 가락맞게 들리는 차바퀴소리, 차바퀴소리…

(, 경부선… 13년전 여기로 이같이 밤차를 타고 호송돼서 대구로 갔지… 그때는 이 길이 울분의 길이였다. 그래서 내 인생궤도가 탈선되여 굴러가는것 같았지.)

하지만 지금은 최후의 결전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니 잠은 싹 달아나고 눈은 마록마록해지였다. 성태는 스스로도 랭철해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손바닥으로 가슴을 쓰다듬었다.

 

기차는 아침 7시경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역앞에 나오자 한 교도관이 택시를 불러왔다. 운전사 옆좌석에 타려던 박석기가 택시를 불러온 교도관더러 옆자리에 타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뒤좌석에 와서 안성태의 곁에 앉았다. 성태는 결국 박석기와 교도관사이에 앉았다.

택시는 떠났다. 날씨가 흐리터분하였다. 해가 뜬지 오래였으나 거리에는 아침빛이 흐르지 않았다.

《안선생, 부산이 많이 달라졌지요? 감회가 깊겠어요.

박석기의 말에 성태는 대답했다.

《감회가 왜 깊지 않겠소. 36년만에 온 부산땅인데.

《안선생, 저기 좀 내다보시오. 여기가 중앙대로이지요.

4, 5층집들… 별로 달라진데가 없군.

《그럴수 있어요. 부산은 여기가 옛날엔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부산진구와 동래구쪽으로 번창해간답니다.

《한데 우린 지금 어디로 가오?

《사직동 맏누이네 집이죠. 거기 지금 석순누이동생도 와있을겝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형제분들과 아침식사나 나누시고…》

미리 다 준비시키고 시간을 맞춰 그리로 가는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첫 순간에 그들한테서 쏟아지는 눈물의 폭포를 어떻게 감당하랴 싶다. 고문의 채찍보다 혈육들의 눈물이 더 두렵게 생각된다.

(여기서 나는 정말 혼자로구나. 석순이마저 누님한테 쏠리면 더욱 그렇다. …조카부부와 그 자식들이… 눈물의 바다겠지. 그네들의 눈물을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릴수는 없고… 아니 나한테서 36년동안 고인 눈물이 동을 터치면 그들의 눈물을 밀어내고도 남을거야.)

36년이 아니라 나이가 쉰일곱에 이르도록 눈물을 모르고 살아온 성태였다. 무척 어릴 때에도 그런 기억이 없다. , 차라리 그네들을 부둥켜안고 실컷 울어서 가슴이 열리게 된다면, 분렬의 40여년을 눈물로 씻어버릴수 있다면… 통일이 된다면… 그때는 온 강산에 차는 감격의 눈물이 동해바다가 될지, 남해바다가 될지…

박석기가 설명을 달았다.

《구서동에 사는 제수와 조카들 그리고 그 뭐라는지, 조카손자손녀들도 한시간쯤 지나서 올겁니다. 안선생의 동생 안성필씨는 그냥 거제도에 있기로 했지요. 환자인데다 또 제수가 그 사람 오는걸 바라지 않으니까요.

안성태는 차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눈앞에는 형제들과 조카들, 그들의 어린 자식들의 눈물어린 얼굴들만 보이는것 같다.

《다 온것 같소.… 아, 저기 맏누님이 나오시누만.

이미 와본 박석기가 이렇게 말하며 차에서 내렸다.

《아이고 성태야!

성태의 품에 와락 안기는 안효순의 부르짖음, 뒤이어 터지는 울음소리…

성태가 안효순을 부둥켜안는데 곁에는 누이동생 석순이 매달리며 흐느낌을 터친다.

《자, , 집앞에서 이러지 말고 들어들 갑시다.

박석기의 말에 한 교도관이 먼저 석순이를 떼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뒤이어 박석기와 다른 교도관이 성태와 안효순이를 안으로 떠밀었다. 둘은 한동아리가 되여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서로 팔을 풀지 못했다.

《누님!

성태가 이렇게 부르며 안효순의 머리칼에 자기의 볼을 꽉 눌러대였다. 성태는 터지는 격정을 참으려 했으나 끝내는 주르르 볼을 타고 내리는 눈물을 어찌할수 없다.

박석기가 안석순에게 말했다.

《오빠분이 시장하겠는데 이러지들 말고 어서 요기라도 시키고 나서 회포를 풉시다.

그 말에 고개를 돌린 안성태가 박석기를 쏘아보았다. (회포? 회포는 무슨 회포? 헤여진 36년간은 혈육이 끊어져 큰 공백인데 무엇으로 이걸 메꾼다는거냐?)

그다음부터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에서 불이 이는것 같았다. 마음의 여유를 얻고 집안을 둘러 보았다. 집은 단칸방, 낡은 이불장과 구식라지오가 보일뿐이다. 부엌은 어디인지?… 부엌이 공동부엌이라는것을 그뒤에 알았다.

그제야 성태는 맏누이의 두어깨를 잡아 자기의 품에서 떼여보았다. 안효순은 실신을 한듯 비척거리였다. 그의 어깨를 잡아주면서 자리에 앉혔다. 키는 작은데 몸이 병적으로 비대하다. 그러니 심장이 나쁘고 혈압이 높을수밖에, 심장이 나쁘니 또 그것대로 몸이 부해지는 악순환이다. 자식들도 없고 남편도 없는 불쌍한 나의 누님…

성태는 무턱대고 누님한테 죄스러움을 느꼈다. 그 죄스러움이 무엇때문인지 몰랐다. 아버지가 생각나고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들이 헤여진 이 아들때문에 일찍 가버렸다는 그 절통함이 죄의식으로 번져지는가. 아니, 거치른 남쪽사회에서 구원할길 없는 불행속에 빠져 허덕여온 누님의 정상앞에서 느끼는 죄책감, 통일성업을 위해 나섰다가 아무것도 해놓지 못하고 환갑나이에 구원할 길은 없는가. 맏누이는 그래서 나를 불렀고 나한테 구원의 손길을 내민것이 아닌가. 성태는 너무도 생소한 밥상머리에 앉으니 밥이 목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25년만에 보는 밥상이다. 하지만 허기진 배는 속일수 없었다. 그는 천천히 씹으며 (감옥에서 생긴 버릇이다.) 그러면서 밥그릇을 다 비웠다. 그러는 성태를 곁에서 바라보며 안효순은 여전히 눈물을 멈추지 않는다. 그 옛날 8.15직후 영도통졸임공장에서 가져온 물고기뼈다귀와 지느러미들을 탕쳐 끓인 국을 허겁지겁 먹어대던 어린시절의 동생을 보는것인지…

자그마한 두리반이 두개 놓였는데 한쪽에는 박석기와 두 교도관이 앉았고 다른 상에는 안성태와 안효순, 안석순이 앉았다.

아침밥을 먹고나서 교도관들과 박석기가 밖으로 담배 피우러 잠간 나가고 안석순은 설겆이를 하려 부엌칸에 나갔다.

마음을 얼마간 진정한 안효순이 성태에게 치질을 만났다는것은 어떻게 됐느냐, (편지에 그런 말을 쓴것 같다.) 치질은 찬데 있으면 안되는데 헌 이불이라도 깔고 앉느냐고 물었다. 이불 한귀퉁이도 밤에 깔고 못 자는데 낮에 깔고 앉았다가는 당장 벌을 받아야 한다고 성태가 대답하자 안효순은 입술을 한쪽으로 실그러뜨리며 또다시 비죽비죽 울기 시작했다.

안성태는 그를 위안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런 걱정이나 해주는게 낫겠는데.)

성태는 이제라도 다른 무서운 말이 나올가봐 그것이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어차피 그 말은 나오고야말것이다.

박석기가 이따금 들락날락하였다. 그러면서도 별로 다른 말은 없이 나가버리군 했다. 안효순이 저한테 약속한 그것이 실행되지 못할가봐 마음놓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자는 어찌나 덩지가 큰지 밖으로 나갈 때마다 허리를 구부정하니 숙이여야 했다. 밖에서는 교도관들이 저희들끼리 무슨 우스개소리를 하며 웃고있었다.

안효순은 손으로 성태의 광대뼈가 솟은 얼굴을 매만져주었다.

《어머닌 그전때 너를 제일 귀해했지. 내가 이젠 어머니를 대신해서 너를…》

《누님두, 내가 뭐 세살 난 어린앤가요, 20대 청년인가요. 환갑이 래일모레인데.

《팔십 난 로인이 륙십 난 아들보고 이걸 조심해라, 저걸 조심해라 하고 타이르는게 부모심정이다. 웃벌되는 나도 그런 마음이야.

《누님, 내가 누님을 모셔야 하는건데.

《하긴 그렇다. 석순이한테 이따금 가도 그 애도 제 사는 일때문에 바빠하고… 조카들은 다 소용없지… 누구를 원망할것두 없어.

눈물이 마른것인지 이제는 한숨이 나온다.

《누님이 시부모님따라 매부와 같이 그 <신앙촌>이라는데 가서 협잡군 <목사>한테 속히운게 일생의 화근이 아닌가요?

안효순은 머리만 끄덕이더니 불시에 속삭이듯 말했다.

《성태야, 날 용서해라. 네가 정 보고싶어서… 내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은것 같아서… 그래서 널 오게 했다.

성태는 안효순의 두손을 모두어잡았다.

《누님…》

《성태야, 막상 널 만나고보니… 내가 편지에는 량심이나 의리를 지킬만큼 지켰다고 했지?… 그런 생각은 여전하다만… 25년세월을 다 없애치우는게 힘들다는 생각, 25년이 아니라 36년을 지워버리고나면 무엇이 남겠니, 앞으로 황금덩이가 동이만큼 생긴대두 그걸 메꿀수는 없어… 한편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를 데리고 너한테 의지하여 정을 나눌 간절한 소망을 버릴수는 없구…》

안효순은 숨이 가빠하였다.

성태는 여전히 안효순의 손을 놓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쏟아지려고 하였다. 사람들의 진정이란 이렇게 모순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쳤다. 곧은배기로 내미는 감정이나 권고는 밀어치우기 쉬워도 이렇게 칼처럼 마음을 쪼개는 아픈 말은 허턱대고 막을수가 없구나. 하지만 마음이 허물어지는 그속에서 서서히 강버티여져 일어서는 생각, 그것은 량심이나 의리에는 한계가 없다는것이였다. 맏누이의 모순된 심정이 비끼는 말에서 성태는 이것을 깊이 느낀다.

…이때 바깥에서는 안석순이 박석기를 한쪽으로 불러갔다. 석순의 오목눈이 쪼프려지나 거기서 예리한 빛이 흘렀다. 허나 입을 열 때 그는 짐짓 온화한 어조로 말하려고 애쓴다.

《교회사님, 저번때 거제도에 왔을 때 말씀하시던 우리 오빠 친구분 심종운선생, 부산은행 리사말예요… 그이를 오시게 하겠다는건 어찌됐어요?

《글쎄 일이 되는걸 봐가며, 우리가 올 때도 소장이나 과장이 하여튼 현지에 가서 다시 련락하라고 했지요. 상급에서 아직 정확한 지시가 없는 모양이요.

사실 심종운이 온다고 해도 그가 오빠한테 무슨 말을 할지 알수 없다. 그는 20여년전에 한번 오빠한테 면회 갔을뿐이다. 우정이며 의리요 하는것이 그동안에 열번도 더 변할수 있는 세상인데… 다행한것은 맏언니 안효순이 생각하던것과는 좀 다른것이였다. 여기로 달려올 때 석순은 맏언니의 태도가 제일 걸렸었다. 동생을 만나자 언니는 눈물부터 앞세웠다. 언니는 동생이 아무말도 못하게 손을 내젓는다. 석순은 석순이대로 제가 돌봐주지 못하는 맏언니의 정상이 가슴에 메여져 같이 눈물만 짰었다.

안석순은 심종운이를 오게 하는것이 안되면 그건 할수 없다고 여겼다. 이제는 김계순이를 잠간이라도 만나게 하는것이 석순의 열렬한 소원으로 되였다. 그래서 점점 조바심을 치게 되는 석순이다. 실현될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뒤로 물러서지 않는 성미인 안석순은 어떤 계교를 꾸며서라도 성사시키려고 마음먹었다. 한데 아무리 궁리를 쥐여짜도 도무지 머리가 트이지 않았다. 김계순이 나서서 《전향》을 오빠한테 권고할수 있는 존재라면 아마 교도소측에서 응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바랄수 없고 또 그러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러면 만나야 할 다른 리유를 만들수는 없을가…

석순은 박석기에게 말했다.

《저… 교회사님… 우리 오빠한테 첫사랑되는 녀인이 지금 부산에 있는데…》

《뭐? 첫사랑?

우둔하게 생긴 박석기의 주먹코가 무슨 냄새를 맡은것처럼 벌름거리였다.

(세상에 저렇게 생긴 코도 있구나. 첫사랑이란게 어떤건지 알긴 아는지. 사람의 일생에서 그게 어떤건지 알게 뭐야…)

석순은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 녀인은 지금 혼자몸으로 사는데 혹시 우리 오빠와 만나면 옛날 정이 되살아날수도 있고…》

석순은 혀를 깨물고싶도록 거짓말을 하는 자신이 미워났다. 서로 만나면 장차 서로의 관계가 맺어질수도 있다는듯이 거리낌없이 주어대는 자신이 어처구니없었다. 그래서 기껏해서 서둘러 《6.25만 아니더라면 결혼했을 사이였는데, 6.25만 아니더라면.》 하고 변명을 했다.

《그렇단 말이지요?

《네. 그래요.

석순은 오빠와 김계순이 한번 만나는것만을 바랐다. 김계순이 《전향》권고를 할리는 만무하고 그러니 그저 서로의 만남이 이루어지면 그만이다.

뜻밖에도 박석기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렇지, 그렇지. 이제라도 서로 결합될수 있지 않겠소? 50대 늘그막의 정이 더 따끈따끈하다는데, 흐흐흐…》

《네에?

석순은 와뜰 놀랐다.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순간이지만 이것은 바라지 말아야 할 기상천외한 일인것이 분명하다.

박석기가 히죽벌쭉 뇌까렸다.

《전향하면 무기수라도 20년 형기만 치르면 교도소에서 나오게 되여있지요. 그러니 안선생경우는 전향하면 즉시 나올수 있거든 … 제기해보겠소. 심종운이 문제도 있으니 겸해서… 첫사랑이라… 흥미있는데.

석순은 가슴이 활랑거렸다. 그 상봉이 이루어지면 사람의 마음이란 아는가. 옛날부터 본의아니게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는 힘은 죽음을 불사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다음순간 그는 하마트면 소리를 지를번 하였다.

(아니야! 결코 그럴수는 없어… 없어.)

그는 순간이나마 그렇게 생각한 자신이 그지없이 혐오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차라리 그 상봉이 이루어지지 않는게 낫지 않을가 하는 불안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만나면 이것이 최후의 만남이 될수 있다는 생각에 그것을 안타까이 바라게도 되는것이다.

마침내 제수와 동생네 맏아들, 맏딸 그리고 대여섯살 난 손자, 손녀들이 넷이나 나타났다.

집안에서 나오는 성태한테 제수가 깊숙이 허리굽혀 절을 하더니 흐느낌때문에 몸을 가누지 못해하였다. 뒤따라 조카, 조카딸이 인사를 했다. 곁에서 누군가 아이들이 하나하나 제 이름을 부르며 인사드리게 하고있다.

성태는 그들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모두 눈물속에서 자기를 바라보고있었다. 그것은 동정의 눈물이 아니라 혈친의 정에서 오는 사랑의 눈물… 아이들은 어른들을 따라 처음에는 울먹울먹하더니 역시 아이들이라 인츰 밝은 기분으로 저마끔 안성태의 손에 와매달렸다.

《우리 할바시야.

《체, 너네 할바시 거제도에 있어.

《아니야, 그 할바시 우리 할바시 안야.

그러자 맏조카의 딸애가 제법 안다는듯이 종알거렸다.

《그 할바시는 너네 할바시, 난 성이 안씨지만 넌 윤씨니까.

《체, 요게 그 할바시 이름 뭔지도 모르면서… 그 할바시… 안-성-필.

《아니야, 아니야.

미소와 눈물이 범벅이 되는 어른들의 얼굴…

그러자 안성태가 썩 나서면서 무릎을 꺾고 앉아 그들모두의 머리를 한데 그러안았다.

《얘들아, 내가 너희들모두의 할아바지다.

례의 계집애가 종알거렸다.

《근데 할바시는 어데 갔댔나요?

《오, 난 달나라에 갔다왔지.

《가짓말, 가짓말.

어른들은 울고웃으며 안성태를 둘러싸고있었다.

성태는 눈앞이 흐렸으나 쏟아지는 눈물을 강잉히 참았다. 혈육들을 만나 36년간에 쌓인 눈물의 동이 사정없이 터질것만 같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자기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잃는다면 이 혈육들의 눈물의 포위속에서 헤여져나오지 못할것만 같다. 자기는 지금 낭떠러지에 서있는듯… 최후의 의지를 잃고 자신을 다잡지 못한다면 그는 한발작앞에 놓인듯 한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질것만 같았다. 그는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그 미소밑에 깔린 마음의 폭풍우를 누가 알수 있으랴.

교회사와 교도관들은 벌써 저만치 길가에 나가서서 기다렸다. 거기에는 두대의 택시가 더 와있었다. 모두 석대였다. 교회사의 안내로 용두산공원에 가서 하루를 즐긴다는것이다. 그들은 중구에 있는 용두산공원에 갔다. 사진도 찍고 점심은 부근의 식당에서 먹었다. 여라문명의 일행, 특이한것은 창백한 낯빛에 머리를 바투 깎은 한사람이 일행중의 중심으로 된다는것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두 교도관에게 안성태와 그일행을 맡긴 박석기가 택시를 돌려 부산진구경찰서로 갔다. 그는 30분후에 돌아왔다. 그는 안석순을 한켠에 데리고 가서 심종운이나 김계순의 면회는 모두 상급에서 거절이라는것이였다. 안석순은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저녁무렵, 제수네 식구들은 제각기 집에 가고 안효순의 집에서 아침때와 똑같은 인원이 저녁밥을 먹었다. 래일은 영도의 해망동도래굽이에서 들놀이를 한다고 했다. 용두산공원에 갔던 가족들이 그대로 간다는것이였다.

성태는 누이와 누이동생, 이렇게 셋이서 하루밤 얘기를 나누며 지내고싶었으나 하는수없이 교도관들의 호송하에 부산교도소로 가서 밤을 지내야 했다.

택시는 사직동에서 쭉 빠져나왔다가 우측으로 꺾어져 내처 달리였다. 차는 개금동차굴을 지나서도 한참 속도를 놓았다. 부산교도소는 사상역근처에 있었다. 거기서도 독감방이 성태를 기다리고 있을것이였다.

 

×

 

바로 이날, 대전교도소에서는 라구표과장이 부산에서 올라온 박석기의 전화를 받고 즉석에서 《법무부》의 조민하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전화를 받은 조민하는 김계순이라는 이름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간신히 《안된다!》 하고 단마디 고함을 지르고는 수화기를 떨구며 심장을 움켜쥐였다. 왼손으로 간신히 빼람에서 알약을 꺼내 입안에 넣고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의 낯은 창백했다. 온몸을 우들우들 떨다가 약의 덕분에 겨우 진정될수가 있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자신밖에 없었다.

 

 

8

 

 

영도라는 섬은 부산시가와 영도다리로 련결되여있다. 부산항의 거대한 자연방파제인 영도는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사는 큰 섬이다. 해발 400메터가 되는 봉래산이 주봉으로 되여 펼쳐진 섬은 길죽하게 생겼다. 섬주변을 도는 길은 섬의 왼쪽으로부터 시작된다. 한바다쪽으로 가면서 태종대근방에 이르러서는 오랜 세월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파도로 하여 높은 단애를 이루었다. 태종대에서 영도등대를 지나 섬둘레를 꺾어돌면 해망동에 이르게 된다. 거기 도래굽이에는 자갈밭이 있다. 파도가 밀려오는 물가에도 어째선지 모래불은 없다. 섬쪽을 올려다보면 온통 바위너설의 절벽이다. 넓지 않은 자갈밭이 바다물에 잇닿은 이 도래굽이에는 여름한철이면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가파로운 바위산우에 얽힌 나무숲, 자갈밭후미를 지나 바다쪽으로 쑥 내여민 돌출부에는 큰 너럭바위가 있었다. 그 아래 물가에는 유한층들이 타고 오는 유람선이나 《똑딱선》을 대일수도 있다.

차는 영도다리를 건넜다. 성태는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저기 어디 둔덕진 곳에 자그마한 함석지붕의 오돌막이 그대로 있을듯 싶다.

단층지대는 36년전이나 변함이 없다. 목도산이라는 저 산에 나무들이 더러 보였다. 거기에는 그전날처럼 락락장송이 몇그루 있을듯 싶었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하지만 기억속에는 우뚝 솟아있다. 문득 시조의 구절이 떠오른다. 락락장송…락락장송…봉래산 제일봉에…제일봉에…오랜 세월 심장속에 간직되였던 목소리처럼 구절구절 떠오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락락장송되였다가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

 

(독야청청하리라…)

남들은 다 어찌해도 나 하나만은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성삼문의 이 비분강개한 심정이 젊은 시절처럼 성태의 가슴을 울려주지 못함은 무엇때문인가. 먹물을 찍은 붓을 들고 앉아 일필휘지하는 성삼문의 모습은 상상되여도 어쨌든 그가 0.75평이란 무엇인지, 어깨관절을 뻐그러뜨리는 대포수정이란 무엇인지는 몰랐을게 아닌가 하는 왕청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쨌든 성삼문의 시조가 몇백년을 뛰여넘어 내 가슴에까지 흘러든것은 고마운 일이다. 어째서 이 시조가 느닷없이 떠올랐겠는가. 다지고다져서 응축된 내 마음의 분출, 내 넋의 절규이고 호소가 아닐가. 그래서 성삼문의 절개가 새삼스레 가슴을 친다. 그 시조가 남의 시 같지 않은것이다.

차는 봉래동을 지나 점점 경사진 길을 올랐다. 섬중간을 가로 질러 해망동 바다가쪽에 떨어질수도 있겠지만 섬의 끝에 있는 태종대로 해서 한바퀴 에도는 모양이다.

한바다가 아득히 내다보였다. , 끝없는 대양, 자그만 차창으로도 너무나 가슴 벅차게 안겨드는 대양이여… 9월의 맑은 날씨에 바다는 푸르게도 보인다. 자유로운 바다… 독감방에서 이제는 상상으로도 눈앞에 그려볼수 없으리만큼 잊어버린지 오랜듯 한 바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잔잔해보이는 바다, 길길이 파도가 뛰노는 바다였으면, 산악같은 파도가 밀려왔으면 마음이 후련할것 같았다. 바로 어린시절의 추억이 얽힌 조용한 바다여서 그것이 싫었다. 한사코 과거에로 끄당기는듯 한 바다여서 그것을 피하고 외면하고싶었다. 그러나 어쨌든 망망한 대해는 성태의 눈을 놓아주지 않았다. 오늘의 이것이 바다와의 마지막 헤여짐일수도 있다. 끝없는 옥살이에서 이제 더는 자유로운 바다를 보지 못할수도 있다.

차는 숲속을 달리다가 태종대정각과 영도등대를 지나면서 또다시 바다가 보이는 곳에 나갔다.

차는 경사진 길을 따라 달리였다. 해망동도래굽이의 자갈밭까지는 걸어서 내려가야 했다. 차들이 섰다. 일행은 어른이 여덟, 아이들이 다섯… 거기다가 교회사와 두명의 교도관…

한 교도관은 청회색바지를 입은채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남방샤쯔의 단추를 터쳐놓고 흥에 겨워 휘파람까지 불었다. 저들끼리 유람에나 온듯 한 기분이다.

박석기만이 이쪽 일행에 신경을 많이 써왔지만 그도 여기 바다가에 와서는 가족들끼리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해주는것이 유리하다고 타산했는지 숫제 삐치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안성태에 대한 경계심은 한시도 늦추지는 않았다.

그네들은 따로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여러장의 사진들을 찍었다. 음식들을 펴놓고 둘러앉은 사람들… 아이들만 없으면 침울한 분위기를 가실수 없을것이였다.

안효순이도 차가 실어다주는 덕분에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 제수는 될수록 제 손자손녀들을 안성태가까이에 있게 하려고 애썼다. 사진찍을 때에도 그리고 둘러앉아 점심을 먹을 때도…

성태는 자갈밭에 앉았다. 석순이 보자기를 펴서 거기에 앉으라고 했으나 성태는 손을 내저었다. 자갈밭에 그대로 앉고싶은 이 심정 누가 알랴.

곁에서 맏누이가 치질이 도진다고 다심하게 지청구를 했다. 그말이 인정에 주린 가슴을 후덥히였으나 성태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앉는게 더 좋다고 했다.

성태는 석순이 거제도에서 가져온 버섯으로 만든 볶음을 맛있게 먹었다. 기억에 사라졌던 맛이건만 역시 입은 속일수 없는가보다.

성태는 더 먹을수 없었다. 감옥안에서 한껏 졸아든 위가 더 받아내지 못했거니와 앞에 둘러앉은 혈육들도 낯선 사람들처럼 바라보게 되는 이상한 생각때문이였다. 맏누이와 누이동생 내놓고는 다 그렇게 보였다. 성태가 여기 살 때 세상에 태여나지도 않아 정이 없어서만 그러는것은 아니였다. 그네들은 자기들의 생활에 풍파가 없기를 바라는 리기적인 타산에서 이 《할아버지》, 《큰아버지》라는 사람이 바깥세상에 나오기를 바라는것일수도 있다. 그것도 리해는 된다. 그럼 무엇때문에?

성태는 여기서도 북녘에 있는 안해와 두 딸이 생각났다. 딸애들도 이미 26, 24살… 손자손녀들도 태여났을테지. 안해도 이미 50을 넘었으니 저 제수처럼 할머니구실을 하겠지…

성태는 앞에 둘러앉아있는 사람들이 안해와 두 딸과 손자애들로 바뀌여져보인다.

결혼이후에는(그것은 고작 3년…) 대동강가나 대성산에도 함께 나가본적 없다. 어째선지 신혼려행조차 뒤로만 미루었던 그 별찮은 아쉬움이 아주 커다란 자책으로 되여 세월의 겹쌓인 락엽을 헤치고 되살아왔다. 그는 가슴이 터지는듯 싶어 벌떡 일어나 이 세상 그 어디에나 다 잇닿아있다는 바다를 향해 안해와 딸들의 이름을 한껏 소리쳐 부르고싶었다.

이때 제수가 다가와 살뜰히 뭐라고 말해서야 성태는 정신을 차렸다.

《…은민이 할아버지.》 이제껏 아주버니라고 부르더니만 불시에 이렇게 제 손자의 이름을 달아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이걸 좀 자셔보셔요. 멸치젓갈물을 약간 둔 풋절이김치예요. 제일 좋아하시는…》

성태는 풋절이김치그릇을 내려다보다가 제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고마와… 고맙소…》

성태가 풋절이김치를 좋아한다는걸 어떻게 알았을가. 안효순이와 안석순이도 좀 놀라는 눈치다. 그러니 동생과 제수가 서울구치소에 면회왔던 그 20여년전, 그때에는 아직 그들이 신혼시절이였으니 성필이놈이 말해준걸 제수가 이제껏 기억해둔것이다. 이런 녀자를 오해하고 딴 녀자와 정분이 나서 가정을 마사먹고 그 녀자가 죽자 이번에는 병까지 만나 석순이네한테 얹혀사는, 그러면서도 지금껏 제 자식들한테 돌아오지 않는 그 성필이놈이 옆에 있다면 당장 따귀라도 붙이고싶은 지경이다. 제 어머니와 함께 두 조카가 왔다. 맏조카-누구를 닮았는지 키가 훤칠하다. 아까 대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머니보다 더 이쁘게 생겼다. 아무래도 그들이 더 피줄이 켕기는지 자기의 큰애비인 이 안성태한테 정을 주느라고 애쓴다. 아니 주느니보다 받으려고 한다.

조카며느리, 조카사위는 성씨가 다르지만 지금은 안씨가문과 얽혀있다. 그들의 눈빛은 혈육의 정보다도 지옥같이 무시무시한 환경에 살면서도 지조를 꺾지 않는 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존경, 의혹과 경건한 마음이 한데 얽힌 복잡한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한데 안석순이만은 밥도 몇술 드는둥만둥 하고는 괜히 이 그릇 저 그릇을 옮기면서 안절부절을 못했다. 그는 줄곧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하다가 자꾸만 도래굽이에 솟은 너럭바위쪽도 보고 높지 않은 절벽우에 엉킨 나무숲도 올려다보군 하였다. 그러다가도 석순은 자갈밭우에 앉아서 두무릎을 세우고 그우에 량팔을 맥없이 처뜨리고 조용히 남모르게 한숨을 쉬였다.

 

…엊저녁 그는 부랴부랴 초량동에 갔었다.

김계순, 조영미, 김계호가 둘러앉은 그앞에 앉아 안석순은 오빠와 계순의 만남이 이루어질수 없게 되였다는것, 이미 예견했던 심종운이라는 사람과의 면회도 거절당했다는것을 알리지 않을수 없었다.

영미가 어머니의 팔을 부여잡고 앉아 진정시키려고 했건만 김계순은 돌연히 낯빛이 달라지였다. 그는 두눈을 간잔지런히 뜨며 어딘가 석순이의 머리뒤로 벽쪽을 쏘아보았다.

《그러니… 그러니 어느 놈들이 한순간의 우리 만남조차 허용치 않는단 말이냐? 과연 어느 놈들이…》

그냥 허공을 쳐다보며 울분에 찬 목소리를 터치는 계순이를 돌아본 김계호가 중얼거렸다.

《우리 유철이를 재판한 놈들이겠지.

《그래요, 오라버니 반공, 반통일에 미쳐날뛰는 놈들이죠. 죄없는 사람을 잡아가둔 사악한 무리, 그놈들은 제가 저지르는 죄를 두고 천벌을 맞을거예요.

그렇게 부르짖던 계순이 불시에 푹 꺼지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난… 난… 그를 만날것인가 말것인가 동요도 했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되고보니 가만있을수가 없어요.

계순은 막상 반대에 부딪치자 더욱 큰 반발심에 사로잡히는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터놓는듯 그는 말을 이었다.

《그를 만나는것이… 그자체가 고통일거라구 생각했어요. 36년간… 이제는 그의 얼굴모습도 희미하고… 사실 열아홉살 처녀의 사랑이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지요. 그것도 내 혼자만이 안고 있던 사랑… 우습고도 서글픈것이였어요. 분단된 세월이 아니라면 그런 사랑을 안고 언제까지나 기다리지는 못했을거예요… 그때 10년가까이 나한테는 통일이 당장 될것 같고… 그러면 사랑도 이루어진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녀자의 마음이란 원래 외곬이라는 말도 있고…》

떨리는 음성을 더 이어가지 못하던 계순이 불시에 고개를 쳐들며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나려고 생각했어요.… 그 만남은 사랑이니 우정이니 쓰라린 회포를 나눔이니 하는따위를 초월한 만남일거예요. 오라버니, 내 말을 좀 들어보세요. … 그 만남은 적어도 나한테만은 통일이라도 된듯 한 만남이 아닐가요.… 그를 만나고픈 생각을 속일수는 없어요. 아무리 망각속에 묻혔다 해도 결코 내 가슴속에서 사라질수는 없는거예요… 아, 그를 보구파요. 한번이라도…》

계순은 어째선지 김계호를 향해서만 부르짖는듯 싶다. 하긴 안석순이도 영미도 고개를 숙이고 앉았으니 그럴수밖에 없다. 말을 끊고도 그냥 머리를 돌리지 않은채 계순은 오빠의 얼굴만 쳐다본다. 병인에게만 특유한 린광처럼 번뜩이는 눈빛… 그러던 그가 코를 발심발심하며 눈을 크게 떴다. 병적인 흥분… 더욱 광적으로 보이는 두눈… 그는 불치의 병이 든 환자가 분명했다. 어떤 정신적인 발작이 있을것 같은 순간… 하지만 계순은 반백의 트레머리를 한손으로 매만지며 자기를 되찾은듯 천연스레 물었다.

《그래… 석순아… 래일은 어데서… 너희네… 그 들놀이는 어데서? 태종대라구 했던가…》

《해망동도래굽이…》

석순은 떨리는 음성으로 불안스레 속삭인다.

한데 계순이 단호히 선언한다.

《난 래일 그리로 간다!

《네?

석순이가 놀랐다.

《어머니?!

영미의 울먹이는 목소리, 김계호의 순편치 않은 숨소리…

숨가쁜 침묵이 흘렀다. 다치면 눈물의 동이 터질듯 한 침묵, 다치면 화약에 불이 달릴듯 한 그런 순간… 어머니의 잔등에 얼굴을 묻었던 영미가 머리를 들며 조용히 뇌인다.

《어머니, 그러다 병이…》

김계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며 《음-으흠-…》 하고 신음을 내질렀다.

계순이 말했다.

《내 마지막소원인데 막지 말아다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린다.

《나는… 내가 제정신이 아닌줄 안다.… 하지만 난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니다.…》

이번에는 머리를 들고 자기의 오빠를 바라보았다.

《오빠, 은정 애비한테 말해서 차를 하나 빌리도록 해주세요.

은정 애비란 김계호의 맏아들이다.

김계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교도관들이 있어서 만나지를 못해. 그네들이 무슨 꿍꿍이를 하는지 어떻게 알겠니… 수인한테 접근하는 사람은 교도관들이 총을 쏴도…》

김계호는 더 말을 못했다. 자기한테 대드는 계순이의 이런 눈빛을 평생 처음 보았기때문이다. 계순의 낯은 해쓱하니 되고 입술이 떨리여 말이 제대로 나오지 못한다.

《차라리 총에 맞고… 거기서 숨지고싶어요.

영미도 석순이도 고개를 숙인채 오열을 터뜨리고있었다. 흐느낌속에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계순이 오히려 석순이를 안심시키려는듯 이렇게 말했다.

《석순아, 걱정마… 나때문에… 두번 다시 없을수도 있는 가족상봉을 내 어떻게… 그런 걱정은 말아…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그저 먼발치에서 한번 보겠다… 그 도래굽이는 내가 안다. 옛날 고녀시절 학우들과 몇번이나 갔댔어. 도래굽이너럭바위, 그 바위코숭이에 나서면 량쪽이 다 보인다.… 영미와 같이 가면 돼. 걱정 말라는데… 하느님은 나를 거기로 인도할거다. 이것이 또한 하느님의 뜻이라구 난 믿어.…》

말을 멈추고 가쁜숨을 쉬던 계순이 뒤를 이었다.

《석순아, 내가 우리 오라버니한테두 말했지만 만나면 너의 오빠한테 말하려구 했다. 북에서 사랑하는 안해와 두 딸이 기다린다고, 그 기다림과 믿음을 지켜 더 굳세여지라구 말이다.

《언니! 고마와.

석순이 계순의 손을 와락 부여잡았다.

계순은 흥분에 겨워 숨을 치쉬고 내쉬고 하면서 고통스러워하였다. 그는 두손을 각기 석순이와 영미한테 맡긴채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는것이 분명하다.

 

×

 

김계순이와 조영미는 그리 힘들지 않게 해망동도래굽이까지 찾아갔다. 차를 보내고나서 그들은 섬중간을 가로질러 오솔길을 따라 바위코숭이로 나왔다. 일요일이 아닌 날이여서 도래굽이는 한적했다. 그래서 안씨네 일행을 이내 알아볼수 있었다.

바위코숭이는 펑퍼짐한 너럭바위로 그우에 몇사람은 넉근히 앉아서 먼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해풍을 쏘일수 있었다. 아닌게아니라 너럭바위우에는 사람들이 왔다간 흔적들이 있었다. 심지어 한쪽에 숯무지가 있는데 거기서 무슨 조개구이를 했는지…

하지만 모녀는 그저 저 아래를 내려다보며 바다에 등을 돌리고 앉았다. 그들한테 푸르른 파도가 무엇이며 시원한 해풍이 무엇인가.

영미가 구럭지에서 물통을 꺼냈으나 어머니는 저 아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채 손을 들어 거절을 하였다.

계순은 몹시 흥분되여 입술이 바작바작 말라드는데도 물 마실 생각조차 못하는것 같다. 병인의 육체는 분명 지금의 충격과 흥분을 감당키 어려워한다. 영미는 줄곧 불안에 싸여 어머니한테만 마음을 썼다. 영미가 알약을 꺼내 어머니한테 주고 수지고뿌를 꺼내 물통에서 물을 따랐다.

저기 아래에서는 안씨네 일가친척이 빙 둘러앉아 한창 음식을 나누고있었다. 한쪽에서는 교도관차림의 두사람과 사복쟁이가 다리를 쭉 펴고 역시 마시고 먹으면서 손세를 써가며 저희네끼리 지껄이는 모양이 똑똑히 보이였다.

모녀는 바다바람속에 앉아있었다. 그들의 머리우로 갈매기 한마리가 빙빙 떠돌며 《갸우-갸우》 하고 울어예고있다.

《어머니, 바람이 차지 않아요?

《괜찮다.

여느 사람한테는 시원한 바람인데 계순이한테는 좋지 않을수 있었다.

계순은 흰빛의 브라우스에 역시 주름치마처럼 길게 흐르는 흰색 치마를 입었다. 영미는 깃이 없는 분홍브라우스에 회색바지를 입고 앉았다.

약물의 덕분인지 계순은 숨소리가 고르롭고 어지간히 진정되는것 같다.

《어머니, 저기 까만 치마에 흰 브라우스, 석순아지미죠? 알려요?

《알린다. 우리를 보는구나.

《그러니 저기 보이는분이… 머리를 보니… 그분같아요.

《옳다… 맞는다.

두눈에 만신의 힘을 다 모아 그쪽만 바라보는 어머니는 그저 짤막히 대답한다.

《어머니, 가운데 선 그분… 얼굴은 잘 안 보이지요?

영미가 속삭인다.

아무 대답도 없던 계순이 나직하게 중얼거린다.

《난 젊은 시절의 저이의 모습을… 36년전에 부산역두에서 헤여졌던 그때 그 얼굴을 지금 저기서 본다.…》

그러면서 속으로 뇌인다.

(하지만 저기 저 모습, 가까이 보면 영 생소할테지… 늙고… 볕을 보지 못해 창백하고… 그래도 석순의 말이 류달리 짙은 눈섭만은 여전하다구 했지.)

그는 안성태의 그 숱이 많은 검은 눈섭을, 의지와 열정과 기개를 말해주던 그 눈섭을 지금 저기서 찾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짓. 계순은 눈에 피로가 실리고 앉아서도 몸의 균형을 유지 못하게 눈앞이 핑그르르 도는것 같았다.

영미의 목소리도 훨씬 멀어진다.

《어머니, 상상했던것처럼… 수인들의… 그런 주눅이 든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그 거동, 그 움직임… 그런데… 어머니, 어머니, 왜 이러세요?

영미는 당황해서 어머니를 끌어안는다.

《아, 힘들구나.

어머니는 영미의 품에 안긴다.

계순은 갑자기 동통이 발작하는것 같았다.

《엄마, 왜 이러능기.》 하면서 영미가 황급히 알약을 꺼내 어머니의 입에 가져갔다.

《그만둬라… 그 약만 먹으면… 갑자기 더 맥이 없어지더라…》

《강한 진통제니까 그런가봐요.

《그러니… 좀 있어보자…》

계순은 딸의 품에서 떨어져 허리를 꼿꼿이 하고 앉으려 했다. 영미는 어머니의 어깨만 부여안고있었다.

계순이 조용히 흐느끼듯 말하는데 그 마디마디가 원한의 칼로 토막치듯이 끊기였다.

《여기서… 소리라도… 쳐… 부르고싶구나… 내려갈수도 없으니… 앞에는 벼랑처럼 됐구나.

계순은 다시 동통에 못이겨 배를 끌어안고 몸을 뒤틀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빠질빠질 내돋았다. 그렇듯 풍만하면서도 균형잡힌 몸매의 육체도 이제는 세월과 병으로 영 쇠진해진것 같다.

잠시후 다소 동통이 갈앉는지 그는 머리를 들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말마디 역시 숨이 차서 자꾸 끊어졌으나 눌리우고 짓밟힌 심혼이 분출되는 갈린 음성의 그 절규는 영미의 가슴을 찢어 발긴다.

《누가… 누가 이런 만남조차… 허용치 않는단 말이냐…》

계순은 실신한듯 눈을 감았다. 영미는 어머니를 부둥켜안았다. 영미의 눈물이 어머니의 흰적삼우에 얼룩졌다.

계순은 눈을 뜨며 강잉히 미소를 지어보인다.

《괜찮다, 영미야. 이제 좀 낫겠지. 걱정말아… 나는 일어서겠다… 일어서야 해.

《어머니!…》

영미가 울먹이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째선지 아까부터 머리우에 떠돌던 그 외갈매기가 짝을 찾느라고 자꾸 울면서 너럭바위근처를 떠나지 못하고있었다.

《일어서겠다…》

하여 계순은 영미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초인간적인 힘에 지배되듯 그는 꿋꿋이 서있다. 해풍이 그의 옷자락을 펄럭이였다. 길다란 흰 치마가 다리를 휘감는다. 사람의 얼굴에서 제일 변하지 않는것은 눈이다. 젊은 때나 별반 다름없이 아름다운 눈은 구석에 잡힌 실주름살에도 불구하고 그 무엇을 갈구하는 열정이 광적인 흥분과 함께 불타오르고있었다. 그는 지금 저기서 안성태도 자기를 바라본다고 믿었다. 뜨거운 두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번개처럼 우뢰처럼 만남과 영별을 함께 하고있는듯 한 순간이였다.

《영미야. 날 좀 부축해.

《어머니, 왜 이러세요?

계순은 한걸음 내짚어 바위끝에 나서려고 하였다.

아래는 바위뿌다귀들이 들쑹날쑹한 급경사를 이루어 낭떠러지나 다름없었다. 영미는 급히 어머니를 부축하였다.

계순은 만신의 힘을 다해 몸을 펴고서 안성태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영미도 같이 그쪽을 바라보고있었다.

김계순이 어째선지 천천히 한팔을 쳐들었다. 흔들지도 내리우지도 못한채 그 팔은 허공에 굳어져버린듯 하였다.

 

×

 

… 김계순이 품은 극단의 결심까지도 믿지 않을수 없었던 안석순이건만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혼자 속을 태우고있었다.

점심이 끝나고 자갈밭에 깔아놓은 보자기며 종이우에서 빈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석순은 바다물가에 가서 그릇들을 대충 씻었다. 손에 든것이 늄식기인지 수지그릇인지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사기그릇 하나를 손에 들고 씻으면서 저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100여메터 떨어진 너럭바위우에 두 녀자의 모습이 보이였기때문이다. 석순은 그릇을 떨어뜨렸다. 자갈돌들에 떨어진 사기접시는 박산이 났다. 석순은 당황해서 얼른 엎드려 그것을 주으려고 했다.

《아니 저 애가? … 건 뭣하러 주어?

맏언니의 목소리.

석순은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허리를 폈다. 그렇다. 저기에 김계순이와 그의  딸 영미가 와있다. 얼굴은 물론 옷모양도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석순은 안다. 9월초인데도 흰옷차림인 그는 김계순, 연분홍색브라우스는 영미…

석순은 경황이 없다. 그들이 온다고는 생각은 했으나 막상 이렇게 되고보니 눈앞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속으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여기서 저기를 바라보는것이 오빠한테는 차라리 고통이 아닐가. 그러니 그대로 두어볼가. 오빠한테는 말을 않고 저쪽에서만 오빠를 알아보면 되지 않을가. 저기서 오빠를 구별하지 못할것도 없다. 이미 알아보았을것이다.

60가까운 나이, 수인의 류다른 얼굴빛, 짧은 머리칼… 일행중에서 유표하게 두드러지는 모습…

그러면서 석순은 다시 생각했다.

오빠한테도 말을 해야 한다. 그들이 잠시라도 서로 멀리서나마 마주 바라보게 해야 한다. 이것이 저들의 마지막만남일수 있다.

이때 안성태는 일어나서 저쯤에 물러나며 손에 유리고뿌를 들었다. 조카와 조카사위도 각기 고뿌를 들고 서로 마주섰다. 청량음료인지… 알고보니 도수낮은 술이라는것이다. 교회사가 짜준 《순서》대로 식전이 아니라 식후에 작별의 잔을 들게 한다는것이다. 식전에 마시면 밤차로 떠나는데 지장이 갈가봐 그런다고…

조카와 조카사위는 다 키가 쭉 빠진 젊은이들이였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지체는 높을수 없다. 그저 서민층일뿐… 그들은 백부의 건강을 바라며 잔을 들자고 한다. 신통한 화제는 있을수 없다. 몇메터 곁에 있는 교회사와 교도관들이 바라는 말을 하지 않는것만도 그들이 고마울뿐이다. 석순은 자연스럽게 다가서며 접시에 담은 버섯볶음 몇점을 안주로 권해본다. 그는 오빠에게 큰소리로 말한다.

《오빠, 적게 마시세요. 괜히 더 피곤할수 있어요.》 하고는 교도관들쪽을 돌아보았다. 그자들은 아직 먹는 놀음을 끝내지 않고 있다. 한 교도관과 박석기는 얼굴이 약간 불카해졌으나 다른자는 제복웃도리도 벗지 않고 눈살이 꼿꼿해서 배허벅에 매달린 권총집에 노상 손이 가있는것 같았다.

석순은 오빠한테서 물러서지 않고 서있다가 속삭이였다.

《오빠, 저기 바위코숭이를 바라보아요. 두 녀성이 보이죠. 놀라지 마세요. 거기 나이 든분이, 흰옷 입은이가… 계순언니예요… 김계순…》

《누구라구?

성태의 얼떠름한 음성…

《김계순… 목청을 낮추세요.

《김…계-순-?

성태는 꿈을 꾸는듯 눈만 꺼벅거리며 멍하니 석순이만 보고 있다.

《저쪽을, 오빠, 저쪽을…》

성태는 눈길을 너럭바위쪽으로 돌렸다. 저 멀리 바다의 푸른 물빛, 흰 너럭바위, 그우에 서있는 흰옷차림의 녀인…

해볕에 반짝이는듯 한 녀인의 은발섞인 머리칼, 눈앞에 바다속의 요정이 나타났다 해도 이같이 놀랍지가 않을것이였다.

성태는 그쪽을 향해 빈 고뿌를 쳐들듯 하다가 내리였다. 저도 모르게 잔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주르르- 술이 자갈돌에 부딪쳐 물방울처럼 사방에 튀면서 해볕에 반짝이였다. 그 어떤 행동의 의지조차 가다듬을수 없는 순간의 당황함속에서 초보적인 판단력조차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과연 저기 저 바위우에 서있는 녀인이 김계순이란 말인가?… 꿈처럼 너무도 어렴풋하구나.)

그는 무중 한걸음 앞으로 나갔다. 석순은 살그머니 그의 팔굽을 잡았다. 성태는 고뿌를 손안에 꽉 부르쥐고있었다. 석순이 그의 손에서 고뿌를 빼내려고 했으나 성태는 그것을 놓지 않았다. 이 순간에야 성태는 그것이 고뿌인지 무엇인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는 한걸음 두걸음 자갈밭을 걸어나갔다. 발밑에서 울리는 자갈돌소리… 그러다가 문득 눈앞에 막아선 웬 사람을 쳐다본다. 어느새 박석기가 그와 마주섰다. 박석기의 입은 비주름히 웃고있으나 눈은 차겁게 번뜩인다. 박석기는 조용히 웅얼거리였다. 누가 듣기를 저어하듯…

《안선생, 만나고픈 사람 있는게 아닙니까. 정 만나고싶다면…》

순간 성태는 《만나고싶다!》 하고 소리치고싶었으나 목이 꽉 잠겨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는 앞에 막아선 박석기를 피해 반걸음 옆으로 나섰다.

성태는 너럭바위코숭이에 나와선 두 녀인의 모습을, 그중에서도 흰옷차림의 계순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노상 버릇처럼 권총집에 손을 가져다대던 그 교도관이 너럭바위를 향해 걸어가는것이 보였다. 그자는 박석기의 눈짓에 따라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그리로 다가감이 분명했다. 저쯤에서 얼른거리는 교도관의 청회색잔등을 쏘아보며 성태는 앞으로 걸음을 뗄수 없었다.

박석기가 차겁게 뇌이였다.

《안선생, 괜히 분위기를 흐리게 맙시다. 이 모든게 안석순씨의 작간이 분명하지만 그를 추궁 안할테니… 그건 안선생한테 달렸습니다. 소란을 피우지 마시오.

안성태이외는 누구도 박석기의 말을 들을수 없었다. 그리고 성태와 석순이외는 누구도 저쪽에 갔다오는 교도관의 움직임을 달리 생각할 사람도 없었다.

박석기가 자연스러운 티를 내며 앞에서 물러났다.

성태는 자기곁에 다가서는 누이동생을 돌아보며 《석순아, 고맙다.》 하고 조용히 뇌이였다.

석순은 오빠의 옆에서 속삭이였다.

《오라버니, 계순언니가 전달해달라구 했어요. 기다리는 안해와 딸들의 믿음을 저바리지 말아달라구, 그래서 더욱 굳세여달라구.

《음…》

안성태는 신음소리를 내듯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멀리 계순의 모습을 향해 속으로 뇌이였다.

《고맙소. 고마와…》

문득 그 옛날 계순이 써준 시구절이 지금 저기서 그의 목소리로 들려오는것 같았다.

 

삶의 승리의 길은 사나워라

승리의 고개는 아득하여라

사납고 아득함이 대장부의 부닥치는 길이니

 

성태는 마음속으로 뇌이였다.

(살아있었구나, 젊은 날의 벗이여, 고맙다. 그렇게 말해주니…)

성태는 계순이 걸어온 36년간의 생활은 아무것도 모른다. 누구한테나 20대 이전의 순진한 첫사랑이 있을수 있고 또 그것이 생활의 흐름에 실려가 잊혀질수도 있다. 어떤 때에는 리성의 요구에 의해 반드시 잊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저 바위우에 와 선 모습은 결코 첫사랑의 그리움에 못이겨 온것이 아니며 이루지 못한 사랑의 비가에 끌려온것도 아니다. 무엇인가 열렬히 속삭이는 목소리, 그것은 인간의 량심과 의리와 신념을 통털어 걷어안고 굴하지 말라… 그렇게 웨치는 성스러운 목소리가 아닌가.

성태는 몸을 돌려 천천히 물가에 다가가 손을 씻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느라고 애쓰며 기슭으로 걸어나왔다. 빠다닥, 빠다닥… 자갈들이 발밑에서 부딪치는 소리가 가슴을 허비였다. 그는 다시 도래굽이 바위코숭이를 바라고 섰다.

(, 김계순이 고맙소.)

석상처럼 굳어져있는 김계순의 모습…

석순이 다가와 오빠의 얼굴을 쳐다보며 속삭인다.

《그곁에 선 처녀가 계순언니의 딸이예요.

성태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때 만일 딸의 이름을 묻고 그 이름이 조영미라는것을 알았다면 안성태가 얼마나 놀랐으랴…

그는 그저 석순의 머리칼너머 멀리로 보이는 계순의 모습을 바라본다. 해빛이 어린 그 흰옷차림은 언제까지나 서있기만 할듯 싶었다.

 

 

9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내디디던 안성태는 한번 더 도래굽이의 바위코숭이를 돌아다보려고 고개를 돌렸으나 그쪽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손을 들었으나 팔이 굳어진듯 흔들지 못하던 계순이, 그 흰 팔소매, 그 흰옷차림의 모습, 멀리 검푸른 대양을 배경으로 떠오른 한점의 흰빛, 그것은 육체가 아니라 그대로 넋이런듯… 허공에 굳어진듯 한 계순의 모습이 눈앞에 한가득 안겨오는듯 하였으나 성태의 몸은 이미 차안으로 떠밀렸다.

《안선생, 빨리 갑시다.

박석기가 독촉하며 등을 미는 바람에 택시안에 던져지듯 들어가 앉지 않을수 없었다. 박석기의 말투가 어쩐지 처음 같지가 않았다. 서둘러 들놀이를 파하게 한 그의 심보가 너무나도 헨둥하다.

태종대정각근처에 올라와 차들을 세웠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더 쉬고 가자는것이였다. 이 근처가 사실은 들놀이장소이기도 하다.

길은 석비레길인데 간밤에 약간 내린 도적비로 먼지잼이나 할 정도여서 한낮이 지나자 벌써 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뽀얗게 일었다. 어째선지 지금은 차도 다니지 않고 길은 조용했다.

박석기는 일행을 위해 정각에 간다든가, 솔숲에 들어간다든가, 적당한 자리를 잡고 앉을 그런 마음의 여유가 지금은 이미 없어 진것 같았다.

철없는 아이들은 좋다고 정각쪽으로 뛰여갔다. 길옆은 소나무 숲이였다. 숲과 길사이에 경계석처럼 돌을 주런이 놓았다.

박석기가 저만치 떨어진 곳에 안효순을 데리고 갔다. 길가의 돌우에 앉은 박석기는 손으로 제 옆자리를 가리켰다. 박석기는 이따금 억지웃음을 띠우지만 대체로는 딩딩해진 표정이다. 약간의 술기운도 말끔히 가셔진것이다. 제 뜻대로 되지 않아 무슨 다른 방책을 찾느라고 그러는것 같았다.

안효순이 머리를 떨구고 앉아 그저 듣고만 있었다.

안성태는 길 반대켠에 앉아 그쪽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앉았다. 바다는 숲에 가리워 보이지 않으나 시원한 해풍이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준다. 조금만 솔숲을 걸어나가면 거기는 단애가 지고 바다가 있을것이다. 파도는 제멋대로 넘실대고 바람은 자유로이 불어온다. 어릴 때처럼 바다속에서 헤염치는 자유로움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 이렇게 자유로운 바람을 한껏 들이킬수 없다고 해서, 다시금 지옥같은 독감방으로 끌려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해서 그 어떤 다른 길이 있을수는 없는것이다. 하지만 이 혈육들의 정, 함께 지내고싶어하는 절절한 희망조차 무질러버린다고 생각하니 가슴은 자꾸 칼로 저미는듯이 아팠다.

두 교도관이 가까이 와서 앉았다. 아마 교회사가 눈짓해서 그들을 성태 가까이 있게 하는것 같았다. 그들은 저네끼리 담배를 피우다가 안성태한테도 한대 권하였다.

《오늘만은 괜찮을겁니다.

《그만두라. 그건 잊은지 오래다.

바로 이때 성태는 옆구리가까이에서 들리는 녀인의 흐느낌소리를 듣고 놀라서 머리를 돌렸다. 제수가 와서 두무릎을 맨땅에 꿇고 앉은채 울고있는것이다. 제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주버니… 이제 저녁차로 떠나신다는데… 또다시 그 지옥으로 가셔야 하나요? 우리를 버리고 가시면 어쩌나요?

그쪽에 돌아앉은 성태는 한손을 제수의 어깨우에 올려놓았다. 제수가 고개를 쳐들었다. 눈물에 범벅이 된 제수의 얼굴을 보며 성태는 다시금 가슴이 무너지는듯 했다. 허나 이를 악물고 솟구치는 눈물을 참았다.

《제수, 그새 고생이 많았소. 네 자식을 다 성가시키느라구 오죽했겠소. 시누이들도 누구 하나 도와줄 형편이 못되고… 성필이 그 자식을 대신해서 내 용서를 비오. 우리 안씨집안에 들어와서… 이 남쪽땅에서 그래도 제수가 우리 집안의 대를 잇게 하였소. 조카들, 조카손자들은 그래도 마음이 좀 놓이오.… 아버지, 어머니의 묘도 제수가 다 돌본다니 내 무슨 말로…》

《고마와요. 아주버니, 지금은 자식들이 다 성가를 하고… 구태여 다른 생각하겠어요?… 용서하셔요. 초기엔 안씨집안을 떠날 생각 안한게 아니예요. 다만 시형님이… 남들이 뭐라 하든 난 시형님이 큰일을 위해 나선 장하고 훌륭한분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자랑이 늘… 그래서 저는 떠날수가 없었어요.

《고맙소. 고마와.

《아주버니, 제가 그렇게 한건 응당한 일이 아닙니까.… 한데 아이들 대학공부 하나 시키지 못했어요.

《그게 어디 제수탓인가. 돈이 없고 또 이 큰애비라는 사람때문에 그 애들이…》

《그런 말 마십시오. 아주버니, 지난날을 다 되새겨선 뭘하겠나요.

제수가 눈물속에서 애타게 바라본다.

《아주버니… 이제라도… 저 애들의 할아버지로… 여생을 저 애들과 함께…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지금 저 애들한테는 할아버지가 없는거나 같애요… 아주버니, 그만큼 죄없이 고생했는데… 우리가 같이 모여살 날은 과연 언제일가요?

… 전 정말 아주버니생각을 하면 머리칼을 다 베여 바치여서라도… 하지만 언제면… 언제면…》

제수는 흐느낌에 더 말을 못했다.

성태는 가슴이 끓었다. 제수의 눈물이 모진 채찍보다 더 아프게 온 육신을 마구 짓이기는것만 같았다. 그는 어제날에 그렇듯 청초하고 해말쑥하던 제수의 얼굴, 결곡한 성미를 말해주던 갸름한 얼굴에 얽힌 인생의 고뇌를 보자 몹시도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남편한테서 소박맞은거나 다름없는 처지에서도 안씨의 피줄들을 다 걷어안고 이날이때껏 이 시형을 바라고 아득바득 살아왔다는 녀자가 아닌가. 이 녀성의 마지막소망마저 거절할 권리가 나한테 있는가?

내가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한다면 그 무엇으로 이 녀성한테 보상할수 있으랴. 그래 과연 《반성문》이나 《생활계약서》 한장이라도 쓰고 나온다면 보상이 될수 있겠는가?

성태는 어서빨리 이 숨가쁜 상황에서 헤여나고싶었다. 혈육들의 애타는 눈물을 피하고싶었다.

석순이 다가와 제 올케를 진정시키려고 애쓴다. 그를 성태한테서 떼여내려고 그의 겨드랑이를 끼고 차있는데로 간다. 조무래기들이 제 할머니한테 와서 매달린다.

《할매, 왜 우나?

《우지 마, 우지 마.

《할바시랑 큰할매랑 이제 거제도할매네 집에 가자. 거제도랑게 어디 있나?

…부산역에는 아이들과 조카며느리, 조카사위는 나가지 못하게 했다. 안효순, 안석순, 제수 그리고 조카와 조카딸, 다섯만 따라나오게 했다.

부산역가까이 차집에서 간단한 저녁요기를 하게 되였다. 자그만 식탁에 둘러앉았다. 혈육들과 함께 안성태는 가장 숨가쁜 마지막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는 자기곁에 앉아 거침없이 눈물을 좔좔 흘리는 맏누이의 어깨를 오른팔로 그러안았다.

《누님, 이렇게 하시면 떠나는 내 마음 어찌라능기요.

안효순은 울어서 어느새 목이 쉬여버렸다.

《성태, 네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가야 하니? 너를 만나 이틀을 함께 지내고보니 보내고싶은 마음 없는데 기어이 가야 한단 말이냐? 정말 무정하다. 무정해… 그래 갔다가 오면 안되니? 20년 지났으니 전향하면 당장 옥에서 나올수 있다는데…》

성태는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누님, 누님은 어릴 때 저한테 남자라면 한번 먹은 마음 변치 말라고 하셨죠.… 제가 돈이 없어 <상고>를 그만두고나서도 그 말을 잊지 않구 그래서 또 학교에 들어갔구… 누님도 푼전이라도 보태서 내 결심을 도와주려고 했지요?

차집에 들어온 몇몇사람이 찬찬히 바라보아도 안효순은 막무가내로 푸념을 늘어놓는다.

《모지도다, 모지도다… 집을 떠난 10년동안 너를 키워놓은 그 사람들을 한번 보구싶구나. 어떤 사람들인지, 정말 모진 사람들이구나.

저쪽 식탁에 앉았던 박석기가 와서 안효순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뇌까렸다.

《됐어요, 됐어. 이건 그저 울음판이나 펴놓으면서 어쩌자는거야… 차시간이 됐어요.

차 떠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한데 박석기는 제딴의 판단으로 일이 여의치 못하다고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부랴부랴 모두를 거기서 나오게 하는것이였다. 안효순이 심장발작이라도 일으킬가봐 부득불 안성태의 제수를 그곁에 남겨두었다. 성태는 마지막까지 맏누이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안효순은 숨을 헐떡이였다.

성태는 박석기를 노려보았다.

《좀 가만있소. 이런 누님을 보고 그대로 나갈수 없지 않아?

제수가 안효순을 부둥켜 안고있다가 눈물어린 얼굴을 성태한테 쳐들었다.

《아주버니, 가보세요. 저한테 맡기고…》

제수는 성태를 안심시키듯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성태는 제수의 손을 잡았다.

《그럼 제수, 부탁하오.

제수가 줄줄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념을 않고 그저 대구 고개만 끄덕인다. 그런데 이때 안효순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못 간다!》 그리고는 걸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수가 부축하지 않았더라면 바닥에 굴러떨어졌을것이다. 안효순이 눈을 감고 숨만 힘들게 톺고있었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박석기한테 안성태는 화를 냈다.

《여보, 이대로는 떠날수 없지 않아? ?

그러자 박석기가 안성태한테 다가와 그의 팔소매를 잡았다.

《목소리를 높이지 말라구요. 우리 이름으로 병원에 구급차를 불렀으니 곧 올겁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박석기는 성태의 제수한테 턱짓을 해보이였다.

한 교도관이 우격다짐으로 안성태의 팔을 잡아끌어냈다. 성태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원한을 참아야만 했다. 또다시 안효순이 눈을 뜨며 자기를 향해 손을 허우적일것만 같고 그러다가 돌이킬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것 같았기때문이다.

역두에는 누이동생 석순이와 두 조카가 따라나왔다. 맏조카와 조카딸은 그저 울기만 했다. 그래도 누이동생인 석순이 두 조카를 량쪽에 세우고 각기 두손으로 그들의 잔등을 다독여 진정시키면서 꼿꼿이 서있다.

버섯농장에서 일하느라고 볕에 얼굴이 까맣게 된 누이동생, 어머니없는 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동생이 전염병으로 죽는 마지막까지 가정을 유지하다가 자력으로 일떠서서 그만한 남편이라도 만난 석순이, 이 세상 만난신고를 다 이겨낼 의지가 어린 그의 얼굴은 지금 랭철한 표정뿐인듯만 싶다.

안성태는 교도관들한테 떠밀리워 승강대에 올랐다. 두 조카는 눈물을 거두지 못한채 따라오다가 손을 흔든다.

석순이 두 조카를 제지시키는듯, 아니면 그들한테 의지하는듯 량쪽으로 각기 그들을 껴안고 초연히 서있다. 눈물도 다 말라버린듯 한 그 얼굴, 그 눈길은 오빠를 향해 고무와 격려의 뜻을 보내주고있다.

(고맙다. 석순아, 내 사랑하는 동생아…)

성태는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이나 목을 빼들고 그쪽을 보았다. 승강대 아래단에 서있던 박석기의 독촉에 못이겨 안성태는 안으로 들어왔다.

좌석에 앉자 박석기의 태도는 올 때와는 판판 달라졌다. 차칸복도를 지나가는 신문팔이한테서 신문 한장 사주지 않았다. 교도소에 돌아와서도 형제와 조카들이 없는 돈을 모아 사서 보내주는 보약들도 당분간 자기네가 보관한다면서 주지 않았다. 많은 량의 비타민알약중에서 겨우 서른세알을 주면서 그것이 다라고 하였다.

 

×

 

이튿날 아침, 교도소에 나온 박석기는 절름발이교무과장 라구표한테 갔다. 덩지 큰 박석기가 구부정하니 허리를 구부리고 그간 《사업》정형을 보고하였다. 라구표는 성이 나서 씩씩거리며 제 책상주위를 절뚝거리며 끊임없이 돌아치다가 우뚝 멈춰서더니 주먹으로 책상을 꽝 내리쳤다.

《박계장, 나가라!

박석기를 내보낸 라구표는 걸상에 앉아 숨을 돌리면서 눈을 감은채 얼마간 까딱도 하지 않았다. 《법무부》에 보고할 일이 난감했다. 항상 서울에서는 자기네가 《작전》을 다 잘 짜놓았는데 밑에서 머리를 쓸줄 모른다고 모든 책임을 아래에 미는것이 통례로 되여있었다.

하지만 《법무부》에서 먼저 전화가 내려왔다. 조민하과장의 목소리였다.

라구표가 보고를 시작하자 두마디안팎에 수화기에서 큰소리가 터져나올줄 알았는데 의외에도 저쪽에서 잠시 조용해졌다.

라구표는 오싹 소름이 끼쳤다. 수화기에서 랭랭한 기운이 풍기는것 같았다. 라구표는 얼른 말을 잇지 못했다.

《말하오. 듣고있소.

조민하의 퍼그나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라구표는 상부에서 아량있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면서 안도감까지 느끼였다. 보고가 끝났으나 잠간 수화기안이 조용했다. 그러다가 불시에 거기서 조민하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알겠다. 당신실력에 더 바랄게 없다. 안성태를 맡긴건 73년도에 당신이 떨떨히 해놓은걸 바로잡으라고 한것인데 할수 없지… 다른 대상들도 다 시원치 않지. 라과장! 모가지가 둘은 아닐테지? 우에서 그만큼 품을 들였는데 그래 그렇게밖에 못해? 장관님한테 그대로 보고하겠다. 그리 알라.

전화는 사정없이 끊어졌다.

라구표는 송수화기를 움켜쥔채 얼이 빠진듯 오래도록 서있기만 했다. 얼굴의 피기가 없어지고 볼편이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켰다. 애써 자신을 진정시키고난 그는 의자에 앉아 속으로 뇌까렸다.

(나한테서 공무원직급은 깎지 못할걸. 기껏해야 자리를 옮겨놓겠지…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해. 벌써 손을 들고 나앉겠는가. 끝까지 싸워야 한다. 내가 뭐랬어? 그까짓 회유전술, 가족상봉따윈 안돼. 그저 강타를 먹여야 해. 비행기고문, 전기고문 들이대고 냅다 조겨야 한단 말이다. …조민하, 그 자식 선배도 몰라보구. 뭘 어쩐다는거야. 누가 꿈쩍할줄 알아. 난 뭐 배경이 없구 줄이 없는줄 알아?… 이제 보라. 내 그 안성태놈을 꺼꾸러뜨리고 말테니. 조민하, 그때는 너와도 겨루어볼테다.)

하지만 그는 어째선지 자기의 처지가 스스로도 원통하게 생각되였다. 《안성태의 부산행》에 그리 큰 기대를 가진건 아니지만 조민하한테서 그런 모욕과 멸시를 받으니 속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던것이다.

 

 

10

 

 

다시금 지옥같은 감옥으로 돌아왔다.

동지들곁으로 돌아왔다는것으로 마음이 안정되기도 했지만 자유로운 바다바람을 쏘이고 파도가 넘실대는 대양을 바라보고나자 이 0.75평의 감방안이 숨가쁘도록 답답해서 당장 철창을 들부시고 뛰여나가고싶었다. 부산에 갔다온 날에 성태는 온종일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미칠듯이 뒤번져지는 가슴을 안고 두메터기장이 되나마나한 감방안을 왔다갔다 하다가는 아무런 리유없이 패통을 떨어뜨리거나 시찰통을 쾅쾅 두드리였다. 교도관이 시찰통을 열고 《뭐야?》 하고 소리치면 《아무것도 아니야. 속에서 불이 나서 그래.》 하고는 뒤돌아서버렸다. 이번에는 괜히 수인복 웃도리를 벗어 팔소매의 터진 자리에 손가락을 넣어 와락와락 뜯었다. 바늘을 꺼내들고 그 팔소매를 다시 제자리에 꿰매였다.

눈앞에서 맏누이의 처량한 모습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너무도 고독한 누이였다. 그의 운명을 그렇듯 짓밟아놓은 가혹한 현실을 어쩔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그러다가 김계순의 모습이 꿈에서 본것 같아 믿어지지 않는 흰 옷차림의 그가 다시금 눈앞에 나타난다. 검푸른 대양을 배경으로 너럭바위우에 선 그의 모습, 처음 한순간은 사람이 아니라 파도속에서 불쑥 솟구쳐 바위에 올랐다는 바다의 녀신이나 인어를 방불케 하였다.… 아니다. 그는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다! 100메터도 못되는 거리에 있으면서도 서로 만날수가 없는 이 비통한 현실… 분명 그와 내 사이에는 이 강토를 갈라놓은 그 분렬의 선이 가로막혀있다. 나라의 허리를 끊은 그 선이, 그 장벽이… 이런 분렬의 선이 맏누이, 누이동생, 제수와 조카들 그리고 부산에 오지 못한 성필이와의 사이에도 놓여있다. 그렇다. 분렬의 선은 하나를 둘로만 아니라 넷으로 다섯으로… 그이상으로 갈라놓았다.

석순이 바다가에서, 그리고 역에 나와서 짬짬이 말해준 김계순의 지난날… 더구나 지금은 불치의 병에 걸려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운명에 대한 동정과 통탄으로 하여 성태는 가슴이 미여지는듯이 아팠다. 그러니 이제 더는 그를 만날수가 없구나…

가을이 가고 겨울도 지나갔다.

1989 6.

대전교도소의 담벽에 세차게 와 부딪친 6월항쟁의 파도!… 특히나 리한렬렬사가 끝내 숨졌다는 소식은 그 당일 저녁에 벌써 비전향수들이 다 알게 되였다. 항쟁의 거리에서 최루탄에 쓰러졌던 리한렬학생이 25일만에 끝내 숨을 거두자 온 남조선땅이 분노로 끓고 장의식에는 청년학생들과 각계층 군중 100만이 떨쳐나섰다.

전두환의 《4.13특별조치》가 직접적동기로 된 6월항쟁은 20일간 계속되였다. 직선제개헌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각계층 군중 300여만이 참가한것이다.

4.13조치철회》, 《호헌철페》, 《독재타도》, 《민주헌법쟁취》, 《미제축출》의 구호밑에 거리에 떨쳐나선 시위군중은 최루탄공세에도 굴하지 않았다.

전두환은 경찰에 《갑호비상경계근무령》을 내리고 10여만을 탄압에 내몰았다. 최루탄 몇십만발을 발사, 1 7,300여명의 시위군중체포구속… 허나 항쟁용사들의 견결한 의지를 꺾을수 없었으니 마침내 전두환은 《특별담화》, 《특별선언》 등을 련이어 발표하여 직선제실시와 구속자석방 등을 공약하고 항쟁자들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수 없었다.

6월의 항쟁은 남조선땅에서 민주통일세력이 유력한 력량으로 자라났고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이 막을수 없는 시대의 추세임을 보여주었다.

대전교도소를 비롯하여 《좌익수》들이 집중된 교도소들은 결코 대양에 떠있는 외로운 섬들처럼 되여있지 않았다.

산악같은 파도가 섬의 돌바위를 들부시며 뛰여넘듯이 투쟁의 거세찬 파도가 교도소의 15척담벽을 날아넘어왔다고 해야 할것이다. 반독재민주화의 세찬 폭풍이 교도소안에 흘러들어 장기수들의 가슴에 불을 단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마침내 격페된 교도소안의 실태, 특히는 장기수들의 존재와 실상이 밖으로 새여나가기 시작했다.

그해도 다 가는 12월의 어느 추운 날, 대전교도소 특사에 갇힌 3530번 안성태한테 오랜만에 면회가 있다는 전달이 들어왔다.

라구표가 대전에서 사라진지 한달쯤 지났을 때였다. 대구에 갔다고도 하고 광주에 갔다고도 했다. 하지만 얼마간 지나면 또 여기에 올지 모른다. 새 교무과장이 왔다는 소문이 소지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지만 누군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무렵 가족면회는 전적으로 교무과의 지시여부에 따라 진행되였다.

어쨌든 교무과장 라구표가 어데로 간것으로 해서 안성태의 면회가 이루어지는것 같다. 누이동생 석순이 왔다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2중유리로 된 간막이가 가로놓이는 그런 면회가 아니였다. 퍼런 뼁끼칠을 한 탁자 하나가 방안전체를 꽉 채우듯 한 좁은 면회실이였다.

성태가 들어서자 탁자너머에 있던 석순이 급히 일어났다.

《앉으라!

교도관이 소리쳤다. 탁자를 에돌아 둘이 부둥켜안을가봐 미리 저지시키는 모양이다. 성태와 석순은 얼른 앉지 못하고 량손으로 탁자를 짚은채 서로를 향해 몸을 숙이였다.

마침내 성태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구나. 다들 잘 있니?

이제는 할머니가 될 나이인데도 여전히 어릴 때처럼 이렇게 부르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렇게 하는것을 정에 주린 자기는 물론 누이동생도 바라는것이 아닐가. 그래서 그는 다정히 말했다.

《앉자꾸나.

성태가 먼저 앉았으나 석순은 눈물이 그렁해서 얼른 앉지를 못했다. 성태가 다시금 말해서야 석순이 앉았다.

석순은 무릇 면회자들이 그러하듯 하고싶은 말은 많으나 막상 마주앉고보니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모든 마음의 준비가 혼란되고마는것이였다. 제한된 면회시간이 사정없이 지나가니 더욱 당황해진다. 그렇다고 어느것이 더 요긴한 말인지 서로 타산할 여유가 없다.

성태는 물었다.

《금년 버섯농사는 어찌 됐어?

그 물음에 석순이 다소 놀라는 기색이다. 하지만 거침없이 대답을 한다.

《해일때문에 버섯농사는 페농이지만 산 사람입에 거미줄이 쓸겠어요? 우리 걱정은 말아요.… 사실 대전에 원철이 아버지 친구분이 계셔 좀 도와주겠다고 해서 왔던 길에 들렸어요. 면회를 사흘이나 기다렸다구요.

《그건 왜?

면회제한을 모르고 하는 물음이 아니다. 그저 교도소측에 불만을 내뱉는셈이다.

《모르죠 뭐.

석순은 출입문에 장승처럼 서있는 교도관을 못마땅하게 흘끔 돌아보았다.

《그래 맏누님건강은 어떻니?

석순이 고개를 숙이다말고 급히 대답을 했다. 사정없는 시간의 흐름… 언제 줌저릴새가 없는것이다.

《그새 또 뇌출혈이 가볍게 왔죠. 거동 못하고 성님이 와서 때식을 끓여주면서 하루하루 견디죠.

《날 원망하겠지.

《아니, 이제 와선 그렇지 않는가봐요.

석순이 머리를 젓는다.

《그때 왔을 때 오빠를 괴롭혔다고 후회하기도 하고… 한데 누워서 이일저일 생각하면 눈물만 난다고… 인생이 일장춘몽 같다구요.… 자꾸 예감이 드는지 하늘나라로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면서…》

성태는 괴로왔다. 자기로 하여 그가 인생에서 마지막타격을 받았다는 생각… 이제는 용서며 리해며 그 모든것이 필요없다는 쓰라린 진실만이 남았구나.

석순이 말한다.

《이번에 거길 들려왔는데 오빠한테 령치금을 넣어주라고 꽁져 두었던 몇푼 안되는 돈을 다 꺼내주더군요.

《그러면… 그럼 누님은… 어떻게 사느냐?

《우리랑 조카애들이랑 함께 맏언니… 입에 풀칠이야 못해드리겠어요.

《고맙다… 한데 성필이 병은 어때? 한번도 누님한테 가지도 않고?

석순은 성필의 병은 령지버섯덕분인지 이상하게도 그저 그러해있다는것, 맏언니한테 가서 용서를 빌었다는것이다. 하지만 성필은 체면과 병든 몸으로 차마 자식들과 처한테 돌아가지는 못하겠다고 한다.… 그러던 석순은 한결 밝아진 어조로 다른 말을 꺼냈다.

《황영호라는 청년 보내셨더군요.

《영호! , 그래서?

《만났댔어요. 반갑게.

《전주에서 헤여질 때 너의 주소 알려줬더니 이제야 갔구나. 그래서?

《옥에서 나온 후도 고생많았더라구요. 지금 울산에 자리잡고 정유공장에서 일하면서 <운동>에 나선거죠.

《음, 알겠다.… 가만 이제 서른두살쯤 됐을텐데.

《맞아요.

《아직 총각이더냐?

《네, 왜 장가들지 않느냐 했더니 울산바닥에 와보라, 저만한 나이쯤은 로총각 못된다는거죠.

성태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최근에 로동운동이 급격히 앙양되는 현실, 더구나 로동자들이 밀집된 울산땅에서 뛰여다닐 영호의 모습…

《황영호, 그 참 똑똑한 청년이지. 우리 집안 조카애들속에 참한 처녀 있으문 좋겠구나.

석순은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런 생각 했지요. 한데 어디 있더라구요.… 영호군은 그저 오빠에 대한 말만이죠. 자기한테는 잊지 못할 스승이고 은인이라고… 오빠만 아니더라면 자기 인생의 길을 잘못 들었을수 있었다구요.… 한데 오자구 해도 면회 안시키지. 편지도 보낼수 없구 안타까와 야단이죠. 나더러 인사 전해달라구요. 그러면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겠다구… 그래요.

그때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던 교도관이 두덜거리듯 말했다.

《면회시간 몇분 남지 않았소.

당황해진 석순이 걸상우에서 몸을 궁싯거렸다. 시간에 쫓기는 순간 꼭 해야 할 말을 못하게 될가봐 조바심이 생기는 기색이다. 그는 말했다.

《오빠… 한가지… 비보예요.

《뭐냐?

석순은 눈길을 탁자우에 떨구었다.

《계순언니가… 김계순… 세상 떠났어요.

성태는 말을 못했다.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지고 귀에서 무슨 소리가 웅웅거리였다.

《언제?

성태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석순은 대답했다.

《금년봄에 암으로… 작년 9월달… 해망동 도래굽이에서… 그때 이미 병이 심할 때였어요.…》

성태는 누이동생의 얼굴만 건너다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비통한 심정에 휩싸이는 이 순간에 어인 일인지 방안의 허공에서 들려오는듯, 처녀시절 그가 자기한테 써준 시의 구절이 귀전에 들린다.

《…저는 원하여라. 승리의 고개우에 무덤 있기에… 무덤 있기에… 승리의 고개우에… 고개우에…》

승리란 무엇인가. 통일이외는 그 무엇도 승리일수 없다. 승리의 고개는 너무도 아득한데 그는 갔구나.… 나는 부모님과 어린 동생을 구원 못했고 계순이의 운명도 구원 못했고…

《계순언니 딸이 거제도에 왔댔어요. 둘이 붙들고 울기만 하다가 헤여졌죠… 계순언니가 눈을 감은건 울산에서… 부모맞잡이였던 고모님곁에서… 계순언니는 자기가 처녀시절을 보낸 부산 동래의 금정사 뒤산기슭에 묻어달라고… 그래서 거기에…》

석순이 손수건으로 눈굽을 닦고있다.

성태는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쉰일곱살… 아직 살 나이인데… 일찍 가는구나. 석순아, 래년  한가위때… 우리 부모님묘에 갔다가… 그 무덤에도 나를 대신하여 꽃 한송이 놓아다오. 한가위때라면 들국화묶음 갖다가… 그 뒤산에 들국화 많지 않냐?

《그래요… 언닌 들국화를 무척 좋아했지요.

석순이 시간을 재촉하던 교도관쪽을 얼핏 보고나서 급히 말했다.

《알겠어요. 오빠, 영미와 함께 가겠어요.

성태는 의아쩍게 누이동생을 바라보았다.

《가만, 네 이자 뭐라구 했지? 누구라구?

《영미, 계순언니의 딸말이죠.

《뭐? 영-미?

《네, 그래요.… 오, 참 미처 그 애 이름을… 그때 해망동 도래굽이에선 이름을 대여드릴 여유도 없었으니.

《하지만 난 그 이름이 이미 귀에 익다. 조영미 아니냐?

《옳아요. 조영미… 근데 어떻게?…》

《내가 전주에 있을 때 나의 소식을 알려는 녀대생이 있었다. 그가 바로 조영미였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안석순은 연신 머리를 끄덕이였다.

《내가 부산에 가기 직전에 나한테…》

성태는 교도관쪽을 보고나서 편지라는 말대신에 소식이 왔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한테는 아무말 없었어요. 그저 경기도 룡인에서 야간학교 교사로 제딴의 앞길을 개척해본다구, 아직은 방황세계에 있다구 고민한다면서…》

안성태는 또다시 교도관쪽을 얼핏 살피고나서 말했다.

《이렇게 되고보니… 그 영미를 더욱 찾고싶구나.… 찾는다는게 내 마음 가까이 왔으면 해서 말이다.

그 말뜻을 깨달은 석순이 바삐 고개를 끄덕인다.

《오빠의 뜻을 전하겠어요. 지금은 그 애가 고민만 하면서.

《면회 그만!

교도관의 웨침소리.

성태는 서둘러 말했다.

《석순아, 맏누님한테 자주 가보렴. 그리고 이내 편지 해라.

저쪽 문에서 교도관이 들어와서 석순이를 앞세우고 나간다. 석순이 교도관의 몸을 피해 머리를 기울여 뒤돌아보며 《오빠! 앓지 말고…》 하고 부르짖었으나 문이 닫기는 바람에 다음말은 들리지 않았다.

이쪽 교도관이 성태의 앞을 막아서며 뇌까렸다.

《이만했으면 됐어요. 과장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면회실에서 면회하게 허락했는지. <와이로>가 없이야 어디라구, .

하지만 성태는 그따위 말은 아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맏누이의 운명도 계순의 죽음도 어찌할수 없는 일이건만 이 모든것이 자기한테 죄책감으로 안겨드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어떻게 면회실을 나섰고 어떻게 걸어왔는지도 몰랐다. 불어치는 겨울바람이 홑옷인 수인복을 들추고 추위가 사정없이 온몸을 얼구어드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사동에 들어선 그는 콩크리트바닥의 복도를 따라 무거운 걸음을 옮겨놓았다.

달과 달이 가고 해와 해가 바뀌였다.

1989년 《사회안전법》의 페지로 청주보안감호소에 들어갔던 비전향장기수들이 14년만에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죄없이 갇혔던 그들이지만 나와서도 그들의 뒤에는 여전히 《보안관찰법》이라는 악법이 따라다녔다. 어데 가나 경찰의 감시가 꼬리처럼 달려있었다.

89 3월에 문익환목사가 용약 북행길에 올랐고 뒤이어 그해 여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대표로 림수경이 또한 북에 갔다가 왔다. 문목사와 림수경이 《보안법》의 철쇄에 의해 체포구속되였다.

동유럽에서 사회주의나라들이 무너지고 특히 도이췰란드에서 《흡수통일》이 이루어지자 로태우는 미국의 장단에 맞춰 《흡수통일》을 꿈꾸었다.

하지만 클린톤은 《흡수통일》이 불가능하다는것을 알고 이번에는 북을 고립압살하기 위한 책동에 열을 올리였다.

《문민정치》를 표방하던 김영삼은 올라앉자마자 미국과 함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에 나섰다.

북에서 핵전파방지조약의 탈퇴를 선언하고 뒤이어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으로써 세상사람들이 《핵대결》이라고 부르는 조선반도의 군사정치정세는 극한점에 이르렀다. 바빠맞은 김영삼은 부랴부랴 비전향장기수 리인모의 송환을 수락하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1년 반동안 《북, 미대결》은 계속되였다. 《유일초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이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체포투옥된 《전대협》관계자들에 의해 이런 정세흐름들이 교도소안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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