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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백년간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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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는 시간이 정지되고 세월이 멈춰진것 같다. 십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십년 같을수도 있다. 허나 이 감방안에서도 한 인간이 걷는 인생사는 흘러가는것이다. 철쇄에 묶여있어도 인간의 넋이 살아있는 한 그것은 멈춰서지 않는다. 정치범들이 집중된 대전, 광주, 전주, 대구 등지의 교도소들은 하나의 감옥사회를 이룬다. 이속에는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결만이 있는것이 아니다. 정의와 부정의, 민주와 독재, 통일과 반통일의 상용될수 없는 적대적인 대립이 있다. 갈등만이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다. 반항과 시련, 고독과 동지애, 좌절과 몸부림… 량심수들은 인간이 갖는 모든 정신 및 정서적요소의 최절정을 징검돌처럼 딛고 걸어가는 력사의 거인들이다. 보통인간들이 바라볼수 없는 그런 아득한 높이에서 걸어가는 그들, 그래 과연 뜨거운 련대감을 지니고 단식투쟁에로 부르는 저들의 통방신호소리를 무심히 들을수 있는가. 조국의 운명을 걱정하고 세상형편을 알리고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끊임없이 타전되여 울리는 통방신호소리…툭…툭, 툭… 똑… 똑, 똑… 저것은 분명 력사가 흐르는 소리… 저기서 통방신호를 울리는 산 사람들만이 아니다. 이미 옥중에서, 사형장에서 죽은 사람들이 그들속에 남아 그들과 함께 살아있는것이다. 그들은 불멸의 존엄과 영예를 지닌 사람들, 한줄기 연기로 한줌의 흙으로 변했어도 그들의 령혼이 대전과 광주와 대구의 하늘가에 배회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들도 당당한 권리를 가지고 민족의 력사를 써나가고있다. 력사는 공정할뿐아니라 건망증이 없다. 망각은 일시적이고 객관적진실이 영영 파묻히는 일이란 있을수 없다. 력사는 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현상과 본질, 진실과 거짓을 삭갈리게 하는 때도 있으나 그것 역시 일시적인 경우이다. 시간은 절대적이다. 력사의 가장 공정한 서술은 시간만이 할수 있다.…
봄이다. 하건만 해볕 한점 들지 않는 감방안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뿌잇한 내굴안개에 싸여 조는듯 한 봄날의 하늘, 진달래 피는 산기슭, 노고지리 우짖는 들판… 자연의 변화를 본지도 근 20년, 세상과 격페된 이곳에 자연의 숨결마저 끊어졌으니 삶의 박동은 어디에도 느낄수 없다. 복도 세멘트바닥을 울리는 교도관의 무거운 구두발소리, 뚜벅 뚜벅 뚜벅… 하지만 마음은 묶을수 없어 봄의 정기를 갈구하는 생의 의욕은 누르지 못했다. 몸이 노곤해져서 밤이면 봄꿈이 누데기같은 이불밑에서 어지러이 피여난다. 꿈에서 느끼는 애달픈 우수, 그것 역시 봄때문이다. 꿈은 철창도 없고 날개를 편듯이 자유로왔다. 꿈속에서 보이는 3살, 1살짜리 딸애의 얼굴… 아니 그들도 이제는 스무살이 넘는다. 그들이 어린애로만 보이는것은 당연하다고 꿈속에서도 그렇게 생각해본다. 안해의 얼굴은 웬일인지 대학시절 그대로이다. 한해 아래반이지만 나이는 7살 차이, 같은 체육부에서 사귀였지, 남반부에 부모형제를 두고 왔다고 그토록 자기의 아픈 심정을 위로해주지 못해 애쓰던 그 처녀, 단순히 호남아한테 쏠리는 처녀의 숫진 사랑만이 아닌 민족의 비운을 함께 나누고저 그리도 몹시 애타하던 처녀의 사랑, 그 사랑이야말로 단순한 동정으로만 받아들일수 없는, 더는 물리칠수 없는 절박한 의미를 띠고 안겨왔었지… 《안심하라. 인차 돌아온다. 그리 먼길은 아니니…》 그들한테 남겼던 말을 꿈속에서 외워본다. 정말이지 이렇게도 먼길일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아직도 기약할수 없는 길, 하지만 주저앉을수도 포기할수도 없는 마지막선택의 길, 나는 종신형무기수, 그래 끝이 없다니? 그래 통일의 그날이 무한해서 언제일지 모른단 말인가? 통일이란 있을수 없다는 소리인가? 《그럴수 없다!》 꿈에 이렇게 소리를 지르며 성태는 놀라 잠에서 깨여났다. 30촉짜리 백열등이 여전히 천정에서 얄밉게 비치고있었다. 다시 잠들수가 없었다. 옥중에서의 륙감이란 틀리지 않는다. 아직 새벽이 한참 멀었다. 밤중에 잠을 깨면 무서운 고독감이 더한층 육체를 압박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는 일어나 앉았다. 깡뚱하던 수인복팔소매가 별스레 처져내렸다고 생각했는데 왼손을 올려 만져보니 오른쪽어깨의 혼솔이 터져있었다. 팔소매의 기장이 손목까지 내려진게 차라리 좋을것 같았으나 그대로 둘수는 없었다. 어쩌다 이번에 이렇게 팔소매가 짧은게 차례졌는지… 《옷에 몸을 맞추라!》 이것이 교도소측의 요구이다. 성태는 웃도리를 벗었다. 내의가 없다나니 갈비뼈가 앙상한 알몸이 드러났다. 누데기이불을 어깨우에 걸치면서 뒤집어썼다. 그는 숨겨둔 바늘을 찾아내고는 수인복에서 씨실을 몇오리 빼내였다. 한절반 떨어진 팔소매를 제대로 기워놓고나서도 고독감은 거의 공허감으로 되여 가슴을 텅 비게 만든다. 고독감을 달랠수 있는 여러가지 추억들을 불러내려고 애썼다. 매번 그러면서 이런 고비들을 넘겼던것이다. 그런데 오늘 밤은 안되니 웬일인가. 광주에 와서 몇년동안 벌써 여러번 독방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다. 책도 읽을수 없는 이런 때엔 미칠것 같아 몸부림이 나갔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선자리에서 빙빙 돌아갔다. 변소쪽 콩크리트바닥에 쥐 한마리가 꼼짝도 않고있는것이 보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놈이였다. 기장쌀알같은 눈알이 또록또록한데 분명 공포에 질린것 같았다. 우로 곧추 쳐든 꼬리가 바들바들 떨고있었던것이다. 고양이한테 쫓기웠나? 요즘 고양이를 갖다놓았다는 소지의 말이 있었다. 한데 고양이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성태는 어릴 때부터 쥐라면 질색이였다. 그런데 이 순간에는 그놈을 쫓을 생각을 잊었다. 두앞발을 추켜들고 싹싹 비비는것 역시 어처구니 없게도 동정과 용서를 바라는것으로 보였다. 성태는 가만히 서서 그놈을 바라보았다. 문득 이상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지, 여기 광주교도소라고 했지, 그러니 거의 10년이 되였겠다.… 광주교도소 녀감, 지리산빨찌산출신의 한 녀수인, 독방살이 10년에 벌써 40대에 중발머리가 백발이 되였다. 하루는 그 방에 굶주린 겨울쥐가 찾아들었다. 위병으로 고생하던 녀수인은 채 먹지 못한 깡보리밥덩이를 던져주었다. 그놈은 물고 달아나려다가 덩이가 흩어지니까 할수없이 거기서 한알씩 주어먹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그뒤로 쥐는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왔다. 밥덩이가 들어오는 저녁시간에… 위병이 거짓말이라고 할가봐 남은것을 쥐한테 다 주지는 못했다. 쥐의 수명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몇해는 찾아왔다고 한다.… 녀수인한테는 쥐가 오는것이 기다려졌을것이다. 옥중의 고독이란 이런것이다! 그 녀대원의 고향은 어딘지, 부모형제는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처녀의 몸으로 투옥된것은 사실이였다. 그가 옥사하기 전에 간병부가 얼마간 나들었다. 녀수인은 간병부가 방에 오래 있지 않기를 바랐다. 쥐는 딴 사람이 있으면 절대로 오지 않으니. 녀수인이 지킨 절개의 높이와 고독의 깊이는 서로 정비례한다고 말해야 할것이다. 통일성업을 위해 나섰던 녀수인은 오십나이에 누구도 모르게(아니다. 력사는 기억하리라.) 옥사하였다. 녀대원의 시신이 감방에서 나간 날, 쥐가 찾아와서 찍찍 울며 방안을 쉬임없이 돌아쳤다는것을 어찌 지어낸 말이라고 할수 있으랴… 성태는 감방안을 둘러보았다. 이 방에도 그러한 고독의 력사가 슴배여있을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지금 나의 정신과 육체에 슴배여드는것이 아닐가. 성태가 고독과 싸우느라 기억속의 생활공간을 넓히고있는 사이에 눈앞의 쥐는 사라지고말았다. 요즘따라 고독감이 자주 괴롭히였다. 나이가 쉰고개를 넘어서기때문인지… 그는 다시 바닥에 앉았다. 무엇인가 생각을 끄집어내야 했다. 아니, 책을 읽어야 했다. 하지만 300페지가 넘는 《영어문법》은 5번이나 읽어서 어떤 단어, 어떤 문장이 어느어느 페지에 있다는것을 아는 정도이니… 단어외우기를 하던 도이췰란드어사전을 손에 들었으나 역시 주의를 집중할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고독을 참을수가 없었다. 대구에서의 출역수생활에서는 이런 일이 없지 않았던가. 그때는 자기를 괴롭히는 옥리들도 훨씬 멀리에 있는것으로 생각되였었다. 아니, 여기서도 웬일인지 거의 1년째 자기를 불러내는 일이 없다. 어찌된셈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 오히려 더 마음이 긴장되는것도 사실이다. 교도관들이나 일반수들이 침맞으러 오는 일도 여기 광주에서는 허용이 안되는 모양이다. 그러니 외계와의 차단도 더욱 심하게 되였다. 뜻밖에도 그날 오후에 교무과에서 호출이 왔다. 《3530번, 연출!》 짜장 그 부름을 오래간만에 들어본다. 다시금 피가 끓는다. 고독감은 제 갈데로 가라! 교무과에 상시적으로 소속되여 심부름을 하는 두 교도관이 성태를 데리러 왔다. 두놈중에 한놈은 춘추복을 갈아입었고 다른 놈은 겨울차림새 그대로 웃도리가 까만색복장이다. 벌써 5월도 중순께가 지났는데? 이상한 일이다. 며칠전에 감방변소벽에 붙은 가로세로 반메터정도의 철창마저 밖으로 가림판을 대서 3분지 2를 부랴부랴 가리우더니… 그것과 교도관의 겨울차림이 꼭 무슨 련관이 있는것 같았다. 성태가 신도균이라는 이 교무과장과 마주앉기는 처음이다. 신도균은 커다란 안경알을 번뜩이였다. 사실은 안경알이 큰것이 아니고 얼굴이 작고 좁아서 안경알이 커보였던것이다. 여불없이 족제비상이였다. 표독스럽고 랭랭한 표정이다. 성태는 문득 한동안 물러나있던 놈들이 불시에 자기를 향해 모여드는것같이 생각되였다. 하지만 성태는 상대를 굽어보듯 건너다보았다. 긴장대신에 여유를, 증오에 앞서 멸시를 가지고 신도균을 살폈다. 그러자 성태는 어머니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사람흉년에 이삭주이를 해온것처럼》 신가는 우선 외모부터 사람다운데가 없어보였다. 그 모상이 쥐상이라면 차라리 간밤에 나타났던 쥐의 영민한 눈알을 보는것이 낫지 않을가. 흔히 사람이란 적수의 육체적약점을 더 과장하고 확대하면서 자기의 인간적우월성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생리적인 혐오감을 느끼며 조선사람혈통에 이런 쭈그렁벼가 있을가싶은 수치감마저 들었다. 교도소안의 사복쟁이들은 거개가 이런자들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부터 7년전인 1973년에 교회사들을 대량 모집할 때 대부분 대학졸업생들중의 실직자 아니면 직업을 못 구해 돌아치던자들이 모여든것이다. 그러다나니 무엇이 그리 변변할수가 있으랴. 거개가 이런 밥줄에라도 매달리는것을 다행으로 여기는자들이다. 량심이 좀 있다는자들은 듣던바와는 다르다고 하면서 일찌감치 사직하고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대부분의 교회사들이 카톨릭교, 장로교나 감리교 등의 종교적인 신앙심을 표방하는 그것이다. 남을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학대하면서 어떻게 《하느님이시여! 주여!》를 부를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였지만 실지는 하느님을 모독하는것이 아니란 말인가. 교회사들이 종교의 너울을 쓰는것은 분명히 자기기만이고 제가 하는 일을 미봉해보려는 어리석은짓이다. 교도소마다 꾸려놓은 교회당자체가 허위이고 기만이며 종교에 대한 모독으로 된다. 성태는 이 신도균이도 무슨 안식교도라고 자처한다는 말을 들었었다. 신가는 애써 미소를 그리려고 하나 그 상통에는 애당초 미소란게 어울리지 않는다. 신가가 지껄이였다. 《뭘 그렇게 심중해서 나를 보우? 난 원래 안선생처럼 눈섭이 굉장히 크고 진한 사람은 마주보기 무섭더라니까.》 그러면서 지어낸 웃음을 껄껄거리였다. 신도균은 선뜻 본론에 들어가기 뭣한지 딴전을 썼다. 《아, 참. 전번에 서울<법무부>에 갔다가 대전의 교무과장 라구표씨를 만났는데 선생의 안부를 묻더군요.》 《걷어치우시오. 그놈 이름은 듣기도 싫소.》 성태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꽉 부르쥔 두주먹이 부르르 떨리였다. 신도균이와 라구표, 두놈이 이름만 다를뿐이지 한굴에서 나온 승냥이들이 아닌가. 성태는 분노에 차서 부르짖었다. 《라구표. 그놈은 살인자요!》 《아, 아, 안선생은 그게 탈이라니깐요. 극단적으로 말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한다더니.》 《말 마시오. 그놈 이름 꺼내면 난 더 말 안하겠소.》 《뭘 그렇게까지야…》 《정 알고싶소? 그놈은 73년에 두 깡패를 동원해서 나를 테로했소. 그리고 의식을 잃은 짬에 내 손도장을 찍어 나를 위조전향시킨자요. 그러니 그놈이 살인자가 아니란 말이요? 그놈 손에 죽어서 살아나지 못한 사람이 또 수없이 많소.》 《아, 그러지 마시오. 안선생, 그때야 전향공작전담반이 새로 나오고… 73년도는 한창 고조에 이른 때니까…》 《그래 지금은 뭐가 달라졌소?》 《아, 그러지 말고 진정해요.》 (라구표!… 그놈이 이젠 반장이 아니구 과장이란 말이지.) 대구에서 여기 광주로 오던 때였다. 대전에 들려 거기에 떨어지는 수인 몇이 있어서 교도소안으로 수인차가 들어갔었다. 마당에 대전교도소의 직원 여럿이 나와있었다. 소변을 보려고 교도관들의 계호하에 성태는 저쪽으로 걸어가다가 한걸음 다가서는 라구표를 보았으나 고개를 외로 틀고 그쪽을 보지 않았다. 라구표가 말을 걸어왔다. 《안선생, 뭘 그러오. 우린 구면이 아니요? 듣자니 <비전향>으로 되였다니 소원대로…》 그놈쪽으로 홱 돌아선 성태는 성큼 한걸음 나가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듣거라. 너는 살인자다! 네놈과는 지옥에 따라가서도 계산할테다.》 《어, 어. 무슨 말을 그렇게…》 라구표는 기가 질려 비실비실 뒤로 물러났다. 그때 성태는 더는 그놈을 돌아보지도 않았었다.… 성태는 신도균을 건너다보며 생각했다. (이놈이 날 불러서 무슨 말 하자는걸가?) 그래서 성태는 선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과장님, 그러지 않아두 난 과장님이 한번 불러줄걸 기다리고 있었소.》 《왜요?》 신도균의 눈알이 안경뒤에서 대번에 커지였다. 《그건 다른게 아니구…》 성태는 일부러 늦잡는척 하였다. 《뭔데요?… 말해요. 저는 믿어두 돼요.》 신도균이 안달이 난 모양이다. 성태는 거침없이 내뿜었다. 《감방안에서야 한가지 생각밖에 더 있소? 그건 조국통일문제이지. 어디 좀 물어봅시다. 7.4남북공동성명이 누구때문에 리행 안되는지… 우리 민족의 통일문제나 론의해보자는게지요. 과장님의 견해도 들어보고… 이남당국자는 통일을 백년전쟁치르듯 해야 한다는데 거기에 대한 견해는 어떤지. 민족의 한 성원이라면 신과장님도 무슨 견해가 있을게 아니요?》 그러자 신도균이 숙이였던 머리를 쳐들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박정희<대통령>은 이미 없소. 총에 맞아 사살되였소.》 안성태는 너무도 놀라 아무말도 못하고 잠시 그대로 앉아있었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았다고 신도균이 웅얼거리더니 《개인감정인것 같소.》 하고 덧붙이는것이였다. 그러자 안성태가 랭정한 어조로 부르짖었다. 《아니요. 력사의 심판이요.》 신도균은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며 중얼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두 있지만… 어쨌든 그는 우리를 가난과 혼란에서 구원한 영웅이요.》 안성태는 분노에 떨며 웨치듯 말했다. 《우리란게 누구요?》 신도균은 입을 꾹 다문채 대답을 못했다. 이때 교회사인듯 한 한 사복쟁이가 황급히 방안에 들어왔다. 《과장님, 소장님 급히 찾으십니다.》 《뭐야?》 그만 일에 침착성을 잃지 않는다는것을 시위하듯 한마디 뇌까린 신도균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안성태는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하지만 두고보아야 한다. 미국놈의 작간이겠지. 그런데 《대통령》의 죽음이 언제 있었는가. 왜 교도소안의 모든 감방들에서 이런 소식을 여태 모르고있었는가. 하지만 다음순간 창문가림판을 해놓은것, 교도관들이 혼자서는 절대로 감방문을 따지 않던 일, 소지들도 요즘 교도관의 립회하에서만 왔다가 가던 일이 생각났다. 안성태는 여느때없이 활기있는 걸음으로 감방복도에 들어섰다. 그는 이쪽저쪽 돌아보았다. 시찰구는 열린것도 있고 닫긴것도 있었다. 열려진 시찰구로 내다보는 눈들에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미소를 보냈다. 어떤 눈은 어리둥절한 빛이고 어떤 눈들은 호기심과 의문에 차있었다. 안성태는 남조선이라는 지옥같은 이 거대한 감옥의 한쪽이 뭉청 내려앉은것만 같은 통쾌감을 금할수 없었다. …안성태가 여직껏 《대통령》의 사살사건을 모르고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교도소가 격페된데다가 요즘따라 더욱 삼엄한 경계속에 있었던것이다. 《12.12숙군쿠데타》이후에는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였다. 신문, 방송이 두절되고 면회, 서신, 운동 등 일체 금지였다. 교도관들은 집에 가지 못하고 교도소안에서 숙식했다. 소장과 과장급을 내놓고는 교도관들이 겨울제복을 봄이 되도록 바꿔입지 못하고있었다. 소지, 간병부 같은 일반수들도 철저한 감시속에 움직이게 했다. 비전향장기수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어떤 비상한 사태를 짐작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다. 그무렵 전두환은 《숙군쿠데타》로 군부내 로장파를 숙청한 뒤에 련이어 이번에는 소장파세력까지 제거하기 시작했다. 《유신》독재를 계속하려는 전두환의 야심을 간파한 각계각층이 불만을 터뜨리였다. 3월에 이르러 대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대통령》을 사살한 김재규에 대한 사형이 집행된 5월의 그날 밤, 전두환이 차린 술좌석에서 로태우와 처남매부사이인 김복동이 술이 거나해지자 전두환에게 《오늘 김재규를 사형에 처했으니 이것으로 자네의 임무는 끝났네. 이젠 정치에서 손을 떼게. 그러지 않아도 사태를 평정하고 군에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나?》 하고 말해서 둘사이에 대판싸움이 벌어졌다. 전두환은 군부내에서의 지반이 흔들리고 정치적혼란이 일어나자 5월 17일에 폭거를 단행하여 《비상계엄령》을 확대하였다. 5월 18일, 광주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계엄령해제》를 요구하여 시위에 떨쳐나섰다. 신도균이 교도소장의 급한 부름을 받고 뛰여간 그날이 바로 5월 18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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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났다. 밤마다 감옥담장너머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삽질소리 같았다. 성태는 그 소리를 열심히 가늠해보고 그 소리가 큰 삽질소리가 아니라 공병삽 같은 작은 삽질소리라는것을 알았다. 특별사동이 담장가까이에 있어서 정적속에 귀기울이면 삽날이 돌멩이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것이다. 전호를 파던가 지뢰를 매설하던가, 정상상태에서는 벌어질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났는가? 미국놈들이 분명 험악해질 어떤 사태를 수습하려고 이목을 딴데로 돌리면서 무슨 일을 꾸밀수 있다. 실제적인 통치자는 미국이니 누가 이 남쪽땅의 《대통령》이 되든 무슨 상관이랴. 낮에는 다른 소음때문인지 밤에 들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요즘은 운동도 금지여서 다른 사람들과 눈짓으로라도 만나 교감할수가 없다. 성태는 통방신호를 옆방에 보냈다. 뜻밖에도 응답이 울리였다. 김현순이는 운신도 못하는 몸이다. 그의 가족이 광주에 있으니 혹시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로부터 타전되여온 정보는 이러했다. 《모르겠다. 나도 알수 없다. 기다려보자.》 성태가 다시 타전했다. 《몸은 어떤가?》 《이젠 좀 움직일수 있다.》 《됐다. 비상사태에 대처해서 몸을 움직이라. 몸이 회복되여야 한다.》 《알았다. 고맙다.》 전쟁이라면 놈들이 맨먼저 《좌익수》들, 정치범들을 가차없이 죽일것이다. 지난 전쟁시기에는 《보도련맹》관계자들까지 죽인 놈들이 아닌가. 일단 일이 벌어지면 번호판이 빨간 바탕인 수인들만 골라서 즉결처분할것이다. 내가 죽어도 놈들만 멸망한다면 무엇이 더 소원이랴. 성태의 상상력은 최악의 경우를 넘어서서 걷잡을수없이 내달렸다. (좋다. 폭풍이여, 불어라. 불어…) 성태는 진정하지 못했다. 가만히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독방안이 더욱 숨막히게 답답해났다. 한편 광주교도소에는 1개 대대의 《계엄군》이 주둔했다. 담장안의 여기저기에 《계엄군》들이 섰다. 담장밖에는 지뢰들이 매설되고 망대들에는 기관총이 배치되였다. 《계엄군》의 식사는 어데선지 헬리콥터로 날라왔다. 2층인 보안과건물의 지붕이 평지붕이여서 거기에 헬리콥터가 내렸다. 소장이하 교도관전원이 무장을 갖추고있었다. 후날 광주인민봉기의 실상을 알았을 때 성태는 얼마나 가슴을 쳤던가. …30만의 시민군이 광주를 완전히 장악, 《계엄군》의 땅크, 장갑차까지 빼앗아 타고… 목포, 라주, 화순, 령광, 담양 등 17개 시, 군까지 봉기군중장악, 전두환이 《계엄군》증강, 2중3중 포위, 전기도 물도 모조리 끊어버리고… 하지만 시민군은 열흘낮 열흘밤을 싸웠다. 5월 27일, 작전권을 쥔 미국놈들의 승인하에 땅크, 장갑차, 직승기로 수만명의 정규군 투입, 대구경포사격, 질식가스탄사격… 5천여명의 희생자, 1만 4천명의 중경상자, 여러 시, 군에서도 1,700여명 살상되고… 광주시와 그 주변에서 100여만명 참가… 5천년민족사에서 처음되는, 동방에서 처음되는 규모의 반파쑈민주화투쟁… 하지만 성태는 그때 너무도 모르고있었다. 그는 혹시나 해서 시찰통에 매달리기도 하고 반대편 변소간쪽에 가서 가림판으로 가리운 쇠창살문에 얼굴을 박고 무엇인가 눈에 걸리는것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맞은편 사동이 침묵속에 서있을뿐 그 콩크리트벽체안에서도 수인들이 지금 자기처럼 안타까와할 모습만이 눈앞에 떠오를뿐이다. 멀리서 울리는 우뢰소리… 하늘이 개였는지 흐렸는지 딱히 알수 없으니 그것을 우뢰소리라고 믿을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포성이 울리리라는 상상도 할수 없었던것이다. 광주시 북구에 있는 교도소는 처음부터 공정대와 《계엄군》이 차지하고있었다. 교도소에서 금남로까지 3키로메터, 후에 알고보니 일반사동에서는 총소리가 들렸으나 비전향수들이 있는 특사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하여튼 그때 성태는 속만 바질바질 끓을뿐 아무것도 알아낼수 없었다. 머리우에서는 또다시 직승기소리가 났다. 바람이 부는것 같았다. 가림판이 가리운 창문아래로 내려다보니 웬 종이장이 하나 너풀거리며 떨어졌다. 얼핏 보아도 삐라가 분명하다. (저 삐라… 저 삐라를…) 그것을 건져내야 했으나 방도가 없었다. 쇠그물에다 쇠창살이 달린 창문으로는 생각도 못할 일이고… 그러다가 천정 가까운 곳에 있는 환기창을 보았다. 뙤창만 한 구멍… 주먹과 팔은 넉근히 나갈수 있었다. 성태는 생각을 짜내느라 진땀을 빼며 앉았다가 와락 뛰쳐일어났다. 그는 청소비에서 수수모개미를 끄집어내여 련결하고 그 끝에다 파리채를 잇대였다. 방안에서 추켜들어보았다. 활등처럼 휘였으나 꺾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환기창에 매달리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는 창문아래턱에 한발을 올려놓고 다른 발은 벽체에 간신히 붙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갈구리》(저 혼자 그렇게 명명했다.)를 환기창에 내보내고는 조심조심 갈구리끝을 움직였다. 창문으로 봐둔 위치에서 마침내 종이장이 걸렸다. 순전히 우연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쇠줄토막을 련결한 《갈구리》의 끄트머리에 약간 힘을 주어 종이장을 꿰였다. 천천히… 천천히… 《갈구리》의 채를 뒤로 보내면서 마지막대목을 쥐고는 얼른 종이장을 잡았다. 순간 그는 허양 나떨어졌다. 엉치와 등심뼈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 아픔에 정신이 아찔하고 숨이 딱 막히였다. 몸이 떨어지는 소리에 당장 감방문이 열리고 교도관들이 뛰여드는것 같아 얼른 일어났다. 가만히 서있어도 복도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그는 얼른 앉아 종이장부터 보았다. …시민군에 고함 … 무기를 놓으라. 지금부터 …까지 여유를 준다… 《시민군》? 《시민군》,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명백한것은 광주시민들이 군대를 조직하고 손에 무기를 잡은것이다. 대중적인 봉기가 일어난것이다! 비행기가 떠서 삐라를 뿌려야 하는 정도이니 도시의 중심부는 다 시민군이 장악했다는 소리이다. 시민군, 참 멋진 말이다. 아, 이 얼마나 희한한 일인가. 그 규모가 대단하구나, 문득 이 지대에서 벌어졌던 려수군인폭동이 생각나고 지리산빨찌산, 전남전북유격대가 생각났다. 더 소급해서는 갑오농민전쟁까지 생각났다. (장하다. 전라도개똥쇠들아, 너네는 우리 경상도문둥이들보다 낫다, 나아.) 성태는 볼을 타고 눈물이 주르르 흘렀으나 닦을념을 못했다. (아, 싸우라 싸우라, 싸워서 이 옥문을 들부시고… 저 원한의 장벽을 함께 마사보자꾸나.) 그는 주먹으로 마루바닥을 쾅 내리쳤다. 옆방에 있는 김현순이한테 한시바삐 알리고싶었다. 지금 당장은 통방도 못하겠다. 간수들이 연방 복도를 지나다니고있다. 통방이 아니라 삐라로 실물을 보여주고싶었다. 그는 모험을 결심했다. 소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소지가 둘씩 다니는데 그중 한사람이 좀 통하는 친구여서 거기에 기대를 거는수밖에 없었다.
×
성태는 숨을 후 내쉬였다. 문에서 물러나는 소지가 접고접어서 꼬깃꼬깃해진 삐라장을 제깍 받아 줌안에 넣고는 눈을 끔뻑하는것이였다. 옆방에 전달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소지가 나가자 성태는 더럭 다른 걱정에 휩싸였다. 김현순의 가족이 광주에 있지 않는가. 그러니 그가 도리여 근심하게 되지 않을가.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것만 생각했구나. 광주에서 다 큰 아들이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했지. 하지만 집근심이나 할 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그도 이 광주폭동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것이라고 믿어졌다. 통일혁명에 나섰던 그, 그가 가족보다 겨레의 운명에 더 가슴을 칠게 아닌가. 그 순간 두터운 감방벽을 뚫고 투쟁의 폭풍처럼 김현순의 뜨거운 입김이 불리여오는것 같았다. 안성태는 그쪽 벽을 부둥켜안을듯 두팔을 쳐들고 거기에 볼을 비비였다. 김현순을 굳게 포옹하며 뜨거운 격정을 나누고싶었다. 성태는 휙 돌따서서 다른쪽 벽에 바투 붙어서서 타전을 했다. 그 감방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 전방이 많은 방이였지만 이 순간에는 그 누구든 똑같은 심정이리라 생각했다. 《들으라! 폭동이다.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누군지 모르겠으나 능숙한 솜씨로 격정에 넘쳐 화답하였다. 《알겠다. 폭동, 폭동… 만세! 만만세!》 이때 갑자기 문따는 소리가 요란스레 나고 뒤이어 《이 새끼, 나왓!》 하는 교도관의 웨침소리가 악청으로 울리였다. 성태는 보안과에 끌려갔다. 보안과에 도착하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교도관 네놈이 달려들었다. 구두발로 저마끔 걷어찼다. 바줄인지 채찍인지 윙윙 울리면서 잔등에, 다리에 감겨들었다. 성태는 대번에 의식을 잃었다. 찬물이 끼얹어지는 바람에 흐리마리하던 정신이 살아났다. 그제야 자기가 의자에 앉히워있고 바줄에 칭칭 감겨져있음을 알았다. 소장이 직접 심문을 했다. 어떤 때엔 그렇듯 《점잖게》 처신하던 그가 전혀 딴 사람으로, 야수로 변신하여 울부짖는것이였다. 《야, 이놈의 새끼, 넌 뭣하러 삐라를 주어 넘겼어? 말해, 말해, 말하란 말이다! 말하지 않으면 계엄군에 넘기구 말겠어. 오찰을 하게 말이다. 너 같은건 파리목숨이야. 계엄군이 지금 금남로까지 진격하구있어. 말해라, 말해!》 소지한테 삐라를 넘기는것을 다른 소지가 보고 고발했을것이라고 성태는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그랬음 어쨌단 말이냐! 그렇게밖에 할수 없는게 분하다. … 아, 시민군에, 그래서 총을 잡고… 아, 아, 그러면 내 죽음이 헛되지 않을것을, 아, 원통하구나.) 하지만 성태는 마음을 다잡고 애써 침착해지려고 하였다. 《저… 김현순이 그 사람한테… 전쟁이 일어난게 아니라구… 그걸 알리고싶었소… 그 사람 가족 광주에 있지 않소?》 소장이 꽥 소리를 질렀다. 《아니다! 넌 비밀조직을 꾀했지? 탈옥하려구 했지? 말해라, 말해… 넌 대구에서 비밀조직을… 그런 솜씨가 있지?… 이놈아, 네가 통방을 해서 온 사동이 알게 됐는데도 부정할테냐?》 《나는 통일이 되는줄 알았소. 38선이 터지는줄 알았소…》 《뭐야? 아까는 전쟁이 일어난게 아니라구 하더니, 이 자식 입은 살아서, 입이 둘이야? 셋이야?》 성태는 아까 말한 똑똑한 기억도 없었다. 그저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도 모르고 다만 그 어떤 이름 못할 통쾌감에 잠겨 놈들에게 가장 자극적인 말을 하려고 하면서 전쟁이요 통일이요 하는 말마디를 내뿜었을뿐이다. 소장놈이 손짓을 했는지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바줄을 풀었다. 그리고는 억지로 오른팔을 들어 어깨우로 넘기고 왼쪽팔은 허리뒤로 돌리였다. 두손을 등뒤에 묶어서 대포수정을 시키려는것이다. 오른쪽어깨관절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는 순간, 그 아픔에 눈앞이 아찔해지였다. 분명 어깨관절이 언젠가처럼 탈구가 된것 같은데 놈들은 막무가내로 두손목을 등뒤에 묶은채 가만 놔두었다.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눈을 떠보니 방안에는 소장놈이 없었다. 교도관들이 달려들었다. 《이 자식이 센데. <대포수정>에 한시간 넘어 견뎠으니 신기록을 세운셈이야, 흐흐흐.》 《세계선수권인가?》 《여, 빨리빨리.》 오른팔을 내려놓으니 그 상태가 더 아팠다. 거덜거리며 빠져나가는것 같았다. 온몸에 땀물이 질벅하다. 바지에서 역한 냄새가 났다. 오줌도 쏘고 대변도 나온 모양이다. 《에익, 쿠린내. 이 자식을 그저.》 《여, <계엄군>에 콱 넘기자고 과장님한테 말하구 말가.》 《빨리, 하란대루 하라는데 그래.》 이번에는 뒤수정을 시키였다. 그것으로 다된줄 알았는데 가는바줄로 허리와 두팔을 꽁꽁 동여매였다. 그리고는 독방에 끌고 갔다. 뒤수정을 채우고 《개밥먹기》를 시켰다. 팔을 풀지 않은채 꽁보리밥을 먹자니 부득불 무릎을 꿇고 바닥에 놓인 밥덩이를 개처럼 뜯어먹는것이였다. 수인복바지의 앞을 터쳐놓아 거기로 소변을 보라는것이고… 그렇다. 하루도 에누리 없는 17일간이다. 바줄로 꽁꽁 묶은 자리는 시커멓게 살이 죽었다. 10년후에야 그 흔적이 없어지리라는것을 이때는 짐작도 못했다. 뒤수정, 개밥먹기에서 풀어놓고도 두달동안 징벌방에 가두었다. 7월의 무더운 여름날, 놈들은 광주에 있던 비전향장기수들을 전주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광주봉기로 이곳 정세는 의연히 험악했고 따라서 놈들의 눈에 비전향장기수들의 집결처가 굉장히 큰 폭발력을 가진 《시한폭탄》으로 보였는지 모른다. 안성태는 전주로 떠나기 전날 밤 무릎을 꿇고 망월동묘지가 있다는 동쪽을 향해 머리를 숙이였다. 거기에 잠든 5천의 령혼앞에 가장 숭고한 경의를 표하고싶었다. 처음에는 5백이라는 수자가 잘못되여 5천으로 된게 아닌가 의심되여 세번씩이나 다시 옆방에 타전으로 물어보았던 안성태다. 5천이 맞다는것이 재차 확인되자 그는 망연자실하여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며 무작정 시찰통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렸었다. 무엇때문인지 그자신도 몰랐다. 교도관이 달려와 시찰통을 열고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뭐야?》 안성태는 웨치였다. 《아무것도 아니다!》 교도관의 눈이 퀭해졌다. 《미치지 않았어? 삐라사건때메 곤죽이 되게 맞더니.》 안성태는 씹어뱉듯이 내뿜었다. 《그렇다. 미쳤다, 미쳤어… 미쳐야 한다.… 미치지 않은 너희네가 진짜로 미친 놈들이다!》 《어, 어》 하다가 교도관이 시찰통을 쾅 닫고 물러나며 뭐라고 두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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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동강을 끼고 달리던 기차는 방금 원동역을 지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강물이 달빛에 번뜩이고있었다. 강물은 조용히 흐르건만 거기에 반사된 달빛은 새파랗고 차거웁다. 때로는 칼끝처럼 예리하게 번쩍인다. 하늘에서는 배가 꺼진 달이 쪽배처럼 떠서 기차를 따라 흘러온다. 밤차는 숨가쁜듯이 구배진 철길을 힘들게 오르고있었다. 계순은 부산역에서 일부러 밤차를 탔다. 오빠네 집에서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것 같고 그럴바치고는 밤차에 오르기로 결심한것이다. 그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서 최근에 벌어진 여러가지 일들을 곰곰히 되새기고싶었다. 모든 려객들이 혼곤히 잠든 3등차칸, 마치도 기관차가 자지 않고있는 이 녀인만을 싣고 목적지에 데려다주려 애쓰는듯 계순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였다. 밤차는 헐레벌떡 달려간다. 차바퀴소리에 장단 맞춰… 고달픈 혼을 싣고… 고달픈 혼을 싣고… 어느 시구절이던가, 소학교시절 외웠던 기억이 분명한데 오직 그 구절만이 줄곧 반복되여 떠오른다. 밀양에는 새벽에 도착할것이다. 여름밤, 낮동안의 더위는 간데 없고 열려진 차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흘러든다. 계순은 한쪽 팔굽을 창탁에 세우고 반쯤 열린 차창의 웃쪽에 비낀 얼굴모습을 본다. 오빠의 아들, 조카인 유철의 모습이 비껴있었다. 수인복을 입고 두손을 쳐들어 미소를 보내주던 그 름름한 모습이… 끊임없이 마음속으로 반복하던 그 말 (유철아, 장하다. 장해.) 하는 심장의 속삭임을 지금 다시 되뇌여본다. 부산 《미국문화원》방화사건으로 체포된 유철이, 부산고려신학대학 학생이던 그가 공판정에 서있었다. 계순은 뇌출혈후유증을 가시지 못한 오빠를 대신하여 올케와 함께 방청석에 앉았다. 밀양에서 기별을 받고 급히 부산에 내려간것이다. 그가 방청석에 앉은것은 조카한테 어떤 판결이 내려질것인가 하는 그것을 우려해서 아니였다. 《유죄판결》은 명백했던것만큼 단지 조카한테 이 고모가 울고있지 않다는것을 보여주고 그한테 힘을 주고싶었기때문이였다. 최근에, 아니 무척 오래전부터 계순이한테는 법과 법정과 교도소가 퍼그나 가까이에 있는듯이 느껴졌다. 그는 법과 인간에 대한 주제로 씌여진 세계적인 명작장편소설들도 다시 읽게 되였다. 《레 미제라블》, 《부활》, 《죄와 벌》 등등… 그리고 법과 인간에 대한 주제를 담은 인디아영화들도 많이 보게 되였다. 그 책과 영화들이 아무리 공감을 주고 흥미가 있어도 거기에는 현실세계에서 찾는 대답이 없다는것을 통감하군 했다. 나중에는 자기가 딛고 선 현실자체가 곧 대답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군 하였다. 한마디로 이 남《한》땅에서 법의 공정한 판결은 기대할수 없으며 법은 오직 독재와 《반공》, 《반통일》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판단이 어렵지 않게 생기는것은 생활이 주는 자연스러운 결론이 아니겠는가… 《지방법원》에서 있은 재판, 처음으로 참가하는 공판정… 거기에 나선 여라문명의 대학생들과 사회인들, 하나같이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들이였다. 지난 3월 18일 낮 2시, 부산고려신학대학 학생들을 비롯한 《새별회》 성원들이 《미국문화원》안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건평 600평의 콩크리트건물이 불길에 싸이고 1층이 재더미로 되였다. 때를 같이하여 삐라살포조는 《유나》백화점의 4층과 《국도》극장의 3층에서 800여매의 삐라를 뿌렸다. 《우리는 미국이 이 나라를 예속국으로 만드는것을 중지하며 이 땅에서 물러갈것을 요구한다.》 《미국의 신식민주의를 규탄한다.》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을 규탄한다.》 반미자주화의 거세찬 불길을 상징하는 방화사건, 참으로 큰 충격을 주는 사변이다. 계순은 차창가에 앉아 재판정에 나섰던 그네들의 얼굴을 그려 보나 개개의 모습을 가려볼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 매 개인의 말소리가 이 시각 더욱 귀가에 쟁쟁하다. 숨가쁜 흥분과 격정을 불러일으키던 그들의 부르짖음… 계순은 눈을 감았다. 너무도 똑똑히 들리는 그들의 목소리… 최후진술에서 먼저 일어선 김현장, 문부식청년들의 당당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 그러한 조작에 의해서 나는 사형을 구형받았다. 광주사태에서 군부《정권》이 량민을 대량학살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하는것은 세계가 다 안다. 검찰은 최기식신부와 리창복선생까지 용공주의자로 몰고 카톨릭교회가 용공활동을 위한 교육장소를 빌려준것으로 몰아 카톨릭교가 공산사상의 온상인양 선전하고있다.… 민족을 학살하고 그 피우에 선 《정권》이 어떻게 통일을 이야기할수 있으며 어떻게 통일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 광주학살의 책임이 전두환에게만 있는것이 아니다. 미국에도 그 책임이 막중하게 있는것이다.… 광주사태시 광주시민살륙을 위한 군대이동을 승인한것이 바로 미국이다. 그것으로 광주비극이 생긴것이다. …지금까지 반공만 내세우면 어떠한 정권일지라도 그것을 지지해오는 미국에 경고할 목적으로 나는 방화를 결심했고 또 실행했다. 물론 거기에는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응징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 이 땅에 반미의 물결은 앞으로 계속 흘러넘칠것이다.… 끝으로 재판부에 바란다. 이번 사건은 그 누구의 지시나 배후의 조종이 없다.… 나는 분렬된 조국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짖다가… 푸른 수인복을 입고 이 자리에 선것을 떳떳하게 생각한다. 이 시대의 고난, 형제들의 고난에 동참하게 된것을 기쁨으로 생각한다. … 어느 역에 섰던 기차가 덜커덩 몸을 채며 다시 떠난다. 공판정에서 울리던 그 열띤 음성들이 차바퀴소리에 장단 맞춰 들려온다. 청년들을 도와준 카톨릭교 원주교구의 교육원장인 최기식신부가 일어나 최후진술을 하는 모습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최기식신부의 침착한 목소리… …어린 학생들과 같이 묶여 이곳저곳 그리고 이 《재판정》을 왔다갔다 하면서 내 마음은 언제나 이들과 같이 있고싶다. 나는 나의 행위에 후회나 부끄러움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학생들과 같은 높은 뜻을 가지고있지 못한것이 사실이다. 청초하고 티없이 맑은 이들이 하는 절규는 《판사》, 《검사》, 변호사, 성직자 그리고 우리 시대의 모든 부모형제들에게 하는 소리임을 알아야 한다.… … 차바퀴소리를 누르며 귀전에 들려오는 신부님의 그 목소리… 우리 시대의 모든 부모형제들에게 하는 소리임을 알아야 한다.… 알아야 한다.… 계순은 신부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 목소리에 화답하듯 들려오는 녀대학생의 목소리… 계순은 와뜰 놀라 눈을 떴다. 영미의 목소리인가? 아니, 그것은 재판정에서 울리던 김은숙의 목소리였다. 참말로 김은숙은 사랑하는 딸 영미와 같은 나이이기도 하다. 김은숙의 청아하면서도 분노에 찬 절규…
나는 《재판》을 받으면서 우리 시대가 걸머지고있는 가장 큰 문제는 통일이라고 생각했다. 분단을 빙자한 권력의 횡포와 조작이 이렇게 큰줄을 미처 몰랐다. 통일은 평화통일이여야 하고 또한 이 땅에서 민주주의실현이 그 조건이 된다.… 광주사태는 민주회복에 대한 광주시민의 욕구의 폭발이였다. 1980년, 어느 그리스도교모임에서 광주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자세히 들었다. 5천년력사에서 가장 큰 비극이 광주사태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금 그 절규가 영미의 목소리로 착각된다. 그 순간 계순은 저도 모르게 량손으로 귀를 막으며 눈을 감았다. 심장이 쿵쿵 소리내여 울린다. 불안인가? 충격인가? 차바퀴의 울림인가?… 김계순은 황급히 차창에 눈길을 가져가며 그 어둠이 비낀 유리우에 조카인 유철이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기가 느끼는 이상한 충격과 불안을 지워버리려는듯 한사코 유철의 얼굴모습에 매달리며 거기서 위안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유철은 미소를 짓고있었다. 계순은 그때의 장한 마음을 다시금 가슴속에 불러온다. (저런 어엿한 대장부가 되다니… 어릴적에 무던히도 이 고모를 따르면서… 그저 졸졸 따라다니며 옛말 옛말만 해달라고 조르던 그 유철이… 하지만 지금은 저렇게 당당히 부르짖고있구나.)
…《유신》시대의 《긴급조치》, 《10.26사태》이후의 《계엄령》, 그모두가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악법이다, 독재의 선언이다. 민주와 독재, 독재와 통일은 량립될수 없다. 자주, 민주, 통일만이 병존한다. 자주가 있어야 민주가 있고 민주가 있고야 통일이 있다.… 이것은 다 7.4남북공동성명에 있는데도 재판부에서 저렇게 종을 울리며 발언을 중지시키려고 한다.… 광주사태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미국이 더는 우리의 우방이 아니라는것이다.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가 태평양상에 떴을 때 그것이 광주봉기를 지원하는 미국의 조치라는 어리석은 환상까지 품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뿌리깊은 숭미, 공미에 종지부를 찍자… 그래서 우리는 불을 달았다. 반미반독재만이 통일을 가져온다. 통일, 통일, 우리 시대가 걸머진 가장 큰 과제를 두고 분단의 비극을 그대로 둘수 없는 이 민족사의 부름을 두고 우리 겨레, 우리 세대는 여기서 그 누구도 피해나설수 없다. 나는 《미국문화원》에 불을 달아 통일투쟁의 등대불을 마련하려고 하였다.
충격, 흥분, 불안… 그대로 잠을 이룰것 같지 못해서 부랴부랴 밤차에 오른 김계순이였다. 렬차가 밀양역에 와닿은것은 아직 사위가 채 밝지 않았을무렵이였다. 계순은 자그마한 려행가방을 들고 역사안에 들어가서 장걸상에 지친 몸을 던지고 앉았다. 대합실안에는 아직 걸상에 앉아 졸고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밤차에 내린 사람인지, 새벽차로 떠날 사람들인지… 계순은 기차안에서 눈을 붙이지 못했으나 눈이 점점 마록마록해 졌다. 한여름인데도 새벽이니 오히려 으스스해났다. 그는 치마자락으로 무릎을 감싸고나서 눈을 감았으나 도무지 졸리지 않는다. 나이 오십이 넘었어도 그의 몸매와 앉음새는 흐트러지지 않아 중년의 현숙한 기품이 그대로 유지되는듯 싶었다. 김계순의 눈앞에는 또다시 공판정에 피고인으로 앉은 유철이와 대학생들, 신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녀대학생 김은숙의 얼굴이 커지고 문득 거기에 사랑하는 딸 영미의 해말쑥한 얼굴이 겹쳐진다. (방학이여서 내려올텐데…) 김계순은 까닭 모를 불안에 싸였다. 요즘도 서울에서는 대학생시위가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딸애한테 지금같은 불안을 느껴본적은 여태 없었던것 같다. 재판을 받는 녀대학생 김은숙이를 보고 와서 마음을 진정할길 없는것이다. 계순은 딸에 한해서만은 서둘러 울타리를 치려고 헛되이 시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한숨을 지었다. 문득 재판정에서 하던 김현장청년의 목소리가 웬일인지 다시금 또렷이 들려온다. 《나는 어렸을 때 본 어느 영화의 마지막장면을 기억하고있습니다. 나치스에 대항하여 싸우던 프랑스항쟁운동에 참가했던 대학생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입니다. 앞에 가는 사람은 목줄을 손에 달고 묵묵히 걸어가는데 바로 그뒤에 오는 사람이 <나는 아무 일도 안했다.>고 계속 투덜거립니다. 이때 앞에 가던 사람이 뒤에 오던 사람을 향해 바로 당신이 아무 일도 안했기때문에 우리는 모두 죽음에로 끌려가는것이고 또한 죽어야 하는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받고있는 이 <재판>을 강건너 불보듯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들어주십시오. 오늘 우리를 처단하는 <보안법>이라는 악법이 래일은 당신과 당신의 자식을 <보안법>위반으로 몰아 재판할것입니다. 이 사실을 똑바로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청년의 말이 바로 자기를 견주고 퍼붓는 비난의 목소리같이 느껴졌다. 김계순은 불안을 털어버리듯 머리를 흔들다가 새삼스레 대합실안을 둘러보았다. 영미를 처음 서울로 떠나보내던 9년전이나 변함이 없는 대합실이다. 그때는 김양순고모와 영미, 셋이 이 장의자에 앉아있었다. 열네살 어린 나이의 영미를 떠나보내자니 가슴이 아팠었다. 생활의 전부로 돼오던 모성애에 커다란 공간이 생기고 그것이 텅 비는듯 하던 허전한 마음… 그때 김양순고모가 전적으로 맡아나서 서울에 미리 가서 영미의 진학문제를 일단 마무리지어놓았으니 안심을 해야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었다. 영미를 밀양에서 녀자중학교에 넣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양순고모는 굳이 리화녀대부속 중학교에 다니게 해야 한다고, 그래야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녀대에 거침없이 진학할수 있다는것이였다. 어린 영미가 하숙하게 된 곳은 양순고모의 시켠동서되는 녀인의 집이였다. 마음 무던한 녀인이였다. 아들은 윁남파병으로 갔다가 죽고 딸네 부부가 가까이에서 그를 돌봐주느라고 했다. 영미를 공부시키는데는 두말할것없이 문제가 재정이였다. 양순고모는 이 문제만은 계순이와 의논하지 않았고 또 삐치지도 못하게 했다. 영미의 아버지인 조민하와 만나 고모가 어떻게 합의했는지는 몰라도 계순은 영미가 조민하의 집에 들어가지 않는 조건만은 명백히 못박아놓았었다. 재혼후 조민하한테는 그가 바라던 아들이 생겨 그때 일곱살인지 여덟살인지 된다고 했다. 조민하가 지불하는 영미의 양육비는 그때로서는 기한이 끝나지 않았지만 이 액수란 장차 학교등록금에는 어림이 없었다. 계순이와 김양순이 학비의 일부를 마련할수 있으나 그것으로는 적은 보탬밖에 안되였다. 그러니 울며 겨자먹기로 계순은 영미를 위하여 가혹한 운명의 비웃음도 상처받은 자존심의 쓰라림도 참아야만 했다. 모성애라는 절대적인것에 무릎을 꿇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사실말이지 계순은 딸애의 진학을 위하여 재산가나 권력자한테 재가하라는 권고도 받았으나 그때마다 그것을 거절했었다. 밀양군 청에서 두번째 자리에 있는 점잖은 신사라는 대상도 나섰고 읍내 ××모직공장 사장도 후처를 구했다. 영미의 장래를 위해서 그 무엇도 가릴수는 없었지만 꼭 자신의 몸을 파는것만 같이 느껴져 매번 웃는 낯으로 매파들을 물리치군 하였다. 겉으로는 좋은 낯이였으나 속으로는 울었다. 리혼후 그가 찾은 마음의 의지는 하느님이였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교신자로 되였다. 그렇다고 광신적인 교도는 아니였다. 다만 자기의 불행을 위안해주는 성스럽고 거룩한 우상을 찾았을뿐이였다. 영미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한번은 양순고모가 서울에 올라가 학비문제로 조민하와 《담판》을 했는데 김계순은 그것을 모른척 했다. 고모가 내려온 다음에도 구태여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었다. 이제는 영미가 대학 3학년생이다. …김계순은 대합실의 장걸상에서 일어섰다. 어째서인지 느닷없이 거제도에 가서 사는 안석순의 생각이 났다. 한번은 여기 역까지 그를 바래워준적이 있어서일가. 계순이 동래에서 떠나온지도 18년, 안석순은 몇번 밀양에 들린적 있었다. 여느때는 대구교도소에 안성태의 면회를 갔다오다가 또 어떤 때는 일부러 온적도 있었다. 김계순은 어린 영미를 데리고 거제도에 한번 가보았었다. 안석순이한테서는 이따금 편지도 왔다. 그를 못 본지도 퍼그나 되는것 같다. 안석순이도 이제는 세 아이의 어머니로 되였다. 날이 활짝 밝았다. 계순은 역사 대합실을 나섰다. 밀양시내는 아직 인적이 드물다. 김계순이 밀양강다리에 들어섰다. 중간쯤에서 계순이 멈춰서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름철의 탕수가 흐르는 밀양강이다. 산내천, 단장천 등 여러 가닥의 지류가 합쳐지는 밀양강은 락동강으로 흘러간다. 봄철이면 눈석임물이 콸콸 소리치고 가을이면 맑은 물빛에 푸른 하늘의 흰구름이 비끼군 한다. 밀양강다리를 지나가고 지나올 때 계순은 버릇처럼 잠간 걸음을 멈추고 강물을 내려다보군 했다. 그러면 아득히 흘러간 그 시절 이 다리우에서 만났던 청년, 안성태의 모습이 떠오르군 했다. 누구한테나 첫사랑은 있다. 첫사랑이 그대로 결혼으로 이어졌다고 다 행복한것은 아니다. 잊을수가 없으나 잊어버려야 하는것이 첫사랑이고 이따금 가슴속에 떠올라도 이내 생활의 파도속에 파묻히고마는것이 첫사랑이다. 바로 이 밀양강다리우에서 계순이 안성태를 생각할 때면 푸른 수인복을 입은 50대의 사나이가 아니라 여기서 만나던 그날의 청년모습이 떠오르는것이다. 결단코 말하거니와 계순이한테는 첫사랑이 그대로 마지막사랑이였다. 이 밀양강우에서만은 계순이 잠시나마 안성태의 모습을 애잡짤한 비애속에서 생각해볼수가 있었다. 18년전에 안성태를 한번 만나보겠다고 했을 때 자기는 확실히 경솔했던것 같으나 결코 그것을 후회한적은 없었다. 김계순은 산외면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이제는 여름철인데도 저 멀리 가지산이 봄날처럼 내굴안개에 뿌잇하니 솟아있다. 산도 들판도 초록색으로 단장되여간다. 그는 해가 퍼그나 떠오른 때에야 마을에 도착하였다. …계순이 함께 사는 고모네 집은 기와집이긴 해도 퇴락한 옛날 집 그대로였다. 마루에 서있는 기둥에 좀이 먹어 괴상한 문양처럼 여기저기 홈이 패워있었다. 시꺼먼 지붕기와는 이끼가 돋고 룡마루에서는 부시시한 새의 깃털처럼 가느다란 풀대들이 자랐다. 어떻게 된셈인지 기와지붕이 꽉 내리눌러놓아 집모양이 납작해진것 같았다. 이만해도 이 근처에서는 상등집이였다. 부엌을 내놓고도 세칸, 이 지방 특유의 대청이 가운데 자리잡고 그것이 앞마루와 련결되여있다. 마루아래 대돌은 어디서 언제 가져온것인지 이 근처에서 보기 드문 대리석을 굽이 높게 그리고 네모지게 다듬어놓았다. 김양순이 동자질을 하다말고 나와서 가방을 받았다. 《왜 고생스레 밤차로 오니?》 《더 있기가 마음두 편안찮구.》 《그래 유철이녀석은 어찌 됐능기야?》 《1심인데 7년형을 언도받았어요.》 《2심에선 어떻게 될가?》 《유철이 상고리유서도 쓰지 않겠다니까 아마 그대로 되겠지요.》 《그래두 상소는 해야지.》 《오히려 남의 <죄>까지 제가 다 걸머지려구 하는것 같애요.》 《원 녀석두.》 대견함인지 다소 불만인지 김양순이 혀를 끌끌 찬다. 《오늘은 좀 쉬려무나. 학교교무주임한테 내가 말하겠다. 모래동 밭김매러 가던 길에… 자, 들어가서 같이 아침밥을 먹자.》 나이 륙십을 넘었으나 여직 농사일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늙으신 고모한테 계순은 때없이 미안한 생각이 들군 하였다. 사실 딱히 그런건 아니겠지만 울산에 있는 아들네한테 가려 해도 자기를 홀로 두고 떠나지 못하는것 같아서였다. 고모사촌동생은 울산에 있는 조선소에서 일하는데 빨리 오라고, 풀죽이라도 나눠먹으면서 손자를 무릎에 올려놓는 락을 봐얄게 아닌가고 하는것이였다. 하지만 김양순이 이 고장을 뜨지 못하는 절절한 사연이 있는것도 사실이다. 김양순의 남편 즉 계순의 고모부는 전쟁전부터 지하투쟁에 나섰고 전쟁때에는 태백산빨찌산에서 싸우다가 희생되였다. 밀양까지 무슨 공작을 나왔다가 추격을 받고 가지산과 룡동산사이의 석남고개에서 전사했다. 경찰은 확인자가 두명이 있다고 하면서도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양순고모는 가지산기슭에 있는 석남사절간에 가서 불공을 드린다고 했는데 사실은 불공이 아니라 고모부의 제를 지내군 하였다. 계순이도 3월이면 그를 따라가군 하였다. 계순의 할아버지묘도 양순고모와 계순이 함께 성묘하였다. 할아버지는 3.1운동때의 그 력사에 기록된 《밀양학살사건》에 의하여 일본헌병들한테 무참히 학살되였었다. 김양순이 시신도 찾지 못한채 저 가지산기슭의 어느 이름 없는 곳에 묻힌 남편의 혼과 영영 떨어지는것 같아 그래서 창원에 있는 딸이나 울산의 아들한테로 가지 않는것이다. 한편으로는 조상대대로 살아오면서 온갖 희로애락이 다 슴배인 땅을 떠나기 싫어하는 그 무시할수 없는 향토애때문인것 같았다. 늙으면 그런 심정이 더해진다. 울산은 300리길, 그리 먼곳도 아니니 자주 오갈수도 있다는것이다. 계순은 피곤했다. 하루밤을 꼬박 밝힌 육체적피로가 문제 아니였다. 난생처음 앉아본 방청석, 재판정에서 터져나오는 《피고인》들의 부르짖음, 자신이 겪은 정신적인 긴장, 저도 모르게 가슴으로 육박해들어오는 사회적문제… 저녁때라면 밀양시내 성당에 들려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했을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는 잠이 들었다. 정오무렵에야 깨여났다. 너무 더워서 마루에 나오니 마루기둥에 걸린 편지통에 편지가 보였다. 그는 얼른 편지를 집어들었다. 영미한테서 온것이다. 방학이 림박해서는 편지를 하지 않던 그 애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침착한 성미 그대로 계순은 덤비지 않고 안에 들어가 가위를 찾아들고 편지겉봉의 끝머리를 잘랐다. 그다음에는 급히 속지를 꺼내 펼쳐들었다.
존경하는 어머님께
보통때는 그저 《어머니!》 하고 썼고 그것이 더 정답고 친근했었는데 일부러 존칭사를 쓰는 첫줄부터가 이상스러웠다. 어떤 격식이 있어야 할 심중한 사연인지. 이렇게 시작되는 편지는 처음이다. 본문의 시작에 또 《어머니!》이다.
어머니! 저를 용서하세요. 눈물을 머금고 빌어요…
대번에 계순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츰 글줄을 더 더듬을수가 없었다. 어떤 불길한 예감까지 들었다. 계순은 시선을 허둥대였다. (심상치 않구나. 무슨 일이? 실련? 아니면 부정스러운 남녀관계? 아니야 그럴순 없어. 내 정신 빠졌지. 무슨 그런 일부터 생각하다니…) 묘령의 처녀를 딸로 둔 어머니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걱정이다. 하지만 그런것 못지 않게 심중한 일이 생긴것 같다. 계순은 도정신을 하며 편지에 눈길을 박았다.
… 어머니는 제가 련애문제나 처녀로서의 품행에서 실수한다고 걱정하실수도 있는데(무릇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 말이예요) 이 기회에 말씀드리건대 그 점만은 어머니한테 숨긴적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란걸 맹세해요. 하지만 어머니, 저는 어머니한테 숨기고 죄를 진 일이 있어요. 엄마, 다 들어보시고 결심대로 저한테 매를 드시든가, 꾸짖어 인간이하로 밀어주시든가 해주세요. 내려가서 직접 말씀드리려 했으나 글로 쓰는것이 훨씬 수월한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써요. 어머니, 전 지난 겨울 하숙집이 너무 추워 아버지라는 사람네 집에 한동안 들어가있었어요. 봄이 되자 인차 나오긴 했어요. 지난 봄방학때 내려가서 어머니한테 이 말을 못했어요. 어머니가 두려웠어요. 그래서 학과가 딸리는것처럼 어머니한테 영어문법을 부지런히 묻고 세계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자꾸 졸랐던거예요. 사실 말해서 기억력의 덕분인지 저한테는 외국어가 다른 과목보다 쉬운데도 어머니한테 한사코 매달리는척 했어요. 얼마나 제가 위선적인 인간이예요? 고등학교졸업반때 전 하숙집으로 찾아온 아버지한테서 어머니와 헤여지게 된 얘기를 들었어요. 그후 부산의 외삼촌한테서 어머니쪽의 얘기도 듣구요. 하지만 여기서 뭘 더 속이겠어요? 맨 처음은 아버지가 남자로서 응당히 자존심을 지켰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머니를 원망도 했어요…
계순은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고 손이 떨렸다. 글자가 어룽거렸다. 무더운 날씨탓인지 아니면 마음의 충격때문인지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했다.
… 어머니, 한가지만은 믿어주세요. 제가 학비때문에 아버지를 리해하고 동정하려고 했던것은 아니예요. 한가지 계기가 있었구요. 영수란 애가 중학교진학을 위해 공부하는데 몹시 딸려해서 몇번 가서 가정교사처럼 학습지도를 했댔어요. 제가 교육학과인것만큼 그것이 제자신을 위해서도 하나의 실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쨌든 그 애는 저한테 이복동생이라도 동생이 아닌가요?…
(피줄이란 할수 없구나. 영미는 어쨌든 조씨네 피줄이지. 피줄이 켕기는거야 자연의 리치이구 신의 섭리인데도 난 새삼스레 놀래는구나.) 계순의 눈에 어리던 눈물이 잦아들고 대신 입가에는 서글픈 미소가 비꼈다. 딸을 불시에 빼앗기는것 같은 통절하고 허전한 느낌에 가슴이 미여졌으나 그것을 미소로 짓눌러버리려고 애쓰는것이였다.
… 그리고 하숙집이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고, 생활상편의를 추구한것 역시 속물적인 근성이였지요. 허위이고 기만이였지요. 아, 내 마음의 2중성!… 하지만 지금은 그 2중성도 사라졌어요.… 이렇게 내 마음이 갈라진것도 결국 오늘에 와서 돌이켜보면 부모님들의 리혼에서가 아니라 훨씬 소급해올라가면 다 분단의 비극에서 생겨난 그것, 그거라구 말해야 해요. 너무나 큰 비약인것 같아요. 하지만 아니예요. 분단의 비극으로 어머니는 첫사랑을 이루지 못했어요. 그러니 이건 분단의 비극에다 어머니와 나의 운명의 책임을 억지로 갖다붙이는게 아니지 않나요. 괜히 분석을 주관에 맞게 끌고가는 비약이 아니라구요. 몇달동안의 그 집에서의 생활은 정말 괴로왔어요. 그 집이 결코 나의 집으로는 될수 없었어요. 영수란 아이는 (그 애가 결코 나의 동생일수는 없어요!) 중학교에 들어가서 15살이 되는 해에 벌써 공부에는 정신이 없고 술, 담배를 배우고… 사춘기에 저보다 두세살 우인 계집애들과 일요일이면 인왕산이다, 인천 월미도다 하면서 밀려다니는데 무슨 장난질을 치는지 그거야 귀신이나 알노릇이죠. 난 미래의 교육자로서 그 애를 좀 교양주고 통제하려 했으나 내 말 같은건 숫제 귀등으로도 안 듣더군요. 그 애의 어머니란 녀자는 그 녀자대로 유한마담끼리 밀려다니며 향락에 물젖어있구요. 전두환, 리순자《대통령》부부를 등대고 벌린 장령자, 리철희의 특대형《어음사건》에도 끼였댔는데 용케 무사해지더군요. 물론 이따위 일은 다 저와 상관없어요. 난 어쨌든 대학기간만 참자고 결심하고 그 집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어요. 학비때문이지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버지라는 사람과 인연을 끊자고 결심하지 않을수가 없게 되였어요. 어머니, 좀 들어보세요. 요즘 대학가에서는 데모가 그칠새 없어요. 광주사태이후 투쟁의 기세도 걷잡을수 없어요. 리승만이나 력대 집권자들을 보고 《타도》라는 말은 했지만 전두환이처럼 《찢어죽이라》는 말은 없었어요. 《전두환 찢어죽이라》 오죽하면 이런 구호가 나왔겠어요. 우리 반에 광주가 고향인 학우가 여러명 있어요. 그들은 모두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이든 대학졸업반의 오빠이든 가두시민이든 가족친척중에 희생자가 없는 사람 한명도 없어요. 모두가 혈육을 무참히 살해당한 원한을 안고있어요. 나와 나란히 책상에 앉군 하는 오순희라는 애의 동생은 17살의 처녀였는데 글쎄 《계엄군》한테 발가벗기우고… 그놈들이 유방을 도려냈다구요. 아, 조선사람 이런 사람도 있을가. 난 첨에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어요. 글쎄 전두환이 《계엄군》에 환각제를 주어 사람을 짐승처럼 만들었다지 않아요. 그러니 전두환은 짐승보다 못한 놈이지요… 녀동생의 소식을 듣고 의식을 잃은 오순희를 곁에서 간호하느라고 내가 꼬박 밤을 밝혔댔어요. 아침에 피여난 그 애는 영 딴 애처럼 말도 안하고 눈이 새파래서 허공만 노려보군 했어요. 난 그 애가 실성을 했나 겁이 났댔어요. 정말 그 애는 다른 애가 되였어요. 광주 무등산에 갔다온 이후로는 대학학생회에 찾아가군 했어요. 어머니, 생각해보세요. 그 애의 뒤를 따라 함께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슨 인간이고 이 시대 이 민중의 젊은이라 하겠어요. 난 이미 여러차례 성토모임과 데모에 나섰고 최루탄연기속을 뛰여가면서도 무서운줄 모르겠어요. 어머니, 어머니라면 가만히 있을수 있겠어요? 며칠전에는 련행되여 류치장에도 갔었구요… 아버지는 하숙집에 찾아와서 나의 귀쌈을 쳤어요. 난 그한테 《당신은 누구예요? 나에게는 이제부터 아니 어제도 래일도 아버지는 없어요.》 하고 결별을 선언하려는데 그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울더군요. 그한테도 눈물이 있다는것이 웬일인지 그 순간에는 놀라왔어요. 그리고 그가 그지없이 초라하고 불쌍해보이더군요. 명색이 《법무부》관리이지만 아버지로서 인간으로서는 그가 몹시도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정 많은 가정부가 몇번이나 하숙집에 찾아왔으나 나는 마음을 돌릴수가 없어요. 조민하는 이제 학비도 끊을거예요. 계속 데모에 나선다면 그러겠다고 말했거든요. 그러니 난 어떻게 하겠어요? 고생 많으신 어머님을 믿고 학업을 계속할순 없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취업의 길에 나서 로동자들속으로 들어가는수밖에요. 혈혈단신이 된 오순희도 그런 길에 나서겠다 했구요…
마지막편지장을 손에 든 김계순은 망연자실해 앉아있었다. 마루바닥의 편지장들이 소낙비를 앞세운듯 한 서늘한 바람에 날려 대돌아래로 떨어졌으나 주을념을 못하고 계순은 그저 시꺼먼 매지구름이 밀려오는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딸이 영영 이 어머니품으로 돌아온것 같아 기쁘기도 했고 그가 영영 어머니의 품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리는것 같아 서글프고 두렵기도 했다. 다 자랐구나 하는 대견함이 처음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이제껏 철부지로만 여겼던 그가 어떤 성스럽고 벅찬 길에 나선 녀장부처럼 되여보인다. 천둥이 울고 소낙비가 쏟아진다. 서늘한 비바람에 가슴이 시원히 열리는것도 같다. 마당에서 물이 미처 빠지지 못하는데 그우에 대줄기같은 비발이 내리꼰진다. (방울이 지면 비가 많이 온다던데…) 왕청같이 이런 생각도 떠올랐다. 그러다가 그는 와뜰 놀라며 마루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야, 영미는 계속 공부를 시켜야 한다. 나의 희망, 나의 운명, 나의 삶의 전부가 그 애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끝까지 대학을 졸업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그 애가 《투쟁의 광장》에 나서게 내버려두는가 마는가 하는 그것이다. 하지만 그 애는 어머니의 의지로도 어쩔수 없는 곳에 가있는듯 싶다.… 여기서 계순은 계속 생각을 좇았다. 조민하가 바라지 않기때문에 자기는 그것을 바라게 되는 심리의 역작용이랄가, 반발이랄가, 그것으로 하여 영미에 대한 불안이 가셔지고 그의 의지를 따를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를 함뿍 맞은 김양순고모가 돌아왔을 때는 언제 비가 내렸나 싶게 하늘이 활짝 들리고 해가 났다. 멀리서 우뢰가 꾸르릉거리였다. 김양순이 영미의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나서 두 녀인은 오래도록 마주앉아있었다. 김양순이 한숨을 지었다. 이런 경우엔 여태 벌려온 《중개자》의 역할이 더는 소용에 닿지 않기때문이였다. 밤에 둘이 나란히 누웠을 때 김양순이 벌떡 일어나앉아 곰방대에 담배를 눌러담았다. 그는 요즘 밤이면 담배를 피우군 한다. 그는 말했다. 《얘, 영미에미야, 자네도 50이 넘었고 나도 60이 훨씬 지났다. 두 늙은게 무슨 청승맞게 이 집을 지키고 앉았겠니. 이 집을 팔고 많지도 않은 땅뙈기도 처분하고 자리를 뜨자.》 그는 고불통아구리에 다진 담배에 불을 살리느라 곰방대를 연거퍼 뻑뻑 빨고나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그란다 해두 저 가지산기슭에서 이 집 바깥어른이 다 알아줄거란데.》 벌써 30년전에 《국군토벌대》의 총에 쓰러진 어제날의 태백산빨찌산의 넋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사는 김양순이다. 울산에 있는 아들네한테 가려는 결심을 내리면서 고인이 된지 오랜 남편한테 량해를 바라는것이다. 《우리 같이 울산에 가면 거기서 셋이서, 아니 며늘애까지 같이 벌어서 영미를 마저 공부시키자. 내 창원에 있는 딸년한테두 학비를 보태라구 말할테다. 그들도 한때 네 오빠 신셀 졌는데,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지, 걱정말아.》 《작은엄마, 고마와.》 계순은 고모의 손을 부여잡고 잠시 놓지를 못했다. 이튿날, 계순은 영미한테 급히 왔다가라는 전보를 날렸다. 고모는 울산에 가서 아들과도 상론하겠다며 그리로 떠났다. 아들이 이미전부터 오라고는 했으나 막상 아무 예고없이 이사할수 없다는것이였다. 좋기는 단칸짜리라도 집이 따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다. 계순은 영미가 오면 지나온 반생을 다 털어놓으리라 작정했다. 그 애의 나이로 봐도 그렇게 할 때가 된것이다. 여태 일부러 그한테 속이려고는 안했으나 그렇다고 딸앞에서 자기를 드러낸다는것도 아주 면구스럽고 쑥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영미를 제 자식으로 만들려고 애쓰던 조민하가 정치적보신을 위해 돈을 코에 걸고 그렇게 나오는 이상 이제 딸한테 모든것을 털어놓을수 있는 도덕적인 권리가 생긴것이 아닌가. 그리고 딸을 나한테서 빼앗아가려는 조민하의 시도가 이것으로 끝난것은 아닐것이다.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것이다. 제 피줄을 당기려는것은 사람의 본능이고 륜리이니 그자체를 나무랄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의 출세와 야심을 위해서는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다나면, 더구나 이런 경우에 리성적인 사고보다 분별없는 감정과 행동에 매달리다나면 그가 영미의 운명을 어떤 파국에로 몰아갈지 누가 알랴. 영미도 그와 완전히 결별한다고 하면서도 딸의 뺨을 치고 주저 앉아 울고있는 제 아버지앞에서 말을 못했다고 한다. 그 영미의 심정이 리해가 된다. 어쨌든 영미한테 모든것을 다 터놓고 말해야 한다! 조민하의 도덕적인 저렬성, 그의 출세욕과 끈질긴 야심, 막다른 순간에는 딸을 희생시키면서라도 자기를 살리려고 애쓸수 있는 비인간성에 대하여… 딸이 단번에 그것을 리해하지도 믿지도 못할수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마음의 탕개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무슨 음모적인 방법도 마다하지 않을 조민하가 아닌가. 계순은 영미한테 하고싶고 또 해야만 하는 말들을 곰곰히 머리속으로 생각해놓으려고 했다. 허나 모녀는 만나자바람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손을 풀고 나앉아 하나의 손수건을 엇바꿔쥐며 딸은 어머니의 볼에서, 어머니는 딸의 볼에서 눈물을 닦아주었다. 끝없이 흘리는 눈물로 하여 더 긴말이 필요없는듯, 눈물속에 실책도 오해도 다 용해되는 그런 순간이였다. 하지만 하루낮 하루밤, 어머니는 딸에게 지나온 반생을 다 얘기했다. 영미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입에서 《안성태》라는 이름을 들었고 제가 어릴 때부터 자주 다니던 안석순이 바로 안성태의 누이동생임을 알았다.…
어머니의 바래움을 받으며 밀양역으로 걸음을 옮겨가던 영미는 속으로 뇌였다. (그 사람… 그… 안성태란 어떤분일가.) 안성태라는 그 사람은 지옥같은 감옥속에 있다. 그 암흑속에 종신형의 장기수들이 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운동권의 《좌익수》들조차 요즈음 일체 면회나 련계가 금지였다. 철창속에 갇힌 그들을 도저히 상상해낼수가 없다. 종신형… 그러니 무기수들은 영영 어둠과 세월속에 파묻혀버린것이 아닌가. 그래도 어머니는 안석순이를 통해 한가닥의 실오리같은 소식을 듣고있었다. 영미는 자기가 서울로 공부를 떠날 당시 어머니를 돌이켜보았다. 그러나 기억나는것은 없다. 방학에 집에 내려와보면 어머니는 전보다 더 부지런히 읍내의 성당에 다니였다. 또 거제도의 안석순이한테 찾아갔다는 말을 작은할머니한테서 들은적도 있었다. 영미자신은 《좌익수》들의 세계를 너무나도 모르고있었다. 사회와 격페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의 의혹속에 묻혀있을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 세계를 파고들어 그 암흑속에서 안성태라는 그분을 찾아내야 한다. 그는 어떤 인간일가? 그의 삶의 목적은? 그의 《죄》는?… 어떤분이길래 어머니의 심장속에 자리잡았었는가? 어머니가 그토록 못 잊어하는 사람을 당장 눈앞에 보고도 싶었다. 어머니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자신과 우리의 학우들을 위해서도 그를 알아야 한다는 충동이 불같이 생겼다. 하지만 영미는 역사에 당도했을 때까지도 복잡한 상념속의 말을 단 한마디도 어머니한테 내비치지는 못했다.… 작별의 역두에 선 영미의 생각은 착잡했으나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공부를 계속할수 있다는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그런 생각과 함께 어떤 미지의 운명에로 새로이 달려가는듯 한 기분이기도 했다. 렬차가 역홈에서 벗어나며 전철점을 덜컹덜컹 지났다. 영미는 승강대에 그냥 서서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모습만을 바라보고있었다. 그러자 영미는 자기가 지금 어머니로부터 멀어지는것이 아니라 더욱더 깊이 어머니의 품속으로 안기는듯이 생각되였다. 그리고 미지의 운명에로 내달리는듯 한 자기를 손 저어 보내주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더욱더 뜨거운 혈육의 정을 느끼는것이였다.
4
여전히 숨막히는 감방, 여름이면 감방안의 악취와 어디선가 기여드는 구데기들, 독살스런 교도관들의 눈초리, 겨울이면 물통안의 물이 어는 감방… 눈이나 비가 오면 그 제한된 《운동》마저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안성태는 눈을 맞고 비를 맞은지가 기억에 삭막하다. 비… 비… 할 때면 뭐니뭐니 해도 51년 여름의 장마가 기억에 떠오른다. 그렇듯 지겹게 내리던 비, 지금은 그때처럼 비를 맞고싶어… 눈… 눈… 할 때면 적후 2전선시절 사단의 선두부대로 끝없이 쏟아지는 눈을 뒤집어쓰며 태백산줄기를 따라 경북관내에까지 내려왔던 때의 그 눈… 눈… 그때처럼 온몸에 눈을 뒤집어써봤으면… 한데 여기는 비나 눈이 오면 《운동》을 금지시킨다. 이런 날씨에 탈옥이라도 있을가봐 겁내는것이다. 15척의 바깥담장에 중간담장들, 철문들, 수인들의 손발을 얽어매놓는 족쇄와 수갑… 그래 놓고도 불안해하는것은 가해자의 본능이라 할가. 그런데 전주교도소는 지형상 특이한 점을 가지고있다. 완주군에 둘러싸인 이 전주라는 도시가 자리잡은 지대는 서북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따라서 도시를 끼고 도는 만경강에 흘러드는 이 강의 지류들은 서북쪽으로만 흐른다. 교도소가 경사지에 있다나니 이따금 멀리로 도로와 집이 보이고 교회당이 보이고 가로수사이로 뻐스가 지나가는것이 보인다. 물론 그것이 수인들의 눈을 놓지 않는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뜻을 바꾸고 감옥에서 나가서 그 도로를 따라 가로수사이를 걸어 어느 집에 마음대로 드나드는 《자유》보다도 좁은 감방에서 자랑높은 견인성과 존엄의 《자유》를 더 귀중히 여기는 그것, 그것이야말로 리해관계에 쫓기며 남을 속이고 속히우는 그런《자유》에 대비할수 없는 자유인것이다. 하다면 저기 멀리 보이는 사람, 집, 뻐스가 마치도 분주히 오가는 개미들처럼 그지없이 작고 처량해보이는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고 속세를 떠났다고 하는 중들처럼 이 세상을 굽어보는것은 또한 아니다. 오히려 장기수들이야말로 사람들과 쉬임없이 교제를 나누는 다정다감한 생활을 바라는 인간중의 참인간들이 분명함에랴. 그들은 자유를 구속당하는 자기 처지를 변명하지 않았으니 그들한테는 자기들이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이라는 긍지와 자부가 있다.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종신형의 무기수라는 끝날줄 모르는 옥살이를 해나갈수 있겠는가. 얼음장밑에서도 강물은 자유롭게 흐른다. 그 어떤 폭압조치나 고문, 가혹한 《징벌》에도 멈추지 않는 그들 고유의 줄기찬 생활의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을 하나로 묶어가는 힘, 그것이 바로 동지호상간의 깊은 련대감이다. 자기의 곁에 동지가 있다는것으로 그들은 자유를 느끼는것이다! 각자는 자기의 죽음을 어느때든 각오하고있지만 다른 동지의 죽음을 먼저 알면 《사람 죽었다-!》 하고 온 사동이 떠나갈듯이 복도에 대고 소리친다. 그것을 되받아 벼락같이 웨치는 고함소리, 《사람 죽었다-!》… 그 비통한 절규, 그 분노… 그것이 또 한 동지를 바래우는 고별의 인사, 령전에 다지는 맹세가 아닌가… … 안성태는 3사동 1방에 있었다. 다섯명이여서 몹시도 배좁았지만 독방보다는 나았다. 왜냐하면 고문보다 무서운 고독감을 덜수 있기때문이다. 새우처럼 꼬부리고 자고나면 몸이 경직상태에 들어간것 같아 한동안 팔다리를 펴낼수가 없었다. 아침 9시경, 교도관이 문을 열었다. 안성태를 교무과로 부른다는것이다. 그의 뒤에서 쇠문소리가 울리고 그는 교도관을 따라 복도로 걸어간다. 뒤에서 오는 다른 교도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빨리 갑시다. 빨리요.》 여느때 없는 곰살궂은 목소리, 오히려 귀에 설다. 하긴 광주사태이후 교도관들속에서는 이상한 변화가 생긴것 같다. 어떤자는 《좌익수》들한테 《추파》를 던지며 《호의》를 보이려고 했고 어떤자는 노상 불안해서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였다. 그런가 하면 위기의식때문인지 더욱 포악해지고 잔인해지는자들, 공무원으로서의 임무에 여전히 충실하다는듯 턱을 쳐들고 허세를 부리는자들도 있다. 적어도 과장급이상은 여전히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거들먹거리였다. 어쨌든 그들의 정신상태가 사분오렬되고있다는 느낌이다. 요즘 전주교도소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폭동을 앞둔 때처럼 도리여 긴장감을 불러온다. 감옥안에서는 《바깥세상》에서 전두환의 군부통치를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그에 따라 전두환의 《반공》소동이 미친듯이 벌어지고있는 그 실상을 다는 알수 없다. 하지만 감옥에 흘러드는 공기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그것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무렵, 전두환은 《중앙정보부》를 《안전기획부》로 변신시키면서 그 우두머리들을 대대적으로 교체시켰다. 《중앙정보부》와 개별선으로 련결된 《교정국》산하 각 교도소의 소장, 교무과장, 전담반장, 교회사들은 제나름으로 전전긍긍해하고있었다. 어쨌든 그네들의 심리적파동은 《좌익수》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어차피 나타나기마련이다. 또다시 10년전처럼 《전향테로》의 광풍이 크게 불어닥치리라는 예감도 있었으나 아직은 교도소안이 조용한듯 했다. 하긴 지하실이 많은 여기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누가 알랴. 하지만 20여년세월 옥살이에서 얻은 륙감에 의하면 《귀신도 모르는》 일이 아직은 있는것 같지를 않았다. 하지만 조만간에!… 이것은 3사동 1방에 있는 다섯 수인의 공통된 예감이였다. 교무과가 있는 청사에 다가서자 성태는 매번 그런것처럼 더욱 마음이 긴장되였다. 어저께 요청한 소장면담인데 왜 보안과도 아니고 교무과인가? 《남민전》관계자들이 여기에 수감된것은 얼마전이였다. 그런데 통방으로 타전되여오는것은 그들의 처지가 너무도 렬악한 상태에 있다는것이다. 가족과 면회도 못하고 《금서목록》외의 책도 못 본다고 했다. 대부분 대학생인데 대학교과서도 들여보내지 않다니? 성태는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얼마나 흥분했던가. 《남민전》이 《자생적인 조직》이라는것을 놈들도 인정하는터였다.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기반에서 남조선을 해방하고 자주, 민주를 달성하여 조국통일을 이룩하려는것이 그들의 투쟁강령이였다. 대구 경북대학교 교수인 안재구수학박사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성원들이 체포된것은 1972년, 그동안 많은 예심기간이 있었다. 안재구박사가 사형을 언도받았을 때 그것을 취소할것을 요구하여 세계적인 규모에서 학자들의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안박사는 무기형으로 되고 조직성원인 대학생들은 장기형을 받고 투옥되였다. 이 소식을 통방으로 알게 된 3사동 1방에 갇힌 다섯명의 장기수들은 말했다. 《과연 장하오.》 《자연과학자인 수학박사도 참을수 없어 투쟁에 나섰구만.》 《세계적인 학자라는데 참…》 《통일투쟁에서 이남땅에 뿌려지는 씨앗이고 어둠을 태울 불꽃들이요.》 누군가 시처럼 뇌이였다. 《옳소. 그들은 우리의 전우이고 동지들이요. 그들의 처우를 개선시키는것은 우리한테 지워진 마땅한 의무가 아니겠소?》 안성태의 이 말은 투쟁선언처럼 울리였다. 더구나 안재구박사가 다른 사동에 있다가 여기 3사동에 왔다는것이 그들을 더욱 흥분시켰다. 어떻게 된셈인지 운동시간에도 그를 볼수가 없다. 혹시 앓고있는지? 그런데 이무렵 통방신호로 격동적인 소식이 퍼졌다. 《북에서 김일성주석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제시, 획기적인 통일방략, 두 제도 한나라 3대원칙의 확고한 구현…》 그러니 《남민전》투쟁강령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에로 지향되는 그런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그들을 지원하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래서 더욱 견딜수 없는 의분에 타오른 안성태였다.… 성태는 신심에 차있었으나 결코 자만해서는 안된다고 자신을 다잡았다. 이번의 집단단식투쟁은 이제 시작의 시작이다. 일주일동안에 걸쳐 통방으로 의견일치가 이루어졌다. 다른 때와 다른것은 확실했다. 사실 집단단식이 만장일치로 시작되기는 어려운데 이번은 그렇지 않았다. 될수록 힘을 축적하고 모험을 삼가해야 한다는 감옥안의 《온건파》들도 이번 집단단식에는 적극 응해나섰던것이다. 단결만이 승리의 무기이다. 성태는 이런 무기를 제가 안고 가는듯 마음이 든든해졌다. 안성태는 교무과의 출입문앞에 다가섰다. 《빨리 들어갓!》 안에서 들으라는듯 꽥 소리지르는 호송교도관의 높은 목청… 그런 일이 얼마였던가. 문이 열리면 즉시에 방안에서 주먹과 발길이 날아와 일격에 자기를 꺼꾸러뜨리던 때가… 성태는 반사적으로 온몸에 전률이 일었다. 교도관이 앞에서 문을 열었다. 성태는 한순간 멈칫하다가 갑자기 쑥 들어섰다. 뜻밖에도 방안에는 세명의 남자와 한명의 녀자가 있었다. 두 남자가 제복차림, 나머지 한 남자와 녀자가 사복쟁이이다. 성태는 어리둥절했다. 성태는 긴 탁자를 마주한 장의자에 가서 앉았다. 장의자 량끝에 두 교도관이 각기 뒤짐을 지고 섰다. 잠바차림을 하고 가운데 앉은자가 이곳 전주의 교무과장이다. 이놈도 일찌기 60년대와 70년대초반에 광주교도소 교무과장으로 《좌익수》를 전향시키는데서 악명을 떨친자이다. 성태는 태연해 지려고 애썼다. 《그래 면담내용은?》 과장의 질문이다. 한데 그 어조는 퍼그나 풀기없이 들리였다. 얼굴에 떠돌던 표표한 기상이 없고 어딘가 주눅이 든것 같은 표정이다. 만사를 귀찮아하는듯 한 지친 기색이기도 하다. 성태는 잠시 마주보다가 과장의 량쪽에 서있는 사람들을 의문스레 둘러보았다. 소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는데 왜 여기서 말해야 하는가. 우선 교무과장의 곁에 선 보안과장을 보았다. 그자는 풀기없어진 교무과장과는 달리 여전히 뱁새눈에 독기가 어리고 제딴에 아주 도고한 기색이다. 배허벅에 매달린 권총집우에 손을 얹은채 성태를 독살스레 쏘아보고있었다. 이 보안과장이 교무과에 와 장기수들앞에 서있는 일은 드물다. 그놈은 숫제 잠자코 있지만 그놈한테서 풍기는 독기는 다른 교무과성원들을 찜쪄먹게 서리차다. 하지만 성태는 그따위는 코웃음치며 바라본다. 보안과장놈은 순전히 배경처럼 분위기를 돋구느라 서있는것이다. 그러나 성태의 주의를 끄는것은 전날에 악명을 떨치다가 지금은 풀기없이 있는 교무과장도 아니고 허세를 부리며 독을 풍기는 보안과장도 아니다. 교무과장의 곁에 서있는 또 한사람인 사복쟁이 전향공작전담반장 리상규였다. 40대중반의 사나이로서 두리두리한 얼굴에 근시안경을 썼다. 영양이 좋은 얼굴에 셈평좋은 인상인데 지금 다소 표정이 굳어져있다. 그 리상규가 교무과장을 피끗 돌아보더니 말했다. 《과장님, 우선 담당교회사부터 소개해야지요?》 교무과장은 시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리상규가 한손을 들어 자기옆에 서있는 처녀교회사를 가리켜보이며 안성태한테 말했다. 《인사하시오. 방소희주임입니다. 전남대출신으로 당년 25세, 심리학전문입니다.》 방소희가 안성태한테 눈인사와 함께 까딱 머리를 숙여보였다. 처녀의 얼굴은 해말쑥하고 갸름해보였다. 어째서인지 안경을 쓰면 좋겠다는 인상이다. 문득 이런 얼굴을 어디서 보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신통히도 20여년전에 서울구치소에 찾아 왔던 그 제수의 얼굴이 이러했지. 꼭 자매간이라고 하면 맞을것 같았다. 곧바로 안성태를 건너다보던 리상규가 재촉하듯 《그럼… 어서 말을 해보시오.》 하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가만 이 안경쟁이는 여태 내가 별로 만난적이 없지. 저자가 나를 불러본적이 없었는데… 어디서 뭘하는지 볼수가 없더니 오늘은 여기서…) 《그럼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제기하는것은…》 그러자 보안과장이 두눈을 쪼프리며 독살스레 《우리라고 하지 마오. 내가, …내가 이렇게 말하시오.》 하고 성태의 말을 사정없이 잘랐다. 《그럼 그렇게 하지요. …제기하는것은 <남민전>관계자들에 대한 대우를 개선해달라는겁니다.》 그제야 탁자우에 놓았던 두팔굽을 떼며 교무과장이 뒤로 몸을 제꼈다. 《여보, 안선생, 치마폭이 너무 넓소에. 인심좋은 가시나 동리시아비 열둘이라더니, 이거야 너무하지 않소?》 성태는 숱진 두눈섭을 모아붙이듯 하며 상대방을 쏘아보았다. 《과장님, 그건 나와 함께… <좌익수>전체의 의견이기도 합니다.》 교무과장은 표정이 더욱 랭랭해지며 내뱉듯이 물었다. 《그래 무얼 어찌자는게요?》 《그 젊은이들은 가족과도 련계를 못 가지고 <금서목록>이외의 책도 한권 보지 못하고있습니다.》 교무과장은 불시에 표정이 달라지며 륙십가까운 로인의 야릇한 한숨까지 내뿜었다. 《안선생도 이젠 50대중반을 넘은 나이인데… 왜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을 동조해서 같이 뛰는지 난 정말 모르겠소.》 성태는 몸을 곧추 펴며 고개를 쳐들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요? 그들도 우리도 다같은 통일운동자들입니다. 같은 성업에 나선 사람들이구요.》 《또, 또 정치적선동이구만… <남민전>은 반체제조직이고 당신넨 그… 저…》 《<남민전>은 우리와 결국 같은 목적으로 싸우던 동지들이요.》 《동지, 동지, 이젠 그 말에 막 신물이 나오… 그건 상급에 문의해야 할 문제요. 상급의 지시가 있어야…》 《과장님, 그런 말 마시오… 우리도 이젠 자그만치 20년을 넘어 감옥밥을 먹는 사람들이요. 이런 문제는 교도소의 권한에 속한다는것쯤은 알고도 남았소. 교도소규정을 여기서 론할 필요야 없지 않습니까.》 《안선생, 터놓고 말해봅시다. 그자들의 조직은 잔뿌리까지 아직 채 다 들춰내지 못했소.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그들과 외부의 련계를 허용하겠나 말이요? 우리 립장에서 좀 생각해보는게 좋겠소.》 《아니, 그 사건이 언젠데? 아직도 채 다 들춰내지 못했다면 검찰은 도대체 뭐하고있어요? 안 그래요?》 교무과장은 어이없다는듯 입을 벌리였다. 《하, 참. 이젠 검찰까지 비난하누만. 정말 치마폭이 열두폭이야. 하긴 검찰비난은 나도 크게는 반대는 없소그려… 이만합시다. 안선생.》 《아니, 과장님, 우린 대답을 들어야겠습니다.》 교무과장이 벌떡 일어났다. 《뭐라구? 그건 안돼!》 《그럼 우린 전원이 단식에 들어가겠소.》 《뭐? 또 단식? 해볼테면 해봐, 모두 벌방에 쓸어넣고 개밥을 먹이겠어. <남민전>패들은 운동도 금지, 목욕도 금지, 모두 금지, 금지, 알겠어?》 그자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놈은 계속 소리쳤다. 《여! 3530번, 똑똑히 들으라. 넌 계속 이런 일에 앞장서지? 네가 전향을 취소받구 비전향으로 돌았다구 그냥 내처둘줄 알아? 우린 벼르고있어. 이번엔 너를 단번에 꺼꾸러뜨린다. 두고보라! 네 문제는 <법무부>적으로도 특수대상으로 지목돼있다!》 펄펄 뛰는 그자앞에서 성태는 오히려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것을 느끼였다. 스스로도 침착해지고 태연자약해지는것이 이상했다. 흥, 네 취약성이, 네 신경과민이 여기서 드러나는구나. 너는 네가 점점 어떤 길로 가고있는가를 막연하게나마 의식하고있구나. 대전의 살인자 라구표도, 광주의 신도균도 지금 너같이 이런 기형적인 정신상태에 있을테지. 피해자인 우리가 가해자인 너희들을《리드》하는 그런 때는 오고야말리. 그런 때를 보지 않고는 내 죽지 않을테다… 명심하라. 죽음도 이제는 우리의 길을 막지 못한다. 이건 《남민전》에 대한 단순한 련대투쟁이 아니다. 이런 투쟁만이, 이런 투쟁을 멈추지 않을 때만이 우리의 의지가 굳세지는거다… 우린 동면하는것도 아니고 그저 기약없이 때를 기다리는것도 아니다. 투쟁으로만이 가는 길에서 탈선하지 않고 더 열심히 더 옳바르게 갈수 있다. 투쟁만이… 성태는 흥분에 못이겨 뭐라고 더 부르짖으려고 했으나 교도관들이 떠미는 바람에 거기서 나오고말았다.
5
단식투쟁이 끝을 보고 복식에 들어간 날, 성태는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었다. 땅에 잦아드는듯 하던 육체에 재생의 활력이 서서히 피여나기 시작했다. 뭐니뭐니 해도 승리의 희열감이 그를 다시 일떠서게 한셈이다. 감방안에서 네사람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앉았다. 그들은 승리를 축하하듯 서로 손을 잡았다. 물론 닷새동안의 단식이 결코 순탄한것은 아니였다. 어느 감방안에서 급한 환자가 생기지 않을가 하는 거기에 신경을 쓰다나니 성태는 누워서도 불안하기만 했었다. 한구멍으로 물이 새면 제방뚝이 터지듯 집단단식에서 한사람의 육체에 허점이 생기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경우가 있는것이다. 그런가 하면 나흘째 되는 날 바로 어저께 성태는 사동안의 어느 독감방에 끌려갔다. 거기서는 교도관 다섯놈이 달려들어 사지를 붙드는 바람에 꼼짝할수가 없었다. 성태는 강제로 입을 벌리고 《오리주둥이》를 밀어넣고 쏟아넣는 미음물을 내뱉다가 기도에 물이 들어가 개키면서 깜빡 의식을 잃기까지 하였다. 같은 감방에 있는 다른 《좌익수》 세사람도 견디여냈다. 집단단식에 들어간 열아홉명 전원이 일치단결해서 어쨌든 이겨냈던것이다. 《남민전》성원들이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혈육들을 만나게 되였고 책들도 더러 받아서 보게 되였다. 물론 《금서목록》에 있는 정치서적은 여전히 엄금이고 대학교과서나 약간의 기술서적이다. 《남민전》관계자들은 통방이나 소지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보내왔으며 운동시간에는 독거운동장으로 들어가고 나오고 하다가 얼핏 스칠 때가 있으면 두손을 맞잡아 머리우에 높이 쳐들어 흔들며 감사와 련대, 고무와 격려를 보내오군 하였다. 그런데 《남민전》관계자들을 지원한 이 사실이 뜻밖에도 일반수들한테서 불러일으킨 반향은 대단한것이였다. 전주깡패의 두목이라는 《서주먹》이 안성태를 찾아와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존대를 하며 《우리 애들 침 좀 놔주시면요 다 생각이 있으쎄.》 하고 뇌까렸다. 이자한테는 늘 많은 령치금이 있었다. 겉으로 떵떵 으르는것 같은 교도관들도 속으로는 은근히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다. 《서주먹》은 안하무인으로 으시대면서 비전향수들에 대해서는 그저 《빨갱이》라고 외면해왔었다. 그러면서도 《서주먹》이 때때로 안성태한테 침맞으러 오군 했는데 그때마다 자기의 령치금중에서 얼마를 《령감한테 넘기겠다.》고 희떱게 놀았다. 안성태는 말했다. 《그런 돈소리를 하겠으면 다시 오지 말라구. 난 무상치료를 하는 사람이야, 무상치료. 알아?… 자네가 무상치료대상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따는 그렇다구.》 《어랍쇼. 무상치료… 처음 듣는 소리랑께로.》 그러면서 침맞은 배를 슬슬 매만지며 《어, 무상치료가 좋긴 좋구만, 명치끝에 매달렸던게 뚝 떨어진것처럼 시원해.》 하고 이기죽거렸다. 그런데 그가 지금 아주 심중한 낯빛으로 올방자를 틀고 앉아 이따금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폈다 하면서 상대에 대한 존경의 감정을 나타내는 몸짓까지 하였다. 하긴 깡패가 자기 적수한테 항복했을 때는 반드시 무릎을 꿇고앉아 큰절을 한다지 않는가… 성태는 말했다. 《자넨 보안과장의 특별승인이 있었지만 다른 애들 침맞는건 안될거야. 시끄러울수 있어.》 《선생님, 그까짓 보안과장 정종화 거지발싸개같은 그 정씨네 허풍선이. 그 녀편네도 내 잘 알구, 그 집 가시나이도 내 알아두 깊이 알지. 어디까지 아는가 하문… 흐흐흐.》 《여보게, 자네 나이 몇살인데 나이 쉰다섯인 사람보구 여기서 그런 실없는 소릴 해. 그라겠으문 어서 가보라구.》 《아, 잘못했세라 선생님, 참말인게라.》 《한데 자네네 아이들한테 무슨 침맞을 애들이 그리두 많아?》 《아, 글쎄 령치금으로 간수들을 삶아놓고 사식을 해대는데 쩍하면 배탈이지요. 배를 곯다가 먹으니 락자없이 얹힌다니께요.》 서주먹은 앉은채로 불시에 안성태한테 몸을 굽히며 속삭이였다. 마치도 좁은 감방안에 바투 모여앉은 다른 네사람은 없고 오직 성태 혼자만이 있기라도 한듯… 《선생님, 우리 애들이 령치금으로 선생님들을 지원하려구 해요.》 《남의걸 훔친 돈으로?》 《아따, 선생님두 참. 우린 부자놈들것만 크게 털어요. 시시한 따기군으로 보지 마시우.》 그러면서 서가는 오른쪽주먹을 쳐들며 흔들어보였다. 성태는 새삼스레 그 주먹을 바라보았다. 《서주먹》이라고 해서 주먹이 쇠덩이처럼 크고 묵직한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평범한 보통손이였다. 몸도 우람지지 않고 고양이처럼 날파람있고 영악스러워보였다. 하긴 진짜 싸움군은 체소한 형이라더니… 《선생님, 우린 두말 모르네요. 깨끗한 돈으로만… 부자놈들한테서 뺏은거야 깨끗하지요. 안 그래요?》 《그렇다면 좋네. 그러지 않아도 우리 동지들가운데 병으로 신고하는분들이 많네. 깡보리밥을 곁에서 씹어서 입에 넣어주는 형편이야. 요샌 안재구박사선생까지 위탈이 나서 먹지를 못해.》 《개자식들, 박사선생한테야 쌀죽이라도 좀 쒀주어야지. 온 세계가 떠드는 안박사라던데… 세상은 정말 개판인기로.》 《이남세상이란 말이겠지?…》 성태가 조용히 덧붙여 말했다. 단식투쟁의 효과는 이렇듯 일반수들한테까지 번져 그들의 비전향수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는 소지한테서 듣자니까 교무과장놈이 보이지 않는다는것이다. 《앓는 모양이지.》 《늙은 늑대가 앓는걸 봤어?》 《하긴 그래. 보지는 못했지만서두.》 감방안에서 오가는 말이였다. 자진해서 일반수들만 있는 교도소로 갔다는 소리도 있고 전두환이 《중앙정보부》를 《우라까이》하면서 그 여파로 청송보호감호소의 한직으로 밀려났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도소측은 《사회참관》놀음을 벌리였다. 성태로서는 처음 닥뜨리는 일이였다. 원래 《사회의 발전상》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이런 참관놀음이 전향공작전담반의 업무속에 포함되지만 그것을 보장해야 할 보안과측에서는 이런저런 시끄러운 일을 당할가봐 잘 응하려 하지 않았다. 교무과에서도 별로 큰 《실적》을 거둘수 없다고 해서 그들대로 한다고만 말로써 굼때는 형편이였다. 어쨌든 이것은 교무과가 내미는 일이다. 과장놈이 없으니 그 과장자리를 따자고 전담반장 리상규가 이런 일을 내밀어 보는건가. 한데 모를 일이다. 이게 점수를 딸 놀음은 못되지 않는가 하는 그것이였다. 원래는 기업체나 공장, 산업시설을 보여주는것으로 되여있다. 하지만 후백제의 옛 도읍으로 그 명색만 남은 전주에는 그런게 거의나 없다. 지방특산인 부채나 왕골수공업품생산을 보여줄수는 없고… 그래 그런지 절간을 찾아간다는것이다. 마침 가을이다. 교무과, 보안과족속들이 들놀이나 산놀이를 하고싶을수도 있었다. 송광사라고도 하고 금산사라고도 한다. 정확한 방향은 대주지 않았다. 차라리 금산사라면 좋겠다. 3층탑으로 된 대웅전, 금산사는 이름있는 사찰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아침 10시, 다 낡은 소형뻐스에 네명의 장기수, 3명의 교회사, 5명의 교도관들이 탔다. (장군이 하나인데 풍각쟁이 아홉이라더니…) 3명의 교회사들중 한명이 녀자, 바로 안성태의 담당교회사인 방소희이다. 그 녀자는 아래에 바지를 입고 우에는 연분홍브라우스를 입었다. 교회사들은 대체로 잠바차림이고 교도관들도 오늘은 제복이 아닌 춘추복차림이다. 뻐스가 덜컹거리며 교도소정문을 빠져나왔다. 뻐스는 시내와는 반대방향으로 달린다. 쇠그물을 얼기설기 씌운 차창으로는 잎새를 털어버린 가지들에 남은 감알들이 보이였다. 창호지의 원료인 닥나무의 잎새들이 더러 떨어지지 않은채 바람에 잔등을 희뜩거리였다. 오래만에 보는 농촌의 가을풍경… 웬일인지 숨이 탁 막히는것 같았다. 성태는 이쪽지대는 와본적이 없다. 따라서 이 고장에 대한 애착도 없다. 거기다가 경상도출신들이 전라도지방과 거기서 사는 사람들을 깔보게 되는 그런 편견도 없지는 않았으니… 하지만 광주사태이후 성태는 이 고장과 여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정이 생기는것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력사의 풍운속에서 호남벌사람들은 반항아의 혈통을 이어왔다. 갑오농민전쟁, 광주학생사건, 려수폭동, 지리산빨찌산 그리고 몇년전의 광주항쟁… 성태는 뻐스의 맨 뒤좌석에 혼자 앉아있었다. 뒤를 돌아보던 방소희가 일어나서 그의 옆에 와앉았다. 아무도 이상히 생각할것은 없다. 담당교회사이니까. 성태는 문득 딸애생각이 났다. (그 애들도 이젠 이만 나이가 됐겠지. 아기의 보드라운 손을 만져주던 때가… 헤여질 때 세살, 한살… 그러니 스물다섯, 스물셋… 다 커서 결혼했을수 있다.…) 그는 가슴을 허비는듯 한 애절한 생각을 말자고 머리를 돌리며 방소희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도 스물다섯이라고 했지. 수수한 처녀라는 인상이 여전하다. 교도소라는 환경에는 그가 어울리지 않게 생각되고 수인들을 대상으로 그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보니 안성태는 그와 별로 마주앉아본것 같지 않다. 들리는 말에 그가 일반수들을 상대로 《심리학》을 적용해본다나… 성태는 자기의 딸과 나이가 같은 이 처녀와 인간적인 얘기를 나누었으면 하는 충동을 느끼였다. 그런데 먼저 방소희가 성태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안선생님은 어느 대학 나오셨다죠?… 전공부문은요?》 제 직분을 위해 담당수인을 파악하려는것은 아닐것이다. 그런것쯤은 이미 알고도 남았겠는데… 성태의 대답을 듣자 방소희가 말했다. 《참, 좋은 전공이네요. 집을 짓는다는건 정말 훌륭한 일이죠. 그건 지금도 그렇고 래일도 그럴게고. 우리 선조들의 리상이 초가삼간 집을 짓고 하는게 아니였나요.》 방소희가 돌아보며 방긋이 웃었다. 순결하고 깨끗한 미소였다. 성태는 조용히 혼자말처럼 뇌이는데 방소희가 한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그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난 20여년을 집 하나 짓지 못하고있소. <통일의 집>을 짓는다고 늘 자기를 위안하지만…》 방소희가 들릴락말락 입을 열었다. 《통일의 집… 참 뜻이 깊은 말이네요.》 잠시후 방소희는 안성태가까이에 바투 다가앉으며 조용한 어조로 천천히 말했다. 《전 <전남대>를 나오고… 심리학전문이였죠, 도스또옙스끼의 <죄와 벌>을 읽고 막 미치다싶이 했죠. 아니 정말로 미치였죠. 웬만한 사람 읽기 힘들다고 줴던지는걸 전 세번씩이나 읽었으니 미치긴 미친거죠. 범죄심리, 이게 저의 목표였어요. 그래서 여기 왔죠. 그런데 와보니 교화란 말뿐이고 그저 매, 매, 이게 다죠.》 방소희의 입은 안성태의 왼쪽귀가에 와있었다. 《선생님, 그때 교무과장이 있고… <남민전>관계자련대를 위해 면담할 때… 선생님 말씀은 다 옳았어요.》 안성태는 놀랐다. 이 처녀교회사에 대한 경계심이 부쩍 생겼으나 그는 그것을 앞을 둘러보는것으로 표현했다. 차안에는 리상규반장과 교회사, 교도관들이 있었던것이다. 그러자 방소희가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괜찮아요. 전 어차피 물러갈 사람이니까요. 여긴 마음에 없어요. <전남대>교수인 저 상규반장님의 부인의 추천으로… 그리고 저 반장님의 강권에 못이겨 왔더니만.》 성태는 뻐스좌석의 앞쪽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저 사람은 어느 대학을 나왔소?》 《서울대 철학과죠.》 《그러니 실직당했거나 일자리가 없었던게로군.》 《상규반장님 경우는 좀 달라요… 하긴 마찬가지라고도 할수 있구요.》 그러다가 방소희는 성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뻐스의 발동소리때문에도 그런 식으로 말해야만 했다. 《현실도피라 할가. 그러루한것 같아요. 교도소담장안은 수인들을 구속하지만 어떤 사람들한테는 안식처, 은신처랍니다.》 안성태는 놀라서 방소희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방소희가 낮은 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꾸 나를 보지 마세요. 앞을 보면서 얘기하세요… 그러니 안식처, 은신처라는게 놀라와요?》 《놀랍소. 량심에 꺼리지 않는다면 그럴수 있겠는지. 어쨌든 가해자의 위치에 서지 않고서야 어떻게 교도소안에 있을수 있겠소?》 《그래서 저 상규반장님은 이때까지 주로 일반수들을 많이 대상했답니다. 그의 인품때문인지 일반수들은 저 선생을 무척 따르죠… 한데 저도 저 선생한테 모를게 많아요. 부인과의 관계며… 그의 모순된 인생관이며… 더구나 오늘 우리가 가는 금산사는 저 선생이 자주 가는 암자예요.》 《불교도인게군.》 《아니… 천도교를 믿는다구 할가… 자기는 천도교, 동학에 깊은 인연이 있다구 하지요. 금산사는 분명 조상들과 연고가 있는것같은데 입을 봉하고있으니 알 도리가 없어요… 그는 또 천도교하고는 모순되게 숭미주의자이기도 했어요. 한데 광주사태이후 특히는 부산<미문화원>방화사건후에는 미국이란 말은 일체 피하구 마네요.》 갑자기 뻐스가 몹시 들추기 시작하여 둘은 말을 못하고 한동안 잠자코 있었다. 성태는 리상규가 알수 없으면서도 흥미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되였다. 여태 만났던 교무과장, 반장, 교회사들과는 엄청 다르다는 느낌이다. 아니, 이건 방소희의 견해일뿐… 나를 전향에로 이끄는것은 그의 기본직무니까 어차피 나와 맞서려고 할테니 그때 가서 부딪쳐보자… 방소희가 다시금 속삭인다. 《광주사태는 저한테두… 참, 선생님도 제가 전남대를 나왔다니 이상하질 않아요?… 80년에 전남대 1학생이였다는 점… 그 와중에서 내가 어떻게 무사했는지 의문되지 않아요?》 《하긴 그렇구만. 5.18시위도 전남대가 시작했다던데…》 《옳아요.》 방소희는 숨을 내불고 말을 이었다. 《전 그때… 어머니의 림종을 지켜드렸어요. 외딸이고… 집안에 나밖에 없었어요. 그러니 곁을 떠나지두 못하구요.》 그렇듯 밝게 다정히 그리고 은근하게 울리던 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참, 그날이 바로… 그래요, <계엄군>이 땅크를 몰고 도청앞광장에로 들어온 날 27일 아침에 어머니는 운명하시였죠… 담양에 있는 외삼촌이 와서 닷새만에야 장례도 치르구요. 그러다나니…》 방소희는 말을 멈췄다. 그것은 어머니때문이 아니였다. 《선생님, 전 어머니의 령전보다 학우들의 령전에서 더 울었어요. 부끄럽고 원통하고, 그래서 몸부림쳤어요. 그들과 함께 싸우지도 못했으니… 남아있는 내 목숨이 벌레같이 느껴졌어요.》 방소희의 말은 끊기웠다. 성태는 그의 얼굴을 돌아보지 못했다. 눈에 눈물이 어렸을지 모른다. 그는 처녀를 진정시키고싶었다. 그러나 무슨 말로 어떻게? 《하지만 내 슬픔, 내 비통함은 아무것도 아니였다구요. 고등학교시절 학우 오순희라구, 리화녀대에 진학하여 서울에 있었어요. 그런데 그의 열일곱살 나는 동생이… 녀고생이 <계엄군>한테 참살당했어요. 놈들은 그 애의 유방을 도려냈어요.… 순희는 광주에 와서 미친 녀자처럼 무등산에서 내려오질 않더니 홀연 내앞에 나타나 수도원이나 절간으로 들어가겠다구. 그러던 그가 후에 서울서 편지 내려보냈는데 생각을 달리 했다는거죠. 자기 학급 파트너인 한 학우의 열렬한 호소가 큰 작용을 했다구 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그 학우를 소개해주겠다구요. 순희는 대학을 계속 다닐 형편도 못되구… 그래서 전태일렬사가 일하던 청계피복 녀공들속에 들어가 취업을 한다구 했어요. 로동운동권에 몸을 던진거죠… 그게 벌써 몇년전 일… 실상은 말예요. 그 앤 나를… 교도소에서 나오라고, 나오지 않으면 절교하겠다구… 얼마전 편지에 썼댔어요.》 그의 마지막말은 힘없이 울렸다. 그는 조용히 숨을 내그었다. 《여기를 떠난다고 하면서도 당장은… 그럴 의지가… 용서하세요. 전 아까 인차 물러난다고 했지요?… 전 외동딸로 자랐을뿐… 여기서 물러난대도 뚜렷한 인생계획이 없는거죠… 엊그저께도 오순희한테서 편지왔지요.》 뻐스는 산협길에 들어서자 더 들추어댔다. 운전수가 뻐스를 세우더니 밖으로 나가 앞뚜껑을 들어올리고 거기에 머리를 박고 무엇인가 고치였다. 발동소리가 멎자 불시에 가을날의 정적이 뻐스안에까지 깃들었다. 어째선지 앞에서 잡담을 벌리던 교도관들도 조용해졌다. 한잎 두잎 커다란 락엽만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차창가를 스치면서 떨어질뿐… 정적속에서 흔히 엄습하는 가슴 짜릿한 애수도 없다. 지금의 정적은 허위일뿐, 팽배한 긴장과 다치면 터지게 되는 거대한 폭발력을 누르고있는듯 한 그 정적이 성태의 가슴을 숨가쁘게 하였다. 아마도 방소희의 뜨거운 속삭임, 격렬한 분노와 자탄의 한숨이 엇섞인 그 열렬한 고백때문인지 모른다. 성태는 후- 하고 큰숨을 내불며 다시 또다시 산기슭을 내다보고 산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자연은 여전하구나. 변함이 없는것. 유구한 력사와 함께 흘러온 내 나라, 내 강토…) 흔히 자연속에 깊이 들어오면 속세를 벗어난다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 순간에 어째선지 세상으로 깊이 들어간다는 정반대되는 감정을 체험하게 되는것은 이상한 일이였다. 뻐스는 다시 떠난다. 차라리 산봉우리우에라도 올라갈수 있으면 거기서 천하를 굽어보고싶다! 뻐스가 떠날 때를 기다린듯 방소희가 속삭였다. 《참, 선생님, 한가지 부탁받은게 있어요… 내 학우 그 오순희가 알아봐달라구 했는데…》 그 어조로 보아 오래도록 줌저리다가 용기를 내여 말하는것이 분명했다.… 《뭔데?》 성태도 어떤 비상한 일을 기다리듯 긴장해졌다. 《오순희가 제 단짝인 그 학우의 부탁이라면서 바로 안성태란분을 알아봐달라는거예요. 학우의 이름이 조영미라고… 곰곰히 생각해보셔요… 모르겠어요? 조-영-미?》 성태는 나직이 되받아 뇌이였다. 《조영미?… 조영미? 그런 이름 모르겠는데… 생각 안나… 어느 대학?》 《리화녀대죠.》 《그 대학이라구 했지. 그 대학이니까…》 성태는 대학에 무슨 조카벌되는 애들이나 있는듯 한 기색이다. 《참, 인젠 졸업하구 운동권에 나섰대요. 경기도 룡인지구에서 야학교사로 활동한대요.… 선생님에 대해 알아달라구요… 집은 경북 밀양… 아니 지금은 울산이라던가… 조영미라구 모르겠어요?》 《모르겠는데. 밀양에는 친척이 없구 내 조카들은 하나도 대학에 다니질 못하구.》 《성이 다르니까 아마 누이나 누이동생들 자식이 아닐가요?》 《누이나 누이동생네 성씨도 모두 달라. 그런데 왜 저쪽에서 나와의 인척관계를 밝히지 않을가.》 잠시 말을 못하던 방소희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선생님, 비전향수생활은 일체 사회와 단페되여있지 않아요? 가족이외에 편지하거나 함부로 교도소측에 문의하지도 못해요. 겁나서가 아니라 괜한 의혹을 줄수 있으니까요. 쩍하면 그 나그네들은… <안기부>말예요. 파고들며 시끄럽게 굴거든요. 그러니 운동권에 나선 사람 더욱 조심하죠.》 나어린 학생을 차근차근 타이르는 그런 어조라고 할수 있었다. 그제야 안성태는 무엇을 깨달은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보니 형제들과의 련계도 몇년간 끊어지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조영미란 이름은 모르겠소. 어떤 사돈집 자녀들중 어떤 애겠는지. 그래 나에 대해선 뭐라구 답장에 썼소?》 《참, 선생님들만 가족서신이 엽서편지 200자로 제한되여있는게 아니예요. 우리 교회사 교도관들도 믿지 않는게 이남현실이니까요. 도청은 물론 편지검열도 아이들 장난처럼 쉽게 하죠. 요샌 편지를 개봉하지 않고 내용을 다 알아내는 기계까지 나왔대요.》 《그런가? 거참, 그러니 방선생도 조심해야겠군 그래.》 둘은 서로 마주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걱정마세요. 서울 가는 길에 오순희를 만나면야 무슨 사연인지 다 알아낼텐데요 뭐… 선생님의 <대역부도죄>에 대해서도 낱낱이 말하겠어요.》 방소희는 처음으로 소리내여 웃었다. 뒤돌아보는 교도관들도 없다. 담당교회사의 웃음은 하나도 의심을 불러낼 까닭이 없는것이다. 성태도 빙그레 웃었다. 오랜만에 웃어보는 그런 웃음. 그 어떤 가슴뿌듯한 감정조차 솟구쳐오른다. 오순희, 조영미… 장하고 대견히 여겨지는 이름이다. 믿음과 기대를 주고픈 이름들이다. 자주, 민주, 통일에로의 장엄한 진군에 들어서는 새 세대의 이름들이 아닐가… 뻐스는 몹시 숨가쁘게 가르릉거리며 산협길을 톺아올랐다. 금산사에 도착했을 때는 한낮무렵이였다.… … 이날의 절간행은 전적으로 리상규의 적극적인 발기로 이루어 진것이다. 그후 이것은 우에서 요구하는 《사회참관》이 아니라 리상규반장의 잘못된 계획으로 실행된 《자연참관》, 《산천유람》이라고 상부의 추궁이 있었다고 한다. 절간에 갔다온지 며칠이 지나 방소희가 안성태를 불렀다. 교도관들이 나가자 방소희는 일부러 지으려고 하던 엄하고 랭랭한 낯색을 지워버렸다. 그는 평범한 처녀로 되돌아온듯 싶다. 하지만 방소희의 갸름한 얼굴에는 종잡을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선생님, 전 인차 여기를 뜰것 같아요.》 《어디 다른 교도소로?》 《교도소라니요? 사회로 아주 나가는거죠. 교도소에 있을바에야 여기가 좋지요. 우선 정치범들이 적으니까요. 비전향수들도 이제 대전이나 대구로 옮겨갈거예요.》 성태는 섭섭한 생각이 영 없지 않았다. 단순히 그한테 인정이 있어보였기때문이 아니라 그와 헤여지고나면 그를 통해 이어지려고 하던 사회의 운동권이나 새 세대와의 한가닥 이음줄이 끊어지는것 같은 서운함이 컸기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심정을 사실대로 터놓을만 한 대상으로 방소희를 미처 인정할수 없다는것도 생각하게 된다.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이제 제가 떠나면 상규반장님이 직접 선생님을 맡게끔 하겠어요. 상규반장님자신이 그걸 원하는것 같아요.》 그러면서 방소희는 설명했다. 일반수가 많은 여기서 상규반장은 《공안수》들을 될수록 피했다는것, 하지만 이제는 어쩔수없이 그도 《좌익수》들 특히는 장기수들을 대상하게 되였다는것, 서울에서 전주교도소의 실태를 료해하고 새 교무과장을 보냈는데 이제는 상규반장도 빠지는 수가 없게 되였다는것이다. 성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방소희든 리상규든 또 누구든 매한가지라는 생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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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상규가 일주일에 한두번 안성태를 불러내갔다. 다른 비전향장기수들은 담당교회사들이 불러가군 하였다. (드디여 시작되는구나. 전두환이 가만있을수 없지. 력대로 《좌익수》들을 주패장으로 민심을 《반공》에로 돌리는건 상투적수법이야. 우에서 독촉이 성화 같겠지… 밥통 같은것들, 모가지가 몇개냐… 이렇게 매일매일 추궁이겠지.) 성태는 불안하지 않았다. 이즈음 그의 심중에 자리잡은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이 남조선사회의 각이한 좌익세력속에서 하나의 지향, 즉 《반공》이 반통일이라는 견해, 《반공법》이 반통일법이라는 력사의 진리가 인식되기 시작한것이다. 학생운동, 로동운동이 그런 시각에서 행동강령이 재정립되는것 같았다. 교도소안으로 들어오는 정치범들이 이런 흐름을 안고 들어왔다. 《반공》소동이 커지는만치 통일을 위한 투쟁이 더 커가는것은 시대의 조류로 된것 같았다. 감옥에 들어오는 학생《좌익수》들이 교도소안의 교회당에 가거나 운동시간에 얼핏 스칠 때 비전향장기수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눈길에서도 그것을 읽을수가 있었다. 철의 장벽으로 둘러막힌 교도소안에서 그런 시대의 흐름을 느낄 때보다 더 기쁜 때는 없는것이다. 하지만 바야흐로 전향테로, 전향공작이 또 한돌기 소용돌이치며 다가온다 하지만 죽음보다 더 강한것, 그것을 가슴에 안고있는 이상 무서울것이 무엇이랴. 그렇다. 맞서보자… 그런데 이상한것은 리상규가 첫번째 날도, 두번째 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성태를 전향으로 유도하는 내용의 말을 꺼내는 기미가 없는 그것이였다. 이즈음에 와서 형식은 바꿨지만 《전향서》 대신 《반성문》 또는 《생활계획서》를 생각해보느냐는 말도 없었다. 그저 건강과 고향, 형제들, 조카들이 살아가는 형편을 물었다. 한번도 본적 없는 조카들을 묻다니… 또 형제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괜한 물음을 이것저것 해대는것이다. 그러다가 원씨성을 가진 성태의 매부되는 사람이 《력사파헤치기》, 《족보파헤치기》를 하면서 원씨네 가문에서 여러대 올라가 있는 어떤 사람이 임진왜란때 역적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하는 력사자료에 흥미를 가진다는 리상규였다. 그러나 이때 안성태로서는 광주사태이후 시작된 리상규의 정신생활에서 일어난 변화를 알수가 없었다. 얼마전에는 리상규가 오랜만에 서울에 갔다가 동기생이고 같은 학급이던 서울대 철학교수인 동료의 집에 갔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날 밤 그와의 교우관계에서 처음으로 열띤 론쟁이 있게 되였다. 그들은 서로 순수한 우정을 표방해오던 사이였다. 그런데 그 동료는 최근에 대학생들의 리념써클에 관여하여 《보안법》으로 련행까지 당했다는것이다. 리상규는 그한테 어째서 갑자기 친북세력에 동조하게 되였는가, 자네도 《주사파》인가고 물었다. 그 교수가 그럼 자네는 친미인가 하고 물어서 그만 서로 리성을 잃고말았던것이다. 론쟁이 아니라 서로 결렬에까지 이르게 되였다. 밤중에 리상규는 그 집에서 나오고말았다. 이미 미국을 《우방》이 아니라고 여기는 리상규의 견해를 어느 정도 알고있는 친우였고 그래서 리상규한테는 그의 말이 큰 모욕으로 안겨진것이다. 자네는 왜 갑자기 친북세력을 동조하게 되였는가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한 그 말이 얼마나 상대방을 노엽혔는가를 생각지 못한 리상규였다. 탁자에 마주앉은 리상규는 두리두리한 얼굴에 근시안경을 끼였다. 몸이 나고 키도 작지 않은 40대의 사나이, 그날도 다른 교회사들이 흔히 입는 잠바는 걸치지 않았다. 넥타이없이 와이샤쯔만 받쳐입은 양복차림, 방소희의 말대로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판을 벌리며 너스레를 부리고 어리손을 치는걸가. 아니, 그런게 아니다. 분명히 다른 방법으로 내 마음의 어느 귀퉁이에서 제일 약하다고 보는 고리를 찾아 이리저리 말을 굴려보며 틈바구니를 찾아 찌르고들려는 로회한 수법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 사람 좋은 인상이고 안경쓴 얼굴표정에 어떤 음흉한 빛은 찾아볼수 없었다. 장기수들의 시각과 청각은 아주 예민해진다. 몇십년 옥살이하면 귀신처럼 다 듣고 다 본다는 말이 우연치 않다. 또 그동안 별의별 옥리들을 다 마주해본 그 경험이야말로 렌트겐도 무색할 강한 투시력을 가진다. 그렇다. 리상규는 대전의 살인자 절름발이 라구표, 광주의 《족제비상》 신도균, 여기서 어디론지 가버린 교무과장놈… 이들과는 대체로 비슷치 않은감이 들었다. 리상규, 그는 정신생활의 모순과 분렬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의미없는 모호한 미소와 겉발린 호의로 가리우고… 때로는 딴전을 부리고 때로는 사말사를 초월한듯 한 위장된 너그러움으로 너울을 쓰는 그런 위선자일수도 있다. 조심하라. 이런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경계심을 앞세워도 그의 조용조용한 말소리에 끌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안선생, 제 이야기 좀 들어보십시오.… 저의 고향은 여기 전주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전주를 약간 벗어난 완주땅입니다.》 (누가 고향을 알겠대? 무슨 말을 하자고? 내 마음을 사보려는건가.…) 성태가 이제껏 기나긴 옥살이에서 상대해본 수많은 교회사, 교도관들중에는 별의별 놈들이 다 있었다. 종교적인 신앙을 설교하는자, 자유민주주의정치리념을 풀어대는자, 공화국에 대한 악담만 엮어대는자, 그러나 어떤 놈은 말하기를 《나도 안선생처럼 어릴적에 아주 못살고 구차한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하면서 그 어떤 처지의 공통점을 찾으려 했다. 어떤자는 불우했던 과거경력을 렬거하고 불행한 가정을 두고 우는 소리를 하면서 자신에 대한 동정을 구하며 《인간적으로》 대하려고 꾀하는가 하면 심지어 제 애비가 전쟁전에 지하투쟁을 하다가 잘못되였다는자도 있었다. 20여년동안 무슨 놈인들 없었고 무슨 말인들 안 들었으랴. 감언리설, 회유기만, 무서운 고문과 악형… 종당에는 전향테로에 이어진다. 앞으로도 이런짓이 계속될것이다. 기약할수 없는 종신형의 무기수,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그 수단과 방법은 다른것이 있을수 없다. 그저 종전의것이 자꾸 반복될뿐이다. 그래서 성태는 심드렁히 듣고있었다. 《이곳은 옛 도읍이지만 지금은 그저 조용한 시골이나 다름없습니다.… 선생두 아시겠지만 갑오농민전쟁때 여기서 <전주화의>란게 있었지요. 그때 저의 증조부님은 전봉준의 측근에서… 내가 뭐 괜한 소릴 하는것 같구만.…》 리상규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천천히 닦고나서 다시 썼다. 그는 정말 괜한 소리를 그만두고싶다는 표정이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성태는 그가 말을 계속했으면 하였다. 리상규의 심중에서 어쩐지 감추지 못할 진심이 울려나오려는것 같았다. 성태는 호기심이 동했다. 《아니, 흥미있소. 좀 들려주시유.》 《그렇습니까?… 그럼… 하지요.… 선생들과 접촉하면서 나는 종종 우리 증조부를 생각하군 하죠.… 전남대에서 력사학교수를 하는 내 집사람한테도 우리 집의 력사는 말해주지 않았지요.… 하긴 그 녀자는 민속과 고고학이 전공이니까.》 성태는 방소희의 말이 생각났다. 리상규와 처의 관계… 부부가 서로 의지가 통하지 않는다는것이 리상규의 말투에서 울려왔다. 성태는 리상규의 말을 듣고있었다. 《1895년… 그러니까 10년만 있으면 100년이죠.… 나의 증조할아버지는 정부가 제의해온 휴전에 응하자고 전봉준이한테 열심히 말했대요. 일본놈들이 제놈들 <거류민>보호를 구실로 기여들가봐 농민군은 그걸 제일 꺼려했다는겁니다. 그때 농민군의 기세는 대단했지요. 여기 전주성까지 점령했으니까요. 전주감영군과 봉건정부군이 몇차례 공격했으나 매번 실패했다는겁니다. 그래서 정부군은 휴전을 제기했거든요. 사실은 그때 부패무능한 봉건왕조가 농민군을 진압하려고 글쎄 청나라군대를 끌어들이려고 사람을 파했지요. 농민군이 그걸 알리 있습니까.… 내가 이거 다 아는 얘기를 하면서…》 《아니요. 듣고싶소. 오랜만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그럼… 아까도 말했지만 농민군이 걱정한건 일본놈들이 기여 드는것입니다. 그래서 내전을 중지하는 조건에서 대신 여러가지 조항을 제기했지요. 악정을 반대하고 백성들의 권익을 보장할데 대한 조항들이죠. 그래서 여기 전주에서 <전주화의>가 이루어지고 각지에 <집강소>가 설치되여 합의된 조항들을 실행하기 시작했지요. 저의 증조부는 공주집강소를 책임졌다고 합니다. 선생도 아다싶이 그다음은 어떻게 됐습니까. 청나라군대가 들어오고 그걸 보고 왜놈들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래서 농민군은 다시 궐기하여 싸웠습니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였지요. 농민군은 렬세에 빠지고 마침내 공주성싸움으로 패하고말았고… 증조부님은 <전주화의>를 하게 한 그 장본인이 자기라면서 자결하려고 했으나 그의 부하들이 살아서 끝까지 싸우자고 하는 바람에 다시 대오를 묶으려고 여기 전주근방으로 왔지요. 왜놈들때문에 이 뜻도 이루지 못하고 금산사에 피신했습니다. 그러다가 거기까지 왜놈들이 따라오자 3층 대웅전이 보이는 뒤산의 소나무에 목을 매여 자살을 했습니다.》 (금산사… 그랬댔구나.…) 성태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리상규가 두눈을 슴뻑이였다. 그의 안경알이 뿌잇하니 흐려지는것 같았다. 《미안합니다. 제 증조부얘기, 제 집안얘기가 길어졌습니다.》 《아니, 그게 어째서 집안얘기겠소? 나라얘기, 우리 조국의 피어린 력사인데.》 《고맙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할아버지도 홍범도부대를 찾아가 의병으로 싸우다가 저 간도땅에 묻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였죠. 이 지방에서 한다하는 장사군이였단 말입니다.… 지금도 난 금산사에 가면 한번도 본적 없는, 또 볼수도 없었던 증조부생각이 납니다.… 안선생, 만일 그때 <전주화의>가 없었다면, 농민군이 계속 진격했다면 어떻게 됐을가요?》 《글쎄…》 성태는 뭐라고 대답할수 없었으나 그때 계속 서울까지 밀고 올라갔더라면 력사가 달라졌을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저었다. 《왜놈군대, 청나라군대 기여드는데 어림두 없었을거요.》 《그렇지요?…》 리상규가 스스로 대답을 찾고있음이 분명했다. 이 순간에 성태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띠염띠염 말을 했다.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같지요.… 외세가 있는 한…》 성태는 말을 멈추고 상대방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리상규도 마주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두사람의 눈길은 조용히 부딪치고있었다. 그 짧은 한순간이 100년이라는 한세기의 세월을 압축하는듯 의미심장하게 생각되였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문득 성태가 말을 했다. 《광주사태도 마찬가지죠.… 미국의 승인하에… 미군한테 작전권이 있으니…》 뜻밖에 의분에 떨리는 리상규의 목소리가 울렸다. 《윅캄놈이 <한국>사람들을 들쥐라고 모욕하다니.》 리상규는 머리를 쳐들며 허공을 바라보는데 안경속에서 눈빛이 사납게 번뜩이였다. 안성태는 말했다. 《반장님, 그래서 <남민전>은 민족해방을 위해 외세를 몰아내고… 그리고 통일위업을 하겠다고… 그래 우리도 같은 통일운동자들로서 련대감을 가지는겁니다.… 반장님도 리해가 가실줄 믿소.》 그러자 리상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합시다.… <남민전>은 여전히 당국의 골치거리요. 모르겠소. 모르겠어…》 리상규의 얼굴에는 어떤 랭소가 떠오르는듯 싶었다. 그는 대화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까지 나간것에 어지간히 당황해난듯 《됐습니다. 오늘은 이만합시다.》 하고 서둘러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들어온 교도관이 성태를 데려내가는것을 기다리지 않고 제가 먼저 그 방에서 나가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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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후 운동시간때였다. 사방에 콩크리트담벽이 막혀있고 하늘쪼각만이 쳐다보이는 독거운동칸, 이 지붕 없는 운동칸에서 금방 들어온 젊은 수인이라면 한번 뛰여올라서 두손으로 담벽의 웃모서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숨가쁘게 매달려 저쪽칸에 대고 한마디 의사교환을 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여불없이 높은 단우에서 교도관의 호각소리가 울리여 감시의 눈을 피하기가 어렵다. 못된 놈한테 들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징벌을 먹기가 십상이다. 이 독거운동칸을 옆에 낀 길다란 통로에서 성태는 어느 칸으로 들어가는 낯익은 얼굴을 얼핏 보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얼른 생각나지 않았다. 똑같은 푸른 수인복, 까까머리, 서로가 잘 구별되지 않으니 한번 본 사람은 기억하기가 어렵다. 성태는 자기한테 지정된 운동칸에 들어가 다리를 굽혔다폈다 하며 줄곧 그 생각을 했다. (누굴가?… 누군지 내 알던 사람과 비슷해서일가?) 다음순간 번개치듯 떠오르는 얼굴모습, (아, 그게 황영호 아닌가?… 옳아. 비슷해!) 성태는 가슴이 두근거리였다. 몸을 움직일 생각도 잊고 그저 서있기만 했다. 고문과 징벌이 없는 때에도 고뇌에 찬 날들이 계속되는 속에서 조금이라도 낯이 있었던 사람이 눈에 뜨이면 더없이 기쁘고 흥분되는데 하물며 대구교도소에서 《운동회사건》, 《붉은별사건》때 자기를 도와준 그 황영호라면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어데 있으랴. 게다가 가슴에 붉은 바탕의 수번을 달았으니 말이다. 흰 바탕에서 붉은 바탕에로의 변화, 여기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으랴. 성태는 그 젊은 수인이 황영호이기를 조금도 의심치 않는듯 싶다. 그는 운동시간이 끝나는 날카로운 호각소리를 들으면서도 얼른 복도쪽에 나서지 않았다. 저쪽에서 수인들이 나와 자기 앞으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치 발목에 이상이 생긴 사람처럼 허리를 굽혀 어딘가를 만지다가 머리를 들군 하였다. 젊은 수인, 그렇다. 그 사람은 황영호가 옳았다. 한순간 두사람은 놀라움과 반가움에 굳어졌다가 눈빛을 부딪치며 미소를 나눴다. 손을 맞잡을수도 없는 순간, 잠시라도 복도에 남아있을수는 없다. 안타까운 일이였다. 다음날 먼장으로 만난 그들은 맞잡은 두손을 머리우에 추켜들고 서로 흔들어보였다. 성태는 멀리서 바라보게 되는, 황영호의 가슴에 붙은 번호판에서 불꽃처럼 튕기는 그 붉은색바탕을 또다시 확인하는것이 기뻤다. (대구에서 출감했다가 어떻게 돼서 여기로?) 황영호도 마침내 민주와 통일을 위한 길에 몸을 던진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에 반가운 미소를 보내였다. 자기가 황영호를 어떤 길로 이끌었는가를, 자기가 그한테 어떤 선배로 되였는가를 생각지 못하는 안성태였다. 제가 베푼 정은 잊어도 남한테서 받은 정은 잊지 못하는것이 사람의 상정인가보다. 물론 황영호를 마음속으로 잊은것은 아니다. 황영호자신이 느끼는 그런 정도의 사랑과 정을 주었다고는 생각지 않을것이다. 더구나 그를 투사로 키워야 한다는 의식적인 자각은 자기한테 부족했다고 성태는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였다. 황영호와 헤여진지도 8년세월, 그러니 그도 인젠 29살? 어떻게 돼서 체포됐는지. 체포된건 아쉬운 일이지만 어쨌든 붉은색바탕이 아닌가. 자주도 민주도 통일도 다 붉은색으로 보는 남조선사회다. 네번째 날은 독거운동칸으로 각기 들어가는 도중의 긴 통로에서 마주치게 되였다. 와락 끌어안고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급히 나누는 몇마디의 말. 《영호, 어떻게?》 《<남민전>…》 《여태 어데 있었기에?》 《서울구치소.》 《견디여냈구나.》 《선생님이 견디는것처럼.》 날카로운 호각소리에 뒤이어 교도관이 소리치며 《뭐야? 3530번!… 그리구 이쪽 놈은 몇번이야?》 하는통에 서로 헤여지며 고개를 돌려 의미있는 미소를 보내였다. 성태는 독거운동칸에서 빙빙 돌아가며 생각했다. (서울에서 이제야 여기로 끌려왔다? 그러니 마지막에 잡혀 닥달질을 받았구나.… 선생님이 견딘것처럼?… 아… 대구에서 내가 투쟁으로 대오에 돌아온걸 념두에 둔 말이구나. 그것처럼 견디여냈다구?… 고맙다. 고마와.) 침을 맞은것이 인연이 되였던 일반수 황영호, 황태성동지의 조카벌 된다고 해서 더욱 친밀해지던 그였다. 나를 도와주느라고 애를 썼지.… 《붉은별사건》으로 재판받은 이후로는 그를 만나지 못하고… 그리도 대학공부를 하고싶어하던 영호. 현실은 그를 투쟁속으로, 《남민전》으로 이끌어왔구나.… 다음날은 우연히 3호와 4호에 들어가게 되였다. 중간담벽 저쪽에 매달린 황영호의 숨가쁜 말소리… 《선생님, 건강은?》 《괜찮아, 나가서 어디에?》 《울산에.》 그 이상 더 말을 나눌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하루하루였다. 그저 얼핏얼핏 스칠 때마다 미소를 보내고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무언의 대화가 계속될뿐. 언제 한번 속시원히 회포를 나눌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황영호쪽에서 어느 한 소지를 《포섭》하는데 성공한듯 안성태한테 그의 말이 전달되여왔다. 황영호는 《남민전》조직에 정식 속하려는 때에 체포되였다. 굉장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예심이 3년이나 걸렸다는것이다. 사실상 황영호한테 이렇다할 증거가 없었던 모양이다. 《남민전》에 이제 막 들어오려는 때였다니까 그럴수 있다. 아니? 그런데? 그렇지. 《남민전》은 대학생이 기본이라고 했지. 그러니 놈들한테는 황영호가 《남민전》과 다리를 놓으려는 로동운동권의 《거물》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었던게 아닐가? 거의 열흘이나 지나 마침 같이 사동으로 돌아오는 때가 있었다. 그것도 앞뒤에 서서 걸었다. 영호는 앞에, 성태는 뒤에서… 급히 속삭이는 영호의 목소리… 《검찰이 나를 <남민전>으로 확고하게 만들어준셈이죠. 난 감사해요. 그자들한테.》 여전히 영호는 락천적인 성미가 죽지 않았다. 영호는 시치미를 따고 《선생님덕분이 더 크죠. 선생님을 따라 나설 결심 선생님이 저한테 심어주셨죠.》 하고는 고개를 돌리며 한눈을 찡긋해보였다. 《그러니 선생님 <죄>가 한가지 더 늘어났어요. 나를 공안수로 만들었으니.》 《그래 몇년?》 《4년, 유감… 너무 짧아서. 하긴 죄가 없는데 비하면 길지요. 래년쯤 나가게 되죠.》 《4년이지만 <반성문>이나 <생활계획서> 안 쓰고 나가면 딱지는 여전히 붙어다니고 경찰이 시끄럽게 굴고, 취업도 문제겠는데.》 《그건 문제없어요. 울산바닥에 저의 벗들이 얼마나 영향력있다고요. 선생님, 울산은 지금 굉장하다구요. 서울대 제적생들이 위장취업으로 로동운동에 들어오면서 로동생존권과 통일운동을 밀착시키는거죠.》 운동시간에 황영호와 잠간씩 만나보는 기쁨도 한달쯤 지나서 끝나게 되였다. 성태가 대전교도소로 이감되는것이였다. 황영호와는 작별인사도 할수가 없었다. 성태는 자기한테서 침을 맞고 신세를 진 소지를 통하여 쪽지를 보내였다. 거기에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 제2남민전 제3남민전으로! 건투를!》 하고 썼다. 쪽지를 돌돌 말아 굵은 성냥개비처럼 만들었다. 황영호의 수번을 말하자 소지는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성태는 황영호와의 인연이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안고 떠나게 되였다. 그것은 예감이 아니라 확신이였다. (미더운 청년아! 잘 있거라. 다시 만나자.) 성태는 수인차에 올랐다.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내 나이 이젠 쉰여섯… 13년만에 다시 대전으로 간다. 새로운 싸움터로 가자.… 나를 궤도에서 탈선시키려고 했던 그 지옥같은<테로방>은 어디에 있는가?… 새 교도소에는 더 깊은 지옥이 나를 기다릴것이다.… 원한의 대전이여!) 절름발이살인자 라구표가 지금 대전의 교무과장으로 있다고 했지.… (오냐, 라구표. 이제는 너를 외면하지도 않는다. 정면으로 맞받아나갈테다!) 안성태가 대전에 도착한것은 몹시 추운 12월초 어느날이였다. 대전시내로부터 20리 떨어진 곳에 새로 건설된 동양최대의 감옥인 새 대전교도소의 0.75평 독방이 안성태를 기다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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