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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별
1
(너는 누구냐?… 네 이름은?… 네가 안성태인가? 아니다. 너는 안성태가 아니다. 그럼 누구란 말이냐?) 여기서는 그 이름을 모른다. 너는 그저 3530번일뿐이다. 일반수들속에 섞이면서 어느 하루도 떠나지 않는 수모감, 거기서 생기는 자문자답일것이다. 일반수들앞에 나서서 《나는 전향자가 아니다. 놈들이 조작하고 위조해낸것이다.》 하고 웨치지도 못하는것이 통분했다. 만약 그렇다면 일반범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저자가 히스테리 아니야!》 하고 혀를 차며 기껏해야 동정이나 할지 모른다. 《내가 안성태다!》 하는 떳떳한 대답, 그것은 지금 죽음과만 바꿀수 있는 성스런 대답으로 되였다. 한번 잃으면 다시 찾기가 어려운 그 무엇처럼 이름이 생명과도 같은것으로 될줄이야… 성태의 푸른 수인복에 붙은 번호 3530번, 한데 그 바탕은 여전히 붉은색이다. (놈들은 유사시 일반수들과 즉시 구별하기 위해 《공안수》들의 수인번호는 붉은 바탕에다 쓴다. 《전향수》라 해도 붉은색을 그냥 둔다. 전향한 무기수인 경우 형기가 20년이 될뿐이지 여전히 위험대상으로 보기때문이다.) 그래도 가슴앞에 달린 번호판의 붉은 바탕이 성태한테 한가닥 위안으로 되기도 한다. 그것이 귀중한 한쪼각의 지탱점으로 느껴 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슴을 매만질 때면 가장 괴로운것이 수인복 앞섶안에 있는 전윤국동지의 붉은 피가 스민 실몽그러미, 투사의 그 맹세, 그 유언을 욕되게 한것만 같은 죄스러움을 털어버릴수 없는 그것이였다. (내 심장속에 전윤국동지의 피가 뛰고있다. 그러니 내 량심, 내 신념, 내 뜻은 변할수 없다. 전향자로 몰든 비전향자로 남아있든 내 심장은 변함이 없단 말이다. 하지만 일반범들속에 섞인 수치와 굴욕은 참을수가 없다. 놈들이 강제로 씌운 이 《전향》의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 성태는 일반수들과 함께 출역에 나가게 되였다. 밥덩이도 커지고 국도 먹을수 있다. 고역이래도 사지를 마음대로 놀리며 일을 할수 있다는것이 육체적으로 일정한 《자유로움》을 갖게 한다. 대구교도소의 출역공장건물은 2층짜리 두동이였다. 하나는 1층절반은 철공장, 나머지는 창고이다. 그뒤의 다른 건물은 한쪽 아래층이 도장공장, 웃층은 칠기공장이다. 다른쪽은 1층이 목공장, 2층이 양재공장이다. 출역수들은 거개가 일반수들이지만 《좌익수》출신의 《전향수》들도 있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걸린 《반공법》 3년짜리도 《생활계획서》나 《반성문》형식이라도 《전향》을 해야 만기로 나가서도 일자리를 얻을수 있으며 생존을 유지할수 있다. 《전향수》들은 대부분이 강제전향이지 의식전향은 많지 않다. 안성태와 같은 위조전향은 더욱 드물다. 그들은 아무런 조심성이나 경계심도 없이 서로 믿고서 의사소통을 한다. 그들을 묶어 세워 옥중투쟁을 벌릴 결심을 가진 전향자들이 많다는것을 성태는 출역에 다닌지 얼마 안되여 인차 감촉하였다. 실지로 《전향수》들은 령치금을 모아 특사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지원하는 일을 벌리고있었다. 《전향수》들은 거의 공개적으로 이 일을 했다. 그래도 이런 일에는 뒤에 조직이 있을것이지만 처음에는 누군지 알수 없었다. 만일 교도소측이 그것을 문제시해서 법에 넘긴다면 그것으로 전향이 취소되는걸 기뻐할 《전향수》들이 많은것임은 물론이다. 교도소측으로서는 어쨌든 시끄럽다. 그래서인지 웬간해서는 모르는척 하는것 같았다. 성태는 도장공장에서 일했다. 뼁끼와 니스, 라크솔과 연마지… 자재는 엄격한 단속밑에 출고되였다. 학교에서 쓰는 아이들의 책걸상에 도색을 하는 일이다. 옆에 붙은 목공장에서 넘어오면 그것을 도색한다. 저녁이면 한방에 15명 수용하는 일반수사동인 5사에서 자군 했다. 얼마동안은 일반수들이 곁을 주지 않았다. 하루는 밤중에 20대의 젊은 수인이 배를 그러안고 돌아갔다. 꺽지게 생긴 중년의 사나이가 자다가 일어나서 뇌까렸다. 《야, 이 문둥아, 넌 뭘 처먹었어?》 젊은 수인은 《아이구, 아이구.》 하면서 대꾸도 못했다. 바투 깎은 머리칼에 땀방울이 맺힐 지경이다. 《하, 이거 야단났구만.》 성태와 동년배나 될 그 사나이는 허리에 두손을 얹고 방안을 둘러보았다. 자다가 깨난 사람, 그런 속에도 쿨쿨 세상 모르게 자고있는 수인들… 속수무책이였다. 한밤중에 그들한테 차례질 치료조건을 어디가 찾는가. 당직교도관한테 알리면 《아침까지 참으라고 해!》 하는것이 고작이였다. 교도소안에서 병으로 죽은것을 따지고 책임지울 《대한민국》 법조항은 없는것이다. 성태는 배를 그러안고 앉아서 뱅뱅 돌아가는 젊은 수인한테 다가갔다. 진땀이 내밴 환자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크게 없었다. 급성체증이 온것 같았다. 성태는 일어나서 자기보다 키가 한뽐이나 큰 《억대우》를 쳐다봤다. 《내가 치료해주겠소.》 《당신은 한의사요?… 건설기사라던데.》 《한의사는 아니요. 그저 침으로 좀 해보겠소.》 《침? 그럼 침술이 있능기요?…》 《길게 말할게 없소. 한마디 담보가 있어야겠소.》 《무슨 담보?》 《내가 침 가지구 있다는걸 누구도 말하지 못하게… 말하지 말아야겠소.》 《알겠소. 거야 뭐 그래야지.》 그러면서 그 사나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야, 들었어? 말하는 놈은 그저 주리를 틀고 사등뼈를 분질러 놓겠단 말이다.》 하며 을러메고는 제 말이면 다라는듯 더 돌아보지도 않았다. 《자, 그럼 빨리 시작해주시우.》 그때는 이미 안성태가 뒤돌아앉아 치솔대속에서 침 두대를 빼낸 뒤였다. 침을 다름아닌 치솔대안에 묘하게 건사하는것만은 그네들이 몰라야 했다. 성태는 환자를 반듯이 눕혀놓으려고 했다. 몇사람이 팔다리를 붙들었으나 환자는 몸을 자꾸 뒤틀었다. 《억대우》가 《야, 가만 있질 못하겠어? 야, 이 머슴아가 와 이러노, 아파두 참아야지.》 하였다. 환자는 이를 악물었다. 성태는 수인복 앞자락을 들치고 명치끝에 우선 침을 두대 놓았다. 좀 지나서 다시 침을 꽂았다. 이번에는 시간을 약간 길게 놓았다. 자꾸 쳐들리던 환자의 머리가 뒤로 편안히 뉘여졌다. 침이 말을 듣는것 같았다. 성태는 환자를 엎디게 하고 척추부위를 손가락매듭으로 세며 자리를 정하고는 침을 두대 나란히 꽂았다. 환자의 숨결이 한결 고르로와졌다. 그러자 《억대우》가 벋지르고 선채 뇌까렸다. 《짜식, 좀 나은가베… 하여튼 용하우다. 선생.》 그의 입에서 선생이란 말이 불쑥 튀여나왔다. 성태는 그 한마디 말이 참말 고마왔다. 《억대우》도 역시 사람은 사람이였다. 마흔살만 넘으면 《령감》, 《두상태기》가 통용되는 막판에서 선생이란 말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것 같은 의미를 띤다. 이튿날 아침에 《억대우》가 안성태한테 말했다. 《저 머슴아가 아직 씨원찮능기요. 선생이 곁에서 돌봐주면서 침도 더 놓고… 의무과 신셀 질게 있소? 내 도장공장 반장한테 얘기하겠소. 작업계장 만나면 그한테두 얘기하구…》 《교도관들이 뭐라구 하지 않을가.》 《그깐놈들, 상관없능기라. 내 그랬다구 하구려.》 《억대우》는 기세등등이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다가 뒤돌아보았다. 《그 대신 <지도>의 승인을 받지 않고 밖에는 나가다니지 마우. 알겠소?》 성태는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아무리 출역수라도 사동에서 작업공장까지 가는 통로도 혼자 나가지 못한다. 복도로 된 통로의 량쪽은 높은 담벽이지만 반드시 계호자가 있어야만 한다. 《지도》라는 완장을 낀 일반수가 출역공장마다에서 경비를 서거나 다른 출역수의 계호자로 된다. 《지도반장》은 보안과직속이다. 《지도》한테는 《독보권》(혼자 걸어다니는 권한)을 준다. 모두가 밖으로 나가자 두사람만이 남았다. 방에는 밤사이에 찬 나쁜 공기와 악취가 그대로 있었다. 자그만 환기창이 감당할수가 없다. 《좀 어때? 죽이라도 있으면 몇숟갈 먹어야 하는데.》 《먹구픈 생각 없어요.》 성태는 출입문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이요?》 이런 질문은 함부로 하지 않는 법이지만 간밤에 신세 진것때문인지 상대방은 흔연히 대답해주었다. 《재범이라구요. 벌써 두번째 감옥밥이죠.》 《무엇때문에?》 《참말 별난 사람이죠. 무슨 비밀지하조직에 돈을 대주느라고 부자집들만 털어낸다는데 본인은 그걸 부정한다나요. 자긴 어릴적부터 버릇이 돼서 직업적인 청석골패라구.》 《음, 그런가?… 근데 자넨 몇살이야?》 《제 말인가요? 스물한살.》 그의 번호판은 일반범들이 달고 다니는 흰 바탕이다. 《그래?… 새파랗게 젊은데 어떻게 돼서.》 이런 물음은 상대가 아무리 어리숙하다 해도 첫 교재에서는 대뜸 반발을 불러일으키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청년은 누워서 천정을 쳐다보다가 《전 황영호라구 해요.》 하고 이름부터 대주었다. 황영호는 고등학교 우등생이였다. 입학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갈수 없었다. 그런데 자기의 한 친구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군수의 집을 털어내겠다는것이였다. 그러자 황영호는 손을 내저었다. 친구가 웃었다. 《넌 정말 머저리야. 그놈의 돈이 어디 제 뼈를 놀려 번 돈이야? 다 꾹돈이고 재산있는 놈 등쳐서 모은 돈이지. 군수아들을 통해서 누가 알아보았어. 돈을 어디다 건사하는지.》 그런데 《거사》는 실패하였다. 군수네 뒤담을 바줄로 넘었으나 군수의 집에서 백여메터 떨어진 경찰서 파출소를 미처 타산 못한것이 그 원인으로 되였다. 파출소와 군수네 집에 비상신호장치가 되여있을줄이야… 안성태는 그 말을 들으며 한숨을 지었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다니 이거야 어디… 영호, 나두 전쟁전에 저 부산에서 돈이 없어 대학에는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 그러다 저 이북에 가서 대학공부를 했어. 그것도 돈 한푼 들이지 않구, 도리여 나라에서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뭐라구요?》 영호는 눈이 퀭해지더니 팔굽으로 마루바닥을 짚고 일어나 앉았다. 《장학금이란게 뭐예요?… 그러니 선생은 대학졸업생이구만요. 아, 그렇지. 건설기사라구 했지… 참말 부럽네요… 그러니 고향은 부산인가유?》 《아니 원래 고향은 선산군이요.》 《아, 그럼… 저두 선산이예요.》 《그렇소? 한고향친구인셈이군.》 《그렇구만요. 한데 내 고향이 선산이라는걸 여기 들어와서두 잘 말하지 않어유.》 《왜?》 《<대한민국> <대통령> 미워서죠.》 《<대통령>? 특별히 그럴만 한 일이 있는 모양이지.》 《있지요. 우리 당숙을… 황태성이라구.》 《뭐? 뭐? 황태성 당숙이라구.》 성태는 영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내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황태성동지와 보름동안 같이 있었더랬소.》 《그래요?… 난 당숙님 얼굴은 모르지만… 내가 태여나기 전에 북으로 갔으니까. 몇년전에 아버지 따라 당숙님묘에 갔댔어요. 아버지는 사촌형님 묘앞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더군요.》 영호의 손을 잡은채 성태는 말을 못하였다. 놈들의 마수에 걸려 황태성의 령혼앞에 떳떳치 못한 심정을 이 청년이 어찌 알수 있으랴. 가슴은 더욱 옥죄여들었다. 영호가 다시 철썩 자리에 드러누워 천정을 쳐다보았다. 《나두 이북에서 태여났더라면 지금쯤 대학에서 공부할걸…》 《그건 정말 그렇소.》 《통일이 돼야 그런 세상 되겠는데.》 《그렇지 통일… 통일…》 이렇게 중얼거리며 성태는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가 급기야 정신을 차린듯 《자, 침을 맞자구. 한번만 더 맞으면 될거야.》 하고 헌헌한 어조로 말했다. 이날부터 일반수들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저녁이면 고된 일을 마친 일반수들이 들어오자마자 대부분 자리에 쓰러지지만 일부는 바둑판에 둘러앉는다. 바둑알 대신 단추알이 많다. 일반수들중 특히 젊은 사람들이 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황영호가 장학금과 교육제도에 대하여 다시금 묻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나왔다. 바둑판을 기울써 들여다보며 앉아있던 《억대우》가 듣고도 모른척 하는 눈치를 보이자 그들은 매일저녁 새로운 질문을 해댔다. 교육제도와 함께 대학과정안까지, 로동자들의 대우와 사회보장제도 그리고 녀성들의 인권에 대하여 물었다. 바둑판에서 말다툼이 벌어지자 《억대우》가 《여, 이건 뭐야? 조용하지 못하겠어?》 하고는 점잖게 올방자를 틀고앉으며 성태에게 물었다. 《보안법》에는 공화국을 고무찬양하는 《죄》가 크게 되여있다. 성태는 공화국의 정확한 실태와 북반부제도의 우월성, 특히는 공화국의 자주적인 평화통일정책을 열심히 해설해주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이 형형색색의 잡범들중에서 한사람도 보안과에 가서 고발하는 사람이 없었다. 훨씬 과장을 해서라도 갖다 고발해주었으면 좋으련만 한달 두달이 지나도록 그런 사람이 나지지 않았다. 안타깝고도 기쁜 일이였다. 침이랑 놔주면서 각근히 사람대접을 해줘서 그런게 아니였다. 너무나도 외곡된 선전에 속아오던 그들한테 북의 실태가 체험자의 입으로 전달되여오면서 그 진실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졌기때문일것이다. 이 사람들 대부분은 타고난 강도, 타고난 도적은 아니였다. 제도를 잘 만나고 초보적인 생존조건만 마련되여도 능히 참사람으로 살수 있는 사람들이다. 성태가 있는 사동으로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수 있는 출역공장의 반장들이 찾아오군 하였다. 반장은 《루진처우제》에 의해 1급수가 된 일반수이다. 그들중에는 점점 포악해지는자도 있지만 반장만 되면 대체로 동료들한테 너그러워진다. 그렇지 않다간 감옥안에서 아니면 출옥한 뒤에 귀신도 모르게 뼈다귀가 분질러지는것이다. 슬금슬금 소문이 퍼져 공장의 반장들만 아니라 원예반장, 세탁반장들도 침 맞으러 왔다. 어느날 저녁, 성태는 도장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나왔다. 운반용밀차로 실려온 밥덩이로 작업현장에서 간단히 저녁끼를 에운 뒤였다. 량쪽에 담벽으로 막힌 지붕 없는 복도를 통해서 사동으로 가는데 출구앞에 섰던 웬 수인이 나란히 따라왔다. 30대초반, 가슴의 번호판을 얼핏 보니 붉은 바탕이다. 《안성태씨인가요?》 성태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상대의 옆얼굴을 피뜩 보고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걱정 마시리꾸요, 허참, 난두 <전향수>라 리준도라꾸.》 혀가 굳은 발음, 일본출신 같았다. 성태는 류달리 짙은 눈섭을 찌프리며 상대를 다시 돌아보았다. 리준도는 안성태의 팔소매를 잡으며 걸어왔다. 《철공장에서 일하는 박성인이라꾸 한번 기회를 보아 조용히 만나자꾸 하데이.》 《요전번 면담대표로 소장을 만났던 그 사람말이죠?》 《그렇당게.》 성태는 어째선지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전향수》들사이에 은밀한 조직이 있다는 낌새를 챈지는 이미 오래였다. 혹시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쨌든 전향취소는 말로는 안되며 《평화적방법》으로 해서는 어림도 없다. 어지간해서는 놈들이 출역중지, 벌방감금, 이감시키는 방법으로 괴롭히기나 할따름이다. 안성태는 의미있는 눈길로 리준도를 바라보았다. 《알겠소. 그쪽에서 적당한 기회를 마련하면… 래일이라두.》 《복도》통로가 끝나고 그 맞은편에 5사동 출입문이 있다. 거기서 왼쪽으로 4, 3, 2, 1의 순서로 가면서 매 사동의 옆구리에 있는 출입문이 보인다. 멀찌감치에 보안과 마당으로 나가는 큰문이 보였다. 바로 거기서 불시에 높은 목청이 들려왔다. 《여, 리준도 뭘해?》 그쪽으로 돌아선 리준도가 가까이 다가오는 그 사람에게 대번에 허리를 굽힌다. 《아이구. 소장님, 그새 무고하셨습니까?》 리준도의 얼굴에 아첨의 웃음까지 어린다. 저자가 소장인가?… 소장이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늘 위세를 돋구느라 부소장이하 각 과장들을 빠짐없이 대동하고 다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수하졸도들을 다 떼치우고 알수 없는 놈팽이 둘만 달고 왔다. 안성태는 가슴이 섬찍했다. (이 리준도란… 어떤자인가.) 그런데 이상한것은 리준도가 곁에 있는 자기를 전혀 경계하지 않는 눈치이다. 그러니 그는 교도소장을 가식으로 대하는것이 분명하다. 준도는 몇걸음 마주 나가 두손을 맞잡고 교도소장앞에 섰다. 《새 제복이 으리으리하네요. 정말 위풍이 당당한뎁쇼.》 새 춘추제복으로 갈아입은 소장이였다. 바지는 겨울처럼 여전히 까만 색갈, 웃도리는 청회색의 제복이다. 《여, 준도군, 어디라구 목청을 높여? 좀 조용히.》 《네, 네.》 준도는 머리를 조아리다가 문득 소장을 쳐다보며 여태와는 다른 심중한 말투로 물었다. 《근데 일본에선 소식이 없습니까?》 《없어. 자네 형이 자넬 잊은게야. 하긴 의절한다 어쩐다 했지. 그리구 어릴적부터 워낙 구두쇠니까. 동생때문에 돈 얼마 쓰는게 무에 큰일이라구.》 《그런 말 마슈. 동기동창으로… 소장님두 한때 우리 형님 신셀 얼마나 졌다구요?》 《아, 아, 됐어. 더 기다려보지 뭘 그래.》 리준도는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다음 일본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하고 제 형을 도와 기업에 나섰다. 한데 형을 대신하여 안동에 있는 할아버지, 아버지묘에 한가위성묘를 왔다가 《이북고무찬양죄》로 《중앙정보부》에 걸려든것이다. 원래 성미가 데불데불하고 아무 말이나 막 하는 리준도는 사람들앞에서 공화국책자를 본 얘기, 북에 갔다 온 사람의 얘기 등 그대로 쏟아놓아 《보안법》에 걸려 자그만치 10년형을 받았다. 형의 부탁이 있어서 이곳 교도소장이 여기로 데려왔고 자백서 비슷한 《생활계획서》를 쓰게 했다. 일본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살며 정치적활동이나 발언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쓰게 했는데 그것도 《전향》으로 치부하는것이다. 이런 류의 《전향》도 인차 내놓지 않는다. 일본출신일 때에는 돈만 있으면 가능하고 빠르기도 하였다. 안성태가 5사출입문으로 사라지자 소장이 그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3530번… 저자의 이름이 바루 안성태일거라… 그렇지? 주의하라구.》 《그야 이를 말씀인갑쇼. 이 <한국>땅에 믿을 사람 어디 있어요? 한데 소장님, 그 많은 <좌익수>들가운데서 왜 저 사람을 이름까지 기억하십니까? 유명한 인물인가요?》 《유명한지 어쩐지 모르겠어.》 그러다가 소장이 《아, 아, 됐어.》 하며 손을 내저었다. 《너무 많이 알면 탈이야.》 《소장님, 저를 생각해서 그자를 주의하라구 당부해주시더니, 섭섭합니다. 그쯤한걸 안다구 내가 이 교도소안에 어디 가서 말을 번지며 또 그게 나한테 무슨 리득이 돌아오겠어요? 저를 믿지 못하시니…》 《아닐세. 그런게 아니야… 하여튼 그자를 똑바로 알고 좀 감시해주면 더욱 좋은거지… 이봐 준도군, 어떻게 된 셈인지 <법무부>에 있는 내 친구 조민하라구 부산에서 대학동창인데 관심이 이만저만 아니라구. 맨 처음 소학동창이나 먼 친척되는줄 알았지. 한데 아니거든. 그리구 부탁이란게 어떤건지 알아? 전향굴레에서 절대로 벗겨놓지 말란거야. 강제전향이니까 비전향으로 돌아가려고 하겠는데 그걸 꼭 막으라는거야. 헛, 나 참 듣다듣다 마지막엔 별부탁을 다… 아니 개인적부탁만은 아닌것 같애. 그러니 상부의 지시이기두 하지. 그자 하나때문에 전향공작실적이 떨어질가봐 그런것두 아니겠는데…》 《무슨 거물급인갑쇼.》 리준도의 영민한 눈빛이 반짝이였다. 허나 교도소장이 멀어져갈 때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리준도의 눈길은 날카로와지고 멸시와 증오에 차 번뜩이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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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후 아침이였다. 성태는 황영호가 눈을 끔벅이자 주춤거리며 출역수들의 맨 뒤에서 나왔다. 영호가 얼핏 뒤를 돌아보고나서 성태한테 급히 속삭이였다. 《래일모레 운동회를 한대요.》 봄철이나 가을철에 간혹 출역수들이 철공장앞 운동장에서 운동회를 한다는 말을 들은적 있었다. 《그래서?》 《같이 가면서… 걸으면서 말해요. 공장별로 경쟁인데 비전향장기수들도 구경시킨대요.》 그 말에 문득 성태는 걸음이 굳어졌다가 영호가 팔꿈치를 잡아 이끄는대로 걸어나갔다. 그는 여기 와서 비전향장기수들과는 동떨어져 살고있다. 새삼스레 제 처지가 더욱 통분스러웠다. 그들을 만날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움보다 수치감이 가슴을 쥐여뜯었다. 하지만 그들을 볼수만 있다면… 그러나 사실은 그들을 보고 안 보고가 문제가 아니였다. 얼떠름한채로 그는 뇌였다. 《그래… 그래서?…》 운동회도 무슨 정치적효과를 노릴것임에 틀림없었다. 더구나 비전향장기수들까지 참가시킨다지 않는가. 영호가 따라오면서 더욱 말소리를 낮추었다. 《운동회시작전에 관용부들이 가장물행렬을 짓고 운동장을 돈대요.》 관용부들이란 청소, 원예, 세탁, 리발에 종사하는자들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그때까지도 성태는 무심히 독촉을 했다. 한데 이게 웬 소리인가? 처음에 성태는 제가 잘못 들었나 해서 우뚝 멈춘채 영호의 수인복팔소매를 잡았다. 《이자 뭐라고 했어?》 《화형식을 한대요. 이북을 상징하는 가장물과 <인공기>를 불 태운다구 해요.》 《뭐야?》 성태는 하마트면 영호의 멱살을 틀어잡을번 했다. 《인공기》란 공화국기발을 이르는 말이였다. 성태는 숨을 헐썩이며 영호의 귀가에 입을 대였다. 《영호, 가장물을 어데서 누가 만드는지 모르겠어?》 《글쎄요… 아, 세탁반장한테 물으면 돼요. 모르는게 없으니까.》 《그래 그래, 세탁반장 내가 일하는데로 좀 보내줘, 자신 있어?》 영호는 양재공장에서 일했다. 《네, 해보지요… 어떻게 하나 해요.》 공장 작업장에 들어서는 성태는 다리맥이 탁 풀리였다. 일손도 얼른 잡히지 않았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담? 누구와 의논할 사람도 없다. 문득 리준도생각이 났다. 허나 머리를 저었다. 아직은 의문이 가는 알지 못할 대상이다. 자기를 만나자던 박성인이란 사람은 왜 아직? 그가 이런 순간에 자기를 도울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시각을 다툰다. 성태는 손에다 자기가 무엇을 쥐고 어떻게 하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일상시에 하던 그 타성에 의해 움직였을뿐… 그러다 뼁끼통에서 밤색을 묻혀내야 할 솔을 노란색통에 집어넣고말았다. 그걸 다시 보일유에 씻느라고 한참 신고를 했다. 세탁반장이 나타나지를 않는다. 애타서 기다리느라고 입안이 바싹 말라들었다. 세탁반장은 1급수들가운데서도 그중 영향력이 있었다. 수인들한테서 세탁은 먹는것 다음으로 절실한것이였다. 성태한테 와서 여러번 침도 맞고 간 세탁반장이니 영 모른다고 할수는 없을게라는 한가닥의 기대… 한시간쯤 지났는데 반장이 문간에 나타났다. 문앞에 서있는 《지도》(경비)쯤은 무사통과이다. 그는 키가 작고 체소했으나 눈만은 팽글팽글 도는 친구였다. 세탁반장은 뼁끼냄새, 라크냄새에 코를 찡그리며 작업장을 이리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천천히 성태앞에 다가오더니 느닷없이 큰소리로 《부탁했던 빨래는 당장 안되겠네요. 요샌 비누도 그렇고 양재물도 없구… 양재물이 없단 말이요!》 하고 뒤말을 크게 높이며 딴전을 부렸다. 그러다가 불시에 목소리를 낮추었다. 《왜 그러시유?》 안성태는 가까이에 다른 사람이 없지만 솔질하는 오른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왼손으로 걸상을 가리켜보이며 쿡쿡 찌르는 시늉을 했다. 마치나 칠이 잘 안되여 애를 먹는다는듯이… 성태는 급히 그러면서도 속삭이듯 영호한테서 들은 말을 했다. 그러자 세탁반장은 《난 또 무슨 큰일이라구.》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화형식을 하는데 그게 어쨌단 말인가 하는 식이다. 성태는 마음이 초조했으나 허리를 펴고 그의 눈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그러자 세탁반장은 겁이 나는지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내 알아보지요. 목공장이나 양재공장이겠는데… 그걸 맡은 반장을 알아내서 보내주겠어요. 그리구 한마디 해놓아 보내지요. 정치적인 놀음에 개입하면 앞으로 더는 내 신셀 질 생각 말라구 오금을 박아놓지요.》 《그래, 그래, 내가 직접 만나는게 낫지. 담판을 하겠어.》 순간 성태는 그 담당자들을 만나 내놓을 최후의 수단이 번개처럼 머리속에 떠올랐다. 《그럼 계속 여기 이 자리에서 일하시유.》 《아니, 저기 작업장끝에 창고 있지 않나? 거길 보내주게. 의심받지 않게. 저기 창고장은 좋은 사람이야.》 창고장은 《전향수》였다. 세탁반장이 나간 후 성태는 다시 일거리를 잡았다. 그러다가는 일손을 멈춘채 멍청히 서있었다. 성태는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아예 잃어버렸다. 솔을 들고 자꾸 헛손질만 하였다. 초조, 불안, 다급함… 눈앞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공화국기발이 떠오른다. 통일성전의 언덕과 산야에 나붓기던 성스런 기치, 초연에 끄슬리고 피에 젖은 공화국기발, 전우가 쓰러지면 그 기발을 넘겨받아 고지우로 치달아오르고… 지리산의 투사 송기만이도 말했지. 뱀사골전투의 마지막시각, 자기의 전우 오재영이 총탄과 파편에 무수히 구멍 뚫린 공화국기발이건만 통일된 강산에 날려야 할 성스런 기발을 원쑤들의 손에 욕되게 할수 없다고 죽으면서도 가슴에 품어 더운 피로 적시여 목숨바쳐 고수했다지 않는가… 기발은 공화국의 권위이다. 《비전향》으로 돌아가는가 못 가는가 하는 그것이 중요치 않다. 나의 신념이 살아있는 한 이 기발을 지켜야 한다. … 성태는 죽음을 각오한것이다… 죽음으로 화형식을 파탄시켜야 한다. 그밖에 다른 길은 없다. 그런 죽음은 헛된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비장한 마음에 불쑥 눈물이 솟구치고 심장의 박동이 세차진다… 안타까운 기대속에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간다. 반장들인듯 한 두사람이 출구쪽에 나타났다. 그들의 푸른 수인복은 남들처럼 낡아빠진것이 아니였다. 성태는 다급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걸음을 떼였다. 남들이 이상히 여길가보아 될수록 느직느직 걸으려고 했다. 그 두사람은 성태의 뒤를 따라 현장 한끝 창고가까이로 왔다. 한사람은 양재공장 반장인데 풋낯이나 있었다. 역시 침을 맞고 간자이다. 목공장 반장은 나이가 지숙한데 작업장을 살피는척 둘러보며 오만상을 찌프린다. 보매 그는 양재반장한테 끌려온 형국이다. 다가오는 세사람을 유심히 보던 창고장은 문을 열어놓은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버린다. 세사람은 열려진 창고출입구에 서있었다. 누가 보면 성태는 자재를 타러 가 서있고 두 반장은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온것 같았다. 두 반장은 성태한테 무엇인가 따지고드는 자세로 똑같이 허리에 두손을 넌뜩 짚고 서서 일부러 더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세탁반장한테서 그들이 이미 들은바가 있을것이니 주변의 눈을 조심하느라고 그러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선뜻 응해나설만 한 일도 아니니 성태는 단단히 마음을 도사려먹고있었다. 목공장 반장이 먼저 퉁명스레 말했다. 《그런건 못하오. 그렇게 했다간 내 목이 열개라두 안되오.》 양재공장 반장이 머리를 돌리였다. 《힘든 일이지요. 교도소장이 직접 내린 지시이니 그 지시를 거역했다간 우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오… 나한테 늙은 어머니가 계시오. 난 감옥에서 빨리 나가야 하오.》 성태는 길게 말할 마음의 여유를 잃었다. 그리고 여기에 오래 서있을수도 없었다. 그는 이미 마음을 다잡은대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좋소, 생각대로 하오, 그럼 난… 화형식을 시작할 때 거기에 뛰여들겠소. 내 몸에 불을 달겠단 말이요.》 두사람은 와뜰 놀라며 똑같이 눈이 퀭해졌다.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안성태는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양재반장은 주춤 한걸음 물러나며 《어, 어.》 하며 말을 못했다. 성태는 흥분을 갈앉히며 침착하게 말했다. 《난 목숨으로 그 화형식놀음을 파탄시키자고 이미 결심을 했소. 내가 당신들을 오라구 한것은… 그래두 한가닥 량심이라두 있을가 해서. 좋소. 당신들은 내 죽음으로 감형이 되란 말이요… 알겠소? 내 죽음과 몇년의 감형을 바꾸란 말이요.》 그들은 그저 멍청히 서서 성태의 얼굴을 뻔히 보기만 했다. 《그리구 듣소. 화형식이 파탄되여도 가장물을 제작한 당신들이 점수를 올리겠는지는 모르겠소.… 또 한가지 만약 보안과에 밀고하면 내 대신 우리 동지들이 또 있다는것을 알아야 하오. 내 말은 다요.》 사실은 다른 동지들이 나서게 하자면 당장은 시간도 방도도 없었다. 물론 비밀조직을 예감하고있으니 그들이라고 가만 있을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목공장 반장이 어느덧 정신을 수습했는지 한마디 볼부은 소리를 했다. 《한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밀고라니… 그래 우리가 뭐 고발질이나 해서 점수를 따는줄 아시유?》 《그럼, 그 말은 미안하오… 시간이 없소. 어떻게 하겠소?》 목공장 반장이 양재반장을 돌아보았다. 《거기서 만드는 그 기발이 문제야.》 양재반장이 도리여 머리를 흔든다. 《아니야, 그… 그 국장, 공화국 국장인지 그게 문제야.》 성태가 약간 어성을 높였다. 《숨박곡질은 그만하오. 어떻게 하겠소?》 《생각해봅시다.》 목공장 반장이 풀기없이 말했다. 두 반장은 고개를 숙이고 거기서 떠나갔다. 성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들한테 기대를 걸고 가만히 있을수 없다. 종전의 결심을 변경시킬수는 없었다. 그런데 약간의 신나가 있으면 좋겠다. 라크를 풀어놓은것이라도… 그러나 냄새때문에 운동장에서 미리 몸에 뿌릴수는 없다. 아니다. 이런저런 타산은 필요없다. 문제는 가장물에 뛰여들어 몸에 불을 달기까지의 시간만 얻어내면 되는것이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딱성냥 한두가치를 구해볼가? 그런데 그게 어데 있는가? 그는 래일 아침 영호를 통해 구해보리라 마음먹었다. 돈만 있으면 교도관놈들이 담배 한가치에 몇만원씩 받아먹는 판에 딱성냥 한가치야 못 구할라구… 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그럴 시간적여유가 있을것 같지 않다. 그는 저녁에 일을 마치고 사동에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최후를 각오한 사람일수록 도리여 마음이 평온해진다는것은 거짓말이다. 결코 마음이 평온할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안해와 딸들 그리고 형제들과 마음속으로 작별의 인사를 나눈다는것이 어찌 순탄한 심정으로 되는 일인가? (일이 뜻대로 돼야겠는데 차라리 두 반장한테 가장물제작을 그만둬달라는 말을 하지 말걸 그러지 않았는가… 그저 내가 거기에 뛰여들면 될게 아닌가. 그러나 현장에서 저지될수 있다.… 어쨌든 두 반장한테 부탁한것이 미타하다… 고발은 하지 않더라도 가장물제작을 어떻게 그만 둘수 있겠는가…) 성태는 자리에 누워서도 태연할수가 없었다. 《억대우》가 좀 늦게야 들어왔다. (혹시 저자가 눈치채고 어디다 고발한게 아닐가.) 그런데 이상하게 그가 성태의 옆자리에 와 눕는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성태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헌 이불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생각을 더 정리하고싶었다. 허나 《억대우》가 이상히 볼가봐 그저 태연한척 해보였다. 밤 9시쯤 되였을 때였다. 별안간 문이 벌컥 열리고 교도관 세놈이 다급히 들어왔다. 그들은 곧바로 안성태쪽으로 걸어온다. 《억대우》가 급히 안성태의 귀에 속삭였다. 《선생, 안심하시우. 그게 다 없어졌으니 래일두 만들지 못할게요.》 성태는 어리둥절했으나 미처 그한테 물어볼새도 없었다. 교도관들이 앞에 와 선것이다. 성태는 기다렸다는듯이 천천히 일어나 두손을 내들었다. 철칵 그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억대우》의 말을 믿고싶다. 《래일두 만들지 못할게요.》 그는 걸어가면서 이 말을 곱씹어보았다. 밤에는 원래 수인들을 절대로 작업에 동원시키지 못하니 이 밤에는 물론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 래일도 만들지 못할것이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교도소측에서 큰 위협을 느낀것이 아닐가? 그렇다면 누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을가? 곰곰히 따져보자… 어떤 수인이 불속에 뛰여들어 화형식을 파탄시킬수 있다는 《정보》를 누군가가 보안과장한테 말해주었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세탁반장이? 양재공장 반장? 목공반장? 아니면 《억대우》? 《억대우》가 어떻게 그들과 통했을가? 그들중에서 누군가가 계책을 꾸민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화형식이 파탄되여야 한다. 그렇게 될것 같아 그것이 기뻤다. 그리고 자기한테 《죄》가 생겨 《전향취소》가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성태는 그 모든 실상을 알수 없어 불안하기만 했다. 황영호가 리준도한테 말했고 리준도가 교도소장을 만났다는것을 알게 된것은 며칠뒤의 일이다. 리준도는 교도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슨 일을 벌려놓으려는가. 화형식이 파탄되면 그때는 교도소장의 목이 무사할줄 아는가. 안 벌린것보다 백배 못하게 된다. 난 우리 형님과의 친분을 생각해서 소장님이 곤경에 빠질가봐 그런다.》 하고 력설했던것이다. 물론 두 반장도 가장물제작을 질질 끌었다고 한다. 그때 황영호가 아니더라면 리준도도 모르고있을번 했다. 성태는 비전향장기수들만 있는 특사(1사동)에 끌려갔다. 손목에서 쇠고랑도 풀어주지 않았다. 교도관이 독감방문을 열었다. 독방에 들어서는 순간 뒤에서 몽둥이가 어깨를 내리쳤다. 바줄이 날아와 목을 휘감았다. 그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쇠고랑이 채워진 손목을 움직일수 없어 꼼짝하지 못하고 매를 맞아야만 했다. 바줄이 윙윙 울며 몸에 감기였다. 성태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온몸에 굴뱀이 돋고 어깨에서 피가 흘렀다. 몸이 쑤시고 아팠으나 어째선지 자기가 이겼다는 희열때문에 그 육체적고통이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생각되였다. 그러면서도 불안감은 여전하였다. 운동회는? 화형식은 《억대우》의 말을 믿어야 할것 같기도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랴… 아침에 그는 교무과로 끌려갔다. 보안과장, 취조부장, 교무과직원 몇놈이 곤봉과 바줄, 수갑을 앞에 놓고 성태를 기다리였다. 웃수정이 채워지고 《오몽뎅이》란놈이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구두발로 차고 짓밟았다. 《대라! 화형식저지를 어떻게 계획했어?… 개새끼, 속은 살았구나.》 성태는 매를 맞으면서도 웨치였다. 《그래 속이 죽은줄 알았느냐!… 내 량심은 변함이 없다! 나는 화형식이 감행되면 불속에 뛰여들려고 했단 말이다. 나는 위조전향을 당한 사람이다… 나의 머리는 아무것도 변한것이 없어… 공화국기발을 불사르는것을 지켜보는것보다 불타죽는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마음대로 해라!》 이렇게 반항하다가 성태는 의식을 잃었다. … 운동회는 예정대로 열렸으나 수인들은 철저하게 몸수색을 당했다. 비전향장기수들은 나오지 못하게 했다. 가장물행렬도 화형식도 없었다. 철공장의 2층지붕우에 경기관총이 걸리고 교도관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운동장주위를 돌며 삼엄한 경계를 폈다. 일정도 단축되여 오전에 끝나버렸다. 안성태는 두달동안 징벌을 받고 독감방에 갇혔다. 운동, 리발, 면회, 서신 등 모든것이 정지였다. 이것은 《전향수》 출역수취급이 아니였다. 징벌이 해제된 후에도 미지정사에 가두었다. 출역은 여전히 금지였다. 그런데 안타까운것은 《전향취소》가 안되는 그것이였다. 《죄》는 몸에 붙었는데 이놈들이 왜 이걸 인정해주지 않을가. 그는 몸부림을 쳤다. 미지정사에서 나와 출역을 다시 하게 된것은 그로부터 석달후였다. 이 모든것이 교도소장의 주관하에 진행되고 서울에는 안성태가 알지도 못하는 조민하라는자가 있다는것을 그가 어찌 알수 있었으랴. 성태는 《전향취소》가 안된것이 안타까왔지만 자기가 놈들과 대결해서 이겼다는 승리의 쾌감은 어쩔수 없었다. 변할것이 따로 있지 마음이야 어떻게 변할수 있으랴. 투쟁속에서 내 신념이 더 굳세여졌을뿐이라고 자부하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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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당국은 1975년에 《사회안전법》을 조작해내였다. 그리하여 《감형만기》로 72, 73년경에 출옥시켰던 통일애국인사들을 모조리 다시 붙잡아 청주보안감호소에 끌어갔다. 재심이나 재판 그리고 형량도 없었다. 오직 저들이 만들어낸 《사회안전법》이라는 몽둥이가 《재판》이고 《형량》이라는것이다. 이 시기에 와서도 《충격적인 사건》을 련이어 조작해내였으니 남조선의 대중투쟁은 다 《북의 지령》이라는것이다. 1974년의 《민학련사건》, 1975년의 《학원침투간첩단사건》… 밤 자고나면 이런 모략극이 수없이 나왔다. 일찌기 히틀러는 대중을 크게 속여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을 크게 기만해야 독재자는 정권을 유지할수 있으며 정치적야망을 실현할수 있다는것이다. 남조선독재자들이 히틀러의 《신조》를 받아 들였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카톨릭교 주교 지학수, 그리스도교 목사 박형규 등 종교인들과 정계인사들속에서까지 반《정부》투쟁이 활발해지자 그들이 《북의 지령》에 의해 움직였다고 하면 곧이 들을 사람이 없기때문에 《자생적공산집단》이라는 새로운 딱지를 붙이였다. 말하자면 이제는 《북의 배후조종》이란 구실이 없어도 얼마든지 탄압하겠다는것이다. 《반공》과 《반통일》은 력대로 남조선집권자들의 쌍지팽이였다. … 《사회안전법》이 나왔다는 말을 황영호가 맨 처음 안성태한테 알려주었다. 《선생님, <대통령>이 쎄긴 쎄다구요. 하루밤에 하나씩 법을 만들어내니까. 다법이 무법이라구. 이거야 어디…》 황영호는 버릇처럼 능청스레 실눈을 짓는데 오늘은 거기에 비웃음이 한껏 실려있다. 《사회안전법》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안성태는 생각했다. (정대철이도 송기만이도 다시 잡혔겠구나… 출옥해도 갈데 없는 정대철이를 누이동생이 있는 거제도로 보냈지. 매부도 사람이 좋다니 거기 가서 의지해 살라구… 한데 석순이 면회왔을 때 들으니 경찰이 어떻게나 못살게 구는지 누이동생네한테 미안하다고 거기를 떠나 다도해근방을 헤매며 품팔이군으로 산다고 했는데… 또 옥에 끌려갔겠구나…) 정대철이 만들어준 침을 다룰 때면 요즘 그에 대한 생각이 간절했다. 안성태는 림시로 철공장의 단야장에서 쇠집게공으로 일하게 되였다. 자기를 만나자던 박성인이도 거기서 일했다. 그를 만날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데 며칠이 지나도록 저쪽에서 선뜻 만나려는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이였다. 일이 끝나 같이 나오면서 박성인이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을 꺼내는것이였다. 《안동지, 뭘 숨기겠소. 우린 안동지를 믿소. 좀 늦은감이 드는데 어찌겠소. 사람들의 일이란… 그래서 <운동회사건> 전에는 좀 주저했댔소.》 《아, 그건 박동지 생각이 옳았어요. 그러니 난 더 믿음이 가요.》 《그렇소?… 고맙소.》 그러면서 박성인은 주위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작업할 때 쓰던 꿰진 크로스장갑을 탁탁 터는 시늉을 했다. 《긴말할게 없지. 우리한테는 조직이 있소.》 《그래요?》 안성태는 대번에 가슴이 뛰였다. 조직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듣는다. 그것이 어떤 조직인가. 누구누구 들어있는가, 활동목적, 련계방법? 단번에 모든걸 알고싶도록 조급해났다. 하지만 그는 참았다. 《조직의 명칭은 <재감동지회>…》 (재감동지회!…) 《강령은 <통일혁명당> 강령과 같다구 할수 있소. <통혁당> 강령은 알구 있소?》 《대전에 있을 때 <통혁당사건>으로 들어왔던 동지한테서 들었소. 당면목적은 통일, 통일혁명이지요.》 《옳소. 그런데 말이요. 우린 서로 횡적으로 일대일로만 련결되여있소. 난 내가 선전책이란것만 알지 책임자가 누군지 모르오. 이제 우린 리준도와 함께 3인조요.》 《리준도요?》 《왜?》 《그는 인차 일본으로 돌아간다구 하던데?》 《그렇게 말을 퍼뜨리는게 좋으니까. 그리구 밖에는 이미 출옥해나간 우리 성원들이 있소. 만기출옥자 <전향수>들도…》 《교도소장이 리준도를 잘 알더군요.》 《그게 지금은 아주 좋소.》 그러면서 박성인은 무슨 말인지 할듯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안동지, 자연스럽게 내 여기 팔목을 보시오.》 박성인은 더워서 그러는듯 수인복팔소매를 한두겹씩 걷어올렸다. 그는 크로스장갑을 두손으로 앞에 모아쥐면서 오른팔손목을 번져보였다. 《자세히 보오.》 성태는 얼른 알아볼수 있었다. 팔목에 작은 붉은별을 그린 입묵이 있지 않는가. 피로써 문신을 했다. 밤하늘의 별, 그것처럼 작고도 또렷이 반짝이는듯… 한방울의 작은 피방울이 퍼져 별빛으로 새겨진것이다. 《이제 안동지도 곧 기회를 봐서 우리의 붉은별을 새깁시다.》 성태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뇌이였다. (박동지, 고맙소… <재감동지회>에 나를 보증하는 동지의 믿음이 말이요… 그리구 내 그날 얘기할것도 있소. 내 가슴우에는 지금 전윤국동지의 피가 새겨져있다는것을 말하겠소… 나의 팔목에 그 뜻도 함께 새겨넣겠소.) 《안동지, 우린 감옥안에서 잡범들속에까지 이남당국의 반공반통일정책을 폭로해야겠소. 그러면서 공화국의 통일정책을 선전해야 하오. 그리구 안동지도 같은 생각일테지만 빨리 <비전향>으로 돌아가는거요. 거기가 역시 우리의 기본투쟁대오이니까. 그런데 말이요. 공화국소식을 알아야겠는데 방도가 없소. 놈들의 스피카에선 들을 소리가 없지 않소?》 《그래서요?》 《<트란지스타>가, 휴대용라지오말이요. 그게 있어야겠는데.》 성태는 놀랐다. (이안에서 <트란지스타>로 공화국방송을…) 그는 용기가 생기고 그 어떤 충동에 몸이 달기 시작했다. (이거야말로 해야만 할 일이다.) 성태는 흥분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될가요?》 《돈이 모자라오. 소형 <트란지스타>는 3만원을 한다니… 돈이 있으면 사다줄 간수놈이 있는데. 그놈은 일반수한테 담배 한대 1만원 주고 팔아먹는 놈이니까 돈만 찔러주면… 한데 말이요. 난 밖에 먼 친척 하나 없는 사람이요.》 《알겠소, 알겠소. 내가 노력해보겠소. 조직의 첫 분공으로 생각하고.》 《고맙소. 방도는?》 《내 작은누이가 25년만에 처음 만나러 면회오겠는데 그를 통해 부탁해보겠소… 얼마면 되겠소?》 《5천원은 더 있어야겠소… 그런데 령치금형식은 안될거요. 현금이 있어야 하니까.》 《그럼 어떻게 들여오게 할가요?》 《글쎄…》 박성인은 머리를 짓숙인채 걷고있었다. 방도가 떠오르지 않기는 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와 천천히 걸음을 맞추던 안성태는 사동의 출입문에 거의 다가왔을 때 (박성인은 거기를 더 지나가야 한다.) 문득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소?》 《뭔데?》 《치약이랑 들여보낼 때 말이요. 저… 치약을 짜내고 그안에 돈을 넣으면… 치약을 다 짜내면 가벼워져 안되고… 그렇지만 5천원쯤 넣을수 있을것 같소.》 《아, 그게 좋겠구만. 한데 너무 조급히 서두르지 말자구요. 교도관놈들은 물론 일반수들속에서도 끄나불들이 있을수 있으니까.》 하지만 성태는 흥분에 못이겨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해야지요. 그전때 우리 어머니말씀이 말은 뒀다 하구 일은 당겨하라구 했소.》 《신통하군. 우리 어머니도 그런 말 했거든요. 참…》 두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오랜만에 웃는 웃음이다. 그날부터 안성태는 줄곧 흥분속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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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여져서 처음 만나게 되는 둘째누이가 면회를 온 날처럼 기쁜 날은 일찌기 없었다. 25년만에 만난 기쁨, 돈 5천원을 요구하는것도 기꺼이 받아주는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둘째누이는 막벌이군인 남편을 잃은채 두 자식을 데리고 어렵게 살고있을것이다. 나이 50에 벌써 희끗희끗한 귀밑머리… 그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내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지었다. 《성태야, 언니도 기뻐해. 언닌 정말 불쌍해지지 않았니. 너라도 빨리 나와 의지해 살면 참말 좋겠다는게다. 이제 7년만 있으면 여기서 나온다며?》 교도관이 보는 앞이라 성태는 억지로 웃어보이며 《네. 그래요, 그래요.》 하면서도 속으로 아픔을 참을수 없었다. 나의 치욕이 그들의 기쁨으로 되다니? 석순이와는 다르구나. 그 애는 나한테 고무를 주더니… 세 자매중에서 결국 석순이만이 나를 리해해주는구나. 둘째누이는 지금 자기의 심정도 맏누이인 안효순이한테 비껴놓고 말하는것이 분명하다. 어릴 때 제일 많이 떨어져 지내다나니 자연 정이 떠져있던 둘째누이는 그럴수도 있겠다. 그러니 돈 5천원을 형제들이 모아서 들여보내주겠다는 소리인가? 아무튼 돈이 순탄히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러자 맏누이 안효순이 제일 기뻐하면서 내가 나오기를 기다린다는 말이 다시 생각났다. 맏누이는 자기의 운명이 그렇듯이 비참해진것을 그저 팔자탓으로 보는것 같다. 안효순은 형제자매들중에서 어릴 때도 누구보다 고생이 많았다. 전차운전수인 남편을 만나 인생의 락을 볼가말가하다가 시부모때문에 일조에 집안이 망하고 그는 홀로 남았다. 몇해전에 경기도 어딘가에서 어떤 협잡군목사가 《신앙촌》이란걸 꾸려놓고 사람들을 유혹했다. 자기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리상향을 꾸린다는것이다. 시부모가 한사코 우겨서 그네는 집도 팔고 있는 재산도 다 팔아가지고 거기로 갔다. 《신앙촌》에서는 낮이면 공동으로 농사를 짓고 밤이면 교회당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도받았다. 한마디로 《사교조직》이라고조차 말할수 없는 협잡판에 그들이 걸려든것이였다. 두해도 못되여 《목사》놈은 달아나고 《신앙촌》은 통채로 차압을 당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시부모는 화병으로 거기서 죽고 남편과 함께 부산에 돌아온 맏누이의 고생은 말이 아니였다. 인차 남편도 죽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도 거리를 방랑하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 이래도 맏누이는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모르다니 정말 가련하기 그지없다. 누이를 어머니맞잡이로 위해주고싶지만 그래 내가 《전향》으로 나가서 자기의 운명을 달리해줄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보름후에 둘째누이가 다시 면회를 와서 치솔, 치약, 세수비누를 넣어주고 약간의 돈을 령치계에 넣었다. 성태가 《전향수》라는것으로 립회교도관도 그리 눈을 밝히지 않았다. 면회실에 마주앉아 둘째누이가 말했다. 《그래두 네 제수가 괜찮더라. 자그마한 차집 하나 가지고 아이들 넷을 키우느라 오죽하겠니. 제 남편이란 녀석은 성필이 말이다. 딴 녀자와 사는데두 제 시형이라구 너한테는 끔찍한것 같애.》 성태는 성필이 원망스러웠다. 물론 동생도 마음고생이 많았지, 나때문에…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까지야 제 처를 의심하고 산다 안 산다 하며 리혼소송질인가. 리혼도 하지 않고 웬 녀자와 눈이 맞아 돌아간다니 너무하구나.… 인간의 상정이 전쟁전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흐트러지지 않았던게 아닌가. 남은 말고도 우리 형제들사이의 정은 두터웠는데 그것마저 이렇게 됐으니… 성필이 그놈도 내가 감옥에 들어온 초기만 해도 나를 위해 그렇게 뛰더니… 그것이 결국 자기 리기에서 출발했던것이였는가… 하지만 그렇게 동생을 타매하는 자신이 오히려 너무 매정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태는 돈을 박성인에게 주었다. 그 돈이 보태져서 얼마뒤에 《트란지스타》가 은밀히 구입되였다. 한호실에 같이 있는 박성인과 손성수가 직접 방송을 들었다. 손성수는 《경주호》로 월북기도를 했다고 잡혀들어온 청년이였다. 저녁이면 박성인이 아파서 먼저 자리에 눕는것처럼 하고 이불을 뒤집어쓴다.
박성인은 아침에 일어나자 밤새 이불안에서 들은 북의 방송내용을 요약하여 작은 종이장에 연필로 빽빽이 적어서 손성수에게 준다. 손성수는 위생실에 가서 읽고 출역하자마자 성태에게 쪽지를 준다. 성태는 그것만 받으면 출역공장 위생실에 들어가서 잠시사이에 모두 암기하고는 종이를 찢어 없앤다. 그다음에는 리준도한테 우선 내용을 전달하였다. 어느날 아침 성태는 황영호를 보며 생각하였다. (영호가 일반수가 아니라면 조직에 받자고 박성인한테 제기하겠는데… 아니야. 일반수라도 그는 분명히 우리를 따를 청년이야. 황태성의 5촌 조카라는 그 피줄 하나만으로도 그는 믿어야 할 청년이다.…) 그래서 안성태는 우선 공화국소식부터 그한테 말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아침에 받은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김일성주석 일본잡지 《세까이》편집국장과 담화 7.4공동성명의 3대원칙 확고히 주장 공동성명을 뒤집는 남조선당국을 단호히 규탄 《반공법》, 《국가보안법》철페를 요구 자주적평화통일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심
성태한테서 이 내용을 들은 황영호는 눈빛을 번쩍이며 성태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성태는 말했다. 《걸어가면서 말하자구. 말소리도 낮추구.》 《알겠어요.… 그런데 이남당국자들은 그냥 <남침위협>을 떠들어대지요.》 《그게 통일을 안하겠다는 소리야. 사실은 북침위협이 있지 않는가. 미국놈들이 자꾸 전쟁흉계를 꾸미는데. 안그래?》 《그래요, 그래요.》 남조선정세도 결국 북의 방송을 통해 더 잘 알게 되였다. 낮이면 박성인이 직접 《트란지스타》를 몸안에 건사하고 일하러 다녔다. 얼마 지나서 축전지가 다 나갔다. 1.5볼트짜리 두개였다. 축전지를 구할 동안 《트란지스타》를 어디다 단단히 건사해야 했다. 리준도가 제가 일하는 양재공장 판자마루밑에 숨겨두었다. 그런데 어느날 공장안에서 도라이바가 분실되였다. 공구가 분실되면 대검방을 하게 되고 마루바닥이나 헐렁한 곳은 다 뜯어본다. 대검방을 하기 전에 다른 공장에 빼돌리려고 리준도는 《트란지스타》를 제 몸에 건사하였다. 그런데 한낮때에 갑자기 2층인 양재공장안으로 50여명의 교도관들이 우루루 쓸어들었다. 줄뒤짐이였다. 《검신》이 기본이였다. 리준도는 얼른 원단위직물속에 《트란지스타》를 쑤셔박았다. 귀신도 모를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일반수놈이 보고 말해줬는지 교도관 한놈이 곧바로 직물원단위가 무져있는 곳으로 가서 《트란지스타》를 찾아내여 보란듯이 머리우에 쳐들었다. 놈들은 즉석에서 리준도를 체포하였다. … 이튿날, 불안속에서 하루해가 저물어갔다. 성태는 이 일이 크게 벌어지면 《트란지스타》는 자기가 전적으로 나서 구해들였다고 할 심산이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또 한차례 여러 동지들이 시련과 고초를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당장은 이 고비를 넘겼으면 싶었다. 하지만 놈들이 현물증거를 손에 쥐였으니 끝까지 해명하려들것이다. 흔히 교도소측에서는 자기네 책임이 두려워 웬간해서는 유야무야해버리는 사건도 많았다. 한데 이것은 성질이 전혀 다른 사건이다. 낮동안 교도소안의 공기는 팽팽해졌다. 출역수들한테 엄격한 통제와 감독이 뒤따랐다. 그다음날 저녁, 안성태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할 때 누군가 발길로 걷어차며 그를 깨웠다. 《일어낫! 셈평좋게 자?》 안성태의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그는 보안과로 끌려갔다. 보안과에 지하실이 있는줄은 처음 알았다. 취조부장과 보안과의 계장이 기다리고있었다. 전문취조담당 교도관 세놈이 성태를 걸상에 앉히고 바줄로 비끄러맸다. 《야, 라지오 알아?》 《무슨 라지오?》 《뭘? 그래, 쏘니제 <트란지스타> 모른단 말이야?》 《모른다!》 《그래? 그걸 알게 해주지.》 세놈이 각기 치는데 주먹인지 몽둥인지 머리에 잔등에 옆구리에 연방 강한 타격이 가해지는것이다. 갑자기 어깨가 바스러지는것 같은 아픔과 함께 졸지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성태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자 물벼락을 들씌웠다. 희미해지던 의식이 다시 되살아난다. 취조부장놈이 직접 달려들어 구두발로 다리를 걷어찼다. 《이놈아, 라지오 구해준 교도관도 잡았어. 돈을 누가 냈어? 네가 냈지?》 이때 안성태는 머리를 곧추 쳐들고 낮으나 명백히 말했다. 《그래… 내가 냈다!》 《어랍쇼. 제법인데. <재감동지회>란 뭐냐?》 《모른다!》 한놈이 성태의 팔목을 잡았다. 《야, 너한텐 이 팔목에 왜 빨갱이 표식이 없어? 붉은별말이야.》 《미처 새기지 못했다. 이제 새긴다!》 《뭐? 이제? … 그럼 백개를 새겨라!》 놈은 팔목부위를 채찍으로 연거퍼 때렸다. 그리고는 서너놈이 달라붙어 성태의 발목에 쇠사슬을 걸었다. 성태는 꺼꾸로 천정에 매달렸다. 철쇄가 즈르렁 철썩- 즈르렁 철썩… 하며 성태의 몸뚱이를 내리고 올리고… 수없이 반복되였다. 그바람에 성태의 머리는 세멘트바닥에 짓찧어져 피가 랑자하게 흘렀다. 성태는 정신을 잃고있었다. 그는 담가에 실려 특사(1사동)에 끌려갔다. 《엄정독거》에 들어갔다. 며칠후 성태는 산기슭에 자리잡은 《중앙정보부》 경북지부에 끌려갔다. 고문과 취조는 거기서도 여러날 계속되였다. 서울의 《중앙정보부》에서도 오고 《법무부》에서도 내려왔다. 놈들은 사건과 지하조직의 전모가 저들이 밝혀낸 그것 이상이 아닌가 해서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재감동지회》에 가입했다가 출옥한 사람들도 다시 잡혀왔다. 그중에는 《국회의원》의 《비서》로 있던 사람, 지리산빨찌산출신, 월북기도하다가 잡혔던 사람, 월남자로서 《반공법》에 걸렸던 사람도 있었다. 13명이 재판을 받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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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 경북지부사무실의 어느 한 방에 지부의 한 과장과 대구교도소장이 앉아있었다. 과장의 방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고 응접탁도 자그마한것이였다. 그 응접탁에 과장과 소장이 마주앉았다. 교도소장이 과장보다 훨씬 년장이였으나 과장은 소장을 동년배처럼 대했다. 외교적인 존중도 실무적인 례의도 없었다. 소장자신은 이 보름사이에 마음고생으로 퍼그나 늙어보였다. 제모를 벗은 머리는 어지간히 벗어져있다. 버릇처럼 손으로 이마를 매만지고나면 머리카락이 한두올씩 묻어내리군 했다. 과장은 소장의 대머리를 불쾌히 쳐다보고는 탁자우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흘겨보았다. 소장은 머리칼따위는 숫제 돌아볼 경황이 없는 모양이다. 과장이 앞에 놓인 서류장을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소장님, 이거야… 이 3530번 안성태말이요. 운동회사건때 벌써 독방에서 풀어놓지 말았어야 하지 않아요? 전향을 취소시키던지 해야지 너무너무 물렁했어요.》 소장은 숨을 후 길게 내불었다. 《그땐 그렇게 됐습니다. 그놈을 잡아 처리하구 운동회때 예견한 행사를 벌리자니 마음이 놓이지 않구… 그런데다가 우에서는 한번 전향시켰다고 해놓은 놈을 전향취소시키면 소장은 뭘하고 교무과장은 뭘하는가구 내리조기는데야…》 과장이 독살스레 소장을 쏘아보았다. 《그 우에서란 도대체 어디요? <법무부> 교정국이요?》 《…》 과장이 웃몸을 의자등받이에 제치였다. 《그렇단 말이요. 그 <법무부>가 문제요. 우리 사업을 다 망가뜨려놓거든. 밥통들만 들어앉았는지…》 그러다가 급히 탁자에 몸을 굽히며 손에 만년필을 찾아 쥐였다. 《안되겠소. 이번엔 그 문제를 파고들어야지. 버릇을 뚝 떼놓아야겠단 말이요. 분명 사사로운 감정이 끼여든것 같아요. 그 공무원님들은 쩍하면 국제인권에서 무슨 보고서요, 선언이 온다고 하면서 밤낮 우는 소리만 하지. 어디 일을 제껴내기나 하우?… <법무부>의 누구한테 보고되였소?》 《그저… 그거야 지난 일이고.》 하지만 과장은 만년필 뒤등으로 독촉하듯 탁자를 두드렸다. 소장이 사정하듯 말했다. 《제 동창이올시다. 부산에서 대학교동창… 이름이야 뭐 조민하라구.》 《몇과요?》 《글쎄요. 12과든지 13과든지…》 과장은 만년필을 끄적거렸다. 《알겠소. 전탕 이러고있으니 <국가보안법>이 어찌 되겠나 말이지요. 서울본부에 통고하겠소.… 그리구 이 리준도는 소장님과 잘 아는 사이라니 어떤 사이요?》 소장이 또다시 긴숨을 내쉬였다. 과장은 모든 사연을 알고있는듯 더 따져묻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소장님은 교도행정간부로서 좀더 자숙해야겠어요. 우리 사업을 보장하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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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진행되기 전에 《중앙정보부》에서 내려온 요원은 주모자들은 사형이라고 말했다. 성태도 주모자라는것이다. 재판은 변호사도 없이 경북지부의 지하실에서 비공개리에 진행되였다. 1심에서 구형은 사형이였다. 어째선지 언도는 일주일후로 미루어졌다. 성태는 지하실독방에 갇혔다. 먹방이였다. 캄캄해서 자칫하면 벽을 들이받을수 있었다.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섰던 성태는 수갑을 찬 손을 추켜들었다. 잠시 그렇게 섰다가 조용하면서도 굳세게 부르짖었다. 《동지들!》 (나는 돌아왔소, 여기로! 내 자리로…) 《동지들!》 그는 뜨겁게 되뇌이였다. 눈물이 걷잡을수없이 쏟아져내렸다. 동지라는 이 부름… 놈들의 음모를 부시고 그 귀중한 이름을 떳떳이 부를수 있는 자격이 이제야 생겼단 말인가? 《동지들, 대오에 내가 들어섰습니다. 나는 이제 죽을것입니다. 상소도 안할것이고 사형장으로 떳떳이 걸어나가겠습니다.》 그는 수갑을 찬 손을 내리웠다. 그의 눈앞 캄캄한 어둠속에는 이미 떠나간 황태성, 전윤국동지들, 뒤이어 정대철, 조용순, 송기만동지들의 얼굴이 엇바뀌며 지나갔다. (동지들… 놈들의 음모는 어떻든 나는 치욕을 당했댔소. 한생을 잃을번 한 내가 아니였소? 이제 닥쳐올 죽음으로 그것을 보상할수 있다면 나는 더없이 기쁘겠소.… 난 지금 이 순간이 무한히 자랑스럽소.… 내가 내자신을 딛고 일어섰다는… 사람이 자기를 이겼다는 그것이 가장 큰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동지들…) 안성태는 죽음을 각오하고 사형을 언도로, 최종판결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찌된셈인지 언도가 7년이 되였다. 물론 본래 받았던 《무기형》이 되살아났다. 3심에서는 5년으로 확정되였다. 무기형에다 5년을 더한다니 수학적으로는 말이 안되지만 사실이 그렇다. 박성인이 모든 《죄》를 자기가 뒤집어썼다. 그래서 그는 《쌍무기형》으로 되였다. 전향취소에 본래의 무기형에 새로 무기형이 더해진것이다. 리준도는 10년 그리고 그에게는 일본에서 올 돈이 소용없게 되였다. 이미 출옥했던 사람들도 다시 형을 받고 투옥되였다. 놈들이 《재감동지회》의 《수괴》라고 떠들던 정××는 예심중에 자결했다.
성태는 지하실에 있는 독방으로 끌려갔다. 이미 사형을 각오하고 나갔던 그 먹방이였다. 성태는 랭돌같은 세멘트바닥에 앉았다. 아무리 오래 있어도 주위의 캄캄한 어둠에 익숙될수가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동지들에게 마음속으로 영별의 인사를 한것이 돌이켜졌다. 그는 까딱도 움직이지 않았다. 살아서 동지들한테로 돌아왔다는것 그리고 놈들의 모략을 짓부시고 투쟁의 대오에 들어섰다는것이 기뻤다. 그러자 문득 한점의 빛도 소리도 없는 이 암흑속이지만 아스랗게 먼 어디선가에서 가느다랗고도 명료한 웨침으로 《아버지!-》 하고 부르는 어린 딸애들의 목소리가 분명 들려오는듯… 그뒤로 눈물을 흘리며 《여보!》 하고 달려오는 안해의 모습이 보인다. 대학시절 아래학년에 다니면서 동정과 존경으로 대하다가 제가 먼저 《저를 길동무로 받아주세요.》 하는 사랑의 고백을 겨우 한마디하고는 달아나던 안해. 그래도 어떻게 그런 용감성이 생겼던지… 결혼후 끝내 《여보》라는 말을 번지지 못하는 안해를 보고 떠나오지 않았던가. (그리 먼길은 아니니… 먼길이 아니니… 영영 돌아가지 못할번 했던 그 길이 이제는 지척이런듯 가까운것 같다!) 먹방속의 어둠은 오히려 눈앞에 마음의 상상을 더욱 명료히 펼친다. 문득 눈앞에 어려오는 자애로운 미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온 그때가 20년이 가까와온다. 하지만 어제일처럼 생각되는 그이의 미소가 여기에 흘러들어 먹방속에 있는 성태의 눈앞을 환하게 밝혀준다. 세월과 공간을 뛰여넘어 이 캄캄한 어둠속에 흘러드는 해빛이런가. 지옥같은 이속에서도 그 해빛이 넋으로 받아져 온 육신에 재생의 기쁨과 활력이 피여오른다. 그이께서 기억하시는 자기의 이름을 오늘에야 되찾은것만 같았다. 고문으로 운신할수 없는 몸, 육체의 어느 한 곳도 아프지 않은데가 없었건만 성태는 이 순간에 그 모든 동통과 쑤시는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있다. 그는 생각했다. 자기를 정겹게 바라보시던 수령님의 미소를 지켜 그이께서 그리도 바라시던 통일을 위한 길에서 끝까지 신념을 지켜야 한다는것을… 자기한테는 3년간이라는 빈 공간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것을 보상하자면 남들보다 몇곱절 더 강해져야 한다. 그따위 전향강요에나 견디는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 감방안을 무대로 해서 내 삶의 새로운 길에로 육박해나가야 한다. 어떻게? 무엇을? 아직은 알수 없으나 의지만은 더욱 가다듬자. 설사 이 감옥에서 이름없이 죽는다 해도 좋다. 통일을 위한 길에 깔린 하나의 조약돌이라도 된다면… 그는 차디찬 감방벽에 기대여앉은채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성태는 이내 깊이깊이 잠들었다. 몇년간의 온갖 치욕과 고뇌가 그 잠속에 다 녹아버린듯… 이것이 바로 남조선에서 있은 세칭 《붉은별사건》이라는 그것이다. 한달후 안성태는 광주로 이감되였다. … 밤하늘에는 한동안 보이지 않던 별이 다시 나타났다. 별은 꺼지지 않는다. 그가 빛을 받는 항성이 있는 한…
4
10월 하순의 그믐밤 대통로를 따라 바람이 불었다. 온갖 허접쓰레기와 락엽이 몰려가다가 씨뿌연 가로등불빛속에 휘말려올라갔다. 초저녁이여서 차와 사람의 왕래가 번잡했다. 그 무엇에 짓쫓기듯 사람들의 발걸음이 황급해지고있었다. 서울의 밤거리는 소란스러웠다. 조민하는 밤 9시경에 집으로 돌아왔다. 응접실겸용의 커다란 방에 들어서자 조민하는 웃도리를 벗기 전에 텔레비죤에 스위치부터 넣었다. 저녁마다 《뉴스시간》은 어김없이 시청하는 그였다. 공무원으로서 정계의 움직임에 둔감해서는 안되는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절대로 충격적인 사건을 바라지 않았으며 뭐든지 이대로 평온해지기만을 바랐다. 가정부한테 청해서 간단히 저녁밥을 가져오게 했다. 《어멈》이 쟁반에 들여온대로 탁자우에 받아놓은 조민하는 밥을 먹으면서 텔레비죤에 이따금 눈길을 보낸다. 최근에 그는 반주로 마시던 술도 끊었다. 의사가 위병에 좋지 않다고 권고하는 바람에 절제있는 이 사나이는 그날부터 술을 딱 끊어버렸다. 리옥자가 빈정댔다. 《아유 백년을 살겠네요. 당신과 이따금 건배를 들던 재미도 없어지네.》 《그야 상관있소. 혼자서라도 마시지.》 그러지 않아도 리옥자는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가 드물다. 그네들의 파티나 환락의 밤은 매일같이 벌어지니말이다. 어딘가 먼 땅속에서처럼 음악소리가 울려온다. 안해의 방에서일것이다. 여기서 서너개방을 지나면 크고 널직한 방이 있다. 그 방은 건물의 중심에 있어서 창문도 없다. 방음장치는 출입문은 물론 시공할 때 벽체에도 해놓았다. 음향이 약간이라도 흘러나오는것은 출입문에 달린 작은 감시창유리때문일것이다. 밖에서 약속된 신호로 초인종을 눌러야 출입문이 열린다. 음악은 최근에 서울장안의 고위층에 풍미하는 미국식로큰롤이였다. 정서라기보다 체력의 과잉과 무분별한 정열에서 오는 일종의 광란이였다. 리옥자가 조민하한테 말했다. 《비만증을 없애는 치료료법이네요. 디스코는 너무 약해요. 슴슴하죠.… 당신도 함께… 하긴 당신은 비만증걱정 없으니께.》 리옥자가 깔깔 웃어댔다. 《당신이야 몸이 좀 나야지… 힘이 없어요, 힘이…》 또다시 웃어댔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짓이 치료체육은 아닌것 같다. 매일저녁 돌림식으로 유한마담들이 이집저집 다니며 환락의 밤을 즐기고있다. 지금은 세명이 와서 모두 넷이서 춤을 추고있다고 한다. 녀자들이 몸에 실 한오리 걸치지 않고 무슨짓을 하는지 모른다. 처음 한때는 그저 춤을 추겠지 했는데 그런것 같지 않다. 《동성련애》란 어떤것인지 조민하는 모른다. 그것이 어떤 추잡한 놀음이겠는지 상상할수가 없다. 이따금 안해가 이불속에서 키득거리며 말할라치면 아예 손으로 그 녀자의 입을 막아버린다. 조민하는 자기가 바라보는 출세의 사닥다리와 안해의 취미는 너무나도 다르다는것을 잘 안다. 그래서 이따금 장인이 올 때 넌지시 하소연할라치면 오히려 그쪽에서 《시대가 달라졌네, 시대가. 자네두 현대판공무원이 돼야 하네.》 하고 막강한 재단의 주인답게 너털웃음을 터치는것이였다. 전화종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얼른 들지 못했다. (아닌밤중에 웬 전화야?) 그렇지. 저안의 주인공들중에 누구한테 오겠지. 차를 언제쯤 보낼가 하고 물어오는것이겠지… 이런 일은 드문히 있는 일이다. 조민하는 또 그 방으로 가서 신호장치의 단추를 누르기가 께름했다. 남편이나 《어멈》만이 누르는 단추인데 약속된 신호를 하면 안해는 벌거벗은채 꺼리낌없이 나타나서는 취기가 어린 목소리로 《당신이예요? 또 전화?… 가만 여기 좀 들어와요.》 하고 지껄인다. 그러면 그뒤에서 기겁하듯 자지러지는 소리, 깔깔거리는 소리가 나며 문에서 보이지 않는쪽으로 라체들이 숨는 란장판이 벌어진다. 그러면 안해가 청등, 홍등이 번뜩거리는 뒤를 돌아보며 허리를 들까불고는 웃어댄다. 《순자언니, 뭘 그래? 난 언니네 집에 가서 그러질 않아. 보안사령관님앞에서 이대로 춤까지 추지 않았어?》라고 할것이다. 또 이런 일을 당할가봐 조민하는 이마가 찌프려졌다. 그는 텔레비죤스위치를 끄고 전화기앞에 다가섰다. 전화를 받던 그는 퍼그나 놀래서 상대방이 전화를 끊은 다음에도 수화기를 놓지 못한채 한참 서있었다. 그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밤 10시 30분이다. 하긴 거기서는 이런 때 요긴한 면담을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중앙정보부》에 불리워갈 리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물론 한번도 가보지 못한 거기로 간다는 호기심은 털끝만치도 없다. 그 이름만 들어도 불안해지는 곳이다. 조민하는 쓰겁게 웃으며 옷차림을 했다. 《어멈》의 방에 가 금방 잠이 든 그를 깨우고 그한테 방금 《법무부》에서 전화가 와서 차관네 집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중앙정보부》에서 시킨것도 아닌데 저절로 이런 둘러맞춤이 머리에 떠오른것이다. 밖에는 승용차가 와있었다. 웬 젊은 사람이 아마 사진으로 낯을 익힌 모양인지 조민하를 별로 확인도 하지 않고 그의 얼굴앞에 증명서를 내보였다. 꼼꼼히 확인할 필요도 없다. 그 체취와 거동에서 그렇게 생각되였다. 조민하는 차 뒤좌석에 앉았다. 차는 서울본역을 지나 남대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면서 달리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남창동을 지나고있었다. (왜 이리 에돌가?) 조민하는 제딴에 《중앙정보부》를 륜곽적으로나마 알고있다고 여겼다. 《사법부》나 《법무부》가 다른 부와는 달리 《중앙정보부》와 이렇게저렇게 련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허나 흑막속에 묻힌 거기를 귀신이나 제대로 알겠는지? 조민하는 《중앙정보부》에 8개의 국이 있으며 4국이란 없다는것도 알고있다. 1국, 2국이 무슨 국인지 몰랐다. 3국은 해외에서 사람들을 끌어오는데 말로는 방첩이라고 한다. 김대중랍치사건을 주관한것으로 아는 6국은 어떤 모략, 암살 등을 꾸미는 국으로 짐작되였다. 문제는 5국이였다. 《국내안보》를 책임진다는 국이다. 1975년 5월 13일의 《긴급조치 9호》가 5국의 기본쇠몽둥이로 된다는거야 누가 모르랴. 조민하는 자기가 5국의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7국은 또 무얼 하던지 들은 기억이 없었다. 조민하는 불밝은 복도에 들어섰다. 밖에서 보면 창문에 불빛이 별로 보이지 않건만 안에는 거의 매 방마다 불이 켜져있는것 같았다. (당직근무를 서는가?) 이런 정도의 내부를 자기한테 숨기지 않는다는것 그리고 지하실로 대뜸 데리고 가지 않는것, 그것만으로도 조민하는 다소 안도의 숨이 나갔다. 같이 온 젊은 사람이 어느 한 방앞에 멈춰섰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나오며 말했다. 《과장님이 기다리시오.》 방안의 책상앞에서 한 40대의 사나이가 일어나더니 의자를 권하였다. 방은 별로 크지 않고 소박하달 정도로 가구나 비품이 적었다. 창문에는 무거운 비로도카텐이 드리워져있었다. 10월이라 그닥 덥지는 않았다. 텔레비죤영상막인지 환등막인지 과장의 뒤쪽에 걸려있었다. 조민하는 그때 벌써 여기에 콤퓨터영상처리기가 들어와있다는것을 몰랐다. 담화는 처음부터 무척 온화하게 진행되였다. 과장은 《법무부》일이 잘되는것 같다고 추어올리더니 조민하씨도 실력을 보이는것으로 자기는 알고있다고 말했다. 조민하는 얼떠름해졌다. 추궁이나 해명이 아니라는것으로 그랬다. 그러자 《법무부》의 사업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여기서 시비할수는 없다는 생각에 어쩐지 배포가 유해지면서 상대를 떳떳이 맞서고싶어졌다. 《중앙정보부》를 무서워하거나 꺼릴 일이 없으리라는 자신심마저 생겼다. 이것은 상대방이 노리는 심리상태임을 조민하가 알리 없다. 처음부터 압박감을 주는것은 아주 서투른 방법이다. 항상 상대방의 마음에 여유를 조성해놓는것이 이런 첩보계의 로회한 수법이다. 때문에 이런 경우 여기서는 서론이 길고 서막이 화려하다. 일단 본론에 들어가면 상대방이 숨돌릴새없이 사실, 자료, 수자들을 연거퍼 내놓고 한번 했던 질문을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대답이면 된듯이 놔두었다가 생각지 않던 때에 불쑥불쑥 다시 내지른다. 그때에 약간이라도 차이가 나면 그 점을 걸고 캐는 방법으로 나간다. 조민하가 만약 이 자리에 앉지 않고 밖에서 이렇게 벌어지는 담화를 상상해본다면 우에서 말한 점들을 충분히 짐작할수도 있겠지만 막상 이런데 이렇게 앉아서는 상대방의 심리는 고사하고 그 무엇도 추리해낼수 없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환경이 주는 위압이라는것이다. 마침내 과장이 책상우의 서류를 눈으로 더듬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대구에서 <붉은별사건>, 그 <재감동지회사건>말입니다. 그건 우리가 이미 결속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작성한 자료도 도착하구요.》 《저희들도 대구교도소에서 문서를 받았습니다.》 《한데 조민하씨, 한가지 물읍시다.》 《뭔데요?》 과장은 의자등받이에 웃몸을 제치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이제야 자세히 보니 그는 말상이였는데 귀가 삐죽 솟아나서 우습강스레 생겼다. 입을 벌릴 때마다 입술새로 금이발이 불빛에 번쩍인다. 얼굴에 비해서 눈이 형편없이 작아보였다. 눈이 마음의 창문이라지만 그한테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직 입만이 그래도 그의 속마음을 엿보게 한다. 입을 헤 벌린다든가, 이를 앙다문다든가, 입술을 삐죽인다든가 아무튼 속심이 거기에 내비친다. 차라리 조민하쪽에서 대리석처럼 매끈한 낯에 무도수안경까지 끼여서 그 진속을 깊숙이 감출수 있을것 같았다. 과장이 말했다. 《그것말입니다. <붉은별사건> 전에 <운동회사건>이란게 있었더군요.》 《…》 조민하는 바로 이것이구나 하면서도 대답을 못했다. 《그때 그 <화형식>을 파탄시킨게 장본인이 안성태란자가 아니요?》 《네, 옳습니다.》 《그런데 왜 그때 그자를 정식 우리 기관의 경북지부에 알리지 않았소? 교도소장도 그렇고…》 《아마 그건… 대구교도소가… 복잡한 문제가 야기될가봐… 일시 덮어둔것으로…》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소. 당신이 바로 그 사건을 무마시켰단 말이요.》 과장은 손으로 책상을 가볍게 내리치기까지 했다. 《당신과 교도소장이 동기동창이라는 그 인맥이 누구쪽에 더 필요했소?》 《…》 《교도소장이 행사자체를 끝까지 벌리지 않은것은 리해하오.》 그러다가 과장은 성급히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시오. 정상사고로 말이요. 행사는 그만뒀다 해도 그것을 못하게 만든 장본인은 징벌해얄게 아니요?》 《말하겠습니다.》 《말해보시오.》 《문제를 세운다면 그를… 전향을 취소하고 비전향으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과장이 급히 책상앞으로 몸을 숙이였다. 《흥미있소. 그러니 <법무부>의 실적이 떨어져서?》 《아닙니다. 안성태, 그자가 기어이 <비전향>으로 돌아가려고 발악을 하길래.》 과장은 다시금 몸을 뒤로 가져갔다. 흡사 과장의 웃몸은 책상앞에서 호기심과 반박, 긍정과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자동기계처럼 앞뒤를 왔다갔다 하였다. 《<법무부>의 일이란 다 그렇단 말이요.… 안성태가 있던데가 대전이지. 우리가 제일 믿은데가 대전인데 제일 망태기친게 대전이요. 거기 전담반장이 라구표씨지요.… 봐서 갈아치워야겠소. 몇년동안 전향테로를 들이댄다고 하더니 기껏해서 일곱명… 나머지는 다 죽여놓고… 그래서 우린 중지시켰소. 다른 방법으로 하라고… 한데 전향시킨다는것도 가짜로 강제전향을 시켰으니 안성태처럼 그런 놈들이 나온단 말이요. 그렇지 않으면 자살이나 하게 만들고… 이런건 안한것만 못하오.》 (책임을 다 우리한테 씌우는구나. 실지는 자기네가 벌려놓고는 이제 와선… 《대통령》한테도 그렇게 보고되여 《법무부 장관》이 썩어지게 욕먹었다더니…) 과장이 조민하를 유심히 건너다보았다. 《내 예감은 속이지 못하오. 당신과 만나기 전에 내 좀 생각해보았소.… 무엇때문에 이 사람이 안성태한테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가? 만일 옛날의 친구나 한때 신세진 사람이여서 돌봐주려고 했다면 전향으로 그냥 놔두게 하려고 그럴수 있다고… 한데 그런건 또 아닌것 같드라니까… 난 이상히 생각했소. 당신은 이번 <붉은별사건>에서는 그자를 단호히 처리했으면 했소. 이건 다 대구교도소장이 경북지부에 와서 한 말이요. 어쨌든 모순에 차있소.》 그러다가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안성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요?》 《모릅니다.》 《모른다?》 《한번 본적도 없습니다.》 조민하의 손에서는 피우지 않고 주무르던 담배가 터져 우시시 담배가루가 방바닥과 무릎우에 떨어졌다. 조민하는 허리를 굽혀 손가락끝으로 긁어모아 재털이에 가져가려 했다. 그런 동작을 몇번 반복해야 했다. 《놔두시오. 그냥… 그렇다면?》 《과장님, 빨갱이들을 꺾어버리는게 저의 필생의 목표입니다. 그러니 한번 꺾어놓은 놈을 다시 비전향으로 보내고싶지 않았습니다.》 《따는 그렇소.… 하지만 여기에 무슨 석연치 않은 점이 있는것 같단 말이요.》 《그렇게 생각되십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안성태란자를 더 특별히 꺾어버리고 파멸시키려는것은 사실입니다.》 과장은 놀라면서도 천천히 말상을 주억거렸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어떤 깊은 사연이 있어서?》 《말하자면 좀… 깁니다.》 《길어도 시간에 구애되지 마오. 흥미있소. 다 말해보시오.》 조민하는 무겁게 숨을 톺아올리고는 잠시 그냥 앉아있었다. 과장이 그의 마음을 늦춰주듯 《가만, 우리 잠시 이번 <붉은별사건>에 관계했던자들의 모상을 좀 보고나서 얘기를 계속하기요. 열세명이지… 그중에 안성태란자도 있을테니까.》 하였다. 조민하는 급히 손을 내들다가 내리우고말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려 했던것이다. 그는 적의와 알지 못할 공포감에 싸여 몸을 떨었다. 안성태란자의 모상은 봐서 뭘해? 하지만 과장이 제가 앉았던 의자를 한쪽으로 비켜놓고 콤퓨터의 영상을 불러냈을 때는 호기심이 생기는것 또한 어쩔수가 없었다. 과장이 단추를 누를 때마다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1센치로 바투 깎은 머리, 수인복과 수인번호… 얼굴이 나오고 그밑에 이름과 나이, 복역년한, 출생지가 명기되여있었다. …박성인, 리준도… 손성수… 안성태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나자 과장은 영상을 바꾸지 않았다. 과장이 중얼거렸다. 《음, 이자로구만… 출생지가 선산군 선산면… <대통령>각하와 같은 고향이군.》 조민하는 혀가 잘 돌지 않아 웅얼거림으로 응대했다. 《<대통령>은… 구미면이지요.》 《어쨌든 선산군이지… 잘 생겼구만. <이로오도꼬>인데.》 과장의 뇌까림이였다. 조민하는 머리속에 깊이 새겨두려는듯 지그시 바라보았다. 유난히 검고 숱진 눈섭, 그것은 보기 드문 눈섭모양이였다. 엄지손가락처럼 굵다랗게 량쪽으로 가로질린 눈섭이 특이하였다. 정열과 의지라고 할가. 아니, 아니, 그런게 아니야. 파렴치와 욕심이라고 말하고싶으나 어쨌든 그것은 시샘을 불러일으키는 사나이의 눈섭이였다. 반대로 유순한 입모습은 방금이라도 미소를 머금은듯 하다. 총체적으로 볼 때 위압감을 주는 인상이다. 굴종이나 아부, 타협이나 자포자기따위는 흔적도 없고 오직 당당하고 자신심에 넘친 표정이다. 교도소생활을 15년나마 했는데도 저런가? 최근의 사진이 옳긴 옳은가… 콤퓨터화면에서 내다보는 찌르는듯도 하고 너그럽게 굽어보는듯도 하는 눈길, 그것을 맞받아 바라볼 힘이 없어 조민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과장이 자기를 돌아다보기 전에. 조민하는 극력 자신의 마음을 늦추려고 했다. 그래서인지 조민하의 가슴에는 이상한 심리가 파동쳤다. 바로 저자는 나의 원쑤이면서 한편 나의 운명을 바꾸어준 《은인》같기도 하다는 왕청같은 생각이였다. 저 인간의 출현으로 나는 출세의 사닥다리를 잡을수 있지 않았는가. 그것이 계기로 본처와 리혼할수 있었고 따라서 재산많은 녀자와 재혼하여 권력의 자리에 톺아오를수 있은것이다. 하지만 증오의 불길이 다시금 세차게 솟구쳐올랐다. 증오심은 야수와 같이 적수를 맹렬히 물어뜯으려는 포악성으로 뒤번지며 가슴을 쥐여뜯었다. 조민하는 흥분해서 처음에는 말을 제대로 잇대일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떠듬거리며 요청을 했다. 《그만 봤으면… 됐습니다.… 꺼주십시오.》 과장이 히죽이 웃으며 조민하를 돌아보았다. 《에드몽 당떼스처럼 그런 복수심에 사로잡힌건 아니요?》 《그와 비슷하지요. 아니 그보다 더합니다. 한데 과장님은 벌써 저에 대해 좀 료해하신것 같군요.》 《아니, 아니요.》 과장은 입술을 삐주름히 내밀며 괴이쩍은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 《조민하씨에 대해 영 알아보지 않은거야 아니지요. 하지만 사생활은 그저 재혼했다는 정도로… 본처와의 리혼리유는 정확치 않구요.》 《몽떼 끄리스또백작, 그 에드몽 당떼스의 복수심이란 말씀 옳습니다. 하지만 에드몽 당떼스는 결혼을 앞두고 모함에 걸렸다면 전 결혼생활의 단란함을 한창 맛보다가… 바로 그 안성태란자때문에…》 조민하는 거짓말을 하고있었다. 아니 어느 정도 진실이기도 하다. 돈때문에 다른 녀자를 넘겨다보고있었다는것만 빼놓는다면… 하지만 과장은 재촉을 했다. 《흥미있소, 흥미있소. 어서 말하오.》 《한데 알아두셔야 할건… 제가 단순히 개인복수때문만은 아니라는겁니다. 나의 반공리념이 저로 하여금 더욱 그자들을 증오하게 합니다.》 《알고있소. 그렇지 않다면야 여기로 부르겠소? 그 얘긴 이따 하기로 하고… 우선 들어봅시다. 흥미있소.》 그리하여 조민하는 말을 시작했다. 그는 이제껏 그렇게 해보지 못했던 《반공투사》의 갑옷을 더욱 《번쩍거리면서》 정치적측면들을 강조해가며 거침없이 지나온 얘기를 했다. 그는 숨을 헐썩이였다. 과장이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고뿌에 물을 따라 주었다. 조민하는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과장은 역시 영민한자였다. 조민하가 결코 개인적인 복수심 하나만으로 지금 이렇게 흥분하는게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는 우정 이렇게 말했다. 《객관적으로 들어보면 여기에 도덕적인 측면이 더 강해보일수 있소. 안 그렇소?》 《그렇습니다. 저는 우선 개인적인 복수를 꼭 해야 합니다.》 그러자 과장이 손바닥을 세워 탁상을 가볍게 쳤다. 《아니요!… 그럴수 없소.》 《네? 건 무슨 말인지.》 《개인복수와 반공리념을 뒤섞어놓을수 없단 말이요. 우린 당신의 반공리념을 중시하는거요. 알겠소?》 《그렇게 생각해주어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당장 통일이 된다면 당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것 같소?》 조민하는 더욱 얼떠름해서 상대를 쳐다보기만 했다. 과장이 말했다. 《아무리 7.4공동성명이 발표되였다 해도 그걸 믿지 마오.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면 당신이나 나나 다 먹히우고마오. 그래서 통일을 백년전쟁치르듯 하자는게요.》 그러다가 갑자기 물었다. 《집의 부친은 년세는 지금 어떻게 됐소? 살기는 어떻게 살고?》 《환갑이 훨씬 지났습니다. 인제는 장사일도 하며 말며… 진주에서 누이네와 같이 삽니다.》 《그걸 몰라서 묻는게 아니요.… 당신의 부친은 지금도 속으로는 공산당에 원한을 품고있을거요.》 《네, 그걸 어떻게…》 《당신도 부친에 대해 다 알겠는데… 물론 세상사람들은 모르거나 이미 잊을수도 있지. 하지만 우린 잊지 않소.》 그러면서 그는 탁상우의 어느 한 서류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당신의 부친은 전쟁때 <륙군방첩>에서 사복쟁이로 비밀요원이였소. 한데 지리산빨찌산의 아지트로 방첩대를 안내하다가 공비들의 총탄에 복부관통상을 입었소. 다행히 동맥을 다치지 않았지.… 그후 <륙군방첩>에서 약간의 밑천을 주어 장사를 시작했소. 전후의 와야판에서 그래도 어렵지 않게 살았지. 장사수지가 맞았거던.》 조민하는 놀랐다. 아버지가 오직 자기한테만 해준 얘기인줄 알았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지금 어떤 자리에 와 앉아있는가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상대방이 말을 계속했다. 《우린 바로 반공리념이 투철한 투사를 찾았거던요. 단순한 끄나불이나 첩자를 구한게 아니란 말이요, 알겠소?》 《알겠습니다.》 어째선지 상대방의 기대와 믿음에 가슴이 뻑적지근해지는것 같았다. 과장이 짐짓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방금전에 말한 그건 정말 동정을 받을만 한 얘기요. 운명의 장난같은 개인사이지… 하지만 그런것만 아니요. 이 경우는 정치적인 측면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지… 도덕적인 측면이 반공투쟁에서 큰 열의를 북돋아주는것이 사실이니까.》 과장은 제 말에 스스로 만족했고 흥분했다. 그는 일어서서 뒤짐을 지고 방안을 왔다갔다 했다. 과장은 왜서 흥분했는가? 그는 자기네의 어려운 사업에 협조할 대상을 새로이 찾아냈다는 그것때문일것이다. 과장은 여전히 뒤짐을 진채 조민하앞에 와서 말했다. 《앞으로 우리 사업을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과장의 어조는 몹시도 정중해졌다. 《조민하씨를 우리의 동료로 인정해도 좋겠는지?…》 《어떤 의미에서인지요?… 그러지 않아도 우린… <법무부>에선 협력해오지 않았습니까.…》 과장은 길죽한 말상을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법무부>와는 손발이 잘 맞지 않소.… 례컨대 앞으로 우리한테 그쪽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좀 전달해주십시오. 수시로 련계를 가지면서…》 (이게 비밀요원이나 정보원이라는건가. 우리 <법무부>안에 이미 이런 사람들이 있겠는데…) 조민하는 잠간 생각을 더듬다가 입을 열었다. 《저 미안합니다. 확정적인 대답은 차후에… 집사람과 좀 의논할 일이 있어놔서…》 저쪽에 돌아섰던 과장이 휙 돌아서더니 놀란 빛을 띠우다가 급히 우선우선한 표정이 되였다. 《아, 알만 합니다. 리옥자씨… 부인은 지금 조민하씨를 <국회의원>으로 출마시키려고 하지요?》 조민하는 놀랐다. 상대방의 입만 쳐다보았다.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릅니다. 장인이 창원에서 큰 재단을 운영하지만 그런다고 선거표밭이 저절로 생깁니까? 조민하씨는 장인이 얼마나 후원할수 있겠는지 타산해봤습니까? 우리가 조사한데 의하면 그 재단도 <현대>나 <삼성>에 먹히울 운명이 다분합니다.… 그리고 아다싶이 <법무부>라는 행정기관을 포기하고 그쪽으로 나선다는게 좀한 용단으로는 안됩니다. 완전히 자신의 운명을 모험하는 길이죠.》 그러다가 거의나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은 <법무부>에 눌러앉아주시오.… 생각해보시오. 안성태같은자들을 꺼꾸러뜨리겠다는 결심은 어떡허구요?》 조민하로서는 처가나 안해가 자꾸 못살게 구는통에 귀를 기울여도 보아왔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모험도 이만저만한 모험이 아니다. 과장이 그런 마음을 다 알고있는듯 아예 그쪽으로는 더 말을 돌리지 않고 전향공작의 난항에 대하여, 그 방법을 실천적으로 깊이 연구하는것이 중요하다는데 대해 력설했다. 깡패들의 주먹이나 빌어서는 일을 치지 못한다는것, 방도를 대상의 특성에 따라 모색해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한데 우선 안성태부터 꺼꾸러뜨릴수 있을가?… 지내 생나무꺾듯, 그것도 강제로 지장이나 찍어 될게 뭐요? 그래 그자를 먼저 꺼꾸러뜨릴 방도는 없겠소? 그런 놈 한놈이면 그만큼 효과가 더 큰데…》 《해야지요. 한번 꺾어질번 했으니.》 과장은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아니요. 꺾어질번 한게 아니라 휘여졌더랬지. 설사 꺾어졌다 칩시다. 하지만… 한번 뼈가 꺾어진 다리가 붙으면 그 자리가 다시 꺾어지지 않는다는 외과학의 원리를 생각해본다면… 힘은 곱절 더 든단 말이요.》 과장은 두눈을 쪼프리였다. 가뜩이나 작은 두눈은 아예 없어지고 대신 길다란 말상이 어방없이 길어보였다. 그는 말을 이었다. 《교정국에 10여개의 과가 있지만 이 일을 실속있게 주도할만 한 과가 몇개 안되오.… 조민하씨가 인차 과장이 돼야겠는데… 하지만 조급해맙시다. 일이 제대로 되겠지. 자신감을 가집시다.… 모든 비전향자들에 대한 전향공작을 다시한번 본때있게 내밀어보려는데 새로운 두뇌진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 두뇌진속에 자기도 속하게 되는가 하는 생각에 조민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과장이 빼람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서 조민하한테 내밀었다. 《많지 않소. 사업비로 써주십시오.》 《아니, 이거 왜 이러십니까?》 조민하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진심으로 불쾌하게 생각했다. 내가 무슨 돈을 바라서 당신들을 협조하려는것이 아니다. 이것이 나의 본신임무이기도 하거니와 나의 필생의 목적을 위해 내가 스스로 나서야 할 길이 아닌가… 그는 자존심이 상했던것이다. 과장이 오히려 그 특유한 입술의 미소로 미안해하는 표정을 띠웠다. 《물론 그 댁에 돈이 없겠소만,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저 창원에 있는 리대창씨의것이 아닌가요? 돈이란 얼마든지 필요한 법이니 받아주십시오.… 장차 정계에 진출해도 그렇구. 하지만 당분간은 우리와 함께 손잡고 일해봅시다.… 가만 안성태만은 아직 서두르지 맙시다.》 《그건 어째서요?》 《생각해보시오. <전향취소>를 한지 얼마 되지 않는데… 하긴 벌써 3년이 넘었지. 하여튼 우리 지시가 있을 때까지 당분간은… 자, 그럼.》 조민하는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거기서 승용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는 문을 열어주는 잠에 취한 가정부한테 물었다. 《다들 간지 오래겠지?》 《뭘요. 오늘 밤은 그대로 모두 여기서…》 《그래서?》 《모두 쓰러져서 잠이 들었지요.》 《아니 침대도 없는 방에서?》 《쏘파구 의자구 탁자우구, 아씨 넷이 글쎄…》 서울교외의 어느 촌에서 데려온 가정부는 좀처럼 마담이란 말을 입에 붙이지 못하고 처녀도 아닌 유한부인들을 아씨, 아씨 하고 부른다. 조민하는 그들이 눌러있는데 대해 별로 놀라지 않았다. 드문히 당하는 경우이기도 하다. 그는 가정부한테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고 다른 방의 출입문을 열려고 했다. 《아이구 주인님, 그쪽은 가지 마시라니깐. 오늘 밤은 이쪽 다른 방에서 주무셔야죠.》 《왜 그러시유, 뭘 좀 내 방에 건사하려고 그러는데.》 그의 몸에는 두툼한 봉투가 있었다. 아직 세여보지 않았지만 그 두께와 무게로 보아 약차한 액수인것 같아 그것이 감촉될 때마다 괜히 가슴이 두근거려졌다. 《주인님방에서 마님방으로 가는 문도 다 열어놓구… 불은 꺼졌지만…》 조민하는 그만에야 참지 못하고 한마디 내뱉았다. 《이것들이 정말…》 (짐승들처럼 노는구나. 보나마나 <팬티>만 입구 젖가슴도 안 가리우고 서로 껴안구 자겠지. 에, 참 지독한것들.) 눈에서 불이 나는것 같았다. 하지만 녀편네를 어쩔수 없는 무력함에 깊은 숨을 후유 내쉬였다.… … 바로 그 이튿날 밤. 《중앙정보부》의 어느 한 지하식당에서는 한방의 총성이 울리고 뒤이어 총격전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사살된것이다. 그날부터 유한마담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리옥자 역시 두문불출하고 우리에 갇힌 암여우처럼 안절부절을 못했다. 그대신 리옥자는 조민하를 놓아주지 않았다. 출근도 제대로 못하게 했다.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겁을 먹으면서도 바로 그런 공포감을 해소시키려는 발광증처럼 스스로 쾌락의 불을 지피면서 한사코 조민하를 못살게 굴었다. 일부러 강짜를 부리기도 하고 하찮은 일에 신경질을 내고 밤에도 암고양이처럼 저를 자꾸 쓸어주기만을 바랐다. 조민하는 부서에 나가서도 전전긍긍이였다. 길가에서 쉬쉬하며 김재규요 정승화참모총장이요 하는 이름들이 오갔다. 부서에서는 일체 서로 말을 건네지 않았다. 모두 복도바닥이나 벽면만 보면서 다녔다. 퇴근길에 어느 상점앞을 지나는데 남자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죽었군.》 《한동안 시끄럽게 됐어.》 《어쩌겠나. 력사는 되돌릴수 없는 모양이지. 그리고보면 력사의 심판은 시간이 걸릴뿐이지 정확하다구.》 《정확했으면 뭘해. 시간이 걸리는 그사이 숱한 희생이 났는데. 그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수 있어?》 조민하는 그들이 누군지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통령》이 죽었는데도 빈정대기만 하는구나. 하여튼 한동안 시끄럽다는 말은 옳아.) 자기가 만났던 《중앙정보부》의 과장도 어찌 됐는지 알수 없다. 김재규부장을 비롯하여 여라문명이 체포됐는데 그안에 그 과장이 있는것 같지는 않다. 언제 어느새 12월에 들어섰는지 정세는 여전히 팽팽해졌다. 12월 12일, 정승화를 비롯한 군부상층이 모조리 체포되는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조민하는 《법무부》에 전화를 걸고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어디서 오는 전화인지 그 전화를 받은 리옥자가 남편 있는 방으로 달려들어와 뒤로 문을 닫아걸었다. 조민하는 처의 심상치 않은 기색에 놀라 마주 일어났다. 리옥자가 두손을 탁 마주쳤다. 《아유, 이런 일두 있나. 여보, 글쎄 우리 집에 오는 순자언니, 아, 그 있지 않아요. 우리 멤버에서 이거.》 하면서 리옥자가 엄지손가락을 내들었다. 얼떨떨해있던 조민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소. 그, 그 리순자양…》 《알긴 뭘 알아요? 륙군보안사령관? 아니예요. 이젠 이 <한국>의 권력을 거머쥔 계엄사령관, 이제 <대통령>이 될거예요.》 《뭐라구?… 뜻밖이군. 모든게 뜻밖이야. 이거 미처 정신을 차릴새 없구만.》 《이제 두고봐야죠. 그렇게만 되면 순자언닌 정말…》 리옥자의 눈이 불빛을 받은 고양이눈알처럼 동그랗고 새파랗게 반짝거리였다. 그러다가 불시에 간잔지런히 좁혀지면서 예리한 빛을 발산하고 코날개가 발심발심하였다. 먹이를 찾는 암여우 같았다. 조민하는 점차 모색이 달라지는 안해를 지켜보며 소름이 끼쳤다. 리옥자가 남편을 돌아보며 원망하듯 말했다. 《이런 때 당신이 군에 복무했더라면…》 며칠후 조민하는 《마과장》한테서 오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에서는 밝은 목소리가 울렸다. 조민하는 이제껏 체험하던 극도의 긴장이 풀리면서 맥을 놓고 쏘파에 앉아버렸다. 그한테 걸려온 전화는 이러하였다. 《다른 생각말구 여전히 열심히 일해달라구요. 인차 련계를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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