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새벽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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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1

 

권력의 자리에 오른 독재자는 흔히 위기의식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바로 그것을 정치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5.16군사쿠데타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뒤골방에서 《반공법》을 꾸며내여 민족분렬과 반북대결, 군사파쑈통치를 강화했다. 그들은 《충격적인 사건》들을 련이어 조작해내며 《반공》소동으로 남조선에서의 대중투쟁을 다 북과 련계가 있는듯이 날조해냈다. 《중앙정보부》는 온갖 모략을 다 꾸미였으니 1964년의 《인민혁명당사건》과 《<불꽃회>사건》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한편 《중앙정보부》는 《좌익수》, 《공안수》들을 모두 대전감옥에 집결시켰다. 800명이라고도 하고 900, 1,000명이라고도 했다. 이무렵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의 직접적인 지시에 의해 《국방대학원》 정치학교수인 윤원구가 대전감옥에 왔다.

추운 겨울날에 있은 일이다. 《사상범》들을 상대로 《선전공세》를 벌린다면서 대전감옥의 그리 넓지 않은 강당안에 고등교육을 받은 《좌익수》들 60여명을 모이게 하였다.

감옥안의 교회당과는 달리 나무장의자들만 주런이 놓인 이 강당은 휑뎅그렁하고 몹시 추웠다. 1년 내내 별로 쓰지도 않는 곳이였다. 강당출입문가에는 물론 여기저기에 까만 제복차림의 교도관들이 서있었다.

연탁앞에 선 윤원구는 40대 초반의 사나이였다. 뒤로 멋지게 빗어넘긴 장발의 머리는 기름기로 번들거리였고 작은 메밀눈에 비해서는 입이 형편없이 커보였다. 입질로써 밥벌이를 하게끔 그것이 발달되지 않았는가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연탁에 선것이 그닥 마음 내키지 않는다는듯 흥분을 앞세우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했다. 흥분에 떠서 제 주장을 력설하는 사람보다 랭정하면서도 조리있게 말할줄 아는 사람이 더 로련하게 청중들의 가슴을 울릴수 있다는것을 아는것 같았다.

그는 어째선지 쏘련공산당력사부터 풀기 시작했고 최근의 중쏘분쟁에 대하여 언급했다. 그리고 1920년대 조선공산주의운동의 파벌싸움에 대하여 비난했다. 쏘련공산당력사도 중국공산당력사도 파벌싸움과 헤게모니장악의 력사라는것이였다. 지금 격화되는 중쏘분쟁은 단순히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령도권쟁탈이나 중쏘국경문제에 있는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리념의 《모순》에 기인하는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푸른 수인복을 입고 장걸상에 웅크리고앉은 수인들은 누구도 그 말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것이 분명하다. 내의도 없는 홑옷의 수인복에 추워갈수록 몸을 옹송그리였고 량쪽 소매에 손을 밀어넣고 팔짱을 끼였다. 발이 시리여 가만히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발을 구르는 소리가 잦아지였다. 구두가 아니라 까만 넙적고무신이니 크게 소란스럽지는 않으나 어쨌든 점점 소리가 합쳐져 커갔다. 처음에는 기침을 막느라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내키는대로 기침을 깇었다.

윤원구의 입에서는 입김이 날리였다. 그는 숫제 그런것에는 아랑곳 없다는듯 침착한 어조를 유지하려고 애쓰다가 분위기가 점차 어수선해지자 자연히 목청을 높이였고 이따금 손을 쳐들어 주의를 끌어보려고도 하였다.

《여러분, 지금 쏘련공산당과 중국공산당은 자기네들 당보 옹근 두세면에 공개서한을 내면서 굉장한 론쟁을 벌리고있습니다. 인도네시아공산당 총비서 아이디트가 뭐라고 했는지 압니까. 지금 전세계에는 맑스-레닌주의대학이 존재한다고, 세계가 하나의 큰 맑스-레닌주의대학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맑스주의가 하나의 학문이고 아직은 실천에 구현될수 없는 시기상조한 리론이라는것을 의미하는것입니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혁명의 가능성을 내놓고 류혈혁명을 강행시킨 레닌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맑스주의는 리론으로, 학문으로서는 연구할 가치가 있는것이며 맑스와 엥겔스는 두말할것도 없이 인류의 천재들입니다.

수인들은 대부분 머리를 짓숙이면서 못 듣는체 하거나 빨리 끝나기를 조급히 기다렸으나 독감방의 고독속에서 시달린 일부 수인들은 호기심이 영 없지도 않아 거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는것 같았다. 저 정치학교수라는 사람의 강의는 내리 흐르지 않고 오히려 소급해올라가면서 맑스주의철학의 3대기초 즉 도이췰란드고전철학, 영국의 정치경제학, 프랑스의 공상적사회주의에로 뻗어갔다.

《문제는 이 공상적사회주의라는 여기에 있습니다. 일찌기 쌍 씨몽이나 푸리에가 공상적사회주의로 사람들을 몽상에 사로잡히게 했고 맑스와 엥겔스는 그래도 사회주의를 과학적토대에 올려놓으려고 했지만…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저보다 이 점에 대하여 충분히 알고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리념, 이런 사상이야말로 사상루각 즉 모래우의 다락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백번 양보해서 하나의 신앙이라고 할지. 그렇지 않습니까?

이때 맨 앞자리의 장걸상에서 누군가가 일어났다. 똑같은 수인복의 뒤모습이여서 누구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또 각 사동에서 모여온것만큼 더욱 알수 없다. 목소리도 처음 듣는 목소리다.

《존경하는 교수선생.》 그 어조에는 다분히 비양조가 풍겼다.

《사회주의사상은 결코 신앙이 아닙니다. 당신은 사상과 신앙을 혼돈하고있구만.

《가만, 가만. 성함이 누구시던가요?

침묵과 랭대속에서도 어쨌든 찬반의 반응이 일어난것을 윤원구는 무척 반가와하며 기뻐했다. 그는 결코 앞가슴에 단 죄수번호를 자기가 인정하지 않으며 한 인간으로 상대를 대한다는듯 그의 이름을 물었다.

《김규호라고 부르오.

윤원구는 얼핏 연탁우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아, 알만 합니다. 김규호선생, 8.15전에 일본교또제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말씀하십시오.

《당신은 사회주의를 하나의 신앙으로 외곡하면서 그것을 실현될수 없는 허황한것으로 묘사하는데 보시다싶이 사회주의는 현실이고 누구나 인정해야 하는 과학적인 실천이요.

추위와 허약탓인지 김규호의 목소리는 몹시 갈려있었다.

《아, 너무 격하지 마십시오. 난 오늘의 이런 론쟁을 바랐댔는데 기쁩니다. 감사해요… 김선생은 이자 사회주의는 현실이라고 했지요. 헌데 세상을 좀 둘러보십시오. 현실, 현실, 모순에 찬 현실이지요… 중쏘분쟁 하나만 보더라도 사회주의진영이 모순에 빠지고있다는것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나는 무엇보다 현실적인 사고에서 문제를 고찰해보자는것입니다.

김규호가 다시 일어났다.

《당신이 말하는 현실적인 사고는 어디에서 출발하는것인지,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즉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사상적대변자의 출발점이 아니겠소?

《아, 날 너무 시대사상의 전성관으로 보지 마시오. 난 정치학자이기 전에 철학자입니다.

《그렇다면 한가지 묻겠소. 당신은 우선 어떤 철학자를 존경하오? 맑스와 엥겔스는 아닌것이고 헤겔? 니체? 키에르케코르? 샤르뜨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것은 분명 힐난이고 경멸이였다. 허나 윤원구는 교활한 사나이여서 그 어떤 모욕에도 구애되지 않으려는것 같았다.

《가만, 가만… 난 맑스도 엥겔스도 존경하고 모든 철학자들을 다 존경합니다. 그들은 인류의 재보이고 자랑입니다.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입니다.

《천만에. 인류사에 죄악을 남긴 철학가들도 너무 많소. 난 당신도 인류사는 몰라도 우리 민족사에는 죄악을 남기지 말기를 바라오.

《사람을 모욕하지 마시오.

《모욕이라니? 당신은 <대한민국>의 국보감이라고 교도소장이 말했는데 <대한민국>의 국보감이면 우리 민족사에 죄악으로 되기때문이요.

윤원구는 참을성을 잃고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김규호가 한손을 쳐들어보이며 《아, 흥분하지 마시오. 당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봅시다.》 하고 오히려 상대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윤원구는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하긴 당신 하나만 상대하는것이 아니니 참읍시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께 할말이 많으니까.》 하고 일부러 여유를 보이느라 애썼다.

누군가 왼쪽 장걸상에서 일어섰다.

《추워서 시간 좀 단축합시다.

《앉앗! 돼먹지 않게.

저쯤에 섰던 교도관이 꽥 소리쳤다.

윤원구가 연탁에 놓았던 손목시계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제껏 30분밖에 안했습니다.

수인들은 시계가 없으니 그 말을 믿어야 할지 알수 없다.

윤원구는 여전히 침착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듯 헛기침을 몇번 하였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싶이… 그, 저… 어떤 의미에서 뜨로쯔끼가 현명했지요. 그는 역시 총명한 유태인이였습니다. 사회주의혁명자체가 새로운 계급과 계층을 산생시키기때문에 <영속혁명론>을 내놓았던것입니다… 여러분,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급과 계층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철리입니다.

누군가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일어나 아주 여유있게 천천히 한마디 했다.

《그러니까… 계급이 존재하니까 계급투쟁이 있기마련이 아닙니까. 그러니 그거야 사회주의리론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요!

윤원구가 버럭 소리쳤다.

《계급이 철페된다는 리론이 한마디로 공상이란 그거요. 계급은 없어지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불평등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윤원구는 누군가 또다시 반박해나설가봐 겁나듯 서둘러 말을 이었다.

《한가지 례를 들어봅시다.

그는 부랴부랴 책 하나를 추켜들었다.

《자, 이건 로문판으로 된 레닌의 저서인데 여기에 어떤 구절이 있는줄 압니까?

윤원구는 류창한 로어로 말하고는 그것을 조선말로 번역했다.

《맑스의 학설은 전능하다. 그런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오직 신만이 전능합니다. 인간이 창조한 진리가 어떻게 전능합니까. 진리자체가 상대적이라고 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이때였다. 세번째줄 장걸상에 앉았던 안성태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웨치듯 말했다.

《정치학교수선생, 당신은 학자다운 량심을 가져야겠습니다. 당신의 로어는 류창하고 발음도 정확하구만요. 한데 어째서 그 문장에서 반점으로 련결되는 뒤부분을 빼놓고있소?

성태는 《빠또무 쉬또 아노 베르노.》 하고 로어로 말하고는 《다시말해서… 그것이 정당하기때문에라는 부분말이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레닌의 명제를 또박또박 뇌이였다.

《맑스의 학설은 정당하기때문에 전능하다… 난 당신의 말꼬리를 잡자는게 아니요. 당신의 실수가 아니란 말이요. 당신은 학자의 량심을 잃었으니까 그 뒤부분을 짤라버린거요. 하지만 난 여기서 그것보다…》

안성태가 지금까지 앉아서 참으면서도 흥분하고 격분한것은 다른 점에 있었다. 그는 윤원구의 말을 처음부터 무시하고있었으나 더는 참을래야 참을수가 없었던것이다.

《우린 당신의 반공선전을 듣고싶지 않소. 당신은 학술적인 론조로 말하는듯이 보이는데 사실은 어리석소. 여보시오 교수선생, 이 자리에는 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앉아있소. 우린 일제때와 남조선 그리고 공화국북반부에서 여러가지 정치사상적인 조류들과 맞다들려보았고 또 생활을 통하여 체험하고나서 드디여 사회주의사상의 진리성을 체득한 사람들이요. 이제 새삼스레 우리들의 심장속에서 그걸 지워보려는건 망상이요.

안성태의 말마디들이 련발로 내쏘는 총알 같아서 상대는 그것을 저지시킬수도 막을수도 없었다.

윤원구는 멍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무엇때문에 굳이 이런 자리에서 사회주의가 나쁘다고 우리를 설득시키려고 하는가. 나로 말하면 태줄을 묻은 고향이 여기에 있는 사람이지만 이 남조선땅에 당장 사회주의사회를 세우자고 하는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는 민족의 통일을 위해 나섰을 뿐이요. 자주적평화통일. 당신도 같은 민족이라면 이 말에 흥분되지 않을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보다 주의주장, 사상과 리념을 뛰여넘어 민족의 한 성원이고 피를 같이 나눈 한겨레란 말이요… 7년전에 조봉암선생은 재판정에서 웨쳤소… 평화통일이란 민족의 공통된 의사를 반영한 말이다, 민족의 통일방도를 모색한 적중한 말이라고 할수 있다, 이런 말을 이북에서도 쓴다고 하여 <친공>으로 매도하며 탄압한다는것은 언어도단이다… 리승만은 진보당의 평화통일구호가 이북의 주장에 동조하는것이라고 당을 강제해산하고 조봉암선생을 처형했소. 우리는 통일운동자들이요.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위해 싸우는 민족의 성원들이요. 교수선생, 통일에 대한 당신의 견해나 들어봅시다. 우리와 마주하려면 그 얘기부터 먼저 합시다. <대통령>한테도 통일정강이란게 있을게 아니요? 하긴 아직은 <대통령>한테 통일정책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것 같은데. 어떻소? 그렇지 않소?

안성태의 부르짖음은 랭소와 비웃음으로 가득찼다.

이날, 안성태는 감방으로 돌아가자 즉시 보안과에 끌려갔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보안과장이 구두발로 사정없이 그의 정갱이를 걷어차며 《이 새끼는 고등학교학생처럼 까분단 말이야.》 하였다. 옆에 있던 놈이 달려들며 구두발로 연방 성태를 걷어찼다.

보안과장이 두손을 옆구리에 넌떡 짚고 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봉암이 네 할애비야! <대통령>이 네 동무야!

성태는 독방으로 끌려갔다. 한 교도관놈이 성태를 무릎을 꿇리더니 《오른팔 들엇!》 하고 소리치면서 그의 오른팔을 들어 어깨너머 잔등아래로 잡아끌어내리였다.

《아이쿠!》 성태는 눈앞이 아찔해서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어깨관절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탈구가 된것 같았다. 다른 놈이 달려들어 왼팔을 옆구리로 돌려 잔등에 손을 끌어갔다. 왼쪽손목과 오른쪽손목을 잔등뒤에서 묶어 수갑을 채운것이다. 성태는 정신이 흐리마리해졌다. 몸의 균형을 유지할수도 없었다. 그러자 교도관놈들이 그를 끌어다가 머리를 감방벽에 붙여놓았다. 성태는 탈구된 오른쪽어깨의 아픔때문에 어떻게 몸이 마루바닥에 끌렸는지 그것을 알수 없었다.

《짜식, 아직 <대포수정>맛을 못 봤지? 맛이 어때?》 교도관놈의 지껄임도 들릴락말락했다. 성태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대포수정》을 2시간이나 시켰다. 일본놈형무소 규정에는 30분이상은 시키지 않았다는것을 성태는 후에야 알았다.

《대포수정》을 풀었으나 팔을 본래대로 가져갈 때도 매한가지로 어깨관절의 아픔때문에 깜박깜박 정신이 흐려졌다.

며칠이 지나 삐여진 관절부위가 정상으로 되는것 같더니 이번에는 구두발에 채운 대퇴부가 퉁퉁 부어오르고 거기에 고름집이 생겼다 터져서 고름이 줄줄 흘렀다. 시찰구로 《담당》이 몇번 들여다보았으나 헌 걸레쪼박조차 주지 않았다.

《의무과에 보내달라!, 《간병부를 보내라!》 하고 몇번이나 소리쳤다. 며칠이 지나서야 《담당》이 처치실로 그를 데리고 갔다.

간병부는 서른살쯤 되는 일반수였다.

교도관이 다른 환자를 데리러 가고 의무과장조차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고름을 씻어내던 간병부가 급히 속삭였다.

《전쟁전에 <경남상고>에 다니지 않았습니까?

성태는 그를 눈여겨보았으나 어데서 본 기억이 없었다. 간병부가 일손을 중단하지 않고 조용히 물었다.

<조선은행>에 입행하지 않았어요?

《그랬소.

《아, 맞군요. 선생님, 전 정용식이라고 2년후배입니다.

정용식은 퀭하니 뚫린 고름집을 내려다보며 《이 새끼들이 이리 만들고 치료도 안해주고.》 하고 못마땅해하였다.

후에 알고보니 부산에 살던 정용식은 자그마한 차집의 녀주인과 정분이 났는데 그년이 배반을 하였다. 사랑보다 돈이 더 귀중했던것이다. 동생이 너무 격분해서 형과 함께 갔다가 리성을 잃은 나머지 옆에 놓인 과일칼을 집어들고 그년을 찔렀는데 죽고말았다. 형제가 재판을 받았다. 동생은 사형되고 형은 무기형을 지였다.

출역공장에 진찰나갔던 의무과장이 들어왔다.

정용식이 머리를 한번 조아리며 청원을 했다.

《과장님, 이 상처를 보십시오. 하루이틀에 낫지 못할것 같습니다. 그러니 <림치>로 두게끔 했으면…》

《서로 아는 사인가?

《경남상고에 동기는 아니지만 동창입니다.

의무과장은 성태를 《병사 1방》에 보냈다. 감방보다 좀 넓은 방이였다. 나이먹은 몇사람이 있었다. 《병사》란 《병동》이란 말인데 말이 그렇달뿐이지 의무과가 쉽게 하느라고 한군데다 사람을 모아놓았을뿐이다.

성태는 들어서자 인사와 함께 자기 소개를 하였다.

62년생입니다. 무기입니다.

미결감에 구류된 때로부터 감옥년한이며 이것이 《무기수의 나이》인셈이다. 결국 성태는 어데 가나 신입생이나 다름없었다. 그 방의 환자수인들은 대개가 52년생, 53년생들, 한사람 내놓고는 다 지리산빨찌산출신들이다.

성태가 젊어보이니까 그들은 호기심에 차서 국제정세부터 물어보았다. 남조선형편은 뻔드름했는지 별로 묻지 않았다. 성태가 잘 알수 없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끝내 상처를 더 째고 봉합을 했다. 소수술이였다. 씻고 째고 닦아내는것은 다 소금물이였다. 염증을 삭이기 위해서도 소금물로 해야 한다는 원시적인 치료였다. 고문에서는 눈물을 흘린적 없어도 이때만은 눈물을 참아낼수가 없었다.

《하긴 소금물이 상처로 스며드니 눈물을 만드는 염기가 충분하지.》 하고 누군가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정용식이 성심성의로 도와주었다. 그를 통해 짬짬이 한두마디씩 부산소식, 더구나 《상고》시절 친구들의 소식도 듣군 했다. 허나 품을 놓고 들을 기회는 없었다.

《앞으로 의무과신세를 질 일이 있으면 절 찾으시유.

《어떻게 부르겠소?

《소지를 통하면 되지요.

《고맙네, 고마와.

정용식의 그 자그마한 인정에조차 눈굽이 뜨겁다. 그를 배반한 년은 어떤 년인지… 이 남조선사회가 전후에 더 썩어지는것은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후 성태는 《병사》에서 감방으로 돌아왔으나 본래있던 방은 아니였다.

뇌혈전으로 오른쪽팔다리를 쓰지 못하는 조용순 그리고 15분동안의 운동시간에도 밖에 나가지 않는 송기만, 그외 세사람… 그러니 모두 6명이였다.

 

 

2

 

 

어느날, 교도소장이 검방을 나왔다. 보통은 보안과장이 나오는데 웬일인지 오늘은 소장이 직접 나왔다. 검방이란 대체로 예고가 없다. 개미 한마리까지 찾아내는 일종의 수색이다. 바늘만 눈에 띄여도 벌방에 가거나 독방에 가서 《뒤수정》을 차고 《개밥먹기》를 해야 했다. 뒤에 두손을 묶고 풀지 않으니 엎디여 개처럼 꽁보리밥 한덩이를 뜯어먹어야 하는것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바늘이야말로 수인들한테서 가장 귀중한 재산으로 된다. 옆방에 《통신》을 보내는 통방신호법을 아는것과 함께 바늘을 가지는것은 옥살이에서 가장 귀중한 두가지였다.

바늘이야 감춰내지 못하겠는가고 할수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바늘이 보이지 않게 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갑작스레 검방이 닥치는 순간에 발바닥에 꽂고 곧바로 서서 견딘 사람이 있었겠는가!

바늘… 녀인들이 수백년동안 바느질을 하면서도 그 바늘이 오늘에 이르러 이 감옥에서 수인들의 가장 귀중한 재산으로 그리고 더없는 길동무로 될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꿰진 수인복, 꿰진 헌 이불때기… 아무튼 깁고 꿰매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바늘이 수인의 고독을 덜어주는 때가 많으니 30년의 옥살이에서 20년은 바느질을 했다는 말이 우연치 않다.

아이포대기만 한 이불은 말이 이불이지 헌솜이 한군데 몰켜서 덮으나마나한것이였다. 추운 겨울을 나자면 이불솜을 꺼내 다시 포개서 넣어야 한다. 조심스레 이불천을 뜯고 거기서 빼낸 실부터 따로 건사한다. 한토막이라도 버려서는 안된다. 헌솜을 손으로 골고루 포개느라면 작은 감방안에 눈코를 못 뜨게 솜먼지가 가득찬다. 자그마한 뙤창은 열지도 못하니 그 솜먼지가 어디로 가겠는가. 뇌혈전으로 손을 놀리지 못하거나 운신하기 힘든 사람들의것까지 솜을 포개느라면 몸이 좀 성한 사람의 수고란 이루 말할수가 없다. 사람은 먹기도 해야 하지만 우선 숨을 쉬여야 하는것이다. 오죽하면 변소구멍으로 올라온 쥐가 호기심이 나서 보다가 솜먼지에 숨구멍이 막혀 딩굴다가 간신히 변소구멍에 떨어져 달아났겠는가.

소장은 문밖 복도에 서있고 보안과장과 두명의 교도관이 들어와서 이불은 물론 푸른 죄수복의 여기저기를 다 만져본다. 가장 엄중시하는것이 못따위의 철물이다. 이런 경우 빤쯔도 걸치지 못한 아래도리를 벗기우는것쯤은 례사로운 일이다.

성태는 오른쪽손이 옷섶에 올라갈가봐 주의하느라 애를 썼다. 앞가슴을 매만져보는것이 일상시에 버릇처럼 되였기때문이다. 그안에는 전윤국동지의 피방울이 스민 실몽그러미가 있다. 겉으로 만져도 몽그러미가 알리지 않게 펴놓았지만 거기로 손이 가면 의심을 살수 있다. 《거기를 뜯으라!》 하면 그때는 다다.

문앞에 선 소장이 손으로 제모의 채양을 약간 올리면서 일어나 앉지 못하는 조용순이와 송기만이를 번갈아보며 소리쳤다.

《왜 아직두 일어나 앉지 않나? ?

한 교도관이 송기만이를 발로 툭툭 건드리자 송기만은 손을 홰홰 내저으며 벙어리시늉을 했다.

53년부터 옥에 갇힌 그는 《실어증》으로 벙어리가 된듯이 위장을 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장이 송기만이는 아예 못 본척 하면서 조용순이를 바라보고 이기죽거리였다.

《여 조용순이, 그동안 잘 있었나?

소장이 수인번호를 부르지 않는 경우는 거의나 없다.

《뇌출혈인지 뇌혈전인지 후유증치료를 좀 해주자고 해도 규정이 허락치 않아.… 참 일전에 우리 사촌형이 전화를 걸다가 잊지 않고 조용순이 안부를 묻더라구.

사촌형이란 《국군》사단장이다. 소장이 조용순이를 이렇게 대하는데는 그럴만 한 사연이 있다. 2년전에 뇌혈전을 만나기 전에는 조용순이 처우개선을 위한 단식투쟁이나 면담요청에서 늘 선두에 나섰다. 소장은 《매에 견디는 장사란 없다.》고 하면서 조용순이를 굴복시키려 했지만 그를 꺾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에서 《대전감옥에서 진짜빨갱이는 조용순이다.》 하고 말했다는것이다.

조용순은 오른쪽다리와 팔을 잘 쓰지 못해도 일어나 앉을수는 있으나 우정 앉지 않는것 같다.

《소장님덕분에 무사하지요. 뭐 집안에 또 관상을 봐드릴게 없는지?

《없어, 없어. , 국가공무원이 그런 미신을 믿겠어?

소장은 좀 당황해하면서도 억지로 비죽이 웃음을 내비쳤다. 교도관들이 있었기때문일테지…

성태는 간수들이 조용순이를 《관상쟁이》라고 부르는것을 몇번 듣고도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딱히 몰랐다.

조용순이 말했다.

《소장님, 그러지 마시유. 그 집안에서야 내 덕을 단단히 봤지요.

《여, 조용순이. 말 바른대루 조선생이 우리 사촌형의 덕을 단단히 봤지 뭘 그래.

《하 이런, 내 덕에 그 집안에서 종가의 종손을 봤는데두요. 조카며느리가 나한테 직접 인사를 해야 하는건데.

《야, 건방지게. 너때문에 아들이 태여났나? 하느님이 자비를 베푼거지. 입 다물고있으라, 저 송기만이처럼. 너희들을 일궈앉혀놓지 않는걸 다행으로 여기라.

감방문이 쾅 닫기였다.

그러자 조용순이 안성태를 손짓으로 자기곁에 불렀다.

《저놈이 왜 그러는지 안동진 모를거요. 여기 송동지도 알고 저쪽 원동지도 아는데…》

성태는 조용순의 손을 꼭 쥐였다. 손이 몹시 차거웠다. 피가 잘 돌지 않는 모양이였다. 이런 경우에 침을 맞으면 된다는데…

《안동지, 좀 들어보우… 난 1952년 전쟁중에 군법회의에 걸렸댔소. 총살형이 선고되였지.… 난 워낙 천성이 쾌활한 사람이여서 통분은 해도 무섭지는 않았어,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구. 아니 겁난게 아니구 원통했소. 조국통일도 못 보구 죽는다구 생각하니께. 난 부모형제, 처자두 없는 사람이니 홀가분한 몸으로 죽는셈이긴 해두… 왜 그리 오래 끌던지. 한데 이상한 일이였어. 나를 보초서던 <국군>놈들을 두놈인가 관상을 보고 <팔자>를 맞춰주었지. 슬금슬금 여러놈이 왔고 장교들도 왔어. 이런 경우 열중에 한둘만 맞춰도 대단해지거든… 내가 지내 엉터리는 아니였어. 난 어릴 때 <한의>를 하던 할아버지한테서 사상의학을 좀 배웠지. 사상의학은 사람생김새를 많이 보더군… 우리 할아버지친구들이 와서 <조경묵옹>이라고 수태 존경했어… 어쨌든 어찌어찌해서 내 말이 <국군>사단장놈한테 들어갔어. 그놈은 사건심리에서 나를 <확인>하는 증인이기도 한 놈인데… 하루는 나를 포승줄에 묶어 사단장방에 데리고 갔어. 사단장놈이 내 포승을 풀도록 해주고는 제법 차까지 대접하면서 <고생많지. 널 사형시키긴 참 아까와. 이봐, 내 한가지 청이 있어. 그걸 들어주면 목숨은 구해줄지도 몰라.> 하더군. <뭔데요?> 하고 물었지. 그놈 말이 며느리가 딸만 셋 낳았다는거야. 이번에도 임신했는데 또 딸이면 야단이라지. 자기네는 대대로 명문가인데 대가 끊어진다고 하더군. 며느리의 관상을 좀 봐달라는거야. 봐주겠다고 했지. 며느리는 아무것도 모른채 제 시애비한테 불리워왔더군. 며느리한테 <새애기, 너희네 고향에서 이런 사람 본적 없어?> 하고 물으니 며느리가 나를 새새 뜯어보고는 <없사와요.> 하고 고개를 젓더군. 그때 나도 찬찬히 마주보았어. 며느리는 해반주그레하게 생겼는데 까불지는 않더군. 며느리가 나가자 사단장놈이 내앞에 와서 <어때?> 하고 묻겠지. 난 생각해보는척 했어. 이젠 아홉달 잡힌다는데 별로 배가 크게 부르지 않았지. 난 임신부가 딸을 배면 아들보다 배가 더 크다는 말이 생각나서 <, 뭐 아들이 분명한갑쇼.> 했지. <그래? 그걸 알아냈어?> <거야 신령님이 내 귀에 속삭이더라니.> 하고 말했네. 난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네. 이래두 죽고 저래두 죽는다고… 한데 한달후에 그 며느리가 해산을 했는데 아들을 낳았거든. 사단장놈은 너무 기뻐 입이 귀밑까지 째졌어. 나한테 직접 와서 <, 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군법회의에 가서 담보를 받아냈어. 내가 확인증언을 그럴듯 하게 했으니까 사형은 면할거야. 됐지? 나한테 귀잡고 절해야 돼.> 하는거여서 나도 우쭐해서 <아니, 사단장님이 저한테 절을 해야지요.> 하였네. <, 이 자식이… 너하구 이럴새 없어. 빨리 손자 보러 가야지.> 하고 웃으며 사라지더군. 이렇게 죽느냐 사느냐 하는 사람의 목숨을 장난처럼 대하는 그놈을 증오하게 되구 어째선지 그 인간됨이 가련하구 서글퍼지더군. 나는 어쨌든 살수 있고 살아서 투쟁할수 있다는것으로 저절로 눈물이 나오는게라… 그 사단장놈이 아까 여기 왔던 소장놈의 사촌형이지.

안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순이 말을 계속했다.

《한데 그후 일이 어떻게 됐는지 아오? 며느리년이 아들을 더 보겠다구 내리 딸을 둘 더 낳자 그만 놀라서 닫아맸대. 내가 봐줬으면 또 아들을 낳을수 있었는데, 허허허…》

조용순이 조용히 웃었다.

《아마 8선녀가 나올가봐 겁났던게지. 가만, 우리 할아버지가 하던 말이 생각나누만. 왜 이럴가. 기억력이란 별나거든. 수태 고문당하면서 머리를 타박받아 기억력이 싹 없어진줄 알았더니… 자, 들어보게. 딸 하나 낳으면 <가일>, 곱다는 소리지. 두번째는 <혹이> 혹 둘이 나올수 있다는 말이고 세번째는 <다삼> 많다, 네번째는 <과사> 지나친데, 다섯번째는 <분오> 분하다는 소리지. 여섯번째는 <노륙> 노하게 되고 일곱번째는 <칠소> 어이없어 웃고 여덟번째는 <망팔> 아이고 망했구나. 이런거지. 허허허…》

안성태도 웃었다. 오랜만에 웃게 되는 웃음, 큰소리로 웃지는 못해도 잠시 마음이 밝아지는 웃음이다.

시찰구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교도관의 웨침소리가 울렸다.

《야, 벌방 가고싶어? 웃기는 왜 웃어?

조용순이 왼손을 쳐들고 말했다.

《방금 소장님의 칭찬을 하던 참이라우.

《칭찬하는데 웃어?

《날 보구 관상쟁이라구 해서 그게 좋아서 같이 웃어봤수다.

《조용하란 말이야!

시찰구가 찰칵 닫기였다.

조용순이 왼쪽눈을 찡긋해보였다. 오른쪽눈은 그러지 않아도 마비상태여서 쪼프려진 상태였다.

성태는 고개를 숙이였다. 조용순의 손을 놓을수 없었다. 그 차거운 오른손을 자기의 손으로 덥혀주기라도 할듯 오래도록 잡고있었다.

《안동지.

조용순의 낮은 부름소리.

《안동지는 늘 너무 심각해있군 하거든. 그리구 돌격하기만 하면 안되오. 우리앞에 놓인 세월을 기약할수 없지. 래일 당장 떳떳이 죽을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여유가 생기는 법이요.

(가혹하고 렬악한 환경에서도 웃을줄을 알던 불굴의 통일애국투사인 조용순동지는 반신불수상태에서도 26년간 신념을 굽히지 않다가 1990 1 19일 대전감옥 ×동 19호방에서 선혈을 토하고 전사하였다. 그가 생전에 왼손으로 사용하던 수지숟가락은 유물로 비전향장기수들이 가지고 왔다.)

성태는 조용순의 앞에 앉아 느끼였다. 먼저 간 선배들, 황태성, 전윤국들이 자기한테 무엇을 가르쳤고 조용순이도 지금 무엇을 깨우쳐주는가를 깨달았다.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는것, 그것은 웃으며 죽을줄 안다는것을 의미하며 이 숨막히는 감방안에서도 나름의 생활을 창조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하였다. 무엇을 어떻게? 아직은 자기한테 고유한 투쟁방식, 삶의 방식을 찾지는 못했어도 어차피 그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불같이 치밀었다.

그런데 성태는 뒤에 누워있는 송기만을 얼핏 돌아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다. 자는것 같지도 않다. 어쨌든 그한테 너무 엉치를 돌려대고 앉은것이 점직하고 미안했다.

감방생활에서 그런 《례의》쯤이야 무슨 대수랴. 하지만 성태는 제가 조용순이하고만 얘기를 나누고 그한테만 관심하는것이 어째선지 송기만이를 지내 무시한듯이 생각되였다. 물론 송기만이 조용순이 하는 이야기의 내용을 이미 다 들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그렇게 느껴졌다.

마치나 성태의 시선을 알아챈듯 송기만이 눈을 뜨며 천정만 쳐다볼뿐 무표정이다.

송기만은 리해할수 없는 사람이였다. 지리산빨찌산출신, 벌써 옥중에서 15년째… 성태에 비하면 대단한 감옥선배이다. 4.19때의 감면으로 20년형으로 되여 이제 몇해만 지나면 만기인데도 여전히 생활방식을 변경시키지 않는다.

그는 줄곧 4.19전부터 《병보석》을 바라서 15분동안의 《운동시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벙어리시늉도 하고 하반신마비가 온 사람처럼 보이려고도 했다. 그러다나니 진짜로 아래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제때에도 병보석이 있고 집행유예가 있었는데.》 하고 전에 자주 그렇게 말했다는것이다. 지금은 실어증에도 걸렸는지 말하고 싶을 때에도 말이 잘되지 않는 모양이다.

성태는 조용히 한숨을 지었다. 조용순이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였다. 하지만 어쩔수 없다. 여기서는 제가끔 달랐다. 반신불수이면서 되도록 혼자서 용변도 보고 얼굴도 닦으려는 사람, 그렇지 않으면 작은 몸놀림에도 남한테 의지하려고만 하는 사람…

송기만은 본시 고등학교 미술교원이였다고 한다. 그는 아들이 보고싶다고, 아들의 장래를 위하여 하루라도 빨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는것이다.

아들… 아들… 남달리 아들을 사랑해서인지, 어쨌든 그가 전향하지 않은것만은 사실 존경할만 한 일이다. 가까운 혈육들의 생사운명때문에 지리산출신들이 조용히 대오에서 사라져 가족들 품으로 가버린 사실이 적지 않다는것을 성태는 알고있다.

송기만의 변화가 없는 표정, 그것은 그대로 정지이고 체념이다. 나날이 시들어가는 그의 육체에는 많은 알지 못할 비밀이 숨겨져 있는듯 싶다. 물론 사고와 행동에서 선택의 자유는 그한테 있다. 하지만 여기도 하나의 집단이다. 잡범이 아닌 이상 새로 들어온 사람과 응당 서로 교감을 해야 하지 않는가. 옆방에서 울려오는 통방신호를 해득하는 타전법을 아직도 잘 모르다니, 애초에 알려고도 안하는게 아닌가. 단식투쟁이 벌어져도 적극적인 찬성이 없다. 알짜 수난자로 살고있다.

(나도 그렇게 될가?)

성태는 전률을 느끼며 자신의 앞날을 보는것만 같았다.

저녁끼니시간 일반수들의 《4등식》보다 더 못한 《4등식》이 들어왔다. 형타로 찍고 콩알이 약간 섞인 보리밥 한덩이, 국이라고 주는 소금물도 찌그러진 늄식기에 부어주었다.

조용순이 여느때처럼 세등분의 둘밖에 더 먹지 못했다.

《조동지, 억지루라도 마저 드시라니께.

조용순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난 흡수률이 좋아서 이만큼 먹어도 돼. 20, 30분씩이나 씹으니 더 잘 흡수할테고.

허나 그것은 거짓말이고 고질병인 위탈때문이다. 혈전에 위탈… 교도소측은 당장 죽지 않으면 의사도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남은 밥은 성태가 먹군 하였는데 이제는 죄스러워서 더 먹을수가 없다. 식욕이 좋은 성태는 《4등식》 열개는 넉근히 소화시킬수 있을것 같았으나 거기다 손을 댈수가 없었다.

성태는 송기만을 돌아보았다. 그가 손바닥을 쳐들어보였다. 자기는 여전히 제 몫이면 된다는것이다. 대개 20분정도 씹는 밥을 그는 보리밥알을 세면서 씹는지 거의 1시간가량 씹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나무랄수 없는 수인의 식사법이라고 할수 있다.

송기만이 입을 어물거리다가 조용순이를 손으로 가리켜보이고는 그 손가락을 세워 자기의 가슴아래 명치끝부위를 찌르는 시늉을 했다.

《침? 침놓았으면 좋겠다는거요?

송기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순이 웃음을 띠웠다.

《침이 어데 있소?

그 순간 성태는 머리에 큰 타격을 받은 때처럼 뗑해졌고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침을 구하고 침술을 배우자. 다음순간 너무나 허황한 공상에 사로잡힌것만 같아 저절로 허거픈 웃음이 나가는것 같았다. 어데서?… 누구한테서?… 간병부인 정용식을 통해서? 동생이 면회 오면 책을 구할가? 그것도 이것도 지금은 곤난했다. 그렇다고 맥을 놓고 앉아있을수 없다.

그러고보면 숱한 동지들이 위병으로 고통받으면서 그만한 량의 보리밥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서서히 말라가고있다. 성태는 상업경제나 건축은 알아도 의학은 통 깜깜이였다. 게다가 건강해서 침 한번 맞아본적 없다.

성태는 안타까왔으나 방도가 없었다. 그러던중 운명의 신이 도왔다고 쾌재를 부를 일이 생겼다.

얼마후에 전방이 있었는데 윤 아무개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사람이 들어왔다. 그도 역시 수인번호의 바탕이 붉은색이다. 그의 자그만 사품꿍지속에서 《침구경혈해설》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성태는 기뻐서 환성을 올릴 지경이였다. 한문으로 된 책인데 사람몸에 있는 모든 경혈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서였다. 윤동지는 그 책을 이미 자기는 보았다고 하면서 성태한테 보라고 빌려주었다.

성태는 경혈 356개소를 암송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경혈의 정확한 위치를 《취혈》해야 하는것이였다. 옷을 벗고 취혈해야 하는데 간수의 눈에 띄면 야단이다. 의심을 주지 않기 위해서 배가 아파서 그리고 허리와 어깨가 아파서 지압을 하고있다, 이렇게 속이면서 경혈부위를 기억하는 련습을 했다. 그후 1년만에야 책 한권을 머리속에 다 넣을수 있었지만 그때는 한두달에 다 해낼것 같은 그런 욕심에 사로잡혔다.

침이 있어야 했다. 침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재소자의 철물소유를 엄격히 금하는것이 감옥인지라 만일 검방때 걸리면 죽도록 매를 맞고 징벌을 받는다.

하지만 성태는 침을 구하려고 애를 썼다.

마침내 근사한것이 나타났다. 재감자들의 교정용잡지 《새길》이 매달 또는 한달 건너 나오는데 그 제본에 사용한 철사가 아주 드물게 강철로 된것이 있었다. 몇달이 지나 그런 철사로 꿰맨 잡지가 손에 잡혔다. 성태는 조심스레 그 철사를 펴서 뽑아내고 그 자리에 실을 꿰매고 흔적이 없도록 밥풀로 붙여놓았다.

철사는 꽤 쓸만 했다. 곧게 펴기가 말째였다. 아침에 소음이 나는 시간을 리용하여 쇠식기로 밀어보았다. 곧게 펴졌다.

한쪽 끝을 갈아서 살을 뚫을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숫돌도 돌도 심지어 콩크리트바닥도 없다. 방안은 널마루, 벽은 회가루다. 운동시간에 나가는 독거운동장은 바닥이 콩크리트지만 간수의 독살스런 눈이 따르기에 철사를 간다는것은 어림도 없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딱 한군데 그럴만 한 곳이 있었다. 방 한쪽구석에 똥통을 집어넣는 구뎅이가 있는데 그안의 벽과 바닥이 콩크리트이다. 50여년동안이나 오줌에 절어서 아예 시커멓다. 구뎅이바닥과 굽도리벽을 아침마다 닦아야 냄새를 덜수 있다. 청소하자면 머리를 깊이 박고 엉치를 높이 들어야 어깨와 팔이 구뎅이에 들어간다. 머리를 꺼꾸로 해서 몇분동안 움직여야 하기에 여기를 청소하다가 혈전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조용순이도 2년전에 그래서 반신불수가 되였다.

하지만 그것은 해야 할 일이다. 성태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아침청소때마다 며칠동안 머리를 꺼꾸로 박고 거기서 철사를 갈았다.

거칠기는 해도 한쪽 끝이 뾰족해졌다. 당장 침처럼 살을 찔러 보고싶었다.

다른 누구한테 실험할수 없다. 성태는 처음부터 제 몸에 하기로 작정한터여서 지체없이 왼쪽손등의 《합곡》이라는 혈에 오른손 하나로 침을 놓아보았다. 소독할데도 없었다. 붕산연고찌꺼기에 침을 한번 문질러서 꽂고 돌리였다. 오른쪽엄지와 검지로 잡아돌리는데 잘 돌아가지 않고 매끄럽기만 하다. 그대로 힘을 넣어 눌러보았다. 들어갔다. 한데 《염침》은 하지 못한다. 손잡이부분에 실을 감아서 돌려보아도 별로 잘되지 않는다. 침보다 더 가늘은 철사가 있어야 했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천정에 난 환기구멍에 눈길이 갔다. 쇠그물이 삭아서 뚫어져있다. 자세히 보니 나무들밑에 깔린 철사가 산화되지 않고 누렇게 구리빛을 띠고있었다. 윤동지의 잔등을 타고 올라가 몇올을 뽑아냈다. 멋진 손잡이용구리줄이다.

성태는 《합곡》부터 침련습자리를 정했다. 거기에 익숙되자 팔, 다리, 무릎, 허벅지로 시침범위를 넓혀보았다. 머리의 앞, , 얼굴, 배 그리고 허리옆구리로 옮겨갔다.

한달경 지나는 사이 손이 닿지 않는 등과 허리사이의 5흉추에서 10흉추정도까지는 놓지 못하고 356혈 거의 모두를 놓아보았다.

자주 두통이 있군 하던 성태는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의 혈들을 찔러보았더니 얼마 있지 않아 꼭 진통제 먹은것처럼 아픔이 가셔졌다.

침의 표면이 매끈하지 못해 거칠다보니 침을 뽑을 때 가장 많이 찔러보았던 《합곡》혈은 색소침착이 되여 반점이 뚜렷이 남게 되였다.

감방안에서 모두 침을 맞겠다고 나섰다.

제일먼저 오른쪽팔다리가 마비되여 누워있는 조용순이한테 놓았다.

《침을 꾸준히 맞겠어. 그래서 통일이 되면 제발로 걸어나가야지.

그래서 고혈압, 뇌혈전, 반신불수와 관련된 혈들에 침을 놓았다. 침이 한개뿐이여서 그대로 두지 못하고 일곱 호흡정도 머물러 놓았다가 뽑았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경험이 없고 게다가 긴장의 련속이여서 온몸에 땀이 났다.

애로는 이것만이 아니다. 복도에 대한 감시를 해야 했다. 애써 만든 침을 빼앗기면 큰일이다. 두사람이 감시해줘야 했다. 한사람은 시찰구에서, 다른 사람은 복도로 향한 조그만 창문에서. 한데 성한 사람은 윤동지 혼자뿐이니 몹시 불안했다.

조용순이한테 침을 놓는데는 오전시간이 다 걸렸다. 그가 조금이라도 고통을 던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으랴 하는 생각뿐이였다.

《우선 소화가 좀 되는것 같애.

《그래요?

괜히 나를 위안해주는 소리겠지… 조용순의 미소속에서 이렇게 느끼는 성태였다.

침술의 범위를 넓혀나갔고 맥진법에 대해서도 조금씩 경험을 쌓아나갔다.

송기만의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내 눈을 감고있던 그의 얼굴에 극히 미미하지만 감정의 변화가 알리는것 같았다.

한데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그한테 침을 맞아보라는 권유를 선뜻 할수가 없었다. 제스스로 그렇게 만든 몸이니 본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수 없는것이다.

송기만은 처음에는 놀라고 다음에는 희한해하였다. 안성태의 움직임을 세세히 바라보군 하던 송기만의 얼굴에는 웬일인지 차츰 괴로운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의 눈시울이 들리고 눈이 떠져있는 때가 많았으나 여전히 그와 눈으로 교감하기는 괴로운 일이다. 안성태는 그의 시선을 한사코 피하게 되였다. 똑같은 모양의 허름한 푸른 수인복, 똑같이 까까머리에 창백한 낯빛, 거기서 오직 눈만이 서로 다른 마음의 창문이다. 그런데 송기만은 여직 그 창문을 닫고 살아왔다. 과연 그게 어느 정도의 치료효과가 있겠는지 그것은 둘째치고 성태가 열심히 경혈부위를 외우고 제 몸에 시침을 하고 다른 사람을 치료하게 된 이 사실이 송기만의 굳어지고 체념된 《감정세계》를 흔들어놓았음을 성태자신은 짐작하지 못했던것이다.

성태는 침이 1개만 더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희망과 함께 가지고있는 침 1개도 어떻게 건사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검방때 들키면 매맞는건 둘째치고 침을 빼앗길가봐 그게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날, 15분간의 운동시간에 독거운동장으로 나가다가 성태는 간병부인 정용식을 스치였다. 독거운동장은 매칸마다 콩크리트담벽을 둘러치고 하늘만 보이게 해놓았다. 매 수인은 한명씩 들어가는데 담벽너머에 누가 있는지 몰랐고 간혹 키가 크고 기력이 있는 사람이 담벽꼭대기에 손을 간신히 걸고 저쪽에 대고 간단한 의사소통이라도 할라치면 감시하는 당직교도관이 꽥 소리치거나 호각을 불었다. 높은 단우에 선 그자는 매개 운동칸의 일거일동을 휑하니 살필수 있었다. 정도에 따라 뭇매가 안겨지는것도 그자의 기분에 따라 행하여질탓이다.

한뙈기의 푸른 하늘만이 수인이 자유로이 쳐다볼수 있는, 이 행성을 감싼 하늘의 한부분이다. 그 《하늘뙈기》로 하다못해 흉조라는 까마귀 한마리 날아지나도 자유에 대한 본능으로 가슴이 싸늘해져 오히려 눈을 감고 서있어야만 한다. 어찌하여 참새들조차 날아들지 않을가…

매칸마다 하나씩 나있는 출입문에서 잠간 스치는 초췌한 얼굴, 허나 눈으로 인사하고 눈으로 천가지만가지 뜻을 전하는것만 같은 순간이다.

간병부 정용식이 다리를 절뚝거리는 한 수인을 부축하고 독거운 동칸에도 못 들어가고 높은 단우에 서있는 교도관이 내려다보는 통로에서(그 통로를 따라 출입문들이 나있다.) 천천히 걸음걷기를 시키고있었다. 어떤 수인인지 알수 없으나 간병부의 부축은 그한테 대단한 《특혜》이다.

성태는 정용식이의 눈을 보고 그가 무슨 말인지 하고싶어한다는것을 눈치채였다. 하지만 마주서서 몇마디 말이라도 나눈다는것은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성태는 모험을 결심하고 자기가 들어가야 할 3번출입구를 지나서 정용식을 따라 그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여차직하면 출입구를 헛갈렸다고 할 판이다.

성태로서는 침을 구하는 부탁을 꺼낼 심산이였지만 정용식쪽에서 먼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듯 급히 속삭였다.

《내 사촌누이가 면회 왔댔어요. <상고>동창들이 안선배님을 몹시 동정하더래요.

전쟁전 《경남상고》동창들이라면 안성태를 모를 사람이 없다.

《내 사촌누이 <남선고녀> 다녔고 매부는 <경남상고>, 그 동창중에도 심종운이라고.

《뭐? 심종운이?

《한번 면회 오마고, 가족 아닌 사람 돈 엄청 많이 내야 하기에…》

《아! ! 간병부! 너 매맞고싶어 그래? 3530, 왜 제 칸에 안 들어가?

교도관이 고함을 질렀다.

성태는 급히 되돌아와서 3번에 들어갔다. 정용식은 부축하는 수인과 함께 통로의 끝으로 걸어간다.

성태는 운동칸에 들어가서 팔다리를 움직이면서도 줄곧 생각에 잠겼다.

(심종운이! 어렵게 살던 나를 무척 많이 도와주더니! 그리고 정용식의 사촌누인 《남선고녀》 다녔다구… 그러니 김계순이와 동기생일수도 있어.)

추억은 걷잡을수없이 그를 뒤로 끌어갔다. 아니다, 과거는 이미 흘러갔다. 내 인생궤도는 지금 앞으로만 뻗어가야 한다. 이렇게 발을 내짚는 힘겨운 걸음처럼 하나, , , 넷… 천천히 좁다란 공간을 돌면서 성태는 과거를 뒤로 뒤로 밀어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감방에 돌아와서도 정용식의 말이 귀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심종운이가 오겠단 말이지? 그런데 정용식이 김계순이라는 이름을 말한것같이 생각되였다. 아니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내 착각일뿐이다.

그저 사촌누이가 《남선고녀》출신이라고…

동생이 면회 왔을 때도 묻지 못했던 이름, 그와의 헤여짐이 부모형제와 헤여진것 이상으로 가슴을 아프게 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헤여짐이 제 잘못이기나 한듯이 생각되는것은 무엇때문일가…

아들을 부르며 세상을 떠난 부모님들처럼 그리고 병에 걸려 죽은 동생과 마찬가지로 김계순이도 불행한 운명에 빠졌다고 생각되였기때문일것이다. 바로 그러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뼈저린 심정때문에 그 이름도 추억의 밑바닥에 남아있을것이다.

추억은 세월을 거슬러 15년전 그 시절에로 줄달음쳤다.

 

 

3

 

 

…신록이 짙은 6월이였다.

밀양역에서 내린 한 청년이 읍내에 들어서고있었다. 자그마한 참대고리짝을 트렁크처럼 들고가는 청년의 발걸음은 빨랐다.

유난히 숱이 많고 진한 눈섭, 곁눈 한번 팔지 않고 오로지 앞만 곧추 바라보며 걷는 당당한 자세,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날렵하게 걷는 걸음새… 청운의 뜻을 품고 어디론가 급히 떠나가는듯…

안성태는 자립의 길에 나섰다는것, 더는 부모님한테 걱정을 끼치지 않아도 된다는것으로 다소 마음의 위안을 받았지만 결코 발걸음이 가벼운것은 아니였다. 밤이면 잠결에 부모님의 한숨소리를 들으면서 더는 《상고》에 다닐수 없는 형편이였다.

처음과는 달리 학교의 매대에서 세시간 일하고 버는 돈으로는 이젠 어림도 없게 되였다. 4학년이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열아홉살의 청년은 학교를 중퇴하고 3개월짜리 단기교원양성소에 들어갔다가 거기를 마치고 배치를 받아가는 길이다.

공부를 계속할수 없다는것으로 하여 여전히 가슴은 절통하고 서글프기 그지없다. 학교생활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그렇듯 친근한 벗인 심종운이조차 헤여지기 괴로울것 같아 만나지 않고 떠났다.

동래에서 부산까지 다니던 통근차안의 즐거운 기분이 되살아나 오히려 그것이 이제는 가슴속에 비애와 고독감을 불러올뿐이다. 웃고 떠들썩하던 그런 통학시간이 영영 자기한테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서글픔이였다.

성태는 기차칸안에 앉아 늘 책에만 정신을 팔았었다. 고개를 들다가 유심히 지켜보던 처녀의 시선과 부딪치는 순간이면 서로 당황해서 눈길을 허둥거리였다. 한 처녀와 몇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다.

아침저녁 만나 얼굴을 익히면서도 말 한마디 건늬지 못했다. 오면서 생각하니 바로 그것이 청춘인것 같고 그런 시절이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것만 같았다. 열아홉살의 숫저운 나이에 그만 청춘이 끝나고만듯 싶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말자고 다짐하며 자립의 길로 나간다는 기분에 발걸음이 빨라지는것도 사실이였다.

이런 걸음새가 어째 의심을 불러일으키는지 길목에 쑥 나서는 경찰이 《어이, 어디루 가?》 하고 길을 막아나섰다. 성태는 기다리기라도 하듯 품에서 자그마한 봉투를 꺼냈다.

《단장면에 국민학교 교사로 임명돼 갑니다.

성태의 어조는 공손하였다. 봉투에 찍힌 명판글자를 들여다본 경찰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런데 왜 뻐스를 안 타?

《뻐스가 어디 제대루 다닙니까?

《빨리 가봐.

경찰은 제 담당구간에서 어서 사라지기를 바라는것만 같다.

성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씨엉씨엉 걸어나갔다. 그리 넓지 않은 강이 나졌다. 부산바닥에서는 들어볼수 없는 시원한 강물소리.

성태는 강녘으로 내려가고싶었다. 흰 바위돌에 앉아 발을 물에 잠그고 다리쉼을 했으면… 하지만 몇십리길을 걸을 생각에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그래도 잠시 다리란간에 몸을 굽히고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다리와 강물의 흐름…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운명의 경계선에 들어선것만 같다. 그러니 역에서 예까지 걸어온 길처럼 무심히 다리를 넘어설수 없었다.

성태는 더워서 흰 반소매샤쯔조차 벗고싶었으나 안에 있는 런닝등판에 뚫린 구멍때문에 창피한 생각이 들어 웃도리를 벗을수가 없었다. 그는 참대트렁크를 다시 들었다.

성태는 오른쪽 다리란간을 따라걸었다. 이때 맞은편에서 왼쪽란간을 따라 한 처녀가 오고있었다.

세라복차림에 중발머리, 날씬한 몸매에 탄력있는 걸음걸이, 어디선가 본듯 한 모습…

하지만 성태는 그저 앞만 바라보며 걸었다. 그 순간 처녀가 무춤 멈춰서고 성태도 부지중 그쪽에 시선이 갔다.

두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둘 다 놀라서 굳어진채 움직이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방금전에 통학기차칸을 생각하다가 얼핏 떠올랐던 그 처녀가 분명하다.

3년동안 동래에서 30리 넘는 부산시내로 기차통학을 하면서 얼굴만 알뿐 단 한번도 말을 건네본적도 없고 서로 이름도 몰랐으나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발걸음이 얼어붙는듯 그냥 지나칠수 없는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저녁이면 통근차에서 내려 집으로 갈 때, 성태의 집은 500메터쯤 더 멀고 앞서가던 처녀는 도중에서 어떤 큰 대문으로 사라지군 했었다. 바로 이 큰 대문이야말로 그들 둘사이의 서로 다른 처지를 말해주는 장벽처럼 생각되였었다. 간혹 가다 처녀가 십여메터 뒤에서 올 때도 있었다. 그때 열리는 대문소리… 하지만 성태는 뒤를 돌아본적이 없었다. 대문도 없고 마당조차 변변치 못한 초라한 집에서 사는 성태한테는 그 대문소리가 어딘가 멀리 자기와 별다른 세계에서 울리는것만 같았다.

무척 낯익은 얼굴이 다가올 때 성태도 그쪽으로 몇걸음 마주 걸어갔다.

두사람은 자기들이 다리복판에 서있다는것에 생각이 미치자 황급히 다리란간쪽으로 물러났다. 성태가 걸어가던 란간쪽이였다.

처녀의 얼굴에는 불시에 홍조가 어렸다. 의문과 놀라움에 휩싸인 표정이기도 했다. 어째선지 성태쪽에서 더 놀라고 당황해했다.

마침내 처녀의 눈에 반가움이 정겹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흡사 퍼그나 친숙했다가 오래동안 헤여진 뒤 만나는 사람들처럼 반가운 심정을 서로 숨기지 못했다.

성태가 물었다.

《어디에 왔댔습니까?

처녀가 대답했다.

《고모네 집에… 왔다가…》

성태가 당황해한것은 당연하다. 처녀의 생활은 정상의 궤도를 따라 수나롭게 흘러갈터이지만 성태 자기는 알수 없는 길로 이렇게 내닫고있는게 아닌가. 그러나 사실은 여태 평행선으로 달리던 두 인생궤도가 여기서 처음으로 교차점을 이루었으니 이것이 후날 그들의 운명에서 어떤 전환점과 곡절과 종착점을 가져왔는지 그때 어찌 상상이나 할수 있었으랴. 만약 이때 그들이 반가운 마음, 오가는 정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았던들 적어도 이 열여덟살 처녀의 운명이 몇십년후에 다르게 흘러갈수도 있었을것이다.

처녀는 성태가 학교를 그만두게 된 사정을 듣고는 몹시 아쉬워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동정의 말을 비쳤다. 헤여지는 순간 부딪치는 눈길에 서로가 당황했다. 그들은 다시 만나자는 말도 없었고 이름도 묻지 못했으나 언젠가는 만나게 되리라는 예감과 희망을 제나름대로 가슴속에 간직한것이 분명했다.

성태가 간 곳은 궁벽한 고장이였다. 뙈기논, 다락밭, 논보다 밭이 많았다. 담배가 특산인지 밭에다 담배를 심어 수입을 얻었다. 《밀양아리랑》노래에 있는 구절이 의아할 지경, 녀성에 대한 봉건적인 구속이 오히려 더 심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하는 정서따위는 옛이야기로 돼버린것 같다.

한해가 가고 다시 봄이 왔다. 성태의 번민도 깊어갔다. 여기서 청춘을 썩일수 없다는 생각이 밤이면 그를 괴롭히였다. 이 고장 청년들은 거의 어디론가 가버렸다. 누구는 10월인민항쟁때 체포령을 받고 일본으로 밀항했다고 하고 누구들은 지리산과 태백산에 빨찌산으로 들어가고 누구는 어데 가서 지하투쟁을 한다고 하고 또 누구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고 했다. 뜻있는 젊은이들은 다 어디론가 가버렸다. 경찰들이 때없이 마을에 들이닥치여 수색을 벌리였다. 자기가 배워주는 어떤 아이의 형은 북에 들어가 대학에서 공부한다고도 했다. 성태는 북에 갔다온 작가가 썼다는 그 《북조선방문기》를 읽은 생각이 자꾸만 났다. 자기와 같은 가난뱅이자식들을 무료로 대학에서 공부시켜준다고 했지…

성태는 이듬해 5월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밀양에서 조금 저축한 돈을 내고 우선 제가 다니던 《경남상고》의 5학년에 복학을 했다. 1년만 견디여 졸업성적이 우수하면 일자리도 생길것 같다는것이였다. 교원들의 동정, 친구들의 후원이 컸다. 본래부터 많이 도와준 심종운이 제일 기뻐했다.

《됐어. 이제 1년만 견디라구. 내가 아버지한테 얘기해서라두 좋은 일자리 마련할수 있어. 성적이 1등인데 걱정할게 뭐야.

심종운의 아버지는 동래온천려관의 경영주였다. 심종운은 성태와 동갑인데 학년은 한해 아래였다. 그는 체육광이였다. 사실 성태의 실력으로는 《상고》공부쯤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한데 1? 1년 있으면 어찐단 말인가.

밀양다리에서 만났던 그 처녀가 제일 반가와하는것 같았다. 땅거미질 때면 동래역에서 집까지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남들의 눈이 두려울것은 없었다. 저녁어스름속을 걸어가느라면 대화는 무척 자연스러워지는것이였다.

이런 나날들에 성태는 김계순이라는 그 처녀의 가정도 알게 되였다. 어머니만 계시고 아직 미혼인 오빠가 아버지의 유산인 목재공장을 운영한다는것이다. 성태는 자기의 처지와는 너무나 다르다는것을 느끼군 했다. 학교 문예부 책임자인 김계순이 쓴 《첫눈》이라는 시는 너무 안온하고 목가적이였다. 눈이 내리자마자 녹고 마는 부산지방에서는 눈오는 날이 정말 기쁜 날이며 그래서 차라리 그 시가 환희와 열정의 노래로 되였으면싶었다. 《부산일보》 일요문예란에 실린 계순의 시 《명암》은 정말 추상적인 시였다. 유럽의 어느 모더니즘시인의것을 모방한것은 아닌지… 그자신이 찾은 감정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아리숭하기만 했다. 빛과 어둠이 서로 어울리는 새벽과 황혼의 그 오묘한 조화의 미에 매혹된다는 계순의 열정적인 설명을 듣고도 잘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한것은 그러한 성태를 계순이 탓하는 일은 없었다. 흔히 그런 류의 처녀들은 남성들을 대하면서 쩍하면 지성의 부족이니 수준문제니 하면서 상대방을 소홀히 보기마련이다. 하지만 계순은 비록 도고하고 자존심이 강하고 제딴의 리상은 무척 높았으나 성태앞에서만은 그런 티를 조금도 내지 못했다. 그것이 그때로서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리해가 되였다.

계순은 랑만적인 처녀였다. 그가 가난뱅이청년을 따른것은 그런 류의 처녀들이 흔히 갖는 호기심일수도 있었다. 한데 그 호기심이야말로 이성과 결부될수밖에 없는 그런 나이의 계순이였다.

현실적인 사고에 습관된 처녀들은 미래가 안정된 청년을 사랑하지만 랑만적인 처녀일수록 《불우한 수재》를 선망한다. 처음은 동정으로, 다음은 존경과 사랑으로…

그때 안성태는 앞길이 창창하다고 했지만 그자신은 자기한테 어떤 희망이 있을는지 그것을 확신할수 없었다. 그런 답답한 심정을 달랠길 없어 서울구경을 결심했고 그것을 실행하려고 전국수영경기에도 참가했었다. 서울구경, 인천구경을 한것은 기뻤으나 풍운에 뜬 그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이런 남성다운 기질과 열정에 계순이의 지성이 머리숙여진것이 아니겠는지…

학교에 돌아오니 《학도호국단》이 어떻게나 날치는지 학교가 학교 같지 않았다.

《군사교련》에서 빠지면 격검채와 야구방망이로 《테로》를 당하는 판이였다.

그래도 유일하게 마음을 위안받을수 있는 때는 동래역에 내려 계순의 집 대문앞까지 걸어가는 그 길지 않은 시간이였다.

계순은 시들을 써서 꼭꼭 첫 비평을 성태한테서 받군 하였다. 후에 발표된것을 보면 성태의 의견이란 거의 통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어쩐지 그것이 성태한테는 유쾌했다. 지성이 높은 계순이와 같은 녀성을 벗으로 사귈수 있다는것이 한가닥 위안으로 되였다.

도적인 수영경기에서 두 종목에 각각 1등을 했을 때 계순은 《기적이예요! 행운이예요!》 하고 기뻐하면서 도의 영예를 위해 자기는 돈으로 지원하겠다는것이였다. 물론 학교에서 려비, 숙박비를 부담했다. 계순의 성의도 마다하지는 않았다.

《군사교련》에 빠졌다고 《학도호국단》 단장놈한테 불리워가서 《이제 다시한번 빠지면 가만 두지 않을테다!》 하는 위협을 받았다.

성태는 남조선사회를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다못해 일본이라도 좋았다. 어디에 가든 이런 불망나니들만 없다면, 고학으로라도 공부만 할수 있다면… 로동자, 농민의 자식들이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북조선사회는 별나라처럼 생각되였다. 일본에는 《조련》이 조직되였다니 거기 가면 북에 갈수도 있을것이다. 이즈음에는 시와 인생관에 대한 계순의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11월 어느날, 온천에서 10리쯤 떨어진 범어사골안에 동무들을 따라서 단풍구경을 갔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우연히 국민학교동기생을 만났다. 6년만에 처음 만난 동기생은 옷을 쭉 빼입었는데 거동과 말투가 제법 틀스러웠다. 자기의 본심을 가리우기 잘하는 밀수입자나 거간군들의 행동거지가 바로 그렇다는것을 성태는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자꾸 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는 주위를 살피며 조용히 자기는 밀항선을 운영한다는것이였다.

《거짓말?… 혼자서?

《물론 동업이지. 난 사람들을 안내하거든. , 제발 함부로 입놀리지 말라구.

성태는 대번에 마음이 동하여 그한테 매달렸다. 단풍구경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도중에서 그와 함께 내려왔다. 비밀담보를 받아내고서야 그 친구는 두주일후 어느 어느날 밤 아홉시까지 기장역앞 려인숙에 오라는것이였다. 거기는 해변이 가까운 곳이였다. 성태는 단단히 약속을 하고 왔다. 부모나 형제한테 말할수 없었다. 혈육가운데 그의 밀항을 누가 찬성하겠는가. 하지만 친구인 심종운이한테만은 말해둬야 했다. 후에라도 원인 모를 실종으로 될수 있었기때문이다.

두주일이 지났다. 성태는 떠날 준비를 했다. 마음의 준비가 더 컸다. 부모들한테 눈치채이지 않게 하면서 마지막으로 부모형제들과의 정을 나누고 형제들중 누구한테 노엽힌 일은 없는지 그것도 곰곰히 되새겨보았다. 마지막날에 그럴듯 한 구실을 대고 집에 누워 마음을 가다듬었다.

계순이를 만나서 그한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는 미래를 약속하려는 사이도 아니다. 또 그럴수도 없다. 서로의 처지가 너무나도 다른것이다. 하지만 훌쩍 떠난다는것은 이제껏 벗으로 치부해온 그 의리에 어긋나지 않는가…

성태는 동래역에 나가서야 자기가 계순이를 마중하는듯 한 이런 걸음이 처음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도 놀랐다. 계순이 의아해하였다. 성태는 같이 걸어오면서도 다른 때와 달리 말을 꺼낼수가 없었다.

성태는 맑고 부드러운 계순이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릿해졌다. 자기의 결심을 듣고 그 대답으로 계순이 말을 한다 해도 평상시와는 달리 아주 랭정한 목소리일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저녁어스름이 짙어갔다. 그들이 늘 지나쳐 다니는 학교앞까지 왔다. 《복천국민학교》라고 내리쓴 간판의 글자획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 큰 나무옆에 섰다. 발밑에서 락엽을 밟기 저어하듯 두사람은 움직이지 못했다.

성태는 이 순간에야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떠난다는 말을 꺼내기 힘들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가까운 통학길 동무이니 말해야 한다는 평범한 도의심에 지배되였던 자신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만났으니 어차피 말은 해야 한다.

성태가 그 말을 꺼냈을 때 계순이 책가방을 락엽우에 떨어뜨렸고 두사람 거의 동시에 몸을 구부렸다. 계순이 얼른 가방손잡이를 찾아쥐지 못했다. 성태가 계순의 가방을 손에 들게 되였다.

첫 순간에 물론 계순이 놀랄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고개를 약간 숙인채 침묵을 지키자 더 놀란것은 성태였다. 자기의 결심이 이 처녀를 그토록 놀래울수 있다니… 어리둥절해졌다.

성태는 짐짓 헌헌한 어조로 《그저 동생들이 걱정되네요.》 하며 두서없는 말을 맥락없이 중얼거렸다. 두 누이가 시집갔으니 내가 남자로서 맏이라는것, 형이 《태평양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해 부모님속에 재가 앉았는데 이제 내가 더 불효자식이 된다는것, 어린 세 동생이 제일 걱정된다고 했다.

계순이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어둠속에서 별빛을 담은 그의 눈에 이슬이 번뜩이는듯 싶었다. 계순은 여느때의 순진하고 깨끗한 마음이 어린 그 청아한 음성이 아니라 딴 녀자같이 절절하면서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큰일앞에서 작은 일 생각지 마세요. 그래야 대사를 이룰수 있지 않나요?

그러던 계순이 불시에 고개를 저쪽으로 돌리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저를… 데려가줄수 없겠어요?

성태는 놀라서 말을 못했다.

침묵이 흘렀다.

계순이 나직이 말했다.

《안됐어요. 용서하세요.

(무엇을 용서하란 말인가. 내가 용서를 빌어야겠는데.)

《저… 래일 아침… 통학시간쯤 해서… 이 자리에 좀 와주세요.

이튿날 아침, 학교쪽으로 내려가는데 계순이가 제 집 대문에서 나왔다. 세라복차림이 아니였다. 학교에 갈 차비가 아닌것이다. 그는 성태한테 얼른 두툼한 봉투를 주고 황황히 들어가버렸다.

계순의 눈이 부은것 같고 그래서 얼른 얼굴을 피한 모양이다.

성태는 봉투를 품에 넣고 집에 왔다. 집 뒤켠으로 가서 봉투를 뜯었다. 엄청나게 많은 돈과 함께 다섯장이나 되는 장문의 편지가 있었다. 편지장에는 눈물자욱이 보였다.

계순은 지나간 나날들을 추억했다. 밀양다리에서 만났던 일, 성태가 수영경기를 앞두고 훈련을 하던 때의 그 열정… 고이고이 자라난 자신의 생활을 항상 성태씨의 그 가혹한 환경에 비추어보았다고, 거기서 뛰쳐나오려는 성태씨의 남다른 의지와 용기를 존경했다고… 어딘가 저 멀리 창공에 나래쳐오르려고 몸부림치다가 이제 바야흐로 날아오르려는 순간, 나는 이제껏 벗으로가 아니라… 성태씨를 사모하고있었다는것을 스스로 발견하고 놀랐다고, 열아홉살 처녀의 들뜬 련정이 아닌 진심의 고백이라고… 이제 떠나는 그대를 막을수도 붙들수도 없으니, , 부디 잊지 말아달라, 순정의 넋에 죽더라도 영원히 그대를 바라보는 한 소녀가 있다는것을…

성태는 편지를 움켜쥐였다.

(이런 녀자를 두고 어떻게 떠나랴.… 내 왜 그의 마음을 그리도 몰랐던가.)

녀성이 이성에 더 빨리 눈이 뜬다는 말을 생각하며 자신을 합리화했으나 마음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마지막종이장에는 계순이가 써주는 시가 있었다. 헌시라고 웃머리에 씌여졌다.

성태는 단숨에 시를 읽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계순이 보통때 쓰던 그런 시가 아니라는것이다.

애잔하기도 하고 추상적이기도 한 그 《명암》과 같은 그런 시와는 전혀 다른것이였다. 흡사 딴 사람이, 그것도 헌헌장부가 출진을 앞두고 쓴 시 같았다. 계순이 이 시를 쓰면서 순간에 어떤 다른 사람으로 비약해버린듯 하였다.

(나를 떠나보내면서… 그자신도 주위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 격정이 녀성적인것, 애달프고 섬세한것들을 다 밀어던진것인가!)

굳세고 열렬한, 뜨겁고 솔직한 심혼의 토로가 글줄에 넘치고있다. 성태는 시의 구절구절을 깊이 새기듯 다시금 읽어나갔다.

 

승리의 고개

 

삶의 승리의 길은 사나워라

승리의 고개는 아득하여라

사납고 아득함이 대장부의 부닥치는 길이니

사나움은 그대가 부딪치는 기꺼운 일이고

아득함은 그대 발걸음 억세임의 시험이리라

오직 비겁함이 없으리라

그대 닿는 앞길우에는

멈추면 멀어지는 그 고개이거니

무디진 그대 걸음에 스스로 채찍질하여라

승리의 홰불은 노력가만이 오라고 웨치도다

저 멀리 까마득한 곳에서

나가세, 나가, 피끓는 이 다리로써

두다리가 지칠 때에는 막대기에 매달려도

그곳 찾아서

저는 원하여라, 승리의 고개우에 무덤 있기를

 

성태는 또 한번 다시 읽었다. 대장부가 되여달라는 처녀의 부르짖음, 순간도 멈춤이 없이 인생의 궤도를 달리라는 절절한 호소… 사납고 아득한 길로 떠나보내는 고결한 넋의 퍼덕임이며… 애틋하고 뜨거운 정이여… 그를 한갖 공상속에 사는, 추상적인 시나 즐기는 그런 처녀로 보다니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눈물어린 사랑의 고백을 적은 처녀의 편지에서 큰 충격을 받은 성태. 그리고 무엇보다 이 헌시로 하여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고맙다, 그대는 내 마음속의 길동무다…)

 

11월의 그밤, 성태는 기차에서 내려 려인숙을 찾아가려고 기장역을 나섰다. 약속한 밤 9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사위는 온통 새까만 어둠에 덮였다. 괴괴한 정적이 깃들었다. 처마에 커다란 간판을 떠올린 기와집이 보였다. 보통기와집과는 달리 사랑채도 없이 길가에 나앉아있었다. 창호지를 바른 문에서 흐릿한 불빛이 흘렀다.

그런데 이때였다. 갑자기 호각소리가 울리고 구두발소리가 어지럽더니 려인숙의 문짝이 열리고 웩웩 고아대는 악청이 들렸다. 경찰제복들이 언뜩거리였다.

성태는 보꾸레미를 든채 오던 길로 되돌아 철길을 건너 제잡담 야산기슭으로 올리뛰였다. 숨을 헐썩이며 뒤돌아 내려다보니 불빛이 흐르는 집앞에서 경찰들이 몇사람을 련행해가는것 같았다.

성태는 맥을 놓고 풀썩 주저앉았다. 허거픈 생각에 사지가 매시시해지기만 했다. 청운의 뜻을 품은답시고 그 무슨 운명의 먼길에 오른것처럼 결연히 나섰다가 졸지에 좌절당한 수치감에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였다. 게다가 초겨울날씨는 퍼그나 쌀쌀했다. 온밤 바위등에 기대앉아 뜬눈으로 지새웠다. 부모들한테는 하루밤 어데 갔다왔다고 거짓말을 꾸며댈수 있으나 계순이와 심종운이한테는 뭐라고 하는가. 아니 또 기회가 있겠지. 결코 이대로 주저앉을수는 없어…

날이 밝을무렵, 부산쪽에서 기장역방향으로 올라오는 기차가 있었다. 교외렬차인지 몇칸의 려객방통만을 달았다.

성태는 역을 내려다보았다.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 내리였다. 기차가 떠나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더 똑똑히 보이였다.

성태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고등학교학생복차림, 심종운이 아닌가, 심종운이 주위를 두릿거리며 려인숙쪽으로 걸어간다.

(가만… 아, 저건 또… 아버지, 어머니구나. 작은누이도…)

성태는 고개를 떨구고있다가 맥없는 걸음으로 천천히 철길에 내려섰다. 려인숙까지 갔던 그들이 되돌아오다가 보퉁이를 들고 역앞마당에 선 성태를 발견하고는 허둥지둥 달려왔다. 심종운이 저쪽에서 오지를 못한채 멈춰서있기만 했다. 성태는 대뜸 짐작이 갔다. 심종운이 생각다못해 성태네 집에 가서 말했고 그것이 친우앞에서 가책이 된것이 분명하다. 어차피 못 떠났으니 결국 심종운의 죄는 아니다.

초저녁에 심종운이 찾아와서 말하자 식구들은 당장에 떨쳐나섰다. 동래경찰서에 몇사람 잡혀왔다는 말을 듣고 새벽 3시경에 거기에 갔으나 성태는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총에 맞아죽었다고 울며 불며 첫차를 타고 기장역에 올라온것이다.

어머니는 눈물만 좔좔 흘렸다. 치마고름이 눈물에 푹 젖었으나 그것을 눈굽에서 떼지 못했다. 아버지는 너무나 기가 막히는지 아니면 다행스러운 생각에 맥을 놓았는지 무릎을 꺾고앉아 곰방대를 빨며 푸른 연기만 풀풀 날리였다. 심종운이 다가와서 친구의 손을 잡았다. 용서를 비는것도 같고 일이 이쯤으로 끝난걸 다행으로 여기는것도 같았다.

성태가 부모님께 사죄하자 그들은 위험이 사라진 그 기쁨때문인지 그저 《됐다, 됐어. 그만하거라.》 하고 더 말을 못하게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듯이 학교로 갔다. 문제는 계순이를 만나는것이 가장 큰 고통인것이다. 차라리 피하고말가. 그럴수도 없고…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하는가, 일이 이리이리 되여 실패했다고 그 과정을 루루이 설명할텐가. 그건 졸장부들이나 하는노릇이다. 이제는 계순이와의 관계를 결산하고 새 출발을 하며 벗으로서의 우정만을 간직하면 되지 않을가, 이것은 성태가 이미전에 바라던바다.

계순이는 꿈속에서 빚어진것 같은 이번 일을 잊고 드디여 현실 세계로 돌아오겠지. 돈도 편지도 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써준 헌시만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리라고 생각했다. 그 시는 사나이로서 어데 가서나 대장부로 되기를 바라는 믿음과 기대와 부탁일뿐이다.

《저를 함께 데려가주세요.…》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분명 공상이고 꿈세계일것이다. 하지만 계순은 자기가 함께 떠날수 없으며 자기를 함께 데려갈수도 없다는것을 깨달았을 때 현실세계에서 크게 한걸음 성장하는 인간으로 될것이 아닐가. 그가 편지를 쓰면서 흘린 눈물, 그것은 꽃구름속의 순진한 사랑을 지워버리고 묻어버리는 최후의 몸부림일것이다. 이제는 그의 마음도 평온해질수 있다. 더구나 나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져 실망도 없지 않을것이니 그저 서로 기대하고 리해하는것만큼 우정을 나누면 될것이였다. 그러나 막상 계순이를 피할수 없게 되였을 때 성태는 마음의 혼란을 걷잡을수 없어 몹시 당황해졌다. 전차칸에 앉아 머리를 숙이고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순간 저만치 떨어진 곳에 전차칸안의 천정에 매달린 가죽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계순이의 옆모습이 눈에 띄였다. 계순은 분명 성태를 보고도 다가오지 못하고있었다. 항용 전차칸에서는 가까이 다가서지 않던 그런 수집은 감정때문이 아니다. 차창밖의 어딘가를 지꿎게 바라보는듯 한 그의 옆얼굴, 거기에는 의혹과 경악의 빛이 어려있음이 분명하다. 성태는 전차에서 내리자 황황히 집으로 향했다.

 

계순은 자기가 어떻게 전차에서 내려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 알수 없었다. 자기의 얼굴을 근심스레 자꾸 지켜보는 어머니한테 미소를 지어보이느라고 애쓰며 밥도 몇술 드는둥마는둥 하였다. 어머니한테는 아무것도 속여낼수 없었다. 또한 어머니한테 자그마한 일도 터놓지 않은적이 없었다.

전차칸에서의 그 당혹함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숙한편인 딸한테 어머니는 한두해전처럼 자꾸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는다. 오히려 딸한테 너그럽게 여유를 준다. 그러면 하루이틀 지나 딸이 먼저 어머니한테 모든것을 터놓는것이다. 계순은 생각했다.

(떠나는 날자가 미루어졌는지. 그렇다면 피하듯이 전차에서 내릴순 없잖아. 아예 그 길을 그만둘수는 없다. 무슨 일이 생긴것이 분명해. 그럼 왜 나한테 말하지 못할가.)

이튿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성태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통근차에서 내리는데 동래역앞에서 열세살쯤 되는 성태의 누이동생 안석순이 오빠가 보내는 편지를 계순이한테 주었다. 계순은 남들의 눈을 피해 역사의 옆구리에 가서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으로 편지를 읽었다. 거기에는 우선 밀항이 실패한 경위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기회가 또 있을지 모른다는 말도 했다. 어느 놈이 고발했는지 알아보고 가만 두지 않겠다고들 한다는 남들의 분노도 함께 적혀있었다.

계순이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밤새워 고민하던 계순이 동래경찰서에 있는 6촌오빠한테 이 사실을 알려 밀선을 미리 알아내도록 해서 성태가 못 떠나게 하리라는 모진 마음도 먹었댔는데 만일 그랬다면?… 하지만 이것은 성태를 배반한 길이고 그의 나래를 꺾는 잔인한짓이라는 생각에 몸서리를 치며 자신을 저주하던 계순이였다.

(철딱서니없지. 그랬다면 어쩔번 했어. 성태씨, 용서하세요. 한순간이라도 그런 몹쓸 생각을 한 저를… 떠난다는 바람에 저는 리성을 잃었댔으니까요.)

계순은 계속 아래를 읽었다.

부모님한테 불효막심하게 알리지 않은것을 사죄했다는것, 하지만 계순의 기대에 어긋나 면목이 없다는것, 남들이 이 사실을 다 아는것 같아 부끄럽다는것이였다. 그리고 돈과 편지는 돌려보낼테니 받아주면 마음이 편하겠다고, 헌시만은 간직하고 그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했다. 마감에 《종전으로 돌아가》 진실한 벗으로 남아있을것을 바란다는 말도 있었다.

편지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든 계순은 미소를 지었다.

(종전으로 되돌아가다니? 어떻게 인생길에서 과거에로 돌아가는 일이 있을수 있어요? 나는 이미 내친걸음이니… 결코… 물러설수가 없어요. 성태씨도 집으로, 학교로 <되돌아온>것은 아니지 않아요? 성태씨도 미래에로 크게 한걸음 내디뎠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저도 기뻐요.)

아니다. 계순은 자신을 속이고있었다. 자기가 그토록 련모하는 사람이 자기한테로 되돌아왔다는 그것이 점점 더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것이였다.

다음날 성태를 만났을 때 계순은 《벗으로…》 하고 조용히 말하고는 《찬성이예요! 찬성이예요!》 하고 큰 목소리로 말하고 활짝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의아히 쳐다봤으나 계순은 여전히 밝게 웃었다. 벗으로 남아있기를 《찬성한다》는 짐짓 크게 말하는 음성에는 오히려 그렇게만 될수 없다는 강한 부정이 슴배여있음을 그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다. 사랑이라는 신비하고 거대한 감정을 피할수 없다는것이 그 웃음과 말속에 강렬히 비껴있음을 그자신이 어찌 알수 있었으랴.

하지만 그후 그들의 통학길은 예전 그대로인듯 하였다. 계순이가 쓴 철학소론문 《나의 인생관》(졸업학년이면 학교에서 그런 글을 요구했다.)을 두고 토론한다든가, 계순의 시를 론한다든가 하는 등 여전히 종전의 생활에 매여있는듯 싶었다.

그러다가 성태가 《학도호국단》 단장놈을 주먹으로 꺼꾸러뜨린 일이 일어났다. 사실은 정당방위였다. 단장놈이 야구방망이로 때리러 드는것을 잡아채서 내던지니까 격검채를 들고 덤벼들었다. 격검채를 빼앗자 이번에는 주먹을 쳐드는것이였다. 성태는 날쌔게 몸을 피하며 그놈의 불통을 힘껏 내질렀다. 그놈이 《아이쿠!》 하고 엄살을 부리며 소동을 피웠다.

심종운의 손에 끌려 성태는 일단 그 자리를 피하였다. 경찰이 학교에 왔다. 성태가 수배를 당하게 되였다. 며칠이라도 몸을 피해야만 했다. 심종운이의 사촌형네 집에 가 숨었다.

학교에서는 교원들이 경찰측에 고소를 했고 단장이 사죄하지 않는 한 《군사교련》에 참가할수 없다고 들고일어났다. 경찰은 일이 크게 번질가봐 부랴부랴 수습하느라고 성태의 《무죄》를 선포했다. 그대신 단장놈이 학생들앞에서 정식으로 사죄를 했다.

그동안 계순은 정의와 자유를 위한 투사를 숨겨둔듯 한 자랑과 불안을 동시에 체험했다.

성태의 운명에서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졸업을 앞두고 서울 《조선은행》의 입행시험이 있었다. 시험은 각 도소재지의 은행에서 진행되였다. 예선, 본선, 두차례의 시험으로 결국 경남도적으로 두명이 합격되였다.

어머니는 자식의 뉘를 본다는 흥분과 감격속에서 시집올 때 가지고 와서 이날이때껏 아끼던 단 한벌의 명주치마를 아낌없이 꺼내놓았다. 그것으로 합숙에 가 덮을 이불을 지었다. 높은 대우를 약속하면서도 이불만은 지어가지고 오라는것이였다. 그 명주치마폭은 온통 어머니의 눈물에 절었다.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성태는 숯불을 담은 구식다리미밑에서 어머니의 눈물이 가느다란 증기로 피여오르던 일을 잊을수가 없었다.

서울로 떠나기 전에 졸업식이 있었다. 졸업식을 앞두고 계순은 성태한테 뜻밖의 소청을 내놓았다. 하루이틀 경주에 려행 갔다오자는것이였다. 부산의 학교들에서는 《수학려행》으로 경주에 가군 했었다.

성태는 동무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송별연의 초청을 거절할수가 없어 시간이 모자랐다.

계순은 제가 왜 그렇게 터무니없이 제 욕심만 부리며 어린애처럼 놀았는가고 성태앞에서 후회도 했으나 그때는 정말 서운했으며 따라서 성태를 영영 잃는듯 한 상실감으로 마음이 허전했던것이다. 열아홉살 순정의 가슴에 깃드는 사랑은 흔히 주위를 분별하지 못하는 법이다.

계순은 성태의 입행시험합격을 섭섭해하였다. 그는 응당 대학공부를 할 사람이다. 은행직원이라면 기껏해서 이담에 도지점에 내려와 일정한 자리를 차지할수 있을뿐이다. 성태의 불타는 향학열, 명석한 두뇌, 사내다운 열정은 그를 비상한 운명에로 부르건만 가난탓에 대학공부를 못하는 그것이 아쉬웠던것이다.

계순이는 어머니를 내세워 오빠한테서 일정한 자금을 담보받았으나 성태는 그저 《고맙소, 고마워.》 하면서 웃음으로 거절하는것이였다. 이런 거절로써 그가 자기한테서 영영 멀어지려 한다는것, 마지막순간까지 그가 자기의 사랑을 받아주려 하지 않는다는것을 느끼면서도 계순은 성태한테 줄 기념품을 마련했다. 세면도구일식이였다. 세면도구주머니의 비단천에 계순은 장식수를 놓았다. 처음 결심으로는 꽃이며 학같은것을 다 그만두고 《밀양다리》를 상징해서 다리를 수놓고 량쪽에 소나무를 한그루씩 수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두 소나무가 다리 량쪽에 서서 영원히 만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조용히 한숨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꽃과 월계수가지를 정성껏 수놓았다.

계순은 기념품을 석순이를 통해 전달했다.

성태가 떠나는 부산역두는 화창한 봄날의 정기로 무르익고있었다.

계순은 치마저고리차림으로 석순이와 함께 나왔다. 역홈에는 성태의 부모형제 그리고 심종운이를 비롯한 여러명의 친구들이 나왔다.

렬차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계순의 눈에는 손을 흔드는 성태의 모습이 눈물속에 얼른거리였다. 허전한 마음 어디다 비기랴. (마지막이구나!) 순간 계순은 몸의 균형을 잃으며 한쪽으로 기우뚱했다.

《언니, 왜 이러세요?

석순의 나지막한 속삭임, 석순은 급히 계순이를 부축했다. 석순이 아니면 당장 쓰러질듯 싶었다.

순간이지만 계순은 의식이 깜빡 혼미해지는것 같고 어디선가 늘 듣던 노래소리가, 아니 자기의 가슴속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대를 보는 순간

허전한 마음

그것이 사랑인줄…

그것이 사랑인줄…

 

(그는 영영 떠나갔구나…)

 

그날 성태는 렬차승강대에 선채 혈육들이 손저어주는 그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손도 젓지 못하고 그냥 서있기만 하던 계순이의 멀어져가는 모습…

문득 계순이가 비칠하며 한쪽으로 몸이 기울어지는것을 곁에서 석순이 급히 부축하는것이 시야에 똑똑히 잡혔다. 성태는 차칸에 앉아서도 내내 그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계순의 열렬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일수 없는 성태였다. 그와는 처지가 다르다는 생각이 언제나 마음속에서 머리를 젓게 하는것이였다. 하지만 기숙사에 들어서도 부산역두에 서있던 계순이, 석순이한테 의지하던 그의 처량한 모습이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성태는 편지를 쓰지 않을수 없었다. 그를 위안해주어야 했다. 앞으로 벗으로서 리해를 더 깊이 하자고 하였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 아직은 각자가 인생이 시작에 불과하지 않은가.(성태는 여기서 서로의 처지가 다르다는것을 쓰지는 못했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순진하다. 인생이 연분홍빛 꿈속에 보이는 그런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열아홉살 처녀의 순정의 가슴에는 성태가 보내는 그만한 동정이나 위안도 처녀가 그처럼 바라던 사랑의 대답으로 받아들여질수 있었다는것, 더구나 완전히 떠나갔다고 생각한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한가닥의 정도 처녀한테서 사랑의 환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것을 그때 어찌 성태가 알수 있었으랴…

성태는 계순이한테 편지를 띄웠다. 그랬으나 거의 보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역시 녀자여서 아기뚱한 마음이 생겼는지. 하지만 결코 그럴 녀자는 아니였다. 혹시 편지를 받지 못했는지 하는 생각에 다시금 편지를 보냈다. 그래도 소식이 없었다. 다시 편지를 할수는 없었다.

이제 만나게 되겠지…

한데 뜻밖에도 답장이 왔다.

성태는 편지를 보면서 놀래였고 일종의 두려움까지 느꼈다. 계순이 성태의 편지를 보고 상대방이 사랑을 받아들이는것으로 여길줄이야…

계순은 마음이 얼마나 급했던지 눈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진 편지를 그대로 보냈다.

거기에는 헤여지기 전과 헤여진 이후 한달동안의 사연이 적혀있었다.

계순은 그날 집에도 가지 않고 부산역에서 곧장 기차를 타고 밀양의 고모네 집으로 갔다고 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듯 한 그 밀양다리우에 서있기도 했다는것이다.

애수와 환희가 때없이 엇갈리는 처녀의 봄이였건만 계순은 보름이나 몸져 누울번 하면서 모든것을 애써 잊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애달프고 허전한 마음을 추세울수가 없었다. 초년에 과부가 된 밀양고모의 다정한 위안도 소용이 없었다. 살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첫사랑의 상실은 계순이를 고독의 심연, 허무의 나락으로 사정없이 떠밀어넣었다. 그는 핼쑥하고 피기없는 얼굴로 맥없이 기차에 올라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집에 오니 성태가 보낸 두통의 편지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계순은 사랑의 희열, 삶의 환희에 넘쳐 머리속이 빙빙 돌아가는 현훈증에 어쩔바를 몰랐다. 급히 편지를 쓰려고 하나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계순은 성태의 편지들을 정신없이 읽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답장을 보내면서 고맙다는 말을 몇번이나 썼다.

계순은 생에 대한 무한한 희열에 휩싸인듯 생각을 다시하여 서울로 올라가 리화녀대보결시험을 치겠다는것이였다. 곧 서울로 가겠으니 유혹도 많은 서울이라는데 언제나처럼 철석같이 무거운 사람이 되여달라는 부탁도 서슴없이 적었다.

성태가 어떻게 회답을 쓸지 망설이는데 그만 전쟁이 일어났다.

누구나 그런 시절에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라고만 여겨왔다.

하지만 15년전 그때 계순이 써주던 시가 그의 목소리로 되여 새로운 의미를 띠고 귀전에 울려온다.

 

삶의 승리의 길은 사나워라

승리의 고개는 아득하여라

사납고 아득함이 대장부의 부닥치는 길이니

 

김계순은 그전에 벌써 먼 후날인 오늘을 이미 내다보았던것도 같다. 성태 자기의 운명과 엇갈릴수 없는 자신의 인생길도…

계순의 나이도 이제는… 나보다 한살 아래였으니 서른세살쯤 되였을테지… 운명은 그를 멀리, 저 멀리로 실어갔을것이다. 그의 의지나 열망과는 관계없이… 15년전 그의 사랑에 대한 동정이 이제는 통털어 그의 운명에 대한 동정으로 될줄이야…

분렬이 민족의 매 성원들, 그 한사람한사람에게 끼친 불행과 재난을 력사는 결코 다 기록해내지 못할것이다.

하다면 그가 이 남조선천지에 어디에 있는가. 면회 오는 동생들도 그런 말이 없다. 간병부 정용식이 무엇을 알고있는지…

자신이 먼저 계순의 운명을 알아볼 권리가 없다는 생각, 이러한 권리는 분렬이라는 력사의 비극이 앗아가버렸다는것을 통절히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다. 어제는 아득히 흘러가버리고 래일도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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