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새벽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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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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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이 짙어가는 2000 6! 온 강산에 넘치는 환희와 격정의 파도! 끝없는 감격의 눈물,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북남공동선언!

안성태는 미처 정신을 차릴새 없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사람들의 물결속에 휩싸이였다. 모든것이 꿈만 같은 하루하루였다. 텔레비죤앞에서 울리는 열정과 흠모의 웨침…

김정일국방위원장이시다!

《아! 그 말씀 참 신통하시네!

《얼마나 인자하신분인가!

《김대중<대통령>이 그분앞에서 그저 어쩔줄을 모르시네요. 저 봐요. 리녀사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음을 참느라고만 애쓰네요.

이때처럼 텔레비죤의 시청률이 많아보기는 처음이다. 며칠 있지 않아 과천시내 거리에는 김정일장군님식》잠바가 련속 나타났다. 서로 돈을 올려가며 먼저 잠바옷을 지어입으려고 야단들이라고 한다.

안성태는 텔레비죤앞에서도 길을 가면서도 그냥 감격에 북받쳤고 김정일장군님을 모신 긍지와 자부심으로 가슴이 끓어올랐다. 김정일장군님의 영상을 우러르는 남녘동포들을 더더욱 뜨거운 혈육의 정으로 바라보게 되였다. 그이의 품에 이제 곧 자기가 안기게 되는것이 꿈만 같았다. 안성태는 일생 체험하지 못했던 행복감에 도취되여 어린애마냥 그저 가슴이 부풀기만 하였다.

과천시는 행정구획으로는 경기도에 속했지만 한강을 사이에 두고 서울과 맞붙어있는 곳이다. 과천에 있는 관악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암자에서 내려다보면 서울시가도 한눈에 건너다보인다. 관악산기슭에서 얼마 멀지 않은 《한백의 집》으로 련일 사람들이 찾아든것은 더 말할것도 없다. 이런 속에서 안성태는 울산 《민가협》으로부터 침술강의를 부탁하는 간절한 초청을 받았다. 이미 약속한바여서 리행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마 그들은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귀중한 그 무엇을 받아안지 못할가봐 안달이 난것 같았다. 그들이라고 여기서 벌어질 각종 환송행사와 송별모임을 모를리가 없다. 그들 속심대로 자기네도 많은 사람들이 울산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조건에서 침술강의 겸 송별모임도 하려는것이였다. 그래서 무더운 7월 한달, 4주일을 울산에 가서 침술강의를 했다. 《민가협》이 주최였고 청강생은 대학생들, 약사들, 수녀들, 교원들, 가정부인들이 많았다. 침 한대 맞는 값도 어지간히 비싸서 마음대로 맞지 못하는 그들로서는 실용적인 의의도 컸다.

안성태는 칠판에 마찌크로 도해를 그리고 제 몸에 침을 꽂아가며 침혈을 설명해주었다. 하루 68시간씩, 무더운 날씨였지만 안성태는 힘든줄을 몰랐다. 오히려 청강생들이 선생님의 건강을 념려한다고 했으나 강사쪽에서 더 열심히 강의를 해나가는 판이였다.

휴식시간이면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선생님은 건설기사인데 어떻게 침술사가 되셨나요?

그런 물음에는 감옥에서 침술을 익히기 시작한것은 동지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안성태는 정대철이 60미리 못으로 열흘동안 갈아서 만든 침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러면 저저마다 그 침을 만져보고 신기해하고 희한해하고 눈물에 젖기도 했다.

어떤 대학생이 그 침을 손에 들고 눈여겨보며 말했다.

《정대철선생님의 묘소가 지금 한산섬에 있다지요?

《그렇네. <>지가 조직한 <통일력사기행>때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찾아가 벌초를 하고 잔을 기울였네.

그때 일이 되살아나 안성태는 목이 꺽 막혀 말을 할수 없었다.

대학생이 《제가 정대철선생님의 유언을 대신하여 시 한수 읊겠어요.》 하고 청을 하자 안성태는 고개만 끄덕였다.

 

                 잣나무

 

내 죽거들랑 무덤우에

어린 잣나무 한그루 심어주소

내 잣나무로 자라서

푸르른 하늘에 솟구치고싶어

 

다도해의 물결소리

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

그대로 억세인 숨결소리되거라

 

통일되는 그날에사

그리운 내 고향 룡천땅

그 뒤동산에 잣나무를 옮겨주소

그러면 내 잣나무되여

죽어서도 가고싶던

그 들판, 그 시내가를 바라보리니…

 

모두가 고개를 숙인채 묵묵히 듣고있었다.

 

안성태가 울산에서 돌아온지도 며칠이 지났다. 날씨는 여전히 무더웠다. 허나 그보다 더욱 뜨거운것은 마음속의 열풍이다. 안성태는 날씨가 무더운지 비가 오는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따위 날씨 같은것은 숫제 감각에 미치지 못하였다. 비를 맞으면 차라리 시원해서 좋았다.

이 벅찬 여름날의 비는 온통 달아오른 육체와 마음을 식혀주는것만 같다.

그는 지금 차집에 가는 걸음이다. 거기서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이 기다리고있었다. 비는 좀 즘즉해지고 이따금 몇방울씩 떨어지다말다 하였다.

기다리는 사람이란 다름아닌 리상규였다. 리상규,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다. 요새는 만나자는 사람이 하도 많았고 따라서 리상규의 요청도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안양교도소로 《좌천》되였다가 정년퇴직에 들어가서 고향인 전주에 있는 안해와 아들, 손자들곁에 간줄 알았는데… 그럼 일부러 호남에서 올라왔는가?

《아유, . 인제 오시네요. 상규선생 얼마나 기다리신다구요.

50대의 차집녀주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민가협》의 한 성원으로 《한백의 집》을 마련할 때 도와주었고 지금까지 성의껏 지원해준 녀자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업이 없어 넝마장사를 하다가 겨우 자그마한 차집을 하나 차려놓고 사는것이다. 그는 요즈음 차집과 《한백의 집》으로 부지런히 다니면서 바쁘게 지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섰을 때 저쪽 원탁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바로 리상규였다. 그는 급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안선생, 축하합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인차 찾아뵙는다는게 늦었습니다. 그새 둬번 알아봤으나 그때마다 울산에 가셨더군요.

《하, 이거 정말 오랜만이요. 과장님을, 아니 상규선생을 이런데서 이렇게 만나니 더 반갑구만.

둘은 원탁을 사이두고 마주앉았다.

차집녀주인이 홍차와 커피, 얇게 썬 빵을 가져왔다.

《술도 좀 가져올가요?

녀주인이 리상규를 보고 물었다. 아무래도 그가 손님을 초청한 사람이니까.

리상규가 안성태를 바라보았다. 안성태가 가볍게 손을 저어보였다. 취흥에 잠겨 얘기를 나누고싶지 않은 모양이다. 술이란 진심을 터놓게도 하지만 때로는 과장된 열정과 흥분, 위세를 보일수도 있기때문일것이다. 술 취하면 사촌 기와집 지어준다는 소리가 달래 생겼겠는가. 물론 술이란 고뇌에 찬 정신을 위로하고 좁아지는 마음을 넓혀주는데는 더없이 좋은 물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의 이 장소에서는 그것을 별로 바라지 않는 두사람의 공통된 심리였다.

두리두리한 얼굴에 약간 벗어진 이마, 리상규는 본래부터 몸이 꽤 좋은편이다. 흰 반소매의 목깃이 꾸겨진 그대로였다. 그는 몸차림에 별로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이따금 한쪽 안경다리를 쥐였다놓았다 하는 리상규의 버릇은 여전하였다.

리상규는 안성태가 며칠 있으면 몇십년만에 안해와 두 딸을 만나게 되여 정말 기쁘겠다고, 세상에 이런 만남은 또 없을것이라고, 북과 남에 흩어진 가족들도 이렇게 만나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흥분에 겨워 말했다.

《고맙소, 고마와. 그래 그새 어데 가계셨소?

《제 말입니까?

리상규는 다시금 여느때의 그 침착한 목소리로 얘기를 했다. 대전에서 안양교도소로 가서 교무과장을 하다가 이내 정년퇴직으로 들어갔다는것, 전주에 있는 안해, 아들과 손자도 멀리두고 독신처럼 《고시촌》에 와 기거하고있다는것이다.

《고시촌》… 공무원시험을 준비하여 공부하는 곳이다. 단층집들에 칸칸마다 약 300명이 림시숙박을 한다. 물론 하숙비는 본인부담이였다. 옛날 《과거》와 같은 《고시》이지만 그것을 통과해도 나중에 입직때면 결국 돈이 있어야 좋은 자리에 들어간다.

안성태는 어리둥절했다. 처음에는 어느 자식을 공부시키느라고 함께 와있는줄로 알았다.

리상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좀… 자신의 인생을 결산한다고 할가. 그렇지요. 옛날 중들이 암자에서 도를 닦듯이 밥만 사먹고 책을 보고 글을 쓰지요. 1주일에 한번씩 과천도서관에서 신문과 잡지들을 뒤집니다. 주로 지난날의것들을 그리고 몇십년전 고문서도 다같이.

《무슨 력사책 저술인 모양이군. 아니 참, 철학전문가이니 그 무슨…》

《원 말씀 마십시오. 그따위 철학넉두리는 잊어버린지도 오랩니다.

《그럼 뭘로, 무슨 글을?

잠시 고개를 숙이던 리상규가 머리를 들었다. 그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안경알을 닦았다. 부질없는 손짓이지만 그것을 지그시 바라보며 안성태는 말이 없다.

안성태의 류달리 숱이 많은 진한 두눈섭이 한군데 모여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시대의 거세찬 통일열풍이 이 인간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을가. 자기와 마주섰던 이들 같은 수십명중에서 그래도 정신생활을 하려고 지향했던 사람은 리상규뿐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그가 왜 력사와 시대앞에서 무심하겠는가. 그는 말년에 와서 항상 자신을 죄많은 인간이라고 했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그것은 주로 녀성문제에 한하여 그것을 념두에 둔것이였었다. 50대 초반까지의 지난날에 아무리 녀성교제에서 불륜한것이 많았다 해도 오늘에 와서 리상규라는 인간이 새삼스레 그런것이나 총화하며 량심에 부끄러워할 인격의 소유자는 아닌것으로 안성태는 알고있다.

리상규는 다시 안경을 쓰더니 두눈을 쪼프리며 말을 시작했다.

《안선생님, 오늘에 와서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난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만났던 그때를 잊지 못합니다. 그때 저더러 뭐라 하셨던가요? 인간을 초월할수 없다구 했지요. 옳습니다. 그후에 나는 이런저런 기회에 주체사상에 접해보았습니다. 그러니 지난날의 내가 더욱 돌이켜졌습니다.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중용지도를 지키면서 항상 딜렘마에 빠져있었지요. 우유부단하고 의지가 박약하구 그러면서도 인생을 향락으로만 대하구… 내가 지켜야 할 신념이라도 있어야 의지라는게 있지요.… 그러다가 선생님을 만난것이 나한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였습니다. 다른 장기수선생님들도 그렇구…》

리상규는 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들어 마치 술이라도 마시듯 단숨에 쭉 들이켰다.

안성태는 홍차를 부어놓은 차잔을 입가에 가져가서는 상대방한테서 눈을 떼지 않은채 한모금 마시였다. 시대의 폭풍은 마침내 이 인간의 마음속에서도 세찬 소용돌이를 일으키고있음이 분명하다.

리상규가 시선을 들자 안성태는 그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리상규는 입을 열고 천천히 말을 했다.

《안선생… 나는 지금 책을 쓰는데… 총 5개 장으로 구성하고 이제 겨우 첫 꼭지를 뗐습니다.… 책제목을 뭐라 하겠는지 아직은…》

그러던 그가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 이제까지 피해자의 증언은 있어도 가해자의 증언은 없었습니다. 내가 잡지와 신문, 책들을 다 뒤져보아도 그런건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가해자의 증언…》

《량심선언으로 되는것이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좀더 가혹한 진실을 밝히려는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무엇을… 어떤 각도에서…》

《제가 말입니다. 특히는 60년대말과 70년대에 어떻게 <좌익수>, 량심수들을 정신적으로 괴롭혔는지 그리고 나를 추동한 심리적, 사상적근거는 무엇인지 그것을 해명하자는것입니다.

갑자기 두사람은 묵묵히 마주볼뿐 말이 없었다.

안성태는 느닷없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물론 그런 책이 필요하구말구. 그래 그 책을 쓴 다음은?

그러자 리상규가 놀라서 눈을 꺼벅거리더니 안경알 저쪽에서 실눈이 되여 안성태를 바라본다.

성태가 재차 물었다.

《상규씨, 이것이면 당신의 인생결산으로 된다고 생각하는거요?

《그럼 이제 무엇이 나한테 더 남아있다는 말입니까?

《그걸 나한테 물으면 되는가요? 시대에, 력사에, 민족사에 물어보고 새 세대에게 물어보시오.

자기앞에 또 새로운 무엇이 놓여있다는 말에 리상규는 퍼그나 놀라 잠시 말을 못하고있었다. 그러다가 띠염띠염 물었다.

《그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류달리 짙은 안성태의 두눈섭이 다시금 한군데로 맞붙여졌다.

《나는 리해가 안되오. 가해자의 증언을 써도 왜 투쟁하는 현실속에서 쓰지 못하고… 이런 유페된 곳에서 벽면좌시하며 앉아서 무슨 글이 나오겠소?… 아니, 그건 내 말이 지나친것 같소. 책을 쓸 때야 조용한 곳에서 써야지.… 그러니 다음에 어찌는가 말이요?

《또 그 물음이시군요.

《그렇소. 상규씨의 인생도 마감이 아니라 이제 시작에 들어섰소.

《네?

《아니 주위를 둘러보시오. 각종 단체들이 활동을 벌리고있소. <범민련>, <전국련합>, <통일광장>, <민가협>… 모두가 통일이라는 하나의 거세찬 흐름에로 지향하고있는데 상규씨는 이것을 외면할수 있소? 상규씨가 가진 지성의 높이에서 그래 그것을 보지 못할수가 없지 않소?

리상규가 빠른 어조로 말했다.

《총칼이 없이 정의와 진리를 지키는것이 지성인데 한뉘를 총칼에 등대고 량심수들을 괴롭히던 나한테 무슨 지성이 있단 말입니까?

《과연 그렇군… 한데 당신은 아직 교도소울타리안에서 맴돌고 있소. 빨리 거기서 나오시오. 통일의 광장에, 민주의 광장에!

흥분에 겨워 열띤 어조로 안성태는 계속했다.

《그래서 가해자의 증언도 필요한게 아니요? 그 증언을 주추돌 삼아 그것을 딛고 일어서야 하오. 주저앉지 맙시다.

밖에서 세찬 비소리가 들려왔다.

안성태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갑작스런 폭우를 피하느라고 사람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였다.

그러나 리상규는 밖을 내다보지 않고 안성태를 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저더러… 사상전향을 하라는셈이군요.

《뭐?

안성태는 한순간 그 전향이라는 말에 놀랐고 그러한 자신이 우스워 이내 《하, 하》 소리내여 웃었다. 리상규도 히죽이 웃었다.

안성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따는 그렇다니까. 하지만 당신은 사상전향을 한지 오래오.

두사람은 동시에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리상규는 이내 웃음을 거두었다. 안경뒤에서 그의 눈빛이 다시금 심각해졌다. 그는 반나마 음료가 남은 유리고뿌를 손에 든채 말했다.

《하긴 력사는 선생을 무죄로 선언했습니다. 도리여 나를 유죄로 판결한셈입니다. 력사의 판결, 이것이 진리이고 정의입니다.… 민족사에 죄를 남긴 내가 선생의 말대로 늦게나마 행동으로, 실천으로 이것을 씻어야지요.

《상규선생, 가해자의 증언, 그것은 큰 행동이고 의지입니다. 그런 책 쓴다니 대단한 용기가 있어야 할게 아니요. 자칫하면 옥에 끌려가 고초를 겪을수 있으니.

《선생님,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력사앞에서 떳떳할수도 있지요. 그러니 걱정마십시오… 안선생, 떠나기 전에 한번 또 만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나도 밤을 새워서라도 더 만나고싶소.

《참. 안선생, 6.15때… 그날만은… 고시촌에 어디에도 텔레비는 없지 않아요? 한참 뛰여서 어느 집에 무작정 들어가 텔레비 보았어요. 김정일국방위원장님모습 뵈왔어요. 그 존안을 우러르니 안선생이 말해주던 그 <전통과 계승>의 내용들이 펼쳐진다는 실감을 금할수 없었어요.

《고맙소. 감사하오. 나도 마찬가지 심정이였소.

비방울이 창문을 두드렸다.

차집주인인 한지연이 왔다.

《아니, 무슨 얘기들을 하는것 같은데 그렇게 크게 웃고. 모를 일이예요. 교도소안에서 알게 된 친분이 이렇게까지. 참 세상은 변해가긴 변해가누만요… 안선생, 오늘 여의도에서 수만명이 모여 비전향장기수들을 환송하는 성대한 모임이 있다던데 비가 이렇게 와서.

그 녀자가 근심스레 밖을 내다본다.

안성태가 일어섰다.

《그래도 미루지는 않을거지요. 가서 알아봐야죠.

안성태는 다시 만나기로 하고 리상규와 차집에서 헤여졌다.

그날, 너무나 비가 억수로 쏟아져 여의도에서는 환송모임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연세대학교 교정에 자리를 옮겨 모임이 거기서 진행되였다. 미처 우비도 없이 나온 많은 사람들이 비를 맞으면서도 그리로 갔다. 비전향장기수들을 바래우려는 사람들의 정과 열기가 그렇듯 뜨거웠던것이다.

 

 

2

 

 

《한백의 집》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와서 미처 정신을 차릴새가 없었다. 옥에서 나온 그 1년 반동안 끊임없이 후원해주던 고마운 사람들… 그중에는 녀성의학박사도 있고 성이 같다고 안성태의 수양딸이 된 40대 초반의 녀류소설가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와서 수도시설을 고쳐주고 가구비품들을 손질해주던 30대의 용접공도 있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이곳 네사람의 비전향장기수들을 찾아와 축하하고 소박한 선물들을 남기고 여기저기서 편지들이 날아왔다. 다섯번이나 갔다온 울산이 제일 많았다. 송별사들인셈이다. 글줄마다, 글자마다 뛰고 솟구치며 환성을 올리는듯 울고 웃고 춤추는듯… 그래서 온통 눈물속에 어룽거린다.

 

…축하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간 고생이 얼마나 많으셨습니까?

그 암흑같이 세월을 가늠할수 없는 기나긴 시간동안 포기할수 없었던 당신의 마지막선택을 그렇게도 어둠이 덮을수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젊음과 맞바꾼 그 어둠의 깊이를 누가 알기나 하겠습니까?

통일의 대문은 기어이 열리리라 믿습니다.

통일의 날까지 해야 할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이제 그 과제들을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다 맡기시고 후날 통일이 되는 그날 다시 만날수 있도록 기대할게요.

부디 건강하시고 안녕히 가십시오.

 

…선생님

온삶과 운명을 던져 싸우셨던 선생님 같으신분들에 비하면 우리가 한심해보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척박한 땅도 통일을 념원하고 준비해나가는 크고작은 손발들로 인해 조금씩 기름지게 되겠지요?

선생님 생각날 때면 저대로 아이들에게 통일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애쓰는것 잊지 않겠습니다.

 

…선생님들이 계셔서 저희는 얼마나 든든합니까! 너무도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지금은 저의 하루하루가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선생님을 잊지 않고 선생님께 비추어 저를 돌아보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선생님 뵙는 날에는 《조국통일의 전사》라고 저를 소개드리겠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십시오. 꼭 건강 지키셔야 합니다. 통일된 그날 지금처럼 힘과 기백에 넘치는 선생님을 뵈올거라 믿습니다.

선생님, 제가 올해 스물일곱입니다.

북에 가시거든 실한 총각이나 챙겨두셨다가 통일되면 꼭 저 시집 보내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통일된 조국에서 꼭 찾아뵙겠습니다.

 

 

3

 

 

근방에서 사는 용접공 조병현이 새벽같이 안해를 데리고 《한백의 집》에 왔다. 자전거뒤꽁무니에 음식감들을 싣고 온 젊은 량주는 자기들의 손으로 아침밥을 짓겠다는것이였다. 쉬는 날은 물론 거의 매일이다싶이 짬을 내여 조병현이 와서 집안의 잔손질을 했고 누기찬 방안에서 이부자리들을 밖에 들어내서 볕에 거풍을 시키기도 했었다. 조병현의 안해도 드문히 와서 동자질을 도와주군 했는데 그럴 때 겹쳐서 동네아주머니들이나 《민가협》위원들이 와서 같이 음식을 만들면 그 녀자는 제가 마치 응당 이 집의 안주인이라는듯이 거리낌없이 신칙을 하고 지어 자존심이 상해하는 눈치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만큼 그들의 지성이 지극했던것이다.

이날 아침따라 조병현의 안해는 선언을 했다.

《삼사십년 감옥에서 음식 가리는 법은 다 잊어버리셔서 아무거나 다 좋다고들 하지만 오늘은 네 선생님모두 각기 제일 좋아하시는 음식들을 짓겠어요. 신청을 받을 필요는 없구요. 뭘 좋아하시는지 이미 다 알구 있으니까요. 한데 안선생님은 수제비국을 좋아하시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이렇게 더운데 그래두 수제비국을 드시겠어요?

안성태는 웃으며 대꾸했다.

《수제비국이요. 더울수록 땀을 쭉 뽑아야 되죠. 그러니 역시 수제비국, 다른 음식으론 <전향> 안할테요.

조병현의 안해가 웃었다.

《그러니 역시 지조를 굽히지 않는다 그 말씀이군요.

그러자 폭소가 터졌다. 그렇게 크게 웃지 않아도 될 일에도 그들은 저저마다 흥뜬 기분에 있던 참이라 이렇게 크게 웃는것이였다.

녀인이 둘러보며 물었다.

《선생님은요?

《된장찌개, 그 이상 더 없소.

《선생님은요?

《난 시원한 국수, 그런데…》

《걱정마세요. 그래서 여기 국수감을 가져왔어요.

저녁에 거제도에서 맏아들과 함께 안석순이 올라왔다. 그도 이젠 60대 초반의 나이였다. 사박스럽던 오목눈은 어데로 갔는지. 그래도 잔주름에 얽힌 눈귀와 눈시울에 둘러싸여 눈빛은 여전히 예리하게 또는 부드럽게 반짝인다.

뒤미처 부산에서 제수가 왔다. 희맑은 살갗의 덕분으로 그는 다섯살이나 아래인 석순이보다 오히려 늙어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들어서자 바람으로 큰 구럭지안에서 사기단지를 꺼내놓으며 웃는다.

《아주버니, 전 풋절이김치밖에 몰라요.

성태도 석순이도 놀랬다. 사기단지를 받아놓던 석순이 뚜껑을 열고는 제 성님을 쳐다본다.

《이게 시굴지 않능기?

제수는 갸름한 얼굴에 처녀처럼 미소를 띠운다.

《얼음덩이 몇개 넣었구요. 다 와서 멸치젓갈물을 두었능기.

성태는 그만 놀라서 부르짖었다.

《아이구마, 우리 제수님 제일이야.… 한데 여기 와서 풋절이김치 구하면 안되능기, 그걸 그 먼데서…》

《아주버니, 이게 동래근방에서 나는 풋절이예요. 마침 첫물이 생겨서.

성태는 감심을 했다.

《아, , 86년도 9월달에 부산 갔을 때 맛본 풋절이김치맛 감옥에서 내내 생각나서 참.

《아주버니, 그때 제가 정성들인 풋절이김치는 지금과는 뜻이 달랐지요.…》

한순간 눈이 커지던 성태가 껄껄 웃었다.

《알만 해, 알만 해… 아, 그게 다 옛말로 됐어.

그러자 제수도 활짝 웃어보였다.

올케와 시누이가 오손도손 같이 동자질을 하다가 둘이 수군거리더니 올케가 다른 장기수선생님들을 위해 음식감을 준비해야겠다며 저자구럭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성태와 안석순이만이 남았다. 석순이 사기단지안에서 국자로 풋절이김치를 꺼내 보시기에 담으며 혀를 끌끌 찼다.

《정말 쉽지 않은 녀자인기요.

《그래그래.

성태의 긍정과 감동에는 많은 뜻이 담겨져있다. 물론 성태의 노력으로 제수와 성필이의 재결합이 이루어졌지만 거기에는 전적으로 제수의 주동적인 노력이 작용한것이다. 왜냐하면 성필이는 이미 병이 심하여 운신조차 할수 없는 몸이 되였기때문이다. 그런것을 제수가 조카, 조카사위들을 동원하여 거제도에 가서 성필이를 업어오다싶이 했던것이다.

성필은 짐이라도 이만저만한 짐이 아니였다. 허나 제수의 병구완은 지극하였다. 그러면서도 제수는 제 수고를 조금치도 생각지 않고 그저 자기는 38년간 옥고를 치른 시형한테 면목이 없다는 소리뿐이였다. 성필은 누워서 줄곧 눈물만 좔좔 흘리고있다고 했다.

성태는 이제 얼마 있으면 한가위날이 된다는것을 생각했다. 출옥해서 반년남짓 지난 뒤의 작년 한가위때 그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맏누이의 묘에 성묘를 했으며 그 가까이에 있는 김계순의 령전에도 그가 그리도 좋아하던 들국화묶음을 놓고 잔을 기울이였었다.

성태가 석순이더러 금년 한가위에는 어떻게 하겠는가고 의논을 펴는데 저자보러 나갔던 제수가 들어오고 뒤미처 울산에서 올라오는 조영미가 이 지하실방에 들어섰다.

성태는 영미의 손을 부여잡고 한동안 놓을줄 몰랐다. 그러면서 일민이를 데려오지 않았다고 크게 섭섭해하였다. 그러나 영미의 얘기를 듣고보니 그럴상싶기도 하였다. 비전향장기수들을 바래우느라고 어데 가나 붐비는 판인데 여기로 어린아이를 끌고다니기 어려우리라는것이 리해되였던것이다.

그대신 일민의 《편지》라 할지, 《선물》이라 할지 봉투에서 그것을 꺼냈다.

종이 한장에 서툴기는 해도 한쪽에는 조선지도를 크게 그리고 그아래에 《하나된 우리 조국 만세!》라고 썼으며 뒤쪽에는 방긋 웃는 제 사진을 동그랗게 오려붙이였다.

《고맙다. 고마와.

안성태는 가슴이 뜨거웠다.

(그 어린것의 심장에도 통일의 넋이 깃들었구나. 그 애는 통일된 조국에서 살게 될거야. 꼭 그렇게 되구말구.)

안성태는 그렇게 확신하였다.

《한백의 집》에서 사는 네 식구와 조영미, 석순과 제수 그리고 조카가 함께 둘러앉아 저녁밥을 나누었다.

모두들 숟가락을 미처 놓기 바쁘게 이번에는 차집녀주인인 한지연이 숨을 할싹이며 지하실의 층계로 뛰여내려와 방안에 들어섰다.

좌중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한지연이 가쁜숨을 몰아쉬고는 떠듬떠듬 말을 꺼냈다.

《아니 글쎄… 방금 <련합뉴스>가… 기쁜 소식 전했어요… 안성태선생님 가족소식을… 북의 방송에서 전한거라고 <련합뉴스>가…》

일시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지연이 침착해지려고 애쓰며 말을 했다.

《안선생님 사모님은 설계가로서… 많은 일을 하고 지금은 공로보장으로… 년금을 받고 손자들과 함께… 그리고 맏따님, 둘째따님 다… 무슨 혁명학원 나오고… 지금은 간부로서… 아, 참 손자는 몇이라던가… 그건 그거고 안선생님의 사모님이 직접 방송에서 기다리는 심정… 만나게 될 기쁨을… 얘기했대요… 나 물을 좀…》

그는 차집에서 단숨에 달려오느라 숨이 차고 목이 마른 모양이였다. 조영미가 급히 그한테 물고뿌를 주었다.

석순과 제수가 량쪽에서 안성태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그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같이 있던 비전향장기수 세사람도 저마끔 인사를 건네여왔다.

조영미는 두눈에 눈물을 반짝이였다.

《선생님, 축하해요.… 정말 기뻐요.

석순과 제수, 조카 그리고 조영미가 한강건너 서울시내로 들어갔다.

비전향장기수들은 9 1일 저녁까지 북악호텔에 모이기로 되였다. 어쨌든 9 2일 아침에는 가족친척들이 거기서 바래움을 해야 하는것이다.

조영미는 서울시내로 가면서 오늘 다시 오겠다고 했다.

《오순희 있지 않아요?

《그래서?

《오순희와도 만나기로 했어요. 함께 오자고. 아마 그한테 방소희가 와있을지도 몰라요.

《방소희도?

《네.

《모두 만나게 되니 정말 기뻐. 다 만나야지, 다 만나야지.

방소희는 대전근방의 수녀원에 있고 오순희는 여전히 전태일렬사가 있던 피복공장에서 녀성활동가라는것이다.

조영미는 제가 들고 온 가방을 열고 울산에서 보내는 수예품, 돌돌 말아넣은 족자, 여러가지 기념품들을 꺼내놓았다.

《청년회》성원들이 자기들의 사진들을 각기 오려붙인 액자의 아래에는 이렇게 씌여져있었다.

《통일을 기다리는만큼 선생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조영미는 마지막으로 꽤 두툼한 편지봉투를 꺼내놓았다.

그는 서둘러 변명하듯 말했다.

《언제 조용할 시간 없을것 같아 이렇게 썼어요. 여기다 송별사겸 제가 하고픈 말 적었으니…》

그리고는 래일 오마고 하고는 떠나갔다.

사실 오늘도 조용한 시간이 없었다.

《범민련》에서 네명의 인사가 왔다갔고 《말》지 기자 두명이 많은 시간을 앗아갔다. 《민가협》성원들도 왔고 또 누구네는 기어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안성태를 관악산에까지 데리고 올라갔다. 그날 하루에 찍은 사진만 해도 수십장이였다.

다른 세명의 비전향장기수들한테도 그들대로의 인연과 연고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래서 《한백의 집》만으로는 좁아서 차집으로, 야외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안성태는 뭐니뭐니 해도 조영미와 헤여지는것이 제일 서운했다.

그날이 바로 8 31일이였다.

낮시간에는 차집에 가서 리상규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돌아왔다.

그다음 시간은 두시간씩 일정을 짜서 가능한 그 순서를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다나니 조영미가 오순희, 방소희를 데리고 온다고 해도 만나는 시간이 밤 1012시까지로 되여야 했다. 흥분과 감격, 석별의 정, 다시 만나야 한다는 약속과 다짐, 그러다가도 지난날의 어둠을 헤치고 찾아내서 다시한번 눈물겹게 돌이켜보는 추억의 갈피들도 있었다.

저녁을 먹은 다음에야 30분 남짓한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안성태는 영미가 주고 간, 풀로 붙이지 않은 봉투에서 송별사를 꺼내 펼치였다.

글씨가 활자처럼 또렷또렷했다.

성태는 거침없이 읽어내려갔다.

 

선생님.

북으로 가신다니 기쁘기 한량없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섭섭한 마음을 누를길 없습니다.

가신다니 가시면 언제 만날지.

오늘의 석별이 우리 겨레의 크나큰 만남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가지며 저를 위안할뿐입니다.

그간 선생님은 울산에 다섯차례나 오셨습니다. 그때마다 따로 하고싶었던 얘기가 많았지만 터놓지 못했습니다. 이제 막상 헤여진다고 생각하면 더는 묻어둘수 없고 또 이제 서울에 가서 만나면 눈물부터 앞서 얘기를 못할것 같아 송별사 겸 편지로 저의 심정을 적으려고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도 저한테 친아버지가 있었다는것을 아실겁니다. 석순아지미를 통해 저의 엄마와 그가 어떻게 돼서 헤여졌는지도 들었으리라고 봅니다. 제가 다섯살때였으니 원래 저한테 아버지에 대한 정이란 없었습니다. 그가 출세와 영달을 위해 나를 호적등본에서 그어버리기까지 했을 때는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대전《교정청》에 있으면서 선생님을 직접 박해하던 시기였습니다.(방소희가 알려주었습니다.)

2년전 7, 선생님한테 《준법서약서》를 씌우려고 우에서 검사가 내려왔을 때 그 자리에 참가한 두사람의 립회인중의 한사람이 바로 나의 아버지인 조민하라는 사람이였습니다.

 

성태는 놀라며 편지에서 눈을 떼고 방안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두눈을 감았다. 그때의 일이 너무나도 생생하였다.

(그렇지. 담당교회사와 나란히 한쪽에 앉아있던 신사, 여름인데도 넥타이를 매고 앉았다가 나중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져 소동을 피우던 그자였구나. 무더운 여름날에 있을수 있는 뇌졸증증상으로 알았댔는데… 그러니 그게 아니였구나. 그가 바로 막후에 숨어있던 악랄한 적수들중 한놈인 조민하였단 말인가.)

성태는 다시 편지에 눈길을 박았다.

 

…참으로 운명의 희롱이란 얼마나 얄궂은것입니까. 그무렵, 저는 《령남위》사건으로 구속되였는데 《불기소처분》으로 나와서야 모든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저는 통탄하지도 서러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그와 결별했으니 마음은 평온했습니다. 다만 선생님을 마지막까지 고통스럽게 한 그것이 가슴아팠을뿐입니다.

한가지 더 선생님께 솔직히 터놓고싶습니다.

그후 조민하는 정년퇴직에 들어갔으나 마약중독에 걸린 후처가 죽자 고독한 몸으로 양로원에 갔습니다.

돈으로 권력의 하수인, 법의 시녀로 둔갑해서 일생토록 사람들을 괴롭힌 그의 지난날이 인차 드러났습니다. 그 양로원에 장기수 한분이 있었는데 분노해서 칼까지 빼들었다고 합니다. 혼겁해서 거기에서 나온 그는 집도 주인도 없는 들개처럼 여기저기로 다니다가 처음 들어갔던 양로원과는 거리가 먼 다른 양로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얼마전이였습니다. 교구의 신부가 저한테 찾아왔습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아버지가 있는가고, 그래서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전후사연을 그한테 얘기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한숨을 짓더니 아버지가 있는 그곳의 신부가 나를 찾는다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때문에 찾는다면 갈수 없노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말하기를 그곳 신부가 이미 《하느님》의 이름으로 죄많은 그의 한생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림종에 처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신부님은 죽음을 앞둔 시각이니 그를 용서해줄수 있지 않느냐는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니 림종의 순간을 외면할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리로 갔습니다. 심한 뇌출혈을 만난 조민하는 입술이 움직움직했으나 말을 못했고 손도 내 손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의 눈귀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 눈물이 무엇인지 나는 모릅니다. 순결한 눈물, 자책과 후회의 눈물은 아닐것입니다. 모든것을 잃어버린 속된자의 눈물일것입니다.

나는 가슴이 랭랭해질뿐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거기서 나오자 곧 그가 숨졌다고 합니다. 신부가 내곁을 지나며 중얼거렸습니다. 《오, 주여, 그에게 안식을 주옵소서.》 방안에서 외우던 그 말을 그냥 반복하는것이였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송별사를 쓴다는것이 이렇게 되고말았습니다.

선생님, 선생님들을 괴롭히던 그 무리들이 아직도 살아있다는것을 알으셔야 합니다. 그 무리들과는 우리가 맞서야 할것입니다.

저는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선생님과의 인연에 대해 돌이켜보게 됩니다.

선생님이 떠나는 이 시각, 이 글 쓰기에 앞서 어제 밤에는 10여년전에 선생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글들을 모두 읽었습니다. 저도 잊고 살았던 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씀과 생각들이 그때 저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미쳤음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인연에 대한 끈질긴 애정과 집착, 비록 갇혀있는 몸이지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발하고 련마하는 자신에 대한 철저함, 련애와 결혼문제에 대한 적극성,(좋은 사람 알게 해주셔서 저를 구원해주신거나 같습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많은 조언과 고민을 해주시는 사려깊음… 인간으로서 가질수 있는 고귀한 모습을 모두 보여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보내신 편지를 처음 받던 그날, 그날 감격하고 흥분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는 제가 몹시 힘들어하던 시기였음을 선생님께서도 이미 알고계시는바입니다. 량심만은 지키고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장기수, 량심수로서의 선생님을 찾게 된것입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의 가까이에서도 굴하지 않고 몇십년의 고초를 마다하지 않으신분들을 가까이하며 제 삶의 기준을 찾고자 했던것을 다시금 돌이켜봅니다.

선생님으로 인해 사람에 대한 사랑을 다시 배우게 되였습니다. 수십년간 철창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그 사랑이야말로 선생님께서 지니신 신념의 바탕이고 밑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저는 대중사업에서 좌충우돌,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변혁운동의 최전선에서 물러서지 않았다는 자부만은 변함없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신 선생님께서는 믿음도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고 마침내는 저한테 활로를 열어주시였습니다.

울산행을 권고하신 선생님의 뜻은 개인적으로나 운동선상으로나 저한테 행운을 마련하신것입니다. 선생님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여 저를 울산으로 보내신것입니다.

쓰다보니 저에 대한 얘기가 너무 많아졌습니다. 선생님과 헤여지는 마지막에 선생님께 제 마음을 전하면서 진솔하게 제 얘기를 드리면서 형식적이 아닌 편지로 되게 하려는것인데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더 부담스럽게 해드리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선생님, 오랜 생활 정말 너무도 고생많으셨습니다. 이제 이남사회의 통일운동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인것 같습니다.

어제는 울산동구에서 한 선배님이 《국정원》에 련행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미 몇명이 련행된 상태였고 또 몇명을 잡아들이겠다고 하고있습니다. 《민혁당》사건을 이곳에까지 와서 다시한번 터뜨리려는 의도라는 말까지 있더군요.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런 통일의 기운을 꺾고 예전의 랭전시기로 시계를 꺼꾸로 돌리려는 무리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통일로 이르는 길에 험난한 고비도 많고 싸워야 할 대상도 도처에 도사리고있지만 저와 일민이 아버지뿐만아니라 많은 활동가들이 선생님의 그 모습을 생각하며 끝까지 싸워 승리할것입니다.

일민이 아버지도 말했고 저 또한 그렇다고 대답했었습니다. 선생님으로부터 많은것 배웠다고…

민중에 대한 헌신성, 사람에 대한 사랑, 동지에 대한 믿음과 의리, 끊임없이 변화발전하려는 치렬한 삶의 모습, 열정… 아무리 좋은 말로 표현하려 해도 도저히 표현되여지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리고 지쳐 주저앉고싶은 마음이 들 때 선생님을 생각하겠습니다.

선생님! 뭐니뭐니 해도 선생님의 38년은 저한테 가르치고있습니다. 신념이란 투쟁속에서만 굳세여진다는것, 투쟁이 없는 신념이란 있을수 없다는것입니다. 신념이란 동면하면서 때를 기다리는것도 아니고 앉아서 버티면서 견디여내는 그런것도 아닙니다. 부단한 투쟁이 없이는 신념에 금이 가고 녹이 쓸고, 종당에는 마음의 기둥이 허물어지지 않겠습니까. 선생님은 어둠속에서, 철창속에서 한시도 쉬임없이 싸우고 싸우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신념과 의지는 강철처럼 벼리여졌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생님이 저희들에게 주시는 가장 빛나는 모범이고 삶의 표본이라고 봅니다.

선생님, 저는 아버지라는 친근한 부름을 불러보지 못하고 자라온 사람입니다. 선생님은 일민이 아버지한테도 그렇고 저한테도 그렇고 말그대로 아버지입니다.

선생님, 철창속에서 지내신 선생님의 38년은 어둠속에 묻히지도 않았고 세월속에 속절없이 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력사에 파묻혀 망각될수도 없습니다. 구태여 파헤치지 않아도 자랑스레 떠오르는것이고 눈우에 찍혔다 사라지는, 눈이 녹으면 없어지는 그런 발자국자리가 아닙니다. 장기수분들의 굴하지 않는 삶으로 하여 우리의 민족사는 더 무거워지고 빛나게 되였습니다.

통일성업을 우리 《통일세대》에게 맡기시고 편히 쉬시옵기를! 건강하세요.

2000 8 28

영미 드립니다.

 

※ 일민이 아버지가 선생님을 배웅해드리지 못함을 감방속에서도 몹시 서운해하면서 자기의 몫까지 뜨거운 정을 함께 나누어 달라고 했습니다.

 

(영미, 송별사라고 하지 말자… 송별사, 헤여지는 의미보다 다시 만나게 되는, 또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의미가 더 많구나…

…우리에게는 송별이요, 리별이 있을수 없어. 시간나름이지. 우린 기어이 다시 만나 함께 살아야 하능기라…)

안성태는 그 종이장우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못다 쓴 사연이, 아니 앞으로 써야 할 사연이 거기에 한가득 넘치는것만 같다.

황영호한테 다시 면회를 못 가는것이 못내 서운했으나 지금 이 시각 철창속에서 그가 마음으로 석별의 정을 보내는것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서운한 생각이 덜어지는것 같았다.

 

 

4

 

 

저녁무렵에 녀대학생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한 장기수가 운영하는 헌 책방에 자주 다니던 대학생들이다.

별로 긴요하지 않은 책도 다른 곳에서 구할수 있는 책도 일부러 와서 사가면서 거스름따위는 받을 생각도 안했고 늘 책값의 명분으로 지원금을 보태주고 가던 그들이다. 저마다 음식들을 해가지고 왔다. 네분한테 영양보충만큼 더 요긴한 일은 없다고 여겨오던 그들이다. 지금도 제나름으로 성의를 다해 준비해왔다. 간단한 오락회를 가지였다. 낮에 이어 송별모임은 밤에도 끊임없이 계속되는것이다.

거기에 참가하고나서 한시간가량 안성태는 다른 방에서 자기를 수양아버지로 따르던 녀류소설가의 가족들과 만났다. 그의 동생과 어머니가 왔다. 아버지도 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싸우다가 병고로 돌아가신 량심적인 의사였다.

그들이 가자 또 다른 패가 왔다.

《한백교회》의 신도들이였다. 《통일신앙》을 믿는다는 그들은 무척 조용히, 그러면서도 뜨겁게 석별의 정을 나누고 갔다.

반지하실은 어쨌든 칸수로는 네칸이였다. 그들이 반지하실의 층계를 따라 밖으로 나가는데 그들과 어기면서 얼굴에 한껏 밝은 미소를 띠운 영미가 들어섰다.

안성태는 출입문가에서 영미를 맞았다. 엊저녁이 아니라 지금에야 처음 만나는것처럼 영미의 손을 반갑게 잡았다.

《그런데 방소희, 오순희들은?

안성태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은채 물었다.

《이제 곧 올거예요. 둘이서 선물을 마련한다고 좀 뒤늦게 온다고 했어요. 주소 적어주고 략도까지 그려주었으니 여길 인차 찾을거예요. 그리고 방소희가 <민가협>의 주선으로 차를 냈으니 늦어서라도 둘이 차타고 올거예요.

《아, 그래그래.

둘은 침대처럼 만들어놓은 평상우에 나란히 앉았다. 이 시각이 지나면 자기들 두사람만이 조용히 앉아 작별할 짬도 없을것이였다.

영미는 송별사에 다 썼지만 하고싶은 이야기는 여전히 가슴에 차넘치는듯… 할말이 많으면 오히려 말을 못하게 되는것이 사람의 상정인가보다.

그들은 말없이 앉아있었다.

영미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 항상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리지적인 성미인 그가 안성태를 바래우는 이 시각에는 더욱 그러한것이다. 영미는 머리를 안성태의 어깨에 기대였다. 침묵이 흘렀다.

그때 저쪽방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안성태는 일어나서 문가에서 방소희와 오순희를 맞았다.

둘 다 반절을 하며 저마끔 인사를 건네여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순희의 인사였다.

방소희가 주저없이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오늘에야 찾아뵙는걸,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헤여질 때 정말 실례가 많았어요… 그땐 정말 제정신이 아니였댔으니까요.

《됐어, 됐어. 다 지나간 일인데… 듣자니 지금 일을 많이 한다하더군.

성태는 방소희의 손을 쥐고 흔들었다.

방소희는 말했다.

《다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선생님들에게 이끌리여 하는 일들이지요.

방소희는 인생의 상처가 어딘가 눈시울밑의 그늘에 숨겨져있는듯 했으나 오늘에는 얼굴에 환히 피여오르는 미소가 그 모든것을 지워버리고있었다. 행동거지는 오히려 활달해진것 같았다. 수녀원에서 해보려는 고아원설립을 주관한다니 자연히 일에 몰두할수 있어서 그런지는 몰랐다. 게다가 《민가협》회원이라고 했었지.

오순희는 처음으로 만난다. 키는 셋중에서 그중 작은편이지만 오달지게 생긴 얼굴, 방소희처럼 회릿한 몸매가 아닌 탄력있는 체구였다. 영미처럼 미인형은 아니지만 남자들이 흔히 말하는 매력이 강한 그런 녀성이다.

이런 그가 왜 결혼을 하지 않는가. 영미가 말한것처럼 광주사태때 녀동생이 《계엄군》한테 참살을 당하고 오빠도 손에 총을 잡은채 도청앞에서 싸우다 중상당해 《계엄군》의 죽창에 배를 갈리웠다는 그 원한때문에, 형제들한테 죄를 짓는것만 같아서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그 가슴아픈 사연을 안고 온 오순희… 그래서 안성태는 무작정 오순희를 딸처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들은 네모반을 놓고 거기에 둘러앉았다.

상우에는 약간의 다과가 놓였다.

서로 알게 된 지난날을 거슬러오르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떠나는 사람, 보내는 사람모두가 즐거운 추억만을 찾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자주 어두운 감옥속으로 뻗치였고 때로는 반통일세력들의 준동을 분개하는데로 나갔다.

침착하면서도 내성적인 조영미가 화제를 잘 조절해나갔다. 하지만 오순희는 열정적인 성미이면서 무척 솔직했다.

《선생님, 전 어느 당에라도 들어가려 했어요. 한데 망설여져요. , 이런 정치얘기 하지 말자고 했는데…》

《괜찮아, 괜찮아.

안성태가 머리를 끄덕여보이며 부추겼으나 오순희는 다른 말을 꺼내려고 한다.

하지만 이때 방소희가 나무람하듯 한마디 했다.

<민주로총>도 통일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낯을 돌려야 해. 안 그래? 로조활동가 오순희선생.

그들은 서로 허물없이 시까스를수 있는 사이이고 무슨 말이든 타내지 않는 한고향내기, 고등학교 동창동기생이 아니던가.

《영미, 너도 그렇게 생각해?

오순희가 영미의 얼굴을 보자 영미는 웃을뿐 도리여 안성태를 바라본다.

안성태는 웃었다. 가슴이 뜨거워오른다.

안성태보기에도 이들은 결코 《나약한자여, 너의 이름은 녀성이로다.》 하는 쉑스피어가 말하던 그런 녀성들이 아니였다.

남자들의 몫까지 다 맡아하는, 녀성도 남성도 다 초월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 이들은 《통일성인》, 《통일사도》, 《통일전사》들이다. 이들이 바로 자기가 남기고 가는 사람들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싶었다. 영미가 안성태에게 주자던 일민의 사진을 꺼냈다.

오순희와 방소희가 둘이 빼앗다싶이 하다가 같이 들여다보았다.

《아유, 잘 생겼네. 누굴 닮았어?

《아버지를 닮았겠지.

그러면서 엄마들은 아이가 아버지를 닮았다고 해야 좋아한다는둥, 그래도 영미를 닮아야 더 미남자로 될것이라는둥… 이때야말로 순수한 녀자들로 되돌아온듯 싶다.

영미가 행복한 웃음을 웃다가 한마디 했다.

《순희, 시샘이 나지 않아?

《그럼 이제라도 시집가볼가? 이런 아들 가능할가?》 하면서 제풀에 호들갑스럽게 웃다가 채머리를 떨었다.

《아니야, 아니야. 나한테는 맞지 않아. 난 일생 독신주의자야.》 하고는 시무룩이 웃었다.

그런데 방소희가 조용히 한마디 곁들었다.

《내 한가지 안을 내놓을테니 들어봐.

영미와 순희는 이제 40대에 들어설 나이인데도 방소희의 말에 계집애들처럼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뭐야? ?》 하면서 어서 말하라고 하였다.

《일민이는 우리 셋이서 함께 키우자는거야. 말하자면 우린 <공동어머니>가 되지.

《옳아, 그것 참 좋겠어. 양육과 교양, 결혼까지도 우리가 함께 맡자.

그런데 영미는 웃으면서 머리를 살래살래 저었다.

《아니야, 일민은 내 아들이야.

오순희가 앉은채 두손을 넌떡 허리에 찔렀다.

《워매, 이 경상도문둥이 볼가나… 저마끔 아들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리혼남, 리혼녀들 같구나.

그러나 오순희는 어른스럽게 영미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이보라구, 우린 그 애를 안선생님이 바라시는 그런 애로 키우자는거야. 그건 함께 키워야 하는 일이야. 안 그래?

그 말에는 영미도 대답을 못했다.

방소희가 두손을 탁 마주치며 《그저 순희한테는 꼼짝 못해. 이 드살군한테 영미는 안돼.》 하고 웃었다.

12시가 되였다. 그러니 벌써 새날이 시작된다.

세 녀자는 근처의 려인숙으로 갔다.

아침밥은 자기들이 와서 짓겠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북악호텔까지 따라가며 가능하면 판문점까지 가겠다는것이였다.

그날 밤, 네사람의 비전향장기수들은 《한백의 집》에서 잠들수가 없었다. 다같이 몇십년의 감옥살이를 했어도 저저마다 전혀 다른 체험이 있고 서로의 인연과 곡절 또한 모두가 달랐다.

안성태는 《민가협》에서 가져온 트렁크에 각 단체와 고마운 사람들이 주는 기념품들을 챙겨넣었고 사품들도 정리했다. 감옥에서 가지고 나온 책들, 257》페지마다 동그라미로 특별히 표식한 책들도 넣었다. 그리고 조용순동지가 옥사하기 전까지 반신불수의 몸으로 왼손에 들고 사용한 희끄무레한 수지숟가락, 끝이 부러진 그 숟가락도 종이에 싸서 넣었다… 90 1,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때로는 왼손에 이 수지숟가락을 든채 미소를 띠우던 조용순동지의 그 창백한 얼굴이 눈물속에 어려온다.

그다음 성태는 《치솔대》를 꺼내 트렁크에 넣으려고 했다. 그는 뒤쪽에 만든 《뚜껑》을 열고 그안에서 두대의 침을 빼냈다. 그리고 침대 하나를 들고 치솔대안에서 붉은 실몽그러미를 꺼내놓았다. 그는 한참이나 손바닥우에 놓인 실몽그러미를 들여다보았다.

전윤국동지의 피방울에 젖은 붉은 실몽그러미를 38년동안이나 간직할수 있었다는것이 이제 와서는 스스로도 그것이 하나의 큰 기적으로 생각되였다.

정대철동지가 60미리 못으로 만든 이 침대를 들고 침술을 익히면서 처음으로 찔렀던 침혈인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사이의 《합곡》, 몇해전에야 검푸른 반점이 없어진 그 자리에 침을 꽂아 보았다. 아프지 않았다. 결코 아플수가 없었다. 정대철의 넋이 피가 되고 신경이 되여 팔을 따라오르면서 온몸에 뜨거운 열기를 더해주는것만 같아 그는 침을 꽂은 상태에서 눈을 감고 한참 앉아 있었다.

안성태는 새벽 4시경에 밖으로 나왔다. 사위에 어둠이 엷어져 가고있었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길거리는 조용하다. 도로청소를 하던 그 길을 따라 관악산쪽으로 걸어갔다. 800메터쯤 가면 관악산기슭이다.

길가에 걸린 의원집의 간판이 알릴락말락 보인다. 성태가 《무상침술의 날》을 정하고 《한백의 집》에 찾아오는 환자들한테 침을 놔줄 때 또 여느날에도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올 때 이 집 의원령감이 노여워했다는 말이 생각나서 성태는 히죽이 웃었다.

(잘 있으소. 의원령감님, 당신의 생계에 내가 조금이라도 지장을 주었다면 용서하시소…)

해발 630여메터의 관악산, 이 근방에서 제일 높아 꼭대기에 오르면 한강너머 서울시가도 다 보인다. 그러나 성태는 지금 서울과 반대되는쪽 산중턱의 공원길에 서있다. 산꼭대기의 염주암 암자까지는 어둠과 숲에 가리워져있다.

성태는 동쪽을 향해 돌아섰다. 멀리 새벽빛이 희붐히 밝아왔다. 그는 남쪽과 서쪽의 하늘을 둘러보았다. 새벽빛을 등진 거기는 여전히 캄캄한 어둠에 잠겨있었다.

산지사방에 널린 동지들의 령혼이 살아 별들이 되였는지. , 별들만 저렇게 깜빡이고있구나.

전윤국, 《당과 조국을 위해 끝까지 충실하겠음》이라고 쓴 피에 물든 유언의 글자, 피가 스며있는 그 붉은 실몽그러미는 내가 간직하고 간다.

정대철, 다도해기슭에 묻힌 그의 무덤앞에서 다시한번 작별을 고하지 못했다. 그가 만들어준 그 침 한개도 나는 가지고 간다. 그가 지닌 동지애의 결정체인듯 한 그 침은 그대로 그의 넋이다.

저기 저 별은 지리산의 용사 송기만의 눈빛이 아니던가. 그렇듯 안타까이 병보석을 꿈꾸던 그를 오해했던 그 죄스러움이 몇십년이 지난 이 밤에 다시금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의 안해는? 남들이 《불륜의 자식》이라고 오해하던 그 전우의 아들은 지금 몇살이겠는가? 89년에 송기만은 출옥하자 얼마 안 가서 세상을 떠났지만 사람들앞에서 자기 안해의 순결과 절개를 증명할수 있었다고 한다.

생각나는 전우들은 너무나도 많다. 김규호, 조용순… 아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았다. 저기 저 별들처럼 살아있다. 그들의 넋은 흙속에 묻힐수도 없다. 망각속에 사라질수도 없다. 이 남녘땅 어디에나 그들의 넋이 깃들어있다. 어찌 그 뜻이 헛되다고 말할수 있으랴.

, 별… 끝없이 흐르는 별무리… 웃으면서 사형장으로 나가던 황태성동지의 미소도 저기에 있다.

문득 저기 남쪽하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선대를 이어 우리가 여기서 싸울것입니다.

그것은 황태성의 피줄을 이은 황영호의 음성이 분명하다.

동쪽하늘가에서 피여오르는 새벽빛은 시시각각으로 빨리도 온 하늘을 밝게 비치기 시작한다. 서쪽의 어둠도 밀리면서 급기야 어디론가 황급히 사라져가는듯.

성태는 새벽공기를 가슴깊이 들이켰다.

아침이다. 그 언젠가는 통일의 날도 이렇게 아침으로부터 시작될것이다. 정녕 통일의 아침이 지금처럼 이렇게 밝아오리라. 그는 천천히 그러면서도 힘있는 걸음으로 관악산기슭을 내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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