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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사형수의 유언
이름을 뺏기고 번호로만 남은 사람들 … 그들은 우리들중 가장 뜨거웠던 사람들 그래서 지금 차거운 감방에 산다…
-남조선의 한 녀류시인이 쓴 서정시에서-
1
밤이였다. 벌거우리한 전등이 벽과 천정이 맞닿은 곳에 걸려있었다. 두 감방사이의 콩크리트벽체에 구멍을 뚫어 량쪽을 비치게 매달은 전등, 차라리 전등을 껐으면 어둠속에서 이내 잠들수 있으련만… 허나 전등은 꺼주지 않는다. 간수들은 복도 어디선가 전등을 끄고 앉아 졸고있을것이다. 벌써 새까만 어둠을 못 본지도 퍼그나 오래다. 밤에 호출하거나 수인차에 태워 어디로 호송해가는 일이 없어 어둠을 볼수 없기때문이다. (저 천정가에서 비치는 전등이 오늘따라 더 얄밉다. 개자식들, 탈옥할가봐 그리두 겁나는게지… 겨우 자리에 올라앉은 새 《대통령》이 이젠 정치범들과 해볼테지. 나한테 1심을 내린지 벌써 얼마야? 1심 사형, 2심 무기… 3심을 이제껏 끌더니 더는 끌지 않겠지…) 그동안 《대통령》감투싸움이 벌어져서인지 검찰청이 정치범들을 속결처분하지 않은것 같았다. 머리속에서 온갖 상념들이 맥락없이 이어진다. 안성태는 솜이 밀린 자그마한 헌 이불로 몸을 감으려고 했으나 아무리 애써도 왼쪽옆구리가 자꾸 열리면서 사정없이 몸이 얼어 들었다. 원래는 깔지 않고 맨 마루바닥에 누워자라는것이다. 그러면 온몸이 랭기에 더 못 견디게 추운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헌 이불을 한쪽 귀퉁이라도 깔수 없다는것이 감옥규정이다. 허리를 꼬부리고 새우잠을 잘래도 이불이란 그저 명색뿐이여서 잠을 들수가 없기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전등불빛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너무 추워서 잠이 오지 않는것이다. 성태는 무슨 말인지 웅얼대다가 저도 모르게 얼풋이 잠이 들었다. 대중할수 없는 어떤 꿈속을 방황하던 그는 문따는 요란한 소리때문인지 잠에서 깨여났다. 눈을 뜨니 전등불빛은 없고 날이 희부옇게 밝은 뒤였다. 문가에 간수가 떡 뻗치고 서있다. 《일어낫!… 넌 뭐야? 늦잠을 자면서… 네가 누굴 욕했는지 알아, 새 <대통령>을 그렇게 욕하면 돼? 생각나지?》 그자는 《생각 안납니다.》 하는 말을 기대했었는데 뜻밖에도 안성태가 《생각나오.》 하자 《뭐야?》 하고는 수인복괴춤을 두손으로 모아쥐고 선 안성태의 정갱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뒤로 주춤했던 안성태가 한걸음 나서며 험악한 기세를 보이자 그놈은 얼른 나가며 《탕!》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문 저쪽에서 《짜식, 가만 두지 않을테다.》 하고 두덜거리며 물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성태는 꿈에 《대통령》을 욕했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없었으나 이제 다시 묻는다 해도 그랬다고 대답할 심산이였다. 안성태는 《대통령》의 고향이 경북 선산이라는것도 이 서울구치소에 들어와서 황태성이한테서 듣고 처음으로 알았다. 품팔이군인 아버지를 따라 열살때 선산땅을 떠난 성태지만 어쨌든 태줄을 묻은 선산을 고향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황태성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도 꼭 한달이 된다. 위병이 심한 황태성은 미결감때 사식으로 들여보내준 약간의 음식도 대체로 안성태한테 주군 했다. 안성태는 그것을 먹을수가 없었다. 황태성은 창백한 얼굴에도 노상 태연한 표정이였고 오히려 안성태를 고무해주군 했다. 《안동무, 먹어야 해. 먹으면서 놈들과 끝까지 싸워야 할게 아닌가.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나를 바라보지 말게. 안동문 이제 서른네살, 나는 나이 60이 되였네. 사람이 60을 산다는것도 헐한 일이 아니야. 교통사고로 죽고 병으로 죽고 50전에, 40전에 죽는 사람도 얼마나 많나. 난 죽는게 두렵지 않아.》 황태성은 미소를 띠우다가 갑자기 눈빛이 날카로와졌다. 《단지 인생의 철리를 환갑이 돼서 깨닫게 된 그것이 아쉬울뿐이네… 정은 옛정이 좋고 옷은 새옷이 좋다는 말이 있네만 바로 옛정이란 변할수 있고 사람의 야심이 그런 옛정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을수 있다는걸 내 왜 몰랐겠나. 그러고보면 이 세상에 스승도 은인도 몰라보는 그런 야심가들이 얼마나 많았나? 사람에 대한 헛된 기대와 환상을 가졌던 그것이 원통할뿐이네.》 황태성은 우선 건강때문에 자기가 여기로 오는것을 주위에서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황태성은 바로 자기가 병약하고 나이가 들었기때문에 다 산 나이에 모험할수 있는 권리가 남보다 더 많다고 우겼던것이다.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야 자기의 제의가 실현되였다고 했다. 그는 물론 남조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여도 진심으로 통일에 관심을 가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만 리승만이와 같은 그런 반공친미분자가 아니기를 바랐을뿐이다. 통일과 민족의 앞날에 대한 견해나 들어보자던 그 작은 기대마저 허물어졌다. 그래도 황태성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의 죽음이 통일을 위해 헛되지 않을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교훈을 주게 되였기때문이라고… 윤보선이 자기의 정적이 《북의 공작원》과 접촉한다고 떠들어 댔고 미국놈들은 인천항에 정박시킨 제놈들의 배에서 밀을 하역시키지 않았다. 서울이 긴장한 식량사정으로 허덕이고있을 때였다. 작년 12월 23일 황태성이 사격훈련장에서 총살되고 그의 유골은 고향으로 내려갔다. 바로 그 이튿날에 새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황태성이 《대통령》감투싸움의 희생물로 되고 그 시신우에 《대통령》의 자리가 놓여지게 되였다는 그런 원통한 심정을 털어버릴수가 없었던 안성태는 그날 부르쥔 주먹을 콩크리트벽에 박으며 이마를 차디찬 벽에서 떼지 못했다. 그는 황태성의 령혼앞에서 눈물을 쏟으며 몇백번 다짐했다. 죽는 마지막순간까지 황태성의 원쑤를 갚으리라고, 그렇지 않고는 죽을 권리조차 없다고… 감방복도에서 간수들이 주고받는 말소리. 《에, 추워, 대한날씨가 다르군.》 《그렇지. 오늘이 대한이지.》 《얼어서 뒈진 놈 없어?》 《없다니께. 저기 15방에 있는 놈 밤새 제자리달리기를 하데. 지독한 놈들.》 《신통히 이 사동엔 독종들만 모였어.》 《태반이 사형수들이니께. 여, 각성을 높이라구. 일정때부터 이 사동엔 귀신이 붙었당께로.》 《무슨 말라빠진 귀신이야.》 《귀신도 모르게 빠져나간 놈 이 사동에 많았당게.》 《귀신도 모르다니. 그럼 귀신이 없는거지.》 《귀신이 도왔다는거란데… 젠장, 오늘은 <넥타이공장>에 몇놈이나 나가겠는지. 새 <대통령>이 빨리빨리 처분하라구 지시했다는거여. 여기가 좀 비여야 우리도 좀 땡땡이를 치겠는데.》 《어림두 없는 소리. 여기가 이제 더 차고넘칠거야.》 《뭐?》 《이제 두고보라구.》 시찰구짬으로 들리는 말소리가 멀어져갔다. 형타로 찍은 꽁보리밥 한덩이, 얼음처럼 된 보리알들을 몇알씩 넣고 될수록 천천히 씹어먹느라고 시간이 퍼그나 걸렸다. 성태는 마루바닥에 올방자를 틀고앉았다. 헌 이불때기를 깔고 앉았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했다가 들키면 간수들이 무리로 달려들어 조기군 했다. 문을 따는 소리… 문앞에는 일반수가운데서 나오는 소지 한사람이 서있었다. 소지란 절간에서 마당을 쓰는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그것이 언제부터인지 감옥용어로 되였다. 그런데 수인이 내다주는 젓갈통처럼 생긴 똥통을 운반해가느라고 문앞에서 기다리던 소지가 눈을 끔쩍하더니 웬 모포꾸레미를 안성태한테 제꺽 내미는것이였다. 성태는 얼결에 받아들었다. 낡고 허름한 카키색모포였다. 그는 의아한 눈길로 소지를 보았다. 소지는 입가에 손가락을 세워보이더니 일부러 큰소리로 《빨리 통을 내오시유.》 하더니만 급히 몸을 수그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3방 3515번 보내는거유.》 안성태는 모포를 헌 이불뒤에 감춰놓고는 똥통을 들어내가지고 소지한테 왔다. 소지는 그것을 받아들고 가버렸다. 이제 빈통을 가져올것이다. 문이 닫기자 성태는 급히 헌 이불뒤에서 허름한 그 모포를 들어 부둥켜안았다. 3515번… 전윤국동지. 오늘 사형장에 나가는게 아닌가?… 성태는 다른 감방에서 얼마간 전윤국이와 함께 있은적 있었다. 고향도 출신도 딱히 알새가 없었다. 하지만 통일투쟁의 한길에 나선 동지라는것으로 혈육의 정을 뜨겁게 느끼군 했었다. 전윤국은 자기가 사형수라는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때로는 입속으로 민요곡조를 흥얼대며 아주 작은 못으로 꺾어진 치솔대우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새기군 하였다. 그가 그것을 추켜들어보라고 했을 때 안성태는 거기에 무엇이 새겨있는지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찬찬히 보니 두 남녀가 입을 맞추는 모습인데 얼마나 신통한지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제야 전윤국이도 히죽이 웃었다. 광대뼈가 솟은 창백한 얼굴에 미소조차 창백하다. 하지만 그 미소속에 흐르는 따뜻한 그 무엇… 그리고는 치솔대끝을 다듬어 귀지개로 만들던 전윤국이였다. 그것은 심심풀이가 아니였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광적인 흥분도 아니였다. 소지나 간수들에게 그것을 주면 사형수한테서 그런걸 받으면 재수가 좋다고 신기한 보물을 건사하듯 얼른 주머니에 넣고는 대신 치약이나 치솔을 가져다주는것이다. 그러면 전윤국은 그것을 다른 감방에 있는 동지들한테 넘기군 하였다. 손가락에 소금을 묻혀 이발을 닦는둥마는둥 하는 다른 수인들에게는 이것이 아주 귀한 물건으로 되는것이였다.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동지를 위하여 자그마한 기쁨이나 도움이라도 주려고 하던 그가 기어이 간단 말인가. 원쑤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만이 아니라 동지에 대한 사랑도 함께 심장에 안은채 그가 간다는 말인가. 모포를 부여안은채 문에 와락 다가서며 시찰구에 귀를 갖다댔으나 복도는 조용했다. 모포를 두팔로 꽉 부둥켜안은채 그는 선자리에서 그냥 빙빙 돌기만 했다. 마지막인사조차 나누지 못하다니… 빈통을 가져오는 소지가 또 나타날것이고 어쩌면 교도관이 들여다볼수도 있다. 성태는 모포를 이불밑에 넣었다. 문이 열리고 소지가 빈 똥통을 내밀었다. 성태는 그것을 받으며 허리를 구부리였다. 안성태의 귀가에 대고 소지가 급히 속삭이는 목소리. 《3515번. 오늘 오전에…》 성태가 머리를 쳐들었으나 소지는 황황히 물러가고있었다. 성태의 눈앞에서 철문이 쾅 닫기였다. 젓갈통 같은 그것을 제자리에 놓고나서 뒤돌아선 안성태는 무작정 문을 쾅쾅 두드려댔다. 《뭐야?》 시찰구에 나타난 간수의 표독스런 낯판대기. 성태는 숨만 씩씩거렸다. 그의 눈찌가 어찌나 사나왔던지 놈은 시찰구를 탁 닫고는 《짜식, 오늘은 정상이 아니야.》 하고 두덜거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문을 두드리고 뒤이어 여기저기서 고함치는 소리가 났다. 성태는 주먹이 아프도록 문을 두드렸다. 간수들이 달려가는 와당탕소리… 웬일인지 조용해졌다. 성태의 눈앞에서 시찰구가 열렸다. 성태는 거기로 복도를 내다보았다. 맞은편의 방도 시찰구가 열려있었다. 성태는 복도에서 전윤국이 걸어나온다는것을 륙감으로 깨달았다. 이런 경우에 간혹 간수들은 소란을 피하느라고 사형수와 인사를 나누게 하는데 제발 소리는 내지 말라고 간청하군 한다. 쇠사슬이 절그렁거리는 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흐느낌… 드디여 전윤국이 성태의 눈앞에 나타났다. 앞수정을 찬 두손을 쳐들어보이는 전윤국… 시선이 부딪쳤다. 너무나 짧은 순간이였다. 그러나 전윤국은 뒤돌아보며 성태한테 미소를 보내주었다. 성태는 손을 내밀수도 없고 비장한 순간이라 입을 벌릴수도 없었다. 눈물속에 어룽거리는 전윤국의 최후의 미소… 성태는 머리를 끄덕일뿐… 시찰구의 문이 닫기고 복도 한끝에서 들리는, 사동에서 나가는 마지막문이 닫기는 소리… 성태는 모포꾸레미에 얼굴을 박았다. 눈물도 안 나왔다. 성태는 고개를 들고 모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퇴색하고 허름한 군용모포… 너무나 낯이 익었다. 전윤국이 황태성이한테서 물려받아 한달도 못되여 나에게 물리고 가는구나. 모포를 마루바닥에 펴놓기 시작했다. 모서리가 닳아 굵은 실밥이 터실터실 삐여졌다. 동지들이 남긴 체취를 더 오래, 더 깊이 페부속에 간직하려는듯 그는 모포를 다 펴놓았다. 그러다가 얼핏 한쪽 귀퉁이에 눈이 갔다. 그는 급히 무릎걸음으로 모포우를 기여가 거기를 들여다보았다. 바느실로 글자를 새겨넣은것이였다. 《당과 조국을 위해 끝까지 충실하겠음. 전윤국》
그날 밤 성태는 차곡차곡 가린 모포꾸레미를 가슴에 꽉 부여안고 잠들지 못했다. 대한추위에 내의도 없는 홑옷, 그는 헌 이불때기로 겨우 몸을 가리우면서도 모포를 끌어안은채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며칠이 지나 성태는 그 피의 글발을 그냥 뒀다가 검방때 탄로되면 동지의 신성한 넋이 모독될것 같아 심장에 다시한번 새겨넣고는 한자한자 실을 뽑아냈다. 붉은 실이 끊어지지 않게 뽑아서 한군데 몽그리였다. 그것은 실몽그러미가 아니였다. 피가 방울방울 모인것, 동지의 심장이 뛰는 영원한 고동인듯 그 피방울들이 여전히 살아뛰고있는듯 싶다. 성태는 수인복 앞섶의 혼솔을 약간 테고 피로 엉킨 그 실몽그러미를 밀어넣고 그 자리를 꿰매였다. 가슴이 뜨거워오르고 심장의 박동이 세차졌다. 피에 물든 그 실몽그러미가 있는 부분을 손으로 매만지였다. 죽는 마지막순간까지 이 심장우에서 동지의 피가 함께 뛸것이였다. 그후 그는 벌을 받고 고문을 당할 때 콩크리트바닥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손에 피멍이 들고 굴뱀이 돋아도 채찍이나 몽둥이가 그 실몽그러미우에 내려지지 못하게 거기를 손으로 가리우려고 갖은 신고를 다하였다. 교도관의 면전에서 갑자기 수인복을 바꾸는 경우가 있어서 미리 그것을 꺼내 따로 보관했다가 갈아입은 수인복의 앞섶에 다시 넣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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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심은 《출두공개재판》이 아니라 《서류재판》이였다. 2심은 군사《정권》시기라고 《고등군법회의》에서 하더니 3심은 민간인들의 《대법원》에서 한다는것이다. 3심에서 안성태는 《상고리유서》를 냈다. 1심재판정에서 했던 말이나 2심 《항소리유서》에 썼던것이나 꼭같은 내용을 3심 《상고리유서》에 썼다. 《…나는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위하여 싸우는 사람이다. 공화국의 통일정책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해설하려고 했다. 나는 자진하여 통일사업에 나섰다.… 나는 자신을 무죄로 선언한다.…》 2심에서 기각된것처럼 3심도 기각, 원심대로 무기형으로 확정되였다. 안성태는 놈들이 말하는 《무기형》에 《합당》한 《죄》라도 있었으면 이다지도 원통치가 않을것이다. 통일을 위해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데 잡혀서 형만 치른다는것이 조국앞에, 인민앞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하다못해 6.25전에 이 남조선땅에서 살면서 남들처럼 반미반독재민주화운동이나 좌익운동에 적극 나섰던 일이라도 있었다면 오히려 자신의 형을 가볍게 받아안았을지 모른다. 그때가 후회되였다. 머리가 좋다고, 수재라고, 학교성적이 항상 1등이라는 남들의 칭찬에 떠서 그저 향학열에만 취해서 학생시위에나 몇번 참가한적이 있을뿐 동래에서 부산시내까지 통학한다는 리유로 밤에 진행되는 독서회 같은데도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그런 투쟁이라도 있었더라면 《무기형》을 용납할수 있을것 같았다. 해놓은 일도 없이 종신형으로 세상을 마친다는것은 참으로 분하고 원통한 일이다. 갑자기 문따는 소리가 났다. 《3530번 면회!》 안성태는 일어나 문가로 걸어갔다. 한데 저쪽밖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좀 기다리게 해.》 간수가 《그럼 기다려!》 하고는 쾅 소리나게 도로 문을 닫는다. 안성태는 문앞에 그냥 서있었다. 가족밖에 면회를 허락치 않으니… 누구일가? 동생 성필이 두번이나 왔다갔지… 큰누나? 작은누나? 새삼스레 아버지, 어머니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헤여진 후 12년세월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 이 아들을 축복해주세요.》 하고 일기장에, 마음속에 쓰군 하였다. 한데 어머니는 이미 전쟁중에 너무도 일찌기 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숨졌다지 않는가. 아버지는 홀로 계시다가 55년도에 세상을 떠나고… 부자놈들의 가구재를 썰어주느라고 반원형의 큰 톱을 등에 지고 이곳저곳 품팔이를 떠나던 아버지의 구부정한 등어리가 눈앞에서 사라진적 없었다. 해빛에 예리하게 반짝이던 톱이발이 왜 그리도 눈을 찌르던지, 줄칼로 톱날을 세우던 아버지의 손… 성태가 10살 나던 해 온 식구가 아버지를 따라 부산앞에 있는 섬인 영도에 이사를 갔다. 부모와 6남매, 게다가 홀로 계신 할아버지와 단칸방에서 살아야 했다. 함석지붕이여서 여름에 화독처럼 덥던 집안… 14살에 일본놈한테 끌려가 대구 평창제사공장에서 일하던 큰누나. 그도 인제는 40이 훨씬 지났을것이다. 어느때인가 아버지와 어린 성태가 찾아갔을 때 누나가 엉엉 울던 일, 낯은 백지처럼 하얗고 손은 물에 불어 퉁퉁 부어나고… 그를 겨우 빼내와 영도통졸임공장에 입직시키던 일, 통졸임공장에서 가져온 정어리대가리와 꽁지를 넣고 시래기와 함께 끓인것을 식구들이 먹는것을 보며 큰누나한테 《네 덕을 보는구나.》 하고 기뻐하시던 어머니, 엷은 웃음이건만 그런 미소조차 성태는 어머니한테서 처음 보았었다. 그러다가도 어머니는 서울에 부엌데기로 팔려간 둘째누이를 생각하며 눈물을 지었다. 국민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겨우 졸업한 성태는 너무 어려서 소년공으로도 어데 취직할수가 없었다. 그무렵 맏형은 일본놈들의 징병에 끌려 멀리 남태평양으로 갔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간청에 못이겨 성태를 데리고 동래에 갔다. 거기에는 성태의 6촌누나가 살고있었다. 건축청부업을 하는 매부가 기와집을 쓰고 밥술이나 먹으면서 지냈는데 그때 그 집에는 《경성제대》에 다니는 아들이 페결핵치료로 와있었다. 그가 성태의 《두뇌》를 아까와하며 《저 어린애를 어떻게 일시키겠는가.》하면서 자기 아버지한테 도움을 주자고 간청을 했다. 6촌매부는 한숨을 쉬다가 병으로 앓아누운 제 아들의 소망을 차마 거절 못하겠는지 약간의 돈을 내놓겠다고 했다. 성태는 《영도국민학교》의 2년제고등과에 입학하였다. 졸업때 전교적으로 성적이 1등이여서 《도지사상》을 받았다. 그랬으나 상급학교에 갈 처지가 못되였다. 학부형회 회장이던 《금융조합》 리사가 동정해서 17살의 성태를 하급직원으로 취직시켜주었다. 일본놈들이 망해도 형은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부산조선소에 목공으로 들어갔다. 집안살림은 여전히 펴이지 못했다. 그해 1월 성태는 제1상업학교 모집광고를 보고 부모 몰래 입학원서를 냈다. 한데 뜻밖에도 학교에서는 성태가 너무나 성적이 좋아 2학년에 편입시켜주겠다고 하였다. 입학식날 부모를 데려와야겠으나 성태는 집에 와서 감히 말도 꺼내지 못하고 랭가슴만 앓았다. 겨우 누나를 통해 말해보았으나 아버지는 펄쩍 뛰였다. 또다시 동래의 6촌매부를 찾아갔으나 거절당했다. 페결핵으로 앓던 그 동정심많은 대학생아들은 이미 죽은 뒤였다. 학교에 다닐 길은 막혀버렸다. 성태는 어머니를 조르면서 입학식에만이라도 참가해달라고 했다. 학교에 간 어머니는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것도 아니면서 무턱대고 입학금을 이제 내겠다고 바쁜 고비를 굼때는 말을 했다. 암만 생각해도 무슨 방도가 나질 일은 아니지만 아이의 간절한 소원을 다문 한두달이라도 풀어주자는 심정이였을것이다. 첫 학기에 성적이 1등을 뛰여넘어 《특대생》으로 되였다. 담임선생이 적극 뛰여다니며 성태를 학교 《판매부》에 넣어 오후에 점원노릇을 하게 했다. 거기서는 학생들의 공책과 학용품들을 팔아주었는데 일정한 보수가 성태한테 차례졌다. 오후에 3시간씩 일하면 되였다. 집은 동래에 이사를 갔다. 단칸방에 아버지가 쭉데기널로 비풍이나 가리우게 자그마하게 한칸을 덧붙여놓았다. 4학년때 성태는 밤에 잠이 들었다가도 아버지의 한숨소리에 깨여나군 하였다. 더는 학교에 다닐수 없는 형편에서 성태는 일자리나 얻을가 하여 향방없이 부산시내를 돌아다녀도 보았다. 총파업에 들어간 시내는 살벌했다. 성태는 공부를 그만두고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뛰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는 거리에서 《경남초등교원양성소》양성생모집광고를 보았다. 3개월짜리였다. 부모들의 걱정을 덜고 부모들한테서 떠나 자립하려던 성태는 양성소에 들어갔고 석달후 정교사의 자격으로 밀양군의 산골 국민학교에 갔다. 48년 봄부터 49년 봄까지 1년간 교사노릇을 했다. 거기서 그는 남북련석회의때 평양에 갔다온 어느 한 소설가가 쓴 《북조선기행》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장학금을 주면서 공부시킨다는 놀라운 사실… 세상은 넓으나넓은데 이 산골에 처박혀있다는 사실에 참을수가 없었다. 젊은 피는 다시 끓기 시작했다. 19살, 말그대로 약관의 나이다. 그는 다시 부산에 달려갔다. 동무들과 교원들의 동정으로 《경남상고》 5학년에 복교했다. 그때는 이미 《학도호국단》이 학교에서 판을 치고 군사훈련으로 좌익학생들을 괴롭혔다. 성태는 통학한다는 구실로도 점점 거기서 빠지기 힘들게 되였다. 향학열은 서울에 한번 가보고싶은 욕망과 겹쳐졌다. 《공부벌레》가 《수영미치광이》가 되였다.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전국》중고등학교 수영경기가 서울에서 있었던것이다. 거기에 가면 려비는 학교에서 대준다고 했다. 성태는 꼬박 두달동안 밤이나 낮이나 학교옆에 있는 공설운동장의 수영장에서 400메터 거리를 헤염치며 련습을 했다. 시경기에서 자유영 400메터, 1,500메터에서 각각 3등,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되였다. 부지런히 훈련한 결과 도적인 경기에서 마침내 1,500과 400에서 자유영 각각 1등이였다. 교원들과 학생들이 기적이라고들 했다. 수영이라는것을 시작해서 불과 몇달동안에 이런 성적을 낸다는것을 상상도 못했던 모양이다. 일단 무슨 일이나 직성이 풀릴 때까지 거기에 몰두하고 끝내는 목표에 도달하고야마는 기질은 그때부터 깊이 뿌리를 내렸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난생처음 경부선기차를 타보았고 서울시내를 좁다하게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전국경기에는 1,500메터 자유영에서 2등을 했다. 그까짓 2등이면 2등, 3등이면 3등, 문제는 서울구경을 했다는것이다. 서울도 그저 그렇구나. 그래서 내려와서는 밀선을 타고 일본으로 가 거기서 북조선으로 갈수 없을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친구를 통해 그럴수 있는 선을 잡았다. 그런데 거의 성사될번 했던 《밀선행》이 어떤 놈의 밀고로 마지막시각에 이루어지지 못하고말았다. 《상고》졸업때 행운이랄지 마침 서울의 《조선은행》에서 입행시험이 있었다. 남조선전역의 수백명 응시자중에서 십여명을 뽑는 그 시험에서 경남도적으로 성태와 다른 한사람 2명이 합격되자 온 학교와 동네가 《개천에서 룡났다.》고 감탄하고 부러워하고 축하했다. 자식많고 고생많던 어머니, 그냥 눈물을 거두지 못하던 그 어머니의 가슴속에도 평생 처음으로 희망이라는것이 깃들었으리… 시집올 때 가지고 왔다는 하나밖에 없는 명주치마를 뜯어 아들한테 지워보낼 이불을 만드는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그 이불거죽을 적시더니… 지금도 그 모습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성태는 추억에서 깨여났다. (내 왜 지난날로만 달려가보는가. 내가 영영 감방에 갇혀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세월이 내 머리우 어딘가 허공으로 그냥 지나고 마는가. 그래서 나한테는 돌이켜보는 과거만 있고 희망에 차서 내다볼 미래는 없어져버렸단 말인가.) 그럴수 없다. 나에게는 과거가 있고 현재도 있으며 따라서 미래도 있어야 한다. 통일투쟁에 나선 그것이 내 생애의 주추돌이고 량심인즉 기약할수 없는 무기형의 옥살이속에서도 바라보게 되는 그것이 바로 희망이 아니고 무엇인가. 고등중학교시절 물리선생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해설하면서(사실은 그때 선생도 학생들도 서로 리해 못한다는것으로 더욱 신비하게 느껴지던 그 리론이다.) 시간도 4차공간이다, 따라서 공간이 없어지면 시간도 없어진다던 말이 생각났다. 이전에는 공간이 없어져도 시간은 존재한다고 했다. 하지만 공간이 변하지 않으면 시간도 변하지 않을것만 같다. 따라서 감방안의 공간이 고정된것처럼 시간도 흐르지 않는듯이 착각을 하게 되는것이다. 그럴수가 없다. 여기서도 시간은 흐르고 생활도 흐르는것이다. 정지란 죽음이다. 무엇인가 움직임이 있고 투쟁이 있어야 한다. 끝날줄 모르는 《무기형》… 투쟁이 있을 때 앞은 그저 어둠만이 아닐것이다. 이 옥중에서도 내 인생의 력사는 계속되여야 한다.
3
문따는 소리가 나고 《면회!》를 부르는 간수의 목소리가 울렸다. 성태는 복도로 걸어나갔다. 림종의 순간에 내 이름을 불렀다는 어머니… (6남 3녀 9남매를 키워온 어머니. 락이란 언제 한번 있었던가. 그 어머니가 살아서 지금 면회에 왔다면…) 면회실의 유리칸막이 저쪽에 동생의 얼굴이 보이였다. 유리벽을 두고 서로 마주섰다. 《왔냐?… 그새 별고없었냐?》 묻는 말이 저쪽에 잘 들릴수가 없다. 동생 성필은 멍히 서만 있다. 2중칸막이를 한 유리판에 말소리가 들리게끔 손가락도 들어 가지 못할 작은 구멍들이 여라문개 나있다. 하지만 반대편 유리구멍은 몇뽐사이로 저쪽에 나있다. 서로 입을 구멍들 가까이 대면 자연히 정면으로 마주서지 못하게 된다. 성필의 목소리. 《형님, 제 처예요.》 그제야 성태는 동생옆에 서있는 젊은 녀인을 보았다. 그는 모로 몇발작 움직여 제수앞에 섰다. 유리벽때문에 목소리를 낼수 없다. 제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량쪽 무릎을 약간 꺾으며 사붓이 반절을 하였다. 동생은 말했다. 자기들이 약혼한 때에 형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이 왔다고, 자기 처의 친정에서 한사코 반대했지만 처는 결혼식을 물리지 않았다는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성태는 제수를 바라보았다. 갸름한 얼굴, 화장을 하지 않은 맑은 살갗, 연연한 눈섭과 상큼한 코, 생김새가 결곡한 성미를 말해주면서도 귀염성스럽게 생긴 새색시이다. 제수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동생이 옆구리를 가볍게 찌르자 제수는 외투깃속에서 목수건을 당겨 그 끝으로 눈물을 훔치였다. 성태는 제수한테 머리를 끄덕여 인사를 보내며 애틋한 정을 느끼였다. 자기 집 문턱을 넘어선 그 녀성한테도 자기가 큰 화를 미치게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리기도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물기에 젖은 아름다운 눈동자에서 보는것은 동정이나 위로만 아닌것 같다. 분명 기대와 리해, 격려의 심정을 보았다고 생각하니 제수한테 다시금 머리를 끄덕여 감사의 뜻을 보내지 않을수 없었다. 순간 성태는 그 녀성이 자기를 리해하고 자기를 미래에로 동반해주는것 같았다. 그래서 이 남녘민중의 한 성원을 발견한듯 싶어 옥살이가 시작되여 처음으로 가슴이 후더워지는것을 느낀다. 이 녀성앞에서 자기가 떳떳해야 한다는 마음도 굳어진다. 동생이 무슨 말인지 하려고 해서 성태는 다시 유리구멍들에 귀를 대였다. 성필이 말했다. 《이젠 어떻게 하나 건강을 유지하는데다 모든 힘을 넣으시유.》 《알았다, 알았어. 서기한테서도 그런 말 들었다.》 동생이 《국군》련대군수관 선임하사로 있을 때 같이 복무한 친구가 재판장의 서기였다. 그래서 동생은 재판이 시작되자 서기를 통해 형을 어떻게 하나 좀 감형시켜보려고 헛된 노력을 많이 했었다. 재판장의 서기는 최종심에서 무기형이 확정되자 문가에 섰다가 속삭이듯 급히 말했다. 《이젠 살았습니다. 건강이나 유지하십시오.》 그때는 그 말이 불쾌했는데 동생이 당부하는 《건강유지》라는 말에는 역시 혈육의 정이 느껴졌다. 《형님, 편지를 하겠어요. 받아주겠는지는 몰라도 이젠 감옥규정이 많이 달라진다는데, 그리구 형님두 여기 기결감에서 다른데루, 대전으로 간다는 말도…》 《그런 말 말앗!》 뒤짐을 지고 섰던 립회교도관이 꽥 고함을 질렀다. 성태는 동생옆에 다가붙어선 제수의 얼굴을 보았다. 교도관을 쏘아보는 눈빛이 새파란 불꽃을 튕기는것 같았다. 헤여지는 순간 제수는 다소 가라앉은 표정이였다. 그의 가무스레한 눈에는 시형에 대한 믿음의 빛이 력연했다. 동생한테서 오는 혈육의 정과는 다른것이라고 생각되였다. 동생은 그전날에 얽혀진 형제사이의 정때문인지 까마득히 흘러간 지난날을 불러오는듯 하지만 자신이 겪는 현재의 시련속에 불쑥 나타난 제수라는 녀성은 다른 의미 즉 이 《무기수》가 걸어갈 미지의 운명에 어떤 알지 못할 밝은 빛을 상징해주는것만 같았다. 제수의 그 고마운 마음을 저버릴수 없고 북에 두고 온 안해와 두 어린 딸애의 맑은 눈동자를 욕되게 할수 없다는 그것, 그것이 바로 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나에게 미래가 있는것이고 내가 죽지 않는 한 분명히 그것은 나의 육신에 깃들어있어야 한다. 동생이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자 제수가 슬그머니 옆구리를 다치며 말을 못하게 한다. 성태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나한테 말 못할게 뭐겠니? 어서 말해, 어서.》 동생이 제수의 얼굴을 돌아보자 제수는 고개를 숙였다. 동생이 후 한숨을 쉬더니 유리구멍에 대고 《성호가 열병으로…》하며 말을 더 못한다. 《그래서?》 성태가 급히 물었다. 《잘못됐지유.》 《뭐라구?》 《발진티브스에 걸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성태는 고개를 푹 꺾고있다가 머리를 쳐들어 천정 어딘가를 우러르며 비분을 뿜어내듯 낮고도 갈린 목소리로 《성호야…》 하고 부르짖었다. 나이 15살에 죽다니… 헤여질 때 갓난애였으니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막내동생… 구두닦이, 껌팔이, 방랑아로 떠다닌다더니… 글쎄 북에서는 발진티브스가 없어진지 언젠데 그런 열병에 걸려죽다니… 면회시간이 다되였다는 교도관의 웨침. 벌써 10분인가… 유리벽에 더욱 바싹 다가붙는 동생과 제수의 안타까운 눈길을 다시 그리고 또다시 돌아보며 면회실을 나서는 성태는 슬픔과 분노, 증오가 격발되여 걸음이 빨라졌다. 《야, 야 좀 천천히 걸어.》 뒤따르던 간수의 짜증섞인 뇌까림… 아니다. 시간도 공간도 차페되지 않았다. 심장이 고동치는 한 나라는 존재는 무의미해질수 없다. 세월이 나를 놔두고 저만 흘러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50년이든, 100년이든… 동생의 죽음을 듣고나니 슬픔이나 원통한 마음따위는 저 갈데로 내팽개치고싶었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그것, 그래서 이 지옥같은 철창속에서 육체도 정신도 곰팽이가 피지 말고 《썩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속에 불같이 타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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