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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군의 길을 함께 걸으시며
주체34(1945)년 8월 15일, 일제는 항복하였다. 온 겨레가 일일천추로 갈망하던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은 마침내 성취되였다. 나라를 빼앗긴 때로부터 40여년의 기나긴 세월, 참혹한 노예살이를 끝장낸 민족의 환호는 삼천리를 진감하였다. 항일성전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시고 조국에 개선하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10일 혁명의 참모부인 조선로동당을 창건하시고 나흘후인 10월 14일 평양시환영군중집회에서 력사적인 개선연설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개선연설에서 민주주의 새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건국사업에 적극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하시고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는 전민족이 굳게 단결하여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이 열렬한 호소는 온 나라를 애국애족의 열기로 들끓게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인 그해 11월 하순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과 함께 원동의 훈련기지를 떠나 그립던 조국으로 향하시였다. 배를 타고 해방된 조국을 찾아오시는 장군님을 제일먼저 반겨준것은 등대의 밝은 불빛이였다. 쉬임없이 번쩍이는 조국의 등대는 어서 오라 부르는듯싶었다. 어느덧 배가 선봉항을 가까이하자 일행은 기쁨에 넘쳐 환성을 터치였다. 《조국이다! 조국이 보인다!》 멀리 아침노을에 불타는 수려한 산봉우리들과 맑은 하늘, 그것은 정녕 백두광야에서 풍찬로숙하며 혈전수십만리를 헤쳐 되찾은 조국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처음으로 익히시는 그립던 조국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어리신 장군님과 어머님, 항일혁명투사들모두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붙안고 눈물속에 조국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조국에서의 뜻깊은 첫밤을 선봉(당시 웅기)에서 지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을 따라 청진에 나오시여 한달가까이 머무르시면서 함경북도일대의 공장, 기업소들과 당 및 경제, 문화기관, 학교들을 돌아보시며 들끓는 조국의 벅찬 현실을 목격하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이른새벽이였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을 앞세우시고 녀성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바다가를 찾으시였다. 동해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백두의 설한풍을 헤치는 그 간고한 시련속에서 녀투사들이 조국땅을 얼마나 그리워했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계시는 어머님께서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해돋이구경을 조직하시였던것이다. 이윽고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은 빛으로 뒤덮였다. 온 수평선이 분출하는 용암과도 같이 끓어번지더니 찬란한 태양이 솟아올랐다. 모두의 마음은 해솟는 바다처럼 설레였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조국의 해돋이의 황홀한 정경은 새 조선의 아름다운 모습그대로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막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시며 여무진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어머니, 난 크면 조선을 태양의 나라로 만들겠어요.》 장군님께서는 해돋이를 보시면서 그것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가 아니라 아버지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조국의 벅찬 새 모습으로 보시며 조선을 아버지장군님의 나라, 태양의 나라로 빛내여나갈것을 다짐하시는것이였다. 어리신 장군님의 그 포부와 결심이 정말 장하였다. 이날 어리신 장군님의 웅지를 깊이 느끼시며 태양의 위업이 대를 이어 빛날 조선의 미래를 그려보시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는 해솟는 조국의 동해바다가에 다음과 같은 뜻깊은 시를 남기시였다.
동해의 해돋이 바라보니 내 가슴 바다처럼 설레이네 태양이 제일먼저 솟아 빛나는 조선아
해방된 이 강산에 해빛 찬란하니 내 20년세월 그리던 조국의 품 백두광명성 안고 돌아온 기쁨 끝없어
아, 조선아 영원히 떨치라 광명성 빛나는 태양의 나라로
동해의 장쾌한 해돋이를 맞으시며 가슴에 큰뜻을 품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머님과 함께 좌석도 없는 유개화차를 타시고 12월 22일 평양을 향해 청진을 떠나시였다. 12월 24일 김정숙어머님께서는 해방된 조국에서의 첫 생신날을 굼뜨게 달리는 렬차에서 보내시였다. 덜커덩거리는 차바퀴소리, 난로가 연기를 피여올리고 바닥의 노전과 몇장의 군용모포가 깔려있는 어스름한 차칸에서 어머님께서는 어리신 장군님과 동행한 녀투사들과 함께 간소한 식사를 손수 지어드시였다. 청진-평양행 유개화차는 29일에야 평양에 도착하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평양에 도착하신지 3일만인 주체35(1946)년 1월 1일, 해방후 처음으로 맞는 설날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향가》의 선률과 함께 늘 그려보던 만경대를 찾으시였다. 수십년세월 그리움과 기다림속에 열려져있던 사립문, 조선독립의 뜻을 품고 여러 일가분들이 나서서는 돌아올줄 모르던 만경대의 추녀낮은 초가집의 그 사립문으로 김정일장군님께서 들어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증조할아버님 김보현선생님과 증조할머님 리보익녀사 그리고 여러 친척분들과 동리로인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드리시였다. 김보현선생님은 영채도는 눈빛, 백두의 기상이 차넘치는 증손자를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며 목이 메이시였다. 그날밤 김보현선생님은 장손며느리에게 애국의 넋을 자랑으로 삼아온 이 집안의 혈통을 이어갈 증손자를 잘 키워 나라의 창창한 대를 잇게 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이튿날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장농에 고이 간수해두시였던 벼루를 내놓으시면서 이것은 너의 할아버지때부터 쓰던것이다, 너의 할아버지는 여기에다 먹을 갈아 《지원》이라는 글을 썼다, 나라찾을 큰뜻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였지, 다음은 너의 아버지가 《조선독립》이라고 썼다, 그래 우리 증손이는 무슨 글을 쓰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증조할아버님으로부터 붓을 받아드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잠시 생각을 고르시였다. 어린 가슴속에 간직해오신 생각을 불러내시는듯 예지의 눈이 새별처럼 빛났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어머님께서 갈아주시는 먹즙을 붓에 듬뿍 묻히시더니 한자한자 정성담아 써나가시였다. 《김일성장군 만세!》 아버지 김일성장군님이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분이시라는 긍지와 자부심, 아버지장군님의 위업을 천세만세 길이 전하며 빛내여나가겠다는 의지와 결심이 글자마다에 맥박치는 글발이였다. 동해의 해돋이를 보시며 우리 나라를 태양의 나라로 빛내이겠다고 하신 력사의 맹세와 하나의 맥을 이루는 참으로 뜻깊은 글발이였다. 할아버님과 아버님께서 쓰신 《지원》, 《조선독립》에 그분들의 조국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사명감이 그대로 압축되여있었다면 어리신 장군님께서 일필휘지하여 쓰신 《김일성장군 만세!》에 역시 그렇듯 커다란 시대적, 력사적무게가 담겨져있었다. 만경대일가의 혁명정신이 어떻게 이어지고있는가를 보여주는 력사의 글발이였다. 그때 장군님의 나이는 네살도 채 못되시였다. 그 나이에 붓글씨를 쓰신것도 놀라운 일이였지만 그 글발에 그처럼 깊은 뜻을 담으신것은 더욱 경탄할 일이였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지니신 아버지장군님에 대한 그이의 충성심의 무게와 남달리 뛰여난 천품을 그대로 보여준것이였다. 김보현선생님께서는 증손자분이 너무도 대견하고 기특하여 무릎을 치시며 《옳다. 네가 만경대집의 혈통을 타고났구나.》 하고 말씀하시였다. 새 조국건설의 벅찬 숨결은 그대로 어리신 장군님의 심신을 키우는 자양분이였다. 어리신 그이께서는 새 조국건설이라는 장엄한 현실이 아버지 김일성장군님과 하나로 잇닿아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계셨다. 언제나 바쁘신 아버님께서 잠시라도 편히 휴식하시고 기뻐하시게 하였으면 하는것이 어리신 그이의 생각의 전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자신이 부관이 되고 경위대원이 되기라도 하신듯 아버님을 돌봐드리느라 마음쓰시였고 그러한 일들에서 자신의 의사를 어떤 경우에도 굽히지 않고 관철시키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아버님께서 점심시간에 댁에 들어오시면 휴식을 보장해드리기 위해 밖에 나가시여 경위대원들과 함께 스스로 보초병이 되시였다. 해방직후 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시간이였다. 평양에 와있던 쏘련군사령관인 쓰띠꼬브장령이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오려고 댁에 찾아왔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정중한 자세로 그를 멈춰세우시였다. 그이께서는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올수 없는가라는 쓰띠꼬브의 물음에 지금 이 시간에는 만나뵈올수 없다고, 내가 누군지 아는가라는 물음에는 쓰띠꼬브장령이라는것을 안다고 대답하시였다. 허우대가 크고 위엄있게 생긴 쓰띠꼬브장령과 어리신 장군님사이에 다시금 대화가 이어졌다. 《정말 지금은 안되는가?》 《절대로 안된다.》 《내가 무섭지 않은가?》 《난 겁쟁이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가?》 《기다리면 된다.》 《좋다. 기다리겠다.》 때마침 밖에 나오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뵈온 쏘련군사령관은 수령님께 《나는 작은 김일성동지에게 두손을 들었습니다. 내가 졌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이것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눈을 좀 붙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시간을 지키시여 쓰띠꼬브장령과 《대결》하신 어리신 장군님에 대한 일화이다. 그때 쓰띠꼬브는 여느 아이들 같으면 기가 눌리워 고분고분 요구에 응할 어리신 나이에 대국의 지위높은 장령앞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시고야마는 담력과 배짱 그리고 추운 날씨에 밖에 서있는 자기에게 친절히 례의를 표시하시는 따뜻한 인정미에서 지, 인, 용을 겸비하신 김정일장군님의 령장적인 기질을 보았다. 그는 그때부터 진정어린 목소리로 장군님을 《어린 영웅》, 《소년장군》이라고 호칭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려서부터 남아다운 호방한 성품을 지니시고 순간도 멈춤이 없이 분방하게 활동하시였다. 해방직후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군으로 사업하였던 항일혁명투사 안길동지 역시 늘 어리신 장군님을 《총사령》이라고 부르며 존대하여마지 않았다. 그는 말 잘타고 총 잘쏘고 군사놀이에서도 언제나 대장이 되시여 묘한 작전으로 백전백승하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비범한 군사적천품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그이이시야말로 장차 조선인민군의 《총사령》감이라고 확신하였다. 어린시절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군사놀이를 제일 좋아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군사놀이때마다 대장이 되시여 매번 이기군 하시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세상에서 군대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가지시였다. 언제인가 유치원에서 학부형회의때 보여줄 유희를 준비하면서 노래와 춤 《나는 나는 될터이다》를 련습하였는데 교육가, 의사, 과학자, 무용가, 로동자, 인민군대 순서로 나와 자기의 희망을 노래하게 하였다. 교양원은 김정일장군님께서 교육가가 될터이다라고 노래를 부르며 맨 선참으로 나오시게 한 후 련습을 시키였다. 련습이 끝나자 장군님께서는 매우 좋지 않은 안색으로 유희를 하지 않겠다고 하시였다. 교양원은 뜻밖이여서 왜 그러시느냐고 물었다. 이때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가 제일 좋은데 왜 나중에 나오는가고 반문하시였다. 교양원은 그이의 의견대로 인민군대가 될터이다를 첫 순서에 놓고 그이께서 출연하도록 하였으며 다른 순서도 내용에 따라 바꾸어놓았다. 출연구성을 고쳐놓으니 인민군대가 제일이라는 사상도 강해지고 노래와 춤의 전반흐름도 조화롭고 기백이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려서부터 말타기를 즐겨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다섯살이 되여서는 혼자서 말을 타고 달리시였는데 한번도 말에서 떨어진적이 없으시였다. 여느 아이들 같으면 나무막대기를 타고 장난에 취할 죽마시절에 장군님께서는 벌써 준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시며 경위대원들과 경주까지 하시였다. 일단 말안장에 올라앉으시면 처음에는 속보로, 다음에는 구보로, 그다음에는 질풍같이 말을 몰아 습보로 달리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린시절에 사격도 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에게 말 잘타는 장수는 총도 잘 쏴야 한다고 하시며 총을 좋아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백두산시절부터 아드님에게 총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어머님께서는 해방후 《책책이》라고 부르는 공기총을 마련해주시고 어리신 장군님의 사격훈련을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어느날 경위대사격장을 돌아보시고 사격좌지에 이르신 김정숙어머님께서는 권총을 들고 사격자세를 취하시였다. 권총을 보신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께 권총을 한번 쏴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권총에서 탄알을 꺼내신 다음 조준격발법을 배워주신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과녁이 없이 아무데나 대고 첫 사격을 해서는 안된다. 큰뜻을 가지고 첫 사격을 해야 한다. 어머니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첫 사격날에 장군님을 모시고 끝까지 혁명할 결심을 다지면서 일제놈들을 몰살시켰다. 나는 그날에 다진 맹세를 지켜 이 권총을 억세게 틀어잡고 장군님을 목숨바쳐 보위하여왔다. 너도 어서 커서 이 권총으로 아버님을 보위하고 높이 받들어모셔라. 나는 네가 아버님처럼 훌륭한 장군이 되기를 바란다.》 작은 가슴에 큰뜻을 받아안으신 어리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후 날마다 권총을 잡고 사격법을 익히시였다. 이러한 나날이 흘러 마침내 장군님께서 사격솜씨를 보여드리는 날이 왔다. 이날 모두가 긴장하여 지켜보는 가운데 목표를 조준하신 장군님께서는 방아쇠를 당기시였다. 《땅, 땅, 땅.》 하고 야무진 총성이 세번 울렸다. 총탄 세발이 다 명중되였다. 당시 경위대원으로서 장군님의 말타기와 총쏘기솜씨를 목격한 항일혁명투사 리을설동지는 자기의 회상실기에 이렇게 썼다. 《옛 병서에 이르기를 기마술과 검술, 궁술을 장수의 3대장기라고 하였다. 장수가 되자면 말을 잘타고 칼을 잘 쓰고 활을 잘 쏘아야 한다는것이다. 그런데 칼이나 활은 옛날에는 군사들의 기본무기였지만 오늘날에는 총이 칼과 활을 대신하는 군사의 기본무기이다. 그러므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겨우 5∼7살의 어리신 나이에 말타기와 총쏘기에서 그처럼 뛰여난 솜씨를 보여주셨으니 그이께서는 이미 죽마시절에 <장수의 3대장기>에 도통하신셈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나날에 군사문제를 국사중의 국사로 여기시는 아버님의 심원한 뜻을 가슴깊이 새겨안으시였다.
국력의 제1번수는 무장력이며 무장력은 강국의 징표이다. 총대우에 민족의 운명이 있고 조국의 부강이 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거세차게 전진하는 새 민주조선건설의 도도한 흐름속에서 조국의 통일과 완전자주독립을 내다보시며 현대적정규무력건설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정규군으로의 발전은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눈보라 울부짖는 밀림속 천막에서, 때로는 삼라만상이 다 잠든 밤에 진대나무에 걸터앉으시여 바위를 책상으로 삼아 구상하시고 다듬어 발표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핵심적과업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의 진정한 혁명적정규무력건설을 자주독립국가건설의 필수적요구로 보시였다. 해방후 세계반동의 원흉인 미제국주의자들이 일제를 대신하여 남조선을 강점하고 국내의 반동들을 긁어모아 전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려고 날뛰고있던 당시의 정세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군으로 강화발전시켜 조선인민군을 조직하는것은 민족의 운명과 잇닿아있는 사활적인 문제였고 잠시도 미룰수 없는 우리 혁명의 절박한 요구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첫날부터 혁명적정규군건설을 위한 준비사업을 몸소 조직령도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단련되고 세련된 혁명투사들의 대다수를 정규무력인 인민군대의 핵심골간으로 파견하시는 한편 로동자, 농민출신의 새로운 군사정치일군들을 키워내시기 위하여 주체34(1945)년 11월에 우리 나라의 첫 군사정치학교인 평양학원을, 이듬해 7월에는 중앙보안간부학교를 내오시였다. 그리고 8월에는 여러곳에 보안간부훈련소를 꾸려 정규군의 정수들을 키워내도록 하시였다. 정규군건설의 벅찬 나날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부모님을 따라 건군의 길을 함께 걸으시며 군사를 터득하시고 령장의 포부와 슬기를 다지시였다. 주체35(1946)년 2월 어느날 평양학원개원식이 진행되였다. 이날 당시 평양학원 원장으로 사업하고있던 항일혁명투사 김책동지는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오신 김정숙녀사와 어리신 장군님을 뜨겁게 맞이하였다. 모든 교육시설들을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시던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평양학원에서 부대를 지휘할 《대장감》을 키워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원학생들의 씩씩한 열병행진을 보시며 자신께서도 앞으로 대장이 되여 우리 나라를 지킬 결의를 다지시였다. 주체36(1947)년 8월 중순 어느날에도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부모님들과 함께 중앙보안간부학교와 평양학원사이에 진행하는 전술훈련과 포실탄사격경기를 보시였다. 다섯살의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실전과 같은 학생들의 전술훈련을 동네아이들과 함께 하시던 군사놀이와 비교하여 주의깊게 관찰하시였다. 특히 공격과 방어의 현대적인 전술운영과 전투조법들에 대하여 관심을 돌리시였다. 그토록 어리신 장군님께서 전문적인 군사학교학생들의 전술훈련을 리해하고 관심하신 사실은 참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포사격장에도 가시여 포소리도 귀에 익히고 여러가지 구경의 포가 불을 뿜는 광경도 보시면서 담을 키우시였다. 정규화된 인민군대의 골간을 육성하는 사업에 기울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로고와 김정숙어머님의 지성은 알찬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10월 26일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발기와 세심한 지도로 창립된 중앙보안간부학교가 자기의 첫 졸업생을 내게 되였다. 이날 아침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중앙보안간부학교 제1기 졸업식을 축하하기 위하여 학교로 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항일의 녀장군 김정숙어머님과 함께 동행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졸업식정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의깊게 보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과 인민에게 충실히 복무하는 인민군대의 간부가 되여야 한다》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졸업생들을 축하해주신 다음 미제국주의자들의 음모와 침략책동에 의하여 통일정부의 수립과 자주독립 그리고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에 엄중한 위험이 조성되고있는 시기에 부대로 나가는 졸업생들의 임무가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인민군대 간부로서 자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이어 열병식이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열병식을 보시고 누구보다 기뻐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기쁨어린 목소리로 《우리의 군대들》, 《우리의 군관들》이라고 하시며 연방 환성을 올리시였다. 이것은 단순히 호기심어린 동심의 표현이 아니였다. 거기에는 조국과 인민을 지키는 혁명군대에 대한 남다른 동경과 사랑의 감정이 넘쳐있었다. 일찌기 백두산에서 탄생하시여 왜적을 족치는 가렬한 싸움마당에서, 눈비속을 헤쳐나가는 행군대오에서, 백설이 뒤덮인 유격대숙영지의 우등불가에서 눈에 익도록 보아온 혁명군대의 그 친근한 모습이 그날 열병행진하는 군대대렬과 하나로 합쳐져 잊지 못할 영상으로 어리신 장군님의 심중에 깊이 간직되였던것이다. 그다음날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을 모아놓고 《나는 어제 우리 나라 군대를 보았다. 참 멋이 있었어. 이제 너희들도 보게 될게다. 우리도 어서 커서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되자.》라고 온 몸에 기쁨과 포부가 넘치여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다음해 10월 14일에는 제1중앙군관학교 제2기 졸업식이 진행되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어머님과 함께 여기에 참석하시였다. 그때 어머님께서는 끌끌한 군관대렬을 보시며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간 혁명동지들이 생각나시여 눈물을 흘리시였다. 어머님의 그 숭고한 눈물에 깃든 혁명적동지애는 그대로 어리신 장군님의 마음속에 흘러들어 뿌리를 내리게 되였고 군대에 대한 어머님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은 장군님의 가슴속에 스며들어 총대중시, 총대사랑의 사상이 굳건히 자리잡게 하였다. 해방후 건당, 건국, 건군의 거세찬 격류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사상정신적풍모는 이처럼 높은 경지에 이르고있었다. 조선의 인민무력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과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자기 발전의 앞길에 가로놓인 난관들을 타개하고 정규군으로서의 훌륭한 면모를 갖추어나갔다. 잊을수 없는 력사의 그날이였다. 주체37(1948)년 2월 8일, 평양에서는 조선인민군이 정규군으로서의 름름한 모습을 온 세상에 선보이는 성대한 열병식이 진행되였다. 이날 어리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을 모시고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열병식장에 나와계시였다. 그날 그이께서는 새로 지은 《장군복》을 입고계시였다. 군복형식의 옷이였다. 목깃과 팔소매, 바지에 붉은 줄을 치고 큰별견장이 달린 그 《장군복》은 군사놀이를 즐기는 아드님에게 군복형식의 옷을 만들어주시려는 어머님의 뜻을 받든 항일혁명투사들이 마련해드린것이였다. 《장군복》에는 어리신 장군님께서 아버님과 꼭같으신 조선의 훌륭한 장군이 되여주시기를 바라는 항일혁명투사들과 인민들의 한결같은 념원이 담겨져있었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드님에게 《장군복》에 담겨진 뜨거운 념원을 알려주시면서 이 군복을 입고 우리 나라를 튼튼히 지키겠다는 굳센 마음을 키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시며 《어머니, 저는 꼭 아버지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우리 나라의 용감한 장군이 되겠어요.》라고 대답하시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크나큰 뜻이 어린 《장군복》을 입으시고 격동된 심정을 안고 열병식주석단 왼쪽관람석에 계시였다. 총검이 숲을 이룬 열병식광장에 수령님을 모실 력사의 그 시각을 기다리며 숙연히 정렬해있는 조선인민군의 씩씩한 열병대오, 환희와 감격에 한껏 부푼 가슴을 억누르며 한없이 설레이는 인민들… 군대와 인민의 뜨거운 열기가 달아오르는 가운데 어리신 장군님의 가슴도 기쁨으로 높뛰였다. 드디여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혁명무력의 창건자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 주석단에 나오시였다. 그 순간 열병대오와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를 터치였다.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인민군 만세!》 만세의 환호는 강산을 울리며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메아리쳐갔다. 인민들은 장백의 험한 산발, 눈보라 헤치시며 혁명의 수십만리길을 걸어오신 김일성장군님의 그 전대미문의 헌신과 로고를 생각하며 자기의 정규군을 가지게 된 감격으로 하여 눈물을 삼키며 만세를 웨치고 또 웨치였다. 수령님께서는 열광적인 환호에 답례를 보내시며 열병대오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안도의 수림속에서 《지원》의 뜻 어린 총을 메고 강반석어머님께서 지어주신 혁명의 군복을 입고 만세의 환호를 터치던 반일인민유격대원들의 름름한 모습도 어울려 안겨오는 조선인민군대오… 세계유격전쟁사에 류례없이 간고하였던 항일무장투쟁의 그 피어린 세월과 고난의 언덕을 넘어 승승장구해온 조선인민혁명군을 해방된 조국땅에서 온 민족의 뜻, 전체 인민의 힘을 모아 강화발전시킨 혁명적정규무력을 바라보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참으로 감회가 크시였다. 김정숙어머님의 심정도 다를바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천만감회를 대변하시듯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어느 한 기회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산에서 싸울 때 조국땅에 들어오기만 하면 꼭 흙 한줌을 품에 넣고 갔습니다. 그 흙을 조국으로, 내 고향, 내 부모의 넋으로 알았습니다. 나는 가끔 이 땅에 피는 모든 꽃과 여기서 자라는 모든 나무들이 다 우리에게 말을 하는것 같습니다. <이 땅을 무심히 걷지 말라 이 땅을 무심히 보지 말라 이 땅에 무심히 살지 말라 이 땅은 흙이 아니라 피덩이다.> … 이 땅을 찾기 위하여 흘린 피와 땀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것을 그 누구에게도 다시는 빼앗기지도 짓밟히우지도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조선인민혁명군의 현대적정규무력으로의 강화발전은 이국의 산과 들에 뼈를 묻은 열혈의 혁명가들과 애국투사들의 피의 념원이였고 자기의 강력한 군대가 없었던탓에 일제의 야만적인 식민지통치밑에서 망국노로 짓밟히지 않으면 안되였던 조선인민의 세기적인 념원이였다. 바로 이날은 그 피와 한이 어린 념원의 력사적인 실현을 온 민족에게, 전세계에 선포하는 긍지높은 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열식이 끝난 후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정규적인 혁명무력을 가지게 된데 대하여 말씀하시고 인민군대를 현대적정규군으로 더욱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과업들을 밝히신 다음 모두다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더욱 높은 민족적긍지를 가지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에 이어 정규무장대오, 조선인민군의 열병행진이 시작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을 선포하신 안도의 수림속에서부터 항일의 혈전만리길을 헤쳐 키워오신 혁명무력의 믿음직한 대오가 정규화된 군대의 위용을 떨치며 서리발총창을 비껴들고 보무당당히 주석단앞을 행진하여 나아갔다. 열병대오의 맨앞에 씩씩하고 름름한 보병부대가 발걸음소리 높이 울리며 행진해가고 뒤를 이어 포병부대대오가 자기의 위용을 자랑하며 나아갔다. 열병식의 마지막에는 땅크부대가 지축을 울리며 주석단앞을 지나갔다. 장장 20성상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피와 땀과 생명을 바친 혁명선렬들과 함께 가는 무적의 대오, 이 나라의 미더운 병사들이여, 인민의 열렬한 축하를 받으라! 지축을 쩡쩡 울리며 보무당당히 나아가는 열병대오를 바라보는 사람들모두가 한결같이 터뜨리는 격정이였다. 어리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총대를 받들어들고 나아가며 아버지장군님께 충성을 맹세하는 인민군부대들의 도도한 흐름에서 무적의 힘을 느끼시였다. 아울러 아버지장군님을 한결같이 흠모하고 따르는 군대와 인민의 기상에서 무한한 긍지를 간직하게 되시였다. 드디여 열병식이 끝났다. 맵짠 날씨였지만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마지막열병대오가 다 지나갈 때까지 주석단 앞광장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시였다. 그러시던 장군님께서는 오늘 열병식에는 제일먼저 보병이 나가고 그다음에는 포병이 나가고 마지막에는 땅크병이 나갔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군대가 어떻게 생겨나고 더 세졌는가를 보여주는것이라고, 제일 처음에 보병이 생기고 그다음에는 포병이 생기고 또 그다음에는 땅크병이 나왔다는것이라고 말씀을 하시였다. 김정숙어머님을 비롯하여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모두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실 열병식을 보는 관중들은 더 말할것 없고 열병대오를 편성하고 지휘하는 사람들도 열병대오의 순서를 보병, 포병, 땅크병으로 하는것은 열병대오편성의 전통적인 관례로 그렇게 하는것으로만 알고있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누구나 다 그렇게만 알고있은 열병대오의 행진순서를 놓고도 무심히 스치지 않으시고 열병대오의 행진순위이자 곧 병종의 발생발전순위라는것을 한눈에 알아보신것이였다. 이것은 사물현상에 대한 관찰과 분석에서 뛰여난 론리적지능과 창조적인 착상능력이 없이는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 더우기 군종, 병종의 개념에 대한 리해조차 가질수 없는 유치원년령기에 열병대오편성의 리치를 깨닫는다는것은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한 발견은 오직 비범한 군사적사고능력과 지적발전수준에 기초한 특출한 관찰력과 분석판단력을 지닌 영재만이 할수 있는 일이였다. 과시 어리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예지에서 영재이시고 재능에서 신동이시였다. 정규적인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된 조선인민군이 백두산3대장군을 한자리에 모시고 열병식을 진행한 력사의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에게 예로부터 군사를 키워 나라를 튼튼히 지키는것은 국사중의 국사로 일러왔다, 5천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던 우리 나라가 일제의 침략에 맞서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먹히우고만것은 봉건통치배들이 군사를 키우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을 게을리하였기때문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진정으로 나라와 인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군사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언제나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아버지장군님의 귀중한 말씀을 뇌리에 깊이 새기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장차 인민군대를 세상에서 제일 강한 군대로 만들고 우리 나라에 그 어떤 외적도 덤벼들지 못하게 하겠다고 굳게 결의다지시였다. 이 결의는 그이의 한생을 관통하고있는 리념으로, 신념으로 되였고 그이께서 수령님의 선군령도를 계승한 선군태양으로 떠오르시게 한 튼튼한 초석으로 되였다. 그리하여 2월의 열병식장은 우리 인민과 민족의 운명개척에 있어서 또 하나의 거대한 의미를 갖는 력사의 지점으로 찍혀지게 되였다.
새 조국건설의 세기적변혁속에서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미덥게 성장해가시던 장군님께서는 일곱살 되시던 해에 뜻밖에도 어머님을 잃는 절통한 국상을 겪게 되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가장 충직한 혁명전우이시며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녀사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조국통일의 날을 보지 못하시고 너무도 일찌기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나시였던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38(1949)년 9월 21일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시는 아버지장군님을 어머님과 함께 바래드리시였다. 아버님께서 타신 승용차가 멀리로 사라지는것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의 신색을 살펴보는 순간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병환이 중하다는것을 느끼시였다. 그래서 오늘만은 유치원에 가지 않고 어머님곁에 있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아드님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며 어머니의 병은 네가 공부를 잘하면 저절로 나을수 있으니 다른 생각말고 어서 유치원에 가라고 이르시는 어머님의 말씀에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시며 유치원에 가시였지만 종일토록 어머님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놓지 못하시였다. 장군님께서 유치원에서 돌아오시였을 때 어머님께서는 몹시 괴로와하시였으나 손에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감을 잡고계시였다. 아버님께 드리려고 짬짬이 떠오시던 털내의를 마무리하시고 옷장에 소중히 간직해오신 수령님의 군복을 꺼내여 손질하시는중이였다. 그 군복은 조국진군을 앞두고 어머님께서 숙영지의 등잔불밑에서 손수 지으시여 수령님께 드리신 뜻깊은 군복이였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을 가까이 불러앉히시고 이 옷은 아버님께서 조국을 해방하는 최후공격전에로 떠나실 때 입으셨던 군복이라고 하시며 그것을 아드님의 무릎우에 올려놓으시였다. 이제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스스로 예감하신 어머님께서 사랑하는 아드님에게 물려주고싶으신것, 남기고싶으신 말인들 얼마나 많으시며 아드님을 한번이라도 더 뜨겁게 껴안아주고싶으신 마음 또한 얼마나 간절하시였으랴. 어머님께서는 그 뜨거운 심정을 이 한벌의 군복에 다 묻어놓으신듯, 주체혁명위업수행에서 자신이 맡아안으셨던 몫의 전부를 거기에 다 얹어놓으신듯 그리도 정중히 어리신 아드님께 넘겨주시는것이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눈빛에서, 말씀의 마디마디와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무거운 심중을 읽고계셨다. 정녕 그 군복은 민족의 태양을 우러러 바쳐오신 어머님의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성심이 씨실, 날실이 되여 만들어진 귀중한 유산이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정성이 뜨겁게 스며있고 백두의 넋이 깃들어있는 아버님의 군복을 가슴에 꼭 안으시였다. 아버지장군님과 어머님, 수많은 혁명선렬들의 피와 땀으로 수놓아진 항일혁명의 력사를 통채로 받아안은듯 천만근의 무게가 장군님의 흉벽을 세차게 두드렸다.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아드님을 미덥게 바라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아버님은 나라를 찾아주시고 우리 인민들이 다 잘살수 있게 보살펴주시는 위대한분이시다. 너희들은 아버지장군님을 잘 모셔야 한다. 아버님께서 건강하셔야 우리 나라가 튼튼해지고 인민들이 더 잘살수 있게 된다.》 《알겠습니다. 어머니!》 어머님의 말씀에는 아버님은 곧 인민의 운명이시고 행복이시며 미래이시라는 깊은 뜻과 아버님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해나갈것을 바라시는 크나큰 기대와 념원이 담겨져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이렇게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사랑하는 아드님께 백두의 혁명정신을 깊이 새겨주시고 혁명적수령관에 대한 좌우명을 가슴에 심어주시였으며 조선의 미래를 부탁하시였다. 그것이 어머님께서 남기신 마지막유언이였다. 후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애끊는 심정으로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안으시고 잊을수 없는 그 순간에 대하여 회고하시며 말씀하시였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내가 어렸을 때 …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계승해나가야 한다는데 대하여 심오한 철학적인 론리로 일깨워주시며 뜨겁게 말씀하시군 하시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것은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3시간전이였습니다. 그때 우리 어머님께서는 나에게 수령님을 잘 받들어모시고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계승완성해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시고 비통하게도 3시간후에 돌아가시였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 남기신 어머님의 당부는 곧 시대와 혁명의 요구였고 조국과 민족의 기대와 념원이였다. 9월 22일 새벽 2시 40분, 김정숙어머님의 고귀한 심장은 조용히 고동을 멈추었다. 간고한 항일혈전의 나날 한몸이 그대로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시여 수령님을 결사옹위하신 김정숙어머님, 준엄한 항일혁명시기와 새 조국건설의 어렵고 복잡한 시기 주체혁명위업계승의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신 김정숙어머님께서 수령결사옹위의 길에서 32살을 일기로 너무도 일찌기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였다.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어머님의 서거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있어서 최대의 슬픔이였고 돌이킬수 없는 손실이였다. 뜻밖의 비보에 접한 온 나라 인민들은 크나큰 슬픔에 잠겨 김정숙어머님께서 조국과 인민앞에 쌓으신 영원불멸할 고귀한 업적을 되새겨보며 한없이 비통한 마음으로 어머님을 추모하였다. 22일 아침부터 김정숙어머님의 령구를 모신 당중앙위원회 회의실로 수많은 조객들이 전국도처에서 모여왔다. 《빨찌산추도가》의 비장한 선률이 울리는 조의식장에는 비애에 젖은 조기가 무겁게 드리워져있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아버지장군님과 함께 여기에 나오시였다. 생화속에 고요히 누워계시는 어머님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시며 흐느껴 우시였다. 그때 항일의 전장을 함께 누비며 어머님과 생사고락을 같이하였던 녀투사들이 북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어리신 장군님을 어머님곁에서 떼여내려고 그이를 붙안았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놔두시오. 오늘이 지나면 어머니품에서 울어볼수도 없는 애가 아니요.》라고 하시며 조용히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동지를 오래도록 굽어보시다가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동무는 조국의 광복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열렬한 혁명가였습니다. 그는 이름난 명사수였고 능숙한 지하공작원이였으며 모진 시련과 난관앞에서도 굴할줄 모르는 강의한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 동생을 다 잃고 친척들과도 생리별하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겪으며 자랐습니다. 그는 남달리 조국을 사랑하였고 동지들을 사랑하였으며 혁명의 리익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왔습니다. 그가 한 모든 일은 동지를 위한것이였지 자기를 위한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앞으로 녀사의 고결한 생애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는듯 목이 메여 더 말씀을 잇지 못하시다가 한동안 지나서 계속하시였다. 《나는 그가 단 하루라도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게 살았다면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일생동안 고생만 시키다가 먼저 보낸것이 제일 가슴아픕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눈물젖은 그 말씀에 어머님의 혁명전우들과 조객들모두가 목놓아 통곡하였다. 9월 24일 오후 1시, 《빨찌산추도가》가 비장하게 주악되는 가운데 항일의 혁명전우들과 당 및 국가지도간부들이 김정숙어머님의 령구를 발인하였다. 당중앙위원회 회의실앞마당을 떠난 어머님의 령구는 저택정문앞에 멈춰섰다. 그 시간은 짧은 5분간이였다. 김정숙어머님께서 정든 가정과 사랑하는 자제분들과 마지막으로 작별하시는 순간이였다. 저택주변에 엄숙히 정렬해있던 경위대원들이 어머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쏟아지는 눈물속에 떠올리며 조포를 쏘아올렸다. 눈물의 바다에 파도가 밀려온듯 높아지는 울음소리와 더불어 조포소리는 하늘가로 메아리쳐갔다. 어머님의 령구는 다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령구를 모신 마차는 연도에 빽빽이 늘어선 추모군중속을 지나 조객들의 세찬 흐느낌소리를 뒤에 남기며 모란봉기슭으로 서서히 멀어져갔다. 아, 어머니! 백두산밀영에서 전장의 땀에 절은 군복자락에 어리신 아드님을 감싸안고 고생속에 키우신 어머님이시였다. 배고파하는 아드님께 통강냉이죽을 먹이시고는 조국이 해방된 다음 옛말하면서 잘살아보자며 아픈 마음을 스스로 달래시던 어머님, 해방후에는 아드님에게 옷과 양말을 기워입히고 신기시면서 온 나라 아이들이 다 새옷을 입고 새 양말을 신을 때 새옷을 입고 새 양말을 신자고 하시던 어머님, 장차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이 나라, 이 민족을 부흥케 하라고 일찌기 어리신 장군님에게 빨찌산군복을 입히시였고 총을 쥐여주시였으며 달리는 군마우에 태워 지동치는 눈보라의 광풍속으로 서슴없이 떠밀어주신 어머님이시였다. 그처럼 다정하시고 자애로우시며, 그처럼 굳세시고 열정과 랑만에 넘치시던 어머님과 가슴 미여지는 슬픔과 아픔속에 눈물로 영결하신 장군님께서는 어머님께서 계시던 방으로 달려가시였다. 언제나 환한 미소로 반겨맞아주시던 어머님은 안 계시고 어머님께서 애용하시던 소형권총만이 소리없는 오열속에 장군님을 맞이하였다. 권총은 가슴이 젖어드는 숭엄한 추억을 불러왔다. 주체33(1944)년 3월 8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이름난 명사수들이 사격경기대회를 할 때였다. 이날 김정숙녀사께서는 보병총과 권총사격에서 단 한발의 실수도 없이 모든 목표를 다 소멸하고 최고점수를 받으시여 단연 제1위의 영예를 쟁취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격경기를 총화하시면서 녀사의 사격솜씨를 높이 평가하시고 표창으로 소형권총을 수여하시였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어머님의 혁명정신이 어려있는 권총을 가슴에 안으시고 앞으로 이 권총을 마음의 억센 기둥으로 삼아 어머님의 유언대로 아버지장군님을 잘 받들어모시고 혁명의 총대로 아버님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 굳은 맹세를 다지시였다. 력사의 그날부터 그 권총은 그리운 어머님의 다정한 모습으로, 어머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어머님의 굳센 마음으로 안겨와 언제나 장군님곁에 함께 있었다. 어머님을 뜻밖에 여의신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며칠이 지난 어느날, 녀동생과 함께 아버지장군님을 모시고 어머님의 묘소를 찾으시였다. 분묘앞에 꽃다발을 드리는 순간부터 자제분들은 슬픈 마음이 북받쳐 오열을 터뜨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누이자제분들이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시며 말씀하시였다. 《너희들은 어머니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머니는 조선의 훌륭한 딸이였다. 그는 조선의 해방을 위하여 일찌기 손에 총을 잡고 10년세월 백두산에서 나와 함께 싸웠다. 아직도 백두산의 산발마다에는 너의 어머니의 피어린 자욱이 그대로 남아있다. 혁명의 길은 간고했지만 너의 어머니는 언제나 웃으며 싸웠다. 너의 어머니가 백두산줄기마다에 뿌려놓은 피와 땀은 헛되지 않았다. 오늘 우리 나라의 부강발전과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속에는 수많은 혁명렬사들과 함께 너의 어머니가 바친 수고가 깃들어있다. 우리 인민은 그것을 잊지 않을것이다. 너희들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어머니처럼 조국의 훌륭한 아들딸이 되여야 한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아버님의 말씀과 당부를 가슴속에 깊이 새기시였다. 어머님의 유언을 언제나 잊지 않고 반드시 지켜가리라 엄숙한 맹세를 다시금 굳게 다지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어리신 나이였지만 아버님께서 나라의 정사에 전심하실수 있게 어머님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자신께서 스스로 다하시였다. 어린 동생을 보살펴주시고 저녁마다 정원의 긴 의자에 앉아 돌아오시는 아버님을 마중하시였다. 새벽이면 어머님께서 쓰시던 장대를 드시고 정원에 나가 아버님께서 편히 쉬시옵기를 바라시여 지저귀는 새들을 날려보내군 하시였다. 어느날 새벽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이 길다란 장대를 힘겹게 휘저으며 참새떼를 쫓고있는것을 보시고 그 장대를 잡아드시며 저으기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 이제는 … 네가 이 장대를 쥐였구나.…》 정녕 어머님의 유언을 지켜 아버님을 충성으로 받들어 모시려는 높은 자각과 성실한 노력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일찍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내여나갈 령도자적자질과 풍모를 훌륭히 갖추어나갈수 있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