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1

제 1 장

백두산, 항일혁명의 산아

 

백두산총대위업계승의 장엄한 해돋이

건군의 길을 함께 걸으시며

최고사령부의 작전대곁에서

만경대혁명학원제복을 입으시고

총포성은 멎었어도

  

1. 백두산총대위업계승의

장엄한 해돋이

 

주체 31. 2. 16 -

백두산밀영의 새벽

이 나라 천만의 산악과 강호를 거느리고 조선의 기상인양 거연히 솟아있는 조종의 산, 만리창공을 치뚫으고 민족의 존엄인듯 도고히 세계를 굽어보는 백두산, 겨레의 태가 묻히고 넋이 깃든 민족사의 발상지!

반만년의 민족사가 백두산과 더불어 흘러왔고 나라의 흥망성쇠도 백두산과 함께 겪어온 우리 겨레는 이 민족의 성산에 운명을 의탁하고 행운을 바라왔다.

하지만 자연의 백두산은 이 나라의 운명도 지켜주지 못했고 이 겨레에게 행복의 씨앗마저 안겨주지 못했다. 끊임없는 외래침략으로 수난의 세기를 이어온 우리 민족이였다. 자랑은 높았어도 망국의 비운속에 묻히여 의분의 함성만이 메아리쳤던 백두산이 겨레의 머리우에 운명의 성산, 희망의 성악으로 높이 솟아오른것은 과연 언제부터였던가.

그것은 백두산이 민족의 구세주, 절세의 애국자를 맞이한때부터였다.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백두산에 진을 치고 광복의 영웅신화들을 엮어가신 바로 그때부터 이 신비스런 태고의 령산은 혁명의 성산, 구국의 기치로 겨레의 가슴에 긍지높이 안겨왔다.

항일의 령장이신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백두산에서 광복성전의 총성을 높이 울리시고 신출귀몰의 유격전법으로 겨레의 원한과 울분의 표적이였던 일제의 관공서들과 군사요충지들을 가는 곳마다에서 불살라버리시였다. 그이래 백두산은 억눌려 신음하는 겨레에게 광복의 신심과 용기를 심어주고 침략자들에겐 끝없는 전률과 공포를 안겨주는 민족구원의 성역으로 되였다.

특히 여기 천험의 계곡에 조선혁명의 중심적령도거점인 백두산밀영이 꾸려져 이 민족의 성산은 광복위업의 사령탑으로 겨레의 마음속에 더욱 굳건히 자리잡게 되였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전략적구상에 따라 건설된 백두산밀영은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은 주체혁명의 책원지, 심장부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조국이 해방될때까지 백승의 무훈을 떨치시며 항일무장투쟁을 령활하게 조직령도하시였으며 만사형통의 묘책으로 당조직건설과 통일전선운동, 전민항쟁준비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영명하신 수령님께서는 백두산밀영에서 온 민족에게 광복의 서광을 비쳐준 보천보전투를 비롯하여 여러 군사작전들을 펴시였고 동포들이 살고있는 국내외의 넓은 지역에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여 당 및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강화해 나가시였다. 그리고 전국각지에 소부대와 소조들을 내보내여 전민항쟁준비사업을 적극 추진시키는 등 전반적조선혁명에 대한 령도를 정력적으로 해나가시였다.

그리하여 백두산은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의 존함과 더불어 빛나는 주체혁명의 성산으로, 온 민족이 열렬히 우러러 따르는 태양의 산으로 되였다.

더우기 일제식민지통치가 마지막몸부림을 치던 시기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백두산밀영에서 탄생하시여 민족의 창창한 래일을 확고히 담보해주심으로써 백두산은 어버이수령님의 존함과 더불어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으로 세기를 이어 빛날 영원한 태양의 산, 선군혁명의 성산으로 찬연히 떠올라 시대의 각광을 모으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당시 정세는 격동적이였다. 파쑈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의 불길은 1940년대의 문턱을 넘어서면서 소용돌이치며 세계전역으로 급속히 번져가고있었다. 1941년 6월 파쑈도이췰란드의 쏘련침공에 발맞추어 일제는 그해 12월 진주만공격과 말라이반도상륙작전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일제는 침략전쟁확대로 급격히 증대된 전시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식민지 조선에 대한 파쑈적탄압과 경제적수탈에 미쳐날뛰였다.

일제는 이른바 《국민징용령》으로 수많은 조선청장년들을 침략전쟁의 제물로 삼았다. 이른바 《녀자정신대 근무령》을 만들어 조선녀성 20만명을 성노예로 내몰고 군수공장에서 강제로동을 시켰다. 일제는 또한 탄피제조를 위한 놋그릇《공출》, 쌀《공출》 등 온갖 명목으로 조선인민을 가혹하게 략탈하였다. 지어 일제는 《창씨개명》이라는 광란적인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하여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마저 빼앗았다.

억압과 략탈이 있는 곳에 저항과 투쟁이 있기마련이다. 극도에 달한 일제의 강도적인 식민지적폭압과 략탈은 우리 인민의 민족적분노를 격발시켰고 전민이 반일항전에 떨쳐일어나게 하였다. 인민들은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을 적극 지지원호하면서 민족재생의 희망과 기대를 안고 백두산을 우러르며 싸워나갔다.

이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9(1940)년 8월 력사적인 소할바령회의에서 제시하신 새로운 전략적방침에 따라 조국광복의 대사변을 준비있게 맞이하기 위하여 소부대에 의한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정치활동을 더욱 적극화하시였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완수하자!》라는 혁명적구호아래 일제격멸의 최후결전에 전민족을 총동원하기 위한 전민항쟁을 성숙시켜나가시였다.

전반적정세는 조선을 강점한 일제의 멸망이 확정적이며 우리 민족앞에 조국해방의 새날이 다가오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강도 일제의 머리우에 멸망의 조종이 울렸다. 조국해방의 희망찬 새봄이 태동하고있었다.

이러한 력사적전환의 시기에 우리 민족사에 영광으로 빛나는 장을 펼쳐놓을 뜻깊은 주체31(1942)년 2월 16일 새벽, 옥구르듯 벽계수 흐르는 소백수골 백두산밀영의 수수한 귀틀집에서 천고의 정적을 깨뜨리며 고고성이 울리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조국광복의 구성이신 김일성장군님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맏아드님으로 탄생하신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은 시대와 력사의 대경사였고 민족의 대행운이였다. 항일혁명의 산아, 백두산이 받들어올린 찬란한 해돋이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 탄생하실무렵, 정일봉마루에는 칠흑같은 어둠속에 세찬 눈보라가 일었다. 그러던 날씨가 새벽을 기하여 일변하였다. 어둠을 밀어내며 먹장구름이 사라지고 휘몰아치던 눈보라도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훤히 동터오는 백두산밀영의 새벽은 형언할수 없는 숭고함과 아름다움의 세계를 펼치고있었다.

축복의 꽃보라인양 설레이는 밀림에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밀영의 귀틀집창가에 소리없이 내려앉더니 신기하게도 금시 하늘에 붉은 노을을 펼쳐놓았다. 찬란한 광채가 귀틀집방안을 환히 비치고 붉은 기운이 백두산밀영에 가득하여 그 모양이 해발과 같았다. 이어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더니 온 밀영은 금빛채광으로 차고넘치였다. 귀틀집창가의 나무가지에 피여난 하얀 서리꽃이 은빛보석처럼 반짝이고있었다. 아무리 변화무쌍한 백두산의 신비경이라 하여도 이처럼 천변만화할수 있으며 이다지도 아름다운 황홀경을 펼쳐놓을수 있으랴.

온 겨레가 해방의 새봄을 목마르게 고대하던 격동의 시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민족의 밝은 래일을 비쳐주시는 미래의 태양으로 우리 민족에게 오신것은 정녕 력사의 대사변이였다.

 

    

장쾌한 선군봄우뢰

천출위인의 경사로운 탄생을 축복하는 《례포》인듯 하늘도 봄우뢰를 터치였다. 이 위대한 사변의 영광스러운 목격자, 체험자들인 항일유격대원들은 김일성장군님의 뒤를 이어 장차 조선을 빛내이는 향도성이 되여주실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사령관동지의 자제분께 백두산의 밝은 별, 《백두광명성》이라는 별호를 지어드리였다.

백두산의 아들 김정일장군님께서 탄생하신 소식은 새벽하늘에 울리는 종소리와 같이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전설처럼 번져가 조선인민의 가슴을 쳤다. 기나긴 세월 빼앗긴 압제의 땅에서 재생의 봄을 기다리던 조선인민이 민족의 창창한 앞날을 열어갈 백두광명성을 맞이하였으니 그 거대한 환희의 폭풍이 삼천리강산을 진감시킨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그에 대한 불멸의 기록이 조선의 높고낮은 산발들의 나무와 바위들에 력력히 아로새겨져있어 오늘도 그날의 환희와 감격을 생동하게 느끼게 한다.

《겨레여 백두산에 백두광명성 솟았다》(자강도 랑림군 서중리)

《삼천리강산에 밝은 빛 뿌리며 솟아난 백두광명성 만세》(평안남도 안주시 립석리)

《조선아 민족아 높이 자랑하라 아침해 밝은 내 나라에 광명성 솟아 너를 반긴다》(함경남도 부전군 백암리)

《2천만 백의민족 대통운 백두광명성 출현》(함경북도 경원군 봉산리)

비록 세월의 풍상에 글자의 색갈은 바랬고 글씨는 소박하지만 거기에는 그이의 탄생을 민족적대경사로 높이 축복하는 시대의 환희와 격정, 그이께서 항일의 전설적령장 김일성장군님의 뒤를 이어 조선의 밝은 래일을 떠메고나가시리라는 민족의 확신과 념원이 뜨겁게 어리여있었다.

당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감격을 목격한 항일련군지휘관부부는 주체83(1994)년 7월 우리 나라를 방문했을 때 항일의 옛 전우들과 회포를 나누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때 항일유격대원들이 기쁨에 넘쳐 어리신 장군님을 <백두광명성>이라고 부르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들이 김정일동지를 <백두광명성>이라 부른것은 그분께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뒤를 이어 조선의 앞길을 밝혀주는 태양이 되여주실것을 절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백두광명성으로 탄생하시였다는 소식은 조선인민의 가슴에 희망과 신심을 주고 수많은 영웅전설을 낳았다. 이런 전설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금년이 서기로는 1942년이고 단군년호로는 4275년이요, 륙갑으로는 임오년이다.

임오년인즉 말띠의 해인데 그 말이 보통말이 아니라 단군이 고조선의 하늘을 열 때 타고내려온 태백성산(백두산)의 룡마라 그 말띠를 타고나신 백두광명성이신즉 그분께서는 필시 천군만마를 호령하실 천출명장이심이 분명하다.

조선의 미래는 그분의 성덕으로 륭성번영할터이니 민족의 대통운이면 이에서 더 큰 대통운이 어데 있는가.》

장군님의 탄생소식을 뒤늦게야 알게 된 적들은 당황망조하여 격동된 민심을 무마시켜보려고 책동하였다. 무산군 삼장경찰서장이 1944년 1월 4일부로 함경북도경찰부장앞으로 보낸 《사상범죄검거월보에 관한 건》이라는 일제경찰문건에는 하늘이 점지한 옥동자가 백두령지 삼지연에서 출생하였다는 선전이 전시하 민심을 크게 혼란시켰다고 하면서 《하늘이 낸 이 옥동자는 조선을 독립시킬 장군으로 된다고 하였은즉 조선은 반드시 가까운 장래 독립된다, 그런데 독립을 달성하자면 반드시 각 관공서의 관리들을 요정내야 한다, 모두다 그 성취에 떨쳐나서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여있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께서 백두광명성으로 탄생하시였다는 소식은 인민들에게는 희망과 신심을 안겨주고 일제침략자들에게는 불안과 공포를 주었다.

우리 장군님의 생애는 실로 그 탄생부터가 전설적이였다. 우리 민족사 5천년이래 백두산의 아들로 태여나 백두산에 태를 묻은 위인은 오직 위대한 장군님 한분뿐이시다. 세계명인들의 전기를 보아도 그들이 태여난 곳은 준엄한 전장이 아닌 평화로운 도회지의 서재나 정원이 달린 아늑한 집이였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변변한 뜨락이나 동구길도 없고 푸른 하늘을 제일 가까이에서 쳐다보는 천고밀림에서 탄생하시였다. 백두산밀영에 있는 장군님의 고향집은 주소도 번지도 없었다.

인류가 생활해온 아득한 옛날부터 그 어느 위인이나 명류인사도 주소와 번지가 없는 집에서 태여난적은 없다. 민족해방투쟁의 총포성 울리는 천고의 밀림에서 탄생한 그런 위인, 그런 명장, 그런 정치지도자는 이 세상에 오직 우리의 김정일장군님 한분뿐이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탄생은 선군혁명위업의 찬란한 미래를 기약해주는 장엄한 선군해돋이였다.

그것은 백두산이 선군혁명의 승리적전진과 완성의 앞날을 위하여 터뜨린 장쾌한 선군봄우뢰였다. 민족의 운명에서 근본적인 전환과 조선의 밝은 앞날을 기약해주는 축복의 선군메아리였다.

만경대고향집에서 민족의 태양이 떠오른 1912년 4월 15일과 함께 백두산밀영고향집에서 백두광명성이 솟아오른 주체 31(1942)년 2월 16일은 반만년의 유구한 조선력사에서 가장 위대한 해, 가장 위대한 달과 날이 되였다.

 

 

총대혈통을 이으시여

위인의 뒤에는 위대한 가문이 있다. 애국의 가문에서 애국자가 나오고 명장의 가문에서 명장이 배출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천출명장, 선군태양으로 높이 솟아오르신것은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위대한 가문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문은 총대를 귀중히 여기시고 총대에 의거하여 애국을 하시고 혁명을 하여오신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가장 애국적이고 혁명적인 가문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안아올린 백두산가문은 총대로 혁명을 개척하고 총대에 의거하여 조국해방을 이룩한 현대조선의 위대한 선군총대가문이다. 총대를 중시하는것은 김정일장군님을 선군태양으로 받들어올린 백두산가문의 선군전통이며 장군님께서 백두산장군들이신 아버님과 어머님으로부터 이어받은 고귀한 선군혈통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아버님이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선군사상의 창시자, 선군혁명의 개척자이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망국의 비운에 처한 우리 민족사의 심각한 교훈과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을 비롯한 만경대일가분들의 뜻 그리고 당시 조성된 정세에 대한 과학적분석에 기초하여 항일혁명투쟁시기 주체사상을 구현한 선군사상을 내놓으시였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자기의 존엄과 슬기를 만방에 떨쳐왔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조선반도가 세력권확장을 위한 렬강들의 각축전마당으로 되고 종당에는 바다건너 섬오랑캐의 식민지로 전락되는 민족적치욕을 강요당한것은 나라를 지킬 참다운 민족의 군대, 애국의 총대가 없었기때문이였다.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의 망국통치가 빚어낸 이 비극적현실은 우리 겨레에게 강력한 민족의 군대, 애국의 총대를 가지고 그에 의거해 광복성전을 벌려나갈것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

민족사의 이 절절한 요청을 깊이 헤아리신 만경대일가분들은 나라찾는 애국의 길에 결연히 나서시였다. 대대로 정의에 살고 애국에 투철해온 만경대일가분들은 망국의 비운에 가슴을 치며 모두가 총을 잡고 구국장정의 길에 나서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할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지원》의 높은 뜻을 내놓으시고 《조선독립달성의 총요원은 무기를 잡고 민족자력으로 일제와 싸워나가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무장항일의 길을 열어나가시였다. 선생님께서는 무성한 수수밭을 보시면서도 우리 나라 군대가 저렇게 렬을 지어 그쯘하게 꾸려져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며 몸소 무으신 《조선국민회》를 반일독립을 위한 반일지하혁명조직으로 강화발전시켜나가시였다. 선생님께서는 일제의 탄압에 의해 생긴 병환으로 민족해방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시면서 무장항전의 밑천으로 삼으셨던 두자루의 권총을 강반석녀사에게 넘겨주시며 아드님이 커서 반일투쟁의 길에 나설 때 주라고 당부하시였다. 그 당부에는 대를 이어 무장으로 민족해방을 달성하기를 바라시는 절절한 념원과 기대가 담겨져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할머님이신 강반석녀사께서는 김형직선생님의 무장항일의 뜻을 받드시여 《조선국민회》활동을 적극 도와나서시였으며 녀성들을 조직동원하시여 아드님이신 수령님의 항일무장투쟁로선을 실현하기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시였다. 녀사께서는 아드님께서 항일대전을 위한 무장획득투쟁을 벌리게 되시던 때에 김형직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두자루의 권총을 아드님께 넘겨주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강반석어머님으로부터 그 두자루의 권총을 받으신 력사의 그날 동지들에게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자, 이것이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유산이다. 아버지는 의병도 아니고 독립군도 아니였지만 세상을 떠나시는 날까지 이 총을 가지고있었다. 왜? 무장투쟁이야말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있는 최고의 투쟁형태라고 인정하였기때문이다. 아버지의 총적인 지향은 무장투쟁을 하자는것이였다. 나는 이 두자루의 권총을 물려받을 때 아버지가 지향했던것을 내가 대신하여 실현시키고야말리라는 결심을 굳게 다지였다. 이제는 때가 되였다. 이 두자루를 밑천으로 삼아 독립행군을 시작해보자. 지금은 이 두자루가 전부이지만 이것이 새끼를 치고 또 쳐서 200자루, 2,000자루, 2만자루로 될 날을 생각해보라. 총 2,000자루만 있으면 능히 나라를 해방할수 있다. 밑천이 있으니 이것을 자꾸 굴려 2,000자루, 2만자루가 되게 하자!》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당시 일제의 야수적폭압통치로하여 적수공권으로 벌리는 조선인민의 독립운동이 무참히 탄압당하고있는 현실에서 김형직선생님께서 지향하셨던 무장투쟁을 실현할 결심을 더욱 굳게 다지시였다. 그러시고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은 총대를 가지고 해야 승리할수 있다는 력사의 교훈으로부터 군대건설을 다른 모든 사업에 앞세울데 대한 사상, 혁명군대에 의거하여 민족해방투쟁을 벌려나갈데 대한 사상을 내놓으시였다. 수령님의 선군사상은 김형직선생님께서 유산으로 물려주신 《지원》의 원대한 뜻이 담긴 두자루의 권총과 함께 수령님께서 반제, 독립, 자주의 리념밑에 결성하신 《ㅌ.ㄷ》의 강령에 시원을 두고있는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이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주체19(1930)년 여름에 진행된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항일무장투쟁로선을 제시하심으로써 선군사상의 로선화를 실현하시였다. 그리고 이듬해 12월 력사적인 명월구회의를 계기로 반일인민유격대창건방침을 제시하시고 《무장에는 무장으로, 반혁명적폭력에는 혁명적폭력으로!》라는 구호밑에 항일대전을 선포하시여 그것을 더욱 구체화하고 심화발전시키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주체의 선군사상, 선군혁명로선을 빛나게 구현하시여 주체21(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시고 항일무장투쟁을 벌려나가시면서 그 불길속에서 당창건준비사업, 반일민족통일전선실현을 위한 투쟁을 조직전개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혁명군대부터 창건하시고 그 총대에 의거하여 전반적혁명투쟁을 벌려나가신 선군혁명령도방식은 선행한 혁명리론이나 혁명투쟁실천에서 있어보지 못한 새로운 독창적인 혁명령도방식이였다.

선행한 로동계급의 수령들은 먼저 당을 조직하고 그다음에 군대를 내오는 방식으로 주권전취를 위한 투쟁을 진행하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이와는 달리 혁명은 총대에 의하여 개척되고 전진하며 완성된다는 사상에 기초하여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선군사상과 선군혁명로선을 일관하게 견지하시여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전반적조선혁명을 힘있게 이끄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당창건에 앞서 조선인민혁명군(반일인민유격대)을 먼저 창건하시고 그에 의거하여 전반적조선혁명운동을 추진하신것은 혁명투쟁에서 총대가 기본이라는 총대중시의 사상에서 출발한것이며 수령님의 혁명투쟁력사가 선군사상과 선군혁명로선을 구현한 선군혁명령도의 력사이라는것을 의미한다.

경애하는 수령님의 선군혁명위업을 가장 충직하게 받드신분은 위대한 장군님의 어머님이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이시였다. 녀사께서는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의 제일지지자, 제일옹호자, 제일관철자이시였다.

회령 오산덕의 애국적가정에서 탄생하시여 어린시절 일찌기 반일투쟁의 길에 나서신 녀사께서는 주체24(1935)년 9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시여 수많은 전투들과 지하투쟁에 참가하여 뛰여난 용맹을 떨치시며 유격대의 전설적명사수, 유능한 지하공작원, 백두산의 녀장군으로 존경과 사랑을 모으시였다.

녀사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총을 수여받는 자리에서  그 총을 억세게 틀어잡으시고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조국광복의 그날까지 한몸을 바쳐 싸울 굳은 결의를 다지시였다. 녀사께서는 이날의 맹세대로 사령부의 친위전사가 되시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수령님을 결사옹위하시였다. 비범한 예지와 담력, 희생성과 헌신성으로 전투의 어려운 모퉁이를 스스로 맡아 돌파구를 여시고 백발백중의 사격술로 적들을 격멸소탕하는 위훈을 세우시였다. 녀사께서는 총탄이 우박치듯 하는 싸움마당에서 수령님의 신변에 위험이 닥쳐올 때마다 서슴없이 몸을 던져 방패가 되시였다.

정녕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는 수령님의  선군혁명령도를 한몸 바쳐 받드신 백두산의 녀장군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어받으신 총대혈통에는 만경대친가와 회령외가의 총대중시, 총대사랑의 정신과 지향도 깃들어있다.

장군님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께서와 증조할머님이신 리보익녀사께서는 자제분들을 혁명의 길에 내세우시고 아드님의 무장항일의 의지와 손자분의 항일무장투쟁을 애국지성을 다해 적극 지지하고 떠밀어주시였다.

장군님의 작은할아버님이신 김형권선생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무장투쟁로선을 받들고 조선혁명군의 한 무장소조를 거느리시고 국내에 들어와 왜놈순사부장을 쏴죽이며 맹렬히 활동하시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여 서울 마포형무소에서 옥중투쟁을 계속하시였으며 교형리들의 야만적고문으로 옥중에서 희생되시였다. 장군님의 삼촌이신 김철주선생님께서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여 영용하게 싸우시다가 전투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할아버님과 할머님, 작은할아버님과 삼촌을 비롯한 일가분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조국광복의 성전을 벌리시다 순국하시였다.

장군님의 회령외가의 김기준, 김기송 두 외삼촌도 만경대친가분들과 마찬가지로 수령님의 선군혁명위업을 받들고 싸우시다가 젊은 나이에 장렬하게 희생되시였다.

렬사들은 너무도 일찌기 해방의 날을 보지 못하고 서거하시였지만 나라와 혁명을 위한 그분들의 고귀한 생은 경애하는 수령님의 선군혁명력사와 더불어 길이 빛나고있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의 가문은 대를 이어 조국의 광복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총대를 잡고 싸우신 력사가 알지 못하는 위대한 선군애국의 가문, 선군혁명의 가문이다.

만고에 없는 이 위대한 가문의 총대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서 격변하는 시대의 태동을 안으시고 탄생하신 김정일장군님이시기에 그이의 탄생에 접한 민족의 환희는 그처럼 뜨거웠고 그이에 대한 민족의 기대 또한 그처럼 컸었다.

 

 

백두산을 닮으시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자제분이 태여났다는 기쁜 소식을 받으시였지만 인차 백두산밀영으로 오지 못하시였다. 소부대활동을 지휘하고계시던 그 자리를 뜰수가 없으셨던것이다.

그러시던 수령님께서는 백두산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조국해방을 위한 작전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키고 전민항전준비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시키기 위하여 백두산밀영으로 돌아오시였다. 주체31(1942)년 6월, 장군님께서 탄생하신지 넉달만이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아드님을 안으시고 수령님을 반갑게 맞이하시였다. 우리 인민이 민족의 가장 걸출한 3대위인을 백두산에 처음으로 함께 모신 력사의 순간이였다.  그것은 백두산의 혈통, 위대한 수령님의 선군혁명위업의 대가 굳건히 이어지고있음을 보여주는 불멸의 화폭이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을 포근히 안으시고 백두의 기상이 넘쳐나는 준수한 얼굴을 이윽토록 들여다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김정숙녀사에게 아드님을 잘 키워서 혁명의 대를 잇게 하자고 하시면서 백두산에서 추켜든 혁명의 붉은기를 후대들이 대를 이어 들고나가도록 하는것이 우리의 뜻이라고 의미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백두산밀영에 도착하시여 이틀이 지난 날 저녁이였다. 사령부에서 열린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지휘관들은 김정숙녀사께서 안고나오신 자제분의 환한 얼굴을 보며 박수갈채로 열렬히 축복하였다.

오백룡동지는 격동된 목소리로 어리신 자제분은 사령관동지를 꼭 닮으시였다고 했다. 그러자 최현동지가 화답하며 《옳소. 자제분의 환한 모습만 보아도 꼭 사령관동지를 뵈옵는것만 같소. 진정 어리신 자제분은 김일성장군님을 그대로 닮으신 백두산의 장군이시오.》라고 진정을 아뢰였다.

그때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나오시여 환희에 휩싸여있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동무들이 그처럼 기뻐하니 나도 마음이 즐겁다고 하시고 진중한 어조로 우리들이 이 백두밀림에서 입을것도 입지 못하고 먹을것도 먹지 못하고 목숨을 내대고 싸우는것도 다 후대들을 위해서가 아닌가, 우리는 비록 헐벗고 굶주리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후대들에게만은 모두다 잘사는 해방된 조국을 안겨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들도 잘 싸워야 하지만 이 항일의 총포성속에서도 후대들을 혁명의 계승자로 억세게 키워야 한다, 그리하여 후대들이 우리가 들었던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들고 혁명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나가도록 하여야 하며 그들을 문무백관들도 부러워하는 지, 인, 용을 겸비한 훌륭한 혁명가로 키워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아드님을 문무를 겸비한 선군혁명위업의 계승자로, 백두산의 용장으로 억세게 키우시려는 경애하는 수령님의 말씀은 투사들에게 무거운 사명감을 북돋아주는 간곡한 당부였다. 투사들은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가 담긴 가르치심을 받아안고 심장의 격동을 금할수 없어 폭풍같은 박수의 환호를 터치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유년시절은 군복입은 항일혁명투사들속에서 흘러갔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장군님의 유년시절을 회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빨찌산의 아들로 태여나 포연에 절은 옷을 입고 군대밥을 먹으며 돌격구령소리와 함께 성장한 그의 인생은 첫시작부터가 남다른것이였습니다.》

백두산에서 탄생하시여 눈보라 세찬 밀림속에서 걸음마를 익히시며 억세게 성장하신 장군님의 유년시절은 선군태양으로서의 그이의 위대한 인생의 길에 세워진 첫 리정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탄생의 그 시각부터 이 세상 모든 위인들에게서 찾아볼수 없는 고난에 찬 유년기를 보내시였다.

사람은 태여나면 누구나 요람에 안긴다. 그러나 눈바람 사나운 백두산의 깊은 밀림속, 항일의 총포성이 그칠새없이 울려오는 전장에서 탄생하신 장군님을 품어안은것은 포근한 요람이 아니였다.

군복입은 사람들의 활동거점인 백두산밀영에서의 장군님의 유년시절은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속에서 흘러갔다. 무엇보다도 백두산의 눈보라와 혹한의 추위를 막아줄 변변한 옷이나 침구조차 없었다. 갓 탄생하신 장군님께 안겨진것은 어머님의 군복을 줄인 홑옷과 자투리천으로 꾸민 얄팍한 포단 한장이 전부였다.

김정숙녀사께서는 군용모포로 어리신 장군님을 감싸주시고 날씨가 더 차지면 자신의 군복을 벗어 덮어드리군 하시였다. 그러한 형편을 보고있던 밀영의 녀대원들이 생각다못해 자기들이 입고있던 군복에서 솜을 뜯어내고 배낭에 있던 천쪼박들을 모아 쪽무이포단을 만들어 드렸다. 지금도 백두산밀영고향집에 가면 그 쪽무이포단을 볼수 있어 장군님의 어린시절의 체취와 숨결을 그대로 느낄수 있게 한다.

주체32(1943)년 이른봄 백두산밀영에서 김정숙녀사와 어리신 장군님을 가까이 모시고 생활을 한바 있는 항일혁명투사 김옥순동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하였다.

《김정숙동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나의 눈길은 저도 모르게 자꾸만 장군님께서 덮고 주무시는 쪽무이포단으로 쏠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장군님의 탄생을 그렇듯 열광적으로 축복하여마지 않으며 그이를 백두광명성으로 높이 우러러 칭송하던 우리들이 과연 쪽무이포단밖에 마련할수 없었단 말인가.…

훈련기지에서 장군님께 쪽무이포단을 해드렸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리였다는 나의 말을 들으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포단이 얼마나 좋은가고, 우리 동무들의 성의가 어려있는 이 포단이 제일 좋다고 하시였다.》

그때 일이 얼마나 가슴에 맺혔던지 해방후 항일혁명투사 림춘추동지는 외국에 갔다가 조국에 돌아올 때 좋은 담요 500장을 사다가 경애하는 수령님과 김정숙녀사께 선물로 드리였다.

두분께서는 그가 백두산에서 풀지 못한 원을 풀자고 구해온것인데 그 원을 풀어주자고 하시며 담요를 모두 만경대혁명학원 원아들에게 보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추위만이 아니라 배고픔도 혹심하게 겪으시였다.

어리신 장군님께 차례진것은 빨찌산대원들의 《군대밥》이였다.

낟알 한톨 없는 백두원시림속에서 싸우는 빨찌산들에게 있어서 통강냉이를 조금 섞거나 약간의 삶은 감자를 부스러뜨려 버무린 풀범벅이 상등식사였다. 풀죽도 여름 한철이고 눈이 강산같이 쌓인 한겨울에 식량이 떨어지면 빨찌산대원들은 생눈을 움켜먹으며 며칠씩 견디여야 했다. 이것이 빨찌산의 《군대밥》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젖떼기때부터 그런 《군대밥》으로 자라시였다.

동서를 둘러보고 고금을 훑어보아도 그렇듯 춥고 배고프고 고생스러운 《요람》에서 자란 위인은 없다.

허나 우리 장군님께서 비록 군용밥통에 강낭죽을 담아드시고 빨찌산군복을 줄여 입으며 자라시였어도 그이께서는 그 군복에서 투사들의 체온을 느끼시고 불굴의 넋을 지니시며 애국심을 키우시면서 백두산을 닮아가시였다.

오늘 백두산밀영고향집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성장에 깃든 사연들을 고이 안아 전하고있다.

앉은뱅이책상우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나무권총, 나무쌍안경, 나무칼, 조선지도맞추기며 궤짝우에 포개있는 쪽무이포단 그리고 방 한쪽에 놓여있는 반짇고리며 독수리깃털방비… 어리신 장군님의 유년시절의 숨결과 체취가 그대로 느껴지는 사적물들에 접하면서 사람들은 어리신 장군님께서 김정숙녀사의 《자장가》를 들으시며 씩씩하게 자라시던 그 나날들이 눈에 어려와 마음을 진정하지 못한다.

 

아가 아가 자장자장 어서 자거라

어서 자라 속히 자라 총칼을 메고

조국해방 만세소리 활발한 곳에

너 앞서고 나 뒤에 나가 싸우자

 

아가 아가 자장자장 어서 자거라

어서 자라 속히 자라 붉은기 들고

공산주의 새세상 떨치는 곳에

너 앞서고 나 뒤에 나가 싸우자

 

위대한 사랑과 축복의 마음 담아 불러주시는 김정숙어머님의 《자장가》는 조국의 광복과 혁명의 승리를 위한 투쟁의 앞장에서 나가는 기수가 되라는 간절한 당부로서 어리신 장군님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고난에 찬 생활환경이 인간을 조숙하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성장과정은 남달리 빨랐다.

장군님께서는 돐이 되기 퍽 전에 첫걸음을 떼시였다. 그이께서는 인생의 첫걸음마를 떼시는것도 백두산을 닮아 남다르셨다.

속담에 아이들은 급하면 어머니의 손부터 잡고 늙은이는 지팽이부터 잡는다고 했다. 그런데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아직 돐이 되기 썩 전에 그 누구의 부축도 없이 제힘으로 그것도 단숨에 걸음마를 완전히 익히시였다.

그날 밀영의 항일혁명투사들은 어리신 장군님을 안아 높이 받들어올리며 백두산정기를 타고나신 장수이니 첫걸음부터가 다르다고 탄복하였다.

백두밀림에서 첫걸음을 내디디신 장군님의 발걸음, 그것은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할 위대한 계승자의 뜻깊은 첫걸음이였다.

첫걸음마부터 류달리 빨리 떼신 장군님께서는 모든 면에서 조숙하시였다.

이웃이 없는 백두산에서 태여나신 장군님께서는 늘 빨찌산대원들과 함께 지내시며 자라시였다. 그이의 다정한 친구들은 소꿉놀이동무들이 아닌 빨찌산대원들이였고 그이의 기쁨은 《황군》을 소탕한 빨찌산들의 환희였다. 그이의 뇌리에 새겨진것은 희생된 전우들을 이국의 산야에 묻으며 복수를 다짐하는 빨찌산들의 조총소리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말과 노래도 빨리 배우고 익히시였다.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 다음에는 《총》, 《칼》, 《독립》, 《혁명》과 같이 투사들이 하는 말을 먼저 아시게 되였고 노래도 동요보다는 《유격대행진곡》과 같은 혁명가요를 더 많이 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탄생하신 이듬해 봄, 항일대전의 최후승리를 준비하기 위한 경애하는 수령님의 작전적방침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이 새로운 원동훈련기지에서 활동하게 되자 어머님과 함께 그곳으로 옮겨가 지내시였다.

조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훈련기지에서 빨찌산대원들은 항일의 최후결전을 각 방면에 걸쳐 준비하고있었다. 소부대와 소조로 만주각지에 파견되여 적들과 피어린 싸움을 벌리였고 총검의 숲을 헤치며 국내깊이 침투하여 적정도 탐지하였으며 조국해방의 앞날을 그리며 힘겨운 훈련도 하였다.

그무렵 쏘도전쟁의 승리를 위한데 나라의 모든 힘을 기울인 당시 쏘련의 형편에서 남을 돌볼 정신적, 물질적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백두산밀영에서도 그러하였지만 훈련기지에서도 식량사정이 몹시 어려워 모두가 허리띠를 조이며 힘들게 지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쌀밥은 고사하고 검은빵조차 넉넉치 못해 밀가루미음으로 때식을 에우는 때가 많으시였다.

백두산밀영에서 쓰시던 쪽무이포단도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그대로 덮고 지내시였다.

강철이 불속에서 단련되듯이 간고한 빨찌산의 생활은 어리신 장군님께 그 어떤 고난에도 끄떡하지 않는 강의한 의지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 한번 마음 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마는 백두산형의 완강성을 키워주었다.

 

 

《어린 장군》

장군님께서 어리신 나이에 비해 정신적으로 조숙하시였던것은 빨찌산의 물을 마시며 자라시였기때문이였다. 백두산투사들이 지니고있던 고결한 정서가 풍만한 자양분이 되여 그이의 넋속에 그대로 흘러들었고 백두산의 메부리처럼 억센 그들의 기질은 장군님의 남아다운 성격에 피와 살을 보태주었다.

하나의 나무잎이 흔들릴 때도 우주의 생명을 느낀다는 말이 있다.

어리신 장군님과 늘 함께 생활하던 항일혁명투사들은 그이의 웃고 뛰노시는 몸가짐 하나하나에서 남달리 일찌기 싹튼 백두산장부다운 기질과 기개, 백두산장군다운 기품을 피부로 느끼며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보통아이들 같으면 철이 없을 유년시절부터 장군님께서는 군복입은 투사들과 꼭같이 생활하시는 어린 군인이시였다.

언제인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신은 3살때부터 군인이였으며 자신의 병사생활은 백두산에서 시작된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시면서 태여나서 처음으로 몸에 덮은것은 어머님의 군복이였고 처음으로 손에 쥔것도 어머님의 권총이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빨찌산대원들의 사격소리를 귀에 익도록 들으며 자라신 장군님께서는 총포성에도 놀램을 모르시였다. 빨찌산대원들의 용맹한 모습을 매일 눈에 새기며 자라신 그이께서는 그들처럼 담이 크시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훈련기지에서 진행되는 빨찌산대원들의 용맹한 군사훈련모습도 목격하시고 지휘관들의 멸적의 돌격구령소리도 들으면서 군사를 익히시였고 총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시였다. 그이께서 본을 따신것도 군대동작이고 군사규률이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훈련기지에서 생활하신지 얼마 안되던 어느날,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던 빨찌산대원들은 병영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집채같은 바위에 오르려고 애쓰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뵈옵게 되였다. 그 바위는 물매가 급한데다가 경사면이 매끄러워 그 나이에서는 타고 오를 엄두조차 낼수 없는 바위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바위를 얼마쯤 오르다가는 미끄러져 내려오시고 또 얼마쯤 톺아오르다가는 아래로 굴러내려오시였다. 하지만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물러서지 않고 몇번이나 다시 오르던 끝에 마침내 그 바위를 정복하시였다.

어리신 그 시절에 벌써 사람들을 감탄시킨 장군님의 특유의 투지와 용기, 그 불굴의 의지와 피나는 노력에는 백두산령장의 기개가 어려있었다.

그러한 장군님을 빨찌산대원들은 백두산의 호걸이라고 칭송하며 안아도 주고 목마도 태워주었다.

그무렵이였다. 하루는 빨찌산대원들이 사령관동지께서 거처하시는 귀틀집앞을 지나다가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였다.

귀틀집마당에 사격훈련용조준틀과 목표판이 갖추어져있었는데 어리신 장군님께서 땅에 엎디시여 조준틀에 설치되여있는 조성, 조문을 들여다보시며 조준련습을 하고계셨던것이다. 그 련습동작이 어찌나 익숙되였던지 모두 탄복했다.

빨찌산대원들이 장군님을 안아일으키고 조성, 조문을 들여다보니 신통히도 목표판의 동그라미안에 정확히 겨냥되여있었다.

흙장난이나 할 애어린 나이에 장군님께서 조준련습을 하시였으니 놀랍다못해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세상에 이름난 명장의 전기를 다 뒤져보아도 두세살의 나이에 사격조준련습을 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이야말로 력사에 없는 일이 아닌가!》

《과연 우리 나라 장군감이 다르다!》

항일혁명투사들은 너나없이 이렇게 감탄하며 더없이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오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백발백중의 신묘한 사격술을 지니신 령장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그이께서 지니신 사격술은 날아가는 새도 좌우량손련발사격으로 명중시키시는 비범한 사격술이다. 《명궁》우에 《신궁》이 있는것처럼 《명사수》의 경지를 초월한 장군님의 신묘한 사격술은 그이께서 유년시절부터 항일의 전장에서 꾸준히 익혀오신것이다.

그이께서는 《락하훈련》도 하시였으며 어른들도 힘들어하는 스키타는 련습도 열심히 하시였다.

어느해 겨울이였다.

빨찌산대원들이 훈련하는것처럼 스키타는 법을 배워달라는 어리신 장군님의 청을 받으신 어머님께서는 스키는 위험해서 어른들도 타기 힘드니 좀 더 큰 다음에 배워주겠다고 타이르시였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기어코 당장 배우시겠다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으시였다. 물러설줄 모르는 아드님의 성미를 잘 아시는 어머님께서는 그 청을 받아들이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처음 얼마동안은 어머님께 이끌리여 동작을 익히시였는데 며칠후부터는 혼자서 스키를 타게 되시였다. 스키를 타고 경사진 산판을 속도있게 지쳐내려오시는 어리신 장군님의 대담무쌍한 모습을 빨찌산대원들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았다.

당시 어리신 장군님의 그와 같은 담력과 대담성에 큰 감동을 받았던 한 항일혁명투사부부는 후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탄생 50돐을 맞으며 김정숙녀사와 함께 스키를 타시는 어리신 장군님을 형상한 조선화 《백두의 정기를 안으시고》를 창작하게 하였다.

주체81(1992)년 2월 어느날 인민무력부혁명사적관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시된 그 그림앞에서 오래도록 발길을 떼지 못하시며 유년시절을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백두산의 품에서 생의 첫걸음을 떼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항일의 폭풍우속에서 강인담대한 영웅남아로, 장군다운 예지와 담력, 호방한 성격을 지닌 어린 장군으로 성장하시였다.

빨찌산의 아들이신 장군님의 성장과정은 그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특이한것이였다.

하기에 항일혁명투사 김책동지는 백두의 기상을 그대로 닮으신 장군님을 늘 《어린 장군》이라고 하였다.

이 호칭에는 김정일장군님께서 항일의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처럼 백두의 슬기와 기상을 지니신 천출명장이 되여주시기를 바라는 주체혁명의 첫 세대들의 념원과 기대가 뜨겁게 담겨져있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녀사의 념원이였고 기대였다. 녀사께서는 아드님께서 백두산장군이신 아버님께 충직한 참다운 빨찌산의 아들이 되기를 바라시였다.

녀사께서는 아버님의 존함에는 어둠을 밝히는 태양이 되여주실것을 바라는 혁명동지들과 우리 인민의 념원이 담겨져있다고 하시면서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밝게 보이며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다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짝이는것이라고, 저 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태양을 대신할수 없는것처럼 아버지장군님은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아버님은 이 세상 만물에 빛과 열을 주는 하늘의 태양과 같이 인민들에게 광명을 주고 앞길을 밝혀주는 만민의 태양이시라는 철리를 가슴에 깊이 새겨넣으시였다.

녀사께서는 늘 아드님에게 《어서 커서 아버님을 잘 모시고 아버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몸바쳐 일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경애하는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을 지니도록 일깨워주시였다.

그리하여 장군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장군님에 대한 충성의 마음을 가슴깊이 간직하시였다.

주체34(1945)년 2월 눈이 펑펑 쏟아져내리는 어느날이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방비를 들고 나가 마당에 쌓이는 눈을 쓸기 시작하시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한 녀성유격대원이 눈이 멎은 다음에 자기가 쓸겠으니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자고 하였다.

어리신 장군님께서는 아버지장군님께서 오실 길인데 자신께서 쓸어야 한다고 하시며 일손을 멈추지 않으시였다.

이때 마당비를 들고 다가오신 어머님께서는 녀대원들에게 벌써 아버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어떤 땐 자신께서도 미처 따르지 못하겠다고 하시며 아드님과 함께 눈을 쓰시였다.

얼마후 마당가에 들어서신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이 사연을 들으시고 아드님을 번쩍 들어올리시며 《우리 정일이가 참 용한데?! 벌써 아버지를 생각할줄 알구.》 하시며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날의 모습은 그대로 백두산을 닮아 름름하게 성장하신 《어린 장군》, 백두산장군의 참모습이였다.

조국해방의 대사변이 다가오고있던 력사적시기 항일대전승리의 포성이 울리는 백두산에서 빨찌산의 아들로 탄생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처럼 혁명적성장의 빛나는 자욱을 새기시며 조국과 민족의 아들, 백두산의 아들로 억세게 자라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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