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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간무력의 강화를 위하여
민간무력은 정규무력과 함께 자위적국방력의 한 구성부분이다. 강력한 정규무력에 그쯘한 민간무력이 안받침될 때 전인민적방위체계가 확립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를 자위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시키는 사업과 함께 민간무력강화에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민간무력강화에서 나선 필수적요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히신 전민무장화, 전국요새화방침을 줄기차게 관철해나가는것이였다. 전민무장화와 전국요새화는 적들의 어떠한 침공도 막아낼수 있는 군사전략상 가장 위력한 방위체계이다. 이것은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철저히 실현하기 위한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민무장화와 전국요새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력사상 처음으로 내놓으신 독창적인 사상이라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계시였다. 사실 전민무장화사상만 하여도 선행고전가들이 내놓지 못한것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주권을 잡은 로동계급이 자본주의사회를 뒤집어엎고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자면 반드시 프로레타리아독재가 있어야 한다는데 대해서는 말하면서도 전체 인민을 무장시켜 새형의 상비군을 가져야 한다는데 대한 사상은 내놓지 못하였다. 전민무장화사상, 전민무장화방침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력사상 처음으로 내놓으신 독창적인 사상이고 방침이였다. 이에 대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주체사상에 기초하시여 혁명무력건설, 국방력강화문제를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의 근본문제로 보시고 로동계급의 혁명적무장력인 정규군을 창설하고 그를 강화발전시키는것과 함께 전체 인민을 튼튼히 무장시킬데 대한 독창적인 방침을 내놓으시였습니다.》 사회주의경제건설을 힘있게 다그치는것과 함께 전체 인민을 무장시키는것은 미일제국주의침략자들을 물리친 우리 인민의 력사적투쟁경험으로 보나 현대전의 요구와 사회주의건설의 합법칙성의 견지에서 보나 전적으로 정당하고 탁월한 방침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민무장화, 전국요새화방침을 빛나게 구현하시여 전인민적방위체계구축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가시였다. 전민무장화와 전국요새화를 빨리 실현할수 있는 방도는 무엇인가, 무엇을 본보기로, 리정표로 삼고 실현해나갈것인가. 장군님의 사색은 이 한곬으로 지향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의 갈피들을 하나하나 더듬어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색은 주체22(1933)년 봄과 그해 11월부터 이듬해 2월사이 90여일간에 걸쳐 진행된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에 집중되고있었다.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는 항일유격대와 유격근거지 인민들이 협동하여 싸운 전인민적항전의 모범이였다. 소왕청유격구는 단순한 유격구가 아니라 조선혁명의 사령부가 자리잡고있은 책원지였다. 때문에 일제는 유격구《토벌》작전의 기본목표를 소왕청유격구로 정하고 유격대 2개 중대가 방어하는 근거지에 5,000여명의 대병력을 들이밀었다. 무장도 포와 기관총을 비롯한 최신식무장이였고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초토화작전》을 벌렸다. 늘 짙은 포연이 먹장구름처럼 하늘을 가리우고있어 사람들은 해빛을 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였다. 소왕청유격구방위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대와 근거지인민들을 간악한 일제와의 결사전에 불러일으키시고 전투를 진두에서 조직지휘하시였다. 유격구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선견지명의 탁월한 전민무장화방침에 따라 적위대, 반일자위대, 소년선봉대를 비롯한 반군사조직이 무어져있었고 청장년들이 이에 망라되여있었으며 근거지안의 모든 사람들이 남녀로소 할것없이 다 무장되여있었다. 그리하여 보총은 물론 렵총과 작탄으로부터 날창, 곤봉, 지어 돌에 이르는 각종 《무기》로 무장한 인민들이 수령님의 탁월한 지휘밑에 항일유격대원들과 함께 류례없는 전인민적방위전쟁에 뛰여들었다. 적위대와 반일자위대 대원들은 항일유격대원들과 한전호에서 싸웠다. 항일유격대가 적구로 진출했을 때에는 독자적으로 방어전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부녀회원들과 아동단원들도 방어공사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전투가 벌어질 때에는 고지에 탄약과 식사를 나르고 정황이 위급할 때에는 무장을 잡고 원쑤들을 무찔렀다. 장군님께서는 탁월한 수령의 령도밑에 군대와 인민이 일심동체가 되여 강대한 적을 타승하고 승리를 이룩한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야말로 자신께서 찾으시는 전민무장화실현의 본보기라고 확신하시였다. 그리고 이 《소왕청》의 귀중한 경험을 현대전의 요구와 나라의 실정에 맞게 발전시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전민무장화와 전국요새화방침을 실현해나가실 결심을 굳히시였다. 바로 이러한 때인 주체56(1967)년 1월 23일이였다. 이날은 미제가 우리측 령해깊이 불법침입시킨 《경호함 56》호가 인민군대의 자위적조치에 의하여 격침된지 닷새째 되는 날이였다. 미제는 《경호함 56》호격침사건을 두고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우리를 걸고들면서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듯이 기승을 부렸다. 정세를 막다른 지경으로 몰아가고있는 적들의 광란적인 소동으로 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초긴장상태가 조성되여있었다. 이런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민방위무력부문의 사업을 맡아보고있던 한 일군을 만나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민방위무력의 전투동원준비를 갖추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한 명철한 결론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로농적위대를 비롯한 민간군사무력의 전투동원준비를 강화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세계전쟁사를 돌이켜보면 아무리 강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라고 해도 인민들이 총을 잡지 않으면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진다는 심각한 교훈을 남긴 전쟁들도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 프랑스가 당했던 일을 실례로 드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프랑스는 동맹국들과 련합전선을 펴고 최신식무장을 갖춘 정규군만도 100여개 사단이나 가지고있었지만 파쑈도이췰란드군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하여 한달도 채 못되는 사이에 도이췰란드군에 항복하는 수치스러운 패전기록을 남기였다. 패전원인이 프랑스군대의 무저항주의에도 있었지만 중요하게는 프랑스인민들의 전쟁공포증에 있었다. 파쑈도이췰란드군은 개전벽두부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교차점들과 눈에 잘 뜨이는 건물들을 폭격하고 《공포선동》을 하는 《제5렬》(정탐망)을 들이밀었다. 《시민들이여 빨리 피난하라! 이 도시는 곧 대폭격으로 파괴된다!》 《게스타포는 순종하지 않는자들을 무자비하게 처벌한다!》 공포선동과 류언비어는 삽시에 온 나라를 휩쓸었다. 프랑스국민들은 향방을 잃고 일시에 도로를 메우며 무작정 피난의 길에 올랐다. 무리를 지어 달아나는 피난민들에 의하여 전선으로 나가던 프랑스군대와 기계화부대는 발목을 잡히고말았다. 이 혼잡한 틈을 타서 파쑈도이췰란드군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수도 빠리를 무혈점령하였다. 결국 《문명강국》의 국민이라고 자처하던 프랑스국민들은 침략자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피난처를 찾아 갈팡질팡하다가 자기 군대의 전진을 방해하는 《차단물》의 역할을 하는 희비극을 빚어냈던것이다. 이야기를 마치신 장군님께서는 세상에는 그 반대의 전쟁, 다시말하여 군대와 인민이 한데 뭉쳐 우세한 적을 타승한 전쟁도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한 대표적실례로서 쏘도전쟁시기에 있은 쓰딸린그라드격전이 될수 있을것 같다고 일군은 대답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이전 쏘련을 침공한 파쑈도이췰란드는 쓰딸린그라드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대규모의 병력과 군사장비들을 동원하였다. 투입된 병력은 무려 90여만에 달하였고 여기에 1,260여대의 땅크, 1,640여대의 비행기, 1만 7천여문의 각종 포들을 들이밀었다. 이때 쓰딸린그라드시민들은 공장에서 땅크와 대포를 만들어 전선에 보내주면서도 매일 18만여명씩이나 방어공사에 동원되였다. 또한 5만여명의 《인민의용군》을 조직하여 군대와 한전호에서 싸우면서 도시를 4개월동안이나 지탱해냈다. 그리하여 전 전선에서 반공격에로 넘어가기 위한 결정적국면을 열어놓았다. 그가 올리는 이야기를 다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물론 그것도 실례로 될수 있겠지만 자신께서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조직지휘하신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에 대하여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그 일군은 흠칫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다른 나라의 도시방어전투에 대해서는 생각하면서도 가렬처절했던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는 왜 스쳐보냈던가 하는 자책감이 너무도 컸던것이다. 정규군도 아닌 유격대와 유격구인민들의 힘으로 국가적인 후방도 없이 강대한 적을 쳐물리친 류례없이 간고했던 소왕청유격구방위전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쓰러진 아들의 총을 잡고 왜놈들을 쏘아눕힌 80고령의 백발로인, 적장교의 가슴에 날창을 박고 희생된 녀인, 작탄을 던져 놈들에게 무리죽음을 준 애어린 아동단소녀… 일군의 머리속에는 유격대와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싸운 유격구인민들의 군상이 떠올랐다. 그들은 비록 군복은 입지 않았지만 모두가 군인이였고 투사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지휘하신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는 유격대와 인민이 한마음한뜻으로 굳게 뭉쳐 일제침략자들에게 무리죽음을 주고 빛나는 승리를 이룩한 력사에 류례가 드문 전인민적방위전투였다. 격동된 일군의 눈빛에서 그의 속마음을 읽으시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말씀하시였다. 《군대와 인민이 한전호에서 결사전을 벌릴 때 그 어떤 강적도 타승할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패한다는것이 동서고금의 전쟁사가 남긴 교훈입니다. 현대전은 최신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이 총동원되는 기계화전이며 립체전입니다. 현대전은 전선과 후방이 따로 없고 전투행동이 하늘과 땅, 바다에서 동시에 진행됩니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를 강화하는것과 함께 민간무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민간무력은 군대와 함께 무장력의 중요한 구성부분을 이루고있습니다. 전체 인민을 무장시키고 전국을 요새화하여 온 나라를 소왕청유격근거지처럼 만들자는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이고 나의 결심입니다.》 일군의 가슴은 후두둑 뛰였다. 아득히 지나가버린 항일의 옛 전구가 수수한 지명이 아니라 전민무장화와 전국요새화의 상징으로, 본보기로 된것이였다. 온 나라를 《소왕청》으로! 이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용단이고 결심이였다. 일군은 그때의 감동을 후날 이렇게 회상하였다. 《세계전쟁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군대와 민간무력을 무장력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정립하시고 온 나라를 <소왕청>처럼 꾸리실 용단을 내리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철의 결심을 받아안으면서 나는 우리의 민간무력이 올라서야 할 높이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소왕청>처럼 남녀로소가 다 무장하고 온 나라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꾸려 감히 침략자가 덤벼든다면 결사의 항전을 벌려 단매에 때려눕히는것, 이것이 우리의 민간무력이 올라서야 할 사상적, 물질적, 군사적높이였다. 이것을 깨달은 순간 나의 심장은 우리의 민간무력이 나아갈 새 리정표를 밝혀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경모의 정으로 세차게 고동쳤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수십년간 일찌기 내세우신 결심을 드팀없이 관철하시여 온 나라를 말그대로 전민이 무장하고 전국이 요새화된 성새로 전변시키시였다.
1960년대 중엽은 날로 가증되는 미제의 전쟁도발책동으로 하여 일촉즉발의 첨예한 정세속에 흘러갔다. 정세가 엄혹한것만큼 이에 대처하여 인민군대와 함께 민간방위무력을 일당백으로 준비시켜야 하였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민방위무력에서 핵심을 이루는 로농적위대만 놓고 보더라도 대렬편성이나 훈련방법에 있어서 전민무장화방침의 요구에 따라서지 못하고있었다. 적지 않은 민방위부문 일군들이 로농적위대대렬을 정치적으로 《제기되는것이 없는 사람》들로 꾸리려는 협애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리유로 로농적위대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게 되였다. 편향은 로농적위대의 훈련방법에서도 나타나고있었다. 일부 단위의 책임일군들은 로농적위대훈련을 정상적으로 하는것이 생산에 지장을 준다고 하면서 훈련강령을 제정된 기일에 집행하지 않고있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것과 같은 형식주의, 요령주의를 범하고있었다. 이러한 실태를 헤아려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이런 편향들이 나타나게 된것은 민방위부문 일군들이 당의 전민무장화방침의 본질을 옳게 깨닫지 못하고있는것과 함께 그들의 정치실무수준이 낮은데 원인이 있었다. 원래 로농적위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친히 조직하신 적위대와 반일자위대의 전통을 이어 주체48(1959)년 1월 14일에 창건하여주신 우리 나라 사회주의근로자들의 민간군사조직이였다. 정규무력인 인민군대와 더불어 당과 수령을 옹호보위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하고 사회주의건설을 무력으로 담보하는 로농적위대는 본질에 있어서 경제건설을 하면서 일단 유사시에 군대와 협동 또는 독자적으로 사회주의조국의 후방을 지키는것을 중요한 사명으로 삼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로농적위대를 창건하신것은 우리 나라 혁명무력건설에서 하나의 력사적사변이였다. 로농적위대가 창건됨으로써 전체 인민들을 무장시킬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군사조직형태가 마련되게 되였으며 나라의 군사적위력을 백방으로 강화할수 있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로농적위대사업에서의 편향들이 갓 조직된 조건에서 나타난것으로 보시고 이를 시급히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로농적위대를 비롯한 민간군사조직을 확대강화하고 그에 대한 지휘체계를 정연하게 세우는데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내오신 무장조직들을 더욱더 공고발전시키는 한편 혁명발전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그 조직구성과 체계를 개편완성하도록 하시였다. 이것은 민간무력건설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은 적극적인 조치였다.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독창적인 방침에 따라 민간군사조직들이 개편되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로농적위대의 책임적인 위치에 몸소 유능한 일군들을 파견하시여 간부대렬부터 튼튼히 꾸리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전반적대렬을 당과 수령을 위하여 목숨바쳐 싸울 사상적각오를 가진 제대군인,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청장년들로 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확대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주체56(1967)년 2월초 어느날이였다. 민방위무력부문의 한 일군을 부르신 장군님께서는 신중한 안색으로 로농적위대대렬편성에서 나타난 편향들을 엄하게 지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대렬편성을 아무런 연구없이 주먹치기로 한것 자체도 잘못이지만 더우기 엄중한것은 일군들자체가 위대한 수령님의 의도에 맞지 않게 사고하고 행동한 그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의 말씀은 일군의 가슴속에 파고들었다. 로농적위대대렬편성사업은 단순한 실무적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정치적문제, 당의 독창적인 전민무장화방침을 실현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심중한 문제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이으시였다. 《전민무장화를 실현하자면 전체 인민을 무장시키는것과 함께 보다 중요하게는 전체 인민을 당과 수령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워 침략자들이 덤벼들 때에는 한사람같이 떨쳐나서도록 하는것입니다.》 민간무력대렬편성사업은 말그대로 온 나라 전체 인민을 무장시키는 사업인 동시에 그들모두를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해 한목숨바쳐 싸울수 있게 준비시키는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이였다. 일군의 심장속에 민간무력대렬사업의 본질을 깊이 심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타난 편향들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을 세우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온 나라의 많은 청장년들이 로농적위대에 입대하여 총을 잡게 됨으로써 그 대렬면모는 완전히 일신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할바없이 확대장성된 로농적위대대렬의 정치군사적위력을 강화하는 사업에도 큰 힘을 돌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로농적위대에 대한 유일적인 당적지도체계와 지휘체계를 철저히 확립하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온 나라의 방방곡곡에 조직된 로농적위대들이 모두가 당의 유일적령도밑에 하나와 같이 움직이고 동원될수 있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로농적위대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하여 정치사업을 앞세우며 이에 군사사업을 옳게 배합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로농적위대원들속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튼튼히 세우고 계급적각성과 혁명적의식을 높이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이 진행되고 군사훈련에 큰 힘이 돌려지게 되였다. 군사훈련을 강화하여 로농적위대원들의 싸움준비를 인민군군인들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것이 그이께서 민간무력부문앞에 제시하신 싸움준비완성목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민방위무력부문의 지도단위로부터 아래 말단집행단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군들이 군사훈련에 대한 립장과 관점부터 바로가지고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이라는 당의 구호를 높이 받들고 생산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항일무장투쟁시기 유격근거지인민들처럼 훈련을 혁명적으로, 전투적으로 해나가게 되였다. 그리고 전국의 모든 단위들에서 로농적위대원들의 군사훈련이 지난날처럼 훈련조직때문에 생산에 지장을 주는것과 같은 편향이 극복되게 되였다. 또한 로농적위대원들은 일정한 기간 교대적으로 훈련에 참가하게 됨으로써 풍부한 군사지식과 높은 사격술을 소유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로농적위대는 급속히 강화되여 대렬면모와 사격술, 전술면에서도 정규군에 못지 않은 수준에 올라서게 되였다. 주체56(1967)년 전세계 로동계급의 국제적명절인 5.1절에 즈음하여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는 로농적위대열병식이 진행되였다. 지금까지 열병식이라고 하면 정규군만 하는것이 관례로 되여왔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당의 령도밑에 믿음직한 혁명적무장력으로 자라난 로농적위대의 전투적위력을 과시하고 싸움준비상태를 한계단 더욱 끌어올릴 구상을 안으시고 성대한 로농적위대열병식을 마련하신것이다. 그이께서는 로농적위대열병식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몸소 그 훈련을 현지에서 지도해주시였다. 어느날에는 귀중한 시간을 내여 훈련장을 찾으시여 씩씩하게 행진해나가는 로농적위대원들의 름름한 모습을 보시면서 로농적위대열병대오가 대단하다고, 훈련모습을 보니 힘이 생긴다고, 정말 현역군인들 못지 않다고 고무해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민무장화에서 로농적위대를 강화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로농적위대는 우리 나라의 민간무력에서 기본을 이루며 전인민적, 전국가적방위체계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있습니다. 앞으로 로농적위대를 비롯한 민간무력에 대한 훈련을 더욱 강화하여 언제든지 동원될수 있도록 싸움준비를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에 의해 준비된 로농적위대열병식은 김일성광장에서 엄숙히 거행되였다. 온 세상이 보란듯이 드넓은 광장을 행진해나가는 열병종대들의 앞에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지키자!》, 《사회주의조국을 철옹성같이 보위하자!》, 《전인민이 무장하고 전국을 요새화하자!》, 《한손에는 총,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튼튼히 틀어쥐자!》와 같은 구호판들이 나아갔다. 그뒤로 기관총과 자동보총으로 무장한 대오와 녀성고사기관총구분대를 비롯하여 고사포, 평사포, 박격포 등으로 장비한 기계화대렬이 행진해갔다. 지축을 울리는 우뢰같은 발구름소리와 기계화부대들의 동음소리는 민방위무력이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었음을 알리는 장엄한 메아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