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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주의는 인류의 리상이며 력사발전의 필연적단계
《사회주의는 인류의 리상이며 사회주의가 승리하는것은 력사발전의 법칙입니다.》 김 정 일
그 어떤 지배와 예속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누리는것은 인류가 오랜 기간 바라던 념원이며 최고리상이다. 인민대중의 이러한 세기적숙망과 최고리상을 실현시켜주는 사회가 바로 사회주의사회이다. 그것은 사회주의사회가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시켜주는 참다운 인민의 사회이기때문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에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마음껏 누리려는것은 인민대중의 세기적인 념원입니다. 인민대중은 자기의 념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압제자들을 반대하는 피어린 투쟁을 벌려왔으며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사회주의사회를 일떠세웠습니다.》 사회주의는 사회적리상을 실현하기 위한 인민대중의 장구한 투쟁의 산물이며 고귀한 전취물이다. 지나온 인류력사는 사회주의야말로 인류가 오래동안 갈망해온 최고의 리상사회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인민대중이 사회주의를 리상과 리념으로 삼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의 리상이라고 할 때 그것은 희망과 지향의 최고목적을 표현하는 범주이다. 리상은 사람들의 삶을 빛내이고 전진시켜나가는데서 중요한 정신적원동력의 하나로 된다. 사람은 리상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투쟁의욕을 가지게 되며 현실을 자기의 자주적요구에 맞게 보다 아름답게 변혁시켜나가게 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다같이 일하고 평등하게 잘 사는 그런 사회를 그리워하였다. 더우기 력사무대에 사람의 존엄과 인격을 무참히 유린하는 착취사회가 출현한이래 예속과 구속, 사회악과 불평등이 없는 사회에서 살려는 사람들의 념원은 더욱더 강렬한것으로 되게 되였다. 그러한 사람들의 지향을 반영하여 수수천년 굽이쳐온 인류력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사회적리상에 대하여 적지 않게 전하고있다. 인류사회가 계급사회로 들어서던 고대시기에 벌써 인류의 사회적리상이 무엇인가 하는것이 각이한 계급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그려졌다. 고대시기 착취받고 압박받는 사람들은 착취와 압박이 없던 과거사회를 동경하면서 그것을 자기들의 리상으로 표현하였으며 착취계급은 고대노예주들의 리익에 맞게 그려진 리상사회설을 주장하였다. 그 대표적실례가 《황금시대》에 관한 전설과 플라톤의 《리상국가》설이다. 중세에 와서 종교적신앙에 기초하여 《행복한 리상사회》에 대한 견해가 제기되였다. 죽어서 《천당》(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한 사람이 죽은 뒤에 가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잘산다는 허황한 세상)이나 《극락세계》(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한 사람이 죽은 다음에 가게 된다는 《즐거움》과 《기쁨》만이 가득찬 세계)에 가야 락을 누릴수 있다고 하는 예수교와 불교의 교리가 비과학적이기는 하나 거기에는 현세에서 실현할수 없는 행복한 사회에 대한 꿈을 죽어서라도 실현해보려는 중세사람들의 갈망이 반영되여있었다. 우리 민족도 오랜 세월을 두고 내려오면서 리상사회에 대한 각이한 견해들을 남겼다. 우리 선조들은 먼 옛날 한 어부가 우연히 찾아가 보았다는 《무릉도원》을 근심걱정없이 잘사는 《생활의 리상촌》으로 동경하여왔다. 고전소설인 《홍길동전》에 나오는 《률도국》도 우리 선조들의 그러한 사회적리상이 반영되여있다. 또한 중세불교철학가 원효(617-686)의 《정국(바른 나라)》에 대한 론의와 같이 리상국가론을 편 학자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자주의식이 높아지고 세계에 대한 리해가 깊어지면서 착취와 압박에서 벗어나 살려는 인민대중의 지향을 반영하여 16세기에 처음으로 공상적사회주의학설이 나왔다. 공상적사회주의학설은 토마스 모어와 캄파넬라에 의하여 처음으로 제창되였고 그후 수많은 사상가, 리론가들에 의하여 발전풍부화되였다. 공상적사회주의학설이 등장하던 시기는 자본주의사회의 발생발전과 때를 같이하고있다. 자본주의는 그 발생초기부터 근로대중에게 봉건의 신분적예속에 못지 않게 새로운 불행과 고통을 들씌웠다. 봉건사회말기에 무너져가는 봉건제도의 억압과 착취에 덧씌워진 자본의 류혈적인 수탈과정은 근로자들에게 참을수 없는 재난을 들씌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땅과 집마저 잃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이게 되였으며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전형으로서 영국에서의 자본의 시초축적과정을 들수 있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울치기》가 류행되였다. 《울치기》란 농민들을 내쫓은 땅에 울타리를 치고 양을 기른데서 나온 말인데 농민들에 대한 토지수탈을 의미한다. 당시 영국에서는 방직업이 발전함에 따라 양털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농업에서 수입이 좋은 목양업은 귀족들의 탐욕을 끝없이 불러일으켰다. 신귀족(자본가)들은 류혈적폭력으로 농민들의 토지와 집, 생활수단을 빼앗아내고 그들을 내쫓았으며 울타리를 치고 양을 대대적으로 사육하였다. 울치기로 쫓겨난 농민들은 생활수단을 잃고 무산자로 전락되여 끊임없이 도시로 밀려들었다. 로동력이 없으면 리윤을 벌수 없다. 영국반동정부는 방랑하는 실업자들을 억압하는 류혈적인 법령을 조작하였다. 16세기 중엽에 발포된 법령에 의하면 떠돌아다니는 사람을 붙잡는 경우 붙잡힌 사람은 자기를 고발한 사람의 노예로 되여야 하며 그가 또다시 방랑하다가 잡히면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자본의 축적을 위한 수탈의 력사는 피와 불의 문자로서 인류의 년대기에 기록되여있다. 하기에 후날 맑스는 자본주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세상에 나타났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봉건제도의 억압뿐아니라 자본주의예속에 대해서도 끝없이 저주하면서 압박과 착취가 없고 다같이 일하고 다같이 잘사는 사회를 갈망하였다. 영국의 철학자였던 토마스 모어(1478-1535)가 1516년에 발표한 공상소설 《유토피어》는 근로대중의 그러한 사회적리상을 반영하고있다. 토마스 모어는 당시 영국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착취와 압박이 없고 모두가 일하며 행복하게 잘사는 리상사회를 《유토피어》로 보고 그 면모를 그리였다. 그에 의하면 《유토피어》는 섬나라로서 사적소유도 빈부의 차이도 없다. 행정단위의 관리들은 선거의 방법으로 추천되고 그들에 의하여 국사가 토의결정된다. 모든 성원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하고 사유재산이 없으며 모든것이 공동소유이다. 로동이 모든 사람들의 의무로 되여있고 누구나 다 일하며 하루 로동시간은 6시간이고 그외 시간은 휴식과 오락으로 즐긴다. 이 나라에는 돈이라는것이 없고 소용되는 물건은 거저 가지며 황금을 제일 천시하여 그것으로는 변기를 만든다. 이 나라에서는 로동과 생활, 휴식이 공동으로 진행되며 의복제도와 식사절차에 이르기까지 모두 엄격한 질서에 따라 진행된다. 또한 빈궁과 불행을 모르며 앓는 사람이 극히 적고 도적도 없다. 부화방탕한 죄는 엄한 벌을 받으며 죄가 되풀이될 경우에는 사형에 처한다. 전쟁은 가장 야수적인것으로 간주되나 군사훈련을 하며 필요할 때에는 전쟁도 한다. 바로 이것이 토마스 모어가 그린 리상사회인 《유토피어》의 면모이다. 공상소설 《유토피어》에서는 《… 사적소유가 있고 모든것을 돈으로 재는 곳에서는 나라일이 옳바르고 공정하게 성과적으로 진행될수 없다.》고 하면서 궁핍과 가난을 제거하는것은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것외에 다른 길이 없으며 로동도구, 생산수단의 공유에 의해서만 《평등하고 정의에 맞게 재산분배》가 가능하다고 쓰고있다. 또한 로동을 사회 모든 성원들의 의무로 간주하고있으며 나라를 《한가정》, 《한가족》과 같은것으로 치고 여기에서는 모두가 통일적인 지휘밑에 움직이며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협조하는것을 《미덕》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뿐만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아첨으로써만 살아가며 필요없는 기쁨을 고안해내는 류의 사람들은 아낌없이 대우하지만 그들이 없이는 어떠한 사회도 있을수 없는 농민, 탄부, 날품팔이군, 짐나르는 마차군과 로동자들에 대해서는 하등의 관심조차 돌리지 않는 그러한 사회를 과연 정의롭고 고마운 사회라고 부를수 있겠는가.》고 개탄하면서 당시 영국에서 발생하고있던 자본주의사회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착취사회를 부정의의 사회로 락인하였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사실과 허구를 묘하게 엮어가면서 리상적인 사회상을 묘사하여 리상사회에 대한 인간의 동경을 한걸음 더 현실에로 접근시켰다. 16세기에 창작된 이 작품이 세계고전의 하나로 된것도 그 문학예술적의의만이 아니라 근로인민대중의 사회적리상을 반영하고있기때문이다. 《유토피어》가 나온 후부터 그것은 착취없고 압박없는 리상사회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였다. 공상적사회주의는 착취와 압박을 종국적으로 청산하고 누구나 다같이 일하고 다같이 잘사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실천적방도를 찾지 못한것으로 하여 실현될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자본주의가 결코 인류의 리상으로 될수 없으며 미래는 사람에 의한 사람의 착취와 압박이 없는 사회주의사회에 있다는것을 시사하였다. 그후 로동계급의 수령들인 맑스와 엥겔스, 레닌의 사상리론활동에 의하여 사회주의는 체계화된 과학적리념으로 전환되였다. 로동계급의 첫 수령들인 맑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가 사람들의 리성과 지혜의 발전에 의하여 실현되는것이 아니라 사회발전의 필연적결과에 의하여 발생발전하는 사회라는것을 론증하였다. 그리고 자본주의멸망의 불가피성과 사회주의승리의 필연성을 과학적으로 론증하였다. 레닌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단계로 넘어간 새로운 력사적조건에 맞게 사회주의리론을 더욱 구체화하였다. 레닌에 의하여 자본주의멸망의 불가피성이 더욱 뚜렷이 확증되고 사회주의혁명의 실천적방도가 구체화됨으로써 로동계급과 인민대중은 착취계급을 반대하는 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서게 되였다. 로씨야에서의 사회주의10월혁명으로 착취제도를 새로운 착취제도로 바꾸어놓은데 불과하였던 이전의 사회혁명과는 달리 착취제도 그자체가 끝장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압박이 청산된 첫 사회주의국가가 탄생하였다. 착취와 압박이 없는 리상사회를 갈망해온 피착취근로대중의 세기적념원은 비로소 사회주의10월혁명으로 지구의 6분의 1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에서 처음으로 실현되였다. 사회주의사상의 현실화, 이것은 자본주의가 결코 《영원한》것이 아니며 자본주의의 멸망과 사회주의의 승리가 력사의 법칙임을 실천으로 확인한 위대한 사변이였다. 10월혁명의 승리는 자본을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서기 시작한 세계 수억만 근로대중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후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전세계적범위에서 힘있게 벌어져 불과 반세기 남짓한 기간에 사회주의는 세계적인 체계로 확대강화되였다. 인류가 세기를 두고 바라던 리상사회에 대한 지향은 인간의 자주의식발전과 함께 동경과 공상의 단계를 거쳐 사회주의라는 체계화된 과학적인 리념으로 정식화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현실로 전환되게 되였다. 사회주의제도가 섰다고 하여 인류의 리상이 완전히 실현되는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연과 사회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으로 살것을 요구한다. 사회주의가 인류의 리상으로 되려면 사람들의 자주적지향과 요구를 완전히 구현한 사회로 건설되여야 한다. 사회주의의 길은 결코 순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이전 사회와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사회제도로서 새로운 원리와 방법에 의거하여 건설해나가야 한다.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사회주의의 길에는 예상치 못한 난관과 우여곡절도 있을수 있다. 그러나 착취와 압박이 없는 평등한 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념원을 담은 사회주의리념은 사회적존재인 인간의 본성적요구를 반영한것으로서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는 한 달라질수 없다. 문제는 인민대중의 자주적지향과 발전하는 현실의 요구에 맞게 사회주의리론을 끊임없이 심화발전시켜 사회주의건설에 구현해나가는데 있다.
2)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로 넘어가는것은 력사발전의 법칙
사회가 인민대중의 자주적인 지향과 요구에 따라 발전하는것은 막을수 없는 력사의 기본흐름이다. 사회주의가 인류의 리상이고 력사발전의 기본흐름으로 되는것은 인민대중의 본성적요구인 집단주의를 철저히 구현하고있기때문이다. 사회주의의 본질은 집단주의에 있으며 그 우월성과 생활력의 원천도 집단주의에 있다. 집단주의란 한마디로 말하여 개인의 리익보다 집단의 리익을 더 귀중히 여기는 사상이다. 집단주의는 사람의 본성적요구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집단주의는 사람의 본성적요구이다. 사람은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활동하여야 생존하고 발전할수 있다.》 사람은 사회관계를 맺고 사회적집단속에서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존재인것만큼 사회적집단과 운명을 함께 하면서 서로 협력하며 살려는 집단주의를 본성적요구로 하고있다.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은 사회적집단속에서만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갈수 있다. 집단주의는 사람이 사회적집단의 성원으로서 보람있게 살기 위한 근본요구이다.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은 집단과 떨어져 고립적으로 살며 발전할수 없다. 사람은 사회적집단속에서만 자기의 운명을 훌륭히 개척할수 있다.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사는것은 사람들의 생존방식이다. 사람은 발생 첫 시기부터 서로 협력하고 힘을 합치면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여왔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회적집단을 떠나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할수 없고 살아갈수도 없는것이다. 이와 함께 사람은 서로가 밀접한 련관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집단의 한 성원이기때문에 집단앞에 지닌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여야 집단의 사랑과 믿음속에 참된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수 있다. 집단앞에 성실한 사람은 언제나 집단과 집단성원들의 사랑속에서 살기때문에 자기의 사회적존재가치, 삶의 가치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보람찬 삶을 누리게 된다. 사회와 집단을 귀중히 여기고 집단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나라와 민족의 륭성번영을 위해 한생을 바친 사람들은 비록 그가 짧게 살았다 해도 세대를 이어가며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그들의 이름은 력사에 길이 남게 된다. 력사는 사회의 진보와 인류의 번영을 위하여 자기의 한몸을 아낌없이 바친 수많은 사상가, 정치가, 문인, 과학자, 장군들을 기록하고있다. 오늘도 많은 나라들에서 민족이 낳은 위인들과 명인들을 기억하고 내세우고있는것은 민족과 인류앞에 쌓은 그들의 공적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들처럼 살려는 인간본연의 자세와 립장에서부터 출발한것이라고도 볼수 있는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아무것도 해놓은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호의호식하면서 살았다고 하여도 그들의 한생은 아무러한 가치도 없고 허무한것에 지나지 않으며 또 력사에 남을것도 없다. 사람은 오직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헌신하며 서로 돕고 이끌면서 살아가는 집단주의적인 생활속에서만 사회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떳떳하고 보람찬 삶을 누릴수 있다. 집단주의는 사회적집단의 위력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조건이다. 사람은 사회적집단속에서만 창조적역할을 다할수 있다. 사람은 원래 자연과 사회를 자기의 요구에 맞게 개조하면서 살아가는 창조적인 존재이다. 사회적존재로서의 인간의 창조적역할은 사회적집단을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사람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집단적으로 뭉쳐 하나의 큰 힘을 발휘할 때에만 자연과 사회를 원만히 개조하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것을 얻어낼수 있다. 그것은 사람이 집단적으로 활동할 때 고립된 개인으로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를 발휘하게 되며 자기의 재능도 마음껏 발휘하게 되기때문이다. 지난날에도 외래침략자들과 착취계급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인민대중은 집단적항거의 정신을 발휘하였으며 어려운 생활처지를 서로 힘을 합쳐 개선해나가는 미풍을 발휘하였다. 사람이 가지게 되는 힘은 고립된 개인의 힘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집단의 힘이며 사회적운동을 담당하고 추동하는 주체는 하나로 뭉친 인민대중이다. 그러므로 집단의 힘,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을 발양시켜야 사회력사를 빨리 발전시킬수 있다. 이처럼 사람은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집단을 위해 헌신하며 서로 돕고 이끌면서 살아야 자기의 운명도 성과적으로 개척할수 있고 사회적존재로서의 보람찬 생활을 누릴수 있다. 이것은 사회를 인민대중의 집단주의적요구를 구현한 사회로 건설하는것이 력사발전의 기본흐름이라는것을 보여준다.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 사회주의에로 넘어가는것은 인류사회발전의 력사적총화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자면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로부터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 사회주의, 공산주의에로 넘어가야 한다는것이 인류사회발전의 력사적총화이다.》 인민대중은 적대계급사회에서 자주성을 무참히 유린당하여왔다. 압박이 있는 곳에서는 반항이 있고 반항이 있는곳에서는 혁명이 일어나는 법이다. 인민대중은 장구한 력사적기간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왔다. 이 과정에 계급사회의 교체가 진행되고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적대계급사회의 교체는 노예의 철쇄를 봉건의 사슬로, 다시 자본의 멍에로 바꾸어놓은것과 같이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억압하는 형태에서의 변화를 가져왔을뿐 인민대중은 여전히 사회정치적예속에서 해방되지 못하였다. 적대계급사회에서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실현되지 못한것은 그것이 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였기때문이다. 개인주의는 집단의 리익과 개인의 리익을 대립시키고 사회와 집단의 리익을 적대시하는 사상이다. 개인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집단의 리익은 안중에 없이 자기자신만을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한다. 개인주의는 사적소유제도의 산물이다. 원시사회의 붕괴와 함께 출현한 사적소유제도는 사회적부를 개인들의 소유로 넘기고 개인의 의사에 따라 처리하게 하는 법적장치이다. 사회적부는 사회적인간이 살며 활동하기 위한 필수적조건이다. 그런데 그것을 개인들의 수중에 집중시키면 사람들속에서는 더 많은 재부를 독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게 되며 자기 개인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는 개인주의가 생겨나게 된다. 개인주의에서는 모든 생활에서 개인의 리익이 우선시되기때문에 사람들사이에는 《자기의 몫》을 둘러싼 마찰이 일어나게 되고 생존경쟁의 암투와 권모술수, 아첨과 협잡들이 생겨나게 된다. 사적소유와 그에 의하여 산생되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는 불피코 사회를 적대되는 계급으로 분렬시키고 계급적대립과 사회적불평등을 가져오며 인민대중에 대한 소수 지배계급의 착취와 압박을 동반하게 된다. 특히 자본주의사회는 개인주의를 극소수 자본가들의 탐욕으로 전환시키고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의 적대적모순을 극도에 이르게 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경쟁은 철저히 자본가들의 리기적목적에 복무하며 사회를 승자와 패자로 갈라놓을뿐아니라 패자가 승자에게 먹히우는 심각한 경쟁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벌어지는 자유경쟁은 사적소유를 전제로 하고있는것만큼 약육강식의 불평등한 경쟁으로 되지 않을수 없다. 자유경쟁을 통하여 생산수단을 가진 일부 자본가들이 더욱더 치부함으로써 《부익부, 빈익빈》의 량극분화는 더욱 심화된다. 국내적으로는 기업과 기업사이의 치렬한 경쟁이 벌어져 패한 기업이 파산되고 파산된 기업주는 고용로동자로 전락되며 거기에 소속되여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자로 되여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게 된다. 국제적으로는 시장과 자본투하지, 원료와 동력의 공급지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져 전쟁과 같은 참사가 빚어지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자유경쟁이 강화됨에 따라 그로부터 초래되는 계급적대립과 사회적불평등은 더욱 커진다. 《만민복지》, 《문명모델》을 념불처럼 외우는 미국의 경우를 보아도 인구의 0.002%밖에 안되는 억만장자들이 국내총생산액의 45%를 차지하고 호화주택에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하고있는 반면에 수많은 근로자들은 아무런 생산수단도 없이 하루하루를 근근히 연명해가고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또한 자기 개인의 리익을 기준으로 하여 모든 인간관계를 맺고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집단(인민대중)을 위하여 자기 개인의 리익을 희생한다는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는 일이다. 대가와 보상이 없이는 남을 위하여 복무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 개인주의이다. 《각자는 자기자신만을 위하여, 신만이 전체를 위하여》, 바로 이것이 개인주의적사고방식에 물든자들의 구호이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니 결국 이 구호는 자기 개인의 리익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뜻을 강조하는것으로 된다. 현실적으로 오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과 재물을 위해 사람들사이에, 지어 부부간, 부자간, 형제자매간에 죽일 내기를 하고있으며 사기협잡, 강탈행위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있다. 돈만 있으면 병신, 멍텅구리는 물론, 개까지도 권력의 자리를 차지할수 있지만 돈없는 사람들은 인간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길가의 조약돌처럼 무참히 짓밟히우는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사회이다. 력사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에서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실현될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한편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은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섰다. 현시대는 인민대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으로 등장한 자주성의 시대이다. 사람의 자주적요구는 집단주의를 통해서 실현된다. 그런것만큼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자면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본주의사회로부터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사회로 넘어가야 한다. 이것은 20세기를 보내며 인류가 새긴 교훈이며 21세기에 들어서서 더욱 확신하게 되는 력사의 진리이다. 오늘 사회주의재생운동을 적극 벌리고있는 이전 사회주의나라 인민들은 물론 새 사회건설의 길에 들어선 발전도상나라 인민들도 사회주의에로 나가는것이 가장 정당한 길이라는것을 자각하고 사회주의를 옹호하며 투쟁하고있다. 베네수엘라대통령 우고 챠베스 프리아스는 지난해 2월 27일 한 국제회의에서 연설하면서 사회주의사상의 정당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사상에 의해 해결될수 있다고 말하였다. 세계를 돌아보면서 이러한 확신을 얻었다고 하면서 그는 사회주의사상은 현재 베네수엘라가 내놓은 사상과 모순되지 않으며 세계에서 빈궁과 기아, 부정의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21세기에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베네수엘라의 수도 까라까스에서는 정부의 사회주의로선을 지지하는 이 나라 로조들의 시위행진이 진행되였다. 수만명의 로조성원들은 《사회주의를 향하여 앞으로》라는 구호를 웨치며 시내거리들을 따라 행진하였다. 현실은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사회로 넘어가는것이 인민대중의 자주성의 실현에로 향하는 력사발전의 필연적요구이며 따라서 사회주의는 사회발전의 합법칙적인 필연적단계라는것을 말하여준다.
1980년대말-1990년대초에 이르러 인류는 충격적인 사변에 접하게 되였다. 동유럽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되였으며 지구상에 첫 사회주의국가로 이름떨친 이전 쏘련이 해체되여 자기의 존재를 마쳤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여러 나라들에서 집권당이 붕괴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된 사변은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사회주의를 지향하던 사람들속에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지 않을수 없었다. 력사적사변은 각이한 사회적집단이 내세우는 사상의 진리성을 검증하는 계기로 된다.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제도가 붕괴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된 비정상적인 사태는 사회주의의 원쑤들에게 있어서 절호의 기회로 되였다. 사회주의가 여러 나라들에서 붕괴되자 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은 기다렸다는듯 쌍수를 들고 환성을 올렸으며 사회주의가 《종말》을 고했다고 떠들어대기 시작하였다. 이것으로 하여 사태의 진상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고있던 일부 사람들속에서 사상적혼란이 일어나고 세계의 자주화위업실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였다. 그러면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발전하던 력사의 방향이 달라졌는가.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의 좌절에 대한 견해를 옳게 세우는것은 사회주의의 운명뿐아니라 인류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절박한 문제로 나섰다. 이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사회주의위업의 가장 충실한 옹호자이시며 수호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하여 내려지게 되였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일부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사태의 본질에 대하여 이미전부터 환히 꿰뚫고계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전 쏘련이 해체된지 9일만인 주체81(1992)년 1월 3일에 발표하신 고전적로작 《사회주의건설의 력사적교훈과 우리 당의 총로선》을 비롯한 여러 로작에서 그에 대한 명확한 견해를 밝히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선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된것은 력사발전의 기본흐름에서 볼 때 부분적이며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된것은 력사발전의 기본흐름에서 볼 때에는 부분적이며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명제는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의 붕괴가 력사발전, 사회주의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옳바른 견해를 주었다.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된것은 우선 력사발전의 기본흐름에서 볼 때 부분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부분적인 현상이라고 하는것은 사회주의좌절이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으로서 사회주의전반에 큰 영향을 줄수 없다는것이다. 사물현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인식활동에서 견지해야 할 중요한 문제의 하나가 전체와 부분간의 호상관계를 잘 가려보는것이다. 전체와 부분은 련관되여있지만 부분은 전체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일부만을 보고 그것이 전체인것처럼 과장하거나 절대화해서는 안된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인것이다. 몇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의 좌절이 곧 사회주의전체의 좌절로 될수는 없다.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될 당시 여러 대륙에 사회주의나라들이 존재하였고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사회주의기치가 더욱 힘있게 날리고있다. 이 엄연한 현실을 놓고 찾게 되는 결론은 사회주의전반에 대한 평가는 사회주의나라들의 량적측면이 아니라 질적측면을 놓고 평가하여야 한다는것이다. 사회주의가 좌절된 나라들이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나라들이 지난날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회주의적성격을 온전히 갖추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전반적인 사회주의발전에 큰 영향을 줄수 없다. 그러나 현재 사회주의를 지키고있는 나라들이 사회주의에 고유한 원칙과 성질을 가지고 사회주의를 질적으로 다져나가고있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의 전반적발전에서 의연히 주동적이며 결정적인 역할을 놀수 있는것이다. 실지로 오늘 사회주의를 지키고있는 나라들이 세계에서 차지하고있는 정치적지위는 더 말할것도 없고 경제, 군사적위력 또한 대단히 크고 강하다. 특히 공화국에서 건설하고있는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고유한 본성과 우월성에 맞게 공고발전되고있으며 그 영향력은 날을 따라 더욱 확대강화되고있다. 오늘 사회주의전초선에 서있는 공화국에 대해 극도의 적대감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고있는 미국까지도 체제를 인정한것은 세계에 미치는 주체의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실증해주고있다. 이것은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의 좌절이 어디까지나 사회주의전체의 좌절이 아니라 부분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된것은 또한 력사발전의 기본흐름에서 볼 때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가 사회주의에로 나가는것은 막을수 없는 력사발전의 흐름이며 법칙이다. 사회주의는 인류의 지향이고 념원이며 선행한 그 어느 사회에도 비할수 없는 높은 발전능력을 가진 사회이다. 하지만 그 발전행정은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탄치 않았다. 사회주의나라들은 전인미답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에 일련의 난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것은 사회주의건설이 인류력사발전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적변혁과정이기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착취사회가 몇천년동안 남겨놓은 온갖 력사적오물을 청산하기 위한 장기간의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자기 발전의 길을 새롭게 개척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우기 세계에 제국주의가 남아있는 조건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한 투쟁은 내외원쑤들을 반대하는 첨예하고 복잡한 투쟁을 동반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주의전진도상에는 예견치 않았던 일도 생길수 있고 풀기 어려운 문제도 제기될수 있으며 실패의 곡절도 겪을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속에서도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비할바없는 커다란 우월성과 생활력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사회주의가 더 깊이 뿌리내리고 낡은 사회의 유물이 청산되여 인민대중의 정치사상적통일과 창조적위력이 강화됨에 따라 사회주의제도는 우월성을 더욱 높이 발휘하게 될것이며 멀지 않은 앞날에 경제기술적면에서도 사회주의나라들이 발전된 자본주의나라들을 훨씬 릉가하게 되리라는것은 명백하다. 이것은 한두번의 우여곡절이 곧 종국적인 파산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말해준다. 세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견해를 같이하고있다. 그것은 남조선의 진보적지식인들속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쏘련해체와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에 대한 남조선의 진보적지식인의 견해를 종합분석한데 의하면 전체의 62.7%가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일뿐 사회주의사상과 리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대답했으며 응답자의 25.4%는 이를 《보다 발전된 사회주의를 위한 일시적후퇴와 진통》으로 보았다.(남조선잡지 《신동아》, 1992년 6월호) 주체81(1992)년 4월 많은 나라 공산당, 로동당들이 사회주의조선의 수도 평양에 모인 가운데 채택된 평양선언은 사회주의는 인류의 리상이며 인류의 미래를 대표하는 사회, 진정한 인민의 사회라는것을 확언하였다. 오늘 사회주의의 국제적영향력이 비상히 장성강화되고 사회주의리념을 지향하는 많은 나라의 공산당, 로동당들이 집권당의 지위를 차지하고있으며 세계적판도에서 사회주의의 재생, 재건운동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는것은 사회주의는 력사의 필연이며 진리이라는것을 뚜렷이 증시해주고있다.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의 좌절을 사회주의의 《종말》로 묘사하는자들은 례외없이 사회주의의 적들뿐이다.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사회주의가 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그것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갖은 발악을 다해왔으며 로골적인 침략과 간섭, 경제적봉쇄, 사상문화적침투 등 사회주의를 질식시키려고 끊임없이 책동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영향력과 생활력을 막을수 없었다. 그러한자들에게 있어서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의 좌절은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로서 그야말로 《감지덕지》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자들은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자본주의의 《승리》니, 사회주의의 《종말》이니 하는 판단을 서두르면서 력사를 외곡해나섰던것이다. 현실은 사회주의의 정당성과 승리에 대한 신심을 굳게 가지는것과 함께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적책동과 궤변에 대하여 언제나 각성을 높이고 제때에 타격을 가해야 한다는것을 교훈으로 새겨주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으로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된것은 비정상적인 현상이라는데 대하여서도 밝혀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집권당이 붕괴되고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로 되돌아간것은 인류력사의 전반적흐름에 비추어볼 때 정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볼수 있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당들이 붕괴된것은 당건설과 활동의 환경과 조건으로 보아도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사회주의에로 나아가는 인류력사의 흐름은 로동계급의 당에 의하여 향도되며 사회주의사회의 전진은 로동계급의 당의 옳은 령도에 의해서만 이루어질수 있다. 로동계급의 당의 옳은 령도가 없이 사회주의사회발전의 추동력인 혁명의 주체를 강화할수 없고 그 역할을 높일수 없다. 사회주의사회는 당건설과 활동의 조건으로 보아도 자본주의사회보다 비할바없이 유리하다. 자본주의사회는 사적소유관계로 하여 리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계급들이 존재하며 그로 하여 로동계급의 당건설과 활동에서 크게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로동계급의 당건설과 활동을 제약하는 사회경제적 및 계급적조건이 없어지고 당의 사회계급적지반이 더욱 넓어지며 당이 자기의 인민적시책을 통하여 인민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받을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집권당이 붕괴된것은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현상이 아닐수 없다.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자본주의가 복귀된것은 부인할수 없는 력사적현실인것만큼 사태의 진상을 옳게 파악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태의 진상을 옳게 파악해야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의 붕괴가 결코 사회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잘 알수 있고 력사의 교훈도 바로 찾을수 있다. 사회주의가 붕괴된 나라들을 보면 례외없이 사회주의건설을 령도해온 집권당이 사회주의사회의 향도적력량, 로동계급의 혁명적당으로서의 성격을 포기한것으로 하여 사회의 사회주의적성격이 이미 흐려졌던 나라들이다. 사회주의위업을 승리적으로 개척해나가자면 로동계급의 당을 백방으로 강화하고 당의 령도적역할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사회주의가 붕괴된 나라들의 집권당들은 자기 대렬을 튼튼히 꾸리지 못한데다가 대중과의 사업도 바로하지 못하였다. 이 과정에 무기력해진 당은 혁명적원칙에서 탈선되고 당의 변질로 하여 머리를 쳐든 반혁명적역류를 이겨낼수 없었다. 사회주의의 배신자들은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적책동에 장단을 맞추어 《사회주의의 갱신》, 《사회주의의 발전속도의 추진》이라는 귀맛좋은 구호로 대중을 《개혁》, 《개편》에로 유혹하였으며 나중에는 공공연히 《시장경제》니, 《다원주의》니, 《자유화》니 하면서 자본주의오물들을 마구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집권당의 변질은 사회에 대한 당의 정치적령도기능을 마비시켰으며 사회주의라고는 하지만 실지로는 낡은 사회의 정치방식이 그대로 답습되게 되고 국가와 사회를 관리하는 사업은 그 주인인 인민대중과는 동떨어져 특정한 사람들의 권력행위로 변하게 되였다. 이것은 생산과 건설에서 무규률성을 조장시키고 경제를 침체상태에 빠뜨렸으며 인민생활을 비롯한 사회생활전반에서 일대 혼란과 무질서를 산생시켰다. 이 과정에 당과 국가에 대한 대중의 지지와 신뢰는 깨여지고 사회는 자기 발전의 위력한 추동력을 잃게 되였으며 사회주의라는 이름만이 남게 되였다. 사회를 사회주의사회의 본성적요구에 맞게 발전완성하지 못한 이러한 나라들은 결국 참다운 의미에서의 사회주의가 아니였다. 이와 같이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되게 된것은 사회주의사회의 정치적령도조직인 당의 변질로 사회주의가 자기의 고유한 본성을 잃은것으로 하여 초래된 결과이지 사회주의제도 그자체에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다. 결국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의 붕괴는 참다운 사회주의가 아닌 가짜사회주의의 붕괴이다. 이에 대하여 당시 일본의 경제학자이며 사이다마대학 교수였던 가마꾸라 나까오도 《쏘련 및 동유럽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체제의 좌절은 결코 사회주의자체의 좌절이나 붕괴를 의미하는것은 아니다. 사회주의를 발전시킬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사회주의의 자주적주체형성을 소홀히 한 체제, 말하자면 사회주의의 외곡체제가 좌절붕괴된것이다.》라고 비교적 정확히 평가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일부 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의 붕괴에 대한 명백한 평가를 주심으로써 사상정신적으로 혼란을 겪고있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의 존재와 그 정당성에 대한 신심을 안겨주고 세계사회주의위업의 전진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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