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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태양민족 우수성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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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은 기다리면 때가 온다는 말들을 하군 한다. 그렇지만 그날만은 사람들이 바란다고 해서,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찾아온 그런 날이 아니였다. 우리 조선민족 력사에만이 아니라 인류사에도 처음인 사변적인 일이 벌어졌던 그 감격적인 날,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인 60여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의 평양송환의 날은 드디여 오고야말았던것이다. 모두가 항미전의 영웅, 통일의 영웅들로서 적들에게 포로되여 부당하게 장기간 감옥에 억류되여있으면서도 불굴하는 의지로 끝까지 혁명적인 지조를 지켜냈던 통일애국투사들, 그들이 오늘은 마침내 우리 장군님의 용단과 믿음과 크나큰 사랑으로 하여 아무러한 부대조건, 교환조건도 없이 떳떳이 판문점을 통과하여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였으니 그것은 그야말로 개선행진이였다. 바로 그 력사의 날에 온 조선인민만이 아닌 인류만민이 보내는 격찬에 넘친 뜨거운 환영의 갈채속에 그들이 광명의 세계로 넘어서는 순간 전체 개성시민들이, 아니 온 조국이 떨쳐나와 고생도 많았던 비전향장기수로인들을 눈물로 부둥켜안고 오래동안 놓지 못했다.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이 마치 어린애와도 같이 어머니품에 꽈악-안겨 뼈속깊이에서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쏟으며 오열을 터치던 그날, 순전히 남반부출신, 지리산에 태줄을 묻고자란 사람으로서 북에는 아무 가까운 친지도 없는 황갑동이였지만 그는 처음으로 눈물에 젖어드는 한가슴에 어머니와 형제를 안아보았다. 동포들, 겨레들을 안아보고 민족을 안아보았다. 조국을 안아보았다. 가슴이 세차게 뛰놀고 심장의 박동이 뚝 멎을것만 같은 상봉의 그 순간, 사람들마다 안겨주는 동포애의 정이 너무도 뜨겁고 조국에 와서, 평양에 와서 보는 현실이 너무나도 벅차고 경이적인것이여서 말로는 다 표현할 길이 없었다. 실제로 이번에 비전향장기수들이 판문점을 넘어서자마자 동포애의 정 넘치는 북반부인민들의 열렬한 환영의 꽃바다와 헤여졌던 가족, 친척, 친우들과의 감격적인 상봉이 그야말로 눈물의 바다로 펼쳐졌었다. 많은 동료 비전향장기수들이 오랜 세월 헤여졌던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친척, 친우들과의 격동적인 상봉의 기쁨을 나누는것을 보며 갑동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남조선이 고향이여서 경상남도 하동출신인 그에게는 작별의 쓰라림은 있었지만 부모형제들은 고사하고 친지하나 없는 공화국북반부에 와서 그런 뜻깊은 상봉을 기대할수가 없었다. 혹시는 고향사람들중에 전쟁시기 의용군에 참가하였다가 북에 온 젊은 친구들이라던가 지리산지구에서 함께 싸우다가 일시적후퇴시기에 인민군대에 편입되여 북행길을 했던 사람들중에 더러 아는 사람들이 있을수도 있지만 그 누가 지금 어디에서 뭘하고있는줄 알고 그들을 찾는단 말인가. 그래도 혹시나 희망을 가져본다면 정전직후에 리현상총사령을 호위해가다가 남해바다가에서 적들에게 포위되였을적에 최고사령관동지께 올릴 최후의 보고를 안고 용케도 빠져나간 한두사람이 기어이 살아 북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그것이 딱실한 소린지 믿기 어려운 일이였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당시 전투병단에서 호위를 책임지고 떠났었다는 걸음새가 빠르기로 유명하고 행동이 기민했던 손동찬련락과장이 십분 동행했을수도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아직은 가설에 불과했다. 자기가 여기로 떠나올 때 별동무-황순이가 북에 가게 되면 어떻게 하던지 《제비》의 행처를 꼭 찾아보아달라고 하던 부탁을 한시도 잊지 않고있는 황갑동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즈음에 계속되는 뜻깊은 행사들에 참가하여 만나게 되는 여러사람들과 길 지나는 사람들중에도 유별하게 걸음걸이가 특별히 빠른 행인들만 보아도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려지면서 무심히 보이지를 않았다. 그럴 때면 지리산에서 《제비》와 함께 선요원공작을 하던 나날의 회억들이 더욱 그리워지군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별로도 그 전우들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지던 그날, 못내 맘속으로 기대해보던 손동찬이와의 상봉이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지리산의 전우이며 인상깊은 부대지휘관이였던 한 희생된 동지의 딸과의 뜻밖의 상봉이 이루어질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날 따라 텔레비죤방송에서 조직하는 방송야회가 있다고 하여 비전향장기수들모두가 아침부터 명절기분이 되여 공연히 숙소에서 서성거리였다. 그도 그럴것이 조국의 품에 안긴 비전향장기수 전원이 전국의 시청자, 조국인민들과 처음으로 화면을 통해 마주앉아 감격적인 상봉과 뜨거운 호흡을 같이 하면서 정다운 대화를 나눌수 있었기때문이였다. 황갑동이는 방송야회에 출연하여 특별히 발언을 하게 되여있는 동료들과 함께 한발앞서 숙소를 떠나 소형뻐스에 올라 텔레비죤방송회관으로 향하였다. 고려호텔을 나선 차는 벌써 멀리서부터 비전향장기수들의 기동을 알고 길가다가 멈춰서 한참씩 열광적으로 손을 흔들어 말없는 인사를 보내주고있는 평양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김일성광장앞을 지나 대동강반에 시원히 건네놓인 옥류교를 건너섰다. 길 량옆에 무성하게 우거진 짙푸른 백양나무의 소소리높은 우듬지들에는 흰 구름들이 봉긋이 목화송이마냥 피여나있었다. 저기 어느 한 나무의 높은 아지끝에 파란 잎새를 붙안고있던 참새 한마리가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어올적마다 떨어질듯 말듯 하면서도 마치 한다리를 노끈으로 비끄러매놓기라도 한듯 용케도 떨어지지 않고 장난치는 모양을 차창가로 내다보며 즐거운 웃음발을 날리기도 했다. 시원히 열려진 아스팔트우로 미끄러지듯 하고있는 자동차, 산듯한 빛갈의 소형뻐스는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기쁨, 모든 행복과 영광을 다 싣기라도 한듯 경적소리도 경쾌히 달리고있다. 오른쪽편으로 련이어 서있는 현대양식의 우아찬란한 건물들, 큰 공을 한손으로 슬쩍 굴리기만 해도 한데 묶어세워놓은 여러가지 색갈의 봉들이 일시에 흩어져 나갈것만 같은 형상의 동평양 보링그관과 머리우에 별나게 채양이 우로 말리여 올라간 멋진 등산모를 쓴것 같은 청년회관, 건축형성이 독특한 무게있고 문화적인 동평양대극장들을 련이어 끌어당겨 커지게 하였다가 옆으로 흘러보내면서 쾌속으로 달리고있었다. 노래에 있는것처럼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도 즐거운 그런 날이였으나 지금 좌담회장소로 향하고있는 황로인의 마음은 어쩐지 아까부터 산란하였다. 방송야회를 주관하는 전문일군들이 사전에 찾아와서 료해해보고 누구든지 지리산출신의 옛 빨찌산이 한명 나와서 거기서 싸우던 때의 이야기를 꼭 해야 한다기에 지리산태생으로서 따라나서기는 했으나 전혀 자신이 없었던것이다. 겸손히 사양하자고 해서가 아니라 솔직히 그는 말을 잘 못했다. 게다가 경상도말과 전라도말의 얼치기인 그 사투리는 어떻게 하고… 어느덧 그들이 탄 뻐스가 문수거리를 지나 아름드리 버드나무들이 우거진 넓은 공지를 옆에 끼고 달렸다. 오래지 않아 시원한 공지를 앞에 두고 높은 통벽에 노란빛 타일을 바탕으로 흰 눈이 흩날리는 백두산천지를 쪽무이로 형상한 덩지 큰 건물이 나졌다. 그 조형미나는 장방형의 건물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로 지어주신 텔레비죤방송회관이라는것이였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대기하고있는중이던 중앙방송위원회 일군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어느 한 방에 들어가서 휴식하면서 기다리게 되였다. 황갑동은 이제는 어느덧 77살의 로인이였지만 아주 정정한 몸으로 안락의자에 등을 기대지도 않고 똑바로 앉아서 이제 방송야회 무대의 마이크앞에 나가 뭐라고 해야 할지 마음속 발언요지를 뒤적이며 할 말을 골라 입속말로 중얼중얼 외워보고있었다. 《…저넌요 지리산에서 나서자라 지리산에서 싸우다가 지리산에서 잡혀가지고 남원, 광주, 대전, 청주를 거쳐서 35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온 황갑동이라는 사람입니다. 이름은 황갑동이, 별호는 <지리산의 갈범>이고요. 저는 비전향장기수랄뿐이지 별로 크게 한 일은 없습니다. 그저 어릴적에는 마을어른들의 착한 심부름군이였고 48년 고향에서 공화국창건을 전후한 시기에는 선거자명단이랑 날라가지고다니는 착실한 통일의 심부름군이였으며 입산후 지리산시절에는 유격대의 선요원으로서 련락이 위주인 혁명의 심부름군이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들어가서도 감방동지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말없는 심부름군이요 <감호소>에서 출소해나와가지고서는 다 헤쳐진 동지들의 끊어진 선을 이어주기 위해 남몰래 뛰여다니군 하는 <만남의 집>의 심부름군이였습니다. 이처럼 저는 한마디로 말하잘것 같으면요 저 거시기 총체적으로 <나라의 심부름군>, <통일을 가져오기 위한 심부름군>으로 오늘까지 일생을 살아왔을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아무것도 해놓은것 없는 저같은 사람꺼정도 비전향장기수로서 고생많았다고 판문점에까지 일군들을 마중내보내 맞아주시였으며 통일애국투사로 조국앞에, 인민앞에 높이 내세워주시였습니다. 에- 저에게도 만일 그래두 한가지 자랑이 있다면은요 련락원으로 산을 많이 타다봉께 남보다 걸음이 빠른게라서 지리산의 중봉에서 제일 높은 상봉꺼정 올라가는데 15분, 다시 내려오는데 10분밖에 안 걸렸어요. 그래서 우리 동무들이 저럴 보고설라무니 지리산의 <도사> 또는 빨찌산의 날아다니는 <익호>라고도 했등마.… 허, 하기는 젊었을 때 장사아닌 사람없고 범을 잡지 못했다는 사람없다는 말 한가지로 허허…》 그저 이러루하게 자기는 《통일의 심부름군》이노라고 말하자고 생각해보니까 자신의 간단한 인생총화, 투쟁총화로도 될것 같아 마음이 다소 진정되였다. 이때였다. 조선치마저고리를 정하게 차려입은 안내원처녀가 비전향장기수들이 담소를 나누며 대기하고있는 큰 방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그는 상냥한 미소를 짓고 황갑동이 앉아있는 방 어구의 첫 안락의자가 놓여있는데로 오며 오늘 방송야회에 참가하러 온 웬 녀성일군이 지리산에서 싸우다가 오신 황선생을 만나보고싶어 이리로 찾아왔다고 알리는것이였다. 《저럴 말입니까?》 누구도 찾아올 사람이라고는 없는 황로인은 의아히 몸을 일으키며 벌써 누구인가 자기를 찾아오는양싶은 녀인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문께로 자신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어 양장에 트레머리를 지은 한 깨끗하게 생긴 녀성일군풍의 60전후로 보이는 녀인이 딸인듯 한 처녀를 데리고 들어서는것이였다. 촉기가 빨라보이는 그 녀성은 자기를 향해 엉거주춤 서있는 로인에게 주의를 돌렸다. 안내원의 인사소개에서 자기가 찾고있는 대방임을 알게 된 녀인은 로인에게 깊이 머리숙여 인사부터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저 황선생님이시라지요?》 《예, 저럴 찾습니까? 내가 황갑동이올시다.》 《그럼 지리산에서 오래동안 투쟁하시다가 오셨다는분이?》 《예, 지리산에서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정말 반갑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뉘신지? 나는 전혀…》 《그러실거예요. 혹시 지리산빨찌산에 계셨다니 저의 아버지를 아실런지요?》 《아버지? 아버지도 지리산빨찌산 했습니까?》 《네, 좀…》 《이름을 대며는 대체로는 알수도 있는것인디.》 《저… 선생님, 리현상이라고 아시는지요?》 《뭐라고, 리현상이라고요?》 《네-》 녀인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황로인도 한껏 긴장되여 긴 장수눈섭이 경련을 일으키듯 푸들거렸다. 《그런데 거기는 지리산에서 싸우다 장렬히 희생됐던 우리 빨찌산대장이였던 리현상선생하고 어떻게 되는 사이인지?》 《저 그분은 부친, 저의 아버지십니다.》 《아니 그럼 리현상선생의 따님이란 소리여?》 《그래요! 제가 하나밖에 없는 딸이랍니다.》 《아이고매, 이 일을 어쩔쿠나야. 우리 지리산빨찌산 대장이였던 리현상동지의 따님이 여그 북에 살아 있었구만이라.》 《선생님, 선생님을 보니 우리 아버지를 보… 보는것만 같은것이 얼마나 바… 반가운지…》 《…이거 그리도 장군님품을 그리며 평양에 두고왔다는 귀여운 딸사진이랑 보여주면서 그처럼 살아서 돌아오고싶어했던 리현상사령… 니 아버지는 그기 지리산에다가 묻어삘고 우리만 혼자서 살아돌아오고봉께 볼 낯이 없구만이라.》 《선생님- 어찌 선생님 혼자서만 돌아왔다 하겠습니까. 저희들은 이번에 우리 아버지도 그때 생사운명을 같이하던 황선생님이랑 여러 지리산동지들과 함께 살아서 장군님품으로, 저희들의 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고있는걸요.》 《옳구만이라. 그 말이 옳구만이라! 과시 사령의 딸다운 대답이여! 내 오늘사 북에 와서 이 세상에 아직 낳아가지지도 못한 내 딸을 하나 찾은게라서…》 《아- 아버지-》 순간 리현상의 딸은 지리산에서 돌아오지 못한 그리운 아버지의 옛 전우의 딸이 되여주며 눈물로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껄껄한 손으로 그의 잔등을 말없이 쓸어만져주던 황로인이 물었다. 《그래 이름은 뭐신지?》 《네, 저의 이름은 리성숙이라고 부릅니다.》 《리성숙이라? 음- 그래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있는지?》 《네, 저는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지닌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오늘까지 내내 대외일군, 의례일군으로 사업하고있습니다.》 《수령님의 대학까지 나왔으니 응당 그래야지. 장하이, 장해!》 로인은 어머니의 뒤에 좀 떨어져 아까부터 울먹거리며 서있는 딸인가싶어지는 아리잠직하게 생긴 처녀에게 주의를 돌렸다. 《딸인가?》 《참 제가 그만 제 흥분에 겨워서…》 그제야 잊었던듯 성숙이 자기 딸을 로인에게 인사시켰다. 《영미야, 할아버지께 인사드려라.》 처녀가 로인앞에 공손히 허리굽혀 절을 드렸다. 《할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지리산에서 우리 할아버지랑 같이 싸우시면서 고생이 많으셨을 비전향장기수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십시오.》 《오냐, 고맙다. 고마와.》 머리를 몇번 주억거리고난 황갑동은 뜻깊은 여기 상봉의 마당에서 한마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였다. 《지리산은 어제날의 그 지리산이건만 많은 세월이 흘러 사람은 벌써 그 사람들이 아니로구나. 그 항미전의 싸움터에서 용맹을 날리던 옛 주인들, 지리산의 렬사들은 원을 품은채 다 가고 녹쓴 탄피들만 검은 흙속에 묻혀 울고있겠지.…이젠 세대가 바뀌여 남조선혁명의 1세였던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너희들 3세, 4세들이 그 바통을 넘겨받을 차례니라. 혁명의 새 세대들인 너희들이 잘해서 싸게 통일의 날을 앞당겨와야제라. 무려 20만 입산자와 애국렬사들의 원혼이 묻혀있는 하나의 거대한 묘라고도 할수 있는 저 멀리 지리산이 이른바 <선조는 있으되 후손은 없는 큰 릉묘>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는것을 명심하여라!》 《…》 《…》 황로인이 생각난듯 리성숙에게 물었다. 《참 한가지 꼭 물어보고싶은것이, 이건 상당히 오래전 일이긴 한데 혹시 어릴적에 어머니한테서라도 정전직후에 리현상사령이 지리산을 떠날 때 호위를 맡았던 련락과장으로서 북행길 도중에 적의 포위에 든 급박한 정황에서 아버지가 장군님께 올리는 마지막편지와 유언을 받아가지고 빠져나와 기어이 북으로 찾아들어왔었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소리 못들었능기요?》 《네, 제가 어릴적에 지리산에서 아버지와 함께 싸웠다는 그런 아저씨 한분이 우리 어머니를 몇번 찾아왔던 일이 있었댔습니다.》 《그래? 찾아와서 뭐라고 했노?》 《그때 북으로 들어오는 배를 타려고 남해바다가로 나가다가 추격해오는 적의 포위에 들어 결사전을 벌리던 소부대가 <괴멸>의 운명에 처하게 된 마지막순간 아버지는 그 아저씨에게 동무 하나만이라도 어떻게 하던지 이 포위망을 뚫고 살아나가 장군님께로 찾아가 나의 그간 사업보고가 들어있는 이 편지를 꼭 전해야 한다고 하면서 장군님을 만나뵙게 되면 저의 인사를 올리고 장군님께서 잡아주신 그 손을 우리가 누워있는 여기 남해기슭, 지리산이 있는쪽에다 대고 높이 들어 세번 흔들어달라고 말했다고 했답니다.》 황갑동은 그 말에 감동하여마지 않으며 무겁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때 적후에까지도 들려오던 그 소리가 다 사실이였구마. 그래 그때 찾아왔던 그 동지의 성이 혹시 손가라 안하던가요?》 《예, 손선생이라고 했어요. 지리산시절엔 빨찌산련락원의 한사람으로서 너무나 걸음발이 빨라 모두 <제트기>라고 불렀다고 하면서 웃으시더군요.》 《머시, <제트기>라고.》 《네, 이름은 손동찬이, 손동찬선생이예요.》 《손동찬이?! 옳구만이라, 옳구만이라!》 황로인은 환성을 지르다싶이했다. 《그래 그 손선생의 그후 소식은?》 《전후에도 조국통일의 그날까지 지리산에서 한번 잡았던 그 총을 놓지 않겠다고 하면서 인민군군관으로서 <제트기>라는 별호 그대로 우리 <제비>를 타는 어느 한 공군부대에서 복무하던 손아저씨는 그후 공군대학을 나오셨답니다.》 《공군대학까지? 그다음에넌?》 《그다음부터는 여러 공군부대들에서 고급군관, 장령으로 군무하시다가 마지막시기에는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우리 조국의 젊은 매들을 키워내는 대학의 부학장까지 하셨습니다.》 《그래? 그러니 우리 지리산의 늙은 <제비>가 상기도 젊은 매들을 거느리고 로당익장의 기백으로 조국의 푸른 하늘을 날고있다 그말이지? 그래 지금 살기는 어드메서 살고있노?》 《지방의 도소재지에 살고계셨습니다. 그런데…》 성숙은 불시에 말을 떠듬거리며 쌍까풀진 눈을 살곳이 내리까는것이였다. 이상한 감촉을 받은 황로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비꼈다. 《갑자기 얼굴빛이 왜 그렇노? 손선생의 신상에 무슨 다른 일이라도 생긴건 아니겠지러? 왜 대답이 없노? 살아야 계시겠지, 지금?》 《선생님! 그런데 몇달전에 뇌졸증이 와서 소생할 가망이 없다고 했는데…》 《…》 《원래 그분은 매우 건강하신 체격을 가지고있어 전 복무기간 별로 앓는다는 소리가 없었더랬습니다. 그런데 로년기에 들어서면서 몸이 나기 시작하더니 점차 혈압이 높아져 병원생활을 드문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소리를 들은 로인은 억이 막혀 아무 말도 못했다. 커다란 기대가 졸지에 허물어지며 그는 실망의 한숨을 푹 내쉬였다. 《어허, 그래도 행여나 조국에 오면 친구 하나는 만나는줄 알았등마 일이 그리되였구만. 우리가 한해만 더 일찌기 왔댔어두… 쪼간 늦었구만이라.》 로인이 어찌나 락심해하고 애석해하는지 량어깨가 푹 꺼져내리는 그 추연해진 모습은 불시에 퍽 더 늙어져보였다. 성숙은 측은한 눈길로 그를 보면서 자기가 하지 않을 소리를 해서 그리도 기뻐하고 기대에 찼던 로인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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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약 한달이 지난 어느 날이였다. 황갑동로인은 다른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보통강반에 부지를 넓게 잡고 든직히 한 구역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큰 독립건물인 전승기념관에 참관을 갔다. 앞마당에서 차들을 내리니 비전향장기수들이 온다는 기별을 미리 받은 모양 전람관 일군들과 전쟁로병들이 꽃다발까지 들고나와 반가이 맞아주는데 뻘건 바지를 입은 장령들이 많았다. 대체로 소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중, 상장의 금빛견장이 어깨에 무거이 얹혀져있는 로령이였다. 어떤 장령들은 이젠 70도 훨씬 지나 80이 가깝거나 넘어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참관자들은 한 책임일군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다 전투경험이 많은 귀중한 전쟁로병들로서 복무년한이 훨씬 지나 예비역 혹은 퇴역으로 넘어야 할 장령들이지만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집에 들어가있는 사람들까지 전부 데려내다 전직군사칭호와 대우를 그대로 주면서 전승기념관 고문강사를 시키도록 해주신 공로자들이라는것이였다. 그중에서도 나이 80이 거의 되여보이는 지금도 키가 크고 골격이 억세보이며 금술이 드리운 장령모에 수리개 같은 항공병종표식의 모표가 달린 아주, 관록이 있어보이는 중장이 유표하게 눈에 띄였다. 이전 항공부사령관을 하던 사람이란다. 황갑동은 그가 항공부문에 오래 복무해온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그래도 혹시나 해서 그 역시 항공대학의 장령이였다는 손동찬이에 대해 물어볼가 하다가 그만 두었다. 이미 곁을 떠났을수 있는 사람을 더 물어서 무엇하랴. 서로 가슴이나 아팠지.… 그런데 동료들을 따라 제일 뒤에 서서 들어가던 황갑동은 젊은 군인들처럼 씩씩한 군화소리가 뒤로 가까와지는것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돌렸다. 저쪽에 와서 멎은 승용차에서 금방 내린듯한 이 전람관일군인지 아니면 볼 일이 있어 여기로 찾아온 장령인지 알수 없는 로병이 이리로 오고있었는데 그 나이에 걸음걸음에서 아직 젊음이 느껴졌다. 류달리 성급하고 빠른편인 그의 걸음새를 보면서 그는 직업적인 군인이여서 그렇겠거니 하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니였다.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가싶은 눈에 퍽 익은 걸음걸이였다. 아니, 분명 자기가 지리산의 눈보라를 헤쳐가던 선요원으로서의 첫 련락의 길을 걸을 때 성큼성큼 앞서 걷던 저 빠른 걸음을 따라잡으려고 그리도 바지런히 걷군 하던 바로 그 눈에 익은 사람의 걸음새였다. 그 장령은 황갑동의 얼굴을 무심히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그냥 지나쳐버린다. 망설이다가 그만에야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는가싶어지는 찰나 저만쯤 갔던 장령이 왜서인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는것이 아닌가. 두사람의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누가 먼저 말을 붙일것인가? 황갑동이 선참 초닥초닥 긴장으로 말라드는 입을 떼였다. 《저 장령동지! 한가지 물어봐도 일없겠는지요?》 《어서 물어보십시오!》 대방은 그러다가 물어보지 않기라도 할가보아 겁을 내며 성을 낼것 같은 거매진 얼굴표정을 짓는것이였다. 《동지! 내가 잘못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의 한때 지리산을 날아다니던 선요원이 아닌지?》 《선요원이요?》 《예, 김지희 전투병단의 련락원 말이지요.》 《그런데 누구시기에 날?》 《나를 모르시겠소. 나넌 지리산의 <갈범>이라는…》 《뭐요? 지리산의 <갈범>이요?》 《그렇소. 거긴 <제트기>, 나넌… <갈범>이여!》 《아니 뭐라구요?》 《그렇소, 나 갑동이요!》 《황동무, 내 손동찬이요!》 황갑동과 손동찬은 와락 그러안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서로 비비여대며 목멘 소리로 웨쳤다. 《아, 우리 <제비>여, 살아있었구만.》 《지리산의 <갈범>이 옳긴 옳은기요? 내 그렇지 않아도 도에서 <로동신문>에 난 사진을 보고서 당장 올라오고싶었지만 이번에야 기회가 생겨서…》 《근디 몇달전에 뇌출혈로 잘못된것 같다는 소리가 들려왔다는데 어찌된 일이요?》 《허, 우리게에서도 항공대학 부학장이 혈압이 터져서 죽었다는 소문이 쫘악- 돌았댔시다. 하기는 뇌출혈로 다 죽어 반신불수까지 될번했다가 우리 당에서 내려보내주신 사랑의 불사약을 쓰고서 지팽이를 버리고 다시 일어섰으니 그런 소문이 돌만도 하지요.》 《아하, 그렇게 된 일이로구만. 그런걸 난 또… 이제 그런 큰 소문을 냈은즉 동방삭이처럼 삼천갑자는 문제없겠시다 원.》 《헛허허, 여기에 같이오지 못한 지리산전우들의 몫까지 합쳐서 통일되는 날까지 오래오래 살아야제라.》 《옳구만이라.》 《이렇게 지리산에서 헤여졌던 우리가 간난신고끝에 여기 혁명의 수도 평양에 와서 죽지 않고 살아 서로 만나니 얼마나 좋은기요!》 두 전우는 다시 얼싸안고 울며 웃었다. 황갑동은 이렇게 죽었다던 《제비》를 만나고보니 이번에 송환길을 같이할수 없었던 별이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손동무, 그런데 별아주무니에 대해선 왜 한마디도 묻지 않는거요?》 그 물음에 손동찬은 심상한 표정으로 서글피 대답하는것이였다. 《별이야 내 별지와 함께 이 세상 사람이 아닌지도 오랜데 더 물어선 무엇하겠소. 지리산 제2차 <토벌>에서 별중대가 <괴멸>의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되였을제 다같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직…》 《지금 무신 소리를 하고있능기요? 나도 그때 그리된줄 알았등마 별동무만은 용케도 살아남은게라.》 《아니 그게 정말이요?》 《정말 아니면언 저 하늘의 별이 땅에 떨어졌단 소리 들은 일 있나. 그래서 별 아니겠소.》 《그러니 별지엄마가 살아있단 말이지? 그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있소?》 《나도 모르고있다가 별중대에서 같이 싸우던 녀성동무를 어느 지방의 <만남의 집>에 찾아갔다가 글쎄 거기서 뜻밖에 별동무를 만나지 않았겠소.》 《별동무를?》 《그렇지요. 별지엄마를 송환을 얼마 앞두고서야 겨우 찾은게라.》 《그렇다면 왜 이번에 같이 데리고오지 못했소?》 《오고싶어하는 마음이야 간절하지만서두 비전향장기수가 아니다보니 함께 올 명분이 서야제라.》 《야, 그렇겠구만.》 《별동무는 공화국의 품으로 떠나는 나를 보고 몹시 부러워하면서 북에 가서 별지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별이가 오늘도 남녘의 캄캄한 밤하늘에서 자기 빛을 잃지 않고 빛나며 <제비>와 다시 만나게 될 통일의 그날만을 기다리고있더라 전해달라고 하더구만이라요.》 그 말을 듣고 감동된 손동찬이 무엇인가 마음속으로 저어되는것이 있는지 주저주저하면서 물었다. 《그래 지금 별이는 어떻게 사오? 아직까지 애도 없이 그냥 혼자서 지내는지?》 《그를 몰라서 그런 말을 묻는거여?》 《…》 《그 별이는 젊디젊어서 손동무와 헤여져 생사도 딱히 모르면서도 뜻깊은 상봉이 있을 통일의 그날만을 기다리며 기나긴 50년세월을 하루같이 님 향한 일편단심을 변치 않고 지조를 지켜 살아온것이요. 정말이지 이 세상에 우리 나라 녀성들같이 외유내강하고 속깊은 녀자들은 없지요.》 《…》 친구의 그 말을 듣고있는 손동찬이의 눈앞에는 치성터 산죽막에서 처음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갓 스물을 넘긴 소복단장의 아릿다운 녀인이였으나 지금은 어느덧 70도 넘어 머리가 하얗게 센 파파 늙은 로파로 되였을 안해의 주름깊은 얼굴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아팠다. 가슴이 저려왔다. (별이! 무정하고 죄많은 이 《제비》를 리해하고 너그러이 용서해주길 바라오. 나도 그때 헤여져 오늘까지 당신을 한시도 잊은적이 없었소. 그렇지만 당신이 죽지 않고 살아 지금까지 나를 잊지 않고 손꼽아 기다리는줄은 몰랐구려. 그렇지만 별지엄마! 나는 통일의 려명이 밝아오고야 말 저 남녘의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볼적마다 오늘도 그 어딘가 구름속에서 반짝이고있을 나의 작은 별을 찾아보며 우리 다시 만날 통일의 그날을 안고살테요. 별님이! 그 언제나 그리운 북녘의 향도성, 우리의 큰 별님을 따르는 남녘의 작은 별님이 되기를 바라오!) 남쪽땅에 외로이 혼자 남기고온 별이에게 그 어떤 가슴뜨거운 격려의 말이라도 해주고싶은 손동찬이와 황갑동이, 두 전우의 간절한 심정을 알아서인가 어느 가로수에 매달아놓은 유선방송기에서 정서깊고도 절절한 감정이 담긴 노래 《별 보러 가자》가 흘러나오고있었다. 그날 밤 고려호텔의 별방에서 다시 만난 황갑동이와 손동찬, 두 지리산의 옛 전우는 온밤 잠들지 못하고 같이 싸우던 동지들에 대한 회억담을 나누었다.…
3
지금 지리산시절의 가까운 전우들이였던 황갑동이와 손동찬이 그리고 갑동이와 한마을에서 살던 고향친구로서 전쟁시기 남반부 유격대 총사령 리현상의 젊은 련락병이였던 전우는 옛 지리산빨찌산대장의 딸과 함께 승용차에 앉아 어디론가 달리고있다. 그들은 오늘 다른 비전향장기수들과 더불어 신미리 애국렬사릉을 찾아가고있는 길이다. 거기에는 수많은 애국렬사들과 함께 조국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 한몸 바친 리현상이도 고이 안장되여있는것이다. 대성인이신 위대한 수령님과 뜨거운 심장의 정치로 만인을 안아주시는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난시기 끝까지 최고사령부를 찾아 북행길에 올라 용감하게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친 옛 전사를 잊지 못하시여 애국렬사의 명예를 안겨주시고 영생의 언덕에 생전의 모습으로 세워주신것이였다. 리현상의 딸 리성숙이와 함께 자기들의 옛 빨찌산대장의 령전을 찾아가고있는것으로 하여 그들의 감회는 더 깊었다. 그때 리현상이 북에 두고나갔던 딸이 벌써 60을 바라보는 녀성일군이 되였은즉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아마 90나이에 가까울것이다. 옆에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하다가도 소리없이 웃을 때면 그 살결이 유난히 희고 맑은 얼굴에서 아버지의 옛 모습이 언듯언듯 비쳐나오군 하는 리현상의 딸, 그는 지금 승용차를 함께 달리면서 아버지와 같이 싸우던 전우들에게 지리산의 옛 전사였던 아버지와 그 유가족인 자기들에게 돌려주신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해같은 은덕과 대를 이어 길이 전할 사랑의 이야기를 흥분에 떨리는 어조로 감명깊게 들려주고있었다. 《…이제 여러 선생님들도 덕성실기집들을 보시게 되면 아실수 있지만 저도 김일성종합대학시절에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을 가까이 모시고 공부하는 영광과 행복을 지니였답니다. 제가 지리산전투에서 희생된 한 남반부혁명가의 딸이라는것을 아신 그이께서는 저의 학습과 생활에 이르기까지 깊이 관심하시며 다심한 은정으로 따뜻이 보살펴주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의 어머님이 병으로 앓고있다는것을 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현상 지리산빨찌산대장은 싸우다가 죽어도 내앞에 와서 죽겠다고 전후에 나를 찾아오다가 전사한 애국투사였다고 하시면서 알아보니 지금 그의 부인이 늘 몸이 약해서 시름시름 앓고있다는데 우리가 잘 돌봐주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하시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오늘은 공부가 끝난 다음 어디 한번 같이 동무네 집으로 가보자고 하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요?》 황갑동이 주의깊게 다음말을 재촉했다. 《제가 송구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어 하는데 그날 저녁 저를 앞세우고 우리 집에 들어서신 장군님께서는 그이께서 병문안오셨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황망히 자리를 이시는 어머님앞에 허리굽혀 인사를 드리시며 그동안 성숙동무의 어머니를 한번도 찾아보지 못해 안되였다고, 병세는 좀 어떤가, 약은 무슨 약을 쓰며 치료는 어디에서 받는가고 하나하나 다정히 물어보시였습니다. 그러시더니 몸소 가방을 여시고 그속에서 장군님께서 친히 유능한 의사들의 처방을 받아 직접 지어오신 초약봉지묶음을 꺼내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모시고오면서 그이의 가방이 오늘 따라 별로도 좀 불룩하다 의아히 보면서도 대학생인 그이의 책가방속에서 책이 아니라 어머니의 약이 나올줄은 정말로 몰랐댔습니다. 그이께서 지어오신 그 사랑의 불사약을 받아안으며 목메이는 어머니의 두손은 떨리였고 그것을 바라보는 저의 두눈에서는 가량할수 없이 뜨거운것이 흘러내려 량볼을 적시였습니다. 저의 아버지가 지리산에서 싸웠으면 얼마나 잘 싸웠고 통일혁명을 했으면 그 얼마나 잘했으랴만 세운 공적보다 끼쳐올린 심려가 더 큰 전사를 나무람하실 대신 그후 아버지의 영령을 애국렬사릉에서 고이 잠들도록 해주신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그 유가족들인 저희들에게까지 친혈육의 따뜻한 정을 부어주시니 어찌 격정의 눈물을 금할수 있었겠습니까. 정말이지 김일성대원수님과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남조선혁명가들과 유자녀들의 위대한 스승이시며 끝없이 인자하고 자애로우신 친어버이이십니다!》 성숙이의 이야기는 끝났으나 삼가 조용히 달리는 승용차안에는 숭엄한 격정의 파동이 일었다. 실로 황갑동이와 두 전우들은 말도 청아한 목소리로 감동깊게 잘하는 성숙이의 이야기에서 큰 감명을 받아안았던것이다. 리현상과 그 유가족들만이 아닌 통일애국의 길에서 순직한 전체 남조선혁명렬사들과 자녀들에게 다같이 안겨주시는 두분의 고매한 덕망과 고결하신 뜻, 위대한 인간애앞에 숙연히 머리숙여짐을 어찌할수 없는 그들이였던것이다. 오래지 않아 그들 비전향장기수들이 탄 승용차는 신미리 애국렬사릉밑에 조용히 멎었다. 황갑동이와 그의 전우들이 승용차에서 내리니 불어오는 한점 바람결에서도 엄숙한 기운이 느껴지는 야산기슭에 질서도 정연하게 안치되여있는 수많은 애국렬사묘들이 생전의 모습이 돌사진으로 새겨져있는 화강석비석들을 앞세우고 정바로 앉아있는것이 한눈에 안겨왔다. 애국렬사릉! 누구도 쉽게는 오를수 없는 인생의 절정, 영광의 산언덕에 우리 수령님께서와 장군님께서 나란히 서시여 친히 연필로 그 이름들에 일일이 밑줄을 그어가시며 위대한 심장의 기억을 더듬으시여 하나하나 찾아내시고 어떤 사람들은 적구 멀리에까지 전사들을 보내여 모두 찾아다가 여기에 고이 뉘여주셨다는 그 영광도 빛나는 애국자들의 큰 묘! 죽어도 살아도 그리운 그 품에 안겨 순직하고저 했던 사랑하는 옛 전사들을 못잊으시여 전망이 광활하고 양지바른 명지를 잡아 죽어서도 인민의 사랑속에 살아 영생을 누리는 곳, 우리 수령님께서 눈물이 많은 영웅이라고 하셨다는 위대한 장군님의 심장의 정치, 광폭정치에 의하여 여기에 얼마나 많은 애국충신들이 안장되여있는가. 장군님께서 그 모든 충신들을 여기 한자리에 나란히 눕혀주셨다는 숭고한 사랑의 성지, 래세의 영화를 꿈꾸어온 그 어느 그리스도교도들도 올수 없는 지상의 성스러운 《천당》인셈이였다. 몸은 이미 떠나갔으나 충성의 넋만은 아직 여기에 살아있는 또하나의 별세계를 이루고있는 신미리 애국렬사릉을 바라보는 황갑동이의 가슴은 감동으로 설레였다. (아, 우리 나라는 위대한 두분의 수령님 계시여 애국자들이 많은 나라, 충신이 많은 나라! 세상 그 어디에 가보아도 국가지도자들의 각별한 관심속에 이처럼 많은 애국충신들이 죽어서도 충성의 대화랑을 이루고있는 빛나는 릉묘는 더는 없을것이다!) 황갑동이와 손동찬이들은 리성숙의 안내를 받으며 앞에서부터 렬사릉을 돌아보면서 어느 한 묘소앞에 이르렀다. 《통일애국렬사 리현상동지의 묘》라고 또렷이 새겨진 비석앞에 서니 돌사진속에서 아직 젊어있는 빨찌산대장이 지리산시절처럼 입가에 그 특유한 사색깊은 미소를 머금고 정겹게 내다보고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거슬러 잊지 못할 옛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황갑동이의 눈앞에 떠오르는 하나의 모습이 있었다. 대원사전투때 머리에는 중절모를 쓰고 손에 그 유명한 지리산의 흑달 대나무지팽이를 잡고 마치 잠시 등산길을 다녀오기라도 할듯이 여유있는 웃음을 짓고 흔연히 전장으로 떠나던 리사령! 그리고 대전형무소에 있을적에 놈들이 비행기로 뿌린 삐라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미 전사하여 처참한 사체가 되여버렸어도 든직하게 누워 성난듯 허공을 쏘아보던 남부군총사령의 가슴 아픈 모습이… 자기와 처음 전투병단 지휘부에서 만나던 날엔 우리 혁명은 사색으로 시작되고 사색으로 전진하며 사색으로 승리한다고 하던 지리산의 사색가 리현상선생, 오늘 여기 신미리 등판에 와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롱일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피타는 모색을 계속하는가싶어지는 옛 지휘관의 사색적인 모습을 다시 대하는 순간 한손으로 조용히 모자를 벗어들며 숙연히 머리를 숙이던 그의 입에서는 불시에 허억- 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리현상동지! 저… 저희들이 왔습니다. 잊지 않으셨겠지요? 허물없이 <지리산의 호랑이>라 불러주던 제 황… 황갑동이 빨찌산의 <제비> 손동찬이랑 전쟁시기 련락병동무랑 다같이 찾아왔슴더. 아, 수령님께서와 장군님께서 글쎄 당신을 이 명지에 데려다가 이리도 잘 안장해주셨을줄, 여기 와서 리현상선생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줄이사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이젠… 이제는 됐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언 오늘사 지리산에 뼈를 묻고도 아무말없이 묵묵히 누워있던 우리 동지들도 모두 기뻐서 일어나 감격의 눈물흘리고 그때 다 불타죽었던 우리 지리산도 기를 세우고 다시 살아일어나 민족의 산으로 백두산앞에 자기를 떳떳이 세우게 될것입니다. 그러니 고이 잠드시라, 동지여!》 황갑동은 숭엄해지는 마음으로 충신, 렬사의 영광을 지닌 옛 지휘관의 령전에 떨리는 손으로 한잔 술을 부어 같이온 전우들과 더불어 잠시 묵도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다 보라고 그 지난 공적의 크기에는 관계없이 다 똑같이 만들어세워준 리현상동지의 묘앞의 비석, 그것은 한갖 단순한 돌비석이 아니라는것, 진정 그것은 통일혁명의 길에 한생을 바친 애국렬사들에 대한 높은 평가이고 표창이며 총화로 된다는 생각, 동시에 그것은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수령님께서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리도록 그처럼 바라고바라시던 최대의 소원이였던 조국통일을 수령님께서 돌아가신 오늘까지도 제 손으로 가져다올리지 못하고 빈손으로 온 죄많은 남녘의 아들들에 대한 리해깊은 너그러운 용서이기도 하다는 자곡지심이 들기도 했다. 그는 혼자서 생각한다. (사람은 정녕 자기가 살아있을 때 세운 그 어떤 공적으로 살려고 할것이 아니라 생전에는 뭇사람들이 그리 몰라주어도 자기가 죽은 다음에 스스로 돌아오게 되는 력사의 공정한 평가, 수령의 값높은 평가를 더 중히 여기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전우의 령전에서 조용히 물러나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던 황갑동이네 일행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있다. 그옆에 남조선혁명의 핵심들로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끝까지 잘 싸우다 희생되였던 우수한 유격대지휘관들의 묘가 나란히 한줄에 안치되여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조선로동당 남조선지구당위원장 겸 군사지휘관들의 릉묘였으니, 전라북도 도당위원장 방준표동지, 전라남도 도당위원장 박영발동지, 경상북도 도당위원장 남경호동지, 충청남도 도당위원장 박우연동지 등 상기도 뇌리에 깊이 새겨진채 지워지지 않고있던 그립고 친근한 이름들이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그 여러 동지들의 분묘까지 보게된 순간 황갑동은 목이 꽉 잠긴 석쉼한 소리로 불렀다. 《동지드을- 우리가 찾아왔소- 그때 산지사방으로 헤쳐져서들 어디에 가있나 했등마. 여기에 다 와있었구만이라-》 정말 그러고보니 그처럼 수령님만을 뜨거운 흠모심을 가지고 따르던 통일혁명의 골간이였다고 할수 있는 훌륭한 정치, 군사지휘관들이, 아니 당시 남반부에 살아 숨쉬던 조선로동당 산하 6개 도당과 5군 전체와 온 지리산이 통채로 여기에 다 와있는것만 같았다. 실로 그들은 모두가 육신은 땅에 묻혀있어도 영생의 이 언덕에 살아있는 넋들이였다. 언제인가 지리산과 감옥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희생된 수많은 전우들의 영령앞에서 뒤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의무는 다름아닌 이미 전사한 사람들의 혁명정신과 넋을 이어받아줄 때만이 신성히 리행되는것이라고 생각했던 황갑동이였다. 그는 오늘 여기 애국렬사릉에 고이 안치된 남조선의 통일혁명가들의 릉묘를 돌아보면서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피흘려 싸우다가 쓰러진 전사들의 넋이 산 사람들과 후대들의 가슴속에 이렇듯 살아서 길이 영생하도록 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 성심으로 뜨거운 감사를 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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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얼마후 황갑동은 뜻밖에도 대전형무소 대학생들중의 한사람으로서 당시 17살의 소년《죄수》였던 윤택수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아보게 되였다. 그때 5년형을 살고나와 오래동안 농학연구에 종사하고있던 그는 몇해전에야 외국에 나왔던 기회에 사랑하는 처와 자식들은 눈물로 버리면서도 자기가 한평생을 바쳐 고심참담으로 이룩해놓은 연구성과들을 사회주의조국에 바치려 의거해왔다는것이였다. 그는 편지에서 대전형무소의 잊을수 없는 전우들인 비전향장기수들의 조국송환을 열렬히 축하하면서 가슴속에서 격렬하게 회오리치는 그리움과 감격을 안고 지난날의 뜨거운 추억담들을 회고하고나서 자기의 솔직한 소감을 이렇게 피력했었다. 《…그립고 보고싶은 황갑동형님! 저는 솔직히 이때까지는 그후의 소식들을 전혀 알길없어 이미 다 감옥의 원혼들로서 쓰라린 력사의 망각속에 영영 묻혀버리고 마는줄로만 알았던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민족의 구세주이신 천출위인의 거룩한 손길에 의하여 나라의 참된 아들로 통일애국의 투사들로 력사에 부상되여 그렇듯 장한 모습으로 송환의 길에 오르게 되였다는 비상히 놀라운 소식을 듣고 격동을 금할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충격이 그토록 큰것은 이번의 일은 세상에 감옥이 생긴 이래 처음있는 경이적인 하나의 사변이라는데 있습니다. 일반범죄자가 아닌 애국적인 량심수들로서 30∼40년이상이나 사상전향을 하지 않고 끝끝내 혁명적지조를 지켜낸 신념과 의지의 강자들인 수많은 비전향장기수, 민족의 영웅들을 일시에 배출시킨 그런 놀라운 사실을 인류사는 아직 모르고있습니다. 그리고 적구의 감옥에 오래동안 갇혀 신음하고있던 비전향수들을 위대한 거인의 손길로 구원하여 어머니조국의 품으로 모두 돌아올수 있게 만든 기적같은 사변 역시 력사는 아직 알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다름아닌 우리 조선에서만이 세계의 놀라움과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력사적인 사변이 일어나게 된것이 우연이거나 조선혁명의 장기성과 간고성, 우리 나라 력사의 특수성으로만 설명할수 있는 문제이겠습니까? 저는 비단 그것만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적어도 이 놀라운 인내와 뿌리깊은 강한 절개심과 견인불발의 억센 의지에는 반드시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있는 우수성, 조선민족 고유의 훌륭한 성격적기질의 특수성으로부터 나오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고 보아집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조선인민의 민족적특성과 남다른 우리 민족의 우수성! 여기에 대하여서는 지난날 수많은 책들과 여러 소설들에서 각이한 필자들이 저마끔의 견해와 소감들을 피력하였지요. 단일민족으로서의 화목과 단합심, 절개심… 백의를 숭상해온 동방례의지국으로서의 밝은 례의와 도덕, 깨끗한 량심과 고지식한 마음, 외유내강 등등…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흥미있는것은 우리가 흔히 다른 나라 사람들의 성격적특질에 대하여 론할적에는 누구나 제꺽제꺽 한마디로 찍어말할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우리 민족의 성격적기질에 대하여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도 조선사람자체로서는 한마디로 똑 찍어말하기 어려운것은 어디에 기인되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은근하고도 아름답고 억센 자연을 닮은 슬기롭고 우아한 조선민족의 성격적깊이의 웅심, 천태만상의 인간성격들의 다양성과 어느 한가지로 규정할수 없는 민족적성격의 우수성으로 설명이 되겠는지요. 이 조선사람들의 민족적성격의 특성에 대하여 단마디로 꼬집고싶은 충동을 어디서 받았던지 몇해전에 우리 공화국을 방문했던 어느 한 나라의 <자유방송>기자가 자기의 글에서 <고난의 행군>을 한창 하고있던 우리 인민의 성격적기질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추운 겨울에도 초원에서 얼어죽지도, 굶어죽지도 아니하고 살아나가는 <이리>에 조선사람들을 비유한적이 있었댔습니다. 나는 그때 조선사람으로서 매우 비위에 거슬리는 그의 규정에 동의할수가 없었습니다. 이리! 이리라는 말이 조선인민들이 가장 증오하는 야수 미제를 상징하는 승냥이라는 말의 동의어에 가까와서만이 아니였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묘한데가 있는 자본주의나라의 기자가 우리한테 와서 시원한 옥류관 국수를 얻어먹고 좋다는 소리는 다 골라하다가 마지막에 우연인것처럼 훌 내던진 <이리>라는 표현이 저의 마음에는 몹시 언짢게 들리였기때문이였습니다. 이리라? 오랜 세월 강한 생활력을 지니고 남달리 험난한 고난의 길을 헤쳐오며 강성대국건설의 새 력사를 창조해가고있는 긍지높은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눈보라치는 초원에서 잔뜩 굶주린 배를 안고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다가 다른 약한 짐승들에게 달려들어 목줄대를 물어뜯군 하는 교활하고도 영악스러운 이리에 비유한다는것은 어느모로 보나 우리 조선인민에 대한 더없는 모욕이라고 생각되였습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도 이 민족을 가장 사랑하시는 위대한 성인이시며 대애국자이신 김정일장군님께서 우리 조선인민의 민족적우수성에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조선사람을 알려면 먼저 조선민족 성격형성의 력사적과정을 잠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조선은 1592년부터 시작된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군의 괴수 도요도미 히데요시와 당나라의 위학회사이에 우리 나라 땅을 나누어먹기 위한 <조선 8도 삼분론>이 처음으로 운운된 때로부터 주로 일, 미, 프, 영, 청, 로 대국들의 포위속에 있었지요. 일제시기에는 일제놈들의 쇠그물같은 포위망, 미제가 강점한 남녘땅은 오늘날까지도 미제의 식민지포위망 그리고 지금 이 시각까지도 우리 공화국은 지배주의자들, 제국주의련합의 철저한 경제봉쇄의 대포위망속에서 살고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근 400년간의 포위속에서 살아오는 과정에 조선사람들에게 형성된 하나의 고유한 민족적성격이 반드시 있을것입니다. 그 누구인가 사람들이 가장 극심한 환경에 부닥칠수록 인체내에서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아드레날린이라고 하는 강한 자극성 호르몬이 더 분비된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민에 대한 수백년동안 계속된 외래침략자들의 포위와 제국주의자들의 다국적인 봉쇄가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그 모든것을 이겨내기 위한 조선사람들의 생활력과 민족성은 그만큼 더 강하여졌다고 볼수 있습니다. 비근한 실례이기는 하지만 먼데로 가지 말고 대포위망안의 또 포위속에서 살았다고 할수 있는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장장 수십년간 고난과 시련의 극한점, 황동지가 늘 이야기하군 하던 그 참기 어려운 혁명의 <림계점>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간고한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성격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이 그전에 형님을 보고 <지리산의 갈범>이라고도 불렀댔지요. 가령 여기에 지리산에서 잡아온 조선범이 하나 있다고 칩시다. 조선범은 불범(성질이 조폭한 표범)이나 느린 백범하고도 또 달라 모든데서 크고 듬직하며 점잖고 순한것 같다가도 일단 한번 성이 나면 무섭고 끝을 내고야 마는 강한 성격과 끈질긴 인내력을 가지고있습니다. 철창속에 가둔 그 범은 아무리 쇠꼬챙이로 쑤시고 때려도 머리를 수그릴줄 모르고 뒤걸음질을 절대로 하지 않으며 칼을 들이밀면 칼날을 떡떡 마주 물면서도 굴함이 없는것입니다. 범은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일줄 모릅니다. 그렇기때문에 저는 생활력과 인내, 고난극복정신이 강하고 이악한 우리 조선사람들을 감히 그 조선범에 비유하고싶습니다. 저는 세계에 자랑으로 내세울만한 통일애국투사들인 강한 신념과 의지, 인내의 화신이라고 할수 있는 우리의 비전향장기수들의 경이적인 출현! 이것은 저절로 이루어진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날엔 사대망국의 치욕스러운 길을 걸으며 억눌려 살아왔던 우리 인민에게 오늘과 같이 민족적긍지와 자부심, 민족적인 우월감과 존엄심을 가지고 떳떳이 머리를 쳐들고 싸워이길수 있는 그런 힘을 안겨주신분이 누굽니까. 그것은 두말할수 없이 우리 민족의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이십니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전통을 가진 슬기로운 우리 민족의 우수성도 세기의 위인들을 모시지 못하였더라면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습니까! 민족의 새로운 성격형성의 력사, 또 그 나라 인민의 고유한 민족적우수성 역시 수령의 탁월성과 령도자의 위대성에 기인되는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수많은 비전향장기수들의 배출은 태양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확인, 또하나의 증시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흥분과 격정으로 세차게 가슴높뛰는 이 시각 크나큰 민족적자부심을 안고 온 세상에 대고 이렇게 소리높이 웨치고싶습니다. 장쾌하도다! 우리 조국의 자랑, 우리 태양민족의 우수성의 증명-비전향장기수들에게 영광이 있으라! 길어진 편지를 이로써 마치면서 형님! 내내 앓지 마시고 이제 남은 여생이나마 서른다섯해 감옥에서 잃어버린 청춘의 나이를 되찾아가지고 오래오래 앉아 복된 삶을 누리기시를 진심, 진심으로 바라옵니다.
주체89(2000)년 9월 20일 윤택수 올립니다.》
… 사람들은 오늘도 비전향장기수 황갑동로인을 흔히 《지리산의 곰》 또는 《지리산의 갈범》이라고 믿음과 애정을 담아 부르군한다. 그러나 그자신은 자기를 결코 그 어떤 요란한 조선범과 같은 존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는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늘 자신을 다른 동료들의 뒤에 세우고 조용히 웃으면서 살고있다. 정녕 진짜의 영웅들은 자기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것인가. 가슴에 아직 금메달을 달지 않았을적에도 우리 인민들이 모두 알아주는 수많은 민족의 영웅들중의 한사람인 비전향장기수 황갑동은 그지없이 소박하고 겸허한 사람이다. 그런데 80이 가까와오는 지금에도 그는 이상하리만치 머리칼 한오리 세지 않은 꿋꿋한 로인이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불이 황황 타고있으니 그것은 조국통일위업을 위해 자기의 한생을 초불처럼 깡그리 태워가려는 뜨거운 마음의 불길인것이다. 그의 몸은 지금 행복의 동산에 와있건만 그의 넋만은 아직도 지리산에 가있다.
2001년 가을 평성 장수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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