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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별은 밤에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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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혼자서 가만있지를 못한다. 자꾸만 한군데로 모였다 합쳐진다. 작은 샘줄기가 실개천이 되고 실개천이 모여서 강이 되고 대하의 흐름들이 합쳐져서 바다가 되는 그것이 물의 속성이다. 제자리에 가만히 갇혀있는 물은 마른다. 썩는다. 강이 되지 못한다. 바다에 닿지 못한다. 그런 물은 죽은 물이다. 사람들의 투쟁원리도 그와 마찬가지리라. 그것은 감옥투쟁에서도 마찬가지인것이다. 근 15년 가까이 청주《감호소》에 감금되여 세상과 격리되여있던 비전향장기수들의 견인불발의 투쟁은 남조선과 국제사회계의 동정과 지지 특히 공화국정부의 동포애의 정 넘치는 성의와 노력에 의하여 결실을 보게되였다. 박정희가 저격을 당한후 《숙군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역도는 사회의 민주화를 요구하여 일떠선 광주의 청년학생들의 투쟁을 땅크와 비행기 등 대무력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함으로써 광주를 무고한 시민들과 애국청년들의 피로 물들였다. 파쑈도당의 총 퇴진을 요구하는 민중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감호소》의 흑막이 온 세상에 드러나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항의와 규탄을 받게된 남조선집권자들은 더는 비전향수들을 감옥 아닌 감옥에 억류해둘수가 없게 되였던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의 단결된 옥중투쟁의 계속과 강력한 외부적인 지원, 특히 북반부인민들의 형제적인 열렬한 지지성원과 강경한 석방요구, 세계인권옹호단체들을 비롯한 국제적인 사회여론의 압력에 못견디여 남조선괴뢰당국은 비전향장기수들을 석방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놈들은 그들을 한날 한시에 일시에 《감호소》에서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밖에 나가 다시 만나서 또다시 그 어떤 사회적인 운동을 위해 하나 둘 모여드는것을 바라지 않았던것이다. 더구나 자기들이 수십년을 두고도 그 의지를 꺾어내지 못하고말았던 비전향장기수들이란 매우 단합심이 강한 무서운 존재들이였기때문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출소시킬 때 각이한 날자와 시간을 택하여 어제 내보낸 사람, 오늘 내보내는 사람, 래일 내보낼 사람 그리고 이른 새벽에도 오전과 오후, 밤깊어서도 서로 모르게 극비밀리에 딱 한명씩 형무소밖으로 내보냈던것이다. 황갑동이도 어느날 깊은 밤중에 그렇게 혼자 《감호소》에서 내놓였다. 그야말로 밤의 절반이라는 야밤삼경이였다. 하늘에 별 하나 없는 캄캄칠야에 밖에 나서니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겠는지 막막하였다. 감옥에서 풀려나오기만 하면 막 사방으로 날개돋쳐 날아다닐것만 같더니 다른 어둠의 철장막속에 갇히운상 싶은 자기의 인생길은 여전히 암울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것이였다. 세상은 넓어도 선뜻 갈곳이 없고 오라고 반겨줄이도 없는 외로운 나그네인 그, 지금 그에게 있어서 제일 그리운것이 집이였고 어머니였고 밥이였고 그와 함께 고통의 련속이던 감방생활속에서도 외로움을 잊게 해주고 서로의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여주던 그 무엇인가가 몹시도 옆에 그리워지는것이였다. 그것은 전우들, 동지들이였으며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단합체인 조직이였다. 이제부터는 집도 없이, 그 모든것도 다 잃고 이 험난한 세상을 혼자 헤치며 새로운 투쟁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고독하기 그지 없었다. 이제 어디 가서 무엇을 하면서 살것인가? 자기가 이때까지 배워가진 재간이란 호미질 하는것과 감옥살이를 견디는 법과 심부름군 노릇뿐이였다. 심부름으로 말하면 동네심부름으로부터 시작하여 동무, 동지들의 심부름, 조직의 심부름을 거쳐 선요원으로서의 혁명의 심부름군, 통일의 심부름군으로 한생을 바쳐왔다고 할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가서 심부름이라도 해줄데가 없는것이다. 그는 감옥과 《감호소》의 경계삼엄한 속에서도 자기가 동지들과 동지들사이, 감방과 감방, 감옥과 바깔과의 련계를 맺어주고 선을 이어주느라고 머리를 써 방도를 모색하여 동분서주하던 그때가 그리워지는것이였다. 불현듯 그에게는 얼마전에 먼저 출소되여나가면서 아무 의지가지가 없는 자기에게 석방되면 서울에 있는 자기에게로 찾아오라는것, 막내동생이 민주단체인 《민가협》과 련계가 깊은데 일정한 도움을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하던 동료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이 매우 진실하고 진취적이며 행동적인데가 있는 권락기와 다시 손을 잡으면 살아가는 문제도 그렇고 무슨 필요한 일감을 하나 만들어낼수 있을것만 같았다. 지금 자기가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긴요한 일은 놈들이 전국각지 산지사방으로 흩어놓은 비전향장기수 동료들의 끊어진 선을 어떻게 하나 이어 서로 만나서 앞날도 의논하고 특히 아직은 하나의 념원으로만 되여있는 북으로의 송환을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을 벌릴수 있게 하는것이였다. 하루밤 어디 들어가 잘데도 없는 나그네, 터벌터벌 밤길을 걸어 역으로 걸어가고있던 황갑동의 머리에 떠오르는 한가지 생각이 있었다. 이제 일이 어떻게 되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에 가게되면 권락기의 동생을 통해 《민가협》의 사회적방조를 받아 자그마한 건물이라도 하나 채용할수 있게된다면 거기에 출소된 비전향장기수들이 몇명 모여살면서 정상적으로 동료들, 옛 감방전우들이 서로 상봉할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놓자는것이였다. 그 이름은 《희망의 집》이라고 해도 좋고 《만남의 집》이라고 해도 좋고 적당히 달면 될것이였다. 그날 밤은 역전의 장의자 한쪽에 꼬부리고 새우잠을 자고 다음날로 기차를 잡아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권락기를 찾아갔지만 그도 아직은 동생네 집에 얹혀살고있는 형편인지라 당장 먹고살아갈 일이 막연하였다. 권락기의 동생도 만났는데 그는 《만남의 집》설치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면서도 그에 필요한 맞춤한 건물의 확보에 대해서만은 선뜻 시원한 대답을 주지 못했다. 다만 《민가협》일군들과 상담을 해봐야 알겠는데 희망은 잃지 말고 당장은 일정한 거처지와 직업을 가지는것이 급선무일것이라는 조언을 주었다. 비전향장기수들을 출소시킬 때에는 나가면 살수 있는 모든 조건도 다 구비해주며 요구하면 직업도 알맞게 알선해준다고 하였는데 전부 거짓말이였다. 황갑동에게 차례진것은 무의무탁으로 혈혈단신들인 늙고 병들어 죽어가고있는 로인들의 마지막 지옥행렬차라고 할수도 있는 양로원이였다. 거기에 수속하여 들어가 며칠 있어보니 잠자리는 베개가 있나 덮개가 바로 있기를 한가 먹이는것도 한심하지 《감호소》보다 나은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억울하게도 수십년간이나 감옥살이에 이어 《감호소》생활을 더하고 나온 70∼80고령의 비전향장기수로인들에 대한 당국의 처사에 격분을 금할수 없게 된 황갑동은 어느날 해당 지역 경찰서로 찾아갔다. 양로원수속을 할 때 잠간 비치였던 두리뭉실하게 생긴 담당경찰이 나왔다. 《황로인,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소?》 《경찰서장님을 만나려고요.》 《경찰서장님은 왜 만나자고 그러시우?》 《할 말이 있어서요.》 《할 말이 있으면 나한테 해도 됩니다.》 《아니, 경찰서장을 직접 만나야겠시다.》 《나를 만나서는 안될 일인가요?》 《당신한테 말해야 해결될것 같지 않아서 그러는게요.…》 《황선생, 그러지 말고 저한테 말하면 제가 그대로 경찰서장님에게 찾아오셨던 사연을 말씀드리겠으니 그렇게 하시죠?》 《좋시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전하시오.》 《어서 말씀하십소. 황선생.》 《나를 차라리 <감호소>로 되돌려보내달라고 하더라고 하시오.》 《아, 그 소립니까. 그렇지만 이제 다시 감옥에야 어떻게 보내겠습니까. 세상에 그런 법은 아직…》 《왜 못보내겠소. 또 제2의 <감호소>같은걸 만들어내면 되지. 법이야 당신네들이 만들기탓인게고…》 《황선생, 이거 몹시 노하신것 같은데 그럼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방도가 무엇인지.》 담당경찰이 이렇게 나오자 황갑동은 진짜의 자기 요구를 들이댔다. 《내 요구라는건 다른게 없시다. 다른데도 가지 못하게 산 사람들의 지옥같은 제2의 <감호소>인 양로원에 딱 억류해놓다싶이하고 감시케 하지 말고 내 가고싶은데로 가서 맘놓고 살다가 편히 죽게해달라 이거지요. 《그건 내 마음대로는 못하는 일이니 그렇게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내 애초에 당신하고는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등마. 자꾸만…》 《황선생, 그러지 말고 제 사정도 좀…》 《당신들이 우리 사정 안봐주는데 내가 거기 사정을 알게 뭐요. 무조건하고 나럴 경찰서장을 만나게 해주시오!》 《하, 이거 야단났군. 좋시다. 그럼 내 들어가서 우리 경찰서장님한테 고대로 황로인의 요구를 전해보겠습니다.》 《그저 전하는게 아니라 경찰서장의 확답을 받아내오기전에는 다시 양로원에도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며칠이고 버틸줄 아시오.》 황갑동은 그날 어두워질 때까지도 경찰서 접수실안에서 떠나지 않고 기다렸다. 경찰서안에서는 《감호소》에서 따라온 문건을 통해서 비전향수 황갑동이 순한것 같다가도 일단 한번 성나기만 하면 그 누구도 걷잡기 어려운 경악실색할 정도의 일을 치는 사람이라는것을 알고있는지라 론의가 분분했다. 드디여 경관들의 퇴근시간이 지나서야 휘줄근해서 나온 담당경찰에게서 가고싶은데로 가도 무방한데 갈 때에는 어디로 간다는것만 꼭 알려주기만 하면 되겠다는 굴복을 받아내가지고야 황갑동은 경찰서를 떠났다. 그는 권락기를 찾아갔다. 그의 동생을 비롯한 《민가협》 사람들이 《감호소》에서 갓 출소되여나온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사회적관심이 높은 점을 중시하여 집 한채를 마련해놓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기다리고있었다. 권락기와 함께 거기를 찾아가니 권락기의 동생과 《민가협》일군들이 나와서 따뜻이 맞아들였다. 서울시 종로동에 위치하고있는 이 집은 방은 부엌까지 합쳐서 두방밖에는 안되였지만 네댓명은 들어가 생활할수 있는 쓰기 편리한 독립가옥이였다. 그날부터 황갑동은 동료 권락기와 함께 여기서 새 생활을 시작하였다. 말하자면 옛 동지들의 뜻깊은 상봉거점인 첫 《만남의 집》이 발족된셈이였다. 서울×××동 109번지에 《만남의 집》이라는것이 하나 생겨 지리산의 《갈범》이라고 불리우던 황씨성을 쓰는 비전향장기수로인이 다른 자기 동료와 같이 나와서 고달픈 생활을 하고있다는 소식이 삽시에 온 시내에 퍼졌다. 매일 신문사기자들이 찾아왔고 방송국 기자들과 텔레비죤 촬영가, 연출가들이 와서 비전향수의 말을 록음해다가 내거나 록화물을 찍어다가 텔레비죤화면으로 방영하기도 했다. 그것을 보고 수많은 시청자들중에서 량심적인 민주인사, 사회인사들도 찾아왔고 중학생, 전문학교 학생들과 대학생들 지어는 가두의 녀성들까지도 떡이며 국수 등 음식들을 해가지고 찾아왔다. 그리하여 눈물겨운 장면이 자주 벌어지군 했다. 황갑동이네들에 대한 량심적인 여러 시민들의 물질적인, 재정적인 지원도 있어 두루 살아 갈만한 생활방편도 열리였다. 그러나 이 모든것들보다도 중요한것은 황갑동이네들이 그 첫 주추돌을 놓은 《만남의 집》에 서울을 비롯한 전국각지에 흩어져있던 비전향장기수들이 모여와 새로운 투쟁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의의있는 상면을 하게 된것이였다. 미구하여 이 《만남의 집》에서는 황갑동이와 권락기 말고도 비전향장기수들이 모여 늘그막의 동거동락하면서 북으로 가기 위한 활약을 맹렬히 벌려나갔다. 이를 알게된 거주지역 경찰서에서 미거주라는 조건을 내걸면서 당장 그 집을 내고 시외나 지방으로 나가라고 매일같이 독촉하군 했다. 《전과자》들 특히 비전향장기수들이 서울 《주거승인》을 받으려면 《대통령》의 허가가 내려야 한다는것이였다. 하여 《만남의 집》 존재자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였다. 이런 정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수인들이 많았던 감옥과도 달라서 집단적인 롱성을 벌릴수도 없고 방도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가지 명백한것은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의 마음속 의지이고 희망의 집인 자기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고 투쟁기지인 그 《만남의 집》을 그냥 내주고 물러갈수는 없다는것, 절대로 한발자욱도 물러서지 말고 맞받아나가 끝까지 완강한 의지로 싸워야 이긴다고 하는 지난 투쟁의 경험이였다. 드디여 경찰서에서 래일 강제추방을 단행하겠다는 최후통첩이 왔다. 그 이튿날 아침을 든든히 먹고난 황갑동은 아무 말없이 집을 나서는 길로 곧장 경찰서로 찾아갔다. 그는 경관들이 한창 출근중에 있는 경찰서 정문앞에 가서는 훌 가로 누워버렸다. 자기의 가슴우에는 경찰서에서 보냈던 그 강제 《철거장》을 떡 올려놓고서… 그렇게 련 삼일을 거기서 버티여내였다. 길 지나던 숱한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여와서 경찰서의 부당한 처사에 분격하여 항의를 들이대였고 특보감을 찾아낸 신문기자들이 달려와서 사진을 찍어갔다. 일반 경찰들은 정문앞을 막아서 큰대자로 누워버린 비전향장기수를 욕질하면서 돌아들어갈수도 있겠지만 경찰서장의 차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그냥 깔아뭉개고 지나갈수도 없고 야단은 야단이였다. 황갑동은 사흘동안을 거기 그냥 누워버렸다. 할수 없다고 생각한 경찰놈들이 아예 요정을 내버릴양으로 각목들을 들고 달려들어 뭇매를 안기려고 할 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서장이라는 자가 바쁜 소리를 질러댔다. 《야, 함부로 다치지 말래두! 아무것도 알지들도 못하는 멍청이같은 자식들, 당장 이 황선생을 내 방으로 모셔드려라.-》 《알겠슴더, 서장님.-》 이리하여 이날 황갑동은 경찰서장에게서 사죄와 함께 《대통령》의 날인이 있어야만한다던 서울시 ×××동 시민으로서의 《주거승인》을 종시 받아내고야 말았다. 황갑동은 그가 걱정되여 경찰서앞에 와서 밤새 동무해주며 지켜봐주고있던 권락기를 비롯한 고마운 동지들과 같이 마치 개선장군이 되기라도 한듯한 기분으로 그리운 자기네 《만남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맞서 싸우면 디디고 올라서는 법이다. 아, 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쳐온 우리가 죽을 때까지도 하여야 하는것이 싸움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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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감호소》에서도 나오고 《만남의 집》에서 통일의 희망을 안고 살면서도 황갑동이와 그의 동료들은 자기들이 그처럼 마음속에 그리며 동경하여마지 않던 공화국의 품에 다같이 안기게 될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었다. 자주 자기네 《만남의 집》을 찾아주군 하는 민주단체인 《민가협》일군들에게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정말이지 분계선 콩크리트장벽너머 북에서 제때에 힘있게 내밀어준 구원의 손길이 아니였던들 비전향장기수들의 평양송환과 같은 세계의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경이적인 사변이 일어나지 못했을것이다. 이것은 오직 암흑의 남녘땅에서 장기간 감옥투쟁을 굴함없이 벌려온 조국의 참된 아들들인 비전향장기수들의 평양송환을 위해 그토록 마음 써오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은정이 낳은 빛나는 결실이였다. 비록 《감호소》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아직 어두운 감옥같은 세상에서 살고있는 비전향장기수 로인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는 위대한 어버이장군님과 같으신 분의 심로와 담대하신 결단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력사적인 사변을 기대할수 있으랴. 오래동안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다가 나온 비전향장기수들을 두고 걱정하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기 위해 그리도 마음쓰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선 먼저 리인모로인을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면밀한 작전을 하시고 그 사업을 몸소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심으로써 비전향장기수들의 평양송환의 첫 돌파구를 열어놓으시였던것이다. 그이께서는 필요한 통일행사참가를 위해 남조선으로 들어가게되는 우리 일군들에게 비전향장기수로인들의 집에 찾아가 만나도록 하고 김인수로인에게는 자신의 뜨거운 안부의 인사가 담긴 장거리전화까지 걸게 하시였던것이다. 이즈음에 북남최고위급수뇌분들의 평양상봉을 몸소 마련하시여 《6.15북남공동선언》을 발표하시였고 화해와 단합, 통일의 열풍으로 더욱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신 김정일장군님께서 60여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을 한꺼번에 어머니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큰 용단을 내리시였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황갑동의 가슴은 그 얼마나 뜨거운 감격과 격동으로 높뛰였던가. 비전향장기수들의 집단적인 북송은 참으로 눈물겹도록 고맙고 고마우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해같은 은덕에 의하여 이루어진 우리 조선에서만이 있을수 있는 민족의 대경사요 경이적인 사변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저절로 찾아온 행운이 아니였다. 힘들게 차례진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멀리로는 자신들은 누리지 못하는 비전향장기수로서의 고귀한 영예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피흘려 싸우다가 숨져버린 수많은 동지들의 고결한 희생이 깊이 깔려있었다. 가까이로는 비밀편지 련락으로 일본에 있는 자기 가족들을 통해 그때까지만 해도 짙은 안개의 흑막속에 가리워져있던 남조선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혹독한 인권유린행위를 국제기구들에서까지 정식 의제로 올릴수 있게 만들었던 량심적인 애국청년을 비롯한 여러 동지들의 지지성원과 정의로운 투쟁이 있었기때문이였다. 다른 비전향장기수들과 마찬가지로 황갑동은 어서빨리 고마운 장군님의 품에 안길 조국송환의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제 남녘땅을 떠나기에 앞서 황갑동이 비전향장기수로서 해야할 량심의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통일의 날을 앞당기는데 필요한 일들이였다. 그 하나는 우선 지금 비전향장기수들 그 누구나 가슴설레며 마음속으로 다 북송을 열렬히 희망하고있지만 개별적인 경우에는 남기고가야하는 사랑하는 부모처자들이 있던가 두고가는 적지 않은 유산이 있어 못내 동요심도 없지 않아 종잡을수 없어하는 사람들을 동지들과 힘을 합쳐 잘 도와줌으로써 송환자들의 대렬을 늘이는 문제였다. 다른 하나는 피치 못해 부득불 암흑의 땅에 그냥 남게되는 사람들을 리해를 가지고 대하면서 잘 고무하여 자식들을 데리고 투쟁을 계속하도록 하게하는 사업 그리고 그때 함께 싸우다 헤여진후 생사를 알길없는 사람들, 어디에 깊이 숨어 세월의 락엽속에 영영 묻혀버리고말수도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여 투쟁정신을 고취해주고 떠나는 문제였다. 또한 함께 싸우다가 전사한 동지들의 자녀들을 찾아내여 그들이 아버지의 대, 통일의 대를 굳건히 이어나가도록 계주봉을 잘 넘겨주고가는 자각된 의무의 수행이라고 할수 있었다. 송환대렬과 관련한 문제는 현재 내적으로 비전향장기수송환준비위원회 비슷한것이 이미 발족되여 능동적인 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벌리고있으니 크게 걱정할것이 없었다. 제일 어려운것은 오래전부터 내내 생각해오며 애써오던 미결된 일들을 꼭 실현하고싶은 마음의 과제였다. 또한 이미전에 전사한 리현상과 김지희, 리옥순이와 문복순이, 권영태와 그의 어린 안해였던 콩동무 그리고 대전감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마지막으로 혀가 끊어진 입으로 《아리랑》을 부르고 떠나간 강덕금이 등 동지들의 령체를 찾고싶은것이였다. 그리고 꼭 알고싶은것은 딱히 죽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던 《제비》의 애인인 별동무가 그 어디에 살아 신분을 숨기고 조용히 혼자 지내고있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아명이 별이였던 별동무의 운명을 두고 말한다면 제가 잡히여들어온 다음에도 자기의 녀성중대를 이끌고 지리산야를 누비며 계속 잘 싸우고있다는 소식도 들었고 반대로 그후 전투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일설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는것을 앞에서 직접 보았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 사실로 미루어보아 그 이름난 유격대 녀중대장이 십분 어딘가에 살아있을수도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였다. 그 다음에는 남원 포로수용소에서 총살당하는 순간에까지도 놈들앞에서 꿋꿋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으며 《전향하는 자는 오늘은 살아날런지도 모르지만 후에 력사가 그를 다시 죽이며 비전향수는 비록 오늘은 죽어도 후에 력사가 그를 다시 살린다는것을 알라. 력사, 력사를 두려워할줄 알라.-》고 불같이 웨치고간 전라북도 인민위원회 위원장, 그 녀성일군이 낳은지 얼마 안되던 사랑하는 아들을 간수부장 《공산명월》에게 피눈물로 넘겨주지 않으면 안되였던 바로 그 피덩어리 자식의 그후 운명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황갑동은 별이네 녀성중대에서 같이 싸웠다는 녀성이 있다는 지방도시의 《만남의 집》으로 찾아가게 되였다. 남해가에 있는 그 《만남의 집》에서의 이름 모를 지리산의 녀대원과의 뜻깊은 상봉의 저녁이였다. 아까부터 그 녀성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있던 황로인이 주저주저하다가 물었다. 《저 한가지만 더 물어볼랍니다. 혹시 별동무라고 들은적이 없는지요?》 《별동무요? 지리산지휘부의 녀성들만으로 조직되였던 경비중대 지휘관 그 별동무 말이지요?!》 《예, 하동에서 입대했던…》 《제비라는 별호로 불리우던 애인인 남동무가 북으로 들어간후 소식이 없다는 소리가 있던 그 동무 말이지요?》 《아니 어떻게 그것까지 다? 저넌 그 <제비>의 둘도 없는 전우였답니다.》 《그러세요? 저는 동지들이 다 체포되여 간후 그 별중대장동무랑 한부대에서 싸우던 친한 동무랍니다.》 《그렇구만이라요?》 《그 별동무의 원래 이름은 황순이였답니다. 이름 그대로 지리산의 별처럼 빛나게 살았던 황동무로 말하면 아주 훌륭한 인간이였고 전투마다에서 이름을 떨친 녀성지휘관이였답니다.》 《그래요오.-》 《…그것이 아마 1951년 여름이였을거예요. 인민군대의 재진격과 함께 지리산의 거듭되는 승리에 다시 투쟁의 활기를 되살렸던 그 시절에 황동지도 알고 계시겠지만 별동무네 녀성중대가 조직되였댔지요.》 이렇게 허두를 뗀 옛 유격대원은 그때 그 녀성중대의 용감한 지휘관으로 성장했던 황순이의 투쟁소식을 전하여주었다.
…순전히 녀성들로만 조직된 중대! 그 30여명의 생신한 녀성부대의 앞에는 지난날엔 천덕꾸러기였던 진주댁, 어제까지만 하여도 억울히 죽인 애기를 부여안고 눈물밖에는 흘릴줄 모르던 별지엄마인 별동무가 서있었다. 재봉대에 있을 때부터 자기로서도 무슨 마음의 설계가 있어 남달리 사격훈련을 부지런히 해왔고 군사를 배우기 위해 힘써온 그였다. 별이는 애가 죽은후 불타는 복수의 일념을 안고 재봉대로부터 전투부대로 자진해서 옮긴 첫 시기에 지휘관들에게 이미 자기가 손에 익힌 엠완총을 요구했다. 남자도 아니고 녀성의 몸인데다 청학동의 치성터에 가있을 때 얻은 위병으로 병약한 그로서는 무거운 엠완총을 다룬다는것이 용이하지 않았다. 모두가 만류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전에 놈들의 《토벌》이 더욱 심화될 때에도 지휘관들이 애기와 같이 하산시키려하다못해 마지막에는 그가 하산을 시킬바에는 차라리 총으로 쏘아달라고 아예 강짜를 부리는 바람에 그냥 재봉대에 남겼던터인지라 본인의 요구대로 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악하게 달라붙어 무기다루는 법과 사격훈련을 남달리 열성껏 하여 마침내 나는 새를 맞추어떨구는 빨찌산의 명사수로 소문이 나게되였다. 원래 마음이 곱고 어지며 작풍이 바르고 투쟁각오가 높은 그를 녀성중대의 동무들 모두가 좋아하며 따랐다. 하여 녀성집단이지만 호위중대내에는 항상 건전하면서도 인간적이고 따뜻한 기운과 풍만한 정서가 넘쳐흘렀다. 그의 중대는 언제나 화목하고 전투사기가 충천해있었다. 그는 전투조직도 잘하고 전투에서 솔선 앞장에 서서 수범을 보였다. 전투시에는 반드시 적을 포위해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는 드센 명중사격과 함께 함화공작을 배합하군 했다. 그가 조직하는 전투의 특징은 포로를 많이 하여 잘 돌려세우는것이였다. 포로들에게 의사를 물어 산에서 싸우겠다는 사람은 남기고 하산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돈과 식량을 주어서 내려보냈는데 어떤자들은 헤여질적에 눈물까지 흘리였다. 특히 동지우애심이 남달리 뜨겁고 인정이 많은 녀성인 그는 전투장에서 부상당한 사람만이 아니고 전사한 전우들까지도 그 시체를 제가 업고 산으로 올라오군 했는데 적들도 그것을 알고 그 성정에 못내 감복되였다고 한다. 별동무는 전투에서 적들이 던진 수류탄도 되받아 적진에 던져 원쑤놈들을 무리로 사살한 용감한 녀성이다. 그래서 어디에 별동무네 녀성중대만 나타났다고 하면 그는 총도 명수요 전술도 능수이고 마음도 정신도 용맹도 뛰여난지라 적들은 기가 꺾여 녀자들 총에 죽지 않으려고 대응도 하지 않고 달아나는 일도 있었다. 별이네 녀성중대는 주로 아버지, 어머니가 놈들에게 학살되였거나 오빠나 남편이 전투에서 전사한 녀성들로 꾸려진 복수자들의 대오였다. 별이네 중대가 벌린 전투들중에서 제일 유명한것은 증산리 매복전투였다. 어느날 별동무가 30여명 녀성중대를 인솔하고 보급투쟁을 나가는데 마을사람들이 하는 말이 오늘 덕산에 갔다가 들은 소리라고 하면서 래일 《토벌대》놈들 백여명이 증산리로 출동한다는것이였다. 원래 증산리는 합법적인 해방구였던 곳이라 별이는 미리 련계를 취해놓고 그 이튿날 30여명 전투원들을 데리고가서 마을주변에다 잠복을 시켰다. 그는 제일 용감한 녀대원 세명만 데리고 마을 앞코숭이의 병모가지같이 생긴 곳의 량쪽 언덕에다가 엠-완 련발총을 한쪽에 각각 두정씩 배치해놓고 기다렸다. 그날 역시 별동무가 지형지물을 옳게 선택리용하여 함정을 파놓고 녀대원들에게 민가에서 가져온 닦은 콩 한줌씩 나누어주어 인내성있게 기다리도록 하였는데 낮 12시에야 적정이 나타났다. 점심때가 다 되여서 군용트럭 두대가 길가에 먼지를 일으키며 주저없이 마을에 씽- 들어와서 멎었다. 중대장인듯 한 대위놈의 구령에 의하여 두대의 자동차에 빼곡이 탔던 괴뢰군들이 내리려는 찰나에 녀성중대 출현시의 특징인 공격나팔소리가 산야를 뒤흔들며 별동무의 신호총성과 함께 집중사격이 개시되였다.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몰살의 운명에 처한 괴뢰군놈들은 마구 뛰여내리다 총에 맞아 땅에 코를 박고 힘없이 나자빠지군 했다. 자기들이 포위에 들었다는것을 안 살아남은 놈들이 기를 쓰며 마을을 벗어나려는것을 돌바위산 언덕우에 배치하여놓은 4정의 엠완총이 무섭게 불을 뿜어댔다. 그 전투에서 거의 다 멸살이 되고 겨우 목숨을 건진 몇놈만이 자기편 부상자들과 죽은 시체들을 그냥 내치고서 민가로 숨어들려다가 미리 준비하고있던 마을녀인들의 빨래방치에 대갈통을 얻어맞고 그 자리에서 뻗어버렸다. 싸움은 이내 끝나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혔다. 그런데 웬 괴뢰군 병졸 한놈만이 유독 그래도 자기상관이라고 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자기 가슴에 권총을 들여대는 바람에 할수 없어서 그랬던지 중상입은 장교놈을 등에 업고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 죽기내기로 옆산으로 허둥거리면서 오르고있었다. 그러는것을 발견한 한 녀대원이 저격하려고 하였다. 《쏘지 말아요, 흠 그래두 용쿠먼요. 부상입은 자기 상관을 업어가는 놈이 다 있구. 괴뢰군들로서는 처음 보여준 전투풍경이니 가서 두놈을 다 이리로 붙잡아와요!》 《알겠습니다. 중대장동지!》 그 녀대원은 금시 명중탄을 안기려던 엠-완총을 오른손에 들고 그쪽으로 바람같이 사라졌다. 한편 그 괴뢰군놈은 목에서 겨불내가 올라오는것을 참고 산중턱의 웅덩이진 잔솔밭에 이르러 무겁게 등에 척 늘어지다싶이한 장교놈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였다. 이미 전투의 총성은 멎고 위험한 고비는 지나간것 같았지만 이제 빨찌산들이 마을주변 산들까지 수색을 할지 뉘 알랴. 그런데 이 장교놈을 업고는 기진맥진하여 더는 저 높은 산고개를 넘지 못할것 같았다. 그래서 그자는 빨리 가자고 권총을 가슴에 내대고 위협하는 상관을 다시 업을것처럼 하다가 재빨리 놈의 손을 쳐서 무기를 떨구어버렸다. 그리고는 이내 장교놈의 권총을 잡아 반대로 그자의 가슴을 겨누었다. 《야 이짜식, 환장하지 않았어?》 《환장을 했시다. 당신에게 끌리여 <토벌>나왔던 한개 중대를 순식간에 몰살시키는 빨찌산의 콩볶듯 하는 엠-완총성에 미치지 않을수가 있습니껴?》 《임마, 여기서 총소리 내면 나도 죽고 너도 죽어요.-》 졸병놈은 그 말이 옳다고 보았던지 권총을 배 있는데 찔러넣고 대신 단도를 꺼내드는것이였다. 《중대장님, 이거 미안합니다마는…》 《너 그 칼로 도대체 어쩌자는거여?》 《아무래도 중대장님을 고스란히 살려가지고 통채로 운반해가기는 일사가 틀린게라서 그 몸뚱아리 절반이라도 가져다드릴랍니다요.》 《그러니까 내 이.》 중대장놈은 한손으로 손칼을 만들어가지고 자기 목에 가져다대보였다. 《수급만 따가지구서…》 《뭐시? 내 목을 따가지고 혼자서만 살아서 가겠다 이 말이야?》 《어찌겠습니까? 그것만도 상당하지요. 내 그래도 중대장님이 동향이라서 특별히 생각을 해서…》 《야 이건 정말 산 사람 미쳐죽게 만드는구나.》 《시간 없습니더. 내 이제 표창으로 진급하고 휴가까지 받고서 집에 가게 되며는 고향의 부모님들에게도 당신이 반공일선에 나가 용감무쌍하게 싸우다가 빛나는 전사를 했노라고… 그러니 빨리…》 사병놈의 그 소리에 기겁한 장교놈은 피칠갑이 된 다리를 땅에 끄을며 어디로 달아나려다가 그만 두었다. 《이 세상에 믿을 놈이란 하나두 없구나. 그래두 한고향이라서 련락병을 시켰더니 네가 그렇게 무서운 놈이 된줄은 몰랐댔구나.》 《독사맹키로 악독한 너희들이 날 다 이렇게 맹글었으니 넉두리 작작하고서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빌기나 하시오!》 《아, 이것이 바로 반공투사의 마지막말로였단 말인고?》 놈은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소리없이 터져나오는 통곡을 피눈물과 함께 삼켰다. 《죽여라 죽여, 나도 죽이고 리승만이도 죽이고 다 죽여라.-》 련락병놈이 미친듯 악을 쓰며 덤벼드는 놈의 가슴에 칼을 박으려 할제 등뒤에서 《손들엇, 꼼짝하면 쏜다!》하는 되알진 소리가 들려와 두놈의 가슴을 얼구었다. 다른 한편 전장을 수습하여 무기들이랑 거두어들이게 한 별동무가 포로들을 끌고 마을에서 철수하려고 할 때였다. 개도랑창 있는데서 신음소리인지 비명소리인지 모를것이 들려왔다. 의아해서 가보니 거기에는 괴뢰군 사병 하나가 총에 맞아 쓰러져있는것이였다. 나이는 스무살도 채 먹어보이지 않는, 영양실조에라도 걸렸는지 긴 목이 더욱 가늘게 보이는 사병이였다. 그는 어깨에 총을 멘 웬 녀자군대가 와서 자기를 눈여겨살피는것을 보자 물에 빠진 놈 짚오래기 잡는 식으로 매여달리며 애원하는것이였다. 《여보시오, 녀자군대요. 살려주시오. 날 살려만 주면 내 다시는 이런 미국놈의 대포밥노릇 안할라요.》 《…》 《나 여기서 이렇게 죽어버리면 혼자 계시는 고향의 우리 어무니가 부… 불쌍해요. 나두 농사군의 아들인데 호… 홀치기에 걸려가지고…》 별이는 고향마을에 있는 자기 사촌동생 나이가 되였을가 말가한, 비록 군복은 입었댔어도 본시는 농사군의 자식이였다는 이 어져보이는 애어린 사병이 가엾게 여겨졌다. 어떻게 할가. 데리고 가 살려주고 본다? 이때 옆에 와서 같이 지켜보고있던 아버지, 어머니를 다 괴뢰군에게 학살당한 녀대원이 별동무의 팔을 잡아끌며 매몰차게 말했다. 《중대장동지, 뭘 봐요? 까짓놈 거기서 죽겠거든 죽고 어서 가자요!》 《그래 가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한참 걸어가고있던 별이는 고향에 혼자 있는 어머니가 불쌍하다던 그 나어린 사병의 눈물즐벅한 애원에 찬 모습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지 다시 돌아서는것이였다. 《이 총 가지고 먼저 걸어요!》 개도랑이 있는데로 돌아서 간 그는 심한 부상을 입은것 같은 그 사병의 몸을 일으켜 데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래 이 나어린 사병은 우리에게 사로잡힌 포로이며 포로이기에 앞서 미국놈에게 강제로 끌려 전쟁마당에 끌려나와 개죽음을 당하게 된 가련한 동포청년이 아니겠는가? 미제원쑤놈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사정두지 말아야 하지만 길을 잘못 들었다가 뒤늦게나마 피의 교훈을 찾고 자신을 뉘우치기 시작한, 손에서 총을 버린 조선청년에 대해서는 아량을 가지고 대하여야하지 않을가?) 이것이 그때 별이의 혼자생각이였다. 기다려서 걸음을 맞추어주면서 따르는 다른 녀대원이 《중대장동지, 중대장동지!》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은 부상병은 깜짝 놀라는것 같았다. 자기를 전장에서 수색발견하고서도 당장 쏘아죽이지 않은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글쎄 빨찌산의 녀자중대장이 금시전까지만 해도 자기들에게 총을 겨누었던 상대편 부상병에게 그렇게 너그러운 용서를 준다는 사실에 감동을 금하지 못하였다. (아, 세상에 인정도 박절한 시기에 자기네 부상자도 아닌 적편 포로부상병까지 살려주려고 데리고가는 이런 일이 어디에 다시 있을거냐? 이런 면에서도 《국군》은 지고 빨찌산은 당당히 이긴것이다! 이런 좋은 누나들, 이런 훌륭한 군대들의 가슴을 향해 총 한방이라도 쏜자가 있다면 민족의 대죄를 범하는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빨… 빨찌산의 누나! 나같이 죄많은 놈을… 죽게스리 내팽개쳐버리지 왜 데리고 갑니껴. 누나아-》 그는 별이를 간신히 따라오면서 울음을 터치였다. 승리한 녀성중대는 마을에서 멀지 않은 녀자중들만인 벽계사 절에 이르러 로획품들도 정리하면서 잠간 쉬게 되였다. 이때 포로된 괴뢰군 대위놈이 빨찌산 중대장앞으로 끌리여왔다. 녀대원에게서 련락병놈이 자기 직속상관인 이 장교놈의 목이나 따가지고 가자고 칼들고 접어들던 그 기막힌 장면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수십명 녀대원들은 일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자기를 둘러싸고 승리의 기개도 드높이 헌헌장부들마냥 통쾌하게 웃고있는것이 전부 맨 녀자군대들인데 어안이 벙벙해진 괴뢰군대위놈이 누구에게라없이 거만스럽게 묻는것이였다. 《오늘 이 마을 습격전을 지휘한 빨찌산장교는 왜 보이지 않소?》 《그건 왜 물어요?》 별이가 물었다. 《얼마나 째인 전법을 적용했는지 우린 단박에 완전히 녹은셈이지요. 사나이는 죽어도 큰 몽둥이에 맞아죽으랬다구 그 대장부인 지휘관을 한번 만나 경의라도 표하고싶어서…》 《그게 정 알고싶어?… 오늘 전투지휘는 다름아닌 내가 했소!》 《아니 녀자인 당신이? 그럴수가 없어 절대로, 나는 아까 분명히 마을 앞코숭이 돌박산언덕에 서서 전투지휘를 하고있는 사나이, 빨찌산대장을 보았단 말이요.》 《소위 <대한민국>을 제 <조국>으로 섬기고있는 눈깔이 먼 <국군>장교님, 당신은 잘못 봤소.》 이렇게 말하며 별동무는 어깨에 메였던 《엠-완》총을 벼락같이 벗기여 재우더니 마침 머리우로 날아지나던 까치를 별로 겨누지도 않고 쏘아떨구었다. 《봤어요? 녀자는 전쟁을 못하는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업신보고있는 당신과 같은 어리석은 자들에게 바로 미제국주의자들과 반동괴뢰군들이 이런 복수자들의 녀성중대가 지리산에서 생겨나게 만들었다는걸 똑똑히 기억시키고싶소!》 《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나는 바로 그 녀성중대의 중대장이요. 이름은 별!》 《아니 그럼 당신이 바로 그 유명한 지리산의 꺼질줄 모르는 별동무라는?…》 괴뢰군대위놈은 빨찌산 녀성중대장의 유연강직해보이는 단아한 모습앞에 그만 머리를 푹 떨구고야 말았다. 《빨찌산의 유명짜한 별대장님, 이제 저를 어떻게 처분하시렵니까? 별로 살아돌아갈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가지지 못하고있지만서두…》 《아니요. 우리는 다른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괴뢰군 하급장교인 당신까지도 다시 살려보내여 자기 민족과 조국앞에서 참회하고 회계할수 있는 마지막기회를 주려는것이요.》 《감사, 감사합니다. 제가 살아서 부대로 다시 돌아가게 되면 나의 동료들에게 우리 <국방군>은 말짱 살인에 미쳐버린 야수들뿐이고 진짜 사람같은 인간들은 지리산에 있더라고 말해줄랍니다.》 별이는 거기에 붙잡혀와있는 다른 포로들에게 물었다. 《거기서들도 우리는 억지로 붙잡아두지 않을테니 이제라도 치욕스러운 괴뢰군노릇 다시 하지 않고 함께 싸우겠다는 결심이 생긴 사람들이 있으면 여기 남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치욕스런 괴뢰군살이를 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은 도중 먹을거랑 돈서껀 려비로 줄터이니 내려가도 좋고 맘대로 하시오.》 제일 먼저 별이가 살려주고 데려왔던 사병이 나섰다. 《나넌 다시 잘못 걸어왔던 길로 되돌아가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니 빨찌산의 고마운 누나, 나를 버리지 말고 산으로 데리고가주십소.》 《좋아요. 그렇게 해요. 다음?》 아까 괴뢰군 중대장의 련락병이라던 자가 무엇인가 우려되는것이 있는듯 불안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저 중대장님하고는 같이 산을 내리지는 못하겠습니더. 그랬다간 공연히 화를…》 《그러니 어떻게 하겠다는거예요?》 《저… 저넌 할수없이 이젠 여기 남는 길밖에는… 저두 여기 남으면 안되겠습니껴?》 《아니, 필요없어요. 개도 물고 사람도 돌아서서 물 그런 무서운 인간은 아무데도 필요없어요!》 《그럼 저넌 어떻게 합니껴? 오도가도 못하고 가운데서…》 절망에 빠진 그 더럽게 되여먹은 비렬한 자의 몰골에서 장교놈까지도 일종의 고소를 맛보며 코물이 묻어있는 코털에 미묘한 웃음을 발랐다. 그날 지리산의 녀성중대, 별중대는 승리한 기세도 드높이 노래를 부르면서 씩씩하게 산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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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후에는 어떻게 되였습니까?》 황갑동이의 물음에 그 녀성은 이내 대답을 못하다가 심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별동무는 황동지랑 지리산의 수많은 전우들이 희생되거나 놈들에게 체포되여 수용소를 거쳐 감옥에 간후에도 그리고 정전이 된지도 여러해가 지났을 때까지도 산에 남아 우리와 함께 계속 싸웠더랬어요. 정말이지 여러차례의 <대토벌>로 말미암아 그처럼 우수하던 지휘관동지들도 수많이 전사하고 용맹을 날리던 유격부대들도 하나하나 괴멸되여가고 지리산이 텅 빈것만 같아 피타게 <동지들-> 하고 부르면 메아리만이 <동지드을> 하고 쓸쓸히 되돌아오군 하던 눈물겨운 시절이였지요. 살아있던 적지 않은 사람들중에는 더러 하산자들도 나왔지만 누가 말리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때 별동무는 자기 녀성중대의 마지막전우들과 함께 한사코 산에 남더군요. 그래 우리 부대와 합쳤지요. 말이 쉽지 그때 남성동무들도 얼마 살아남지 못했던 준엄한 정세로 보아 녀성들로서 끝까지 지리산을 지키겠다고 큰 맘먹고 나선다는것은 조련치 않은 일이였어요.》 《그랬을겝니다.》 《별중대장은 자기가 참가했던 마지막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중상을 입었지만 고지에 남아 전투지휘를 계속했어요. 옆에서 동지들이 아무리 먼저 산뒤로 퇴각해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고 마지막탄알까지 적들을 향해 날리고야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그만 쓰러지게 된 그는 녀동무들의 등에 업혀 겨우 추격을 벗어나 위기를 면할수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요?》 다음말을 재촉하는 황갑동의 긴장된 손에는 땀까지 쥐여졌다. 《…어느 한 민가에 업히여가 감자움속에서 일정한 기간 동지들의 정성스런 치료를 받아 상처가 회복되기 시작하자 그는 당장 대오로 돌아가겠다고 했답니다. 그렇지만 심한 부상으로 두팔을 다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 별동무는 다시 적들과 총잡고 맞서싸울 형편이 못되였지요. 저는 할수없이 죽어도 산에서 지리산의 돌을 베고 죽겠다는 중대장동무를 우리 동무들을 시켜 진주에 있는 외가마을 친척집에 보내주었지요.》 《그래 그후에는 어떻게 되였습니까? 살아있습니까 아니면언? 살아있다면 어디서 뭘하고있는지요?》 《살아있습니다. 그것도 멀지 않은 곳에,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어딘지 싸게 말만 해주면 이 길로 제가…》 《너무 흥분하지 말고 가만 앉아계셔도 돼요. 제가 만나게 해드릴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내가 나가보고올테니 여기서 담배나 태우시면서 잠간 기다려주세요.》 《…》 자기도 저으기 흥분된 상태인 그 녀성은 자신이 누구를 시켜 어디에 련락이라도 보내려고 그러는지 낮게 잡은 작대기에 의지하여 일어나 문께로 나가는것이였다. 황갑동은 방에 혼자 남게 되였다. 그 녀성이 손에 잡은 작대기까지 부들부들 떨면서 일어나 누구를 부르지도 않고 그 부자연스러운 몸으로 덤비면서 자신이 직접 일어나는것으로 보아 그저 심상한 일이 아닌듯 싶었다. 자기가 직접 데리러나가는것 같은 거동이였다. 그렇다면 별동무가 어디 딴데가 아니라 바로 여기 《만남의 집》에 모두 이 녀성이랑 함께 동거하고있는것이나 아닌지 하는 생각이 펀득 드는것이였다. 황갑동은 밖에 귀를 기울여보며 이제 자기에게 그 어떤 비상한 놀라운 순간이 찾아올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것이였다. 아니나다를가 좀 있어 문이 성급히 열리며 밖에서 들어오면서부터 《…지리산에서 누가 찾아오셨다구요?》 하는 반가운 소리를 앞세우고 방에 뛰여들다싶이하는 한 녀인이 있었다. 순간 저으기 놀란 황갑동은 무엇이 팔을 잡아끌어 당기기라도 하는듯 움쭉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서로 한동안 마주보기만 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갑동이의 앞에 나타난것은 별이가 아니였다. 근 50년이 되여오는 오늘까지도 자기의 표상속에 깊이 자리잡고 사라질줄 모르던, 치성터 산죽막의 소복단장한 미녀였던 그 진주댁이 아니였던것이다. 황갑동은 자기도 모르게 채머리 떨듯 머리를 저어보였다. 젊은 시절의 그 봄비에 씻기운 청신한 별과도 같던 지리산의 날파람있는 녀성중대장은 어디로 가고 어디서 늙은 안로인 하나가 서있었기때문이였다. 게다가 이발까지 다 뽑아져 호물때기가 된 파파 늙은 녀인의 주름깊은 이마우에 난 칼자리, 아득히 흘러가버린 세월의 저 멀리에서 젊고 아릿답던 시절 별이의 모습을 도루 찾아다가 그의 얼굴우에 덧놓기까지에는 어지간히 시간이 가는것 같았다. 그제야 다시 여겨보니 그가 옳았다. 틀림없는 별중대장이였다. 《아하, 별! 그 별이가 옳구만이라!》 《그러면 선생은 지리산의?》 《별동무,》 《아, 우리 별지의 삼촌 황동지!》 이 격정의 순간 두 전우는 서로서로 손을 꽈악 부둥켜잡고서 그 옛날의 격전터인 지리산에 젊음이 약동하던 자기들을 세워보며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50년만에 뜻밖의 해후를 한 그들은 서로서로 지난날을 추억하며 회포를 나누었다. 지리산 입산을 전후한 시기에 있었던 그들만의 류다른 생활일화들도 돌이켜보기도 했다. 그리고 특히 별중대의 나어린 명사수였던 콩동무의 기막힌 최후와 제절로 혀를 잘라 벙어리가 되였던 강덕금이의 장렬한 전사에 대해서도 떠올리면서 비분강개해지는 무거운 심정에 사로잡혀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기도 했다. 《그래 이 <만남의 집>에 온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갑동이 물은 말이다. 《거의 그 초창기부터 림선생의 도움으로 이 윤선생과 함께 와있었지요.》 《그러니 그때부터 오늘까지 내내 독신으로 지냈겠습니다?》 《그렇지 않구요. 전우였던 남편들을 산에 묻고 내려온 우리 애젊던 녀동무들중엔 혼자 살아나가기가 바쁘고 외로워도 다른데로 출가할 마음을 먹었던 녀자는 하나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하물며 북에 그이가 살아계신 제가 어떻게…》 《그럼 손동찬동무의 그후 소식이라도?》 《더 다른 소식을 들은건 없지만서두 전쟁시기도 그렇고 그때 북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다 잘되였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그에게 불행한 일은 없을거예요. 여기 남녘땅에 오늘도 자기를 기다려주는 안해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이가 통일의 날을 하루라도 당겨오기 위한 일에서 더 힘을 내고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옳았다. 황갑동은 어제도 별이였고 오늘도 변함없는 통일의 별로 남고저 하는 이 녀인앞에서 자연히 머리가 숙어짐을 느꼈다. 이번에는 별이가 물었다. 《황동지는 지금 어떻게 지냅니까. 부인을 하나 맞아들였겠지요?》 《아니요, 아직 독신입니다.》 《에그나, 그러니 아직 로총각으로 혼자 늙으신다는 말씀입니까?》 《왜 혼자겠습니까. 저에게도 일생을 두고도 잊지 못할 녀동무가 있지 않았습니까》 《강덕금이 말이지요?! 그는 참 좋은 내 고향의 녀동무였고 입산 첫날부터 대전형무소에서 생을 마친 그 마지막날까지도 시종이여일하게 순간의 변심도 모르는 우리모두의 훌륭한 동지였지요. 우리 강동무를 두고두고 추억하자요!》 《…》 잠시 무슨 생각에 잠겼던 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선생님들은 다 인차 북송의 길에 오르시게 되겠지요. 북에 들어가셔서 어떻게 일이 잘되여 별지 아버지라도 만나게 되면 제가 통일의 날, 상봉의 날만을 기다리면서 여기 <만남의 집>, 희망의 집에서 변함없는 별로 살고있더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한가지 부탁은 저의 얼굴이 이렇게 되였더라는 소리는 하지 말아달라는거예요. 저는 비록 지금 몸은 늙었지만 마음만은 그이의 망막에 새겨져있는 그전날 치성터의 산죽막에서 처음으로 만나던 젊은 시절의 옛모습 그대로 있고싶군요.》 《알겠구만이라, 내 알겠구만이라.… 그러지 말고 참 이번에 우리하구 같이 판문점을 넘어갈수만 있으면…》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비전향장기수가 아니지 않나요. 차라리 이럴 땐 저도 여러 동지들과 감옥생활의 오랜 시련을 거쳐 비전향장기수가 되지 못했던 일을 두고 후회되기도 하면서 선생들이 부러워지는군요. 저도 꿈결에도 그리운 장군님품에 함께 안기고싶어요. 평양에 가서 죽기전에 그이도 한번 만나보고 말이지요.》 이렇게 말하는 별이의 두눈가에서는 뜨거운 물기가 번들거리고있었다. 갑동은 그러는 별이를 추연해지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대 지리산의 녀동무, 내 전우의 안해여! 고개를 숙이지 말라. 사람들앞에서 머리를 높이 쳐들라. 성스러운 통일혁명의 길에 사랑하는 귀여운 아들애도 바치고 자기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깡그리 다 바친 그 얼굴을 떳떳이 쳐들라. 투쟁하고 혁명하는 녀성들의 미는 비단 그 젊음이나 얼굴의 아름다움에만 있는것이 아니다. 그 외유내강한 우리 조선녀성들의 숭고한 정신의 미에 진짜 아름다움이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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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감호소》에서 출소하기는 했으나 하나의 철창없는 큰 감옥에서 자유를 결박당하고살던 비전향장기수들이 드디여 암흑의 땅을 떠나게 될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고있었다. 서울에 있는 얼마 안되는 기간에 황갑동에게 있어서 미결로 남아있는 마지막일은 근 50년전에 자기들에게 무언의 부탁을 남기고 장렬한 최후를 마친 녀전사의 아들을 찾아보아야 하는 동지적인 의무의 리행이였다. 광주 구덕정의 사형장에서 전라북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이였던 젊은 녀성을 총살하기 직전에 간수부장 번대머리 《공산명월》이라는 자가 그 아들애를 제가 키워주겠노라고 하면서 앗아가는것을 본 사람은 지금 갑동이뿐이였다. 그때 묻는듯 한 시선을 자기에게 보내던 그 순간의 피타는 눈길을 갑동은 일생을 두고도 지워버릴수 없었다. 그날 자기는 아직 피덩어리나 다름없는 사랑하는 아기를 번대수리 원쑤놈의 둥지에 맡기고가야 하는 그 녀성일군에게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는것으로서 어찌할수 없는 동의를 표시하지 않았던가. 그럴진대 과연 그것이 단순한 동의만이였으랴. 그것은 동지가 남기고가는 자식의 장래에 대하여 자기가 살아있는 한에 있어서는 끝까지 맡아주겠다는 무언의 굳은 약속이 아니였더란 말인가. 더구나 살아있는 사람과의 약속이 아니라 희생된 동지와의 약속인것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것이였다. 하여 그동안 여러곳에 수소문하여 마침내 《공산명월》의 주소를 알게 되였을적에 그는 얼마나 기뻤던가. 그는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여러 대학들과 민주단체들에서 조직하는 비전향장기수 환송모임에 계속 참가해야 하는 바쁜 속에서도 시간을 내여 간단한 행장을 꾸려가지고 이내 별이랑 만났던 남해가의 해안도시로 다시 떠났다. 그때 사형장에서 애를 넘겨받은 간수부장의 《둥지》안에서 그 애가 어떻게 성장했을가? 자기 어머니가 어떤 혁명가이고 전쟁시기에 전사한 자기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수 없었던 그 애가 혹시 반동들의 소굴에서 새끼독수리라도 되여 반공일선에 나서지나 않았겠는지 걱정이 되는 황갑동이였다. (싸리그루에서는 싸리가 나오고 대그루에서는 대가 나온다고 했는데 설마하니 그런 일이야 있을라구.) 그는 이런 일종의 기대를 품고 렬차를 달리고있었다.
다시는 바다로 나갈수 없게 된 헌배들이 녹쓴 철쇄에 비끄러매인채 남해의 파도에 흥떡이고있는 쓸쓸한 옛 포구의 여름날이였다. 도래굽이 낚시터의 너럭바위에 한 80객의 늙은 령감 하나가 물가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까딱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었다. 마치 바다물속에서 기여나와 바위우에서 해쪼이기를 하고있는 늙은 문어와도 같아보이는 그의 쭉 벗어진 이마에는 굵은 주름살들 몇개가 통채로 가로 건너갔다. 흡사 물의 다른 생물들을 여러개의 다리로 휘감아 잡아 먹으며 살아 가는 또 하나의 늙은 《문어》를 방불케 하는 이 늙다리는 여차직하면 바위에서 스스로 미끄러져내려 깊은 물속으로 사라질것만 같은 모상이였다. 그는 광주감옥의 간수부장시절부터 거의 한생을 수많은 감옥의 죄수들을 철창속에 가두어넣고 그들의 피를 말리우며 살아왔다고 할수도 있는 직업적인 형무관이였다. 이름은 송치백이, 별명은 《공산명월》이였다. 지금은 근 50년전 광주감옥 붉은 벽돌집 구덕정의 야외재판장에서 사형을 받게 된 전라북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이였던 한 녀자에게서 빼앗아다가 기른 그 양아들의 덕으로 바다가에 나와 이렇게 낚시질이나 하면서 로년을 편안히 지낸다고 할런지… 그러나 주의깊이 살펴보면 죄많은 인생 여든살도 넘어 이제는 땡땡하던 몸은 여위여 다 줄어들고 망챙이대가리처럼 큰 번대머리만이 남은것 같은 《공산명월》, 빈산에 뜬 차거운 달같은 그의 초췌해진 모습에서는 여생의 마음안정과 생활의 즐거움이란 그리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해변가에 나와 인생말년의 락을 하나의 도락인 낚시질로 보내는것같이 보이는 그의 손에 들린 긴 낚시대에는 남모르는 그 어떤 불안과 무거운 시름이 실리여있는것 같았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한생 자기는 감옥의 관리로 지내왔다는 불명예스러운 직업에서부터 오는 일종의 수치심만이 아닌 자기야말로 이 세상 도적들중에서도 남의 아이를, 사람을 훔쳐가진 상도적이라고 하는 죄책감 비슷한것을 느끼며 살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만일 자기를 아직까지도 친아버지로 생각하고 효자노릇을 하자고 애쓰는 양자가 지난 날의 그 모든 사실을 다 알게 되는 경우에는 일이 어떻게 뒤번져지게 되겠는지 하는 우려였다.
5
남해안 도시에서 차를 내린 황갑동은 길가의 여러 사람들에게 주소를 물어가면서 부두가 한쪽의 치벽한 곳에 음침히 틀어앉은 한 벽돌집을 겨우 찾아낼수 있었다. 빨간 벽돌담까지 둘러친 그 집 대문가에는 무엇을 저어하듯 문패조차 없었다. 그는 웬일인지 별로 조용한 그 독집앞으로 울렁거려지는 마음을 안고 다가가 조용히 주인을 찾았다. 《주인 계십니까?… 주인 계시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집이 비였는가?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 그는 대문을 두드리면서 더 큰소리로 분명 있으면서도 대문함으로 내다보며 수상히 여겨지는 손님에게 응대조차 않고있다고 생각되는 주인을 그냥 불러댔다. 《주인님- 여보시오. <공산명월>씨 계시오?》 그런데 이때 대문간안에서가 아니라 등뒤에서 경계심어린 늙은이의 소리가 덜퉁스레 들려오는것이였다. 《그게 누구요? 도대체 밝은 대낮에 <공산명월>을 찾는 사람이…》 갑동이 그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한손에는 자동낚시대를 접어넣어서 들고 왼쪽 어깨에는 꾸득꾸득 마른 열기새끼 몇마리가 들어 쉬파리들을 모다들게하는 한 구부정한 늙은이가 서있었는데 80살이 넘어보였다. 갑동은 그새 많이 늙은 사복쟁이령감이 된데다가 우에 채양이 넓은 밀짚모자까지 써서 그 표적인 대머리마저 가리워진지라 처음에는 잘못 찾아오지 않았나 하였다. 첫눈에 알아볼수는 없었지만 어디선가 많이 보아온것만 같은 손님의 거동에 주의를 돌리며 습관처럼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난 늙은이가 푸접없이 대하였다. 《대관절 누구를 찾는거요?》 《오래전에 대전형무소에서 간수부장을 하던 송치백씨를 찾습니다.》 《송치백이? 그런 사람은 여기 없소. 다른데 가보시오.》 령감쟁이는 안에 대고 대문을 열라고 소리치고는 그냥 들어가버릴 잡도리였다. 그의 등뒤에 대고 황갑동이 위엄있게 불렀다. 《로인장- 여기에 <공산명월>은 꺼져버려 없다고 해도 어릴적부터 데려다키우는것으로 알고있는 혁남이라는 사람은 살고있겠지요?》 그 소리에 늙다리는 흠치덕 놀라며 되돌아서는것이였다. 《다… 당신은 누구시오?》 《나를 모르겠소. 나는 광주형무소 2가사의 죄수번호 127번 무기수 황갑동인게라 당신과 결산할것이 있어서 찾아왔소.》 《아니 당신이 상구 살아있었소?》 《왜요? 먼 후날에라도 누가 혁남이에게 당신의 손으로 어머니를 죽여버린 그 사실을 알려줄가봐 제일로 두려워하던 그 비밀을 고스란히 가진채 우리가 다 저세상으로 간줄로 알았던 모양인데 천만에요.》 《그건 그렇고 나를 찾아온 용건은 뭐요?》 《길 지나는 사람들이 다 듣는 대문밖에서 이렇게 그냥 말하잡니까?》 그렇게 하는것은 자기에게도 여러가지로 불리하다고 생각했던지 《공산명월》이 태도를 바꾸었다. 《이거 멀리서 모처럼 찾아온 손님을 못알아봐서 안됐는데 어서 들어갑시다. 황선생.》 그리하여 주인을 따라 같이 들어가게 된 갑동은 《공산명월》과 담배재털이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주인은 좋은 담배를 찾아 한갑 내놓았다. 송치백이 허리가 다 꼬부라들어 골뱅이처럼 되여버린 로친에게 차를 끓여오라고 이르더니 처음부터 담판의 자세로 마주앉은 황갑동에게로 다시 초조해지는 눈길을 돌렸다. 《어서 말씀하이소.-》 《에돌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그간 남원수용소에서 희생된 우리 전우의 아들애를 자진해서 맡아가지고 키울래기 수고많았을줄 압니다만 나넌 그 어머니의 동지의 한사람으로서 응당한 도리를 지키고 신성한 의무를 리행하기 위해 혁남이를 찾아온것이니 만나게 해주시오.》 《만나서는요? 그 애를 당신들이 여기서 영 데려가자는건 아니겠지요.》 《그럴수도 있지요.》 《그럴수도 있다니요? 우리 내외간이 수만공을 들여 키워놓았는데 이제 와서 빼앗아간다- 안될 소리.》 《당신들은 남을 위해 남의 새끼를 키워준 맘고운 할미새인것이 아니라 거센 발통으로 쳐서 엄지꿩을 잡아치우고 그 꿩새끼까지 키워 후에 잡아먹으려고 자기 둥지에 가져다길렀을뿐인 하나의 맹금인 독수리가 아닌지 모르겠소.》 《아니요. 우리는 사상을 초월한 순수 인간으로서 적편의 아이였지만 불쌍해서 안아다가 친부모가 되여 제 아들처럼 키워준 사람들이요. 우리는 그 애를 안고 다니며 동냥젖을 먹여길렀소다. 그 애가 우리의 자식이 아니고 누구의 아들이란 말이요?》 《키우기는 누가 키웠던지간에 혁남이는 애국자의 자식, 혁명가의 아들이요. 이젠 그도 자기의 성을 찾고 자기 피줄을 따라야 할 때가 되였으니 이 집에서 그냥 살게 내버려둘수는 없다는거요.》 그 말에 《공산명월》은 대번에 울상이 되였다. 《여보시오. 제발 우리 늙은 내외한테서 그 애만은 빼앗아가지 말아주오. 우리는 지금 그 아들애 하나한테 의지해서 로년을 보내고있는데 그렇게 되면 누굴 믿고 산단 말이요. 그 애도 그렇지. 그때 부모를 다 잃고도 아버지 엄마없는 설음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만일 우리가 친부모가 아니며 어머니의 사형에 참여했었다는 사실을 다 알게 되는 경우에 그는 부모를 두번다시 잃게 되는 인생비극을 체험하게 될게 아니겠소. 인간을 제일로 사랑한다는 사람들이라는 당신들이 그래 오늘 피줄을 넘어뛰여서 겨우 혈육같은 인연을 맺은 우리 부자지간의 정을 끊어놓으려고 하다니 그것도 어디 인간들인가 말요.》 그 말에 황갑동은 최대의 격분을 느꼈다. 《뭐 자기들의 젖을 물려키웠다구- 그래 그날 사형을 앞둔 엄마의 젖을 달게 빠는 어린 혁남이를 그 무지한 손으로 어머니의 품에서 억지로 떼여낸것이 당신이 아니고 누구였어? 그러고도 오늘에 와서는 혁남이와 혈연의 인연을 맺었다구? 철면피한것들!》 《철면피? 누가 철면피요, 누가-》 《철면피가 아니면 뭐요.- 그래 혁남이의 아버지, 어머니나 우리 빨찌산 전우들이 자기의 피묻혀낳은 자식들을 당신네들이나 부양해주게 하자고 지리산에 피뿌리며 싸운줄 아는가.- 그건 우리 지리산의 모든 렬사들에 대한 더없는 모욕이고 참을수 없는 우롱으로서 내앞에서 한번만 더 그따위 소리를 했다가는…》 채머리를 떨듯 하면서 황갑동이의 격분에 찬 얼굴을 마주 견주어보던 《공산명월》의 곤충의 더듬뿔같이 류달리 긴 량쪽의 두눈섭이 경련을 일으키듯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그러던 늙은이는 갑자기 《흥-》 하고 코방귀를 뀌는것으로써 대방이 말한 모든것을 한꺼번에 불어내치였다. 《여 죄수번호 127번, 내 양자를 비록 어머니와 아버지의 길을 따르는 <혁남>으로 키우지는 못했지만 내 얼마던지 경찰로라도 만들수는 있었어도 그런 <반공>의 길로도 내몰지 않았던거요. 비록 내 한때 먹고살자니 할수없이 간수노릇은 해먹었지만 차마 인간의 량심으로서 그렇게 할수가 없었던거요.》 《…》 그래도 그것은 천만다행한 일로 생각되는 황갑동이였다. 《황선생, 내 한가지 부탁하고싶은건, 일이 이렇게 된바엔 이제 어떻게 하겠소. 그애에게 자기 친어머니, 아버지가 어떤 사람들이라는건 말해주더라도 제발 혁남이를 데려가지만은 말아주오.》 이때 거리로 종을 울리며 달려오던 자전거가 밖에 와서 멎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 《공산명월》의 사색이 되였던 얼굴에는 일순 그 어떤 부드러운 생기가 도는것 같았다. 서둘러 방을 나선 두상이 대문가에 나가 문을 열어준 양으로 자전거를 마당으로 끌어들이는 소리, 다음에는 양부와 양자간에 서로 긴하게 주고받는것 같은 토막진 짧은 말마디들이 방에 앉아있는 황갑동로인에게까지 들려왔다. 이 집의 객실로 꾸려진 맞춤한 크기의 방에 혼자 앉아있던 그는 가슴이 후드득 뛰는것을 느끼며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자기가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자신도 알수 없었다. 자기의 친자식이였다고 해도 이렇게까지는 마음쓰지 않을것 같았다. 이윽고 신을 벗고 토방마루로 해서 방으로 들어서는 점잖은 양복차림의 몸이 호리호리하고 중키인 중년나이의 공무원을 대하는 순간 황갑동은 자기도 모르게 아래사람이지만 례의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생면부지의 로인이 일어서려는것을 본 그는 지금 세월의 사람들과는 달리 손님대접만은 아는지 그냥 앉으라고 하더니 자기도 건너편 의자에 가서 앉는것이였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비전향수라지요? 지금 한창 북송을 앞두고 로인이 바쁘겠는데 무슨 일로 이 부산 한끝까지 날 찾아왔는지. 난 저녁밥 한술뜨고는 또 어디에 나가봐야 할 사람이니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하시오.》 전혀 찾아온 상대의 말을 받아들일 자세가 아닌 그의 첫 마디에서 벌써 기분이 상해지는 황갑동이였다. 만일 아주 생소한 이 중년사나이가 옛 전우의 아들만 아니라면 그리고 그의 끼끗하게 생긴 얼굴모습과 풍겨오는 인간적인 체취에서 돌아가신 그 어머니의 모색과 침착한 거동이 련상되지 않았더라면 당장 자리를 차고 일어나고싶었다. 《당신이 알고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제날엔 남원수용소에서 총살당한 한 녀성이 낳은 아들을 만나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싶어서 찾아온게라.》 이렇게 허두를 뗀 갑동로인은 자기가 간난신고끝에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리현상이와 김지희의 전투병단에서 전라북도 인민위원회의 녀성일군의 인상적인 강연을 듣고 그를 알게 되던 날의 이야기며 광주 구덕정 즉결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그 도인민위원회 위원장의 최후와 그가 남긴 피덩어리같은 아들이 하나 있었다는데까지…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중단시킴도 없이 침착히 다 듣고나서야 감았던 눈을 조용히 뜬 어딘가 명상적인 그의 얼굴에는 아주 차거운 얼음장같은 기운이 서리여있었다. 《그런데 내가 묻고싶은것은 비전향수인 로인이 많은 세월이 지나 사람들이 다 잊어버린지도 오랜 지리산의 비극을 오늘 나에게 상기시켜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하는겁니다.》 《오늘은 똑똑히 알아두거라. 그 녀성투사가 바로 너의 어머니이다. 너의 친어머니가 구덕정 사형장에서 총살당하던 바로 그날 그 장소에서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젖을 먹는 너의 작은 입에서 억지로 엄마의 젖꼭지를 빼낸것이 누군지 아느냐?》 《예에?-》 《너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혁남이다. 혁남이!》 《…》 혁남은 갈피를 잡지 못해했다. 《이것 봐라. 혁남의 어머니가 손가락을 깨물어가지고 흐르는 붉은 피로 손수건에 쓴 글발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평양이다> 너의 어머니가 너에게 주려고 유언으로 남긴 이 글발을 이제야 너에게 전하게 된다.》 《…》 갑동이 그때의 증거품까지 내놓자 《공산명월》의 얼굴은 금시에 그믐밤이 되고말았다. 갑동이 《공산명월》을 준절히 꾸짖었다. 《애국자의 피를 받은 이 혁남이의 가슴속에 결코 투쟁의 피줄기, 통일의 피줄기를 끊어놓을수는 없는거요!》 《공산명월》은 완전히 절망에 빠지고말았다. 한편 어머니의 희생장면을 직접 목격한 증견자의 한사람인 전우의 손에서 유일한 어머니의 유물인 그 손수건을 받아들고 글획들이 시꺼매진 글줄을 한자한자 새기며 읽어내려가는 혁남이의 두눈에서는 피방울같은 눈물이 뚤렁뚤렁 떨어지고있었다.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함을 참지 못해 주먹을 틀어쥐였다. (아,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