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갈범2-6장

제 6 장 《다치지 말라 고슴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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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황갑동이가 남원수용소를 거쳐 광주형무소에서 감옥생활을 시작한 때로부터 무려 스무번이나 나무잎들이 떨어졌다 붙었다 했던것이다.

황갑동은 결국 1952년에 시작된 20년 형기를 하루도 감함이 없이 다 마치고 1972년 5월에야 겨우 감옥에서 풀려나갈수 있었던것이다.

스무살 남짓하여 지리산에 입산하면서 고향을 떠났던 그가 45살의 중년이 되여 집에 돌아와보니 고숙만이 살아있고 늙으신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82살이 될 때까지도 죽어도 아들의 그 용서를 받고야 죽겠노라고 하면서 옥에 가있는 갑동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는 어머니, 일생 고생만 하던 박복한 어머니는 명이 모자라서였던가 스무해를 채 못기다려 지난해 마가을 찬비내리는 밤에 눈감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셨다는게 아닌가.

그 이튿날 어머니의 묘소에 고숙모와 함께 찾아간 황갑동은 아직 풀이 제대로 돋지 못한 봉분앞에 술을 부어놓고 엎드려 절을 하면서 울고 또 울었다.

《어무니이- 그때 그래놓고 얼마나 마음아프셨소? 이 옹졸한 불초자식이 그래도 그날의 불상스러운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뒤늦게나마 어머님의 마음 풀어드리려고 이제야 찾아왔등마 아-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지 왜 그리 일찌기 가셨소》

그는 량어깨를 솟구치면서 꺼이꺼이 목놓아 울고 또 울었다. 더구나 대전감옥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던 날 어머님은 다른 사람 아닌 아들의 마음속 용서를 받고싶어한다고, 후에 꼭 엄니를 용서드리라고 간절히 당부하던 덕금이 생각이 나 더욱 슬피 울었다.

황갑동은 이미 반미항전의 불길이 사그라져버린지 오랜 지리산에 다시 와서니 지리산에서 같이 싸우던 동지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지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황갑동은 탄피도 녹쓸어버린지 오랜 옛 싸움터인 지리산기슭에 와서 해마다 추석이 오면 여기에 묻힌 고귀한 영령들의 마음이나 한잔 술로 위로해드리며 부대기농사나 지으며 살가했더니 그것도 아니였다.

그가 만기출옥하여 나왔을 당시 북남정세는 혁명과 민주의 편에 유리하게 조성되고있었다. 이미 6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발전의 상승기에 들어서고있던 공화국북반부의 민주기지가 강화되고 인민생활은 나날이 향상되였으며 점차로 북과 남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천당과 지옥의 차이로 되여가고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남조선인민들의 공화국에 대한 동경심과 조국통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으며 청년학생들의 반괴뢰, 반미투쟁이 강화되고있었다.

장기집권을 노려 《유신체제》를 세워놓기는 했으나 북으로만 쏠리는 이남민중의 통일기운을 막아낼수 없게 된 군사정권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적대단결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4남북공동성명에 서명을 하고도 돌아앉자마자 1973년 《6.23선언》을 발표하여 《두개 조선》의 분렬로선을 공공연히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른바 《재건국민운동》이니 《새마을운동》, 《조국근대화》니 《국력배양》이니 하고 떠들어대면서 남조선민족경제를 여지없이 파산몰락시켰으며 인민들을 더욱더 빈궁과 도탄에 몰아넣고있었다.

그때 거의 매일과 같이 일어나고있던 학생운동의 뒤에는 민주인사들, 사회주의자들이 있다고 생각한 남조선괴뢰도당들은 이남땅에서 《빨갱이》세력을 모조리 《일소》해버리겠다고 떠벌였다. 그 공세의 하나가 바로 이미 감옥에서 내놓았던 비전향수들까지 다시 감호소에 잡아넣고 《전향공세》를 본격화하는것이였다.

10년, 20년, 30년씩이나 그 진저리쳐지는 감옥생활의 고초를 이겨내고 겨우 살아나온 사람들을 어찌 아무 죄목도, 아무 공판도 없이 모조리 감옥에 다시 잡아가두어넣을수 있단 말인가.

뜨거운 불가마속에서 허우적이다가 겨우 밖으로 기여나오면 야차들이 다시 창으로 꿰여 집어던져넣군 한다는 지옥인들 이보다 더하랴! 이 세상에는 그 어디에도 없는 그런 악착한 짓을 남조선파쑈도당들만은 서슴없이 감행하였던것이다.

하여 어느날 황갑동이 고숙과 함께 일하는 밭에 불시에 달려든 경관놈들은 호미를 잡았던 그의 흙묻은 손에 무작정 족쇄를 채워 끌어가는것이였다.

뜻밖에도 생각지도 않았던 경찰당국의 심상치 않은 호출을 받고 어디론가 끌려가게 된 갑동이는 끔찍스러웠다. 다시 그 진저리쳐지는 옥살이를 해야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다 캄캄해졌다. 이제 그리로 끌려가면 몇살이나 되여야 도로 놓여나오게 되겠는지 알수 없는 감옥생활을 이제는 중년이 된 자기가 꽤 견디여내겠는지 젊은 시절 같지 않아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솔직한 생각으로 아닌게 아니라 속으로 겁도 났고 동요심도 없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시 살아서 돌아오게나 되겠는지…

두고가는 정든 고향마을과 잊지 못할 지리산과 마지막하직의 인사를 하고 떠나는 그의 마음은 아프고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이때 새로운 싸움이 기다리고있는 투쟁의 전구로 떠나가는 갑동이를 말없는 눈길로 뜨겁게 바래여주며 심약해지려는 그의 마음을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몸은 죽었어도 아직도 넋만은 살아있는 지리산전우들의 령혼이였다.

그 순간 황갑동에게는 한창 남조선유격투쟁의 전성기에 활동하던 훌륭한 지휘관들과 여러 동지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지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특히 자기의 젊은 가슴속에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뜨거운 추앙심을 깊이 심어준 혁명선배였으며 유능한 지휘관이였던 리현상사령의 듬직하던 모습과 자기가 반변시켰던 려수 14련대를 이끌고 한때 지리산을 들었다놓으며 항미전을 벌리던 젊은 지휘관인 김지희의 의젓한 모습이였다.

황갑동이 경찰놈들에게 끌려간 곳은 대전이였다. 그 몸서리쳐지는 감옥생활의 연장인 소위 《감호소》에서의 옥고가 다시 시작된것이였다.

《감호소》소장은 대전에 있던, 갑동이도 알만한 오기수라는 자였는데 악명을 떨친 대전형무소장 윤병희에게서 걸음걸이까지도 신통히 따서 배워가지고 온 놈이였다.

그자는 아주 혹독하게 수인들을 다루었다. 그리고 여기서 갑동은 원쑤인 규택이놈을 다시 만났다.

《황갑동이 이눔우 짜석, 너 여기 와서도 조용히 있지 않고 말째게 놀았다간 이번엔 아예 감호소귀신을 만들어버릴줄 알아-》

이 처음부터 미리 단단히 침을 놓는데는 재미없겠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을 든든히 다잡게 되는 갑동이였다.

(어디 한번 맞다들려 보자! 누가 끝까지 견디나…)

이렇게 속으로 이를 갈며 새 싸움을 준비하고있는 갑동은 벌써 어제날의 그가 아니였다. 그것은 서로 반대되는 두가지 방향에서의 변화였다. 어두운 감옥의 무거운 지압밑에서 약한 자는 더 눌리여 지실이 들어 정신육체적으로 졸아들고 죽어가지만 강한 의지를 가진 자는 황갑동이처럼 옥중투쟁의 불길속에서 강철로 더욱 단련되여나오는것이다.

체험을 통하여 황갑동은 감옥을 통한 인간들의 소위 《교화》와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감방에서 얻어보았던 빅토르 유고의 《장바르쟝》(레미제라불)이나 레브 똘스또이의 《부활》에서 작가들은 감옥생활을 통한 인간들의 교화과정, 새 인간들이 태여나게 되는 재생과정을 예술적으로 확인시킴으로써 박애주의를 선양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황갑동은 내심으로 그 탁월한 세계적인 작가들의 인간《부활》의 철학을 감히 부정했었다. 하긴 당시 그 사회, 그 민족에게 한해서 그리고 감옥생활을 하게 된 원인에 따라 혹시 교화되는 인간이 있었을런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남한》제도, 정치풍토에서는 절대로 《교화》와 《부활》이란 있을수 없다는것이 황갑동의 견해이고 철학이였다.

황갑동은 적들도 그것을 잘 알고있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미 놈들자체가 제 입으로 비전향수들을 출소시키면서 이제는 다 《대한민국》국민화가 된 사람들이라고 사회앞에 공포했던 《전과자》들을 모조리 붙잡아들여야 할 필요성이 그 어디 있겠는가? 그러고보면 놈들이 뚱딴지같이 새로 만들어낸 대전《감호소》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이겠는가? 이를테면 공산사상을 머리에서 영영 빼여버릴수 없는 가장 위험한 존재들인 비전향수들은 모두가 거기에 들어가 죽어서 다시는 나오지 말라고 하여 만들어놓은 특수한 형태의, 사회와 완전히 격리된 감옥속의 감옥인것이다.

남조선 각지에 흩어져 살던 당시의 출소자들을 다 체포해들이고보니 그 인원이 적지 않아 l,500여명을 헤아렸다. 모든 장기수들이 완전격페된 곳에 갇혀 죽음의 날만을 기다려야 하는것이였다. 이 죽음의 대전《교도소》에서 황갑동은 다시금 15년이상이나 더 살게 된것이였다.

그는 이 기간에 겪어야했던 크고작은 가지가지의 살을 녹이고 뼈를 깎아내리던 고통사중에서도 특히 한가지, 대전《감호소》안의 전체 비전향장기수들의 운명과 직결되여있던 그 중대사건에 대해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잊지 못해하고있다.

여기서 황갑동은 그전에 출소 당시 서로 눈물로 헤여지면서 《다시 만납시다! 그렇지만 제발 이런데서는 다시 만나지 말아야지요.》하면서 작별했던 감옥동지들과 다시 만나게 되였다. 그렇지만 여하튼 잊지 못해 늘 그리워 하던 전우들을 오랜만에 만나니 이상하게도 한편으로 반갑고 기쁘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슬프고 눈물이 났다.

《이거 황선생이 아니시우?》

《아니, 권선생도 오셨구려!》

《허, 아마도 우리 빨찌산전우들의 상봉지점은 여긴가 보웨다!》

《그러니 감옥은 언제나 우리의 <만남의 집>인셈이군요. 허허.》

《하기는 지옥도 동무가 있으면 가기 헐하다는데 까짓거 이왕지사 이렇게 된바에는 우리모두 의지해서 끝까지 감옥행을 같이 해봅시다려. 헛허.》

《허허허!》

갑동은 마지막시기에 감옥생활을 같이 했던 전우인 권락기의 손을 오래 잡고 흔들며 호탕하게 웃었다.

여기 《감호소》에서는 차라리 만나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런지도 모를 그런 사람들과의 상봉도 있었다. 례하면 차양진이와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바로 그러했다.

《이거 황선생, 오랜만입무다려 》

차양진이 먼저 반가운듯 알은체를 하며 인사말을 건네였다.

《반갑습니다. 죽지 않으니 비록 이런데서지만 다 만나게 되는것 아니겠습니까.》

《…》

《우리가 그때 일부 동지들의 오해를 받으면서까지도 뒤에서 투쟁을 잘 조절한건 옳은 일이였지요.》

《…》

갑동은 그가 지벌거리는대로 내쳐두었다.

자기의 말에 대한 일체 쓰다달다 견해표시가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는 황갑동이의 담담한 표정에서 그 어떤 우려감이 들었던지 차양진이 눈치를 보면서 조심히 건드려보았다.

《황선생은 그때 같아서는 하나도 늙을것 같지 않더니 그새 좀 늙은것 같구만요.》

《그래요?! 그렇지만 몸이 늙었다고 속까지 늙어서야 되겠습니까. 또 새로 시작해야 되겠는데…》

《하기는 하나도 꺾이지 않은것 같은 그 의기와 만만한 패기만은 부러워지기도 하고 한편 안할 소리로 못내 두려워지기도 합니다려. 허허.》

《허, 그래요.》

이번에는 차양진이 신중해져서 물었다.

《황선생, 그런데 이 <감호소>놀음이 언제나 끝날것 같습니까?》

《글쎄요…》

《일시적인 조치겠지요? 이러다가 바깥정세가 풀리는데 따라서 이내 해소될거라고 나는 생각되는데요?》

《거야 모르지요. 원래 허술한 구치소건물이던것을 얼마전까지 많은 자재와 물자를 투자해서 <교도소>로 증축했다는거랑 봐서는 그렇지도 않을것 같습니다.》

《그러면요?》

《한번 놈들이 품을 먹여 시작한 놀음이 십년이 가겠는지 이십년이 가겠는지 어디 지금으로서야 알겠습니까.》

《그렇게까지 갈가요?》

차양진은 아까 지난 날의 《투쟁공적》을 자랑하던 때와는 달리 그만 의기소침해지며 갑자기 얼굴빛이 어두워지는것이였다.

《너무 오래 끌지 말아야겠는데… 선생도 알다싶이 나는 마지막시기 대전에서 장기들이 다 녹은 사람 아닙니까.

출소하여 나가자마자 큰 병원에 찾아가 유명한 박사선생들의 진찰을 받아보았더니 의사들이 하는 말이 내장들이 다 고장이 난 이 몸을 가지고 그 감옥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나온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이 약해져서가 아니라 나는 본래 약골인데다가 여러가지 고치기 힘든 치명적인 병들까지 겹쳐서 장기전을 다시 못합니다. 나는 나를 압니다. 아무리 사상과 의지가 강한 사람일지라도 그걸 뒤받침해줄만한 받침대가 약할 때에는 견디지 못합니다.》

갑동은 이럴 때 솔직한데도 있는 차양진의 말을 들으면서 지난 날의 투쟁에서 물론 계급적인 제한성과 사상적인 나약성을 나타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밖에 있는 가족들을 시켜 약이랑 사식이랑 들여다먹으면서도 용케 견지해내던 이 사람도 이젠 병약해지고 정신적인 알맹이는 다 빠져나가고 허울만 남았구나 하고 생각하니 측은한 마음이 드는것이였다.

《차선생, 물론 일정한 정도의 각오는 하고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락심해서 비관하고 나앉을것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비관까지야 뭘 하겠습니까마는 어떻게 하든 살아서 놈들에게 굴복도 하지 말고 쓰러지지도 말고 마지막까지 자식들과 친지들, 사회앞에도 부끄럽지 않도록 비전향수로 살다가 떳떳이 죽어야 후에 땅에 묻힌 다음에라도 내 무덤에 누가 <고 비전향수 차양진의 묘>라는 비석이라도 하나 꽂아줄게 아닙니까.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말가봐 걱정이 되여서 그러는거지요.》

《글쎄 그렇다면 좋고요.…》

갑동은 나약성의 발로이긴 하지만 그의 그 심정만은 다소 리해되여 동정을 표시했다.

그런데 차양진이 넌지시 미리 오금을 박듯 황갑동에게 강조를 하는것이였다.

《황선생, 앞으로 변화된 <감호소>생활과 활동에서 사람은 그 사람이지만 그때의 그 사람들이 아니라는것을 참작할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그때의 사람들이 아니라는건요?》

갑동이 물었다.

《이를테면 사형을 당하느냐 마느냐? 죽느냐 사느냐? 전향이냐 비전향이냐? 생사를 판가름해야 했던 그때의 사람들은 부득불 결사전을 벌리지 않으면 안되였지요.

그러나 오늘 여기 <감호소>에 다시 온 사람들의 경우는 다르다고 봅니다. 이들은 우선 이미 한번 꺾이고 잔뜩 위축된데다가 출소하여 나가서 <자유>의 진맛도 다시 보고 생활의 이러저러한 맛도 보고 들어온 사람들로서 생에 대한 애착심이라고 할가요 그런것이 더 강렬해졌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요?》

《이 사람들은 살고싶어 합니다. 더는 매맞아 죽으려고는 안할겁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는 본질은 뭔가요?》

《내가 말하자는것은 앞으로 공연히 <감호소>의 정세를 악화시키지 않는 방향에서 될수록 당국자들을 자극하지 말고 필요에 의해서 싸워도 조용히 싸우자는거요. 조용히!》

《조용히 싸운다는것은 어떻게 싸우는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l,500명 대렬의 행동의지와 관련한 문제인것만큼 여기서 내가 지금 결정지을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황갑동이의 속대가 바로 서있는 그 말에는 차양진이도 더 할 소리가 없는 모양이였다.

 

다시 세월은 흘러 황갑동이네들이 대전을 거쳐 청주《감호소》에서 옥고를 치르기 시작한지도 어언 12년세월이 지나갔다. 그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앓아서 죽고 굶어서 죽고 얼어서 죽었으며 고문으로 매맞아죽고 끝끝내 전향을 하지 않는다고 총살당해 죽었다.

이렇게 하다가는 청주《감호소》의 장기수들이 모두 귀신도 모르게 죽어서 하나하나 다 옥중고혼이 되고말 위험이 다분하였다. 바로 그것이 놈들이 바라던바였으니까. 이 속에서 한생 감옥살이로 늙은 불쌍한 로인들이 오직 비전향이라는 한가지 리유로 해서 억울한 생을 마치고있다는걸 알고 애달파 할 사람도 없었다. 바깥세상에서는 이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있었던것이다.

권락기를 비롯한 같은 감방에서 지내고있는 갑동이의 동지들은 앉아서 죽느냐, 일어나 싸워이기느냐 하는 이 엄숙한 마당에서 어떻게 하던지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방도를 모색해야겠다는데로 생각이 모여졌다.

그런데 놈들이 외계와의 련계를 완전히 단절해버렸기때문에 알릴 방도가 없었다. 어떻게 알린다고 하여도 《감호소》내부에 대한 내용의 일체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괴뢰당국에서 엄격히 통제하였기때문에 재간이 없었던것이다. 그렇게 소극적으로나 해가지고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 그들은 이 사실을 남조선사회만이 아닌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지역 나라들로부터 시작하여 나아가서는 국제사회계에까지 알려 비전향수들에 대한 석방을 요구하는 세계량심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한 보다 통이 큰 운동을 일으키기 위한 새로운 방도를 찾아내야겠다는데로 의견일치를 보았었다. 그러자면 유력한 선의 필요가 느껴졌다.

그런 유리한 선을 찾기 위해 암중모색하던 어느날이였다. 권락기가 이미전부터 돈을 먹이고 매수했던 비교적 량심적인 한 간수로부터 이 청주감옥에 일본에서와 남조선에서 애국교포운동, 통일운동을 하다가 랍치되다싶이 하여 체포되여 들어온 량심적인 한 애국청년이 있는데 그가 외부와의 련계가 매우 깊은 활동적인 인물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였다. 반가운 소식이였다. 그와는 그리 먼데 있는것도 아니였다. 황갑동이네가 8방에 있고 그는 5방에 있었다. 바로 옆방이면 통방이라도 하여 뜻을 나눌수도 있으련만 그렇게 할수는 없었다. 갑동은 하루 20∼30분 정도 해빛쪼이기를 시키는 시간에 나가서 서로 먼 발치에서 얼굴이나 익히는 정도로서 말은 못해봤지만 그 청년이 누구인지는 알고있는터였다. 그런데 만날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한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그런데 그 거목이 늙어가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말없이 도와줄수 있다.…)

그들이 줄지어 산보구역으로 줄레줄레 줄을 지어 끌려나간것은 어느 무더운 여름날의 정오였다. 청주감옥의 산보구역 공지에는 몇아름드리 늙은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있었다. 이제는 300년은 실히 묵었을 력사의 산 증견자인 그 느티나무는 숱이 성기여지기 시작한 머리를 조용히 채머리떨듯 하면서 이 가련한 수인들을 동정으로 굽어보는듯 싶었다. 밑둥은 아주 굵어 어른 서넛이서 그러안고도 남을것만 같은 그 풍치좋은 느티나무는 우로 올라가면서 세월이 붙여준 혹인지 여기저기에 호박만한것들이 울뚝불뚝 돋아나와있었는데 그만큼 힘이 있고 매듭이 더 세여보인다.

거의나 벌레먹는 법이 없이 짙푸른 그 느티나무의 어느 가지에 매달려있는지 보이지도 않는 매미의 일종인 작은 찌르레기 한마리가 얼마나 요란한 소리를 내는지 씨르렁-씨르렁-하고 세차게 쌍톱질을 해댄다는데는 그밑에 가면 번마다 굵은 나무톱밥이 한줌씩 떨어져내릴것만 같았다. 마치 번열을 일으킬듯 싶은 적막한 여름날의 무더위를 한토막씩 썰어내던지기라도 할듯이 간단없이 찌르릉-찌르릉 하고 울리군 하는 그 매미족속들의 열정적인 울음소리는 정오의 해빛에 뜨겁게 가열된 대기를 울리고있었다.그 여름풍경의 한 부분을 이룬다고도 할수 있는 특유한 정서적인 색갈의 찌르레기소리도 지금 황갑동이의 마음을 사로잡을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해를 얼마 보지 못해 피기없는 맨 발바닥으로 뙤약볕에 달아오른 잔디밭의 뜨거운 열기를 찍어내가지며 줄을 따라 걸으면서도 내내 한가지 생각에만 집념해있었다.

드디여 그는 담당간수에게 손짓, 몸짓으로 무언의 허락을 받고 산보줄을 리탈하여 곧장 목표물을 향해갔다. 그리고는 천연스레 그 느티나무를 두팔 벌려 크게 그러안았다. 누구도 다르게 주의를 돌리는 사람이 있는것 같지 않았다.

갑동은 마침 저만쯤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무거운 족쇄를 땅에 끌며 천천히 느티나무주위를 돌고있는 청년에게 누가 보지 않게 재빨리 눈을 몇번 끔쩍해보였다. 처음에는 그의 옆을 무심히 지나치려던 그 청년이 갑동의 눈길에 화답하여 마주 끔쩍해보였다. 찰나적인 순간 뜻이 같은 두 동지의 눈에서는 불꽃방전이 이는듯 싶었다. 수인들의 산보줄이 다시 한바퀴 돌아오는 시간이 오늘 따라 갑동에게는 얼마나 더디게 생각되는지 몰랐다.

이윽고 앞에 다시 나타난 청년이 대렬에서 잠시 삐여져나오며 담당간수에게 허리굽석 이쪽을 가리키며 뭐라고 사정을 한다. 그 담당간수가 승인을 해줄것인가? 만일 말을 듣지 않으면 다음번 산보시간을 기다려야 하는것이다. 갑동이 가슴을 조이는데 간수놈이 거만스레 머리를 끄덕이는것이 보였다.

(됐구나아-)

갑동은 숨이 나왔다.

먼저 와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며 여유있게 걸어나온 그 청년은 습관되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느티나무의 반대쪽을 역시 두팔로 그러안는것이였다.

몇아름이 잘 되는 나무는 어떻게나 굵은지 서로 벌린 손도 닿지 않았으며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놈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아 더 좋았다. 그것이 한두마디의 긴요한 말로 뜻을 통하기만 하면 되는 그들에게 무슨 방해로 되랴. 다만 이럴 때 방해로 된다면 머리우에서 그냥 톱질을 해대고있는 굉장스러운 찌르레기소리였다.

느티나무에 꽈악 대이고 푸른 나무아지들 사이로 흰 구름들이 흘러가는 하늘만을 쳐다보고있는 갑동이의 가슴은 진정못하고 높뛰고있었다.

《선생, 저는 황갑동이라는 사람입니다.》

《예에- 동지들이 지리산 갈대숲의 범이라고 부른다는분 말이지요?》

《옳구만이라요. 제 한가지 꼭 도움받을 일이 있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동지!》

《이 비전향수들의 죽음의 소굴인 여기 <감호소>내막을 이남사회계와 일본 그리고 국제사회계에 알려줄 방도가 없겠습니까? 군사파쑈도당놈들의 만인의 저주를 받을 인권유린행위를 말입니다.》

《어디 한번 방도를 찾아봅시다.》

《시간이 급합니다. 지금 놈들이 현재까지 살아남아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이 먹는 음식에 독성이 있는 약을 쳐서 한두해 어간에 시름시름 앓다가 다 죽게 만들거나 집단총살해버릴 새로운 계략을 꾸미고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불악귀 같은 놈들!》

청년은 분개를 금치 못하며 자기도 모르게 주먹으로 느티나무를 텅- 치기까지 했다.

《알겠습니다, 황동지!》

바로 이때였다. 그들의 등뒤에서 벼락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야, 개자식들! 수개들처럼 느티나무에 한다리씩 걸쳐놓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뭐라고들 중얼거리는거야?》

두사람이 돌아보니 어느새 메고양이처럼 소리없이 뒤에 나타나 지켜보고 서있는것은 얼마전에 부소장으로 승진된 최고악질 정규택놈이였다.

《무슨 수작들을 했어? 무슨 말을 했는가 말야?》

《말은 무슨 말요. 우리는 서로 알지도 못하는 생면부지인뎁쇼.》

청년의 대답이다.

《그 생면부지끼리의 이 느티나무아래 접선이 더 수상하단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에 대해서는 안심놓고 이 느티나무에 대고나 물어보십시오.》

5방에 있는 청년의 말에 그놈은 머리를 기웃거려보며 《모르겠어. 어디 후에 무슨 사건이라도 생기게 되면 그때 다시 보자.》라고 씨벌이였다. 냄새 잘 맡고 사나운 사냥개다운 기질을 타고난 이 예민한 자는 이날에는 비록 현장에서 그 어떤 정확한 근거는 잡지 못했지만 둘이서 느티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중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것 같아보이던 그 수상쩍은 장면만은 눈에 사진찍어가지고 가버렸다.

그날 보고도 듣고도 아무 말없이 침묵만을 지켜주는 듬직한 느티나무의 도움으로 황갑동이와의 뜻밖의 접선을 하고 돌아온 5방 청년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청주《감호소》사람들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짐이 자기의 어깨우에 실리는것을 느꼈기때문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 《감호소》에 와있게 된 초기에 별나운 죄인 아닌 《죄수》들, 이미 감옥을 《졸업》하고 나갔던 아버지같은 비전향수로인들, 다시금 종신 징역살이를 하고있는 불우한 인생들이 있다는것을 처음 알았을 때 그는 얼마나 놀랐던가. 그는 정말이지 인간백정들에 대한 치솟는 증오와 이남사회에 대한 개탄을 금치 못했었다.

통일애국의 길에 큰 뜻 품고 나섰던 후세대 청년으로서 통일혁명의 길에서 몸바쳐 싸운 선대들에 대한 남다른 존경심을 늘 가슴속에 품고있던 그였다. 그러기에 처음 만나는 비전향수인 황갑동로인에게서 그 긴박한 사정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흥분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마음 착하고 어지면서도 정의감이 강한 청년인 그는 참으로 력사가 지리산의 영웅으로 내세워주어야 할 황갑동이와 같은 민족의 떳떳한 자랑인 애국인사들이 여기 무덤속 같은 《감호소》라는데 묻혀 력사의 망각을 당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는 참을수 없었다. 그 어떤 피해서는 안될 력사적사명감을 느낀 그 청년은 이튿날부터 여기 청주《감호소》의 내막을 만천하에 알리여 민족의 자랑스럽고 의로운 아들들인 모든 비전향수들을 구원해내기 위한 어려운 일에 달라붙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위험을 동반하는 길인지 그도 모르지 않았다. 그것을 세상에 알려 전국적인, 세계적인 광범한 석방운동을 불러일으키자면 그 누구든지 나서서 정의를 호소하며 힘차게 부르짖어야 하는것이다. 자기를 먼저 바침이 없이 남들을 도와주고 구원한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하여 그는 력사의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통일애국투쟁의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참가자로서 위험하더라도 앞에 나서서 세상에 대고 불의를 고발하고 정의를 살리기 위해 피터지게 소리치는 그 첫 사람이 되고저 마음먹었던것이다.

생사를 각오하고 나선 청년의 열정은 대단했다. 청년은 2∼3일이 멀다하게, 아니 어떤 때는 매일이다싶이 편지를 썼다. 써서는 일정한 투자를 하여 열어놓은 비상통로를 통해 발송했다.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각지와 일본과 중국, 지어는 브라질과 카나다 등지에 이르기까지 조선동포들이 사는 곳에는 다 가족, 친척들과 친우들, 벗들과 동지들의 주소로 서신들을 부지런히 날렸다. 그들을 시켜 유엔을 비롯한 인권옹호를 위한 기구와 사회단체들에도 여기 형편을 알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정확한 주소를 알아가지고 필요한 국제기구들에도 자신이 직접 사실성과 호소성이 강한 피끓는 글들을 써서 보내기도 했다.

그 피타는 노력은 희망적인 좋은 결과를 기대할수 있게 해주었다. 그의 거듭되는 절절한 청원의 편지를 받은 일본에 있는 친척, 친우들의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드디여 남조선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석방문제가 런던 《암대스티》민간 인권기구에 알려지고 국제기구의 하나인 유엔인권옹호위원회에 정식 제기되였던것이다. 남조선과 일본사회계는 물론 공화국북반부에까지 널리 알려져 세계의 수많은 유명한 통신, 방송과 신문, 텔레비죤들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정의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비전향장기수 리인모로인의 석방과 어머니조국 공화국북반부에로의 송환문제가 전세계적인 범위에서 대대적으로 제기되여 큰 물의를 일으키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군사파쑈도당들과 《감호소》당국자들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누가 먼저 이 놀음의 시작을 내고 그 주모자는 누구인지 아직까지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여오던 이 비상사건에 대한 조사를 정규택이 맡아나섰다.

그런데 적들의 삼엄한 감시와 철저한 조사, 엄격한 통제속에서도 일의 진전은 빨라 미구하여 남조선 감옥들에 계속 갇혀있는 장기수들의 즉시적인 전원석방문제가 일정에 올라 확고한 전망을 보이고있던 때에 황갑동이네 8방에서 매우 우려를 자아내는 한가지 상서롭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2

 

바다에서 큰 배들이 침몰하기 직전에 그것을 제일 먼저 예감하고 사방으로 찍찍거리면서 불안히 뛰여 다니는것도 쥐들이며 폭풍과 지진을 예민하게 감촉하고 공포에 떠는것도 쥐들이라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사나운 폭풍을 헤치고 마지막 삶의 기슭에 투쟁의 닻을 내려야 할 하나의 큰 배라고 할수 있는 청주《감호소》의 정세가 나날이 긴장해지자 가장 불안해하는것은 역시 정세주의자의 한사람인 차양진이였다. 그는 이곳 장기수들의 정의와 삶을 위한 투쟁이 외부와의 긴밀한 련계밑에 나날이 활성화되여가자 이제 있을수도 있는 큰 사건의 폭발을 예감하며 그때에 자기에게 튀여오게 될수도 있는 불티를 제일 두려워 했던것이다. 어차피 그동안에 비밀리에 진행되여온 황갑동이네와 청년들의 비상한 공동활동에 대하여 알고있었던 그로서는 그 결과에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수 없었다. 만일 그네들이 내적으로 추진하고있는 일이 잘되여 전체 장기수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석방운동이 성공하는 경우에는 그 덕을 볼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문제가 달랐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한배에 같이 탔던 사람들이 모두 파멸의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될것이며 집단적인 피해와 전면적인 학살의 비극만을 촉진시킬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였다.

그리하여 이미 사나운 암초를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하고있는 배에서 뛰여내려야 되겠다고 결심한 그는 일상시에 극좌적인 발언도 곧잘하던 때와는 달리 로골적으로 그 일을 방해하여나서기 시작했다.

그에 대하여 황갑동이네 동지들은 구데기 무서워서 장을 못담그랴 하는 흔연한 태도를 보이며 하던 일을 계속 줄기차게 내밀며 당국에 비전향수들의 즉시 석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새롭게 개시했다. 이렇게 되자 그래도 이때까지는 드문드문 좌기가 있는 현란한 문구의 혁명적인 언사로 자기를 가리우군 하던 그 외피마저 벗어던진 차양진은 《감옥투사》로서의 체면마저도 줴버리고 비굴하게 나왔다.

《황선생, 이거 어쩌자구 이러는거요? 당장 그 일을 그만두어주오. 중지하시오. 그러다간 우리가 다같이 타고있는 이 운명의 배가 격침되고 만단 말이요. 격침!》

《미안하지만 선생, 우리의 그 전투함은 이미 기슭을 떠났습니다.》

《그것이 마지막기슭으로 될수도 있다는걸 왜 생각 못하시오? 무조건 위험한 산호초에 부닥칠수 있는 그 배를 당장 멈춰세워야 하오!》

《멈춰세울수 없소. 절대로!》

《황선생, 제발 비오. <레닌의 1보전진 2보퇴각>이라는 유명한 명제도 있지 않소. 이거 좀 죽어도 조용히 살다가 죽게 해주구려. 이거야 어디 불안해서 살겠소.》

《나가지 못하겠으면 길을 비키라는 소리도 있지요? 겁나면 옆에 물러나 있으시오. 그러나 우리 투쟁의 길을 가로막아나서 발에 걸채이는 돌멩이나 나무그루터기로는 되지 말기를 같은 비전향수로서 당부하고 싶소.》

《뭐 이제 와서는 날보고 투쟁의 길을 가로막는 돌멩이나 나무그루터기라구요?》

《그럼 뭐요? 너무나도 비겁하지 않소! 그렇게나 해가지고 비전향수가 되면 뭘하고 혼자 살아나가선 뭘하겠소. 우리가 진짜 의미에서의 비전향수라는 고결한 이름으로 불리우자면 비록 몸은 죽어서 표말도 없는 무덤에 묻힐지언정 이때까지 수십년간 더러운 흙을 묻히지 않고 고스란히 건사해온 마지막유산인 그 깨끗한 량심마저 따라가서 묻히게 해서야 안되지 않겠소. 그런데 당신은 뭐요. 나는 우리 비전향수들중에 당신같이 비전향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너절한 그런 인간이 있다는걸 수치로 생각하오. 최대의 수치로!》

가차없이 내쏘는 황갑동이의 말에 모멸감을 느끼며 검붉어졌던 차양진의 얼굴이 불시에 사악해졌다.

《좋소. 아무렇게나 다 말하시오. 정 나의 권유를 듣지 않는다면 나는 나대로 따로 행동하겠소!》

《따로 행동하겠다는건요?》

《전체 감방동지들을 위해 내가 미리 결정적인 행동을 취하겠다는걸 공언하는바요.》

《혹시 대전감옥에서 단식투쟁을 벌릴 때처럼 미리 가서 <평화적 담판>의 방법으로 우리의 투쟁을 도중에서 류산시키겠다는건 아니겠지요?》

《아니, 바로 맞혔소. 지금은 일시적으로 동지들의 오해를 받을수 있겠지만 이 청주<감호소>를 구원하는 길은 오직 그 한길밖에는 없소!》

《뭐라구요?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말이라구! 그건 적들앞에서의 완전투항이고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요. 배신!》

《그래도 할수 없소. 이 세상에 죽자고 해서 싸우는 사람은 없는거요. 죽는것보다는 까무라치는것이 낫다구 우리는 그렇게 해서라도 목숨만은 건져가져야겠소.》

그 말에 최대의 모욕감과 수치, 격분을 느낀 황갑동은 그만 자제력을 잃고 그 용렬하기 짝이 없는 자의 멱살을 거머잡고 소리치다싶이 했다.

《에익, 이 청주감옥의 수치인 더러운 인간속물!》

자기도 모르게 쳐들었던 갑동이의 주먹이 허공에서 떨리며 목표를 향해 날아들려다가 그만두고 그 인간을 단념하듯 아프게 제 가슴을 내려치는것이였다.

《…내 …내가 지나쳤소.》

그는 주위를 돌아보며 괴롭게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양진은 제편에서 오히려 분함을 이기지 못해하며 울고불고했다.

그런데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기 《감호소》에 들어와서도 밖에 부탁하여 들여온 보약을 한시도 끊지 않고 장복을 하면서도 가고오는 병은 다 만나 한동안 몹시 앓고있던 차양진이 하루는 자리를 거두고 일어나앉았다.

단순한 병 한가지만을 앓고난것 같지 않은 그의 얼굴에는 그 어떤 체념의 주름살이 더 깊어져 퍽 늙어보였다. 그는 아무말없이 그새 누워서 앓는동안 자기머리속에서 벌어졌던 심각한 정신적인 동요에 대하여 혹시 다른 사람들이 들여다보지나 않을가 저어하듯 이따금씩 옆동지들의 눈치를 살필뿐이였다. 차양진은 이날따라 무슨 생각이 났던지 자기가 보유하고있던 비상약들과 지어는 제일로 아껴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던 비타민까지도 한알 남기지 않고 다 나누어주는것이였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처음 보는 일이였다. 그는 마치 한번 가면 다시 올수 없는 그런 길이라도 떠나는듯이 부탁의 말도 유언도 아닌 알쑹달쑹한 말로 감방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황갑동은 몹시도 지친 기색인 그를 걱정스레 보면서 혼자 근심했다. 하나는 이 심약하고 병으로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사람이 혹시 이제는 저세상으로 가자고 해서 이러는것은 아닌지, 다른 하나는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마지막시각에나마 옆에서 괴혈병으로 사람이 죽어가도 비타민만은 밤에 이불을 쓰고 그안에서 한두알씩 입에 넣고 솔금솔금 녹이군 하던 지난 날의 일들이 부끄럽게 돌이켜져 마지막으로 눈물겨운 동지우애심이라도 보여주고싶은 심적인 충동이라도 받았는지… 그렇지만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점심식사전에 투약시간만은 철저히 지키는 그가 작은 병속의 보약알들을 입속에 대고 털어넣는것으로 보아 어디 저승에라도 쉬이 갈 차비를 할 사람같지는 않았다.

그날 오후였다, 그냥 침울하여 착잡한 생각에 잠겨있던 차양진이 무슨 일로인지 철문이 있는데로 조용히 다가서며 은근한 소리로 담당간수를 부르는것이였다. 나가서 따로 할말이 있다고 귀띔을 하고 간수를 따라나간 차양진이는 그날 저녁과 밤에도 다음날에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간수를 따라나간 그 길로 정규택이를 찾아간 그자는 종시 동지들을 저버리고 그앞에서 전향서를 쓰고야 말았던것이다.

뒤늦게야 다름아닌 자기가 있는 8방에서 전향자가 나왔다는것을 알게된 황갑동은 가슴이 덜컹하였다. 별난 병을 앓고나서는 통 입을 다물고 혼자서 속에 무엇인가를 꿍져가지고 벙어리 랭가슴 앓듯 하던 차양진의 낯빛에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을 읽었던 갑동이였다.

그렇지만 비록 생활에서 때로 기회주의적인 발로는 있었지마는 죽어도 전향만은 않겠다며 못내 모지름을 써오던 차양진이, 인생의 쓰고 단맛, 오랜 감옥생활의 피바다도 함께 헤쳐왔던 그가 아니였던가.

(아, 사람이 어쩌면 그럴수도 있단 말인가? 어디서 전향자가 또 하나 나왔다는 소리만 들어도 분개를 터뜨리며 그렇듯 지탄의 목소리를 높이던 그가 아니였던가. 그러던 그가 어찌하면 장기수 전원석방의 희망이 성취될수도 있는 지금에 이르러 그걸 믿지 못하여 신심을 잃고 미리 전향해버리고 말았단 말인가.

철두철미 나라의 통일달성과 혁명을 위한 깨끗하고도 고지식한 마음을 품고 시작을 한것이 아니라 그 어떤 정신적불순물이 섞여있는 지어낸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자는 이처럼 도중에서 변질되며 그 이름도 영예롭고 값비싼 비전향수로서 마감을 보기가 힘든것이로구나!)

전향자! 그것은 굴복이고 자멸이고 치욕이며 어찌할수 없는 투항과 변절이며 산 죽음인것이다.

이때까지의 다른 전향사건들과는 달리 이번에 일어난 사건은 그 전향자가 지금까지 8방과 5방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하여왔던 《감호소》의 운명적인 비밀을 다 알고있는 자라는것으로 하여 더욱 심각하였다. 차양진이가 입을 열어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부는 경우 갑동이 자신은 물론 비전향수들을 제 한목숨을 내대고 도우려고 맹활약을 벌렸던 5방의 그 청년에게까지도 큰 화가 미치게되는 판이였다.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지금 잔뜩 악이 올라 벼르고있는 놈들의 발악적인 탄압소동으로 말미암아 거의 성숙기에 있는 석방운동이 미연에 무자비한 진압을 당해 파탄될수 있는 위험이 컸던것이다.

차양진이 극도의 신체쇠약과 정신적인 허약으로 견디다 못해 자포자기상태에 빠져 제 발로 나가 전향서를 쓰기는 했지만 8방, 5방의 비밀을 팔아먹지 않겠는가 하는것은 두고봐야 알 일이였다. 그렇지만 미리 각오는 하고있어야 했다.

그러던 다음날이였다. 아니나다를가 규택이 황갑동이를 호출해내갔다.

방에 들어서는 갑동이를 규택은 자기 자리에 앉은채 까딱 움직이지 않고 그 철면피가 내돋은 뻔뻔스러운 낯판대기로 한동안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러는 규택이를 떨려오는 가슴을 누르며 마주 견주어보고섰는 갑동이의 눈앞에는 이자와 관련된 지난 날의 잊을수 없는 어지러운 화면들이 떠오르는것이였다. 도장동에 살적에 앓는 어머니의 약으로 쓰겠다고 하면서 얼려 받아가졌던 고운 꿩새끼를 자기가 보는 앞에서 금시 목을 비틀어죽여 거기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입가를 적시며 빨아마시던 악독하기 그지없는 놈의 낯짝, 사천면 산두리 마을의 애국일가였던 김명석로인네 가족 전체를 유격대를 원호했다는 리유로 무참히 학살한것만으로도 모자라 시체에 소금을 뿌려 칼탕을 쳐서 불에 태워가지고는 길가의 바위우에 널어놨던 그 끔찍한 광경우에 어려오던 스산한 자의 그 험악한 낯짝이 련이어 떠올라 몸서리를 쳐지게 만드는것이였다.

《고향친구, 오랜만일세그려. 거기 좀 앉지.》

《…》

갑동이는 태연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다.

《내 오늘 왜 거기를 찾았는지 알겠는가?》

《…》

《한발 먼저 나를 찾아들어와 바로 여기서 전향서를 써서바친 차양진이는 벌써 내앞에서 다 솔직히 고백했어. 그러니 너도 그 석방운동인지 뭐인지 하는 놀음의 구체적인 전말을 내앞에 다 털어놓고 이실직고를 하란 말이야. 그러면 내 한고향사람으로서 관대히 용서할수도 있어.》

(정말로 차양진이 나가자마자 우리 일의 내막을 있는 그대로 다 발설을 했을가?)

《내 이번에 보니까 너는 서당과 야학밖에 못 다녔는데 빨찌산에 들어가더니 글쓰는 재간도 늘었더구만. 필상이라는것이 있는데 사람이 글쓴 필체를 보고서 그사람의 성격, 기질, 인간됨됨, 나중에는 그가 장차 어떤 인물이 될수 있겠는가 하는것까지 예측할수 있다는거야. 그래서 한때 프랑스 정보계에서는 정탐들이 첩보대상을 연구하는데서 그 <필상>이라는것을 매우 중시했다는거야.

내 이번에 황선생이 자필로 써서 사회에 내보낸 편지들의 글씨체, 이른바 그 <필상>을 보니 길을 잘못 들어서 그렇지 원래는 장차 그런 지리산마적이 아니라 한다하는 무관이, 큰 장군이라도 될번 했던 인물야.》

《그런데 필상은 필상이고 편지라는건 도대체 무슨 소리요. 듣느니 처음이요.》

《정말 모르쇠를 할텐가? 이번에 네가 사회에 무데기로 편지를 써내보내 밖에서까지 소동을 불러일으킨줄을 내가 모르는줄 아는가. 차양진이 벌써 다 말했단 말이야. 차양진이…》

(흥, 알기는 잘 아는구나. 이자가 뚱딴지 같은 내가 쓴 편지이야기를 하는걸 보니 5방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 캄캄이로구나. 그러니 차양진이는 전향은 했지만서두 동지들을 불만치 속이 다 썩지는 않았구나. 그래도 고맙소그려, 차양진이여!)

《어드래, 내가 면바로 다 알아맞혔지?》

(천만에, 가소롭소. 당신은 손에 개똥을 짚었소!)

《내가 써서 밖에 내보냈다는 그 편지라는게 어떻게 생긴건지 어디 한번 여기 내놓으시오. 구경하게 말이요.》

《정말 꿩을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놓을테요?》

《오리발이고 뭐고 나는 천상 몇년이 가도 집에 편지 한장 써보내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걸 온 대전감옥, 청주<감호소>가 다 알고있는 사실 아니요.》

황갑동의 그 소리에 자기가 정말 개똥을 잘못 짚었다는것을 알게된 정가놈은 다른 방향으로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

《그렇다면 그건 좋고 전번에 말이야, 산보시간에 5방의 그 녀석하고 굵은 느티나무를 마주 그러안고 뭐라고 서로 주절댈 때 무슨 말을 했댔어? 똑똑히 말하지 않았다간 주리를 비틀어놓을테다.》

그 말에 갑동은 가슴이 띠끔해왔으나 강하게 부인해버렸다.

《그때도 이야기하지 않았소. 우리는 얼굴도 전혀 모르는 사이라고… 말은 무슨 말을 했다는거요? 들었으면 어디 대시오.》

《야, 이 규택이 별명이 뭔지 알아. 독수리발통이야, 독수리발통. 내 이 발통에 한번 걸리는 자는 절대로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뜻이렸다.

네가 정 입을 열지 않겠다면 너 같은것하고는 더 말하지 않겠어. 내가 끌고다니군 하는 그 유명한 굵은 철봉대로 하여금 너하고 이야기하도록 하겠단 말이야. 단번에 사등뼈가 부러져나가던가 그 골통이 깨져나가던가 하면야 네깐놈이 입 벌리지 않을 재간이 있어?》

《…》

《황갑동이, 너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놈이야. 그 빛갈뿐인 공화국기발이 도대체 뭐이라고 그걸 지키겠다고 일생을 이 감옥에서 사서 고생하느냐 말이야. 엉?》

《당신 말끝마다 그 소린데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아무리 그걸 설명해야 리해할수도 없는것이고 또 하고싶지도 않으니 더 다른 할말 없으면 그만합시다려!》

《건방진 짜식! 어디 한번 내 철봉대하고 만나볼테냐. 그때까지도 주둥아리가 살았다고 계속 입질을 할텐가?》

《…》

이날 마지막에 정규택이 악에 받쳐 지껄이던대로 황갑동이 그 무지한 쇠몽둥이, 철봉대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 그 저주롭고도 무서운 날은 오고야 말았다.

사건은 5방에서부터 시작되였다. 갑동이와 그 청년은 서로 만날수도 없고 자주 련계를 가질수도 없는 형편에서 이미 쟁취해놓은 량심적인 간수를 리용하였다. 그를 통해 서로 나누어보는 식의 소설책이 5방과 8방으로 왔다갔다 하군하였다. 바로 그 책속에는 연필로 깨알같이 박아쓴 간단한 암호문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서로 련락을 취하군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5방에서 긴급히 련락을 취할 일이 생겨 그 소설책에 급히 암호글을 적어넣어 통하는 간수를 불러 8방으로 넘겨보내려고 할 때였다. 일이 안되려니 그날 따라 매 감방을 직접 검방검신을 하며 돌던 간수부장놈이 나타났다. 너무나도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미처 연필로 쓴 글을 지워버릴새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5방과 8방사이를 거듭 오가는 그 수상쩍은 소설책에 대하여 눈독을 들이고있던 간수부장은 즉석에서 청년의 손에 들려있는 책을 압수하려고 하였다. 놈이 그 책을 빼앗아가져다가 한장한장 번져나가느라면 그 암호문이 나지게 되여있었다.

그렇게 되면 큰 언질을 잡히게되고 5방과 8방이 그 책을 리용하여 련락을 취하고있었다는것이 탄로되는 판이였다.

이때 책을 내놓으라느니 못내놓겠다느니 간수부장놈과 서로 싱갱이질을 하고있던 5방 청년이 옆방에서 들으라고 큰소리로 웨쳐댔다.

《이걸 놓으시오. 이걸- 왜 보던 련애소설책까지 뺏으려 하는거요? 나는 항의하오!》

그것은 청년과 갑동이사이에서만 통하는 신호였다.

5방에 위험이 닥쳐왔다는것을 알게된 황갑동은 더 어물거릴새없이 즉각 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행동으로 넘어갔다. 전에 대전감옥에 있을 때 써먹어 효과를 보았던 그 비상방법을 다시 활용하기로 결심한 그는 《5방에서 놈들이 보던 책을 빼앗아간다- 항의하자-》라고 소리치면서 무거운 목침으로 철창을 힘있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즉시에 가까운 옆방에서부터 반응하기 시작했다. 미구하여 대전에서부터 그 유효가 있는 방법에 훈련된바있는 여러방의 수인들이 《항의한다- 항의한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목침으로 철창을 들부시고 땅바닥을 마구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온 《감호소》를 들었다놓는것 같은 그 소리가 얼마나 굉장한지 간수놈들과 옥졸놈들은 정신을 다 잃을 지경이였다. 5방에 간수를 데리고 들어가있던 간수부장놈이 거기서 뛰쳐나오며 소래기를 질러대는것이였다.

《어느 놈이야- 먼저 소리친놈이? 어느 자식이 먼저 목침을 두드리기 시작했어?》

놈은 제일 처음 소리를 내기 시작한 8방으로 달려왔다.

《오호- 황갑동이 역시 네놈이로구나.》

그자는 옥졸들에게 소리쳤다. 《야, 방망이를 가져와- 그리고 이 문을 열어-》

오라지 않아 몽둥이를 가져오고 8방의 철문을 땄다. 방망이를 받아든 간수부장놈이 앞에 서고 다른 옥졸놈이 역시 몽둥이를 들고 이 방으로 들이닥쳐 일을 내는 날에는 여기서 살아나가기가 힘들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순간 맞받아나가서 부딪치자고 결심한 황갑동은 몽둥이를 틀어잡고 서슬이 딩딩해서 감방으로 들어서는 간수부장놈을 향해 마주 달려나가면서 머리로 무작정 그 자의 상통을 들이받았다.

《어쿠-》

놈은 비명소리와 함께 단박에 코피를 쏟으며 나자빠졌다.

갑동은 내친김에 복도로 빠져나가며 방망이질을 하려고 덤벼드는 옥졸놈을 붙잡아 땅에다 들입다 메쳤다. 그자도 캥-하고 너부러져 이내 일어나지 못했다. 갑동은 자기가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했던지, 이제는 큰 일을 번져놓았으니 어떻게 해야 되겠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죽음을 불사하고있는 이 순간 오직 온몸이 복수의 일념으로 불타고있을뿐이였다.

그런데 이때 소동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규택이가 황급히 저쪽 복도끝에서 달려오고있었다. 그자의 오른손에는 그 례의 굵은 철봉대가 들리여있는것이 보였다.

(아, 저것이로구나! 저 철봉대로 내 머리를 까겠지. 이제는 어찌할수 없이 나도 당하게 되는구나!)

누구도 옆에 그것을 막아줄 사람조차 없는 고립무원한 상태에 빠진 순간 절망의 심연속으로부터 솟구쳐오르는 알지 못할 힘이 있었다.

《야, 이놈아- 너 죽구 나 죽구 해보자-》

놈이 무쇠봉을 쳐들고 달려오며 면바로 머리를 내려치려는 위급한 찰나에 황갑동은 불시에 허리를 굽히고 쏜살같이 맞받아 밑으로 들어가면서 한손을 내뻗쳐 그자의 아래 중태기를 틀어잡았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놈은 손에서 철봉대를 힘없이 떨구며 주저앉았다. 요진통을 잡히운 정규택은 《아이고, 나 죽는다-》고 아부재기를 치며 금방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질렀다.

《이놈의 새끼! 다시 접어들테냐?》

황갑동이 성나서 펄펄 뛰면서 그것을 더욱 으스러지게 틀어잡아 당기니 놈은 거기로 온 내장이 다 뽑히여나오는것 같은 죽는 소리를 했다.

사건현장에 오기수소장놈까지 다 달려왔으나 법석 떠들어대며 맴돌뿐 어쩔줄 몰라 갈팡질팡하고있었다. 그런 중에도 어느 한놈이 아까 규택이놈이 집어던진 무쇠봉을 다시 잡아들고 갑동이에게로 달려들려고 했다. 그것을 본 황갑동이 손에 힘을 풀지 않으며 소리쳤다.

《아주 죽여버리겠다.》

그는 놈의 요진통을 더욱 세게 움켜잡고 비틀었다. 정규택이 너무 급해서 단말마의 비명소리를 내면서 혀를 가로 물었다. 그 꼴을 보고 당혹해 난 소장놈이 다급히 소리쳤다.

《야, 그자를 다치지 말라- 지리산의 고… 고슴도치다-》

그자는 《이러다 살인나겠다아-가만들 있어.》라고 주절대더니 어찌나 바빠맞았던지 황갑동이의 앞에 와서 빌었다.

《황… 황선생님, 왜 이리 노하셨소? 우리 아이들이 어른을 못알아보고 그런것 같은데 제발 그걸 좀 놓아주소-》

《안된다, 버릇을 뚝 떼여놓아야지.》

《황선생, 이젠 그만하면 됐시다.》

소장은 옆에 있는것들을 돌아보며 욕지거리를 했다.

《보는 책은 왜 뺏아가지고 그래? 당장 돌려줘, 당장. 사람을 보고 다루어야지.》 그자는 황갑동에게 다시 빌붙었다.

《황선생, 그만 노염을 푸시고 그걸 풀어놔주시우-》

《지금은 나에게 요진통을 잡히웠으니까 다 쩔쩔 매면서 빌지만 이것만 놓으면 날 가만두지 않으리라는걸 내 모르는줄 아슈?》

《원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서약문을 이앞에서 쓰라고 해도 쓰리다.》

《서약문꺼정 쓸 필요는 없지만 다시한번 그랬다간 우리가 그 누구던 용서없을줄 알라-》

황갑동은 정가놈에게서 단단히 다짐을 받아내고야 손을 풀어주었다.

정규택은 제 발로 일어서지도 못하여 다른 놈들이 부축했다.

놈이 제아무리 독종이라고 우쭐렁대도 지리산의 《갈범》한테 얼마나 넋살이 떨어졌는지 황갑동이 다시 달려들가봐 황황히 달아났다. 곱새등어리를 해가지고 두다리를 벌리고 엉기적엉기적 걸어가는 놈의 그 꼴이 얼마나 망측스러웠던지 감방에서 내다보던 사람들이 모두 일시에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정규택이라는 자는 그날 어찌나 혼쭐이 났는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는 소리가 있었다. 도장동에 살적에는 마음어지고 순해빠지기만한 애였던 황갑동이를 잘못 보고 달려들었다가 밑천을 다 잃을번 했던 그놈은 어찌할수 없었던지 그후 사퇴를 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감호소》당국은 따벌과도 같은 존재인 황갑동이틀 잘못 건드렸다가 초래될 그 후과가 두려워 함부로 다치지 못했다. 이때부터 황갑동은 청주감옥에서는 어느 간수도, 그 누구도 서뿔리 건드릴수 없는 존재로 되였다.

이것은 실로 그의 15년간에 걸친 청주《감호소》생활의 마지막 시기를 하나의 일화로 장식해주었다고 할수 있는 웃지 못할 사건이였다.

이 사건을 통하여서도 황갑동이 찾게 되는 교훈이 있었다.

(약하면 밟히우고 강하면 딛고 일어선다! 정신력이 강한 자가 자기보다 힘이 센 자를 이기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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