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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뚱보동무의 마지막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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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4월 19일, 리승만괴뢰도당의 썩어빠진 반동통치를 끝장내기로 결심먹고 나선 마산시 청소년학생들의 정의의 투쟁으로부터 시작된 4. 19인민봉기는 온 남녘땅을 휩쓸었다. 분노의 화산은 터져 드디여 서울에서 시대의 저주를 받던 최대 오작품인 리승만의 동상이 거꾸러져 땅에 코를 박은채 일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민족의 암적인 존재, 반동의 늙다리괴수, 인류의 수치였던 로주구에 대한 력사의 심판이였다. 어린 학생들의 손에 바줄로 목매인채 4. 19의 거리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리승만《대통령》의 가련한 몰골인 그 치욕스러운 동상, 그것은 그 얼마나 많은것을 시사해주는, 력사무대에서 물러가는 자에 대한 하나의 상징적인 만화였던가. 공포와 전률을 느낀 력사의 죄인인 리승만은 남조선인민들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자신에 대한 저주가 어떤것인가를 알고는 대경실색 몸서리를 치면서 《대통령》자리에서 즉각 퇴진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4. 19혁명의 드세찬 불길은 광주감옥의 써늘한 담장안에도 미쳐왔다. 옥중투사들, 죄수 아닌 《죄수》들의 생활에서 그 어떤 운명적인 큰 변동이 생길것만 같았다. 혁명의 억센 손길에 의하여 오랜 세월 자유를 결박당했던 사람들은 당장 옥에서 풀려나가고 대신 그 자리에는 애국을 철창에 가두고 민주에 몽둥이질을 마구 해대던 매국의 무리들, 교형리들이 포승을 지고 끌려들어와 앉을것만 같았다. 실로 인민봉기의 드세찬 함성은 남녘의 잠자던 민중을 깨우고 전세계를 경탄시켰으며 원쑤놈들로 하여금 공포의 전률을 느끼게 만들었다. 대전감옥 정문앞에서도 성난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봉기군중들의 정의로운 발길에 짓밟혀 쫓겨들어온 형무관들이 《죄수》들의 감방에까지 찾아들어와서 지난 날의 잘못을 용서 빌었는데 그런 발길이 수일간 이어졌다. 감옥의 관리들이였던 전남 화순출신의 김동선이와 장성 살던 심갑섭은 직접 《수인》들의 면전에서 관모를 벗고 엎디여 빌고나가서는 큰 충격을 받고 집에 들어가 혼자 밤이면 무서운 악몽속에 허덕거리다가 혈압이 터져 죽어버렸거나 사표를 내고 나가버렸다. 당시 서울에서는 지어 깡패두목으로서 한때 리승만의 정치수레를 뒤에서 밀었던 시라소니(김정재)까지도 《우리는 리승만의 사환군들이였습니다. 력사의 죄인들인 저희들은 민주사회의 용서를 바랍니다!》라는 긴 프랑카드를 쳐들고 묵묵행진을 했겠는가. 그러나 4. 19는 피로써 쟁취한 혁명의 열매를 횡취한 미제의 꼭두각시 장면도당에 의하여 남녘의 거리거리를 뒤흔들던 만세의 메아리만을 남겨놓은채 그 불길은 점차 사그러지고 말았다. 감옥 죄수들이 덕을 입었다면 4. 19혁명에서 학생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조치령을 받았던 단기수들은 출소되여나가고 장기수들도 많이 면감된것이라고 할지. 4. 19이후에는 그래도 20년후 출옥의 날을 그려보며 사는가 싶었는데 1961년의 《군사정변》은 그 모든 희망과 기대를 다시 뒤집어엎어버렸다. 바로 이때에 군사파쑈도당은 《반공법》을 휘둘러대면서 비인도적이며 비인권적인 신탄압법인 《사상전향법》을 내놓았는데 사회주의사상을 가진 재소자들은 사회주의리념을 완전히 버리고 자본주의세계로 전향하던가 죽으라는것이였다. 그의 구체적이고 절대적인 집행자는 남조선 형무소력사에서도 류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고의 악질 대전형무소장 윤병희였다. 이놈은 남조선감옥의 장기수들을 다 전향시키고야 말겠노라고 혈서까지 썼던 자로서 실로 악착하기로 유명한 놈이였다. 1962년도부터 각 형무소의 비전향자들을 대전감옥에 다 집결시켜놓고 이 악명높은 윤병희놈을 소장으로 임명하였는데 감옥에 있던 다른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황갑동이도 바로 이 대전형무소로 옮기여졌다. 대전감옥은 일제때에 지은 정치범형무소로서 지형적으로나 탈옥방지의 조건으로보나 전향공작에 적합한 장소로 선택된것 같았다. 72개의 방으로 되여있는 4사와 8사, 7사와 9사는 윤병희가 순전히 전향을 목적으로서 지은것이였다. 사와 사사이 막이벽과 천정을 특별히 넓게하여 겨울에는 랭동고, 여름에는 한증탕을 만들고 방들도 0.75평도 못되게 만든 살인적인 독거사였다. 이 독거사를 완성해놓고 윤병희놈은 배고프고 얼어죽고 데여죽을 형편이 되면 저절로 전향하지 않고는 못배길것이다 하고 지껄였다. 그런데다가 늘 몽둥이를 끌고다니는 두 오가놈인 오용한, 오용석이, 그자들이 얼마나 가증스럽게 놀았으면 대전바닥에서 이미 형기를 마치고나간 일반범들까지도 그놈의 딸들을 붙잡아 조용한데 데리고가서는 머리를 빡빡 깎아서 집으로 보냈겠는가. 그리고 리대식, 리세민, 박우신, 교무과장 김치연이 등 형무소장 윤병희를 비롯하여 모두가 인간쓰레기, 인간파철들로서 남조선전향공작 일등 《공신자》들이였다. 이 철천지원쑤놈들에 의하여 대전감옥 비전향자 2,000명대렬이 거의 다가 죽고 녹았다고 할수 있었다. 윤병희! 이 악귀같은 자는 전국 각 형무소에서 악명높은 불한당들을 신통히 골라다가 특별사에 집결시켜놓고 소위 괴뢰군《상이군인》최고악질 교무과장인 정규택이란 자를 책임자로 하는 전담반까지 만들어 갖은 전향공세를 집요하게 들이댔다. 사회교회인까지 동원하여 시내참관, 결의형제다과모임, 생일놀이, 60환갑 70고회 생일상 받기, 호텔에 죄수들을 데려다가 고급료리를 대접하고 기생을 안겨주는 등 못하는짓이 없었다. 이미 전주감옥에서는 루범, 일반범들을 동원하여 장기수들을 북어두들기듯 탕쳐놓고는 당장 각서를 쓰라, 그것도 안되니까 매맞아 의식을 잃다싶이 한 사람들의 손을 끌어다가 《이제부터 <대한민국>에 절대 순종하여 살것을 맹약합니다.》 하고 조작한 글줄밑에다 인즙을 묻혀 지장을 찍어서 강제 《전향서》를 만들기까지 했다. 그러한 각종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 전주감옥에서는 여러사람들을 전향을 시켰다는것이다. 전향하지 않는 자는 죽거나 미치거나 병신이 되고야 만다. 한사람은 아주 똑똑하고 빨찌산투쟁에서도 건전하고 감옥수들중에서도 끝까지 견결한 청년이였는데 최종적인 《전향》탄압을 받고 정신이상에 걸려 대전감옥에 와있었다. 놈들은 끝끝내 전향하지 않는 자의 운명은 바로 저렇게 된다는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와 같이 정신분렬증에 걸린 사람들과 얼굴과 몸에 보기 끔찍한 흉터가 생긴이들, 정신육체적인 불구자들을 더러 살려서 대전형무소에 그냥 두고 다른 장기수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심리전을 추구하였다. 바로 이 대전형무소 독립가사의 어느 한 방에 장발의 머리가 되여버려 더벅머리총각인지 남복을 한 처녀인지 알수 없는 젊은 《죄수》 한사람이 꼼짝 않고 앉아있다. 마치 조롱속에 잡아넣은 새와도 같이 오랜 고독에 시달리며 죽은듯이 앉아있는 그 《죄수》는 지금 깊이를 알수 없는 무거운 상념에 잠겨있었다. 흩어져 내린 윤기만은 아직 잃지 않은 긴 앞머리칼이 이마전과 두눈이 있는데까지 덮이여있어 얼핏 보아가지고서는 녀자인지 남자인지 분간키 어려운 사람, 그러나 흩어져내린 머리칼속으로 철창밖 그 어딘가 멀리 무한원방을 쏘아보고있는듯 한 그 정기도는 눈매며 곡선미를 잃지 않고있는 동실한 량어깨와 활형으로 곱게 휘여든 부드러운 등어리, 그리고 오랜 감옥생활의 모진 고초로도 다는 꺼져들어가게 만들수는 없었던지 녀죄수복이 터질듯 애처롭게 삐여져나오려는 어찌할수 없는 뚱보처녀의 웃가슴으로부터 시작된 봉긋한 자태 등은 어디 갈데 없는 녀자의 모상이다. 그는 무슨 녀자인지 온종일 가도, 아니 한달 내내, 일년 내내 가도 말 한마디 없는 녀죄수이다. 그로 말하면 벌써 오래전부터 남의 말을 듣기만 하고 자기는 말못하는 그런 흔치 않은 벙어리장기수였다. 물론 타고난 천성적인 벙어리는 아니다. 오래전인 전쟁시기에 놈들에게 처음 체포되였을 때 유격대지휘부의 중요비밀을 대라고 못견디게 굴던 놈들앞에서 밤에 자다가 헛소리라도 칠가보아 스스로 혀를 물어끊어 끝까지 조직의 비밀을 지켜냈던 유격대의 녀전사, 그의 별호는 지리산의 《도람통동무》, 이름은 강덕금이였다. 그렇듯 동지들과 인민들의 사랑을 받고 존대받던, 녀성으로서는 드문 선요원이였으며 지방에 공작내려가면 마을사람들과 이내 친숙해지군 하던 매우 세련된 유능한 선동원이기도 하였던 강덕금이! 죽어도 빨찌산을 하겠노라고 떼질을 써서 고향마을청년인 《갑동오빠》를 따라 입산을 하여 험한 벼랑길을 톺아오를적엔 l메터를 동무들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어서 올라갔다가는 도로 2메터를 미끄러져내려오기가 일쑤였다. 너무나도 안타깝던 나머지 《엄니, 나를 왜 이렇게 뚱보로 낳아주고 갔소-오.》 하면서 혼자 울기가 얼마였던지 모른다. 그러다가도 고지에 다 오르면 쉴참엔 언제 울었던가 싶게 전우들을 위해 노래도 불러주고 기지있는 재담 비슷한것도 들려주면서 모두의 마음을 즐겁게 했었다. 비록 눈물을 흘리면서 애타서 울망정 대오를 떠나면 죽을것처럼 생각했던 덕금이. 그러기에 언제인가는 지하공작 나갔다가 그 뚱뚱한 몸으로 하여 빨리 뛰지 못해 종시는 놈들에게 붙잡혔을 때 늘 치마속에 숨겨가지고 다니던 작은 수류탄을 꺼내여 《혁명에 미친 녀자》라고 수작질하던 적들을 멸살시키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웃음도 방긋 량볼엔 보조개를 짓고서 《…봄이 오는 아리랑고개》를 부르면서 돌아왔을 때 죽었다던 사람이 부대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그 노래소리를 듣고 녀동무들이 얼마나 기뻐하며 달려나와 눈물로 맞아주었던가. 정말이지 그는 한때 재미나게 말할줄도 알았고 우스개소리도 좋아했으며 특히 조선민요인 여러 지방의 《아리랑》련곡도 그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정서깊게 넘기군 하던 겨울에도 노래부르는 빨찌산의 꾀꼬리이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여기 감옥에 들어와 불우한 운명의 고독스러운 녀《죄수》인 벙어리가 되고만후에도 그가 사랑하던 노래만은 그를 떠나지 못해하는듯 싶었다. 자신도 이상하고 신기한것은 입으로는 소리내여 불러지지 않는 그 노래들이 많은 세월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아직까지 생생히 살아남아 가슴속에 넘치고 온 감방에 그득 차며 멀리 전우들이 있는 지리산에까지 울려퍼져가는것인지 바이 알길이 없는 그였다. 그렇지만 의지굳센 벙어리 녀《죄수》의 뜨거운 가슴속에서 저절로 울려나오군 하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그 노래야말로 그의 살아있는 넋이고 불타는 열정이며 꺾을수 없는 의지이고 그 누구도 빼앗을수 없는 가장 신성한 신념의 노래, 심장의 노래였다. 입을 꼭 다물고 감방에 앉아있는 이 순간에도 아무 경황없는 이 녀《죄수》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정서깊은 조선민요의 하나인 《아리랑》이 흘러나오고있는줄이야 그 누가 알건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마음속으로 투쟁의 길에 같이 나섰던 황갑동이와 더불어 승리의 아리랑고개, 통일이 오는 아리랑고개를 넘고넘고 또 넘었던 지리산의 사랑스러운 딸! 아 그 간고한 투쟁속에서도 한시도 웃음 없이는 노래 없이는 못살던 쾌활하고 랑만에 넘쳐있던 처녀가 벌써 오랜 세월 말을 알면서도 말을 못하고 살아오다니 기막힌 일이 아닐수 없었다. 지금도 정신운동은 한시의 정체도 모르고있는 그의 언어중추만은 살아있어 한쪽으로는 계속 말을 만들어내고있었다. 그러기에 해종일 꼭 다물려있어 군내가 날 지경인 입안과 의사표시를 하지 못해 답답하기만 한 가슴속에는 뚫고나갈 파렬구를 찾고있는 말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것도 말이 흔한 사람들이 입을 가지고있으면 다 쏟아놓군 하는 그런 랑설이 아니라 가장 값있고 선택되고 벼리여오던 긴요한 이야기들, 말 못하는 가슴속에 쌓이고쌓이여 응축되여있는 불같이 뜨거운 말들이 그득 장약되여있었다. 저주로운 전주감옥에서 불구자가 아닌 불구자로, 속으로만 말하는 벙어리로 살았던 덕금이였다. 놈들에게 전향을 강요당할 때에도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매를 맞으면서도 맞서 언론의 포화를 퍼부어서라도 속씨원히 상대의 면상이라도 쳐갈기는 통쾌감이라도 맛볼수 있었지만 이건 그러지도 못하고 무언으로만 항거하며 어찌할수 없는 묵비권만을 행사해야 하는 말못하는 벙어리 녀《죄수》의 그 피눈물나는 안타까운 심정을 그 누가 알아줄건가. 옆에 말이라도 해줄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그런대로 듣고 머리라도 끄덕여보이며 하다못해 진짜 벙어리처럼 손마선질로라도 뜻을 통하며 가깝증과 울화증이라도 면할수 있으련만 그러지도 못할 사정, 바깥세계와 완전히 차페된 먹방에 가두어넣고 말리여죽이려드는 독감방인지라 앉아서 앞에 바라보이느니 입을 못가진 무정한 감방벽과 녹쓴 철창이요 누워서 바라보이는건 높은 천정과 저우의 뙤창가에서 밤마다 린색하게 반짝거리다가 사라지군 하는 쪼각별빛들뿐… 실로 벙어리로 혼자 고독히 지내여야 했던 그 간고한 기간에 무슨 일인들 없었으랴. 때로는 참기 어려운 고문의 험한 상처에서 오는 격심한 아픔의 호소도 할 사람이 없었고 위가 들어붙는 기아와 창자에 얼음이 끼는 혹한과 찜탕같은 막사에서의 갈증으로 목이 타드는 혹서에서도 소리쳐 약 달라, 밥 달라, 물 달라! 한번도 변변히 말도 못해보고 안타까이 가슴허비며 울다가 그 자리에 쓰러진적은 그 얼마였던가. 그중에서도 녀성으로서 제일 참기 어려운 곤난은 굶어도 좋으니 남자들하고도 달라서 매일 세수만은 해야 하는건데 먹을 물도 없는 조건에서 아침에 낯을 씻을수도 없고 무더운 여름엔 정상적으로 목욕도 시키지 않아 몸에서 냄새가 나고 머리도 제때에 감지 못하는것이였다. 말이 녀자지 녀자라고 할수가 없는 짐승만도 못한 생활이였다. 그래도 그것까지도 참을수 있는데 녀자는 감옥에 들어와서도 꼭꼭 달마다 달거리를 해야만 하는가, 그때가 오면 제일 난처한것이 녀《죄수》들에게 위생솜이나 위생지가 보장되지 않는것이였다. 그럴때면 녀성에 대한 더없는 모욕감, 수치감, 굴욕감과 함께 자기를 녀자로 낳아준 어머니까지도 원망하게 되는것이였다. 그렇듯 비인간적인 학대와 처우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온 그에게도 한가지 떳떳한 자부심과 긍지만은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 혀를 물어끊어 놈들의 낯짝에 뱉아버리면서도 목숨으로 유격대 총지휘부의 비밀을 지켜냈으며 전향이냐 비전향이냐 하는 그 판가리싸움에서도 자기가 녀성의 몸으로써 끝끝내 견디여냈다고 하는 그 떳떳한 자랑이였다. 녀성 비전향장기수!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리성의 승리, 생의 기쁨이였으며 불행중의 유일한 행복, 마지막삶을 긍지롭게 장식할수 있는 빛나는 아침노을과도 같은 그런 신성한것이였다. 그런데 지금 강덕금은 간악하기 짝이 없는 원쑤놈들이 갖은 권모술수를 다 써서 자기에게 남아있는 생명보다 더 귀중한 그 마지막 보배인 혁명가의 긍지와 행복마저도 찬탈해가고저 꾀하고있는줄은 모르고있었다. 어느날 그가 불리워나간것은 이제는 보기만 해도 입에서 신물이 나고 몸에 진저리쳐지는 교무과장 정규택의 방이였다. 어제 황갑동에게 한차례 당하여 땅에 태질을 당하면서 콩크리트바닥에 이마를 지치울 때 피가 났던지 머리에 흰 붕대를 처맨 이놈의 심사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였지만 덕금이는 무슨 일이 있었던지 알리가 없었다. 이제는 말못하고 눈빛, 몸짓, 손짓으로밖에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강덕금이와는 어지간히 많이 대상했던 이자는 벙어리를 만나면 자기도 벙어리가 된다더니 벌써 조건반사가 일어났는지 놈은 건방진 턱질만으로 앉으라고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덕금이 한동안은 호출을 하지 않던 이자가 오늘은 무엇때문에 찾았을가 눈치를 살피며 각성있게 그 자리에 가서 앉아 처음부터 머리를 돌려버렸다. 다른 때 같으면 자리를 권하기는 고사하고 첫 한두마디에 신경질을 부리며 빽소리를 지르군 하던 신경과민인 이자가 오늘은 차비새가 달랐다. 《강덕금 선요원선생! 그간 어떻게 지내시오? 요새는 얼마나 바쁘게 돌아쳤는지 동향인 로처녀를 자주 만나드리지 못해서 안됐소그려.》 덕금이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자들과 맞설 때면 비록 입밖으로 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표현력이 더욱 풍부해진 얼굴표정과 함께 속으로 만만치 않은 대꾸질을 하군 하는 습관이 생겼다. (싱거운 놈, 그새 너를 보지 않으니 먹지 않아도 살이 지는것 같았어. 되지 못한 수작질은 작작하고 어서 본론에나 들어가지 그래.) 규택은 그전부터 덕금을 오래 대상하는 과정에 이 녀장기수의 예리하고도 날카로운 표정의 변화가 나타나군 하는 얼굴에서 그의 속말을 알아들을줄 아는 재간을 터득해가졌다. 《그래 본론으로 들어가잔 말이지? 그러자구. 오늘은 우선 두가지 기쁜 소식부터 알려주자고 해요. 첫째 소식은 황갑동이 말이야, 왜 그대가 꿈결에도 잊지 못해 하는 직속상관이였으며 사랑하여마지 않는 그리운 님이기도 한 황갑동련락과장 있지 않아요? 목숨이 지독하게도 질린 자란 말이요. 남원수용소 있을 때부터 몇번인가 시체더미속에서 살아서 기여나와 광주 2가사 200여명 죄수들중에서 네댓명이 총살을 면하는 속에서 형무소의 귀신이 된줄 알았등마. 그런데 상기 죽지 않고 살아있더란 말이야. 나도 처음 보곤 놀랐댔소. 죽기는 고사하고 아직 딩딩하고 팔팔한게 꼭 지리산의 작은 불범 같았소.》 (아니, 그이가 살아계시다니? 그것도 지리산의 불범처럼 죽지 않고 팔팔한채로!) 그 놀라운 뜻밖의 말을 듣는 순간 강덕금이는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세차게 풀무질하며 고패치던 심장이 경련을 일으키다가 판막이 그만 쿡 막혀버릴것만 같았다. 모든 피가 높뛰는 가슴으로 모여들면서 갑자기 그의 얼굴색이 새하얗게 바래여지면서 창백해지는것이였다. 다음순간 덕금이는 이마전을 가리운 머리칼을 한손으로 갈라놓으며 놈의 상판을 따져묻듯이 똑똑히 정시해보았다. (교무과장! 당신 그게 정말이요? 이번까지 당신이 그에 대한 거짓말로 나를 다시 롱락했다가는 내 당신을 이 이발로 물어뜯어서라도 여기서 목줄띠를 끊어놓고야 말테요!) 정규택으로서는 리해할수도 없는 고상한 인간의 감정, 숭고한 동지애와 열렬한 사랑의 권리로 명백히 따져묻는듯한 그 녀자의 검둥근 눈길은 무서운 린빛을 내쏘았다. 지어 근엄하고 신성하게까지 보여 가슴을 대번에 서늘하게 만드는것 같았다. 《이젠 내 말을 믿지 않을수도 있는데 이번만은 정말이요. 황갑동은 죽지 않았소. 어데 있는가구? 아주 가까이에. 광주감옥에서 끝끝내 버티여낸 비전향장기수들이 넘어올적에 여기로 같이 왔지. 정확히 말하면 대전형무소 4가사 1방 죄수번호 127번 황갑동이! 어떻소?》 《…》 《그래도 못믿겠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 가까이에 살아있으며 덕금씨를 몹시도 그리워하며 잊지 못해하고있다는 한가지 물질적인 증거를 보여줄수도 있소. 먼저 함께 도장동마을에 살적에 남북총선거의 결과로 공화국이 창건되던 날 덕금씨가 눈 못보는 오빠를 위해 제 손으로 정성껏 수놓아주었던 작은 공화국기발을 잊지 않고있겠지?》 (아니, 그때 수놓았던 공화국기발은 나와 오빠 그리고 황동지밖에는 모르는데 어떻게 그걸 알가?) 《그 기발의 래력은 덕금이도 알다싶이 그렇게 되여있소. 도장동마을 청년들이 입산하던 날 오빠가 총에 맞아죽으면서 넘겨준 기발을 오늘까지 열다섯해가 지나도록 황갑동이 가슴속에 깊이 간수해두고있었더라 이 말이요. 자 여기에 실물을 가져왔으니 보시오. 자기의 수예솜씨가 옳은가?》 이러면서 규택은 정말로 오랜 세월속에서도 그리 퇴색도 되지 않은채로인 자그마한 공화국기 하나를 내놓는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는 순간 강덕금은 두눈이 번쩍 뜨이는것을 느끼며 채듯이 손으로 받아들며 펼쳐보았다. 분명 그때 자기가 한뜸두뜸 정성껏 수놓았던 그 공화국기발임이 틀림없었다. 여러가지 고운 색실로 도두룩하게 부각시켰던 해와 별이 빛나는 람홍색 공화국기! 그때 오빠는 내가 수놓아준 이 기발을 떨리는 손으로 만져보고 또 쓸어보면서 야! 우리 영명하신 김장군님께서는 쎄시기도 하지. 조선나라 공화국기발속에다가 글쎄 저 하늘의 둥근 해와 오각별을 그대로 따다가 넣어주셨으니… 하면서 얼마나 좋아하며 감격의 눈물까지 흘렸던가. 그리고 황과장은 나의 정성과 오빠의 피가 스며있는 이 기발을 늘 품속깊이에 넣고다니면서… 덕금이! 내 가슴속에 우리의 마음인 해와 별이 찬란한 이 공화국기발이 안겨져있는 한 나는 죽어도 살아도 공화국의 참된 아들로! 장군님께 충직한 지리산의 영원한 전사로 길이 영생하게 될거요! 라고 뜨겁게 말하지 않았던가. 아! 우리모두의 희망의 표대, 투쟁의 기치였으며 늘 우리의 가슴속에서 불새처럼 세차게 펄럭이던 공화국기발이여! 순간 강덕금이는 잊을수 없는 자기의 첫 수예품이였던 그 공화국기발을 두손으로 꼭 모아잡아서는 가슴에 가져다대였다. 그다음엔 입가로 가져다 오빠와 갑동이의 후더운 체취도 느껴보며 볼에 대고 애틋이 비벼대는 그의 어깨가 조용히 파도치는듯 싶더니 여윈 두볼을 적시며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오… 오빠! 화… 황동지!》 정규택이 수작을 붙였다. 《그런데 이 공화국기발이 어떻게 되여 내 손에 들어 오게되였는지 묻고싶지 않아? 내가 황을 대전으로 넘겨오던 날 우리 아이들이 한바탕 두들겨패서 쓰러뜨린 그의 몸을 수색할 때 빼앗아 손에 넣은것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전혀 그런게 아니야. 나는 이 기발이 그의 가슴속깊이에 안겨져있어 그가 오늘까지 공화국을 믿고 비전향수로 남아있을수도 있었다는것을 뒤늦게나마 알수 있었어. 그렇지만 지금은 이것이 그에게 필요없게 되였거든. 왜냐하면 그도 지금에 와서는 결심을 달리하였으니까. 그 완강하던 비전향수가 그처럼 결심변경을 하게 된데는 덕금씨의 결정적인 작용이 있었소.》 (결심변경에 나의 결정적인 작용이라니?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요?) 《놀라울테지? 이것이 어제 나온 <대전일보>요. 한번 여기를 읽어보시오. 여기에 그 해답이 다 적혀져있으니까.》 놈은 신문 한장을 덕금이의 앞탁자우에 펼쳐놓으며 두개의 손가락으로 한곳을 두드려보였다. 처음에는 그저 범상한 신문보도이겠거니 무심한 눈길을 보내던 덕금이는 거기에 난 자신도 모르게 언제인가 찍히운 자기의 사진이 크게 나와있는것을 보자 벌써 불길한 예감이 드는것이였다. 그는 거기에 광고된 《새 생활의 길을 찾은 녀성 비전향장기수 강덕금양의 솔직 담백》 이라고 표제한 소개기사를 급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제목이 모든것을 한마디로 시사해주고있는 완전히 날조된 그 글을 보고 난 덕금이의 얼굴은 처음에는 붉어졌다가 점점 하얘지더니 나중에는 그만 흑빛이 되여버렸다. 가슴이 마구 울렁거리면서 속에서는 무엇인가 돌덩이 같은것이 사방 흉벽을 치며 빙빙 돌아가고있는것 같았다. 앞에 앉아 히죽거리고있는 규택의 뻔뻔스러운 낯짝을 견주어보고있는 강덕금이의 사색이 되여버린 얼굴에서는 푸들푸들 경련이 일었다. (철면피한 놈 같으니라구. 네놈이 이런 너절한 조작극을 꾸민다고 두눈을 펀히 뜨고 살아있는 이 비전향수 강덕금이가 전향자로 될줄 아느냐. 어림도 없다. 어림도 없다! 그래 이 놀음이 무엇을 위해 필요했더냐!) 《이 신문에 난 웃고있는 순간의 강덕금씨의 사진과 훌륭하게 만들어진 그아래의 특등기사는 바로 그대의 제일 가는 동지이며 그리운 님인 황갑동씨를 위해서 필요했던거요.》 (뭐? 그러니 이 신문을 이미 그이도 보았더란 말인가?) 《물론 이 신문에 난 덕금씨의 사진과 대서특필된 기사는 어제 황갑동이 보았는데 즉시에 그 반향이 일어났지. 이 신문을 보는 순간의 그 놀라움과 경악에 대해서는 더 말할것도 없고… 그렇지만 처음에는 믿지 않더군. 그러다가 강덕금이처럼 이제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전향서 한장만 써바치면 고스란히 덕금씨를 돌려줄테니 그땐 둘이 결혼해서 잘 살게 해주겠다고 설득시켰지. 요구하면 서로 직접 만나게도 해주겠다고 하면서…》 (그러니까 뭐라고 합디까?) 덕금의 눈빛에서 이런 물음을 느낀 놈은 다시 뇌까리기 시작하였다. 《그제야 내 말을 다 믿게 된 황가는 버럭 성을 내면서 그런 변절자 같은 녀자하고는 만날 필요도,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다고 하면서 이제 만나게 되면 내가 저주를 퍼붓더라고 전하라는게 아니겠어. 그러면서 죽은 오빠를 배신하고 자기를 배신한 혁명의 변절자인 그런 계집의 더러운 손때가 묻어있는 거짓으로 꾸며진 한갖 수예품에 불과한 이런 기발은 더는 자기에게 필요 없노라고, 당장 가져다가 돌려주라고 내앞에 내동댕이치는게 아니겠나. 이렇게 되여 덕금씨와 같이 황가의 버림을 받고 땅에 던져진 이 가련하게 된 공화국기를 내가 툭툭 털어서 건사하게 되였다는 말이여! 》 (세상에 이런 무서운 일이라구야. 그러니 그 고지식한 사람은 이 신문기사의 내용과 교활하기 그지 없는 이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더란 말인가.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고있던 이 귀중한 기발을 우리의 깨끗한 우정과 사랑도 함께 되물리며 나한테 돌려보낼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더는 헤여나올수 없는 절망의 심연속에 빠지게 된 이 순간 강덕금은 불시에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눈앞이 캄캄해왔다. 온몸에서 이때까지 자기를 견지할수 있도록 든든히 뒤받침해주던 마음의 지지대가 불시에 꺾어져나가는상 싶었다. 덕금은 두눈에서 터져나오려는 피눈물을 손에 들고있던 그 기발로 받으며 뼈속깊이에서 솟구쳐나오는 오열을 삼켰다. (혁명의 믿음과 동지들의 사랑을 동시에 잃게 된 불행하기 그지 없는 나의 기구한 운명이여! 물론 동지들사이에도 그렇고 혁명에는 오해라는것이 있을수도 있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복잡한 혁명의 와중에는 별의별 일이 다 생길수도 있으며 전혀 생각지도 않던 심한 오해를 받게 되는 경우도 있는것이다. 그럴 때 잘하는것이 인간이며 참혁명가인것이 아니겠는가. 오해는 일시적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짙은 흑막속에 묻히여 영영 그 오해를 풀지 못한채 죽을수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동지들과 혁명의 오해를 받게 되는것보다 더 무서운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 오해에 대하여 심히 고깝게 여기면서 불만하고 지어는 비뚤어져나가거나 자기를 알아주지 못하는 동지들과 혁명에 등을 돌려대던가 쉽게 변절해버리고 마는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사람이 오해를 받게 되는 때에도 신심을 잃지 않고 적들앞에서 절대로 동요를 보이지 말며 동지들과 혁명에 대하여 한번 먹은 마음 그 어떤 환경속에서도 변치 말고 깨끗이 살다가 깨끗이 죽어야 한다. 오해는 자기가 나서서 풀자고 해서 풀어지지 않는 법이다. 오해는 그 사람이 죽은 다음에라도 다른 동지들과 혁명이 풀어주며 그의 순결함과 청백성은 후에 력사가 증명해줄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리산투쟁과 오랜 감옥생활을 통하여 배워가진 또 하나 오해에 대한 우리의 진리인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락심할건 없어. 아직 한가지 방도는 남아있으니까. 강덕금이! 지금이라도 진짜 의미에서의 전향을 하고 황갑동에게 편지를 쓰던가 만나서 잘 설복을 해서 같이 전향서를 쓰도록 만드는거야. 그렇게 되면 두 전향수의 결혼을 축하해서 여기 대전형무소의 특별사에서 굉장한 잔치를 차려 다른 죄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하자는거야. 어때, 이젠 암만 그래야 덕금이 전향했다는건 신문을 통해 세상이 다 알게 되였으니 어차피 비전향장기수로서의 영예를 간직하고 죽기는 다 틀린 노릇 아니여. 우선 내가 그런 영예로운 최후를 맞도록 해주지는 않을테니까 잘 생각해보라구요!》 (사람이 악하게 나오자고 하면 끝이 없구나. 네놈들이 나를 잡아 포로수용소로 끌고가 혀를 잘라 벙어리가 되게 만든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신문에 거짓기사를 조작해내여 나에게 남아있던 녀성비전향수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마저도 몸에서 떼여내서 매장해버리려는 이 간특하기 짝이 없는 철천지원쑤놈아, 녀자가 원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내 네놈도 그 더러운 낯짝을 세상에 다시 쳐들고다니지 못하도록 불구로, 병신짝으로 만들어놓을테다. 내 어떻게 하던지 만사람들, 동지들앞에서의 장한 죽음으로써 네놈들의 그 허위조작음모를 분쇄해버리고야 말리라!)
2
그날 밤 덕금이는 잠들수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노릇이였다. 십년 적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나간다더니 근 스무해 가까이 말할수 없는 고생과 모진 고통을 다 이겨내면서 녀성비전향수로 싸워온 보람이 없게 된것이다. (이제는 제일 가까운 전우였던 그리운 사람의 믿음마저도 잃고 동지들의 버림을 받게 되였으니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놈들의 모략에 의해 자수전향자, 이미 세상과 동지들앞에서 신문지상으로 공개된 혁명의 변절자로서의 오해와 수치, 오욕을 영영 씻지 못한채 억울한 생을 마치게 되였으니 아- 기구한 나의 운명아. 차라리 이렇게 된바엔 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라도 동지들앞에 나의 순결성을 증명해보이고 떠나는 길밖에는 없구나! 그래, 그렇게 하자. 혀를 스스로 끊었던 내가 제 목숨을 끊지 못할건가.) 이런 막다른 절망의 심연속에 빠지게 되는 순간, 그 무엇보다도 동지들의 믿음이 제일로 귀중한것으로 여겨지는 이런 순간에 당착한 덕금이의 눈앞에는 지난 날 지리산에서 전투적인 우정과 동지적인 사랑을 꽃피워가던 동지들, 열정과 투쟁의 환희와 랑만으로 넘치던 열렬한 전우들의 정다운 모습들이 더더욱 그리워지는것이였다. 오빠로만 따르다가 마지막영별이 될런지도 모를 석별의 순간 남기는 한장 편지로 그만 마음속에 숨겨오던 사랑의 감정을 부끄럽게도 로출시켰던 잊지 못할 남동무인 황갑동이, 걸음 빠르기로 유명했던 《제트기》와 별지의 엄마인 내 동무 별이 그리고 빨찌산 총사령 리현상아바이와 전투병단의 정신들던 젊은 사령 김지희, 그의 두 날개라고도 할수 있었던 빨찌산의 《쌍둥이자매》였던 리옥순이와 문복순이 등 죽어도 잊지 못할 나의 전우들… 특히 자기의 지리산생활에 깊은 인상을 남겨준 김지희의 두 녀동무들이였던 리옥순이와 문복순이의 슬기롭고 장한 모습과 그들의 빛나는 최후가 떠올라 눈시울을 후덥게 해주었다. …당시 《토벌》사령부는 덕유산기슭에 둥지틀 틀고있었다. 그때 놈들의 대《토벌》에 대처하여 리현상총사령의 통일적인 지휘하에 김지희사령의 전투병단을 비롯한 다섯개 도의 사단급 무력들이 대대적인 협동작전으로 새 공세를 준비하고있었다. 그와 관련하여 김지희의 전투병단은 서부군집단 반판수의 부대와 협공으로 《토벌》사령부의 예기를 미연에 꺾어놓기 위한 덕유산지구전투를 계획하고있는중이였다. 거기에는 소위 《정예》를 자랑하는 《토벌》군의 기본무력이 집중배치되여있었던것이다. 결국 덕유산지구전투는 적의 심장을 통채로 도려내와야 하는 일종의 모험적인 작전이기도 하였다. 협동작전에 만전을 기하기 위하여 두 부대는 정찰로부터 시작하여 전투진행에 이르기까지 공동의 보조를 맞추기에 처음부터 힘썼다. 그리하여 덕유산 설천방향의 정찰은 반판수부대의 오랜 선요원인 황갑동이와 강덕금이네 조가 맡고 안성방향의 정찰은 김지희전투병단의 유명한 《제비》인 손동찬련락과장네 조가 맡았는데 거기에는 리옥순이와 문복순이가 자진하여 망라되여있었다. 이번 전투의 중요성으로 보아 두개의 정찰조를 동시에 파견하는것까지는 리해가 되는 일인데 문제는 김지희사령이 옛 버릇이 되살아나 또다시 직접 현지정찰을 주장해나선것이다. 한동안 리현상총사령의 엄한 분부와 병단지휘성원들의 충고를 받고 자신이 직접 정찰에 나가는것만은 삼가했던 그였다. 그러던 그가 오늘 낮에 래일 정찰을 나가게 되여있는 성원들을 찾아 초보적인 임무를 주면서 느닷없이 자기가 동행하겠노라고 하면서 고집쓰는통에 물의를 일으키게 되였던것이다. 그런데 황갑동이나 손동찬이, 다른 사람들도 그랬지만 이때까지는 무슨 일이 생기면 문복순이를 주로 《돌격대》로 내세우고 자기는 뒤에 다소곳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서서 하회를 기다리고있던 리옥순이가 뜻밖에도 이번엔 앞에 나서서 결연한 자세로 막아나서는 바람에 김지희조차도 어지간히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령이 정찰임무의 중요성으로 보아 이번에는 모색이 비슷하게 생긴 옥순이와 복순이는 자매로 가장하고 자기와 손동찬은 그들의 《남편》격이 되는 사람들로, 황갑동이와 강덕금이는 부부로 꾸며가지고 적후깊이 안성시내까지 들어가서 아주 세밀하고도 과학성이 담보된 정찰을 해가지고 와야겠다고 말했을 때였다. 옥순이 불시에 얼굴이 구운 가재빛이 되여 두눈이 올롱해져서 물었다. 《어메, 그러니 사령동지하구 제가 부부로 가장해가지고서?》 《그런데 왜 그렇게 놀라는거요?》 김지희가 반문했다. 《저… 그렇지 않아도 더러 뒤에서 말들이 있는데 제가 꼭 사령동지와 함께 그런 연극에 출연해야 하나요?》 《혁명이 그것을 요구한다면?》 《암만 그래두 사령동지하고는 그렇게 못하겠습니다.》 《나하군 그렇게 못하겠다? 그러면 배역표를 바꾸어 차라리 애아버지인 손동찬과장과 부부를 짓던가 해도 되오.》 《그렇지만 저의 제기는 그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본질적인 요구요?》 《그에 대답하기전에 제 한가지 사령동지에게 물어도 됩니까?》 《물으시오.》 《동지는 부대의 책임적인 지휘관입니까, 일개 전사입니까?》 옥순이의 랭정한 물음이였다. 《그걸 몰라서 묻소?》 《적후정찰이 지휘관이 서야 할 위치입니까?》 《그거야 때에 따라 지휘관이 결심먹기에 달렸지.》 《그렇지 않습니다. 큰 전투를 앞두고 작전의 주인인 부대장이 자리를 뜬다는것이 말이 됩니까. 그건 안됩니다.》 《안되기는 왜 안된다는거요?》 《우리 전투병단의 지휘를 맡은 사령동지가 자기 위치를 리탈하여 생명을 내걸고 위험한 정찰의 길로 나간다는것은 첫째로 하나의 모험입니다.》 《둘째는?》 《둘째로 동지들, 전사들을 아직도 믿지 못해하는 독선적인 행위입니다.》 《셋째는?》 《셋째로는 정규군의 지휘관답지 못하게 상기도 괴뢰군장교시절의 기분에 사로잡힌 자유주의적인 행동의 발로, 하나의 만용을 부리는것으로밖에는…》 《뭐 내가 만용을 부린다구?》 《그래요. 동지는 전에 뒤짐지고 뒤에 든든히 서있던 리현상사령동지를 믿고 직접 현지정찰을 나가군 하던 그때와는 또 다르지 않아요. 부대의 유일한 지휘관으로 된 사령동지가 저희들과 같이 일개 정찰병이 되여 직접 적후로 들어간다는것이 어디 말이 됩니까. 그건 절대로 안됩니다. 못나갑니다. 동지는!》 《옥순동무, 동문 언제부터 지휘관의 결심을 톡톡 막아나서는 그런 무엄한 행동을 서슴지 않게 되였소?》 《저는 동지가 부대의 운명, 지리산의 운명이 걸려있는 이번 전투를 앞에 두고 모험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예요.》 《모험도 필요할 땐 해야 되는거야. 동무가 뭘 안다구 평대원인 동무가…》 《저는 평대원이지만 부대지휘관의 생명을 옆에서 보호하고 지켜주어야 할 의무를 지닌 한 녀전사로서, 동지로서 그걸 요구하는거예요.》 《나에게는 그런 보호가 필요 없소. 보위하겠거든 나 한 개인이 아니라 우리 지리산을, 우리 혁명을 보위하고 지키시오. 이미 나는 결심했으니까 더는…》 리옥순이는 당장 사령이 정찰을 떠나기라도 하는것처럼 앞에 유연한 몸으로 막아서며 간청하다 싶이 했다. 《사령동지! 제발 빕니다. 이번만은 이 리옥순이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간절히 빕니다.》 《나는 동무가 도대체 나한테 뭐가 되길래 그러는지 리해가 되지 않아 그러오.》 《…제가 동지한테 뭐가 되길래 그러는지 리… 리해가 되지 않는다구요?》 성난 김지희의 얼굴을 저으기 응시할뿐 더는 말을 잇지 못하는 옥순이의 악이라고는 전혀 있을것 같지 않은 두눈가에는 핑- 물기가 돌았다. 《아무렇게나 다 말하세요. 제가 이렇게 말하는데도 전사들의 심정을 리해하지 못하고 다 뿌리치고 사령동지가 고집쓰면서 그대로 직집 정찰을 떠난다면 저는 부대를 살리는것이 아니라 부대를 죽일수도 있는 그런 모험에 가까운 정찰전에는 따라나가지 않겠습니다.》 《잘 생각했소. 마음대로 하시오. 필요없소.》 《사령동지, 제가… 말하자는건…》 《됐소. 대원 리옥순동무! 3보 앞으로 갓!》 《…》 옥순이는 3보 앞으로 나와섰다. 《안되겠소. 떠나기전부터… 옥순동무는 투철한 신념이 없소. 지휘관의 명령지시에 대한… 동무는 이번 정찰에서 제외하겠으니 그리 아시오!》 《…》 《동무는 돌아가보시오!》 《…》 옥순이는 리해하다가도 어떤 땐 리해되지 않기도 하는 김지희사령에 대한 억울한 눈물을 머금고 그 자리에서 울먹거리다가 그의 성미를 아는지라 하는수없이 지휘관앞에서 일단 물러섰다. 갑자기 고개를 외로 틀며 금시 쏟아져나오는 눈물을 씹어삼키듯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리옥순이를 보느라니 갑동은 생각이 많아졌다. 서로 그 진심을 알면서도 양보할수 없어 하는 리옥순이와 김지희, 두 전우의 아름다운 싱갱이질을 앞에서 보면서 강덕금은 가슴이 후더워오는것이였다. 황갑동은 지휘관에 대한 신뢰감과 존경심을 안고 김지희에게 말했다. 《저… 사령동지! 손동무와 제가 두 녀동무를 데리고나가 이번 정찰을 책임적으로 해가지고 오면 안되겠습니까?》 《…》 《저희들을 믿어주십시오. 사령동지!》 손동찬이의 말에는 가볍게 다룰수 없는 무게가 담겨있었다. 《내가 동무들을 못미더워해서가 아닙니다. 놈들의 동기<토벌>에 대한 예기를 꺾어놓기 위한 이번의 새 작전은 어찌하면 우리가 모든 운명을 걸고해야 할 마지막결사전으로 될런지도 모르기때문에 그런다는것을 동무들이 리해해주면 되겠습니다.》 《…》 《…》 《…가서 출발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 지구의 지형에 대한 연구와 최근 <토벌>부대들의 이동과 배치정형에 대한 자료연구도 더 깊이 하면서 대기하고있으시오. 차후 구체적인 임무를 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돌아가겠습니다.》 황갑동이와 손동찬 두 련락과장은 절도있는 경례를 하고 사령의 방을 먼저 나섰다. 다 나가고 방에는 김지희사령과 복순이만이 남게 되였다. 사령은 성난듯한 그 부리부리한 눈으로 복순이를 피끗 건너다보았다. 그 눈길은 마치 《동무는 왜 아직 거기 남아있는거요?》라고 성나서 묻는것 같았다. 복순이는 복순이대로 아량이 있으면서도 가벼운 비웃음이 담기기도 한 미묘한 웃음을 입가에 문채 여유있게 서있었다. 대방의 속을 꿰뚫어보는듯한 그의 매우 솔직하고 숨길수 없는 두눈은 《자기를 위해서 그러는데 뭘 그리 성나서 그래요?》 하고 핀잔을 주는것 같았다. 《사령동지, 좀 앉아도 됩니까?》 《앉구려.》 김지희는 호주머니에서 담배쌈지를 꺼내여 한대 말기 시작하며 앞에 도전의 자세로 앉아있는 복순이의 존재에 대하여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려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보다 직급은 말할것도 없고 년령상으로도 아래인 사람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자기를 모든 이성의 감정을 초월한 따뜻한 관심의 눈으로 지켜보군 하는 이 녀자앞에 서기만 하면 웬일인지 손우의 누이를 대하는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은근히 화가 남을 어쩔수 없었다. 지금도 바로 그런 눈길로 자기를 말없이 응시하고있던 문복순이 두무릎에 포개여얹었던 량손을 책상우에 올려놓는것으로서 그 어떤 공세의 시작을 알리자 다소 마음의 긴장을 느끼게 되는 김지희였다. 그런데 다른 때 같으면 말을 에돌리지 않고 직방치기로 생각나는대로 들여댔을 복순이가 그러지 않고 사려있게 시간을 끄는걸 봐서는 오늘은 방법을 달리 하려는것 같았다. 《왜 자꾸 웃기만 하는거요?》 《우스워서요.》 복순이의 대답은 천연스러웠다. 《뭐가 그렇게 우습소? 남은 심각해서 그러는데…》 《우습지 않으면요. 아까 그게 뭐예요? 다른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옥순동무가 남달리 안타까운 마음으로 직접 정찰을 떠나려고 옹고집을 쓰는 사령동지의 앞을 왜서 눈물로 막아나서는지 정말로 사령동지가 모른단 말이예요?》 《그걸 내가 알아선 뭘하우. 난 그런건 알려고도 안하오.》 《아니! 알아야 해요. 사령동지는 왜 그토록 옥순동무가 위험한 길을 떠나려는 사령동지의 발에 채우면서까지라도 한사코 막아나서는지 그 깊은 심정을 똑똑히 알고있어야 한단 말이예요. 내 언제인가도 말했었지만 우리 옥순이가 남달리 사령동지를 생각하고 아끼여 존경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것만은 사실이예요. 그러나 그 녀성이 단순한 사랑의 감정때문에 그런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돼요. 그는 인간 개인인 김지희가 아니라 부대의 운명, 우리 지리산빨찌산의 운명을 걸머진 지휘관인 전투병단사령으로서의 김지희동지를 더 귀중히 여기기때문이예요. 그런데 만일 동지가 그냥 우겨서 우리와 함께 정찰을 나갔다가 성공하고 무사히 돌아오면 좋겠지만 혹시 어찌하여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경우 자신이 설계했던 전투작전은 어찌되고 부대전사들의 운명은 다 어떻게 되겠는가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봤나요? 왜 항상 자기는 싸우면 번마다 이기기만하고 자기는 매번 정찰나가면 꼭꼭 성공하여 부상당하지도 죽지도 아니하고 살아서 돌아오기만 한다고 장담할수 있냐 말이예요?》 《…》 《전투사령일 때와도 또 다르지 않아요. 통 자기의 몸, 자기의 목숨이 얼마나 귀한지도 모르구요. 전투지휘를 할적에도 허리를 좀 굽히고 다니라고 그만큼 옆에서 말하는데도 총알아 날 맞혀봐라 하는 식으로 꿋꿋이 서서 다니구, 그런 용감성, 그런 영웅심이 무엇을 위해서 필요하나요? 옥순이랑 우리가 얼마나 뒤에서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지 알기나 합니까? 어떤 때 정말이지 벽이 문이라고 땅고집을 쓰면서 내밀제면 이건 어린애도 아니고… 사령동지는 그전의 전투사령때와도 달라서 이제는 부대의 제일 큰 어른이 되였으니 사랑이가 나온줄 알았더니만 언제면…》 《이건 점점 한다는 소리가, 사람을 정말로 아이로 보는게 아니요.》 《호호, 남자들은 겨우 철이 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돌아보면 벌써 60이더라는 말이 있지 않아요. 사람이 남의 말을 알아들을줄 알게 되였을 때라야 비로소 셈이 들었다고 한다더군요. 저희들이 그렇듯 간절히 말리는데도 듣지 않으면 할수 없지요. 부대장의 결심대로 하십시오.》 그는 벌써 이긴 자세였다. 《…》 《저는 이만 돌아가겠는데 옥순동무 말이예요. 그렇지 않아도 입은 무겁고 속으로 많이 말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리동무가 아까 사령동지의 그 매몰찬 말을 듣고 가서 혼자 고민하고있을런지도 몰라요.》 《고민하겠으면 고민하고…》 《그래두 녀자들이란 그렇지 않아요. 정찰을 떠나보내기전에 오늘 저녁에라도 한번 조용히 만나 마음을 풀어주세요.》 《그렇다고 나한테 보내지는 마시오. 오늘은 만나고 싶지 않으니…》 《아마 사령동지는 우리 옥순이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전에 우리 셋이서 함께 정찰을 다니던 때를 얼마나 그리워하며 외우군 하는지, 얼마나 다시 지희동지와 함께 정찰을 나가고싶어 하는가를 다는 모를거예요. 그런 녀동무를 리해해주지 못한다면…》 《…》 웅심이 있는 복순이의 그 뜻깊은 마지막말에 김지희는 사뭇 새삼스러운 놀라움을 느끼며 마른 침만 삼켰다. 그냥 나가려던 복순이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다시 돌아섰다. 《사령동지! 저… 시인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어디서 하나 구해오셨다지요? 그걸 좀 빌려줄수 없겠나요?》 《갑자기 <백두산>은 왜?》 《저도 한번 다시 볼려구요.》 《그런데 먼저 신청한 사람이 있어놔서…》 《그게 누군데요?》 《…》 《비밀이면 저한테 말 안해도 돼요. 그렇지만 전달해달라면 누군지 저보다 먼저 보게 해드릴수도 있어요. 수고스럽지마는, 호호…》 《아니 그런 과잉열성은 필요없시다. 먼저 가져다보시오.》 김지희는 자기 책상빼람에서 크지 않은 책 한권을 꺼내여 복순에게 무게있게 내밀었다. 《내가 아끼는 책인데 정찰갔다가 돌아와선 이내 돌려주시오.》 《고마워요. 혁명을 더 잘 하겠습니다. 솔개골의 제2꽃분이로. 호호.》 문복순이는 사령에게서 《백두산》을 받아든 즐거움만이 아닌 그 어떤 반드시 필요한 보물이라도 얻은듯한 기쁨을 안고 옥순이가 기다리고있을 자기네 녀성병실로 돌아갔다.
3
한편 옥순이는 발그레한 오랜지색 저녁노을빛이 어린 녀성병실의 뙤창아래 앉아 마치 서산으로 지는 해에 온몸이 이끌려나가기라도 하는듯한 자세로 꽃천으로 작은 담배쌈지 비슷한것을 정성껏 짓고있었다. 바느질을 하면서도 아까 사령의 방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자기의 진정을 알아주지 않던 김지희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자주 한숨을 내쉬였다. 그에 대한 애모쁜 정을 항시 가슴에 안고있는 목숨이기에 두눈가엔 불구슬 같은것이 어리여 반짝이고있었다. 방으로 들어오다가 그것을 띠여 본 복순이 다소 들뜬 기분으로 《백두산》에서 따낸 시구절에 자기 말까지 섞어서 한수 읊조리였다.
《나는 박철호라 부르오 얼마나 괴로우시우?》(옥순이는 와뜰 놀랐다.) 길 막던 사나이의 첫말(복순이는 웃으며 계속했다.) 솔밭은 어둑해져도 꽃분의 뺨엔 붉은 노을- 《아이고! 철호동무!》 가늘게 속삭일뿐 처녀는 면목도 모르며 한해나 그의 지도 받았다- … 꽃 같다고 꽃 분같이 희다고 분- 솔개골 꽃분이는 이 밤 철호와 함께 삐라를 찍는데… 지리산의 꽃분이 우리 옥순인 정찰 떠나기 전날의 이 저녁 지리산의 철호 우리 사령의 담배쌈지라도 정성껏 지어드리려는것이냐!
오 내 가슴속 호수는 고요해도 꽃분이의 마음은 형편도 없이 설레여라 호호호-
《아이, 언니는 남의 속도 모르면서…》 눈을 곱게 할기는 옥순이의 말을 복순이 웃음으로 받아넘기였다. 《그래, 나야 어찌 네 깊은 속을 다 알겠냐만 옥순이의 마음속 우물을 들여다보는 그런 사람이 하나 있더구나.》 《그런 사람이 있을게 뭐예요.》 《아니야, 내 이자 사령동지를 만나서 한바탕 <평화담판>을 하고 오는 길인데 남자들의 마음속 우물은 깊어서 긴 드레박을 들이뜨리면 저밑에서 창창- 웅글은 물소리가 들릴뿐이야. 그러니 우리를 혼자 위험한 정찰의 길로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령동지의 그 마음을 리해해야지.》 《거야 뭐 제가…》 《사령동지는 날더러 아깐 자기가 너무 지나친것 같다고 하면서 옥순동무를 자기한테로 보내주었으면 하더구나.》 《저를요?》 《그래.》 《아까 성이 독같이 나서 <3보 앞으로 갓!>을 시켰는데 그럴수가 없어요. 누구를 바보로 만들자고 그래요?》 《아니야, 정말 찾았어. 그것의 증명이 여기에 있어. 자 받아, 옥순이 제일 사랑하는 책이야.》 복순이가 이러면서 등뒤에 숨겨가지고있던 책을 옥순에게 내여주었다. 《아이, <백두산>, 이 책이 어디서 났어요.》 《동무가 언제인가 부탁한 책이라고 하면서 김지희사령동지가 제일 첫 신청자인 옥순동무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지 않겠어. 나는 역시 제2번수고, 호호.》 《정말이나요?》 《정말 아니문…?》 《모르겠다? 복순언니가 또 무슨 연극을 피우지 않는지…》 《그렇게 믿어지지 않으면 그 책을 가지고가서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라마.》 옥순이는 그래도 믿기 어려운지 머리를 기웃거렸다. 복순이 한술 더 떴다. 《그런데 책임자가 너에게 정확히 전달하라고 하면서 한가지 조건이 있더구나.》 《뭔데?》 《이 장편서사시 <백두산>에서 철호와 꽃분이 몰래 삐라를 찍다가 순사놈이 불시에 들이닥치는 그 장면을 특별히 잘 보고와서 한번 생각되는것이 있으면 이야기해보라는게 아니겠니?》 《그건 왜 그럴가?》 《글쎄 말이야. 모르긴 하겠다마는 철호와 꽃분이 삐라공작을 하는 그 장면에 우리가 이번에 적후정찰 나가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그 무슨 생활적인 교훈이라도 담겨있을지 알겠니.》 《그럴지도 모르지.》 순진한데가 있는 옥순이는 자기 녀동무가 각본도 없이 꾸며가는 생활극에 점차 이끌려들면서 머리까지 끄덕여보였다. 그러면서 책을 펼쳐 사령이 지적했다는 서사시의 그 부분을 복순이와 함께 찾아냈다. 《바로 여기야 여기, 이아래로 내려가면서…》 《맞았어요. 어디 보자요.》 둘의 눈길을 모으고있는 거기에는 정서깊은 두메산촌의 밤에 벌어지는 이런 극적인 장면이 펼쳐져있었다.
산천의 밤- 마을집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모지라빠진 뒤웅박 같은 두메의 삶이 누덕밑에서 어지러운 꿈자리 펴는 밤에도 4월의 한밤! 물레방아소리도 그쳤다 마지막물레방아소리 굶주리는 마을을 조상하듯 밤새 개울물줄기 외로이 부여잡고 목놓아 흐느껴울던 그 소리… 그래도 두메의 외딴 오막살이 한채엔 이 밤이 삶의 밤, 투쟁의 밤- 철호와 꽃분이 마지막선포문 찍는다 이제 백부만 더 찍으면 그만 래일 아침엔 철호 떠나리 이때- 밖에서 가벼운 발자취소리- 온몸에 바늘이 돋는듯 포장 내린 창밖에서 수직 서던 아버지 숨겨운 소리- 《꽃분아! 불꺼라!》 캄캄한 방안 어느새 철호는 등사기와 선포문 안고- 《꽃분이 뒤문 여우!》 그러나 벌써 무거운 발자욱소리 들렸다- 가슴을 으스러뜨리는 발자욱소리 심장이 골풀이치다 기절한듯- 꽃분이 한자리에 서있다 <나가면 체포된다!>- 머리속에 언뜻 <어쩔가?> 순간은 천년인듯!
그다음절에는 순간 꽃분이 수집음을 무릅쓰고 하는 말 《철호 이불 쓰고 눕소!…》 밖에서 순사놈이 건방진 반말로 《여보 령감》을 찾을제 《가만 있습소… 불을 켜고… 아뿔싸, 등잔 쏟았네! 에그! 석유냄새야!》(그건 등사잉크냄새였다.) 빤해진 창문에 비친 그림자- 또렷이 나타난 처녀의 젖가슴 그것은 순사의 눈뿌리 뺐다. 《가만 있습소… 내 옷 입고… 나리님 들어오읍소》- 꽃분이 문 연다.
성격이 개방적인 문복순이 책을 자기앞으로 가져가며 씨원스레 말했다. 《이리 줘, 다음부턴 내가 읽을게…》
《에잇! 냄새… 이건 누구야?》 《내… 저의 새서방이요…》 《새서방? 너 시집 가? 계집년이 초저녁부터 끼고누워…》 《나리님두… 초저녁이라니…》 꽃분이 웃으며 말한다 《잡말 말고 두상에게 일러! 래일 아침 주재소로 오라구》 아니꼽게 방안을 훑어보고 홱 돌아서는 순사 그 발자욱소리도 사라졌을 때 불붙는 낯을 두손으로 막으며 꽃분이 주저앉는다 감격에 말없이 일어선 철호에게 《아이고 참 용서하옵소!》 머리숙이고 부엌으로 나간다 방안에 홀로 남은 철호 감격에 떨리는 입술로 《꽃분동무!》 맘속으로 부르짖고 맘속으로 합창하고 무릎꿇고- 《참다운 전우여! 이 나라의 귀여운 딸이여!》 밤은 깊어도 가누나 창문을 사이 두고 밤은 깊어깊어 한밤에 드누나… 이 한밤 철호 길 떠났다…
여기서 복순이의 시랑송은 끝났다. 옥순이는 극적인 장면을 담은 서사시의 구절구절에 감동해마지 않으면서도 마치나 자기가 꽃분이를 대신하여 불가사의한 그런 일을 당하기라도 한것처럼 얼굴이 홍당무빛이 되며 《아이, 어쩜 하필이면 이런 장면을 읽으라 지적했을가?》라고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호호, 바로 거기에 방점이 있는거야.》 복순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사령이 부부로 가장하고 같이 적후에 들어가 공작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만일 옥순이가 꽃분이였더라면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했겠는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이 문제를 제시한것 아니겠어?》 《정말 시까지 읽어보고 나니 솔개골의 순박한 처녀인 꽃분이에 대하여 생각되는게 많아요.》 《그렇지?》 《네.》 《지금 사령동지가 위험한 적후로 들여보내야 할 동무에게 본의아니게 성을 내고나니 마음이 좋지 않을거야. 이따가 저녁식사나 하고는 래일 정찰 떠나기전에 한번 찾아가서 만나보는게 어때? 기다릴텐데…》 《하기는 사람의 일을 어떻게 알겠어요. 정작 그이와 헤여져서 우리 혼자만 정찰을 나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그렇지만 내가 이런 때 사령동지를 가서 만나는것이 좋겠는지 어떻겠는지 하는데 대해서는 좀 생각해보자요.》 《…》 복순이는 그저 머리를 조용히 끄덕여보일뿐 그에 대하여 더이상 간섭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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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동지! 대원 리옥순 사령동지가 보내준 <백두산>을 다 보고 가져왔습니다.》 (내가 《백두산》을 저한테 보내줬다구?) 방에 들어서는 옥순이를 시뿌둥해서 맞아들이던 지희는 그의 보고를 받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리고 사령동지가 내여준 숙제라 하겠는지 철호와 꽃분이 나오는 장면을 본 독후감이라고 하겠는지요 그것도 다 생각해가지고서…》 (숙제라는건 또 다 뭐야? 복순이 아까 난데없이 《백두산》을 빌려달라고 할 때부터 그런 꿍꿍이속이 있었댔구나.) 《…그렇다면 어디 숙제수행정형을 봅시다. 장편서사시 <백두산>에서 철호와 꽃분이가 나오는 장면을 보고 느껴지는것이 뭐요?》 《네, 저는 빨찌산련락원 철호와 솔개골 꽃분이가 삐라를 찍다가 불시에 순사놈이 오는 그 긴박한 순간의 장면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였습니다.》 《길게 늘여놓지 말고 간단히 말해서…》 《네, 간단히 말해서 저는 앞으로 녀성정찰병으로서 그런 정황에 부닥치게 되며는 우물쭈물하지 않고 대담하게 지리산의 사나이 철호의 애인역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역이라도 훌륭히 수행해내는 지리산의 꽃분이가 되겠다는것을 마음다지게 되였습니다.》 《지리산의 꽃분이가 되겠다?! 그건 좋은데 지리산의 사나이 철호라는건 도대체 누구요?》 《그… 그건 저의 마음속에 그런 상징적인 인물이 하나 있답니다.》 《그런 상징적인 인물이 하나 있다?》 《네, 그렇지만 그는 모든데서 아직 <백두산>의 호협한 사나이 박철호만큼 빨찌산의 지휘관답게 처신하지 못하고 뜨문뜨문 쓸데 없는 만용을 부려 우리를 속상하게 만든답니다.》 《뭐? 그게 대관절 누구요?》 《그 사람은 지금 바로 제앞에 서 있는…》 《뭐 뭐시? 그럼 내가?》 김지희가 자기의 그 소리에 놀라 펄쩍 뛰는것을 보고 옥순이는 재미있어 통쾌스러운 웃음을 웃었다. 《호… 호호…》 《허 참,누가 웃자오? 헛… 허어 허허…》 사령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허파에 바람찬 웃음을 웃었다. 그리고는 대범해지며 말했다. 《그러니 옥순이는 지리산의 거룩한 딸인 꽃분이가 되겠으니 이 김지희는 지리산의 철호가 되여달라는 말이지?》 《그래요! 그대는 지리산의 철호, 나는 지리산의 꽃분이!》 《그건 참 멋있소! 서사시 <백두산>을 빌려줄만 하구만. 그러지 말고 내 기념으로 줄테니 그 책을 영 가지시오. 그 책에서 새로운 지리산의 딸이 나오게만 된다면야 그 책 하나 정도겠소.》 《사령동지, 고마워요! 이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정말 좋은 책이예요.》 《시인 조기천이 <백두산>을 잘 쓴데도 있지만 그보다도, 우리 나라 조종의 산 백두산이 그만큼 거룩하고 위대한 혁명의 성산이기때문이요. 그 백두산이 있어 유명 시인도 훌륭한 작품도 나오고 거기서 이 나라의 수많은 철호와 꽃분이들도 자라나게 된것이 아니겠소. 그렇소. 두가지 의미로 바로 그 <백두산>에서 실로 우리 인민, 우리 민족의 키가 그만큼 더 자라고 그 성스러운 백두산이 있어 백두대산줄기에서 뻗어내린 우리 지리산도 있는것이고 우리 조국, 우리 조선의 력사도 자라나는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참 시적인 훌륭한 말씀을 하였어요.》 《리동무! 우리 지금 비록 몸은 이 지리산에 두고있지만 언제나 김일성장군님의 혁명정신과 높으신 뜻으로 빛나는 백두산에서 삽시다.》 《그러자요. 그리고 우리 통일된 다음 복순동지랑 다같이 꼭 백두산에 가보자요. 그리고 정말 솔개골이라고도 있는지 거기도 가보고요.》 《약속합시다! 자.》 김지희가 손을 내밀었다. 《동지의 굳은 악수 신념의 악수를!》 그들은 지리산의 철호와 꽃분이가 되여보며 서로 굳게 마주잡은 손을 이내 놓지 못했다. 옥순이 품에서 무엇인가 소중히 꺼내들었다. 《사령동지! 저에게 오늘 <백두산>을 준 대신에 저도 기념품을 하나 드리겠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한번 알아맞춰보세요.》 옥순이 꺼내든 꽃천으로 곱게 지은 자그마한 주머니를 보고 머리를 기웃거려보던 김지희가 자신없이 말했다. 《담배쌈지!》 《아니요!》 《그럼, 주머니에 끈이 달린걸 봐서는 도… 돈지갑?》 《호호, 다 틀렸어요. 이건 솔씨주머니예요.》 《솔씨주머니?》 《그래요. 해방직후 저 북쪽의 삼지연마을에 살다가 남조선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으러 왔다 38선이 막히는 바람에 돌아가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제 동무가 하나 있었어요. 그 녀동무는 두고 온 백두산이 그리워 늘 외우군 했는데 헤여질 때 저에게 우정의 표시로 주었던 백두송의 씨앗이예요.》 《백두송의 씨앗?》 《사령동지, 우리 백두산의 이 솔씨를 앞으로 이 지리산에 심자요. 그러면 여기 불탄 지리산에서도 백두산의 억센 소나무와 함께 우리 마음도 자라날게 아니나요.》 《참 좋은 생각이요.》 《자, 이 백두산의 솔씨를 받아두세요.》 《그건 왜?》 《제가 정찰에서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그때에 되찾겠어요.》 《무사히 돌아올 생각은 하지 않구서리…》 《그래두 알겠어요. 이번 정찰에서 누구나 다 살아서 돌아온다고 단정할수야 없잖아요.》 《무슨 소리를, 어떻게 하나 다 살아서 돌아와야 하오.》 《사령동지, 그러지 말고 백두산의 정기, 꽃분이의 넋이 깃들어있는 이 백두송의 소중한 솔씨를 가지고있으면서 저를 기다려주세요.》 김지희는 불타는 두눈망울에서 간절한것이 애끓고있는 처녀의 흥분으로 상기된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다가 말없이 그 씨앗주머니를 손에 받아들었다. 순간 별스러운 이상한 예감에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다음순간 그는 《동무가 그냥 가지고가는것이 좋겠소. 그러면 어려울 때 그 마음속 백두송이 동무에게 힘을 주게 될거요!》하면서 솔씨주머니를 다시 옥순이의 손에 뜨겁게 돌려주었다. 그러면서도 김지희는 그것이 그냥 자기에게로 다시 돌아와 다름아닌 김지희, 자기의 가슴속 깊이에 그 하나하나가 아픔의 씨앗, 애통스러운 슬픔의 씨앗으로 떨어져 박히게 될줄은 몰랐다. 두 정찰조가 구체적인 임무를 받아가지고 떠난지 며칠이 지났다. 김지희는 사흘이 지나자 여느 때 없는 불안을 느끼며 안절부절하였다. 정찰조가 예견보다 늦어지는것이 아무래도 조짐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다를가 정찰조가 돌아오기는 했으나 두 조장과 리옥순이는 돌아오지 않고 문복순이와 황갑동의 조에 속해있던 대원만이 먼저 돌아왔던것이다. 협동작전의 성과적인 작성을 위해 미리 전투병단에 와있던 반판수사령과 자기네 김지희사령에게 동시에 두 조의 정찰자료를 종합하여 보고하고 난 문복순은 다른 동무들은 인차 뒤따라온다던 처음의 말과는 달리 울음부터 터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울어서 두눈이 다 퉁퉁 부어 돌아온 복순이를 보고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던 김지희는 그 어떤 불길한 예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문동무, 어떻게 되여 혼자 왔소? 모두 어디 있는지. 어서 말하오, 어서.》 《사령동지, 흐윽- 사령동지- 나는 이젠 옥순동무없이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옥순이 없이…》 《옥순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엉?》 《사령동지, 리옥순동무가…》 《옥순동무가 어떻게 되였다는거요? 바른대로 말하오.》 《옥순동문 잘못되였습니다. 정찰임무수행중에 저와 같이 적지휘부에까지 뚫고들어갔다가 그만 발각되여 원쑤놈의 흉탄에 맞아 전사… 전사했습니다.》 《뭐 옥순동무가 전사하다니? 아니 그럴수가 없소. 우리 옥순이는 그렇게 죽고 말 녀자가 아니요. 그렇게 죽고 말…》 김지희는 분연히 머리를 흔들어 너무나도 뜻밖인 그 놀라운 사실을 부정해보려고 몸부림쳤다. 문복순이는 그러는 사령앞에서 애통스러운 눈물을 좔좔 흘리며 울분을 토했다. 《아- 이번 정찰에 사령동지가 함께 나갔었더라면 이런 불상사를 막을수도 있었을걸… 그리고 내… 내가 옆에서 끝까지 막아주고 지켜주었어도 옥순동무가 적사단장놈과의 대결전에서 총에 맞아 숨지는것과 같은 일은 없… 없었을거예요.》 《적사단장의 총에 맞다니? 그건 대관절 무슨 소리요?》 《우… 우리는 예견대로 여기서부터 내내 강행군을 하여 그날로 현지에 도착할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어두워지자 저희들은 두조로 나뉘여 자기가 맡은 구역으로 은밀히 들어가 본격적인 정찰을 진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복순은 정찰과정에 있었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때 두 정찰조는 신심도 높이 부대를 떠났었다. 물론 황갑동이와 손동찬은 괴뢰군복을 갈아 입었으며 리옥순이와 문복순이 역시 산청군 경찰서습격전투때처럼 괴뢰군 녀장교로 변장하였다. 길을 잘 알고 걸음이 빠른 《제트기》를 앞세운 그들은 내내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하여 그날 해질녘에는 현지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들은 저녁에 어두워지자 두조로 나뉘여 각기 맡은 정찰구역으로 은밀히 들어갔다. 황갑동이네 정찰조는 놈들의 기본전투무력이 집중전개되여있는 야산지대로, 손동찬이는 옥순이와 복순이를 데리고 적《토벌대》사령부가 도사리고앉아 소위 《작전》을 펼치고있는 삼장면소재지로 깊이 침투해들어갔었다. 황갑동이네 조는 밤새 괴뢰군 여러 병종 야전부대들의 배치정형과 무력상태 특히 포진지들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데 정찰의 기본목적을 두었다. 손동찬이네 조는 《토벌》사령부의 위치와 경비정형을 구체적으로 정찰해내는 한편 지휘부통신선로들에 대한 전화도청과 작전장교의 랍치 등을 통해 적들의 작전적인 기도를 탐지해내는데 목적을 두고 활동했다. 우선 황갑동이네 조는 긴장된 정찰전을 벌려 별다른 사고없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두 정찰조의 집결장소인 《곰의 등판》으로 철수해갈수 있었다. 한편 자기네 조가 맡은 정찰임무를 기본적으로 수행하였지만 적련락장교의 체포를 통해 적지휘부의 작전기도를 완전히 탐지해내려던 시도만은 성공치 못했던 손동찬이 옥순이와 복순이에게 정찰자료를 주어 《곰의 등판》으로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만 남았다. 한것은 새벽에 잠에서 깨여난 《토벌》사령관의 첫 전화통화내용을 도청함으로써 자기네들이 탐지한 적들의 작전적기도에 대한 재확인의 필요성이 느껴졌기때문이였다. 그런데 날 밝기전에 한발 앞서 떠났던 옥순이와 복순이가 전혀 생각지 않았던 뜻밖의 정황에 부닥치게 되였다. 무사히 면소재지를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앞에서 불시에 요란한 기관총성이 울렸던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적들의 수색대와 맞다들린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였다. 무질서한 총성이 거침없이 울려나오는 앞의 야산언덕을 급히 넘어서보니 거기서는 괴뢰군놈들이 수백명의 인민들을 마을에서 끌어내다가 무작정 소총들과 기관총으로 란사하여 학살하는 대살인극이 벌어지고있었다. 아무데로도 달아나지 못하게 센 전조등불빛이 눈조차 뜨지 못하게 내쏘고있는 저쪽에 전화선으로 팔목과 다리들을 련줄련줄 묶이운 사람들이 서있었다. 아이를 업은 젊은 아주머니들과 어린애들을 품에 꼭 껴안고있는 녀인들, 백발의 할머니들과 새벽바람에 흰 수염이 흩날리고있는 할아버지들… 그들은 놈들이 기관총사격을 가할 때마다 무서운 아우성과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미리 뒤에 파놓은것 같은 구덩이속으로 굴러들어가는것이였다. 총살장은 수백명 사람들이 이리 밀리우고 저리 밀리우고 여기저기 쓰러지면서 울부짖군 하는 아비규환의 웨침소리로 가득찼다. 그 무고한 인민들이 눈앞에서 무리로 학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옥순이와 복순이의 눈에서는 불이 일고 치가 떨렸다. 당장 이 자리에서 놈들을 요정내고 인민들을 구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었지만 둘이서 권총만을 가지고 기관총까지 걸어놓고있는 수많은 놈들과 대적할 형편이 못되였다. 그렇다고 인민들이 당하고있는 끔찍스러운 그 참사를 그냥 보고만 지나갈수 없는 그들이였다. 《복순동무! 그 정찰자료를 가지고 먼저 <곰의 등판>으로 가주세요.》 옥순이 말했다. 《그럼 옥순동무는?》 복순이 의아히 물었다. 《글쎄 그렇게 해줘요.》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거냐?》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지금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 무고한 인민들의 생명만은 지켜주어야겠어요. 자, 빨리 집결장소로!》 이 한마디를 남기고는 옥순이 놈들의 기관총좌지가 있는쪽으로 곧추 달려가기 시작했다. 《옥순이-》 복순이 뒤에서 목터지게 불렀으나 옥순이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냥 냅다 뛰여가는것이였다. 그는 두문의 기관총을 나란히 걸어놓고 인민들을 향해 미친듯 불질을 해대고있는 놈들의 뒤쪽으로 달려가면서 쇠된 소리로 웨쳐댔다. 《쏘지 말라. 사격을 중지하라-》 그 소리에 놀란 놈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사형을 집행하고있던 괴뢰군 장교놈이 웬 난데없이 나타난 녀장교를 보자 거만을 피우려들었다. 《이건 도대체 뭐야. 사형장에 뛰여들어와가지구?》 괴뢰군 중위의 앞으로 다가선 대위의 견장을 불인 《녀장교》는 다짜고짜로 오른손바닥을 휙 날려 놈의 뺨을 갈겨댔다. 《어디다 대고 감히 반말이냐? 너희들에겐 상급도 없어?》 《…》 맵짠 녀장교의 손바닥맛을 보고야 정신이 번쩍 든 중위놈은 그제야 눈이 퀭해져서 옥순이의 어깨에 붙인 대위의 견장을 향해 경례를 했다. 《대위님! 제가 그만 잘못보고 실례했습니다.》 《실례고 뭐고 당장 사형집행을 중지해!》 《사형을 중지하라구요? 그건 왜 말입니까?》 《몰라서 묻는가? 당신네들은 <토벌>에 나올적에 지리산유격대와 싸우러나왔지 량민들과 싸우려고 나왔는가?》 《그런데 대위님은 누구길래?》 《먼저 자기의 신분을 밝혀야지?》 《예. 저는 <토벌>사령부의 경비중대 중대장 중위 오덕기입니다.》 《오중위라? 중대장으로는 갓 임명되였는가?》 《예. l소대장을 하다가 얼마전에 이전 중대장인 대위님이 전사한후부터 중대장으로…》하면서 놈은 먼저 자기의 증명서를 내보이는것이였다. 그자의 증명서를 받아서 보고 난 리옥순이 위엄있게 말했다. 《나는 <토벌대>사령관에게 <대통령>각하가 보내는 련락장교요.》 리옥순이는 자기가 지참하여 가지고온 증명서를 내보이고 나서 웃호주머니에 도로 넣으며 덧붙여 말했다. 《당신들의 도로경비가 얼마나 한심한 지경인지 오던 로상에서 공산군의 불의의 기습을 받아 승용차는 만신창이 되고 운전수와 나만이 겨우 구사일생으로 살아오는 길이예요.》 《그런데 운전수는 어디 가고 대위님만이…》 중위놈이 더럭 의심이 나서 물었다. 《운전수? 운전수는 저 길에서 대기하고있어.》 이때 어느새 뒤로 따라 왔는지 옆의 솔밭속에서 지켜 보고있던 문복순이 나타나는것이였다. 《마침 저기 나의 운전수가 나타났구만.…》 그 한마디의 암시적인 말에서 모든 정황을 즉시적으로 판단해낸 문복순이 접근보고하였다. 《운전수 문복금이 당신의 명령대로 도로에 지켜 서있었지만 지나가는 차를 잡지 못했습니다.》 《좋아, 걸어서 지휘부로 들어가자.》 옥순이 괴뢰군 중위놈에게 명령조로 지시했다. 《경비중대장, 우선 당장 백성들에 대한 사형을 중지시키시오.》 《그건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 <토벌>사령부와 사단장님의 신변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부대지휘부근처의 백성놈들을 아이, 어른할것없이 모조리 총살해치우라는 상급의 명령입니다. 상급의 명령.》 《그런 명령을 내린 상급이란 누구를 의미하는건가? 사단장님의 명령이기라도 한가?》 《그… 그렇습니다. 장성님의 직접적인 명령이라고 할수가…》 《그건 거짓말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그 사단장은 반공정신이 투철한 군인으로서 공산군과의 싸움에서는 사정이 없지만 죄없는 량민들을 무리로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릴 장성은 아닌줄 아는데…》 《어쨌든 나는 명령을 받은 군인으로서 량민이든 뭐이든 모두 총살해버릴 임무밖에는 없소.》 중위놈은 자기의 부하들을 향해 한손을 쳐들어올리며 다시 사격명령을 내리려했다. 《사격준비-잇》 이 위기일발의 순간 옥순이와 복순이는 약속이나 한듯이 각기 자기의 권총을 꺼내여 중위놈의 가슴팍에 겨누었다. 《중위 죽고 싶지 않거든 무분별하게 날뛰지 말라.-》 《…》 옥순이의 서리찬 웨침소리에 놀란 중대장놈은 쳐들었던 손을 천천히 내리며 자기를 면바로 견주고있는 두 녀자의 시꺼먼 총구를 공포에 질려 바라볼뿐이였다. 《왜 다시 사격명령을 내려보지 그래?》 몸매가 날씬하고 미색인 《녀장교》의 당당한 위세에 눌리운 놈은 마른 침만 꿀꺽 삼키며 그래도 살았다고 한마디 했다. 《그… 그렇지만 빨갱이백성놈들에 대한 사형집행을 중단시킨데 대한 책임은 대위님이 질줄 아시오.》 《좋아, 그 책임은 내가 질테니 당신이 직접 나를 사단장님에게로 안내하시오!》 그의 당돌한 말에서는 그 어떤 비상히 단호한 결심이 울려나오고있었다. 그가 자기의 목숨을 내대고 모험을 해서라도 위험에 처한 인민들을 구원할 결심이라는것을 알게 된 복순이의 입에서는 금시 《옥순동무! 거기 들어갔다가는 다시 못나와-》하는 소리가 튀여나오려고 했다. 그렇지만 말못하는 안타까움을 안고 그는 이미 행동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자기의 녀동무를 따라들어가 운명을 같이 할 자세를 보였다. 어느새 그것을 눈치챈 리옥순이 문복순이를 돌아보면서 지시조로 말했다. 《운전수는 여기 남아서 사단장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저 량민들에 대한 총살을 계속하지 못하게 지키도록 하시오!》 《저… 나는 운전수겸 부관으로서 대위님을 따라들어가겠습니다.》 《안돼. 내가 나올 때까지 명령대로 해.-》 《…》 《들었는가?》 《드… 들었습니다. 대위님의 명령대로 여기서 저 량민들을 한명이라도 더 학살하지 못하도록 지키겠습니다.》 《좋아요. 나는 인차 돌아나와요.》 옥순이 중위놈에게 일렀다. 《자, 중대장- 앞서요!》 중위놈을 앞세우고 그 악명 높은 《반공투사》라는 자의 야전지휘소로 찾아들어가는 뒤모습을 바라보는 문복순이의 가슴은 떨리고 종잡을수 없는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인차 돌아나온다고는 했지만 이것이 자기가 동생처럼 믿고 사랑해오던 저 훌륭한 녀동무와의 마지막영별이 될런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자기도 모르게 쓰라린 눈물이 가슴속에 고이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던것이다. 리옥순이는 자기가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적들의 사단지휘부 경비초소가 있는데까지 중위놈을 따라갈수 있었던지 자신도 몰랐다. 다만 한가지 사단경비중대장놈과 대동했으니 단속경비가 엄격한 지휘부정문초소를 통과하는데는 별로 장애를 받지 않을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그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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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중대장은 나가서 대기하고있어-》 《알았습니다. 사단장님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필시 어느 한 대지주의 소유였음이 분명한 수십칸짜리 큰 기와집을 《토벌대》사령부로 차지한듯 싶은 적사단장은 고투가 나게 꾸려진 응접실안락의자에 호랑이가죽을 깔고 마치 제왕인듯 틀지게 앉아있었다. 그가 등지고앉은 뒤벽 오른쪽에는 목화로 대나무를 그린 족자가 걸려있었으며 왼쪽에는 《민족을 살리고 반공으로 죽으리!》라는 좀 괴이한 긴 족자글이 걸려있었다. 민족을 살리고 반공으로 죽으리? 옥순은 순간 이놈이 악질반공두목으로서는 좀 색다른 놈이라는것을 간파했다. 이것은 실로 뜻밖에 이루어 진 일로서 다행이였다. 자기네 경비중대장을 내보내고 방에 둘만이 남게 되자 사단장은 유별나게 네모진 앞이마가 뚝 삐여져나온 무시무시한 모상으로 난데없이 자기앞에 나타난 깨끗하게 생긴 미모의 녀장교를 말없이 주시해보고있었다. 그냥 보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그 음험스럽게 생긴 큰 눈안에 상대를 통채로 붙잡아넣고 오장륙부가 몇자몇치가 되는가 하는것까지 말장 다 꿰뚫어보는상 싶었다. 이 반공괴수앞에 태연한 미소를 짓고 서있는 리옥순이의 가슴은 못내 떨리고있었다. 드디여 한동안 옥순이를 노려보기만 하던 놈은 불빛에 흰 이를 드러내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 련락장교의 자격으로 나에게 온 손님에 불과한 대위가 우리 경비중대장의 사형집행을 중단시켰단 말이지?》 《네.》 《이 사단장의 명령이라고 했다는데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단장님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각하의 명예훼손과 관련한 지시일 경우 다시 장성님의 결론을 받아 처리할수 있는 권한이 <대통령>의 파견원인 저에게도 부여되여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단장의 명예훼손과 관련한 문제라? 용감한 녀장교, 대단히 장하오, 장해. 핫하하…》 괴뢰군 장성은 상체가 더 우람한 몸을 흔들어대며 야유하듯 웃는다기보다 속에 괴여있는 그 어떤 독을 퍼올려 터뜨리는것만 같았다. 다음순간 불시에 얼굴의 그 스산한 웃음기가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그의 큰 주먹이 무겁게 쳐들어올려졌다가 퉁- 소리를 내며 앞의 량수책상우에 떨어졌다. 《아무리 <대통령>의 련락장교라도 그렇지 대위가 도대체 뭐이길래 감히 사단장의 명령집행을 취소시켜. 엉?》 《사단장님, 몹시 노하신것 같은데 저는 그래도 여기로 올 때까지만 하여도 아무 죄없는 수백명 백성들에 대한 경비중대의 총살행위가 장성님의 명령에 의한것이 아니기를 바랬더랬습니다.》 옥순은 지금 눈앞에 걸려있는 족자를 바라보며 거침없이 말하였다. 《그건 무슨 소린고?》 《나는 사단장님은 비록 공산군과는 총부리를 마주대고있지만 그래도 애족, 애민의 감정만은 좀 귀중히 여길줄 아는 특이한 반공투사로 알고있었기때문입니다. 그런것만큼 사단장님이 량민학살을 지시했으리라고는…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남조선의 출판물들이 아마 가만 있지 않을겁니다.》 《그렇지만 나의 부대 위수구역경비를 강화할 목적으로 잡아들인 그 마을 백성들로 말하면 량민일수가 없어.》 《그럼 뭡니까. 량민이 아니면?》 《지리산속의 유격대와 정상적으로 내통하고있는 그 어리숙한것같은 백성들이야말로 우리 야전지휘부에 언제 그 어떤 위험을 몰아올지 모르는 <빨갱이>들에 가까운 족속들이란 말야.》 《그렇게 주위의 백성들까지 무서워 다 잡아 죽여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그들을 버리는것이 아니라 나의 <애민>정신에 반기의 돌을 던지며 나에게 등을 돌려대고있단 말이요.》 《그러니 장성님은 민족을 사랑하고 그 백성들을 위해주려고 하는데 그들이 그것을 리해하지 못하고 달아나거나 민족에 대한 사랑의 정이 넘치는 사단장님의 안경에다가 대고라도 돌을 던진다는것인데요. 한갖 말 못하는 금수도 자기와 자기 새끼를 고와해주면 따른다는데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그에는 아무 대꾸도 못하는 사단장이였다. 《제가 알고있건데는 사단장님은 지리산<토벌>을 시작하면서 우리 민족의 몰살이 아니라 조선민족의 절반이라도 살리기 위해 자신은 반공전에 나서는것이라고 선언했던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죄없는 백성들까지도 자신의 손으로 다 잡아죽인다면 사단장님의 옆에 그 무슨 민족이라는것이 하나나 살아남아있겠습니까?》 옥순은 이 말까지는 사실 확신이 가지 않으면서 굳이 자기를 믿으면서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사단장의 기색은 의연 다른 기미가 없었다. 그것은 자기 말을 인정한다는것을 말해주었다. 《그러기에 전쟁이 아닌가. 군인들도 백성들도 더러 상하게 되는… 나는 이 치렬한 반공전의 와중에서 희생당하는 백성들의 생명에 대해서까지 책임질수는 없단 말이요.》 《그러면 사단장님은 민족앞에서 무엇을 책임집니까. 민족의 절반만이라도 살리는 반공투사가 되겠다고 하는 당신이 민족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겠다는겁니까?》 사리있고 론리가 정연한 이 알수 없는 녀장교의 단도직입적인 말에서 자신이 심각한 자기 모순에 빠졌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게 된 사단장은 궁지에 몰리였다. 《내 혼자서 반공전을 하는것도 아닌 조건에서 백성들을 하나도 상하지 않게 한다는것은 실제상으로는 불가능하다는거요.》 《그렇다면 당신의 그 손에 가시가 있어도 있고…》 《뭐, 내 손에 가시가 있다구?》 사단장은 군인답지 않게 부둥부둥 살진 자기의 희고 맷맷한 손바닥을 자반뒤집기틀 해보이며 반박하였다. 리옥순의 입가에 차거운 경멸의 웃음이 스쳤다. 《가시가 있어도 보이지 않는 큰 가시가, 아픈 가시가 숨겨져있지요.》 《헛, 그래 내 손에 무슨 가시가 돋았다는거요.》 《장성님은 곰의 발톱을 본 일이 있습니까. 우둔한 곰이 그 쇠갈구리 같은 발톱으로 아이가 곱다고 연한 애의 얼굴을 한번만 내리쓸어주어도 이마가 긁히우고 눈알이 빠지고 코와 입이 째여져 피가 흐르게 되는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그 철가시가 박혀져있는 손으로는 아무리 백성들을 고와하려고 해도 이번처럼 피만을 흘리게 할뿐입니다.》 《내가 백성들을 피만 흘리게 만든다고?》 《그럼 뭡니까. 오늘 새벽에만도 사단장님의 지령에 의하여 산기슭에 끌려나갔던 수백명 사람들중에서 이미 백여명의 아무 죄없는 량민들이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을 당했는데 그래 당신의 그 손에 무고한 백성들의 뭇생명을 앗아가는 그런 피묻은 쇠가시가 박혀있지 않다는 말입니까. 어쩌면 자기는 민족을 지키고 민족을 살리는 반공투사라고 자처하면서도 이번과 같이 량민학살을 지시하는것과 같은 그런 무서운 대죄를 저지를수 있었는지 저는 믿어지지 않아요.》 《무서운 대죄를? 어디다 대고 그따위 소리를 해- 나는 량민학살을 지시한 일이 없어.》 《그런데 아까 처음에는 왜 자신의 명령에 의한 총살집행이라고 하셨댔는가요?》 《그건 나의 어느 부하에 의해 잘못 단행된 불법처사일지라도 내 사단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은 이 사단장이 져야 되기때문이야.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러니 그 어느 부하장교의 소행이라는 말씀이신데 사단장님의 애족, 애민의 정신을 모독하고 장성의 명예를 훼손시킨 그자를 엄중처벌하고 지금 총살장에 끌려나가있는 나머지 200여명의 량민이라도 사형을 중지시켜 구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렇게만 해준다면 사단장님의 은총에 의해 구원된 량민들은 아마 당신을 고맙게 여길것입니다.》 리옥순이의 그 말에 더욱 자격지심이 든 적사단장은 성난 손으로 전화통을 들었다. 《경비중대장을 찾으라,… 경비중대장인가? 너는 대관절 누구의 지시를 받고 시키지도 않은 량민학살을 단행했는가? 뭣이 작전참모가? 그 개자식은 뜨문뜨문 미친놈의 짓을 하면서… 당장 그 작전참모녀석을 태워가지고 총살장 현지에 도착하라- 알겠는가?》 옥순은 이 순간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환성을 올리였다. 장성의 마음이 그네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는것을 그는 느낄수 있었기때문이였다. 장성은 전화통을 내려놓은 자신이 직접 현지로 나갈 자세로 군모를 옷걸이에서 벗겨썼다. 《대위! 현지에 같이 나가보지 않겠나?》 《사단장님께서 동행해주신다면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마는 혹시 부대의 작전개시에라도 지장을 받게 되시지나 않겠는지 걱정됩니다.》 《그건 일없어. 총 작전개시시간까지는 아직 이틀이 남아있으니까.》 리옥순이는 얼결에 작전개시날자를 발설해버리는 괴뢰군장성의 그 말에서 자기가 여기 《토벌》지휘부의 사단장방으로 직접 뚫고들어온 다른 목적의 하나도 성취할수 있었다. 이리하여 높은 기지를 발휘하여 한개의 돌을 던져 두마리의 새를 잡게 된셈인 녀정찰병 리옥순이는 괴뢰군사단장의 전투지휘용 차를 타고 사형장으로 나가게 되였다. 그들이 현지에 도착하였을 때 거기서는 문복순이 속이 한줌만 해서 총살을 중지시켜놓은 상태에서 기다리고있다가 뜻밖에도 리옥순이 괴뢰군장성을 대동하고 나타나자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는 차에서 틀스럽게 내리는 장성에게 먼저 경례를 하고 나서 옥순에게 다가와 보고하였다. 《대위님! 운전수 소위 문복금 당신의 명령대로 사단경비중대의 사형집행을 막아놓고 대기하고있는중입니다.》 《수고했어요.》 리옥순이 사단장에게 자기의 부하를 소개했다. 《사단장님, 오면서 말씀드렸는데 도로상에서 공산군의 습격을 받아 파괴되였다던 저의 승용차운전수입니다.》 현지에 대기해있던 대위의 부하인 녀운전수의 존재는 적사단장에게 이 녀장교에 대한 신빙성을 더해주는상 싶었다. 《음- 녀운전수답게 우둥퉁하고 든든하게 생겼구만. 자동차운전기술은 언제 배웠나?》 《군에 입대해서 배웠습니다.》 《군에 입대해서?》 《네.》 옥순이는 혹시 사단장이 운전대라고는 쥐여본 일도 없는 문복순에게 한번 자기 자동차를 몰아보라고 하면 어쩌나 하여 가슴을 조였으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현장에 괴뢰군장성까지 나타나자 더욱 공포에 질려 몸을 떨며 몰켜서있는 인민들을 일별하고 난 사단장은 이미 자기네 부하들의 무지한 총사격에 의해 피살된 사람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참상을 제 눈으로 직접 돌아보고는 골살을 찌프렸다. 이때 풍을 치지 않은 승용차를 타고 아까의 그 경비중대장과 함께 사단작전참모라는 괴뢰군중령 한놈이 당도하여 접근보고를 하는것이였다. 《사단장각하, 작전참모 리병운 명령대로 도착하였습니다.》 《중령! 자네가 이 중대장에게 저 량민들에 대한 총살을 명령했는가?》 《예.》 《왜 그렇게 했어?》 《사단지휘부의 방비를 위해 부대위수구역내 <빨갱이>위험분자들을 몽땅 즉시에 척결해버리려고 했던것입니다.》 《저 사람들은 <빨갱이>위험분자들이 아니라 무고한 량민들이란 말이야, 량민들.》 《…》 《나는 너희들에게 공산군과 싸우라고 했지 량민들을 살해하는 전쟁을 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너는 <국방군>이 아니라 한갖 살인자야, 살인자!》 《저는 그저 미고문관님의 지시를 집행하려고 했을뿐입니다.》 《뭐, 미군고문관의 지시! 야 너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군대야? 나의 부하인가 아니면 미군고문관의 하수인인가? 누구의 명령을 들어? 시라소니 같은 자식, 민족을 팔아먹고 다녀?》 사단장은 옆구리에 찼던 권총을 꺼내여 장탄하였다. 《사… 사단장각하 한번만 용… 용서해 주십시오. 한번만…》 사단장은 당장에 쏴갈길듯한 기세로 놈을 노려보다가 총구를 맥없이 아래로 내리떨구는것이였다. 《이번만은 용서하겠다. 그러니 나를 대신하여 저 량민들앞에 가서 사죄를 하고 그리고 사병들을 동원해서 살해당한 마을량민들을 다 잘 묻어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사단장님의 명령대로 집행하겠습니다.》 중령놈이 사병들을 거느리고 포승에 온몸이 결박당한채 겁에 질려 몰켜서있는 곳으로 달려가고있는것을 본 리옥순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사단장에게 말했다. 《사단장님, 제가 소문으로 듣던바 그대로 당신은 이 민족과 이 나라 백성들에 대한 자비심만은 가지고있는 특별한 반공사나이십니다. 저는 거기에 대하여 경의와 감사를 드리는바입니다.》 《나는 대위의 그런 인사나 받자고 해서 그러는건 아니야.》 《알고있습니다. 사단장님…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옥순이 돌아서가려고 하는데 괴뢰군장성이 무슨 생각이 났던지 갑자기 불러세웠다. 《가만! 거기에 서!》 《…》 옥순이는 놀라 돌아섰다. 괴뢰군 장성은 옥순이를 무섭게 견주어 보면서 물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야?》 《내가 누군지 몰라서 묻습니까. 아니면 알고도 묻습니까?》 《안다면 묻겠는가?》 《때로는 알고도 모르는체 하고 지나가는것이 자신에게 유익한 때도 있답니다.》 《우선 내 한가지 묻겠어. 보아 하니 대위는 국군장교치고는 진짜로 애민정신이 매우 강한것 같은데 그걸 누구한테서 배웠지?》 《선배들에게서 배웠습니다.》 《그게 어떤 선배인가 하는거야?》 《나는 옳은것을 가르쳐 주는것이 선배라고 생각하는데요.》 《옥에도 티가 있는것처럼 아무리 선배라고 해도 절대적인것이란 없는거야.》 《그건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단장님은 반공은 하면서도 민족은 살리려 든다는 애족, 애민정신의 측면으로 볼 때 잡초속의 꽃으로 될수도 있다고 보아집니다. 내가 그 측면에서만은 장성님과 같은 <선배>에게서 배웠다고 해서 잘못될것이 없지 않을가요.》 《아니야, 아니. 말은 같은 애족, 애민이지만 내가 주장하고있는 애족과 네가 생각하고있는 애민은 전혀 다른거야. 하나는 희다면 다른 하나는 빨갛게 보인다 이거야.》 《장성님은 애국과 매국도 바로 가리지 못하는것 같기에 색맹이기라도 한줄 알았더니 색맹은 아니였구만요.》 《건방진것, 그렇다면 즉시 내앞에서 자신을 밝히라.》 《그럽시다.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더이상 숨박곡질을 그만둡시다. 당신도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지리산<붉은 쎄타의 녀두목>이예요.》 《아니 그러면 빨찌산의 리론가로서 조선의 <로자 룩셈부르그>라는 소리가 있던 바로 그 <붉은 쎄타의 녀두목>이?!》 《그래요. 나는 <로자 룩셈부르그>가 아니라 지리산빨찌산의 녀전사 리옥순이예요.》 그의 입에서 서슴없이 터져나오는 그 말에 사단장은 깜짝 놀라며 몸을 화뜰 떨었다. 그럴수 있으리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간대로야 아무리 담대한 녀자라고 할지라도 사단장앞에 감히 공산군 녀정찰이 제 발로 나타날 엄두를 냈으랴 싶었던것이다. 《용감한 공산군아가씨, 당신은 혹시 나의 애민정신과 자비심을 너무 지나치게 믿고 이런 모험극에 출연한것 아니요.》 《천만에요. 나는 사단장님의 그 모순된 <애민>, <애족>의 감정이나 하느님을 입내피우고 싶어 하는 그런 엷은 자비심 같은데는 아무러한 기대도 가지지 않아요. 반공정신에 눈이 멀어버린 민족주의자인 당신에게 무슨 기대를 걸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나는 한때 사람들이 <제2의 김구>라고 말하던 민족주의자라는걸 아는가?》 《예?… 김구선생앞에서 그런 말하기가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한때 중국의 손문이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의 낡은 틀에서 대담히 벗어나 련쏘, 련공, 로농부조의 신삼민주의로 발전시켰다면 인생을 반공으로 늙어왔던 백범선생은 어떻게 했어요. 그는 완고한 민족주의거두의 한사람이였지만 인생말년에 자기 총화, 자기 반성에 엄격하고 자아부정과 자아갱신정신이 강했어요. 그러기에 사선을 헤쳐 단연코 북행길을 했으며 우리 민족의 영명하신 령도자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고 돌아와서는 련공합작으로 나라의 통일을 기하고저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분투하다가 테로의 총에 맞아 백수의 머리로 숨지지 않았는가요. 그렇듯 조선 소나무의 찐득찐득한 송진내나는 민족주의거두였던 김구선생 같은 사람조차도 고집과 완고를 버리고 백두산앞에 머리를 숙이고 백범답게 백성들을 따라 이 민족이 가고 력사가 가는 길로 새 출발함으로써 공산당들과 친한 특이한 민족주의자, 애국자로서 생의 마지막 종지부를 힘있게 찍은것이 아니겠나요. 그런데 장성님, 당신은 말로는 자기 민족을 구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리승만괴뢰역도의 하수인이 되여 지리산의 수많은 입산자들, 가장 애국자들인 자기 동족을 대상하여 자기 민족을 무자비하게 <초토화>해 죽이는 살인행위를 일삼고있으니 력사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게 되겠는지 나는 그것이 두려워져서 그럽니다.》 그 말에 살기등등하던 사단장의 낯빛은 거멓게 흑빛으로 죽어들어갔다. 그는 자신에게 반발하듯 속궁글은 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동족상잔의 력사적인 큰 비극이 바야흐로 촉발되고있는 이 엄중한 정황에서 <빨갱이>들만을 토멸하고 남북의 겨레, 이 민족만을 살리는 길이 최대의 애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그렇다면 한가지 더 물어봅시다. 그래 그 <빨갱이>들이 당신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해쳤는가요. 아니면 당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잡아죽이기라도 했습니까. 한사코 그들과 끝까지 피를 보며 해보자는 그 <거룩한 뜻>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맹목적인 증오심의 발작에 대하여 자신도 이상하게 여겨질 때가 없습니까!》 《닥쳐라!》 사단장은 꽥- 소리지르며 옆구리에 찼던 권총을 빼여들어 옥순이에게 겨누었다. 《당장 쏘아 죽일테다-》 《쏠테면 쏘시오. 난 당신같이 반공에 혈안이 되여 미쳐 날뛰는 무지막지한 반동군벌한데서 살아돌아갈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어요. 당신은 애국으로 사는 민족주의자인것이 아니라 반공에 눈깔이 다 멀어버린 우둔한 민족주의자, 민족의 극악한 반동이예요. 력사의 반동!》 최대로 격발되여 분별을 잃은 괴뢰군장성의 총구가 옥순이를 겨누었다. 순간 갑자기 등뒤에서 불이 발산하였다. 장성의 등뒤에서 있던 부관놈이 먼저 총을 쏜것이였다. 그놈이 겨누고 쏜 그 총알은 그만 가슴을 관통한 모양 옥순이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움켜잡으며 비칠거리다가 쓰러졌다. 모든 일은 순간에 벌어졌다. 《옥순동무-》 옆에서 지켜보고있던 복순이가 급히 달려가 쓰러진 옥순이를 부축하여 안아일으켰다. 《리동무, 옥순이-》 사단장은 졸지에 벌어진 사태에 방금전까지 도고하던 기상은 어데로 가고 좀 당황한듯 부관과 옥순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총알이 관통된 옥순이의 가슴에서는 선지피가 흘러나오고있었다. 복순이는 한손을 들이밀어 자기의 속적삼을 뿍- 찢어 옥순이의 가슴상처의 출혈을 림시로 틀어막았다. 자기 전우의 피를 본 복순이는 더는 격분을 참을수 없어 자기의 권총을 잽싸게 꺼내여, 부관과 사단장놈을 쏘려고 하였다. 《복순동무! 쏘지 말아요-》 옥순이의 그 제지력있는 웨침소리에 복순이와 놈들사이에 벌어질번 했던 총격전도 정지되였다. 옥순이는 복순이의 팔에 부축된채 겨우 몸을 일으키고 사단장놈을 쏘아보며 저력있게 말했다. 《이 민족주의외피를 쓴 반공두목! 그래도 당신이 아까 량민학살을 도중에나마 중단시켰기때문에 용서해주고 가는줄 아세요. 나는 비록 눈먼 당신들의 총탄에 맞아 죽을런지 모르지만 나 하나의 그 죽음이 후에 늦게라도 당신이 민족주의자로서 백범 김구선생을 따라 련공의 길로 나갈수만 있다면 나… 나는 한이 없을거예요. 혹시 후에 다시 만나게 될려는지… 잘 있으시오.》 《…》 괴뢰군 장성의 손에서 권총이 아래로 맥없이 내려졌다. 옥순이의 말은 자기의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것 같았다. 내가 과연 민족주의허울을 쓰고 빨갱이들과 싸우고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민족을 위해 한다는것이 무엇인가. 저 부관놈이 쏜 총탄에 맞아 숨져가는 나어린 처녀도 한갖 이 나라의 백성이라고 할진대 나라를 귀중히 여기고 민족을 귀히 여기고 자기가 지닌 리념을 귀중히 여기여 생사를 판가름하는 사지판에 용약 뛰여든 처녀를 내 손으로 죽여야 한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사단장의 생각이 정처없이 방황하고있는 순간 부관이 그들의 등뒤에 대고 또 사격을 가하려 하며 소리쳤다. 《서라- 쏠테다-》 《쏘지 말라! 부관.》 사단장이 갑자기 소리쳤다. 《가게 내버려 둬.…》 권총끝으로 지리산쪽을 가리키며 하는 장성의 말에는 아무런 의미도 힘도 남아 있는것 같지 않았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잠시 동안을 두었던 복순은 그 다음에 있는 일에 대해서도 마저 말했다. …문복순은 중상당한 전우를 처음에는 부축하고 다음에는 등에 업고서 힘겹게 귀로에 오르게 되였다. 치명상을 입은 천근같이 무거워진 옥순이를 업고서 겨우 한 고개를 넘었을 때였다. 복순이의 등에 업혀 말없이 있던 옥순이 점점 더 숨차하면서 자꾸만 내려놓아달라는것이였다. 불길스러운 예감을 느낀 복순이는 그를 길섶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가슴노리에 면바로 총알이 꿰뚫고 지나가 피를 많이 흘린 그의 원래도 희던 얼굴은 피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새하얗게 바래여 완전히 창백하였다. 그가 숨을 가쁘게 쉴 때마다 그의 가슴상처에서는 진해가는 숨결인양 선지피가 벌겋게 내배는것이였다. 그런 상태에서 옥순은 복순의 추연해진 얼굴을 정겹게 쳐다보았다. 그는 마지막숨을 몰아쉬며 겨우 그 작은 입을 떼였다. 《…복순언니! 왜 이리도 새벽하늘이 빨갈가요, 온통 붉은 노을빛이예요!》 《그래, 그건 우리 빨찌산투사들이 자기의 가슴속피를 터치여 저 하늘에 피워올리는 지리산의 아침노을이기때문이란다!》 《그럴가요. 그렇지만 저 아름다운 아침노을을 앞세우고 떠오르는 지… 지리산의 아침해를 나… 나는 다시는 못볼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나약한 소리 말아.》 《언니, 나… 나는 아무래두 병단에까지 가닿을것 같지 못해요.》 《옥순이, 어떻게 하던지 죽어서는 안된다. 김지희사령동지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있을텐데 기어이 살아서 돌아가야 해.》 옥순이는 힘없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무슨 작은 책 하나를 꺼냈는데 그것은 전일에 복순이 가져다 전해주었던 시집 《백두산》이였다. 《이건 김지희동지가 저에게 영 기념으로 주었던 <백두산>이예요.… 저… 저는 이 <백두산>을 감동깊게 보고서 지리산의 꽃분이가 되려고 했는데 그리 되지 못하고 머… 먼저 가는가봐요. 그러니 이 책을 귀중히 건사해두고보면서 나대신 언… 언니라도 지리산의 꽃분이가 되여주오.》 《옥순이-》 복순이 목메여 불렀다. 《동무가 여기서 이렇게 눈을 감아버리면 난 김지희사령한테 가서 뭐라고 말하란 말이냐?》 《언니, 우리 김지희사령동지에게 제가 이번 정찰을 얼마나 같이 나오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고 말해줘요.》 옥순이는 점점 더 숨이 차하며 호주머니에서 작은 꽃씨주머니를 꺼내주는것이였다. 《이 백두산의 솔씨를 김지희사령동지에게 전… 전하면서 승리의 새봄이 오면 여기 불타버린 지리산에 백두송의 씨앗을 심어 백두산의 소나무가 우리 남녘땅 산야에서도 푸르싱싱히 자라나도록 해달라고… 어- 억.》 여기서 그만 숨이 넘어가고 만 옥순의 머리가 힘없이 옆으로 떨어졌다. 《옥순아! 정신차려. 눈을 떠라, 눈을 떠- 네 없이 내 혼자만 살아서 어떻게 김지희동지한테로 돌아 간단 말이냐. 아- 하- 옥순아, 내 동생아-》 복순이는 아직도 따스한 체온이 식지 않고있는 녀동무의 시신을 부여잡고 흐느끼며 몸부림쳤다. 그 맑고 빛나던 눈동자로 지리산의 푸른 대공을 쳐다보던채로 곱게 숨져버린 전우의 두눈을 떨리는 손길로 조용히 감겨주며 머리를 외로 돌리는 복순이의 얼굴을 적시며 굵은 눈물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져내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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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복순이는 숙연히 머리숙이고 서있는 두 지휘관앞에서 금시 뜨거운것이 목안을 막는것만 같아 이내 말을 잇지 못하였다. 《…옥순동무를 업고 눈물과 땀에 흠뻑 젖어 <곰의 등판>에 간난신고끝에 다달으니 황갑동동지와 강덕금동무, 손동찬동지는 벌써 도착하여 저희들을 기다리고있더군요. 저는 조장동지들을 보자 그 자리에 정신잃고 쓰러졌댔어요.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어디서 칡넌출담가를 하나 만들어가지고 온 황갑동, 손동찬조장동지들은 희생된 옥순동무의 시신이라도 담가에 들고가서 김지희동지가 보는데 묻어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 정찰보고를 가지고 한발 먼저 부대로 떠나라는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할수 없이…》 《…》 복순이의 그 말에 김지희는 머리틀 깊이 떨구고 소리 없이 울었다. 가슴이 터져왔다. 《사령동지, 이것이 바로 옥순동무가 숨을 거두는 마지막순간에 김지희사령동지에게 전해달라던 그 백두송의 씨앗주머니예요.》 지희는 떨리는 손으로 옥순이의 따스한 정이 스며있는상 싶은 그 낯익은 솔씨주머니틀 받아들고는 억이 막혀 이내 말을 못했다. (옥순이! 동무는 어디로 가고 이 백두산의 솔씨만이 돌아왔소? 준엄한 겨울이 가고 이 강산에 새봄이 오면 우리 함께 불탄 지리산에 백두송의 씨앗을 심자고 하더니, 통일이 되는 날엔 복순이랑 동무들과 같이 백두산에도 오르고 솔개골에도 찾아가보자고 하더니만 지리산의 딸이였던 그대 꽃분이는 가고 이 무정한 지리산의 사나이만 남았으니… 아 내 정찰 떠나기 전날의 그 마지막밤에라도 지리산의 철호답게 왜 솔직히 동무를 사… 사랑한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해보내지 못했을가?… 용서하오, 옥순이!)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며 한손에 힘주어 옥순이가 보내준 솔씨주머니를 꽈-악 잡아쥐는 김지희! 마치 그 마른 솔씨주머니에서 진액이 흘러내리듯 그의 두눈가에서 사나이의 진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내려 량볼을 적시였다.
리옥순이 희생된후부터 그의 제일 가까운 전우였던 김지희와 문복순이는 어쩌다 조용히 만나도 말이 없었으며 서로 괴로이 눈길을 피하군 했다. 김지희는 복순이의 늘 눈물에 젖어있는 얼굴에서 옥순이의 모습을 찾아보게 되였으며 복순이는 그답지 않게 늘 슬픔에 잠겨있는 사령의 모습에서 자기 녀동무의 정다운 얼굴을 그려보게 되는것이였다. 참된 전우를 잃은 두사람은 서로 만나면 마음에 위로가 될것 같았지만 그와 반대였다. 서로가 만나면 자기 마음속 상실의 아픔과 슬픔이 더 커져 눈물만 나오군 하던 어느날이였다. 복순이 말없이 돌아앉아 김지희의 옷에 옥순이가 곱게 수를 놓은 흰 옥당목 목달개를 달면서 또 눈물을 글썽거리고있는데 뒤로 옷임자가 다가오다가 그것을 보고 무춤 걸음발을 멈추었다. 김지희를 돌아보며 당황히 손등을 눈으로 가져가던 복순이가 뜻밖의 울음섞인 제기를 했다. 《사… 사령동지! 저는 암만해도 여기에… 저를 딴부대로, 반판수동지의 부대에라도 보내주세요!》 《…》 《사령동지를 보기만 해도 옥순동무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서 못견디겠어요. 그러니 저를 먼데로…》 《…그래서 가겠단 말이요?》 《…》 《어쩌면 사람이 그럴수 있소? 동지가 제일 외로워 할 때에 더 가까이 와주어야 할 문동무까지 오히려 내곁을 떠나겠다고 하다니? 너무하오, 너무해!… 가오, 다 가시오, 옥순이도 가고 복순이도 가고, 다가란 말이요!》 《사… 사령동지!》 《나는 싸움밖에 모르는 사나이니 감정을 가진 사람도 애정을 가지고 눈물을 가진 인간도 아닌줄로 아는 모양인데 솔직히 말해서 규률 한가지밖에 모르는 곧은 막대기 같은 전투병단의 사령이지만 때로 내가 얼마나 우리 지리산의 꽃분이, 옥순동무를 애틋이 사랑해주고 싶었댔는지 동… 동무들이 알기나 하나 말이요?》 《그… 그만 하세요. 사령동지, 제가 그만 동지의 그 뜨거운 마음을 모르고 노엽혔으니 용서하세요-》 복순이는 이 설음 저 설음 다 합쳐 그만 참고참아오던 오열을 터치고야 말았다. 리옥순이를 비롯한 황갑동이와 손동찬이, 문복순이 등의 희생적인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정확하고도 구체적인 정찰자료에 의거하여 진행된 설천, 안성공격전투는 성과리에 진행될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더러 희생자들이 났다. 특히 지리산의 용감하고 슬기로운 녀성대원이였으며 김지희사령의 부관 겸 련락병이였던 문복순이 적탄에 맞았던것이다. 먼저 떠나간 리옥순이를 대신하여 병단사령의 신변보위를 위해 권총 두 자루를 량손에 틀어잡고 앞뒤로 뛰여다니며 접근하는 적들을 모조리 쓰러눕히군 하던 그였다. 그러던 문복순이는 적진에서 날아온 수류탄이 전투를 지휘하느라고 여념이 없던 김지희의 가까이에 와서 떨어져 금시 터지려는 위기일발의 순간에 서슴없이 그것을 집어던졌는데 그것이 그만 공중에서 파렬되는 바람에 파편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김지희가 돌아보고 그리로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온몸에 수류탄파편이 무수히 박힌 그의 가슴 여기저기에서 선지피가 흘러나오고있었다. 그래도 얼굴만은 하나도 상한데가 없는 그는 사령이 가까이 오자 손바닥으로 그 복스럽게 생긴 얼굴을 조용히 내리쓸어보고 억지로 생긋이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떨리는 입술로 띠염띠염 말하는것이였다. 《사… 사령동지, 소… 솔직히 말해서 저도 얼마나 우리 옥순이보다 못지 않은 훌륭한 녀전사가 되고 싶어 했는지 모를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늘 옥순이를 따르지 못했지요. 사령동지! 후에라도 옥순이와 복순이, 저희들을 이… 잊지 말아달라요. 그리고 통일이 된 다음에 우리들을 여기 지리산에서도 푸르싱싱하게 자라나게 될 그… 백두산의 소… 소나무밑에 나란히 묻어주세요. 부디 몸조심해서 잘 싸워주세요. 억-》 복순이는 그 굵게 쌍까풀진 큰 두눈을 뜬채로 고요히 잠들고말았다. 《복순이, 문동무- 죽지마오. 동무까지 가버리고나면 이 지리산의 매가 어찌 저 푸른 하늘로 다시 날아오를수 있단 말이요? 아, 어제는 리옥순이를 묻고 오늘은 문복순이를 묻고 래일은 또 누구를 묻어야 한다는 말이냐? 원통도 하구나- 아-》 두 날개를 한꺼번에 잃은 김지희사령은 마치 나래부러진 수리개마냥 고통에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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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949년 겨울부터 1950년 6. 25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리산에서는 총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 유독 지리산의 흙은 유난히 검다. 이 검은 흙은 피흘린 동족상잔의 비극을 그대로 말해주는것이다. 철천지원쑤 미제와 매국역적 리승만의 민족리간정책이 극도에 달하여 그 상황이 매우 엄중한 단계에 이르고있었다. 어제날의 민주마을에도 반동놈들과 특무놈들이 들어박히게 되였다. 이놈들은 유격대원들이 마을에 들어서면 그전대로 사심없이 보급도 해주고 밥도 지어주는척 하고는 뒤로 달려들어 사로잡기도 하고 심지어는 칼이나 도끼를 가지고 달려들어 도살까지 하는 잔인한 골육상잔을 빚어내는 판이였다. 지리산의 영웅남아였던 전투병단의 사령 김지희와 참모장 홍순석이도 이렇게 되여 희생되였다. 그들의 희생은 력사에 심각한 교훈을 남긴 죽음으로서 황갑동이의 뼈에 새겨지고 골수에 사무치게 되였던것이다. 남반부 애국렬사들의 투쟁력사에 없었어야 할 그날은 정말로 저주로운 날이였다. 김지희는 그날따라 부하성원들을 데리고 전라북도 야산유격대의 사업을 도와주느라고 덕유산으로 갔다가 지리산으로 돌아오는참이였다. 그들일행은 끌끌한 청년군인들 24명이였다. 험한 산들을 넘고넘어 노고단의 반선이라는 고장에 이른 김지희의 일행은 언제나 그러했던것처럼 마을뒤쪽에 멀찍이 떨어져있는 고정아지트에 들려 쉬여가게 되였다. 그 집주인 녀자가 해사한 얼굴에 해반주그레한 웃음을 띠우고 나와서 반가이 맞아주는것이랑 입이 다사한 바깔주인이 반가움을 나타내며 이내 부엌에 내려가 불을 땔 준비를 서두를 때 그들은 아무런 불길한 조짐을 느낄수 없었다. 얼마전에 마을에 잠입한 특무년놈들의 얼굴에 씌여져있는 가면을 벗겨낼만한 투시력을 가질수가 없었다. 하여 배가 몹시 고프니 밥을 빨리 해달라고 이른 그들은 제 집처럼 생각하고 다들 방에 올라가 누워버렸다. 주인이 망을 책임적으로 봐주겠다고 하니 보초도 따로 세우지 않았다. 집에 들어온지도 퍼그나 시간이 지났는데 밥이 들어오지 않아 누가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아주머니, 밥이 아직 멀었소?》 《지금 쌀을 안치고 불을 때고있는디 낭구가 영 젖어서 그러잖나요.》 주인녀자의 대답이였다. 《아주머니, 시간이 바쁘니껜 싸게싸게 밥 지어주소.》 하고 재촉을 해놓고 또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밥을 들여오지 않았다. 참다참다 못해 오늘은 어찌된 밥이 이처럼 늦어지느냐고 재촉을 했더니 주인녀자가 행주치마끝으로 눈물을 찍어내면서 사정조로 대답했다. 《내사 눈물을 짜감서 불을 부지런히 때고있응께 쪼간만 더 기둘리시오. 낭구가 생솔인데다가 한꺼번에 쌀얼 많이 안치다봉께 밥이 더 늦어지는게라서 량해들을…》 그러다가 그는 해시시 웃으면서 《…정 시장들 허시고 피곤하면 잔치에 쓸랴고 담근 술이 좀 있응께 먼첨 한잔씩 하여 피로를 푸는것이 워쩠겠나요?》 하고 의향을 물었다. 술이라는 소리에 벌써 피로에 지쳐 눈이 풀어졌던 어떤 사람들은 정기가 되살아나서 지휘관인 김지희쪽에 묻는듯한 시선을 돌리는것이였다. 빨찌산이 술을 마시는것은 비상을 먹는것과도 같다고 일상적으로 강조한것이 김지희였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이날 따라 그는 고생하며 여기까지 따라온 부하들이 측은한 생각이 들었던지 침묵으로 용인해주고 말았다. 주인녀자는 인차 술상을 들여왔다. 모두가 몸이 피곤할대로 피곤한데다가 빈속에 맨 무우김치쪼박을 안주로 해서 강술을 마시다 싶이 했으니 얼마 못가서 그들은 녹아떨어지고 말았다. 그때에 그들의 옆에 옥순이나 복순이, 둘중에 한 녀대원이라도 살아있었더라면 술병 모가지를 꼭 틀어잡고 놓지 않고 눈물로 애원해서라도 일종의 타락심에 가까운 김지희의 여늬 때 없던 순간적인 방심을 막았을런지도 모른다. 모두가 술에 취해 정신없이 자고있을 때 갑자기 《토벌대》놈들이 들이닥쳐 총질을 해댔다. 특무년놈들이 생솔을 때서 피워올린 굴뚝연기를 신호로 하여 달려온 놈들이였다. 그 자리에서 열여섯이나 죽고 일곱명이 달아나다가 붙잡혀서 무참히 총살을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김지희사령만은 총에 맞고도 겨우 그 자리를 피했는데 거기서 약 20리 떨어진 골짜기까지 가서 어느 한 농가앞에 쓰러진채 다시 일어 나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처참한 죽음이였다. 한순간 각성이 무디여 김지희와 홍순석이 그만 한날 한시에 희생되였으니 참말로 허망하기 그지없는 죽음이라 할것이였다.
그들의 희생에 대한 비보를 받은 온 지리산이 비분에 떨며 애통한 눈물을 뿌렸다. 그 소식을 들은 황갑동이와 강덕금이는 절통하기 그지없어 《불꽃사단》의 어린 전사들로 결사대를 무어가지고 특무놈들을 요정낸다고 반선마을로 복수의 길을 떠났다. 그 찢어죽여도 씨원치 않을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특무년놈이 애국청년 스물넷이나 동시에 죽여버렸으니 어찌 그냥 둘수 있겠는가. 상금까지 크게 탔다는 그 더러운 년놈들이 그냥 산골에 덫을 놓고서 숨어살면서 또 그런짓을 하게 내버려둘수는 없는것이였다. 그 원한의 집에 불의에 쳐들어간 황갑동이네들은 반동년놈들을 꿇어앉혀 실토를 받아내고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김지희는 이렇듯 피의 교훈을 남기고갔다. 황갑동은 한때 통일혁명의 불꽃들이였고 지리산이 낳은 영웅전사들로서 번개처럼 나타났다가 뢰성의 메아리를 남겨놓은채 사라져버린 김지희와 홍순석, 그들의 죽음에 대하여 돌이킬 때마다 혼자 생각하군 한다. (한다하는 영웅남아도 우연한 총알에 맞아 순간에 죽을수도 있는것이니 단 한순간의 방심도 실수도 없이 자신을 다잡고 사는 사람만이 끝까지 혁명가로서의 삶을 빛나게 장식할수 있는것이다!)
이렇듯 1949년 1차 동기《토벌》과 1951년의 2차 동기《토벌》! 두차례에 걸치는 적들의 대대적인 공세와 정전후에까지도 계속되였던 반동괴뢰놈들의 끈질기고도 악독무도한 《토벌》작전에 의하여 그 수를 헤아릴수 없는 사람들이 죽어서 지리산에 묻혔다. 그 이름들을 여기에 다 렬거할수는 없다. 한때 그렇게도 잘 싸우며 지리산을 들었다놓던 조도원의 《불꽃사단》과 그후 로영애(녀자가 아니라 남자였다.)가 사령이 되고 문성태가 참모장이 되였던 김지희의 전투병단도 《괴멸》의 원통스러운 운명에 처하였고 303 전종수부대와 102부대 그리고 지리산의 한다하는 명장들이였던 전북 《외팔이사단장》네 부대와 전남 《왜가리사단장》네 부대도 결국에는 사단장 이하 장렬한 전사를 했던것이다. 초기인 48년도에 20여만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입산한것으로 되여있는데 전쟁전과 전쟁시기 그리고 전후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리산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불과 얼마 안된다고 하니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제와 그 주구들에 의하여 희생되였겠는가? 무려 20여만! 근 20개 사단의 무력에 해당되는 남조선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이 지리산에 묻혔으니 그 어느 전쟁사에도 한 산에서 20여만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다년간 항쟁을 벌린 항전사도 한 산에 20여개 사단인원이 희생된 그런 치렬한 전쟁도 알지 못한다. 결국 조국의 자유와 독립, 나라의 통일을 위해 싸우다가 죽은 수많은 애국렬사들의 큰 무덤인셈인 지리산! 그렇지만 이 반미항전의 영웅들은 자기의 피와 땀, 눈물로써 온 세상이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만고의 항쟁사를 창조하였으니 백두산의 혁명정신을 이어받은 불굴의 지리산은 영원히 살아있는 민족의 산, 력사의 산으로 길이 솟아 빛날것이다.
…강덕금은 잠들수 없는 이 밤, 지리산에 자기의 청춘을 묻은 리옥순이와 문복순이를 비롯한 귀중한 전우들의 고결한 희생정신을 두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것이였다. 스무살을 갓 넘겼던 처녀의 몸으로서 그들이 무엇때문에 남자들과 같이 험한 산에 올라와서 손에 총을 잡고 용감히 싸웠으며 먼저 간 선렬들의 뒤를 따라 서슴없이 죽음을 맞받아나갔겠는가. 조국의 통일을 위해, 지리산에서 목숨바쳐 싸우다가 이미 전사한 수많은 동지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였던가. 만일 통일혁명의 성전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고 간 그 렬사들의 넋이 뒤에 남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결한 넋으로 후대들의 가슴마다에 살아 영생하지 못할것이다. (그렇다. 동지들의 믿음마저 잃고 살기가 가장 괴롭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왔다고 하여 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는건 투쟁의 포기이고 비겁인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신념을 잃지 않고 놈들의 모략을 단호히 짓부시고 의지의 강자가 되여 끝까지 놈들과 싸워이기는것, 오직 이 길만이 우리 뒤에 남는 사람들이 애국렬사들의 고귀한 넋을 지켜드려 통일의 문을 앞당기는 성스러운 길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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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안에서의 세월은 더디게도 흘러갔다. 20대의 새파란 청년《수인》이 철창에 갇힌 맹수처럼 두눈에 쌍불을 켜들고 밖을 쏘아보던 그 녹쓴 철창가에 오늘은 40대의 중년장기수가 윤기를 잃어 삼검불처럼 엉킨, 소금기가 내돋은듯한 긴 머리와 거치른 수염이 더부룩한 체념 깊은 얼굴로 우울히 서있다. 그는 4. 19인민봉기후 무기징역으로부터 20년형기를 받고있다가 이번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대전형무소로 넘어 온 황갑동이였다. 그가 대전형무소로 넘어온지 얼마 안되던 어느날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시내 호텔의 초대에도 절대로 응하지 않는 황갑동이의 독방으로 교무과장 정규택이놈이 매음부 하나를 들여보낸적이 있었다. 황갑동은 빤쯔도 입지 않고 짧은 스카트만으로 가리운 신다리를 다 드러내놓고 앞의자에 앉혀 굶주린 성적충동을 일으켜보려고 비렬한 방법까지도 가리지 않는 놈들에 대한 치솟는 격분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당장 여기서 사라지라고 무섭게 고함을 질러 내쫓았다. 그날의 일이 있는 다음부터 골탕을 먹은 감옥의 관리놈들은 다시는 그의 독방으로 매춘부를 들여보내는것과 같은 어리석은짓을 안했다. 황갑동은 언제인가는 규택이놈이 전번에 있었던 일에 대한 보복의 철몽둥이를 들리라고 생각했다. 그자의 보복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가해졌다. 어느날 그는 자기 방으로 갑동이를 찾아 제법 점잖은투로 말을 걸었다. 《…전번에 있었던 아름답지 못한 일은 우리 서로 사나이로서 없었던것으로 합시다. 내 그렇지 않아도 옛 고향친구로서 조용히 만나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짬을 내지 못했소. 사람이란 별게 아니요. 옷을 벗겨놓으면 다 같아진단 말이요. 각양각색의 사상이란 하나의 거치장스러운 겉옷에 불과하오. 그런데 그놈의 사상의 옷때문에 조선도 두편으로 갈라져 민족이 피흘리며 서로 싸우고있는게 아니겠소. 전향해놓고보면 산에서 고생하며 싸우던 지난날들이 한갖 어리석은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을거란 말이요. 어떻소, 내 말이?》 《…》 황갑동은 이자의 가소로운 횡설수설을 듣는지 먹는지 묵묵부답이였다. 《물론 사회주의사상의 뿌리가 매우 검질기다는것을 알고있는 나로서는 빨찌산의 유명짜한 선요원 황갑동이의 대뇌피질속에 이젠 흡착되여버리다 싶이 한 <빨갱이>사상을 이런 몇마디 말로써 뽑아버릴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소. 그래서 오늘은 우리 어디 사상과 주의를 벗어난 인간 정규택 대 인간 황갑동이 되여 순수 인간적으로 대화를 나누어보자는거요.》 《…》 《내가 아직 말을 못해주었는데 그 강덕금이, 당신이 잊지 못해하는 뚱보말이요.》 그자의 입에서 매우 충격적인 뚱보라는 말이 튀여나오자 황갑동은 저으기 마음이 긴장해지는것이였다. 《아마 내가 있던 전주감옥 장기수들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향을 했다는 사실은 당신도 들어서 알고있겠는데 강덕금이도 그 전향자들중의 한 녀자요. 그 도장동마을의 강뚱보로 말하면 결국 내 손에 걸려들어 전향서를 쓰고야 말았지. 그 녀자를 굴복시켜냈을 때의 나의 기쁨이야말로 특별한것이였소.》 (이놈은 지금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있다. 결코 강동무는 이 악독한 자의 철몽둥이에 맞아 그 자리에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져 죽으면 죽었지 전향이란 절대로 안될 말이다. 강덕금이는 전사했을것이다.) 《당신은 혹시 강덕금이가 죽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닐거라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내 그가 최근에 찍은 사진 한장을 보여주지. 자 이건 오늘호 <대전일보>에 실린 기사와 함께 찍혀나온 강덕금이의 사진이요. 여기 당신에게도 낯익은 대전감옥의 특별사를 배경으로 찍은 이 사진밑에 뭐라고 씌여있는가 어디 보오. 신문발행날자도 똑똑히 보고…》 황갑동이 놈이 내밀어주는 신문을 펼쳐보니 거기에는 정말로 죽지 않고 살아있는 강덕금이의 생동한 모습이 찍혀있었다. 신문 발행일을 보니 오늘호 신문이 틀림없었다. 《당신이 보다싶이 강덕금이는 죽지 않고 살아있소. 그리고 자유로운 몸이 되여 새 생활을 찾았단 말이요. 신문에 난 이 사실까지도 믿지 않는다면 할수 없지.》 강동무가 살아있다! 그것은 다행스럽고 더없이 기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전향하지 않고 살아서는 나오지 못한다는 그 죽음의 형무소에서 그가 어떻게 살아나올수 있었을가? 지금 이 신문에 찍혀나온 사진을 보면 덕금이의 크고 검둥근 쌍까풀진 두눈은 무엇인가를 울분에 차 말하고 싶어 하면서도 왜서인지 말하지 못해하고있는듯 한 표정이다. 저 꼭 다물려있는채 열리지 않고있는 입안과 가슴속에는 과연 그 무슨 울부짖음이 가득차있을것인가? 《품을 들여 전향을 시켜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보니 덕금이는 괜찮은 녀자였소. 처음 전향했을 때 옆에서들 이젠 로처녀인데 더 늦기전에 배우자를 하나 선택하여 새 생활을 시작할데 대한 권고를 했을 때 그 녀자는 머리를 흔들었소. 이미 자기에게는 아직 정식으로 약속의 말을 나눈적은 없어도 애인이 있다고 하면서말이요. 그렇지만 내가 이 세상 죄수들이 다 전향해도 황갑동이만은 절대로 전향시켜낼수 없는 존재로서 나도 마지막엔 포기해버리고 말았노라고 사실대로 다 말해주었을 때 그 녀자는 락심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지어낸 소린지 분간해낼수 없이 묘하게 뒤섞어 그 무슨 오그랑팥죽 같은것을 쒀놓군 하는 놈의 말에서 어느것이 진짜 오그랑이고 어느것이 팥이고 쌀알인지 도대체 알수 없었다. 이자의 말을 그대로 믿을수도 그렇다고 무작정 믿지 않을수도 없었다. 항용 급수있는 거짓말쟁이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놈은 마치 밭에서 콩대를 뿌리하나 상하지 않게 그것도 모근의 끝에 있는 동골동골한 알갱이들까지 그대로 동동 매달려올라오도록 기술적으로 뽑는것처럼 자기가 하는 말의 작은 세부들을 아주 그럴듯하게 꾸밈으로써 대방으로 하여금 그 말의 전체를 믿게 만들줄 아는 묘리를 가지고있다고 할수 있었다. 《내가 오늘 구태여 당신을 찾아 이런 말을 하게 되는것은 아직 속에 빨찌산이 살아 자신을 자꾸만 괴롭히고있는 당신의 심장이 그 잊을수 없는 지리산의 뚱보처녀인 강덕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는것만은 알게 되였기때문이요.》 (개자식, 알기는 잘 안다.) 《그렇지만 지금도 늦지는 않았소. 만일 황선생이 이제라도 자신을 회계하고 강덕금이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면 바로 이 대전형무소에서 새 생활의 길을 찾은 전향수인 두 청춘남녀의 결혼식을 아예 시범적으로 굉장하게 차려주겠다는것을 약속할수 있소. 어떻소, 황형? 이건 천재일우의 마지막기회요, 마지막기회!》 (병 주고 약 준다더니 이 벼룩이 간도 빼여 회쳐먹을 놈아, 어림도 없다. 어림도…) 갑동이 아무 응대도 없자 규택이 말했다. 《네가 그래도 내 말대로 하지 않는 경우 나에게는 마지막주패장이 있어. 보겠는가?》 《필요 없다! 까마귀 꿩 잡아먹을 궁리는 하지도 말라-》 갑동이의 그 야유가 심한 신랄한 말에 놈의 낯짝은 벼룩이를 씹는 개상이 되였다. 《아가리를 닥치지 못해. 너희 년놈들의 운명은 이 규택의 손에 잡힌 꿩새끼모가지나 같다는걸 알고 똑똑히 정신을 차려! 정신을…》 그날 밤 갑동은 한잠도 자지 못했다. 물론 강덕금이의 《전향》에 대해서 믿는것은 아니였다. 그렇지만 강쇠마저도 녹아난다는 그 지옥의 불가마속에서 연약한 녀자가 견디여냈으리라고 장담할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그렇지만 아니다. 덕금은 전향할수 없다. 겉보기에는 순하고 유하기만 할것 같은 녀자지만 그렇듯 강한 의지와 락천적인 웃음으로 온갖 사선을 다 헤쳐오지 않았던가. 가장 가까운 전우의 한사람이였던 덕금이에 대한 그의 믿음은 철석같았다. 그즈음 악질형리 명물들만 긁어모아온 대전형무소에서도 수인들의 가장 증오의 대상인 정규택이 그자가 한 녀수인을 어떻게 하던지 강제전향시켜보려고 온갖 회유기만과 못된 희롱질을 일삼다가 드디여 최대의 격분을 느낀 그 녀자가 달려들어 이발로 물어뜯는통에 한쪽 귀가 떨어져나가 외귀띠 병신이 되고말았다는 통쾌한 소문이 온 대전감옥을 들었다놓았다. 듣던중 귀가 번쩍 열리는 소리여서 모두들 통쾌해하였다. 응당한 귀결로서 수인들에게 그렇게도 못살게 굴던 규택이라는 자가 한절반 떨어져나간 귀쪽을 잡고 암만 애통스러워해도 다시 풀로 붙일수도 없는 노릇이고 죽은 아이 자지 만지기였다. 요즘에는 옥내의 라졸들이며 수인들이 모두 감방 여기저기에 머리를 모으기만 하면 수군수군 그 얘기들뿐이였다. 그러다가도 녀수인에게 물어뜯기워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귀쪽을 붙잡고 똥마려운 강아지새끼처럼 뱅글뱅글 돌아쳤다는 그 밉광스러운 교무과장놈의 꼴이 금시 눈앞에 보이는것만 같아 감방에서는 흔치 않는 일로서 폭발적인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말이 쉽지 남자들도 쉽게 할수 없는 그런 대담한 보복을 들이대여 본때를 단단히 보여준 그 알지 못할 녀자에 대한 감동과 함께 일종의 호기심, 공경심도 가지게 만드는것이였다. 《히여, 우리 가까이에 그런 죽음을 불사하고 접어들어 무서운 보복을 들이대는 용감한 녀동무가 있었다니 정말이지 보통녀자가 아니요!》 《여하튼 영웅이여! 어떻게 생긴 녀동무인지 한번 봤으면…》 《내사 전옥들이 서로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니께 그 녀자를 보고 산에서는 <도라무통동무>라고도 하고 <지리산의 뚱보처녀>라고도 불렀다는게 아니겠소.》 《뭐 지리산의 뚱보처녀요?》 그렇지 않아도 전날 교무과장놈과 자기 사이에 있었던 강덕금의 소위 《전향》에 대한 심상치 않던 소리로 미루어보아서도 그렇고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그 가차없는 보복전의 녀주인공이 혹시 그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황갑동이, 옆에서 하는 사람의 그 말까지 듣고보니 틀림이 없는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놈들이 자기가 전향했다고 신문에 사진까지 내고 광고를 하면서 떠들어대며 발악하는 이 불리한 정황속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필사적인 보복행위를 한 그의 꺾임을 모르는 의기에 몹시 감동이 되는 황갑동이였다. 정말로 다행스러웠다. 마음이 놓였다. 《장하다 동무여! 지리산의 변함 없는 딸 나의 전우여, 내 죽어도 지리산과 함께 너의 영특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이 눈에 담고가리라.》 그러면서도 그는 적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긴 덕금의 신상에 곧 그 어떤 위험이 미쳐오지 않겠는가 하는 위구심이 생기면서 걱정과 불안이 커지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9
한편 규택은 그 어떤 달콤한 회유나 가시몽둥이를 가지고서도 황갑동이와 강덕금의 대나무쪽 같은 의지를 꺾어낼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마지막수단으로서 극적상봉의 충격을 주어 그들의 심리적변화에 한번 기대를 걸어보게 된것이다. 그리하여 그들 두사람에게 《자유로운》 상면의 시간을 주기로 작정한 놈은 어느날 들여다볼수 있는 감시구가 장치된 별방을 내여 먼저 황갑동이를 들여보내며 좀 기다리라고 했다. 두개의 의자를 마주놓은 사이에 작은 원탁을 놓고 그우에 다과까지 준비하여놓은 빈 방에 들어선 황갑동은 왜서인지 가슴이 두근거려남을 어찌할수 없었다. 헤여진 그날로부터 그 어느 하루 한시도 잊은적없이 마음속으로 그리던 녀동무, 이제는 영영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덕금이와의 꿈같은 상봉이 정말로 이루어지겠는지, 이제 어떤 정신상태의 녀자를 만나게 되겠는지, 혹시 신문에 났던 기사대로 이미 전향서를 써바친 상태의 덕금이가 나타나지 않겠는지 우려되는바가 없지 않았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어엎는 일들이 벌어지고있는 대전감옥인지라 그래도 알겠는가. 만일 자기의 기대와는 달리 전향해버린 강덕금이라면 차라리 만나지 않기만 못하지 않겠는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옴을 어찌할수 없는 황갑동이였다. 이때 복도에서 누구인가를 여기로 데려오는 모양인 간수놈의 거친 구두발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다가 문밖에 와서 멎어섰다. 이윽고 조심히 문이 열리더니 기다리던 사람이 방에 들어서는것이였다. 그렇지만 황갑동은 처음에는 녀죄수복을 입고 들어서는 사람을 이내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앞에 서있는것은 어제날 지리산의 그 《뚱보동무》가 아닌것이였다. 그 충실하던 몸도 절반이요 그 둥실하던 얼굴도 반쪽,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여버린 녀자가 서있었다. 그는 덕금이면서도 덕금이가 아니였다. 그동안 좁은 독감방속을 회오리쳐 지나간 모진 세월의 칼날이 그의 온몸에서 풍만하던 살점들을 저미여가지고 가버렸던것이다. 실로 대번에 눈물이 나오게 만드는 그의 처참해진 몰골을 보는 순간 황갑동은 목메인 소리로 《더… 덕금이-》 하고 부르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그에게로 확 접근하게는 되지 않았다. 그동안에 몹시 변모된 덕금이의 얼굴에서 무엇인가를 읽어보려고 애쓰는상 싶은 갑동이의 눈길은 예리하게 번득이며 자기도 모르게 깔끔해짐을 어쩔수 없었다. 믿음과 불신, 불신과 믿음… 전남일보에서 받았던 불쾌한 인상으로 하여 아직도 풀리지 않는 오해선상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하는 황갑동이의 그 말없이 묻는듯 한 눈길앞에서 강덕금이는 일순 당황함을 나타냈다. 그처럼 가깝던 두사람사이에는 지금 넘을수 없는 심연이 가로 놓인것만 같았다. 그토록 철창속에서도 잊지 못하던 사랑하는 애인, 미더운 동지를 만났건마는 불신감이 담긴 눈길을 받게 된 강덕금이는 마음이 아팠다. 서운하고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긴 속눈섭이 경련을 일으키듯 파르르 떨리던 그의 검둥근 두눈이 아래로 내려감기더니 서럽고 억울한 눈물이 량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말로는 다할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의 분출인 그 눈물이 뜻하고있는 의미를 순간에 감득하게 된 황갑동은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때 덕금이 자기 품에서 무엇인가 손수건에 소중히 싼것을 꺼냈다. 그것은 전일에 규택이가 황갑동이 이때까지 굳이 가슴속에 간직해오던 자기의 신념과 함께 내친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가져다보였던 바로 그 뜻깊은 수예품이였던것이다. 덕금이 떨리는 손으로 풀어헤치는 손수건속에서 나오는 오래전에 수놓았던 작은 기발을 보는 순간 갑동이의 입에서는 부지중 《아 내 저 공화국기가! 그때 정규택의 손에…》 하는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강덕금이 아직도 별로 퇴색되지 않은, 여전히 해와 별이 빛나는 람홍색공화국기발을 두손으로 쳐들어보이며 울먹이는 소리로 무엇인가 말하고싶어 했으나 왜서인지 말을 만들지 못했다. 《덕금이!》 《…》 꿈결에도 그립던 전우를 만났건만 한번 소리쳐 불러보지도 못하는 덕금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덕금이, 굴함없이 싸워서 견디여낸 동무를 만나게 된것이 나는 무엇보다도 기쁘오. 어쨌든 장하오. 강동무!》 덕금이는 그에 대한 답례로 무슨 인사말이라도 할것 같았으나 왜서인지 그저 어- 어 하고 입이 얼어붙은듯한 외마디소리를 낼뿐이였다. 갑동은 불현듯 이상하게 느껴졌다. 《덕금이, 왜 그러오? 왜 아무 말도 못하우? 엉-》 《…》 강덕금이는 한손가락끝으로 입을 가리키며 조용히 머리를 흔들어보이는것이 아닌가. (그러니 말을 하지 못하는게로구나. 아, 우리 덕금이가 갑자기 벙어리가 되여버리다니. 혀를, 자기의 혀를 물어끊었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치는 순간 크나큰 충격이 갑동이의 가슴을 때렸다. 불시에 그는 눈물이 쿡 솟았다. 덕금이 놈들에게 체포된 직후에 왜 그렇게 혀를 끊어 벙어리가 되지 않으면 안되였던지 묻지 않고도 알수 있었다. 갑동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괴로워 마오. 그 독감방속에서 혼자 오랜 세월을 힘들게 지켜낸 빨찌산 녀대원의 그 굳센 지조를 지리산의 전우들만은 의심없이 믿고 뜨겁게 품안아줄거요.》 의미심장한 황갑동의 그 말에서 강덕금은 뜨거운 감명을 받아안았다. (그… 그럼 황동지는 저… 저럴?) 《그렇구만이라.》 (그 시… 신문에 났던 사… 사진보다도 저럴 더?…) 《솔직히 나도 그 신문을 보고 처음에는 갈피를 잡을수 없었소. 그렇지만 나는 그 한장의 신문장보다도 내 고향 녀동무, 나의 지리산전우의 그 깨끗한 애국의 심장을 더 믿었기때문에 오늘 이렇게 여기 상면장소에 나타난것이요. 덕금이는 그 간고한 10년동안의 모진 옥고로 살과 뼈마저 다 깎이여나가 알아볼수조차 없는 딴 사람으로 변해버렸지만 그 뚱뚱한 몸을 가지고도 끝까지 빨찌산투쟁을 하겠다고 나를 따라 지리산을 넘나들던 그 뚱보동무야 어디로 가겠소.》 갑동이의 진정이 담긴 그 마지막말 한마디에 가슴속에 엉켜붙었던 괴로운 얼음장이 일시에 녹아내리는것 같은 훈기를 느낀 강덕금이는 당장에 왁- 울음이 터져나오는것을 참을길 없었다. (황… 황동지! 고 고마워요…) 그 녀자는 갑동이의 품에 와락 얼굴을 묻으며 안겨들어 참고참아오던 격정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덕금이!》 갑동은 녀동무의 뜨거운 눈물에 젖어드는 온 가슴이 마냥 뻐근해오는 쩌릿한 자극을 느끼며 여위여 뼈가 앙상해진 어제날 뚱보처녀의 어깨와 등을 어루쓸어주었다. 《그동안 혼자 그 얼마나 외롭고 가슴이 아팠겠소.…》 그 소리에 덕금이는 더 서럽게 어린애처럼 엉엉 울다싶이 했다. 오늘 변함없는 동지의 믿음을 다시 구했으니 이제 죽는다 해도 한이 없을것 같았다. 그는 이 눈물겹도록 기쁜 상봉의 순간 무엇이든지 정다운 말을 골라하고싶었지만 입속에서만 감돌뿐 말이 되여 나가지 못했다. 덕금이는 갑동이의 손바닥에 대고 손가락끝으로 천천히 쓰기 시작했다. 《나넌 둥글호박, 거기는 까나리!》 그렇게 써놓고는 얼굴에 수집은 웃음을 담는 덕금에게 갑동이 정답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그러자 고향처녀는 갑동이의 손바닥에 다시 글을 써보였다. 《살고싶었어요. 통일이 되는 날 도장동 고향마을에 가서 함께 감자농사를 지으면서…》 《덕금이, 나도 살고싶소!》
10
끝내 전향서를 받아낼수 없게 된 놈들이 이내 강덕금이를 형무소의 여러 《수인》들이 보는 앞에 내다가 공개총살한다는 소문이 돌아 사람들을 흥분시키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놈들이 매 가사의 감방들에서 비전향장기수 정수분자로 지목되는 몇사람씩을 호명하여 복도로 끌어냈다. 그 녀자의 사형장면을 직접 보여주어 다시는 수인들이 전옥들에게 달려들어 피의 보복을 들이대는것과 같은 불상스러운 일들이 생기지 않게 방비하도록 만들려는 목적으로 눈에 피발이 선 교형리들이 총살장으로 호송해가고있는 그 사람들속에는 물론 황갑동이도 끼여있었다. 뒤에서 후들거려지는 다리로 이따금씩 비칠거리면서 사형장으로 정신없이 따라가고있는 갑동은 지금 자기가 왜서 어디로 가고있는것인지 통 몰랐다. 무엇때문에 번연히 알면서도 자기도 언제인가는 걷게 될수도 있는 이 마음 아프고도 고통스러운 길을 찾아가야 하는것인지. 그러면서도 괴로움으로 가슴이 터질지라도 어서 가서 마지막길을 가는 전우인 덕금을 바래워주어야겠다는 기막히고도 이상해지는 심리에 걸음걸음과 자욱자욱에 눈물이 고이고 피가 고이는것을 어찌할수 없는 그였다. 그는 자기의 무거운 발걸음이 사형장언덕에까지 언제 어떻게 당도하였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굵은 대나무 몇그루가 서있는 곳에 이르니 아직 사형수는 나오지 않았다. 먼저 나와 서성대던 몇몇 형무소 교도관들이 녀수인을 총살하는것을 우정 보이려고 몰아가지고 나온 40∼50여명가량의 수인들을 가시철망옆의 대나무들을 향해 렬을 지어 세우는것이였다. 조금 있어 형무소장 윤병희와 악질형무관들 그리고 한쪽의 떨어져나간 귀때기자리에 피밴 시뻘건 가제천에 싼 솜뭉치를 대고 떨어지지 않게 반창고로 붙인 교무과장 정규택 등 교형리들이 살기에 찬 거만한 걸음걸이로 나왔다. 이윽고 녀수인들이 들어있는 독거사쪽에서 족쇄를 채운 한 녀자가 무거운 철쇄를 끄을며 사형리들에게 호송되여나오는것이 보였다. 맨발이였다. 황갑동은 멀리서도 그의 낯익은 걸음걸이와 류다른 거동을 보고 그것이 강덕금임을 이내 알아볼수 있었다. 가슴이 몹시 두근거려지며 심장이 마구 거칠게 뛰였다. 온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호송해오던 세놈이 그를 한 대나무밑에 끌어다세웠다. 그의 찢어진 옷자락이 기폭처럼 바람에 날리군 했다. 하늘은 가없이 푸르고 여름해빛은 아낌없이 그의 장발을 한 머리우에 쏟아져내렸다. 뒤에 서있는 대나무아지에 앉은 매미가 울어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강덕금은 그 유정스러운 매미소리에 마음 잠그고있는듯 태연히 서서 머리를 들어 그 푸른 대나무를 쳐다보았다. 그 대나무는 마치 어릴적에 두고간 고향의 어머니처럼 마지막길을 가는 애처로운 딸을 보려 머리 풀어헤치고 달려온듯 세차게 몸부림쳐 쏴- 뒤설레이는것만 같았다. 맨발로 나무밑 공지의 풀밭을 밟고 서있던 덕금은 무슨 생각이 났던지 허리굽히고 푸른 잔디를 손바닥으로 쓸어만져보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수갑을 채운 손으로 잡초속에서 피여난 한송이의 이름 모를 수수한 꽃을 꺾어드는것이였다. 잡초속에 피여 난 쓸쓸한 꽃! 그것은 자기였다. 그리고 그 푸른 잔디와 붉은 꽃송이는 그가 그렇듯 마음 다하여 사랑해왔던 조국의 자연과의 마지막영별이기도 하였다. 순간 그의 추연해진 얼굴에는 쓸쓸한 미소가 피여났다. 그는 총살을 앞둔 최후의 이시각 두고가기 아쉬운 이 강산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고, 자기와 영별하기 위해 나와준 고마운 옥중동지들을 향해 옷매무시를 바로잡으며 조용히 허리굽혀 말없이 하직의 인사를 하는것이였다. 눈시울 뜨겁게 그것을 지켜보고 섰던 수인들속에서 누구인가 갑자기 허억- 하고 더운 숨을 들이긋는 소리가 덕금에게까지 들려왔다. 그는 반사적으로 그쪽에 머리를 돌리였다. 뒤켠에서 수인들을 헤치고나오는 한사람이 있었다. 그가 갑동임을 알아본 덕금이는 무엇인가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내며 그리로 이끌리듯 마주 나가려다가 발목에서 절그렁거리는 족쇄의 무게를 느꼈던지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을 본 황갑동이의 입에서는 부지중 목메인 부름소리가 울려나왔다. 《덕금동무!》 《화… 황동지! 아… 앓지를…》 《내 알겠소. 덕금이! 내게 무슨 부탁이라도 할게 있으면 싸게 한마디라도 하씨오!》 오랜만에 그 특징적인 고향사투리인 《싸게 하씨오 》하는 갑동이의 말을 들은 덕금이는 량볼에 보조개를 파며 정답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부탁의 말을 만들어보려고 무진 애를 쓰는것 같았으나 그저 《어- 어, 엄… 니이-》하는 토막토막 끊어지는 반벙어리소리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말이 되지 않아 안타까와하는 그가 지금 어머니를 찾고있다는것을 륙감으로 알아들은 갑동이 되짚어 물었다. 《엄니, 어무니 말이지?》 《그… 그… 그!…》 덕금이는 정답게 머리를 끄덕여 보이며 띠염띠염 《… 엄-… 무닐 용… 용…》 《우리 어머니를 용서해드리라는 말이지?》 그렇다고 덕금이는 또다시 머리를 열정적으로 끄덕여보이며 간절한 눈길을 보내는것이였다. 생의 마지막시각에 그 준엄한 겨울에 함께 고향집에 들려 어머니와 고숙을 만나던 때의 상서롭지 못한 그 일을 떠올리며 어머니를 다 용서해드리라고 당부하는 이 녀자의 마음은 그 얼마나 뜨겁고도 고운것인가.… (알겠소. 덕금이! 내 살아나가게 되겠는지 모르나 그때까지 어머니가 앉아계시기만 한다면 괴롬이 있는 이 아들의 용서를 잊지 않고 해드릴게.)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으며 말없이 머리를 끄덕여보이는 갑동이의 두눈가에 핑- 물기가 돌았다. 《고… 고마워요!》 이렇게 말하는듯 하던 처녀는 언제인가 고집부리는 갑동이를 달래듯 하면서… 어머니랑 용서해드리면 나 《아리랑》을 불러줄게요… 라고 하던 그 약속이 생각났던지 《노… 노…》하는 다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냈다. 《아스오. 노랜 무슨 노래럴…》 그러나 여전히 방긋이 웃고있는 덕금이의 입에서는 벌써 《아리랑》의 아름다운 선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곡조는 그대로이지만 그의 입에서는 《아… 아리…》하는 무절음 같은 소리만이 울음에 섞여나올뿐 가사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러자 황갑동은 석쉼해진 목청으로 언젠가 덕금이가 제 생각대로 불렀던 그 노래의 가사를 다시 바로 세워 주며 함께 불렀다.
봄이 오는 아리랑고개 제비 오는 아리랑고개 가는 님은 밉단이요 오는 님은 곱단이라네
갑동이의 옆에서 듣고있던, 그 노래를 알고있는 다른 비전향장기수들이 《아리랑》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리 아리랑 아리랑고개는 님 오는고개 넘어 넘어도 우리 님만은 아니 넘어와요
이리하여 사형장은 뜻밖에도 혀를 끊어 벙어리가 된 덕금이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그렇듯 은근한 선률과 맑고 깊은 정서가 담긴 애틋한 곡조의 《아리랑》으로 가득 차며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해주었다. 황갑동이와 강덕금이, 두 남녀비전향수들의 이 《비극적》인 최후의 상봉에서도 일순의 심리적동요를 찾아볼수 없었고 아무것도 건져가질것이 없다는것을 뒤늦게나마 깨닫게된 어리석은 자들은 악을 쓰며 노래를 중단시켰다. 교무과장 정규택이가 교형리들옆에 다가서며 아직도 아픔이 몰려오는 자기의 귀를 물어끊은데 대한 괘씸한 보복의 앙심을 품고 미친듯이 악받친 소리를 질렀다. 《사겨억- 준비잇-》 이때였다. 강덕금이 빠른 동작으로 품속에 간직해가지고왔던 수예품 같은것을 하나 꺼내여 손에 펼쳐들었다. 황갑동이 놀라서 보니 아, 그것은 해와 별이 선명하게 새겨진 공화국기발이였다. 그는 그 기발을 오른손에 쳐들어 흔들며 가사가 없는 후음으로만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것이였다. 황갑동이와 그의 감방전우들은 그것이 분명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임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었다. 모두가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면서 강덕금이 첫 음절을 뗀 그 잊지 못할 노래를 함께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백두산천지에서 제주도 끝까지 새 기발 높이여 삼천만은 나섰다 산천도 노래하라 이날의 감격을 조선은 빛나는 인민의 나라다 아- 자유조선 인민공화국…
이때 《쏴앗-》하는 악청과 동시에 세방의 총성이 련발로 울렸다. 노래는 끊어졌다. 덕금이는 첫 총탄을 받은 가슴에 오른손을 가져가며 그 자리에 폭 꼬꾸라졌다. 그러더니 옆에 있는 대나무를 붙잡고 안깐힘을 써 몸을 비청거리며 다시 일어서는것이였다. 모두가 놀랐다. 소문났던 지리산의 녀장수 뚱보는 뚱보였다. 정말이지 지리산의 살진 도토리틀 주어먹으면서 살아서 그랬던지 세방의 총에 맞고도 아직도 힘이 억척같은 녀자였다. 오른손에 다시 쳐든 공화국기발을 천천히 무게있게 흔드는 그의 입에서는 끊어졌던 그 노래의 마지막소절이 힘있게 울려나오고있었다.
해와 별 빛나라… 조국의 앞길에…
탕 타당- 또다시 귀청을 때리며 간을 찢는듯한 카빙총성! 순간 흠칫흠칫 몸을 떨며 비칠하던 강덕금이, 죽일래야 죽일수도 없고 꺼꾸러뜨릴래야 꺼꾸러뜨릴수도 없을것만 같던 지리산의 불사조, 빨찌산의 사랑받던 딸은 그 자리에 그만 어푸러졌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손에 꼭 쥐여있는 피에 젖은 공화국기만이 휘익- 불어쳐오는 바람결에 살아있는듯 펄럭이고있을뿐이였다. 이렇듯 조국의 딸, 지리산의 전우들이 늘 허물없이 《도라무통동무》라고 불러도 언제 한번 성내는 일없이 상냥한 미소로 응대해주군 하던 강덕금이! 그는 지리산기슭의 도장동마을에서 소문없이 태여났다가 이렇듯 세상에 자기의 요란한 《도람통소리》를 내며 녀성으로서 비전향수로서의 고결한 넋을 지니고 전우들의 곁을 떠났던것이다. 죽어도 잊지 못할 자기 녀동무의 그 비장한 최후를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오장이 비틀리는듯한 아픔을 참지 못해 두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으며 머리를 떨어뜨리는 황갑동이의 얼굴을 적시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