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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가장 아름다운 인간들이 태여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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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1929년에 강도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는 조선청년 학생들의 애국투쟁인 《광주학생사건》이 벌어졌던 유명한 고장이다. 그때 10대의 열혈청년들이 악독한 일제의 민족차별정책을 반대하여 싸우다가 총칼에 맞아 수많이 피흘려 쓰러져 원한품고 가서 묻힌 곳이 광주 뒤산인 무등산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그 피의 광주 그 원한의 산에 수많은 통일애국투사들이 미제와 리승만괴뢰역도놈들의 무지막지한 중세기적인 고문에 시달리다 못해 죽거나 억울한 총살을 당하여 아무도 모르게 그 무등산에 가서 묻히군 했다. 그들 개개인으로 말하면 나라로 보나 민족으로 보나 애국렬사, 민족의 장한 영웅들이였다. 가족친지들로 보아도 모두가 존대받고 사랑받는 아버지와 형님, 누나들이고 남편과 안해들로서 더없이 귀중한 존재들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무슨 나무관은 고사하고 헌 거적때기 한잎 덮지 못하고 무등산의 맨 흙과 맨 돌속에 묻히군 했다. 후일에 그 자손들이나 형제자매들이 찾아온다고 하여도 패말 하나 없는 그 공동묘지에 와서 그리운 사람의 령구앞에 술조차 부어놓을수 없게 되였으니 기막힌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리하여 나날이 무등산은 무주고혼들의 풀길 없는 한이 사무친 원망산으로 되여갔다. (내 그저는 저 무등산에 가서 묻히지 않으리라!) 황갑동은 앓아서 죽거나 매맞아 힘없이 숨져버리거나 아니면 자포자기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것은 아무 쓸모 없는 개죽음이나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혼자 자신에게 타이르군 했다. (감옥생활에서는 첫째가 강한 사상정신과 굳센 의지요, 둘째가 혼자 몸이 아니라 조직을 가지고 그속에서 사는것이다. 셋째가 건강과 생명유지를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며 넷째가 그를 위한 부단한 운동과 끊임 없는 투쟁인것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선차적인것이 강한 의지와 높은 정신력과 함께 건강력이 있어야 모진 고문도 이겨내고 죽음을 무릅쓰고 놈들과 맞서 싸울수도 있는것이다. 그런데 감옥에서는 남보다 잘 먹고 많이 먹는 사람이 반드시 오래 사는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라고 할수도 있으니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였다. 《많이 먹는것은 적게 먹는것보다 못하니라.》 우리 조상들이 참으로 좋은 생활격언을 후손들에게 남겨준 셈이라고 황갑동은 생각했다. 실제로 광주감옥에서도 집이 괜찮게 사는 덕에 드문드문이라도 가족들이 사식을 가지고 면회를 오면 잔뜩 굶다가 오랜만에 생긴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고 건강을 해치군 하는 일들이 종종 생기군 했다. 그와는 달리 황갑동이처럼 산에 있을 때부터 늘 적게 먹고 굶는데 습관돼 강단지게 생긴 사람들이 오히려 잡병에도 걸리지 않고 오래 살아 장기수로 될수 있었다. 그는 늘 롱처럼 《소식 장명이니라.》 하고 말하군 했다. 아무데서도 그렇지만 더구나 감옥안에서 자기 몸, 자기 건강은 오직 자기 책임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그래야 정신력도 줄지 않고 증진되는것이다. 감옥생활이란 이상한것이여서 장기수들이 앞날이 너무나도 아뜩하게 여겨져 락심천만하면서 이내 죽을것 같지만 그와 반대였다. 이놈의 감옥벽이 썩어서 무너지나 내 엉뎅이가 물러앉나 어디 보자는 식으로 배심좋게 버티는 장기수들은 잘 죽지도 않았다. 오히려 4∼5년짜리 단기수들의 경우에 한숨속에 매일 안타까이 손가락 셈을 하면서 간을 태울 내기를 하다가는 질거 죽고 마는것이였다. 나무들도 밑의 가지부터 하나하나 말라죽고 봄열매들이 저절로 떨어지는것 역시 제가 죽고싶거나 떨어지고싶어서 그렇게 되는것이 아니라 그 나무자체의 《지령》에 의한것이라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체내에도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을 조절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그 무슨 《지령체계》 같은것이 있는것 같다고 갑동은 고려의학책들을 보면서 생각한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던지 살자고 강심을 먹는 자는 죽지 않으며 죽을것 같다고 슬퍼만 하는 자는 살지 못한다. 지내보니 옥중의 건강유지에서 특히 중요한것은 역시 운동인것이다. 짬만 있으면 운동, 서도 운동, 앉아서도 운동, 누워서도 운동! 그리고 랭수마찰이다. 그 어떤 조건이 주어지기를 바라는 깡지근한 사람은 감옥에서 랭수마찰은 생각도 못한다. 갑동은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떵떵 어는 감방속에서도 웃동을 벗어내치고 매일아침 랭수마찰을 했다. 물이 없으면 자기가 먹을 물이라도 아껴서 랭수마찰을 했고 정 조건이 안되면 아침 저녁으로 건포마찰을 했다. 랭수마찰를 계속 하면 피부도 단련되고 잡병에도 걸리지 않을뿐더러 정신이 맑아지고 특히 자기의 건강과 자기 의지에 대한 신심이 생기는것이다. 랭수마찰을 하는것과 함께 수용소나 감옥 담장안의 산보구역에 아름드리나무라도 서있는것이 있으면 가능한한 밖에 나왔을 때 다문 l∼2분간만이라도 그것을 그러안는것이 좋았다. 산에 있을 때 전우들은 묘향산에 대하여 알려거든 서산대사에게 물어보고 지리산의 길과 식물들에 대하여 알고 싶은것이 있으면 《지리산의 도사》인 황갑동에게 물어보라고 롱담을 할 정도였다. 그만큼 많은 길을 걸으면서 지리산의 동식물들에 대하여 도통했던 그는 대체로 큰 나무들은 각기 자기의 정기(눈정기, 산정기라고 말하군 하는)와 일정한 생물전기를 가지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 나무의 정기와 생물전기는 태양빛과 태양열에서 받아가진것이라 한다. 사람이 그런 굵은 나무들을 붙안게 되면 그 나무의 정기와 생물전기가 동시에 자기 몸에 옮아와 심장의 박동을 더해줄뿐만아니라 체내에 일정한 호르몬작용을 일으켜 건강유지에 유익하다는것이다. 그래서 황갑동은 산에 있을 때부터 새벽에 일어나기만 하면 조기운동을 하고나서는 산에 흔한 그 나무붙안기를 꼭꼭 하군 했었다. 그래서였던지 그는 아무리 신경이 예민해지는 선요원생활을 계속 하면서도 가까이 생활하는 전우들과 부하 성원들에게도 좀해서 신경질을 부리는 법을 몰랐으며 늘 성미가 느긋해있었다. 황갑동은 남들이 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하겠으면 하고 매일 매시각 신경이 바늘끝처럼 돋아나군 하는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그 짧은 산보시간을 아끼여 담장안의 통사리 굵은 나무를 만나기만 하면 한참씩 두팔로 그러안고 거기에다가 심장쪽을 대이군 하였다. 그것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렇게 하고나면 기분이 가벼워지고 그 나무에 온갖 자기 시름과 아픔, 고통을 넘겨주는것 같은 느낌속에서 신경과민상태가 어느정도 해소되는것 같이 생각되는것이였다. 다른 사람들도 이 《지리산도사》의 말을 듣고 그렇게 해보고는 그것이 확실히 정신운동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것 같다고 말하는것으로 보아서도 그 굵은 나무를 그러안는 《정신치료료법》이 사람들의 건강에 좋으면 좋았지 결코 해될것은 없는것 같았다. 그는 감옥안에서도 건강유지와 관련해서는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갑동은 감옥과 감호소생활 35년 전기간 약한톨 얻어먹어 본적이 없었으며 어지간한 병쯤은 자체로 만든 동침질을 하거나 자체 안마치료로 고치군 했다. 그래서도 안되는 장기내의 병들은 주로 절식법으로 다스리군 했다. 만성위염은 말할것도 없고 오랜 대장염 같은것도 한 일주일내지 열흘동안 절식을 했더니 그 악질대장균도 이 지독스러운 사람의 굵은밸속에 그냥 붙어있어봤댔자 굶어죽기나 맞춤하다는걸 알았던지 어디론가 달아나는듯 했다. 그래서 전기간 고뿔 한번도 누워서 앓아본적 없는 강한 사람이 바로 비전향장기수인 황갑동이였으니 감옥에서는 생명을 위한 싸움도 하나의 투쟁이라고 할수 있었다. 53년 봄에 이르러 남반부전역에 혹심한 식량난이 휩쓸었다. 그 바람에 산야의 푸른 빛이 도는것은 다 뜯어먹고 초근목피도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기근의 검은 그림자가 제일 먼저 미친것은 물론 감옥이였다. 당시 형무소에서는 감방안사람들의 강한 항의에 부딪치게 되자 죄수들에게 콩보리밥이나마 주었다. 그런데 그 한줌 내주는 겉보리 삶은 껄껄한걸 목구멍으로 겨우 씹어넘겨도 위가 그것을 능구어내지 못했다. 위가 공연히 방아질을 하느라고 역운동을 하면서 먹은것이 도로 거꾸로 올라오군 하는 바람에 전혀 식사를 못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방에 30여명이 있는중에 다 쓰러지고 그래도 그걸 먹고서라도 살아서 움직일수 있는것은 황갑동이와 다른 두 동무뿐이였다. 갑동은 놈들이 죄없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다 굶겨죽이려고 꾀하고있는 조건에서 눈을 펀히 뜨고 동지들이 죽어가는것을 보고만 있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두명을 데리고 매일 꽁보리밥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짓이겨 꽉 짜서는 그들의 입에 넣어주군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어머니의 심정을 담은 동지들의 그 뜨거운 사랑이 있어 그 감방에서는 단 한명의 아사자도 나지 않고 모두 일으켜 세울수 있었다. 그럭저럭 꽁보리밥이라도 짓이겨 짜서 아사를 면할수는 있었지만 시시각각으로 덤벼드는 정신적인 공허를 이길 방도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갑동은 자기들이 오늘까지도 벌리고있는 통일애국투쟁의 당위성에 대한 확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낡은것의 멸망과 새것의 승리에 대한 신념을 더욱 굳히기 위해서도 그렇고 사막의 샘처럼 타는 목을 적셔줄 그 무슨 정신적인 고무를 안겨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래도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인민군소좌가 살아있을 때는 그의 강의를 통하여 비록 캄캄한 감방속에서나마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안고 희망의 밝은 빛을 느끼며 살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마지막강의의 여운만을 남겨놓은채 가버린것이다. 광주감옥의 첫 학습강사라고 할수 있었던 심동섭소좌가 떠난후 그렇게도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던 철학강의는 완전히 중단되였다. 누구라도 다른 사람을 대신시키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재목도 교재도 없는것이였다. 황갑동은 자기의 무식을 한탄하며 그때 심소좌의 그 멋진 강의내용을 더 유심히 들어 통채로 머리속에 기억해두지 못한 일을 두고 후회도 몹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황갑동은 광주 《교대학생사건》으로 붙잡혀 들어와 총살을 면한 두명중에 제일 어린 열일곱살청년인 윤택수를 만났다. 《윤동무, 어디서 교재가 될만한 책을 하나 얻어들여올수 없을가? 제일 좋기는 김일성장군님의 저서요.》 《그래요?》 《심동섭강사가 채 끝맺지 못하고간 그 철학강의를 계속하자구 해서…》 《예에- 그런데 갑자기 그걸 어디서?》 《잘 생각해보오. 좌익서적을 많이 보던 상급생들이나 가까운 교원의 집에라도 감추어두고 보던것이 있을수도 있지 않어?》 잠시 그 새까만 눈을 깜빡거리며 생각을 굴리던 윤택수가 무얼 하나 붙잡아낸듯 희색이 만면해졌다. 《있습니다. 우리 누님과 가까이 지내던 형님이 한분 있는데 그의 집에는 그런 책이 있을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다음번에 누님이 면회 오게되면 한번 조용히 부탁해보시오.》 《그렇게 하지요.》 그날의 일이 있는 얼마후부터 광주중학교 교원을 하고있는 윤택수의 누이는 여느때없이 자주 감옥에 면회를 와주었다. 두터운 도서를 한꺼번에 들여보낼수 없었던 그는 그것을 몇페지씩 필사를 하여 사식품을 가져올 때마다 얼마간씩 넣어서 들여보내주군했던것이다. 그것을 받던 밤 황갑동은 너무 기뻐서 한잠도 자지 못했다. 그런데 그 보관이 문제였다. 더우기 이때에 와서는 놈들이 《성경책》을 제외하고는 감방안에는 책 한권, 신문쪼박지 하나, 글 쓴 종이 한장도 들여가지 못하게 엄중단속을 했었다. 죄인들이 면회 나갔다가도 출판물을 몸에 감추어가지고 들어온다고 하면서 일본놈들이 하던 식대로 우아래가 붙은 옷 한장만 입혀놓고 매일 정상적인 검방검신을 하고있는 판이였다. 필사한 장군님의 로작을 보다가 갑자기 검방검신을 당할 때에는 아이들이 빙 둘러앉아서 수건돌리기를 하듯 술레잡이를 하는 식으로 그 종이장들을 빼앗기지 않고 철저히 지켜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언제까지나 효력을 발생할런지는 모를 일이였다. 그래서 황갑동은 혼자서 그 로작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통달해내기로 결심을 하고 달라붙었다. 그렇지만 사람의 머리에도 제한이 있는 법이다. 내용을 깊이 파악하고 감옥생활의 실정과 사람들의 준비정도에 맞게 제강화하여 암송시킬수 있는 그런 준비된 동지들의 필요가 느껴졌다. 희생된 동지들은 물론이고 놈들이 전방을 시켜 갈라놓은 김주호동지네가 그리웠다. 조직이 그리웠다. 이때 마침 감옥당국에서 다른 옆사람들에게 빨갱이사상을 전파시키는 좌익수 정수분자들을 격리시킬 목적으로 황갑동이가 있는 감방에 그들을 한데 몰아넣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래서 김주호, 김우평, 박용호, 김세명, 윤국남 그리고 한재욱, 로길성 등 유명한 좌익수들이 한데 모아졌다. 하여 그 방은 광주 감옥동지들의 중심지도방으로 지명되였다. 때는 1953년 5월경이다. 산만했던 대렬을 일정한 투쟁대렬로 발족시킬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조직의 위임에 의하여 김주호와 박용호가 책임지고 황갑동이 확보한 장군님의 로작과 철학사전, 정치경제학을 가지고 제강을 짰다. 그렇게 해서 여러사람들에게 분담하여 암기통달시키고 강의에 출연할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얼마나 진리탐구에 대한 향학열이 높았으면 모두가 주야침식을 잃다싶이 하며 자기가 맡은것을 책임적으로 암송하기에 열을 올렸겠는가. 그 제강을 가진 사람들은 매일 소강연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책임지고 암기시켜야 했다. 그리고 전방을 하던가 다른 형무소로 이감해가는 경우에도 그것을 전국형무소에 보급시킬 의무를 지니고있었다. 점차 학습열의는 더욱 높아져 감옥안에 하나의 학풍이 불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철학, 정치경제학만이 아니라 돈있는 동무들이 수학책도 구해다가 대수, 해석기하까지 마루바닥에 여러가지 수학공식을 파놓으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자연과학책들도 들여오고 기타 많은 서적들도 구해다가 조선사, 동양사, 세계사공부도 하고 영어, 일어, 중어, 도이췰란드어 등 외국어학습에 전념하는 사람들도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감방안에서 시도 쓰고 특히 강용진이라는 사람이 지은 콩트(벽소설)《철창아 나는 너를 증오한다》는 감방내 동지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원래 공부도 하나의 정신로동이다. 육체로동과 마찬가지로 모든 로동이 그 결과가 유익하고 필요하니 말이지 골수를 짜내고 여름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뙤약볕에 나가서 맹목적으로 그저 일하기 좋아할 사람이야 어디 있겠는가. 로동이 신성하다 함은 그것이 자신과 사회를 위한 정신물질적인 부를 창조해내기때문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아이들도 그렇고 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성인들도 그렇고 학습하기를 싫어하는 경우를 흔히 볼수 있다. 그래서 옛날 훈장들이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종아리를 쳐가면서 《하늘 천, 따 지》를 가르쳐주었고 선생들이 학교에서 숙제를 해오지 않는 학생들에게 두손으로 걸상을 쳐드는 벌을 세우면서까지도 배워주는것이 아니겠는가? 신문사 주필을 하다가 온 김주호의 말을 들어보면 저 북에서는 학교의 학생들은 물론 근로자들과 일군들, 사회간부들을 모두 공부시키는 학습제도를 세워주었다니 참으로 좋은 제도가 아닌가. 그런 행복한 사람들이 학습교재 하나를 얻기 위해 그야말로 목숨까지도 바쳐가면서 그리고 감방의 콩크리트바닥에 코피를 쏟아가면서 이악스레 공부하는 감옥동지들의 그 불타는 향학열에 대하여 어떻게 리해할것인가. 그리고 그런 좋은 제도에서 살고있는 자신들의 행복에 대하여 얼마나 깊이 생각할런지… 여기 광주감옥의 악조건에서 들키면 옥졸들의 방망이에 머리가 터지면서도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들, 그들은 앞으로 무슨 박사나 교수, 그 어떤 간부로 《립신출세》를 하기 위하여 힘들게 《도》를 닦는것도 아니였다. 옛 성인이 말하기를 《아침에 깨우치고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다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감옥투사들은 오늘 살다가 래일 죽더라도 하나라도 진리를 더 깨우치기 위해 숨을 쉬는 마지막순간까지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는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비록 20년이상의, 지어는 종신징역형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앞날에 대한 아무 희망이 없다고 하면 그처럼 애쓰며 공부를 하지 않을것이다. 그들이야말로 미래를 알고 승리를 확신하며 통일의 래일을 철석같이 믿기에 혁명을 위하여 어두운 감방속에서도 마음의 등불을 켜들고 학습을 사활적인 요구로 삼고 공부에 열중하고들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황갑동은 감옥처럼 공부하기가 좋은데가 없을듯 싶었다. 다른 생활적인 잡념이 없고 신경이 고도로 긴장되고 정신력이 집중되는속에서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인지라 흘려지는 글줄이 하나도 없이 머리에 쏙쏙 들어가는것이였다. 황갑동이와 투쟁핵심들인 그의 전우들은 감방내에 너도나도 공부를 하려는 학풍을 세우고보니 다른 하나의 새로운 생활, 새로운 투쟁세계를 얻은것 같았다. 힘이 생겼다. 삶의 의욕, 투쟁의욕이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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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오래동안 끌어오던 정전협정이 조인됨으로씨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은 조선인민의 빛나는 승리로 종결되였다. 이 정화에 대한 소식은 곧 황갑동이네들이 갇혀있는 형무소에도 삽시에 전해져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모두들 기뻐하였다. 이 땅에 드디여 평화가 온것이다. 그러나 감방에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서는 그 첫 흥분이 사그러지면서 점차 알지 못할 무거운 기류가 생겨나는상 싶었다. 한것은 정전은 우리가 힘들게 전취한 평화이고 승리인것만은 사실이였지만 아직까지도 놈들과의 치렬한 싸움이 끝나지 않고있는 남녘의 전구에까지도 찾아온 공고한 평화, 완전한 평화는 아니였기때문이였다. 더구나 언제인가는 전 전선에 걸친 인민군대의 총공격으로 남녘땅해방의 열풍이 불어와 피로 녹쓴 감옥의 쇠살창을 녹여줄 그날에 대한 한가닥의 희망만은 안고서 살아가고있던 그들임에랴. 북녘형제들로부터 뻗어올 구원에 대한 일루의 희망과 믿고 기다리던 의지의 금선이 마음속에서 일시에 끊어져나가는것만 같은 실망감을 느끼게 되는 그런 감정이 겹쳐든것이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때에도 일생 비전향수로서 령어생활을 하다가 감옥에서 죽을 각오가 되여있던 건실한 감옥투사들은 락심과 절망을 몰랐다. 오히려 그 의지의 지팽이가 없이도 먼길을 헤쳐가야만 할 장기수로서의 신들메를 더욱 든든히 조이며 새로운 비상한 결심들을 다지는것이였다. 그러나 강초는 태풍에 알고 애국충신은 란시에 안다고 급격한 정세의 변화에도 바위같이 무거이 감방에 앉아있는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이미 동요를 나타내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던것이다. 정전이 되자 마치 정세가 급변하고 저들의 투쟁이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듯이 그릇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더러 나타났던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실례로 차양진이 같은 사람을 들수 있다. 그로 말하면 비교적 부유한 집 아들로서 대학도 나오고 배울만치 배워 일정하게 리론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어려운 감옥안에서도 전답을 판 돈을 은행에다가 저금시켜놓고 그 리자만 가지고도 편히 먹고살수 있으며 재력의 덕으로 매도 여느 사람들보다는 덜 맞고 지내는 사람이라는 소리도 돌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대수이랴. 그가 자기 딴의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라도 어떻게 하던지 끝내 전향만은 하지 않고 감옥생활의 고초를 이겨낸다면… 그러나 이내 기분주의에 사로잡히기 쉬운 사람인 그는 일이 순조롭게 잘되고 투쟁이 승리할 때에는 기가 올라 앞에 나서서 열변도 토하지만 일이 잘 안되고 투쟁에 난관이 조성될 때에는 뒤에서 불평불만의 《도화선》에 먼저 불을 달아 문제를 일으키군 하는 인간이였다. 이를테면 계속 전진하고 승리하는 전투에서는 사단장을 시킬수 있을런지도 모르지만 일시 퇴각하게 되는 어려운 싸움길에서는 분대장도 못시킬 그런 류형의 인간이라고나 할지… 당시 정전이 되자 전쟁시기에도 적후의 우리 빨찌산들의 눈부신 활동으로 늘 골탕을 먹군 하던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은 전방에 나가있던 자기네 무력을 다 끌어들여 빨찌산 《토벌》에 력량을 집중하고있었다. 한편 놈들은 이제는 더는 믿을것이 없어 한풀 기가 꺾였으리라고 생각되는 감옥의 비전향수들에 대한 야수적인 탄압에 더욱 광분하고있는 형편이였다. 감옥당국은 광주형무소 수인들에 대한 《전향공세》를 본격적으로 들이대면서 그나마의 식량공급량마저 줄이였으며 김주호를 비롯한 주목되는 좌익수들에 대해서는 먹을것도 물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최대의 비인간적인 고문과 탄압공세를 취하였다. 바로 이러한 형세하에서 그동안 비등되였던 학습열의와 꾸준한 교양사업의 결과로 일정하게 사상적으로 준비되고 단합된 동지들의 그 힘은 수용자들에 대한 처우개선과 좌익수들에 대한 횡포무도한 탄압만행에 강력히 저항해나서도록 만들기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조직동원해야 할 필요가 제기되였다. 이런 때 만일 한데 뭉쳐서 투쟁하지 않고 주저앉아버린다면 적들은 더 기고만장하여 날뛸것이 뻔하였기때문이였다. 특히 지금 놈들의 탄압촉수가 제일 먼저 뻗치고있는 대상인물인 김주호로 말하면 8.15후 해방의 기쁨 넘친 민주의 수도 평양에서 하나의 중요한 신문사를 맡아보던 그 시기부터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의 두터운 신임과 직접적인 가르치심을 받으며 자라난 견결한 전사의 한사람으로서 수령관이 확고히 서고 신념이 투철한 사람이라는것을 감방안사람들모두가 다 알고있는 터였다. 실력이 있고 조직력이 강하며 정세판단이 정확하고 결단성이 있는 그는 광주감옥에 온 초기부터 조직적인 투쟁을 주장했던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렇기때문에 놈들은 그를 먹방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하였던것이였다. 어느 날 황갑동은 로동당원들이 모인 자리에시 흥분하여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지금 놈들의 탄압이 날로 강화되고 김주호동지를 비롯하여 견결한 좌익수들에게 부당한 구실을 붙여가지고 족쇄를 채워 캄캄한 먹방에 가두어넣고 식사도 물도 주지 않고 말리워죽이려고 획책하고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이런 때 가만히 팔짱끼고 앉아있는다는것은 동지도 죽이고 자기도 죽이는 자멸의 길인것입니다. 이런 엄혹한 정세하에서 우리 매 개인들은 혁명적조직성원임을 자각하고 자기의 태도를 명백히 하며 조직과 철저히 운명을 같이 하는 자세로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조직은 자기의 눈과 귀를 가지고있어야 합니다. 잊어서는 안될 정보를 모르면 닻없는 배와 같습니다. 우리는 정세판단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애쓰며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말고 좌익수들에 대한 적들의 탄압을 제때에 분쇄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도 조직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자는것을 호소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제일 먼저 입을 연것은 아주 언변이 좋은 충청도사람인 차양진이였다. 《물론 투쟁하는것은 좋지요. 그러나 아직 우리는 조직되고 훈련되지 못하였으며 적에 비하여 적수공권으로서 너무나도 힘이 약합니다. 이제는 정전까지 된 불리한 형세하에서 조직적인 투쟁은 하나의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잘못하다가는 새로운 탄압의 구실을 줄 위험이 다분하다는것입니다. 레닌의 저서에도 있는것처럼 적들이 굵은 몽둥이를 높이 들 때에는 몸을 피하거나 낮추어야지 그냥 머리를 쳐들었다가는 골만 깨여질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학습으로 정신무장만을 하면서 조용히 앉아 감옥내의 정세가 완화되기를 기다리는것이 필요하다는것이 나의 주장입니다.》 차양진은 계속했다. 《지금 일부 동지들이 새로운 투쟁을 주장하고있는데 여기는 우리의 손에 무기가 들려있던 유격지구가 아니라 손목발목이 철쇄에 얽매여있는 살인적인 광주감옥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도대체 황동무는 그렇지 않아도 적들의 살인광기가 잔뜩 뻗쳐있는 우리 광주감옥을 어디로 끌고가자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직적인 투쟁이라는 미명하에 광주를 피바다에 잠기게 하려는 그 진의도를 알수 없습니다. 나는 그 모험주의적인 견해를 철저히 반대합니다. 내가 이렇게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적극적인 행동으로 넘어간다면 큰 실패와 후회가 있을것임을 경고합니다, 수인들에 대한 처우개선으로 말하면 그렇게 피를 흘리지 않고도 평화적인 방법, 담판의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는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심한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한 그의 발언에 내포되여있는 위험성을 황갑동이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미처 다는 알수 없었다. 차양진 등 몇몇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황갑동이와 그의 견결한 동지들은 따로 새로운 투쟁계획을 세우고 그 준비를 힘있게 밀고나갔다. 그런데 래일 같이 단식투쟁에로 넘어가려고 하는 행동전야에 어떻게 알았던지 형무소당국이 《처우개선》이라는 명분하에 갑자기 급식량을 조금 늘이고 오랜만에 물고기국물도 내여주는 등 선손을 쓰는 바람에 모두를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 이때 영문을 몰라하는 사람들앞에 나서며 히죽벌죽 웃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차양진이였다. 그는 투쟁의 고조를 앞두고있는 폭발전야에 아무 토론도 없이 단독으로 형무소당국에 찾아가서 적들과 타협하여 약간의 일시적인 《처우개선》을 《양보》 받은 대신 투쟁을 류산시켜버렸던것이다. 《보시오, 내 그러지 않습디까. 얼마든지 평화적인 방법으로도 달성할수 있는것을 피를 흘려 달성하려는것은 우둔한 모험이라고… 나 한사람의 희생적인 역할로 있을수 있었던 집단적인 대렬탄압도 중단되고 처우개선에 대한 우리의 요구도 일정하게 관철되였으니 이게 얼마나 좋습니까. 감옥투쟁이란 바로 이렇게 하는것이지 모두를 피흘리게 만들고 희생시키는 그런 감옥투쟁은 무모한것임을 명심합시다.》 《에익, 이 더러운 기회주의자 같으니라구!》 이렇게 버럭 소리 지르며 갑동은 가증스럽고 몰자각한 이자의 목덜미를 당장 잡아서 흔들어주고 싶었으나 꾹 참을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감방에 몰래 박아놓은 렴탐군 같으면 밤에 모포를 뒤집어씌워놓고 두들겨패줄수도 있으련만 그래도 이건 아직까지는 감옥동지의 한사람인데 더 야단이였다. 다음부터 중요한 문제를 토의할적에는 이자를 참가시키지 않고 극비밀리에 하였다. 한번은 악질 형무소장놈이 조직을 거미줄에 비유하면서 《…내 말을 들어라. 너희들은 매일 밤 자고나면 감방들마다에 쳐지군 하는 크고작은 거미줄을 비자루로 거두어낼것이 아니라 그 거미줄을 치는 거미를, 왕거미를 잡아야 한다!》고 하면서 광주감옥의 빨갱이 《두목》중의 하나인 김주호를 암살하여 죽일 음모를 꾸미고있었다. 그것이 바로 한때 광주감옥을 들었다놓았던 《치약사건》이였다. 소장놈은 자기의 충견인 간수장 주병도와 간수장보 임주상 두놈을 시켜 적들에게 이미 자수하여 광주감옥 취사장에서 잡역노릇을 하고있는자로 하여금 치약에다가 거짓 《련락쪽지》를 넣어 그들이 주목하고있는 김주호에게 《전달》하게 함으로써 밖의 혁명조직과 련계를 가지려 했다는 모략을 날조했던것이다. 이것을 알게 된 황갑동이네들은 취사장에 끌려나가 일하고있는 감방동지 3명에게 과업을 주어 장계호과장놈이 잡역하는 놈과 짜고서 치약에 련락쪽지를 조작하여 넣었던 취사장사건을 폭로하도록 하였다. 놈들의 야비한 치약조작사건은 형무소는 물론이고 담장밖에까지 폭로되여 큰 물의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무소장 최학봉이와 그 졸개놈들은 아니라고 우기면서 더욱 악질적으로 나왔다. 놈들은 오히려 그 사실을 폭로한 세 동지들을 붙잡아 손발목에 수정, 족쇄를 채우고 몸을 묶어 놓고 몽둥이세례를 안기면서 주모자를 대라고 못견디게 굴었다. 그리고 수상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무조건 먹방, 독방에 격리시켜놓고 련일 심문과 고문을 들이댔다. 놈들의 우심해지는 야수적인 만행에 대처하여 황갑동이와 감방동지들은 가만 있지를 않고 그에 응당한 보복을 가해나서군 했다. 술처먹고 나와서는 계속 몽둥이로 무작정 죄수들을 두들겨패여 초죽음을 만들어놓군 하는 그 오몽둥이란놈이 얼마나 미웠으면 대꼬챙이를 들고있다가 감시구멍으로 들여다보는 그자의 눈을 쑤셔버렸겠는가. 결국 놈은 실명되여 애꾸눈이 되고말았다. 그리고 목욕을 시킨답시고 참새가 물한번 끼얹고 물에서 나오듯 참새목욕을 시키는 놈들의 처사에 분격하여 간수장보 임주상이란 자를 모다들어 붙잡아 그 더러운 때국물목욕탕에 대가리를 틀어박아 실컷 물을 먹여 그 자리에 뻐드러지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 목욕사건들을 계기로 형무소당국은 방 전원을 끌어내여 몽둥이 30개씩을 안기는 벌을 내리였다. 세번째로 끌려나간 황갑동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임재호야, 어디 때려봐라》 하고 몸에다 잔뜩 힘을 넣고 버티고있으니 몽둥이가 툭툭 튀여나거나 부러져나가군 했다. 결국 오히려 자기가 악을 쓰다가 기진맥진해진 임재호는 제절로 그 자리에 곤죽이 되여 쓰러지고말았던것이다. 갑동이네들은 바깥조직과 련계하에 형무소 당국자들의 모략책동에 대하여 서울에 상소하는 한편 일제히 단식투쟁으로 들어갔다. 단식롱성투쟁은 근 일주일간에 걸쳐 진행되였는데 매우 심각하고도 치렬한 싸움이였다. 놈들은 단식투쟁을 막아보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피웠으며 마지막에는 강제급식까지 시켰다. 그리하여 한사람은 혈압이 터져서 그 자리에서 숨졌으며 다른 한 동지는 황갑동이 보는 앞에서 소금물을 강제급식시키던 고무호수끝에 찔려 식도가 터져서 그만 피를 토하며 급사하는 참변까지 벌어졌다. 정말이지 무서운 일,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였다. 간수부장놈은 생쥐같은 옥졸을 시켜 의자에 량팔을 묶어 앉힌 황갑동이에게 감옥에서는 보기 힘든 흰 쌀밥을 억지로 먹이려 하며 지벌거렸다. 《네가 이번 투쟁의 주동분자지. 그리고 불온사상학습과 단식투쟁을 조직한것도 너지? 그렇지만 우리는 네가 단식을 포기하고 우리가 주는 이 밥을 제일 먼저 받아먹기만 하면 용서해주겠어. 이자 시체가 되여 내간 저놈들처럼 피를 쏟으며 죽지 않으려거든 먹으라고 할 때 순순히 말을 듣는게 좋아. 제가 죽은 다음에야 단식투쟁이고 뭐고 무슨 소용이 있어 ? 네가 먼저 밥을 먹기 시작하면 하나 둘 다 식사를 받아먹게 될터이니 한술만이라도 먹어보라구요. 어떻게 하겠어. 먹겠어 안 먹겠어?》 황갑동은 코앞에 와서 날치는 간수부장놈의 개기름이 번지르르한 살진 상통을 견주어보며 쏘아붙였다. 《내 위가 맞붙어죽으면 죽었지 개들이나 먹을 네놈들이 주는 그 밥은 단 한숟가락도 받아먹지 않을테니 썩들 물러가라.-》 《야 이 한주일씩 굶은 놈이 어디에서 이런 힘이 다 나와 소리를 쳐? 안되겠어. 오간수, 억지로라도 아가리에 한숟가락씩 마구 퍼넣어. 그밥을 먹이지 못했다간 네 밥줄이 끊어질줄 알란 말이야. 알겠어.》 《예, 예. 알겠슴더.》 옥졸놈은 비굴하게 굽신거리며 한손에는 밥을 들고 다른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갑동이의 앞으로 두렵게 다가드는것이였다. 《황선생, 으떻하겠어요. 불쌍한 나를 생각해서 한숟가락만이라도 묵어요 묵어. 자 어서요!》 갑동이 그냥 도리질을 해대자 옥졸은 억지로 숟가락의 밥을 입에 쓸어넣기 시작했다. 갑동이 입을 앙다물고 머리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어댔지만 몸을 묶이운 상태인지라 생사결판으로 달려드는 놈에게 입이 다 째여지던가 그렇지 않아도 괴혈병으로 다 거덜이 난 몸이 모두 결단이 나던가 할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단 한술 입에 받아물었다. 《됐시다. 됐어요. 자 이 콩나물채와 멸치 반찬도 조금씩…》 옥졸은 사기가 나서 콩나물채와 멸치꼬랑대기도 하나 입에 억지로 피넣어주었다. 갑동은 그것도 받아물었다. 좌익수 정수분자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황갑동이가 이제 와서는 아무 반항없이 자기들이 주는 얼림밥을 순순히 받아먹는것을 본 간수부장놈은 너무 좋아서 입이 다 째질 지경이였다. 놈도 황갑동의 앞으로 바싹 다가들어 지독한 니꼬찐냄새를 역스럽게 풍기면서 중얼거렸다. 《황선생, 고맙시다. 어서 씹어삼키고 한술만 한술만 더… 그렇지요, 헤헤.》 황갑동은 간수부장의 낯짝을 야멸차게 빤히 견주어보며 입안에 들어있는 음식을 악스럽게 씹어대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보던 간수부장은 제가 직접 옥졸에게서 김치종지와 숟가락을 받아들었다. 《이리 가져와. 황선생 목 메이시겄다.》 놈은 숟가락이 넘치게 시뻘건 고추가루가 둥둥 떠다니는 김치국물을 떠들고 갑동이의 입가로 가져왔다. 《잘허요. 좋아요 황선생! 이 시원한 김치국물을 어서 받아마시시오. 그러면 목에 걸렸던 그 밥이 꿀꺼덕-》 순간 황갑동은 바투 다가들며 못나게 구는 간수부장놈의 상통에 대고 이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것을 내뱉듯 퉤에-하고 내뿜었다. 다음 순간 입안에서 짓씹기운 밥알이며 콩나물대가리, 시뻘건 고추들을 뒤집어 쓴 놈의 낯판대기는 망칙하기 그지 없는 도깨비화상이 되고말았다. 그자의 손에 들렸던 김치종발과 숟가락이 먼저 땅에 뚤러덩 떨어졌다. 순간 간수부장놈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온통 얼굴에 매닥질이 된것을 털어버리지도 못한채 그대로 일어서더니만 으흐흐-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는 두 구두발로 방바닥을 굴러대며 지랄발광 쌍욕을 다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황갑동은 배짱스레 의자에 버티고앉은채 일체 더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미 입으로 할수 있는 말은 금시전에 간수부장놈의 면상에 대고 다 뿜어버렸던것이다. 황갑동에게 옆사람들의 처참한 죽음장면까지 보이며 어리석게도 억지로 급식을 시키려고 발악을 하다가 낯짝에 더러운 음식찌꺼기의 세례를 받고 아연실색한 놈들은 단식투쟁을 하고있는 죄수들에게 더는 강제급식을 시키려는 시도를 못했다. 놈들은 그때부터 갑동이를 모두 조심하고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그후로는 황갑동이를 허술하게 여겨오던 광주감옥의 유명한 옥졸들까지도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보자고 찾아와서 목례도 해보이고 다소 누그러진 표정을 짓군 했다. 한편 감옥동지들의 피어린 투쟁과 밖에 있는 혁명조직성원들과 량심있는 출판계 인사들의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최학봉이 조작한 《치약사건》의 전모가 출판물을 통하여 폭로되고 단식투쟁 8일만에 서울의 한 인권단체의 촉구를 받고 할수없이 내려온 한 서울당국자의 지시로 제소자들의 요구가 관철되였다. 우선 김주호를 비롯하여 먹방, 독방에 갇히였던 좌익수 정수분자들이 풀려나왔으며 죄수들에 대한 탄압이 일시나마 중지되고 처우가 다소 개선되였다. 그리고 악질형무소장 최학봉놈은 해임되고 계호과장 장락준은 다른 형무소로 쫓겨갔으며 주병도, 임주상은 한급씩 내려앉고 말았다. 한번 시작했던 투쟁을 이기고보니 모두 사기가 올랐으며 신심이 생겼다. 탄압의 구실을 준다고 우려하면서 투쟁을 포기하고 투항의 자세로 나가려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어버리고 날치던 적들은 베천에 이발을 뽑히운 독사들처럼 맥을 추지 못하고 어슬렁대기만 했다. 황갑동은 이번 투쟁을 통하여 단결의 무기, 조직의 무기를 튼튼히 틀어쥐고 적과 싸우는 자의 억센 힘과 강한 의지를 당할 자가 없다는 감옥투쟁의 진리를 새롭게 터득하게 되였다.
3
1방에는 유독 제살과 제것을 그리도 아끼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집이 좀 괜찮게 살아 면회 나갔다가는 배불리 저 혼자만 먹고 알쭌한 사식만 싸가지고 들어온다. 그래가지고 혼자 사탕이랑 과자랑 생쥐처럼 바스락바스락 깨물어먹는다. 그래도 그것까지는 일없는데 오랜 괴혈병으로 신고하는 옆의 동지들이 비타민 한알만 맛보아도 살것 같다고 하는데도 밤에 다 잘적에 모포를 뒤집어쓰고는 제 혼자 그속에서 입에 던져넣고서는 솔곰솔곰 녹였다. 그것역시 차양진이였다. 그와는 정 반대의 사람 하나가 있었다. 어려운 감옥생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비타민 한알이라도 자기를 위해 따로 남겨놓는것없이 오히려 밖에 있는 집재산까지도 다 끌어들여다가 동지들을 먹이고 입히는 그런 진실한 인간이였다. 순천사람인 그의 본명은 장재곤, 가명은 라근원이였다. 그는 말로만 혁명을 부르짖는 그런 말공부쟁이가 아니였다. 당시 형무소사람들은 공판이 끝난뒤 놈들이 던져주었던 옷가지들, 면내의면 면내의, 녀자옷이면 녀자옷, 천쪼박이면 천쪼박, 지어는 서로 다른 짝짝이 바지가랭이만 걸치거나 끼고서 모진 동삼을 나고있었다. 그 옷주제만 봐도 놈들의 비인간적인 취급이란 말이 아니였다. 그것을 본 라근원은 가족들외에 다른 마을사람들까지 동원하며 의복이면 의복, 천이면 천을 끊어다가 옷을 해오도록 진심전력 동지애를 발휘하여 많은 수의 수인들에게 한가지씩이라도 골고루 입혔다. 그리고 밥이며 떡, 음식들도 끌어들여다가 동무들을 먹이군 했다. 그의 모범을 받아 교대학생들인 배석훈, 정강성… 등도 집생활 형편이 허락하는대로 옷이며 음식이며 꿀이며를 들여오게 하여 옆의 사람들을 위해주었다. 괴혈병환자들에게도 개구리탕, 배암탕까지 먹여 더러는 허리가 펴이고 이몸이 썩는것도 얼마간 낫게 해주었으니 그 뜨거운 동지애란… 그리고 매일 10여명씩 총살 당하려 마지막길을 가는 동지들에게도 옷을 두툼하게 입혀서 내보냈었다. 어느 하루는 나어린 교대생이 총살장으로 나가는것을 보고 가슴 아픔을 이기지 못해 《…내 동무들에게 다 인민군 전사복을 입혀서 복수의 길에 내세워주자고 했더니 가슴이 아프구만…》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모두를 울린 일까지 있었다. 놈들이 다른 사식품단속은 덜하면서도 고가의 의약품 들여오는것만은 엄금하거나 도중에서 빼앗아 저들이 쓰는데 분개한 그는 부인이 면회왔다는 소리를 듣고 전번에 뭘 부탁한것이라도 있었던지 성급히 나가는것이였다. 한참후에 약간한 사식을 받아안고 들어오는데 왜 그런지 인상이 썩 씨원치 않았다. 묻는 말에도 잘 대답하지 않는것이였다. 그래서 황갑동이 의아함을 금치 못해하는데 가지고 온 사식품을 동무들 한가운데에 놓아준 그는 괴혈병이 제일 심해 자리를 일지도 못하고 한쪽에 누워 밤 깊으면 꿈에서도 어머니를 찾으며 《어무니! 나 비타민, 비타민 몇알만이라도 먹어보고 죽구퍼요.》 하고 헛소리를 치고있는 병약한 환자인 계동무에게로 가는것이였다. 량볼이 불룩한 그의 입에서는 사탕 빨탁지에 싼 밤알만한것 몇개가 나오는것이 아닌가. 갑동이랑 처음에는 고급사탕인줄로 알았었다. 그러나 아니였다. 《이건 동무들이 꿈결에도 찾는 그것이여. 도대체 비타민이란것이 무엇인지. 어서 이걸 먹고 젊은 친구 괴혈병이랑 건듯 나아서 일어나 싸워야제!》 이러면서 그는 자기가 입에 물고들어온 빨락지 약봉지들을 풀어 그속에서 콩알만한 노란 비타민들을 발가서는 환자들의 입에 넣어주는것이였다. 《입들을 벌려야 약들을 먹지. 아, 아- 입들을 벌려요. 계동무! 어서…》 《…》 오히려 울음이 쏟아져나오려는 입을 꼭 다물며 고개를 외로 돌려버리는 계동무의 꼭 감은 두눈가에서 점점 커지던 눈물방울이 여윈 량볼을 뜨겁게 적시며 흘러내리고있었다. 황갑동은 옆에서 코등을 시큰하게 만들어주는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이 너무 고와서 입에 물었던 사탕알까지도 꺼내여 물려준다는 소리는 들은적이 있다. 약이 바른 감옥에서 어떤 사람들은 모포를 푹 뒤집어쓰고 혼자서만 솔곰솔곰 녹여먹는 귀한 약을, 그것도 자기 입에 넣었던 비타민까지도 꺼내여 맥이 없어 일어나지도 못하는 동무의 입에 넣어주는 아! 이런 인간, 이런 동지가 우리 광주형무소에 함께 있구나!) 라근원의 안해 역시 아직 젊고 품성도 녀성적인 미모의 현처였다. 그 엄동설한에 형무소담밖에 천막을 치고 음식을 익혀서 들여보내주고 숱한 사람들의 옷까지 마련하여 입혀준 고마운 녀인, 그 녀인은 어떻게 하던지 남편을 살려보려고 순천에서 광주까지 매일같이 오르내리면서 살림 팔고, 집 팔고 나중에는 시아버지의 유산인 염색공장까지 팔아서 마련한 돈을 가지고 판사, 검사네 집으로 통하는 길을 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판사집 식모를 하는 김순자라는 한 녀자를 알게 되였다. 라근원의 안해는 여러번 찾아가다나니 면목을 익힌 김순자녀성의 도움을 받아 적지 않은 돈을 그 판사에게 찔러주면서 남편을 구원하자고 해도 안되자 그만 절망상태에 빠지고말았다. 용모 곱고 순진한 녀성은 고작 생각했다는것이 자기가 대신 죽으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까지 하게 되였다. 하루는 면회온 안해가 여느때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이 《여보세요. 이제 인차 사… 사형이 내릴거라고 하드만요. 당… 당신이 가고 나만 살아선… 차라리 저 같은것이 죽고 당신이 살아남아야지요.…》하는것이였다. 그러자 라근원은 한참동안 허파에서 소리가 나도록 웃고나서 정색하여 말했다. 《뭐 머시라고?》 《그… 그렇게 해서 당신만 구원될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혹시 그리해서 당신만 어떻게 살아나오시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것이오니 그… 그땐 저를 갖다가 우… 우리 처음 만나던 고향 뒤산 대나무밑에다가 무… 묻어주신다면 전 죽어서라도 기… 기쁘겠어요… 흐윽-》 《여보, 그런 철없는 소리 마오. 당신이 그런다고 놈들이 그말을 들을리도 만무하고 또 설혹 당신 말대로 당신이 죽고 내가 살아선 뭘하겠소. 난 죽음이 두렵지 않소. 그저 투쟁을 더하지 못하고 가는것이 한스러울뿐이요.》 《여보오, 그럼 어쩌면 좋아요?-》 안해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처를 돌려보내고 들어온 라근원은 벽을 마주하고 앉아 혼자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안해의 그 소박하고 진실한 말이 더 가슴에 파고드는것이였다. 그 다음날 지리산의 선전부장이였으며 전쟁시기 도군사동원부장이였던 라근원은 자기가 신고있던 신까지도 다 동무들에게 벗어주고 맨발로 웃으면서 떳떳이 사형장으로 나갔다. 동지애의 화신이라고도 할수 있는 귀중한 전우! 그는 그렇게 갔다. 정직하고도 깨끗한 마음으로 끝까지 통일혁명의 길을 곧바로 걸었던 불굴의 감옥투사들이였으며 아름다운 인간들이였던 빨찌산의 명의 최의사와 전 인민군소좌 심동섭이 그리고 지리산의 말이 적은 선전부장 라근원! 그들은 모두가 감옥속에서도 피는 꽃이였다. 영원히 사그러지지 않는 어둠속의 불꽃이였다. 그 세사람의 귀중한 전우들까지 보내고 난 이후부터 황갑동은 입이 더 무거워지고 대신 생각이 많아졌다. 아직도 다 흘리지 못한 눈물이 그대로 어려있는상 싶은 그의 두눈가에는 진실한 인간 전우들인 세 동지의 모습이 떨어지지 않고 그냥 매달려있는듯 늘 서글픈 상념에 잠겨있군 했다. 왜 그토록 아무 동요도 아무 후회도 없이 웃으면서 선렬들의 뒤를 따라 갔겠는가. 그것은 이미 지리산전투들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수많은 전우들의 그 고결한 넋을 이어가기 위해서였으리라. 말하자면 통일혁명의 성전에 자기 생을 바치고 간 사람들의 넋이 뒤에 남은 사람들에 의하여 내리내리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고결한 넋으로 살아 영생하지 못하기때문이리라. 희생된 동지들의 불타는 혁명정신, 고귀한 넋을 피로써 이어받는것, 바로 이것이 뒤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무겁고 신성한 의무가 아니겠는가고 황갑동은 생각했다. 그래서 혁명동지들과 고별할적마다 그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군 하는지도 모른다. 하루는 그 어떤 깊은 명상에 잠겨있는 갑동에게 김주호가 의아히 물었다. 《요즘엔 혼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군 하시오?》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인간에 대하여,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좀…》 《인간의 아름다움이라?》 《…저는 산에 있을 때는 물론 여기 감옥에 들어와서까지도 느껴지는것은 그 어떤 환경에서든지 착하고 참되게 살려고하는 인간상들이라고 할가요… 김주호선생도 꽃을 사랑하시겠지요?》 《꽃뿐이겠습니까. 온갖 수목들을 다 사랑하지요.》 《그래요. 그럼 제 한가지 물어볼랍니다. 왜 산과 들에 피는 갖가지 꽃들이 제마끔의 아름다움을 다투고있는것은 물론이고 이 자연의 수목들도 다 자기의 독특한 모양새와 자기딴의 풍치를 나타내는것은 무엇때문일가요?》 《글쎄 그전에 중학교에 다닐 때 생물시간에 배우기를 봄 여름내 수만 꽃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곱게 활짝 피여나는건 다 자기에게로 벌과 나비들을 부르기 위해서라고 했었는데…》 《그렇다면 아직 벌나비도 나기전 이른봄에 활짝 피였다가 지고마는 아름다운 진달래나 개나리, 살구꽃들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될가요?》 《듣고보니 그렇구만.》 《꽃만이 아니지요. 절벽가의 락락장송은 장송대로, 그늘이 한 동네를 다 덮는 늙은 느티나무는 느티나무대로, 소소리높이 자란 백양나무는 백양나무대로, 사시장철 푸르게 곧게 자란 대나무는 대나무대로 산야의 수목들모두가 다 제 아름다움을 펼쳐보이려고 애쓰는게 아니겠어요?》 《그럴가…》 김주호는 그의 말에 끌려들었다. 《저는 그 생물인 꽃들과 나무들속에는 어떻게 하던지 자기를 남보다 못지 않게 곱고 멋진 모양으로 단장하여 당당히 자연계의 한 존재로 내세우려는 아직 우리 인간들이 알지 못하고있는 그런 특이한 성질, 독특한 속성이 숨어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군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럴듯한 말이요. 나는 인간들도 마찬가지의 속성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하오. 한갖 말 못하는 꽃들과 수목들도 단순히 자기에게로 벌나비들을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따뜻한 열과 빛으로써 키워준 저 하늘의 태양을 향해 저마끔 자기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꾸어 보여주려는것이 아니겠소. 하물며 리성을 가지고있으며 자기 생을 남못지 않게 아름답게 장식하고싶어 하는 훌륭한 속성을 가지고있는 우리 인간들이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르고 살며 자기를 따뜻이 품안아 혁명가로 키워주며 애국의 길로 이끌어주는 운명의 태양이신 수령의 은혜를 잊고산다면 그것을 어찌 참된 인생이라고 할수 있겠소.》 《…》 《그렇기때문에 나는 늘 저 하늘의 해를 따르는 해바라기들처럼 그 언제나 우리 장군님만을 따르며 민족의 태양이시며 통일의 구성이신 김일성장군님앞에 자기를 떳떳한 전사로 세우기 위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도 변심없이 살며 투쟁하는 사람만이 참된 전사, 훌륭한 투사로 될수 있다고 생각하오.》 갑동은 그의 말에서 새로운 감명을 받고있었다. 《황동무, 나는 사람들의 추억속에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길이 새겨질 우리 최의사나 심소좌, 라근원동지들의 참된 삶을 두고 많은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중에서도 사람이 자기의 본래모습을 그대로 유지해나가기 위해서는 피를 바쳐야 하는 극단의 시기가 닥쳐온다고 해도 자기의 그 인간적인 진실성, 고지식성, 순결성 그리고 혁명가의 순수성, 고결성, 충직성을 그대로 간직한채 웃으면서 죽을수 있는 그런 사람이 진짜로 아름다운 인간이 아니겠는가고 생각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이 해빛도 스며들지 못하는 감옥속에서도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들이 아니겠소.》 (감옥속에서도 태양을 따르는 해바라기들!) 황갑동은 입속으로 이렇게 되뇌였다. 그러면서 그는 꽃과 나무의 생리에 대한 자기의 범속한 이야기를 가지고도 거기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해주며 자기를 언제 어디서나 태양을 향해 제몸을 세우고사는 장군님을 따르는 충성의 해바라기로 키우려고 왼심을 쓰는 그앞에서 머리가 숙어지는것이였다. 《주호동지! 참 좋은 말씀을 해주어 고맙습니다. 저도 앞으로 어두운 철창속에서도 오직 태양만을 따르는 남녘의 해바라기가 되겠습니다.》 《황동무의 그 말을 들으니 나도 기쁘오. 내 비록 시인은 아니지만 이 감옥속에서도 나날이 더 아름다운 인간들이 자라나는것을 보게되는 이런 날 세상에 대고 이렇게 소리쳐 말하고 싶구려.》 그는 그 어떤 시적흥분을 안고 이렇게 읊조리였다.
아, 너의 이름은 저주로운 감옥! 허나 감방속엔 캄캄한 어둠과 악만이 가득찼다고 생각지 말라 인간의 사랑 인간의 아름다움은 악보다 더 강하나니 악이 선을 결박하고 때려도 종국에는 선이 악을 징벌하여 력사의 오물통에 넣어 청결을 하는 곳 이 세상에서 가장 어지고 가장 순결하고 가장 아름다운 인간들이 새로 태여나는데가 오, 바로 너 감옥이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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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2가사는 죽음의 감방이였다. 정전이 되자 놈들은 소위 후방의 공고화를 위한 지리산 《공비잔당》들에 대한 마지막소탕전을 벌리는 한편 여러 감옥에 갇혀있던 비전향수 정수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척결과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하였다. 정세변화에 따라 광주형무소의 당국자들은 특히 제2가사의 로동당원들에 대한 사형을 서둘렀다. 이 시기에 와서는 하루에 여러명씩 데려내다가 총살하군 했다. 황갑동은 산에서도 같이 싸웠고 감옥에 들어와서도 생사고락의 운명을 같이 했던 금싸래기 같은 동지들과 매일이다 싶이 고별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오늘은 밖에서 책을 가지고들어와서 정치경제학, 철학제강을 짜가지고 2가사동지들을 위해 그리도 헌신적인 노력을 바쳐가던 충직한 전우인 박동호와도 고별을 해야 했다. 사형장에 끌려나가기전에 그는 황갑동이를 조용히 불렀다. 《황동무, 그새 많은 도움을 받았소. 헤여지게 되니 남기고갈것이 하나도 없구려. 이건 학습자료요.》 이런 때를 미리 예견해서 그랬던지 그동안 깨알 같은 글씨로 가득 채웠던 손안에 드는 작은 수첩을 그에게서 받아든 황갑동이의 가슴은 뭉클해왔다. 그는 그만 목이 꺽 메여와 석쉼한 소리로 말했다. 《박동지, 먼저 가십시오. 저도 재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니 별로 살 생각은 않고있습니다.》 《하기는 이 광주감옥에서야 삶과 죽음의 차이가 종이 한장이지요. 생이 아니라 죽음을 베고자다가 아무때나 <염라국>에서 부르면 일어나 저승으로 가야 하니까, 내 먼저 무등산에 가서 자리를 잡을테니까 천천히 오시오. 천천히… 헛허허.》 그는 소리내여 껄껄 웃었지만 황갑동은 눈물이 나왔다. 《박동지… 잘 가시오.》 이렇게 한사람 또 한사람 동지들이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날 밤에는 뜬눈으로 지샜다. 비여있는 잠자리에 손을 가져갔다가도 떨리는 손바닥에 만져지는 상실의 아픔과 서글픈 공허로 가슴이 뻐근해오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전번에 있었던 《치약사건》때 받았던 심한 고문과 독감방안에서 겪었던 모진 신고로 하여 몸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김주호의 병세가 갑자기 더 심해져가기 시작했다. 그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던 놈들은 그 《치약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악심을 먹고 치료대책은 커녕 약 한알도 주지 않았다. 몇술 주는 콩밥도 모래알을 씹는것 같아 바로 삼키지 못하는 그에게 죽 한그릇 쑤어다주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 가뜩이나 고문에 시달릴대로 시달리고 병약해진 그의 병세는 점점 기울어져가고있었다. 그러한 상태에 놓여있는 동지를 옆에서 속수무책으로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황갑동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이럴 때 최의사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감방의 앓는 동지들을 위해 자신의 헌신적인 노력과 함께 생명까지 깎아서 바치며 치료해주군 하던 그도 이미 지금은 곁에 없는것이다. 갑동은 놈들이 주는 얼마 안되는 물에 만 콩또래가 섞인 밥을 손수건에 싸 쥐여짜서 그의 입에 넣어주기도 하면서 환자의 곁을 떠나지 않고 간병을 해주고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에 감방내 환자에 대한 치료대책을 요구하는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 지는데 당황해서 그랬던지 담당간수가 와서 김주호가 의사의 치료를 받게 해주겠으니 준비하고있으라는것이였다. 말은 곰살궂게 하지만 그자의 얼굴에는 심상치 않는 살기가 내비치고있었다. 갑동은 놈의 낯짝에서 불길스러운 징조를 읽으며 내심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얼른거리는상 싶은 병자자신도 드디여 자기의 운명에 결정적인 마지막시각이 닥쳐오고있다는것을 예감하는것 같았다. 그는 자기의 몸을 일으켜 앉혀주는 황갑동이의 손을 잡고 입가에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하는것이였다. 《너무 걱정들을 마시오. 치료를 해주겠다니 그래도 알겠소. 무슨 약이라도 좀 주겠는지. 내 치료를 받고 이내 돌아오리다.》 《주호동지, 조심하십시오. 저는 놈들의 눈치가 암만해도…》 김주호는 그 말뜻을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약간 끄덕여보였다. 그는 복도의 놈들이 듣지 못하도록 낮은 목소리로 갑동에게 말했다. 《혹시 나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겨 내가 살아서 다시 이 감방으로 되돌아오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더라도 옆방의 우리 당원동지들에게 내가 죽었다는걸 알리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없더라도 당세포사업을 황동지가 대신 맡아서 끝까지 잘해주시오. 특히 그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절대로 동요하지 말며 심소좌가 부탁한대로 학습을 한시도 끊지 말고 계속하도록…》 《알겠습니다. 주호동지!》 이때 복도에서 《야, 그안에서 뭘 쑹얼대는거야? 김주호, 빨리 나왓!》 하고 간수놈이 눈을 부라리며 웨쳐대는 소리에 갑동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킨 김주호는 감방전우들에게 마지막으로 될지도 모를 고별의 눈인사를 보내고나서 철창문쪽으로 향하였다. 그가 감방에서 끌려나간후 황갑동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조이며 전우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잠간이면 치료받고 돌아온다던 그가 웬일인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근심속에 하루해가 지고 작은 뙤창으로 어스름이 밀려들어 갑동이의 가슴속에 무거운 울기를 채워주던 그날 저녁때가 되여서야 김주호가 돌아왔다. 그래도 갈 때에는 제발로 걸어서 웃음을 보이며 나가던 그가 반시체가 되다싶이하여 복도로 질질 끌리여오는것을 본 갑동은 그만 경악을 했다. 옥졸놈들이 철문을 따고 실신상태에 있는 그를 짐짝처럼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달아났다. 한 감방안에서 지내던 전우들이 땅바닥에 정신잃고 쓰러진 그에게로 욱 모여들었다. 병치료가 아니라 이 견결한 옥중투사가 죽기전에 《전향서》를 받아내기 위해 놈들이 마지막고문을 들이댄것이 분명했다. 그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심한 병으로 죽어가고있는 사람에게까지도 이런 악착한 고문을 들이댄 악귀같은 자들에 대한 치솟는 분격으로 갑동은 치를 떨었다. 《주호동지, 주호동지- 정신을 차리시오. 정신을…》 황갑동은 안타까이 두손으로 그를 잡아 흔들어깨우려고 했지만 김주호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갑동은 심동섭소좌가 사형장으로 나가면서 자기에게 입혀주었던 그 솜저고리를 급히 벗어 차거운 땅바닥에 펴놓고 김주호틀 옮겨다 눕혀주었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에 귀를 대고 들어보았다. 겨우 실오리처럼 가느다란 심장의 박동이 알리였다. 그를 어떻게 하던지 다시 소생시켜보려고 인중에 침질도 해보며 마지막수단을 다 써보는 갑동이네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지 한참후에야 주호의 입에서는 신음소리 같은것이 흘러나왔다. 《물… 무을…》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나서 가슴타는 갈증을 이기지 못하여 마지막으로 꿈결에서처럼 물을 찾는 전우의 입가를 적셔줄 한방울의 물조차 없었다. 감방내 사람들이 간수놈들에게 물을 달라고 온 감옥이 떠나갈듯 소리쳤다. 간수는 어쩔수 없어 물을 가져왔다. 갑동은 주호의 몸을 반쯤 일으키고 물그릇을 입에 대주어 마시도록 했다. 물을 마시고 한동안이 지나서 김주호는 간신히 눈을 떴다. 자기를 둘러싸고있는 감방동지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여겨보며 가물거려지는 기억의 실마리를 잡으려고 애쓰는상 싶던 그의 눈길이 눈물범벅이 된 황갑동이의 낯에 가서 멎었다. 《황… 황동무, 나… 날 좀 일으켜… 내 몸을 북쪽을 향해… 위대한 장군님 계신 저 북녘을 향해… 일으켜세워주오.》 황갑동이와 동지들이 모여들어 그를 부축해 북쪽으로 나 있는 뙤창을 향해 세워주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하나하나 반짝이기 시작하는 쪽빛하늘, 저 북녘하늘을 우러러보며 친근하신 어버이장군님의 영상을 그려보는것인지 금시 생명의 불이 꺼질듯 싶던 김주호의 얼굴은 뜨거운 흠모의 정으로 불타오르고있었다. 그는 낮으나 근엄한 어조로 열렬히 그이의 존함을 불렀다.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 그립습니다. 보고싶습니다. 민주건설의 나날… 우리 신문사에 찾아오시여… 불타는 섬, 제주도인민항쟁을 집중편집한 특간호발행계획안도 보아주시고 제가 쓴 사설원고도 친히 보시며 가필까지 해주시던 어버이장군님의 자애로운 그 영상을… 가슴에 안고 저는 갑니다. 저는 살아도 장군님의 전사… 죽어도 장군님의 아들, 조국의 자유와 통일을 위해… 장군님께서 부디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저희들은 이 남녘의 감방속에서 길이 축원하옵니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경모심으로 끓어넘치는 이 마지막말을 남긴 그는 입가에 한없이 순결한 미소를 머금은채 황갑동이와 전우들의 품에 안겨 운명하고야 말았다. 《아하- 주호동지! 부디 죽지 마시오. 죽지 마오- 우리 기어이 놈들과 싸워이겨 통일의 그날 장군님을 만나뵈오려 평양으로 같이 가자던 그 약속은 어찌하고 이렇게 먼저 간단 말입니까. 흐윽, 흑-》 황갑동은 가슴에 차오르는 피를 터치며 목메여 전우를 부르고 또 불렀다. 장군님께 충직한 전사로 통일혁명의 길에 나섰던 평양사람인 김주호는 이렇게 갔다. 황갑동이와 모든 감방전우들의 가슴마다에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열렬한 흠모와 뜨거운 추앙심을 심어주어 통일애국투사, 비전향수로 이끌어주고 해가 없는 이 어두운 감방속에서도 무성하는 해바라기들을 꽃피워주기 위해 애쓰던 김주호! 그는 이렇듯 숭엄한 최후를 마쳤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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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백정들의 살인은 계속되였다. 미제의 충견 리승만매국매족 반역도당의 무법적인 무차별 학살에 전라남도 광주감옥 2가사 220명중에 전 인민군소좌 심동섭이를 비롯하여 교대사건과 관련하여 잡혀들어왔던 20여명을 포함하여 200여명이 총살되였다. 정말이지 그때 2가사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모두가 불굴의 의지를 가진 통일혁명의 보배들이였다. 금싸래기보다 더 귀중한 민족의 참된 아들들이였다. 2가사에 처음부터 같이 있던 사람들중에서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것이 윤택수와 편석만이 그리고 황갑동이 등 몇명뿐이였다. 윤택수나 편석만은 괜찮게 지내는 부모들의 덕도 입었겠지만 아직 열일곱살밖에 안되는 미성년들이라 살아날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아직 살아있는가? 황갑동은 풀길 없는 의혹심에 잠기였다. 자기는 어디 돈의 구원을 바랄데도 없는 사람으로서 집에서는 알지도 못하고있었다. 빨찌산투쟁경력으로 보나 감옥에 들어와서의 활동정형으로 보나 놈들이 누구보다 먼저 없애버렸겠는데 어떻게 되여 아직 살려두는지 알수가 없는것이였다. 살아있는것이 께름직하고 지어 희생된 동지들앞에 죄를 지은것만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어쨌든 그는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광주감옥 4사 4방으로 옮겨가게 되였다. 가보니 4방에는 시체가 방의 절반이나 차지하고있었다. 미처 처리를 못해서 쌓인 시체라는것이다. 감방장이라는 자가 첫마디부터 거칠게 묻는것이였다. 《당신은 형기가 얼마야?》 《무기형이요.》 《헝, 무기형? 감옥밥을 이 방으로 한방은 먹어야 나가.》 황갑동은 이 감방 수인들이 로골적인 의심과 멸시감을 가지고 자기를 대한다는것을 선뜻 느낄수 있었다. 거기다 차양진의 빈정대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허, 세상에 놀라운 일도 다 있지. 염라국의 사자가 데리러왔을 때 명단을 헛갈려 불렀던지 이 역시 기상천외한 일이요. 하긴 기적이란게 있으니까. 모두 죽어나가는 그 사지판에서 용케 살아났으니 축하헙니다요, 황선생.》 《…》 《당신이야 원래 땅과 돈이라면 제일로 증오하고 실제로 빈자인 농촌프로레타리아라니까 나처럼 할수없이 금력의 힘을 빌린건 아닐테고 그 무슨 불여시(불여우)의 꼬리를 가지지 않은 이상 혼자 살아날수 있었던 그 비결이 대관절 뭐요? 본래 황선생이야 고지식하고 정직한 축에 드는 사람잉께 어디 한번 감방동지들앞에서 석연하게 설명을 하여 납득을 시켜줄수는 없겠소? 그러지 못한다면야 거기엔 다른 내용이 있다고 생각할수밖에는…》 거기에 답변을 줄만한 말을 만들어낼수 없는 난감한 처지에 빠진 갑동이 대꾸했다. 《그건 아무렇게나 생각들 하시오만 내 량심만은 청백하다는걸 알아두시오!》 《그 량심의 청백성이 우리한테는 보이지 않아서 그러는거요. 바로 그걸 동지들앞에서 증명하란 말이요. 증명을! 그러지 못하는 한에 있어서는 외딴 사내의 품에 들었던 계집을 데리고자는것 같고 오강뚜껑으로 물을 떠마시는것처럼 호상 께름직해서 어디 같이 한방에 있겠소.…》 《…》 아직 대학시절의 학생기분이 농후한 사람으로서 한때 남조선혁명의 고조기에 흥분에 들뜬김에 투쟁대오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감옥생활의 곤난과 시련에 부닥칠 때마다 가끔 동요하기도 하는 차양진이, 자기의 결함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남의 약한데를 잘 찾아내듯이 그는 누구의 자그마한 허점과 결점이 나타나기만 해도 그 면전에서 박살내듯 하는 그런 류의 인간이였던것이다. 차양진은 점점 더 빠져나올 길 없는 궁지에 몰려드는 갑동에게 아픈 비수를 박아 비틀다 싶이했다. 《그것도 보통죄수라면 말하지 않겠소. 지리산의 제노라 하던 선요원 련락과장이랍시고 겸손한체 하면서도 은근히 도고하고 오직 자기만이 철저한것처럼 원칙성의 칼날우에라도 올라설듯이 날치면서 우릴 보고 뭐라고 했소. 동요분자라느니 위험할 땐 저 혼자만 살려고 몸을 도사리는 왕달팽이니 뭐니 하면서 모욕하던 당신이 아니였소. 그러던 당신이 저만 살아나올 구멍수를 팠으니 지리산의 덴덴무시무시, 더럽고 께끈한 풀달팽이란 말이요. 그것도 아무데나 척척 들어붙는…》 《여보시오- 사람을 인신공격을 해도 분수가 있지 한번만 더 지껄였다가는 가만두지 않을테요 》 황갑동은 울분에 차 웨치기는 했으나 거기에는 힘이 없었다. 자기의 지조를 인정시키고 자기의 순결성을 정당화할만한 론거를 내놓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는 처음으로 살아남았다는것이 오히려 불행으로, 수치로, 모욕으로 되며 고통으로 되는 그런 욕된 삶이 있다는것을 슬픔을 가지고 체험했다. 이렇듯 헤여나올수 없는 깊은 심연속에 빠져 헤매이는 그에게 동지적인 구원의 손길을 내려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소년죄수라고 할수도 있는 4방에 함께 넘어온 윤택수였다. 왜 그러는지 아까부터 털어놓고 말은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서 한쪽에 앉아있던 17살의 매우 순진한 사춘기의 청년이라고 할수 있는 그가 드디여 무겁게 닫겨있던 입을 열었던것이다. 《저… 제가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아무래도 호상 오해도 없고 의심이 풀리도록 여기서 말씀드려야 할가 봅니다. 일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것은 다 제가 한짓입니다. 이건 본인인 황선생님도 여직까지 모르고있는 사실인데요. 모두 알고있다싶이 이 선생은 너무 고정하다봉께 다른 사람들은 다 집에 여러번 기별을 띄워 식구들이 면회도 오게 만들고 어떻게 살아나갈 방도도 같이 모색들을 하는데도 부처님처럼 두눈을 딱 감고 벽에 등을 기대이고 앉아서 한숨만 쉬는게 아니겠어요. 우리가 다 옆에서 보기 민망해서 편석만이하고 둘이서 왜 선생은 고향에 어머니랑 고숙서껀 두루 친척들도 있다면서도 통 기별치 않습니까. 그래도 알겠습니까. 무슨 살 방도가 나지겠는지… 하면서 아무리 권유를 해도 전혀 움직이지 않더군요. 그래 할수없이 제가 생각다 못해 저 편석만이와 짜고서 황선생이 살던데를 귀동냥해 들은적이 있던지라 두세번 거듭 편지를 띄웠더니 글쎄 고숙모님한테서 두루 준비를 해가지고는 어머님 모시고 면회오겠다는 회답이 오지 않았겠습니까. 얼마나 반갑던지요.》 4방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며 그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래서? 다음은 어떻게 됐나?》 《그때로부터 얼마후 정말로 늙으신 어머님 모시고서 고숙이 2가사로 면회를 찾아온게 아니겠나요. 그때로 말하면 이미 광주의 벽돌집 재판장에서 1차 판결을 내렸던 사람들까지 다시 공판에 넘겼을 때였으니까 일체 면회는 거절이여서 그 먼데서 왔다가 만나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섰던것 같습니다. 저도 그후에 면회 왔던 누님한테서 들은 소린데는요 그때 어머님과 고숙모되시는분은 어떻게 하던지 아드님, 조카님을 살리려고 살고있던 집이며 가산이고 얼마 안되는 땅까지도 다 팔고 그렇게 해서도 모자라자 려수에선가 바다가에 어물상을 펴놓고있는 맏매부한테 가서 장사밑천까지 다 모아가지고 와서 마침 2차 공판이 있기 직전에 판사, 검사를 만나 돈을 찔러넣어주면서 사정사정했다는게 아니겠나요. 어머니와 고숙모에게서 사형판결 직전까지도 고향의 부모친척들에게까지도 자신이 여기 감옥에 갇혀있다는 기별 한장 띄우지 않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은 검사까지도 좀 감복이 되였던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되여 황선생님은 자신도 모르게 뜻밖에도 사형으로부터 무기형으로 내려앉아 살아나게 된거랍니다. 저희들은 그래놓고도 선생님이 자기가 떳떳치 못하게 어렵게 지내는 부모형제 자매들의 피눈물에 얼룩진 그 돈의 덕분으로 살아나게 된걸 알면 버럭 성을 내며 마음 편치 않아 할가 보아 말도 못해주고 끙끙거리고만 있다가 오늘은… 황선생님, 말도 하지 않고 철없는 저희들이 저지른 일을 용서해주세요.》 그의 말을 들으니 여러가지로 눈물이 나는 황갑동이였다. 말없이 두눈만 슴벅거리던 그는 나이는 아직 어리지만 감옥생활에서 철이 일찌기 들어 속궁냥이 깊고 마음이 뜨거운 기특한 청년들인 윤택수와 편석만이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4방의 사람들이 서거나 앉은채로 그 부모형제들의 뜨거운 혈육의 정과 감방내 어린 동지들의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저승길에서 되살아온 고지식한 사나이인 황갑동이 있는데를 향해 선망어린 박수들을 보내주는것이였다. 황갑동은 눈물이 나왔다. 난처하면서도 다행스러웠다. 고마왔다. (아, 나에게도 진실한 동지들과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구나! 나에게도 변치 않은 뜨거운 사랑을 지닌 어머니와 고숙모가 살아있었댔구나!) 가까이에 친지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 순간 그의 눈앞에는 불현듯 가장 준엄하던 고난의 겨울에 식량이 떨어져 마지막으로 고향집에 찾아가서 만나보았던 어머니와 고숙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때 같이 고향마을에 내려갔다가 뜻밖의 가슴 아픈 일을 당하였을 때에도 어머니와 고숙모틀 용서해주어야 한다고, 그러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아리랑》을 불러주겠다던 강덕금의 웃는 얼굴이 떠올려지는것이였다. (남원수용소에 잡혀갔을 때 로영기의 말에 의하면 강덕금이도 그만 적들에게 사로잡힌 몸이 되였다고 했었지. 지금 어느 형무소에 감금되여있는지? 그때 내 말대로 그저 마을에 남아 지방공작이나 맡아서 했으면 좋았으련만 그 뚱뚱한 몸을 가지고 어떻게 빨찌산을 하겠다고 나를 따라 산으로 올랐담… 어디에 몸성히 살아있기나 한지. 아- 다정한 네 모습이 그리워지는구나, 보고싶은 내 고향의 잊을수 없는 녀동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