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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싹이 트지 못하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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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덕유산지구에 속한다. 덕유산은 1980고지인데도 적설량은 그보다 좀 더 높은 지리산보다 많았다. 그래서 두릅이 철을 모르고 훈훈한 깊은 눈속에서 피여났다가는 겨울의 혹한을 만나 그 이상 자라지 못하고 봄을 기다리고있었다. 덕유산기슭인 광주지대의 그해 혹심한 추위는 2, 3월까지 계속되여 헐벗은 수용자들을 괴롭혔다. 5, 6월에 접어들면서 날씨도 제법 훈훈해져 사래기를 펴는가 했더니 전년에 보기 드문 센 우박이 떨어져 또 한바탕 뜻밖의 란시를 겪어야만 했다. 그날 황갑동은 천막어구에 앉아서 때아닌 자연의 횡포에 음울한 눈길을 주고있었다. 수용소철조망밖에 있는 어느 한 농가근처의 탈곡장에서 북데기를 두발로 성깔스레 헤쳐주던 엄지닭이 갑자기 우박을 만나자 당황히 쫙 벌린 량쪽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듯 병아리들을 데리고 질주해오는것이 보였다. 그러다가 뒤놈 하나가 먼저 삐욕- 하고 얼음에 맞아죽자 돌아서 본다. 그러자 엄지를 따라 다른 병아리들도 몸을 돌리다가 또 한두놈이 우박에 맞아 넘어져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파득거린다. 이러다가 다 죽이겠다고 생각했던지 암닭은 병아리들을 뒤에 달고서 죽어라 하고 냅다 뛰여들어가는데 집마당에까지 당도하여 처마밑에 들어선 병아리들은 겨우 서너마리나 되겠는지. 안타까이 왔다갔다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엄지닭. 그걸 보느라니 어쩐지 불시에 어머니생각이 나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갑동이였다. (저 엄지닭도 우박속에서 제 새끼들을 다 품안아주지 못해서 그러는데 하물며 모성애를 가진 인간인 어머니로서 이 란시속에 자기자식들을 따뜻이 품안아주고싶은 마음이야 오죽하랴. 그렇건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던지 집에다 소식을 전하는데 이 불효자식은 어머님에게 기별 한장도 띄우지 못하고있으니 무정도 하지…) 집옆 등성이에 매여놓은채 주인들이 미처 풀어가지 못한 염소가 점점 더 커지는 우박에 맞아 매애- 애 하고 애처로운 소리를 지르며 안타까이 맴돌며 버드나무밑둥에 가는 바줄을 얼기설기 감아놓고는 그만 쓰러져 죽고야 말았다. 그 집 허청칸옆에서는 큰 돼지 한마리가 하늘에서 우박이 무섭게 쏟아져내리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먹을걸 내라고 주인을 야단스레 찾고있다. 금시 칼로 불을 까고 뜨물을 주어도 당장에 꿀꿀거리면서 먹어댄다는 그 먹새족속은 우리밖으로 두 앞다리를 걸치고 올라서려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주먹만한 우박 하나에 대가리를 얻어맞고 당장 죽노라고 꽤액-꽥- 아부재기를 친다. 그놈도 통무우를 썰어서 구멍들을 가지런히 뚫어 붙여놓은것 같은 들창코를 쳐들어 저 하늘을 원망해보는가? 그 어처구니 없게 만드는 어리석은 돼지가 노는 꼴을 토방마루의 고양이마저도 흰 수염을 쫑긋거리며 웃기라도 하는듯… 뉘집 말새끼인가는 벌름한 량코구멍으로 여덟팔자의 흰 수염을 씩씩 내불면서 점점 더 세차지는 우박속으로 두발뜀을 하면서 두개의 놋바리를 언 땅에 엎어놓고 두드려대는것 같은 일률적인 소리를 사방으로 휘뿌린다. 그런데 모두가 죽겠노라고 아우성을 지르며 살겠다고 뛰여다니는 이런 날 오직 하나의 집짐승, 저 들판의 둥굴이만이 자기를 얽맨 그 장바를 끊고 어디로 달아날 궁리조차 않고있었다. 처음엔 그래도 우박을 피해보려고 갈팡질팡하다가 지금은 앞뒤에서 련속 퍼붓는 우박덩이들에 대가리를 얻어맞고 머리가 다 뗑- 해졌는지 눈물 같은것이 질적하니 흘러내리는 큰 두눈을 꾹 감고서 꿈쩍 않고서 있을뿐이였다. 날카로운 하늘의 찬 얼음알갱이가 등가죽을 찢겠으면 찢고 돌덩이 같은것으로 머리를 치겠으면 치고 그저 죽이겠으면 죽여라 하고 대가리를 푹 숙이고 서있는 가련한 황소! 황갑동은 그 하늘의 무지한 횡포아래서 드센 우박을 피할 길 없어 하는 황량한 벌판의 황소에게서 모진 세월의 참상을 보는듯 했다. 어제는 일제의 악독한 채찍질과 지주놈들의 등쌀에 등가죽을 벗기였댔으며 오늘은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의 야수적인 탄압의 총칼밑에서 머리도 쳐들지 못하고있는 남조선농민들의 가긍한 모습을 그리고 거기서 총칼의 숲을 이룬 반혁명의 포위속에 들어 손발에 족쇄를 찬채 오도가도 못하고 온갖 치욕과 비인간적인 처우, 각종 무서운 고문에 묵묵히 시달리기만 해야 하는 여기 수용소의 수많은 수난자들과 함께 불우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처량한 모습도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서는 저 순한 소처럼 모든것을 참고 체념하고 가만 있기만 해서는 앉아서 죽으며 혁명을 위한 굴함없는 투쟁의 순간순간을 이어나가는 싸움속에만 마지막생의 노을을 빛나게 장식하며 승리의 새봄을 맞이할수 있는 참된 길이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것이였다. 옆에서 하나하나 굶어서 맥없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던 어느 날 저녁이였다. 황갑동이도 이러다가 여기 감옥에서 굶어죽은 귀신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맹랑한 생각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소리를 내고있는데 옆으로 누구인가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김주호였다. 그는 심상해 앉아 있는 황갑동에게 웃음을 보이며 조용히 말하는것이였다. 《황동무, 그렇게 맥놓고 앉아만 있지 말고 사람들도 배고파서 잠들지 못하고있는 때에 무슨 이야기라도 좀 해주지 않으려우?》 《무슨 이야기할게 있어야지요.》 《왜 지리산에서 싸울 때의 이야기라던가 잊지 못할 이야기들이 있지 않겠소.》 《지리산전우들의 투쟁이야기요?》 《그렇지요.》 황갑동이 역시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고 말할 맥도 없었지만 김주호의 입에서 《지리산》이라는 자극적인 말이 나오자 두눈에 생기가 돌았다. 순간 그의 눈앞에는 고향과 지리산에 대한 잊지 못할 지난 날의 가지가지 회억들이 되살아왔다. 그는 옆에서 기대어린 눈길을 보내고있는 김주호와 굶주림에 시달리고있는 감방안 사람들에게 힘이 될수 있는 이야기를 고르며 담담한 목소리로 추억담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마도 황갑동이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과 그리운 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회억들이 련결되여 있는 그 단편적인 쪼박그림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붙여놓으면 하나의 통일적인 큰 화폭으로서의 지리산이 될것이다. 갑동은 자기의 마음속에 표상이 된 그 그림들을 더없이 소중히 여기며 늘 뜨거운 그리움을 가지고 사랑했었다. 정녕 지리산은 그에게 있어서 집이였고 학교였으며 어머니와 아버지, 친척, 형제들을 대신해준 빨찌산 전우들과 혁명동지들의 따뜻한 사랑의 품이였다. 그것은 자기와 피를 나눈 민족이였고 인민이였으며 자기의 넋이 깃든 조국이였고 혁명이였다. 그리고 한번도 장가를 들어보지 못한 로총각인 그에게 있어서는 지리산이야말로 바로 그 애인의 자리를 차지하고있는 그 아무도 시새움할수 없는 깨끗하고도 진실하며 그지없이 신성한 사랑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쓰라린 지난 날의 추억이 가슴속에 밀물쳐오는 이 밤, 그의 눈앞에는 모조리 불타버려 봄이 와도 봄을 모르던 그 지리산의 시꺼먼 형체가 마치 무서운 환영처럼 다시금 떠오르는것이였다. 놈들의 지난 제1차 동기《토벌》의 무지한 불질에 의해 말그대로 《초토화》되였던 지리산은 그래도 겨울동안 깊은 눈에 덮여있을 적에는 그 흉상을 잘 몰랐었다. 그렇지만 그 기세가 자못 사나이답게 웅건하던 명산의 얼굴과 장대한 몸에 난 험한 흉터와 화상자리를 겨울내 감추어주던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모습이 불시에 달라졌다. 갑자기 지리산은 흰 산으로부터 온통 검은 산으로 일변하였다. 저기 제일 높은 천왕봉 아버지산도 까만 상복두루마기를 몸에 걸친채 우에만 아직 흰 백발을 흩날리며 울분에 차 눈아래의 불탄 산들을 굽어보는듯 싶다. 그 이쪽 녀인상인 반야봉 어머니산도 불탄 머리만은 차마 내보일수 없어 흰 두건을 쓴채 슬픔에 잠겨 서있었다. 그밖의 크고 작은 형제산들도 겉옷이 다 타버린 사람들 아니 얼굴이며 머리털마저 새까맣게 끄슬린 흑인아이 같은 모상으로 우울히 서있었다. 그 산들이 입이 없어서 그렇지 새삼스러운 놀라움을 가지고 서로 기막힌 정상을 바라보면서 《아이고매, 저 아버지산, 어머니산도 그리고 우리 형제산들도 모두 어찌하다가 한꺼번에 다 이리되였노?》 하고 두손을 부여잡고서 통곡을 터치는것만 같았다. 산꼭대기에는 거멓게 타버린 나무들만이 엉성하게 서있는것이 마치 산채로 화장당한 거인들의 잔해 같았다. 도대체 수천만년동안 살아있던 이 지리산을 통채로 죽여 자연의 큰 《시체》로 만들어버린것은 한갖 대재해였던가? 아니다. 그런것이 아니다! 그 거창하던 푸르름의 산, 수만 생명이 약동하던 이 조상의 산을 성냥 한가치로 다 불태워죽이고도 너털웃음치던 늙다리 로구가 있었으니 그는 살인자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악독한 자연의 살해자, 살아있던 지리산을 순간에 죽여 하나의 시꺼먼 시체로 만들어버린 지리산의 원쑤, 민족의 제일가는 원쑤인 미제와 그 앞잡이 리승만괴뢰역도였다. 그리하여 력사의 산 지리산은 인간악당들이 무고한 애국자들과 죄없는 자연에 대고 지른 그 류례를 찾아 볼수 없는 전대미문의 대화재로 말미암아 물마저도 타끓고 나무들은 물론 흙이며 바위돌들마저도 깡그리 불타버려 하나의 큰 숯덩어리들로 변하고말았던것이다. 그러나 겨울을 이겨낸 자연에 해마다 어김없이 가져다주는것은 소생의 봄빛이였다. 정녕 불 탄 산에도 봄은 오는것인가! 여기 지리산을 제일 먼저 찾아준것은 봄비였다. 보슬보슬 내리며 무슨 서글픈 사연을 속삭이는듯 지난해 초겨울 산불속에서 몸부림치며 타서죽은 일만수목들을 조상하기라도 하듯 슬픈 눈물 뿌리며 조용히 내리는가싶던 서글프고도 어주운 봄비, 그러더니 저 멀리 천왕봉쪽으로부터 마치 노호한 산속깊이에서 터져나오는것 갈은 우뢰소리가 웅글게 우르릉- 첫방을 터치며 소나기를 만들고있었다. 몇번 잘 그러며 번개질을 해대더니만 그쪽에서 시커매진 구름장을 타고 때아닌 봄소나기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은구슬알을 줄줄이 꿰여서 만든 가는 문발 같은것이 비풍에 펄럭이며 가로 날아오더니 좀 있어 물구슬이 굵어지면서 거대한 문장보 같은것이 무겁게 드리워 련속 진을 형성하듯 계속 밀려오군했다. 저 멀리 하늘끝에서부터 이쪽으로 먹장 같은 구름우로 쌍기통오토바이라도 달려오는듯 따따 따따 따타- 요란한 우뢰의 련속적인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물줄기들이 하나하나씩 터져나가는상 싶게 번마다 더 세차지는 비줄기, 비줄기… 번개치고 우뢰울고 홍수를 일으키고 벼락질하며 한바탕 불 탄 산의 대청소를 끝내고 난 봄소나기는 사태로 애매한 산을 아래까지 벗겨내리는 그 놀라운 일까지 하고야 직성이 풀리는지 숙어들었다. 그러더니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소나기가 조용히 잦아들었다. 좀 있어 하늘이 점차 희끔해지더니 푸른 색조를 띠기 시작했다. 마침내 면사포처럼 되여가는 구름속을 뚫고 한가닥 해빛이 새여내려오기 시작했다. 미구하여 봄비에 목욕을 하고 난 봉우리들마다가 청신한 기운에 넘치고 대기의 오염마저 깨끗이 씻어진상 싶은 지리산에 고운 쌍무지개가 비끼였다. 황갑동은 드디여 불 탄 산에도 봄날은 찾아와 오랜만에 지리산봉우에 건네놓인 그 칠색이 령롱한 쌍무지개를 말없이 바라보느라니 자연히 깊어지는 생각이 있었다. (자연에는 그래도 저와 같이 번개와 우뢰뒤의 깨끗한 청결도 있고 청신한 봄비가 안아다주는 소생의 희망도 있으며 세찬 소나기 다음의 지리산의 쌍무지개와 같은 더없이 아름답고 애틋한 정서의 흐름도 있지 않는가. 그렇지만 여기 이 지리산에 고의적으로 불질러 다 태워 나무고 짐승이고 사람이고 《초토화》해버린 그 불한당 같은 놈들에게야 동족상잔의 살륙밖에 무엇이 더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조국의 자연, 이 강산의 일목일초도 아끼고 사랑하는 자의 가슴속엔 애국이 자라고 혁명이 자라는것이지만 자기를 낳아준 자연에 우정 불지르고 사람잡이를 하는 그 인간야수들의 가슴속에서는 매국과 반동의 독초들만이 자라는것이 아니겠는가!) 봄비를 머금은 산천은 급격한 변화를 일으켜 며칠후에는 푸른빛을 띠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리산의 이해 봄은 류다른 봄이였다. 해마다 첫 봄비가 내리면 어김없이 죽었던 풀들이 거의다 살아났건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초목춘재생 인명사후무》니라. 초목은 봄에 다시 살아나지만 사람은 한번 죽으면 없다는 말이 여기서는 맞지 않았다. 새봄이 왔건만 잔디를 비롯하여 각종 풀이란 풀들마저도 그때 뿌리까지 다 깊이 타들어간탓인지 다시 살아나지 못했던것이다.… 나무들도 아직까지는 자기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 봄이 그 시험이였다. 자기의 가지끝에라도 꽃이 망울지고 새움이 터오르면 생명의 기별이 있는것이고 자기 가지에 꽃과 잎을 종시 피우지 못하면 그만으로 죽은것이다. 살아나지 못하고 만 숱한 나무들은 누가 옆에서 눕히여주는 이들도 없는지라 죽어서도 뻐텅 그 자리에 침울히 서있을뿐이다. 그것들은 무서운 불길속에서도 다시 새파랗게 살아나서 청록색치마저고리를 갈아입고 머리꼭대기에 꽃리봉까지 달고 봄나들이를 나서는 기분인 건너편의 싱싱한 꽃나무들을 부러웁게 바라보고있다. 어떤 오래 묵은 몇아름의 느티나무 한그루는 자기 둘레의 크고 작은 자식나무들이 그래도 살았다고 경쟁적으로 가지끝에까지 잎새들을 비끄러 매달고있는 그속에 그냥 서있다. 상기 자기가 죽은줄도 모르고 허허 소리내여 웃고있는것만 같은 그 늙은 고송의 눈물겨운 정상이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둔한 아픔으로 긁어내리는상 싶었다. 지난 한해 겨울을 그야말로 동토대의 북방족들처럼 산토끼털이나 개털, 집짐승털가죽등거리 하나에 의지하여 눈구뎅이집, 얼음집속에서 난 산사람들, 이 봄이 간고한 겨울을 이겨낸 그 사람들에게 가져다준것은 눈밑에서 돋아난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새싹들을 마음대로 뜯어먹을수 있는 자연의 혜택이였다. 그러나 그 싹만으로는 산에 있는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의 생명을 이어갈수가 없었다. 평소에 신다가 버린 가죽구두도 끓여 물을 마시고 다 먹고 버렸던 소뼈와 곰뼈 같은것들도 퍼렇게 이끼가 낀걸 벗겨 내여 작식대의 솥에 넣어 삶게 될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이 시기 빨찌산은 집단부락인민들의 식량방조를 거의 기대할수 없었다. 농민들자신이 굶주리고있었으니 유격대에 대한 식량보급에 대하여 머리를 돌릴수조차 없는 형편이였던것이다. 지난 동기《토벌》의 타격에서 받은 상처는 세월의 송진으로써도 이내 아물릴수 없는 심각한것인데다가 비관주의자, 동요분자들이 생겨났으며 투항주의자, 변절자수자들이 속출하여 하나의 변절자부대인 《보아라부대》까지 생겨난 상황이였다. 이 시기 적들이 투항을 권고하는 삐라들에는 미인라체사진이나 추잡한 남녀관계를 그린 눅거리춘화들까지 나타났다. 돈에 매수된 미녀들이 《로자 룩셈브르그》나 《쟌 다르크》의 탈을 쓰고 투쟁대오내에 침투하여 군정간부들의 넋을 마비시켜 그들을 경찰서나 헌병대로 홀려가기 위한 부식공작도 악랄하게 벌렸었다. 이 모든것은 지리산을 인간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절해고도의 외딴 세계로 만들어버려 철저히 봉쇄질식시키기 위한 대살인광대극이였다. 이런 어려운 조건에서 전쟁이 일어나던 그해 봄의 식량고생은 극단에 이르렀다. 맨 흙덩이라도 집어먹을 형편인데도 황갑동은 딱 한가지만은 입에 붙이기가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개구리알을 삶으면 좀 독성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엔 단백질도 많고 기장밥처럼 풀기가 있어 차분차분한게 맛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들 했다. 그런데 그만은 그 찐득찐득한 별난 음식물이 목안에 와닿는 감촉만 느껴도 몸이 섬찍해오군 했다. 눈앞에서 금시 수많은 올챙이새끼들이 와글거리는것만 같고 그걸 삼켰다가는 입안에서 개구리소리가 나올것만 같은것이 굶으면 굶었지 좀체로 먹을수가 없었다. 그때 리옥순, 문복순이 군부에서 작식대공작을 하고있었는데 덕금이는 다른 사람도 그렇지만 송기떡만은 그런대로 잘 먹군 하는 자기네 과장을 생각해서도 그들과 함께 매일 열성적으로 송기 뜯으려 산으로 오르군 했다. 지휘부에 와서 재봉대일을 돕고있던 진주댁 별이도 허기진 몸으로 어린애를 업고 작식대일을 거들군 했다. 콩단만한 솔껍질 두단을 벗겨와야 하루식량이 되였다. 매운 재물에 송기를 넣고 세시간이상 끓인 다음 호들호들해진것을 건져내여 강물에 헹군후 돌우에다 놓고 방치로 두드린다. 그리고는 또 물에 씻어내군 한다. 저녁이 될 때까지 이런 공정을 여러번 되풀이한다. 좋기는 시간과 여분이 있어 하루이틀 푹 물에 우려내면 송진기운이 다 빠진다. 이렇게 해서 맨걸 씹어도 그리 쓰고 텁텁한 맛이 없을 때 좀 새파랗게 된것을 쌀겨를 섞어 죽을 쑤던가 송기떡을 만들군 했다. 이것이 지리산의 일등 음식이였다. 그런데 풀죽이나 송기떡 같은것은 싱거운대로 참고 먹을수도 있었지만 산채나 산나물국 같은것은 소금이 없으면 목구멍으로 잘 안넘어갔다. 간혹 황갑동이네 련락원들이 지방공작 나갔다와서는 괴춤에 차고 다니는 주머니속에서 비상용소금을 몇알씩이라도 꺼내여주고 가군하였다. 그러면 식사때 여러사람들이 빙- 둘러 앉아서는 소금 한알을 가지고 순번으로 한번씩 혀끝에 살짝 대여보고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군하였다. 그야말로 목안에 털이 날 지경이여서 그렇게만 해도 한결 나았다. 소금이 금보다 더 귀하다는 소리를 그래서 하는것 같다. 이 소금과 관련하여 웃지 못할 하나의 기막힌 일화까지 생겨났다. 대개가 15, 16살의 소년들로만 구성된 《불꽃중대》중에는 화전민의 아들로 열네살에 입대한 본명은 김해수, 가명은 혁동무라고 불리우는 꼬마대원 하나가 있었다. 소년이 얼마나 참하고 령리했던지 어른들과 똑같이 보초서는것도 정확하고 정찰도 잘해왔으며 치렬한 전투때에도 시체속에서 살아나오기도 하고 모든데서 건전하고 모범적이였다. 매사에 정확하고 원칙적이며 비판도 날카로운 차돌 같은 친구로서 열다섯살에 분대장으로부터 시작하여 소대장을 거쳐 중대장까지 하면서 수많은 전투공적을 세운 동무였다. (그는 6.25이전에 벌어졌던 그 유명한 의령전투에서 대승하고 돌아오던 길에 적탄에 가슴을 맞고 열여섯살에 장렬한 최후를 마친 청년이다.) 바로 그 김해수가 소금 한알문제를 가지고 자기보다 나이가 퍽 우인 대원을 비판하여 짭짤한 맛을 보인 일이 있었다. 《…나 한가지 호상비판 할랍니다. 변동무에 대하여 과학적인 자료를 가지고요. 날자는 어제, 장소는 야외식당에서, 시간은 저녁식사시간입니다. 모두 둘러앉아서 소금 한알을 가지고 조금씩 맛을 보아가면서 산나물국들을 먹드랬는데 유독 변동무만이 그 소금알을 혼자 입에다 넣고서 오래동안 옆사람에게 넘기지도 않고 쫄쫄 그냥 빨고있었는데 그랑하면 됩니껴. 옆의 다른 동지들생각도 해야지요. 녀성동지들도 있는 자리에서 그게 뭡니까? 자기만 오래 빨면 다른 사람 빨것이 적어진다는게야 뻔한 사실 아닙니까? 소금 한알이 커서가 아니라 그 작은 소금 한알에 비껴진 유격대원으로서의 도덕과 량심에 관한 문제이기때문에 좀 비판주는겁니다. 고치씨오!》 《아… 알겠구만이라. 제가 그만 제 생각만 하다보니…》 변동무는 그만 얼굴이 홍당무빛이 되였다. 아마 그는 소금 한알때문에 꼬마에게서 받았던 빨찌산식의 짧고도 맵짠 비판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을것이다. 이렇듯 거짓이 없이 쌀 한알, 소금 한알이 심각한 문제로 되고있던 어려운 시절, 사람들은 한결같이 춘삼월이 되면 자비롭고 풍만한 대지가 불쌍한 생령들을 기아에서 구출해줄것이라고 믿었지만 봄도 아사를 없애지는 못하였다. 유격대원들과 그곳 인민들은 근거지시절에 사람들이 애써 일쿠어놓았던 크지 않은 밭들에 황갑동이 농사군은 죽어도 씨종자만은 베고 죽어야 한다면서 어디 땅속깊이에 파묻었던 보리씨를 꺼내주어서 파종하였다. 그런데 처창즈의 봄에 그런 일이 있었다더니 여기서도 오늘 씨를 뿌리면 하루나 이틀이 지나기전에 그 씨를 다 파먹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씨뿌림이 끝난 밭들에 어른들을 나가 지키게 했더니 이번에는 그 보초들마저도 주림을 참지 못하여 사람의 눈을 피해가면서 씨앗을 파먹는다는데는 속상한 일이였다. 농산까지 책임을 맡아보던 황갑동은 생각다 못해 제일 깨끗하고 원칙이 강하며 정직하기로 소문이 난 김해수네 소년병들을 시켜 엄중단속을 하도록 했다. 그런 기아속에서도 사람들은 밭고랑을 기여다니면서 첫김을 매였다. 맨 손이나 나무꼬챙이로 풀을 잡아 뽑고 땅을 우비다가도 그 자리에 쓰러지고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손톱끝이 다 모지라지도록 흙을 맸다. 보리는 검푸른 색을 쓰며 씽씽 잘 자라올라 보기만 하여도 마음에 좋았다. 두벌김까지 매고나니 탐스러운 보리이삭들이 패기 시작했다. 먹지 않고 그저 보기만 하여도 배가 부를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이란 어디 그런가. 아직 속살은 전혀 없고 맹물이 좀 들기 시작하는 보리이삭들에 손대기 시작한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걸어다닐 기력조차 없어 밭고랑에 엎드린채 간신히 보리대를 후려 당겨서는 한알 두알 입에 따넣고는 질겅질겅 씹어 그 단맛이나마 즐긴다. 한번은 사람이 뒤로 다가오는것도 모르고 물보리알을 입으로 훑어먹고있던 허우대가 큰 한사람은 갑동이의 기막혀하는 눈길과 마주치자 수치감을 느끼면서도 빤히 쳐다볼뿐 일어날념을 안하는지라 오히려 이쪽에서 무안해져서 물러난적까지 있었다. 그날 깊은 한숨을 짓고난 그는 학교선생질 하던 강덕금이를 시켜 보리밭머리에 《조금만 참으시오!》, 《이제부터 채 익지 않은 보리에 손대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라는 표말까지 써서 내다꽂게 하였다. 《보리고개》라는 말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신통도 하였다. 제일 넘기기 힘든 보리고개가 되자 겨울동안에 얼마 남지 않았던 아이들이 먼저 심한 기아에 허덕이다가 하나 둘씩 맥없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남자들속에서 아사자가 나왔다. 그들의 비극도 비극이지만 자기자신들은 굶으면서도 남편과 아이들을 위하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의무를 걸머지고 태여난 녀성들에게는 그보다 더 큰 불행이 차례졌다. 그들은 굶어 죽은 남편과 아들딸들을 관도 없이, 가마니짝마저도 없이 가랑잎으로 덮어주고나서 그 하나하나의 불쌍한 시신앞에서 온 육신이 깡그리 타서 재가 될 지경으로 아주 슬프게 울고싶어도 기력이 없고 인간의 진액마저도 다 말라버렸는지 눈물 한방울조차 흘리지 못하는 최대의 괴로움과 최악의 고통까지도 겪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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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삶이냐 죽음이냐? 투쟁이냐 포기냐? 하는 심각한 국면에 처해있던 어느 날이였다. 보리가 제법 알이 들면서 통통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였는데 하루는 굶은 몸으로 입술이 초닥초닥 말라가지고 나가서 밭을 지키고있던 김해수네 불꽃중대 대원 하나가 아주 이른 새벽에 보리밭 불법침범자라는 웬 녀자를 붙잡아가지고 끝에 쇠꼬챙이창이 달린 목총으로 호송해왔다. 《과장동지, 꼭두새벽의 어둠속에 보리밭에 은밀히 기여들어 겨우 알이 들기 시작하는 보리이삭을 뽑아서 조만자루에 넣어가는걸 현장에서 목격, 체포해가지고오는 길입니다. 불꽃중대 대원 엄격남입니다.》 《좋소, 격남동무! 돌아가보시오.》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꼬마보초병이 돌아간 다음에 황갑동은 한손에 자그마한 자루 같은걸 들고 새벽 어둠속에 머리를 푹 숙이고 서있는 녀인 같아 보이는 형체를 향하여 덜퉁스레 물었다. 《동무, 누굽니까?》 《…》 《녀성동무 같은데 어디에 소속되여 있는 누군가 말이요?》 《…》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다. 《이 동무, 채 익지 않은 보리를 혼자 훑어다가 먹을 입은 있어도 이럴 때 대답할 입은 없다 요것이요?》 《…》 더욱 고개만 더깊이 숙이는 녀인. 《좋소. 이제 날이 다 활짝 밝아뿌리면 어디 군중들이 전부 보는 앞에서 누군지 얼굴 구경 한번 시켜봅시다. 동무 량심이 있어, 량심이? 누구는 배고프지 않고 먹을줄을 몰라서 그 보리에 손 안대는줄 아는 모양인데 이자 그 남동생 같은 소년병은 자기 입술이 다 타서 새까맣게 덕지까지 앉아가지고도 이제 그 보리가 누렇게 다 익은 다음에 수확을 해서 다문 한끼라도 좋으니 여기 지리산사람들이 모여앉아 함께 웃으며 울면서 보리밥 한그릇, 보리죽 한사발이라도 나누어먹는 장면을 눈앞에 그려보는게라. 그렇지만 시방 동무 같은 리기적인 사람의 눈앞에는 혼자 먹을 높은 보리밥그릇만 보이지 그런 훌륭한 그림장면은 없다 이것이여.》 《…저어 제가…》 《동무는 도대체 뭐요? 빨찌산지구에 사는 녀성이 말이시, 아무리 배곯는다 해도 냉중엔 량심의 거지가 되여가지고 동냥주머니만도 못한 그 더러운 리속주머니를 들고다니기가 부끄럽지도 창피하지도 않는가 말이요. 사람이 그랑하면 못쓰는기라, 굶어 죽어도 다같이 깨끗하게 죽어야제라.》 《…흐…흐윽!》 갑동이의 앞에 서있던 녀인이 손에서 보리이삭이 좀 들어있는 그 조만자루를 철사닥 떨구면서 흐느낌소리를 내는것이였다. 《녀성동무가 그런 싼 눈물을 보이는것만 가지고서는 지리산사람들의 피눈물이 열매로 맺어지고있는 그 보리이삭에 손을 댄데 대한 보상이 되지 않는게라.》 어느덧 시간이 흘러 대기에 가득찼던 캄캄한 어둠이 점차 땅으로 잦아들어가는지 하늘중천으로 빨리워올라가는지 서서히 동녘으로부터 훤히 날이 밝아오는것이였다. 이제는 그쪽을 보지도 않고 한참 대구 욕만 해대던 황갑동이 다시 돌아보았을 때에는 그 좀 두리뭉실하게 생긴 녀자의 형체 대신에 그새 무슨 조화가 벌어졌는지 자기가 알아도 아주 잘 아는 녀자를 대신 가져다 거기에 세워 놓은것이 아닌가. 그것은 난데 없는 뚱보 덕금이였던것이다. 참말이지 그때의 놀라움이란… 《아니 이게 강동무아니여?》 덕금이는 두손으로 눈물에 젖어든 얼굴을 가리며 목메여하였다. 《과… 과장동지…》 《대관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보리밭에 제 손으로 그런 표말까지 써다가 꽂아놓은 동무가, 자기가 굶으면서도 풀죽 한숟가락이라도 전우들의 그릇에 더 떠주지 못해 마음 쓰군 하던 강동무가 아니였소? 그런데 동무까지 그 보리밭으로 몰래 기여들줄은 정말이지…》 《…》 《동무까지 이리하면 나는 어쩌라는거요? 동무가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 되였는지 한번 말이라도 해보씨오.》 《저… 저는 할 말이 없으니 군중규률위반자로 저에게 처… 처벌을…》 《…》 《그런데 제 한마디만 하고싶은건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될 때까지 지휘부 간부들은 다 뭘했습니까?》 《그건 누굴두고?》 《과장동지도 그렇지요. 언제부터 과장동지까지 그렇게 되였습니까. 사람들이 다 굶어죽게 되였는데두 맥을 놓고앉아서 식량보급투쟁도 안나가고 벌벌 떨면서요.… 얼마 안되는 보리가 익기만을 기다리고있으면 뭐가 나오나요?》 《쩌쩌, 이건 도적이 매를 든다더니…》 갑동은 이러면서도 덕금이의 에돌릴줄 모르는 그 말속에는 아닌게아니라 놈들의 동기대《토벌》이 있고난 뒤 자기도 모르게 위축감을 느끼며 피동적으로 행동하고있는것 같은 느낌이 드는 지휘부일군들도 일군들이지만 자기자신에 대한 아픈 비판이 있다는것을 인정하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자기앞에 여러가지 착잡한 생각에 잠겨 온통 처절한 눈물에 젖어있는 녀동무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다시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라웁게 느껴지는것은 어제날의 그 《뚱보동무》가 아니라는 그것이였다. 이 한해 겨울동안에 얼마나 다같이 먹지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고생을 했으면 그 도람통이라고 불리우던 몸이 그만 반쪽이 되였겠는가. 그의 앞에는 이미 지리산의 그 하나밖에 없던 뚱보처녀는 서있지 않았다. 지나치다 할 정도로 콤파스로 그려놓은듯 동실하던 그 혈색 곱던 얼굴은 길어졌으며 그처럼 풍만해보이던 가슴은 다 어디로 갔는지, 가파로운 산탁으로 밀어올릴제면 간난신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엉뎅이도 절반이 되였다. 하도 몸이 실하던 녀자니 그런대로 밑천이 남아있어서 그렇지 말이 아니였다. 천상 몸이 깔것 같지 않다던 그의 온몸의 살을 고난에 찬 세월은 칼이 없이도 다 어여가지고 간것이다. (오죽했으면 우리 《뚱보동무》가 어디에 말은 못하고 배고픔을 이기다 못해 새벽어스름에 햇보리밭에 뛰여들었으랴.) 이렇게 생각하며 얼굴에 피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때가 꽤죄죄해진 어제날의 뚱보를 보느라니 눈이 쓰려오면서 기분이 몹시 언짢아지는 갑동이였다. 《강동무여, 제발 보기싫은 그 꼴 나 더 보이질 말고 싸게 내 앞에서 사라져버리시오, 내가 더 성나기전에!》 《…》 그러나 덕금이는 가지 못한다. 《왜 그냥 그러고있소. 내 가라고 하지 않소.》 《…예 …옛날부터 가라는 소린 죽으라는 소리보다 더 섧다고 했둥마. 아무리 미워두 왜 자꾸 가라고만 합니까? 그러면 처벌한다 표말까지 써붙이게 하구선 과장동지, 왜 저는 그대로 엄벌에 처하지 않는가요? 저도 벌을 주세요! 잘못했으니…》 그 말에 갑동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뭣이라고? 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거요. 앞에서 하는 말이 그렇지 요 전날 밤에도 어린 오누이가 그 말간 물밖에는 안나오는 보리이삭이락도 훑어먹으려고 밭에까지 벌렁벌렁 기여와서 손으로 이삭을 하나씩 끄당겨 입에 문채로 그만 앞으로 꼬꾸라져 숨지지 안했능기오. 그걸 보고야 내 어찌 배고파하는 사람들 먹을건 못 갖다가줄망정 벌을 주며 그네들의 여윈 가슴에 총구를 들이댄단 말이요, 아, 내가 지금 사람들앞에 무… 무슨 놈의 죄… 죄를 짓는것인지…》 《과장동지… 제 제가 바르지 않은 못된 소릴해서 가슴을 아프게 허비였으니 용… 용서를 해주세요. 사… 사실은 제가 먹자고해서 그런건 아니고 먹지 못해 젖 한방울도 안 나오는 엄마 젖꼭지 물고 이젠 울지조차 못하고 죽게 된 갓난애기를 보다 못해 제… 제가 앞뒤 생각없이 저 보리밭에 접어들어 손을 대였으니 저를 더 욕해주세요, 저를 때려주십시오.》 《가만, 갓난애가 굶어죽게 되였다는건 또 무슨 소리요?》 《저 진주댁이 업고 올라왔던 애기 생각나요?》 《누구? 우리 제비 손동찬동무의 아들애 말이요.?》 《그래요.》 《그 애가 지금 어떻게 되여간다구?》 《죽어가고있어요. 목건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걸 보고 급해서 보리밭으로 정신없이 뛰여왔건만 아까 그 통수 없는 엄격남이한테 붙잡혀서 단련받아, 과장동지까지 이리 붙잡고 사정도 묻지 않고 욕만 해대니, 이젠 숨이 넘어갔을런지도…》 《아, 그게 무슨 소리요? 왜 아까 진작 그말부터 못 꺼냈소? 그게 어떻게 생긴 손동무의 아들이기에… 잘못했더면 목숨과 바꿀번 했던 우리 지리산의 첫 애기, 빨찌산의 아들아닌기요?》 《그… 그럼 이젠 가봐도 돼요?》 갑동은 아까 덕금이가 땅바닥에 떨구어 버렸던 그 《자기 리속 채우는 주머니》를 다시 주어들고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모양. 《그러다봉께 보리이삭도 얼마 뜯어넣지 못했구만. 우선 이거라도 가지고 애한테 빨리 가보시오. 그리고 진주댁한테는 어떤 일이 있던지 애를 살려야지 그렇지 않다간 내가 당장 하산을 시키겠다고 하더라고 전하시오. 싸게싸게!》 《알겠어요.》 강덕금은 쫓기듯 허둥지등 달려내려갔다. 그를 보내고나서 황갑동이 보리밭으로 달려내려가던 길로 꼬마보초병 엄격남이도 영문 몰라 두눈이 뚱실해져 놀라는 속에 마치 미친년 달래 캐듯 고랑 타고 나가면서 량손으로 보리이삭을 한웅큼씩 잡아 마구 뽑기 시작하는것이였다. 그 엄격하기로 소문난 소년병도 딱히는 알수 없었지만 큰 어른이 시방 이렇게 덤빌적에야 그럴만한 급한 사정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지 자기 웃옷을 벗어서 땅에 펴놓고서 련락과장이 맨손으로 거두어 들인 첫 수확물을 받아 거기에 가져다 놓군했다. 한아름씩 안고 지휘부쪽으로 달려올라간 그들은 풋보리이삭을 깨끗한 베보자기에다가 싸가지고 비틀어 물을 짰다. 그 물이 군용물통으로 하나가 되여 나왔다. 황갑동은 제법 우유빛이 도는 그 뽀얀 보리이삭에서 짜낸 물을 가지고 재봉대가 들어있는 반토굴집쪽으로 달려올라가면서 속으로는 손동무의 귀여운 아들애의 이름을 불렀다. 《손별지, 우리 별찌야, 조금만 기다려다고. 이 삼촌이 네게 줄 엄마의 젖감을 가지고 찾아간다!》 그가 숨차게 현지에 도착했을 때는 아까 덕금이가 말하던대로 이제는 기진하여 울음소리도 내지 못할뿐더러 가느다란 목건사도 제대로 못해 눈은 떴는지 감았는지 벌써 다 풀어져버린 동공도 자기의것이 아닌 피덩어리 같은 애기의 가는 생명의 초불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상태에 놓여있는것이였다. 그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 갑동은 목이 꺽 메여와 이내 말을 할수 없었다. 《별… 별이 아주머니, 갑동삼촌이 이제야 여기 왔구만이라. 이 물통의것을 빨리… 이안에 보리쌀 찡크려뜨려서 만든 죽물이라면 죽물이고 보리우유라면 보리우유인것이 있으니 어서 한모금 자셔보시오. 인차 젖이 될지 알겠소.》 별이는 그래도 전에 청학동 치성터에 《제비》와 함께 찾아왔던 애아버지의 전우이며 친구로서 애를 살리는가 죽이는가하는 이 결정의 순간에 보리싹물까지 한물통 만들어가지고 자기를 찾아와준 이 사람이 고맙다는것은 더 말할수가 없었다. 《… 아, 삼촌! 형제가 하나두 없는 애아버지대신 친동생이, 우리 별지에겐 고마운 친 삼… 삼촌이 있었구만요.》 별이는 갑동에게서 두손으로 그 물통을 받아들기는 했으나 같은 녀자들도 아닌 남정네들이 애기엄마와 금시 숨이 질 형편인 어린애를 살리기 위해 한알한알을 정성껏 짜서 받아낸 보리우유를 차마 입에 대지 못하였다. 황갑동은 어서 마시라고 이르고는 한쪽의 잔디밭 등성이에 가서 돌아앉아있었다. 한참 있더니만 덕금이가 달려올라오며 환희로운 소리로 웨치듯 말하는것이였다. 《과장동지, 애엄마한테서 젖이… 젖이 조금씩 돌아서고있구만이요.》 《뭐라구? 벌써?》 《다시 나오기 시작한 엄니의 그 젖이 약인지 그걸 몇모금 마시던 애기의 감겼던 두눈이 좀씩 떠지면서 생기가…》 《그렇게 금새? 히야! 놀라운 일인게라…》 황갑동이에게는 찡크려뜨렸던 그 보리알진액을 입으로 넘기자마자 소화장기들을 거쳐 순간에 깨끗한 젖으로 려과해낼수 있는 모성들만이 가지고있는 그 생리적인 능력이 놀라왔다. 그리고 그 어머니 젖 한모금만 받아마셔도 자기를 다시 살릴수 있는 약하고도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있다는 생각이 드는 어린것이 놀라왔다. 기분이 좋아진 황갑동은 호주머니를 두루 뒤졌다. 이럴 때 한대 피우는것이 담배인데 그것과 인연을 끊은지도 오랬으니 있을리 만무였다. 그는 잔디밭에서 일어나 한손을 바지주머니에 지르고 왔다갔다하면서 조용히, 어색하게 붕어입을 만들어가지고 낮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덕금이가 들어보니 무슨 자장가 같았다. 그는 산에 올라와 오래동안 같이 지내면서 자기네 련락과장이 휘파람을 부는것을 이날 처음 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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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 와서는 마치 지난 겨울 추위에 몹시 얼어서 봄내 다른 꽃들이 다 피여도 죽은듯이 우울히 서만 있던 거뭇한 무궁화도 놀란듯이 잠을 깨여 지각생이 된것을 어줍어 하듯 흰색, 보라색의 꽃을 부지런히 피워올릴 준비를 하고있었다. 수수하고 순하면서도 은근한 아름다움을 가진 류다른 조선의 꽃, 죽은것처럼 가만 있다가도 한번 피기 시작하면 늦가을까지도 꾸준히 피여나서는 겨울과 맞손바닥을 치고야 가버리는 외유내강의 무궁화꽃!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무궁화가 만발하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조선을 《무궁화근역》이라고 부르면서 이 꽃을 좋아하며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이 마지막꽃인 무궁화의 개화로서 산천의 꽃과 나무잎들은 붉고 푸른 자기의 단장을 한껏 떨치기 시작하는것이다. 드디여 모내기철이 왔다. 여기 경상도지방에서는 남자들은 대체로 논두렁치기의 가래질이나 써레질을 담당하고 모내기는 주로 녀자들만이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물을 제대로 대주지 못해서 겨우 모살이를 한 논들의 벼들은 그런대로 아지치기를 시작했다. 물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그 논판에서는 지지리도 못생긴 징그러운 당구쟁이들이 헤염쳐다니더니 어느새 벼대에 기여올라가 희슥한 허울을 벗어서 걸어놓고는 제법 고운 꽃잠자리가 되여 하늘로 날아올라서는 젖은 날개를 말리우느라고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면서 희번득거리고있었다. 개도랑에서는 이제는 필요없게 된 제 꼬리를 떼여내여 금시 네다리를 만들어붙였는지 쪼꼬만 애기개구리들이 빨리 크고싶어 주변의 산들을 향해 뛰여오른다는것이 잘 안되여 점착성이 있는 그 앙증스러운 다리를 가지고 수천수만마리가 발발 기여 오르고있었다. 이제 고것들이 산에 흔한 잔벌레들을 잡아먹고 엄지가 되여 도로 고향인 물논으로 내려와야 개구리《합창》이 시작되며 완전한 여름이 되는것이다. 그동안 지리산이 아무리 불타고 지난 한해 겨울에만도 숱한 사람들이 총에 맞아죽고 얼어죽고 굶어죽고 했지만 자연만은 자기의 계률을 어기지 않고 어쨌든 왕성한 성장기인 여름에로 박진력있게 가고있었다. 꿩들과 산토끼들이 갓난 병아리들과 새끼들을 데리고 들로 나왔으며 노루와 사슴들도 아직 잘 걷지 못하는 어린 새끼들을 끌고나와서 걷는 련습을 시키고있었다. 또 한해 겨울을 모진 추위와 못견딜 주림에 시달리며 사래기를 펴지 못하고 지실이 들어서 살던 인민들과 산사람들도 이 땅의 기근을 제일 먼저 알아주군하는 햇보리의 덕으로 시름을 덜기 시작했다. 어느 동뚝길에서는 농부를 따라 후치질하던 어미소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음-머》 하고 부르는 영각소리에 장난질 치다가 《음-매애-》(나 여기 있어-)하고 화답한 애송아지가 꼬리끝을 이상하게 꼬아올리며 냅다 뛰여가던 5월의 봄날, 지리산전투지휘부에서 좀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한 재봉대 앞뜰의 푸른 잔디밭에서는 하나의 경사가 났다. 한것은 기구한 운명을 타고 빨찌산의 아들로 태여났건만 지난 초봄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엄마의 젖마저 떨어져 죽을번하다가 뚱보아지미와 갑동삼촌의 손길에 의하여 눈물겹게 살아날수 있었던 별이의 아들애가 오늘 밖에 나와 처음으로 제발로 풀잔디우에 서보는 날이였던것이다. 먼 하늘가에서는 북쪽으로 날아갔다가오는 적들의 폭격기소리가 들려오고 이따금씩 지리산쪽에다 대고 쏘아대군하는 괴뢰군놈들의 눈먼 포소리도 울려오건만 그에는 관계없이 여기서는 주로 재봉대원들과 녀성전투원들이 아이 하나를 풀판에 세워놓고 웃음락담을 벌리고있었다. 몸에 다시 봄살이 오르기 시작한 뚱보 아지미가 자꾸만 엄마에게로 가려고 맨발로 잔디밭에 서서 매삼을 치고있는 애기를 붙안고있었으며 앞에서는 엄마가 두손바닥을 치면서 오라고 불렀다. 량옆에서는 두 처녀들인 리옥순이와 문복순이 《뚱보언니, 빨리 놔주어요. 빨리 엄마한테로 가게.》하고 소리쳤으며 뒤에서는 두 전우인 손동찬이와 황갑동이 뒤짐을 지고서 입에 행복한 웃음을 문채 지켜보고있었다. 《별지야! 이리 온, 어서 엄마한테로-》 별이의 정다운 부름소리에 따라 드디여 뚱보아지미의 손에서 놓여난 귀여운 아들애는 량손을 벌리고 연약한 두다리를 떨면서 발자욱을 내짚어보려고 바둥거렸다. 《야아- 엄마별에게서 떨어진 우리 별지가 일어섰다-》 《빨찌산의 아들이 지리산에서 첫 걸음마를 뗀다!》 《우리 꼬마전사 나간다- 그렇지. 씩씩하게! 하나 둘, 하나 둘…》 문복순이가 두주먹을 옹그려잡고 옆에서 작은 보폭으로 애를 부축하고 따라걸으며 야단스럽게 구는 바람에 어린애를 훈수하던 녀자들이 모두 소리내여웃고 야단이다. 그 아지미들의 환희로운 웃음에 싸여 어디서 하나 얻어입힌 색동저고리에 짜개바지인 《제비》의 아들애는 앞에서 뒤걸음을 해가는 엄마를 서둘러 따르다가 그 자리에 폴싹 어푸러져버린다. 비록 아직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자기를 둘러싼 어른들의 류다른 기분에서 자기에게 그 어떤 비상히 중요한 순간이 왔다는것을 촉감했는지 겁이나 울듯말듯 하면서도 기여가서 용케 엄마의 품에 방글거리며 안겨든다. 앞에서 여러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지리산의 축복속에 자기 사랑의 피덩어리, 자기의 살붙이인 귀여운 아들을 보고있는 행복의 무아경에 잠긴 녀인의 두눈가에는 잊을수 없는 지난 날의 곡절많은 사연들이 떠오르면서 눈물겨운 인생이 오락가락… 갑자기 두눈이 흐려진 별이는 목메여 아들애를 꼭 껴안았다. 《용시, 우리 별지!》 《암마- 아》 별이는 아들애를 품에 꼭 그러안고 따스한 볼을 부비여주었다. 황갑동은 손동찬이와 함께 뒤에서 사진이라도 한장 찍어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혼자 생각했다. (아! 저것 보지, 우리 아기들은 딛고설 이 땅이 있고 바라볼 저 하늘이 있고 엄마만 있으면 산다!) 이런 즐겁고 따뜻한 분위기속에서 곧잘 기지있는 롱말을 꺼내군 하는 뚱보동무가 한마디 했다. 《리옥순이 문복순이여, 이건 가나다 순서로 부른 소린데 난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다가도 말이지요, 이런 애기를 가진 모성의 행복을 가까이서 볼제면 이 가슴이 못내 설레일 때도 더러 있군 해요. 그러다가도 잘못해서 엄격한 꼭자인 우리 김지희전투사령에게 걸려들어 군사재판 받고 처형이라도 당할가봐 이 한없이 설레이는 가슴 진정하노니 지리산이여, 너만이라도 알아다오.》 《호호호.》 수림속에 일시에 녀성들의 밝고밝은 종다리웃음이 터져올랐다. 이때 마침 저쪽에서 김지희가 련락병을 데리고 이리로 오고있었다. 《어마나, 복순언니, 범이 제소리를 하면 온다더니 여기로 전투사령동지가…》 옥순이의 소리다. 《어디, 어디에?》 일순 당황하는듯 싶던 복순이 자기의 전투복장을 이내 수습하고 나서 군사규정대로 구령을 주고 나가서 보고를 했다. 《차렷- …전투사령동지, 야외사격훈련의 쉴참에 별이언니의 아들애가 첫 걸음마를 떼기 위해 풀밭에서 일어서는것을 보다가 너무 재미 있어서 모두 웃고있는중입니다. 보고자 문복순!》 《쉬엿하시오!》 《그러면 쉬엿-》 또 한바탕 웃음의 선풍이 일었다. 《련락과장 손동찬동무, 재봉대원 별이아주머니는 나의 앞으롯!》 김지희의 뜻밖의 호령을 받은 손동찬은 다소 긴장해지는 마음으로 어린애를 안은채로인 안해를 데리고 지휘관앞에 가서 섰다. 전투사령은 눈웃음을 짓고 서서 우선우선한 음성으로 말했다. 《손과장동무.》 《옛!》 《아직까지도 그때 일을 잘했다고 생각하는가?》 《썩 잘했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리 잘못된 일이라고는…》 《이거 안되겠소. 그때 군중심판을 취소했댔는데 오늘 동무들이 다 있는 앞에서 심의를 다시 해야겠구만. 아직 솔직히 다 털어놓지 않은것들이 문제시되고있단 말이요.》 《예? 그건? 어떻게 하시는…》 재봉대원들이 은연중 긴장해져서 하회를 기다리고있는 가운데 앞에 나와 서있는 손동찬과 별이를 정겨운 눈길로 바라보던 김지희전투사령이 련락병에게 《그걸 가져오우!》라고 했다. 《알았습니다. 전투사령동지!》 련락병이 정신들게 대답하며 자기가 전투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던것들을 꺼내여 상관에게 주었다. 그것을 지켜보고섰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것은 뜻밖에도 어머니의 젖이 없거나 젖이 적은 아이들에게 먹이는 고급우유통과 유아들에게 끓인 젖을 먹일 때 쓰는 젖먹이 우유병이 달린 어린이 젖꼭지였던것이다. 김지희는 웃음 띤 얼굴로 이런 말을 했다. 《이 준엄한 나날에도 우리 혁명의 피줄기를 이어갈 지리산의 미래를 낳아 량심으로 키운 동지들에게 전투사령의 이름으로 감사를 줍니다!》 전투사령은 그들 부부에게 애기한테 먹일 우유통과 젖먹이 우유병을 내주었다. 《어떻게 하던지 별지를 잘 키워주시오.》 《전투사령동지!》 두 부부는 고마움에 목메여 더 말을 못했다. 그들 두사람 못지 않게 감동의 눈물을 짓는것은 인정이 많은 녀자인 뚱보아지미였고 그옆의 갑동《삼촌》도 두눈을 슴벅거리고 서있었다. 옥순이와 나란히 서있던 복순이 한마디 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전투사령동지! 오늘처럼 전투사령동지가 고와보이고 돋보인적은 일찌기 없었댔어요. 당장 그 누구를 어쩔것처럼 원칙 하나만 생각하면서 딩딩 날릴 때보담은 글쎄 총각인 우리 전투사령이 제 손으로 아이에게 먹일 우유통과 우유먹일 때 쓰는 기구까지 다 구해가지고 나타나니 이 지리산의 특색있는 풍경이 그 얼마나 더 멋지고 아름다워지나요. 아마 래일부터는 해가 서쪽에서 뜰지도 몰라요.》 복순이의 뜻이 깊은 그 소리에 모두가 명절날 같은 즐거운 마음이 되여 맑은 소리로 웃으며 서로마끔 애기를 두손으로 높이 쳐들어올려 둥기둥기… 별지의 미래를 축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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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후였다. 별지의 아버지 손동찬이는 중요한 공작임무를 받고 멀리로 떠나가고 별이는 다른 재봉대원들과 덕금이랑 같이 애기를 들춰안고 산아래의 비상아지트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지휘부 성원들의 새 군복을 지을 캬바진천을 로획해다가 놓은것이 있었던것이다. 이날 밤의 군복천운반은 얼마전에 군수렬차를 습격하여 로획물을 가지고오다가 도중 비상이지트에 비장하였던 전투사령 김지희자신이 비상이지트를 맡은 련락과장 황갑동이를 데리고내려와 직접 지휘하였다. 그 아지트는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하는, 출입구는 사람 한명이나 드나들 정도이지만 들어가면 꽤 넓은 산골짜기의 자연동굴 하나를 리용하고있었다. 굴입구는 마침 너럭바위밑으로 뚫려있는데다가 그 우로는 량은 많지 않지만 물까지 흘러내리고있어서 돌문만 막아놓으면 수풀마저 무성한지라 아주 감쪽 같았다. 누가 안에서 《나 여기 있소-》 하고 소리를 치지 않는 한 알수가 없게 되여있는 철통속 같은 요새였다. 그런데 어떻게 비상아지트로 사람들이 내려오는것을 알아냈는지 적들이 달려들었다. 수색대놈들이 추적해온다는것을 뒤늦게야 알게된 김지희는 든든한 남대원 두세명을 시켜 적들을 유인해가도록 하는 한편 재봉대의 녀대원들을 데리고 례의 그 비상이지트로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버렸다. 별이도 어린애를 업고 덕금이와 함께 바로 그 캄캄한 굴속에 들어가 한쪽 구석에 앉아있었다. 습기찬 동굴안은 너럭바위에서 물이 떨어져내리는 물소리만이 소연할뿐 괴괴한 적막에 눌리워있었다. 어디선가 멀리서 처량한 풀국새의 소리가 접동접동 하는것 같기도 하고 풀국풀국 하는것 같기도 하면서 아득히 땅밑에서 울려나오듯 들려와 마음을 설렁하게 만들었다. 어디 머지 않은 아래 골짜기로 이따금씩 돌을 차굴리며 적 수색대놈들이 올라오는듯한 소리가 점점 가까와지고있었다. 그런데 일이 안되려니 엄마의 등에 업혀 세상 모르게 자고있던 어린애가 그만 깨여나 칭얼거리기 시작한것이다. 그래서 얼른 애를 앞으로 돌려안은 별이는 젖을 물리였다. 그러나 선잠을 깨여 잠투정을 하는 별지는 젖을 먹으려 하지 않고 뿌리치면서 으앙- 소리 내여 울음을 터뜨리는것이 아닌가. 이런 야단이 없었다. 그런데다가 금시 머리우쪽에서 놈들이 저희들끼리 쑹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것이 아닌가. 《틀림없이 빨갱이들이 이 물골짜기들을 따라 올라갔는데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으니 귀신 곡할 노릇 아니여?》 《그러기에 말 아니노, 하늘로 올랐나 땅으로 잦아버렸나?》 어린애에게 젖을 억지로 물리고 꼭 품안고있는데 좀 즘즉해있던 애가 더 소리를 크게 내여 응아, 응아 하고 울기 시작한다. 너무나도 급해난 별이는 애기의 울음이 터져나오는 입을 한손으로 막아버렸다. 《…금새 어디서 애 울음소리 같은것이 분명 들렸는데?》 《뭣이? 이 깊은 산중의 밤에 무슨 애 울음소링기요?》 《아니야, 귀기울여 다시 들어보라구.》 《그랴?…》 이런 소리까지 듣고보니 별이의 잔등으로 오싹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엄마의 손에 입을 틀어막히운 아이는 죽겠다고 그냥 발버둥친다. 이제 어떻게 이 손만 뿌리치는 날에는 모두의 운명이 마지막인것이다. 자기 하나 발각되여 죽는것은 문제가 아니다. 자기때문에 귀중한 전우들까지 목숨을 잃게되고 더우기 자기를 그처럼 친혈육의 정으로 도와주던 덕금이 그리고 김지희, 황갑동이와 같은 훌륭한 지휘관들의 생명까지 잃게 만든다고 생각하니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 없을것 같았다. 이 일각이 천추같이 느껴지는 짧은 순간 별이는 피눈물속에서 힘들게 낳아 키우면서 그 무서운 추위와 기아속에서 겨우 살려낸 하나밖에 없는 아들애이지만 자기 자식 하나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귀중한 동지들과 지휘관들을 구원해야 한다는 강심을 먹게 되는것이였다. 그렇지만 암만 속이 강인한 녀자일지라도 입안에 울음이 가득차 언제 응아- 아- 하고 무섭게 터져나올지도 모르는 자기 아들애의 숨을 못쉬게 할수 있는 그런 어머니가 이 세상 어디에 있을건가? 《야- 여기에 반드시 비상아지트가 있다. 어린애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이 물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크고 작은 바위돌들을 다 들춰내고 가재새끼까지 말짱 잡아내라-》 장교인듯 한 놈의 그 돼지악청까지 듣고나니 더 시간을 지체할수 없는 별이였다. 그는 더 생각할것없이 그냥 입에 물고있는 울음을 터쳐 모든것을 끝장보고야 말 기세인 철없는것의 입을 젖가슴으로 밀막으며 죽으라고 꽈- 악 껴안은채 놓지 않았다. 그런속에서도 애는 엄마의 젖꼭지를 찾아 무는것인지 아니면 대구 도리질을 하는것인지 죽겠노라고 요동질하면서 두다리를 가둥거렸다. 그러나 그 어린것을 힘껏 그러안은 량팔의 결박을 풀어줄수가 없는 별이였다. 물곬을 따라 올라가며 가재잡이하듯 하던 놈들이 벅작 떠들어대던 소리가 멀어져가고 수색이 즘즉해 졌을 때에야 별이는 비로소 아까 그처럼 몸부림치며 두발을 마구 가둥거리던 어린것의 요동이 멎었음을 직감할수가 있었다. 무엇인가 몽둥이끝으로 가슴을 찌르는상 싶은 둔감한 아픔에 온몸을 스치는 전률을 느낀 별이는 그제야 어린 아들애를 결박에서 풀어주었다. 그러나 금시 터져나와야 할 애기의 울음소리가 어디로 잦아다들었는지 없었다. 울지 못하는 애기, 그것은 벌써 산 애가 아니였다. 아까 엄마의 젖가슴에 입과 코를 꼭 막히운채 질식하여 그만 숨져버렸던것이다. 《별지야, 정신 차려라, 별지야아-》 별이는 안타까이 부르며 흔들었지만 어린것의 가는 목만이 건둥거릴뿐 생명의 기척이란 더는 없었다. 어린것의 작은 심장은 이미 멎은 뒤였다. 황갑동이 마지막으로 어린애의 인중밑에 대침을 꽂아 보았지만 이미 저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꺼져버린 작은 별찌는 다시 피여나지 못하고말았다. 돌도 안된, 그것도 비상이지트안에서 엄마의 품에 코박고 숨막혀죽은 어린것을 보느라니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드는 갑동이였다. 《이게 대관절 무슨 일이요? 그 엄마의 부드러운 젖가슴은 금시 죽어가던 애기를 살릴수도 있고 이렇게 죽일수도 있었더란 말이요! 우리 어른들을 다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엄마야 애기를 살려야 엄마제라,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소. 너무하오, 너무해요-》 주먹으로 안타까이 동가슴을 치는 갑동이의 그 소리에 별이는 더욱 제 정신이 아니였다. 《별지야,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나서 첫 발자국도 떼… 떼여 보지 못한 불쌍한것아, 너를 엄마가, 이 엄마가 죽였구나, 아하- 엊그제 낮에 아지미들이랑 아빠랑 다 보는 앞에서 그 지리산의 풀물이 아직 묻어있는 이 작… 작은 발을 땅에 파묻어놓고 이 엄니가 어떻게 혼자서 산단 말이냐-》 별이는 애간장이 다 타서 전신이 오그라드는듯 싶은 아픔을 이기지 못하여 몸부림치며 애통하게 울고 또 울었다. 옛날부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하늘이 보이지 않고 아들을 잃었을 때에는 앞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위험에 빠진 동지들을 살리기 위해 제 손으로 사랑하는 아들자식의 생명을 끊어버린 별이, 그의 눈앞에는 하늘도 땅도 저 앞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만일 그때 옆에 같이 너무 울어서 두눈이 다 퉁퉁 부어 보지도 못하던 뚱보아지미와 별지가 잘못되였다는 뜻밖의 소식을 처음 듣고 실신하다 싶이했던 옥순이와 복순이 등 가까운 전우들이 없었더라면 별이는 그 자리에 쓰러진채 일어나지도 못했을것이다. 그리고 아직 이 슬픈 가정적인 불행을 알지도 못하고 아들애가 보고싶어서라도 그 제비처럼 빠른 걸음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올 별지의 아버지, 그이가 와서 아들을 찾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못내 두려워지기도 하면서도 몹시 기다려지기도 하는, 그 슬픔을 나누어가질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다림이 없었다면 별이는 완전한 절망의 심연속에 빠져 헤여나오지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황갑동이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그는 자기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김주호와 감방동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동기<토벌>의 엄혹한 겨울에 뒤이은 실로 준엄한 시련의 봄이였지요. 그렇지만 그때 우리 지리산의 전우들은 소금 한알을 깨여 서로 나누어씹으면서도 물알이 들기 시작한 보리이삭을 손에 거머잡은채 굶어죽으면서도 지리산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굴함없이 싸웠던겁니다. 그 고난의 겨울과 봄에 우리가 쓰러지지 않고 모두 견디여낼수 있었던것은 리현상사령동지에게서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처창즈의 봄>을 불굴하는 의지를 가지고 이겨냈던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고난극복의 정신을 따라배울수 있었기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감방안 사람들과 같이 황갑동이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있던 김주호가 감심된 어조로 고무적인 말을 해주었다. 《참 오늘 밤에 황동지가 우리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비록 봄이 와도 싹이 트지 못하는 감옥속에서 온갖 간난신고를 다 겪다못해 무서운 기아와의 싸움도 해야 하지만 신심이 생깁니다. 우리모두가 지리산의 용사들처럼 <처창즈의 봄>을 이겨낸 백두산의 혁명정신을 따라배우는 마음으로 끝까지 굴함을 모르고 단결하여 투쟁한다면 우리에게 전향과 죽음을 강요하는 놈들과 맞서 능히 이겨낼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 《끝까지 견디여냅시다!》 황갑동이와 김주호의 말에서 힘을 얻은 감방동지들의 얼굴마다에는 백절불굴의 의지와 신념이 어려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