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갈범2-1장

제 2 부

림  계  점

 

제 1 장 고지식한 포로

 

1

 

황갑동은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적들에게 사면포위되였던 막다른 골목에 빠져 치마바위에서 절벽아래로 뛰여내린 그때로부터 지금 이 시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그는 벌써 3일째나 깊은 잠에 빠진채 깊은 눈구뎅이속에 그냥 묻혀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비몽사몽간에 있었다. 정말이지 꿈도 별난 꿈이였다. 죽었다던 아버지가 꿈에서 눈앞에 나타난것이다. 지옥에 가서도 그 좋아하던 술만은 끊지 못했는지 푹 취해있었다. 무슨 말은 하지 않고 자꾸만 자기를 따라오란다. 평시에도 아버지를 어려워만 하던 그로서는 별로 마음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분부가 아닌가. 그런데 이때 옆에 있던 어머니가 아버지를 따라가면 안된다고 은근히 눈짓을 해보인다. 그러자 아버지가 성이 나 입을 여는것이였다.

《불쌍한 내 아들아, 너는 죽는편이 더 나아. 그렇지 않았다간 넌 죽는것보다 더한 욕을 당하게 되느니라. 여기 이승이 저 지옥보다 더 무서운 곳이니 몸서리쳐지는 감옥살이 하지 말고 이 아비를 따라 저승으로 가자- 지옥으로 가자-아.》

소름끼치는 이런 소리와 함께 그 어떤 큰 손이 소매자락을 거머잡고 그냥 당기는 바람에 그는 사정없이 끌리여간다.

바로 이때 평소에는 그처럼 아버지에게 순종밖엔 모르던 어머니가 《아니, 이눔의 령감, 저승에 가서도 술을 깨지 못하고 산 애를 어디로 끌고가는거여? 이걸 놔요. 내 아들을 싸게 놓으시오. 못데려가요!》 하고 막아나서 한팔을 힘주어 잡아당기며 놓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꽉 붙잡히운 자기의 다른쪽 한팔이 팔소매채로 뽑히여서는 캄캄한 저 허공으로 사라지는것이 아닌가.

《아- 어머니이-저 내 팔이-》

갑동은 자기의 한팔이 떨어져나가는 환각에 그만 놀라서 몸서리를 치며 무서운 꿈에서 깨여났다.

눈을 슬며시 떠보니 온몸은 화락하니 땀에 젖었는데 자기는 환자비상아지트에 그냥 누워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천정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메주덩어리들이랑 보니 어느 마을의 농가 같았다. 어쩐지 몹시 낯익은 집이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여기는 그전에 그들이 종종 보급공작을 내려오면 들리군하던 민주마을인 평곡촌 병곡마을의 잘 아는 할머니네 집이였다.)

점차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한 그는 그제야 그것이 더는 빠져나갈래야 나갈데 없는 막다른 시각에 자기가 높은 바위우에서 눈벼랑아래로 떨어져내리던 일을 생각해냈다.

(그런데 대관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죽은 사람이여야 옳은건데 상기두 살아있다니. 아니 죽었겠지. 여기는 바로 그 딴세상이라는 저승의 그 어떤 대기실은 아닐런지…)

안방에 있던 까마귀옷을 입은 경찰놈들이 자기가 누워있는 웃방으로 건너오는것을 보며 그는 이상스러운 생각이 드는것이였다.

(지옥에는 야차들이 있지 경찰들까지도 있다는 소리는 못들었는데. 그러니 이거 내가 혹시?)

어느 한놈이 가까이 와서 겨우 눈을 뜨고 살아난 자기를 보고 혀를 찬다.

《히여, 이 지독한 놈이 말이지 그 아찔한 벼랑에서 눈구뎅이속에 떨어진것들중에서 유독 혼자 살아났구만.》

《사람의 목숨이 질리기는 질리여. 고양이를 암만 높은데서 떨구어도 아래에 내려와서는 땅에 두다리를 착 디디고 서는것 맹키로 이자는 유명한 빨찌산인게라. 몸에 날개라도 돋힌…》

이번에는 세번째놈이 그래도 무슨 생각이 났던지 옆에 접근하여 집적대였다.

《좀 정신들었어? 어쨌든 이 자식 너는 누군지 운수가 좋은 행운아야, 행운아. 이때까지는 포로고 뭐고 간단한 심문이나 하고는 닥치는대로 모조리 죽여삘던것이 금시전에 리승만<대통령>의 훈령이 숨차게 현지에 와닿았는게라, 시제 정전담판을 하는 마당에서 1대1의 포로교환원칙을 주장해놓고보니 우리가 포로한 수자가 오히려 모자란다는게야. 그래서 너희 같은것들을 가져다가 그 대가리라도 채우던가 아니면 좀 두고 쓸만한것들은 전향을 시키라 이 말이여. 너 내 말 알아묵었어?》

《…》

《모름지기 니 녀석은 꼴이 약골인데다가 재귀열까지 앓고나 살이 다 빠지고 뼈만 남았으니 매타작을 견디기 어려울게야. 그러니 공연히 우둔 부리지 말고 이럴 때 일찌감치 제1차로 전향을 하고 <보아라부대>에라도 들어가서 사는것이 땅수라 이 말이여, 진짜빨갱이여서 정 죽어도 그랑 못하겠으면 차라리 여기서 죽는편이 나아. 내가 한방 땅해줄것이니. 흐흐흐.》

《…》

(아, 이제부터는 그저 포로수용소나 감옥의 연금생활에는 비할수도 없이 제일로 고통스럽고 가장 무서운 바로 그놈의 《전향극》놀음새가 시작되겠구나.)

순간 갑동은 자기가 이때까지 그만하면 여러해동안 지리산에서 백호와도 싸우고 악질경찰들과 포악한 군견들과도 싸워왔지만 아직은 맞다들어보지도 못했던 제일 가증스럽고 더 위험스러운 무서운 적수들과 부닥치게 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것은 간악한 적과의 혈투이면서 아울러 심약해지려는 자기자신과의 싸움을 동반해야 하는 치렬한것이였다. 그는 자기에게 가장 엄혹한 시련의 시기가 닥쳐왔음을 깨달았다. 그 시련을 꽤 견디여내겠는지. 아무리 마음을 강단지게 먹는다고 하여도 지금의 병약해진 육체가 그 혹독한 부담을 이겨내겠는지 처음은 자신이 확 생기지 않고 한켠으로 두려워지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순간 비록 몸은 사로잡혔지만 지리산의 사나이인 그의 굴함을 모르는 정신만은 살아서 요동했다.

(갑동이여! 너무 걱정 말아. 어떻게 하던지 모든 꾀를 다 써서 살자고 하면 문제겠지만 그까짓 한번 버린 목숨 구차스레 허리를 굽혀 다시 줏지 말고 인간의 정한 량심, 혁명의 지조를 지켜 죽을 생각을 한다면야 무서울것이 무어냐?)

혼자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해지는것 같았다.

어디선가 맨땅에 귀를 베고 누워있는 자기 머리밑의 방바닥을 쿵쿵 울려주며 난데없이 떡치는듯 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가 놈들의 추격을 받던 끝에 아찔한 절벽가에서 죽기로 결심하고 아래로 몸을 내던지던 때가 세전이였다. 그러니 아마 음력설이라도 되였나보다. 남은 한쪽에서 병든 몸에 붙잡혀 죽어가고있는데 그래도 의연히 설날만은 어김없이 찾아와 어쨌건간에 이 집에서는 찰떡을 치고있는것이다. 마당가에 떡함지를 내다놓고 이 집 남정네와 내인이 마주 서서 떡메질을 하는 모양이 하나는 힘차고 다른 하나는 약했다. 그 떡치는 소리에는 전에 여기 병곡마을이 진격해나오는 인민군대와 지리산유격대에 의하여 해방되였을적에 온 동네가 떠들썩 모여들어 신나서 떡메질을 하던 때와 같은 그런 흥과 활기가 없었다.

이 집의 유난스러운 그 떡메질소리와 함께 아득히 멀리서 울려오는 다른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고향마을 도장동의 자기 집에서 음력설마다 어머니와 고숙이 떡가루를 보아서 설기떡도 만들고 송편이랑 빚으려고 밤새껏 정성들여 찧는 절구질소리였다.

눈먼 사랑으로 자기를 기껏 살리자고 한다는 노릇이 경찰에 자수시켜 구차한 목숨을 건져주려 했던 어머니와 고숙인들 무슨 마음의 경황이 있어 이해의 음력설을 떡해먹으며 쇠랴. 혹시는 사람들한테서 내가 그 치마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소문을 지금쯤은 어떻게 듣고 설떡대신에 시신도 찾을길 없는 이 아들이 와서 먹고가라고 제상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골무떡이라도 만들어 올려놓고있지나 않는지… 그래준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젠 그 어머니, 그 고숙도 어제날의 내 어머니, 내 고숙이 되여 돌아올수 없게 된것이다. 어쩌면 이런 가슴 쓰린 일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죽을 때 그래도 눈앞에 누구나 제일 먼저 사랑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그려본다 하건만 마지막으로 가슴에 어머니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는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저 이래 저래 그 미국놈들이 그리고 괴뢰놈들이 원쑤였다.

갑동은 불현듯 자기가 이렇게 반주검이 되여서도 바줄에 사지가 묶이운채 짐짝처럼 찬 웃방에 내던져져있다는걸 누가 알기나 할가? 하는 기막힌 생각이 들었다. 이 음력설날 아침 그래도 잘살건 못살건 온 나라의 집집마다에서 자기 형편에 맞게 떡방아도 찧고 떡도 치고있으리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서러운 생각이 드는것이였다. 자기가 어릴적처럼 이 아침 색동저고리를 입은 손자, 손녀들이 와서 세배를 하면 할머니들이 세배돈을 꺼내주기도 할것이다. 그리고 녀인들은 윷놀이를 즐기기도 할것이다. 자기 하나 없어도 생활은 여전히 변함없이 흘러가고있을것이였다. 정말이지 지리산에 올라와 눈보라길에서 죽을 고생도 하고 사선을 헤치며 싸우다가 마지막락도 보지 못하고 가다니? 여기서 이렇게 개보름 쇠듯 이해의 비참한 음력설을 맞고는 만 스물다섯에 때 이르게 진다고 생각하니 자기도 모르게 억울한 눈물이 떨어져 가슴에 고이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아침밥시간이 되자 아래방에 차려놓은 설명절상에 마주 앉은듯한 경찰놈들이 걸탐스레 처먹고 잔뜩 취하여 노래들까지 부르는것이였다. 처음에는 《신라의 달밤》, 《경찰가》도 부르더니 마지막엔 노래마저 비틀거리며 국경아닌 국경인 38선을 마구 넘어가는듯 했다.

만취되여 주정의 도움으로 염통이 제법 커진 한 자는 어데서 얻어 들었는지 《만약 전선에서》하는 노래를 제법 저가락장단까지 쳐가면서 부르더니 나중에는 또 《빨찌산의 노래》까지 부르는판이다. 걸걸스러운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까 전향할 생각이 없다면 한방 땅-해 주겠노라고 《선심》을 쓰던 바로 그 경찰이였다. 보아하니 전향한 자가 분명했다. 그자가 부르는 노래는 다시 지리산으로, 참된 인간들의 세계로 되돌아갈수 없게 된데 대한 그리운 애수와 후회, 타락과 방종, 절망의 울음에 젖어있는상 싶었다.

또한 거기에는 이제는 어차피 자수전향을 하여 점차 더러운 짐승으로 되여가야만 자기를 살릴수 있게 되여먹은 변절자로서의 비굴과 파렴치와 횡포성이 담겨있었다.

어제날 자기와 함께 싸우던 전우의 골통도 각목으로 까 거기서 흘러나오는 뇌수를 보고 웃을수 있는 그런 자의 야수와 같은 울부짖음이 있었다.

(그래, 사람이 참된 인간이 되기는 힘들어도 야수가 되여 버리는것은 간단하구나! 그 어떤 일이 있던지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겠는데…

전향, 전향은 그자체로 끝나는것이 아니다. 전향은 사람이, 어제날의 투사가 자기의 동지를 피 벌겋게 잡아먹어야만 자신이 살지는 더러운 개가 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아,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놈들이 술에 취해 잔뜩 포식을 하고있는 기회를 타서 그래도 낯익은 그 집 할머니가 웃방문으로 가만히 떡 한접시와 시원한 김치국 한종발을 들여왔다.

《젊은이, 일어나 이 설떡을 먹고서락도 기운을 내이소. 어떻게 하던지 죽지말고 꼭 살아서 집에서 기다리고있을 엄니한테로 가야제라.》

《어… 어머니! 내 주…죽어도 우리 어머니로 생각하고서 잊지 않겠습니다.》

갑동은 살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동침물로 먼저 타는 목을 적시고나서 그 고마운 할머니가 가져다준 찰떡으로 우선 속을 고여두었다. 새로운 싸움이 앞에서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이제라도 다시 죽는것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하나의 다른 투항인것이다!)

그날 오후에 거창군 경찰서로 끌리여오니 어제까지는 제 발로 산에 들어왔던 온전하던 사람들의 얼을 다 빼고 거기다가 무엇을 갈아 채워넣었는지 오늘은 원쑤보다 더해진 《보아라부대》놈들과 수일전에 잡혀서 자수한 놈들이 거기서 포로수용소에 보낼 사람들을 헌 옷가지 고르듯 막대기와 발길질로 뚱겨치면서 갑동에게 지벌거렸다.

《야, 재귀열병자 같은 너는 수용소로 갈 째비도 못되여. 예서 우리들 손에 죽여달라하는것이 나아요.》하더니만 정말로 죽일 차비로 여러 놈들이 달려들어 몽둥이로 때리고 구두발로 찬다는데는 순간에 피칠갑이 된 입을 벌려 급한 소리를 내지르게 만들었다.

《아이쿠, 야- 이 악귀 같은 놈들아, 때려도 좀 열병서껀 나은 댐에라두 때려라-》

《허, 이놈 봐라, <보아라부대>맛 아직 못 봤구나.》

자수전향을 함으로써 인간세상에서 더러운 죄 짓고 지옥에 떨어져 그래도 《야차》 한자리라도 하는 덕으로 겨우 구차한 목숨 붙여가지고있는 놈들이 열병도 채 낫지 않은 사람의 그런 사정 같은걸 알아줄리가 만무였다. 계속되는 매질…

 

2

 

또다시 정신을 잃은채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는지…

황갑동이 가까스로 의식이 돌아와 겨우 주위를 둘러보니 놈들이 말하던 남원수용소에 온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맨땅에 얼어붙은 끔찍한 시체들속에 있는것을 알고도 그리 소스라쳐 놀라지는 않았다. 세상 모르고 자기가 여기에 꼬박 나흘동안을 던져져있었다는것을 알탁이 없는 그는 아무데서건 누워서 더 자고싶어졌다. 이상하게도 몸이 편안한것이 좋았다. 재귀열병균들도 사람이 죽은줄 알고 떠나갔는지 아니면 병곡마을 어머니가 목숨을 내걸고 가져다준 그 찰떡을 먹은 덕이였던지 몸이 좀 거뿐한 기분이였다.

어딘지 캄캄한 무인지경 같은 곳이였는데 눈이 많이 와서 천지가 온통 눈에 덮여있고 자기도 반나마 그 눈속에 묻혀있었다. 언몸을 만져보니 맨 내의바람이였는데 그래도 그 눈포단이 알몸을 덮어준것은 다행이였다. 시체처치장인지 주위에는 자기와 같은 시체가 이십여구는 될것 같았다.

후에 가서야 갑동은 혹한과 주림에 시달리던 파렴치한 사람들이 시체의 겉옷마저 벗겨다가 밥과 떡하고 다 바꾸어 먹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반짝반짝하는 불빛이 마음을 홀리였다. 저것이 량심적인 우리 사람들이 살고있는 어느 민가라면 얼마나 좋으랴.

(갈가, 가지 말가?… 차라리 더 치욕을 당하지 말고 깨끗이 여기 흰눈속에 묻혀 죽어버리고 말가?

그러면 해토무렵이 되여 밭갈이 나오는 맘 어진 농민들이 밭머리에라도 묻어 주겠지. 아니야, 그러기도전에 그 청승맞은 까마귀떼들, 애국투사인지 혁명가인지도 가리지 않는 검은 그것들이 새까맣게 내려 앉아서 다른 시체들의 두눈과 함께 내것두 다 파먹을것이 아닌가.)

여기서 그냥 죽어 까마귀밥이 되고싶지는 않았다. 저것이 다행히 민가라면 운이 좋아 다시 어떻게 하던지 투쟁의 대오로 찾아갈수 있을것이다. 설사 일이 안되여 만나지 말아야 할 적들과 맞다들어 다시 체포되여 수용소로 끌려간다고 해도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 값 없는 개죽음을 당할것이 아니라 살아서 끝까지 싸우는것이 지리산의 진짜빨찌산이 아니겠는가.

그는 두번다시 살아난 몸에 단순히 생에 대한 애착심만이 아닌 새로운 투쟁의욕을 느끼며 그 불빛을 향해 기여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리산의 한 불사조라고도 할수 있는 불굴의 청년이 사체들만인 죽음의 구뎅이속에서 기여올라 투쟁의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한 처참하고도 간고한 행군이였다,

그가 보통농가로 보이는 그 집에 거의 당도했을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여러개의 센 전지불들이 나와서 작아졌다 길어졌다 막대기처럼 까불대면서 우줄우줄 이쪽으로 오고있었다.

(아차, 잘못 찾아왔구나.)

갑동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리며 머리를 눈속에 박고 꼼짝을 안했다. 서너놈 되여보였다. 좀 겁먹은듯한 발자욱소리가 잦아지다가 앞에 와서 멎는것이였다.

《이자 여기로 분명 무엇이 기여오댔는데?… 그렇지, 내가 잘못보지는 않았구만.》

씨벌이던 놈은 옆으로 다가오더니 발길질로 갑동이의 몸을 굴리여 돌려놓고 밝은 기윽자전지로 비쳐보고는 와뜰 놀라는것이였다.

《아니, 이거 요전날 한 <보아라부대>친구가 빨찌산의 이름난 선요원이였다고 하면서 죽은걸 내다버렸던것 아니야?》

《어디 보자? 맞았어. 그 시체들속에서도 죽지 않고 사나흘만에 다시 살아서 기여나왔으니 진짜 무서운 진빨갱인게라. 지독도 허이!》

《야, 살았으면 죽은척 하질 말고 냉큼 일어나. 짜석!》

이리하여 운수 나쁘게 경찰놈들의 손에 잘못걸려든 황갑동은 남원에서 다시 며칠만에 광주수용소라는 곳으로 끌리워갔다.

말이 수용소지 허허벌판에다 철망을 둘러치고 망루에 헌병대를 기관총까지 무장시켜올려서 감시케 했다. 포로들이 아니라 죄인들을 다루듯 했다. 여기 광주수용소로 말하면 거제도포로수용소를 비롯한 이여의 다른 전쟁포로들의 수용소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실상에 있어서는 지리산인민무장유격대를 비롯하여 남녘땅 지하와 산중에서 놈들과 싸우다가 체포되여 이곳에 끌려온 애국투사들, 빨찌산 대원들로 말하면 적들과 전쟁을 했던 사람들이였다. 따라서 그들을 전쟁포로로 대하여야 했다. 그러나 놈들은 이들을 포로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자기들의 국가체제를 반대하여 총을 잡았던 무장반란자들로 보았던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이들에 대하여 전쟁포로처리에 대한 제네바협정의 시행이나 그 어떤 국제법의 준수에 대하여 전혀 아랑곳 않고 무시하였으며 마구다지로 죄수취급을 했던것이다. 살벌한 수용소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에 《솔직 담백하면 살려준다》, 《즉시 출소시켜준다 전향하라!》는 대자보를 굉장히 붙여놓고 빨찌산들을 자수전향시키는 곳이라고 했다.

수용소는 세개로 구분되여있었는데 제1수용소와 제2수용소에 도합 5,000여명, 녀자수용소만도 l,000여명나마 수용하였다. 그중에는 무고한 이 지대 인민들 수백명도 포함되여있었다.

수용소 소장은 인간쓰레기, 인간말종 송인섭이라는 자였다.

놈은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교묘한 《정훈대》라는것을 만들어놓고 소위 사상불순분자들을 색출하여 자수시키기 위한 《감찰》과 같은 테로분자들의 소굴로 온 수용소를 만들어버렸던것이다.

전향시키기 위한 놈들의 방법도 다양했다. 허위모략 날조극, 거짓조작, 정신적인 고문, 지하에서는 비행기고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각목구타, 철봉대구타, 물고문, 불고문, 고추물고문, 불침고문, 전기고문, 마약고문, 맥동고문, 체위강압고문 별별 고문이 다 있었다.

게다가 매일 아침마다 구보, 토끼뜀을 시키고 현미잡곡밥 한술에다가 소금물만 적셔주니 염기부족으로 수용소 전원이 괴혈병으로 이몸들이 썩어서 떨어지고 허리와 다리가 굽고 야단이였다. 소금 몇톨, 비타민 몇톨이면 며칠은 견딜터인데 아래우의 이발까지 다 빠져 그만 호물때기가 되여버리는판이였다.

매일같이 죽어나가는 시체는 쌓이고쌓여 광주화장터가 넘쳐날 지경, 밤낮으로 사람 타는 냄새가 가져 오는 메스꺼움, 그 파릿한 린빛이 도는 특유한 갈색연기가 주는 구토감과 정신적인 자극…

사방에서 몽둥이질소리에다가 사람 살리라는 비명소리가 상공을 가르고 깊은 밤 정신이상에 걸린 사람들의 미친듯한 웃음소리는 머리칼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황갑동이 갇혀 있는 천막으로도 매일같이 제 발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담가에 실리여 들어 오군 했다. 그렇게 끌려들어와 겨우 정신이 들라 하면 옥졸들이 눈이 벌개서 북태 패듯 또 족쳐댔다.

《죽었다. 끌어내가라,》 그래서 보니 경상남도 민청위원장 리연기였다. 머리를 구름몽둥이로 쳐서 피를 동이로 쏟고 죽은것이다. 천막안에도 천막밖에도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시체천지였다.

제일 급한것이 특별고문실에서 받는 마지막고문인데 여기서 고문을 견디여내야 광주경찰국으로 넘어갈 《자격》을 가진다. 이곳에서 검사, 판사들이 공판장으로 보낼 재판에 필요한 극히 간단한 문건들을 작성하였다. 여기서 일찍 끝나야 10일이다. 이 좁은 공간에다 수용소인원 3분의 1정도를 대기시켰으니 마치도 멸치배속 같은 장소에다가 밥은 주먹밥을 던져준다. 잠은 앉아서 자거나 말뚝쥐처럼 서서 자기도 한다.

옛 속담에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는 소리가 있다. 여기는 무법천지여서 꼭 죽을 사람도 판사, 검사들에게 돈을 찔러주거나 점심만 한상 푸짐히 사먹여도 무죄라고 하는판이다. 포로들이 구덕정 공판장으로 가는 길에서도 돈이 없으면 유죄로 무조건 죽어야만 했다.

이런 형편에서 집형편이 괜찮은 사람들은 어떻게 련락을 취하여 부모형제들의 도움을 청하여 돈을 쓴 덕으로 더러 살아날 길을 찾기도 했다. 옆에서들 갑동이보고도 가만히 앉았다가 사형수로 떨어지지 말고 고향에도 편지를 띄우고 좀 운동을 벌려보라고 권고를 했지만 그는 그런 치사스러운 방법으로 놈들에게서 목숨을 건지려고 하지 않았다.

지어는 판사, 검사들이 예비심문을 하면서 재산이 얼마나 되고 땅은 얼마만큼 가지고있느냐고 물을 때에도 그까짓 좀 일정한 뒤밑천 댈것이라도 있다고 넌지시 한마디 넘기기라도 했으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까지는 내려앉을것인데 하도 고지식하다 보니 있는 그대로 말해버려 최고형으로 내정되였다.

지어 옥졸들까지도 의미는 다르지만 그런 고지식이 필요할 때가 있는지 거짓을 모르고 먹는 음식 욕심도 없는 그에게 도맡아 배식 갈은것도 맡겼고 매도 비교적 덜 때렸다. 그리고 그의 인간적인 성품앞에서 마음이 꺾이우는지 은근히 두려워지는 존경심을 가지고 공연히 황선생, 황선생 하면서 덜되여먹은 머리를 숙일 때도 없지 않았다.

매일 재판도 없이 무슨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살장으로 외양간의 소 끌어가듯 하루에도 여러명씩 끌어내다가 총살을 하는지라 누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판이다. 어떤 신경이 약한 사람들은 전옥들이 자기 옆사람들의 이름만 불러도 그 자리에서 정신 잃고 뒤로 넘어지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황갑동은 별로 구태여 살려고 발버둥치지도 않는지라 다른 꾀를 부리지 않고 운명의 날만을 기다렸다.

 

3

 

수용소와 감옥에서의 첫날 첫번째 고문을 이겨내기가 그후 열흘이나 백날의 고문을 견디여내기보다 더 어려우며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그후 그의 감옥생활 전반을 결정짓게 될수도 있다는 소리는 그르지 않는것 같았다. 제일 참기어려운것은 적도 아닌 어제날의 《동지》, 오늘날의 변절, 자수자에게서 직접 당하는 무지한 심문과 고문이였다. 얼마전에 자수, 전향한 자를 시켜 굶주린 칼치가 제 꼬리 잘라먹듯 제 동무가 제 동무를 잡아먹게 만드는 그런 전대미문의 골육상잔을 견디여낸다는것은 참으로 참기 어려운 정신적인 고문이기도 하였다.

황갑동은 어느날 최종적으로 겪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암실, 고문장으로 넘겨졌는데 거기서 극악한 원쑤가 되여버린 한 변절자와 맞다들게 되였다. 여기서는 주로 전기고문, 성기능을 마비시키는 고문, 전신의 피를 말리는 고문 등 그야말로 간이 찢기고 심장이 터져나가게 만드는 무서운 고문을 들이대였다.

그런데 사람을 완전히 죽이지는 않는다. 지옥의 불가마, 쇠물가마속에 계속 집어넣었다 꺼냈다가는 다시 집어넣군하는 식으로 거듭 3일간을 계속했다. 이 어지간한 사람의 혼도 달아나게 만드는 최종시험에서 대체로 견디지 못하군 했다.

산에 있을 때부터 낯을 아는 놈들을 만나지 말아야지 그것이 더 큰 일이였다. 그런것들은 얼굴까지 아는 빨찌산들을 다 꺾어서 자기와 같은 전향자로 만들어버리던가 아니면 완전히 죽여서 피묻은 제 손으로 그의 눈을 감겨버려야 하는 길밖에 없다는 특이한 심리의 작용을 받는지라 생사결판으로 달려드는것이였다. 또 한가지 위험한것은 한때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해오던 그런 자들의 철몽둥이에 맞는 매가 제일로 아프고 억울하고 원통할뿐아니라 완전히 처지가 《개선》된 그자의 모습에서 잘못하면 자기도 모르게 일종의 동요심이 생길수도 있다는 그것이였다. 이것이 바로 적들이 노리는것인만큼 제일로 두렵고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였다.

갑동이 일이 안되려니 최종고문의 첫날에 공교롭게도 바로 그런 불악귀 같은 놈과 맞다들고야 말았다. 국부조명이 잔뜩 진렬하여놓은 각종 고문기구들을 비치고있는 지하실, 살이 타는 냄새와 피비린내가 왈칵 나는 도깨비굴 같은 어둑시근한 암실로 들어서는 갑동이를 어둠속에서 노려보는, 아직 얼굴은 나타나지 않는 자의 진저리쳐지는 음침한 목소리가 콩크리트벽을 울렸다.

《음, 이름을 보고 근사하다 했더니 틀림이 없구만. 지리산의 유명짜한 황갑동련락과장동지!》

《…당신은 도대체 누구기에 나를?…》

《나를 모르겠소. 내 로영기요.》

《뭣이, 누구라구?》

로영기라는 소리에 갑동은 흠칫 몸을 떨었다.

《물론 뜻밖일테지. 그렇지만 당신의 앞엔 엄연히 어제까지는 어리석은 빨찌산이였다면 오늘은 당신 같은 진짜빨갱이들까지도 다 전향시켜 바른 길로 세울 소임을 맡은 남원수용소의 정훈대 대장 로영기가 서있다는것.》

(아, 덕금이한테서 동생 로영한의 자수에 이어 형인 로영기까지 자수전향했었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까지만 하여도 어쩌면 한때 빨찌산지휘부에서까지 있었던 사람이 변절하랴 싶었더니만 죄다 사실이였구나.)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줄은 몰랐겠지?》

로영기가 조명등불빛에 그 희여멀건 뻔뻔스런운 낯짝을 드러내며 씨벌였다.

《생각나? 내가 지리산이 점점 좁아지는것 같다고 뜻있는 말을 했을 때 믿지 않더니 어떻게 됐어? 투쟁반경이 점점 좁아지다가 나중엔 올데갈데 없이 꼼짝못하고 모두 잡히고말았지. 다 어찌할수 없는 사필귀정이야.》

《…》

《당신이 평촌물방아간집에서 내 동생 로영한이를 만났을적에는 뭐 무슨 철학까지 풀었다는데 그래 어드래? 고문이랑 받아보니까 인간고통의 그 극한점, 림계점을 꽤 극복해낼만 하던가? 핫하하, 힘들테지?》

《…》

갑동은 앞에서 수작질하는 놈의 철면피한 상통을 말없이 쏘아볼뿐이였다.

《그래도 한때 지휘부의 간부까지 해먹던 내가 당신들보다 못해서 일찌기 자수한줄 아는가? 누가 먼저 자수하는가 하는건 시간상의 문제이고 어차피 지리산이 통채로 총을 놓고 내려와 자수를 해야 해. 그래야 무모한 희생을 피하고 살아남을수 있는거야. 통일도 그렇지, 내가 죽고서야 통일은 해서 뭘 한다는건가?》

《…》

《언제인가 말을 들으려니 당신이 그 무슨 나라에 충실한 통일의 시중군노릇을 하겠다고 련락원이 되였다던데 다 어리석은짓이야. 지리산은 모조리 불타버리고 이제 와서 남북의 통일은 불가능으로 된 상태인데 무슨 놈의 말라 빠진 통일의 시중군이야.》

《…》

《더구나 당신은 지리산출신의 착실한 농사군이 아니였나. 거기는 저 북에서 살다가 나온 인민군출신의 포로들과도 달라서 순 여기 토배기 아뇨? 그러니 당신이야말로 북조선덕분에 땅 한때기 분여받아본 일이 있나 표창이나 훈장이라도 받아본적이 있는가? 그 공화국기발에 새겨져있는 해와 별의 덕을 크게 본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나.

인민군출신, 이북출신들은 그래도 땅을 준 그 은혜가 고맙고 공화국시절에 받아안았던 지난 날의 행복이라도 다시 새김질해보면서 이를 사려물고 더러 고문을 견딘다고 하지만 아 황갑동이사 자기의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이 간단치 않은 최종고문을 받다가 죽어야 할 리유와 근거가 어디 쥐뿔이나 있어? 내 말이 틀려?》

《…》

(이자의 그 말만은 맞았다. 나에게 있어서는 확실히 공화국의 덕을 입은것이 무엇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꾸할수 있는 그 근거만은 약하거나 매우 희박하다. 바로 이놈은 나에게서 가장 약한 그 측면을 포착하고 면바로 다친것이다.)

《어드래요? 내 말이 맞지? 우리가 다같이 산에 있을적에 선전부장 라근원은 강연회때마다 공화국북반부는 우리 희망의 등대요, 우리의 진정한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했었지. 그런데 어떻게 됐나? 인민군은 마치도 군무를 출 때 공화국기발을 들고 무대에 나와 한참 휘두르면서 돌아치다가 퇴장해버리고 마는것처럼 피뜩 공화국의 빛갈만 보이고는 후퇴해들어갔다가 다시 나오지 못했어. 아니 이제 정전까지 되면 공화국은 다시는 영영 나오지 못하고말아.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하면서 무한정의 피만 바칠것을 요구하는 그 빛갈뿐이고 상징뿐인 공화국을 위해 여기 지리산에 수많은 입산자들이 다 묻히고 만다는게야 너무나도 억울하고 허망하지 않아.》

갑동은 이 가증스러운 배신자의 상통을 견주어보며 당장 주먹이 나가는것을 겨우 참았다.

《당신 하나만 놓고봐도 그렇지 않아. 전망이 암담한 통일의 심부름군으로 자신을 헛되이 희생시키면서 세상에 났다가 남들처럼 장가도 한번 가보지 못하고 불쌍하게 죽을수야 없지 않는가. 내 듣건대는 련락과장에게도 애인 비슷한 고향처녀가 하나 있었다는것 같은데 당신이 산으로 얼려서 데리고올라갔댔다는 소문이 있던 그 녀의 운명이 지금 어떻게 되였지는 알고싶지 않소.?》

《강… 강덕금이 말이요?》

놀라움에 찬 갑동의 말은 흥분으로 떨리였다.

《그렇소. 당신과 마지막으로 언쟁을 벌리던 그날 거기를 두둔하여나서던 그 강뚱보의 생사가 궁금할텐데…》

《…》

갑동은 마른 침만을 꿀꺽 삼키며 로가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너희들은 그때 자기 한몸이 지뢰로 묻혀서라도 나를 잡자고 했다는 그 뚱보계집의 지뢰탄을 밟고 터져서 내가 죽은줄 알았겠는데 천만에, 오히려 그년이 나를 찾아오던 길에 우리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서 덫에 걸린 살진 오소리의 신세가 되였다는것, 그 녀자는 잘 뛰지도 못하는 뚱보인 주제에 <토벌대>의 추격을 받아 우리한테 잡히게 되자 얼마 못가서 지휘부 환자아지트의 비밀까지 말짱 다 불었어. 제깟것 물살 같은게 견디여내나. 몇번 몽둥이찜질을 해대자 한번만 살려달라고 하면서 세살때 먹은 젖까지 게워놓더구만.》

교활한 로가놈의 그 말에 갑동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그것을 부정하였다.

《아니요, 거짓말이요. 강덕금이는 절대로 그럴 녀자가 아니요.》

《믿기는 잘 믿어. 그럼 강덕금이 당신들이 앓아누워있던 새 환자아지트를 떠나서 날 잡으러 온지 얼마 안되여 당신이 아무도 모르게 옮겨간 아지트가 포위된 사실은 뭘로 설명하겠어?》

《…》

《정 그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직접 만나게 해줄수도 있어. 그러니 네가 나의 모범을 따라 전향만 한다면 살려주는것은 물론 뚱보처녀와 결혼도 시켜주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게 해주겠다는걸 내가 철저히 담보할수 있어. 어드래, 그렇게 하지? 조국이란 별것이겠나. 잘 먹여주고 잘 입혀주고 잘 살게만 해준다면야 북이건 남이건 무슨 상관이야.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그 조국이라는걸 아무래도 우리가 장차 그 치하에서 살아야 할 <대한민국>과 바꾸었다 이 말이요. 그러니 당신도 조국에 대한 그 어리석은 신념을 바꾸어가지고 우리의 자유세계로 투항해오란 말이야. 투항해!》

놈의 그 말에 황갑동은 참고 참아오던 분격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나온 개같은 변절자놈아! 조국, 조국이란 그 신성한 말을 더럽히지 말라.》

《무엇이라구?》

《창피를 느끼고 수치를 알라. 네놈들처럼 큼직한 빵과 고기덩어리나 던져주는것이 <조국>이라고 생각한다면 저 개들에게도 <조국>이 있다는것과 같은 소리야. 이 더러운 배신자야!》

《닥쳐라! 너는 이젠 죽었다. 야-영한이, 시작해.-》

《옛, 알겠시다.》

어디선가 어둠속에서 놈의 동생인 변절자 로영한이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도깨비옛말에나 나오는것 같은 삐죽삐죽 쇠못이 박혀있는 굵직한 몽둥이가 들리여있었다. 그자는 비굴한 웃음을 보이며 지껄이는것이였다.

《황선생, 나는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는건 바라지 않았습니다. 제발 제가 황선생한테만이라도 이 가시몽둥이질을 하지 않도록 해주십사.》

《저 지옥의 피가마, 불가마를 지키는 이 야차 같은 놈아, 그래도 목숨이 아까워 자수는 했지만 죽을 때라도 바른 마음먹고 죽으라 했등마 너같은 인간족속들은 달리 될수가 없는것이니 마음대로 해봐라!》

《로형이 제아무리 지리산의 갈범이고 그 아무리 모든 고난과 시련을 강한 의지의 힘으로 이겨내는것이 혁명가라고 했지만 안되여. 아직까지 우리 형님의 창안품인 이 철가시몽둥이앞에서는 당장에 하나의 피덩어리가 되여 딩굴다가 죽은 자는 있어도 이 참기 어려운 <극한점>을 살아서 넘어선 자는 없응께 지금이라도 한마디만 하소. 그래서 어디 같은 자수전향자가 되보잔 말이요.》

《…》

평촌 물방아간 집에서 콩동무와 같이 맞다들렸던 이 변절자의 입에서 다시 그런 자극적인 말이 튀여나오는 순간 황갑동의 눈앞에는 그 잊을수 없는 나어린 녀대원의 최후가 떠올랐다.

지리산이 한번 더 큰 경난을 겪어야 했던 동기《토벌》의 가장 엄혹한 시기에 있었던 일이였다.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얼마전부터는 산에서 내려와 지하에 숨어서 산청군녀맹사업을 하고있던 콩동무의 그때 나이가 아마 만 열대여섯살밖에는 안되였을것이다. 어떤 집 같아서는 부모들이나 오빠앞에서 한창 응석이라도 부릴 나이였다. 당시 녀맹에 드는 나이기준이 어떻게 되였던지 민청생활을 거친 일정한 년령의 녀성들이라야 가맹하게 되여있었을것이다.

고려되였다면 어리지만 유부녀라는 점과 적후투쟁의 특수성을 고려한다고 하여도 녀자의 나이 15, 16살에 보통녀맹원도 아니고 면도 아닌 적후의 군녀맹일군의 책임을 맡는다는것은 흔치 않은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산청군을 다 뒤져도 그 어린 나이의 녀성으로서 혁명성, 조직성, 규률성, 강인성 그리고 사업에 대한 열성과 투쟁경험의 측면에서 콩동무만한 녀자를 고를수가 없었던 모양이였다. 그러기에 군녀맹일군을 시켰겠지. 모름지기 남반부 전역의 수많은 녀맹조직들중에서 그 년령기의 군녀맹일군은 콩동무 하나였을수도 있는것이니 그가 처음 갑동이와 만났을 때 말했던것처럼 결코 혁명이란 나이로만 하는것이 아닌것 같았다.

그런데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들이 진행하고있던 지리산《토벌》과 관련한 중요한 정보자료를 직접 가지고 황갑동련락과장에게로 선을 대이러오던 도중에 그는 그만 적들에게 체포되고야 말았다.

그때 황갑동은 대원 한명을 데리고 선받으러 내려갔다가 접선장소에 못미쳐 그가 여러명의 괴뢰군놈들에게 붙잡혀가는것을 눈앞에서 뻔히 보면서도 손쓸 형편이 못되여 가슴이 터져나가는것 같았다.

두해전에 로영한이라는 자가 잡았다가 놓쳤던 간단치 않은 계집이 산으로 련락가는것을 잡았다는 통고를 받은, 얼마전에 소령으로 승진된 악명높은 정규택이놈이 그 달음에 모터찌클로 수림을 썰면서 산판의 현지에 달려왔다. 그가 《토벌대》야전지휘부 미군천막에 닥쳐들었을 때에는 이미 콩동무가 비상련락쪽지를 입에 넣고 삼켜버리고난 뒤였다.

《요 콩알같은게 비밀쪽지를 벌써 삼켜버렸어?》

정소령의 물음에 괴뢰군 중위가 대답했다.

《예, 우리들한테 붙잡히게 되자 그 즉석에서…》

《그렇다? 그 쪽지가 어디까지 들어갔을가? 이젠 식도를 지났겠지? 엉?》

《지나지 않구요. 지금쯤은 위에까지 내려가 종이쪼박이 말장 다 소화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더.》

콩동무는 소문을 들은바 있는 정소령놈이 가까이 다가들어 자기의 가슴을 헤치고 위안까지 투시해보는것만 같은 음험하고 사악스러운 그 눈길앞에서 몸서리를 쳤다.

《야, 요 재수없는 콩새같은 년아, 그 비밀쪽지를 가지고 어디로 날아가던 길이야? 거기엔 뭐라고 써있었냐?》

《…》

《나는 아이적부터 산 꿩새끼의 목도 그 자리에서 비틀어따서 더운 피를 마시던 그 정가야. 똑똑히 대지 않았다간 네 목을 이 자리에서 따고 식도로 갈구리를 집어넣어 밥주머니에 있는 그 비밀쪽지를 꺼내볼줄 알아라.》

《…》

정말이지 이놈은 능히 그런짓이라도 할만한 악착한 자였다.

《대겠어, 안 대겠어?》

《나는 모른다!》

《네 모가지를 비틀어 끊어도?》

《마음대로 해라!》

《요 코랑 입서껀 눈알이랑 생긴걸 보니 이년은 독종이 틀림없다. 군의를 데려왔어?》

《옛. 여기 있슴더.》

《당장 이년의 식도로부터 위까지 내려째여봐-》

《예에? 저는 그건 못하겠슴더, 산 사람의 위를 어떻게 쨉니껴?》

《그래 군의는 이때까지 산 사람의 위를 째지 않구 죽은 사람의 위만 부검을 했는가?》

《그렇지만 이건 산 사람의 멀쩡한 생위가 아닙니껴?》

정소령은 위생복을 입고있는 군의의 가슴팍에 권총을 장탄하여 내대며 독을 썼다.

《이래도 못하겠는가? 이제부터 다섯을 세겠다. 하나… 둘… 셋… 네엣-》

《소령님, 하겠습니다. 하겠슴더.》

군의는 바빠나서 사색이 되여 말했다.

《근데 마취주사라도 먼저 놓아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취는 무슨 놈의 마취야. 시간이 없어. 그냥 빨리 째라!》

《아… 알겠슴더.》

그리하여 정소령놈은 산 녀자의 식도를 칼로 째고 생위를 갈라보는 귀축같은 만행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그렇지만 위속에서 다 풀죽이 되여 전혀 한글자도 알아볼수 없는 종이솜쪼박만 나오는데 화가 난 정가놈은 발작적으로 소리치는것이였다.

《야, 그년을 죽이지 말고 밥주머니랑 도루 다 꿰매라. 꿰맷!》

무도잔인한 정소령놈은 겨우 의식을 회복한 콩동무를 빤쯔 하나만 내놓고 발가벗겨 굵은 쇠못들이 여기저기 삐죽삐죽 솟아있는 맨 널침대우에 올려눕히고 굴리였다. 금시에 그의 작은 몸은 온통 날카로운 못끝에 찔리여 류혈이 랑자하게 되였다.

그렇지만 그는 끝까지 빨찌산의 비밀을 고수하고 혁명의 지조를 지켜냄으로써 가장 어렵고도 고통스러운 그 림계점의 순간을 강한 의지와 신념으로 이겨내는 사람이 참된 혁명가임을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고 쇠못이 박힌 널침대우에서 비장한 최후를 마쳤다.

놈들이 산속에 내던지고 간 콩동무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지내는 피눈물의 날이였다.

그를 묻을 구뎅이는 그리 크게 파지 않아도 되였다. 그의 전사를 알았으면 가슴치며 기막혀 할 권영태는 이미 희생되고 없는지라 대신 황갑동이 자기의 덧저고리를 벗어서 그를 싸안았는데 어른의 시신이라고 할수가 없었다.

어제날엔 열세살의 제일 어린 빨찌산의 녀대원이였으며 얼마전부터는 녀성중대 저격수, 산청군녀맹조직부장사업을 책임지고있던 일군이였던 콩동무의 그때 당시 나이가 기껏 열여섯살이였다. 크지 않은 땅구뎅이속에 전우의 품에 안겨 내려놓인 아직 녀성으로서의 골격도 채 형성되지 않아 마치 소녀애같이 생각되여 이게 정말 지리산의 소문난 콩동무, 군녀맹일군이 옳은가 싶어지는 그의 작은 시신을 들여다보며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더구나 그를 누구보다 가까이 잘 알며 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의 한사람인 황갑동이의 가슴은 천갈래만갈래로 찢기여나가는것만 같았다.

《콩동무, 잊지 못할 전우여, 살아 생전에 그 작은 몸을 남을 위해 다 바치며 동무들에게 조금이라도 페 끼칠세라 콩새만한 몸도 삼가며 남보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잠자리도 적게 차지하고 살더니 그대는 죽어서도 이 세상의 너무나 작은 공간만을 차지하고 조용히 눈감고 누웠구나!

사람의 몸체가 크다고 하여 큰 인간인것이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아도 알속이 있고 실속이 있어 없어지면 그만큼 자리가 비는 그런 사람이 바로 큰 인간임을 보여주고간 사랑스리운 우리 콩동무여, 우리도 그대의 모범을 따라 시련의 언덕을 기어이 넘고 넘으리라!》

진정 황갑동이가 실천투쟁속에서 얻어낸 투쟁의 진리가 콩동무와 같이 의지굳센 지리산의 나어린 딸을 키워낸것이라면 그 녀성의 신념의 강자다운 충격적인 희생정신은 지금도 갑동이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있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그 이후 참기 어려운 감옥생활속에서도 절대로 동요와 굴함을 모르고 억세게 싸워나갈수 있는 남다른 정신적인 힘을 낳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콩동무의 비장한 최후에서 새로운 투쟁의지를 가다듬게 된 황갑동은 변절자들인 로영기와 로영한이를 무섭게 쏘아보며 불을 토하듯 말했다.

《이 내장까지도 다 썩어빠진 인간쓰레기들아, 네놈들이 말하는것처럼 설사 어떤 물체는 <한계점>에 도달하면 그 물리적인 성질이 변할런지 몰라도 우리 지리산의 참된 통일애국투사들은 죽으면 죽었지 그 어떤 극한점에서도 혁명정신만은 절대로 변치 않는다는것을 보여줄테다!》

《야, 영한이, 놈을 사정 두지 말고 그 철가시몽둥이로 되게 답새겨라-》

옆에 서있던 로영기가 악에 치받쳐 소리질렀다.

《할수 없지. 그럼 어디 맛을 봐라.》

로영한은 두손으로 틀어잡은 피묻은 가시몽둥이를 휘둘러댔다.

《야-잇》소리를 연방 치며 있는 힘껏 갑동이의 등어리를 후려댔다. 그러기를 수십번, 사람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싶게 무서운 비명이 터져나오는것과 동시에 날카로운 쇠못을 박은 가시몽둥이에 맞은 그의 몸에서는 선지피가 덩이로 뿜어져나와 순간에 피투성이가 되여버렸다.…

그날 두 형제악당놈들은 황갑동이를 완전히 죽이지는 않고 래일 또 고통을 줄수 있는 여유를 남겨 반주검을 만들어 끌어내갔다.

그는 이틀만에야 겨우 인사불성에서 깨여날수가 있었다. 의식이 들자 고문으로 입은 상처의 아픔도 컸지만 그보다 더 참기 어려운것은 포로로 사로잡힌 자가 당하는 더없는 치욕감이였다.

그래도 지리산을 오르내릴 때에는 이름 날린 전투원들이고 영웅 맞잡이들이였건만 포수가 범을 잡아놓으니 똥개들까지 접어들고 나중에는 하루살이들까지 물어뜯는다더니 그 소리가 맞았다. 포로로 사로잡히고나니 싸움에서는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검정개들과 자수투항한 놈들까지 업신여기며 달려들어 개패듯 하는 판이다. 사람이 살아있으니 살아있는가 싶지 포로는 산 사람이 아니였다. 죽은 목숨이나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비참하고도 치욕스럽기 그지없는 최악의 존재였다.

1차 진공시기 하동해방전투에 함께 참가했던 한 인민군전사의 수첩에 적혀있는 《전투시 병사의 의무》의 어느 조항에는 《병사는 절대로 포로되여서는 안된다.》고 엄격히 밝혀져있었는데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았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뇌리를 치는것이였다.

(포로! 포로는 엄격히 말해서 투항이다! 전날 그래도 나는 치마바위에서 떨어져 죽으려고 했는데 우연히 살아났으니 할수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으로 자기위안을 할수도 있었는데 절대로 그것이 아니다. 수원의 시체더미에서는 왜 살아나가지고 그 도깨비불빛은 무엇때문에 찾아가 저절로 잡힌단 말인가? 이랬든 저랬든 너는 이 시각까지도 살아서 이 대전수용소에서 포로의 온갖 굴욕을 다 당하고있는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결국에 있어서 나는 놈들의 포로가 되고 빨찌산의 명예를 더럽히고 오점과 루를 남겼으며 당과 인민앞에 씻을수 없는 큰 과오를 범한것이다. 나는 적어도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통일은 멀고 많은 싸움을 겪어야만 할 우리 후대들의 가슴에 《포로가 되는것을 무서워하라. 포로는 그 어떤 리유와 구실을 불문에 두고 목숨을 아까와 한 자의 비겁이고 자수이며 투항이다. 포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끝까지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는것이 백번 낫다!》는 피의 교훈을 새겨주어야 한다!)

이와 같은 자곡지심으로 하여 정신적인 고민상태에 빠지게 됨을 어찌할수 없는 갑동이였다.

한곳도 성한데라고는 없는 몸의 상처, 그 마음의 상처보다도 더 가슴아픈것은 지하암실에서 로영기에게서 들은 말, 강덕금이마저 포로로 사로잡혀 비밀을 토설해버렸다는 무서운 소리였다. 응당 그의 손에서 보복의 징벌을 받았어야 할 변절자놈이 아직까지도 살아 돌아치는것으로 보아 계획했던 작전이 실패한것만은 사실인것 같았다. 그리고 몸이 둔해 잘 뛰지도 못하는 녀자로서는 놈들의 추격을 벗어나지 못한채 잡히고말았다는것도 십분 있을수 있는 일이였다. 그런데 그가 놈들의 첫 고문에 견디여내지 못하고 환자아지트와 지휘부의 비밀을 불었다는것이 사실이겠는가. 자기가 알고있는 덕금이는 그렇게 첫 타격에 쉽게 굴하여버릴 그런 녀자가 아니라고 믿어지면서도 사방에서 자수자들이 속출하고 지어는 로영기와 같은 어제날의 지휘관이라고 하는 자들까지도 자수투항해버리고 마는 엄혹한 현실은 혹시 알겠는가 하는 의혹심을 낳게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분연히 머리를 흔들어 자기가 제일로 믿어 아끼던 녀동무에 대한 일종의 모욕으로 되는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절대로 그럴수 없다. 지금 어려운 환경에 빠져있을수도 있는 동지를 믿자. 이번에 처음 체포된것도 아니고 전번에 경찰놈들에게 붙잡혔을 때에도 굴함없이 싸웠으며 자폭용수류탄으로 방안의 놈들을 멸살시키고 웃으며 부대에 나타났던 미덥고 사랑스러운 전우가 바로 강덕금이가 아니였던가.

늘 나에게 짐으로 얹혀다니는것을 미안스러워 하던 덕금이, 나의 도람통동무여! 지금 어디에 있는지 보고싶구나. 오히려 그 무겁던 짐이 어깨에 그리워지는구나.…)

그러나 다음순간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알수 없는 로영기의 지껄임소리가 되살아오자 또다시 머리를 어지럽게 자극하는것이였다.

(…가만 우리가 누워있던 환자아지트는 그곳을 떠나기전에 눈썰매로 우리를 실어옮겨다 준 덕금동무밖에는 알고있는 사람이 없지 않는가. 그리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변절자놈이 《토벌대》의 군견들을 앞세우고 오는 길에 자기 한몸이 지뢰로 묻히겠다고 떠나던 그는 돌아오지 않고 경찰놈들만이 환자아지트에 나타나서 포위했던 그 사실은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것인가.

아,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더 가슴아프고 무서운 일이 또 어디에 있을것인가. 그렇게 되면 나는 이제 누구를 더 믿을수 있단 말인가. 지리산의 통일혁명은 이 극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장이 나고 만다는것인가.…)

그처럼 마음속에 미더웁던 녀동무 강덕금이마저 체포되여 굴복해버리고 말았다는 소식까지 듣고 자기도 모르게 일시에 맥을 놓게 된 그는 완전히 생의 의욕마저 잃고말았다. 그는 그때로부터 일체 삶을 위한 그 어떤 행동도 말도 중지하고 이틀째 식사도 거절하였다. 옥졸들이 저녁에 찾아와서 야단을 해도 일체 응하지 않았다. 자기가 그때 죽으려고 했었지만 죽지 않고 오늘까지 몇번이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것과 관련한 자기 변호는 얼마든지 할수 있었다. 그렇지만 천성적으로 마음 고정한 사람인 그는 누가 옆에서 어쩌지도 않는데 자신을 스스로 계속 괴롭히니 그것도 야단은 야단이였다.

 

4

 

그 이틀날이였다.

그와 한방에 전남 강진출신의 지식인으로서 광복직후 북에 들어가 평양에서 어느 중요한 신문주필로 일하다가 1950년에 락동강전선에까지 나왔다가 체포되여 여기에 오게 된 김주호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옆에서 보다 못해 안되였던지 이제는 다 망그러져서 페인이 되다싶이 한 몸으로 쿨럭쿨럭 기침을 하면서 가까이로 기여와서는 한마디 고무의 말을 해주는것이였다.

《보아하니 원래 너무나도 고정한분이 되여 그러는것 같은데 우정 잡힌것도 아니고 부득불 그렇게 된 일이니 자신을 너무 그렇게 괴롭힐 필요가 없습니다. 잠시 우리 혁명선배들을 눈앞에 떠올려봅시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에게도 10대 시절에 길림감옥생활의 옥고가 있었고 레닌도 수센스의 감옥을 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알겠는지 모르겠는데 제2국제당 7차당대회에서 <반파쑈인민전선운동에 대하여>라는 유명한 보고를 했던 벌가리아인민의 우수한 아들이였던 지미뜨로브의 공판투쟁은 얼마나 도이췰란드파시스트놈들을 전률케 했소. 투쟁과 혁명에는 감옥도 단두대도 있을수 있으며 옥중투쟁도 혁명투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 용기를 냅시다.》

갑동은 아는것도 많고 생활경험이 풍부한것 같아보이는 이 선배의 말에서 힘을 얻었다.

《솔직한 말로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놈들에게 살아서 잡혀와있지만 황동지만큼 자신이 포로된 문제를 두고 그야말로 고지식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아픈 매를 안기는 인간이 별로 많지 못할겝니다. 혁명가들모두가 황동지 같다면 아마 탈선을 모를것 같구만요. 허허.》

《너무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주호동지! 그런데 털어놓고 말해서 이제 저한테 남은게 뭐가 있습니까. 고지식한것밖에 더 있습니까? 여기서 그것까지 잃으면 저는 못삽니다.》

《참말이지 부럽습니다. 그 고지식성이… 누구에게 도적맞힐 걱정도 누구에게 빼앗길 념려도 없는 인간의 자본중에서도 제일가는 자본, 혁명의 밑천중에서도 제일 큰 그런 든든한 마음의 밑천을 가지고있는 황동지가…》

《그렇게꺼정 말씀하시니 정말이지 고맙구만요.》

황갑동은 자신의것이라고 하면서도 그 마음의 보배를 의식하지 못하고있던 자기에게 적들의 온갖 기만과 모략, 정신육체적인 고문으로부터 본래의 인간만은 망그러뜨리지 않고 지켜낼수 있는 량심의 보검을 안겨주어 정신도덕적인 승화를 가져오게 해주는상 싶은 이 김주호라는 사람이 우러러 보였다. 동시에 고향에 있을적에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품성으로 물려준 그 인간 자연으로서의 고지식성에 목적의식성을 부여해주어 혁명가로 자라나도록 이끌어준 눈먼 선각자인 강대선형님과 여러 선배들에 대한 생각이 무던히도 났다.

어제 전향자인 그 원쑤놈이 나에게… 그 공화국기발에 새겨져있는 해와 별의 덕을 크게 본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고 물었을 때 왜 나는 거기에 응당한 대응을 못했던가.

언제인가 대선형님은 해뜨는 아침에 룡산마루쪽으로 몸을 돌리고앉아서 우리 공화국기발속에 그려진 저 해와 별을 제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싶다고 했었지.

그날 덕금이가 수놓아준 그 공화국기발속의 해와 별을 손으로 쓸어만져보며 다시금 가슴깊이에 새겨안는것만으로도 행복의 눈물을 흘리며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를 부르던 강대선형님!

지금 돌이켜보면 그래도 자기는 인민군대에 의한 해방을 맞이했었고 난생 처음 공화국정권아래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인간다운 생활을 누려보았었지만 강대선은 그러지도 못해봤었다. 그렇지만 그는 공화국기발에 새겨진 해와 별이 뜻하고있는 의미를 나보다 더 깊이 알았었다. 그는 앞못보는 장님이면서도 언제 한번 덕도 입어보지 못한 해와 별의 새 나라를 지팽이도 없이 고도시 믿고 따르며 오직 그 고지식한 마음 하나로 진심을 바쳐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받들었으니 세상에 아무리 고지식하다 하여도 그렇게 고지식할수가 있을것인가!

《강대선형님, 우리 마지막으로 련락의 길을 함께 걷던 그 잊을수 없는 달밤에 형님은 나에게 말했었지요. <…내 전번에도 좀 말했지만 혁명이란 고지식함을 가지고 하는것이제. 앞으로 어디 가서든 일을 해도 투쟁을 해도 감옥살이를 해도 끝까지 고지식하게 해야 할줄로 아네. 그래야 시종이 여일하게 등탈이 없고 탈선을 모르는거여… 그 어떤 멋이나 거짓요술로써는 혁명을 못하는게라. 그러니 이제 입산을 해서 빨찌산이 되고 지리산의 투사, 나아가서 우리 나라 광복의 은인이시고 통일의 령수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전사가 되며 그이의 고지식한 전사, 고지식한 충신이 되길 바라오.>

형님, 내 그때 나한테 해주신 형님의 그 귀중한 말씀을 명심해두고서 해와 별도 보이지 않는 이 어둠의 철장막에 덮인 캄캄한 생지옥속에서도 나는 오직 고도시 만사람들에게 어머니라 친근하게 불리우는 조선로동당과 김일성장군님만을 철저히 믿고 따르렵니다.》

 

이러구러 이튿날이 되였다.

어느덧 푸름푸름 새날이 밝아와 눈을 뜨던 김주호는 이상한 하나의 현상을 발견했다.

아직은 남들이 다 자는 이른 새벽인데 자기앞에 쓰러져 밤새 신음소리를 내던 황갑동이 어느새 일어났는지 벽을 마주하고앉아서 혼자 그 무슨 주문을 외우듯 입속으로 중얼중얼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아니, 이 사람이 필시 무신론자일터인데 예수를 믿는가? 모를 일인걸…)

《황동지, 거기서 뭘하고계시오.

사회주의자야 유물론자일텐데 설사 감옥에 들어앉았다 해서 하느님한테 새벽기도를 드리고있는건 아니겠지요?》

《왜요?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좀 <새벽기도>를 드리면 못씁니까.》

《…》

《지금 저는 머리가 제일 맑은 새벽시간에 조용히 혼자 조선로동당규약을 학습하고있는중이랍니다.》

《우리 당규약학습을요?》

김주호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래였다.

(아하, 이런 사람도 다 있구나.)

《김동지, 내 한가지 같은 로동당원인 동지로서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렵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저는 이젠 놈들에게 체포된지도 달이 지났는데 당조직이 준 분공을 아직… 제 이번달 세포분공이 당규약의 기본내용을 통달하고 당원들앞에서 발표하는것인데 미안하지만 김주호동지가 대신 나의 당적분공 실행정형을 동지적으로 검열해주시지 않으렵니까?》

《내가요?》

《예.》

《제가 세포위원장도 아닌데 어떻게 조직을 대표해서 그렇게 할수 있겠습니까?》

《조직이 별것이겠습니까.

혁명동지가 곧 조직이지요. 동지 셋 이상부터는 세포를 구성할수 있다는게야 당규약상 규범에도 밝혀져있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구만. 우리 그러지 말고 이 방에만도 당원동지들이 있겠으니까 황동무의 당적분공실행 겸 이 새벽시간에 모두 모여서 같이 당규약학습으로부터 감방에서의 당조직생활을 시작해보지 않겠습니까?》

《그게 좋겠구만요.》

《그런데 첫 학습을 하려고 해도 당규약수첩이 있어야지요?》

《그건 제게 있습니다.》

《그래요?! 어떻게 그래도 당규약책을 여기까지 용케도… 어디 좀 봅시다.》

《이건 눈으로 보여드릴수는 없는것인즉 그 당규약이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토 하나 틀리지 않게 몽땅 통채로 외워넣은 이 머리속에, 나의 이 가슴속에 품어져 있는것이랍니다.》

《아, 그렇단 말이지요. 그것이야말로 놈들이 보고 회수할수도 빼앗을수도 없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당규약수첩인셈이니 됐수다. 그럼 당원들을 여기로 부릅시다.》

이렇게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던 김주호가 근 20명이 누워있거나 앉아있는 감방안 사람들을 향하여 매우 낮으나 엄숙한 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것이였다.

《저… 당원동지들을 찾습니다. 로동당원동지들이 없습니까?》

갑동이도 그리움과 친근함이 있는 소리로 찾았다.

《조선로동당원들이 있으면 이리로 좀 와주셨으면 합니다. 당원동지들은…》

어제 저녁때까지만 하여도 최종고문을 당하고 피투성이가 되여 들어와 쓰러져 다시 피기 어려우리라고 걱정했던 사람이 다시 살아 일어나앉아 당원들을 모이라고 하는 그 소리에 감방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모든것이 죽어있는듯 하고 피칠이 된 옷주제들이며 세면도 하지 못해 잔뜩 때가 앉은 얼굴들이며 온몸이 무너져내리듯 쓰러져있는 사람들속에 무슨 당원들이 살아있으랴 싶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한사람, 두사람씩 일어나는것이 보였다.

이어 일어설수 없는 어떤 사람들은 무릎걸음으로, 또 다른 한사람은 벌벌 기여서까지 황갑동이와 김주호네들이 있는데로 찾아오는것이 아닌가?!

그들의 근엄한 모습을 대하는 황갑동이의 가슴은 후더워만 왔다.

일여덟명의 당원들이 가까이 모여와 서로 의지해 앉았을 때 비로소 김주호가 옷매무시를 바로하며 신중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동지들! 우리에게는 아직 자기의 당조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황갑동동지는 로동당원은 그 어느 절해고도나 철창속 감방에 갇혀있다고 해도 자기 량심의 당생활만은 스스로 계속해야 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깨우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황동지의 제의에 의하여 이번달 자기가 조직에서 받았던 당적분공실행을 위한 발표를 여기 여러 당원동지들앞에서 하는 겸 우리 다같이 옥중에서의 첫 당규약학습을 하자는것을 엄숙히 제기하는바입니다.

그럼 황동지 부탁드립니다.》

황갑동이 감방안 당원들앞에 정좌로 앉아 무겁게 첫말을 떼였다.

《친애하는 동지들, 동지들이 모두 알고있는바와 같이 조선로동당 강령과 규약은 다 백전백승 우리 당의 창건자이신 김일성동지께서 직접 작성하신것입니다.

이제부터 불굴하는 투지를 가진 대전수용소 첫 당조직이라고도 할수 있는 전투적인 세포당원들의 당규약학습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앞에 앉아있던 당원들만이 아니라 놀라움과 감동, 부러움을 가지고 이쪽을 말없이 지켜보고있던 다른 사람들까지도 바로 앉으며 박수를 보내주는것이였다.

황갑동은 드디여 아무 자료도 무엇을 적은 수첩 하나도 없이 허망으로 다 따로 외웠던 당의 기본문헌을 떨리는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조선로동당 강령!

조선근로대중의 리익을 대표하며 옹호하는 로동당은 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목적한 아래와 같은 과업을 위하여 투쟁한다.…》

이렇듯 지리산의 지난 생활이 갑동에게 안겨준 하나의 귀중한 성품인 고지식성! 바로 이것이 그로 하여금 감옥안에서도 스스로 당생활을 계속하는 참된 로동당원으로, 후에는 비전향장기수로 끝까지 살며 투쟁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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