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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 출입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주성욱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들어왔다. 아까도 그렇게 들어왔다가 말을 못하고 그대로 조용히 나간것 같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저녁식사를 하시지 않겠습니까?…》

물음이 아니라 때식을 건늘수 없다는 요구와 소망이다. 물러서지 않을것 같은 표정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시계를 보시였다. 벌써 9시가 넘었다.

《성욱동무, 좀더 있다가 식사를 하겠소. 황철에 갔다는 화학공업부장한테서 전화가 올것 같아 그러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류더미곁의 풀색송수화기를 웃음어린 눈길로 가리키며 소탈히 말씀하시였다.

《내야 그 동무를 아무때고 찾을수 있지만 그 동무야 어디 그렇소. 전화를 걸게 했는데 이제 곧 올거요. 성욱동무는 그사이 한가지 일을 더 해주오. 최부부장동무더러 전국의 농업부문 일군자녀들의 직업상태에 대해 조사분석해 달란다고 하시오. 도와 군은 물론이고 농촌마을에 이르기까지 농민과 농업을 지도하는 일군은 다 포함시키라고 하시오. 될수록 빨리 해주면 좋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다른 문건을 펼치시였다. 주민들에게 옥쌀을 공급할데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량정총국에서 올린 문건이였다.

옥쌀은 이즈음 세계적추세였다. 흰쌀에 비해볼 때 그 맛이 구수하고 동맥경화를 막는데 좋으며 영양가가 1.5배 더 높다. 그래서 옥쌀을 주식의 한 품종으로 하는 나라들이 나날이 늘어나고있다.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식생활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에 옥쌀연구집단을 무어주시고 도들에 시범적으로 공장을 짓도록 하시였다. 그것이 결실을 맺어 평양시와 도소재지들에서 먼저 공급하려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을 주의깊이 보시였다. 평양시에서 생산된 옥쌀맛을 보시였고 얼마전에는 신의주의 옥쌀로 지은 밥도 잡숴보신 그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들어 량정총국장을 찾으시였다.

《아, 금방 퇴근하려던 참이였습니까? 옥쌀문제말입니다.… 난 아직 주민들에게 공급하는것이 이르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일반제품으로 나온 옥쌀맛을 보았는데 흰쌀처럼 쫄깃한 맛이 덜합니다. 옥쌀알들이 헤지는것도 나쁘고… 색갈도 누런게 사람들이 좋아할것 같지 않습니다. 왜 풀기가 적습니까?》

《옥쌀을 가공할 때 밀이 기준보다 적게 들어가서 그럽니다.》

《원인이 그것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가루립자가 미세하지 못합니다. 벼는 자기 열매인 쌀알을 얼마나 초미세립자로 빚어놓습니까. 난 학생시절에 현미경으로 벼알의 세포조직을 들여다본적이 있습니다. 글쎄 인조가공옥쌀을 거기다 비할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옥쌀결정조직이 어느정도 그 미지세계 문턱에 가닿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맛이 연하고 색갈도 희겠지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우리 옥쌀가공기술이 바로 그 문제를 해결 못합니다. 옥쌀가공력사가 수십년 되는 발칸반도의 한 나라에서는 그 미분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것보다 색갈이 희고 쫄깃하면서 맛이 있습니다. 소화흡수률도 좋습니다. 그들은 옥쌀가공기술을 주지도 팔지도 않습니다.》

《총국장동무. 그렇다고 남의 나라 기술을 몰래 가져올수야 없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 옥쌀가공기술자들도 괜찮습니다. 일년반사이에 이렇게 질이 좋은 옥쌀을 생산하지 않았습니까. 그들 연구집단을 발동하여 가공기술을 좀 더 발전시켜봅시다. 공급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인민들이 옥쌀밥을 먹게 됐다는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옥쌀밥을 먹는가가 중요한것입니다. 입쌀에 못지 않은 좋은 옥쌀을 완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령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화를 끝내시자 다른 문건을 당겨놓았으나 겉표지를 번지지 못하고 손으로 이마를 짚으시였다.

량정총국에서는 다른 나라의 옥쌀에 비한 우리 옥쌀의 부족점을 잘 알고있으면서도 인민들에게 공급하려고 한다. 인민들이 아직 미흡한 그런 옥쌀을 먹어도 된다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홀시의 관점이 좋지 않은것이고 뒤일이야 어찌되든 서둘러 만세부터 부르고 보고해서 평가를 받겠다는 처사는 심히 나쁜것이다.

문건을 여러건 보는동안에도 풀색송수화기는 여전히 잠잠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화학공업부장이 못내 기다려지셨다. 언젠가 정무원총리가 화학공업부장에 대해 만족스레 평가하던것이 생각나시였다.

총리는 허상민이 나이는 많지 않지만 학식이 있고 사업에서 요구수준이 높으며 결패있다고 했다, 몸을 아끼지 않는다, 한달치고 25일간은 화학공업지구의 공장, 기업소들에 내려가 있다, 정무원위원회, 부의 책임일군들가운데서 허상민이처럼 사업에 열정을 쏟고 투신하는 일군이 드물다.…

《70일전투》때 흥남비료련합기업소 발생로직장 분탄파쇄기의 대형감속치차가 이발이 부러져 멎어섰다. 무연탄을 태워 가스를 뽑아내는 발생로직장은 물전해직장과 함께 비료생산의 첫 공정인것으로 하여 전반생산공정에 지장을 줄수 있었다.

기업소일군들이 린접 기계공장에 찾아갔으나 그들은 바쁘다고 래달에 보자고 늘큰한 소리를 하였다.

현지에 내려가있던 허상민은 그 사실을 알자 깨진 대형치차를 자동차에 싣고 린접 기계공장지배인을 찾아갔다. 화학공업부 부장이 팔을 부르걷고나서니 기계공장 일군들과 로동자들이 감동하여 주강품인 대형치차를 사흘동안에 깎아주었다. 분탄파쇄기는 지장없이 돌아가게 되였다. 작업복을 입고 벙어리장갑을 낀 허상민이 로동자들과 같이 깨진 대형치차를 자동차에 싣고 부리는 모습이 선히 떠오르신다. 사무실에서나 맴돌면서 구태의연하게 지시나 호령을 일삼는 일군들이 본받아야 할 일본새이다.

총리가 평가한것처럼 허상민은 결코 사업에서 무능력하거나 호인격으로 점잖게 자리지킴을 하는 경제지도일군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가? 허상민이 현실에 몸을 잠그고 앞장에 서서 뛰고있는데… 바로 그가 담당한 화학공업부에서 문제가 풀리지 않고있는것이다! 그가 내려가있는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서 시비년도 화학비료생산을 미달하여 농사에 영향을 주고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니 괴로우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화학공업부산하 공장, 기업소들을 동분서주하며 뛰여다니고 황철에까지 내려간 허상민에 대해 걱정과 함께 깊은 동정을 느끼시였다. 그를 만나본지도 퍽 오랜것 같으시였다. 경제정책을 의논하는 협의회나 정치국확대회의때를 내놓고는 만나기 힘든것이 경제지도일군이다. 그런 때도 인사나 나누었지 사업상 귀착되는 일이나 생활상 이야기를 나눌 겨를이 없었다. 화학공업부사업이 점점 방대해지고 그래서 아름차겠는데 진지하게 만나서 도와주지 못한것이 후회되시였다.

김정일동지의 마음속에는 허상민에 대한 정이 따뜻이 피여오르고 지난날의 추억이 되살아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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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가을. 김정일동지께서는 경애하는 수령님의 현지지도를 보좌하여 흥남비료공장에 가셨을 때 허상민을 처음으로 알게 되시였다.

밤이였다. 캄캄한 하늘에서 차갑고 굵은 비방울이 얼굴에 떨어졌다. 찬바람이 비옷자락을 날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래일 수령님께서 지도하실 로정에 있는 질안직장확장공사장을 미리 돌아보시기 위해 비내리는 밤길에 나서신것이였다.

건설현장으로 가는 길은 자동차들의 바퀴에 울퉁불퉁 패이였고 장치물과 벽돌더미, 콩크리트부재가 쌓여있어 발을 옮겨딛기가 어려웠다. 건설장 여기저기에 켜놓은 외등의 주위로 부나비들이 감돌았다. 아직 트라스를 올리지 않은 질안직장건물 바람벽에는 흰 뼁끼로 쓴 《비료는 쌀이고 쌀은 곧 사회주의다.》는 힘찬 글발의 구호가 외등빛에 우렷이 드러나고있었다.

몰탈을 이기는 철판곁에는 건설자들이 지폈던 고깔불무지가 아직 타고있었다. 사위여가는 벌건 숯불이 비방울에 칙칙 소리를 내였다. 빨간 불티들이 바람에 날려 허공으로 사라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타다만 나무가지를 집어 불무지를 꼼꼼히 덮고 발로 밟으시였다.

바람은 비줄기를 한층 세게 몰아왔다. 비내리는 소음속에서 양철판을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저만치 앞에 있는 세멘트창고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닥 높지 않은 지붕우에서 한사람이 엉금엉금 다니며 양철판들을 바로잡아놓고있었다. 지붕이 새는 모양이였다. 희끄무레한 어둠이 드리워 얼굴은 잘 알아볼수 없었다. 얇은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비방울소리를 깨치며 억양이 센 함경도사투리가 날아왔다.

《여보 비옷입은 동무, 거 땅바닥에 있는 기름종이뭉테기를 좀 올려주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사람의 허물없는 부탁에 응해 기름종이와 방수포뭉테기를 집어 올려보내고나서 넌지시 물으시였다.

《나도 올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올라오지 마오. 그러단 지붕이 무너지오. 큼직한 돌멩이들이나 좀 주어다주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가 해달라는대로 어둠속을 다니며 맞춤한 돌멩이들을 가져다 지붕에 올려보내주시였다. 오래지 않아 수리를 끝낸 《함경도사투리》는 세멘트창고지붕의 낮은 처마쪽으로 훌쩍 땅에 뛰여내렸다. 체격이 좋은 청년이였다. 작업복이 비에 푹 젖은 그는 이마로 흘러내리는 물을 훔치며 물었다.

《동무도 세멘트창고에 비가 샐가봐 나왔소?… 가만, 우리 질소직장 사람이 아니구만.》

《난 평양에서 왔습니다. 공장구역을 좀 돌아보던 길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소를 머금고 비옷의 고깔을 어깨너머로 벗으시였다.

《함경도사투리》의 미남자답게 잘 생긴 얼굴에 멋적은 기색이 어렸다.

《미안합니다. 그런걸 모르고 이래라저래라 했구만요.》

《괜찮습니다. 나도 질안직장확장공사에 관심이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에게 비옷을 벗어주셨지만 그는 옷이 이미 젖었다며 끝내 사양하였다. 그의 활달하던 거동이 차츰 굳어지며 얼굴에 경건한 빛이 떠올랐다.

《외람되게 묻습니다만 저… 혹시 우리 흥남에 수령님을 모시고 오신…》

《예. 김정일입니다.》

젊으신 그이의 겸손한 말씀과 몸가짐에 의혹이 풀린 청년은 한동안 말을 못하고 우러를뿐이였다. 그러다가야 겨우 자기 소개를 하였다.

《허상민이라고 합니다.》

《질안직장에서 일합니까?》

《예. 제가 여기… 림시기술지도원입니다.》

《왜 림시입니까?》

《기술지도원동무가 몹시 앓아서 현장기수인 제가… 저, 공사구역을 돌아보시겠다면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상민의 안내를 받아 비에 젖어 미끌거리는 철판과 자갈더미를 넘고 콩크리트부재와 둔덕진곳에도 올라가보시였다. 그리하여 수령님께서 넓고도 험한 공사구역을 일일이 다니시지 않고도 짧은 시간에 실태를 료해하고 지도를 하실수 있는 알맞춤한 장소를 선택하시였다.

그리고나서야 비를 긋기 위해 건설장의 한쪽 가녁에 있는 림시막으로 들어가시였다.

허상민은 도람통난로에 불을 지피려고 서둘렀다. 도람통난로안은 눅눅해서 매운 연기가 솟구쳐나왔다.

《상민동무. 젖은 옷을 벗으시오. 불은 내가 지피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난로의 공기구멍에 입바람을 연송 불어넣으시였다. 연기가 눈에 들어가 쓰리고 눈물이 나는것을 등으로 닦으면서 허상민에게 손짓하시였다.

《서있지 말고 앉소. 앉아야 연기맛을 덜 봅니다.》

이윽고 불쏘시개에 불길이 당기고 절두목과 제재부스레기들이 활활 타오르자 얇은 도람통난로는 인츰 열을 내기 시작했다.

허상민은 젖은 옷을 벗어 비물을 짜고 구김살을 펴려고 털었다. 그런데 웃주머니에서 강냉이알들이 뚤렁뚤렁 떨어졌다.

《그게 웬겁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였다.

《점심시간에 저 등성이밭의 강냉이짚무지에서 얻었습니다. 아까와서 발가넣었는데…》

허상민은 어색해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 강냉이알을 한웅큼 집어내였다.

《거 좋구만. 난로에 올려놓소. 닦은 강냉이는 별맛입니다.》

허상민은 강냉이를 확확 단 도람통난로우에 주르르 펴놓았다.

밖에서는 찬비가 소란스레 내리고 추웠지만 낡은 합판따위로 둘러막은 림시막안은 훈훈하였다. 젖은 옷에서 김이 문문 피여오르고 쭈글쭈글한 도람통난로우에서는 노랗게 구워진 강냉이알들이 탁탁 튀여올라 하얀 솜꽃을 피웠다. 강냉이알은 입안을 따끈따끈 데우며 파삭파삭 고소하게 씹힌다. 늦가을의 이 평범한 날밤에 김정일동지께서는 허상민으로부터 그의 과거생활토막이야기들을 들으시였다.

허상민의 유년시절은 고통스럽고 피눈물나는 추억뿐이였다.

아버지는 해방전에 일본재벌이 건설한 ×화학공장의 류산직장에서 일하였다. 소작부치던 땅뙈기를 잃은 아버지는 30년대의 몰락하고 파산당한 빈농민, 수공업자, 가난한 도시소시민출신들, 실업로동자들, 류랑농민들을 포괄하는 수백만 산업예비군의 한사람이였다.

일본놈십장들은 조선인직공을 우시장에서 좋은 황소를 골라내듯이 젊고 체격이 장대한 사람만 골라 받았다. 건장한 아버지는 60㎏의 비료섬을 메고 달리는 100m경주에서 합격되였다. 그러나 그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였다. 가족이 하루 한번 가마에 끓일것과 땔나무를 마련하려고 아버지는 류산물이 들어서 벌집처럼 숭숭 뚫린 누데기옷을 입고 공장에 나가군 했다.

류산냄새가 꽉 찬 탑속으로 들어가 십장의 《빠가》와 《고라》의 욕설과 채찍을 맞으며 하루종일 일했다. 땀투성이의 반라체로동자들, 질식할 유해가스, 먼지, 가열된 공기… 퇴근무렵에는 황소같은 사람도 기진맥진한다. 그들의 얼굴은 피기없이 창백하고 활기란 찾아볼수 없다. 지옥의 공장에서 페결핵으로 신음하는 몸을 끌고 《거지골》의 집으로 온다.

판자집들이 다닥다닥한데 하수도시설이 없어서 사방 오물이 쌓여 불결하고 악취나는 집이다. 대두박을 부스러뜨려 넣은 나물죽으로 끼니를 에우고 래일의 로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송장처럼 누워쉰다.

아버지는 마흔고개를 못넘겼다. 시체는 거적때기에 싸여 전염병 화장터에서 재로 변하였다.

어머니도 해방되기 몇해전에 오랜 산후탈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대신 어린 아들이 소년로동으로 버는 보잘것없는 돈으로는 어머니의 병을 고쳐줄수 없었던것이다. 험악한 세상이였다. 해방만이 그에게 참다운 삶과 로동의 길을 열어주었다.

전쟁시기 허상민은 공장에서 화약을 만들고 군수품을 생산하느라 전선에도 못나갔다.

그러나 전쟁의 재난은 그의 운명에도 불행을 가져왔다.

53년 봄, 흥남비료공장지구가 미국놈들의 대폭격을 당할 때였다. 허상민은 가스탕크의 발브를 막고 뒤늦게 피하다가 가까이에서 터진 폭탄파편에 중상을 입고 무너지는 건물속에 깔렸다. 파편이 복부에 박혀 생명이 시각을 다투었다.

그런데 뜻밖에 하늘에서 내려오기라도 한듯 건물입구에 나타난 사람들이 있었다. 이 화학공업지구의 소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외과의사인 정의빈이 간호원삼아 데리고나니는 양딸과 같이 왔다.

그들은 매일 치료가방을 메고 폭격맞아 불타고 연기와 화약내가 자욱한곳으로 찾아다니며 부상자들을 치료해주었다.

생명을 겨우 지탱하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정의빈은 양딸 순희와 같이 허상민을 페허속에서 끄집어내여 응급처치를 하고 가까이의 어느 성한 건물안으로 날라갔다.

책상우에 백포를 펴놓고 수술대를 마련했다.

두사람이 각기 메고다니는 커다란 의료가방에는 수술도구들과 약간의 마취제, 구급약이 들어있었다.

정의빈은 수술칼로 허상민의 좌측 아래복부를 절개하고 터진 밸에서 나온 피와 음식물을 가셔냈다. 파편을 꺼내고 잘라낸 밸을 다시 봉합할 때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마취제가 약해 의식을 차린 허상민은 옹근 한세기를 지옥속에서 고통당한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허상민은 창자를 도려내는 아픔에 경련을 일으키며 자기 몸을 붙들고있는 순희의 처녀답지 않게 굵은 팔을 꽉 그러쥐였다. 처녀는 선량하고 따스한 눈으로 그를 격려해주며 수건으로 이마에 콩알처럼 내돋은 땀방울을 조심스레 닦아주군 하였다.

정의빈은 허상민이 합숙생활을 하는 고아라는것을 알자 자기 집 웃방의 침상에 눕히고 수술후 치료를 계속해주었다. 그 어려울 때에도 순희는 회복에 좋은 찹쌀죽을 떨구지 않았고 나중에는 아끼던 옥양목 치마저고리까지 팔아 과실즙이랑 구미를 돋구는 음식을 구해다 먹이였다.

허상민은 그렇게 사지에서 구원되였다.

정의빈은 허상민이 남달리 총명하고 썩 잘 생긴데다 사내답게 성격이 대범한데 마음이 끌렸다. 장차 사위로 삼고싶었다.

정의빈은 외로운 사람이였다. 왜정때 서울의전을 졸업하고 부모의 가산을 팔아 자그마한 개인병원을 차려놓았다. 해방을 맞아서도 그 병원을 그냥 운영하였다. 그의 환자는 언제나 로동자들이였다. 그는 시인민병원에서 외과수술을 의뢰해오면 기꺼이 응해서 집도하군 했다.

정의빈은 전쟁초기 안해와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었다. 그가 시주변농촌에 왕진을 간 사이에 집이 미국놈들의 함포탄을 맞아 흔적조차 없어졌던것이다.

의술과 가정밖에 모르던 정의빈이였다. 깨진 사발쪼각들이 밟히고 매캐한 재가루 날리는 터자리에서 그는 실성한 사람모양으로 며칠을 헤매며 안해와 딸의 령혼을 불렀다.

그날부터 정의빈은 시인민병원 의사로 되였다. 그는 밤낮없이 수술장에서 살았다. 그리고도 여가시간에는 쉬지 않고 치료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함포나 폭격맞은 주민지구와 공장들에 나갔다.

참혹한 불행은 그의 가슴속에서 원쑤들에 대한 사무친 증오를 불러일으켰고 순수한 의술과 세속적인 울타리를 벗어나게 하였다. 전쟁으로 피흘리는 겨레와 조국에 대한 참된 사랑이 그의 심혼을 두드린것이였다.

정의빈의 잠자리는 환자의 머리맡이나 남의 집 웃방 아니면 무너진 서까래사이로 별쪼각이 보이는 페허의 한구석 가마니침상이였다. 소독약과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그런곳에서 정의빈은 자기의 능한 의술과 심혼을 바쳐 부상자, 환자들을 치료했다. 양딸 순희의 어머니도 그가 정성을 바친 수다한 사람들중의 한 녀인이였다.

사람들이 그 녀인을 업어 페허속에 차려놓은 《야전수술장》에 눕혔을 때는 이미 생명이 경각에 달했다. 파편이 페동맥을 다쳐 출혈을 너무 많이 했던것이다.

정의빈은 자신의 팔에서 피를 뽑아 모자라는 수혈을 충당하며 오랜 시간을 수술했으나 녀인을 끝내 살려내지 못했다.

실패한 수술뒤끝에 오는 쓰리고 아픈 락망과 절망, 빈혈, 어지럼증으로 하여 찌국거리는 의자에 겨우 몸을 의지했는데 불시에 귀청을 째는 처녀의 통곡소리가 들렸다. 녀인의 딸 순희가 싸늘하게 식은 어머니를 붙안고 전사한 아버지를 찾으며 울음을 터치는것이였다.

뼈를 깎아내는 아픔이 정의빈의 온몸을 휩쌌다. 어린 처녀의 어머니를 구원해내지 못한 자책감과 자기 의술에 대한 무력감, 허무감을 이때처럼 통절히 느껴보기는 처음이였다.

정의빈은 자기 돈을 내여 녀인의 장례를 잘 치르어주었다. 어머니묘앞에서 너무 울어 일어나지 못하는 순희를 부축하여 데리고 시인민병원에 왔다. 그리하여 정의빈은 의지가지없는 순희를 양딸로 삼고 집도 한채 마련했다.

잃어버린 가정에 대한 애끓는 사랑과 성실한 의사의 참인정이 단꺼번에 순희에게 쏟아졌다. 그러한 정의빈이였기에 허상민을 마음에 두었을 때는 양딸의 장래에 대한 크나큰 책임감과 불행한 자기의 인생말년을 순조로이 의탁하려는 소박한 희망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다.…

도람통 난로우의 강냉이알들이 까맣게 타서 숯이 된지도 오래고 비에 젖은 작업복이 땀냄새를 풍기며 거의다 말랐다.

허상민의 이야기가 끝났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헌나무상자에서 일어날념을 못하고 밖에서 내리는 가을비소리에 귀를 기울이고계시였다.

마치도 그칠줄 모르고 내리는 그 비소리가 짓밟히고 수난당하고 불행을 겪은 사람들의 슬프나 슬픈 운명의 울음소리처럼 들리시였다.

비소리는 그이께 지난날 식민지생활과 전쟁으로 고통을 입고 사랑과 행복과 무수한 념원을 상실한 이 나라 인민의 구슬픈 하소연소리로 느껴지시였다.

《그래 순희동무와 가정을 꾸렸습니까?》

그이의 생각깊은 물으심에 허상민은 열적은 웃음을 지으며 뒤머리를 긁었다.

《아직 합숙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장가보다도 공부를 더 하고싶습니다. 질안직장의 불비한 기술공정들을 본때있게 개조해보고싶은데 화학전문학교를 나온 저의 지식으로는 어방없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탐구적지향과 열정이 번뜩이는 허상민의 얼굴을 이윽히 건너다보시였다. 개인의 안락보다 공장의 기술발전을 생각하는 사람, 실무적준비가 약한 자기를 인식하고 꺼림없이 솔직히 드러내는 이 젊은 현장기수가 퍽 마음에 드시였다. 로동계급속에서 태여나 자랐고 전쟁에서 단련된 이런 사람을 공부시키면 장차 훌륭한 민족간부로 자라날것이라고 생각되시였다.

《우리 나라의 화학공업은 청소합니다. 상민동무와 같이 향학열이 높은 사람들이 선진과학기술을 꾸준히 배워 비료공장의 기술발전에서 한몫 해야 합니다.》

림시막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가 캄캄해졌다. 서슬푸른 번개의 섬광이였다. 뒤미처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우뢰소리가 림시막을 진동했다. 쏴- 하고 비줄기가 쏟아지는 소리, 물매 급한 함석지붕에서 쏟아져내리는 락수물소리, 막뒤의 사품치는 골개울소리가 하늘공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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