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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인걸은 밤새 깔따구성화에 잠을 설치고 가설막밖으로 나왔다. 어제밤 모기장을 건설자들의 천막숙소에 양보하고서 쑥불을 피운 뒤에 가설막창문을 닫았는데도 벽틈사리같은데로 깔따구 몇마리가 새여들어온 모양이였다. 깔따구에 물린 귀밑목덜미가 벌겋게 부어올랐고 못견디게 가려웠다. 짙은 안개가 느물느물 피여오르는 진펄쪽에서 인제는 퍼그나 익숙한 물비린내와 감탕내가 북관지방의 쌀쌀한 새벽대기에 실려 흘러왔다. 우듬지들이 꼬부라든 엉성한 소나무숲사이로 진펄의 금속판같은 물표면이 흩어지는 안개발밑에 드러나고있었다. 지난해의 묵은 흰 갈대들과 누런 붉은 밤색의 진펄버들이 시커먼 감탕물속에 매출한 줄기를 잠그고있었다. 깊이를 헤아릴길 없는 겉마른 진펄토양우에는 물이끼가 두텁게 덮였고 그우에 쏙새풀과 삿갓사초, 황새풀, 닭개비 따위의 습지풀들이 새벽음영에 컴컴한 숲을 이루고있다. 이슬에 푹 젖은 싱싱한 풀숲이다. 수달비슷한 짐승이 사람을 보더니 마른 나무잎사귀를 부스럭거리며 물속으로 자맥질해들어갔다. 범부채와 부들이 무성한 감탕에서 꼬리깃이 검은 두루미와 목이 긴 왜가리들이 진펄의 주인인양 의젓한 몸가짐을 하고서 한가로이 걸어다니였다. 황새나 왜가리를 겁내지 않는 갈게들이 감탕우로 기여다니기 시작했다. 밑둥이 썩은 마른 나무들이 군데군데 자빠져있는 진펄 깊숙한곳에서는 잠에서 깬 새들의 지저귐소리가 점차 신비론 음향을 채운다. 수천년동안 인간의 버림을 받아온 불모의 소택지, 《죽음의 땅》이라고 불리우는 이 송암진펄이지만 동식물은 세대를 이어 이곳을 떠나지 않고 불평없는 삶을 영위하고있었다. 그것들한테는 인간이 정복 못하는 진펄이 생의 보금자리이다. 진펄의 동식물은 꺼멓게 죽은 물과 썩은내 풍기는 감탕에서 나서 자라고 또 죽어서는 그 진펄을 물렁물렁하게 더 깊게 살찌운다. 리인걸은 진펄기슭의 마른 땅에 뿌리박은 소나무에 기대서서 안개가 덮여 더욱 컴컴하고 황량해보이는 불모의 소택지를 괴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오늘은 진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청년돌격대원들의 가설막과 천막들, 살림도구들과 굴착설비들을 죄다 걷어가지고 옥천벌쪽으로 이동할것을 결정했다. 농업대학의 연구소에서 나온 두사람의 진펄수문학자들은 그동안 답사조사한 수문관측자료를 공사지휘부에 넘겨주고 어제저녁 떠나갔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나 진펄을 정복해보려고 모험적으로 노력하던 시공기술지도원과 굴착소대청년들의 마지막 희망까지 깨졌다. 그들의 조사관측자료는 진펄을 잘 아는 농민들의 견해에 신빙성만 보태주었을뿐 송암진펄에서 정광수송관부설의 가능성을 찾아내지는 못하였다. 송암진펄은 진펄수문학적분류로 볼 때 주로 사초과식물들이 자라는 초생진펄이다. 풀들이 적고 나무숲이 자라는 산림진펄이나 유기물질이 계속 쌓여 이끼류들만 자라는 선태류형진펄과는 달리 초생진펄은 습지대의 바닥이 주변지역의 땅면보다 낮은것이 특징이다. 송암진펄은 아득한 옛적에 커다란 호수였다. 그러던것이 수천년세월 퇴적물질들이 호수에 흘러들어 쌓임에 따라 기슭으로부터 점차 바닥이 얕아지고 드러나면서 거기에 물기를 좋아하는 식물들이 자라게 되였다. 식물들이 무성해지면서 죽은 식물과 썩은 물질의 쌓임이 오랜 세월 반복되여 인제 호수는 바닥이 완전히 드러났다. 옥천리쪽에 큰 늪이 남아있어 옛적의 호수생태를 어렴풋이 증명해줄 따름이였다. 이런 초생진펄류에 속하는것으로 하여 송암진펄은 갈매성진펄토양이 대부분이여서 수렁감탕층과 물층이 형편없이 깊은것이였다. 이고장 농민들중에는 리조봉건시대에도 그랬지만 해방전 일제통치하에서 여러가지 집안불행을 당하거나 소작땅을 떼워 명줄이 끊기는 일이 더욱 빈번했다. 그런 때면 진펄기슭에 짚신이나 고무신을 벗어놓고 깊디깊은 수렁속에 흔적도 없이 영영 사라지는 수난자가 한둘이 아니였다. 옛날부터 이 지방에 횡행하는, 머리털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감탕칠을 한 《진펄귀신》들은 그런 수난자들의 망령들이라고 했다. 밤이면 진펄속에서 썩은 나무등걸과 굳은 감탕층어방에 퍼렇게 린광이 살아움직이군 했는데 그런것은 무당들의 《신령설》에 굉장한 신빙성을 부여하군 했었다… 그 모든것은 다 지나간 력사의 일이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였지만 송암진펄은 여전히 불모의 소택지, 《죽음의 땅》으로 남아있었다. 《진펄귀신》들은 사라졌지만 진펄의 생태학적특성은 해가 흘러감에 따라 더욱 불리하게 변하여 사람들은 감히 그것을 정복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송암진펄의 이런 엄혹한 생태과정을 경시한 청년돌격대의 굴착소대원들은 그렇게 말렸는데도 어제 또다시 기슭에서부터 땅을 파들어가면서 대담하게 진펄에 접근했다. 그러다 그만 소형굴착기를 수렁감탕속에 빠뜨렸다. 운전을 하던 굴착소대장이 하마트면 진펄속에 영 묻힐번하였다. 여러대의 굴착기와 불도젤들에 쇠바줄을 걸어 밤늦게까지 신고해서야 감탕속에 묻힌 소형굴착기를 끄집어냈다. 수렁에 빠진 굴착소대장은 의식을 잃었다. 더운 물로 몸의 감탕을 씻어주고 주사를 놓으며 법석을 피워서야 굴착소대장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지금 위생소대의 천막에 누워있을것이다. 리인걸은 잠을 설쳐 깔깔한 눈으로 가설막곁에 끌어다놓은 소형굴착기를 바라보았다. 온통 감탕과 도랭이, 사초, 속새와 썩은 물풀뿌리를 한벌 뒤집어써서 형체를 잘 알아볼수 없는 소형굴착기는 그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지도일군인 자신의 무력함과 패배의 쓰겁고도 고통스러운 느낌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공사장에 파견되여온 날 자신은 건설지휘부 참모회의에서 그리고 청년돌격대원들과 건설자들 앞에서 진펄 30리를 정복하자고 얼마나 강렬하게 호소했던가… 감탕과 물풀뿌리를 들쓴 굴착기는 그의 현실성없는, 대자연의 불가항력적인 위세를 모르고 부르짖은 추상적인 호소에 대한 마지막 대답이나 같은것이였다. 쌀쌀한 새벽바람이 옷자락을 들추고 품속으로 기여들었다. 리인걸은 어깨에 걸친 작업복웃옷의 자락을 여미고 몸을 움츠렸다. 그는 자기가 이런 번민에 감겨있을 때가 아님을 느끼고 가설막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철쭉꽃이 떨기떨기 핀 소나무숲사이로 난 길로 《갱생》승용차 한대가 앞코배기를 들까불며 굴러왔다. 송암군당 책임비서의 차였다. 차문을 열고 육중한 몸집을 뽑아내린 리중걸은 가설막쪽으로 가려다 진펄기슭에서 걸어오는 체소한 리인걸을 알아보고 발길을 돌렸다. 두사람은 사촌간이지만 서로 외편쪽을 많이 닮아선지 날카로운 눈매와 굵은 음성을 내놓고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었다. 리인걸은 옷소매에 팔을 꿰였다. 앞자락단추를 채우며 사촌형을 맞이하는 그의 심중은 무겁고 착잡했다. 그는 사촌형에 대해 미안한 감을 느꼈다. 처음 공사현장에 내려왔을 때는 건설자들의 후방사업문제로 군당책임비서에게 전화를 건 정도였고, 금패령공사장에서 만나게 됐을 때는 매벼랑을 폭파하는 바쁜 때여서 인사치레의 이야기를 좀 나누었을뿐이였다. 며칠전에야 집에 찾아가 사촌형과 형수를 만났지만 장문제를 비롯하여 군당책임비서에 대해 료해한 자료를 두루 확인하다보니 분위기가 긴장하고 공적인 사업령역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형수가 저녁을 차리느라 서두르는것을 보자 그는 송암진펄공사때문에 지휘부에서 회의를 소집한것을 구실로 대고 집을 나와버렸다. 리중걸은 사촌동생이 자기를 좀 피하는것을 불쾌하게 생각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에 대한 료해를 하고있는, 동생의 말못하는 심정을 리해하고있었다. 그래서 동생의 료해사업에 성실하게 응해주었을뿐 불필요하게 내용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몹시 피곤해보이는군. 깔따구성화에 잠을 못잔게지?…》 리인걸은 사촌형의 인정이 푹 밴 무랍없는 말이 어쩐지 가슴에 젖어드는것을 느꼈다. 사촌형을 부정행위가 있고 독단을 부리는 과오가 큰 일군으로 료해했던 그로서는 이런 인간미 풍기는 범상한 태도에 오히려 게면쩍어지는것이였다. 《말벌독침한테 쏘인것처럼 목덜미가 얼얼하게 뿔어오르는군요.》 리인걸은 아직도 끈끈히 가려워나는 목덜미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리중걸은 잠자코 웃음을 지었는데 바른편 누에눈섭꼬리에 붙은 기미가 움직거렸다. 《어제저녁에 굴착기를 또 진펄에 빠뜨렸댔다면서?》 《겨우 끌어냈습니다.》 리인걸은 가설막쪽에 있는 소형굴착기를 눈길로 가리켰다. 군당책임비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초생진펄이 돼놔서 사람이구 짐승이구 턱없이 삼켜버린다니, 내 어제 일이 있어 진펄 건너편 종포리에 갔다가 한사람 만났댔네. 외정때 순사놈을 때리고서 경찰들의 추격에 어쩔수 없이 진펄에 들어갔던 사람이지. 그가 하는 말이 자기는 그때 길다란 장대를 량손에 쥐고서 사생결단하구 진펄을 건넜다네. 그것도 기슭쪽으로였지. 그런데 단 한곳에도 발이 굳은 바닥에 닿아본적이 없었다고 하네. 천행이였지.》 리인걸은 공사를 맡은 자기 사업을 도와주지 못해 여러모로 왼심을 쓰는 사촌형이 고마왔다. 건설자들에 대한 후방공급사업도 군당책임비서가 직접 나서서 대책을 세운 결과 송암군이 량적으로도 거의 절반몫을 담당하고있었다. 리중걸은 기침이 나오기 시작하자 이마살을 찌프리더니 담배쌈지를 꺼내여 무산독초를 굵직하게 말았다. 《그래 설계를 다 끝냈나?》 《예… 오늘은 짐을 싸가지고 진펄에서 철수하렵니다.》 《관부설길을 옥천벌뒤 릉선쪽으로 냈겠지?》 리중걸은 독한 연기를 구수한듯 들이켰다. 리인걸은 미안쩍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형님, 량해해주시오. 요전번 형님의 의견을 참작해서 설계자들과 시공기술집단이 진지하게 협의했지만 릉선쪽길로 변경시킬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건 어째서?!》 리중걸의 얼굴에서 부드러운 표정은 삽시에 사라져버리고 평소에 일군들의 과실을 대했을 때와 같은 그런 랭담하고 엄한 표정으로 바뀌였다. 그러나 리인걸의 태연자약한 태도에는 어떤 록록치 않은 기색이 엿보였다. 《진펄을 피하여 산릉선으로 수송관부설길을 내면 막대한 추가적인 자재와 시공비가 먹습니다. 총설계에 예견치 않은 경사지들이여서 대형라선관과 뽐프, 압출설비들을 많이 보장해야 합니다. 내가 형님에게 일일이 말하기 어렵지만 그밖에도 수송관 중간시험장에서 새로 복잡한 기술문제들이 제기됩니다.》 리중걸은 다 태운 담배끄트머리를 집어던졌다. 《여기 공사장에서만 자재요 설비요 시공비가 귀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야기되는게 아니네. 옥천벌은 산이 많고 경사지밭들과 등판이 대부분인 우리 군에서 알짜 노란자위땅이지. 공사일군들은 이고장 사람이 아니니까 지도에다 아무렇게나 관부설길을 쭉쭉 내긋는데 그래선 안되네. 이 고장을 사랑하는 농민들심정에서 공사를 대해야 하네. 우리 군 농민들은 옥천벌에서 나는 쌀이 없으면 멀리 앞지대에서 실어와야 하네. 그건 우리 군의 존엄과 생활에 관계되는 사활적인 문제이지.》 《형님, 그렇게 많은 농경지는 침범하지 않을겁니다.》 《많고적고간에 어쨌든 난 옥천벌에서 수송관부지면적은 고사하구 말뚝 한개 박을 자리도 내줄수 없네. 알아두라구.》 군당책임비서는 이의를 말하지 못하도록 잘라매였으나 리인걸은 물러설 기미가 아니였다. 《그럼 형님은 관부설길을 내는게 나라의 철생산과 관련된 국가적인 문제라는걸…》 《농경지를 베여내고 농민들의 생활에 혼란을 주는것도 국가적인 문제에 속하지.》 리인걸은 더 말을 못하고 화가 서린 한숨을 내뿜었다. 웃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사촌형에게 권하려다 그가 독초만 피운다는 생각에 자기만 한가치 피워물었다. 두사람의 무거운 침묵은 아랑곳없이 안개걷히는 진펄쪽에서 새들의 지저귐소리가 한층 여물어갔다. 일찍 먹이사냥을 나선 왜가리 한마리가 소나무우듬지를 스칠듯 날아 진펄감탕우에 가볍게 내렸다. 왜가리는 긴 다리로 진펄을 마른 땅처럼 거뿐거뿐 옮겨디디더니 한곳에 까딱않고 서서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생물학자마냥 감탕속을 뚫어지게 내려다본다. 옥천리 늪쪽에서 소영각소리가 새벽의 고요를 시원히 깨뜨린다. 《말씨름은 그만하구 집에나 가자구. 형수가 자넬 꼭 데려오라구 했네. 요전날에도 왔다가 훌쩍 가지 않았나. 사업은 사업이고 조반이나 한끼 나누자구.》 사촌형의 정이 밴 푸수한 말에 리인걸은 어지간히 속이 풀려 깔따구에 물린 목덜미를 손으로 쓱쓱 긁었다. 《형님네 집에 뭐 먹을만한게 있겠나요.》 합의보지 못한 수송관부설길문제로 하여 사촌동생이 볼이 부은 롱을 했으나 리중걸은 타내지 않고 사람좋게 웃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언감자떡을 하구 산천어를 지졌을거네. 평양에서야 먹어보기 힘든 별식이지.》 남쪽하늘가에서 웅글은 발동기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설은 그 비행기동음은 점점 커지더니 삽시에 진펄우에 덮씌워지며 새들을 놀래웠다. 두사람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으나 안개에 가리워 비행기는 보이지 않았다. 발동기소리가 크고 느린것을 보아서 직승기 같았다. 안개구름속에서 얼핏 직승기꼬리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직승기는 안개 덮인 진펄상공을 몇번이나 낮추 선회하고서 금패령쪽으로 날아갔다. 지휘부가설막의 합판출입문이 벌컥 열리더니 몸이 갱핏한 시공지도원이 황급히 달려오며 하늘쪽을 가리켰다. 《부부장동지, 전화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오신답니다! 직승기로 우리 공사장에…》 리인걸은 시공지도원의 말을 더 들을념을 않고 자기 승용차 있는쪽으로 달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