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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집무실창문에서는 형광등빛이 흘러나오고있었다. 밤 2시였다. 량수책상을 마주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평양에서 일군들이 가져온 긴급문건들을 보는데 퍼그나 시간을 바치시였다. 그러시고나서야 멀리 북변의 송암군에서 리인걸이 렬차편으로 보내온 문건을 앞에 당기시였다. 공사진척정형을 보고한 서류보다 먼저 리중걸에 대한 두툼한 료해자료를 펼치시였다. …송암군당책임비서 리중걸에 대한 로동자, 농민들의 평가는 군내 일부 일군들의 반영과는 달랐다. 전번 료해자료에 제기되였던 장문제도 외곡된것이였다. 그것은 리중걸이 군당책임비서로 부임해간지 얼마 안되였을 때 있은 일이였다. 저녁에 집에 들어서니 안해가 가방을 받아들며 우선우선한 표정을 지었다. 《식료공장 당비서가 왔댔어요.》 리중걸은 안해의 눈길이 가닿은 전실구석쪽에서 큼직한 나무통을 보았다. 매끈히 대패질한 벌통 둘레를 철띠로 단단히 조였는데 물 두어동이는 들어갈것 같았다. 《장이래요.》 리중걸은 널판뚜껑을 열었다. 가을철 여문 밤알빛갈이 도는 먹음직스러운 장이 가득찼다. 향긋한 꿀냄새가 확 풍겼다. 맛을 보니 콩장인데 꿀을 넣어 구수하면서도 향기롭고 달았다. 리중걸은 충격이 커서 장통앞에 쭈그리고앉은채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전에 읍교외에 사는 한 로동자의 집에 들려 맛본 식료상점에서 판매한 장과는 너무도 판이하였다. 그 장은 비맞은 락엽빛갈인데 죽처럼 묽은데다가 콩을 적게 넣어 씁쓸하고 떫었다. 《이걸 왜 받았소?》 리중걸의 누에눈섭이 경련을 일으킨듯 꿈틀거렸다. 눈섭꼬리끝의 기미가 금시 뚝 떨어질것 같았다. 남편의 얼굴표정을 보고 큰 실책을 범했다는것을 깨달은 안해는 말을 못하고 서서 앞치마만 만지작거리였다. 《당신은 아직 이 세대주란 사람을 잘 모르고 사는게 아니요?》 리중걸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비수처럼 날카로왔다. 《내가… 잘못했어요.… 식료공장 당비서가 일없다고… 이전에도 이 집에 늘 이런 장을 가져다주었다고 하기에…》 《빈농민의 딸인 당신한테 어데서 그런 받아먹는 근성이 생겨났소?!…》 리중걸은 천식증이 살아나 한동안 기침을 깇었다. 가슴이 풀무질한다. 환절기니 천식이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한 모양이다. 《먼저 책임비서가 어떻다구?… 당신은 뭐 특전이 물려받는건줄 아오?! 거기다가 빙자하는건 이런걸 받고싶은 제 속마음을 위안하고 가리우는 변명에 불과하오.》 안해의 얼굴이 해쓱하게 질렸다. 《됐어요. 당신은 제 집사람한테까지 군당회의주석단에서 비판하는것처럼 아프게 말하지 말아요. 난 빈농민의 딸이란것도 알고 집에서 이런걸 받으면 남편의 위신을 허문다는것도 알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 꼬쟁이같은 성미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뒤소리를 듣고 따돌림을 받는다는걸 알라요. 뭐 이런 장을 우리만 받은줄 아세요.》 《그럼 또 누구네도 받았소?》 《군간부들은 다 이런 장을 먹는대요.》 리중걸의 누에눈섭이 조용히 꿈틀거리고 이마살이 찌프러졌다. 안해는 겁이 덜컹 나는지 남편앞에 바투 다가서 양복단추를 벗겨주며 타일렀다. 《이봐요. 너무 그러지말구 더러 모르는척 눈감기도 하라요. 이제는 나이도 많은데 성미도 좀 수그러뜨려야 하지 않겠어요. 원칙만 원칙이라고 냅다 밀면 사람들의 원망을 사요.》 리중걸은 아무말없이 손으로 안해를 밀어내고 웃방에 올라가버렸다. 다음날, 군당확대집행위원회에서 강하천정리문제에 관한 안건토의를 마치고났을 때였다. 리중걸은 담배들을 태우며 좀 휴식하라고 이르고 경리부지도원을 시켜 자기 집에서 내온 장통을 방에 들여왔다. 장이 담겨진 작은 옹배기도 하나 갖다놓았다. 군당책임비서의 방 창문들을 열어놓고 화기롭게 담배를 태우던 군내 공장, 기업소 일군들은 의아쩍은 눈길로 장통과 옹배기를 보았다. 무언가 예감한듯 집행위원들의 얼굴에 불안의 그늘이 끼고 방안은 차츰 정숙해지기 시작하였다. 장통을 알아본 식료공장 당비서의 얼굴은 삽시에 꺼멓게 질렸다. 《이제부터 장문제를 한가지 더 토론하겠습니다.》 집행석에 앉은 리중걸의 담담한 목소리는 벌써부터 방안의 분위기를 얼구었다. 《여기에 두가지 장이 있습니다. 장통의것은 식료공장 초급당비서동무가 나와 군간부들의 집에 공급한 장입니다. 옹배기의 장은 읍거리의 일반주민의 집에서 가져온것입니다. 보다싶이 색갈도 맛도 냄새도 다릅니다. 나는 주민들이 먹는 이 옹배기의 장을 간부들이 맛볼것을 권고합니다.》 리중걸은 옹배기를 앞상에 둘러앉은 집행위원들쪽으로 밀어놓았다. 얼굴이 수수떡빛이 된 간부들은 옹배기의 장을 차마 맛보지 못하고 흙으로 빚은 사람들처럼 앉아있었다. 《행정위원장동무, 이것이 이번에 처음 있은 일은 아니지요?》 《예… 여러해… 되였습니다.》 행정위원장은 힘들게 고백했다. 리중걸의 가슴속에는 정의감과 당적량심에서 오는 분노가 활화산마냥 타올랐다. 《그러니 이런 맛있는 장을 따로 받아먹는것이 습관처럼 되였겠구만… 누가 동무들한테 그런 특전을 주었소? 당에서는 결코 주지 않았소. 그럼 동무들스스로 그런 권한을 가졌소? 그리고도 마음이 편했소? 어떻게 인민들앞에 나서서 당정책을 옳바로 관철하자고 말했소?… 아니, 동무들한텐 량심이 하나가 아니라 둘인것 같소. 검은것과 흰것 둘을 가지고 필요할 때 사용한단 말이요.》 방안은 고요했다. 《식료공장비서동무, 동무는 무엇때문에 두가지 장을 만드는거요?! 어째서 이 옹배기의 장도 간부들이 먹는 장처럼 맛있게 만들지 못하오? 원료문제요, 관점문제요?!…》 리중걸은 기침을 했다. 방안은 그의 기침소리로 해서 더 얼어붙는것 같았다. 기침이 멎자 그는 두가지 량심을 가지고있는 사람을 골라 집어내기라도 하려는듯 이글거리는 눈으로 일군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낮으나 엄숙하게 울렸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당일군들과 행정경제일군들의 품성에서 중요한것의 하나가 청렴성이라고 하시였소. 사람은 누구나 그러해야 하지만 인민앞에 나서는 일군들은 특히 마음이 깨끗하고 물질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고, 인민들은 그런 일군을 존경하고 따른다고 말씀하시였소. 특전을 바라고 세도를 쓰며 관료주의를 부리는 일군들은 따지고보면 대개가 청렴성이 결여된 사람들이라고 신랄히 지적하시였소.》 리중걸은 다시금 천식증이 발작하여 더 말을 못하고 줄기침을 해댔다. 얼굴은 숯불처럼 달아오르고 관자노리에는 지렁이같은 피줄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우리 군의 간부들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뜻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게 살고있소. 거 뒤에 앉은 공장, 기업소 일군들은 노엽게 생각지 마시오. 난 군의 간부들이 다 그렇다는건 아니요… 이 문제에 관한 사상적인 총화는 요다음 군당전원회의에서 하기로 하고 오늘은 장문제를 놓고 실천적인 대책을 세웁시다. 두가지 장이 아니라 군내 간부들과 인민들모두를 위한 하나의 맛있는 장을 어떻게 만들겠는가. 여기 모인 일군들의 마음과 궁리를 모으면 안될 일이 없을거요…》 그리하여 한달후에는 식료공장에서 장의 질이 결정적으로 개선되였다. 그때 간부들이 집에서 내온 장통들은 군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용으로 보내주었다. 주민들이 먹는 장이나 식료품은 되는대로 만들고 간부들만 존중하고 섬기는것으로 무능력한 자기를 보호하고 직위를 유지하는 생존수단처럼 여기면서 살아온 식료공장 초급당비서는 그날 철직시켰다. 물을 흐려놓은 근원을 뿌리뽑지 않을수 없는것이였다. 청렴한 군당책임비서의 예리한 눈길, 융화를 모르는 비판과 처벌의 주먹이 무서워 군당과 군행정위원회 일군들은 사소한 특전도 부정행위도 인민들의 리익과 조금이라도 배치되는 일은 하지 못했다. 지난해 봄철, 모내기가 한창일 때 옥천리에 내려가던 리중걸은 길가에 《갱생》을 멈춰세우게 하였다. 정오무렵의 따가운 해가 내리쪼이는데 작답을 한 논판에서는 얼굴이 까맣게 탄 농장원 녀인 두명과 지원나온 고등중학교 녀학생 다섯이 땀을 흘리며 모를 꽂고있었다. 그런데 논뚝의 풀판에는 해빛을 가리우는 채양넓은 밀짚모자를 쓴 관리위원장 박림수, 부위원장, 리당비서, 부기장, 농근맹위원장,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지도원, 작업반장 등 무려 열명이나 되는 끌끌한 장정일군들이 모여앉아 웃기도 하고 논벌쪽을 손짓하기도 하는데 무슨 의논을 벌리고있는지 한담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군당책임비서가 다가가자 그들은 황황히 일어났다. 《동무들은 예서 뭘하고있소?》 리중걸은 날카롭게 물었다. 저마다 어름어름 눈치를 보며 대답하지 못하고있었다. 리중걸이 재차 물어서야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지도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관리위원회 사무실에서 모내기사업정형을 의논하다가 현장에 나와보는게 좋을것 같아서…》 《그래 현장 논벌에 나와 무얼 의논했소?》 군당책임비서가 따지고들었다. 《어서 대답해보시오. 무슨 문제요? 모내는 기계가 고장났소? 작답이 걸렸소? 모춤운반이 늦어지오?》 모두들 낯이 벌개서 눈길을 떨구고있었다. 군당책임비서의 추궁이 자기들 량심의 깊은곳을 정확히 겨냥하고있었으므로 어름어름 변명하거나 발뺌할수 없었던것이다. 리중걸은 음성을 높였다. 《어서 말들 해보란말이요. 부지깽이도 뛰는 이 바쁜 농번기에 장정로력 열명씩이나 논뚝에 앉아 무슨 중요한 사업토론을 한다는거요?! 이러면서도 관리위원장동무는 지원로력을 많이 받겠다고 군에 몇번씩이나 올라왔댔구만.》 리중걸은 난색해서 밀짚모자만 주무르고있는 박림수의 펀펀한 얼굴을 매섭게 흘겨보았다.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의분이 금방 터져나올것 같은 기침마저 눌러버렸다. 《동무들이 벼모를 논판에 꽂는 단순한 일을 가지고 세계혁명문제라도 의논하는것처럼 이러구 앉아있으면 농사는 누가 짓겠소?! 모내기사업실태 같은건 하루일이 끝난 저녁에 날이 어두워진 다음에 모여앉아 토론하면 안되겠소?… 낮에 논판일에 제기되는 문제는 분조장이나 작업반장이 풀면 되지 않겠소.》 리중걸은 누에눈섭밑의 이글거리는 눈으로 일군들을 한참 위압하더니 웃샤쯔를 벗어 풀판에 던지고 런닝그바람에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렸다. 《동무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일하는 저 녀인들과 어린 학생들앞에서 내용없는 일거리를 만들어가지고 놀아주는걸 부끄럽게 여겨야 하오. 동무들, 농촌지도일군들이 영농기는 물론이고 온 농사철을 이 논벌, 저 등판… 하고 다니면서 지도합네 하고 놀아주니 약삭바른 남자들은 다 이래저래 구실을 만들어 농사일에서 빠진단 말이요. 그래서 우리 군에서는 사나이들은 놀고 연약한 녀자들과 학생들이 농사를 짓는다는 여론이 돌고있는것이요. 오늘 보니 그 여론이 사실이구만.》 리중걸이 모춤을 손에 쥐고 논판에 들어서니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일군들이 구두를 벗는다, 바지를 걷어올린다 하며 분주스레 차비를 하고 책임비서의 뒤를 따라 줄레줄레 감탕흙에 발을 잠갔다. 이날 그들은 어데 가지 못하고 군당책임비서와 같이 어둑어둑할 때까지 논판에서 모를 꽂았다. 옥천협동농장관리위원장 박림수는 풀거름량과 가을농사작황보고에서 번번이 허풍을 친것이 드러났다. 군당에서 추궁을 받고 내려간 박림수는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관리위원회 일군들한테 《내가 욕 바가지를 썼지만 그대신 농장원들한테 우대상품이 많이 차례졌으니 됐소.》 하고 말했다. 관리위원장의 뒤심좋은 소리를 전해들은 리중걸은 속이 불끈한걸 참았다. 그러던 지난 3월말, 박림수는 속병이 도져서 군병원에 입원해있다가 텔레비죤촬영가가 자기네 농장에 왔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다. 원래 다른 농장의 오리사를 촬영하게 되였었는데 박림수는 촬영가를 붙들고 굳이 자기네 농장 오리사를 찍게 하였다. 마을 늪가에 지은 오리사는 규모로 보나 관리형편으로 보나 어설피고 모범이 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박림수는 팔을 부르걷고 사양공들을 휘동하여 얼마 안되는 오리를 늪으로, 방뚝으로, 오리사로 몰고다니며 반복촬영하였다. 그리하여 오리가 아주 많고 오리사양을 대단히 잘하는 농장처럼 보여지게 하였다. 리중걸은 도에 출장갔다와서 뒤늦게야 옥천리 박림수관리위원장의 이 허위적이고 공명심에 부푼 혐오스러운짓을 알고는 분노가 치밀었다. 리중걸은 군당조직부장을 옥천협동농장에 내려보내여 박림수를 전면적으로 료해하게 하였다. 박림수에 대한 옥천리농장원들의 반영은 대단히 나빴다. 사람이 실속이 없다, 일은 적게 하고 열매를 많이 따내려 한다, 농사일 특히 축산에 관심이 적다, 농장 오리사는 십년전의것 그대로인데 기둥과 문짝들에 뼁끼칠을 자주 했을뿐 오리는 별로 늘어난것이 없다, 농업대회를 비롯해서 도와 군의 주요행사들에 자주 참가했지만 구체적으로 농장살림은 별로 풍족해지지 못하였다. 실속없이 겉치레만 하는 그에 대한 자료가 쏟아져나왔다. 리중걸은 도당에 제기하여 박림수를 관리위원장자리에서 해임시켜 해발고가 높은 멀리 연수덕의 축산반에 보내버렸다. 사람이 근면한 새 관리위원장은 말이 없이 농장살림을 착실히 운영해나간다. 농장원들의 앞장에서 늘 이신작칙해나가기때문에 농장일군들이 다 농사일에 몸을 적시고 그래서 소리를 내지 않고도 영농사업을 실속있게 해나간다고 한다. 옥천리 농장원들의 반영은 대단히 좋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료철에 손을 덮고 생각에 잠기시였다. 만약 협동농장일군들속에서 그와 같은 허위와 공명주의, 실속없는 겉치레의 일본새가 허용된다면 농사와 축산은 망칠것이며 엄중하게는 농민들자신의 깨끗한 량심과 땅에 대한 진심, 건전한 리성을 흐리게 할것이였다. 아마도 그래서 리중걸은 군내 모든 협동농장일군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시범으로 박림수를 떼버렸는지 모른다. 군당책임비서의 처사는 결코 무리한것이 아니다. 송암군당책임비서는 옥천리관리위원장문제를 결단성있게 옳게 처리했다. 그는 대바르고 청렴한 당일군이다. 군내인민들이 먹는 장문제를 취급한 군당확대집행위원회, 건달을 피우는 농장일군들을 비판하고 논판에 데리고 들어간 일은 아주 잘한것이다. 리중걸의 청렴성, 융화를 모르는 강한 사업원칙, 일군들의 그릇된 작풍과 비당적행동에 대한 엄격한 요구와 통제, 당규률의 가차없는 적용에 대해서 독단이나 전횡으로 보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관료주의가 아니다. 군내 일부 일군들이 부정적인 현상과 추호도 타협하지 않는 리중걸이 두려워 뒤에서 모함하고 헐뜯지만 군중은 쉰다섯살의 그를 《책임비서아바이》라고 따뜻이 부른다. 군중의 존경과 지지를 안은 친근한 부름이다. 인민이 좋아하고 인민의 사랑을 받는다는것, 바로 그것이 중요한것이다. 인민의 리익을 위하고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는 리중걸의 당사업 방법과 작풍은 자신께서 바라시던대로이다. 당의 뜻을 체질화한 그런 군당책임비서가 온 나라의 군마다 다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암군당책임비서의 자료철을 선뜻 한쪽에 밀어놓지 못하시였다. 몇해전 가을 논머리에서 만났던 당일군, 흙묻은 장화를 신고 뒤꽁무니에 낫을 찬, 얼굴이 볕에 검실검실 탄 리중걸이 결코 자신의 기대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보다 성장했음을 알게 되시였고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될수록 마음 한구석은 어두워지시였다. 그이께서는 박은철소년의 편지를 생각하시였다. 달리는 렬차마냥 꼭 붙어있는 글자들… 연수덕축산반에서 다른 아버지들은 집에 오는데 자기 아버지는 두달째 오지 않는다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소년, 자기 아버지는 회의장 주석단에도 앉고 훈장도 탄 언제나 일을 많이 하는 위신있는 훌륭한 사람으로 믿고있는 소년에 대한 생각이 그이의 마음을 그러잡고있었다. 소년의 티없이 맑은 눈동자, 순진하고 깨끗한 마음에 담겨진 아버지의 영상이 흐려질것이 가슴아프시였다. 거짓과 불의를 질시하고 정직과 대바름을 생의 자양분으로 자라왔을 소년에게 본능적이다싶이 형성되여온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믿음은 허물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박림수가 진정 아들이 확신하고있는 그런 인간이 못되니 어떻게 한단 말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량수책상앞에서 물러나 무거운 걸음으로 방안을 거니시였다. 자기 아버지의 잘못을 모르는 한 소년의 천진하고 경솔한 편지건만 그이께서는 국가경제문제나 중요한 당사업문제에 못지 않게 마음쓰시는것이였다. 간단히 답장을 쓰는것도 송암군당에서 적당히 처리하도록 지시를 주는것도 다 내키지 않는 일이고 자신의 마음이 편할, 시원한 해결이 되지 못할것이였다. 시간이 퍼그나 흘렀건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종시 괴로움을 덜지 못하고 다시 량수책상에 마주앉으시였다. 무산-청진 장거리정광수송관공사의 진척정형을 보고한 문건을 번지시였다. 리인걸이 자필로 정히 박아쓴 글이여서인지 공사실태가 눈에 쑥 들어온다. 부부장은 이 사업보고의 글을 개구리울음소리가 소란스러운 진펄지대의 공사지휘부천막에서 썼다. …진펄의 깔따구가 구름처럼 밀려들지만 건설자들은 모기장속에서 단잠을 자군 한다. 부식물조건도 훨씬 개선되였다. 송암군당을 비롯한 지방당조직들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어 건설자들에게 육류와 기름, 닭알과 남새를 풍족히 먹이고있다. 해발 l,500메터인 금패령의 수송관부설은 꽤 진척되고있다. 굴착기와 불도젤을 비롯한 중기계들과 화물자동차들이 많이 도착해서 산협길을 퍼그나 닦았다. 금패령과 높은 등성이들은 청년돌격대원들의 간고한 노력, 헌신성과 의지로써 정복할수 있을것이다. 가장 난공사는 30리진펄이다. 진펄수문학자들의 조사자료와 진펄지대를 잘 아는 그 지방 농민들의 견해, 건설자들과 시공기술자들의 현지조사로 얻어진 종합적인 결론은 송암진펄의 지질학적, 수문학적 특성으로 하여 정광수송관을 도저히 부설할수 없다, 설비와 자재가 많이 들지만 진펄을 에돌아 부설하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공사지휘부적으로 그 문제를 협의검토하고 설계를 끝내가고있다. 그런데 문제로 되는것은 송암군당책임비서가 반대하는것이다. 많은 농경지가 침범당한다고 한다. 아직 완강히 나오지는 않지만 진펄공사변경내용을 알고 지방당으로서 부정하는 견해를 명백히 표시하였다. 그러나 국가경제적의의를 가지는 공사이니 토론하여 납득시킬수 있을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인걸의 구체적인 실태보고자료의 마감페지를 번지시였다. 당경제부서들에서 오래동안 일해온 실무성과 과학성을 중시하는 침착하고도 열정적인 일군의 모습을 되새겨보시였다. 공사의 실태를 객관성있게 진실하게 보고하는 자세가 마음에 드신다. 자신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으려고 난관을 분식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그런데 청년돌격대원들의 의지와 헌신성으로 등성이들과 금패령을 정복하는 문제는 생각해봐야 한다. 지도일군들은 돌격구령을 치며 호소하면 되지만 그 웨침은 구체적으로 건설자들의 뼈힘과 땀을 요구한다. 그리고 송암진펄문제는?… 과연 수송관을 진펄을 에돌아 부설해야만 하는가?… 리인걸이 끝내 송암진펄에서 물러섰단말인가? 그가 수송관이 진펄을 횡단하지 못하는 원인을 과학적으로 론증하고 결심을 달리한 리유를 설명하였지만 자료보고의 바탕에는 대자연의 난관을 어찌할수 없어하는 괴로움과 패배감에서 오는 쓰라림이 비껴있었다. 어떻든 공사를 기한전에 빨리 끝내야겠으니 리인걸이로서 다른 해결책이 없을것이다. 출입문이 열리고 주성욱이 들어왔다. 손에 문건봉투를 든 그는 잠자코 기다리고있었다. 이 며칠간 그의 얼굴이 상한것이 눈에 띄게 알린다. 피로가 덧쌓여 눈시울이 그늘지고 살갖은 윤택이 없어졌고 입귀에 한가닥 잔주름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절도있는 몸가짐과 눈정기는 아직도 얼마든지 밤을 팰수 있음을 말해주는듯 싶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애깊은 눈길로 부관을 지켜보시였다. 평양에 올라가면 한달쯤 료양보내서라도 휴식시켜야 하리라고 생각하시였다. 《좀 있으면 날이 새겠는데 성욱동문 가서 먼저 쉬오.》 《저는 괜찮습니다.…》 주성욱은 뒤말을 잇지 못하고 걱정스러운 낯빛을 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이 자신의 건강과 휴식에 대해 굳이 말하고싶어한다는것을 느끼고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참, 잊을번했소. 가기전에 한가지 일을 더 해야겠소. 여기 덕산비행장에 전화를 걸어 직승기를 준비시키라고 이르시오.》 《?!…》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성욱의 몹시 놀라와하는 표정에는 무관하신듯 짤막히 말씀하시였다. 《송암군쪽에 가보겠소.》 《함경북도에 말입니까?》 《그렇소, 수송관부설공사장에 가겠소. 늦어서 4시면 출발하겠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4시면 캄캄해서…》 《하늘을 나는데야 어두우면 뭐라오. 부전령산줄기를 날아넘느라면 날이 밝을거요.》 김정일동지의 범상한 말씀에 주성욱은 목이 꽉 메여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저… 조금전에 리장천동지가 농업위원회 일군들과 같이 렬차로 도착했습니다.》 《위원장동무가 낮차에 와도 되겠는데 힘들게 밤차를 탔구만.》 《농업위원장동지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아직 주무시지 않는다니까 비료때문에 마음쓰시겠는데 이 문건을 먼저 올려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어서 가져오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의 손에서 문건을 받아 펼치시였다. 강원도에 내려간 리장천위원장은 구평협동농장에서 작업반장 백리향처녀와 농장원들과 같이 손에 걸이대를 쥐고 강냉이덧거름으로 쓸수 있는 유기질비료를 생산하였다. 농장실정들에 맞게 원천을 탐구하면 빠른 기간에 강냉이 애벌덧거름문제를 풀수 있다고 확신한 리장천은 그 경험을 가지고 농업위원회와 각도 농촌경리위윈회,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 일군들속에 퇴비생산의 된바람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일군들이 한사람같이 협동농장들에 내려가 벌써 수만톤의 유기질비료를 생산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척 반가우시였다. 농업부문 일군들이 농민들속에 깊이 들어가 걸이대로 두엄을 번져쌓고 개흙을 파내며 농촌실정을 깊이 알고 당면한 농사에 걸린 문제를 풀게 된것은 실로 좋은 일이였다. 그것은 전국의 농업부문 지도일군들에게 있어서 농사일과 땅에 대한 애착심, 농민들에 대한 존중의 감정을 배양하는데서 하나의 디딤돌로 될수 있다. 그들이 이 비료깜빠니야시기만 아니라 사계절의 모든 영농사업을 그런 실농군의 관점을 가지고 일해나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저으기 흥분어린 눈길을 문건에서 드시였다. 《리장천동무가 조카를 데리고오지 않았소?》 《리길석이란 청년이 함께 왔습니다.》 《길석이가 왔단 말이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이 나간 다음에도 여전히 가슴에 량팔을 겯고 방안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길석이가 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장에 그를 만나고싶었지만 맞춤한 시간도 못되니 미룰수밖에 없으시였다. 마음속 깊은곳에서 봄날의 해빛과도 같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정이 고요히 솟아오른다. 아호비령산줄기를 감돌아내린 산협길, 푸른이끼 덮인 쌍곰바위밑에서 찰랑거리는 옹달샘, 물밑에 깐 하얀 조약돌, 끈달린 조롱박, 너럭바위우에 앉아 울던 꽁지머리소녀애의 모습이 아지랑이마냥 피여오른다. 어린 누이동생을 위하는 오빠의 마음과도 같은 애틋한 심정이 그이의 온몸에 젖어드시였다.
하늘에 별 하나 땅우에 나 하나
별의 동요가 귀전에 울리는듯 싶으시였다. 은하의 먼 구석에서 외로이 깜박이는 작은 별… 전설도 없고 빛도 희미해 천문학자들이나 아는 별… 작업반장처녀 백리향이… 자신은 그 처녀의 오빠가 되고 그 별을 품은 우주가 되고싶으시였다. 수억만 별가족을 거느린 우주의 힘과 사랑으로 그 무명별의 빛도 궤도도 모양새도 아름답게, 밝게 빛내주고 전설도 창조해주고싶으시였다. 16만광년이나 떨어져 애타게 그리워하며 칠월칠석날을 기다리는 《베짜는 처녀》와 《소몰이총각》처럼 불행하게 만들고싶지 않으시였다. 리향이와 길석이는 일년에 한번 은하를 건너와 만나고 헤여지는것이 아니라 나서 자란 정다운 고향산촌에서 영원히 만나 행복을 누리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길석이는 하늘의 《소몰이총각》이 《베짜는 처녀》를 사랑하듯이 그렇게 뜨겁게 리향이를 사랑하는가?… 송아지시절에 소녀애를 숲에다 버리듯이 또 버린것이 아닌가? 어렸을 때 의리심없이 도망치는 버릇을 여직껏 고치지 못한것이 아닌가. 15년전에 승용차를 몰고 구평마을길을 가면서 별렀던것을… 그때 꽁지머리 리향이가 말려서 그만두었지만 인제는 분명히 《혼쌀》낼 때가 되였다. 리향이를 아버지가 없다고 업수이 보지 말도록 해야 한다. 처녀에게는 아버지도 오빠도 당당히 대신할수 있는 보호자가 있는것이다. 자신께서 그날 새벽에 리향이에게는 말을 못했지만 길석이한테는 말해줄것이다. 내가 바로 열다섯해전에 쌍곰바위숲에서 어린 리향이를 마을에 태워다준 그 운전사아저씨라고! 너 길석이는 사랑을 언약한 고향처녀와 태를 묻고 자란 땅을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고향사람들과 선친의 유골이 묻힌 땅에 대한 모욕이다, 리향이와 구평마을사람들은 네가 똑똑해서 산골농사를 더 잘 짓는 법을 배워오라고 대학에 보내고 기다리고있었다, 인제는 길석이가 고향, 구평사람들에게 주체농법을 가르치고 그동안 자기를 기다리며 농사일을 해온 리향이를 일하면서라도 대학공부를 하도록 방조하는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사랑은 언약이 아니라 실행에 있다, 고향마을을 살기 좋은 문화농촌으로 꾸리자는것이 8월의 밤에 쌍그네 탈 때 너희들의 언약이 아니였더냐, 그것은 농촌청년으로서 참으로 소박하고 고상한 삶의 지향이다. 좋은 고장으로 떠나가지 말고 자기들 청춘의 손으로 제고장을 아름답게 꾸려 사랑과 행복을 창조해야 한다, 너희네 일가가 인제는 구평과 덕평땅을 다 떠나버렸다, 나는 걱정이다, 농사짓기 좋아하고 땅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농민들이 적어질가봐… 농촌의 계급진지가 약해질가봐… 걱정이다, 농촌을 떠난 젊은이들이, 농사짓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맘을 고치고 농촌에 돌아오는데서, 농촌에 뿌리를 내리는데서 어쩌면 길석이가 선봉이 될수 없을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너를 애타게 기다리는 고향처녀는 또 얼마나 기뻐하겠느냐, 길석이가 우리 리향이를 열렬히 사랑한다면 내 저 검푸른 하늘의 은하수에 다리를 놓아주련다, 너희들이 한쌍 배필로 무어지는 그 결혼식날엔 내 다시 승용차를 몰아 구평마을에 가겠다, 구평농촌의 원앙인 너희들과 함께 마을을 돌고 옥계천을 지나 송아지시절의 천진스러운 우정이 깃들던 그 쌍곰바위숲으로 가보련다, 그래서 끈달린 조롱박으로 하늘처럼 맑은 구평샘물을 떠서 너희들 신랑신부가 마시게 주련다, 사랑과 고향땅을 소중히 여기라고, 영원히 변심말라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상념의 세계에 잠겨 오래도록 사무실을 거니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