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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서 서늘한 강바람이 불어왔다. 강변의 황철나무들이 수만가지 시름을 안은듯 우수수 설레였다.

강폭은 넓지 않으나 물살이 빠른 북천강은 숨쉬는 거대한 생명체마냥 달빛속에 꿈틀거리며 흐르고있었다. 쉬임없이 울리는 강물소리는 무언가 가슴에 안고있는 소원을 안타까이 호소하는것 같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밤바람에 옷자락을 가벼이 날리며 강뚝길을 걸으시였다.

허상민과 한만규는 사색에 잠긴 그이의 심중을 깨칠가 저어하며 조용히 뒤를 따르고있었다.

물비린내 섞인 눅눅한 강바람이 페부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멀리 자라굽이 여울탁쪽에서 밤고기사냥군들의 가스등불이 어른거렸다. 발밑에서 부군부군한 잔디가 밟히고 지난해의 마른 억새풀이 아래도리를 휘감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일군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상민동무, 자꾸 뒤에 처지지 말고 이리 오시오. 나와 함께 걸읍시다.》

달빛을 받아 희끄무레 드러난 허상민의 얼굴은 강변의 풍치, 정서와는 인연이 먼 침울한 표정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심한 자책에 휩싸인 그의 어둡고 착잡한 심중을 헤아리시고 따뜻이 물으시였다.

《이 북천강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습니까?》

《예… 여름이면 공장지구 아이들과 같이 이 강에서 미역도 감고… 고기잡이도 하군 했습니다.》

허상민은 불시에 가슴이 뭉클해나고 눈물이 쿡 치솟았다. 목이 메였다. 웃동을 벗어붙이고 아래도리만 베잠뱅이를 걸친채 머리에는 강변의 개버들과 들꽃들로 풀방구리를 해쓴 소꿉시절의 자신과 마을또래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것이다. 미역을 감고나서 배고프면 아이들과 같이 강변의 마른 삭정이를 주어다 불을 피우고 창고 뒤켠에서 주어온 대두박덩이를 돌로 깨여 구워먹던 일이 어제일처럼 선하였다.

그렇게 고생속에서 소년로동을 하며 함께 자란 동무들이 지금껏 공장에 있건만 그는 잊어버리고 만나보지 않은지도 까마득하다. 북천강은 그 시절처럼 변함없이 흐르건만 그의 마음속에는 따끈한 조약돌이 밟히던 강기슭도, 송아지시절의 동무들도 다 없어졌다. 그이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고 대답을 드린것마저 부끄러웠다.

《북천강은 풍치가 아름답습니다.… 정서가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상민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혼자말씀처럼 뇌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배부른 상현달이 별이 쏟아지게 많은 검푸른 하늘중천으로 유유히 떠갔다. 실실이 드리운 아름다운 달빛은 사품치며 흐르는 강물우에 떨어져서는 천만쪼각으로 부서졌다. 커다란 물고기비늘같은 그 은빛 물쪼각들은 합쳐지고 또 부서지면서 우유빛 물거품을 일으키였다.

소연한 여울물소리는 주위의 공간을 꽉 채웠다. 수억만 물방울들이 신비스레 서로 부딪는 소리, 돌깔린 가파로운 강바닥을 휩쓸어내리는 거센 물결소리는 밤자연의 꺼질줄 모르는 장중한 교향악이였다. 

여울물은 태고로부터 생명이 진하지 않는 강의 유구함과 영원함을 자랑스레 웨치는것 같았다. 여울물소리는 달빛이 가리워 컴컴하게 그늘진 황철나무숲속으로 흘러들었고 풀잎새사이로 스며들어서는 이슬속에 잠든 곤충들을 놀래워 간단없이 깨여나게 하였다. 강기슭 풀숲에서 성난 풀벌레들이 이따금 도전이나 하듯 목청을 뽑아대군 했지만 이내 여울물소리에 기가 눌려 잠잠해지고만다.

풀숲 사처에 박힌 둥글둥글한 회색바위들은 몸을 웅크린 곰같기도 하고 슬금슬금 기여가는 거부기같기도 하다. 강에서는 수증기같은 연한 안개가 그물그물 피여올라 달빛이 짜놓은 은빛공간속으로 사라지군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도 모르게 밤의 강변풍치에 흠뻑 심취하시였다. 밤자연의 순수하고 정갈하고 신비스레 아름다운 세계에 몸을 잠그자 어느덧 마음은 정화되고 추억은 까마득히 머나먼 유년시절로 물결쳐갔다.

구수한 묵은 락엽냄새, 향긋한 송진내, 싱그러운 잎사귀냄새가 풍긴다.

해빛은 숨박곡질하듯 하늘을 꿰지르고 높이 솟은 나무정수리사이를 뚫고 빠끔히 비쳐든다. 울창한 백두의 밀림… 아름드리 이깔나무, 전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희디흰 봇나무들에 옹위된 작은 귀틀집… 천년이끼 붙은 바위들을 감돌고 하얀 차돌과 부석을 씻으며 흐르는 소백수…

어린 그이께서는 기슭에 가로누운 진대나무에 걸터앉아 벗은 두발을 드리우고 물우에 봇나무잎사귀를 뜯어 던지시였다. 꼭지달린 윤기도는 봇나무잎사귀들은 한줄로 물우에 동동 떠서 내려간다. 아래쪽 물가의 너럭바위에서 군복을 빨던 어머님께서는 떠내려오는 봇나무잎사귀들을 보고 해님같은 미소를 지으신다.…

밀림의 고요와 적막은 때로 유년기심리에 도저히 부화되지 않는 고독을 가져왔으나 그이께서는 자연의 숨결, 신비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그 외로움을 이겨내시였다. 가없이 푸른 하늘로 흰 구름 송이들이 날아지나가며 산봉우리를 쓰다듬는다.

머나먼 대륙을 달려온 바람은 지쳐 나무잎사귀들속에나마 안식을 찾아 잠들려 한다. 수림속에는 서로 다른 무수한 많은 나무잎사귀들이 설레며 속삭이는 독특한 음향이 꽉 찬다. 산새들이 조그만 혀를 굴리는 정다운 울음소리와 소백수의 은은한 물소리가 밀림의 교향악에 우아하고 풍만한 선률을 보태주었다.

소백수물은 한여름철에도 차거웠다. 대낮에도 컴컴한 골짜기에서… 조선의 가장 높은 산 밀림속바위짬에서 흘러내리는 물이여서인지 바닥에 물이끼조차 끼지 않는 수정처럼 맑은 물이였다.

그이께서는 등에 까만 점이 박힌 산천어들이 소리치는 소백수와 그 기슭의 나무들과 바위들. 진대나무다리를 지금도 삼삼히 기억하고계시였다.

그곳은 유년시절, 그이의 인생의 첫 시절에 비껴든 자연이였다. 금수강산인 이 나라의 어데 가도 있을수 있는 자연, 나무와 풀과 시내물과 바위들이였다.

어린 그이의 가슴은 인간을 낳아 진화시킨 거대한 어머니 자연을 따뜻이 품고있었다. 그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순박하고 천진하며 티없이 깨끗한 사랑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조국과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불씨로 되였는지 모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밤의 강변풍치에 심취하여 뒤따라오는 한만규와 허상민에 대해 거의나 잊으시였다. 그저 자신처럼 그들도 이밤 강기슭의 아름다운 자연, 가식과 위세를 모르는 진실한 자연에 정신을 잠그고 마음을 정화시키기를 바라실뿐이였다.

자라굽이 여울탁기슭에 못미처 차웅섭이 반가이 달려나와 맞이하였다.

《지배인동무, 이거 우리가 늦은게 아닙니까?》

《밤이 깊으면 메기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차웅섭은 걱정스러운 기색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웅섭이 준비해가지고 나온 어구를 살펴보시였다. 참대로 만든 낚시대 세개와 개천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미끼통, 잠실을 꼬아 엮은 고기망태기, 장화와 고무바지도 있었다. 큰 남비안에는 고추장과 식초, 파와 마늘 같은 양념감이 들어있었고 고기밸을 딸 작은 칼과 마른나무도 한단 있었다. 강변에서 생선탕까지 끓이려는 차웅섭의 마음은 지극한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낚시대를 받아들며 물으시였다.

《미끼는 지렁이가 좋지요?》

《예, 밤고기미끼는 지렁이이상 없습니다. 냄새가 세서 메기가 잘 찾아뭅니다.》

《작살질은 하지 않겠는데 고무바지와 장화는 왜 가지고 나왔습니까?》

《기슭에선 밤낚시질이 잘 안됩니다. 여울물을 조금 건너가십시다. 저쪽 물가운데… 자라바위등에 가면 메기를 낚을수 있습니다. 이건 저만 아는 <밤어장>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웅섭이 무슨 비밀이야기나 하듯 목소리를 낮추는바람에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아, 구미가 버쩍 동합니다. 지체말고 <어장>으로 갑시다.》

그이께서는 차웅섭이 밤물이 차다고 고무바지를 재삼 권고했지만 쾌활히 사양하시였다.

《일없습니다. 물이 좀 차면 뭐랍니까… 우리들중에 차웅섭동무가 그중 나이많은것 같은데 고무바지를 입으십시오. 여기 강은 바닥에 돌이 많고 물때가 올라 미끄러울겁니다. 넘어지면 다칠수 있습니다. 장화는 책임비서동무와 상민동무가 신으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물에 들어서시였다. 차웅섭은 가스등에 불을 달고 미끼통을 들고서 앞장에 섰다. 뒤에는 고기망태기를 어깨에 걸친 허상민과 한만규가 따라섰다. 강물은 몹시 찼다.

강바닥의 돌들은 모가 없이 매끈한데다가 물때가 올라 발을 붙이기 어렵게 미끌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 조심하라고 고개를 돌려 말씀하시려는데 벌써 한만규가 미끄러져 철썩-하고 나가넘어졌다. 서둘러 일어났지만 온몸에서는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모두들 강변이 들썩하게 웃었다.

《책임비서동무는 안되겠습니다. 기슭에 나가 불을 피우고 옷을 말리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권고하시였다.

강돌을 춰내여 쌓은 돌담을 따라 걸어가니 미끄러운것도 덜하였다.

오랜 세월 강물에 씻기고 비바람의 세례를 받아 모가 다스러진 검스레한 자라바위는 올라서니 그닥 높지 않고 넙적한게 서너평방은 실히 될것 같았다. 웃쪽의 여울물은 이곳에 와서 흐름새가 숙어져 건너편 벼랑과 잇닿은 물굽이를 이루고있었다. 자라바위 웃켠에서는 여울물이 쉬임없이 부딪치고있었지만 아래쪽에는 물이 깊고 작은 소에서처럼 바위기슭에 거품을 비비며 느리게 감돌고있었다.

차웅섭은 등불을 바위등에 올려놓자 그중 알맞춤한 자리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잡아드렸다.

《상민동무는 떨어져앉지 말고 내쪽에 가까이 오시오. 고기가 한곳에 모이게 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낚시에 미끼를 꿰면서 말씀하시였다.

허상민은 그이쪽으로 옮겨앉았다. 차웅섭이 지렁이가 섞인 개천흙을 몇웅큼 뿌려던졌다.

자라바위낚시터는 확실히 차웅섭이 자랑할만한 《비밀어장》이였다. 낚시대를 드리운지 20분도 되나마나 해서 차웅섭이 먼저 아이 주먹만한 대가리의 뚝중개 한마리를 솜씨있게 낚아냈다.

조금후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에 쥔 낚시대 허리가 늘씬하게 휘여드는 감을 느끼시였다. 큰놈이 물렸다고 직감하며 손에 힘을 주어 슬쩍 당기니 푸뜰하며 물속에서 힘겹게 끌려나오던 고기가 떡 뻗치고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도 입이 큰 메기가 미끼를 삼키다 배속이 아파나니까 주둥이를 물밑 돌틈에 꾹 틀어박은 모양이였다.

그이께서는 어지간히 흥분하였지만 낚시줄의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더 잡아당기지는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낚시줄을 슬며시 늦춰주시였다. 그러자 인차 저절로 낚시줄이 팽팽히 켕겨졌다. 물고기가 돌틈에서 나와 아래쪽 깊은곳으로 꽁무니를 빼는것이였다. 그 찰나에 그이께서는 낚시대를 옆으로 바짝 잡아당기시였다. 검푸른 수면을 철썩 깨뜨리며 큰 메기가 달빛에 흰 배때기를 얼씬 드러내고는 물속에 쑥 들어갔다. 메기는 물살을 가르며 죽을 힘을 다해 이리저리 요동을 썼으나 다시 돌틈에 박히지 못하고 끝내는 바위가녁으로 끌려나왔다.

곁에 앉았던 허상민은 흥분해서 자기 낚시대를 내쳐둔채 일어나 팔을 걷어붙이고 물가에서 지쳐 숨을 톺는 메기를 잡으려들었다.

《아, 덤비지 마시오. 물때가 미끄러운데 그러다 빠집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웅섭이 망태기안에서 오쿠를 꺼내오기전에 어느틈에 슬쩍 낚시줄을 들어 메기를 펑퍼짐한 바위우에 올려놓으시였다.

잔등이 시꺼먼 메기는 두오리의 길다란 송곳같은 수염을 거스리며 꾸물떡거렸다. 낚시를 삼켜 배를 째지 않고는 꺼낼수 없었다.

《저거, 부장동지낚시대가 끌려갑니다.》

차웅섭이 급하게 소리질렀다.

허상민은 메기를 놓고 황망히 달려가 자기 낚시대를 움켜쥐였다. 그리고는 옆으로 획 당겼다.

《잡았다!》

허상민은 아이들처럼 기뻐 소리지르며 낚시줄에 데룽 매달린 한뽐가량되는 메기를 다급히 붙들었다.

《상민동무도 잡았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기뻐하시며 지렁이를 꿴 낚시를 물에 던지시였다.

허상민은 메기주둥이에서 낚시를 벗겨내여 고기망태기에 집어넣었다. 수십년만에 고기를 낚아내는데서 오는 흥분으로 해서인지 낚시에 미끼를 꿰는 손이 후들거리며 떨렸다.

허상민은 메기 몇마리를 잡고나자 흥분이 아주 가라앉고 흐뭇하기만 했다. 그의 심신에 소용돌이치던 자책의 거센 물결은 흘러가고 정다운 시내물이 가슴속에 찰랑거렸다. 맑고 깨끗한 그 시내물은 어느덧 이 강변모래불에서 딩굴며 놀던 순진한 소년시절을 상기시켰다.

둥근달은 강뚝의 백양나무우듬지너머로 기울었다. 달이 기울어선지 차츰 고기가 드문히 물었다. 강웃쪽에서는 그 누구를 간절히 부르는 곡조마냥 여울물소리가 은은히 울려오고 거기에 조용히 화답하듯 잔물결이 찰싹거리며 자라바위기슭에 부딪친다. 끊임없이 피여오르는 회백색거품은 바위가장자리를 감돌아 흐른다.

허상민은 고개를 돌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바라보았다. 검푸른 강물에 반사된 그늘진 달빛의 음영속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깊은 사색에 잠긴채 앉아계시는 그이의 모습앞에서 그는 경건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허상민은 장인의 《수술일기》를 본 생각이 났다. 오늘낮에 점심을 마치고났을 때 그는 슬그머니 주성욱부관더러 《수술일기》를 보여달라고 했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멀리 렬차로 오시면서 없는 시간을 내여 보아주신 그 《수술일기》를 보지 않고는 도무지 량심이 가책되여 그대로 있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는 장인의 낯익은 글에서 지난날에는 스쳐지났거나 잊혀졌던 후더운 인정과 사위로서의 고마움을 새삼스레 느꼈다.

과거에 장인이 복부수술을 한 자기를 비롯해서 환자 한사람한사람을 위해 얼마나 속을 태우고 정성을 기울였으며 수술칼을 들었는가 하는것이 눈에.보이는듯했다.

《상민동무… 무슨 생각을 합니까?》

김정일동지께서 그를 향해 조용히 물으시였다.

허상민은 그이께서 번뇌어린 자기 심중을 꿰뚫어보시는듯 싶어 주저하며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솔직히 말씀드렸다.

《저… 집생각을… 제가… 낮에 <수술일기>를 좀 보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참 좋은 글이지요. 한 외과의사의 량심과 정성을 총화한 책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물녘에 이윽히 눈길을 주신채 생각에 잠겼다가 저력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보건대 정의빈선생의 병은 인생말년의 애수와 정신적허탈이 더 큰것 같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로년기의 우수병이 아닙니다. 환자들을 위해 채 연소시키지 못한 정력의 불길이 선생의 심혼을 태우는것으로 하여 생겨난 안타까움이고 번민일겁니다.》

강물이 흐름을 멈춘듯 싶었다. 바닥의 돌들을 씻어내리는 물소리도 수면을 핥으며 불어오는 비릿한 미풍도 소리를 낮추고 귀를 기울이는것 같았다.

《상민동무가 외과의학협회일군들과 같이 장인을 잘 도와주시오. <수술일기>에는 귀중한 림상자료들과 수술기법들이 있습니다. 정의빈선생은 자기가 오십년나마 림상실천속에서 얻은 그 성과와 경험들을 정리하고 학술화해서 세상에 발표하면 의학계에 큰 공헌을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년의 생이 꺼져가는 초불이 아니라 별처럼 빛나게 해줍시다.》

《!!…》

허상민은 크나큰 충동에 아무 말도 못했다. 이 순간 그는 지난날 생명의 은인에 대한 도리를 별반 지키지 못하고 그럭저럭 사위구실을 하며 살아온 자신을 깨닫게 되였고 깊이 반성하였다.

김정일동지의 음성은 한껏 부드러웠다.

《틈을 내여 인츰 집에 다녀오시오. 장인도 그렇지만 순희동무가 얼마나 기다리겠습니까. 남편을 외지에 보낸 녀인의 마음은 언제나 걱정스러운것입니다. 항차 순희동무는 상민동무를 사경에서 구원한 녀인이니 그렇게 위하는 마음이 더 짙을것입니다.》

《!!…》

허상민은 불뭉치같은 뜨거운것이 가슴속을 지지는것 같았다. 심장이 쿵쿵 뛰며 착잡한 의식속에 사랑의 강렬한 메아리를 일으켰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인간애를 지니신분앞에서 더는 자기를 숨길수 없음을 절감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저는 몰인정한 인간입니다. 늘 집사람의 애정을 경시하고 살아왔습니다.… 여기 출장지에서 사업이 바빠서만이 아니라… 생활이 불편하고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처가 기다리는 집에 가고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허상민은 어머니앞에 선 어린애마냥 목이 메여 말을 더듬으며 진실을 쏟아놓았다.

《사업속에다가 집사람에 대한 랭담과 무관심을 태연히 묻어버리군 했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강물의 흐름소리뿐 사위는 고요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상민의 고백에 가슴이 아프시여 바위굽에서 소용돌이치는 물결만 오래도록 지켜보시였다.

그러니 자신께서 허상민이네 집에 전화를 거시였을 때 흐느끼던 순희의 목소리에서 받은 예감이 틀리지 않았었다. 자기의 생명을 구해주고 생활의 성실한 방조자가 되여준 녀인에게 여직껏 정을 기울이지 못하다니… 예전처럼 어리무던하고 겉늙은 순박한 녀성이라고, 외양과 행동거지에서 촌티가 흐르는 매력없는 녀자라고 허상민이 그러지는 않는가…

사나이의 정열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는 녀인의 삶은 불행한것이다. 그러면서도 남편을 자기 행복과 기나긴 인생길의 반려자로 믿으며 또 그러기를 바라 애정을 쏟아오는것이 녀성들의 현숙한 성품일진대 남자들의 정신도덕적풍모는 어떤것인가? 그렇게 거만스런 존재인가? 어찌하여 남자들은 고대로부터 물려오는, 녀성에 대한 뿌리깊은 지배관념을 문명시대에 와서까지 잘 버리려고 하지 않는가.

 사회생활의 구석구석에 인류사의 그런 낡은 자취가 풍화되여가는 유적처럼 남아있다. 인간을 창조하고 키워내는 녀성의 아름다움, 자연과도 같은 매력과 력사의 한쪽수레바퀴를 돌리는 힘에 대해 진정 옳바른 인식을 해야 하지 않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강건너편에서 밤고기잡이등불이 얼른거리는것을 지켜보며 조용히 말씀을 꺼내시였다.

《상민동무, 어렵게 같이 산 처를 소중히 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긍정하는 상식적인 말같지만 사람들의 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드문합니다. 우리 일군들중에는 공부를 해서 아는것이 많아지고 직위가 높아지면 고생하던 시절에 만났던 안해를 하찮게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안해가 자기를 어떻게 뒤바라지해왔으며 훌륭한 일군으로 발전하도록 땅속에서 뿌리가 되여주었다는것을 잊어버립니다. 집에서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마음을 쓰고 남편을 내세우느라 세월보다 젊음이 먼저 지나가고 아름다움이 일찍 시들어버렸다는데 대해서 아프게 생각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이 일부 일군들의 가정내에 국한되는 부차적이고 비전형적인 문제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정신생활, 경제문화생활이 풍부해지는데 진실하게 따라서지 못하고 교만과 우월감같은 관료적의식이 싹튼것으로 보며 동지에 대한 사랑과 의리심이 없는 심중한 문제로 생각합니다.》

허상민은 힘없이 드리운 낚시대밑으로 빙빙 돌아가는 물거품을 지켜보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상민동무에게서 가깝고 귀중한 사람들, 동지들은 순희동무와 정의빈선생이고 여기 흥남에서 일하는 옛친우들과 로동자들입니다. 동무는 바로 그 사람들속에서 인생이 시작되고 사랑을 알게 되였을것입니다.》

고기가 물려 낚시대를 쥔 손에 툭툭 감각이 왔지만 그이께서는 느끼지 못하신듯 담담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가슴에 사랑의 불이 없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온몸이 불타 없어질 때까지 사랑하며 정열적으로 살지 않고야 어떻게 산다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사람들을 참답게 사랑할수 있는 일군은 만사람의 지혜와 힘을 얻어냅니다. 대중과 사랑으로 뭉친 일군은 어떠한 난관도 뚫고 방도를 찾아내며 사업에서 줄기찬 성과를 거둘수 있을것입니다.》

허상민의 큰 눈에 순진한 소년처럼 눈물이 그렁히 고였다. 그는 자기의 메마른 가슴에 사랑의 인생철학을 심어주고 불을 지펴주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곁에 이밤이 지새지도록 오래도록 앉아있고 싶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끼를 떼운 빈 낚시를 천천히 끌어내여 곁에 놓으시였다.

《상민동무, 내가 평양으로 떠날 때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저는 며칠후에 가겠습니다. 화학공업부적으로 강력한 기술집단을 무어 1,500마력대형압축기들을 개조하는 사업과 심혜옥기사가 연구한 P촉매제조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으려고 합니다. 그 일들을 제가 직접 지휘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낚시대를 접으시였다.

《화학공업부장동무가 그렇게 나서면 어떤 어려운 기술문제도 해결할수 있을것입니다. 난 시비년도화학비료생산은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쁩니다.》

달빛어린 그이의 얼굴에 만족한 기색이 떠올랐다.

《내 이번에 와서 보니 비료생산에서는 촉매도 중요하지만 압축기와 합성탑이 기본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압축기들은 오래된것들이고 합성탑들도 그릇이 작습니다. 지금은 l,500마력압축기를 개조하지만 앞으로는 룡성기계같은데서 3천, 4천마력의 대형압축기를 만들고 합성탑들도 특대형으로 현대화합시다. 화학공업을 하루빨리 세계적수준에 끌어올리자는것이 당의 의도입니다.》

《!!…》

출렁이는 강물우에는 달빛을 품은 투명한 안개가 피여오른다.

달은 광채를 띤 신비로운 열매인듯 황철나무우듬지에 고요히 걸려있다.

차웅섭은 고기망태기를 들고 먼저 강변으로 갔다.

《상민동무, 이젠 우리도 그만합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상민을 데리고 여울물에 쌓은 돌담옆으로 해서 잔돌들만 깔린 풀가로 걸어나오시였다.

강변 모래불에는 모닥불이 타오르고있었다. 한만규와 주성욱이 어둠속에서 주어온 나무가지들로 지펴놓은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다가가시자 한만규는 아꼈던 나무들을 불우에 고깔식으로 걸쳐놓았다.

불길이 세지고 주위가 한층 더 밝아졌다. 탁탁 불찌를 튕기며 타오르는 불길은 사람들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강변에 그들의 길다란 그림자가 춤추듯 너울거렸다. 밤기온이 선선해서인지 훈훈한 불기운이 좋았다.

한만규는 망태기아구리를 헤집고 푸들쩍거리는 메기 한마리를 꺼내여 불빛에 비쳐보았다.

《어, 그놈 대가리가 흉물스레 생겼다. 살이 졌구만.》

한만규는 흐뭇해서 차웅섭에게 말을 건넸다.

《아직 기름은 덜 졌습니다. 메기는 콩잎이 누렇게 되는 계절이래야 기름지구 맛이 있습니다.》

차웅섭은 벙긋이 웃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괴로움을 깡그리 잊은듯싶은 차웅섭의 활기있는 모습을 보자 자신의 마음도 가벼워짐을 느끼시였다. 허상민이랑 도당책임비서랑 여럿이 같이 강변에 나와 고기잡이를 하고나니 그들이 안고 모대기던 불신과 몰리해, 번민과 실책 같은것이 서로 딱딱한 말귀로보다 감정상으로 화해되고 융합되는것을 기쁘게 감득하시였다. 아름답고 청신한 자연이 인간의 체내에 깊이 파고들면 감정이 마른 실무적인간한테서도 본성적인 따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생선탕을 끓이려고 서두르는 차웅섭을 만류하시였다.

《자정이 넘었는데 그만두십시오. 나는 오늘밤 지배인동무 덕분에 강변의 풍치와 정서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묵은 피로가 싹 풀렸습니다. 생선탕은 집에 가서 한가마 푹 끓이십시오. 마늘이랑 고추랑 듬뿍 쳐서 얼벌벌하게 만들어놓고 옆집로인을 모셔다가 한대포 하십시오.》

숙연한 정적속에 모닥불이 불담을 쌓으며 후륵후륵 소리내여 타올랐다. 창끝같은 불길이 한데 뭉쳐 뾰족한 삼각불기둥을 이루며 검푸른 밤하늘로 솟구쳤다. 재빛연기속을 뚫고나온 보석같은 빨간 불찌들이 별이 총총한 하늘가로 흩어졌다. 고향집 부엌아궁이에서 나는것 같은 구수한 연기내는 주위의 분위기를 더욱 온화하게 만들었다.

너울거리는 모닥불길이 섭섭해하는 차웅섭의 수척하고 주름살많은 얼굴을 선명히 드러냈다.

김정일동지께서 유심히 보니 차웅섭은 퍽 늙었다. 수염을 깎은지 며칠 된것 같은 꺼칠한 턱, 센 머리, 생기없는 입술, 잔주름살에 풀린 눈시울은 눈확을 우묵하게 파고들어 한층 늙어보이게 하였다. 마음고생의 흔적이 얼굴에 력연히 씌여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순간 동정과 련민의 짜릿한 아픔을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심혜옥을 그려보시였다. 그 녀성도 귀밑머리는 때이르게 희끗이 세였지만 얼굴에는 흐르는 세월에 도전하여 시들지 않은 청춘시절의 미모가 남아있었고 여직껏 누리지 못한 녀성적삶의 향취와 갈망이 확고히 숨겨져있는것이였다.

그렇다면… 차웅섭은 늙었단 말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여 차웅섭에게 권하고는 손수 성냥을 그어 불을 붙여주시였다. 그리고 다시금 눈언저리에 잔주름살이 깊은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시였다. 이번에는 결연히 좀전의 관찰을 부정하시였다. 차웅섭은 늙었다. 그한테서는 봄도 푸른 여름도 지나간지 오래다. 그러나 가을은 가을대로의 정서와 랑만과 아름다움이 있는것이다. 열정인양 불타는 단풍, 남은 싱싱한 즙을 빨아올려 한껏 무르익는 열매의 향취, 락엽을 싣고 흐르는 골짜기의 맑은 물소리, 보금자리를 떠난 새들이 날아예는 가없이 푸른 창공… 대자연은 신비론 어머니혜택을 인간에게도 아낌없이 안겨주는 법이다.

그이께서는 차웅섭의 잔주름살이 얽힌 눈확속에서 젊은이의것과 같은 생의 욕구와 충동으로 번쩍이는 눈을 보시였다. 눈은 정신과 마음의 창문이다. 조그만 모닥불이 타오르는 지배인의 그 눈에서는 꺼칠한 턱수염과 시들어 푸르죽죽한 입술과 가혹한 주름살과는 상반되는 도저히 늙을수 없는 사랑과 정신의 아름다움이 황황 불타고있었다.

그이의 머리속에는 차웅섭의 집 뜨락의 어린 포도나무와 두툼한 연구자료, 실험실로 되여버린 방안의 전경이 되살아나시였다. 뒤울안에 있던 밑확이 빠진 쇠절구들을 생각하니 다시금 가슴이 뭉클해지시였다. 얼마나 진실한 사랑인가!… 참답게 사랑할줄 아는 사람은 자기 사업도 생활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진실하게 할것이다. 그리고 젊어질것이다.

차웅섭은 마땅히 심혜옥기사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야 하며 그럴만한 정신도덕적, 인간적풍모를 소유한 사람이다. 심혜옥기사가 줄 없는 악기와도 같은 이 지배인을 받들어준다면 만사람이 즐거워할 생활의 아름다운 새 선률이 사회의 장중한 교향악속에 합류될것이다.

차웅섭은 담배가치가 손가락이 따겁게 타들자 생각난듯 성급히 주머니를 뒤져 생당쑥물부리를 꺼내였다. 담배꽁초를 물부리에 꽂는 그의 손이 기쁨과 흥분으로 떨렸다. 눈굽에 이슬이 번쩍였다.

《혜옥동무는… 저더러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앞에서… 꼭 이 물부리를 보여드리라고 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그 동무는 참 훌륭한 녀성입니다. 어서 피우십시오.》

차웅섭의 두눈에는 가득 부은 술잔마냥 눈물이 넘쳐나고있었다. 모닥불빛에 물든 눈물은 쇠물처럼 번쩍거리며 거치른 살갗의 홈타기로 흘러내렸다.

물비린내가 섞인 누긋한 강바람이 기슭의 풀숲을 쓰다듬었다. 풀벌레가 첫 음정을 서툴게 뽑았으나 점점 가락이 류창하게 번져갔다. 강변의 여기저기서 풀벌레들이 화음을 맞추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일군들을 데리고 강변 풀숲길을 걸어 동뚝에 올라서시였다. 그이께서는 차웅섭이와 헤여지기 무척 서운하시였다. 시간이 있으면 그의 집에 가서 하루밤 같이 동무해주고싶으시였지만 작별하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차웅섭이 마지 못해 동뚝길로 걸음을 옮기는데 무언가 주저하며 서있던 한만규가 그를 멈춰세웠다.

《지배인동무, 잠간 기다려주시오.》

한만규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곁으로 다가왔으나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책임비서동무, 왜 그럽니까?》

김정일동지께서 따뜻이 물으시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오늘밤 제가 차웅섭동무네 집에 가서 함께 지내려고 합니다.》

《책임비서동무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그가 무등 반가우시였다. 그러나 보다 기쁘고 중요한것은 한만규의 정신적성장이라고 생각되시였다. 차웅섭을 몰리해하고 떼버렸던 가책으로 하여 주저하면서도 옹색함과 자존심을 떨어버리고나서는 당일군다운 대범성이 마음에 드시였다. 이번 실무지도기간에 자신께서 그토록 바라시였던 사람들에 대한 참다운 인정이 도당책임비서의 가슴에 심어졌고 드디여 뜨거운 사랑의 불길로 타오르기 시작한것이였다. 당사업이 겉으로 형식만을 갖춘 일반적인 정치사업으로 될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람들한테 진심을 바치는 사업으로 되여야 한다. 사람들의 가슴속에 들어가 그들의 심장에 불을 지펴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것이다. 당일군의 참사랑의 불이 가야 사람들의 사상이 불타오르고 그런 군중의 힘과 지혜는 무궁무진하게 발양되는것이다.

《좋은 생각입니다. 가보시오, 차웅섭동무의 언 가슴이 다 녹을것입니다. 그리고 차웅섭동무가 새 가정을 이루게 되면 무엇이 필요한지도 살펴보도록 하시오. 우리가 집에 가봐서 알지만 차웅섭동무는 아들을 세간낸데다 안해가 여러해동안 앓다 사망했으니 집안살림이 궁색합니다. 합숙생활을 해온 심혜옥기사한테는 낡은 옷이 몇벌인 트렁크와 가방이 있고 과학기술도서들만 한궤짝이라고 합니다. 연구사업에 청춘을 바친 녀성이니 시집갈 준빈들 하며 살았겠습니까?… 그들이 새 살림을 잘 꾸리도록 당이 도와줍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만규가 저쪽 황철나무가에 서있던 차웅섭이와 같이 어둠속에 사라질 때까지 바래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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