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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당청사의 넓다란 마당에 느티나무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불깃한 저녁해의 여광이 한만규와 허상민의 얼굴에 비쳐들어 낯색이 한결 밝아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료생산과 관련한 허상민의 사업보고를 들으시고나서 아무말씀 없이 느티나무의 그림자를 밟으며 조용히 거니시였다. 해결책이 좀처럼 서지 않는 비료생산문제로 하여 어쩌다 만난 일군과 좋은 이야기만 할수 없게 된것이 괴로우시였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허상민의 꺼칠한 모습을 지켜보시였다. 아까 허상민이 거처하고있는 려관방에 들어가본 인상이 다시금 눈에 밟혀오시였다. 옷걸이대에 아무렇게나 걸쳐놓은 현장작업복과 덞은 수건, 침대밑에 삐죽이 내민 세탁할 옷가지들… 홀아비살림과도 같이 빈구석이 많은 방은 허상민의 착잡하고 불안정한 의식상태를 그대로 말해주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상민이 말을 다하지 않았지만 화학공업을 담당한 그의 고충과 수고를 헤아리고계시였다. 허상민의 말속에는 화학공업부로서는 어찌할수 없는 객관적조건, 난관이 포함되여있었다. 그렇다면 화학공업부자체로서는 할것을 다했는가? 시비년도비료생산이 긴장해지는 이런 경우를 예견하고 그에 대처할 그 어떤 생산기술적잠재력을 마련해놓을수 없었는가? 《상민동무, 날이 저물기전에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 내려갑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기 승용차쪽으로 가는 한만규를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도당책임비서동무는 내 차에 타시오. 동무의 이야기는 가면서 더 들읍시다.》 승용차가 도당청사를 벗어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나직이 물으시였다. 《그래, 도예술단이 비료련합기업소에서 경제선동을 벌리고… 그 다음은 어떤 정치사업을 했습니까?》 《문화회관에서 궐기모임을 열고 온 기업소 종업원들을 사상동원시켰습니다. 그리고 비생산부문 종업원들이 현장지원을 적극 하도록 조직사업을 했습니다. 비생산부문 사람들이 하루일이 끝나면 생산직장들과 하조장에 가서 도와주니까 기업소에 전투적인 분위기가 섰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츰 활기를 띠는 한만규의 얼굴을 쳐다보시였다. 그는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 대한 도당위원회의 정치사업에 은근히 자부심을 가지고있는것 같았다. 하긴 도당위원회가 공장, 기업소의 경제사업에 이만큼 관심을 돌리고 밀어주는것도 쉽지 않은것이다. 당사업을 위한 당사업이 아니고 도당위원회가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을 틀어쥐고 행정경제기관들을 힘있게 밀어주어야 하는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별로 행정대행을 했거나 주관주의에 빠져 사업하는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정치사업을 벌려온데 비해 비료생산이 시원히 올라가지 못하고있는것은 정치사업이 일반적이든가 형식주의적으로 되였거나 아니면 어떤 다른 부족점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좌석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대시였다. 《책임비서동무가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 나가 일을 적지 않게 했습니다. 함남도경제에서 흥남비료련합기업소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습니다. 흥남비료련합기업소에서 시비년도비료를 원만히 생산하여 농촌에 보내주어야 도당위원회가 발언권이 서고 당사업에서 성과가 크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포장한지 오래된 도로는 고르롭지 못해 승용차는 가끔 들추었다. 차창으로 비온 뒤의 청신한 바람이 흘러들었다. 공장지구인 은덕으로 내려가는 뻐스정류소들에는 사람이 많았다. 통남정류소에도 그랬는데 사포정류소에는 사람들이 구불구불 줄지어 섰다. 그중에는 애기어머니들도 적지 않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가 정류소를 지나친 다음에도 고개를 돌려 뻐스줄에 서있는 사람들을 한동안 바라보시였다. 한만규는 실눈을 지은채 안절부절을 못했다. 《도당책임비서동무, 뻐스정류소들에 늘 사람이 저렇게 많습니까?》 《여느때는 일없는데… 지금 퇴근시간이여서 좀 많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만규의 송구스러워하는 대답에서 어딘가 사실을 약화시키려는 어조를 느끼시였다. 《뻐스대수가 부족되는 모양이구만.》 《예, 거기다 수송거리가 늘어나서…》 《시민들이 여간 불편해하지 않겠습니다. 비가림채양도 없는 정류소인데 눈비가 내리고 뻐스는 제때에 오지 않고… 그럴 땐 사람들이 우리 일군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차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깃들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실은 뻐스문제때문에 시당책임비서동무가 노력을 많이 하고있습니다. 려객사업소에 나가 고장난 뻐스들을 빨리 수리정비하여 가동시키도록 사업소일군들에게 불을 걸었습니다. 뻐스운행보장을 하는데서 이래저래 조건타발을 하는 일군은 문제를 되게 세웠습니다.》 《시에다만 맡기지 말고 도당책임비서동무가 잘 도와주시오. 려객사업소능력이 걸리면 함흥시에 있는 련합기업소들과 큰 공장들에도 과업을 주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창을 내리우시였다. 맞바람이 그이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큰길옆으로 뻗은 협궤철길로는 작은 객차바곤들을 단 《빽빽이》차가 경쟁이나 하듯 나란히 달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답답한 가슴이 불쑥 열리는것 같으시였다. 《저 교외렬차가 은덕과 흥남을 지나 서호까지 가지요?》 《그렇습니다. 하루 두번 아침과 저녁에 다닙니다.》 《책임비서동무, 교외렬차의 운행주기를 늘일수 없을가? 적어도 두어시간에 한번씩 다니게 말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뻐스에 덜 매달리지 않겠습니까.》 한만규는 뒤머리를 긁적거렸다. 《전 뻐스생각만 하다보니… 협궤차 운행회수를 늘이도록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시간을 정해놓으면 손님들이 협궤차 타는걸 더 좋아할겝니다.》 저만치앞에서 적재함에 산 오리를 가득 실은 화물차 한대가 속력을 내여 달리고있었다. 박박- 오리들의 소란스러운 울부짖음소리가 승용차안에까지 들려왔다. 적재함앞쪽에 의자를 놓고 앉은 인수원인듯한 남자가 긴 막대기로 뛰쳐나려고 대가리를 솟구는 오리들을 사전에 눌러놓군 했다. 그러나 차가 너무 빨리 달리니 불안에 빠진 오리들을 미처 걷잡지 못하였다. 끝내 발목끈이 풀린 살진 오리 한마리가 적재함을 뛰쳐나 날개를 퍼덕이며 길섶에 곤두박혔다. 인수원이 차지붕을 두들겨 멈춰세우고 운전사가 뛰여내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의 뒤창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들이 오리를 잡느라고 덤벼치는것을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시였다. 《어데 실어가는 오리들입니까?》 《요즘 흥남의 공장, 기업소들에 오리공급을 하고있습니다.》 한만규는 화제가 바뀐것이 다행스러웠다. 《왜 목장에서 산채로 가져옵니까. 훈제품이랑 여러가지 가공품을 만들어오는것이 좋지 않습니까?》 《그렇게도 합니다. 그런데 로동자동무들이 산오리를 가져다 집에서 구미에 맞는 료리를 하는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요즈음 광포오리목장에 오리가 너무 번성해서 미처 가공처리하지 못합니다. 재작년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광포오리목장에 다녀가신 다음부터 호수에 먹이풀이 꽉 성해서 오리생산량이 대폭 늘어나고있습니다.》 《광포오리목장의 사양공들이 일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저으기 만족한 심정으로 광포오리목장에 갔던 일을 되새겨보시였다. 해빛이 부서지는 아득한 호수의 잔물결, 취할듯 풍기는 물비린내, 구름떼가 내려앉은것 같은 오리떼, 사양공처녀총각들의 노래소리, 명주필안개가 감도는 호반의 아름다운 경치가 떠올랐다. 그이께서는 목장지배인과 나이많은 사양공과 같이 쪽배를 타고 노를 저어가며 물층에 따라 오리먹이에 좋은 수초들을 기를 방도를 오래동안 탐색하시였다. 호수가녁에 나와서는 바지가랭이를 걷고 물에 들어서 수초를 움켜내보시였다. 지금도 발밑의 부드러운 감탕속에서 조개와 골뱅이들이 밟히고 잔고기들이 맴돌며 장딴지를 쪼아대던 그 즐거운 감촉이 삼삼하시였다. 승용차는 흥남로동자지구에 들어섰다. 비료련합기업소의 높은 질안굴뚝이 사라져가는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솟아있다. 지구덩이를 잘라 엎어놓은것 같은 대형가스저장탕크들과 원통형의 길죽한 질안탑들, 합성탑들과 배관들이 황혼속에 누르스름한 은빛을 발산한다. 흥남의 저녁거리는 조용했다. 이 시간이면 퇴근길에 오른 로동자들이 거리를 메우며 집으로 가거나 맥주집같은데서 흥성거릴것이다. 아마 현장지원이랑 하느라 그런 생활의 여유를 못가지는상싶었다. 승용차는 그이의 깊은 심중을 깨칠가 저어하듯 천천히 달렸다. 문득 김정일동지께서는 차를 멈춰세우게 하시였다. 《책임비서동무, 저기 정문쪽에 무슨 꽃다발을 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섰습니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오신다고 로동자동무들이…》 《나를 환영하러 나왔습니까?》 《아마…》 《동무가 조직했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알려주었을뿐인데…》 《아무래도 책임비서동무가 가서 로동자동무들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하고 그들을 돌려보내는게 좋겠습니다. 난 시비년도비료문제를 풀려고 현지에 일하러 내려왔지 꽃다발을 받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한만규는 고집스레 앉아있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흥남비료련합기업소 로동계급의 성의를 받아주십시오. 지난 기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기업소에 여러번 오셨기때문에 로동자동무들은…》 《그 동무들한테 내 따로 인사를 하겠습니다. 긴장한 비료생산문제를 풀려고 왔는데 무슨 환영을 하고 환영을 받을 명분이 있습니까. 난 저 군중들이 다 돌아갈 때까지 여기 있겠습니다. 고집부리지 말고 어서 가서 모두 돌려보내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엄한 표정을 지으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