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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겨울. 하늘을 메우고 쏟아져내리던 눈은 일요일 오후무렵에 가서야 멎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숫눈길을 헤치며 대학기숙사로 가시였다. 그곳에는 외국에 류학을 가게 된 청년들이 따로 모여 어학공부를 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흥남비료공장에서 올라온 허상민을 만나러 가시는 길이였다. 가을에 질안직장확장공사장에서 만난후로는 처음이였다. 조국을 떠나는 그와 이야기도 나누고 극장에 연극구경을 같이 갈 생각이시였다. 요즘 그이께서는 몹시 바쁘시였지만 우정 시간을 내시였다. 기숙사마당에는 누구인가 벌써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어놓았다. 참새무리가 후르륵 날아나자 버드나무가지에 쌓였던 눈이 꽃잎처럼 머리우에 흩날려내렸다. 찬 눈가루가 그이의 반외투깃사이로 목덜미에 스며들었다. 마침 기숙사현관문으로 허상민이 나왔다. 자락이 무릎까지 드리우는 새 외투를 입은 그는 류달리 얼굴이 환해보였다. 후리후리한 키에 의젓한 몸가짐을 하고서 걸어오는 그의 모습은 비료공장의 현장기수가 아니라 갓 임명받은 젊은 교수같았다. 《아 이거 상민동무, 오래간만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호방스레 말씀하시였다. 기숙사울타리쪽에 눈길을 팔던 허상민은 그제야 알아보고 황황히 달려와 그이의 손을 부여잡으며 반가와 어쩔줄 몰라했다. 비료공장 현장에서 단련된 큼직하고 억센 손이였다. 허상민은 기쁨의 눈물이 그렁해서 띠염띠염 말했다. 《정말… 제가 이렇게 류학을 간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고마운 심정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상민동무처럼 화학공장에서 단련된 로동계급출신의 사람들이 선진기술을 습득하면 화학공업부문의 인재가 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이번에 류학을 보내는 동무들에 대한 기대가 큰데 공부를 잘하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반외투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그래 어데 가려던 참입니까?》 《저… 흥남에서 누가 왔기에…》 허상민은 얼굴이 붉어지며 전나무들이 있는 기숙사울타리쪽에 시선을 던졌다. 눈이 수북이 쌓인 울타리곁에는 쌍태머리를 어깨에 드리운 웬 처녀가 다소곳이 서있었다. 검정치마우에 입은 누빈솜옷은 처녀의 몸매를 더 퉁퉁하게 해보였다. 《누굽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호기심을 가지고 물으시였다. 《제가 일전에 말한… 정의빈선생의 딸입니다.》 《아, 그렇소?!》 김정일동지께서 기뻐하시자 허상민은 마당의 숫눈길을 가로질러 뛰여가서 처녀를 데려왔다. 털실로 성글게 짠 수건을 팔에 걸친 처녀의 보름달처럼 둥실한 얼굴에 짙은 홍조가 피여올랐다. 《순희라고 합니다.》 처녀는 잔잔한 말씨로 수줍게 뇌이고는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주 인사를 하시였다. 지난 가을 질안직장확장공사장의 비내리던 밤에 허상민이 깊은 애정을 가지고 말하던 정의빈의사의 양딸, 폭격에 불타는 공장지구와 사택마을을 다니며 부상자들을 구원한 처녀… 이야기를 들었을뿐인데 정작 만나고보니 오래전에 알고있은 처녀처럼 친근감이 느껴지시였다. 《정의빈선생이… 이렇게 외투를 지어보냈습니다. 나라에서 다 해주는것도 모르고…》 허상민은 외투자락을 매만지며 기쁨을 숨김없이 터놓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의빈의 두터운 인정이 가슴에 젖어드시였다. 단순히 허상민의 생명을 구원해준 의사로서의 관심만은 아닌 보다 깊은 의미가 외투에 깃들어있는것 같으시였다. 《어디 산보길을 떠나는데 내가 왔구만.》 《괜찮습니다. 눈도 멎고 해서 거리에 나가볼가 했습니다.》 허상민은 열적어했다. 《마침 잘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관람표 두장을 꺼내 허상민에게 주시였다. 《거리구경을 하다가 국립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시오. 요즘 국립연극단에서 <해바라기>를 무대에 올렸는데 아주 좋다고 합니다.》 그이께서는 고마워하는 두사람과 헤여져 대학도서관으로 향하시였다. 다음날,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숙사에 가서 허상민을 다시 만나시였다. 《순희동무가 평양에 친척이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려관에 하루 더 있게 하고 래일 떠나보내겠습니다.》 허상민의 얼굴에는 어쩐지 그늘이 어렸다. 먼곳에서 온 처녀를 잘 위해 주지 못한데서 오는 아쉬움만은 아닌것 같았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이의 진지한 물으심에 허상민은 약간 면구한 표정을 짓더니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여드렸다. 정의빈이 보낸것이였다. 외과의사는 한문이 두간히 섞인 길지 않은 글줄에서 허상민의 건강과 학업과 장래를 기원하였을뿐 다른 말은 별로 없었다. 아마도 공부하러 떠나는 청년에게 자기들 부녀때문에 근심시켜야 하는 의무감같은것을 빚어낼가 저어한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맨 아래줄에는 속마음의 뜨거운 구석이 보이였다. 조국을 떠나기전에 시간이 있으면 꼭 흥남에 와달라는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의빈의 편지에서 허상민을 자기 집 식구로 맞고싶어하는 소박한 진정을 느끼시였다. 정의빈은 자기의 그런 심정을 허상민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에둘러 조심스레 비친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편지를 돌려주면서 허상민의 얼굴에서 정의빈에 대한 진정을 찾아보시였다. 《그렇다면 흥남에 가서 정의빈선생을 만나보고 오는게 아닙니까?》 《인차 류학을 떠나겠는데… 공부랑 준비를 하지 않고 떠다닌다고 말들 할것 같아서…》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가로저으시였다. 《아니, 잘못 생각합니다. 정의빈선생은 상민동무를 구원해준 의사이면서도 아버지나 같은분인데… 순희동무와 같이 흥남에 가는게 좋겠습니다. 정의빈선생도 만나고 비료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무들과도 작별인사를 하시오. 난 류학을 가는 동무에게 그것이 가장 큰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허상민은 목메여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이 가벼워져 물으시였다. 《언제 떠나겠습니까?》 《오늘 저녁차로 가겠습니다.》 그날저녁,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를 몰고 역에 나가시였다. 홈에 서있던 허상민은 뜻밖에 김정일동지를 보자 기뻐서 뛰여왔다. 그를 뒤따라온 순희의 얼굴은 행복감으로 하여 달덩이처럼 환했다. 허상민은 김정일동지의 손을 부여잡고서 순희쪽을 훔쳐보며 가만가만 진정을 터놓았다. 《전 이번에 갔다가… 언약을 할 결심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기뻐하시였다. 《내 그러지 않아도 상민동무가 꼭 그럴것 같아서… 무얼 좀 준비해가지고 왔습니다.》 그이께서는 승용차에서 묵직한 지함을 두개 꺼내시였다. 《함경도풍습에 약혼식은 남자쪽에서 차려가지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변변치 않은거니 성의로 알고 받아주시오.》 《!!…》 허상민의 열정적인 큰눈에 눈물이 그렁히 맺혔다. 순희는 목수건끝으로 눈굽을 찍었다.
며칠후에 새 양복을 멀쑥하게 입고 평양에 돌아온 허상민은 모스크바로 떠나갔다. 세월이 흘렀다. 김정일동지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다음해에 허상민은 류학을 마치고 조국에 돌아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상민을 만나보고싶었지만 분망하여 시간을 내지 못하시였다. 그러시다가 뒤늦게야 허상민이 서북부의 작은 화학공장에 기사로 배치받고 떠나갔음을 알게 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류학생들 배치에 관여한 당중앙위원회의 해당일군을 만나시였다. 집무실창밖에서는 마가을 가랑비가 주근주근 내리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허상민의 문건을 쥐신채 황이 든 정원의 은행나무잎사귀들이 비에 씻기는것을 한동안 내다보시였다. 허상민은 로모노쏘브종합대학 화학부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머리가 총명한데다 어렵게 자라온 그는 향학열이 높았다. 반년도 되기전에 로어회화를 자유자재로 하게 되였고 화학부문을 비롯한 자연과학부문의 학술용어들을 완전히 소유하였다. 오래지 않아 그는 수재로 평가되였다. 동방사람으로서는 키가 크고 억실한 눈에 이마가 시원스레 열린 미남인 그는 자기를 선망의 눈길로 훔쳐보군하는 여러 나라 류학생처녀들에게 곁눈도 팔지 않고 학업에만 전념하였다. 과외시간에는 다른 류학생들처럼 카페나 극장, 무도장들에도 다니지 않고 대학도서관에 들어박혀 배운 지식을 공고히 하고 실용적으로 습득하기에 노력했다.… 류학기간의 그에 대한 평정은 좋았다. 《락후한 그 화학공장을 추켜세우기 위해 배치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혼자말씀처럼 뇌이고 창문에서 돌아서시였다. 《내 생각에는 허상민동무를 잘못 배치한것 같습니다. 그 동무는 그런 작은 화학공장에 묻어둘 사람이 아닙니다. 류학생들은 수령님께서 사회주의건설의 장래발전에 필요한 훌륭한 인재들을 키워내시기 위해 손수 골라보내여 공부시킨 사람들인데 심중히 고려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합니다. 허상민동무는 비료공업전문 기술일군입니다. 류학을 가기전에 우리 나라 굴지의 흥남비료공장에서 현장기수로 일했습니다. 허상민동무는 앞으로 흥남비료공장의 기술발전에 큰 기여를 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비내리는 소리가 고요히 들릴뿐 정적이 드리운 방안을 조용히 거니시였다. 해당 일군은 자책감에 휩싸여 서있었다. 《…과장동무는 허상민동무의 경력을 알지요.… 그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왜놈들의 채찍밑에서 소년로동으로 잔뼈가 굵었습니다. 일만 알고 또 공부를 하느라 나이들도록 합숙과 기숙사생활만 해왔지 단란한 가정을 꾸려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 동무가 이제 또 낯설은 고장에 가서 혼자 합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을 해당 일군에게 넘겨주시고 두팔을 가슴에 결으시였다. 그이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으나 온정이 흘러넘치였다. 《이제라도 허상민동무를 흥남비료공장에 보냅시다. 흥남에는 지금 허상민동무의 약혼녀인 순희라는 처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처녀의 아버지는 전쟁시기 폭격에 중상당한 상민동무를 구원한 의사입니다. 오래동안 헤여졌던 그들이 모여 한가정을 이루고 살도록 해줍시다. 그래서 허상민동무가 그곳 비료공장에서 류학에서 습득한 지식과 현장기술경험을 마음껏 활용하게 합시다.》 그리하여 허상민은 흥남비료공장에 돌아와 기술부에서 일하게 되였고 뛰여난 기술실무적능력으로 하여 두해가 지나서는 공장기사장이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무렵에 함경남도에 가셨다가 흥남비료공장에도 들리시였다. 그이께서는 공장안내를 하는 허상민기사장의 얼굴이 어덴가 울적하고 닫긴옷의 목달개도 갈은지 여러날 되여 무척 덞은것을 띄여보시였다. 사람됨이 소박한 공장당비서는 그이께 허상민이 기사장이 된 다음부터 공장생산이 근심되여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사무실쏘파에서 자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씀드렸다. 수다한 설비들이 안전하게 돌아가고 비료생산이 그전보다 쑥 올라간데는 허상민기사장의 높은 실무적능력과 분투가 깃들어있다고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긍되듯 고개를 끄덕이시였지만 그렇게만은 생각되지 않으시였다. 어쩐지 허상민의 얼굴에 스치는 그늘과 덞은 목달개는 기사장의 드바쁜 사업과는 그닥 련관이 있을것 같지 않았다. 원래 개체생활이 단정하고 깨끗한 사람인데다가 외국에서 더욱 세련된 허상민이 그쯤한 일에 몰린다고 턱수염이 꺼칠할 정도로 외모에 관심을 돌리지 못할 사람이 아닌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도당협의회를 마친뒤 밤늦어서 허상민의 집에 찾아가시였다. 기사장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의빈과 순희는 비꽃이 떨어지는 마당가의 희붐한 어둠속에 서계시는 수수한 차림새를 한 김정일동지를 알아뵙지 못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방안불빛을 등지고 선 정의빈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시였다. 《누구신지?…》 정의빈은 한순간 눈을 슴벅이며 서있더니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맨발로 마루를 뛰여내려왔다. 순희도 부엌문을 열고 나왔다. 정의빈은 서둘러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를 방안에 모셔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의빈이 내놓은 초물방석을 밀어놓고 맨 장판방에 앉으시였다. 《상민동무한테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결혼식에도 오지 못하고… 한번도 찾아뵙지 못하여 정말 미안합니다.》 《원 무슨 말씀을… 우린 례장감이랑 잔치상을 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보내주신걸루 차렸습니다. 저와 딸애가 받아안은 그 은정에 대해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정의빈의 거쉰 목소리는 감격과 진정으로 떨렸다. 문지방에서 옷자락을 매만지고있는 순희의 눈에도 이슬방울이 가랑히 맺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의빈의 우선우선하는 얼굴표정과 순희의 눈물거둔 밝은 얼굴에서 무언가 가정의 그늘을 감추고 행복함을 나타내려는 기미를 느끼시였다. 어쩐지 가정싸움이 있은것만 같은 좋지 않은것이 예감되고 그래서 기분이 어두워지였지만 그이께서는 내색을 하지 않았고 사연을 묻지 않으시였다. 그저 정의빈과 따뜻한 가정적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이윽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일군이 가져온 족자의 종이포장을 벗기시였다. 《선생님, 변변치 못한거지만 기념으로 받아주십시오.》 정의빈은 족자를 받아 조심스레 펴들었다. 보름달이 우렷이 비치는데 껍질이 터갈라진 늙은 소나무가지에 한쌍의 학이 다정스레 앉아있는 그림이였다. 정의빈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고결한 뜻이 마쳐와 가슴이 찌르르해났다. 《고맙습니다.…》 《어서 벽에 거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의빈이 맞은켠벽에 족자를 걸고 와 앉자 담배를 권하시였다. 짙은 담배연기속에 침묵이 흘렀다. 풍화된 조각상마냥 컴컴해서 앉아있던 정의빈은 더 참기 어려웠던지 고개를 쳐들었다. 가는 주름이 간 눈시울속에 물기가 그렁히 고였다. 그는 말없이 다가와 김정일동지의 손을 꽉 부여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감동과 자책으로 떨렸다. 《저를… 책망해주십시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이 애비보다, 어미보다 극진히 저애들의 장래를 축복해주시고 화목하게 살기를 바라오셨는데… 저는 곁에서 잘 돌봐주지 못했습니다. 애들의 금슬이 그전만 못해 집안에 찬기운이 떠도는게 화가 나서 사위한테 거북한 소릴랑 했습니다. 기사장이니 공장일이 바쁘고 언짢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텐데… 그래서 집에 들어와 무뚝뚝하고 신경질도 낼텐데 저는 그걸 리해 못하고 사위가 류학갔다오더니 사람이 어딘가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아픈 소리를 했습니다.》 순희의 흐느낌소리가 고요한 방안에 간간히 울려퍼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괴로우시였다. 전쟁때 처자를 다 잃은 정의빈, 그가 상민이를 아들삼아 데리고 지난날의 불행을 옛말하면서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얼마나 바라마지 않으셨던가. 《선생님, 너무 상심마십시오. 부부싸움은 봄비와 같고 칼로 물베기입니다.》 그이께서는 정의빈을 안심시키려는듯 흔연스레 말씀을 이으시였다. 《상민동무야 공부도 많이 한 사람이고 선생님이나 순희동무와 의리적으로 얽힌 사인데 뭐 더 달리 버그러질 사람이 아닙니다. 아닌게 아니라 비료공장 기사장사업이 여간 바쁘지 않으니 언짢은 일들은 선생님과 순희동무가 리해하고 넓게 생각해주십시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가 너무 옹졸했던가 봅니다. 내 이제부턴 옹진 맘을 활 털어버리겠습니다.》 정의빈은 환해진 얼굴을 돌렸다. 《얘 순희야, 너두 그러겠지?》 순희의 눈은 기쁨에 젖었고 두볼로는 고마움에 넘쳐난 행복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김정일동지께서 그들과 뜨거운 작별을 하고 마당을 나서는데 울바자곁에 돌부처처럼 서있는 허상민이 보였다. 그이께서는 허상민을 데리고 승용차가 있는 길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비는 캄캄한 어둠속을 소리없이 내려 그이의 옷을 적시고 포장하지 않은 길가의 흙먼지를 튕겨올렸다. 알싸한 흙먼지냄새가 풍겼다. 도당일군이 좀처럼 승용차에 오르지 못하시는 그이를 념려하여 우산을 펴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산을 받아 잠자코 침묵을 지키고있는 허상민이쪽에 씌워주시였다. 우산을 도간히 두드리는 비방울소리… 어둠속 공간을 채운 소연한 비소리뿐 사위는 적막이 깃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헤여지기전에 허상민에게 하고싶은 말씀이 많으시였지만 정작 꺼내지는 못하시였다. 비료공장사업과 관련한 이야기는 이미 공장에서 다 해주셨는데도 그의 생활과 결부하여 또 당부하고 싶으시였다. 그러나 비물방울이 흘러내리는 허상민의 경황없는 침중한 얼굴을 보니 많은 이야기가 필요없으리라고 생각되시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고 사연을 물어서 뭘하랴. 부부생활에 무슨 일인들 없겠는가. 다툼이 있었다 한들 비내린 산개울의 흐린 물이 맑아지듯 인차 화해할것이다. 사랑은 소경이고 결혼은 약이라는 말도 있으니 지난날에 보지 못했던 약점들이 두드러진다 해도 살아가면서 서로 도와 고쳐나갈수 있을것이다. 그렇게 믿어마지 않으시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은 덜수 없어 우산을 허상민이쪽에 더 기울이며 조용히 물으시였다. 《상민동무는 혹시 자기가 외국에서도 손꼽히는 종합대학을 졸업했고 이제는 큰 공장 기사장이라는 중임을 지녔다고 해서 순희동무나 정의빈선생을 허술히 여기는게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허상민은 당황해서 부정했다. 김정일동지께시는 한걸음 다가서서 허상민의 젖은 어깨에 손을 얹으시였다. 그이의 음성은 비소리처럼 낮으면서 차분하였다. 《상민동무, 부탁하건대 정의빈선생과 순희동무를 존중하시오. 그들은 동무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고 한가정사람들이여서만이 아니라 진실로 사랑할만한 그런 고결한 정신적미를 갖춘 동지들입니다.》 허상민은 고개를 숙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후 허상민의 가정문제가 더는 제기되지 않으리라고 믿으시였다. 이 나라의 모든 가정들과 같이 자그마한 불화나 근심거리가 없이 행복해야 할 정의빈일가였다. 꼽아보면 그때로부터 어언간 십여년이 지났다. 너무도 빠른 세월의 흐름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추억을 밀어버리고 불안의 넌출이 감긴 마음속 의혹을 부정해보시였다. 자신의 공연한 걱정이라고… 정의빈은 모름지기 아들없는 늙은이의 지나칠 정도의 순수한 애정에서 불만을 터놓았을것이며 순희는 남편을 곁에서 따뜻이 위해주지 못하는 애틋하고 그리운 심정에서 울었을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이런 가정을 내쳐두고 화학공업지구에 내려가있으면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허상민의 심정도 괴로울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동해지구에 대한 현지지도를 앞두고 몇가지 일을 더 처리하시고 밤늦어서야 당중앙위원회 청사로 돌아오시였다. 그이께서 차에서 막 내리시는데 청사앞마당 저쪽 외등빛이 그늘진곳에 멎어있는 승용차곁에서 한 일군이 기다리고있었던듯 급히 달려왔다. 뜻밖에도 리인걸부부장이였다. 무산-청진 내륙지방에서 수송관부설공사를 지도해야 할 일군이 여기에 나타난것이다. 인사를 올리는 리인걸의 얼굴은 컴컴했고 피발이 선 눈에는 긴장과 흥분이 어려있었다. 《그새 수고많았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마르고 꽛꽛한 손을 잡고 물으시였다. 《렬차로 왔습니까?》 《예…》 《피곤하겠소. 저녁식사는 했습니까?》 《렬차식당에서 먹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왔습니까?》 《대형자동차접수사업이 지연될것 같아서…》 《하루라도 늦어질가봐 그러누만.》 《예. 공사장에서는 지금 하루가 백날맞잡입니다.》 《다그쳐야지. 그래 자동차들을 넘겨받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쯤 무개화차에 다 실었을겁니다.》 《부부장동무의 얼굴을 보니 또 다른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이의 따뜻한 말씀에 리인걸은 좀 당황해서 머뭇거렸다. 《사실… 왔던김에 직접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송암군당책임비서 말입니다.…》 리인걸은 눈시울을 내리깔며 말하기 힘들어했다. 《중걸동무라…》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부장의 피로한 얼굴을 이윽히 건너다보시였다. 자신을 오래 기다렸을 그를 집무실에 데리고 올라가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으나 그럴수는 없으시였다. 먼 려행길의 피로도 그렇지만 부부장이 정광수송관건설현지에 가서 하루밤인들 제대로 쉬였겠는가 하는 생각이 마음을 괴롭히시였다. 《인걸동무, 밤이 깊었는데 집에 들어가 아이들이랑 만나보면서 푹 쉬시오. 래일아침에 나와 함께 렬차로 떠납시다. 가면서 공사정형이랑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읍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