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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밤. 서북지방의 산협길을 여러시간 달린 승용차는 어느덧 평안남도 지경에 들어서고있었다. 차내 조명은 끈지 오랬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문건더미가 쌓인 뒤좌석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신채 묵묵히 전조등빛이 넘실거리는 차창쪽에 눈길을 보내시였다. 이슬에 눅눅해진 석비레길우에서 엷은 안개가 흩어지고있었다. 오가는 차들도 사람도 없었다. 길새가 좋아 승용차는 그다지 들추지 않았건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좀처럼 눈을 붙이고 피로를 풀수 없으시였다. 평안북도의 일부 공장, 기업소들의 실태에서 받은 그늘진 인상으로 마음이 번거로우신것이였다.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강령이 선포된후 나라의 정치사상적분위기는 비상히 앙양되였고 경제부문에서도 커다란 성과들이 달성되였다. 《70일전투》의 승리적결속에 이어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6개년계획의 기본고지들을 당창건 30돐기념일전에 점령하기 위해 떨쳐나섰다. 속도전청년돌격대원들과 평양시청년학생들 5만여명은 철도전기화와 중서부의 새 철길부설을 결의하여 홰불을 추켜들고 수도의 거리를 누비며 장엄한 시위를 하였다. 김철에서는 4호해탄로를 건설하였고 자력갱생의 힘있는 공장인 룡성기계공장의 로동계급은 속도전을 벌려 정초부터 매달계획을 두배이상 넘쳐수행하고있다. 농업대회이후 압록강다이야공장의 3대혁명소조원들과 로동자들은 긴장한 로력투쟁으로 계획외에 2만개의 다이야를 더 생산하여 농촌에 보내주었다. 서해기슭의 은률에서는 만년대계의 기념비적창조물인 대형장거리벨트콘베아가 완공되여가고있다.… 그이의 머리속에 떠오른 큼직큼직한 실례들만도 허다하다. 그런데 이번 평북도의 일부 경제부문에 대한 료해결과는 그렇게 비등된 정치사상적열의, 혁신의 거세찬 흐름 한켠에서 아직 답보하거나 굼뜨게 전진하고있는 단위들이 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만약 서북지구의 한개 도에 국한되는것이 아니라면?… 아직 그렇게 문제를 확대해볼 근거는 없다. 소형록음기에서는 서정깊은 음악이 은은히 울려나오고있었으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여느때처럼 음악세계에 깊이 젖어들지 못하시였다. 한시바삐 평양으로 가서 전반실태를 료해하여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가득하시였다.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외국방문의 분망한 나날을 보내시는 이때 자신은 로상에서 무료히 시간을 보내는것만 같으시였다. 승용차가 좀더 속력을 내줬으면 좋으련만 안개까지 끼여 긴장해서 차를 모는 운전수를 재촉할수도 없으시였다. 운전수는 불시에 속력을 늦추었다. 밤안개속을 헤치고 전조등빛이 뻗어간 길앞쪽에 사람의 형체가 나타난것이다. 잔등에는 배낭을 지고 한손에 보꾸레미를 든 녀인이 힘겹게 걸어가고있었다. 녀인은 걸음을 멈추더니 보꾸레미를 들지 않은 손으로 차불빛을 막느라 얼굴을 가리우며 도랑창이 있는 길섶에 비켜섰다. 승용차가 녀인을 지나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걱정스러이 말씀하시였다. 《운전수동무, 태우고 가기요.》 그이께서는 승용차가 멎자 차문을 반쯤 열고 녀인을 찾으시였다. 녀인은 배낭을 추슬러올리고나서 잠시 망설이다가 승용차쪽으로 다가왔다. 《어데로 갑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친절히 물으시였다. 녀인은 차안불빛에 그늘진 그이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소곳이 대답을 드렸다. 《설밤역에 갑니다.》 억양이 센 함남도말씨였다. 《아직 삼사십리는 가야겠는데 타십시오. 역까지 태워다드리겠습니다.》 《전… 일없습니다.…》 녀인은 당황해하며 사양했다. 《어렵게 생각말고 어서 타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너그럽게 권고하시였지만 녀인은 땀에 축축히 젖은 이마의 머리칼을 어줍게 쓸어올리며 선뜻 걸음을 떼지 못했다. 《배낭을 이리 주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에서 내려 녀인의 어깨에서 배낭을 벗기시였다. 배낭은 돌덩이를 가득 넣은듯 무거웠다. 이렇게 중량이 나가는걸 녀인이 어깨에 지고 왔다는게 참으로 놀라우시였다. 때마침 도우러 나온 운전수가 배낭을 받아서 승용차의 짐칸에 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뒤좌석의 문건더미를 한켠에 밀어놓고 녀인을 태우시였다. 녀인은 보꾸레미를 무릎우에 놓은채 몸을 되도록 작게 오그리고서 밤안개가 스치는 차창쪽에만 눈길을 주었다. 마흔살을 넘겼을가한 녀인이였다. 파마한지 오래되여 작은 핀들로 모양새를 얼추 꾸민 머리에서는 흰 머리칼이 드문히 새여나왔다. 《이제 가면 기차가 있습니까?》 《예. 온성행이 있습니다.》 녀인은 례절을 차리느라 이쪽에 고개를 약간 돌렸으나 눈길을 들지 못하고 이내 앞쪽을 바라보았다. 승용차신세를 지는데서 오는 어줍음과 옹색스런 심정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녀인이였다. 《함남도쪽으로 갑니까?》 녀인은 눈시울을 들지 않은채 다시금 이쪽에 반쯤 고개를 돌리며 수긍했다. 《흥남에 갑니다.》 《어데 친척집에라도 다녀오는가요?》 《아니예요.》 녀인은 얼굴에 열적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광산에 가서 실험에 쓸 원료를 얻어오는 길입니다.》 《짐이 무거운데 왜 래일아침에 뻐스라도 타고오지 않습니까?》 《시료를 찾아내서 선별하는데 며칠 걸렸습니다. 오늘밤 온성행을 타고가면 래일은 공장에 나가 실험을 할수 있겠기에…》 《아주 중요한 연구사업인 모양입니다.》 《뭐, 별치 않은거예요.》 녀인은 겸손히 대답했다. 색이 날아 무늬가 희벗해지고 가장자리의 실밥이 터진 보꾸레미는 중년녀성의 행장에 어울리지 않는것이였으나 녀인은 거기에 무슨 진귀한것이 있기라도 하듯 무릎우에 소중히 올려놓고있었다. 밤길에 돌덩이처럼 무거운 시료배낭을 지고가면서도 녀인의 얼굴에는 고달파하는 표정이 조금도 없었다. 자기 소행에 대한 어떤 인정을 바라는 기색도 찾아볼수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다른 녀성들처럼 품들여 꾸미지 못한 머리에 앉은 희끗한 서리와 보꾸레미에 얹은 거칠어보이는 손과 차림새에서 그 녀인의 고생스러움과 어딘가 여유없는 생활을 보시였다. 승용차는 가던 길을 내처 달렸다. 녀인은 다소곳한 자세로 소형록음기에서 고즈넉이 울려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관현악 《내 고향의 정든 집》이였다. 성스러운 조국을 원쑤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고향의 정든 집을 떠나지 않으면 안된 서정적주인공의 비장한 열정, 조국애의 숭고한 감정이 차안에 흐르고있었다. 이따금 차가 들추면서 녀인의 음악감상을 방해하는것 같아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수에게 나직이 이르시였다. 《천천히 모오.》 그이의 따뜻한 심정을 알아차린 운전수는 승용차의 속력을 늦추고 흔들리지 않게 길바닥의 패인 홈태기들을 피하며 조심스레 몰았다. 깊디깊은 계곡의 바위짬에서 흘러내리는 가느다란 시내물소리같은 관현악의 마지막선률이 여운을 끌며 사라지자 녀인은 시름겨운 한숨을 쉬였다. 살눈섭이 촘촘한 눈시울속에는 물기가 어리는듯 싶었다. 녀인은 차창쪽에 아주 고개를 돌리고서 손으로 눈시울을 닦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녀인이 볼품없고 거칠어보이기까지 하나 마음은 무척 여리고 감정이 섬세하다고 생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각상마냥 앉아있는 녀인에게 조용히 말씀을 건네시였다. 《음악을 무척 즐기는 모양입니다.》 그러자 녀인의 얼굴에서 그늘이 가셔지고 홍조가 피여났다. 《오래전에… 대학시절엔… 음악을 좋아해서 늘 전축을 듣군 했습니다.》 승용차는 파도우에 뜬 작은 배마냥 흔들거렸다. 큰길에서 벗어져 역쪽으로 가는 사이길은 험했다. 뜨락또르바퀴에 깊숙이 패인 홈태기에는 며칠전에 온 비물이 질벅히 고여있었다. 길복판에 두드러져오른 겉마른 진흙에 승용차의 배밑창이 닿아 슬치는 소리가 아츠럽게 들렸다. 녀인은 불안한지 몸을 좌석에 편안히 묻지 못한채 줄곧 엉거주춤해있더니 송구스레 말했다. 《전 여기서 내리겠어요. 역에 다 왔는데 걸어가겠습니다.》 《마음놓고 앉아계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호방스런 어조로 녀인의 불안을 눙쳐주시였다. 승용차는 어둠속에서 전등불을 몇개밖에 켜지 않은 자그마한 단층역사앞에 가 멎었다. 녀인은 차문을 열고 내리였다. 운전수가 승용차뒤의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주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차밖으로 나오시였다. 녀인은 허리를 굽혀 진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무사히 다녀가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역사의 돌층계쪽으로 배낭을 지고 걸어가는 녀인을 따뜻이 바래주시였다. 밤안개도 걷히여 속력을 내여 달리는 승용차에 몸을 맡기신채 그이께서는 생각에 잠기시였다. 현지지도의 머나먼 길에서 드문히 태우게 되는 길손들중의 한사람이였지만 그 녀인은 류달리 인상에 남으시였다. 류행과 시대풍조에 뒤질세라 새옷을 지어입고 머리모양을 꾸미고 거리에 나서는 도시의 많은 중년녀성들에 비하면 녀인의 외모는 초라할정도로 수수하다. 그러나 그 녀인에게서 풍기던 연구사업에 대한 열정과 헌신성은 그 녀자의 허름한 외양을 오히려 돋보이게 한다. 아늑한 생활이 아니라 그것의 희생을 무릅쓰고 나선 길손… 녀성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하는것 같은데 그곳 일군들과 당조직이 관심을 돌리지 못하는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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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가 가로등이 드문히 켜진 서평양거리에 들어섰을 때는 밤 l시가 넘었다. 도시는 깊은 잠에 묻혀있었다. 대웅성좌는 초롱초롱 여문 꼬리별가지를 당중앙위원회청사 지붕우에 드리웠다. 승용차는 푸릿한 외등이 켜진 청사의 앞뜰로 소리없이 들어가 멎어섰다. 차문을 열고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을 떼시다말고 무춤 돌아서시였다. 정원의 나무들속에서 잠에 취한 풀벌레의 가락이 느린 울음소리가 도간히 울렸다. 풀잎에서 떨어지는 차거운 이슬방울에 젖어 선잠을 깼는지 뜨직뜨직 들리는 풀벌레의 울음소리였지만 고요한 정원에 자연의 생기를 부여하고있었다. 풀벌레는 밤세계의 장엄한 정적에 맞서 두려움을 모르고 울어대더니 뚝 끊쳤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냥 서계신채 귀를 기울이시였지만 풀벌레울음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잠에 묻힌 모양이였다. 며칠전 서북지방에 현지지도를 떠나시기전만 해도 들을수 없던 정원의 새 음향이다. 봄은 서둘러 물러가고있다. 잔디풀이 그동안에도 푸르게 살진것이 알렸고 장미덤불은 잎수더구가 무성해졌다. 버드나무 실아지들엔 노란 털이 보르르한 강아지와 잎새들이 촘촘히 매달려 늘어졌다. 그이께서는 달빛에 싸인, 늦은봄의 짙은 정서를 자아내는 정원의 풍경에서 그사이 지나간 날자와 시간의 흐름을 느끼시였다. 뚜렷한 계절의 변화에 대한 감촉은 서북지방에서 안고온 걱정, 개운하지 못한 심정을 한층 더 분명히 하는것이였다. 열려있는 현관출입문으로 삼십대의 젊은 부관인 주성욱이 반달음으로 나와 반가이 인사를 올렸다. 《나를 기다리느라 집에 못들어갔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혈기넘치는 주성욱의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신계광산에서 리인걸부부장동지가 올라왔습니다.》 《빨리 왔구만.》 《예, 두시간전에 도착했는데 지금 대기실에서 기다립니다.》 김정일동지의 반가와하는 눈빛속에 한가닥 그늘이 비끼시였다. 집무탁 서랍에 있는, 현지지도를 떠나기전날에 받은 한통의 편지가 생각나시였다. 자신앞으로 보내온 그 편지는 함경북도 송암군 옥천고등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박은철소년이 쓴것이였다. 보통 편지지에 또박또박 박아쓴 글자들은 급행렬차마냥 초조히 앞으로 줄달음치고있었다.
…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 저의 아버지는 석달전에 관리위원장자리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집을 떠나 멀리 연수덕의 축산반에 가서 소와 양을 치고있습니다. 마을애들이 우리 아버지가 허풍쟁이여서 군당책임비서아저씨가 본때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알수 없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정직하고 좋은분입니다. 오래동안 관리위원장사업을 해왔습니다. 아버지는 훈장을 여러개 받았고 지난해에는 농업대회에도 참가했습니다. 늘쌍 저더러 공부 잘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던 아버지인데 거짓말쟁이 나쁜 사람일수는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보고싶습니다. 축산반의 다른 사람들은 연수덕에서 집에 자주 오는데 저의 아버지는 석달이 지나도록 한번도 내려오지 않습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순진한 마음이 어린 편지의 글줄이 눈앞에 삼삼하시였다. 지금도 편지를 처음 볼 때처럼 생각이 깊어지시였다. 자기 아버지를 열렬히 옹호하고 믿어의심치 않는 소년이 기특하고 대견해서만이 아니시였다. 소년의 아버지를 철직시켰다는 송암군당 책임비서 리중걸은 바로 리인걸부부장의 사촌형이다. 리인걸부부장을 그곳 무산-청진대형장거리정광수송관 건설장에 파견하려고 할 때 이런 편지를 받으신것이였다. 공교로운 일치이다. 송암군당 책임비서, 천식증이 있어 언덕길을 헐썩거리며 걸어오던 다부진 체격을 가진 사람… 김정일동지께서는 몇해전 가을에 함경북도를 현지지도하실 때 그를 만난적이 있으시였다. 바른편 눈섭꼬리우에 큼직한 기미가 붙어있어 그런지 푸수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으나 작업복뒤꽁무니에 낫을 차고 흙묻은 장화를 신은 차림새는 퍽 마음에 드시였었다. 쾌활하고 전개력이 있는 당일군이라고 함경북도당 책임비서도 말했었다. 리중걸이한테 옥천협동농장 관리위원장을 해임시킬만한 리유가 없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박은철소년의 편지에 답변을 주자면 어차피 해당 일군을 내려보내야 하였다. 그런데 당중앙위원회 부부장을 그 지방으로 파견하면서 그의 사촌형을 료해할 일군을 또 보내야 할것인가?… 당사업의 원칙으로 볼 때 응당 그렇게 해야 하지만 감정은 동의하지 않는다. 대기실로 향하는 김정일동지의 마음은 착잡하고 무거우시였다. 리인걸부부장은 쏘파의 팔걸이에 목을 불편스레 걸고 상반신이 엇비스듬히 무너진채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고있었다. 주성욱이 황급히 부부장을 깨우려 하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제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다가가시여 곤하게 자고있는 부부장을 이윽히 내려다보시였다. 얼굴이 여위고 체구도 작은 사람인데 코고는 소리는 요란하였다. 리인걸의 가까운 친구들조차 한방에서 자다가는 이불을 걷어안고 들고뛴다는 말이 우연치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시였다. 천정이 울리는것 같은 부부장의 코고는 소리가 어쩐지 버릇으로만 여겨지지 않으시였다. 신계광산에 내려가 사업을 추켜세우느라 온전히 쉬지도 못했을것이였다. 《새벽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깨우지 말고 푹 자게 둬두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관에게 나직이 이르고 대기실을 나서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