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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화동무의 최후
리 봉 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안순화가 연약한 녀성의 몸으로 적들의 회유와 고문을 이겨낸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안순화는 그처럼 모진 고통을 당하면서도 절대로 혁명가의 지조를 버리지 않았다고, 그는 하고싶은 말을 다하고 지킬것을 다 지키였다고, 참나무말뚝이 몸에 박히는 순간에는 마지막힘을 모아 《조선혁명 만세!》와 《녀성해방 만세!》를 부르짖었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혁명투쟁시기 나는 밀림속에 병원을 꾸려놓고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1937년 봄, 환자들의 대부분이 완치되여 부대로 돌아가고 중환자들은 안전한 지대로 후송하게 되였다. 동상으로 발가락을 모두 절단한 주호의 상처도 그럭저럭 아물기는 하였으나 올리막길이나 내리막길에서는 걷기가 매우 힘들어서 허우적거리였다. 이것을 볼 때면 나의 가슴은 미여지는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주호도 중환자들과 함께 후송하기로 하였다. 어느날 저녁 나는 주호에게 나의 의향을 이야기했다. 장차 병원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질것이니 약도 제대로 없는 병원에서 배를 곯으며 고생하기보다는 아저씨들과 같이 안전한 곳으로 가는것이 어떤가고 설복하였더니 그는 두말없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그가 떨어지지 않겠다고 고집을 쓰면 어쩌나 하고 은근히 근심도 했었는데 마침 다행이였다. 그가 얼마나 적들때문에 고생스러웠으면 부모의 곁을 떠나면서도 싫다는 말이 없이 선뜻 대답했겠는가! 떠나는 날이였다. 그들은 모두 나의 손을 잡으며 밀림속에 홀로 남아 얼마나 고생하겠느냐면서 헤여지는것을 몹시 섭섭해하였다. 정작 갈라지게 되자 기뻐하던 주호도 어머니를 붙잡고 다시는 못만날것만 같다고 하면서 흐느껴우는것이였다. 《사내대장부가 울기는… 주호야, 혁명이 승리하는 날 우리는 꼭 만나게 된다. 우리 걱정은 말고 어서 떠나라. 어데 가든 아저씨들에게 애를 먹이지 말고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래야 너도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된다.》 두세번 당부하며 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순화의 얼굴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떠나는 그들을 멀리까지 바래주면서 하루속히 완치되여 다시 만날것을 간절히 바랐다. 김좌혁동무의 인솔하에 떠나가는 일행이 멀리 청림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바라보던 나는 정말 언제 다시 만나게 될것인가를 생각하니 한편 서운하기 그지없었다. 그후 우리는 상부의 지시로 5사 3중대와 함께 사도령자부근에서 1937년 겨울을 지내게 되였다. 당시 리국진동무가 중대정치지도원으로 사업하고있었다. 우리 병원성원들은 재봉대원들과 같이 중대부와 좀 떨어진 곳에 따로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에는 기본부대의 식량창고와 탄약, 의약품창고도 있었다. 재봉대에는 백운선, 리경선, 김정녀동무들이 있었는데 안순화가 재봉대와 창고들을 책임지고 일하였다. 1938년 4월초가 되였다. 부대와 함께 우리는 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남만쪽으로 이동하기 위한 행군준비를 갖추고있었다. 한쪽으로는 식량공작도 하면서 모든 동무들이 서둘러 짐을 꾸리였다. 저마다 흥분된 심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있을 때 나에게는 하나의 근심거리가 생겨 혼자서 은근히 속을 태우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순화가 나를 찾아오더니 심중한 표정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린아이를 가지고는 행군하기도 어렵고 장차 활동에도 지장이 크겠으니 주동이를 차라리 남에게 맡기고 떠납시다.》 내가 걱정하고있던것도 그 문제였고 나의 결심도 바로 그것이였다. 우리는 또다시 이런 비극적인 고비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사실 어린아이를 가지고 부대를 따라다닌다는것은 본인의 활동에 지장이 있을뿐아니라 동무들에게도 부담을 주게 되며 특히 부대의 은밀성을 보장하는 면에서도 여간 불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남에게 어린것을 맡긴다는것은 부모의 심정으로서 가슴쓰린 일이 아닐수 없었다. 순화와 나는 이 문제를 가지고 며칠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의논하던 끝에 보내기로 합의를 보았다. 우리는 누구도 모르게 아이를 맡길만 한 대상을 탐문하였다. 목단강에서 쌀을 가지고온 사람에게 청탁했더니 그 마을에서 상점일을 보는 애(艾)가 성을 가진 집에서 어린애를 얻어기르겠다고 한다는것이였다. 우리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를 맡길 차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순화는 아이싸개를 뜯어 깨끗이 빨아놓고 주동이가 입던 옷가지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몇개 안되는 이것마저도 모두 낡은 옷을 뜯어서 만든것들이였다. 순화는 그것이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았던지 자기는 노닥노닥 헝겊으로 기워입으면서도 아껴두었던 새 치마를 뜯어서 아이의 저고리를 정성껏 만들기 시작하였다. 나는 말없이 천정만 쳐다보다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잠을 청하고있었다. 이때 바느질을 하다가는 잠든 아이를 한참씩이나 물끄러미 바라보군 하던 순화가 문득 나에게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이 애가 커서도 우리를 알아볼가요?》 《별소리를 다하오. 아이들도 피줄을 따르는 법인데 알다뿐이겠소. 앞으로 좋은 세월이 오면 길러준 수고에 대하여 단단히 보답해주고 아이를 꼭 찾읍시다.》 자식들때문에 줄곧 너무나도 마음고생시키는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해오던 나는 그를 위로하여 이렇게 말했지만 정말 생리별이란 못할 일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잠자고있는 아이를 마지막으로 품에 안아보았다. 다음날 저녁이였다. 걸음마를 타기 시작한 주동이와의 마지막 리별의 시각이 다가왔다. 순화는 눈물을 삼키며 어린것을 품에서 떼내여 말파리에 앉히였다. 업고만 다니다가 오래간만에 내려놓으니 아이는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어데로 보내는지도 알지 못하는 철부지 어린것은 어머니의 옷자락을 꼭 틀어쥔채 웃고 재롱을 부렸다. 《어린애를 잘 길러주오! 주동아ㅡ잘 가거라!…》 말파리가 떠나면서 어머니와 갈라지게 되자 주동이는 도리질을 하며 막 울어댔다. 이 순간 나의 가슴은 터지는것만 같았다. 하물며 순화의 마음이야 오죽했겠는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말파리가 사라질 때까지 오래오래 바라보던 우리는 어데로 가든 앓지나 말고 잘 자라기만을 바라마지 않았다. 모진 마음을 먹고 떠나보내기는 했으나 그 허전한 심정은 이루 다 말할수 없었다. 《너무 상심마오. 사람일을 어찌 알겠소. 우리가 만약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 애가 대를 이어 원쑤를 갚을게 아니겠소.》 나는 흐느껴우는 순화를 위로하며 그와 함께 병원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주동이를 보낸 후 순화는 나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몰래 밖에 나가 불은 젖을 짜버리며 혼자서 울군 하였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속이 아팠다. 나는 지금도 생사를 알길 없는 주동이가 마음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이렇게 되여 결국 우리에게는 다섯 자식중에서 하나도 남지 않게 되였다. 첫째인 주호는 이미 이야기한바와 같이 다른데로 후송하였고 둘째 아이는 이전에 우리가 곁방살이를 할 때 홍역을 하다가 집주인놈이 새집에서 아이가 죽으면 재수가 없다고 내쫓는 바람에 산에서 앓다가 끝내 죽고말았다. 셋째 아이는 다섯살 나던 해에 리수구에서 같은 나이의 자기 삼촌과 함께 일제《토벌대》놈들의 총창에 찔리여 죽었다. 넷째 딸애인 금순이는 산에서 굶어죽었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주동이마저도 떼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코 이것으로 하여 비관하지 않았다.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한 비극도 겪을 각오를 해야 하기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후에도 가슴쓰리고 비통한 고비를 또다시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남만으로의 행군준비를 끝내고 대기하고있던 어느날 아침이였다. 보초소에서 안순화로부터 적《토벌대》가 달려든다는 신호가 왔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벌써 놈들이 병원근처에까지 접근하였다. 그런데 이때 춘근동무는 중대부에 련락가고 남자라고는 나와 조령감뿐이였고 그외는 모두 녀동무들이였다. 나는 급히 벽에 걸려있는 보총을 조령감에게 벗겨주면서 권총을 빼들고 말하였다. 《내가 적들과 대항하는 동안 조동무는 이 총으로 녀동무들을 보위하며 산으로 오르시오!》 녀동무들이 달려나간 뒤로 조령감이 따라나갔다. 나는 병원에서 뛰쳐나와 한 50m쯤 달려가서 진대나무에 의지하여 추격해오는 적을 몇놈 쏘아눕혔다. 그러나 놈들은 이리떼처럼 달려드는것이였다. 나는 한 스무나문발자국 퇴각하다가 다시 나무에 의지하여 놈들을 쏘아눕혔다. 그 사이에 녀동무들은 무사히 산으로 멀리 올라갈수 있었다. 산 양지쪽에는 눈이 녹았으므로 여기까지 따라오던 놈들은 우리의 발자국을 더는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병원이 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산마루에 올라가서 보니 안순화가 보이지 않았다. 김정녀동무가 조령감의 총을 빼앗아 메고는 안순화를 찾으러 가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백운선동무도 따라나섰다. 나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관총까지 가지고있는 수백명의 적들속으로 두자루의 총을 가지고 대낮에 달려든다는것은 모험이고 또 그것으로써 동지를 구원할수도 없기때문이였다. 내가 녀동무들의 앞을 막아서자 그들은 몸부림을 치며 가슴을 쥐여뜯는것이였다. 중대부에 련락간 춘근동무도 돌아올 시간이 되였는데 오지 않아서 그에 대해서도 여간 걱정되지 않았다. 중낮이 되여도 춘근동무와 순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딴곳으로 피신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녁때가 거의 되였으나 그래도 두 동무는 오지 않았다. 해질무렵이였다. 《저게 누구예요?》하고 김정녀동무가 말하기에 나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웬 사람이 산마루로 살금살금 기여올라오는것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춘근동무였다. 그는 우리를 찾고있는중이였다. 우리는 그가 오는쪽으로 막 달려갔다. 《춘근동무, 살았구만! 그런데 순화를 못봤소?》 내가 이렇게 묻자 그는 나의 손을 잡은채 그자리에 서서 정신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나의 얼굴을 쳐다볼뿐 대답이 없었다. 김정녀동무가 또 그에게 안타까이 물었다. 《춘근동무! 순화동무가 어떻게 되였는지 모르나요, 네? 왜 말이 없어요.》 잠시후 춘근동무는 자기가 직접 보고 들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들려주는것이였다. … 춘근동무는 부대에 련락을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병원근처에 와서야 비로소 눈우에 무질서하게 난 놈들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자리에 숨어서 동정을 살폈다. 앞에도 뒤에도 좌우에도 놈들이 개싸다니듯 하여 어디로 피할 곳이 없었다. 그는 놈들의 발자국을 리용하여 여라문발자국앞에 쌓여있는 눈무지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병원이 빤히 바라보였고 말소리도 알아 들을수 있었다. 마당에서는 《토벌대》한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누구를 심문하고있었다. 누군가 체포된것이 분명했다. 춘근동무의 가슴은 철렁하였다. 이윽고 《나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이렇게 웨치는 안순화동무의 귀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은 그에게 《다른 사람들은 어데로 갔는가?》, 《식량창고, 탄약창고, 약품창고들은 어데 있는가?》고 연방 심문했다. 순화동무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놈들을 쏘아볼뿐 입을 열지 않았다. 악에 받친 놈들은 발길로 순화동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그러나 그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벌써 죽음으로써 혁명의 지조를 지킬것을 각오했던것이다. 이때 병원주위를 빙빙 돌고있던 《토벌대》대장인듯한 놈이 그리로 다가갔다. 그놈은 마치 순화동무를 동정이라도 하는듯이 고문을 중지시키고 한놈을 부르더니 부상당한 그의 다리를 치료해주도록 지시하였다. 그러자 적십자표시가 있는 가방을 멘 놈이 안순화동무의 곁으로 다가와서 약을 발라주었다. 대장놈은 안순화동무의 곁으로 비실비실 다가오며 《아까운 청춘에 피를 흘려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면서 자기는 《인간을 사랑한다.》느니, 《청춘을 귀중히 여긴다.》느니 하면서 그를 회유해보려고 시도하는것이였다. 이때 상반신을 벌떡 일으킨 순화동무는 《공산주의자들은 조국을 위해 피흘리는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침략자인 네놈들은 열백번 죽었다 살아나도 이것을 리해할수 없을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놈은 권총을 뽑아들고 졸병들에게 소리치면서 《저년은 악종이다. 머리칼을 몽땅 뽑아치워라!》고 명령하였다. 한놈이 순화동무에게 달려들어 야수의 본성대로 악착한 만행을 감행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있던 대장놈은 승냥이이발을 드러내놓고 희열을 느끼고있었다. 순화동무가 쓰러지자 놈들은 눈을 퍼서 그의 몸에 들씌웠다. 잠시후 순화동무는 머리를 쳐들었다. 그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써도 순화동무에게서 아무런 자료도 알아내지 못한 대장놈은 또다시 노발대발하며 지껄였다. 《저년에게는 총알이 아깝다. 참나무말뚝을 깎아서 가슴과 배에다 박아라!》 그러자 네놈이 뛰여가더니 참나무말뚝 한개씩을 깎아가지고 왔다. 대장놈은 그것을 받아들고 땅에 쓰러진 순화동무앞으로 다가갔다. 《이것은 네 가슴과 배에 박을 말뚝이다. 마지막으로 묻는데 식량과 탄약창고 있는 곳을 대라. 그러면 이제라도 살수 있다.》 바로 이때였다. 안순화동무는 그놈의 손에서 참나무말뚝 하나를 낚아채가지고는 《이것이 나의 마지막 대답이다!》하며 그놈의 면상을 힘껏 후려갈겼다. 한참후에야 대장놈은 곁에 있는 놈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섰다. 그놈은 아가리에 거품을 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개자식들, 멍청하니 서서 보고만 있어! 저년의 가슴에 말뚝을 박아!》 그러자 놈들은 순화동무에게 달려들었다. 《조선혁명 만세!》, 《녀성해방 만세!》그는 이렇게 웨치고 숨을 거두었다. 춘근동무로부터 안순화동무의 장렬한 최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난 나는 급히 병원으로 내려왔다. 그가 책임지고있던 식량과 재봉기 그리고 탄약과 의약품창고는 그대로 있었다. 순화는 주동이를 말파리에 실어보낸 후 3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이날 아침도 보초소에 나갔던것이다. 적을 발견하자 그는 우리에게 알린 후 쌀과 재봉기들을 모두 눈속에 파묻고 맨 나중에야 뛰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그에게 무슨 기운이 있어 빨리 뛸수 있었겠는가. 그는 적기관총탄에 두다리를 맞고 그만 잡혔던것이다. 놈들의 잔인한 악형과 만행으로 그의 시체는 너무도 비참하게 되여 눈뜨고 볼수가 없었다. 동무들은 나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여러 자식들과 안해까지 모두 잃고 홀로 남은 내가 이제 무엇을 더 생각하며 참을수가 있겠는가. 나는 위로해주는 동무들을 뿌리치며 정신없이 달려들어 숨진 안해의 시체를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순화!》하고 소리치며 몇번이고 흔들어보았으나 대답이 있을리 없었다. 나는 목이 꽉 메여 더는 말이 나가지 않았다. 옆에서 가슴을 쥐여뜯으며 통곡하던 정녀동무가 눈물을 씻으며 자기가 간수해가지고 갔던 순화의 배낭을 시체옆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배낭끈을 풀었다. 그안에는 순화가 소중히 다루던 소지품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의 손때묻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들어냈다. 그의 단정한 성품을 말해주듯이 차곡차곡 질서있게 들어있는 물건들을 이것저것 들어내느라니 깨끗한 천으로 싼 보퉁이 하나가 나왔다. 몇번씩 싸고싼 보자기안에는 낯익은 세루치마가 들어있었다. 치마를 잡아쥔 나의 손은 떨렸다. 지난날이 떠오르며 눈물이 쏟아졌다. 당시 헐벗고 가난한 조선농민들의 생활처지는 다 마찬가지였지만 순화의 가정형편은 더욱 말이 아니였다. 그가 시가올 때 친정어머니의 낡은 베치마를 빨아 입고온것이 나는 두고두고 가슴에 맺혀서 내려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가 희생되기 10년전인 1928년 여름에 울라지보스또크에서 몇달동안 부두로동을 하여 70원이라는 돈을 벌었다. 구차한 우리 살림에 빚진것은 내여놓고라도 당장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크게 먹고 안해에게 처음으로 세루치마를 하나 사주었던것이다. 치마를 받아들고 너무도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던 안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얼마나 만족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다 입어 없어졌으리라고만 생각했던 그 치마가 10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실밥 하나 다슬지 않고 주름도 구겨지지 않은채 새것대로 개여져있었으니 내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뒀다가 언제 입으려고 그렇게도 아꼈는지.… 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으며 치마를 뜯어 숨진 안해의 몸에 포근히 덮어주었다. 그렇게도 아껴가며 알뜰하게 살아가다가 원쑤놈들에게 희생된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져왔다. 배낭안의 물건들을 다 털어놓고보니 어떤것은 보잘것 없는것이였지만 그 하나하나에는 깊은 사연이 담겨져있었다. 그중에서도 뜨개질을 하다가 넣어둔 책상보만은 잊을수 없는것이였다. 한번은 순화가 헌 실샤쯔를 빨아 실을 푼것으로 밤늦게까지 무엇인가 뜨고있었다. 그는 한참씩 뜨다가도 일손을 멈추고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나를 쳐다보기도 하였다. 나는 뜨개질하는 그의 옆에서 약을 만들면서 낮에 피곤하게 일한 그가 졸려서 그러는줄 알고 좀 눈을 붙이라고 했더니 그는 졸음이 오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가 하는 일에 눈길을 돌린 나는 그가 양말이나 장갑을 뜨는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뜨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내가 그에게 무엇을 그렇게 어설피게 뜨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책상보를 뜬다는것이였다. 나는 뜻밖의 이 말을 듣고 꾸짖어 말하였다. 《지금 당장 필요한것도 못다하는판에 무슨 그런 당치않은 일감을 만지고있소. 당장 거두오.》 그랬더니 웃음을 띄우며 뜨개질을 하고있던 그는 그만 시무룩해지며 두말없이 하던 일감을 배낭에 집어넣는것이였다. 가렬한 전투가 매일같이 진행되는 당시의 우리 생활에서 사실 책상보 같은것이 무슨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밀림속병원의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신심을 잃지 않고 해방된 조국을 그려보며 한코두코 뜨개바늘을 놀렸을것이였다. 그의 마음속에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꿈인들 얼마나 많았겠는가. 자기 개인의 사리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생각지 않는 그가 미래에 대하여, 해방된 조국에 대하여, 그때의 행복한 가정생활에 대하여 얼마나 그리웠으면 책상보를 뜨기 시작하였겠는가. 나는 그의 심정을 너무나도 몰라주었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어느때든 한번은 이 뜨개질감을 다시 내놓으며 자기의 섭섭하던 심정을 꼭 나에게 말했을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나고보니 나는 그의 아름다운 꿈을 너무나도 몰라준 뼈아픈 자책으로 하여 후회막심하였다. 《순화! 무정한 나를 용서해주오. 가슴속에 맺힌 서운한것이 있다면 잊어주기 바라오. 너무도 고생시킨 나를 용서하오. 조국이 해방되는 날 행복한 가정을 꾸려놓고 살면서 옛말처럼 나누려던 회포를 내 이제 누구와 나누겠소. 해방된 조국땅에 돌아가 마음껏 농사지으며 화단도 가꾸어 백일홍을 붉게붉게 피우겠다고 하지 않았소. 이렇게 일찌기 떠날줄은 정말 몰랐소. 순화! 뒤일을 념려말고 시름놓고 눈을 감소. 원쑤를 천백배 갚고야말겠소.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던 해방의 그날을 위해 내 목숨을 바쳐 싸울것을 다짐하오.…》 28살의 청춘을 바친 그의 짧은 생애는 너무도 막심한 고생속에 흘러갔다. 그러나 그는 이 기간을 보람있게 살았다고 떳떳이 말할수 있다. 그는 실로 연통라자의 산비탈에서, 북만의 진펄에서 비내리는 여름날이나 눈보라치는 겨울날을 가리지 않고 가정도 자식도 생각할 사이없이 일편단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조선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위하여 싸운 혁명전우였던것이다. 우리는 안순화동무가 걸어온 발자국을 더듬어보며 심장이 고동을 멈추는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의 절개를 지켜 싸운 그의 령구앞에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숙였다. 나이 40도 되기 전에 나는 자식들도 안해도 다 잃었다. 그러나 오직 혁명 하나를 위하여 다시 두주먹을 굳게 부르쥐고 일어났다. 혁명에 나선 사람이 혁명의 길에서 최후를 마치는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는것이다. 나는 안순화동무가 나의 안해라고 해서가 아니라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간고한 혁명의 길에서 함께 싸운 혁명전우로서 녀성혁명가의 한사람인 그의 고귀한 투쟁사적에 대하여 다소나마 전하게 되는것을 무한한 자랑으로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지난날을 더듬어보느라면 안순화동무를 생각할 때가 많다. 더우기 명절날 같은 때 어린애를 안은 녀성들이 좋은 옷을 차려입고 나선것을 볼 때마다 그들속에 함께 끼여 해방된 조국을 구가하는 순화동무의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