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항상 전투에서 령활하고 대담하였다

 

그는 항상 전투에서 령활하고 대담하였다

                                                      

   인   덕                     

 

항일무장투쟁시기 나와 한부대에서 투쟁한 한창봉동무는 적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령활하고 용감했으며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대담하게 달라붙어 끝까지 해내는 그런 용단과 불같은 의지를 지닌 혁명동지였다.

창봉동무는 1937년 여름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에 입대하였다. 그는 입대하자 몽강현 마당거우밀영에서 학습부터 하게 되였는데 이것을 여간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때의 환경에서는 유격대의 생활을 잘 모르는 신입대원들도 손에 총을 쥐자 인차 학습부터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

당시 보천보와 간삼봉을 비롯한 국내와 장백일대에서 우리 유격대의 섬멸적인 타격을 받은 일제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항일유격대를 《소멸》해보겠다고 집요하게 날뛰였다.

더우기 1937년 7월 강도적인 《로구교사건》을 조작하여 중국 관내에 방대한 무력을 투입하고 남만일대를 제놈들의 제1선 후방기지로 설정한 일제는 이곳의 《안정》을 위하여 수만명의 대병력과 군수물자를 집중하고 우리 유격대에 대한 공격을 보다 악랄하게 감행하여나섰다.

그것은 일제가 항일유격대의 활동을 저지하지 않고서는 날로 강화되는 조중인민의 반일투쟁을 억누를수 없었으며 또한 중국 관내에 투입한 대병력의 제1선후방기지인 남만일대의 공고화를 기대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러므로 일제는 막대한 유생력량과 전투기재를 손실당하면서도 계속 자기 병력의 대다수를 항일유격대의 《토벌》에 내몰았던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사령관동지께서는 일제의 이 발악적인 공세의 흉책을 간파하시고 수많은 적의 《토벌》력량을 림강, 장백 오지의 깊은 눈속에 끌어다 몰아넣은 다음 감쪽같이 마당거우에 이르러 밀영을 짓고 군정훈련을 시작하시였던것이다.

이것은 보통상식으로는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누가 적들의 공세가 그처럼 심한 조건에서 빨찌산들이 고정된 장소에 밀영을 짓고 학습을 한다고 감히 생각할수 있었겠는가.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신입대원들이 많은 실정을 고려하여 대원들의 수준에 알맞게 학습반을 자습반과 식자반으로 나누어 조직하고 직접 지도하여주시였다.

나와 한창봉동무는 식자반에 속해서 주로 《국내로동자들은 어떻게 싸우는가?》, 《일제는 조선인민을 어떻게 압박하고있는가?》, 《지주는 농민들을 어떻게 착취하고있는가?》등 비교적 리해하기 쉬운 제목에 대한 강의를 받았으며 그 강의내용을 각기 자기들이 체험한 사실들과 결부하여 론쟁의 방법으로 토론하였다.

창봉동무는 언제나 이 토론에 열성적으로 참가하였는데 그때마다 생동한 생활체험과 열렬한 혁명적열정으로 일관된 그의 토론은 동무들의 심금을 울리군 하였다.

한편 우리는 이미 배운 학습내용에 따라 2~3일에 한번씩 작문도 지었는데 그의 작문은 대원들의 마음을 끌었다.

그가운데는 《나는 왜 유격대에 입대하였는가?》라는 제목으로 그가 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작문이 있었다.

…세상에 나의 어머니처럼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고 이악스럽게 일한분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먹을것이 없어 굶어서 돌아갔다.

세상에 나의 아버지처럼 땅을 사랑한분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에게는 땅 한뙈기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 땅때문에 흙 한번 만져보지 않는 지주놈에게 피땀을 빨리고있다.

정말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많은 피를 일제와 지주놈들에게 빨렸다.

《얘야, 장군님을 찾아가거라. 이대로 있다가는 나도 죽고 너도 오래 살지는 못할게다.》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곁을 떠나 손에 총을 잡았다. 피를 즐기는 승냥이무리들이 활개치는 저주로운 세상을 반드시 뒤집어엎고야말것이다.…

이 작문은 사령관동지께서도 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창봉동무의 작문을 대내 주간신문인 《종소리》발간을 담당했던 최경화동무에게 주시며 대원들이 모인데서 읽으라고 하시였다.

최경화동무가 그의 작문을 읽었을 때 대원들은 모두 이를 사려물고 주먹을 틀어쥐였다.

그만큼 그 작문은 쓰라린 과거를 가지고있는 모든 대원들의 가슴속에서 울분과 증오심이 끓어번지게 하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창봉동무의 작문을 높이 평가하여주시며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작문에는 동무의 사상이 잘 표현되여있소. 누구나 혁명을 잘하려면 자기의 계급적처지를 잘 알아야 하오.

그래야 전투에서는 용감할수 있고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라도 끝까지 뚫고나갈수 있소. 앞으로도 학습을 더 잘해야 하오.

그이의 말씀은 한창봉동무에게 뜨거운 혁명적열정과 무한한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새로운 힘과 불굴의 투지와 필승의 전투기능을 련마하는 마당거우밀영에서의 학습은 대원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꺼질줄 모르는 혁명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이처럼 우리 부대가 마당거우밀영에서 학습을 하고있을 때 아군의 행방을 잃어버린 적들은 삐라와 신문지상을 통해 《공산군 김일성부대 완전소멸》이라고 터무니없는 기만선전을 했다.

이러한 때에 조성된 혁명정세를 예리하게 통찰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각 부대들에 하달하시였다.

동기간 아군이 전략상 소규모적인 작전으로 이행하게 되자 적들은 지금 안일감에 물젖어있다. 아군은 안일감에 사로잡힌 적들의 약점을 리용하여 제때에 기습 또는 유인전술로써 적의 유생력량을 소멸하여야 한다. 이와 함께 조중인민들속에서 애국주의사상을 고취시키며 아군의 필승불패의 신심과 전투사기를 앙양시키는 한편 앞으로의 대규모작전수행에 필요한 피복, 량식, 탄환 기타 군수물자를 해결하여야 한다.

이리하여 각지에서 활동하며 력량을 재정비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적들에게 보다 심대한 타격을 가하게 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1938년 1월 사령관동지의 친솔밑에 정안툰의 적을 족쳤다.

나는 이 전투에서 한창봉동무를 더욱 깊이 리해하게 되였다.

그의 일상 생활은 평범했지만 요긴한 국면에 이르러서는 남에게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동무였다.

정안툰전투는 적들의 무장장비로 보아서나 성을 구축한 규모로 보아서나 매우 힘든 싸움이였다. 놈들은 성주위에 큰 전주와 같은 통나무들을 가로세로 쌓아 담벽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도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안툰을 공격하려면 먼저 부대의 진격로를 개척해야 하였다.

이때 이 영예로운 척후대의 임무를 우리 중대가 맡게 되였다.

창봉동무는 이 전투에서 참으로 완강한 전투정신을 발휘했으며 또 희생적으로 싸웠다. 그의 기지있고 대담한 전투행동은 아직도 나의 인상에 깊이 새겨져있다.

우리 부대는 지휘부의 구체적인 전투계획에 따라 어둠을 리용하여 은밀히 토성가까이에 접근하였다. 잠시후에 한창봉동무를 비롯한 척후대성원들이 이미 준비한 바줄을 타고 성을 넘었다.

사위는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캄캄하였다.

성문을 까부시고 부대의 진격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척후대성원들은 침착하게 주변을 살피며 성문을 향해 기여나갔다.

바로 이때 《누구얏!》하는 적보초놈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척후대성원들은 날쌔게 전투준비를 갖추고 땅에 엎드려 전방을 쏘아보았다.

그런데 적보초놈은 계속 《누구얏! 섯!》하고 다급한 소리를 지르며 격발기를 절컥거리는것이였다.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총소리만 나면 은밀한 행동이 파탄될것이며 정안툰기습작전은 수포로 돌아갈 위험에 처하게 되였다.

실로 이 위기일발의 순간을 타개하려면 무엇보다도 대담하고 결정적인 행동이 필요했다.

바로 이처럼 분초를 다투는 긴장한 찰나에 한창봉동무가 성벽에 바싹 붙어서 은밀하면서도 민활한 동작으로 보초놈이 있는데로 기여나갔다.

우리 척후대성원들은 숨을 죽이고 한몸으로 위기를 막아나선 그의 행동을 주시하였다.

창봉동무는 적보초놈을 알아볼수 있는 거리에까지 바싹 접근하자 나는듯이 달려들어 그놈을 덮쳤다. 다음순간 적보초놈은 소리없이 길바닥에 나가 너부러졌다.

창봉동무의 동작이 얼마나 민첩했던지 그놈은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꼬꾸라졌다.

이렇게 아슬아슬한 순간을 타개한 한창봉동무는 비호같이 성문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이때 어둠속에서 난데없는 한방의 총소리가 울렸다. 성주위를 따라 돌던 적순찰병놈들이 우리 척후대동무들을 발견했던것이다.

사태는 더욱 험악해졌다. 총소리는 사방에서 일어났다. 그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마치 정안툰전체가 발칵 뒤집히는것 같았다.

적탄은 성문주위에 비발치듯 쏟아졌다.

그러나 한창봉동무와 척후대성원들은 주저하지 않고 용감히 달려들어 성문을 열어젖히고야말았다.

성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있던 대원들은 일시에 성안으로 돌입했다. 성문을 열어젖힌 창봉동무는 진격하는 부대의 선두에 서서 적병영으로 육박하여갔다.

이리하여 정황은 급변하게 되였다.

적들은 계속 성문을 향해 집중사격을 하였으나 이미 기울어진 제놈들의 운명을 건져낼수 없었다.

우리 유격대원들은 순식간에 적의 병영과 포대들을 점령하였으며 끝까지 발악하는 놈들을 모조리 소멸해치웠다.

전투는 거대한 승리로 끝났다.

우리 유격대원들은 인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이 전투에서 로획한 수많은 무기와 탄약, 기타 군수품들을 메고 정안툰을 떠났다.

이때 행군대오에서 묵묵히 걷고있는 창봉동무를 모든 대원들은 미더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손에 총을 잡은지 불과 몇달밖에 안되는 대원이 그렇게 대담하고 용감할수 있다니.)

나는 적보초놈에게 접근해가던 그의 대담한 행동을 두고 생각하였다.

자신과 후대들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바쳐 싸우는 사람들, 언제나 적을 압도할 정신적, 육체적준비가 되여있는 사람들ㅡ그런 사람들에게서만이 대담성과 희생성, 민활한 전투행동이 나오는것이다.

그해 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사령관동지의 지휘밑에 림강현 신태자전투를 진행하였다.

창봉동무의 용감성과 희생성은 이 전투에서도 훌륭히 발휘되였다. 그는 대담하고 결단성있게 행동하였을뿐아니라 침착하고 인내성이 있었으며 지휘부의 의도에 따라 능숙하게 행동할줄 알았다.

우리 부대가 림강현과 장백현의 접경지대에 거의 이르렀을 때 신태자부근에 악질적인 위만군 한개 부대가 자리잡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어느날 정찰로 파견되였던 우리 대원들은 놈들이 파견한 특무 한놈을 체포하였는데 우리는 그놈을 통하여 위만군이 50리밖에 있는 모지점에서 군수물자를 운반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지휘부에서는 곧 놈들이 협곡을 통과할 때 일격에 소탕해버릴 구체적인 전투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우리 부대는 은밀히 신태자부근의 도로에 매복하게 되였다. 좁은 계곡사이로 도로가 지나간 이곳은 적을 매복, 습격하기에는 매우 유리한 지형이였다.

지휘부는 도로 건너편 산에 위치하고 한창봉동무와 내가 속한 부대는 이쪽 산기슭을 따라 좀 내려와서 매복하였다. 우리가 매복한 지점은 적이 통과할 도로에서 불과 20m정도밖에 안되는 쑥밭이였다.

우리는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 적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창봉동무는 앞으로 있을 통쾌한 전투를 생각하는지 저으기 흥분한 기색으로 지휘부가 자리잡은 고지와 도로, 골짜기의 지형을 주의깊게 살피더니 총창을 뽑아서 만지는것이였다.

그래서 내가 왜 벌써 총창을 뽑아가지고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무래도 오늘 전투에서는 총창이 맥을 출것 같거든.》라고 말하는것이였다.

사실 우리가 매복하고있는 지형은 적들이 통과할 때 불의에 달려들어 창격전으로 섬멸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였다.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여 그의 생각에 동의를 표시했다. 정황이 어떻게 조성될지는 알수 없는 일이지만 매복전의 경우에도 가끔 육박전을 해야 할 때가 생기군 하였던것이다.

우리는 한낮이 될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엎디여있었다.

정말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갔다. 뼈마디가 쏘고 허리가 뻐근하였다. 그러나 누구 하나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하여 잠시도 긴장성을 늦추지 않고 줄곧 길아래쪽을 살피던 창봉동무가 나의 옆구리를 찔렀다.

적이 나타난것이였다.

사복대와 척후병을 앞세우고 들어오는 적의 수는 약 200명가량 되여보였다.

그놈들을 쏘아보는 창봉동무의 눈에서는 퍼런 불꽃이 이는듯 하였다.

우리는 총을 단단히 거머쥐고 적들이 매복권내에 들어서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우리가 매복해있다는것을 알리 없는 적들은 별로 경계하는 기색도 없이 우리앞을 지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몇걸음만 내디디면 놈들을 찔러넘길 그런 지점에서 원쑤를 보고도 계속 침착하게 지휘부의 신호를 기다렸다.

이윽고 적대렬이 매복권내에 완전히 들어서자 지휘부가 위치한 맞은편 고지에서 한방의 신호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뒤이어 골짜기를 뒤엎는듯 한 일제사격이 개시되였다.

불의에 몰사격을 받은 적들은 낫으로 후려놓은 삼대 넘어지듯이 무리로 쓰러졌다. 놈들이 아우성치는 도로는 삽시에 수라장으로 변했다. 넋을 잃은 적들은 제놈들의 시체를 마구 짓밟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였다.

그런데 바위뒤에 숨어 목숨을 부지한 적장교 한놈이 칼을 휘두르며 고아대자 일부 살아남은 적들이 주변에 있는 물홈에 뛰여들어 발악적으로 대응사격을 했다. 그러면서 물곬을 리용하여 도로 건너편 산밑에 가로놓여있는 숲속으로 기여들려고 꾀하는것이였다.

이러한 때 지휘부가 자리잡은 고지에서 돌격을 알리는 힘찬 나팔소리가 울려퍼졌다.

부대는 일제히 돌격으로 이전하였다.

총창을 비껴든 한창봉동무는 어느 사이에 대렬에서 쑥 빠져나가 《이놈들아, 날창을 받아라.》고 소리치며 번개같이 적 한놈을 찔러눕혔다.

여기저기에서 원쑤의 가슴팍에 예리한 총창을 박는 우리 대원들의 거세찬 목소리가 울렸다.

아군의 돌격에 혼비백산한 일부 적들은 무기를 집어던지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나 몇몇 악질적인 장교놈들은 끝까지 발악하였다.

창봉동무가 그놈들을 향해 육박하자 두세놈이 일시에 악을 쓰며 그에게 덤벼들었다.

창봉동무는 날쌔게 몸을 날리면서 우선 앞으로 달려드는 놈부터 찔렀다. 그리고 몸을 홱 돌리며 옆으로 접어드는 놈을 총탁판으로 까넘기고 련속적으로 다음놈을 찔러눕혔다.

그의 행동은 그야말로 번개같았다.

용맹스러운 우리 전투원들은 노호하는 사자처럼 원쑤놈들에게로 육박하여 발악하는 마지막 한놈까지 찔러눕혔다.

전투장은 순식간에 원쑤들의 시체로 뒤덮였다.

실로 약 30분간에 걸친 이 통쾌한 전투에서 우리는 적을 100여명이나 살상하고 60여명을 생포하였다. 그리고 기관총을 비롯한 수많은 무기, 군수기재들을 로획하였다.

나는 이 전투를 통하여 창봉동무처럼 지휘부의 의도에 충실하고 어떤 정황속에서도 용감하고 대담하고 견결하며 자기 희생성을 발휘한다면 그 어떠한 강적도 능히 격멸할수 있다는 신심을 더욱 굳게 가지게 되였다.

그후에도 창봉동무는 자만하지 않고 간고한 투쟁속에서 자기의 전투기능을 부단히 련마하였다. 때문에 그의 전투동작은 나날이 더 발전하게 되였다.

사실 나는 한창봉동무와 함께 일제와 싸울 때 매사에 신중하고 결단성있는 그의 전투행동에 한두번만 감탄하지 않았다. 특히 적의 약점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놈들이 미처 손쓸 사이없이 족쳐버리군 한 그의 기발한 전투동작은 많은 대원들을 감동시켰다.

어느날 한창봉동무와 한태룡동무들은 단 둘이서 훈춘현 12도구에 있는 적국경경비초소를 기습소탕한 일이 있었다.

이미 정찰해둔 지점에 이른 두 동무는 적순찰병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얼마후에 그들이 예견한대로 적순찰병 두놈이 나타났다.

두 동무는 숨을 죽이고 엎디여있다가 그놈들이 바싹 다가왔을 때 불시에 일어나며 각기 한놈씩 아래다리를 낚아챘다.

그 바람에 두놈은 거의 동시에 궁둥방아를 찧으며 나가넘어졌다. 그놈들은 어찌나 혼히 났던지 나가곤드라지면서도 찍소리 하나 치지 못했다.

두 동무는 눈 깜박할 사이에 순찰병놈들을 처단해버린 다음 인차 그놈들의 군복을 벗겨입고 총도 그놈들의것을 메고 길에 나섰다.

이렇게 적의 순찰병으로 가장한 그들은 적초소가까이에 접근하여 우선 놈들의 동태부터 살폈다.

적초소앞에는 10여명의 적이 정렬해 서있었다. 그때 놈들은 모두 총을 메고있지 않았다.

잠시후 장교 한놈이 대렬앞에 나와서 《위풍》을 떨며 일장 훈계를 하는것이였다.

《태룡동무, 기회가 좋지?》

창봉동무는 이렇게 말하며 태룡동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비록 두명뿐이지만 적들이 방심하고있는 틈을 잘 리용하면 손쉽게 저놈들을 소멸해치울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좀더 좋은 기회를 노리다가 장교놈이 게거품을 물고 한창 떠들고있을 때 태연하게 적초소로 걸음을 옮겼다. 창봉동무가 앞에 서고 그뒤에 태룡동무가 바싹 따라섰다.

그들이 약 60m 거리에까지 접근했는데도 놈들은 그리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아마 제놈들의 순찰병이 돌아오는줄 알았던 모양이였다.

두 동무는 적들에게 보다 결정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될수록 더 가까이 다가갔다.

적들과의 거리가 가까와질수록 놈들의 숨통을 조이는 두 동무의 걸음걸이는 더욱 빨라졌다.

그들이 적병졸의 얼굴을 하나하나 분간할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까지 접근했을 때 적대렬속에 서있던 병졸 한놈이 기겁을 하여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다가오는 두 《순찰병》이 자기 편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된 적들은 정신없이 쫙 흩어졌다.

그 순간 언제나 결단성있게 행동하는 창봉동무가 쏜살같이 달려나가며 《손들엇!》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쪽이 두 사람뿐이라는것을 안 적들은 순순히 굽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일부는 두 동무에게 달려들고 일부는 무기가 있는 병실쪽으로 뒤걸음질쳤다.

두 동무는 먼저 병실로 뛰여들어가려는 적장교놈과 몇명의 병졸부터 쏴눕혔다. 그리고 손을 들라고 거듭 소리쳤다.

그러나 적병놈들은 계속 앞으로 밀려들었다.

이런것을 이미 예견하고있은 두 동무는 단호한 행동으로 놈들을 몽땅 처단해버렸다.

한창봉동무에게 있어서 이런 전투는 한두번만이 아니였다. 참으로 그는 어느 전투에서나 대담하고 결단성있는 전투행동으로 적들이 미처 손쓸사이 없이 들이치군 하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때 《창봉동무는 적들의 손발을 꽁꽁 동여놓고 치는 전법을 쓴다.》고 롱담을 하기까지 했다.

그가 이와 같이 전투마다에서 용감하고 기발한 전투행동을 발휘하던 시기는 항일무장투쟁에서 가장 간고한 시기였다. 그 시기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중첩되는 난관과 시련을 완강히 뚫고나가며 끝까지 혁명의 기치를 고수하기 위하여 실로 결사적인 피의 투쟁을 전개했었다.

모든 대원들이 사령관동지의 주위에 굳게 뭉쳐 백절불굴의 의지로 만난을 헤쳐나간 1938년의 고난의 행군때 한창봉동무는 이 행군속에서 그 어떠한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와 동요를 모르는 강철의 혁명전사로 자랐다. 그리고 1939년의 무산지구전투와 륙과송, 쟈신즈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서 더욱 억세게 단련되였다.

치렬한 무장투쟁과 엄혹한 시련속에서 불패의 대오로 성장하고 반석같이 결속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1940년 2월 백석탄밀영에서 전투대오를 더욱 튼튼히 정비하고 또다시 무산지구방향으로 진군의 길에 올랐다.

당시 유격대의 대부대선회작전과 국내진출에 겁을 먹은 일제는 관동군 주력부대들과 위만군 《정예》부대들을 비롯한 지방경찰 및 자위단 등 무려 20여만의 대병력을 동원하여 소위 《공산군대소탕전》을 들이댔다.

때문에 총포로 뒤덮인 적진을 뚫고 국경지대에로 진군하는 길, 원쑤들의 《장거리추격부대》가 사방에서 달려들고 《지구별 토벌부대》가 길목을 지키는 그런 속을 헤치며 나아가는 그 진군의 길은 간고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길은 원쑤들의 최후발악적인 책동을 여지없이 짓부셔버리는 섬멸의 길이였으며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기어이 가야 하는 혁명의 길이였다.

우리 대원들은 국경지대에로의 그 진군의 길에서 짬만 있으면 그리운 조국에 대하여, 다정한 고향사람들에 대하여,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유명한 고적들에 대하여, 풍부한 자연부원과 지방마다의 명산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애국의 열정으로 가슴을 불태웠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조국을 짓밟는 일제에 대한 참을수 없는 증오의 격분을 금하지 못했다.

어느날 우등불가에 모여앉은 우리 대원들은 또다시 조국이며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다.

그날 열기오른 동무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있던 창봉동무는 밤이 퍽 깊었을 무렵에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참, 못살놈의 세상이였지.

이것은 내가 어렸을 때의 일이요. 그때 우리 집이 얼마나 구차하였던지 나는 웬만한 아이들이면 다 신고다니는 고무신 한컬레 신어보지 못하고 맨발로 뛰여다녔소.

한번은 그 고무신이 너무 신고싶어서 다른 아이의 고무신을 잠간 빌려 신었댔지.

그런데 이것을 아버지가 지나가다가 보게 되였단말이요.

그날저녁 아버지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좀 낡기는 했으나 신을만한 고무신 한컬레를 말없이 나에게 내미는것이였소.

나는 너무 기뻐서 그 신을 신고 막 뛰여돌아가며 춤을 추었소.

그런데 후에 안 일이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 다 낡은 고무신 한컬레 값에 하루종일 지주집 일을 해주었다는것이였소.

어린 마음에도 내가 고무신을 신고싶어했기때문에 공연히 아버지를 더 걱정시키고 고생시켰다고 몹시 후회되였고 한편 그 탐욕스러운 지주놈의 처사가 괘씸해서 견딜수 없었소.

이런 처지가 어찌 나 혼자뿐이였겠소.…

그의 이야기는 우등불두리에 모여앉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사실 우리모두가 그처럼 비참한 과거를 가지고있었으며 헐벗고 굶주리는 자식들을 생각하며 애를 태운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그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일제에게 무참히 학살당했거나 놈들의 야만적인 학정밑에서 신음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우리는 모두 일제를 격멸하고 조국을 해방할 일념으로 가슴을 불태웠다.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 그 세찬 불길은 우리 대원들의 심장마다에서 보다 뜨거운 혁명적열정이 끓어오르게 하였다.

(원쑤를 치며 조국가까이로 가자. 조선인민혁명군은 살아있으며 일제를 격멸소탕하고있다는것을 우리 인민에게 보여주자. 그들은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자기의 운명을 의탁하고있다.

우리가 한방의 총소리를 울려도 그것은 모진 학정과 가난에 시달리는 우리 인민들의 가슴속에 무한한 힘이 솟구치게 하고 재생의 희망이 부풀어오르게 할것이다. 보천보의 밤하늘에 울려퍼진 총소리와 대홍단벌에 휘날린 혁명의 붉은 기발은 3천만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그 얼마나 크나큰 희망과 불타는 혁명적열의를 안겨주었는가!

지금 우리 인민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일제의 대규모적이며 최후발악적인 공세를 우려하고있다. 우리는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의 이 최후발악적인 대규모의 공세를 여지없이 격파해버려야 한다.)

사령관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전투의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원쑤들에게 맹렬한 타격을 가하며 계속 전진하였다.

그리하여 1940년 봄,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령활한 기동과 전투행동으로 무산지구와 더 멀리 함북, 함남의 북부고원지대에 잇닿은 대마록구와 홍기하계선에서 원쑤들의 기본주력부대들인 《장거리추격부대》와 《지구별토벌부대》들을 전멸시킴으로써 우리 인민혁명군의 필승불패의 위력을 시위하였으며 3천만 인민의 가슴속에 영원히 꺼질줄 모르는 혁명승리에 대한 확신과 투쟁의욕을 안겨주었던것이다.

이 자랑찬 전투의 나날에 한창봉동무는 실로 빛나는 전투위훈을 세웠으며 특히 그의 놀랄만 한 사격술은 원쑤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나는 여기에 그의 사격술이 얼마나 높았으며 그처럼 높은 사격술을 소유하기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가 하는 하나의 사실을 더 이야기하려고 한다.

처음 그는 자기가 가지고있는 총탄의 수자대로 적을 잡을수 있게 사격술을 높이겠다고 결의하였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그 결의를 변경하여 아무리 먼거리의 작은 물체라도 그것이 눈으로 볼수 있고 사거리안에 있는것이면 첫발에 명중시킬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것은 높은 목표였다. 사실 총탄 한알로 적 한놈을 잡는다는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였다. 그때 대부분의 동무들은 자기들이 가지고있는 총탄의 수자만큼 적을 쏘아눕힐수 있을 정도로 사격술이 높았던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동무는 누가 총탄 100발을 메고다니는것을 보면 《동무는 일본놈의 목숨을 100개나 메고 다니누만.》하고 롱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무리 먼거리의 작은 물체라도 눈에 보이고 사거리안에 들기만 하면 명중시킬수 있는 그런 사격술을 소유하겠다는것은 참으로 높은 결의였다.

그렇지만 창봉동무는 이악하게 달라붙어 그 결의를 실현하였다. 그것도 가장 어렵고 준엄한 난관과 시련을 끊임없이 이겨나가야 하는 그런 간고한 시기에 실현하였다.

사령관동지의 지휘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헤쳐나간 남패자로부터 북대정자에 이르는 고난의 행군, 행군길의 한치한치를 죽음과 피로써 뚫고나가는 악전고투의 그 어려운 나날에도 그는 사격술을 높이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날 나의 앞에서 걷던 한창봉동무는 산모퉁이를 돌다가 그만 넘어지면서 몇m쯤 아래로 미끄러져내려간 일이 있었다.

나는 산경사면에 거꾸로 엎어진 그를 일으켜주려고 따라 내려가서 팔을 붙잡으려다가 순간 그자리에 굳어져버리고말았다. 그는 자기 혼자의 힘으로 일어나지 못해 그러고있는것이 아니라 조성우에 올라앉은 그 어떤 움직이는 목표를 놓치지 않으려고 연신 총끝을 놀리고있는것이였다.

《아니, 뭣이 나타났나?》

《허, 그것참, 신통히 들구뛰는 〈토벌대〉놈들같거든.》

《뭐가?》

그는 급한 경사면을 따라 굴러내려가는 눈덩어리들을 가리켰다. 정말 그가 넘어질 때 굴기시작한 눈덩어리들은 정신없이 골짜기로 달려내려가는 무수한 《토벌대》놈들을 련상시켰다.

이처럼 한창봉동무는 미끄러져내려간 그런 때에도 조준련습을 잊지 않았던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의 결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쉬임없이 투쟁하는 한창봉동무의 곁에 선 나는 스스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는 참으로 비상한 정력과 열성을 가지고 자기의 사격술을 높였다. 그에게는 날아가는 새도 사격훈련의 좋은 목표로 리용되였으며 여름밤의 반디불도 야간조준련습의 훌륭한 목표로 리용되였다.

이런 투쟁을 통하여 그는 나와 수많은 대원들에게 민족의 원쑤, 계급의 원쑤를 소멸하기 위해 손에 총을 쥔 혁명가들이 어떠한 정신상태로 어떻게 투쟁해야 하는가를 자기의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었다.

세상사람들이 다 아는바와 같이 항일유격대의 생활은 훈련과 학습하는 시간이 따로 있고 행군과 전투하는 시간이 따로 있는 그런 규칙적인 생활과정이 아니였으며 더우기 낮이면 일과에 따라 행동하고 밤이면 취침나팔소리를 듣고 잠드는 정규부대생활의 반복일수도 없었다.

훈련과 전투ㅡ이는 서로 구별되면서도 그 실천과정은 하나로 통일되여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투쟁속에서 성장하고 전투속에서 단련되였다.

한창봉동무가 자기의 그 높은 결의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길도 끊임없는 시련, 련속적인 전투, 간고한 행군으로 련이어진 그런 준엄한 투쟁의 로정이였다.

그는 이러한 투쟁의 길에서 혁명동지들을 탄복케 하고 원쑤를 전률케 한 놀라운 사격술을 소유했다.

우리 부대가 림강현 6도구시가에 대한 진공전투를 진행할 때였다.

6도구는 림강, 장백현간 자동차대도로 연변의 중요 성시로서 장백, 림강현일대에 있는 적들의 《토벌작전》의 중심지의 하나였다.

1,000여호의 집과 경찰서를 비롯한 기타 통치기관들이 있는 이곳에 적들은 4개의 큰 대문과 2개의 포대로 이룬 견고한 성벽을 쌓고 상시적으로 우리 인민혁명군의 공격을 방비하고있었다.

이날 한창봉동무와 내가 속한 중대는 주밀하게 작성된 사령관동지의 작전계획에 의하여 밤 11시부터 남쪽성벽에 있는 자그마한 성문으로 시내에 돌입하였다.

한창봉동무는 진격하는 대오의 맨선두에서 돌진해 들어갔다.

그런데 워낙 시가가 넓고 상점들이 많이 있는 이곳에는 곳곳에 많은 야외등이 밝혀있어서 공격대상물에 은밀히 접근하는데 매우 불리했다.

그래서 아군의 행동을 보다 은밀히 보장하며 적들과의 교전시 놈들이 우리를 잘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격에 솜씨있는 대원들이 우선 야외등을 까부시군 했었다.

우리가 시가의 어느 넓은 공지를 지날 때였다.

사방에 걸려있는 10여개의 야외등이 환히 비쳐서 은밀히 지나갈수 없었다.

물론 전대오가 일제사격을 들이대면 순식간에 10여개의 전등을 깨여버릴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면 공격으로 이전하기 전에 아군의 위치가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이때 한창봉동무가 적들이 아군의 위치를 알지 못하게 혼자서 전등을 전부 쏘아버리겠다고 자진하여나섰다.

지휘관의 승인을 받은 그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잠시후에 한창봉동무의 38식보병총소리와 함께 바람에 대롱거리던 주먹만 한 전등 하나가 깜빡하고 사라졌다. 련이어 10여발의 총소리가 울리더니 줄에 매달려 흔들거리던 전등 10여개가 몽땅 날아나고 주위는 먹물을 풀어놓은듯 캄캄해졌다.

이리하여 우리들은 나는듯이 공지를 지나 공격해들어갔다.

나는 한창봉동무가 사격한 위치에서 전등이 대롱거리던 공지까지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적어도 300m는 잘될것 같았다.

300m의 거리에서 그것도 야간에 한발에 한개씩 바람에 흔들거리는 전등을 어김없이 쏘아버린 그 솜씨야말로 어떠한 목표이건 눈으로 볼수 있고 총알이 미칠수 있는것이면 다 명중시킬수 있는 그런 높은 사격술인것이다.

그런데 창봉동무는 자기의 사격술에 만족을 모르는것이였다.

그후 어느날 나는 그에게 이런 롱담을 한적이 있다.

《보병총사거리가 무한정 길지 못한것이 유감이구만,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별도 쏠수 있겠는데…》

《사실 보병총사거리가 좀 더 길었으면 좋겠네. 그래야 이 총이 나에게 더 강한 요구를 제기할수 있겠는데 그렇지 못하다나니 자칫하면 내가 안일해질것 같거든.》

한창봉동무는 이러한 동무였다. 그는 자신에 대한 요구성을 언제나 강하게 제기한 동무였으며 그 요구대로 자신이 움직이도록 스스로 강한 통제를 할줄 아는 동무였다.

때문에 그는 그렇게 높은 결의목표를 세우고 완강히 투쟁하여 그 목표를 점령할수 있었던것이다.

이렇듯 항일유격대원들은 사령관동지의 품속에서 세심한 가르치심과 보살피심을 받으며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튼튼히 준비된 혁명가로 자라났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