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1)

 

불    사    조

                                                      

  리   두   수                     

 

1937년 2월에 있은 홍두산전투에서 부상당한 나는 이해봄 후방밀영을 거쳐 곰의골 림시병원에 후송되였다.

곰의골에서 홍두산으로 가는 도중에 자리잡고있는 이 병원은 우뚝 솟은 칼바위밑에 대여섯사람이 들어갈수 있게 뚫려있는 천연바위굴로서 일명 《바위굴병원》이라고도 불렀다.

당시 이곳에는 박순일동무와 《4사 아바이》(이름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 리계순동무 그리고 왕동무라는 젊은 중국동무와 내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가 중환자였는데 다만 왕동무만이 부상이 비교적 경한편이여서 련락원 겸 병원의 후방사업을 맡아보고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백절불굴의 혁명투사인 박순일동무의 장렬한 최후를 목격하였고 나자신도 가장 준엄한 시련을 겪었다.

 

1

 

나는 《바위굴병원》에서 처음으로 박순일동무를 알게 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2사에서 군수부장으로 공작하던 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부대에 조동되여오는 도중에 부상을 당하였다. 이때 발에 심한 동상까지 입게 되여 《바위굴병원》에서 치료받고있었다.

그의 상처는 매우 심하였다.

언 발가락은 이미 썩어서 떨어져나가고 앙상하게 뼈가 드러난 시꺼먼 상처는 보기에도 끔찍했다.

피기 하나 없는 그의 얼굴은 흰종이장처럼 창백하였고 몸은 수척할대로 수척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것이 우리로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였다.

상처는 날마다 더해갔으나 우리에게는 이렇다할 방책이 없었다.

박순일동무는 이러한 처지에서도 조금도 비관하거나 락심하지 않았으며 항상 적에 대한 불타는 증오와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안고 병과 싸웠다.

지금도 나의 기억에는 박순일동무가 부대에 돌아가 다시 싸우게 될 날을 눈앞에 그리면서 오히려 우리를 격려해주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는 사령관동지께서 무장대오의 진두에 서시여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인도하고계신다는 믿음을 안고 용기백배하여 싸워온 동무였다.

이처럼 마음속깊이 그리던 사령관동지곁에서 싸우게 되였다는 커다란 기쁨을 안고 오던 그는 도중에 부상을 입게 되여 그이를 뵙지 못하게 된것을 여간 통분해하지 않았다.

《발만 이렇게 되지 않았던들 나는 벌써 부대에 도착하여 싸우고있을것이요.

하지만 나는 지금도 락심하지 않소. 내가 부대로 빨리 돌아가느냐 못가느냐 하는것은 내자신이 어떻게 병과 싸우는가에 달려있소.》

어떤 난관에 부닥치더라도 꼭 자기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고야말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하루하루 병과 싸워나가는 그의 강의한 의지에서 우리는 많은 고무를 받았다.

력사적인 보천보전투가 끝난지 며칠 안되는 어느날 부대에서 송의사가 《바위굴병원》으로 찾아왔다.

그는 조선인민혁명군이 조국땅에 진군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사령관동지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편지와 선물을 가지고왔다.

편지에는 병과 싸워서 반드시 승리하라는 격려와 함께 완치된 다음 전장에서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고대한다는 그이의 간곡한 당부가 적혀있었다.

우리는 그자리에서 그이께서 보내주신 편지를 몇번이고 돌려 읽었고 선물을 통하여 조국의 숨결을 가슴뜨겁게 느끼였다.

나는 이날 사령관동지께서 선물로 보내주신 명주수건을 받았다.

두손으로 명주수건을 받아든 나는 조국땅을 함께 밟아보지 못한 한 대원의 심정까지도 살펴주시는 사령관동지의 뜨거운 사랑에 휩싸여 목이 메였다.

《사령관동지, 저는 반드시 병과 싸워이길것입니다. 혁명의 전사로서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당신의 신임과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이것은 나혼자만의 심정이 아니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보내주신 편지와 선물을 받은 박동무의 눈에도 그리고 다른 동무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있었다.

사령관동지의 편지를 받은 자리에서 박순일동무는 통졸임통으로 자작 만든 양철톱을 내놓으면서 제손으로 썩어들어가는 발을 잘라버리겠다고 말하였다.

송의사를 비롯한 동무들이 그를 만류하면서 다른 방도를 찾아보자고 하였다.

송의사는 곧 치료에 착수하였다. 그의 성실하고도 꾸준한 노력에 의하여 우리들의 상처는 눈에 뜨이게 좋아졌다.

그러나 박동무의 상처만은 차도가 없었다. 그럴수록 송의사는 침식을 잊고 더 애썼으나 워낙 큰 수술을 요하는 상처인것만큼 수술도구 하나 없는 조건에서 어쩌는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니 송의사는 더 애타하였고 나중에는 가끔 수심에 잠기게까지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박동무는 송의사에게 부대로 돌아가달라고 부탁하였다.

사실 부대에서 의사의 손이 더 필요하다는것을 송의사도 모르는바는 아니였으나 박동무의 상처가 걱정되여 얼른 결심을 채택하지 못했다.

《떠나야 하오. 오래동안 지체하면서 나 한사람의 발을 고치는것보다 부대로 돌아가는것이 혁명을 위해 더 리롭다는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소?》

송의사가 주저하고있는것을 눈치챈 박동무는 이렇게 권고하였다.

누구보다도 의사의 방조가 필요하였고 또 송의사가 온것을 누구보다도 반가와하던 그였지만 송의사가 《바위굴병원》을 떠날 때까지 이러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그의 상처는 두발을 자르지 않고서는 생명이 위험할 지경에 이르고있었다.

두발을 잘라야 한다는것은 명백했다.

그러나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잘라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방책도 없었다.

송의사가 안타까와한것도 바로 이점이였다.

송의사가 부대에 돌아가 치료방도를 세워보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나간 후 어느날 박동무는 당소조회의를 열것을 제의했다.

그는 이 회의에서 자기의 결심을 말하였다.

그는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비록 두발이 없는 몸이라도 살아서 끝까지 혁명에 이바지하자고, 그렇게 하기 위하여 제손으로 톱을 만들어 스스로 발을 자르자고 비장한 결심을 다지였던것이다.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할수 없었다.

박동무의 두발을 잘라야 한다는것은 명백했으나 아무런 경험과 의료기구도 없이 양철로 만든 톱으로 발을 자른다는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였기때문이다.

나는 방법을 더 생각해보자고 타일렀다.

다른 동무들도 나의 의견을 지지했다.

그러나 박동무는 자기의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고 도리여 우리를 설복하기까지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가 하루속히 병을 완치하고 부대로 돌아올것을 기다리고계시오. 그런데 동무들은 병과의 투쟁을 소극적으로 하고있소. 이것은 혁명가의 태도가 아니요.

병과의 투쟁ㅡ 이것이 혁명과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찌 발을 자르는것을 주저할수 있겠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우리를 둘러보더니 나중에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의사도 아닌 내가 이런 톱으로 발을 자른다는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것을 나도 잘 알고있소.

그리고 어떤 곤난이 닥쳐올지도 짐작하기 어렵지 않소.

그렇지만 당소조회의에서 나의 결의를 지지만 해준다면 나는 그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해낼수 있소.》

우리는 그를 더 만류할수 없었다.

당소조회의에서는 박순일동무의 결심을 지지하기로 결정했고 그는 그날로 그 어려운 일에 착수했다.

박순일동무가 통졸임통으로 만든 톱을 손에 들고 발을 자를 차비를 하는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아프고 쓰리였다.

하지만 손에 톱을 들고 우리를 둘러보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리여있었다.

오직 혁명을 생각하여 그 무서운 고통도 웃으며 맞받아나아가는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너무나 크게 감동되여 말 한마디 입밖에 내지 못하였다.

무거운 침묵에 잠긴 동굴안에서는 북받쳐오르는 울음을 억제하는 계순동무의 흐느낌소리가 이따금 들릴뿐이였다.

《내몸을 좀 잡아주오.》

손에 톱을 든 박동무는 조용히 이렇게 청했다.

나는 그 순간 어떻게 그의 등뒤로 돌아갔고 어떻게 두팔로 그를 그러안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윽고 톱이 뼈에 닿는 몸서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울리였다. 등을 구부리고 앉은 박동무의 온몸에서는 땀이 물처럼 솟아나 줄줄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박동무의 몸이 축 늘어지며 무겁게 내몸에 실려왔다. 톱소리도 점차 가늘어졌다.

그는 눈을 꾹 감고 입을 옥문채 고통을 참고있었다.

기력이 점점 진해가고있다는것이 한눈에 알렸다. 우리는 그를 자리에 눕히려고 하였다. 그 순간 그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소리가 새여나왔다.

 

동무들아 준비하라 손에다 든 무장

제국주의침략자를 때려부시고

 

처음에는 입속에서 중얼거리는것 같던 소리가 차츰 똑똑히 들려왔다.

일시 중단되였던 톱소리가 혁명가요에 맞추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때까지 수많은 노래를 듣기도 했고 즐겨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처럼 우리의 심장을 격동시킨 때는 없었다.

혁명의 불길속에서 태여났고 수많은 동지들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킨 노래, 그 노래에서 박동무는 힘을 얻고 투지를 가다듬으며 참기 어려운 고비를 이겨나가고있는것이였다.

이처럼 긴장된 시간이 흘러 사흘째 되는 날 한쪽발을 다 자르고 난 박순일동무는 그만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의 얼굴은 삽시에 까맣게 죽어들어가고 사지가 꽛꽛해졌다.

《박동무, 정신을 차리오.》

《순일동무, 순일동무!》

우리는 그의 몸을 마구 흔들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번갈아가며 그의 사지를 주물러주었다.

(왜 그를 만류하지 못했을가. 왜 그가 실신하기 전에 미처 손을 쓰지 못했을가.)

우리는 돌이킬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것 같아서 몸둘곳을 몰라했다.

한참후에야 맥없이 눈을 뜨고 동무들을 둘러보던 그는 자리에 누운채 두손으로 방바닥을 더듬는것이였다.

톱을 찾는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우리는 얼른 그의 손에 톱을 쥐여주지 못하였다.

한시바삐 상처를 고치고 조국해방을 위한 싸움의 길에 다시 나서려는 그의 심정이 얼마나 뜨겁고 절절한것인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는 우리들이였지만 숨도 돌리지 않고 또다시 그 무서운 고통을 맞받아나가려는 그에게 어찌 선뜻 톱을 쥐여줄수 있었겠는가.

《순일동무! 다만 하루라도 쉬였다가 계속합시다. 이것은 우리모두의 간절한 부탁이요.》

그러나 그는 자기의 결심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끝내 엿새동안에 두발을 자르고야말았다.

박순일동무의 불굴의 투지에 고무되여 그후 《4사아바이》도 힘줄만 달렸던 발가락들을 제손으로 잘라버렸다.

부대와 멀리 떨어져 이처럼 병과 싸우고있던 우리들은 그후 사령관동지께서 한개 소대의 인원을 파견하여 지어주신 새 병원으로 옮겨갔다.

새 병원은 《바위굴병원》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있었는데 3면은 울창한 원시림이고 한쪽은 바위로 이루어진 절벽이였다.

그런데 그리로 옮긴 후 우리는 적《토벌대》의 수색에 걸려 불의의 사변을 당하게 되였다.

그날은 음력으로 12월 4일이였다.

전날밤에 있은 당소조회의에서 우리는 학습을 더 잘 하자는것을 토의하였다.

우리에게는 시간도 많고 사판도 갖추어져있어서 매우 조건이 좋았다.

특히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에게 흰종이까지 보내주시였다.

다만 낮이 짧고 밤이 긴 산간지대인데 밤에 등불이 없는것이 걱정이였다.

그래서 광솔불을 켜기로 했는데 광솔을 해오는 과업은 왕동무와 내가 맡게 되였다. 나는 그때 지팽이에 의지해서 겨우 걸어다닐수 있었다.

우리는 이날 아침에 광솔을 마련하기 위하여 귀틀집을 나섰다.

왕동무가 나무를 자빠뜨려놓으면 나는 뒤따라가면서 송진이 많은 가지들을 골라서 꺾군 하였다.

내가 귀틀집에서 북쪽으로 약 200m 쯤 떨어진 곳에서 나무가지를 잘게 토막내고있는데 어디선가 삭정이를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짐승이나 아닌가 해서 무심히 고개를 들었던 나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누런 군복을 입은 《토벌대》놈들이 귀틀집을 포위하고 은밀히 죄여들고있지 않는가.

그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 번개치듯 동무들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병원에는 박동무와 《4사아바이》, 계순동무가 남아있었다.)

나는 집을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이때 왕동무가 마주 달려왔다.

사태는 매우 위급했다.

모두가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중환자들인데다가 한자루의 총도 없었다.

(빠져나갈 길은 없다. 그렇다고 맞불질을 할수도 없다. 이제는 이발로 물어뜯는 한이 있더라도 피값을 해야 한다.)

이렇게 결심한 나는 왕동무에게 곧 지휘부를 찾아가 이 사실을 급히 보고할것을 지시했다.

그것은 이러한 경우에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의무였다. 그리고 왕동무가 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임자이기도 했다.

왕동무는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생사를 같이할것을 기약한 동지들을 남겨두고 돌아서지 못하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바는 아니였으나 나는 그를 엄하게 꾸짖으면서 억지로 떠나보내였다.

왕동무가 수림속으로 금방 사라졌을 때 누군가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박순일동무였다. 적을 발견한 그는 벼랑을 향하여 내달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그였건만 자기 한몸을 희생하고서라도 동지들을 구원하겠다는 의지의 힘으로 적들을 유인하며 달려가는것이였다.

한발자국도 옮겨디딜수 없는 부자유스러운 몸으로도 끝까지 원쑤앞에 굴하지 않고 혁명가의 지조를 지켜 싸우며 동지를 구원하려는 그의 숭고한 혁명정신이 나의 가슴속으로 뜨겁게 밀려들어왔다.

나는 당장에라도 그에게로 달려가고싶었으나 이미 그렇게는 할수 없었다.…

해질무렵 나는 귀틀집으로 내려왔다.

귀틀집은 불에 타고 《4사아바이》와 계순동무는 《토벌대》놈들에게 체포되여갔다.

막막한 생각이 가슴에 가득차올랐다.

나는 불타는 귀틀집을 지나 박동무가 달려가던 벼랑으로 나갔다.

귀틀집에서 50m쯤 떨어져있는 살바위꼭대기에 이르러 스무길도 넘는 벼랑을 굽어보니 여기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친 박순일동무의 모습이 다시금 눈앞에 선하였다.

… 더는 전진할수 없는 이 바위꼭대기에 다달은 박동무는 낭떠러지를 등에 지고 홱 돌아섰다.

두발을 자르기는 했으나 다리를 뻗치고 선 그는 마치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우뚝 솟은것처럼 느껴졌다. 《토벌대》놈들은 그를 생포하려고 죄여들었다.

총 한자루 손에 쥐지 않은 적수공권인 그였지만 도리여 꺾일줄 모르는 그의 높은 기개는 《토벌대》놈들의 총검을 위압하였다.

박동무는 맨앞에서 달려드는 놈을 붙안고 벼랑밑으로 굴러떨어지면서 《토벌대》가 왔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의 장렬한 최후를 회상하며 서있던 나는 그의 고결한 혁명정신과 불굴의 투지앞에 머리를 수그리였다.

동지에 대한 그의 뜨거운 사랑을 생각할 때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비록 다 식은 몸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를 붙안고 다시한번 얼굴을 들여다보고싶었다.

단 한줌의 흙이라도 내손으로 덮어주고싶었다.

그러나 한쪽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나로서는 아무리 헤매여도 벼랑밑으로 내려갈수 없었다.

장렬한 최후를 마친 혁명동지를 지척에 두고도 흙 한줌 덮어주지 못하는 내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나는 불타는 귀틀집을 돌아다보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학습을 더 잘할것과 닥쳐오는 설을 어떻게 맞이하겠는가를 모여앉아 의논하던 그 집이였다.

《4사아바이》며 계순동무를 생각하니 금시에라도 가슴이 미여질것만 같았다.

《박동무ㅡ》

어둠이 짙어가는 벼랑을 굽어보던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야말았다.

이렇게 하여 전우들을 잃은 나는 엄동설한에 날짐승도 드나들기 주저하는 천고의 밀림속에 홀로 남게 되였다.

2

 

불타는 귀틀집으로 돌아온 나는 불이 달린 나무토막들을 한데 모아 불무지를 만들어놓고 그앞에 앉았다.

눈을 들어 사방을 살피면 우중충한 산발과 천고의 원시림이 묵묵히 사위에서 다가서고 이따금 스산한 바람소리와 함께 눈보라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1년치고 7~8개월은 겨울이여서 나무마저 기를 펴고 자라지 못하는 이곳에서 추위가 가장 맵짠 음력섣달에 의지할 집은 고사하고 한알의 낟알도 없이 살아나간다는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더구나 맹수가 드물지 않은 곳이여서 불의에 짐승의 해를 입을수도 있었고 《토벌대》놈들이 또다시 달려들수도 있었다.

어디를 둘러보나 내 목숨을 노리고 다가드는것들뿐이였다.

이런 불안한 심정은 언발이 어지간히 녹은 후 신발을 벗으려고 두손으로 지하족을 거머쥐고 힘껏 잡아당기다가 발바닥가죽이 묻어 떨어진것을 볼 때 한결 더했다.

(내앞에는 이보다 더한 일이 수없이 닥쳐올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혼자서 기어코 극복해나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할수록 어디선가 활동하고있을 부대가 그리웠고 동무들이 그리웠다.

원쑤를 맞받아 돌격의 함성을 지르며 내달리는 전우들의 씩씩한 모습, 우등불가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유쾌한 오락회장면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동무들이 방금 내앞에 나타나는것만 같아서 밀림이 설레이는 소리나 눈우에 던져진 나무그림자도 혹시 동무들이나 아닌가 해서 귀를 기울이기도 했고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거침없이 천리, 만리 달려갈수 있는 바람을 못내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밤이 깊어가고 새벽이 다가올수록 바람은 더 기승을 부렸고 혹한이 뼈에 스며들었다.

얼어들어오는 손발을 주무르며 우등불가에서 뜬눈으로 날을 밝히던 나는 문뜩 왕동무를 생각했다.

(만약 그가 적에게 체포되지 않고 살아있기만 한다면 부대에 돌아가 정황을 똑똑히 보고하기 위해서도 근방에 잠복했다가 꼭 찾아올것이 아닌가?)

왕동무를 다시 만날 일을 생각하니 한량없이 기쁘고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였다.

나는 날이 희뜩 밝자 적들이 다시 습격해올수 있다는것을 생각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왕동무가 찾아오리라는것을 생각하여 멀리에는 가지 않았다.

아침이면 자리를 뜨고 저녁이면 삭정이를 한아름씩 안아다가 불을 피우면서 안타까이 기다렸으나 닷새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왕동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부대에서 련락이 올 때를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부대와의 련계는 이듬해 3월 보름경에 다시 짓기로 되여있었다. 그러니 백날도 더 기다려야 하였는데 나는 백날은 고사하고 열흘도 견디여내기 어려운 형편에 있었다.

이미 그때에는 몸에 지녔던 손바닥만 한 노루가죽마저 다 삶아먹고난 뒤여서 입에 넣을것이란 눈밖에 없었다.

의복도 말이 아니였다. 밤낮으로 불가에 앉아있다나니 불티에 타서 여러군데 살이 내놓이였다.

마대쪼박을 허리에 대고 동이기는 했으나 그것으로 령하 30~40℃의 혹한을 견디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이제는 꼼짝 못하고 눈속에 갇히게 되였다는 생각에 잠겨 바람에 날름거리는 불길만 지켜보고있던 나의 눈앞에는 어느덧 사령관동지를 처음 뵈옵던 잊을수 없는 그날의 광경이 우렷이 떠올랐다.

바로 그날도 우등불이 활활 타오르고있었다.

《민생단》문서보따리를 불속에 집어던지시며 지금 이 자리에는 한사람의 《민생단》도 없으며 《문서》보따리보다도 혁명의 길에서 싸우겠다는 대원들의 결의를 더 믿는다고 격려해주시던 사령관동지의 모습, 그이를 우러러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대원들…

나도 당시에 《민생단》의 혐의를 받고 밀리여다니다가 조선인민혁명군 주력사단이 새로 편성될 때 《민생단》의 루명을 벗고 주력사단에 속하게 된 그 100여명중의 한사람이였다.

혁명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서슴지 않고 바칠 굳은 각오를 가지고 투쟁의 길에 나섰다가 루명을 쓰고 혐의를 받게 된 우리는 여간 원통하고 억울하지 않았다.

일신에 닥쳐온 일시적곤난으로 해서 혁명의 길에서 물러설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비겁하게 죽을수도 없었다. 이 어려운 기로에서 가슴을 쥐여뜯던 우리는 그이의 품에 안기게 됨으로써 비로소 재생의 길을 찾게 되였던것이다.

우리는 그때 참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그것은 내 한몸이 살길을 찾았다는 그것만으로 해서가 아니였다.

어떤 복잡한 때에도 끝까지 혁명의 승리를 확신하고 동지들을 믿으시며 조선혁명을 위기에서 구출하여 더 줄기차게 이끌고 나아가시는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수령으로 모셨다는 기쁨과 그이께서 우리의 진두에 서계시는 한 조선혁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이 안겨왔기에 눈물한방울 모르며 수많은 사선을 넘어선 대원들로 하여금 울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이런 과거를 회상할 때, 그날 사령관동지의 앞에 서서 뼈가 가루로 될 때까지 그이를 따라 혁명의 길에서 싸우겠다고 다지던 맹세가 다시금 생생히 내 심장속에서 맥박치며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다.

(이 준엄한 시련속에서 주저앉는다면 그것은 원쑤앞에서 투항하는것과 다름없다. 박순일동무처럼 어떤 난관도 자기의 힘으로 뚫고나가는 혁명정신으로 싸우며 살아야 한다.)

나는 천백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강의한 사상으로 싸워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안고 일어섰다.

투쟁은 준엄하였다.

우선 살아가자면 먹을것을 찾아야 했다.

밀림속에 혼자 남은 후 《토벌대》놈들이 불길속에 처넣다가 눈우에 흘렸던 강냉이알을 주어서 삶아먹기도 하고 눈속에 감춰두었던 얼마 안되는 열콩을 발견하여 량식으로 보태기도 하였으나 이처럼 간혹 생기는 량식으로 연명한다는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어떤 일이 있든지 풀을 찾아야 견딜수 있었다.

깊은 눈으로 뒤덮인 밀림속에서 풀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량식을 달리 해결할 도리는 전혀 없었다.

눈과 땅을 헤가르며 나는 걷다가는 쓰러지고 쓰러져서는 다시 기여다니면서 풀을 찾았다.

어느날 얼어서 진물이 줄줄 흐르는 손으로 눈을 헤치며 다니던 나는 나무가지가 얽혀서 지붕처럼 눈을 막고있는 원시림속에서 얼기는 하였으나 새파란채 서있는 풀을 발견하였다. 산돼지가 뜯어먹고 산다는 속새풀이였다.

나는 이 속새풀을 삶아서는 거기서 우려낸 물을 마시기도 하고 그것을 불에 구워서 물을 빨아먹기도 하였다. 이것이 나에게는 유일한 량식이였다.

날마다 눈을 뜨면 풀을 뜯고 나무가지를 줏고 … 그러는 외에도 종일 까마귀와 싸워야 했다.

아침에 날이 채 밝기 전부터 수백마리의 까마귀들이 날아와 머리우에서 빙빙 에돌며 시끄럽게 까욱거렸다.

나는 처음 몇번은 지팽이로 몰아대기도 하였으나 기운이 진하고 또 너무 집요하기때문에 내버려두고말았다. 그러면 까마귀는 점점 가까이 다가와서 빤히 지켜보기도 하고 이따금 내 몸을 건드리기도 하였다.

나의 최후의 시각이 닥쳐오기만을 기다리는 까마귀가 나에게는 마치 원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기회를 노리다가 지팽이를 던져서 한두마리 잡아먹기도 하였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까마귀가 살도 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겉도 검고 속도 검은 이 흉측한 놈아, 네놈은 내가 쓰러지기를 기다린다만은 어림도 없다. 이 눈이 어떤 눈인줄 아느냐. 이제 부대에 돌아가면 사령관동지를 뵙고 해방된 조국산천을 보게 될 눈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네놈에게 이 눈은 주지 않는다.》

나는 까마귀가 성가시게 굴 때면 이렇게 혼자말로 꾸짖기도 했다.

하루하루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만큼 부대가 돌아올 시각이 가까와온다는것을 생각하니 힘이 저절로 솟아났다.

(불만 죽이지 말자. 불만 있으면 견디여낼수 있다!)

우등불은 귀틀집온돌우에 있었다. 불이라야 두다리를 뻗치고 그 사이에 웅크리고 앉는 정도의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성냥이라고는 있을리 만무한 나에게 있어서 불을 죽이지 않는다는것은 목숨을 유지하는것과 다름없었다.

모진 눈바람속에서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느라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때로는 밀려드는 피곤때문에 저도 모르게 잠들었다가 무심히 눈을 뜨면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호랑이와 마주칠 때도 있었다.

이처럼 순식간도 없어서는 안될 불이 한번 꺼진적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 음력으로 12월 17일경이였다고 짐작된다.

아침에 나무를 주어오고나서 다시 속새풀을 뜯고있었는데 갑자기 광풍이 일었다.

어찌나 눈보라가 심하였던지 지척을 분간할수가 없었다.

불이 꺼질것을 걱정하며 황급히 돌아서던 나는 그만 솔잎에 눈을 찔리여 손으로 두 눈을 움켜쥔채 주저앉고말았다.

눈보라가 사나운데 눈마저 다쳤으니 더욱 앞을 볼수가 없었다.

눈이 아파서 쩔쩔매고있는 동안에 불이 꺼질수 있다고 생각한 나는 눈을 움켜쥔채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눈이 깊은데다가 눈보라까지 심하였기때문에 걸어서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수 없었다.

몇발자국 옮기지 못하고 나무가지에 걸채여 쓰러진 나는 눈속에 묻혀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나는 불무지쪽을 향하여 데굴데굴 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눈도 제대로 못뜬채 몇시간 굴면서 겨우 돌아온 나는 얼른 불무지속에 손을 들여밀었다.

불무지는 싸늘하였다.

한참후에야 눈을 뜨게 된 나는 숯덩이들을 하나하나 만져도 보고 혹시 손끝이 얼어서 온기를 느끼지 못하지나 않는가 해서 볼에 대고 비벼도 보았다.

그러나 모두가 돌덩이처럼 랭랭하였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해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불은 꺼졌다. 이제는 모든것이 끝장났다. 다시는 부대로 돌아갈수도 없고 사령관동지를 뵈옵지도 못하게 되였구나.)

떼까마귀들이 다시 소란을 피우는 속에 혼자 앉으니 여직껏 온몸에 솟구쳤던 힘이 어디론가 자취없이 빠져나가는것만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안개와 같은 짙은 그림자가 열겹스무겹으로 내몸을 둘러싸고 의식은 점점 몽롱해져만 갔으며 몸은 그 안개속에 더욱 깊이 끌려들어가기만 했다.

(이제는 마지막이다.)

나는 화로로 쓰던 초롱을 엎어놓고 그을음이 앉은 곳에 나무꼬챙이로 다음과 같이 썼다.

《1937년 12월 17일, 리두수》

이 글을 쓰고났을 때 나의 머리속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두만강을 건느려 할 때 하직밥이라고 목메여 숟가락을 들지 못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며 빌려쓴 소값대신에 13살의 어린몸으로 머슴살이에 끌려가던 일, 유격대로 떠나던 날 갈퀴같은 손으로 쓰다듬어주시던 할머니의 모습, 손에 무기를 들고 싸운 수많은 전투와 간고한 행군의 나날…

눈앞에 떠오르는 가지가지 추억속에서도 나에게 큰 충격을 준것은 부상을 당한직후 밀영에서 어린 아동단원과 함께 고난을 겪던 일이다.

삼도만에서 부모를 적들에게 학살당한 후 유격대원들에게 업혀서 자라난 그 아동단원은 앓던 끝에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면서 자기의 원쑤와 자기가 갚지 못한 부모의 원쑤까지 갚아달라고 당부하였다.

그후 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때마다 꼭 내손으로 원쑤를 갚아주겠다고 다짐하군 하였다.

이제는 그의 원쑤도 갚아주지 못하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러나 최후를 각오한 그 순간에 나는 완쾌되여 전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당부와 전우들의 안전을 위해 벼랑밑으로 굴러떨어진 박순일동무의 최후를 상기하였다.

나에게는 죽을 권리가 없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것은 자기를 희생시켜 나를 살려준 동지들에 대한 배신이다. 살아서 다시 전장에 나서라는것은 사령관동지께서 나에게 주신 명령이다. 나는 그 명령을 어길 권리가 없다.

나는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찬바람이 얼굴에 확 끼치면서 목에 둘렀던 수건을 말아올렸다.

명주수건이 내 얼굴에 닿는 순간 사령관동지의 따뜻한 손길이 내 몸을 어루만져주고 포근히 안아주는것만 같았다.

(그렇다. 불이 없어도 이 명주수건이 내몸을 감싸주는 한 나는 얼어죽지 않을것이다. 박순일동무처럼 불요불굴의 혁명정신을 안고 살면 먹지 않더라도 굶어죽지는 않을것이다.

사나운 눈보라야. 석달이 아니라 3년이라도 울부짖어라. 나는 사령관동지를 믿고 살아나갈것이며 그이는 반드시 나를 구원해주실것이다.)

나는 다시금 불씨를 찾기 시작하였다.

재더미를 파헤치다가 다른 숯덩이보다는 싸늘하지 않은 주먹만 한 숯덩이를 집어든 나는 얼른 그것을 볼에 가져다대고 비비였다.

확실히 온기가 있었다. 꺼져들어가다가 다시 피여나는 불덩이를 찾아든 나는 그우에 얼른 봇나무껍질과 마른나무가지를 올려놓고 입으로 힘껏 불었다.

다시금 재더미우에 불길이 솟구쳤을 때 나는 울었는지 웃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한참후에야 가장 준엄한 고비를 넘어섰다는데 생각이 미치게 된 나는 죽음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울수 있는 힘을 안겨주신 사령관동지가 한없이 그리웠다.

《사령관동지!》

나는 그이의 손길처럼 포근한 명주수건을 감싸쥔채 허공에 대고 소리높이 웨쳤다.

나의 목소리는 밀림과 골짜기로 메아리쳐갔다.

천지가 눈과 얼음으로 덮인 속에서 살아서 움직인다는것보다 겨우 누워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가운데 어느덧 1938년 2월 초순이 다가왔다.

어느날 한낮이 좀 지나서 우등불가에 앉아있던 나는 옆에서 삭정이를 밟는 발자국소리를 들었다.

얼핏 돌아다보니 얼마 멀지 않는 곳에 전번에 밀영의 위치를 적에게 고발한 그 특무놈이 손에 단도를 들고 서있지 않는가.

이놈은 장백현에서 조국광복회회원들이 적들에게 체포되였을 때 자총한 후 교묘하게 《탈출》하여 《혁명가》로 가장하고 《바위굴병원》에 얼마동안 와있었다. 이놈은 점차 자기의 정체가 드러나자 도주하여 《토벌대》를 끌고와서 귀틀집을 습격하게 하였던것이다.

나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나는 선뜻 나무《권총》을 쳐들어 놈을 겨냥하면서 손에 든 칼을 던지라고 소리쳤다.

내손에 든것이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골라두었던 불탄 나무그루터기라는것을 알리 없는 그놈은 엉겁결에 칼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공포에 질려 벌벌 떨고있던 놈은 이런 밀림속에서 눈속에 갇히여 신고하는 처지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

산속에서 헤매던 그놈의 몰골도 사실 말이 아니였다. 그러나 나보다 몸도 성하고 기력도 왕성해보였다.

나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놈을 쏘아보며 속다짐하였다.

(내 처지가 아무리 어렵고 사람의 그림자라도 반가와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할지언정 원쑤를 보고 어찌 그대로 둘수 있는가.

그놈이 손에 쥐였던 칼을 던지고 간사한 말을 늘어놓는것처럼 이번에는 그 번지르르한 말이 나를 노리는 비수로 변하리라는것은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수 있다.

흉악한 놈의 청을 들어 손을 맞잡는다면 그것은 계급적립장과 량심을 저버리는것이요, 그놈의 흥정에 다소라도 기대를 건다면 간계와 함정속에 빠져들어가는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원쑤와 한하늘을 이고 살수는 없으며 원쑤는 반드시 때려부셔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그놈의 칼로 그놈을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그놈과 나의 중간에 떨어진 칼을 잡으려고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때에야 내손에 쥔것이 권총이 아니라는것을 알아차린 그놈은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나는 한손에 칼을 쥔채 뒤쫓았으나 아무리 이를 악물고 뒤쫓아도 성한 다리로 기겁해서 도망치는 그놈을 붙잡을수 없었다.

원쑤를 놓쳐버린것이 나에게는 여간 분하지 않았다.

나는 이때처럼 다리가 성하지 못한것을 원망한 때는 없었다. 다리만 성했더라면 굶주림과 추위속에서 아무리 기력이 진했다고 하더라도 그놈을 처단하고야말았을것이다.

(후에 다시 그놈이 달려들지 않은것으로 보아 아마도 산속에서 얼어죽은것 같다.)

이러는가운데 어느덧 음력 2월이 가고 3월에 들어섰다. 양지바른 언덕에서는 눈이 녹기 시작하고 바람도 한결 숨을 죽이였다.

어느날 지팽이를 짚고 나무가지를 줏던 나는 눈밑에서 새싹이 돋아나는것을 보았다. 모진 겨울을 이겨내며 봄을 기다리고있는 어린 생명을 보았을 때 나는 눈물이 핑 돌 지경으로 반가왔다.

(이름없는 풀아, 너도 싸우고있구나. 힘겨운 시련을 이겨가며 살고있구나. 살아라.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고 싸워서 기어이 살아라.)

나는 그길로 조국산천이 바라보이는 살바위우로 올라갔다.

바위우에 서서보니 조국땅의 산발들은 눈이 거의다 녹고있었다.

밀림에 혼자 남게 된 후 내가 가장 안타깝게 기다린것은 날씨가 온화해지고 풀이 많이 돋아날 봄이였다.

그봄이 멀지 않다고 생각하니 가슴은 한없이 뛰였다.

(봄이다! 고향에서는 밭갈이가 한창일 때로구나. 부대가 돌아올 날도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바위우에서 조국땅을 바라보고있는데 난데없이 새 한마리가 날아오더니 나의 머리에 앉았다.

나를 나무등걸로 여긴 모양이였다.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혼자 웃다가 내 몰골을 비쳐보려고 우물가로 내려갔다.

맑은 샘물에 비친 얼굴을 본 나는 스스로 놀랐다. 오래동안 가위를 대보지 못한 머리가 새둥지처럼 엉킨데다가 눈이 움푹하게 패여들어가고 뼈만 앙상한 모습은 자기로서도 사람의 얼굴인가를 의심할 형편이였다.

재와 흙으로 범벅이 된 몸을 둘러보던 나는 얼른 목에 둘렀던 명주수건을 풀었다.

하얗던 수건은 검정수건으로 변하였다.

나는 우물가에서 수건을 빨았다.

흰수건이 검정수건이 되도록 이 밀림속에서 겪은 가지가지 일들이 일시에 주마등처럼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수건의 얼룩이 씻겨져나가는것처럼 고난에 찬 생활도 끝장이 나고 멀지 않아 부대에 돌아가 총을 손에 잡고 원쑤를 무찌르는 보람찬 투쟁이 시작되리라는 앞날에 대한 기대에 가슴속이 환하였다.

깨끗이 빤 수건을 나무가지에 걸어놓고 돌아서려던 나는 지팽이가 눈속깊에 빠져들어가는 바람에 발길을 멈추었다.

나는 그곳을 조심히 파보았다.

한참 파내려가니 흙이 새여들지 않게 정성스레 묻은 쌀주머니가 나졌다. 주머니속에는 반말이나 되는 보리쌀이 들어있었다.

리계순동무가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묻어둔 비상미였다.

부대를 만날 날이 다가오는 때에 이처럼 뜻밖에 량식까지 생기니 여간 기쁘고 마음이 든든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바로 귀틀집이 습격당한 전날밤에 닥쳐오는 설명절을 어떻게 준비하겠는가고 안타까와하던 계순동무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저리였다.

(계순동무, 고맙소. 동무가 남겨둔 이 량식은 나에게 부대로 돌아갈수 있는 힘을 주었소.)

낟알이라군 몇달만에 처음 본것만큼 당장에라도 끓여먹고싶었으나 나는 만약 부대와 련계를 맺지 못하는 때에는 이것으로 끼니를 에우면서 부대를 찾아가리라 생각하고 다시 꽁꽁 묶어두었다.

3월 보름이 가까와올수록 마음은 한량없이 설레였다.

낮이면 살바위꼭대기에 올라가 주변을 살폈고 밤은 밤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드디여 3월 보름이 되고 또 하루이틀 흘러갔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다.

(혹시 길을 잘못 들지나 않았을가?

찾다가 못찾고 돌아가지나 않았는가?)

이런 의혹이 없지 않았으나 나는 반드시 부대가 올것이라고 믿으며 기다렸다.

어느덧 기약된 날자보다 열흘이나 지나 3월 24일이 되였다.

이날도 변함없이 살바위우에 올라갔던 나는 누런 군복을 입은 3~4명의 사람들이 개활지대에서 얼른거리고있는것을 발견했다.

나는 극도로 긴장하였다. 나는 바위우에 엎딘채 그들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는것이 아닌가.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싶었으나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그들에게 이름을 대라고 웨쳤다.

곧 김룡수라는 대답이 왔다.

그는 유격대원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 장소를 알리는 만무하지 않는가. 혹시 《토벌대》놈들의 간계가 아닌가?

내가 이렇게 망설이고있는데 이번에는 《나는 한초남이요.》라는 소리가 울려왔다. 이제는 더 물을것도 기다릴것도 없었다.

나는 지팽이를 손에 잡는것도 잊어버리고 마구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다가 그만 눈이 깊은 홈채기에 빠져 허우적거리였다.

《초남동무! 룡수동무!》

목메여 부르짖는 나의 목소리를 들은 그들도 일시에 환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두수동무!》

《두수동무!》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얼굴을 비비며 눈우에 딩굴기도 하였다.

이렇게 나는 혼자 남은지 꼭 석달스무날만에 그립던 전우들과 상봉하였다.

이튿날 아침 부대로 돌아갈 차림을 하고난 우리는 박순일동무의 시체를 찾아서 무덤을 만들어놓고 그앞에 머리를 수그렸다.

다른 동무들도 그러했겠지만 박동무와 함께 이곳에서 지냈고 그의 최후를 목격한 나의 심정은 더하였다.

《박동무, 기뻐해주오. 나는 오늘 동무의 혁명정신이 깃든 이곳을 떠나 동무가 생전 그처럼 그리워하던 사령관동지의 품으로 돌아가오. 박동무, 동무를 여기에 남기고 간다고 섭섭해마오. 나는 동무의 가슴속에 타오르던 혁명의 불길을 안고 가겠소.

동무가 그처럼 원하던 세상, 모든 사람이 착취와 억압을 모르고 살게 될 그날까지 그 불길을 안고 결코 투쟁을 멈추지 않겠소.》

나는 마지막으로 밀림을 돌아다보았다.

귀틀집자리에서는 우등불이 꺼지지 않고 그대로 타오르고있었다.

그때부터 보름가까이 지난 어느날 나는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숙영지에 당도했다.

한시바삐 그이를 뵈옵자고 다리의 아픔도 잊고 달려가다싶이 하여 나지막한 언덕에 올라섰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멀리 천막밖에까지 나오시여 나를 기다리고계시였다.

멀리서 사령관동지의 모습을 우러르는 순간 마치 뚝에 막혔던 거센 물결이 일시에 쏟아져내리는것처럼 나는 참고 참아오던 그 무엇인가 일시에 터져나오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사령관동지!》

나는 동무들의 부축에서 벗어나 앞으로 달려나갔다.

《두수동무, 얼마나 고생했소. 정말 수고했소.》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의 두손을 꽉 잡으시고 천막안으로 이끌어주시며 몇번이고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천막안에서 《바위굴병원》에서 지나온 일들을 모조리 말씀드렸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천막틈으로 어딘가 먼곳을 바라보시며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은 불사조요!》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동무들을 생각하여 가슴아파하시는 사령관동지를 우러러보는 나의 눈앞에는 박순일동무를 비롯한 동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불사조ㅡ그것은 바로 어떤 역경속에서도 오직 혁명에 충실하고 바로 그것으로 하여 혁명의 거세찬 흐름과 함께 영원히 살아있는 그들에게 주신 고귀한 칭호이다.

불길속에서도 타지 않고 죽지도 않는 혁명의 새, 불사조들의 고결하고 강의한 혁명정신은 오늘 우리의 가슴속에서 맥맥히 고동치고있으며 꺼지지 않는 불길마냥 더욱더 세차게 타번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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