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부를 찾아가는 길에서

 

사령부를 찾아가는 길에서

                                                      

  오  백  룡                     

 

《우리 혁명의 길에는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을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혁명의 길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계속 용감하게 싸워나아가는 사람만이 최후의 승리를 쟁취할수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항일빨찌산투쟁과정에서 같이 싸우던 동지들이 희생되였을 때에는 눈물을 흘렸지만 난관앞에서는 한번도 눈물을 흘리거나 비관한적이 없습니다. 곤난앞에서 당황하거나 비관하는 사람은 혁명가로 될수 없습니다. 곤난할수록 더욱 용기를 내고 더욱 침착하게 투쟁방도를 짜내야 합니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말씀의 참뜻을 지난 항일유격투쟁시기에 겪은 자신의 체험에 비추어 다시한번 가슴깊이 명심하게 된다.

1940년 후반기에 조성된 정세로 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참으로 엄혹한 시련의 시기였다.

일제는 대쏘전쟁준비를 위해 우리 유격대를 《전멸》시키겠다고 저들의 병력을 통털어 동만에 집중하고있었다.

이런 실정에 대처하여 우리 부대에서는 적극적인 분산활동으로 적에게 타격을 주고있었다. 그러던중 내가 인솔한 소부대는 사령부와의 련계가 림시 끊어지고 독립적으로 활동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리하여 1940년 가을부터 사령부와 일시 떨어지게 된 우리는 한겨울동안 사령부를 찾아 동만 각지를 헤매게 되였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를 혁명가로 키워주시고 이끌어주신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사령부를 찾으려는 한가지 념원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고넘으며 밤에 낮을 이어 걷고 또 걸었다.

가을이라면 우리 나라에서는 나무잎이 떨어지는 때이지만 동북의 깊은 산에서는 이미 눈이 쌓인 때이다. 사나운 바람은 눈보라를 휘몰아다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았고 적《토벌대》놈들과 밀정놈들은 산과 마을에 뒤덮여 우리가 가는 곳마다에서 길목을 지키고있었다.

우리 일행은 서로 부축하여 생눈길을 헤가르면서 이리 피하고 저리 빠지며 안도현밀림지대를 돌아쳤다.

우리는 지칠대로 지쳤다. 식량공작을 위한 피어린 투쟁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지만 이와 못지 않게 사령부를 찾아 길을 떠난 행군길에서 역시 험난한 가시덤불을 헤쳐왔다.

우리들의 용모, 우리들의 행장은 말이 아니였다. 머리와 수염은 자랄대로 자라고 군복은 해여져 그 형체만이 몸에 붙어서 너덜거렸다. 그우에 짊어졌던 식량마저 떨어졌다. 오직 성한것, 굳건한것은 단 하나 강철같은 투지, 사령부를 찾아가야 한다는 일편단심이였으며 이것이 기진맥진한 우리를 억세게 부추겨주었다. 그러나 사령부가 자리를 떠나 어데로 이동하였는지 앞길이 막연했다. 방향을 잡을수가 없었다. 우리는 할수없이 발길을 돌려 처창즈를 향해 행군했다. 행여나 사령부가 행군해간 흔적이라도 있을가 하여 메마른 풀잎, 나무가지 하나 소홀히 지나쳐버리지 않고 주의를 돌려 살피며 걸었다.

이러던 어느날 우리는 드디여 사령부가 숙영한 자리를 발견하고 모두 환성을 올렸다. 천막을 쳤던 자취며 그리고 우등불터를 더듬어보는 우리들은 전우들이 그리운 심정에 더욱 가슴이 뜨거워지는것을 느꼈다.

숙영지의 이곳저곳을 눈여겨보던 우리는 한 진대나무밑에 이르러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우리만이 알수 있는 표식이 있는것이 아닌가. 거기에는 반드시 그 무엇이 묻혀있을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우리는 곧 그곳을 파보았다. 그곳에서는 뜻밖에도 햇솜을 두고 만든 새 군복들과 쌀 두가마니가 나타났다.

우리를 념려하시여 이곳에 피복과 식량을 묻어놓고 떠나신 사령관동지의 뜨거운 사랑에 그만 목이 메였다. 우리는 불같이 뜨거워진 가슴에 솜옷과 쌀가마니를 그러안고 《사령관동지!》, 《사령관동지!》하고 목메여 그이를 부르면서 기뻐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우리모두는 그이를 만나지는 못했으나 그이의 따뜻한 손길과 그 은정을 몸가까이 느끼며 그이의 곁으로 한시바삐 달려가 새로운 혁명임무를 받고 싸워야 하겠다는 결심을 다시금 굳게굳게 다지였다.

우리는 다시 사령부를 찾아 행군을 계속하였다.

사령관동지의 두리에 하나로 뭉쳐 나아가는 우리의 마음과 힘을 그 무엇으로도 꺾을수 없는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힘을 얻어 행군해가던 어느날 우리는 린접부대의 남창수동무가 인솔한 소부대를 만났다. 그들은 밀영도 안전한 곳에 지어놓고 자기들이 소비할 식량도 넉넉히 준비하여 겨울을 날 차비를 든든히 갖추고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그곳에서 같이 겨울을 나고 날이 풀리면 사령부를 찾아가라고 간곡히 권고하는것이였다.

그들의 따뜻한 권고는 한없이 고마왔다. 그러나 사령부의 행처와 안부를 모르는 전사로서 어찌 대오에서 떨어져서 편안히 겨울을 날수 있겠는가.

그것은 혁명의 한길에서 그이를 모시고 생사운명을 같이하여온 혁명전사의 량심으로서 도저히 할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였다.

만일 우리가 여기에 머물러있게 된다 하여도 이곳 소부대성원들이 마련한 식량을 가지고는 겨울동안을 지탱할수 없는 형편이므로 그들에게도 무거운 부담을 주게 될것이였다.

그리하여 나는 몇명의 소부대인원들을 데리고 사령부를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나머지 동무들은 이곳에서 련락을 기다리도록 했다.

동무들은 내가 열병을 앓은 뒤끝에 아직 추서지도 못한 몸으로 어떻게 떠나느냐고 하면서 나의 의견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일단 결심한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한천추, 김혁철, 김철만, 왕동무 등 가장 든든한 다섯동무들과 같이 끝까지 사령부를 찾아 떠나기로 하였다.

우리 여섯사람은 적들이 앞뒤에서 욱실거리는 화룡현의 산발에 나섰다. 우리는 마치도 금시에 산이라도 삼킬듯 한 성난 파도가 휘몰아치는 깊은 바다의 한복판에서 떠도는 쪽배와도 같았다.

놈들은 동만일대의 온 산야에 거미줄처럼 《토벌망》을 늘여놓고 《이제 남은것은 김일성부대뿐이다. 이것만 없애면 공산군은 씨가 마른다.》고 하면서 살기등등하여 덤벼들었다.

놈들은 투항을 권고하는 형형색색의 삐라와 포스터를 도처에 뿌렸다. 《1방면군이 전멸했다》, 《3방면군이 녹아났다》느니 또는 어느 유격대지휘관이 투항했다느니 하면서 우리를 위협했다.

이런 정황속에서 물론 대렬내에 끼여있던 비겁한자들은 엄혹한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적들에게 투항해갔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에 동요는커녕 이런자들의 사진이 찍힌 삐라를 볼 때마다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리여 그것을 박박 찢어던지며 증오와 저주를 퍼붓군 하였다.

남창수소부대를 만났다가 떠나올 때 길량식으로 짊어졌던 강냉이겨와 몇덩이의 언호박마저 떨어진지 오래여서 우리는 또 식량난에 허덕였다.

앞으로의 행동방향에 대하여 토의할 목적으로 소조회의를 열었다.

나는 연길현쪽으로 방향을 돌려 사령부를 계속 찾아가자고 했다. 그러자 김혁철동무가 《사령부가 어데 있는지도 모르고 떠돌아다니기만 하면 곤난하지 않소.》라고 못마땅해하며 자기의 의견을 내놓았다.

여기에 또 왕동무도 더는 못따라가겠다고 애를 먹였다.

동지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여나오리라고 생각지 않았던 나는 가슴에서 불이 나는것 같았다. 그러나 꾹참고 생각하여보았다.

(혁명전사가 어떻게 이런 약한 말을 할수 있는가. 전투때마다 억대우같이 싸우던 용감한 혁철동무가 오죽하면 저럴가.)

사람이 목석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고달플 때 쉬고싶은 생각이 나지 않으며 위험할 때 주저하는 마음인들 나지 않겠는가. … 사실 언제 어디서 사령부를 찾을지도 모르고 정처없는 길을 얼마나 더 헤매야 할것인가.

나는 그들에게 간곡히 타일렀다.

《혁명가란 한순간도 싸움에서 물러설수야 없지 않는가. 만일 사령부를 찾겠다는 일념을 버리고 주저앉을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 어찌 혁명하는 사람의 생각이라고 하겠는가.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에게 혁명투사란 1분 1초도 싸움을 멈출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는가. 우리가 이제 걸음을 멈추면 어디로 발길을 돌릴것인가.

우리의 가는 길은 혁명의 길이 아닌가. 그 길로 끝까지 1초도 멈추어섬이 없이 가는것이 우리의 본분이요, 의무가 아닌가.》

그러자 나머지 동무들이 두 동무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투쟁의 길에서 물러앉자는것은 비겁한 생각이다.》

《혁명가로서 곤난앞에 주저앉는것은 용허할수 없는 일이다. 이런 나약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혁명을 할수 있겠는가.》

한겨울 안전한 지대에 밀영이나 짓고 마련한 식량을 먹으며 편안히 나다가 봄이 되면 사령부를 찾아가자는 그들의 생각에 대한 비판이 이렇게 강하게 전개되자 두 동무는 고개를 숙이고 침묵을 지켰다. 그들에게 비판이 잘 접수되지 않는것이 틀림없었다. 이윽고 혁철동무는 《갈사람은 가라! 나는 이곳에 남아있겠다.》고 아주 토라져서 고집을 부렸다.

자기 혈육같이 믿던 동지들이 이렇게 일시적으로 동요를 일으켰을 때 나의 가슴은 걷잡을수 없이 쓰리였다.

(그러나 비원칙성과 타협해서는 안된다. 단 한사람이 남을지언정 혁명의 원칙을 저버려서는 안되며 곤난앞에서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결심한 우리는 그들을 다시 깨우쳐주기 위하여 하루종일 이야기를 했다.

저녁이 되여 나는 마지막으로 동무들의 결심을 물었다.

《안갈 사람은 그만두고 나를 따라갈 사람은 손을 들라.》

먼저 두 동무가 손을 들었고 얼마후에 한 동무가 또 손을 들었다.

결국 다수결로 떠날것이 결정된셈이다.

다음날 아침 출발에 앞서 나는 김혁철동무에게서 무장을 회수하였다.

《다수결로 결정되였으니 우리는 이곳을 떠나야겠다. 동무는 이곳에 남겠으면 남으라.… 이때까지 서로 믿고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던 동무를 떨구어 두고가는 우리의 가슴은 참으로 아프다. 그러나 안가겠다는 동무를 억지로 끌고갈수야 없지 않는가.》

나는 이런 말을 남기고 먼저 일어섰다.

김혁철동무의 얼굴은 량심의 가책을 받아서인지 깊은 고민에 잠겨있는듯 하였다. 걸어가는 나의 가슴속에서는 어째서인지 격분보다도 서러움이 치솟아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이였다. 그와 헤여지는것이 마치 목숨을 잃은 동지를 두고 떠나는 심정에 못지 않게 가슴이 아팠기때문이다.

그런데 얼마동안 걸어가다가 돌아보니 다섯동무가 모두 나의 뒤를 따르고있지 않는가.

김혁철동무는 맨뒤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어서 더벅더벅 걸어오고있었다.

혁명의 량심과 동지적의리가 가슴속에 되살아났음으로 하여 그는 일시적인 동요와 나약성을 극복하고 혁명의 길로 되돌아선것이다.

(아직 이때까지 혁명적수양과 의지의 단련이 부족한데서 일시적으로 곡절을 겪었지만 김혁철동무는 그후 혁명전사로서 용감히 싸우다가 1943년 국내에서 소부대공작을 진행하던중 영웅적으로 전사하였다.)

항일유격대원들은 한낱 추위와 굶주림, 적의 추격 등을 이겨내는데서만이 아니라 난관앞에서 흔들리는 나약한 마음과 싸워나가는데서도 시련을 겪었던것이다.

완성된 혁명가가 아닌 이상 투쟁의 길에서 일시적인 동요와 과오없이 지내는 사람이란 있을수 없는것이다. 다만 자체내의 사상상 약점과 동요를 얼마나 용감하게 이겨나가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혁명성과 혁명가적기풍이 검열되는것이다.

나는 김혁철동무나 왕동무가 바로 혁명적의지와 기백으로 자기자신의 약한 마음과 능히 싸워이길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우리는 그후 며칠동안 굶은채로 화룡현오지의 깊은 눈속을 헤치며 걸었다.

허기증을 이기기란 조련한 일이 아니였기에 앞서가던 한천추동무는 노루라도 쏘아서 우선 요기를 하고 가자고까지 제기하는것이였다. 적《토벌대》들이 개싸다니듯 하는 이런 때에 총소리를 낸다는것은 위험한 일이므로 나는 그의 제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련대장동무, 딱 한방만 쏘게 하여주십시오. 한방의 총소리는 산울림때문에 적들이 방향을 분간하지 못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며 줄곧 졸라대는것이였다.

마침 산중복을 타고 걸어가는 우리앞에서 황소같이 큰 노루 한마리가 소리를 내며 눈을 파헤치고있었다.

나는 《단방에 잡아야 한다.》고 승낙하고는 동무들과 함께 가던 자리에 앉아 담배 한대씩 말아피우며 한천추동무가 노루에게 바싹 접근해가 엎디여서 총을 겨누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놈의 노루는 이제 먹어놓은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있을 때 마침 《땅!》하는 총소리가 울리였다. 그런데 내 옆에 앉았던 왕동무가 《아이구》하더니 그자리에 쓰러지는것이였다. 총소리는 한천추동무의 총에서 울린것이 아니였다. 반사적으로 머리를 뒤로 돌려 살펴보니 불과 20m뒤에 적들이 달려들고있지 않는가.

뛴다 해도 때가 이미 늦었지만 그렇다고 그저 가만히 앉아서 적들에게 잡힐수는 없었다. 급히 왕동무를 옆에 끼고 앞으로 내달으며 나는 소리쳤다.

《동무들, 나를 따르라!》

우리는 팔뚝같은 다래덩굴과 머루덩굴이 얼기설기 막아선 비탈을 마구 내달리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무슨 힘으로 그곳을 뚫고 달리였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야, 백룡아 가지 말아라. 내다!》

돌아보니 뒤에서는 저주롭기 그지없는 변절자가 소리치고있었다. 당장 그 가증스러운 놈을 쏴갈기고싶었으나 그럴 사이가 없었다.

우리가 계속 서지 않고 내닫는것을 보자 적들은 우리의 머리우로 기관총 련발사격을 해왔다. 위협해서 우리들을 사로잡자는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하여 막 달리였다.

그런데 20m앞에 서서 달리던 김철만동무가 획 돌아서서 달려오며 《앞에도 적이 있소!》하고 다급한 소리를 쳤다. 내다보니 적《토벌대》가 누렇게 산릉선을 따라 포위태세를 취하며 달려들고있었다.

이러고보니 우리는 앞으로도 뒤로도 빠져나갈수 없는 막다른 지경에 처하였다.

《마지막탄알이 떨어질 때까지 싸우다가 죽읍시다.》

동무들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죽을바에는 피값이라도 하고 죽자고 각오하였다. 그러나 순간 나는 사령부도 찾지 못하고 헛되이 죽어선 안되겠다고 고쳐 생각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나는 동무들이 추켜든 총을 치며 《절대로 죽어서는 안된다. 끝까지 살아서 사령부를 찾아야 한다. 모두 나를 따르라!》고 웨쳤다.

나는 비호같이 오던 길로 다시 달리였다. 좀전에 달려나오면서 피뜩 본 벼랑이 생각났던것이다.

벼랑은 사태가 나서 생긴것인데 바람벽같이 곧추 100m나 되게 까마득히 뚝 떨어져있었다. 이런 곳으로 사람이 내려갈수 있다고는 꿈에도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기에 적들도 여기에는 포위진을 치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길은 여기 한곳뿐이였다.

요행히 죽지 않으면 살수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눈을 딱 감고 벼랑으로 내리굴렀다. 어찌된 일인지 나는 크게 다친데 없이 바닥에 닿았었다. 물론 전신이 찢기고 터지고 하여 피투성이 되였지만 팔다리도 제대로 놀고 몸에도 큰 상처는 나지 않았다.

나는 툭툭 털고 일어났다. 내 뒤를 따라 굴러떨어진 동무들도 모두 털고 일어났다. 그러나 왕동무만은 없었다. 그는 벼랑으로 굴러내리기 전에 이미 숨이 지고말았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과감한 행동으로 또 하나의 사선을 넘은 우리들은 맞은편 산릉선으로 치달아올라가 앉아 적정을 살피였다.

건너편 벼랑우에서는 자지러지는듯 어지러운 총소리가 계속 울리고있었다. 우리를 앞뒤에서 들이조이던 놈들은 우리가 빠져나간줄도 모르고 서로 맞불질을 하며 제편끼리 개싸움을 벌리였던것이다. 참으로 통쾌하기 그지 없었다.

얼마후에야 제놈들끼리 싸운다는것을 알아차린 놈들은 서로 욕지거리를 하며 시체를 걷어가지고 돌아가버리고말았다.

어둠이 산발을 덮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시금 길을 떠나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일으켰으나 도저히 일어설수가 없었다.

전신은 모두 피투성이가 되고 멍이진데다 몸에는 배낭도 천막도 취사도구도 붙어있는것이란 아무것도 없이 총 한자루씩만이 있었을뿐이였다. 다래덩굴을 헤치고 벼랑을 굴러떨어지는 사이에 모두 잃어버렸던것이다.

맥을 잃고 드러누워 저 멀리 룡정시가쪽에서 반짝이는 전기불을 바라보느라니 마음 한구석에서는 처량한 생각이 떠오르는것이였다.

(사령부는 지금 어디에 있을가? 그이께서는 건강히 계시는지… 넓고 넓은 만주광야 어디를 목표삼아 다시 길을 떠날것인가. 가는 곳마다 원쑤들이 길목을 지키는 삼엄한 적굴속을 어떻게 뚫고나간단 말인가. 오늘도 동지 한사람을 잃었지만 남은 다섯중에 누가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 아닌가.)

밤하늘에 반짝이는 북두칠성과 반짝이는 전기불을 번갈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생각에 휩싸인채 누워있었다.

(그 누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평화롭게 살기를 마다할 사람이 있으랴. 저 전등불밑에서는 따뜻한 가정생활도 벌어지고있을것이고 호의호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이 깊은 밤 인적없는 산속에서 우리들이 이런 고생을 하는줄을 누가 알기나 하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머리를 두손으로 거머잡고 생각을 돌렸다.

(혁명의 길은 간고하지만 결코 그것은 개인의 리익을 바라서나 그 누구에게 잘 보이자고 나선것은 아니다. 누가 알아주건말건 상관할바가 아니다. 삶의 가치, 인간의 행복, 그것을 오로지 혁명의 길에서 찾고 살아도 혁명을 위해 살고 죽어도 혁명을 하다가 죽어야 한다고 결심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으며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순간 나의 머리에는 내가 철들자부터 걸어온 혁명의 길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원쑤들에게 학살된 아버지의 시체를 감장도 못하고 유격대에 입대하던 일, 손에 총을 잡고 험산준령을 넘나들며 원쑤를 족치던 일이 삼삼히 떠올랐다.

(내가 이 엄혹한 길을 걸어온것도 어떤 보수나 공명을 바랐기때문도 아니며 개인의 안락한 생활을 원했기때문도 아니다. 혁명전사로서 오직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자유행복을 위하여 한몸을 바치자는 각오로 이날 이때까지 싸워온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던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동지들! 용기를 내오. 혁명에는 희생도 있는 법이고 곤난도 있는 법이요. 어서 일어나서 우등불을 피웁시다.》

나는 이렇게 동무들을 고무하며 마른나무를 줏기 시작했다. 동무들도 하나둘 일어나서 불피울 차비를 하였다.

얼마후에 우리들은 고깔불을 둘러싸고 모여앉았다. 동무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빛이 어리였으나 아무도 말이 없었다.

《동무들, 힘을 내오. 기어코 사령부를 찾아갑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정세가 복잡할수록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고 곤난한 지경에 처할수록 더욱 용감히 싸워야 한다고 우리를 가르치시지 않았소. 제아무리 적들이 산이란 산을 다 타고 앉아서 우리의 길목을 지킨다고 해도, 제아무리 부락마다에 밀정을 박아놓고 우리를 노린다 해도 우리가 빠져나갈 구멍은 반드시 있을것이요. 문제는 우리가 사령부두리에 하나로 굳게 뭉쳐 얼마나 용감하게 싸워나가는가에 달려있소.》

나는 이렇게 동무들에게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모든 동무들이 사령부를 찾아가자는데는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다만 적들의 삼엄한 경계망과 포위진을 어떻게 뚫고나가는가가 문제였다.

나는 대담하게 큰길과 도시로 붙어가는것이 얼핏 보기에는 위험할것 같지만 도리여 안전할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동무들은 처음에 의아해하였으나 상세한 설명을 듣고나서는 모두 찬성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먼저 식량부터 해결하여야 하였다. 나는 그날밤 김혁철동무에게 총을 넘겨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동무가 일시적인 동요를 극복하고 혁명의 길로 확신성있게 나선것을 믿기에 무장을 도로 메우기로 했소.》

이 말을 듣는 혁철동무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눈물만 뚝뚝 떨구었다.

이튿날 밤 우리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재인강 산재부락으로 행군해갔다.

우리는 예정한대로 대담하게 큰길로 내려갔다.

마을돌이를 가는 두 청년을 만나서 마을정형을 물어보자 아래마을 려관집에 밤마다 사람들이 모인다는것이였다.

나는 대담하게 이 려관집에 들어가서 식량을 해결할것을 결심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모험적인 행동이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그때의 처지에서는 이러한 기발하고 대담한 행동을 취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밤 12시경에 우리는 려관집으로 다가가 주인을 찾았다.

그런데 방안에서는 수상한 말소리들이 나며 좀처럼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정황이 있는것만은 사실이였다.

동무들에게 경각성을 바싹 높이라고 이른 다음 나는 문을 힘껏 두드리며 《빨리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주인이 황황히 달려나오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이 일을 어찌합니까. 지금 방안에 경찰이 15명이나 와있는데요.》

주인은 대뜸 우리가 인민혁명군이라는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였다.

《일없다. 들어가서 빨리 불을 켜라!》

나는 려관집주인에게 엄하게 명령하였다.

나는 차라리 잘되였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놈들을 무장해제하고 그 소지품을 로획한 다음 산으로 적들을 유인해놓고 큰길로 빠지면 적들을 일층 혼란에 빠뜨릴수 있기때문이였다.

급한 때일수록 침착하고 대담해야 하는 법이다. 우리는 비록 소수이지만 대담하고 민활하게 행동한다면 적을 능히 타승할수 있을것이였다.

주인은 불길이 이는것 같은 나의 눈길에 질겁하여 황급히 집안으로 되돌아 들어갔다. 그러나 경찰놈들이 막아서는 모양인지 불은 인차 켜지지 않았다.

우리는 문들에 총을 들이대고 사격태세를 취하는 동시에 떠들썩하게 엄포를 놓았다.

《전련병, 7련대장과 8련대장을 오라고 하라!》

그러자 김철만동무가 《네》하고 뛰는 시늉을 하였다.

《경위중대! 작탄칠 준비를 하라!》

나는 또 이렇게 큰소리를 쳤다.

듣기에도 금시에 큰 변이 날듯 한 기세에 압도된 경찰놈들은 제발 쏘지 말아달라고 급해맞은 소리를 하면서 불을 켰다.

《그럼 누가 책임자인지 당장 밖으로 나오라!》

내가 이렇게 웨치자 이윽고 키가 훨씬 큰 위만경찰대장놈이 나오더니 허리를 굽신거리며 《수고하십니다.》라고 하였다.

《좋다. 우리는 너희들을 치지 않을테니 총을 모두 걷어서 방구석에 세우라!》

나는 이렇게 경찰대장에게 호령하고 한천추동무와 김철만동무에게 눈짓을 하였다. 그들은 집 뒤문쪽으로 갔다. 경찰대장은 우리가 대부대인줄 알고 벌벌 떨며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총을 모두 구석에 모아세웠다.

뒤문으로 들어간 동무들이 그것을 차지하였다. 김혁철동무에게는 보초를 서게 하였는데 지나가는 자동차는 그저 지내보내고 멈춰서려고 하는 자동차만 갈기라고 일렀다. 나는 싸창을 빼들고 방안에 들어가서 총을 모두 내여다 김혁철동무에게 주면서 부러뜨리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려관집주인에게 빨리 《가재탕》을 만들라고 이른 다음 위만경찰들을 모여앉히였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인민들이 어떻게 일제놈들에게서 압박을 받는가를 말해주면서 자기 민족과 인민을 배반하는 경찰의 죄상이 얼마나 치욕스러운가를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는 저녁을 배불리 먹은 다음 위만경찰들에게 옷을 벗으라고 호령했다. 경찰대장놈은 옷까지 벗기고 가는 날에는 《모가지가 달아난다.》고 하면서 애걸복걸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놈의 사정을 들어줄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중대장! 이놈을 총살하라!》

이렇게 내가 소리를 지르자 경찰대장은 벌벌 떨며 라사외투며 털내의, 털양말에 소가죽구두를 벗어놓았다.

나는 그자의 내의, 신발 등을 다 갈아입고 신은 다음 《이 옷은 일제놈이 준것이니 우리가 몰수하는것이 응당하지 않는가.》고 하였다.

경찰놈들은 하는수 없이 다 찢어지고 더러워진 우리의 옷을 바꾸어입었다.

우리들은 마당에 쌓아놓은 그들의 군량중에서 흰쌀 6포대를 자루에 나누어넣어 위만경찰들에게 지워가지고 길을 떠났다. 우리도 량껏 쌀을 지고걸었다. 이곳으로 말하면 적들의 《토벌》중심지인 로두구에서 불과 50리 떨어진 곳이였다. 이러고 보니 우리의 행처를 감추는것이 큰 문제였다. 나는 우리의 발자국을 산으로 내놓고 정반대방향인 큰길로 빠질 작정을 하고 오도양차쪽으로 릉선을 타고 올라갔다. 오도양차 남쪽에 다달으면 위만경찰들을 돌려보내야겠는데 놈들에게 우리의 수가 적다는것이 폭로되지 말아야 했다.

나는 생각하던 끝에 큰소리로 김철만동무를 부르며 말했다.

《전령병, 올라가서 1중대동무들을 오라고 하라. 경찰들이 발이 얼것 같으니 이젠 돌려보내야 하겠다.》

눈치빠른 김철만동무는 《네!》하고 산우로 달려올라가다가 경찰들이 안보이게 되자 숨어버리였다.

《1중대가 오면 그 짐을 지고갈것이니 당신들은 집에 돌아가라. 돌아간 다음에 다시는 일제놈의 사냥개가 되여서는 안된다.》

나는 위만경찰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그들은 너무도 황공하여 백배사례하고 돌아갔다.

위만경찰들을 보내고나니 저도 모르게 숨이 후 하고 나갔다. 돌이켜 생각하여도 그런 대담성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자신으로서도 놀라울 지경이였다.

불과 다섯사람의 힘으로 3배나 되는 적을 무장해제하는 이런 대담한 행동은 보통때는 감히 생각할수도 없는 일이다. 일편단심 사령부에로 지향하는 우리의 뜨거운 마음이 그 어떤 역경속도 뚫고 전진하는 무서운 힘을 내게 한것이였다.

우리는 그자리에다 쌀 네포대를 묻고 두포대는 갈라지고 약 5리를 더 올라와서 아침밥을 해먹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에야 적《토벌대》들이 우리뒤를 쫓아올라왔다.

우리는 적들의 총알에 맞지 않을 바위등에 올라앉아서 유유히 담배를 피우며 적을 놀려주었다. 놈들은 어이가 없는지 멍청히 올려다보다가 하는수없이 돌아가버리고말았다.

사실 따라와봤댔자 죽도록 골탕이나 먹었지 별도리가 없는것이다.

우리들은 발자국을 오도양차쪽 길에 붙여놓은 다음 그날밤으로 자취를 감추고 다시 재인강가의 큰길로 떨어졌다.

아무리 교활한 적들이라 하여도 우리가 놈들을 친 바로 그자리로 되돌아오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것이다. 아마도 보름동안은 놈들이 오도양차일대에서 우리를 찾느라고 헤맬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바로 적의 소굴안으로 행군해간다는것이 오히려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들은 싸창을 빼들고 대담하게 로두구로 통하는 자동차길로 걸었다.

자동차나 사람이 오면 길옆의 눈속에 납작 엎디여 지내보내고는 다시 걷군 하였다.

우리는 또 발자국을 메우면서 산에 올라가서 몸을 감추었다.

우리는 이렇게 큰길로 가다가는 숨고 숨었다가는 또 가고 하며 연길현일대를 맴돌았다. 이렇게 적의 턱밑으로 기여들어 활동하는 과정에 시시각각으로 위험에 부딪치고 아슬아슬한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령부를 찾아가는 길에서 있은 사실가운데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것은 행군도중에 불시에 한천추동무가 축급증(쫄라병)에 걸려 우리 일행이 곤경을 겪던 일이다.

《난 못가겠다! 이젠 난 죽는다!》

그때 한천추동무의 사지는 가드라져붙어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우리는 그를 부둥켜안고 어쩔바를 몰라했다.

참으로 앞이 캄캄해지는것이였다.

그곳은 연길현 다비거우부근의 큰길옆인데 큰 집단부락도 가까왔기때문에 한시바삐 빠져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온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났으니 어떻게 하겠는가. … 밀림속같으면 담가를 만들어서 들고갈수도 있었지만 도시주변을 민활하게 빠져나가야 하는 우리의 형편으로서는 그럴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원쑤들이 무시로 싸다니는 이곳에 환자를 떨구어둘수도 없었다.

데리고가자니 일행이 다 위험하고 떨구어두자니 동지가 불쌍하였다.

《동무들, 날 이곳에 버리고 가주오. 난 차라리 죽어서라도 동무들과 같이 사령부로 가고싶소.》

한천추동무는 애타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지켜볼뿐 속수무책이였다.

《동무들, 왜 그러고들 있는가. 혁명임무가 더 중요하지 않는가. 빨리 나를 쏴달라!》

한천추동무는 다시 간청했다.

(이런 때에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좋은가. 혁명을 위해서는 개인을 희생할것을 각오해야 한다는것이 혁명의 원칙인것만 사실이다. 그렇다고 혁명의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랑하는 혁명동지를 감히 쏠수야 없지 않는가.)

우리는 사지를 가드라붙이고 떠는 동지를 묵묵히 부둥켜안고 돌아앉아 주물러줄뿐 다른 말을 하지 못하였다.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만 갔다.

《련대장동무, 어찌겠소.…》

누군가가 한숨섞인 말로 이렇게 한마디 하였다.

한순간도 주저하거나 지체할수 없는 지경에서 만일 급병에 걸려 신음하는 혁명동지를 남겨두고 간다면 그는 틀림없이 놈들에게 체포되여 악형을 당할것이 뻔하였다. 그렇다고 본인의 요구대로 그를 희생시킨다는것은 차마 할수 없는 일이였다.

나는 와락 달려들어 한천추동무를 부둥켜안고 그만 흐느껴울었다.

《천추야 죽어도 같이 죽자! 차마 어떻게 너를 쏜단 말인가.》

동무들도 달려들어 그를 그러안고 울었다.

한덩어리가 되여 흐느끼는 우리 다섯사람의 가슴에서는 동지에 대한 가장 숭고한 사랑이 끓어번지고있었다.

혁명동지ㅡ이것은 얼마나 귀중한 말인가. 누구에게나 한피줄을 이은 부모형제와 친척 등 가깝고 귀중한 사람들이 있지만 혁명동지같이 귀중한것은 이 세상에 없다. 혁명의 한길에서 생사운명을 같이하고 싸우며 서로 돕고 아끼고 돌보며 이끌어주는 혁명동지에 대한 의리를 그 무엇에 비길수 있겠는가.

우리는 혁명동지를 위하여 자기의 한목숨을 서슴없이 바치는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들은 뜨거워오는 가슴으로 앓는 동무의 자리를 해주고 자기 체온으로라도 그를 덥혀주기 위하여 애썼다.

묘지에 덮인 마른잔디를 뜯어다 자리에 깔아주고 저고리를 벗어 덮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한사람이 팔다리 하나씩을 맡아가지고 밤새껏 주물러주었다.

어느덧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동무들, 오늘은 모두 최후를 각오하오. 빨리 환자에게 미음을 끓여먹이고 모두 눈을 파고 엎디여 까딱하지 마시오.》

나는 비장한 목소리로 동무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날이 밝자 함박눈이 내리고 날씨는 한결 푸근해졌다.

우리는 배밀이로 기여다니며 졸가리나무를 해다가 고깔불을 피우고 미음을 한소래 쑤어서 환자에게 마시게 하였다.

이러고나니 다행히도 가드라붙었던 한천추동무의 팔다리는 조금씩 펴지기 시작하였다.

저녁때가 되면서는 발을 제대로 놀릴수 있게까지 되였다. 모두 환성을 올리며 기뻐들했다.

무서운 하루도 그럭저럭 무사히 지나 날이 저물었다. 우리는 비로소 안도의 긴숨을 내쉬며 환자를 부축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연길, 왕청, 훈춘의 적소굴을 끼고돌며 두달, 어찌 위험과 곤난이 이에만 그쳤겠는가.…

우리는 때로는 적의 경찰로, 특무로 가장해서 위험을 모면하기도 했고 개짖는 소리, 노루 우는 소리를 내며 적의 보초선을 넘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하여 오래동안 헤매던 끝에 마침내 사령부를 찾아내고야말았던것이다.

사령관동지의 건강한 모습을 다시 뵈왔을 때의 감격, 이것을 그 무엇에 비기며 어떻게 표현하랴.

《동무들, 참 장하오!》

만면에 웃음을 띄우시며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시였다.

사령부에서는 그동안 우리에게 통신원을 보내였지만 도중에서 헛갈리여 줄곧 우리를 걱정하며 찾았다는것이였다.

《혁명가란 절해고도에 홀로 떨어져있어도 그렇게 굴함없이 싸워이길줄 알아야 하오.》

그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을 때 우리들은 혁명하는 사람의 긍지를 더욱 깊이 느낄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를 회상할 때마다 량심의 가책을 받을 때가 많다.

(어떠한 곤난도 난관도 마음의 아픔도 꿋꿋이 이겨가며 오직 한마음 사령부를 찾아가던 그때의 심정대로 오늘도 일하고있는가?)고.

오직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필승의 신념을 견지하며 일편단심 당과 수령의 가르침을 받들고 그 주위에 강철같이 하나로 뭉쳐 전진할 때 그 혁명대오는 불패의것이며 반드시 승리할수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정세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우리앞에 어렵고도 복잡한 혁명과업이 제기되면 될수록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승리에 대한 신심을 더욱 굳게 간직하고 우리 당과 수령의 주위에 한결같이 뭉치여 더욱 용감하고 힘차게 싸워나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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