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아를 똑똑히 가려내여

 

적아를 똑똑히 가려내여

 

박   성   철                       

 

우리는 총탄으로 적을 죽이는것만으로는 적을 타승할수 없습니다.

전체 조중인민은 물론 적군내 병사대중까지도 우리의 불구대천의 원쑤인 일제에 대한 증오심과 항일구국사상을 가지도록 선동하여 그들로 하여금 항일구국위업에 총궐기할 태세를 갖추도록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교시는 유격투쟁에 있어서 우리들의 지침으로 되였다.

우리는 위만군, 경찰대, 기타 형형색색의 적무장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영향을 주어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도록 부단히 정치공작을 진행함으로써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군 했다.

림강현 묘령전투는 적군와해공작에 대한 사령관동지의 교시에 립각하여 적에게 큰 타격을 준 전투중의 하나이다.

1937년 8월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친솔하신 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간삼봉전투에서 승리하고 림강쪽으로 행군하고있었다.

이때 묘령근방에서 활동하고있던 아군부대에서 긴급한 련락이 왔다.

그 내용인즉 이러했다.

문붕상동무가 인솔한 소부대는 일정한 기간 묘령밀영에 머물러있으면서 그곳에서 약 40리 떨어진 무송ㅡ림강간의 대도로주변에 주둔하고있는 위만군 1개 대대(약 500명)에 대한 와해공작을 진행하고있었다.

적군속에는 아군부대에 반변해 넘어와 정치적영향을 받고 다시 자기 부대로 돌아간 유동무도 있었다.

우리의 공작이 추진된 결과 적군병사들속에서는 이미 적지 않은 동요가 일어나고있었다.

그러나 일본지도관과 장교놈들의 폭압과 아직 각성되지 못한 일부 병사들의 우유부단한 태도로 인하여 적을 반변시킬 우리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고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비밀이 드러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정황이 이렇게 급전되자 문붕상동무는 적을 불의에 습격하여 무장을 해제할 결심을 하고 사령관동지께 얼마간의 인원을 증강하여주실것을 제기해왔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보고를 들으시고 내가 속한 중대원들에게 전투임무와 함께 주의할 사항에 대하여 상세히 가르쳐주시면서 곧 출발하라고 명령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특히 이번 전투는 다른 전투와는 달리 위만군을 감쪽같이 포위한 다음 정치선동으로 적내부를 와해시켜 그들로 하여금 우리와 함께 항일의 길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따라서 사격은 어디까지나 위협사격이 되여야 하며 피치못할 경우라 할지라도 악질적인 놈들과 경향이 좋은 병사들을 똑똑히 구분하여 사격해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는 놈들은 용서없이 소멸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중대를 인솔하고 묘령밀영을 향해 떠났다.

밀영에 도착한 우리는 그곳 동무들과 함께 곧 적을 습격할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이때 유동무로부터 빠른 시일내에 유격대가 적을 친다면 그때를 기회로 반변을 일으킬수 있다는 련락이 왔다.

우리가 진공할 날자와 시간은 적군내에 파견된 우리 공작원들이 보초를 서는 기회를 리용하기로 하였다.

어느날 새벽 3시경.

우리(2개 중대, 인원은 약 150명)는 적병영을 향해 밀영을 떠났다.

위만군주둔지역에 은밀히 접근한 우리는 적보초소근방을 주의깊게 살피면서 이미 약속한 유동무의 신호를 기다리고있었다.

얼마후에 적병실문이 열리더니 위만군병사(공작원) 한명이 정문보초실 밖으로 나왔다. 잠시 주위를 살피던 그는 두팔을 하늘높이 펴며 기지개를 했다. 그는 이렇게 두번 반복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이때 정문가까이에 매복하고있던 우리 대원 한 동무가 유격대가 도착했음을 그에게 신호하였다.

그러자 위만군병사(공작원)는 다시한번 주변을 살피고 우리에게로 급히 달려왔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2개 중대는 전날 밤에 《토벌》하러 나갔고 현재 남아있는것은 2개 중대 인원 약 300명인데 그중에는 반변을 거부하는자들이 대부분이라는것이였다. 그리고 현재 보초근무를 서고있는 21명은 모두 유격대에 넘어오기로 약속된 사람들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20리밖에 방차대를 내보내고 적병영 뒤쪽에 엄호조를 배치하였다.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정문안으로 들어간 우리들은 각기 자기 맡은 병영을 물샐틈없이 포위하였다.

이때 나는 몇명의 대원들과 함께 우측병영으로 접근하여 창문에 경기관총을 들이밀고 함화를 웨쳤다.

《우리는 중국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무기를 바치면 살려준다!》

마음놓고 자다가 벼락을 맞은 적들은 어찌할바를 몰라 벌벌 떨고만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무장을 몽땅 해제하였다.

그런데 이때 좌측병영쪽에서 총소리가 났다.

순찰나왔던 적병 한놈이 좌측병영입구에 다가서는 우리 동무들을 보고 얼결에 총질을 했던것이다.

아직 습격당하지 않은 병영들에서 자던 놈들이 이 총성을 듣고 깨여나 소란을 일으켰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우리는 총을 쏘지 않고 함화공작으로 적들을 투항시키려던 초기의 계획을 급히 변경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군경기관총수들은 재빨리 적병실에 대고 위협사격을 들이댔다. 거침없이 나가는 기관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사격소리에 겁을 먹은 적들은 옷도 입지 못한채 내의바람으로 어쩔바를 몰라 돌아쳤다.

《총을 놓고 투항해라! 우리는 중국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 동무들이 연방 함화를 웨쳤다.

이런 혼잡한 틈을 리용하여 악질적인 장교놈들과 일부 병사들은 저항해보려고 총을 들고 헤덤볐다.

이럴 때 이미 우리에게로 넘어온 적군병사들이 자기 동료들에게 함화를 웨쳤다.

《모두다 우리들처럼 유격대편으로 넘어오라!

유격대는 너희들을 죽이지 않는다!

우리의 원쑤는 왜놈들이다!

어서 손들고 반변해 넘어오라!》

그러자 약 80명의 위만군병사들이 흰내의바람으로 황황히 손들고 나왔다.

이럴 때 우리 동무들은 병실 바람벽에 난 뚫어진 구멍으로 중기관총 총신이 불쑥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는것을 얼핏 보았다. 잠시후 그곳에서는 쿵! 쿵! 하고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좁은 그 구멍을 더 넓혀 그곳으로 중기관총 총신을 내밀고 우리에게 끝까지 대항해나서려는 놈들의 어리석은 행동이 틀림없었다.

이것을 알아차린 우리 동무들의 가슴속에서는 원쑤에 대한 적개심이 무섭게 솟구쳐올랐다.

우리는 끝까지 대항하는 놈들은 용서없이 소멸하라는 사령관동지의 교시를 되새기면서 총구를 돌려 그놈들을 겨누었다.

경기관총의 세찬 불길이 그 구멍을 찾아 뻗어나갔고 보총탄알들이 병영의 들창을 짓부시며 바람벽을 꿰고 들어갔다.

원쑤놈들은 찍소리 하나 못지르고 너부러졌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때 병영안에는 일본지도관놈을 따라왔던 악질적인 《별동대》놈들이 일부 남아있으면서 발악적으로 저항해나섰던것이다.

병실안에서 떨고있던 적들은 제놈들이 쓰러지는것을 보고 그때야 정신을 차렸던지 모두 엉거주춤 손을 들고 병영밖으로 걸어나왔다.

우리들은 그들에게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면서 조중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 일제를 반대하여 싸워야 한다는것을 해설해주었다.

우리 대원들의 선전에 감동된 대다수의 위만군병사들은 자기의 죄과를 뉘우치면서 우리와 손을 잡고 일제를 반대하여 싸울것을 다짐했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박격포 1문과 중기관총 1문, 경기관총 3정, 보총 200여정, 탄알 수만발을 로획하였으며 흰쌀, 밀가루 3,000여포대를 로획하였다.

전리품을 다 정리하고 우리는 많은 량의 량식과 피복들을 굶주림에 허덕이는 인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투항한 병사들에게 로비까지 주어 자기 고향으로 돌려보내였다.

반변해나온 21명과 기타 우리와 같이 일제를 반대하여나서는 병사들에게는 무기를 주어 투쟁대렬에 참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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