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개의 가루봉지에 깃든 사랑

 

쉰개의 가루봉지에 깃든 사랑

                                                      

  리   을   설                 

 

1940년 가을부터 오백룡동지가 책임진 소부대가 사령부와 련락이 끊어져서 모진 고생을 하며 사령부를 찾아헤매던 바로 그때에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친솔하에 활동하고있었다. 그러기에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그들때문에 얼마나 근심하시였으며 얼마나 안타까이 가슴을 태우며 그들을 찾으려고 애쓰시였는가를 잘 알고있다.

우리 속담에 《자식들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절반만큼 부모를 생각해도 효자》라고 하였지만 실로 사령관동지께서 대원들을 생각하시는 마음은 부모들이 자식을 생각하는것보다 더 깊고 뜨거웠다는것을 나는 말하고싶다.

그것은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과 따뜻한 보살피심을 받으면서 혁명사업을 해온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체험하고 또 실제로 목격한 일도 많기때문이다.

나는 그 무수한 사실들을 일일이 여기에 다 적을수는 없다.

여기서는 다만 1940년 가을에 있은 한가지 사실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때 오백룡동지의 소부대를 비롯한 많은 소부대를 각지에 내보내시고 다만 몇명의 전령병, 기관총소대 일부 성원들을 데리고 활동하시였다. 그때 나는 기관총소대성원의 한사람이였다. 당시 사령부와 떨어져서 활동하는 동무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였지만 이처럼 적은 인원으로 원쑤들이 집중되여있는 화룡일대에서 활동하는 사령부의 곤난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더우기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어려운 속에서 우리 어린 전령병, 기관총소대성원들을 보살피시는 한편 여러곳에 나가서 활동하는 소부대들의 안부를 걱정하시며 소부대들에 통신원을 보내시고 또 그 소식을 기다리느라고 밤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오백룡동지의 소부대와 미리 약속해두었던 련락장소에 파견한 통신원이 적의 《토벌대》와 맞다들어 그만 련락을 맺지 못한채 희생되였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사령부와 소부대와의 련락이 끊어지고말았다.
 이때 깊은 근심으로 안색이 흐려지신 사령관동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송구스러웠는지 모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백룡동지의 소부대를 찾으려고 그후에도 여러번 통신원들을 사처에 띄우시며 무척 애를 쓰시였다. 그러나 번번이 통신원들은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유격대에서는 서로 만날 장소와 시간이 어긋나면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령관동지의 존안에는 날이 갈수록 근심의 빛이 더욱 짙어갔다.
 어린 자식을 잃고 그 행처를 몰라 가슴을 태우는 어머니의 심정에 비길수 없는 절절한 사랑과 괴로움의 빛을 우리는 그분의 안색에서 엿볼수 있었다.
 아무리 고생을 하고 위험하더라도 서로 소식이나 알면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러나 서로 헤여져 소식조차 모르고보면 별별 근심걱정이 다 생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백룡동지의 소부대원들을 걱정하시여 밤에도 깊이 잠들지 못하시였고 끼니도 드는둥마는둥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느날 우리가 처창즈치기의 숙영지를 떠날 때 우등불자리에 식량과 새로 지은 겨울옷을 묻으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면서도 물건들이 상하지 않게 잘 싸서 묻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아마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자고 그러시는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는 누구에게라 없이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이 동무들이 꼭 찾아올것이요. 소부대로 활동을 하느라고 의복인들 오죽 헐고 배인들 얼마나 곯겠소.》
 이 말씀을 든는 순간 우리의 목은 그만 뜨거운것으로 꽉 메였다.
 소식이 끊어진 소부대원들을 생각하시여 우등불자리에 쌀과 옷을 묻으라고 하신 그이의 어버이심정의 깊이를 어찌 다 헤아릴수가 있겠는가. 언제 돌아올지 모를 자식을 먹이자고 밑창이 드러난 쌀독에서 그래도 한홉, 두홉 쌀을 모아 따로 간직해두던 지난날의 많은 조선의 어머니들의 심정과 사랑인들 이보다 더하였겠는가.
 우리들은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쌀과 옷을 묻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그곳을 떠나갔다.
 원쑤들이 유격대를 《소멸》해보자고 전력을 모아 달려드는 백두산동북부일대에서 소부대성원으로 활동하자니 걸음마다 위험과 곤난이 겹치였다.
 어려운 싸움으로 적의 포위망을 뚫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고 며칠씩 굶기가 일쑤였다.
 우리들이야 굶은들 어떠하랴만 사령관동지께마저 며칠씩 끼니를 대접해드리지 못하는 괴로움과 가슴아픔을 참을수 없었다.
 어떻게 하든지 사령관동지께만이라도 끼니를 대접해야 하겠다는 한 생각으로 산짐승이라도 만났으면 했다. 그러던 차에 어느날 우리는 몸보신에 좋은 희귀한 산짐승 한마리를 만나게 되였다.
 그러나 너무 굶은 탓으로 바로 겨냥을 하기가 힘들었다. 정신을 가다듬으면 그놈이 보이다가도 곧 눈앞이 흐려지며 검은것이 얼른거릴뿐이였다.
 그래도 나는 눈정기를 가다듬어 그놈을 따라가며 면바로 쏘아잡고야말았다.
 굉장히 큰놈이였다. 워낙 허기증으로 맥을 못추던 때라 우리는 세사람이 달려들어서 겨우 그놈을 숙영지로 메여다놓고 오래간만에 고기국을 끓이려고 서둘렀다.
 며칠동안 그 고기로 끼니를 에울수 있게 되였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은 여간 기쁘지 않았다.
 사실 여러날 굶던 끝에 산짐승을 잡았으니 먹지 않고도 배가 부른상싶었다.
 저녁준비가 다 되자 우리는 천막앞에 둘러앉아 사령관동지께서 먼저 드실 때를 기다렸다.
 《오백룡동무네는 어디 가서 끼니나 제대로 에우는지.…》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혼자말씀처럼 하시고나서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국 한그릇을 놓고도 같이 못드는것을 안타까와하시는 그이의 뜨거운 사랑을 생각할수록 우리는 감격을 금할수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윽하여 남은 고기를 모두 말리여 가루로 만들라고 하시였다.
 우리들은 저녁을 끝내자 곧 남은 고기를 얄팍얄팍하게 썰어서 싸리꼬챙이에 꿰여 우등불두리에 꽂아 말리였다. 우리는 고기점들이 바삭바삭 마른 다음 그것을 비비여 가루를 만들어 통채로 싸서 자루안에 넣으려고 하였다.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그것을 한자루에 넣을것이 아니라 얼마만 한 몫으로 고루 나누어 따로따로 종이에 싸라고 하시였다.
 우리들은 사령관동지의 말씀대로 종이봉지를 만들어서 고기가루를 똑같이 나누어 넣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의아한 감이 없지 않았다.
 (왜 한자루에 넣어도 좋을것을 따로따로 나누어 싸라고 하실가? 이렇게 나누어 싸서는 무엇에 쓰시려고 그러시는가?)
 우리는 이런 궁금한 생각이 들어 봉지를 다 만들고나서도 사령관동지만 쳐다보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봉지가 다 만들어지자 우리 대원들에게 그것을 하나씩 나누어주시고나서 나머지 쉰개의 봉지를 앞에 놓고 붓을 가져오게 하시였다.
 우리들은 사령관동지의 두리에 빙 둘러서서 무엇을 쓰시려는지 궁금도 하고 흥미도 있어 붓끝을 주시하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한봉지한봉지에다가 련락이 끊어진 소부대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써나가시는것이였다.
 봉지 하나하나에 또박또박 쓰시는데 따라 소부대동무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읽고있는 우리들의 가슴은 뭉클해졌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쉰명의 이름을 다 쓰시고난 다음 나를 부르시며 말씀하시였다.
 《이것을 잘 건사해가지고 다니다가 오백룡동무네 소부대를 만나면 주도록 합시다.》
 나는 그만 목이 메여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 어려운 형편에서도 소식조차 모르는 대원들 한사람한사람을 다 자식처럼 잊지 않고 귀중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그것이 매 소부대원들에게 닿도록 하시려는 생각에서 가루봉지에 일일이 이름까지 적어두시는 사령관동지의 대원들에 대한 깊은 사랑을 무엇에 비기겠는가!
 사령부를 찾아 헤매던 오백룡동지의 소부대성원들이 숙영지에 식량과 옷을 묻어두신 사령관동지의 깊은 은정에 감격하여 모두 울었다고 하지만 그들 몫으로 따로 마련해둔 가루봉지에 깃들어있는 이 깊은 사연에 대해서는 다는 알지 못했을것이다.
 아무리 자식의 효성이 지극하다 해도 부모의 깊은 사랑을 다 헤아릴수 없듯이 사령관동지의 그 뜨거운 사랑과 보살피심을 그 누가 다 헤아릴수 있었겠는가.
 나는 가슴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사령관동지! 사령관동지의 혁명전사된 행복과 영예를 간직하고 사령관동지께서 가리키시는 혁명의 한길에서 모든것을 다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라고 거듭거듭 마음속으로 맹세를 다지였다. 그리고나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는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는 귀중한 쉰개의 가루봉지 하나하나를 배낭속에 차곡차곡 넣었다.
 불과 두홉이 될가말가하는 고기가루봉지였지만 거기에 담긴 깊은 은정, 뜨거운 사랑-어찌 그 값을 천근만근의 황금에 비기며 그 깊이와 높이를 어찌 바다와 산에 비길수 있겠는가!
 바로 사령관동지의 그 뜨거운 사랑과 은정이 있고 그이의 따뜻한 손길이 잇닿아있기에 우리 모두가 진정한 혁명가로 어엿하게 자라날수 있었다.
 바로 그 사랑, 그 손길이 잇닿아있기에 오백룡동지의 소부대원들이 사령부의 행처를 잃고 그처럼 피흘리며 굶주리며 쓰러지면서도 굴하지 않고 끝내 사령부를 찾아올수 있었던것이다.
 오백룡동지의 소부대가 불속을 뚫고
사선을 헤치며 한겨울 무서운 고생을 하던 그 어려운 때에 사령부인들 어찌 고생하지 않았겠는가.
 매일과 같이 적의 추격을 받으며 화룡의 산발을 헤가르지 않으면 안되였고 때로는 며칠씩 끼니를 번지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굶어쓰러지면서도, 불속을 뚫고 죽음의 고비를 넘고넘는 그 어려운 순간에도 가루봉지를 다칠세라 소중히 건사하고 다니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어려운 정황속에서도 항상 그 가루봉지를 채근해보시였고 때로는 그것을 해빛에 말리고 손질해서 건사하라고 당부하기도 하시였다.
 생사를 가늠하기 어려운 그 어렵고 복잡한 속에서도 소부대원들을 생각하시여 이토록 걱정하시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들이 꼭 돌아오리라 믿으시는 사령관동지의 이 사랑, 이 믿음속에 바로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불패의 힘이 있었던것이다.
 나는 지금도 쉰개의 가루봉지를 지고다니던 때의 일을 회상하느라면 그에 깃든 높은 뜻을 생각하게 된다.
 쉰개의 가루봉지-그것은 한끼를 에울 정도에 지나지 않는 적은 량이였으나 거기에 깃든 뜻은 한량없이 깊었던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지고다니는 동안 언제나 사령관동지를 우러러보며 소부대동무들이 우리와 같이 숨쉬고 같이 싸우고있다는것을 심장으로 느끼였으며 우리 대오는 항상 승리에로 이끄시는 사령관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과 의지로 굳게 뭉친 혁명대오라는것을 잠시도 잊지 않았다.
 쉰개의 가루봉지-그것은 말없는 가운데 우리들을 혁명적의리로 교양하며 사상의지적으로 튼튼히 묶어세우는 혁명적량식이였다.
 바로 이와 같이 사령관동지의 어버이사랑과 혁명적의리, 끊을수 없는 동지적우의로 뭉친 단결만이 우리들로 하여금 어떠한 풍파도 뚫고나갈수 있는 위력을 발휘하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그때와 다름없이 아래일군들과 혁명군중을 극진히 사랑하시며 혁명의 길로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공장과 농촌에 나가시든지 로동자들과 협동농장원들의 합숙과 주택을 찾으시여 걸리고 맺힌 문제들을 일일이 풀어주시고 인민군부대들에 나가시면 병사들의 식당과 침실을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생활을 살뜰히 보살피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우리 혁명대오를 당과 수령의 주위에 철통같이 묶어세우기 위하여 더욱 힘써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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