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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의 통로에 매복하여
김 익 현
1938년 여름에 있은 일이다. 당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적의도를 높이 받들고 통화를 중심으로 남만일대에서 활동하고있던 우리 부대는 집안현 원즈거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밀림속에 숙영하고있었다. 어느날 우리는 위만군부대(700여명)가 일본지도관놈의 인솔하에 원즈거우 집단부락에 들어 휴식하고있다는 정보를 받았다. 지휘부에서는 정찰을 하여 부락안의 적정을 확인하는 한편 적의 군용전화를 도청하여 그놈들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탐지하도록 하였다. 정찰자료에 의하면 다음날 적들은 원즈거우 집단부락에서 약 40리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한다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유격대의 전투형식중에서 가장 적합하고 보편적인 전투형식을 매복전이라고 간주하시고 항일무장투쟁의 전행정에 매복전을 널리 활용하도록 하시였다. 지휘부에서는 적들을 앞질러 유리한 지점에 매복하였다가 놈들을 불의에 소멸할것을 계획하였다. 우리는 그날밤으로 적들이 통과할 큰 령밑에 매복진을 쳤다. 지휘부에서는 적과의 전투가 벌어질 때 있을수 있는 모든 정황을 미리 예견하고 부대배치에 있어서 길 좌측 산릉선에 기본주력을 배치하고 개천너머에는 인원을 배치하지 않았다. 내가 속한 1중대는 매복구간의 맨 익측에 있었고 지휘부는 길 북쪽 산릉선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기관총을 가진 한개 분대는 기본주력이 위치한 곳에서 집안현쪽으로 약 2km 떨어진 산굽인돌이에 배치되였다. 이들의 임무는 일단 전투가 벌어질 때 적들의 퇴각로를 차단하고 도주하는놈들을 소멸하며 적의 후속부대의 접근을 불허하는것이였다. 어느덧 날이 훤히 밝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숨소리마저 죽여가면서 사소한 징후라도 놓칠세라 예리하게 놈들이 나타날 산굽인돌이를 주시하고있었다. 그러나 한낮이 지나도록 적은 좀체로 나타나지 않았다. 한자리에 꼼짝 안하고 여러 시간을 엎드려있기란 여간만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였다. 더구나 나는 아직 이런 매복전투에 숙련되지 못한 탓으로 하여 남달리 팔다리가 더 저려드는것만 같았고 답답증이 나서 잠시도 참기 어려웠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자주 지휘부쪽을 바라보군 하였다. 혹시 새로운 대책이라도 취하여지지 않을가 해서였다. 그런데 이때 내곁에 있는 한 동무가 학습장을 꺼내들고 글을 보고있는것이 나무숲사이로 보였다. 적을 기다리면서 모두 침착하게 학습을 하는데 나혼자만 초조감에 싸여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지나치게 긴장하여 잠시나마 귀중한 시간을 헛되게 보낸 자신을 거듭 뉘우쳤다. 사실 행군과 전투가 일과나 다름없는 우리 유격대원들에게 있어서 학습할 시간이란 따로 없었다. 특히 이때는 우리가 언제 나타날지 모를 적을 오랜시간 인내성있게 기다려야 하느니만큼 경계근무조직만 잘 한다면 얼마든지 학습할 시간이 있었다. ㅡ적이 나타날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리자. 그리고 학습을 하자!ㅡ 나는 스스로 이러한 결심을 다지면서 학습을 진행하였다. 학습에 열중하고보니 지루한 감도 어느새 사라지고말았다. 어느덧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아침에도 적은 종무소식이였다. 우리는 땅에 엎드린채 이미 준비해가지고 간 미시가루를 조금씩 나누어먹으며 요기를 했다. 그리고 교대로 적정을 감시하면서 이날도 학습을 하며 인내성있게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우리가 매복한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이였다. 나는 이날 리광선동무와 함께 기본주력이 매복하고있는 지점에서 얼마쯤 떨어진 산언덕에 위치하여 감시임무를 담당하고있었다. 이윽고 적들의 행군대오가 우리들의 시야에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나는 너무나도 흥분된 나머지 하마트면 ㅡ적이다!ㅡ라고 소리를 지를번 하였다. 나는 곧 지휘부에 신호를 했다. 우리 유격대원들은 저마다 손에 땀을 쥐고 적들이 매복권내에 들어서기만 기다렸다. 적들의 행군대렬은 점점 가까와졌다. 행군대오의 맨 선두에서는 척후병 두놈이 어깨에 총을 메고 무어라고 지껄여대면서 걸어오고있었다. 그 뒤로 약 100m 간격을 두고 한개 분대력량이 따라서고 련달아 기본주력의 긴 행렬이 다가오고있었다. 적들의 선두대오는 어느덧 내가 매복하고있는 지점을 통과하고있었다. 적과의 거리는 불과 20m밖에 되지 않았다. 적들의 징그러운 낯짝을 겨누고있는 우리는 그놈들을 당장에 해제끼고싶었다. 긴장된 속에서 적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주시하면서 지휘부의 사격신호를 가슴죄며 기다렸다. 적들의 마지막대렬이 내가 차지한 매복지점을 지나 부대의 매복권내에 완전히 들어섰을 때였다. 지휘부의 첫 총성이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면서 울려퍼졌다. 사흘동안을 까딱 안하고 매복하고있던 우리들은 일제히 기관총과 보총의 집중화력으로 놈들에게 불벼락을 안기였다. 순식간에 수십명의 적들이 길바닥에 누렇게 나가넘어졌고 적행군대렬은 뒤범벅이 되였다. 불의의 불벼락을 얻어맞고 넋을 잃은나머지 적들은 길 좌우쪽으로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면서 발광을 하였고 어떤 놈들은 개천 홈타기에 엎디여 엉겁결에 총질을 하며 저항해나섰다. 적들의 일부는 도로 우측 물웅뎅이진 곬을 따라 버들숲으로 몸을 숨기려고 꾀하였다. 도로 좌측 산릉선쪽에서만 총소리가 나고 개천너머에서는 아무런 대응이 없자 적들은 그쪽이 제일 안전한 지대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때 적들의 이러한 기회를 엿보고있던 우리 동무들은 놈들의 배후에 대고 기관총사격을 들씌웠다. 적들이 더는 피할수 없는 함정속에 빠져들었을 때 우리는 잠시 사격을 멈추고 함화공작을 시작했다. 《너희들은 우리의 원쑤가 아니다. 우리의 원쑤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다. 총부리를 왜놈들에게 돌리라! 끝까지 저항하는 자에게는 죽음만이 있을것이다.》 이 웨침소리를 듣자 어떤 놈들은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은채 총만 꼿꼿이 들고 어찌할바를 몰라 벌벌 떨고있었다. 그러나 악랄하기 그지없는 일부 적들은 더욱 기를 쓰고 저항해나섰다. 이때 지휘부에서는 돌격명령을 내렸다. 돌격나팔소리가 울려퍼지자 우리 유격대원들은 기세충천하여 총창을 번쩍이면서 저항하는 적들속으로 번개같이 돌입하였다. 《끝까지 저항하는 자에게 죽음을 주라! 한놈의 원쑤도 놓치지 말라!》 중대장은 이렇게 웨치면서 돌격해나가는 우리들의 전투사기를 고무하였다. 우리는 발악하는 적들을 날창으로 찌르고 총탁으로 때려눕히면서 돌격해나갔다. 여기저기서 적들의 단말마적인 비명이 터져나왔다. 육박전의 선두에는 리광선동무도 서있었다. 그는 적들이 기겁을 할만큼 담찬 소리로 《이 악귀같은 놈들, 인민의 원한이 서린 이 총창을 받아라!》하고 웨치면서 단숨에 몇놈의 적을 찔러눕혔다. 그의 뒤를 따르고있던 나도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 달려나가면서 도망치려는 적 몇놈을 통쾌하게 때려눕혔다. 우리의 맹렬한 돌격앞에 위압당한 나머지 적들은 더는 저항할념도 못내고 손들고 투항해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혹시 버들숲에 적패잔병들이 숨어있다가 어느 순간에 불의의 총질을 해댈지 몰랐기때문이다. 나는 리광선동무와 함께 적들에게서 빼앗은 무기 몇자루를 짊어지고 오던 길에 개천뚝에 잠시 머물러서 주위를 한번 휘둘러보았다. 바로 이때 약 100m앞에 있는 버들숲속에서 때아닌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나의 귀전을 스치며 지나갔다. 나는 재빨리 그자리에 납작 엎드려 버들숲을 겨누었다. 어느새 나의 곁엔 광선동무도 엎디여있었다. 광선동무는 땅에 엎드린채 총소리나는쪽을 예리한 눈초리로 주시해보고있었다. 《바로 저놈이다!》 광선동무는 이렇게 한마디 웨치고는 배밀이로 적들이 숨어있는 버들숲쪽으로 은밀히 접근해갔다. 광선동무가 기여가는쪽을 유심히 바라보니 개천버들가지 사이로 적병 몇놈이 총구를 내밀고 발악하고있었다. 나는 그쪽에 대고 면바로 총을 몇방 갈겨댔다. 그러자 한놈이 머리를 움켜쥐고 버들가지밑으로 나딩굴었다. 유리한 지형지물에 의탁하여 적들이 숨어있는 버들숲에 접근한 광선동무는 땅에서 솟아나듯 불쑥 일어서더니 번쩍이는 총창을 높이 추켜들고 적 한놈을 쿡 찔렀다. 그놈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그자리에 나자빠졌다. 나머지 몇놈의 적들은 기겁해서 총쥔 손을 머리우로 추켜올리며 목숨만 살려달라고 급한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그놈들을 몽땅 생포하여 무장을 해제하고있을 때 지휘부에서 철수명령을 내렸다. 전투는 약 한시간가량 진행되였다. 우리는 이날 전투에서 적 500여명을 살상하고 200여명을 포로했으며 경기관총 7정을 비롯하여 수백정의 보총, 수만발의 탄알을 로획하였다. 포로병들가운데는 왜놈지도관을 비롯해서 위만군장교가 몇놈 들어있었다. 우리는 위만군이라고 해서 다 살려두지는 않았다. 우리의 요구에 응하려 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한 자들에게는 단호한 처단을 내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인민의 극악한 원쑤들인 왜놈지도관놈과 악질적인 위만군장교놈들을 즉석에서 처단해버리고 나머지 위만군병사들에 대해서는 다시는 일제의 개노릇을 하지 말라고 잘 타일러서 려비까지 주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 승리는 당시 집안, 통화를 중심으로 유격대의 《토벌》에 광분하던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을뿐아니라 놈들로 하여금 더욱 공포와 불안에 싸이게 하였다. 나는 이 전투를 통하여 사령관동지께서 그토록 중시하시는 대표적인 유격전법의 하나인 매복전의 위력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느끼게 되였다. 그후 우리는 림강에 있는 부대들과 련합하여 대부대로써 일제의 후방을 교란하는 수많은 전투를 진행하였으며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더욱 굳게 하여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