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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유인하여
손 명 직
1939년 당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대부대활동으로 도처에서 적을 소탕함으로써 원쑤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4월 어느날 내가 속하였던 4사부대는 행군중에 연길현 석인구근처에 이르렀다. 정찰자료에 의하면 석인구부락에는 얼마 안되는 무장자위단이 있을뿐이였다. 내옆에 있던 김충진동무는 《그까짓 놈들이야 총몇방이면 알아보겠군…》하고 신이 나서 말했다. 우리의 력량에 비하여 너무도 성차지 않은 적이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런데 지휘부에서는 부락에 대한 공격명령을 인차 내리지 않았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지휘부에서는 되도록 전투를 하지 않고 적을 투항시킬 목적으로 놈들에게 편지를 보냈던것이다. 그 편지에는 일제가 조선과 만주땅을 유린하고 수많은 조중인민을 무참히 학살하는 천추에 용서못할 흉악한 원쑤라는것을 지적하고 그런데 자위단원들은 치욕스러운 일제의 주구노릇을 하고있다고 하면서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인민의 편에 돌아오는 그 길만이 민족반역의 길에서 벗어나며 자기의 생명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지적하였다. 편지에는 끝으로 만일 이 권고를 듣지 않고 끝까지 저항해나선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것이라고 하였다. 편지를 받아쥔 자위단놈들은 우리앞에 투항하고말았다. 이리하여 우리는 전투를 하지 않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혁명군이 왔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온 마을에 퍼졌다. 집집에서 떨쳐나온 인민들은 우리들을 진심으로 환영하여주었다. 우리는 집집에 나뉘여 인민들이 정성담아 지어준 점심식사를 마치고 교대로 휴식하였다. 해질무렵이 되여 부대가 출발준비를 하고있었는데 망원초로부터 적이 온다는 신호가 왔다. 지휘부에서는 우리에게 곧 동쪽장대에 오르라고 명령하였다. 적을 뒤에 달고 우리가 부락 동쪽장대를 넘어 접골묵밭에 이르자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적을 치기에는 부락 서쪽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전투를 한다면 불피코 적탄이 부락까지 날아가 인민들에게 피해를 줄것이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소 불리할것을 예견하면서도 부락동쪽으로 이동하였던것이다. 유인전은 사령관동지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 널리 활용하신 유격전법의 하나였다. 사령관동지의 전법으로 무장하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 지휘관들과 대원들은 유인전을 벌려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군하였다. 묵밭에 이른 우리는 적을 유인하기 위하여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웠다. 불빛을 본 적들은 우리가 이곳에서 숙영준비를 하는줄로 알았던지 사격을 하며 일시에 량쪽으로부터 불무지에로 달려들었다. 적을 주시하고있던 우리는 놈들이 가까이 접근하였을 때 그곳에서 더 멀리 떨어진 숲속으로 은밀히 이동하였다. 이것을 알지 못한 적들은 3면으로 포위망을 좁히며 살기등등해서 달려들었다. 그러나 놈들이 사방에서 총질을 하며 불무지근처에 다가왔을 때는 이미 우리가 그 자리를 떠난 뒤였다. 악에 받친 놈들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온 산판을 이리저리 훑으며 돌아쳤으나 종시 우리의 행방을 찾지 못한채 되돌아서게 되였다. 이때 지휘부에서는 온종일 지칠대로 지친 적들이 부득불 부락근처에서 날밝기를 기다렸다가 제놈들의 소굴로 되돌아서게 되리라는것을 예견하였다. 그리하여 지휘부에서는 되돌아가는 적들이 통과할 길목에 앞질러가서 매복하였다가 놈들을 불의에 타격할것을 계획하였다. 부대는 급히 행동을 개시하였다. 길도 없는 수십리의 험준한 산과 숲을 지나 우리는 마침내 묘령너머의 개울바닥에 이르렀다. 우리의 기본주력은 아름드리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길 서쪽의 가파로운 산릉선에 매복하였다. 길 동쪽으로는 그리 크지 않은 강이 흐르고 그 너머로 밋밋한 야산이 뻗어있었는데 그 한가운데를 지휘부가 차지하였다. 그리고 길 가까이에 불쑥 솟은 밋밋한 야산에 돌격조가 매복하였다. 한개분대력량은 기본주력이 매복한 지점으로부터 약 1km떨어진 곳에 방차대로 나가있었다. 이윽하여 날이 밝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적들은 해가 동천에 솟아올랐을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동무들은 적들이 우리가 매복하고있는 기미를 알고 다른 방향으로 간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우리들의 행동을 주의깊게 살피고있던 지휘부에서는 계속 은밀성을 보장하면서 인내성있게 대기하라고 하였다. 정오가 가까와올무렵에야 감시초소로부터 적들이 온다는 신호를 알려왔다. 우리는 설레이는 가슴을 지그시 눌러가면서 적들이 오고있다는 묘령쪽을 주시하였다. 이윽고 적들의 긴 행렬이 나타났다. 대렬선두에는 위만군 200여명이 척후를 앞세우고 걸어오고있었다. 뒤이어 새노란 군복을 입은 왜놈수비대 수십명이 따라섰다. 수림이 우거진 주변산들을 두리번거리며 여겨보는 품으로 보아 적들은 분명 공포에 싸여있었다. ㅡ 그러면 그렇지. 어디 갈데가 있나. 매복권내에 들어만 서라. 한놈도 남김없이 족쳐버릴테다.ㅡ 우리는 적들이 매복권내에 점점 가까이 접근함에 따라 더욱 긴장하여 총가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그런데 좀처럼 사격신호가 울리지 않았다. 우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자주 지휘부쪽을 바라보았다. 위만군대렬이 우리의 매복권내에 완전히 들어섰을 때에도 사격신호는 여전히 나지 않았다. ㅡ 아마 위만군대렬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왜놈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구나.ㅡ 이렇게 생각한 우리는 더욱 긴장하여 놈들의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있었다. 앞선 위만군대렬이 무사히 통과하자 왜놈들은 방심하고 우리의 매복권내에 들어섰다. 사격신호와 함께 지휘부쪽에서 먼저 사격이 시작되였다. 몇놈의 적이 길우에 쓰러졌다. 갑자기 불벼락을 얻어맞고 갈팡질팡하던 적들은 잠시후 더러는 지후부쪽 산릉선으로 올라붙고 일부는 길옆에 난 홈타기에 엎드려 역시 지휘부쪽에 대고 눈먼 사격을 해대며 저항해나섰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서쪽산릉선에 매복하고있던 우리 동무들이 적의 뒤통수를 겨누고 기관총과 보총사격을 일제히 들씌웠다. 독안에 든 쥐신세가 된 왜놈들이 무리로 쓰러지는 광경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위만군놈들은 감히 우리와 맞설념도 못내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고말았다. 우리는 그놈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살아남은 왜놈들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이럴 때 돌격명령이 내렸다. 돌격조원들은 복수의 총창을 번쩍이며 비호같이 적진으로 뛰여들어갔다. 돌격의 앞장에는 김충진동무가 서있었다. 《우리의 조국땅을 유린하고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을 도탄속에 몰아넣은 일제야수놈들에게 복수의 죽음을 주라!》 충진동무는 이렇게 소리높이 웨치며 마지막발악을 하는 적들을 날창으로 찌르고 총탁으로 때려눕혔다. 여기저기에서 적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몇놈의 적은 진대나무뒤에 달라붙어 끝까지 저항했다. 이때 나는 동무들과 함께 개울건너에 있는 적들속으로 육박해들어갔다. 막 달려나가는데 진대나무뒤에 숨은 적 한놈이 우리 동무를 겨누고있는것이 얼핏 보였다. 잠시도 지체할수 없는 위험한 순간이였다. 나는 재빨리 한방 갈겼다. 그놈은 찍소리도 못하고 그자리에 꼬꾸라졌다. 다른 또 한놈을 조준하고 사격하려는 순간 총을 받쳐 쥔 나의 왼쪽 손이 적탄에 맞았다. 개울 건너 웅뎅이 진곳에 달팽이처럼 다가붙어 끝까지 저항하던 적 한놈이 나에게 사격을 했던것이다. 나는 상처의 아픔보다도 원쑤에 대한 증오와 격분으로 하여 흥분된 마음을 걷잡을수 없었다. 돌격은 계속되였다. 사처에서 우리 동무들이 적을 무찔러나가는 돌격의 웨침소리와 죽어넘어지는 적들의 비명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우리는 원쑤놈들을 좁은 골안에 몰아넣고 족쳐댔다. 불과 몇분 어간에 진행된 이날 전투에서 우리는 왜놈《토벌대》를 전멸시키고 수십정의 각종 무기를 로획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는 이 지방에 주둔하였던 일본군과 위만군 내부에 커다란 공포를 주었을뿐아니라 그들 호상간의 알륵을 더욱 조장시켰다. 후에 지방인민들을 통해 들은바에 의하면 이날 전투에서 왜놈들만이 몰살당한 사실에 노발대발한 왜놈《수비대》본부에서는 이에 대한 화풀이로 이날 전투에서 도망친 위만군련대장을 철직시키고 그밖의 위만군들에 대해서는 며칠씩 가두어두고 혹독한 매질을 가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것은 도리여 위만군장병들속에 일제놈들에 대한 민족적반감을 더욱 야기시켰을뿐이였다. 위만군들 사이에서는 《<무적황군>을 자칭하는 일본군대가 다 녹아나는판인데 잘못 덤비다가는 뼈다귀도 못찾는다.》는 말이 더 많이 돌았다. 그후 위만군은 우리에게로 더욱 많이 넘어왔고 《토벌》에 동원되여서도 우리 빨찌산들앞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