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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격 대 의 딸
리 정 인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의 나날에 사령관동지에 대한 끝없는 충성심을 안고 일제원쑤놈들과 용감히 싸우다가 장렬한 최후를 마친 녀대원들이 적지 않았다. 리경희동무도 그들중의 한사람이였다. 내가 리경희동무를 알게 된것은 1933년 연길현 의란구에서였다. 그때 나는 동만특위교통처련락원으로 공작을 하고있었고 경희동무는 그곳 자위대에 있었으므로 서로 가까이 지내게 되였던것이다. 그때 17살이던 그는 나이보다도 어딘가 더 어려보이는 천진란만한 귀여운 처녀였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에게도 비할바 없는 강의한 투지와 혁명에 대한 충실성을 간직한 투사였다. 내가 그와 함께 사업하던 어느날 밤이였다. 자위대실앞에 매놓은 말이 밤중에 온데간데 없어졌다. 동무들은 말을 찾느라고 이곳저곳 뛰여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들 말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느틈엔가 말은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서 코투레를 불고 서있는것을 발견하고 모두들 놀랐다. 실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였다. 우리는 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고삐가 풀어진것으로 보아 누가 밤중에 말을 끌어갔던것이 분명했다. 그뿐아니라 말의 온몸엔 땀이 축축히 배여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은 한쪽 다리를 상하여 자위대실에서 앓고있던 경희동무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것이였다. 그제서야 우리들은 그 까닭을 짐작하게 되였다. 그래서 우리들은 마을어귀에 있는 보초소에 가보았다. 짐작한대로 경희동무는 거기에 나가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러한 일이 있게 된데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었다. 경희동무는 자기가 다리를 상하여 며칠 공작을 못하게 된것을 분하게 생각하면서 책임자에게 망원초근무라도 세워달라고 거듭 제기했다. 그리하여 망원초근무로 나가게 된 그에게 자위대간부들이 말을 타고 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말을 타고 나가다가 도중에서 말을 돌려보내고 자신은 걸어서 보초소로 갔던것이다. 귀엽고 천진란만해보이는 그였지만 이렇게 가슴속에 불타고있는 원쑤에 대한 적개심은 그를 잠시도 투쟁에서 물러설수 없게 하였다. 그의 고향은 함경북도 어느 산간마을이였다. 비록 가난하였지만 착하고 부지런한 그의 부모는 사시장철 피땀을 흘리며 등뼈가 휘여들도록 일을 해도 헐벗고 굶주림을 면할 길이 없었으며 늘어가는것은 빚뿐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빚을 물지 않으면 너의 딸이라도 데려다 팔든가 어떻게 해야겠다.》는 지주놈의 독촉을 여러번 받았다. 온 가족은 눈물과 한숨속에 날을 보내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부모들은 식구들을 거느리고 밤중에 정든 고향산천을 떠나 두만강을 건너 연길현 의란구에 이사하여왔다. 그러나 이곳이라 하여 경희동무네일가가 마음펴고 살수 있는 곳은 못되였다. 악독한 왜놈들과 그 주구놈들은 이곳 중국의 동북땅에까지 기여들어 우리 인민들을 못살게 굴었다. 경희동무네 혈육들은 놈들의 참을수 없는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여 싸우다가 세상을 떠났다. 특히 어린 경희동무의 심장속에 일제에 대한 불타는 증오와 복수심을 자아내게 한것은 1931년 부암동에서 벌어진 적들의 잔인무도한 만행이였다. 불의에 이 부락으로 달려든 《토벌대》놈들은 집집에 불을 지르고 미처 피하지 못한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였다. 이때 수림속에 숨어있었던 경희동무는 악귀같은 놈들이 달려와서 자기 할머니와 할머니등에 업힌 네살난 어린 동생을 총창으로 찔러 불타는 집속에 집어넣어 죽인 사실을 알게 되였다. 경희동무는 땅을 허비고 풀을 쮜여뜯으며 목이 터지도록 울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말았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곳에 달려온 오빠가 그를 안아일으키면서 말하였다. 《경희야! 원쑤를 잊지 말고 싸워야 한다. 우리 손으로 원쑤를 갚아야 한다.》 《오빠! 백배, 천배로 원쑤를 갚겠어요.》 그후 그들은 이 엄숙한 결의를 안고 혁명의 한길에서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원쑤와 싸웠다. 그 이듬해 8월이였다. 또다시 원쑤들이 마을에 기여들었을 때 공산당원인 그의 오빠는 놈들의 만행으로부터 인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적들과 용감히 싸우다가 희생되였다. 마을 집들이 불타버리고 사람들이 비분에 잠긴 그날 부암동에서는 희생된 동지들과 부모처자들을 추모하는 모임이 있었다. 이때 16살이던 리경희동무는 비분에 싸여 먼저 군중들앞으로 걸어나갔다. 《여러분!》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군중을 향하여 웨치는 그의 눈에서는 불이 이는것 같았다. 《나는 오늘 단 하나밖에 없는 오빠마저 잃었어요. … 늙으신 할머니도 귀여운 동생도 이제 나에겐 없습니다.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날수 없어요.》 나어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가슴은 터지는듯 하였다. 모임에 참가한 군중들모두가 흐느껴울기 시작했다. 이런 때 경희동무의 목소리가 야무지게 울렸다. 《여러분! 울지 마세요. 나는 이제부터 울지 않으렵니다. 우리가 울고있는것을 알면 원쑤놈들은 좋아할것이 아닙니까. 우리 오빠는 늘 나더러 마음이 약해지면 원쑤와 싸우지 못한다고 했어요. 여러분! 우리는 싸워야 해요. 놈들이 우리를 한사람 죽이면 우리는 놈들을 열놈, 백놈을 죽이고 수백배, 수천배로 복수하여야 해요. 우리 인민의 피땀을 짜내고 우리 부모형제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는 원쑤들을 우리가 어떻게 살려두겠어요. 우리는 모두다 힘을 합쳐서 원쑤들과 용감히 싸워야 해요.》 추도모임이 끝난 그길로 경희동무는 마을청년들과 함께 유격대를 찾아갔다. 유격대에서는 그가 나이가 어리다고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였다. 경희동무는 며칠동안 계속 유격대간부들을 따라다니면서 졸라댔다. 《난 기어코 왜놈들과 싸우겠어요. 꼭 유격대에 받아주세요. 난 어떤 일이 있어도 원쑤를 갚아야겠어요.》 유격대간부들은 처음에 타일러도 보고 안된다고 잡아떼기도 하였으나 그의 불같이 뜨거운 정열에 감동되여 마침내 유격구자위대공작을 허락하였고 얼마후에는 정식으로 유격대에 받아들이였다. 유격구자위대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토퉁(구식보총)한자루를 받은 경희동무는 너무도 기뻐서 그것을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남들이 다 자는 밤중에도 그는 혼자 일어나서는 총을 분해결합해보면서 능숙하게 총을 다루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기에 그후 그는 총 잘 쏘기로 이곳 유격대와 자위대에서 꼽히는축에 들었다. 그는 총을 잘 쏠뿐아니라 싸움마당에서도 언제나 용감하였다. 어느날 강을 건너 기여드는 적 자위단놈들과 싸울 때의 일이다. 경희동무는 이날 처음으로 전투에 참가하였다. 적들이 우리의 매복선에 기여들었을 때에 원쑤들에게 무리죽음을 주는 섬멸전이 시작되였다. 앞에 기여들던 적들은 모두다 쓰러지고 뒤에 기여들던 놈들중에서 겨우 살아남은 놈들이 황급히 퇴각하려 하였다. 이때에 경희동무는 첫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한방의 총알도 허실이 없이 적들을 쏘아눕혔고 도망치는 놈들까지 기어이 쫓아가며 두놈이나 더 쏘아눕혔다. 그의 용감성은 1933년 가을 왕우구전투에서도 훌륭히 발휘되였다. 이날 경희동무는 다른 녀성대원과 함께 붉은라자산봉우리에서 보초를 서고있었다. 유격구로 기여들던 적들은 붉은라자산봉우리에 있는것이 녀성대원 2명뿐인줄을 알게 되자 업신여기고 막 기여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산이 험하고 경사가 급하므로 적들이 기여오를수 있는 길은 외갈래길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지형조건을 타산한 경희동무는 길목에 엎드려서 적들을 쏘아보며 옆의 동무에게 양포에 탄알을 재워달라고 하였다. 경희동무는 기여오르는 놈들을 면바로 조준하여 쏘아넘기고는 다른 총을 받아서 또 다른 놈을 쏘군 하였다. 이렇게 옆에서 동무가 탄알을 재워주는 양포 두정으로 연방 총을 쏘는 그는 마치 련발무기로 사격하는듯 하였다. 대상이 녀자이고 그것도 두명뿐이라고 해서 적들은 처음에는 함부로 달려들었으나 뜻밖에도 수많은 주검을 내자 더는 기여오를념을 못내고 머리를 처박았다. 경희동무는 이런 틈에 작탄을 풀어서 앞에 놓고 더욱 단단히 전투준비를 갖추었다. 적들도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았다. 놈들은 잠시후에 또다시 고지우로 기여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놈들을 가까운 거리까지 바싹 접근시킨 다음 경희동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작탄을 힘껏 던졌다. 급한 경사를 기여오르느라고 발악하던 놈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경희동무는 작탄을 던지는 사이사이에 또 큰 돌을 내리굴려서 고지아래에서 어물거리는 놈들까지 혼비백산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적 한개 중대가 거의 녹아나고 겨우 살아서 도망친 놈은 불과 몇놈이 안되였다. 유격구에 있던 유격대원들이 총소를 듣고 달려왔을 때 경희동무는 이미 전투를 끝내고 자기 동무와 함께 적의 무장을 정리하고있었다. 그후 1937년 리도선부대를 전멸시킨 금창전투와 무산지구목재소습격전투 등에서도 그는 용감히 싸워 수많은 적들에게 무리죽음을 주었다. 그는 전투마다에서 이렇듯 사자와 같이 용맹스러웠을뿐아니라 일단 전투가 끝나면 녀성다운 섬세한 솜씨와 지성을 다하여 작식대원들과 재봉대원들을 도와주었으며 노래와 춤으로 전우들의 전투사기를 더욱 고무하군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나는 리경희동무와 함께 식량공작을 나간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채 나흘동안을 돌아다녔다. 우리는 허기증으로 그만 잔디밭에 맥없이 누워있었다. 이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던지… 나는 입에 무엇이 닿는것을 감촉하고야 눈을 떴다. 내옆에 앉아있던 경희동무는 입가에 상냥한 미소를 띄우고 《언니… 자, 이거라도 좀 먹고 기운을 차리자요.》하고 마치 달래듯 말하는것이였다. 그는 자기가 먹지 않고 간수하여두었던 소금주머니를 펴놓았다. 그는 어느새 나물을 뜯어다가 남비에 데쳐가지고 왔던것이다. 그를 바라보던 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모든 점에서 그야말로 언니구실을 해야 할 내가 나어린 그의 보살핌을 받게 된것은 부끄러운 일이였다. 원쑤를 증오하고 인민을 사랑하는 그의 열정은 유격구내 인민들을 돕는데서도 잘 표현되였다. 그는 보초근무를 교대하고 피곤한 몸으로 돌아오는 길에서도 길가의 어린아이들을 보면 그대로 지나가지 않았다. 《아니, 네가 어째 여기 혼자 나와있니? 원쑤놈들이 개처럼 싸다니다가 아무데나 총질을 하며 달려드는데…》하고는 아이를 안고 그의 부모들이 있는데까지 데려다주군 하였다. 또한 짐을 지고 가는 로인이나 무거운 임을 인 아이어머니들을 만날 때면 그는 아무리 피곤한 때도 의례히 그냥 지나가버리는 일이 없었다. 《나도 그쪽으로 가는 길입니다.》하고는 기어이 도와주었다. 그러기에 유격구인민들은 《굶고 맥없이 누웠다가도 경희동무의 쾌활한 목소리를 들으면 모든 시름을 다 잊게 된다.》고들 하였다. 굶주림과 죽음이 우리들을 위협하던 1935년의 처창즈유격구에서도 그는 인민들에게 용기와 신심을 안겨주기 위해 자기의 모든 고통을 다 참아나아가며 정력적으로 싸웠다. 그는 매일같이 눈속을 뒤져 풀뿌리를 캐여다가는 굶어 일어나지 못하는 인민들에게 나누어주면서 기어코 살아서 원쑤와 싸워이겨야 한다고 힘을 북돋아주었고 혁명이 승리한 후 해방된 조국에서 누릴 행복한 생활을 마치 자기 눈으로 보는듯이 차근차근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기도 하였다. 어떠한 고난속에서도 그는 이렇게 굳세고 꿈이 많은 동무였다.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것을 자주 묻군 하였다. 《언니, 이제 우리 나라가 해방되면 그때 나는 무엇을 했으면 좋겠어요?》 《너는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니 예술가가 되려무나.》 나는 서슴없이 말해주군 하였다. 그러면 그는 귀여운 얼굴에 홍조를 띠우고 희망에 빛나는 눈을 깜박이며 《예술가도 좋기는 하지만 … 마지막 한놈의 원쑤놈을 족칠 때까지 손에서 총을 놓을수 없어요.》하고 말하는것이였다. 끝까지 원쑤를 쳐부시고 조국을 해방하리라. 억압과 착취없는 행복한 인민의 나라, 새 사회를 건설하리라! 이것이 경희동무가 잠시도 잊지 않고있던 생각이다. 1937년 5월 어느날, 우리들에게는 감격적인 명령이 내렸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진군에 대한 전략적계획에 따라 우리가 속한 4사부대는 무산방면으로 행군을 하게 된것이다. 오매에도 잊을수 없는 그리운 조국땅을 밟게 되는 기쁨과 감격, 원쑤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와 필승의 신념으로 우리는 행군로상의 온갖 고난을 뚫고 또 뚫으며 적들의 삼엄한 경계를 돌파하였다. 5월 15일에 드디여 두만강을 건너선 우리들은 그날밤으로 무산군 홍암동의 적들을 습격소멸하였다. 암흑속에 묻힌 조국의 하늘에 세찬 총성을 울린 우리 유격대원들은 인민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며 《조선독립 만세!》를 목청껏 웨쳤다. 그날밤 경희동무는 동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지주놈이 나를 빼앗아다가 팔아먹겠다던 그날밤에 우리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마당앞 샘물에 나가서 머리를 감겨주면서 〈경희야! 언제든지 이 샘물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살자!〉고 한 말이 더욱 새로와집니다. 어머니가 살아서 원쑤와 싸우는 나를 보았으면 얼마나 기뻐할가. 난 한시도 어머니의 말을 잊지 않고 원쑤들과 싸웠어요.》 삼지연을 지나 휴식할 때 나는 조국의 하늘이 비낀 맑은 물에 머리를 감는 경희동무를 보았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진군방침을 받들고 용감히 싸우던 경희동무가 이 길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칠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가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나는 보천보전투가 끝난 다음 3개방면에서 활동하던 부대들이 지양개에서 만나 군민련환대회를 할 때 최현동지가 눈물로 수건을 적시며 경희동무의 최후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 제가 치명상을 입은 경희동무를 안아일으켰을 때 저의 손가락짬으로 걷잡을수 없이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래도 조국땅을 밟아보았으니 다행입니다. 모두들 내몫까지 잘 싸워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품에서 숨을 거두면서 그가 남긴 마지막말이였습니다.…》 범같은 사나이로 소문난 최현동지의 눈에서 소리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말없이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이렇게 리경희동무는 원쑤를 무찌르는 가렬한 전장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나는 지금도 경희동무를 회상할 때마다 그처럼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고 원쑤를 증오하며 끝까지 혁명승리를 위하여 싸울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지군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