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을 위하여 천리

 

리   봉   수                         

 

(1) 박석판을 지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를 만나주신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병원일군들에게 있어서 불굴의 의지와 인내성은 어떤 역경속에서도 온갖 창발성을 발휘하여 환자들의 생명을 구원하며 혁명동지들의 건강을 보장해주는데서 표현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것은 밀림속에서는 밀림속에 있는것을 리용하여 치료하며 평야지대나 강가에서는 거기에 있는것을 리용하여 치료할수 있는 그러한 치료방법이 필요한것입니다.

1939년 봄, 우리가 액목현 관지부근의 가자하밀림속에서 치료사업을 하고있을 때의 일이다.

우리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지 달포가 지난 4월 그믐께였다.

통신원동무가 우리 병원으로 찾아왔다. 그가 전해주는 안길동무의 편지에는 팔인구부근 로야령의 어느 밀림속에서 팔에 중상을 입은 리국진동무를 속히 구원해주어야겠다는 내용이 씌여져있었다.

더 오래 생각하고있을 겨를이 없었다. 통신원에게 조반을 대접한 후 나는 곧 면도칼로 만든 수술칼과 봉합사대용으로 쓰려고 알콜에 잠그어둔 명주실과 진통제로 쓸 아편을 가지고 통신원과 함께 병원을 떠났다.

춘근동무는 우리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멀리까지 바래주었다.

막상 길을 떠나고보니 앞길이 막막하였다.

목적지까지 가자면 거의 500리길은 걸어야 했다. 경박호의 남호수 중류를 건너 기암절벽이 병풍을 두른듯 한 험산준령을 넘어야 하고 함정이 무수한 70리 박석지를 지나 태고연한 밀림을 헤치며 나가야 했다. 게다가 이 구간은 적들의 준동이 심하므로 마음놓고 행군할수 없는 지대였다.

우리 두 사람은 온종일 걸어서 날이 저물었을 때에야 경박호 남호수 중류에 이르렀다. 배를 타야 호수를 건늘수 있었기에 나는 이전에 이곳에서 몇번 신세를 진 배사공로인의 집을 찾아갔다.

사공로인은 우리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로인의 말에 의하면 얼마전부터는 이 나루터근처에 적들의 수비대가 나와서 지키고있으며 최근에는 《토벌대》놈들이 밤낮 개싸다니듯 한다는것이였다.

로인에게 호수를 건느게 해줄수 없겠는가고 물었더니 그는 정 급한 일이 아니면 호수를 건느지 말라고 하면서 만약 배를 탄 후에 놈들에게 발각되는 날이면 피할 도리가 없다는것이였다.

만약 호수를 건느지 않고 에돌아가자면 백리길은 실히 더 걸어야 했다. 우리는 백리고 천리고 걸을수 있었지만 국진동무의 위급한 생명은 시간을 재촉하고있었다.

우리는 로인을 믿을수 있기때문에 우리가 무엇때문에 어디로 간다는것을 털어놓고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난 로인은 비장한 결심을 다지고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당신들이 혈로를 걷고있는데 낸들 어찌 피를 아끼겠수. 밤이 이슥해지면 호수를 건늡시다.》

우리는 로인에게 사의를 표하고 초조한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 떠납시다!》하며 앞장서는 로인을 뒤따라 우리도 바삐 나섰다. 얼마동안 가다가 로인은 귀속말로 《당신들은 여기서 기다리우. 내가 가서 배를 가져오리다.》하는것이였다.

수비대놈들은 배를 통제하기 위하여 보초막부근에다 배를 매여두게 한것이였다.

로인은 한참만에야 놈들몰래 배를 풀어가지고 우리있는 곳으로 왔다.

우리가 배에 올라타자 로인은 노를 저어 배를 몰기 시작하였다.

놈들의 보초막에서 불이 반짝반짝 비칠 때마다 우리의 가슴은 두근거리였다.

호수를 무사히 건는 우리는 로인에게 백배 사례하며 배값을 주려고 했다. 그러자 로인은 노여운 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나는 돈을 믿고 사는 사람이 아니요. 사람이란 서로 마음을 믿고 살아야지요. 그것을 가지고 가다가 로자로나 쓰시오. 날이 밝기 전에 어서 이곳을 떠나가오. 어서!》

우리는 물우로 사라지는 로인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걸음을 재촉했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서 살수 없다.》라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재삼 가슴깊이 되새기며…

얼마동안 걷고나니 날이 밝아 동녘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또다시 험난한 앞길을 뚫고나가야 했다. 밤에 이곳을 지나자면 적들의 감시는 피할수 있지만 지세로 보아 밤길을 걸을수 없는 지대였다. 험산준령과 함정많은 70리 박석지대를 지나야 하므로 밤에는 도저히 지날수가 없었다. 우리는 하는수 없이 적정이 심하지만 낮에 걷는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있을 국진동무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한시도 지체할수가 없었다.

우리는 대낮에 절벽으로 병풍을 이룬듯 한 벼랑턱을 톺아오르기 시작하였다.

통신원을 부축해 한발자국 올려놓고는 또 내가 한발자국 기여오르고 그리고는 또 통신원동무를 부축해올리고 이렇게 얼마나 애를 쓰며 시간을 보냈는지 절벽을 넘고보니 벌써 저녁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기 시작하였다.

피로와 허기증으로 하여 팔다리를 놀리기조차 힘들었다. 우리는 앞길을 생각하며 잠시 바위에 걸터앉았다.

춘근동무가 꾸려넣어준 밀지짐을 꺼내여 둘이서 나누어 먹었다.

령을 넘어서는 박석지를 지나야 되는데 날이 저물어가고있으니 밤에는 갈수 없어 또 머물러야만 했다. (위험에 처한 동지를 구원하러 떠난 사람이 어떻게 도중에서 발편잠을 자며 길이 험하다고 주저할수 있겠는가!)

이렇게 결심한 나는 밤에 박석지를 뚫고나갈 방도에 대하여 통신원과 의논해보았다. 우리는 이 지대에 살고있는 주민들을 찾아가서 이곳 산세를 알아가지고 밤에도 행군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산마루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한참 살펴보니 바로 우리가 가자고 하는 박석지 한끝에서 한줄기의 연기가 가늘게 솟아오르고있었다.

우리는 험한 산길을 내려와서 연기나는 곳을 찾아갔다.

무연한 박석지에는 군데군데 돌함정들이 있었는데 어떤것은 밑바닥이 들여다보이지 않을만큼 깊었고 또 어떤 곳은 제법 방바닥처럼 규모있게 패인 곳도 있었다. 가늠할수 없을만큼 깊은 곳에서는 물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발 잘못 옮기면 어느 함정에 빠질지 모를 지경이였다.

연기나는 곳을 찾아갔으나 바위짬으로 새여나오는 연기를 보고는 사람있는 곳을 알수가 없었다. 이곳저곳 헤매다가 한참만에야 겨우 찾았다. 60이 훨씬 넘어보이는 로인이 암석굴에서 저녁밥을 짓고있었다.

로인은 우리를 보더니 초면인데도 《산사람(유격대)들이 오래간만에 오누만!》하며 첫눈에 우리가 유격대라는것을 알아차리고 기뻐하는것이였다. 알고보니 그 로인은 수차 유격대를 도와준 미더운 로인이였던것이다.

우리가 로인에게 적정에 대하여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여기는 산사람들밖에 오지 않는 곳이웨다. 안심하고 며칠이라도 푹 쉬고 가우.》

나는 로인에게 고맙다고 사례한 후 우리는 바쁜 길을 가는중이여서 여기서 천천히 쉬고갈 형편이 못되여 밤에도 계속 걸어야 한다는것을 말하면서 이곳 산세나 좀 자세히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로인은 펄쩍 뛰는것이였다.

《아니, 밤중에 이 함정많은 곳을 가다니요? 아예 그런 생각일랑 말고 어서 짐을 벗어놓고 저녁이나 듭시다.》

로인은 펄펄 끓는 생선국을 남비채 들고 돌아앉으며 어서 요기나 하라는것이였다.

로인은 이곳에 살면서 철을 따라 물고기잡이, 산짐승잡이를 하여 생계를 유지해가고있었다.

우리는 진정어린 권고에 못이겨 로인과 마주앉아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로인은 자기 혼자 먹으려고 한 저녁이 돼서 적겠다고 하면서 또 생선국에다 밀가루를 반죽해넣고 떡국을 끓이기 시작하는것이였다. 아무리 만류하여도 로인은 막무가내였다.

우리는 초조한김에 어서 길을 좀 가리켜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로인은 《내가 이제 당신들에게 밤길을 걷게 한다면 나는 당신들을 함정으로 몰아넣는 죄를 짓게 되겠는데 왜 내가 그처럼 귀한분들에게 함정의 길을 대주고 죄를 짓겠소.》라고 말하는것이였다.

정녕 우리를 생각해주는 로인의 심정은 깊고 뜨거웠다.

우리는 진심으로 만류하는 로인의 뜻을 꺾을수가 없었다. 또 이곳 지리를 잘 알고있는 그 로인의 말을 존중하고 믿어야 했다.

밤이 이미 깊었으므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새벽에 떠나기로 하고 우리는 벽에 기대였다. 피곤한 몸인지라 인차 잠이 몰려드는것이였다.

지금까지 60평생 수많은 꿈을 꾸었지만 이날 저녁에 꾼 꿈만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 병원에서 치료사업을 하고있는데 안길동무가 백마 한필을 가지고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원장동무! 바쁜 길을 다니시기에 수고가 많은데 이제부터는 급한 일이 생길 때마다 이 말을 타고 달리군 하시오. 이제 당장 이 말을 타고가서 국진동무를 태워오시오.》라고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말을 타려고 하는데 백마가 고함을 치면서 나의 가슴을 차는것이였다. 나는 그만 악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깜짝 놀라 깨여보니 꿈을 꾼것이였다.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방안은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데서 흘러 떨어지는 물소리인지 규칙적으로 똘랑똘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걸음을 재촉하는 시계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로인을 흔들어깨우며 날이 밝는 모양인데 빨리 떠나야겠다고 말하였다.

잠에서 깨여난 로인은 불을 켜놓고 방안을 휘휘 둘러보는것이였다. 박쥐가 날아들어와 후드득거리고있었다.

우리가 로인에게 어서 갈길을 가리켜달라고 하였더니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기도 같이 떠나자는것이였다. 아무리 만류해도 듣지 않았다.

로인은 지팽이를 짚고 나오더니 그것으로 앞을 더듬으며 한발자국 한발자국 옮겨놓는것이였다.

길을 안내하여 앞에서 계속 걷고있던 로인은 동녘하늘이 희끄무레해지기 시작하여 함정을 우리자신이 판단할수 있게 되였을 때에야 걸음을 멈추고 갈 방향을 가리켜주는것이였다. 그리고 로인은 나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면서 《박석지의 길도 험하지만 이제 더 험한 길을 걸어야 할 임자네들이 얼마나 수고하겠나. 험한 길을 걷느라면 벌판길이 나질 날도 있을터인즉 꼭 성공하길 바라네. 아무때든 박석지의 이 늙은이를 잊지 말고 찾아들리게.》라고 간곡히 부탁하는것이였다.

유격대는 인민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는 진리를 나는 다시금 절절하게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로인과 헤여진 우리는 얼마동안 걸어서 지난번 일본수비대 40명중 39명을 소탕한 낯익은 전적지에 가닿았다.

나는 통신원동무에게 그때의 통쾌하던 전투이야기를 하면서 행군을 계속하였다.

봄날의 하루해가 또 저물어갔다. 날이 어둡기전에 길을 축내려고 우리는 휴식도 없이 걸음을 다그쳤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는 밀림속에 자리를 잡고 로숙하기로 했다.

마른나무가지를 주어다가 깔고 둘이 누웠다. 봄철이라 하지만 해빛이 사라진 밀림속은 아직도 찼다. 우리는 누웠다앉았다 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밀림속에 다시 새날이 밝기 시작했다. 춘근동무가 넣어준 밀가루로 조반을 해먹고나서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아침 10시쯤 되였을 때였다.

한 산릉선에 올라가 사방을 살펴보니 북쪽 골안에서 연기가 무럭무럭 피여오르는것이 눈에 띄였다.

그것이 유격대의 숙영지인지 또는 《토벌대》가 있는 곳인지를 분간할수 없어서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숲속으로 들어가 잠시 동정을 살피였다. 바로 이때 웬 사람이 낫을 들고 우리 있는 쪽으로 어정어정 다가오는것이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의 거동이 수상하였다.

나는 권총을 뽑아 장탄했다. 통신원도 보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누구얏, 섯!》하고 권총을 겨누고 나서며 이렇게 소리치자 그놈은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부들부들 떠는것이였다. 나는 통신원에게 눈짓하며 그놈에게 총을 겨누게 하고는 한발 넘겨짚어 물었다.

《저기 있는 〈토벌대〉들이 어디로 가는 길이냐? 다 알고 왔으니 똑바로 말해라!》

그러자 그놈은 오금을 못쓰고 주저앉은채 《저기 있는 〈토벌대〉는 여기에 사흘전부터 와있으면서 이 산을 수색하는중입니다. 죽을 죄를 졌으니 한번만 용서해주시오.》라고 하면서 애걸복걸하였다.

그자는 우리의 덧걸이에 넘어가 벌써 자기의 정체를 고백하는것이였다.

우리는 포승으로 그를 꽁꽁 결박해가지고 한 20리 걸어가면서 문초했다.

그는 아편쟁이인데 놈들에게서 아편을 받아 피우면서 그 대가로 개질을 하는자였다.

그는 엉엉 울면서 한번만 목숨을 살려주면 죽을지언정 놈들의 개노릇은 다시 하지 않겠다는것이였다.

성미가 급한 통신원은 당장 쏘아죽이겠다고 야단이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어서 통신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의 죄를 놓고보면 죽여도 마땅하오. 그러나 우리는 더 큰것을 생각해야 하오. 그가 다시는 그런 일을 안하겠다고 맹세하는것만큼 그가 개심하고 량심껏 산다면 그것이 혁명에 더 유익한 일이요.

그에게도 사랑하는 부모처자가 있겠는데 이제 만약 우리가 그를 죽인다면 지금 있는 그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그 자손들까지도 역적의 족보를 물려받아야 할 운명에 놓일것이요. 그러나 우리가 그를 한번 용서해주어 그가 저지른 죄과를 실지 행동으로 씻게 한다면 그 가족들도 사는 보람을 느끼게 될것이 아니겠소. 계급적립장에서 적아를 가리지 않고 죄를 저지르게 된 동기와 경로를 따져보지 않고 죄가 크건작건 함부로 죽인다면 좋아할것은 원쑤놈들뿐이요. 나는 그를 부모처자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려보내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동무의 의견은 어떻소?》

통신원도 나의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는 놈들의 강요에 못이겨 개질하는 그에게 량심적으로 산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일제와 싸우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다시금 진심으로 사람답게 살겠노라고 하면서 자기 집주소와 자기 성명을 대주며 한번 꼭 찾아와달라는것이였다.

그를 자기 집으로 돌려보낸 후 우리는 계속 행군하여 드디여 로야령의 밀림속에 들어섰다.

《토벌대》놈들의 피묻은 총창도, 특무들의 간악한 눈초리도, 박석지의 무시무시한 돌함정도, 경박호의 거친 물결도, 기암절벽과 태고연한 밀림도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이 모든 곤난을 뚫고 500리길을 걸어 병원을 떠난지 옹근 닷새만에 리국진동무가 있는 곳에 가닿을수 있었다.

 

(2) 의사이기 전에 혁명가라야 한다

 

우리는 국진동무가 있는 봇막에 이르렀다.

보초를 서고있던 지경수동무가 막 달려오더니 나의 손을 붙잡으며 반가와 어쩔줄을 몰라했다.

《경수동무! 그사이 국진동무의 병세가 어떻소?》

내가 이렇게 묻자 지금은 그가 기분상태도 좋고 식사도 잘한다고 하면서 별로 고통을 느끼는것 같지 않다는것이였다.

나는 마음이 놓였다. 그때야 나는 《보초가 자리를 뜨면 되오?》하고 말하였더니 경수동무는 제자리로 달려가며 《원장동무가 온다!》하고 고함을 치는것이였다.

그러자 왕동무가 먼저 달려나오고 그 뒤로 부상당한 한팔을 어깨에 멘 리국진동무가 지팽이를 짚고 휘청거리며 마중나왔다.

나는 달려가서 국진동무를 부둥켜안았다.

몇달만에 만난 국진동무의 피기없는 얼굴모습은 너무나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우리는 모두 봇막으로 들어갔다.

안길동무는 부대와 함께 떠나면서 환자의 신변을 념려하여 지경수동무와 왕동무 그리고 나에게 보냈던 통신원동무를 이곳에 남겨두었던것이다.

나는 우선 손을 씻은 후 국진동무의 상처에 처맨 붕대를 풀었다. 상처를 본 나는 저으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보총탄알이 팔을 관통해나갔는데 팔의 크고작은 뼈들이 절반이상이나 못쓰게 되였다.

그런데 부상당한 즉시에 국부를 절단하고 봉합했더라면 인차 상처가 아물었을것인데 그냥 붕대만 처매두었기때문에 새살이 살아나면서 피부가 말려올라가 뼈가 15cm가량이나 쑥 삐여져나와있었고 골관절과 근육부위가 화농되여있었다.

상처를 살펴보니 매일 적어도 4~5g이상의 피가 화농되고있었다. 이대로 얼마 지나면 그의 전신에 있는 피가 모두 없어지고말 형편이였다.

팔을 절단하지 않고서는 그의 생명을 구원할수 없는 지경에 놓여있었다.

나는 가지고간 붕대로 상처를 다시 처매준 후 내가 왔으니 안심하라고 우선 위안삼아 이야기했다.

저녁식사가 끝난 후 리국진동무와 지경수동무는 그간 병원에서 지내던 이야기나 해달라고 졸라댔다.

그러나 나는 이야기할 용기가 나지 않아 피곤하여 좀 쉬겠다고 핑게를 하고 통나무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여 눈을 감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동지의 생명을 구원하자면 팔을 잘라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영원히 불구자의 몸이 되지 않는가. 한팔이 없이 어떻게 적과 싸울수 있겠는가. … 그러나 이것은 생명을 구원한 다음의 문제이다. 우선 생명을 구하고봐야 한다. 그런데 옹근 팔 하나를 뭉청 절단하는 큰 수술을 할수 있는 도구와 의약품이 나에게는 없지 않는가. 지혈제 하나 없이 서뿔리 팔을 절단했다가 일이 잘못되면 그냥 두어 다문 몇달이라도 살수 있는 생명을 앞질러 끊는것으로 되지 않는가.)

깊은 생각에 잠겼던 내가 눈을 떠보니 밤이 깊었는지 모두 잠이 들고 봇막안은 조용하였다.

나는 성냥불을 켜서 등잔심지에 불을 달았다. 잠든 국진동무의 머리맡에 다가앉은 나는 그의 한손을 쥐고 맥박과 호흡을 살펴보았다. 맥박도 호흡도 매우 불균형적이였다.

머리를 짚어보니 미열이 계속 있었다.

잠이 혼곤히 들었던 그는 무어라고 헛소리치면서 제김에 소스라쳐 깨여나는것이였다.

머리맡에 앉아있는 나를 본 국진동무는 나의 손을 잡아끌며 왜 아직 자지 않느냐고 묻는것이였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일어났다고 대답하였다.

한동안 무슨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전투에서 팔을 부상당하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였다.

… 1939년 4월초 돈화쪽으로 이동하고있던 5사의 한 련대성원들은 안길동무의 지휘하에 왕청현 팔인구집단부락을 습격하여 이곳에 있는 산림경찰대와 자위단 60여명을 소탕하고 무기와 식량을 로획할것을 계획하였다.

밤 1시경, 집단부락을 습격한 아군은 의외의 정황에 부딪치게 되였다.

밤사이에 예상하지 못했던 일본군 200여명이 이곳에 몰려왔고 아군을 발견한 서남포대의 적들이 맹렬한 사격을 가해오고있었다.

발악하는 서남포대의 적들을 소탕하고 급히 포대를 점령하지 않는다면 아군의 작전에서는 도저히 성과를 기대할수 없는 불리한 정황이 조성될수 있었다.

안길동무는 바로 이 긴급하고도 어려운 전투임무를 리국진동무에게 위임하였던것이다.

변동된 정황에서 새로운 임무를 받은 국진동무는 곧 기관총분대동무들과 함께 발악하는 놈들에게 명중탄을 들씌우며 포대에로 돌진하였다.

이때 적의 총탄이 국진동무의 왼팔을 뚫고나갔다. 포대에서 내려와 도망치던 적 한놈이 담벽에 숨어있다가 쏜것이였다.

팔에 중상을 입은 국진동무는 도망치는 그 한놈마저 단방에 꼬꾸라뜨리고 순식간에 포대를 점령하였던것이다.

포대가 아군의 손에 장악되자 자위단놈들은 무장을 버리고 투항하였고 병실에서 대응하던 놈들도 허둥지둥 도망치다가 그 대부분이 소탕되고말았다.

이렇게 하여 근 한시간동안 진행된 집단부락습격전투는 아군의 승리로 끝났던것이다.…

이야기를 듣고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를 꼭 살려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때문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랭정한 립장에서 다시한번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명백하였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급하다.)

달리는 방도가 없었다.

나는 수술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정신적준비가 안되여있는 환자에게 대뜸 팔을 자르자고 할수는 없었다.

조반식사가 끝난 후 나는 국진동무와 조용히 마주앉았다.

나는 우선 현재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다시한번 물어보았다. 그는 초기에 비하여 별로 아프지도 않으며 열도 내리고 입맛도 있다는것이였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어조에는 어딘가 모르게 큰 수술은 하지 않고 치료해도 될것이라는 안도감이 나타나고있었다. 이것은 절단할 생각은 하지 않고있다는 표현이였다.

환자의 립장으로서는 무리가 아니였다. 그러나 의사인 나는 환자를 꼭 살려야 할 책임을 지고있는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 그 상태를 그냥두고 치료하면 생명에도 위험할뿐아니라 또 설사 상처가 아문다 하더라도 해마다 그 자리가 도져서 일생동안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것을 그에게 솔직히 알려주었다.

그러자 국진동무는 그렇게 해마다 도져서 고통을 받게 되면 그때는 그 팔을 잘라버리고말겠다는것이였다. 그의 생각은 점차 나의 생각에로 접근하고있었다.

나는 실머리를 한걸음 더 앞으로 끌고갔다.

물론 그때가서 자를수도 있지만 그러면 지금과는 달리 생살과 생뼈를 잘라내야 하기때문에 상당한 기일을 두고 고생하게 될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리유를 의학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국진동무는 내가 자기에게 무엇을 요구하고있는가를 눈치챘던지 한참 깊이 생각하다가 나의 손을 잡으며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원장동무! 그러면 차라리 지금 깨끗이 잘라버리면 어떻습니까?》

물론 이것은 내가 기다리던 말이였다. 그러나 수술을 받겠다는 그의 결심만 가지고는 부족하였다. 의술도 부족하고 수술기구도 의약품도 거의 없는 형편에서 강다짐으로 수술해야 할판이니 그 고통을 참아낼수 있는 단단한 각오가 필요했던것이다.

《물론 수술을 하여 절단해야만 생명에도 위험하지 않고 또 후탈이 없을것이요. 그런데 문제로 되는것은 나의 의술이 부족한것이고 의약품이 없는것이요. 그 팔을 그냥두면 안된다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주저하게 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소.》

그러자 국진동무는 위험이 명백한 이상 한시라도 주저해서야 되겠는가, 아픔에 대해서는 념려하지 말라, 어떠한 고통도 나는 참아낼수 있다, 마취를 하지 않고도 자를만 한 각오가 되여있다, 어찌 약품이나 수술도구로만 목숨을 살리겠는가, 서슴지 말라, 군의로서가 아니라 혁명가의 립장에 서라고 거듭 강조하는것이였다.

수술할수 있는 환자의 정신적준비는 벌써 되고도 남았다.

나는 도리여 환자로부터 대담하게 수술에 착수할수 있는 고무적힘과 용기를 받는것이였다.

(그렇다. 나는 의사이기 전에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 물론 의술도 의약품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것은 혁명가의 사상과 의지이며 혁명동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다. 이것이 있으면 의술도 약품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해결해낼수 있을것이다.)

나는 이런 립장과 태도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각오를 다지고 곧 수술준비를 서둘렀다.

수술칼은 이미 내가 만들어쓰던것이 있으나 봉합침이 없었다. 그래서 봉합침은 민가에서 이불꾸밀 때 쓰는 돗바늘을 쓰기로 하고 봉합사는 내가 가지고간 명주실을 쓰기로 하였다.

수술하기 위해서는 마취를 시켜야 하겠는데 마취제가 없었다. 아편으로 전신마취를 시키는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은 잘못 쓰면 위험한 일이였으나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수술후의 지혈제가 난문제였다. 그전에 의학책에서 본데 의하면 지혈은 《혈갈》(기린의 피)로 시키게 되여있다지만 우리에게 그것이 있을리 만무하였다.

나는 전에 해본 치료경험에 기초하여 쇠스래나무숯가루를 지혈제로 쓰기로 하였다.

이것은 아주 좋은 지혈제였다.

나는 지경수동무더러 쇠스래나무를 찍어다가 장작불을 놓게 하고 그 숯을 깨끗한 물에 말끔히 씻어서 다시 해빛에 바싹 말린 다음 가루로 만들었다.

수술대가 없는 형편에서 혼자서 수술을 할수 없으므로 지경수동무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어 그가 국진동무의 몸과 팔을 잡아주도록 하였다.

그에게 나는 환자의 팔과 몸을 잡고있되 수술하는것을 절대로 보지 말것과 항상 환자의 정신상태와 호흡 및 맥박을 유심히 살필것을 단단히 일러두었다.

이제 남은 일은 수술하기 전에 환자를 마취시키는것이였다.

나는 약간의 아편과 물사발을 들고 국진동무의 곁으로 다가갔다.

《수술은 하나의 전투나 다름없소. 마음을 든든히 먹고 이겨내야겠소.》

국진동무는 확신있게 대답하면서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아편을 입에 넣고 물을 들이마셨다.

(아마도 한 반시간은 있어야 정신이 흐려질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그의 정신상태를 알기 위하여 일부러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한 20분이 지나자부터 졸음오는 사람처럼 안색이 달라지더니 30분이 지나자 그는 눈을 스스로 감았다. 그러나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은 똑똑히 했다. 아편이 약한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다시 약간의 아편을 더 먹였다.

이번에는 한 10분이 지나자 눈을 감았다. 말끝도 흐려졌다. 나는 부상당한 팔을 꼬집어보았다. 흠칫 놀라며 아프다는것이였다. 아직도 아편이 부족한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제 아편을 더 먹였다가 후에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것이 우려되여 선뜻 아편을 더 쓸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강다짐으로 팔을 절단하게 된다면 환자가 고통을 참다못해 정신적착란을 일으킬수도 있는것이였다.

나는 결심하고 그에게 아편을 더 먹였다. 그리고 수술후에 인차 의식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를 타산하여 쌀물과 진흙을 준비하여놓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나는 다시 그의 팔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수술칼로 자극해보기도 했으나 그는 감촉하지 못했다.

나는 수술도중에 적들이 습격해오는 경우에 취할 행동에 대하여 각자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나서 왕동무와 다른 한 동무에게는 보초임무를 주어 파견하였다.

이리하여 혁명동지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만단의 전투준비는 갖추어졌다.

나는 석탄산수에 손을 씻은 후 수술에 착수하였다.

수술이 시작되자 나의 온갖 잡념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1분 1초라도 빨리 수술을 끝내야 한다는 오직 한 생각만이 머리에 꽉 차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벌써 나의 온몸은 발끝까지 땀에 흠뻑 젖었다.

나는 이전에 수술해본 경험으로 보아 피부를 여유있게 남기고 절단하였다. 그것은 절단후 피부가 우로 끌려올라가는것을 고려해서였다.

수술이 한 절반쯤 진행되였을 때였다. 환자의 팔과 몸을 붙잡고있던 지경수동무가 갑자기 기절하여 쓰러지는것이였다. 동정이 많은 그는 내가 당부한 말을 잊어버리고 수술장면을 보다가 너무도 끔찍하여 그만 기절하고말았던것이다. 자칫하면 큰일을 저지를수 있는 순간이였다.

《경수동무, 정신을 차리오!》

나는 이렇게 소리치며 그를 흔들었다. 잠시후 그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며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는 눈을 흘기며 엄하게 꾸짖었다.

《국진동무의 생명은 우리 손에 달렸소. 빨리 붙잡소. 보지 말라고 그렇게까지 당부했는데 왜 말을 듣지 않소.》

그는 다시 환자를 붙잡았다.

수술후에 수혈도 해줄수 없는 조건에서 될수록 빨리 수술을 끝내는 문제가 중요하였다.

피부와 근육을 베고 관절을 절단할 때까지도 환자는 고통을 참아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동맥을 끊으니 피가 쭉 쏴나오며 환자는 《악!》하고 소리치면서 몸을 뒤트는것이였다.

순간 나에게는 《이젠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초도 주저할수 없는 순간이였다. 나는 곧 봉합한 후 쇠스래나무숯가루를 지혈제로 붙였다. 피는 숯가루를 2mm두께도 뚫지 못하고 멎었다.

수술한 팔에 붕대까지 처매고나니 너무 긴장했던탓인지 맥이 탁 풀리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긴장을 풀어서는 안되겠다고 정신을 단단히 가다듬었다.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하여 그의 맥박과 호흡상태, 심장의 기능상태를 진찰하였다. 아편중독이 심해서인지 혈압이 매우 낮아졌다.

나는 이미 준비해두었던 쌀물 끓인것을 환자입에 떠넣어주었다. 그는 입을 약간 놀리며 쌀물을 삼켰다.

이제부터는 아편중독을 해소시키는 전투를 해야 했다.

나는 아편중독이 심한 경우를 타산하여 이미 지경수동무를 시켜 봇막앞에 두어서너삼치의 흙을 파놓게 하였던것이다.

아편중독이 심한 경우에는 옷을 벗겨 맨땅에 반듯이 눕히고 얼굴만 내놓고는 전신에 흙을 1~2cm 정도의 두터이로 덮어주면 중독을 해소시키는데 아주 효과적이였다.

그러나 국진동무에게는 아직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때문에 쌀물을 먹이면서 동시에 진흙을 물에 타서 약간씩 먹였다.

나는 환자의 곁에 앉아 계속 진찰을 하였고 지경수동무는 쌀물과 진흙물을 환자의 입에 떠넣어주었으며 다른 두 동무는 보초소에 나가 적정을 감시하고있었다. 한 혁명동지의 생명을 위하여 이렇게 네 사람이 각기 자기맡은 초소에서 전투를 계속하고있었던것이다.

환자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옹근 하루가 걸렸다. 이 기간의 한초한초는 마치도 평상시의 한해나 두해처럼 느껴졌다.

《나, 물 좀 주오.》 국진동무가 스물다섯시간만에 이 말을 처음 했을 때 우리는 모두 환성을 올리며 기뻐했다.

우리는 쌀물 식힌것을 그에게 주었다. 국진동무는 그것을 마시고나서 나의 손을 꽉 잡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원장동무! 정말 수고했습니다.

모진 고통을 이겨낸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나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고 다른 동무들의 눈언저리에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쇠스레나무숯가루, 술에 잠그었던 명주실과 이불꾸미는 돗바늘, 면도칼로 만든 수술칼, 아편과 진흙-이런것을 가지고 강다짐으로 수술을 하여 리국진동무에게 고통을 준것을 생각하면 여간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점심때가 되자 환자는 배가 고프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에게 미음을 주었다. 그는 수술하기 전보다 더 식욕이 좋았다.

한참후에 배고프지 않는가고 물었더니 또 배고프다는것이였다.

나는 그에게 음식을 주라고했다. 그러자 지경수동무는 눈을 크게 뜨며 나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귀속말로 말하는것이였다.

《아니, 국진동무가 아직 제정신이 들지 않아 저렇게 자꾸 먹는것이 아닐가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화농성환자에게서 고름나오던것이 멎으면 체내의 흡수력이 회복되면서 식욕이 높아질것이기때문에 만일 소화기계통에 장애가 없다면 환자가 요구하는대로 식사를 공급해주어도 무방할뿐아니라 환자의 몸에도 유익할것이라고 생각되였기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경수동무는 환자에게 음식을 더 공급해주었다.

나는 그가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식사를 제대로 하게 되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2) 돌아오는 길에서

 

우리가 리국진동무의 팔을 수술한지 사흘이 지났을때였다.

환자를 속히 병원으로 옮겨야 하겠는데 그가 움직여 다니려면 아직도 한주일은 실히 걸려야 했다.

성한 사람들은 산나물로 끼니를 에운다 하더라도 환자에게야 어떻게 산나물만을 공급할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우리는 토의한 끝에 두 동무를 식량공작하러 보내고 봇막에는 지경수동무와 내가 남아 보초를 서면서 국진동무를 구완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식량공작나갔던 동무들은 며칠만에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되여 우리는 식량은 고사하고 적의 추격을 예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나는 지경수동무와 함께 짐을 대충 꾸려가지고 떠날 준비를 한 후 다음날 아침에 행군을 시작하였다.

얼마쯤 가다가 우리는 양지바른 개울옆에 환자를 내려놓고 잠시 쉬였다. 국진동무를 진찰해보았으나 이상이 없었다.

지경수동무가 식사준비하는것을 보니 환자용비상미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

한창 음식이 당기는 때에 고기를 공급해주면 환자가 빨리 춰설수 있겠는데 비상미마저 떨어져가는것이 안타까왔다.

잠시 생각하던 나에게는 이 근처의 밀림속에 살고있던 진로인을 만날수 없을가 하는 생각이 픽 떠올랐다.

나는 몇해전에 다닌 이 지방의 지리를 더듬어가며 밀림속을 헤매다가 해질무렵에야 겨우 진로인의 막을 찾았다.

나를 보자 로인은 《아야, 동생이 어떻게 이렇게 오래간만에 찾아왔소!》하며 몹시 반가와하였다.

그는 집단부락이 실시된 후 몰래 빠져나와 이 밀림속에 비밀막을 짓고 산짐승사냥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있었다.

내가 이곳 형편을 물었더니 로인은 말하기를 유격대원이나 오지 《토벌대》놈들은 아직 한번도 와본적이 없다고 하면서 어서 맘놓고 환자의 병을 다 고쳐가지고 떠나라고 권고하는것이였다.

우리가 이곳에서 며칠간 묵는동안 로인은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성의껏 해주었다. 환자의 식욕도 매우 좋았다. 국진동무는 로인이 잡아온 노루 한마리를 혼자서 다 먹다싶이 하였다. 나는 은근히 걱정하였으나 그는 아무런 장애없이 소화시키군 하였다. 이렇게 3~4일간 쌀밥에 고기까지 푸지게 대접하면서 치료도 하고 안정도 시켰더니 환자의 몸은 대번에 춰서기 시작하였다. 로인의 집을 떠날 때 국진동무는 자기 발로 행군할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되였다.

우리는 진로인의 지성어린 원호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느끼면서 로인이 자기 량식에서 나누어주는 밀가루까지 받아가지고 다시 길을 떠났다.

때는 벌써 5월이 되여 한총(산파)이라는 산나물도 파랗게 자랐다. 이 한총은 영양가가 높고 소화도 잘되는 좋은 나물이였다.

우리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진로인이 준 밀가루는 환자에게만 대접하고 경수동무와 나는 한총으로 끼니를 에우면서 행군을 계속하였다. 하루의 행군을 끝내고는 환자의 온몸을 주물러주며 피로를 풀어주기도 하고 식사도 매끼 새로 끓여 더운 음식을 공급해주군 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왕복 천리길을 걸어 여러날만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던것이다.

우리가 온다는 련락을 받은 안길동무는 멀리까지 마중나왔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그는 병원으로 찾아와서 며칠전부터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나는 리국진동무의 생명을 구원하고 돌아왔다는것을 보고하였다.

그 순간 천리행군의 온갖 피로도 일시에 사라지고 나의 가슴에는 오직 기쁨과 긍지만이 차고넘쳤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맡겨진 혁명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고 그 결과를 상부에 보고하는 그 순간처럼 기쁜 때가 없는것이다.

안길동무는 국진동무와 나를 부둥켜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원장동무,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험난한 천리길도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리라고 나는 꼭 믿고있었습니다.》

이렇게 전우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할 때마다 나는 앞으로 그 어떤 어려운 길도 억세게 뚫고나가리라는것을 마음속깊이 다지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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