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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낙한 신임
오 백 룡
1934년 5.1절이였다. 5.1절이라면 전세계로동계급의 전투적위력을 시위하는 전통적인 명절로서 어느때나 경사스럽고 뜻깊은 날이지만 이해 5.1절을 맞는 우리들의 감격은 류달리 컸다. 그것은 바로 이틀전에 마굴령부대를 쳐이긴 전투승리를 이날에 겸하여 경축하게 되였기때문이다. 이날 다홍왜유격구에서는 이른아침부터 흥성거리는 가운데 5.1절경축군중대회가 열리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군정간부들과 유격구 각계 대표들이 주석단에 오르자 그이와 대표들의 가슴에 붉은 꽃송이를 달아드리였다. 그런데 그중에서 남달리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남하마탕전투에서 빛나는 공훈을 세운《첸렌장》이였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것을 우리모두가 잘 알고있었다. 《첸렌장》은 난생처음 당해보는 이러한 영광에 너무나 감격해서인지 가슴에 달린 꽃송이를 매만져보기도 하고 사방에 대고 꾸벅꾸벅 절을 하기도 하였다. 보고가 끝나자 《첸렌장》은 흥분을 이기지 못하여 연단으로 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이 기쁜날에 저는 여러분들앞에 저의 심정을 말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저를 낳아준 친부모보다도 더 은혜롭고 정깊은 어버이가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저를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시고 이처럼 재생의 길로 이끌어주신 혁명의 어버이신 김일성장군님이십니다. … 저는 그분의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생활의 진실을 맛보게 되였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싸우는 참된 삶의 길을 찾았습니다. … 저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리켜주신 이 길을 따라 그야말로 한목숨을 바쳐서라도 끝까지 싸워 그이의 크나큰 사랑과 은혜에 기어코 보답하겠습니다.》 그의 말은 비록 류창하지는 못했으나 마디마디에 불같이 뜨거운 심정이 담겨져있었다. 군중들은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그의 말을 커다란 감동속에서 들었다. 나역시 그때 《첸렌장》에 못지 않은 벅찬 감격에 휩싸여있었다. 《첸렌장》의 가슴에 안겨준 이날의 영광에 대하여 우리모두가 그렇게도 기뻐하며 감격하게 된데는 까닭이 있었다. 《첸렌장》은 위만군에서 중대장노릇을 하다가 우리편으로 의거해온 동무였다. 그는 그때 우리에게로 와서 인민혁명정부에서 일하고있었다. 유격대의 영향을 받아 혁명의 편으로 넘어오기는 하였지만 초기에 그는 어딘지 모르게 은근히 불안을 느끼며 주위사람들의 눈치만 보고있었다. 오래동안 공산주의에 대한 적들의 악선전만 들어왔고 아직 혁명의 진리와 공산주의자들의 생활과 그 진면모를 알지 못하던 그에게 있어서 자기를 진정으로 믿어주겠는가 하는 의심이 가실 날이 없었다. (나로 말하면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일본제국주의의 괴뢰인 만주국군의 장교가 아니였던가? 유격대의《토벌》에 앞장서 다니던 위만군의 장교를 같은 동지로서 대해줄것인가?) 그는 이렇게 자기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지나치게 신경을 썼고 항상 마음속의 고민으로 해서 우울하게 지냈다. 동무들이 아무런 구김새없이 하는 롱담도 그에게는 귀에 거슬리게 들리였고 심지어 그와 가까이 지내며 도와주려고 성의를 다하는 동무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자기를 떠보려는것이나 아닌가 하고 오해하기도 하였다. 그가 가뜩이나 안정되지 않은 처지에서 나날을 보내는데다가 일부 사람들이 그를 색다른 눈으로 보면서 곁을 잘 주지 않았던것도 사실이였다. 특히 당시는 일제의 간악한 책동과 대국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의 작간으로 말미암아 반《민생단》투쟁이 그릇되게 진행됨으로써 혁명대렬내에서는 일시적이나마 복잡한 사태가 벌어지고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일부 편협한 사람들은 《〈첸렌장〉은 끝까지 믿기 곤난하다.》느니,《적의 장교였던 사람과 친교를 맺는 사람도 사실은 의심스럽다.》느니 하면서 트집을 잡으려고까지 하였다. 이런 말이 직접 그의 귀에까지 미치게 되자 그러지 않아도 늘 고민과 불안에 싸여있던 《첸렌장》은 자기의 운명에 대하여 더욱 위구를 느끼게 되였다. 그의 안색은 언제나 흐려있었고 활기없이 매사에 눈치놀음만 하였다. 차라리 딴곳으로 가버리기라도 할가 하는 막다른 생각까지 하게 되였다. (도로 가면 당장 일제놈들에게 처단되고말것이 아닌가. 항일의 뜻을 품고 놈들의 소굴에서 뛰쳐나왔다가 그 뜻을 굽히고 어찌 딴곳으로 갈수 있겠는가. 이미 저지른 죄만 해도 큰데 이제 또다시야 어찌 혁명을 배반한단 말인가.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그에게는 자기가 믿을곳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는 외롭고 버림받은 몸이라고만 생각되였다. 이렇듯 고민과 번뇌속에 싸인 《첸렌장》의 안타까운 심정을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헤아리고계신분은 경애하는 사령관동지이시였다. 1934년초에 다홍왜유격구에 오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첸렌장》에 대한 이러저러한 시비들을 엄격히 지적하신 다음 인민혁명정부 간부들에게 그를 믿고 잘 돌보아주어 훌륭한 혁명투사로 교양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물론 일부 동무들가운데는 아직 《첸렌장》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를 가까이하기를 꺼려하고 경원한다면 누가 그를 교양하겠습니까. 그가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겠다고 우리를 찾아온 이상 우리는 우선 그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위만군의 치욕스러운 생활을 박차고 나올 때 품었던 결심대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훌륭히 싸우도록 그를 적극 도와주어야 합니다. 혁명을 하자고 찾아온 사람을 대담하게 믿지 않고 진심으로 대해주지 않는것은 공산주의자로서 취할 도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손을 이끌고 끝까지 같이 싸워나아가야 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인민혁명정부 간부들에게 《첸렌장》을 잘 돌보아줄데 대하여 간곡히 말씀하셨다. 그뿐아니라 그이께서는 직접 《첸렌장》을 만나시여 그의 손을 굳게 잡으시고 몸이 불편한데는 없는가를 물어보신후 생활조건이 달라져서 서먹서먹할것이고 풍습도 다르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아 불편을 느끼는 때가 많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를 위로하여주시였다. 《첸렌장》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여서 아무 말도 못하고 어리둥절하여있었다. 그이를 처음 만나뵙게 된 감격도 컸지만 자기를 그처럼 따뜻이 대해주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것이다. 더구나 《첸렌장》은 《어떻소, 〈첸렌장〉, 사령부에 와서 나하고 함께 지낼 생각이 없소?》라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듣는 순간 이때까지 가슴속에 서리였던 모든것이 일시에 풀리는듯하여 그의 얼굴은 환히 빛났다. 《첸렌장》은 속으로 한없이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사령부로 옮기는것만은 굳이 사양하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거듭되는 권고에 못이겨 마침내《첸렌장》은 그이를 따라나서게 되였다. 《첸렌장》은 그이의 보살피심속에서 생활하면서부터 자기가 공연히 고민에 싸여있었다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였으며 따라서 생활이 명랑해진것은 물론 혁명의식도 날로 높아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항상 그가 혁명사업을 한다는 떳떳한 긍지와 자각을 가지도록 교양하시였다. 하루는 사령관동지를 모시고있던 중국청년인 《쑈리》가 그이께 드릴 차를 끓여가지고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드리였다. 이것을 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읽으시던 책을 밀어놓으시고 정색을 하며 빨리 일어서라고 엄하게 타이르시였다. 《쑈리》! 지금 동무는 어느 지주의 머슴이 아니라 혁명전사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떳떳이 싸우는 병사가 어찌 비굴하게 행동할수 있는가. 가슴을 쭉 펴고 혁명전사다운 긍지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오. 그이의 이 말씀은 《쑈리》에게뿐만아니라 《첸렌장》의 가슴에도 커다란 힘과 긍지를 안겨주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첸렌장》의 일상생활에 대하여서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으며 친부모와 같이 보살펴주시였다. 《첸렌장》은 사령관동지의 깊은 사랑에 접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옴을 느끼면서 반드시 그이의 크낙한 신임에 보답하리라고 굳게 다짐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맡겨지는 혁명임무를 온갖 정력을 다하여 수행했을뿐아니라 항상 더 어렵고 힘든 일을 맡겨달라고 제기하군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첸렌장》의 이러한 적극성을 고무해주시면서 그를 대담하게 믿으시고 중요한 혁명임무도 서슴없이 맡기시였으며 투쟁을 통하여 그를 단련시키시였다. 우리 부대가 그이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남하마탕에 있는 마굴령부대를 칠 준비를 하고있을 때였다. 이때에도 《첸렌장》은 자기에게 가장 어렵고 힘든 임무를 맡겨줄것을 그이께 여러번 제기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첸렌장》의 이 요청을 쾌히 승낙하시고 그를 《쑈리》와 함께 미리 남하마탕에 들어가 활동하도록 파견하시였다. 적진영에서 혁명의 편으로 넘어온지 불과 몇달이 안되는 그에게 어렵고도 중대한 적후공작임무를 대담하게 맡긴다는것은 당시 《민생단》문제로 복잡하던 시기에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조치였다. 그 당시의 복잡한 사정을 자신의 체험을 통하여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첸렌장》은 이 두터운 신임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것인가 하는 이 한가지 생각으로 하여 뜨거운 가슴을 들먹이고있었다. 어제까지 적의 장교였던 자기에게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신데 대하여 크게 감동한 그는 몸이 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이 크나큰 신임에 반드시 보답하리라고 다시금 굳게굳게 맹세했다. 적후에 들어가서, 더구나 직접 적의 소굴로 들어가서 활동한다는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생명을 오직 혁명임무수행에 바치는 고귀한 희생적투쟁정신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였다. 《첸렌장》은 자기 한몸의 위험에 대하여서는 조금도 생각지 않고 어떻게 하면 맡겨진 혁명임무를 더 잘 수행할것인가만을 골똘히 생각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구체적인 활동방향과 방법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목적지에 간 그는 품팔이군으로 이집저집 다니며 인민들속에서 공작을 진행하면서 마굴령부대의 병사들과 접촉하여 병실내의 동태를 구체적으로 장악하였다. 그는 이 정형을 사령관동지께 자세히 보고하였다. 얼마후부터 그는 그이의 새로운 지시에 따라 아편을 가지고 마굴령부대로 직접 들어가서 병사들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다. 장기간의 어려운 활동을 통하여 병실내의 일부 병사들을 장악한 《첸렌장》은 4월 29일에는 병사들에게 《선물》로 아편을 나누어주어 모두가 아편에 취해 곯아떨어지게 하였다. 그날 밤이였다. 우리 부대는 《첸렌장》의 련락을 받고 은밀히 병실턱밑에까지 접근하여 안에서 신호가 있기를 기다렸다. 11시가 되자 안에 들어가서 기회를 노리던 《쑈리》는 보초를 까눕히고 문을 연 다음 우리에게 신호를 하였다. 우리는 쏜살같이 병실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우리는 병실을 4면으로 포위한 다음 수류탄을 빼들고 들이닥치며 소리를 쳤다. 《손들엇!》 그런데 안에서는 아무런 반항도 없었다. 경각성을 높이며 방에 들어선 나는 한 중국농민복차림을 한 사람이 량손에 싸창 한자루씩을 빼여들고 적병들을 꼼짝못하게 하고 서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다름아닌 《첸렌장》이였다. 그날 저녁 《첸렌장》은 아편에 곯아떨어지지 않고 남아있던 일부 적병사들을 꾀여서 투전에 정신을 팔게 하다가 습격시간이 되자 싸창을 빼들고《꼼짝말라!》 하고 벽력같이 소리를 쳤던것이다. 나는 그처럼 용감하고도 전투적인 《첸렌장》을 직접 목격하고는 어찌나 반갑고 기뻤던지 그의 목을 얼싸 그러안으며 웨쳤다. 《첸렌장!》 말없이 나를 힘껏 그러안은 그의 얼굴은 뜨거운 눈물에 젖어있었다. 사령관동지의 크낙한 신임에 보답한 자랑, 첫 혁명임무를 승리적으로 완수한 혁명전사의 기쁨과 감격을 나는 그의 얼굴에서 뚜렷이 찾아볼수 있었다. 《장하오. 첸동무!》 나는 다시한번 그의 손을 굳게 잡았다. 그때에야 그는 언제나와 같은 선량한 얼굴에 수집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김일성장군님의 덕분입니다. …그이의 신임이 아니였던들 제가 어찌 이렇게 대담해질수 있었겠습니까!》 얼굴에는 여전히 기쁨과 긍지가 넘치고있었으나 그의 목소리는 저으기 떨리고있었다. 이날 우리 부대는 악질적인 마굴령부대를 완전히 무장해제하고 많은 무장과 전리품을 로획하였다. 《첸렌장》의 말과 같이 이 승리는 사령관동지의 령활한 전술과 구체적지도의 결과에 달성되였고 이 행정에서 《첸렌장》은 커다란 위훈을 떨칠수 있었던것이다. 《첸렌장》은 그후 공산당에까지 입당하여 훌륭한 혁명가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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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동지의 크낙한 신임과 사랑속에서 자기의 과거를 뉘우치고 옳은 길에 들어서서 훌륭한 혁명투사로 자라난 사람은 비단 《첸렌장》 한사람만이 아니다. 나는《첸렌장》을 회상할 때마다 구국군의 채사령, 위만군의 한 련대장, 적의 경찰서장이던 온서장 등 수많은 사람들을 아울러 생각하게 된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의 품은 한정없는 넓이와 깊이를 가지고있는것이다. 오늘 우리의 혁명정세는 전체 인민이 우리 당과 수령의 주위에 더욱 철석같이 하나로 뭉쳐나아갈것을 요구하고있다. 이로부터 당은 그 어느때보다도 각계각층 군중과의 사업을 더 잘하여 우리의 혁명진지를 더욱 반석같이 꾸릴 과업을 우리앞에 제시하고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과 모범을 따라 각계각층 군중과의 사업을 더 잘함으로써 우리의 혁명진지를 더욱 튼튼히 다지는데 전심전력을 다해야 할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