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밖에서는 눈이 내리고있었다.

이해도 마지막날인 12월 31일 저녁이였다.

제야의 종이 울리려면 아직 멀었지만 유정은 능금이와 함께 구석에서 책상을 끌어다 두 침대사이에 놓고 상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송편과 절편이 무드기 담긴 비닐소랭이를 가운데 놓고 그 둘레에 돼지고기볶음이며 훈제한 통닭이며 김치며 하는것들을 적당히 배치하였다. 이제 그들은 가물막이공사의 성공을 축하하고 슬픔속에 있는 귀금이도 위로하는 겸사 송년회를 《성대하게》 벌릴 작정이였다.

귀금은 아직도 부대식당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본래의 취사근무를 다시 시작한것은 일주일전이였다. 남편의 비보를 듣고 까무라쳐 쓰러졌던 그를 일으켜세운것은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보내주신 위문의 인사였다. 리영선부부장으로부터 남편의 영웅적소행에 대한 그이의 높은 평가와 위문의 말씀을 전달받은 그는 슬픔에 감격까지 겹쳐 더더욱 몸부림치며 목놓아울었다. 그러나 일단 눈물을 거두고 분연히 일어나자 더는 울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도 그는 끝내 울지 않았다. 귀금이를 부축하고 유정이도 그 장례식에 참가했었다. 그로서는 난생 처음 당해보는 군인들의 장례식이였다. 관우에 정히 놓여있던 군모… 바람부는 산언덕에서 울리던 조총소리… 그 조총소리가 지금도 귀전에서 울리는것만 같다.

귀금은 남편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온종일 죽은듯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꺼질듯한 한숨속에 가끔 소리없이 흐느끼기도 하였다. 그 긴긴 겨울밤 한숨과 눈물속에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누가 알랴!… 하지만 이튿날 날이 밝자 자리를 털고일어난 그는 다시 윤건호소좌의 대대에 나가 이전처럼 일을 시작하였다.

귀금은 그렇게 굳세고 사랑스러운 녀자였다.…

이윽고 음식을 다 차리자 유정은 능금이더러 고뿌를 세개 가져오게 하고 자신은 침대밑에서 맥주병을 꺼내 상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오늘밤 귀금이가 슬픔을 덜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해와 작별하도록 하자고 돌격대 후방책임자에게 부탁하여 마련한것이였다. 그러나 능금이는 병을 보더니 대뜸 눈이 둥그래지며 놀랬다.

《어마나, 맥주를 마실래요?》

《마시자꾸나. 오늘 같은 날 마시지 않음 언제 마셔보겠니. 맥주는 청량음료에 속한다니까 별일 없을거야.》

《그러다 취하면 어떻게 해요?》

능금이는 녀자가 맥주를 마신다는것이 무슨 큰 사변처럼 생각되는 모양이다. 아버지가 술이나 맥주 같은걸 전혀 마시지 않다보니 유정이도 걱정스럽지 않은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는 호실의 맏언니답게 제법 호기를 부려보았다.

《취하면 뭐 어때? 우리끼린데 춤이랑 추면서 한바탕 즐겁게 놀아보자꾸나 뭘.》

《원 언니두, 취하면 혀가 꼬부라지구 발이 어디를 짚는지도 모른다는데… 어쨌든 언닌 요새 좀 달라졌어요.》

《달라졌겠지.》김치사발이 중심에 놓이지 않은것 같아 바로잡으며 유정은 자신의 변화를 기꺼이 인정하였다. 《하지만 이 건설장에서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사람이겠니 목석이지.… 나는 내가 요새야 바로 어른이 되고 생활을 알게 되는것 같다.》

귀금은 11시가 다 되였는데도 들어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능금이가 데리러가고 유정은 솜옷을 어깨에 걸친채 홀로 방안을 거닐며 윤건호대대장에 대해 생각하였다. 보고싶었다. 그럴수만 있다면 이 밤중에라도 달려가 만나보아야 그리움을 덜수 있을것 같았다.

언젠가 봉희는 첫사랑때를 추억하면서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만나고싶은 욕망의 나날이였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그때 유정은 봉희의 고백을 솔직한 점은 있지만 사랑의 첫시절에 대한 총화로선 너무 빈약하고 지어 천박하다고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이 봉희가 겪은것과 같은 체험을 하고있다는데 대해 부인할수 없었으며 그것을 《천박》한 감정이라고는 더욱 말할수 없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는 지난번 출장길에 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목을 주던 그 잊을수 없는 순간을 부끄러운 마음속에 상기하였다. 가물막이제방안에서 물을 퍼낸 조건을 가상하여 제방에 미치는 수압관계를 계산해올데 대한 과업을 받고 평양에 들어간 그날 저녁까지만 해도 그는 윤건호대대장에게 면회가는 문제는 맡은 과업을 수행한 다음의 일로 예견하였다. 수술을 받은지 그리 오래지 않은 조건에서 아직 면회가 허락되지 않을수 있으므로 과업부터 수행하는것이 옳을것 같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연구소에 나가 오전내 전자계산기를 다루어보고는 그를 만나보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할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그래 오후에는 아예 일을 그만두고 시내에 나가 준비를 좀 해가지고 인민무력부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병원정문앞에서 그는 실망하지 않을수 없었다. 군대병원은 다른줄 알았는데 사회병원과 마찬가지로 일요일에만 환자를 만날수 있다는것이였다. 일요일까지는 아직 사흘이 남아있었다. 그 사흘동안을 어떻게 기다리랴싶어 그는 상등병인 정문보초병에게 사정해보았다. 그러나 보초병은 얌전스런 생김새와는 달리 아주 무뚝뚝하게 안된다고 딱 잘라매며 두말못하게 하는것이였다. 유정은 건설장에서 군인들이 군대에선 상등병이 지키는 보초소를 통과하기가 제일 힘들고 군사칭호가 높은 상관일수록 규정을 따지지 않는다고 롱담삼아 해주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이 어린 상등병에게 빌붙느니 차라리 높은 상관을 만나 사정하는것이 옳겠다고 보아 그는 병원원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자 보초장이 나와 신분증을 요구하고 사유를 묻고 (유정은 갑문건설장에서 무슨 부탁을 가지고온듯이 묘사했다.) 전화가 걸리고 하던끝에 마침내 원장의 방에 들어갈수 있게 되였다. 원장은 몸이 틀지고 안경을 낀 반백의 장령이였다. 유정의 면회요청을 듣고 장령은 어이없는지 한참동안 책상너머로 쳐다만보더니 물었다.

《그래 그 대대장을 동무가 꼭 만나야 할 리유는 무어요?》

유정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하면 애써 만든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한번 대담성을 발휘했다.

《저는 그 동무와… 약혼…》

유정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신이 이런 부끄러운 말도 서슴없이 할수 있는 뻔뻔스러운 녀자가 되였다는것이 진정 놀랍게 생각되였다.

원장은 아무 반응없이 한동안 잠잠해있더니 천천히 송수화기를 들어 입원실을 찾았다. 그리고 전화가 련결되자 담당군의를 불러 환자의 상태며 면회의 가능성여부에 대해 문의한후 면회를 시켜도 일없는 모양 약혼녀가 가면 만나게 해주라고 하며 송수화기를 놓았다.

《자, 이러면 되겠소.》

《고맙습니다. 원장동지!》

유정은 머리를 깊이 숙이며 진심으로 사례하였다.

입원실문앞에서 그를 맞이해준것은 량볼이 익은 도마도처럼 새빨갛고 위생복우로 내놓인 군복깃에 상등병령장을 단 담당간호원이였다. 오늘은 어찌된 셈인지 가는 곳마다에서 상등병과만 맞다들린다고 생각하며 유정은 소좌의 호실을 물었다. 그런데 간호원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튀여나왔다.

《호실은 11호실이지만… 환자동지가 면회를 하지 않겠답니다.》

이런 경우를 예견 못한 관계로 유정은 일순간 어리둥절하였다.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왜 면회를 하지 않겠대요?》

《그건 모르겠는데 어쨌든 만나고싶지 않으니 돌아가달랍니다.》

유정은 어이없었다. 이런 거절을 당하자고 병원원장까지 만나면서 애써 찾아온것은 아니였다. 그는 이것이 달포전의 그 잊을수 없는 밤에 손목을 주지 않은데 대한 보복이라고 생각하였다. 다른 리유란 있을수 없었다. 남의 마음속에 불을 질러놓고는 오히려 제편에서 물을 끼얹고있지 않는가.

그는 간호원에게 어디서 무슨 오해가 생긴것 같으니 들어가도 별일 없을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간호원은 문을 딱 막고 서서 안된다고, 환자가 싫다는 면회를 억지로 하면 치료에 지장이 있다는것이였다. 역시 상등병이였다. 유정은 그만 화가 나서 어성을 높였다.

《이봐요 간호원동무, 동무는 원장선생님의 지시도 집행하지 않아요?》

《?…》

원장의 지시를 집행하지 않는다는 소리에 간호원은 금시 눈이 둥그래졌다. 이제는 주도권이 자기쪽에 있다는것이 명백해지자 유정은 전화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으로 한번 압력을 가했다. 그것으로 사태는 완전히 뒤집혀서 그는 오늘 벌써 두번째로 상등병이 지켜선 문을 통과하여 11호실(독방이였다.)에 들어설수 있었다.

유정은 아픈 마음으로 이불을 덮은채 눈을 감고 반듯이 누워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창백한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달포사이에 수술을 두번씩이나 받았으니 얼마나 힘겨웠으랴.…

《갔소?》

여전히 눈을 감은 윤건호의 물음, 아마도 방에 들어온것을 간호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유정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대꾸는 곱지 않게 했다.

《가지 않았으면 어쩌겠어요?》

정적… 윤건호는 감은 눈을 애써 뜨려고 하지 않았다.

《언젠 손목을 안준다고 패뜩하더니 이젠 원쑤치부를 하세요?》

《그건… 실수였소.》 고통을 씹어삼키는것 같은 윤건호의 대답이였다.

《실수면 용서를 빌어야죠. 그럴 용기가 있어요?》

《있소.》

《거짓말 말아요.》

유정은 갑자기 보이지 않는 불길이 전신을 휩싸는것 같은 느낌을 체험하였다. 그 불속에 몸과 넋을 맡기며 무너지듯 침대앞에 주저앉은 그는 이불밑에 손을 넣어 사나이의 크고 무거운 손을 더듬어쥐였다. 그 손을 끌어다 자기의 손목우에 놓아주며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지그시 눌렀다. 억센 집게에 물리운듯 사나이의 뜨거운 손이 손목을 서서히 조인다. 그 손을 통해 전달되여오는것은 온기가 아니라 그대로 불이였다.…

능금이와 귀금이는 11시반도 넘어서야 눈사람처럼 되여가지고 방에 들어섰다. 그들이 눈을 털고 옷을 벗어 건 다음 상에 둘러앉자 유정은 식탁우에 덮었던 보자기를 벗겼다. 이런 좌석을 예견 못했던 귀금은 잠시 얼떠름했다가 슬픔이 어린 아련한 눈길로 식탁을 내려다보았다. 그런속에서 고뿌에 맥주가 부어지고 마침내 세 녀인은 들고 일어섰다.

《갑문건설이 하루빨리 잘되길 바래서…》

능금이가 어른스럽게 말했다.

세 녀자는 잠시 숭엄한 침묵에 잠겼다.

《그리고 우리모두의 건강과 두 언니의 행복… 행복…》

능금은 갑자기 뒤말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 전등은 여전히 밝건만 방안의 분위기는 금시 어두워지는것 같았다. 능금이도 그것을 깨달은듯 낮색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불현듯 고개를 떨구며 흑- 하고 흐느꼈다. 이런 경우를 예견 못했던 유정은 당황하여 어쨌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그는 얼른 귀금이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오히려 태연한것은 귀금이였다. 그는 슬픔이 얼어붙은 창백한 표정으로 쥐고있는 잔만 이윽히 내려다볼뿐 아무런 감정변화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의 그런 강인한 모습에서 힘을 얻어 유정은 자신부터 수습하여 가볍게 능금이를 나무람했다. 능금이도 자신의 실수를 뉘우치며 인차 눈물을 닦았다. 그제야 귀금은 얼굴을 들었다.

《고마와요, 언니 그리고 능금이… 평생토록 오늘을 잊지 않겠어요.》

슬픔을 누른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그는 고뿌를 들어 입에 가져갔다. 그와 함께 유정이도 마시고 능금이도 마셨다. 난생처음 마셔보는 음료여서 그들 세 녀인은 모두 얼굴을 찡그리며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쓰거움이 무사히 목구멍을 넘어가고 내부로부터 벌써 어떤 반응이 느껴지자 그들은 저마끔 손바닥으로 가슴을 매만지며 서로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웃기 시작하였다. 눈물이 글썽하도록 한바탕 웃고나서 그들은 빈고뿌에 다시 맥주를 부었다. 바로 그때 고성기에서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순간 모두 입을 다물고 경건한 마음으로 종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더-엉… 더엉… 더-엉…

머나먼 우주의 한끝에서 울려와 심혼의 문을 두드리는것 같은 그 웅장우아한 종소리를 눈을 감고 하나, 둘… 세면서 그들 세 녀인은 마음속으로 기원하였다.

(어서 오시라, 새해 1984년이여. 우리모두에게 부디 기쁨과 행복만을 약속해다오. 희망의 새해여!…)

고였던 눈물이 넘쳐나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렀다. 귀금이와 능금이도 울었다.

갑문건설의 네번째해는 그렇게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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