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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이 백오십명을 넘는 과학자돌격대에서 혼자 녀성인 관계로 유정은 사랑도 많이 받지만 그대신 출장이 잦았다. 오늘 그가 출장으로 받은 과업은 연구소에 들어가 가물막이제방안에서 물을 퍼낸 조건을 가상하여 밀물때의 최대수압이 조립된 철배의 매 알통에 미치는 값을 콤퓨터로 구해오는것이였다. 마감공사가 눈앞에 박두함에 따라 요새 연구사들속에서는 일시 잦아들었던 가물막이제방안의 수압에 대한 문제가 다시 론의에 올랐다. 유지되던 수압균형이 파괴되면서 밀물에 제방이 어떤 영향을 받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새삼스러운 론의가 아니고 이제와서 공사를 달리 진행할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않지만 그래도 돌격대지휘부에서는 다시한번 과학적계산으로 그 안정성을 확인할 결심이였다. 유정은 과업을 선선히 접수했다. 임무가 중요한것은 딴 문제로 하고 이전같으면 출장이 잦은것이 싫어서도 좀 피탈질을 해보았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군인들속에서 오래 일하면서 임무접수와 집행에 대한 그들의 무조건적인 정신을 배웠다고 할지, 어쨌든 그는 요새 자신이 비로소 참다운 사회성원으로 성숙하고 신상에 부닥쳐오는 크고작은 개개의 일들에 대한 중요함과 책임감을 새삼스럽게 느끼는것 같았다. 돌격대참모장의 방을 나와 식당에서 점심부터 먹은 그는 숙소에 돌아와 출장준비를 하였다. 자습하는 외국어원서며 사전과 갈아입을 옷가지들을 넣으니 가방이 벌써 배가 불러 화장통을 넣을 자리가 없었다. 그래 화장품은 평양에 들어가 사서 쓸 셈으로 쟈크를 채우고 일어나 세수를 한 다음 간단히 화장이나 하려고 거울앞에 나섰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수건으로 무심히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던 그는 갑자기 《어마.》하고 놀랐다.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해빛에 가무스레하게 탄 량쪽 눈귀에 가는 실주름이 잡힌것을 발견했던것이다. 그럴수가 없다고 애써 부정하며 그는 바삐 수건을 놓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량눈귀를 비벼보았다. 그래도 주름살은 없어지지 않고 눈을 약간 쪼프리면 골이 더욱 깊어지고 그옆으로 보면 주름살이 또 박히였다.… 원 세상에, 벌써 주름살이 생기다니… 스스로 어이없는 생각을 금치 못하며 가는 한숨을 내쉰 그는 화장통에서 살결물병을 꺼내들고 마개를 비틀었다. 공부를 많이 하고 지성을 쌓은 녀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유정은 지금까지 얼굴치장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성에 눈뜬 대학시절은 그 시절대로 학업에 바빴고 졸업후 연구소에 배치된 뒤로는 연구과제에 쫓기다보니 맵시같은데 신경을 써볼 겨를이 없었다. 다행스러운것은 부모님덕분에 그리 밉지 않은 용모와 맑고 흰 살결을 가진것이라고 할지, 거기에 고뿔도 모르는 건강체라 세수만 해도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은것처럼 보여서 때로 오해를 사거나 동무들의 시샘을 받기가 일쑤였다. 그렇던 얼굴이 여기 갑문건설장에 와서 볕에 타고 바다바람에 좀 거칠어졌다싶었는데 어느새 눈귀에 주름살이 박힌것이다. 하기는 이젠 스물여섯살, 설을 쇠면 또 한살을 먹는다. 중학시절의 동무들속에는 두 아이의 어머니가 수두룩하고 대학동창들도 거의 다 결혼하였다. 그런 까닭에 어머니 또한 편지마다 걱정이고 채근이다. 어쩔셈이냐? 누가 사랑하여 일생의 동반자로 삼겠다는 사람이 그리도 없느냐? 연구사를 그만두더라도 금년은 절대로 그냥 넘기지 못한다.… 합성수지연구로 40대에 학사가 된 어머니는 딸이 성장함에 따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늘 이렇게 교양했었다. 너를 사랑해준다고 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사랑의 감정과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은 서로 다르다. 그러니 감정으로 결심하지 말어라, 아침에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은 저녁에 평가하는것이 좋다, 서둘러 한 결혼앞에는 흔히 불행이 기다리고있다는것을 명심해라 등등… 그러던 어머니가 스스로 자신의 계률을 어기면서 독촉하게쯤 되였으니 왜 눈귀에 주름살인들 생기지 않으랴! 아무리 건설장이라도 이제부터는 화장도 좀 하고 몸을 가꾸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크림이니 향분이니 눈섭연필이니 하는것들을 쥐고 놓고 하는 그의 눈앞으로 윤건호대대장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유정은 이번 출장길에 소좌를 만나볼 결심이였다. 그가 오늘 돌격대참모장이 주는 출장임무를 기꺼이 접수한 리면에는 그러한 계획도 감추어져있었다. 《그가 과연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불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좌를 비롯한 3명의 중상자들이 남포시병원에서 1차수술을 받고 평양으로 후송된것은 한달전이였다. 후송될 당시까지만 해도 그들의 생명은 구원하기 힘든것으로 설명되였다. 그러나 수술결과가 대단히 좋아서 생명의 위험이 멀리 떠난것은 물론 2차수술만 성공하면 원상회복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였다. 비록 멀리 떨어져있고 풍문으로 한쪼각씩 전해져오는 소식일망정 유정은 비상한 관심속에 윤건호소좌의 그러한 수술결과를 주시하고있었다. 군인의 몸으로 건설장에서 대학과정을 공부하는 사람, 자기를 사랑하여 손목을 잡으려던 사나이… 하늘에 엷은 구름장들이 널려있고 바람불던 그 밤을 유정은 잊을수 없었다. 더욱 잊을수 없는것은 충돌직전의 함형부재를 구원하기 위하여 군관혁띠를 풀어내치면서 대대군인들에게 자신을 따를것을 명령하며 통나무를 안고 바다에 뛰여들던 소좌의 거인같은 모습이였다. 그 억센 사나이가 지금은 침대에 누워 두번째 수술을 기다리고있었다. 유정은 미안하고 죄스러운 생각을 금할수 없었다. 그에게는 부재충돌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것도 그때문에 소좌와 대대군인들이 바다에 뛰여들어 부재를 구하고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되였던것도 다 자신의 불찰,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때문에 일어난 결과처럼 생각되는것이였다. 지금 유정은 왜 그날 자신이 소좌앞에서 손을 움츠리였던지를 곰곰히 생각해본다. 처음에는 놀라고 당황했었다. 다음에는 눈을 뜬 리성의 요구였으니 자신의 리상인 과학사업이 기다리고있다는 그것이였다. 군관을 사랑한다는것은 곧 과학사업을 그만둔다는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니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좌는 지금 육체적고통과 함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쓰라림도 겪고있을것이다. 어쩌면 그 쓰라림이 육체의 아픔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왜 그를 사랑하면 안된단 말인가? 과학자라고 군관을 사랑하지 못할 까닭이 무엇인가? 사랑의 력사속에는 한 녀성을 위해 왕위를 버린 사나이들도 있다고 한다. 참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먼 례를 들것도 없다. 전선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온 영예전상자들을 위해, 군사복무과정에 몸을 다치고 돌아온 사나이들을 위해 고이 간직해온 순결한 사랑을 바친 녀성들이 이 나라에는 얼마나 많고 많은가? 그런 녀성들에게 나름의 꿈과 아름다운 인생계획이 없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죄악으로 될것이다. 그래 그들이라고 왜 아름다운 꿈을 꾸지 않았고 결혼한 뒤에도 처녀시절처럼 아무 구애됨이 없이 이루고싶던 인생계획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그 꿈과 계획을 사랑과 바꾸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동정심의 발로?… 아니면 녀성본능의 리기조차 넘어선 자기희생으로?… 아니, 아니다. 그렇게 풀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성스러운 조국을 위해 자기의 피와 살을 서슴없이 바친 용감한 사나이들- 영웅들에 대한 우리 녀성들의 매혹에 기초한 하나의 아름답고 비상한 사랑으로 설명해야 할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왜 그들처럼 사랑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 갑문건설도 총포성없는 전장이고 바다의 전역이라고 한다. 그 전장에서 부딪치는 수천t짜리 부재사이에 몸을 던진 영웅을 사랑하는것이 그래 연구사업보다 못하단 말인가?… 생각이 깊어감에 따라 유정은 스스로 격렬한 감정에 불타올랐다. 그는 어째선지 자신이 윤건호소좌를 사랑하는것이 이제는 응당한 일로까지 생각되였다. 바로 그때 마당에서 쿵쿵 땅 울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며 능금이가 뛰여들어왔다. 《뭘해요, 언니?》 상념속에 깊이 빠져있던 탓에 유정은 제때에 대답을 못했다. 그러거나말거나 신을 마구 벗어던진 능금은 기쁜 소식을 하나 알려주려고 뛰여왔노라면서 활발한 성미그대로 그리 작지 않은 궁둥이를 침대에 쿵- 내던졌다. 그러나 인차 유정이 가방을 꾸려놓은걸 보고는 눈이 덩둘해졌다. 《어마나, 또 출장가요?》 유정이 그렇다고 하자 처녀는 당장 토라진 목소리로 《으-음》하며 불만을 드러냈다. 혼자 있기가 싫다는 소리였다. 《그래 기쁜 소식이라는건 뭐냐?》 《싫어, 안대줄래.》 그는 뾰로통해서 침대밑에 드리운 발까지 굴렀다. 유정은 웃지 않을수 없었다. 《넌 그저 심술쟁이총각으로 태여나야 꼭 알맞을걸 그랬어.》 그제야 능금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 《언니, 그 함형부재사이에 뛰여든 대대장 있지요? 윤건호소좌… 그 소좌동지에게 영웅칭호를 준대요.》 《그건 누가 그래?》 《군대건설국장동지가 우리 종합과장동지한테 말하는걸 들었어요.…》 유정은 생각에 잠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철만중장이 말했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아, 영웅… 그 동무가 영웅이 되면… 유정은 영웅메달을 가슴에 단 윤건호를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그옆에 자기 아닌 어떤 다른 처녀를 세워보았다. 상상속의 처녀건만 행복에 겨운지 방그레 미소를 짓는다. 순간 유정은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안돼! 그건 안돼! 그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있어.…) 그렇게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그는 자신의 희고 연연한, 아직 그 어떤 사나이에게도 준적이 없는 깨끗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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