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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아홉시경. 쏟아지는 진눈을 맞으며 사십m가 넘는 긴 팔을 하늘로 내뻗친 130t기중기선이 두척의 200마력예선에 끌리워 대동강을 거슬러오르고있었다. 기중기선에는 선원들외에도 해상돌격대장 정대철과 그의 수하에 있는 연공, 잠수병들이 10여명이나 타고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갑판에 떨쳐나와 삿대며 널판자며 쇠망치따위로 배전에 달라붙는 얼음장을 떼버리느라고 역사질이였다. 어제밤 서해지구는 중국 산동반도를 휩쓴 태풍의 영향을 받아 바람이 몹시 불었다. 날이 밝아서야 알게 되였는데 마감막이를 위해 전날 남포조선소에서 운반해다 부통에 실은채로 고정시켜놓았던 최종막이수문이 바람에 밀려 어디론가 떠가버렸다. 소동이 일어났다. 작업선들은 물론 련락정과 고무뽀트들까지 총동원하여 금산포와 남포, 은률쪽 대안들을 훑으며 찾던중에 남포시당을 통해 행방불명된 수문이 대보리근방에 밀려올라가 강기슭에 뒤집혀져있다는 련락이 왔다. 기중기선은 지금 그것을 건지러가는 길이였다. 솜동복우에 병사용외투를 덧입은 정대철은 외투주머니에 두손을 깊이 찌른채 선수쪽 갑판우를 뚜벅뚜벅 오고가며 목적지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두루 생각해보았다. (… 강기슭에 뒤집혀져있다면 보나마나 밤새 꽉 얼어붙었을테니 우선 얼음까기부터 해야 할것이다. 오늘같은 날은 위험하므로 잠수작업은 될수록 피해야 한다. 쇠바줄로 수문밑둥을 걸어당기느라면 견인고리를 찾던가 바로 세울수도 있을것이다. 발전선과 양수기를 제창 가지고오는걸 그러지 않았는가?) 그때 기중기선을 끌고있는 오른쪽 예선이 문득 뚜- 하고 목쉰 고동을 울렸다. 왼쪽 예선도 같은 소리로 그에 화답하였다. 이어 두 배는 약속이나 한듯 기관을 끄고 서서히 전진을 멈추었다. 대보리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웬일인가싶어 정대철은 선장실을 올려다보았다. 선장은 머리가 희끗희끗 센 60전후의 몸이 다부진 사람인데 벌써 다랍쁘를 밟으며 갑판으로 내려오고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게 안보이우다?》 선장의 수염더부룩한 턱이 가리키는 기중기팔을 올려다보고서야 정대철은 재미없는 정황에 맞다들었음을 직감하였다. 진눈까비가 어지럽게 쏟아지는 거기 전방의 희뿌연 공간속에 강을 가로질러건너간 여러줄의 고압송전선이 보였다. 한선에 수만v의 전압이 걸려있는 송전선인데 진눈이 달라붙으면서 한껏 늘어나 금시 강물에 닿을것처럼 무겁게 드리워져있었다. 《날을 잘못 고른것 같수다.》 앞에 있는 두척의 예선보다도 더 멀리 뻗어나간 기중기팔끝을 올려다보며 하는 선장의 말이였다. 정대철은 여러모로 송전선의 높이를 가늠해보았지만 닿을것 같기도 하고 닿지 않을것 같기도 하고 잘 알수 없었다. 그러나 송전선을 늘일 때 이런 경우를 타산하지 않을수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전진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선장은 응하지 않았다. 《안되우다. 설사 닿진 않는다 해도 안정한계를 벗어나 류전이라도 되는 날엔 세 배에 산 목숨이 하나두 남지 않수다.》 세 배가 다 쇠바줄로 련결되여있으니 류전이 가져올 후과는 그렇게 처참할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선장은 인차 대답하지 않았다. 부시럭거리며 솜옷주머니에서 마라초쌈지를 꺼내 한대 말아붙이고야 입을 열었다. 《별수 없을것 같수다. 돌아갔다가 이 눈이 멎구 고압선이 좀 들린 다음에 와야지.…》 정대철은 선장의 의견에 동의할수 없었다. 바다가 얼어붙기전에 마감막이를 결속하려고 온 끝살부리가 바글바글 끓고있는판에 그렇게 늘쩡거린다는것도 말이 안되거니와 위험하다고 먼발치에 서서 쳐다보다가 되돌아간다는것이 우선 배짱에 맞지 않았다. 《이렇게 합시다. 내 보기에도 복판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저기 은률쪽은 선이 좀 들렸습니다. 그러니 배를 저쪽 대안에 바싹 붙여가지고 통과하면 일없을것 같습니다.》 《그쪽은 물밑에 암초들이 많수다.》 선장의 말이였다. 《암초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백m만 극복하면 됩니다. 그 백m를 극복할 자신마저 없다면 선장동무, 미안합니다만 배를 우리 군인들한테 맡기고 선원들을 데리고 내리시오. 우린 그저 돌아갈수 없습니다.》 선장이 끝내 응하지 않는 경우 정대철은 실지로 그렇게 할 작정이였다. 그러나 선장의 얼굴은 벌써 노여움으로 이그러졌다. 《여보시우, 군대라구 사민들을 너무 업수 보지 마슈. 사민은 가슴에서 피가 안뛰구 맹물이 뛰는줄 아시오?》 《내 말이 지나쳤다면 량해하시오. 그러나…》 《됐수다.》 선장은 담배꽁초를 끼워쥔 손으로 가슴앞 허공을 뻑 내리긋고는 영필이라는 젊은 선원을 불러 두 예선의 선장들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고무뽀트가 내려지고 두 선장이 실려와 은률쪽 기슭으로 통과할데 대한 설명을 듣고 필요한 협동신호들을 약속하였다. 드디여 배들은 전진을 시작하였다. 기중기선 선장과 함께 선수갑판 바로 기중기팔밑에 두발을 벌려짚고선 정대철은 긴장한 눈길로 전방을 감시하였다. 은률쪽기슭이 가까와짐에 따라 강수면에 거의 닿을것 같던 고압선이 떠오르며 공간을 드러냈다. (그러면 그렇겠지. 아마 암초도 없을것이다.) 불행은 바로 그때 찾아왔다. 이제는 예선들과 기중기팔끝이 고압선밑에 거의 당도했을것이라고 생각할무렵 갑자기 발밑에서 어떤 둔한 물체가 드-윽 하고 배밑창을 긁었다. 동시에 배가 흠칫 몸을 떨며 멎어섰다. 《암초에 부딪치지 않았습니까?》 다른것일수 없다는것이 명백했지만 정대철은 얼결에 그렇게 물었다. 《부딪쳤으면 좋겠는데 올라앉은것 같수다.》 배가 암초우에 올라앉았다는것이 어떤것인지는 정대철이도 모르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가 모재비로 뒤집히거나 더 나쁘기는 허리가 뭉텅 부러져나가는수도 있다. 다행히 작업선은 그런 형편에까지엔 이르지 않고 배머리가 암초우에 조금 올라앉았을뿐이였다. 그러나 그 조금 올라앉은 기중기선을 내려앉히는데 근 두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돌아갈수밖에 없다는것이 누구에게나 명백해졌다. 그때껏 선미쪽에서 얼음밀어내기를 하던 박선봉이 한가지 제기할 문제가 있다면서 정대철에게 만나줄것을 요청해온것이 바로 그때쯤이였다. 《말하시오. 뭔지…》 정대철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병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대좌동지, 제가 저 기중기팔끝에 올라가겠습니다.》 얼음장과 씨름하느라고 솜옷앞섶이며 무릎이 화락하게 젖은 박선봉의 엉뚱한 제의였다. 정대철은 의아한 눈으로 병사를 쳐다보았다. 《거긴 왜 올라가?》 《이건 제가 연공을 할 때 얻은 경험인데… 고압선이 저렇게 처져내리긴 했지만 밑에서 올려다보기와 다릅니다. 그리고 기중기팔끝에 올라가 직접 수평으로 보면 배가 통과할수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알수 있습니다.》 정대철은 병사의 제의가 좀 모험적이기는 해도 충분히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의견을 묻는 의미에서 선장을 쳐다보았다. 선장은 멀리 눈내리는 희뿌연 하늘가로 사라진듯 싶은 기중기팔끝을 이윽히 올려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대철은 그것을 동의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박선봉을 돌아다보았다. 《아주 좋은 생각이요. 팔끝에 올라가 수기신호로 배를 지휘하면 될것 같소. 하지만 동무는 안돼.》 《왜 저는 안됩니까?》 《글쎄 안돼. 연공들도 있는데 동무야 잠수병이 아닌가?》 정대철은 고압선이 팔끝에 닿지 않는다 해도 선장의 말대로 고압선이 안전한계를 넘어 류전되는 경우를 생각했다. 류전이 약하여 배에까지는 미치지 않는다 해도 진눈을 맞으며 기중기팔끝에 올라간 사람은 위험할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은총을 입어 잃어버렸던 생을 금방 되찾고 첫 임무수행의 길에 나선 병사를 그런 위험속에 내맡길수 없었다. 그러나 박선봉은 자기도 한때 연공이였으며 자신이 생각해낸 일이기때문에 제가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중에 그는 눈부리를 벌겋게 달구어가지고 울먹거리며 이런 말까지 하였다. 《대좌동지, 대좌동진 저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발 막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다른 동무들보다 백배로 일을 더 해야 하고 남들이 못하는 어려운 일도 저는 해내야 합니다. 대좌동지, 허락해주십시오. 저는 이전의 사고꾸러기 박선봉이 아니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사랑속에 새로 태여난 박선봉입니다.》 정대철은 병사의 절절한 요구를 더 막을수 없었다. 《좋아, 그럼 올라가라구. 하지만 반드시 무사히 내려와야 해?》 《고맙습니다. 대좌동지!》 박선봉의 목소리는 감동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기중기팔로 올라가려니 이번에는 연공들이 막아나섰다. 그들은 자기들이 있으면서 잠수병에게 연공작업을 맡긴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면서 제마끔 제가 올라가야 한다고 우기며 옥신각신하였다. 정대철이 그러는 병사들을 설복하다못해 성까지 내서야 겨우 진정시키고 박선봉을 기중기팔에 오를수 있게 하였다. 기중기팔에 사다리가 따로 없는 조건에서 지그자그로 널직널직 붙어있는 산형강을 짚으며 배가 동요하는데 따라 그냥 흔들거리는 60°이상 되는 경사를 올라간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게다가 내리는 진눈까비에 젖고 얼어서 여간 미끄럽지 않았다. 아차 실수에 허연 얼음장들이 둥둥 떠도는 수십길 강물에 곤두박힐수 있었다. 그런대로 물에 떨어지면 별문제지만 얼음장우에 떨어지면 살아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선봉은 그러한 위험이나 생명에 관한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기여오르는데만 전심하였다. 높이 오를수록 바람세가 더 사나와졌다. 짐작에 이제 겨우 절반거리나 돌파했음직한데 벌서 팔다리에 맥이 없으면서 등골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한순간 그는 힘을 주었던 오른발이 쭐 미끌면서 하마트면 떨어질번 했다. 눈앞에 있는 가름대를 날쌔게 끌어안았기에 망정이지 떨어졌기가 십상이였다. 그는 가름대를 붙안은채 공포로 뛰노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얼마간 쉬였다. 그리고 다시 배밀이로 전진을 시작하자 하나하나의 쇠가름대를 넘을적마다 수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세-에-엣…》 그렇게 쉰한개를 세고서야 드디여 기중기팔끝에 도달할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큰 위험은 아직도 앞에 있었다. 꼭대기에 올라오며 점차 좁아진 가름대사이에 의지하고선 그는 등뒤 혁띠에 꽂았던 수기를 뽑아 손바닥처럼 작게 느껴지는 배들을 내려다보며 약속된 신호를 보냈다. 이윽고 배들이 전진을 시작하였다. 극히 미속이였다. 선봉은 긴장한 눈길로 전방을 감시하였다. 점차 굵어지며 서서히 다가오는 네갈래의 희끄무레한 고압선… 이제는 거의 팔뚝만큼 굵어보인다. 그런데 왜 선들이 높아지질 않는가. 거리가 줄어들면 좀 더 높아보여야 할것이 아닌가? 이 상태로는 팔이 걸릴수 있다. 정지신호를 보내야 한다. 개판이군!… 하지만 그는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신호기발을 쳐들려는 순간에 고압선이 눈높이에서 조금 올라가는감을 느꼈던것이다. 그렇구나! 조금 더… 사이 뜬다. 그는 그 공간이 몇m 되겠는가를 가늠해보았다. 4m?… 아니 칠팔m는 된다. 아니다. 5m정도밖엔 안된다!… 그러는 사이에 송전선은 눈앞으로 바싹 다가왔다. 이제는 고압선에서 잉- 하는 전류 흐르는 소리마저 들렸다. 정지신호를 보내도 때가 늦었다. 배가 기관을 멈춘다해도 타력으로 선에 가닿을것이다. 그 다음,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가? 그에 대답하듯 윙- 하고 고압선이 더 크게 울었다. 그 울음소리에 실려 팔뚝같이 굵은 고압선이 곧추 그의 이마를 겨누고 달려왔다. 아, 내가 또 무슨 사고를 저질렀는가?… 선봉은 이제 불과 몇초후면 머리우에 떨어질 벼락을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예감한 삼사초가 훨씬 지났는데도 벼락은 떨어지지 않고 조용하였다. 들리는것은 명주필을 째는것 같은 앙칼진 바람소리와 웅- 웅- 하는 고압선의 울음뿐이였다. 눈을 떴으나 고압선은 보이지 않았다. 얼결에 몸을 돌리니 고압선은 벌써 저만치 뒤쪽에 가있었다. 그러니 통과했단 말인가? 정말 닿지 않고 무사히 지나왔단 말인가?… 선봉은 약속된 신호조차 잊어버리고 멍- 하니 멀어져가는 송전선만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