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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래일은 《아빠트》들이 이사가는 날이다. 부재장 수문을 드디여 터치고 1기에 생산한 부재들을 띄워 바다로 끌어내가는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함형부재생산자들은 저녁식사후 각 대대별로 군무자총회를 진행하였다. 윤건호소좌의 구분대에서 군무자총회가 끝난것은 날이 벌써 한밤중처럼 캄캄해진 여덟시반경이였다. 결의모임뒤끝이라 건호는 이전같으면 흥분한 김에 대대를 이끌고 작업장으로 달려나갔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저녁에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래일 첫새벽부터 긴장한 전투를 벌려야 하는 조건에서 그는 중대장들에게 오늘밤에는 일체 다른 사업을 조직하지 말고 취침시간에 관계없이 전사들을 일찍 재우라고 지시하였다. 중대장들을 돌려보내고 전화로 부대참모부에 군무자총회정형을 보고한 그는 습관대로 공부를 하려고 교재를 펼쳐놓았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도무지 교재에 정신을 집중할수 없었다. 군무자총회를 하면서 흥분된 감정이 채 가라앉지 않은탓이였다. 이럴 때는 차라리 래일의 큰일을 앞두고 일찍 자고 새벽에 깨여나는 편이 좋다고보아 그는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정작 자려니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눈앞으로 자신의 착안에 의해 통나무를 쓰지 않고 만든 함형부재의 웅장한 자태가 솟아오르는가 하면 그것을 만들던 나날의 일들이 머리속으로 강물처럼 흘러가기도 하였다. 또한 그것은 래일 수문을 터쳐 부재장에 물을 채우면 과연 부재가 떠오르겠는가 하는 불안으로 바뀌면서 마음속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래일의 전투를 위해서는 자지 않으면 안된다고 자신을 강박하며 모포를 뒤집어쓰고 눈을 감으니 이번에는 오려낸 사진인양 유정이의 아름다운 얼굴이 삼삼히 떠올랐다. 비로소 그는 이 하루 자신이 몹시 그 녀자를 기다렸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왜 그토록 기다리며 만나려고 했던지는 지금도 꼭 집어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저 까닭없이 만나고싶었고 그래서 기다렸던것이다. 유정이가 이런 내 심정을 알고있을가? 모르겠지. 모르니 오지 않았을것이다. 그는 지금 유정이가 무엇을 하고있겠는가를 상상해보았다. 자고있을가? 아니, 그가 언젠가 말하지 않았는가. 자기는 게으른 녀자여서 새벽잠이 많다고, 그때문에 어머니한테서 욕도 많이 먹었지만 끝내 고치지 못했노라고… 그러니 지금쯤 소설책을 읽던가 제3외국어로 독습한다는 도이췰란드어원서를 번역하고있을지도 모른다. 제3외국어… 나도 대학시절에는 제2외국어로 도이췰란드어를 선택할 계획이였지. 그런데 지금은… 제3외국어라… 그래 유정이는 지금 제3외국어를 공부하고있다. 그러니 나같은것은 안중에도 없을것이다. 하기야 외국어를 세개씩이나 알고있는 녀자에게 이 윤건호같은거야 무얼로 보이겠는가?… 그런데 이 멍청이는 온종일 기다렸지… 바보같으니… 바- 보-… 그러다가 깜빡 잠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잠결에 기상나팔소리를 들은것 같아서 눈을 떠보니 방안에는 어둠과 정적만 무겁게 드리워있을뿐이였다. 저절로 깬걸 보면 많이 잤을것 같은데 팔목시계의 야광판은 겨우 밤 열한시 어방을 가리키고있었다. 밖에서는 바람이 부는듯 비닐박막을 유리삼아 댄 창문이 벌거덕거리고 인발관을 잘라만든 마당가의 철봉대며 평행봉대가 겨끔내기로 부- 웅- 부- 웅- 퉁소를 불었다. 함형부재를 띄우는 날에 바람이 부는것은 좋지 않았다. 부재가 바람에 밀리면서 고정삭을 끊고 서로 부딪쳐 파손될 위험성이 있었다. 만일 단 한개의 부재라도 그렇게 파손되면 손실이 막대할뿐아니라 2기함형부재생산에 큰 난관이 조성될것이였다. 그는 일어나 전등을 켜고 군복을 주어입었다. 낮에 연공들이 와서 부재를 고정시키는 작업을 했지만 안심되지 않아 현장에 나가 확인해볼 작정이였다. 차림새를 다하자 그는 침대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손전지를 찾아들고 침실을 나섰다. 정작 밖에 나와보니 생각했던것보다 바람은 그리 세지 않았다. 그래도 이왕 결심한 일이고 불안감을 버릴수 없어 그는 전지불로 앞을 비쳐가며 부재장으로 내려갔다. 작업을 하지 않는데다 래일 수문을 터치는것과 관련하여 기자재들을 다 철수한 까닭에 드넓은 부재장안에는 각기 네귀에 사선으로 고정삭을 드리운 부재들만 괴괴한 정적속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건호는 엊그제 양생이 끝난, 자신의 착안으로 통나무를 쓰지 않고 만들어진 마감부재의 고정상태부터 한바퀴 돌며 살피고 이어 다른 부재들을 차례차례 확인하며 천천히 광량만입구에 있는 수문쪽으로 내려갔다. 부재장 중간쯤에 이르러 6호부재의 고정상태를 확인하고 다음번 부재로 건너가던 그는 저만치 앞에서 마주오는 전지불을 보고 놀라 우뚝 멈춰서며 자신의 전지불을 껐다. (누군가? 누가 이 밤중에 부재장에 나와있는가?…) 그는 움직이지 않고 전지불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살펴본 결과 저쪽 전지불의 주인도 함형부재의 고정상태를 검열하고있음을 알게 되였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그는 전지불을 켜며 걸음을 내짚었다. 저쪽에서는 그제야 이쪽을 알아본듯 멈춰서서 마주 전지불을 비치였다. 불빛이 그리 밝지 못하였다. 그에 비하면 자기의 전지가 압도적으로 밝아서 건호는 저쪽보다 먼저 상대방을 알아볼수 있었다. 둥그런 전지불빛속에 포착된것은 뜻밖에도 유정이였다. 그 녀자는 군복처럼 만든 밤색누빈솜옷에 목에는 검은 털목도리를 감아 한쪽가닥을 가슴앞에 드리우고있었다. 건호는 별안간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는것을 느끼며 태연히 그 녀자의 전지불앞에 다가섰다. 그제야 처녀는 이쪽을 알아보고 《어마!》 놀래더니 반기듯 물었다. 《이 밤중에 무슨 일로 나왔어요?》 《동무는?》 뻔히 알면서도 건호는 그 녀자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싶어 우정 모르쇠를 했다. 《바람이 불길래… 혹시나 해서…》 《나도 그래 나왔소. 어쩐지 잠도 오지 않고…》 말을 해놓고야 건호는 잠이 오지 않는다는 소린 하지 말았어야 옳았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초조감을 드러내보인 격이였다. 유정의 질문이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불안한가부죠?》 《좀… 그렇구만.》 《저도 좀… 하지만 다 잘될거예요. 아무렴 대대장동무의 아버님이 안될 일을 승인하셨겠어요.》 언제보나 아버지에 대한 그 녀자의 신뢰는 두터웠다. 고마운 일이였다. 유정이가 수문쪽에서 부재고정상태를 훑으며 올라왔기때문에 더 돌아볼 필요가 없어 그들은 귀로에 올랐다. 바람은 아까나 별반 다름없이 불었다. 밤하늘에 드문드문 널린 엷은 구름장들은 래일의 날씨를 가늠할수 없게 하였다. 제발 바람이 불지 말아다오. 두사람은 피차 어색한 감정을 느끼며 앞서가는 희고 둥그런 불빛만 부지런히 밟았다. 상종을 시작한지 이미 두해가 넘지만 이렇게 밤길을 걸어보기는 처음인 그들이였다. 건호는 자기쪽에서 먼저 화제를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알수 없었다. 더구나 함형부재에 대한 불안이 겹쳐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침묵이 더 길어지면 끝내 아무말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쫓겨 떠오르는대로 물었다. 《춥지 않소?》 《저야 이렇게 솜옷을 든든히 입은걸요. 오히려 대대장동무가 춥겠어요.》 피복착용규정에 따라 그는 아직 여름군복을 입고있었다. 《우린 단련되여 일없소. 피복규정도 그렇고…》 모처럼 마련된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건호는 자신의 미련에 화가 났다. 바보같으니. 차라리 함형부재에 대한 걱정이라도 할게지. 여름군복을 입은 주제에 솜옷입은 사람더러 춥지 않은가고 묻다니… 그리고 너는 위선자다. 네가 온종일, 그렇다. 그렇게 바삐 지내면서도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이 녀자를 안타깝게 기다린것은 도대체 무엇때문이냐? 그것은 못견디게 그리웠고 만나서 마음속에 가득찬 사랑의 감정을 쏟아놓기를 바래서가 아니였더냐? 그런데 너는 지금 무엇을 말하는거냐? 홑옷을 입은 주제에 솜옷을 입은 사람더러 춥지 않느냐구? 게다가 단련되여 일없다고?… 피복규정?… 그것은 이성의 신비앞에 쫓기여 어디엔가 숨어있던 사나이로서의 자존심이 터치는 분노였다. 그는 유정이를 기다리며 만나보고싶었던것이 무엇때문인가를 비로소 알게 되는것 같았다. 그래, 그렇다. 바로 그때문이였다. 사랑에 대해 말한다면 내가 얼마나 이 녀자를 오래동안 열렬히 사랑해왔는가? 이제 나는 그가 없는 미래의 생활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할수 없다.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면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우리의 애매한 관계를 끝장낼 때가 되였다. 내 적게 참았는가? 안된다. 이제는 결판을 지어야 한다. 그것도 이제 말이다.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은 바로 이 밤에… 고요한 달빛도 없고 밤어둠의 아늑한 품도 없는 이런 밤이 군인의 사랑에는 더 좋을지도 모른다. 건호는 심장이 흉벽을 걷어차며 온몸의 피가 머리로 달려올라가는 느낌을 체험하였다. 그는 단숨을 흑 들이그으며 갑자기 처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깜짝놀란 처녀는 《어마!》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물러선 그 한발자국을 자기의것으로 만들며 그는 황황 불타는 열띤 눈으로 처녀의 공포어린 눈을 마주보았다. 《유정이, 그 손… 손목을 좀 잡아도 일없겠소?》 그에게는 처녀의 손목이 사랑의 징표고 언어였다. 처녀가 손목을 준다면 그것은 사랑을 의미하였고 주지 않는다면 거절하는것이라고 생각되였다. 과연 어느쪽이겠는가?… 유정은 마주보던 눈길을 천천히 떨구더니 고개를 외로 비틀어 어딘가 저만치 어둠속을 바라보았다. 까딱않고 한참동안 그렇게 서있다 말고 엷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리며 침착한 어조로 말하였다. 《걷자요. 걸으면서 이야기하자요.》 순간 건호는 가슴이 선뜩하면서 전신의 맥이 탁 풀리는것을 느꼈다. 머리로 달려올라가던 피가 도루 발아래로 사라져버리는것 같았다. 하지만 용기를 가다듬고 최후의 《공격》으로 넘어갔다. 《그러니… 안된다는거요?》 《동무두 참… 이렇게 갑자기… 어서 가자요. 가면서… 저는 좀 생각해봐야겠어요.》 건호는 할말이 없었다. 자신이 너무 갑자기 들이댔으며 그때문에 처녀자신도 무엇인가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전지에서 비쳐나간 창백한 불빛이 저만치 앞에서 허둥거리며 어둠과 싸우고있다. 《저같은 보잘것없는 녀자를 리해하고 사랑해주시는데 대해선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해요.》하고 유정은 드디여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푹 가라앉고 어조에서는 랭담한 기운조차 풍기였다. 《허지만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전 아직 대대장동무의 요구에 응할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여있지 못해요. 전 좀 생각해봐야겠어요.》 긴장된 나머지 목이 타는것을 느끼며 건호는 마른침을 꿀떡 삼켰다. 《그… 생각을… 언제까지 다 할수 있소?》 《그걸 어떻게 이 자리에서 당장 말할수 있겠어요. 대대장동무는 군관이니 아무나 사랑해도 일없겠지만 전, 저에게는 전공사업이 있어요. 녀자라고 결혼이나 가정이 생활의 전부는 아니예요. 전 동무가 이 점을 리해해주었으면 해요.》 이미 예감하고있은것으로 건호는 그 녀자의 말이 달리 표현된 거절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 이건 거절을 의미한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내놓고 사랑할수 없다고야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는 분했다. 마음속으로 아끼며 근 두해나 사랑해온 녀자한테서 이런 거절을 당하다니.… 《용서하시오. 내가 주제넘은 인간이였소. 부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기 바라오. 과학사업에서도 성공하고…》 그는 이것으로 유정이라는 녀자와의 관계는 깨끗이 끝났다고 단정하였다. 실패한 사랑은 애수를 자아내던가 아니면 고통이나 적의로 변한다는 말은 옳았다. 이제 와서 그에게는 그 녀자와 나란히 걷고있다는것 자체가 하나의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생각되였다. 그는 거친 숨을 들이그으며 갑자기 걸음을 크게 내짚어 씨엉씨엉 혼자 돌진하듯 걸어갔다. 걸으며 만일 그 녀자가 찾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처녀의 마음속에서 어떤 동요가 일어난것이며 그것을 도화선으로 다시 폭발을 준비할수도 있을것이라고 어설픈 기대를 가져보았다. 하지만 유정은 부르지 않았고 따라오지도 않았다. 점점 벌어지는 그들 두사람사이로 바람소리가 들리고 어둠이 길게 누워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요. 정치지도원동무? 저 부재가 왜 꿈쩍도 하지 않소.…》 《가만, 너무 조급해하지 마오.》 《젠장, 조급해한다구?》 건호는 팔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벌써 얼마나 갔는지 아오?, 30분이요. 30분…》 《글쎄 조급해말라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떠오르지 않는 14호부재를 내려다보는 리종각의 눈에도 초조감이 짙게 어려있었다. 초조하지 않을수 없었다. 준첩선이 파헤친 부재장수문으로 밀물이 들어와 하나하나가 그대로 한동의 아빠트와 맞먹는 13개의 함형부재들을 차례로 띄워올린지도 벌써 30분… 그러나 윤건호의 착안에 의해 통나무를 쓰지 않고 만든 마지막 14호부재만은 아직도 떠오르지 않고있었다. 먼저 떠오른 13개의 부재들은 고삐를 잡힌 사나운 황소마냥 제가끔 네귀를 바줄에 걸매인채 흥떡이며 진정을 못하였다. 하지만 문제의 14호부재는 밑굽을 부재장바닥에 떡 붙이고 앉아 떠오를 기맥조차 보이지 않는것이다. 순간순간이 천년처럼 길게 느껴지는 초조속에 또 l0분이 보람없이 지나갔다. 《실패요. 떠오를 잡도리가 아니요.》 간밤 전혀 자지 못한탓에 눈에 피발이 선 건호는 끝내 초조감을 이겨내지 못하여 제먼저 실패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리종각은 여전히 침착하였다.《실패는 왜 실패요. 통나무를 타지 않았으니 늦게 떠오르는게지.…》 통나무를 쓰지 않은 조건에서 다른 부재들보다 떠오르는 시간이 좀 늦을수 있다는것은 미리 예견도 하고 모의실험과정에 확인도 하였다. 그렇더라도 너무 오랬다. 부력이 최대값을 가지는 만조에도 뜨지 않는다면 이건 무엇인가 잘못되였다고밖에 달리 볼수 없었다. 하다면 무엇이 잘못인가? 우리가 무엇을 예견하지 못하고 무엇을 잘못 타산했는가?… 혹시 내가 전혀 불가능한 착안을 한것은 아닐가? 그럴수는 없다. 유정이가 직접 계산과 실험으로 가능성을 증명했고 송철만국장은 물론 아버지까지도 지지한 문제가 아닌가?… 건호는 목구멍이 말라드는 감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입안이 말라 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 47분, 13호부재가 떠오른 때도 부터 벌써 한시간 하고 15분이 더 지난셈이다. 허나 14호부재는 여전히 떠오를 념을 않고있었다. 불현듯 수문쪽에서 길고 짧은 호각소리가 엇바뀌면서 《영차! 여엉-차!》하고 힘을 쓰는 군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1호부재를 수문으로 통과시키기 위해 바줄로 끌어당기는 소리였다. 건호는 아버지나 송철만국장이 지금 거기에서 1호부재의 수문통과를 지휘하고있지만 신경은 여기 14호부재에 와있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통나무를 쓰지 않고 만든 부재가 어떻게 뜨는지 봐야겠다고 아침부터 줄곧 여기 있다가 몇몇 과학실무일군들만 남겨놓고 내려간지 얼마 안되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떨어진 과학자들속에는 유정이도 끼여있었다. 그러나 그 녀자는 간밤에 있은 상서롭지 못한 일때문인지 자기네 사람들과만 섞여돌아가면서 우정 피하는 눈치였다. 여느때라면 그것이 대단히 신경을 자극하는 일로 되였겠지만 지금 건호는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잠겨있을 겨를이 없었다. 그의 온 신경은 오직 자기의 14호부재(그는 그것을 자기의 부재라고 생각하였다.)에만 가있었다. 과연 뜨겠는가 뜨지 않겠는가?… 끝내 뜨지 않는 경우 문제는 매우 엄중하게 설것이다. 세멘트 수천t과 강재 수백t을 거저 내버리며 2기생산을 위해서는 부재자체를 폭파시켜버릴수밖에 없었다. 그런 뒤에는 법적책임이 뒤따를것이고… 14호부재에는 그렇게 그의 운명이 걸려있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등뒤로 다가와 왼켠 두세발자국쯤 떨어진곳에서 멈춰섰다. 연한 분내가 바람에 언뜻 풍겨왔다. 건호는 옆에 온것이 유정이라는것을 알면서도 그냥 피발선 눈으로 부재만 주시하였다. 유정이쪽에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수문쪽에서는 또 호각소리가 울리고 《영차, 영차》힘을 쓰는 수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될것 같아요?》 유정의 물음이였다. 목소리에 역시 불안과 초조감이 짙게 배여있었다. 《그걸 지금 어떻게 알겠소.》 건호는 통명스럽게 대꾸했다. 《끝내 떠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 이제는 불안과 초조감을 넘어 그 녀자의 어조에서는 절망에 가까운 공포가 울리고있었다. 건호는 화가 났다. 감정이 시키는대로 거칠게 쏘아붙였다. 《왜, 책임질가봐 두렵소?》 《…》 《걱정하지 마시오. 동무한테는 책임을 묻게 되지 않을테니…》 말에 감정을 싣기는 했지만 만일 법적추궁을 받게 된다면 모든 책임을 자신이 혼자 걸머질 각오가 되여있는 그였다. 유정은 잠자코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반응하였다. 《제가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했으면 량해하세요. 하지만… 군인이라고 사람을 너무 깔보진 말아요. 저도 피가 뜨겁기는 마찬가지구 심장이 돌로 만들어지진 않았어요.》 감정이 그대로라면 건호는 이렇게 웨치고싶었다. 《동무! 그렇게 피가 뜨겁구 그렇게 심장이 돌이 아니여서 남의 진정도 받아들일줄 모르오?》하고.… 바람소리속에서 일시 조용한가 싶던 수문쪽에서 불현듯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아마도 1호부재가 수문을 무사히 통과하여 바다로 나간 모양이였다. 이제 부재는 수문밖에 대기하고있던 예선에 끌려 바다로 나가 5천 700m계선에 이른 기본언제끝에 당도하게 될것이다. 보지는 못해도 건호는 그 모든것을 상상으로 그려보고있었다. 바로 그때 l호부재가 수문을 빠지면서 흔들어놓은 물살이 제법 파도를 일으키면서 발아래 제방에 당도한 그때 지금껏 아무 기척없던 14호부재가 움씰하며 알릴듯말듯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저쪽에서 누군가 《뜬다아-》하고 웨쳤다. 리종각의 목소리였다. 건호도 그것을 확실히 보았으며 벌써부터 고동치는 심장의 거센 박동을 느꼈다. 유정이도 부재의 변화를 감촉한듯 《어마!》하고 놀라움을 나타냈다. 찰나, 부재는 다시 한번 움씰 몸을 떨더니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비스듬히 누우며 젖어 번들거리는 벽제를 물우로 드러냈다. 서슬에 수면이 크게 흔들거리고 팽팽히 켕기웠던 팔뚝같은 고정삭이 툭 끓어져 소용돌이치는 물속에 철썩 떨어졌다. 일이 제대로 될라면 이때 건호는 끊어진 고정삭에 관심을 돌렸어야 했다. 그러나 흥분한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는 틀어쥔 두주먹을 들먹거리며 소리쳤다. 《뜬다!… 뜬다!… 뜬-다!…》 《그래요! 떠요! 떠요!》 《대대장동무, 유정동무》 리종각의 웨침소리.… 유정은 흥분하여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연구사들이 몰켜서있는 동뚝우로 달려올라갔다. 반대로 윤건호는 수문쪽으로 내달렸다. 달리며 정신없이 만신의 힘을 다해 웨치고 또 웨쳤다. 《떴-다-아.… 부재가 떴-다!… 14호가 떠-올랐다-아!…》 웨침만으로는 모자라 그는 군모들 벗어쥐고 머리우에 높이 들어 휘둘렀다. 거기에 또 고함을 합쳤다. 《떴-다-아! 14호가 떴-다-아!…》 도중에 그는 제방뚝우에 멈춰서있는 현지방송차를 만났다. 그는 무작정 방송차에 뛰여올라 방송원의 손에서 마이크를 빼앗아들었다. 《국장동지!… 떴습니다! 14호부재가 떴습니다. 14… 14…》 그는 숨이 막혀 말을 계속할수 없었다. 심장이 금시 목구멍으로 튀여나오는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각, 14호부재가 아주 재미 없는 사건을 준비하고있었다. 수천t의 거대한 무게로 떠오르면서 이미 두귀의 고정삭을 끊은 부재는 그새 나머지 두귀의 바줄마저 당겨 끊어버리고 지금은 요동하는 물결과 함께 천천히 빙빙 돌며 점차 13호부재에 접근하고있었다. 그것은 마치도 고삐를 끌고 들판을 헤매며 적수를 찾아가는 받개질 잘하는 싸움군황소룰 방불케 하였다. 《14호가 위험하다!》누군가의 웨침소리.… 유정이를 비롯하여 현장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사태의 위험성을 제때에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한퉁구리가 lt이상 되는 팔뚝처럼 실한 바줄을 부재에 다시 건다는것이 그들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였다. 이제는 두 부재사이의 거리가 5~6m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충돌은 불가피하였고 수천t의 거창한 부재가 물속에서 부딪치는 경우 두 부재는 파괴되기마련이였다.《어마! 저걸 어쩌나… 저걸 어째.…》 두두룩한 가슴앞의 옷섶을 움켜쥔 유정은 어쩔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수문쪽에서 군인들의 무리가 달려오고있었지만 그들은 부재가 떴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오는것이지 위험을 알고오는것은 아니여서 움직임이 안타깝도록 굼떴다. 그러는 사이에 두 부재사이의 거리는 3~4m정도로 가까와졌다. 림박한 위험을 비로소 느낀듯 13호부재도 불안스럽게 기우뚱거렸다 그에 따라 수면이 요동하고 위험은 더욱 커갔다. 윤건호소좌와 그의 대대군인들 그리고 기타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당도한것이 바로 그때쯤이였다. 부재의 이동상태를 보고 사태의 위험성을 즉시 판단한 건호는 군모부터 벗어내치고 익숙된 빠른 동작으로 군관혁띠를 풀었다. 그의 결심을 알아차린 리종각이 팔을 움켜잡았다.《대대장동무, 헤염은 나를 당하지 못하오. 내가 들어가겠소. 대대장동무는 여기서 지휘하시오.》 《이걸 놓소. 내가 들어가야 하오. 지휘는 동무가 하오.》 그래도 팔을 놓지 않는 리종각의 손을 뿌리치며 그는 큰소리로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대대, 나의 명령을 들으라? 부재가 충돌한다. l중대는 고정삭을, 기타는 나를 따라 앞으롯!》 그는 멀지 않은곳에 쌓여있는 휘틀 벋침대로 쓰던 통나무무지를 향해 달려가면서 군복상의를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손에 걸리는대로 통나무를 한대 안고 제방밑에 내려가 물에 뛰여들었다. 이어 돌격전에 나선 군인들이 그렇게 통나무와 함께 물에 뛰여들어 철벅거리며 그새 퍼그나 가까와진 두 부재사이로 헤염쳐들어갔다. 한편 제방우에서는 수문쪽에 내려가있다가 그제야 올라온 송철만국장이 손에 확성기를 쥐고 다급히 무슨 지시를 하고있었다. 그러나 통나무를 떠미느라고 철벅거리는 물소리때문에 건호는 국장의 말을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알아듣는대야 달리 어쩔수 없는 정황이기도 하였다. 눈앞에 보이는 14호부재의 저쪽모서리는 벌써 13호부재의 허리를 노리며 바투 다가들고있었다. 건호는 바로 그 지점을 목표로 필사적으로 통나무를 떠밀었다. 뒤쪽에서 누군가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라고 소리쳤다. 리종각의 목소리가 분명하였다. 그러나 건호는 그냥 헤염쳐나가며 고개만 돌리고 맞받아 소리쳤다. 《내 적정은 말고 대원들을 살피라.…》 절벅거리는 물소리때문에 못들었는지 리종각은 반응이 없었다. 그러는동안 두 부재는 더더욱 가깝게 접근하여 열려있는 벽사이의 공간이 병실복도처럼 좁아지였다. 그제야 건호는 자기가 부재짬에 너무 깊이 들어왔음을 깨달으며 전진을 멈추었다. 그는 바삐 통나무를 돌려 두 벽체사이에 가로 뻗치며 뒤따라오는 대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소리쳤다. 두 부재사이에 통나무를 가로질러넣으면 두 부재가 직접 부딪치지 않고 통나무들의 완충작용으로 힘이 분산되면서 충돌이 보다 약해질것을 타산하였다. 일은 뜻대로 되여주는것 같았다. 물결을 타고 기우뚱거리며 눈앞에 다가온 14호부재는 그가 가로질러댄 통나무를 곧추 13호부재벽에 떠밀어다 붙였다. 쿠-궁 하는 둔중한 음향과 함께 두 부재가 거대한 몸을 부르르 떠는 순간 건호는 성공을 예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때이른 속단이였다. 그는 자신이 가슴으로 누르고있는 통나무가 힘을 받으며 활등처럼 휘여오르는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바로 그 찰나에 통나무허리가 꺾이면서 그를 3-4m나 되는 높이로 뿌려올렸다. 뿌리우는 순간 건호는 고막을 치는 우지끈소리와 함께 가슴밑이 선뜩한 느낌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마감으로 더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본능적인 동작으로 두손을 모아 가슴을 움켜쥔채 부러진 통나무우에 모로 떨어져내렸다. 1중대가 끊어진 고정삭을 찾아 당기기 시작한것이 바로 그 순간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