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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건호는 전사들과 같이 작업장정리를 하면서도 가끔 부두나 남포에서 들어오는 길목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간혹 길우에 사복차림이나 머리수건이 나타나면 (유정이다!) 하고 서둘러 단정했다가는 실망하여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불군 하였다.

사람을 기다리는것이 가장 힘든 일중의 하나라는 말은 옳았다. 요새 그는 연구소로 들어간 유정이를 기다리기에 그야말로 고역을 치르고있었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은 그가 어떤 계산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데 따라 통나무를 쓰지 않고 함형부재를 만드는 방법이 실천적으로 가능할수 있고 못할수도 있는 말하자면 착안의 운명이 결정되기때문이였다. 생활에서 우연과 필연은 종이 한장 차이로 나란히 있다는 말도 있지만 그가 아버지의 의견부터 들어보려던 자신의 착안을 그 녀자에게 먼저 발설한것은 정말 우연이였다. 박왕범전사의 도움으로 자갈공간에 의한 부재의 뜰힘조건을 발견한 다음날 아침 그는 대대를 제방보수작업에 붙이자 아버지를 만나려고 정무원지휘부를 향해 떠났다. 그런데 정무원지휘부를 가려면 어차피 거기를 지나치게 되는 《2월17일과학자돌격대》본부앞에서 그는 전날 저녁 리종각이 하던 말이 문득 떠오르면서 갑자기 유정이를 만나고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마침 그때 풋낯을 아는 과학자돌격대원이 인사를 하기에 렴치 불구하고 부탁하였다. 토론할 문제가 제기되여 그러니 유정동무를 좀 찾아달라고.…

유정은 5분도 채 안되여 손에 설계도면 두루마리를 쥐고 나타났다.

《어마, 대대장동무가 어떻게 여길 다…》

뜻밖인듯 짐짓 놀라는 그 녀자의 눈을 일별하며 건호는 말했다.

《왜, 난 여기오면 안됩니까?》

《안될것 없지만 여기야 대대장동무가 스스로 그어놓은 <금단>의 구역이 아니나요.》

그 녀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건호는 말문이 막혔다.

유정의 말이 옳았다. 벌써 2년씩이나 상종해오지만 그는 여직껏 단 한번도 그 녀자를 찾아 여기에 온적이 없었으며 와서는 안된다고 엄격히 자신을 단속하였다. 왜 그랬는가 하는것은 두가지 리유때문이였다. 자기가 찾아다니므로 해서 유정의 신상에 어떤 추문을 붙여줄수 있다는 우려가 한가지 리유고 다른 하나는 자존심때문이였다. 그가 지금 말하는걸 들어보니 유정은 벌써 그의 그러한 내심을 오래전부터 빤히 들여다보고있은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어요?》

손에 쥔 종이두루마리를 만지작거리며 유정은 물었다.

《좀 방조받을 일이 생겨서 왔는데 어디 가서 좀 앉지 않겠습니까?》

《그러자요.》

숙소뒤쪽의 밋밋한 공지에 그 녀자를 데리고올라가 적당히 자리잡고앉은 그는 군복웃주머니에 접어넣었던 간밤에 그려본 도해를 땅바닥에 펴놓고 자신의 착안에 대해 설명하였다.

유정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설명을 들었다. 듣고는 몇가지 물은 다음 무릎우에 턱을 고인채 이윽히 도해를 내려다보더니 주머니에서 수첩과 원주필을 꺼내 한참동안 무엇인가 열심히 계산하였다. 건호는 모름지기 그 녀자가 지난밤 자기만 고심하다가 끝내 풀지 못하고 단념한 뜰힘의 초기값이던가 부재밑에 생기는 공간의 크기를 계산할것이라고 생각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무엇이라고 할것인가?… 이윽고 계산을 다 한듯 유정은 수첩을 덮었다. 그러나 다시 한동안 주의깊이 도해를 내려다보더니 《제 생각엔》하고 드디여 말했다.

《충분히 될것 갈아요. 착상이 아주 단순한것 같지만 기발한데가 있어요. 리치상 모순도 없구요.》

《하니 동무는 지지한단 말입니까?》

객관적인 첫 평가가 어떨는지 몰라 은근히 가슴을 조이던 건호는 기쁨을 금할수 없었다.

《지지라기보다… 어쨌든 될것 같아요. 통나무를 깔기보다 부력은 크지 못하겠지만 부재가 자체로 뜰수 있다는것은 거의 확실해요.》 그러면서 유정은 착상이 아주 기발하다느니 이런 훌륭한 생각을 어떻게 해냈느냐느니 하고 감탄을 련발하였다.

윤건호는 그 녀자의 과분한 칭찬에 다소 어색한 감을 느끼며 자기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결정적인 고리는 전사들이 풀어주었다고 사실을 이야기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이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야 착안을 공법으로 전환시켜야죠.》

그러자면 모의실험과 계산으로 실천적가능성을 증명해야 하였다.

《계산할것들이 많겠지요?》

《많아요. 전자계산기로 밤낮 계산해도 며칠 잘 걸리겠어요.하지만 계산은 걱정마세요. 그건 제가 연구소에 들어가 해다 드리겠어요.》

그렇게 하는 경우 유정이가 무슨 명분으로 연구소에 들어가 한주일씩 머물러있어야 하는가 하는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그 녀자는 그건 걱정말라고, 자기가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내겠으니 그새 이편에서는 착상이나 더 심화시키라는것이였다.

(아, 이 녀자에게서 이런 헌신적인 방조뿐아니라 그 이상의것도 받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렇게만 해준다면…》

착안에 대한 지지도 지지거니와 건호는 유정이가 이처럼 헌신적으로 나오니 그 감사함을 무엇이라고 표현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이튿날 유정은 늦잡아 닷새어간으로 돌아온다며 장담하고 떠났다. 그런데 장담한 닷새가 곱으로 지나가고 벌써 열하루째 되는 오늘까지도 나타나지 않고있으니 속이 달지 않을수 없었다.

(… 어찌된 일인가? 왜 이토록 지체되는것일가? 혹시 나의 착안에서 어떤 모순점이라도 발견되여 계산이 오리무중에 빠졌거나 그걸 해명하느라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건 아닐가? 그렇지 않으면 밤을 패며 일하다가 앓아누웠던가. 어쨌든 오후 쉴참까지만 더 기다려보자.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으면 정무원지휘부에 들어가 연구소에 전화를 걸어 알아봐야 한다.)

그러나 오전시간이 다 가고 오후 쉴참인 3시경이 되도록 유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와서 그는 자신의 착안이던가 혹은 유정이의 신상에 어떤 좋지 못한 일이 생겼음을 의심치 않았다. 불안감이 더 많이 가는 쪽은 자기의 착안이였다.

결심한대로 세멘트수송차를 얻어타고 정무원지휘부로 들어간 그는 종합분과사무실에 들어가(종합분과장과는 이미 구면이였다.)전화기와 마주앉았다. 밑에서 올리거는 전화여서 시간이 좀 걸릴줄 알았는데 온 나라의 관심속에 있는 갑문건설장이여선지 10분도 못되여 평양이 나오고 수리공학연구소와 련결되였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연구소 소장이였다. 소장이면 개별적연구사들의 행처까지 일일이 알수 없겠기에 건호는 유정이가 갑문건설장에서 연구소로 들어간 리유부터 설명하며 미안한대로 전화를 바꾸어줄수 없겠는가고 문의하였다. 소장은 쾌히 동의하더니 해당 부서에 알아본모양 한참 있다가 다시 하는 말이 유정이가 필요한 일을 끝내고 오후차로 갑문건설장으로 나갔다는것이였다. 건호는 재삼 확인했다.

《… 오후차로 나온것이 틀림없습니까?》

《아마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연구소 소장의 대답이였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끝낸 건호는 시계를 보았다. 세시 반이였다. 유정이가 보통강역에서 2시 20분엔가 출발하는 신의주발 남포행 렬차를 탔으면 지금 한창 오고있을것이다. 무슨 소식을 가지고오는것인가?…

생각 같아서는 수송차를 잡아타고 남포역에 나가 유정이를 직접 맞이하고싶었지만 자칫 늦으면 렬차도착시간을 놓쳐 길이 어긋나기 쉬운 시간이였다.

종합과장이 들어왔다. 그는 창문밑에 있는 자기자리에 가앉으며 물었다.

《아직 전화를 못했나?》

《전화는 했는데… 혹시 지휘부에 남포로 나가는 승용차가 없습니까?》

《왜 남포에 갈려구?》

《예, 좀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럽니다.》

《그래? 그렇다면야 우정이라도 뛔야지.》

과장은 전화로 운수과를 찾더니 《47》호를 자기한테 보내달라고 일렀다. 얼마후 키가 작달막하고 레스링선수처럼 목대가 실한 젊은 고수머리가 문가에 나타났다. 발뒤축을 모아붙이며 찾았는가고 묻는 품이 제대군인인것 같았다.

《이 군관동무와 같이 남포에 갔다오라구. 알겠나?》

운전사는 힐끔 건호를 훑어보고서야 차렷자세를 취하며 익살스럽게 임무를 접수했다.

그로부터 30분이 채 못되여 건호는 벌써 남포역 개찰구앞에 서있었다. 신의주발렬차가 도착하기 불과 몇분전이였다. 얼마후 렬차가 들어오고 손님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유정은 인차 나오지 않았다. 건호는 그가 혼잡속에 끼우기 싫어 사람들이 좀 설펴진 다음에야 나올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놓칠세라 긴장한 눈길로 개찰구를 살펴보았다. 예견한대로 그는 맨나중에야 그것도 아주 천천히 개찰구로 걸어나왔다.

(제길. 남은 기다릴래기 눈이 빠질 지경인데 영국녀왕처럼 걷는군 그래.)

한번 놀래워주고싶은 생각이 들어 그는 뒤로부터 그 녀자의 곁을 스쳐지나며 가방끈을 나꿔채여 자기 어깨에 옮겨 걸었다.

《어마!》

가벼운 비명과 함께 유정은 황급히 몸에서 떨어지는 가방을 움켜잡았다. 그제야 건호는 씩- 웃으며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돌아오긴 오누만!》

말을 해놓고서야 건호는 자기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음을 깨닫고 후회했다.

《미안해요. 너무 늦어져서…》

유정은 지체된 리유를 설명했다. 리유란 다른것이 아니고 계산을 끝내고 모의실험까지 하다보니 예상외로 날자가 걸렸던것이다.

《아니, 모의실험까지 해보았소?》

건호는 그 녀자의 성실성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래도 해야 할거길래 들어갔던김에 저리 다하고말았어요. 그런데 글쎄 시험결과가 얼마나 멋있겠어요. 대대장동무의 덕분으로 난 이번에 아예 <영웅>처럼 떠받들렸어요.》

건호는 기뻤다. 실험결과가 그렇게 좋다는것도 기뻤지만 그것이 유정이의 사심없는 도움이 가져온 결실이라는것이 더더욱 기뻤다.

그들은 승용차에 올랐다. 건호는 운전수옆좌석에 앉고 유정은 가방을 안은채 뒤좌석을 혼자 차지하고 앉았다. 차가 시내어귀를 벗어나 령남리쪽으로 빠지는 길에 들어서자 건호는 몸을 돌리며 유정에게 물었다.

《그러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하우?》

유정은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즉시 대답했다.

《이제야 뭐 별게 있나요? 정식 공개하구 심사를 받아봐야죠. 제 생각엔 아버님께 먼저 알려드리는것도 나쁠것 같진 않아요. 최종결론이야 아무래도 아버님이 해야 할테니까요.》

건호는 유정이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자기가 직접 아버지와 부딪친다는것이 어쩐지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단박에 부정이라도 당하면 공개심사도 받아보지 못하고 일이 아주 싱겁게 끝날수도 있었다. 성미로 보아 아들의 착안이라고 하면 보지부터 않고 부정해버릴지 모르는 아버지였다.

(그렇다. 아버지한테 들고가는건 아무래도 재미없는 일이다. 원칙적으로도 그렇고 차라리 송철만국장에게 보고하는 편이 더 빠르고 유리할수 있다.)

의향을 비쳐보니 유정이도 반대하지 않아서 일은 그렇게 추진시키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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