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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평양간 려객기 《EL-62》는 구름우 1만m 상공에서 정상비행을 하고있었다. 모스크바를 떠난지도 이제는 거의 일곱시간, 려행에 지친 대부분의 승객들은 잠을 자고 자지 않는 사람들은 실내의 정숙을 깨칠세라 옆사람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거나 이미 본 신문과 화보들을 다시 뒤적거렸다. 그나마 싫증난 사람들은 기창을 내다보며 나름의 명상에 잠겨있는데 로베르 바넬은 바로 그 네번째부류에 속하는 승객이였다. 수리공학박사로서 빠리종합대학교수이고 국제수리학협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당년 일흔두살의 로인이지만 나이에 비해서는 퍼그나 젊고 정력도 왕성해보였다. 객실중간쯤인 그의 옆좌석에 앉아있는, 가을단풍인양 활활 불타는 금발에 눈이 청옥처럼 푸른 미모의 처녀로 말하면 바넬의 손녀딸 옌니였다. 옌니는 할아버지의 존재는 아예 잊어버린듯 비행기에 올라서 사귄 옆좌석의 젊은 인디아사람과 아까부터 영어로 줄곧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대화속에서 가끔 《김일성주석》,《주체사상》,《파고다(탑)》하는 말들이 들리는것으로 보아 이제 얼마후에 가닿게 될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는것 같았다. 조선에 대한 이야기라면 바넬도 호기심이 없지 않아서 처음부터 그들의 이야기에 끼여들고싶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싫어할수 있다는 늙은이다운 소심성때문에 단념하고 시선을 기창에 준채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군 하였다. 기창으로는 해빛을 받아 거의 원색으로 표백된 흰 구름이 가깝게 내려다보였다. 창을 열고 풍덩 뛰여내리고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하늘의 경치였다. 《그럼 조선의 주체사상탑이 우리 빠리의 에펠탑보다 더 멋있다는거예요?… 에펠탑은 인류를 현대문명에로 도약시킨 19세기의 총화와도 같은 탑이라는걸 알아야 해요.》 프랑스인다운 긍지를 가지고 하는 옌니의 말이였다. 《에펠탑이 19세기의 총화와 같다는 견해에는 나도 동감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주체사상탑에는 이 20세기를, 아니 인류의 미래를 상징하는 의미가 깃들어있습니다. 이제 아가씨도 가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170m의 높이를 가진 그 탑우에서는 깊은 밤에도 쉬임없이 불길이 타오르는데… 아, 그건 정말 황홀합니다.》 어조로 보아 인디아청년은 진정으로 조선의 주체사상탑에 매혹을 느끼고있는것 같았다. 옌니가 물었다. 《탑우에서 타오르는건 무슨 불인가요?》 《등불이지요.》 《등불?》 옌니는 잘 리해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리해되지 않기는 바넬도 마찬가지였다. 나름의 판단으로 언젠가 쓰딸린그라드의 마마예브언덕 지하광실에서 본 영웅전사들의 묘지에서 타오르는 가스등불 비슷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떻게 말해야 리해하겠는지.》 제편에서 안타까와 하는 인디아청년의 말이였다. 《혹시 아가씨는 타고르의 시를 읽어보신적이 있습니까?》 《그가 유명한 성인이고 시인이라는건 알지만 시는 읽어보지 못했어요.》 얼마간 부끄러워하면서도 솔직한 옌니의 대답이였다. 《옳습니다. 타고르는 우리 인디아가 낳은 대성인이고 탁월한 시인입니다. 그의 문집속에 <조선>이라는 시가 있는데 한번 들어보겠습니까?》 옌니는 기꺼이 응낙하였다. 그러자 인디아청년은 벵갈사람 특유의 짓눌린 목소리로 조용조용 시를 읊었다.
《시가 좋군요.》 옌니의 반응이였다. 《하니까 주체사상탑우에서 타오르는것이 타고르가 말한 그 등불이라는거죠?》 《아, 리해했군요. 옳습니다. 그 다시 켜진 등불이 주체사상의 홰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조선은 갈길을 잃고 방황하는 이 20세기에 희망의 빛을 안겨주는 <북극성>같은 나라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옌니는 한동안 잠잠해있었다. 《듣고보니 조선은 참 재미있는 나라군요. 신비스러운데도 있고… 그런데 굽타씨는 어쩜 조선에 대해 그리도 잘 아시나요?》 《제가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주체사상연구소조성원이라구… 이번까지 나는 다섯번째로 조선에 갑니다.》 《다섯번이면…그럼 조선에서 현재 건설중에 있다는 남포갑문에 대해서도 잘 아시겠군요?》 옌니의 물음에 굽타는 갑문건설은 자기의 전문분야가 아니기때문에 잘은 모른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 뭐랄가?… 한마디로 그것은 현대조선의 위력을 느낄수 있게 하는 대걸작품입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20세기에 인류는 인공위성 다음으로 조선의 남포갑문을 또하나의 기적이라고 말하게 될것입니다.》 (?!…) 인디아청년의 말은 로베르 바넬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할수 없게 하였다. 국제수리학협회 회원이고 오랜 벗인 스위스 수리공학자 스파크도 그렇게 말했었다. 쏘련과학자들이 인공위성을 쏘아올려 우주정복의 문을 열어놓은것이 하나의 기적으로 된다면 조선사람들은 남포갑문을 건설하여 바다를 정복하는것으로써 금세기에 또하나의 기적을 창조하고있다고… 그런데 스파크가 하던 말과 꼭 같은 말을 여기 조선으로 가는 1만m상공의 려객기안에서 그것도 평범한 인디아청년의 입에서 다시 듣게 되니 바넬로서는 놀라움이 이만저만 크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이번에 조선을 방문하기로 결심한것이 과히 헛된 결심은 아니란 말인가? 불과 한달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갑문건설때문에 조선을 방문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다. 물론 조선에서 최대규모의 갑문건설을 시도하여 착공까지 했다는 보도는 들은바있었다. 그러나 그는 공개된 건설규모와 시공조건을 사실로 믿을수 없었다. 더우기 그런 대갑문을 5년동안에 건설한다는것은 세상을 한번 놀래워보려는 과장된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조선에서의 남포갑문건설보도에 대한 신문《몽드》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도교도답게 신의 이름을 빌어 전면 부정한것은 바로 그러한 관념에서 출발한것이였다. 그러나 시간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만을 옳은것이라고 고집할수 없게 하였다. 조선의 남포갑문건설소식은 이런저런 경로틀 통해 보다 구체적인 사실로 떠오르면서 학계의 화제거리로 되였다. 그러던중 지난 8월에 있은 국제수리학협회 유럽지역 비정기회의에서는 가물막이가 끝나가는 조선의 남포갑문건설장에 학회의 명의로 대표단을 파견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기되였다. 그 주창자가 다름아닌 스파크였다. 오랜 벗인가 하면 학술상의 론적이기도 한 스파크는 학회가 끝난 날 저녁 단둘이 만난 기회에 이런 충고까지 했었다. 《바넬, 내 모임에서도 말했네만 과거의 눈으로 오늘의 아시아를 보지 말게. 확언하는바 거기서는 지금 문명에로의 거대한 진보가 이룩되고있네. 조선의 남포갑문은 바로 그 한 실례지. 그런즉 지체말고 결심하게. 대표단을 파견하는것이 어렵다면 개인자격으로라도 가보게. 혹시 알겠나? 자네의 <도바횡단>에 도움이 될 공법을 거기서 찾게 될런지…》 스파크가 말한 《도바횡단》이란 바넬이 구상완성한 바다밑으로 프랑스와 영국을 련결하는 도바해협횡단철도설계를 의미하였다. 바넬이 그 해저횡단턴넬설계를 완성한것은 벌써 여러해전이였다. 그러나 새롭고 확신있는 시공방법을 찾지 못한것으로 해서 아직까지 지상공론으로 남아있었다. 바넬은 신중하지 않을수 없었다. 벗의 권고도 권고려니와 회의에서 제기된 의견으로 보아서도 조선의 남포갑문을 그 이상 외면한다는것은 학자로서의 편협과 보수성을 드러내는것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였다. 하여 여러날 깊이 생각하던 끝에 그는 드디여 벗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 대표단파견은 보다 심중한 문제이므로 자신이 먼저 현지를 밟아보고 책정할 작정이였다. 조선을 방문함에 있어서 바넬은 외교적경로가 아닌 관광통로를 선택하고 자신의 려행계획속에 텔레비죤방송국 촬영기자인 손녀딸 옌니를 끌어넣었다. 그가 옌니를 려행계획에 포함시킨것은 사랑하는 손녀딸에게 아시아에 대한 인식을 주자는 목적과 함께 그의 촬영기술이 필요했기때문이였다. 이번 걸음에 그는 스파크가 그토록 높이 평가한 조선이란 나라의 이모저모와 건설중에 있는 남포갑문의 전모를 필림에 담아올 예정이였다. 필요한 준비를 갖추고 관광회사로부터 려권을 발급받자 그들은 모스크바행기차에 올랐다. 모스크바에서 다시 비행기를 바꾸어탔다. 그것이 바로 오늘 아침 9시경이였다. 그런데 비행기에 올라 객석을 둘러본 바넬은 빈 자리가 없이 가득찬 승객의 대부분이 주로 아랍인들과 자기와 피부색이 같은 유럽사람들이라는데 놀랐다. (… 나나 옌니의 경우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가지만 이 많은 유럽사람들과 아랍인들은 무슨 일로 그 먼 극동의 나라로 가는것인가?…) 바넬은 그들모두를 관광이나 기업거래상 필요로 가는 사람들이라고 볼수 없었다. 기업인들이라고 볼수 없는것은 북조선의 경제력이 유럽이나 아랍나라들과 거래할만큼 강하지 못하다는 관념이 작용했기때문이고 관광객이라고 볼수 없는 근거는 지금이 피서의 계절이 아닌데다 관광지로서도 조선이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북조선으로 가는 리유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혼자의 생각으로 아무래도 의문을 풀길없어 그는 옌니와 의논해보았다. 하지만 옌니라고 그 리유를 알 까닭이 없어 풀길없는 수수께끼로 치부해버리려는 때에 승무제복차림의 어여쁜 안내원처녀가 객실로 들어왔다. (옳지, 저 안내양을 통하면 알수 있을것이다. 려객기에는 승객들의 려권등록부가 있을테니까.…) 생각이 거기에 미친 바넬은 안내양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영어로 꼭 필요해서 그러니 려권등록본을 좀 볼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금시까지 상냥한 미소가 떠돌던 처녀의 표정이 갑자기 엄격해지며 눈에 경계의 빛이 떠돌았다. 그런 경우를 예견 못했던 바넬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려권등록본을 보여달라고 했을뿐인데 안내원이 왜 저런 눈길로 보는것인가? 혹시 나를 려객기랍치를 기도하는 늙은 마피아로 판단한것이나 아닌가?…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생각되리만큼 안내원의 눈길은 날카로왔다. 《월츠. 더 뢰즌 댐 이티- 즈 니딛 투유?》 (《무엇때문에 당신에게 그것이 필요합니까?》)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은채 안내원처녀가 정확한 영어발음으로 물었다. 《비코- 즈…》(왜냐하면…) 사실대로 말하기엔 어쩐지 멋적은 생각이 들어 대답을 갑자르고있는중에 옌니가 재빨리 사유를 설명해주었다. 그래도 처녀안내원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그들 두사람을 의심쩍게 훑어보더니 랭정하게 잘라말했다. 《규정상 손님들에게 려권등록본을 보일수 없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내가 제 생각만 하다나니 그만… 실례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덧붙여 옌니도 사죄했다. 그제야 안내원처녀는 의심을 풀며 상냥하게 당신들이 알고싶어하는 문제는 조선에 가면 스스로 알게 될것이라고 하며 미소를 지었다. 공연한 일에 신경을 쓰다가 톡톡히 망신만 당한 바넬은 이제 도착하여 모든것을 제눈으로 보고 확인하기전에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더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인디아젊은이가 아까부터 줄곧 조선에 대해 말하고있지만 그가 지금껏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데는 젊은이들을 방해하지 말자는 생각과 함께 그런 앵돌아진 심리의 작용도 있었다. (그런데.)하고 바넬은 처음의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저 인디아청년이 스파크와 같이 조선의 남포갑문을 20세기의 기적이라고 극구 찬양하는것을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매스콤(선전)의 효과인가 아니면 그것이 진실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세기적창조물인가?…)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는 바람직하지 않고 과장된 선전의 효과로 얻어진 화상같아 보였다. 필경 그럴것이다. 구멍가게일수록 간판이 요란한 법이다. 게다가 오늘 이 지구상에는 얼마나 많은 《기적》이 범람하고있는가. 인공위성을 쏘아올려도 기적, 생물유전자를 하나 발견해도 기적, 콤퓨터도 기적… 이렇게 흔해빠진 기적의 세기에 조선에서라고 왜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단 말인가!… 그는 이제 조선에 가서 보게 될 《기적》이 프랑스의 란스조수력발전소나 쏘련의 할바크발전소의 범위를 크게 넘지 못할것이라고 단정하였다. 큰 나라의 평범한것도 작은 나라에서는 신의 창조물처럼 외곡되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북조선처럼 작고 경제력이 미약한 나라임에랴. 문득 객실안의 정숙을 깨치며 기내방송이 입을 열었다. 《손님 여러분,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본 려객기는 지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을 가까이 하고있습니다. 이제 곧 착륙이 시작됩니다. 박띠를 조이고 내릴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박띠를 조이고…》 조용하던 객실안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졌다. 그러는 사이에 려객기는 벌써 기수를 숙이며 구름속으로 내려가고있었다. 구름층이 엷어서 기창은 곧 밝아졌다. 바넬은 천천히 박띠를 조이며 기창으로 대지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조선은 산이 많은 나라였다. 높고 낮은 무수한 푸른 산발들이 파도쳐간 저기 대지의 한끝에 한송이의 장미인양 도시의 둥근 자태가 꿈속에서처럼 나타났다. 평양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