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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파 팔걸이에 기대앉아 쪽잠에 드셨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잠결에 무릎 선뜩한 감촉을 느끼며 눈을 뜨시였다. 보니 손에 쥐고계시던 문건이 무릎우에 떨어져있었다. 문건을 접어 집무탁우에 올려놓고 시계를 본 그이께서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간데 저으기 놀라시였다. 기껏해야 두세시쯤 되였을것으로 짐작하셨는데 시간은 벌써 새벽 4시를 가까이하고있었다. 하기는 그이께서도 시간, 특히 밤시간의 지루함을 몹시 느껴본적은 있으시였다. 7살때 사랑하는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신뒤 엄마를 찾으며 울고 우는 어린 동생을 달래며 아버님을 기다려 잠못이루던 그 시절의 밤은 얼마나 길고 지루하였던가?! …

하지만 그때 이후로 두번 다시 시간의 더딤이나 적게 갔음을 모르고 언제나 시간에 쫓기며 숙명처럼 시간의 부족을 느끼시는 그이이시였다.

다시 집무를 보기에 앞서 그이께서는 바깥바람을 좀 쐬려고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문발을 걷고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날카로운 휘파람소리와 함께 일진광풍이 창문을 떠밀고들어와 가슴에 꽉 안기는바람에 그이께서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기까지 하시였다. 잘못하다가는 창유리를 깰수도 있어서 그이께서는 문고리를 단단히 잡으며 창턱에 바투 다가서 정원을 굽어보시였다. 아래층들에 불이 켜져있는 방은 없는듯 정원은 어둠속에 깊이 잠겨있는데 울타리를 따라 소리높이 자라오른 백양나무들이 불어치는 바람속에 태질을 하며 밤하늘을 쓸고있었다.

바람세로 보아 서북풍이였다. 평양에서 이 정도로 불면 서해해상이나 바다가에서는 태풍이 불기가 십상이였다. 그러자 엊저녁 책임서기가 무슨 태풍에 대한 말을 했다는데 생각이 미치였다. 서둘러 창문을 고 집무탁으로 되돌아오신 그이께서는 급히 송수화기를 들어 기상수문국에 일기상황을 알아보시였다. 짐작하신대로 태풍이였다.

필리핀 부근 해상에서 발생하여 대만수역을 거쳐 예견보다 2시간 앞서 간밤 열시경에 조선서해해상에 당도한 《태풍 5호》는 옹근 다섯시간동안 25km의 시속으로 강세를 보이다가 한시간전부터 약해지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전화를 돌려 총참모부를 찾으시였다. 총참모부에서 전화를 받은것은 제1부총참모장이였다. 전화상으로나마 오래간만에 만나보는터였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여느때처럼 그의 건강상태며 가족들의 안부부터 물을 짬이 없었다.

《… 지금 남포갑문건설장에서 어떻게 하고있습니까? 무슨 피해가 없었습니까?》

송수화기에서 1부총참모장의 석쉼한 목소리가 들리였다.

《조금전에 보고를 받았는데 피해가 좀 있습니다. 가물막이공사장에서는 어제 조립한 철배가 하나 넘어지고 기본언제가 거의 20m나 줄어들었습니다. 류실된 흙량이 줄잡아 한 3∼4만㎥이 잘되는것 같습니다.》

류실된 흙량이 3∼4만㎥이면 적은 량이 아니였다.

《함형부재장은 어떻습니까?》

《제일 큰 위험은 거기에 있는것 같습니다. 부재장제방뚝이 순수 감탕뚝이다보니 파도에 웃폭이 다 깎여나가고 터지기도 많이 한것을 군인들이 몸으로 성을 쌓으면서 겨우 막았다고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내심 놀라시였다. 파도에 웃폭이 다 깎인 감탕제방을 군인들이 몸으로 막아냈다면 정황이 대단히 위급했다는 소리였다.

《그래 지금은 어떻답니까?》

《이젠 바람과 파도도 좀 숙어들고 그만하면 방비대책도 세워졌습니다. 급한 고비는 넘긴것 같습니다.》

불과 달포전에 나가본 갑문건설장이여서 그이께서는 1부총참모장의 말이 죄다 실감으로 느껴지시였다. 그러느라니 군인들이 온밤 얼마나 고생했겠는가. 인명사고가 없었는지, 그것이 못내 걱정되시였다.

《인명피해는 없었는데 건설관리국 군인상점이 불탔습니다.》

《화재원인은 무엇입니까?》

《원인은 아직 찾지 못했는데… 화재가 발생한 시간이 태풍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해독행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강합니다.》

(해독행위?…) 그이께서는 송수화기를 오른손에 넘겨쥐며 잠시 생각하시였다. 해독행위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놈들이 군인상점에 불을 질러 무엇을 얻자고 했겠는가.

《사고원인을 빨리 밝혀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송철만국장동무가 그 사고때문에 마음의 부담이 크겠는데 너무 걱정말라고 하시오. 상점이 불탄건 불탄거고 중요한건 갑문건설입니다. 태풍피해를 속히 수습하고 전번에 방향을 준대로 가물막이에 중심을 두고 와짝 내밀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1부총참모장과의 전화를 끝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 수산부와 해운부 그리고 농업위원회를 차례로 찾으시여 태풍피해정형을 알아보시였다. 수산부나 해운부에서는 선박들이 제때에 대피해서 별일 없었지만 농업위원회의 대답은 그렇지 못했다. 벼랭상모가 한창 자라오르는 서해안지대 농촌들에서 간밤 태풍으로 모판에 씌웠던 비닐박막들을 많이 잃었는데 피해를 그중 많이 본것은 평북도의 간석지농장들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화를 돌려 정무원총리를 찾으시였다. 총리는 집에 있었는데 그도 역시 잠을 깨여 태풍피해정형을 알아보던 중이였다.

《… 나도 그때문에 전화했습니다. 총체적으로 큰 피해는 없고 문제라면 바람이 벼랭상모판의 비닐박막을 벗겨간것인데… 빨리 대책을 취해야 하겠습니다.》

《농업위원회에 박막예비가 좀 있습니다. 그걸 공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총리의 말이였다.

《예비가 있으면 빨리 공급해줍시다. 그러나 철도를 리용한다든가 도에서 타가라고 하면 늦어질수 있으니 자동차로 매 협동농장까지 실어다주어야 합니다. 정무원수송대 차들이 요새 무얼 합니까?》

《수송대 차들은 지금 다 태천과 북부철길에 나가 세멘트집중수송을 하고있습니다.》

《그럼 안되겠구만.》

《…》

《좋습니다. 그 문제는 내가 책임집시다. 인민무력부에 일임하는것이 제일 빠를것 같습니다.》

비닐박막수송문제를 그렇게 스스로 맡아안으신 그이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화제를 돌려 물으시였다.

《하바롭스크에선 무슨 소식이 오지 않았습니까?》

쏘련의 하바롭스크에서는 씨비리에서의 채벌문제를 놓고 우리 나라 림업대표단과 쏘련 림업성간의 회담이 진행되고있었다.

《어제 텔렉스가 오긴 했는데… 쏘련사람들이 종전 립장을 그냥 고집하면서 새로운 조건부까지 들고나온답니다.》

《새로운 조건부라는건?》

《우리 벌목로동자들의 상주기간을 배로 늘이고 2년주기로 채벌기계를 갱신하라는겁니다. 자기네것을 사서…》

그것은 로골적인 내정간섭이고 강권으로 돈을 벌자는 속심이였다.

《쏘련 림업성이 안기부돈낚시에 걸려도 단단히 걸렸구만, 아예 발가벗고나오는걸 보니…》

《그런것 같습니다.》

전후부터 시작된 씨비리에서의 벌목은 두 나라 정부간 협약에 따라 지난 수십년간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여왔다. 그런데 작년 그러께부터 쏘련측은 론리가 맞지도 않는 국제목재시장에서의 가격변화를 운운하면서 일방적으로 분배할당량의 조절을 요구하여나섰다.

다시 말하여 채벌한 통나무의 더 많은 몫을 자기들이 먹어야겠다는것이였다. 물론 이것은 부당한 요구였다. 그리고 그 부당한 요구의 리면에는 쏘련 림업성의 몇몇 실권자들을 매수한 남조선안기부의 검은 돈이 놓여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내정문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구태여 내막을 파헤치지 않았고 요구도 일정하게 들어주었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쏘련 림업성측은 최근 또다시 8대 2라는 엄청난 분배몫을 요구하였다. 즉 채벌한 목재량의 《8》을 자기들이 가지겠다는것이였다. 거기에 우리 벌목로동자들의 상주기간을 늘이라, 채벌기계를 갱신하라고까지 하니 이것은 돈에 환장하여 리성을 잃어버린 행위라고밖에 달리 말할수 없었다.

《쏘련 림업성에서 그렇게 나오면 통나무문제가 어려워질것 같은데 정무원에서는 무슨 대책안을 가지고있습니까?》

김정일동지의 물으심이였다. 총리는 얼마간 시간을 끌고서야 대답하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 이렇다 할 방책을 가지고있지 못합니다. 수령님께서 쏘련에 한번 갔다오셔야 해결되겠는지… 회담이나 해서는 풀릴것 같지 않습니다.》

말끝에 총리는 한숨을 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수령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회담결과가 나쁘면 아무래도 자신께서 한번 쏘련에 갔다와야 할것 같다고… 물론 수령님께서 갔다오시면 해결될것입니다. 하지만 수령님의 년세가 이젠 칠순을 넘었습니다. 우리 젊은 사람들이 가뜩 있으면서 년로한 수령님께 로고를 끼쳐드린다는건 도리가 아닙니다. 인민들이 알면 또 뭐라고 하겠습니까.》

《정무원에 다른 안이 없다면 이렇게 합시다.》 송수화기를 바꾸어쥐며 그이께서는 단호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하바롭스크에는 회담이 결렬되더라도 더이상 양보하지 말라고 통지해야겠습니다. 나라의 존엄을 통나무와 바꿀순 없습니다. 그리고 좀 어렵더라도 당분간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목재에 의거해서 건설을 벌려나가도록 합시다. 통나무생산을 늘이기 위한 대책도 세우면서…》

《알겠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국내생산량으로는 탄광,광산의 동발이나 충당할수 있지 건설부문에는 주기 바쁠것 같습니다.》

총리의 말이였다.

《그렇다면 대상건설을 자릅시다. 채취공업을 죽이면서 건설을 벌릴수는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포갑문건설은 밀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발을 좀 떼서라도…》

《남포갑문… 아니, 거기도 자릅시다. 거기서 통나무때문에 지장을 받는다면 함형부재생산인데 그건 아직 시간여유가 좀 있습니다.》

《그럼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총리와의 통화를 그렇게 끝낸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놓으시려다 말고 제창 전화를 돌려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대장을 찾으시였다. 대장도 집에 있었다. 그이께서는 어려워질것으로 예견되는 통나무형편과 대상건설분을 자르지 않으면 안되는 리유 그리고 남포갑문건설도 외로 될수 없다는데 대해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렇다고 맥을 놓아선 안됩니다. 전번 갑문건설장에 나가서 말했지만 중요한것은 정신이고 사상입니다. 통나무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것이 없어도 남포갑문은 무조건 5년동안에 완공해야 한다, 이런 굳은 각오만 있으면 방도도 생기고 출로도 열립니다. 송철만동무에게 이런 점을 잘 이야기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통나무를 절약하기 위한 투쟁을 강하게 벌려야 합니다. 회수리용할것은 없는가? 대용자재도 있을수 있지 않겠는가?… 갑문건설장에서 통나무를 제일 많이 쓰는데가 함형부재장인데 어쨌든 예비는 거기서 찾아야 할것 같습니다.》

《말씀의 뜻을 알겠습니다.》

오진우의 힘있는 대답과 함께 통화는 끝났다.

그때 창밖은 벌써 다 밝은 아침이였다.

 

수재와 화재를 어느쪽이 더 무섭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물은 물대로 사정없고 불은 불대로 무자비한것이다. 하물며 그 두 재앙이 함께 온 경우야 더 말해 무엇하랴!

날이 밝은 무렵, 감탕이 게발리고 푹 젖은 차림새 그대로 페허가 된 군인상점을 돌아보고난 송철만은 생각했던것보다 사고현장이 너무 참혹한데 놀랬고 기가 막혔다. 간밤 후방부국장으로부터 화재통보를 받았을 때에는 부재장제방이 하도 위급한 상태라 이런데 관심할 겨를도 없었다. 또 군상이 하나 불타는것쯤은 별로 크게 생각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런것도 아니였다. 상점에는 수만명의 군인건설자들에게 팔아주고 공급해야 할 3개월분의 각종 상품과 물자들이 있었다. 그 모든것이 죄다 불타버리고 남은것이란 타다만 통나무트라스들과 군데군데 허물어져내리고 시꺼멓게 끄슬린 벽체들뿐이였다. 군상책임자의 말에 의하면 남은것이 한가지 더 있었는데 상품목록과 판매대장이였다. 월말이라 실사준비를 하느라고 어느 판매원이 집에 가지고 들어가서 재앙을 면했던것이다.

더 돌아볼 필요를 느끼지 않고 마당으로 나온 송철만은 군상책임자에게 손실액을 물었다. 상점책임자는 사십대의 둥글넙적한 녀인인데 한절반 얼이 빠져 퀭해진 눈으로 페허가 된 상점을 멍하니 쳐다보다 말고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십… 아니 십이만원어칩니다.》

12만원어치나 불태웠으면 손실이 적다고 볼수 없었다. 사고원인이 어떻게 밝혀지는가 하는건 둘째치고 우선 국장으로서 자기부터 국가앞에 법적책임을 져야 할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이 난 원인은 뭐라고 추측되오?》

《창고예요. 창고쪽에서 불이 났습니다.》

정확한 대답은 아니였지만 송철만은 다시 묻지 않았다. 어느덧 날이 활짝 밝았다. 그 이상 지체할 필요도 시간도 없었으므로 그는 화재현장을 떠나 국지휘부로 들어갔다. 지휘부에 도착한 즉시 부대 직일관에게 1시간내로 부대장, 참모장이상 지휘관들을 부르라고 지시한 그는 방에 들어서자 긴장이 탁 풀리며 젖은 옷을 갈아입을 기운조차 없어 문옆의 장의자에 주저앉았다. 간밤 태풍속에 바다를 건너온 이후로 잠은 고사하고 지금껏 단 한번 앉아보지조차 못한 그였다. 몸이 금시 물먹은 솜처럼 풀리며 눈까풀이 천근무게로 느껴졌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아주 곯아떨어질수도 있겠기에 싫은대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세웠다. 문기척과 함께 부국장 황석전이 방에 들어온것이 바로 이때였다. 무엇때문인지 그는 어지간히 흥분한 기색이였다.

《찾아냈습니다.》

철만은 황석전의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어리둥절해졌다.

《찾아내다니?…》

《군상에 화재를 일으킨 장본인을 말입니다. 박선봉이라고… 해상부대 연공소대 중사인데…》

《아니 박선봉이가 불을 놓았단 말이요?》 철만은 부국장이 무슨 얼토당토한 소리를 하는가 싶었다. 선봉이가 제입으로 식당고정근무를 서노라고 하던것이 불과 며칠전이였다.

《박선봉이를 아십니까?》

《아오. 한데 그가 어째서 군상에 불을 놓았다는거요?》

황석전은 사건경위를 설명하였다.

《…조명선이 용접기부하를 이겨내지 못하고 창고안에서 녹아 어졌지요. 그때 일어난 불꽃이 피복류에 떨어져 서서히 타다가 태풍이 불자 불길이 확 일어난것 같습니다.》

송철만은 부국장의 말이 납득되였다. 하지만 혹시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그런데 본인은 그걸 인정하오? 자기의 실책으로 군상에 화재가 일어났다는걸…》

《물론이지요.》

송철만의 눈앞에는 박선봉의 능청스러우면서도 쾌활한 모습이 떠올랐다. 언젠가 찾아와 장기를 두는 중에 중사로 강직된 사실을 고백하면서 잠수병으로 돌려달라고 하던 일도 상기되였다. 그때 그의 부탁을 들어주었더라면 오늘 이런 엄청난 사고를 치지 않았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후회를 금할수 없었다.

《하니까 박선봉이는 이제 재판을 받아야 하오?… 고의적인 방화야 아니지 않소?》

《어쨌든 국가에 12만원의 손실을 주었으니 법적제재는 받아야 할것 같습니다.》

하기는 달리 될수 없었다. 송철만은 옷을 갈아입으려던 생각조차 까맣게 잊고 태풍이 가져온 재난의 깊이를 들여다보듯 고개를 떨구고 발부리만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강충일중장과 함께 오진우대장이 갑문건설장에 온것은 아침 일곱시경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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