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깃드는 어둠과 함께 잠투정을 하는 어린애마냥 뒤채기며 불안을 호소하던 바다는 밤 10시가 되자 벌써 안정을 잃고 울부짖기 시작하였다.

미구에 태풍이 몰아온 파도의 산악은 기슭에 이르러 수천만마리의 사나운 맹수로 변하여 닥치는대로 들이받고 물어뜯으며 하늘마저 삼켜버리려는듯 길길이 솟구쳐올랐다. 밤하늘은 먹장구름이 꽉 덮여 한줄기 빛조차 찾아볼수 없었다. 암흑에 눌려 무겁게 내려앉은 그 하늘과 광란하는 바다사이를 독차지한 질풍은 밤12시를 가까이 하면서 더더욱 사납게 울부짖으며 기승을 부렸다.

휘-유, 휘-유, 쾅-철썩- 우르르 쾅-휘-유…

송철만은 갑문건설장에 온 이래 태풍을 여러번 당해보았지만 이런 강한 태풍은 겪느니 처음이였다. 11시 30분경까지 끝살부리현장지휘부에서 유선, 무선전화를 통해 각 공사장들에서 들어오는 정황을 처리하던 그는 16해상 돌격대장 정대철이로부터 저녁에 늦게 조립하여 속채움을 다 못한 철배가 파도에 움직인다는 보고를 받자 벌떡 일어섰다. 머리우에서는 방수지를 씌운 지붕처마가 바람을 안고 들리다가 트라스우에 내려앉는 소리가 텅-텅 울리고있었다. 책상빼람에서 손전지를 찾아쥔 그는 군모끈을 늦춰 턱에 걸며 급히 방을 나섰다. 그러나 불과 서너발자국만에 불어온 바람에 떠밀려 금방 밀고나온 나들문에 뒤잔등을 쾅- 부딪쳤다. 문고리에 짓쪼았는지 왼쪽 어깨박죽이 얼얼하였다. 그는 바람곬이 좀 바뀌기를 기다려 상체를 꺾어숙이고 다시 걸음을 내짚었다. 순간 불과 몇걸음앞에 쇠붙이 같은것이 날아와 떨어지며 지동치는 소리를 냈다. 다가가 전지불을 비쳐보았다. 두어평방 잘되는 두툼한 세멘트혼합용철판의 한쪽귀가 땅에 박혀 구핏거리고있었다. 등골이 서늘했다. 바람곬을 보느라고 몇초 지체했기 망정이지 아차했으면 철판이 정수리에 바로 떨어져 황천객이 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가물막이공사장에서는 낮에 조립한 철배에 속채움작업을 계속하고있었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자주》호 적재함에서 쏟아지는 모래가 절반만 철배알통속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몽땅 날아가 바다에 떨어졌지만 철만은 속채움작업에 관심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정대철을 불러 정황을 알아보았다. 정황은 매우 심각하였다. 저녁때 마감으로 침강시킨, 지금 한창 모래채움을 하고있는 철배가 파도에 흔들리면서 련결고리를 끊고 혼자 넘어지던가 더 나쁘기는 앞서 조립한 철배까지 끌고 넘어질 위험이 조성되고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을것 같소?》

그의 물음에 정대철은 바람소리때문에 듣지 못했는지 고함치듯 되물었다.

《뭐라구요?》

철만은 손나팔을 만들어 그의 귀에 가져다대고 같이 고함을 질렀다.

정대철이 손을 오그려 불이더니 귀가에 가져왔다.

《견뎌보다가… 안되면 선손을… 써야지요.》

그가 선손을 쓴다는것은 련결고리를 폭파시켜 끊고 움직이는 철배를 떼버린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되면 철배를 하나 내버리고 숱한 공력이 허사로 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폭파준비는?…》

《하는… 중》

질풍이 파도의 비말을 날라다 그들의 얼굴에 휘뿌리고 달아났다.

《하지만 떼버리는걸… 서둘건 없소. 그전에 속채움을 최대한 다그쳐보기요.》

《나는 잠수정에… 가있겠습니다. 잠수병들이… 지금 철배밑에서 지반을… 감시하고있습니다.》

가도 좋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송철만은 휴대용무선통화기를 들어 현장지휘부에 남아있는 부국장을 찾았다. 어딘와 전화중이던 모양 황석전은 알았다고 하며 무선통화에 응답해나왔다. 철만은 가물막이현장의 정황부터 설명했다. 그리고 정황설명을 끝내자 전지불로 시계를 보고나서 이제부터 20분이내로 작업중이 아닌 끝살부리의 모든 구분대군인들을 비상소집하여 (빈배낭을 가지고) 송관역 모래하차장에 집결시키라고 지시했다.《인해전술》에 《배낭작전》을 해서라도 가능한껏 흔들리는 철배를 구원해볼 계획이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지휘하려던 그 《배낭작전》을 황석전에게 인계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송관역에 도착하자마자 령남리에 있는 함형부재장제방뚝이 터질 위험에 처했다는 보고를 받았던것이다. 그는 심장이 싸늘하게 식으며 눈앞이 아뜩해지는 감을 느꼈다. 부재장제방이 터져 바다물이 부재장을 휩쓰는 날이면 이미 타입을 끝냈거나 지금 한창 타입중에 있는 숱한 함형부재들이 저절로 뜨면서 서로 부딪쳐 다 마사질수 있었다. 결국 그것은 지난 2년동안에 해온 모든 일들이 죄다 수포로 돌아가고 수천만원어치의 막대한 자재와 로력을 잃어버리는 외에 전반적인 갑문건설완공기일이 그만큼 늦어진다는것을 의미하였다. 빨리 령남리에 건너가 수습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어떤 파국적인 사태가 벌어질지 알수 없었다.

모래하차장을 떠나 다시 가물막이현장으로 되짚어나온 그는 잠수정에 올라가 정대철에게 배를 한척 불러오라고 지시하였다. 정대철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배는 불러다 무얼 하려는가고 물었다. 철만은 함형부재장에 조성된 정황을 이야기해주었다. 옆에서 포탄이 터져도 놀랄것 같지 않던 정대철이도 이때만은 눈이 퀭해졌다.

《아니, 그럼 저 피도에 건너가자는겁니까?》

《건너가야겠소. 피도에서 기본언제코숭이만 극복하면 별일 없을거요.》

《그러다 뒤집히면 어쩝니까?》

《뒤집히면야 별수 있소? 죽어야지.》

그것은 롱담이라고만 할수 없는 말이였다. 말이 충분히 현실로 되기 십상인 정황이였다. 정대철은 만류해야 보람이 없음을 깨달았는지 다른 말을 않고 800마력 예선을 불렀다. 그리고 얼마후 예선이 도착하자 제가 먼저 뛰여오르더니 선실에 들어가 구명조끼를 찾아입었다. 송철만은 뒤따라 선실에 들어서며 그에게 구명조끼를 입는 까닭을 물었다.

《죽을 일이 생기면 동무해 죽자고 그럽니다.》

혼자만 보낼수 없으니 같이 타고 건너가겠다는 소리였다. 철만은 화를 낼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걷어치우고 빨리 내리오. 여기도 정황을 처리할 사람이 있어야지 않소?》

정대철에게도 할말이 없지 않았다.

《여기야 부국장동무가 있지 않습니까?》

《부국장은 부국장이고 동문 철배를 보란 말이요! 철배…》 그는 어성을 높이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래도 같이 건너가야 한다고 그냥 고집을 쓰는 정대철을 가까스로 내려놓고 배가 떠나자 철만은 구명조끼에 팔을 꿰며 조타실로 올라갔다. 선장은 동갑벌이 돼보이는 듬직하고 말수 적은 사람인데 며칠째 수염도 밀지 못했는지 시꺼먼 구레나릇이 볼에 덮여있었다. 문옆에 붙여놓은 걸상에 앉으며 송철만은 담배갑을 꺼내 붙여 선장에게 권하고 자기도 피워물었다.

《어디서 동원되여왔습니까?》

《서해항만이우다.》 컴컴한 시창을 내다보며 선장이 대답했다.

송철만은 선장더러 이런 파도에 배를 몰아본적이 있는가고 물었다. 선장은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이면… 무섭지 않습니까?》

선장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안무섭겠수. 해두 국장어른이 타고있으니 좀 안심이 갑니다.

《허허, 나는 오히려 선장동무를 믿고있는데요.….》

밖은 캄캄칠야여서 파도를 볼수 없었지만 배가 오르내리는 느낌만으로도 바다가 점점 더 사나와지고있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한순간 파도마루에 올라서는듯 곧추 쳐들리던 배머리가 갑자기 꺼져내리며 선미쪽에서 기관총련발사격 같은 날카롭고 메마른 소리가 울려왔다. 그것은 추진기가 물밖에 나와 헛도는 소리였다. 인차《기관총사격》은 멎었지만 대신 선체 어디선가 쿵-하고 둔한 충격이 느껴지는 찰나 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밤하늘을 향해 다시 곤두서는 배머리… 무시로 배전을 넘어와 선실지붕이 아니면 조타실유리창을 두드리고는 좌르르 부서져내리는 파도… 명주필 찢기는것 같은 앙칼진 바람소리… 그런 혼돈속에서도 철만은 밀려드는 피곤을 이길수 없어 조타실벽에 잔등을 붙이고 끄덕끄덕 졸았다.

졸다가 배가 몹시 들까부는 바람에 조타실바닥에 나떨어져서야 정신이 들었다. 걸상에 올라앉은 그는 배의 위치를 물었다. 선장의 대답이 조금전에 토언제코숭이를 지나왔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일없을것 같다는것이였다. 느낌에도 파도가 좀 약해진것 같고 배도 덜 흔들리는것 갈았다. 여기서라면 함형부재장과 통화도 가능할것 같아 그는 휴대용무선통화기를 동작시켰다.

《6번, 6번, 나 1번이다. 정황을 보고하라.》

아무 응답도 없었다. 다시 찾아보았지만 역시 응답이 없어서 아직 송수신거리가 안되는가부다 하고 기본언제공사장을 찾으려고 하는데 함형부재생산을 책임진 부대장의 숨찬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1번, 나 6번이다. 정황을 보고하겠다. 제방이 못견딜것 갈다. 파도에 제방 바깥쪽이 계속 패워나간다. 여기저기 터진 구간은 막고있지만 얼마 지탱하지 못할것 같다. 부재장에서 기재들을 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있다. 결론을 달라….》

기재를 철수하다니? 그건 제방을 포기할수도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사태가 그렇게 위급하단 말인가? 하지만 제방을 포기해서는 안되였다.

그는 누가 기재철수를 제기하는가고 물었다. 전권대표의 의견이라는 대답이 왔다.

(전권대표?…)

《6번, 들으라. 기재를 철수하느라고 인원을 분산시키지 말라. 제방에 력량을 집중해야 한다. 30분이내로 도착하겠다. 그때까지 무조건 견지하라. 알겠는가?》

《알았다. 견지하겠다.》

통화를 끝낸 철만은 초조감에 쫓기며 선장더러 만속을 놓으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배는 이미 자기마력을 다 내고있었다.

 

《국장이 뭐라오.》

부대장이 통화를 끝내자 상설은 손에 든 홰불방망이를 바꾸어쥐며 성급히 물었다. 그러나 바람소리때문에 알아듣지 못하고 무슨 소리냐고 되물어왔다. 그래 입을 귀에 대고 다시 소리를 질러서야 저쪽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받아 고함을 질렀다.

《철수하지 말고… 견지하랍니다. 견지…》

《어떻게 견지한다는거요?》 윤상설이 소리쳤다.

《아무튼 견지해야 합니다. 이건… 명령이란 말입니다.

국장과의 무선통화가 있기전에 철수문제때문에 벌써 의견이 충돌한터여서 두사람의 말속에는 피차 감정이 깔려있었다.

《여보. 동무는 지휘관이란 사람이… 왜 아까부터 답답한 소리만 하오. 국장은 여기 형편을 다 몰라서 그런다치고… 동무야 현장 책임자로서… 정황을 랭정하게 판단해야 할게 아니요?》

상설은 어차피 터지기마련인 제방을 붙안고 헛수고를 하기보다 인원들을 기자재철수에 돌림으로써 있을수 있는 손실을 최대한 줄이자는 생각이였다. 그가 보기에는 제방의 운명이 이미 경각에 달해서 견지한다는것은 무모한것이였다. 견지하느라고 시간을 끌다가 량쪽이 먼저 무너지는 날엔 인원철수도 못하고 수천의 생명이 물에 휘말려들수도 있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디선가 또 뚝이 터진다는 다급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 …) 상설은 가슴이 섬찍하였다. 한두사람도 아니고 저렇게 여럿이 다급히 소리칠 때에는 뚝이 터져도 이만저만하게 터지지 않았다는 예감이 들었다. 철수를 한다 해도 현재로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벌써 저만치 가있는 부대장의 뒤를 따라 천방지축 내달았다. 머리우에서는 쥐고있는 방망이홰불이 이러저리 나눕으며 푹 젖어 물이 줄줄 흐르는 머리와 몸을 어룽어룽 비치였다. 흙가마니를 메고 지고 끌고 헉헉 단숨을 뿜으며 달려가고 달려오는 군인들과 이리저리 부딪치며 한참 가느라니 터진 제방구간이 나타났다. 파도에 깎이워 소로길처럼 가늘어진 제방 웃폭이 10여m 뚝 잘려나가고 잘린 구간으로는 벌써 물이 넘고있었다. 그런대로 뚝이 심부까지 아주 잘리지 않은것은 군인들이 팔에 팔을 겯고 겹겹이 늘어서서 밀려드는 파도를 가슴으로 막아내고있는 덕분이였다. 그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물이 얼마간 기세가 꺾인 제방 안쪽으로부터 흙가마니가 쌓여지고있었다. 그러나 아직 흐름을 멈추지 못해서 던져넣은 흙가마니가 그대로 물살에 떠밀려 제방밑으로 굴러내리기도 하였다. 또하나 그렇게 굴러내리기직전의 흙가마니가 눈에 띄우자 그는 홰불방망이를 내던지며 무작정 뛰여들어 덮쳐잡았다. 잡기는 했으나 끌어올리기에는 힘이 모자라 도리여 흙가마니에 끌려가던중 누군가의 드센 팔이 도와주어 가까스로 끌어올릴수 있었다.

송철만국장이 현장에 나타난것은 그로부터 얼마후였다. 군인들을 도와 흙가마니를 쌓다가 누군가 알려주어 보니 언제 왔는지 국장이 제방우에서 있었다. 상설은 이 태풍속에 그가 바다를 무사히 건너온것이 우선 놀라왔다. 창황중에서도 역시 군인들이 다르다고 생각하였지만 그건 순간의 일이고 물에서 나와 마주서자 끝살부리쪽 형편부터 물었다. 송철만은 전지불로 파도가 물어뜯는 제방 바깥면을 살피며 뭐라고 했는데 말이 바람에 삼키워 알아들을수 없었다. 윤상설에게는 그가 《거긴 별일없다》고 말한것으로 짐작되였다.

《여긴 안되겠소. 웃쪽이 저렇게 가늘어졌을 땐 밑도리도 적잖게 어졌다는 소리요. 이젠 늦었소.》

제방이 통채로 붕괴되기전에 인원들이라도 철수해야 한다고 그는 력설하였다.

송철만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이렇다 할 결심이 서지 않은듯 제방을 들이받고 날아와 얼굴에 휘뿌려지는 물보라를 손바닥으로 훑어내리며 여기저기 자리를 옮겨 밟아도 보고 전지불로 비쳐도 보고 넘어들어오는 물을 제압하느라고 오글복작거리는 절단구간도 살피고 하더니 마침내 무선통화기를 들어 102부대장을 찾았다.

부대장이 나오자 그는 기본언제공사장형편을 물었다. 윤상설이 듣건대 그쪽의 형편도 좋지는 못하였다. 여기처럼 급하지는 않다 해도 파도가 다져지지 못한 언제코숭이를 사정없이 잘라가는데 없어진 제방뚝이 벌써 10여m나 된다는것이였다.

부대장의 정황보고가 끝나자 송철만은 함형부재장형편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곳 기본언제공사장에서 두개 부대를 떼서 마대와 가마니를 있는껏 모아가지고 20분이내로 부재장제방에 보내라고 지시하였다.

《아니, 그럼 철수는 안하겠다는거요?》

송철만이 통화를 끝내기 바쁘게 상설은 얼굴에 들씌워지는 물보라를 손바닥으로 훑어던지며 따지고들었다. 그런데 송철만의 표정이 의외로 사나와졌다. 이제껏 그리도 의합이 잘되던 그들이건만 자연과의 이 피어린 전쟁에서 어찌 서로 목청을 높이지 않을수 있으랴.

《철수는 무슨놈의 철수를 한단 말이요? 죽는게 그렇게 무섭소?… 안되오. 철수하겠으면 혼자 하시오. 우린 죽더래도 이 제방과 함께 죽어야 할 사람들이요.》

물론 윤상설은 파도소리때문에 그말을 정확히 가려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의미와 감정만은 명백히 알려서 맞받아 소리질렀다.

《여보, 누가 제목숨이 아까워서 그러는줄 아오? 이 숱한 젊은이들.》

일건의 바람이 파도를 날라다 두사람의 머리우에 들씌워놓는 바람에 그는 할 말을 다하지 못했다. 물투레를 불며 다시 입을 열려는데 이번에는 송철만의 가슴앞에 드리워있는 무선통화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1번, l번을 찾는다… l번이 어디 있는가? 1번…》

송철만이 대답했다.

《나 1번이다. 부재장제방에 있다. 무슨 일인가?》

《10번이다. 관리국상점에 화재가 발생했다. 린접한 후방창고들에 불이 옮겨앉을 위험이 있다. 소방인원들이 필요하다. 빨리 보내주기 바란다.》

재앙은 홀로 다니기 싫어한다. 언제나 쌍으로 오는 잔인한 불청객이다.

윤상설은 겹쳐 들이닥치는 재난앞에서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하면서도 이제야 송철만이 철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허나 그것은 때이른 단정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꽉 앙다문채 잠시 눈을 감고 서있던 그는 먹붓을 잘라붙인것 같은 그 위엄스런 눈섭을 한번 꿈하더니 갑자기 사납게 소리질렀다.

《지금 소방인원이 어디 있는가?… 보낼 사람이 없다 ! 상점은 버리고 후방창고들에 불이 이전되지 않게 하라! 알겠는가?》

《알겠다. 지시대로 하겠다.》

윤상설은 갑자기 목구멍이 바싹 말라드는 감을 느꼈다. 그는 송철만에게 철수를 요구하는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공담에 지나지 않는가를 비로소 깨닫는것 같았다. 하지만 철수하지 않은들 이 바람, 이 파도속에 어떻게 제방을 견지한단말인가. 재방의 운명은 이미 경각에 이른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증명해주는듯 어디선가 또 뚝이 터진다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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