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우등불이 타오른다. 널직널직 반원으로 길게 배치된 여섯개의 불무지에서 솟구치는 불길이 불찌를 날리며 허공을 핥는다. 굵게 타래진 희뿌연 연기발은 무거운듯 비스듬히 누워 별이 총총한 밤하늘로 기여오른다.

여기 령남리 토취장의 넓은 공지에서는 지금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주신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군인건설자들과 《2월17일과학자돌격대》를 비롯한 정무원지휘부산하 건설자들의 궐기모임이 진행되고있다. 불빛에 드러나는 수만명 군인들의 가슴은 격동으로 들먹거리고 눈에는 굳은 맹세가 어려 번쩍거린다. 먼저 송철만소장이 보고대신으로 친애하김정일동지의 현지지도과정을 깊은 감동과 흥분속에 이야기하였다. 그는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구호때문에 여러번 말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크나큰 믿음에 충성으로 보답하자!》

《보답하자, 보답하자, 보답하자!》

《명령은 내렸다. 올해안으로 가물막이를 끝내자!》

《끝내자! 끝내자! 끝내자!》

피끓는 심장에서 나온 수만의 목소리는 한덩어리로 합쳐져 뢰성마냥 대지를 울리며 밤하늘로 울려퍼진다. 토론자들은 더 격동적이였다. 피를 토하고 불을 뿜어내는것 같은 그들의 토론속에서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주신 과업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칠 굳은 각오가 울렸고 가장 어려운 임무앞에 자기들을 불러달라는 요구가 있는가 하면 갑문건설이 끝나는 날까지 제대를 미루겠다는 결의와 호소도 있었다.

모임은 10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부대별로 돌아가도 좋다는 부국장의 지시가 방송에서 울리자 대대를 앞세우고 속보로 가면서 윤건호와 리종각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대대장동무, 이거 우리도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습니까?》

리종각이 무엇인가 하자는것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주신 과업관철을 위해 어떤 혁신적인 일을 발기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뜻이였다.

《그러기 말이요. 나도 어제부터 줄창 그것만 생각하고있는데… 마음은 끓는데 당장 신통하게 떠오르는게 없구만. 끝살부리로 건너가보긴 틀렸구…》

친애하는 김정일동지의 현지지도와 관련하여 온 갑문건설장이 기쁨과 감격으로 끓어번지고있는속에 함형부재생산과 기본언제공사를 담당한 령남리쪽의 부대참모부들에서는 국지휘부의 력량재편성 계획에 따라 어제부터 가물막이공사장으로 건너가게 될 구분대들을 선발하고있었다.

건호는 이 기회에 대대와 함께 끝살부리에 건너가 가물막이전투에 참가하리라 결심하였다. 리종각이와 의견을 나누어보니 그도 찬성이여서 그는 즉시 부대참모부에 제기하고 내적으로 이동준비도 추진시켰다. 그런데 어떻게 된 셈인지 부대에서는 다른 대대를 가물막이공사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건호는 분했다. 일이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차라리 송철만국장의 《힘》을 빌어 부대에 《내리먹이는》식으로 문제를 해결할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틀리고 원망할것은 부대참모부밖에 없었다.

《대대장동무.》 생각에 잠겨 묵묵히 걷던 리종각이 문득 입을 열었다.

《대대군인들을 다 용접공으로 만들수 없을가요.》

남은 신경이 올라 죽을지경인데 이건 또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린가 싶어 윤건호는 정치지도원을 흘겨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대대전체를 용접공으로 만들어선 뭣하오?》

리종각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걸음만 옮기더니 평소의 그답지 않게 심중한 어조로 내심을 털어놓았다.

《나는 간밤에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현지지도과정에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분에 넘치는 평가를 주신것처럼 지난기간 우리가 일을 많이 한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한일보다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니 해놓은 일이나 평가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그럼 만족하게 일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 이젠 대담하게 3대대와 작업장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대대는 그들의 대대가 보장해주는 콩크리트혼합물을 받아 타입하고있었다. 그런데 그 타입능력이 높지 못하여 늘 타입실적이 낮은가 하면 윤건호네 보장조를 골탕먹이기가 일쑤였다. 지난 겨울 온 대대가 겨우내 혼합기안에서 얼어붙은 콩크리트를 까내느라고 고생한것, 교대당 혼합물보장립방수에서 떨어지는것 등은 바로 그런 실례였다. 물론 3대대가 그렇게 일을 제끼지 못하고 앉아뭉개는것은 대대지휘관들의 능력과 전투력에도 문제가 있지만 중요하게는 용접력량이 딸리는데 기본원인이 있었다. 윤건호가 3대대때문에 골탕을 먹고 작업장을 바꾸든지 무슨 마련을 보아야지 않되겠다고 노상 투덜거리면서도 종시 용단을 내리지 못한것은 바로 그 용접력량때문이였다. 용접력량이 딸리고보면 그의 대대라고 용빼는 수가 없고 3대대나 같은 처지에 빠지기 십상이였다. 리종각이 대대전체를 용접공으로 만들고싶어하는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무슨 수로 대대군인 전체를 용접공으로 만든단 말인가.

《이렇게 하면 안될가요? 가령… 어디서… 기술자를 초청해다 강의를 받게 한다거나… 용접기 같은걸 구해서 실습도 하는식으로 말입니다.》

건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방법자체가 너무 소극적이였다. 하지만 그는 리종각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지지도와 관련하여 대대를 어떻게 그 과업관철에로 불러일으키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나름으로 생각을 많이 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따지고보면 자신은 그렇게 못했었다. 력량조절에 끼여 가물막이공사장으로 건너가면 만사가 다 해결되는것처럼 생각하면서 들떠있었던것이다. 이제는 2대대에 선수도 떼운 조건에서 어떻게 하면 함형부재장에서 혁신을 일으키겠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3대대와 작업장을 바꾸고 대대를 용접공대대로 만들자는건 나도 찬성이요. 그러나 기술자를 초청해오고 용접기를 얻어다 실습이나 하는식으로야 언제 되겠소. 그럴바엔 차라리 남포시내에 한개 중대씩 내보내 배워오는게 낫지.》

리종각은 자신이 생각하던것보다 방법이 정반대고 너무 적극적이여서 얼른 납득이 안가는지 벙벙해있더니 급기야 리해가 된듯 감탄해마지 않았다.

《옳습니다. 바로 그게 방법입니다. 역시 대대장동무는 머리가…》

《갑자기 머린 또 무슨 머리요…》

둘은 함께 웃었다.

리종각은 당장 래일 한개 중대를 남포시내에 내보내자고 서둘렀다. 그러나 건호는 고개를 저었다. 우선 한개중대를 작업에서 떼내면 그들이 맡았던 혼합기를 누가 돌리겠는가 하는 문제를 풀어야 했고 또 《기술전습》의 비밀보장도 생각해야 하였다. 혼합기는 남아있는 중대들에 적당히 분배해서 어떻게 돌릴수 있겠지만 대대가 타입장으로 진출하기 위해 자체로 용접기술을 전습한다는것이 부대참모부나 3대대에 알려지면 일이 아주 복잡해지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잘 타산하고 면밀히 짜고들어 감쪽같이 해치우자면 중대장들과 협의를 해보아야 하였다.

이윽고 대대는 숙소에 도착하였다. 건호는 대렬을 헤치려다 말고 각 중대단위로 2렬횡대를 짓도록 하고는 앞에 나서서 용접기술이 얼마간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대렬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나온 병사는 몇이 안되였다. 한개중대에 고작 두세명정도, 3중대는 겨우 한명이 나와 섰다. 대대군인들의 용접기능수준이 예상외로 낮은데 실망을 금치 못하며 윤건호는 이른바 《용접기능자》들에게 용접기술을 어디서 어떻게 배웠는가?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일일이 알아보았다. 알아본 결과 용접공으로서의 경력을 가진 사람은 한명도 없고 단순한 호기심이나 심심풀이로 익혔는가 하면 중학시절 실습시간에 배운 정도였다.

《동무는?》

마감으로 3중대에서 나온 중사앞에 다가서면서 윤건호는 그래도 분대장이니 좀 나을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물었다. 그런데 어째선지 중사는 고개부터 숙이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저… 사실 전… 용접을 할줄 모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윤건호는 어이없는 속에 화가 나서 어성을 약간 높였다.

《그렇다면 나오긴 왜 나왔소?》

중사는 죄송한듯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인차 숙였던 얼굴을 들며 사정하는것 같은 어조로 말하는것이였다.

《대대장동지, 전 우리 대대가 타입장으로 진출하지 못하는건 용접력량이 걸리기때문이라는걸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용접기능을 알아볼 땐… 대대장동지, 전 배울 결심입니다. 열흘동안만 시간을 주면 제 꼭 훌륭한 용접기술자가 되겠습니다.》

《!…》

윤건호는 커다란 감동을 느꼈다. 얼마나 령리하고 성실한 하사관인가. 이런 병사들을 보고 생각이 극히 단순하여 시키는 일이나 할줄 알고 지휘관들의 고충을 알지 못할것이라고 단정한다면 그런 모욕이 없을것이다. 그는 손을 들어 분대장의 어깨를 힘있게 눌러잡으며 말했다.

《좋아, 배우자구. 배워가지구 타입장으로 진출하자구!》

대렬을 헤쳐 휴식시키도록 지시한 그는 중대장들만 불러가지고 대대부에 들어가 이미 리종각이와 론의한 대대의 타입장진출과 용접기술전습문제를 론의에 붙였다. 3대대때문에 불만이 많던차라 중대장들은 즉시에 호응해나섰고 기술전습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를 푸는데서도 매우 협조적이였다. 하여 결국 이렇게 결정되였다.

첫째, l중대는 남포시내의 건설장과 공장, 기업소들에 나가 용접기술을 배워오되 3급기능공이상 되여야 하며 매 중대의 전습기간은 12일로 한다.

둘째, 기술전습을 하는 중대의 혼합기는 현장에 남아있는 중대들에서 각각 두대씩 맡아 돌린다.

셋째, 비밀보장을 위해 타입장진출문제는 군관들만 알고 대원들에게는 일체 말하지 않는다.

(개인본위로 하지 말고 집체적협조정신을 발휘하며 판정은 분대단위로 한다는것을 별도로 강조했다.)

건호는 비밀준수에 대해 특별히 강조하였다. 만일 이 비밀이 탄로되는 날이면 타입장이고 기술전습이고 다 수포로 돌아가며 처벌과 망신을 면치 못한다고…

그러나 그토록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은 다음날로 벌써 유정의 귀에 들어갔다.

《<기술고문>은 대대의 손님인가요?》

그것은 저녁식사후 학습과제검열을 하러온 유정의 질문이였다.

《손님이기는 왜 손님이겠소. 주인도 아주 주인이지요.》

건호는 그 녀자의 질문속에 감추어진 뜻은 아직 판단 못했지만 천연스럽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저한테도 한개 중대가 작업에서 떨어질수 있다는것쯤은 알려주어야 옳지 않아요?》

그제서야 건호는 벌써 비밀이 새나갔음을 알고 신경이 돋았다.

《그거… 누가 그런 말을 하며 다니오?》

그는 《배신자》를 찾아서 단단히 버릇을 가르칠 심산이였다.

《대대정치지도원동무가요.》

(?!…)

건호는 기가 막혀 말이 다 나가지 않았다. 그 느렁뱅이 같은 사람이 어느새 벌써 이 녀자한테 가서 그걸 발설했는가? 발설한 까닭은 또 무엇이며 …

유정은 재미있다는듯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쥐고있던 작고 얄팍한 책을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이 책을 구하자니 별수 없었지요.》

책을 끌어당겨 표제를 보는 순간 윤건호는 저도 모르게 (아-하!)하고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용접기술》이라는 번역판기술참고서였다. 그는 리종각의 선견지명과 적극성앞에서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거 좌우간 고맙소.》

그러나 유정은 웃으면서 고맙다는 말은 오히려 자기가 해야겠다고 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현지지도를 받고 궐기모임에까지 참가했지만 자신은 아직도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있었는데 오늘 정치지도원한테서 대대군인들의 결의를 듣고야 자기 할바를 깨닫게 되였다는것이였다. 건호는 답례삼아 그 말을 꼭 성공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노라고 하면서 책상빼람에서 수리공학교재를 꺼내놓았다. 그때 비로서 생각난듯 유정이 밑도끝도 없이 《참 아세요? 윤상설부위원장동지가… 아버님이 오신걸 …》 하고 물었다. 《? …》 건호는 이건 또 무슨 소린가싶어 그 녀자를 쳐다보았다.

《모르시는군요. 윤상설부위원장동지가 갑문건설에 <정무원전권대표>로 임명되여왔어요.》

《아니? 그게 정말이요?》

건호로서는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였다.

《정말 아니문… 오늘 점심시간에 우리 과학자돌격대에 와서 부임인사까지 하고간걸요.》

어쨌든 건호는 기뻤다. 유정이가 아니라면 일어나 당장 아버지한테로 달려가고싶은 심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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