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교대를 앞두고 정치지도원 리종각이 또 한번 대원들앞에서 준전시상태에 들어갈데 대한 최고사령관명령을 랑독하고 간단한 선동연설을 한 다음 윤건호는 대대를 작업에 진입시켰다. 벨트콘베아와 혼합기들이 으르렁거리며 돌기 시작하고 자갈더미에 삽날이 박히는 소리가 귀를 멍멍하게 하며 어둠이 깃을 펼치는 혼합장상공으로 메아리쳐갔다. 대대가 야간작업에 들어간 첫 한시간동안 그는 작업능률의 높고낮음이 거기에서 결정되는 자기 대대혼합장과 3대대타입장을 련결하는 기중기신호수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두 작업장간의 련계가 원만해지자 신호를 책임진 소대장에게 호각과 신호기발을 넘겨주고 벨트콘베아에 모래를 퍼싣는 일에 달라붙어 전사들과 함께 이마에 땀이 질펀히 나배도록 삽질을 했다. 그제야 바쁜 일에 쫓겨 계획한 학습과제를 수행하지 못해서 래일 아침에는 유정《선생》의 《추궁》을 면할수 없게 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싸움끝에 사귄다는 격으로 그새 유정이와의 관계는 예상외로 좋게 발전하고있었다. 발전의 계기로 된것은 대대정치지도원 리종각의 《책략》이 가져온 《교재사건》이였다. 처음 건호는 교재를 받아 공부를 하면서도 그것이 어머니나 누이동생이 구해서 보내준것이겠거니 하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침대에 누워 교재를 뒤적거리던 그는 우연히 판권이 찍힌 마지막페지 아래구석에서 한자로 내리쓴 유정이라는 두 이름자를 발견했다. (유정!… 어떻게 되여 이 교재에 그 녀자 이름이 씌여있는가? 그렇다면 혹시 이 책은 그 녀자의?…)

그는 벌떡 일어나 침대밑에 쌓아두었던 교재들을 꺼내놓고 판권이 있는 마감페지를 일일이 들춰보았다. 예견한 그대로 어느 책을 물론하고 왼쪽 아래구석에 꼭 같은 내리글로 유정의 두자이름이 단정히 씌여있었다.

(일인즉 그렇게 된거였구나! …)

누군가 교재를 아주 정히 보았다는 (교재를 이렇게 정히 보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공부도 잘했을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 주인공이 유정일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던터라 그는 어이없는 김에 천정을 쳐다보며 바보처럼 허허 웃고말았다. 교재가 어떻게 되여 자기 손에 들어오게 되였는지 구체적인 경위는 다 알수 없었으나 마치도 맞붙어싸우던 적수로부 갑자기 검을 선사받은 기분이였다. 그렇다고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더구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감동되는바가 있으면서 그 녀자의 새로운 인간면을 보는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다음날 아침 건호는 이 사실을 리종각에게 《보고》했다. 종각은《보고》를 청취하고는 무릎을 치며 환성을 올렸다.

《됐습니다. 내가 바로 그러루한 문제거리를 만들자고 연구하던중인데 제절로 풀렸습니다. 이젠 찾아가 교재를 구해준데 대해 사례하면서 <선생님>이 되여달라고 부탁을 해야 합니다.》

남녀관계란 그러한 교제속에서 정이 깊어지고 그러다 적당한 기회에 어느 한쪽이 선창을 떼면 결혼이 이루어진다는것이였다.

건호는 그가 사랑문제를 너무 실무적인 결합으로 묘사하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교재를 해결해준데 대한 사례와 강의청탁을 하는것은 옳다고보아 저녁때 찾아가리라 작정했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못한 일로 바로 그날 오후에 그 녀자자신이 제발로 대대에 나타났다. 함께 온 부대참모장은 그들이 초면인줄로 알고 마주 인사를 시키더니 이렇게 말했다.

《… 오늘부터 이 연구사선생이 동무네 대대에서 <기술고문>으로 있게 되오. 기술적방조도 주게 되고 작업이 기술규정대로 되고있는가를 감독통제할 권한도 있으니 그면에서 절대복종해야 하오. 알겠소?》

참모장이 인차 돌아가고 둘만이 남자 그들은 피차 어색한 감정에 휩싸였다. 건호는 주인된 립장에서 무슨 말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황이 너무 돌변한탓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다행히도 유정이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전 대대장동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수 있을것 같군요.》

《그렇소?… 그럼 맞춰보시오.》

《과학자돌격대에 유능한 남자들도 많겠는데 왜 하필이면 이런 시끄러운 녀자가 배치되여왔을가?… 어때요, 맞지요?》

말끝에 그 녀자는 가볍게 웃었다.

(흠, 잘두 알아 맞히는군…)

속으로 코웃음을 치면서도 그는 마음이 훗훗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틀렸습니다. 나는 오히려 동무가 우리 대대에 배치된걸 아주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사실 난 동무를 찾아가려던 참이기도 했습니다.》

《저한테요? 그건 어째서요?》

그 녀자의 표정에 엷은 긴장이 어렸다.

《교과서를 빌려준데 대해 인사도 할겸 부탁할것도 있고 해서…》

교과서문제가 나오리라고는 생각 못했던 모양 그 녀자는 일순 《엄마!》하며 가볍게 놀라더니 제편에서 도리여 미안한 표정이 되였다.

《그까짓 낡은 교과서 몇권이 뭐라고…》

《교과서가 낡았다고 정리나 법칙도 낡았겠습니까? 어쨌든 요긴한 방조를 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건호는 진심으로 사례했다. 그리고 이왕 내친김에 정치지도원이 시켜주던대로 지도교원이 되여달라는 부탁까지 하고말았다. 그런데 순조롭게 흘러가던 대화가 거기서부터 힘겹게 진척되기 시작하였다. 뜻밖의 부탁앞에서 그 녀자는 당황해하는듯 싶었다. 그러나 인차 자신을 수습하며 표정이 심중해지는것이였다.

《유감이지만 저로선 대대장동무의 부탁을 들어주기 힘들것 같군요. 저는 누구를 가르칠 수준도 되지 못하지만 저자신 아직 배우는 처지에 있어요.》 그리고는 너무 매정하게 잘라버리는것이 미안한듯 《2월17일과학자돌격대》에 수리공학분야의 로련한 전문가들이 많으므로 바란다면 소개해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동의를 쉽게 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처럼 깨끗이 거절당할줄은 몰랐던 까닭에 건호는 실망보다 우선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그 녀자의 랭정한 거절속에 다른 의미도 포함되여있는것 같았다. 그렇다. 이 녀자는 분명 나의 부탁을 남자가 녀성에게 접근하는 수법이라고 넘겨짚고있다. 그래서 이처럼 처음부터 매정하게 나오는것이다. 정을 주고싶은 녀자인것은 사실이지만 적어도 오늘의 부탁과 관련해서는 그런 불순한 의도가 꼬물만치도 없고 지극히 청백하였으므로 그는 이 문제를 해명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혹시 동무는 내가 어떤 딴 목적을 품고 동무에게 이런 부탁을 한다고 생각하는건 아닙니까?》

낯색이 붉어지는것으로 보아 유정은 그가 말하는 《딴 목적》이 무엇이라는것을 리해한것 같았다. 황황히 오해하지 말라고, 자기는 그의 부탁을 그런 의미에서 접수하기 힘들다고 말한건 아니라면서 앞서 한 설득력이 덜 느껴지는 말, 즉 자기역시 배우는 사람이라 남을 가르칠 형편이 못된다는 소리를 되풀이하며 그것이 부탁을 들어줄수 없는 중요한 리유임을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그렇다면 내가 혹시 너무 감정에 흐른것인가?…)

어쨌든 건호는 그것으로 도움을 받으려던 계획은 물론 인간적리해를 깊이 해볼수 있는 계기마저 파탄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생활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방조를 구하려다 감정만 상한 그 불쾌한 담화가 있은 때로부터 거의 한달가까이 지나간 어느날 저녁무렵이였다. 밤작업을 하는 주간이여서 대대를 이끌고 현장으로 나온 건호는 교대시간을 기다리며 휴계실에 홀로 앉아 교재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조선서해북부에서 력사적인 최대물높이는 1923년 8월 13일에 나타났다. 이때 강한 태풍이 중국연안을 따라 우리 나라의 압록강어구를 지나면서 초당 20~25m의 센 바람을 일으키고 이 센 바람에 의한 물높이와 사리가 겹쳐 높은 해일이 일어났다.

남포지점에서 1923년 8월 12~14일 기간 최대물높이 (222cm)는 13일 낮 11시에 나타났다. 이러한 크기의 물높이는 평안남도연안에서 100년정도, 평안북도연안에서는 250년정도의 재현주기에 해당… 교재내용에 심취되여 시간의 흐름마저 망각하고있던 그는 문득 몸에 와닿는 누군가의 지꿎은 시선을 륙감으로 느끼며 눈을 들어 나들문쪽을 바라보았다. 아닐세라 거기 문가에 유정이가 서있었는데 학습을 방해해서 안됐노라고 변명하는것이였다. 건호는 교대시간이 다됐으므로 안될것도 없다면서 교재를 덮고 그 자에게 의자를 권했다.

방안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유정은 문옆의 장의자에 앉으며 교대작업에 들어가면서 군인들에게 강조해주었으면 하는 기술지표와 주의사항들을 몇가지 제기하였다. 건호는 《그럽시다.》 하고 선선히 응하였지만 다른 말은 더 하지 않았다. 방안에는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게 되였는데 한참후 그 침묵을 먼저 깨친것은 역시 유정이쪽이였다.

《한가지 물어도 좋겠어요?》

건호는 어서 그러라고 선선히 응하였다.

《전 대대장동무가 어떻게 되여 군인의 몸으로 이런 건설장에서 수리공학을 공부할 결심을 하게 됐는지… 알고싶군요.》

예견하지 못한 질문이였다.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는가? 거짓말은 하고싶지 않았다.

《무식과 우둔으로야 갑문을 건설할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우물사건》때 그 녀자가 한 말이였다. 처녀는 버릇처럼 아래입술을 감쳐문채 잠잠해있더니 가벼운 한숨을 내불었다.

《그러니 그때 그 말이… 전 그런줄도 모르고…》

건호는 그 녀자의 《그런줄 몰랐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깨닫자 가슴이 높뛰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부탁을 받아들인다는 소리, 다시말하여 《선생님》이 되여주겠다는게 아닌가… 그날 이후로 두사람은 단순히 대대장과 《비편제》기술고문이라는 직무상관계만이 아닌 배우고 배워주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리해를 보다 깊이 할수 있었으며 차차 스스럼없는 사이로 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그것일뿐으로 다른 그 무엇은 아니였다. 《선생님》이 되여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자기가 생각했던것처럼 건호는 결코 배우고 배워주는 관계속에 이성의 감정을 섞으려 하지 않았다. 유정이쪽에서 그것을 바라지 않는 이상 자신이 먼저 다른 감정을 로출시킨다면 그야말로 도덕적참패로 된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이제는 근 두해가까이 상종해오며 인간적리해면에서도 상당히 가까와졌건만 그 이상 더 발전하지 못하는 자기들의 관계가 건호는 불스러웠다

이에 대해 본인당자보다 더 속을 쓰는것은 역시 리종각이였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묻고 채근하였다. 오늘도 그저 공부만 했는가? 정치적수양정도는 어떻던가? 당에 입당할 준비는 하고있던가?… 하여튼 별것을 다 묻고 따지고들었다. 그런뒤에는 꼭 래일은 이렇게 말해보고 그 다음엔 또 저런걸 알아보라는 식으로 조언을 주는데 윤건호한테서 응당한 반응이 없으면 화가 나서 덜거렸다. 세상에 나서 이렇게 이성에 둔감한 목석들은 보다 처음이라고… 그러나 곁가마가 아무리 끓어도 건호는 같이 끓지 않고 착실히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물론 그자신도 스스로 쌓아놓은 담벽을 허물어버리고싶은 경우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아니다. 그래서는 안된다. 설사 사랑을 고백한다 해도 이 《사제》관계가 끝난후에 동격의 인간 대 인간으로 해야 한다고 자신을 다잡으며 일에 파묻히고 공부에 전심하였다. 유정이와의 관계에서 그가 얼마나 자신을 엄하게 단속하는가는 아직 사업상문제나 공부이외의 다른 일때문에 그 녀자와 단둘이 마주앉아본적이 없다는것만 가지고도 알수 있었다. 정 모를것이 생겨 설명을 듣지 않으면 안될 경우조차 그는 다른 초면의 과학자를 찾아가면 갔지 유정의 숙소에는 가지 않았다. 그것은 남들의 오해가 두려워서라기보다 그 녀자자신이 자기를 무절제한 사나이로 볼것 같아서였다.…

7호혼합기 외등밑에서 누군가 대대장의 행처를 찾았다. 건호는 콘베아에 자갈을 퍼싣던 삽을 세우고 여기 있노라고 소리치며 그리로 갔다. 찾는 사람은 3중대장이였다.

《<기술고문>동무가 좀 만나잡니다.》

콘베아소리때문에 그는 고함지르듯 말했다. 건호도 마주 소리질렀다.

《어디 있소?》

《저기 휴계실에요.》

중대장에게 삽을 넘겨준 그는 장갑 낀 손을 탁탁 마주쳐 먼지를 털며 휴계실로 내려갔다.

유정은 이 겨울이 시작되면서부터 늘 입고다니는 군인들의 군복과 색갈이 거의 같은 누빈솜옷차림에 흰 양털수건을 목에 감은채 난로옆에 앉아 신문을 뒤적거리고있었다.

《추운데 수고 많겠어요.》

신문을 접어 장의자끝에 밀어놓으며 하는 그 녀자의 인사였다. 건호는 걸상을 끌어다 그 녀자의 건너쪽에 놓고 앉으며 스스럼없이 말했다.

《오늘은 오지 않아도 될걸 그랬구만.》

인간적리해가 깊어짐에 따라 그는 언제부터인가 그 녀자와의 대화에서 경어도 반말도 아닌 중간언어를 사용하고있었다.

《왜요? 인젠 <선생님>의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였는가요? 혹시 준전시상태가 돼서요?》

건호는 그럴리야 있는가고 하며 실은 숙제를 못해서 그러노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오늘 하루를 얼마나 바삐 지냈는가에 대해서는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변명으로 될수 있기때문이였다.

《대대장동무도 자신이 세운 생활규칙을 어길 때가 있긴 있군요. 하긴 준전시상태니까… 하지만 전 사실 숙제검열을 온건 아니예요.》

다른 급한 일이 제기되여 당분간 대대에 나올수 없기때문에 그걸 알리러 온것이였다.

《출장입니까?》

유정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접때 우리 집단이 개작설계에서 황해남도의 논농사를 고려하지 못한 약점이 있었고 그것이 수문턱을 낮추면 해결된다는 이야길 했지요?》

건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유정이에게 사업상 원칙에서 크게 탈선되지 않는 이상 과학자돌격대에서 론의되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가능한한 알려줄것을 요구하였다. 그러한 론의를 아는것자체가 교재에서는 습득할수 없는 하나의 귀중한 공부였던것이다.

《림박사선생님과 함께 제가 그 수문턱높이를 계산하고 심사에 제출할 기초안을 만들라는군요.》

《그럼 시일이 좀 걸리겠구만?》

《못해두 한 열흘은 걸릴거예요.》

《열흘…》

열흘이면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동안 처녀를 보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어쩐지 서운하였다.
 

밤.

책상우에 축적 1 대 2만 5천의 공사작전도를 펴놓고앉은 송철만은 벌써 한시간 가까이 줄곧 한가지 생각에 골몰하고있었다. 그 한가지 생각이란 공사전반의 속도보장 즉 어떻게 해야 공사실적을 공정계획에 맞추겠는가 하는 말하자면 암중모색이였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여짜도 이렇다 할 대책안은 떠오르는것이 없고 있느니 예측할수 없는 암담한 전망과 자신의 무능에 대한 모멸감뿐이였다. 지나간 온 겨울 그는 봄을 기다렸다. 봄이 오면 공사조건이 좋아질것이고 그에 따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써서 공정을 맞추며 공사전반을 새롭게 활성시키리라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처럼 고대하던 봄이 오고 4월도 벌써 중순에 들어섰건만 공사장들에서는 만족할만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대로 간신히 공정계획을 맞추는것은 함형부재생산이였다. 3,500m계선에 이른 기본언제와 가물막이공사는 순계획을 겨우 절반이나 수행하는 폭이였다. 기본언제공사가 그렇게 처지는 원인은 언제가 뻗어나가는데 따라 물목이 좁아지면서 조수의 흐름이 빨라지고 쇄굴현상이 일어나는데 원인이 있었다.

가물막이를 뜻대로 하지 못하는 리유는 계절풍때문이였다. 바다가라 워낙 바람이 많이 불지만 서해지구에는 봄철의 오후면 언제나 서북풍이 터지고 파도가 높았다. 철배운반과 조립으로 그 실적이 결정되는 가물막이공사는 이 바람과 파도때문에 상당한 정도로 애를 먹고있었다. 오늘 오후 중형철배를 끌고 남포조선소에서 떠난 두척의 400마력예선이 가물막이공사장까지 거의 왔다가 맞바람에 은률쪽대안까지 되밀려가서 예선이고 철배고 다 파손될번한 사실이 바로 그 일단이였다. 투석선을 끌던 800마력예선을 급히 파견하여 간신히 파국은 면했지만 최소한 세개를 조립해야 할 오후의 계획은 그 한개의 철배로 목이 메였다. 만사가 매양 이런식이니 야단이 아닐수 없었다.

깊어가는 밤을 놀래우듯 어디선가 발파소리가 울려왔다. 방향으로 보아 102군부대구역에서 토량을 확보하느라고 발파를 하는 모양이였다. 그 발파소리가 아직 다 멎지 않았는데 다급한 문기척과 함께 직일관이 들어와 강충일중장이 왔음을 알리였다. 철만은 (이 밤중에 웬일인가?…) 하고 의아한 생각부터 앞세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장은 벌써 문으로 들어오고있었다.

《무얼 하댔소?》

장탁우에 가방을 놓고 걸상을 끄당긴 중장은 인사삼아 물었다. 철만은 같이 장탁에 마주앉으며 대답했다.

《나야 고민밖에 더 할게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공정계획에 공사속도를 맞추겠는가 요샌 눈만 뜨면 그저 그 생각이지요.》

중장은 리해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래 무슨 희망이 좀 보이오?》

철만은 자기모멸감을 이기지 못하여 쓴웃음을 지었다. 희망은 고사하고 날이 갈수록 전도가 더 암담하게 느껴질뿐이였다.

《부총참모장동무한테니 하는 말입니다만… 사실 난 요새 생각이 많습니다. 내가 과연 이 갑문을 제기일에 건설해낼수 있겠는가? 못하면 어찌 되는가? 나라는 인간은 패전장군의 운명을 쓴다치고 조국의 체면이 깎이고 당의 권위가 손상을 입는것은 무엇으로 보상하는가?… 더 늦기전에 스스로 자기의 무능을 폭로하고 직무를 내놓는게 옳지 않겠는지… 정말 별생각이 다 듭니다.》

그런데 리해해주리라고 생각했던 중장이 뜻밖에도 화를 벌컥 냈다.

《여보, 동문 요새 무슨 그따위 말같지두 않은 소리를 자꾸 하는거요? 접때두 그래… 고충이야 많겠지. 난 뭐 없는줄 아오?… 그래두 어떻게 뚫고나갈 잡도리를 해야지 나자빠질 생각만 하면 건설은 뭐가 되오? 다신 그런 소리 하지 마오. 참모일군들이나 전사들이 알면 뭐라 하겠소.》

《그래서 중장동무한테만 말한다질 않습니까?》

철만은 볼이 부어 퉁명스레 대꾸했다.

《난 뭐 누구 하소연이나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요?》

《그렇다면 관둡시다. 뭐…》

그는 중장이 자기의 고충을 안다고는 하지만 실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아는 사람이면 지금처럼 매정한 말을 할수 없었다.

《내 말을 명심해 듣소. 자리를 내놓으라면 내놓는것이지만 제 먼저 굽지는 말란 말이요. 가뜩이나 부장이 동무를…》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지 중장은 갑자기 말허리를 끊어버리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꼬리 없는 말만 가지고도 철만은 신경이 바싹 켕기였다.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두는가? 부장이 나를 무얼 어쨌다는것인가?… 그는 깨여진 사기그릇쪼각을 주어붙이는 심정으로 중장이 한 말마디며 어조를 종합하여 하나의 완결된 의미를 만들어냈다.

《혹시… 부장동지가 내 후임을 생각하고있지 않습니까? 중장동무 역시 그때문에 오고…》

그는 자신의 짐작을 틀리지 않는다고 믿으면서도 중장이 그것을 부정해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강충일은 내심을 감출줄 모르는 사람이라 벌써 놀라며 사실을 인정하고 들어갔다.

《아니 여보, 동무가 그걸 어떻게 아오?》

《알지요. 저는 벌써 지난 여름부터 이런 날이 오리라는걸 예감하고있었습니다. 각오한바도 있구요.… 그러니 나를 동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철만은 스스로도 자신의 목소리에 쓸쓸한 음조가 비껴있음을 느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상하게도 마음은 평온하였다.

강충일은 깍지껴 장탁우에 놓은 손만 묵묵히 바라볼뿐 오래도록 말이 없더니 이윽고 엷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각오까지 하고있는 사람앞에서 무얼 감추겠소. 옳소. 부장이 동무의 후임자를 생각하고있소. 내가 그때문에 나온것도 사실이고… 날더러 갑문건설을 전면적으로 료해하고 보고자료를 만들어오라는거요. 아마 그걸 보고 결심하려는것 같소.》

철만은 담배생각이 났다. 그러나 정작 불을 달아 피우자니 담배연기가 소태처럼 써서 재털이에 눌러넣고 일어나 뚜벅뚜벅 무거운 걸음으로 창문가로 다가갔다. 창은 캄캄칠야… 먼 공간속에서 로운 야외등이 깊어가는 4월의 밤을 지키며 조을고있다.

등뒤에서 강충일의 목소리가 꿈속에서처럼 들려왔다.

《난 할말을 다했소. 그러니 이젠 동무가 결론하오. 어쨌으면 좋겠소?》

그것은 실태보고서를 어떤 취지에서 만들면 좋겠는가 하는 일종의 아량과 동정이였다. 하지만 철만은 그러한 동정이나 아량을 받아들일수 없어서 이렇게 잘라 말했다.

《이미 말했지만 나는 각오했습니다. 그러니 모든걸 사실대로 보고해주십시오. 송철만이라는 한 개인과 조국의 명예를 바꿀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글쎄 그렇기는 하오만…》

중장은 괴로운 한숨을 내불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